『보노보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대다수가 양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짝짓기를 화해의 제스쳐로 사용합니다.
이들에게 짝짓기란 마치 악수와 같은 느낌으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행위이지요.』

양성애라는 이색적인 특색에 흥미로워하며 TV를 보다가 궁금증이 일어서 옆에 앉은 나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나?"

"...이제 영상 끝났어?"

동물 방송을 보고 싶다며 들뜬채로 자연 다큐멘터리를 선택했던 나나는, 보노보의 짝짓기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 뒤부터 줄곧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건 아닌데, 혹시 우주에도 양성애 성향의 동물이 있어?"

"몰라! 그런걸 왜 나한테 묻는거야!?"

"그야 네겐 동물 친구들이 많으니까 보노보 같은 동물들도 있지 않을까 궁금했거든."

"내 친구들은 아직 어리단 말야!"

하하하. 설마 그 집채만한 우주 멧돼지 녀석도 어린애였다고 우기는건 아니겠지?
딴죽을 걸 부분은 많았지만 더 말하진 않았다.
동물들을 친구로 여기는 나나에겐 적나라한 짝짓기 영상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수 있으니.
그런 나나를 도우려는 듯 모모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자, 료스케씨도 너무 나나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모, 모모~!"

"왜냐면 나나는 키스하면 아이가 생기는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너도 료스케랑 똑같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나나의 모습에 쿡쿡 웃던 모모는 목표(놀림감)를 나로 바꿨다.

"보노보는 양성애였군요."

"그러네."

"...그러고보니 라라 언니에게 들었는데, 료스케씨는 렌씨와 절친이라면서요?"

"...어째서 굳이 이 타이밍에 렌의 이야기를 꺼낸건지 물어도 될까?"

"후후, 어딘지 모르게?"

일부러 의미심장한 미소 짓지마라.

"라라 언니가 렌도 지구에 와서 절친이 생겼다고 기뻐하던걸요?

"아, 그건 다행이네."

"후후, 그거 아세요?"

"뭘?"

"여장한 렌씨는 정말 귀엽다구요?"

그만둬.
여자옷을 입은채 라라에게 시달렸던 렌의 어릴적을 생각하면, 쓸데없이 여장이 잘 어울릴것 같으니까.
그리고 성현에 이르길, 자신에 싫어하는 걸 남에게 하지 말라 하셨지.
내 볼을 쿡쿡 찌르며 장난스레 웃는 모모에게 물었다.

"혹시 모모도 나와 사이가 좋아지고 싶은거야?"

"어머...저랑 사이좋게 지내고 싶으신가요?"

모모가 어쩐지 꿍꿍이 있어뵈는 웃음을 띄며 되물었다.

요즘엔 허세도 제법 잘부리게 됐네.
저번엔 자던 도중 덮쳐진다며 놀랐으면서.

...뭐, 모모의 여유로운 응대도, 내게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방금전 모모의 다소 과한 농담도 그러한 신뢰의 일부라고 생각되어버리니까 조금은 기쁘다.
잠시 기쁨에 잠겨있는데 모모가 어깨를 으쓱하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라는게 있는 법이죠."

"응?"

"저와 친해지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먼저 친해져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누군데 그게?"

"하루나씨 말이에요."

"...엥?"

"라라 언니랑 있으면서 들었는걸요.
최근 하루나씨가 료스케씨와 소원한 것 같다고.
실제로 저번에 마트에서 만난 하루나씨도 어쩐지 료스케씨를 피하는 모습이었고."

"...아, 그러고보면 그랬지."

오늘 관계가 개선되었지만.

"하지만 렌씨와 사이좋게 된 료스케씨라면 하루나씨와는 금새 친해질 수 있겠죠?"

왜 또 거기서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짓는거냐.

"말해두지만 사이렌지와 사이가 좋아지는 방법으로 보노보같은 방식을 시도할 생각은 없다구?"

"어머 야해라...전 그런걸 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는걸요?"

이녀석...

"그리고 저와 친해지는건 스마트한 방식으로 부탁드릴께요."

엉망진창으로 휘저어넣고 너만 쏙 빠지는거냐 응?

듣고있던 나나가 참다못해 폭발했다.

"적당히 좀 해!
모모는 바보! 저질! 불결! 음란! 색마!"

"으, 음란? 색마라니! 근거없는 비난은 그만둬 나나!"

아니 뭐...'벨리알'이 음란함과 악덕의 대명사니까 틀린말은 아닌데.
그래도 '모모 베리아 데빌루크'의 미들 네임은 그냥 악마 이름에서 대충 따온것 뿐이고...

"아무리 모모라도 하루나에 대해서 음험한 얘기를 하는건 용서 못해!"

최근 사이가 좋아진 하루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길 하는게 나나로서는 심기가 상했나보다.

"아무튼! 모모도! 료스케도!
혹시라도 하루나한테 이상한 짓을 하면 절대로 가만 안둘테니까!"




(학교에서)

등교중.

복도에서 머뭇거리며 서있는 하루나와 마주쳤다.


"좋은 아침 사이렌지."

"아, 안녕 아키츠군!"

"응. 그런데 복도에서 누굴 기다리고 있는거야?"

"아키츠군을 기다리고 있었어."

"어? 나를?
혹시 뭔가 볼일이 있던거야?"

"으응."

"으응...그게..."

뭔가를 말하려던 하루나는 주변을 보다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잠시만 이쪽으로..."

"에?"

등교하다말고 내 손을 잡은 하루나에게 이끌려 학교 뒤뜰에 도착했다.

"사이렌지?
갑자기 이런 곳에는 왜...?
혹시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거야?"

"아키츠군..."

무슨일인가 어리둥절하는 내게 하루나가 말문을 열었다.

"그...어, 어제 사진 말인데."

"응? ...아, 아. 그거."

"아직 갖고 있어?"

"응? 그야 물론이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걸."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은 인생의 보물인걸.
그런 내 앞에서 하루나는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었다.

"아키츠군. 그 사진, 지워줘..."

"싫어."

"즉답!?"

어제 찍은, 나의 보물 목록에 신규 등록된 아기 고양이 사진을 지워달라는 하루나의 부탁에 고개를 내저었다.

"어, 어째서?"

"그야 그런 귀중한 사진을 지우라니 터무니 없는 소리잖아."

"귀중해...? 그 사진이?"

"물론이지. 나에겐 둘도 없는 보물인걸.
그때 찍힌 네 모습은 정말로 집에서 키우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구."

"이, 이상한 말 하지마!"

"미안. 조금 본심이 나왔네.
그래도 사진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말은 진심이야.
뭣하면 정말로 지워야할 사진인지 아닌지 아키호씨에게 확인해볼까?"

"아, 안돼! 언니가 안다면...!"

잔뜩 놀림 받을걸 상상했는지 하루나가 기겁하면서 양손을 내저었다.

"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휴대폰을 켜서 하루나가 변신했던 고양이 사진을 보였다.

"봐봐, 사이렌지의 얼굴 같은건 나오지도 않았잖아?
애초에 이걸보고 누가 사이렌지를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하겠어?"

"...에잇!"

"핫!?"

휴대폰에 찍힌 사진을 보이자 하루나가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다.
손을 치켜올려 하루나의 손을 피했다.

"사이렌지? 갑자기 남의 휴대폰을 가로채려 하는건 안되지 않을까?"

"으으읏...!"

신음을 흘리며 원망스런 시선을 보내는 하루나를 달랬다.

"누구에게도 사진을 보이거나 하진 않을테니까?
그러니까, 응?"

"아키츠군은 맘껏 보는거잖아?"

"물론! 그야 이런 귀여운 모습은 언제나 봐주고 싶은걸?"

"귀엽다고 말해도 속지 않으니까!"

달라붙어서 손을 뻗는 하루나에게 곤욕을 치렀다.
몸을 맞대면서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이 곤란하다구.


"자, 잠깐만. 진정해 사이렌지!
부탁이니까...!"


필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향한채 한 호소는 오히려 하루나를 자극했나보다.

발끝으로 선채 힘껏 팔을 뻗으면서 하루나가 외쳤다.


"부탁하고 있는건 아키츠군이 아니라 내쪽이잖아!
그리고 이쪽을 보고 말해 아키츠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지금 자세로 고개를 내렸다간 어찌될지 사이렌지도 알잖아!?"

"엣?"


올려다본 자세의 하루나를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이라고?

첫 키스 정도는 분위기 있게 하고싶잖아! 너도! 나도!

내 말에 상황을 깨달았는지 하루나가 놀라 황급히 물러났다.
방금전은 진심으로 위험했다.

얼굴이 맞닿는다는 의미로.


서로 새빨개진 얼굴을 가렸다.

"...사이렌지는 조금은 남자에게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미, 미안!"



"...사진 찍힌게 그렇게 싫었어?"

"싫은건 아니지만 부끄러워..."

"하지만 애초에 얼굴 같은건 안찍혔잖아.
누구도 사이렌지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곤 생각 못할거 아냐."

"...심술궂어."

"네에네에~ 나는 심술궂은 사내아이입니다.
사이렌지같은 얌전하고 성실한 아이는 괴롭히고 싶어지는 나쁜 아이라구요~"

"...못됐어."

"네. 나는 귀여운 보물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못된 아이입니다."

하루나가 불만스런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아키츠군은 그런 사진을 좋아해?"

"귀엽잖아. 귀여운건 정의야."

"굶주린 눈이야 아키츠군."

한동안 나와 눈싸움을 하던 하루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에겐 절대로 보여주면 안돼?"

아싸아아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겉으론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약속할께."

"꼭이야? 만약 어기면 화낼테니까?"

"응. 절대로 절대로 남에게 보이지 않을테니까."



낙담한 얼굴이 된 하루나와 뒤뜰을 벗어나 걸었다.

"그나저나 사이렌지는 애견인인데도 고양이 모습이 어울리는것 같아."

"정말...농담은 그만둬."

"아니아니. 정말이라구.
어제 그 모습은 정말로 귀여웠으니까.
아, 그러고보면 여동생 카페에서 고양이 복장을 시키는데 말야."

"미오가 아르바이트하는 곳 말이구나?"

"응. 사이렌지도 그런 옷을 입으면 귀여울 것 같은데."

내 말에 하루나가 머뭇거리면서 두손을 머리에 대곤 귀 모양을 만들었다.

"응?"

"냐, 냐앙~♪
이렇게?...라고 할까나?
아, 아하하..."

하루나는 부끄러운듯 낯을 붉힌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스파시바."

"엣?"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천사냐 너는?

"아, 아키츠군?
저기...어쩐지 눈빛이 심상치 않은데?"

응. 지금 내 눈이 하트모양이 되었다고 들어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진으로 남겨도 될까?"

"아, 안돼!"

그렇지요.

"그럼...쓰다듬어봐도 괜찮을까?"

"엣?"

"안돼?"

"어, 저, 저기...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이니까..."

"...아. 그렇지.
그럼 시간이 모자라겠네."

"얼마나 쓰다듬을 생각이었던거야!?"

낯을 붉힌 하루나는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말해두지만 머리 이외엔 성희롱이니까."

"...아. 어제 감각이 남아있다보니 실수할 뻔했네."


고양이 귀여워 고양이.


"...떠올리게 하지 마. 정말이지..."


"미안. 학교인데 나도 참 부끄러운 말을 해버렸네.
그래도 어제의 사이렌지는 정말 사랑스러웠는데.
차라리 그때 좀 더 쓰다듬어둘걸 그랬어."



"아무튼, 이걸로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컬렉션이 하나 생긴 것이었다."

"수상한 말투하지마 아키츠군."

하루나가 옆구리를 툭 쳤다.



(모모)

"저기...료스케씨.
방금 보시던 사진 말인데요."

"응?"

"...혹시 하루나씨와 찍은 사진인가요?"

"......봤구나?"

"!?"

도리도리도리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모모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 그럼 상관없지만."

후우-

모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료스케씨?"

"응?"

"최근 하루나씨랑 그...사이가 좋아지신 것 같네요?"

"응."

"엣? 설마 진짜로?"

문득 어제 TV를 보면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실은 저번에 모모가 얘기하기 전에 이미 사이렌지와 친해졌었거든."

언제나 한발 앞서가는 남자 아키츠 료스케입니다.

"사이렌지랑 친해졌으니까 이젠 너와 친해질 차례려나?"

호의적으로 건넨 말에 모모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엣? 모모?"

"가, 가까이 오면 비명을 지르겠어요!"

"벌써 지르고 있잖아..."

"보노노같은 방식은 전 싫으니까요!"

"아니 그건 무-리-잖아."

보노노라니...그 녀석은 책상 밑에 서식하는 다른 세계의 네거티브 아이돌이라고.

"무, 무리!? 너무해! 야만적이야!"

풋.

"아하하하하~!"

머리를 헝클어뜨림.

"아앗? 아이 취급 하지 마세요~!"

울상지으며 모모가 화냈다.

"우우, 정말이지..."

"이상한 짓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다행인데요..."



미심쩍어서 확인차 모모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사진 안본거 맞아?"

"그러니까 정말이라니까요!"

"응. 믿을께.
그리고 부탁이니 다른 아이들에겐 사진 얘기는 하지마.
사이렌지도 곤란해할테니까."

"정말로 무슨 사진이길래 그래요?"

"보고 싶어?"


"...만약 제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면요?"


"보여주지 않아.

사이렌지와 약속했으니까."


"...만약 제가 우연히 또는 실수로 보게 된다면요?"


"...모모도 사이렌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히는걸로 어떨까?"

"절대로 사양이에요."

모모가 생긋 웃었다.



"료스케씨?"

"응?"

"미리 말해두지만, 하루나씨와 같은 방법으로 친해지는건 사양이니까요?"

"네이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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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붙이기 덜된 초본입니다.


모아둔 소재를 거진 그대로 써서, 서로간의 거리감 조절이 제대로 안된 상태지만...일단 뭐라도 올려놔야 완성하려고 하겠다는 생각에...=ㅁ=;


40화부터 시작했던 에피소드는 다음편이나 다다음편 즈음에 마무리 되려나요-_-;


중간 내용 추가하고 다듬어지는대로 완성본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월요일 맞이 잘하세요^^




p.s. 보노노: 모리쿠보 노노(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말버릇 중 하나는 "무-리-".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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