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부터 태어난 인간은 그대를 해칠 힘이 없으니 두려움 없이 용감히 싸우라.

- 『맥베스』 귀신의 예언


"료스...아니, 맥베스여...
파이프의 영주 맥다프를 조심하라.
허나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여자가 낳은 이는 그대를 해칠 수 없음이니..."


"하하하하하! 들었느냐 맥다프?
여인의 다리 사이에서 태어난 자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제가 바로 당신을 쓰러뜨릴 존재군요."

쭈우우우욱-

"끄악!? 악악~!"



"......셋다 뭐하고 있어요?"

"아, 코테가와씨?"

야미의 머리카락에 마음껏 뺨을 잡아당겨져 비명을 지르는 나를 어이없이 바라보던 코테가와가 말을 건네왔다.
연극에 몰입해 대본에 집중해있던 오시즈가 고개를 들어 코테가와를 반겼다.

"「멕베스」의 장면을 연기하던 중이었어요."

"멕베스?"

"네~!"

호기심 넘치는 오시즈의 권유를 타서 점잖게 벤치에서 독서중이던 야미를 끌어들여 시작한 연극이다.

맥베스 역에 나, 귀신 역에 오시즈, 맥다프 역에 야미.

「...역할 배정에 악의가 느껴지는건 기분탓입니까?」라고 신음을 흘린 야미였지만, 나랑 오시즈의 역할도 비슷한 느낌이었기에 딱히 불평해오진 않았다.
성실함이 지나쳐서 귀신역을 맡은 오시즈가 유체이탈을 시도하려던 해프닝이 있었지만 적당히 오시즈를 진정시키고 속전속결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하여...인상적인 장면들의 짜집기와 난무하는 애드립, 귀신 시절을 떠올리며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연기하는 오시즈,
마찬가지로 자신의 배역-맥다프-의 뒷설정이 신경쓰인건지 정작 중요한 전개에서 앙심을 품은 꼬집기를 시도한 야미의 불협화음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방금전 장면이다.

"듣기론 이 멕베스란 작품이 윌리엄......누구였죠?
엄청 유명한 문학가라고 들었는데..."

"윌리엄 셰익스피어입니다 오시즈."

"아. 맞아요 셰익스피어."

보충해준 야미에게 감사를 표하고 오시즈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멕베스가 그 사람의 4대 비극 중 하나라면서요?
방금전까지 야미씨가 이 작품을 읽고 있는걸 보곤, 얼마전에 매지컬 쿄코와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라서 한번 연기해본거에요."

오시즈의 설명을 들은 코테가와는 미묘한 얼굴로 오시즈를 쳐다보았다.

"...체육시간에 말야?"

"아..."

지금은 체육시간.
엄연한 수업의 연장선이다.

"즐거워 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체육시간이니까 다른 친구들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운동이 좋지 않을까?"

"아, 그게...조금 개인적인 사정으로 료스케씨와 야미씨에게 신세를 지고 있던 중이라서요."

"아야야...맞아. 시즈가 인공육체에 익숙해지는 방법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어."

야미에게 꼬집혀 아직도 얼얼한 양볼을 감싸쥐면서 오시즈와 코테가와의 대화에 참견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거냐 하면 말야..."




수십분 전, 체육시간이 시작되고 막 스트레칭을 시작했을 때였다.
머리를 한손으로 당기며 천천히 목을 풀어주고 있는데 곁으로 다가온 야미가 말을 걸어왔다.

"체육시간인가요 아키츠 료스케?"

"응?"

스트레칭 하던 상태 그대로 몸을 돌리자, 오른손에 책을 펼쳐든 야미가 서있었다.

"아, 야미구나.
구경하고 있었던거야?"

"아뇨. 운동장에 프린세스의 모습이 보이기에 잠시 와봤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자세로 인사한 내게, 야미는 천천히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마주선채로 나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인 야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하고 있는겁니까?"

"뭐냐니, 몸풀기 운동 중인데."

자세를 풀고 이번엔 머리를 왼쪽으로 당기자, 내 행동을 보던 야미의 머리도 덩달아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따라하기?
한손에 책을 든채로 내 행동을 따라하는 야미의 모습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상태로 거울보듯 나와 마주한 야미는 물끄러미 응시하던 눈을 한차례 깜빡였다.

"...이상한 자세군요."

우주인은 준비운동 같은거 안하나?
수영모도 안쓰고 준비운동도 안하는 사람들로 붐비던 수영장의 풍경을 떠올려보면, 우주인이냐 아니냐는 딱히 상관없는것 같긴 하다만.

"운동하기전에 해두면 좋다구.
생각있으면 가르쳐줄테니까 따라해볼래?"

"좋습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야미는 책을 덮고 내 행동을 주시했다.
한손에 책을 든채로 스트레칭을 하는게 다소 무성의하게 보일수도 있었지만,
마주본채로 동작을 흉내내는 모습이 꽤 깜찍했기에 오히려 미소가 지어졌다.
상체 운동을 하고 몸을 숙이려다 문득 떠오른게 있어 주의를 주었다.

"아, 맞다. 몸을 숙일땐 주의해줘.
야미 넌 머리카락이 길어서, 스트레칭 도중에 몸을 숙이거나 하면 머리카락이 바닥에 쓸릴것 같으니까."

"괜찮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니까요."

아무렇지 않은듯 대답한 야미는 허리를 숙여 발끝으로 손을 뻗었다.
야미의 움직임에 맞춰 자연스레 아래로 흘러내리던 금발은 바닥에 닿기 직전, 정지화면을 보듯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스르륵-

공중에 떠있는 상태 그대로 굳어버린듯 멈춰있던 머리카락은, 곧이어 사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위로 말려올라갔다.
과연...트랜스 능력의 응용인가.
의외로 일상에서도 쓰이는 능력이었구나.
평소에 저런 긴 머리가 땅에 닿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서 나름대로 만족하고선 다음 자세로 넘어갔다.
바닥에 앉아 양다리를 좌우로 벌리고,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대로 상체를 바닥에 접하듯 앞으로 몸을 숙이자, 정면에 서있던 야미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왼손으로 배틀 드레스의 치마자락을 슬며시 누르며 야미는 살짝 붉어진 낯으로 나무라는 시선을 보내왔다.

"...몸을 숙인다면 숙인다고 미리 말해주세요."

"아, 미안..."

바닥에 몸을 숙인채로 사과하자, 야미는 스커트로 다리 사이를 가린채 종종걸음으로 내 등 뒤로 돌았다.
아무래도 더이상 스트레칭을 따라할 의지는 없어진것 같았다.
구경꾼 모드로 전환한 야미의 태도에 조금 미안함을 느끼면서, 기왕 이렇게 된거 야미에게 스트레칭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 괜찮다면 등좀 눌러줄래?"

"...그러죠."

야미에게 등을 눌려 몸과 바닥이 밀착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상당히 유연하군요."

"유연성에는 어느정도 자신있으니까 말야."

야미의 말에 답하며 고개를 들자, 흔들리는 금발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등을 눌러주느라 몸을 숙인 야미의 금빛 머리카락이 내 얼굴 근처까지 흘러내려와 있었다.
햇살을 받아 빛을 머금고 작게 물결치는 야미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스르륵-

손가락이 닿기 직전, 야미의 머리카락 끝이 말려올라가며 손길을 피했다.

"......"

다시 손을 뻗는다.

스르륵-

머리카락이 말려올라간다.

손을 뻗는다.

스르륵-

머리카락이 말려올라간다.

아, 이건 이것 나름대로 꽤 재밌네.

"뭐하는겁니까?"

꽈악-

"윽!?"

재주좋게 머리카락을 움직여 내 손길을 피하고 있던 야미가 등을 꽉 눌러왔다.

"아니 그게말야~ 눈앞에서 하늘거리는걸 보면 신경쓰이잖아?
거기다 내가 알고있는 여성들 중에선 야미가 가장 머리카락이 기니까...만져보고 싶다는 호기심이랄까?"

"고양이입니까 당신은?"

기가막힌 듯 중얼거린 야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우에 따라선 강철도 자를 수 있는 머리카락입니다.
함부로 만지다 베이지나 않도록 조심하는게 좋을겁니다."

그건 트랜스 능력을 쓸 때의 얘기잖아.
일부러 심술궂게 겁주기는.
무엇보다도 저번에 만져봤을땐 분명...

"...부드러워서 기분 좋았었는데..."

"시끄럽습니다."

꽉-

"으갹!?"

무뚝뚝한 어조로 세게 등을 눌러대는 야미에 의해 턱으로 바닥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야미와의 실랑이 끝에 간신히 스트레칭을 마치고 일어섰다.
뭘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며 운동장을 돌아보던 중, 이마를 문지르면서 걸어가는 오시즈의 모습이 보였다.
끙끙대는 폼이 보통 아파보이는게 아니라 걱정스레 오시즈를 불렀다.

"어이~ 괜찮아 오시즈?"

"아, 료스케씨~! 야미씨도?"

"이마가 붉은데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달리다가 다리가 뒤엉켜서 넘어졌거든요."

인공육체와의 동화가 완전하지 않은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오시즈가 덜렁이인지,
오시즈는 길을 걷다 구르거나 다른 사람과 박치기를 해서 유체이탈을 해버리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몸을 얻은건 좋지만 이래서야 지켜보는 사람으로선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의도치 않게 유체이탈이 일어나는 현재 상황은 오시즈로서도 신경쓰이고 있는 부분이었는지 곤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닥터 미카도에게 검진 받아보는건 어떻습니까?"

"여쭤봤지만, 미카도 선생님께선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어떻게 하긴 어렵다고 하셨어요."

"그렇습니까..."

정기적으로 야미의 건강검진을 해주는 미카도 선생님은 우주에서 이름을 떨치는 의사지만,
영혼과 관련된 부분은 우주의학으로서도 아직까지 해명하지 못한 것 같다.

"아, 맞다.
혹시 모르니까 료스케씨에게 물어보는건 어떠냐고 미카도 선생님이 말씀하신적이 있어요."

"어? 나말야?"

"네."

난데없이 나온 내 이름에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자 오시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 영적인 부분은 난 잘 모르겠지만, 아키츠군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밑져봐야 본전이니까 도움이 필요하다면 한번 물어보도록 하렴.

"료스케씨는 유령 상태의 저에게도 접할 수 있었고, 유체이탈을 하는데도 도움을 주셨잖아요.
그래서 료스케씨라면 혹시라도 해결책을 알려주지 않을까 해서..."

힐끗하고 날 올려다보는 오시즈의 믿음의 깊이가 무겁게 다가온다.
유령 퇴치 비슷한 짓을 하긴 했지만, 오시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글쎄올씨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걸.

옛날 이야기 중에 유체이탈을 한 사람의 얼굴에 낙서를 해놓으면, 몸을 빠져나간 혼이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육체의 모습이 영혼의 모습과 차이가 나면, 그만큼 영혼이 육체에 안착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오시즈의 경우에는 인공육체가 오시즈 본인의 모습과 거의 일치하니까 육체와 영혼의 동화율 자체는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육체와 혼의 연결이 강고해지길 기다리는게 느긋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지금 오시즈에게 줄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다.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팔짱을 끼고 고민하며 힐끗 야미를 바라보다가 야미의 오른손에 들린 책 제목이 보였다.
「멕베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따라 자연스레 입이 열렸다.

"...연극을 해보는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시작된게 방금전 연극."

"...어째서 거기서 연극으로 연결되는건가요?"

내 이야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어준 코테가와는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체이탈을 막는거랑 연극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에요?"

"그야 연극이란건 배우가 배역에 몰입해야 하는거잖아?
배역 그 자체에 빙의할 만큼 몰두할수 있다면, 육체에도 영혼이 확실히 안착하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한거라구."

"...그런데 하필이면 무라사메(시즈)의 배역이 '유령'인가요?"

"에, 가장 자신있는 역할이니까 일까요...?"

"왜 거기서 의문형이야 무라사메..."

오시즈의 애매한 답변에 기가 막혀하는 코테가와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유체이탈을 막으려고 시작한 연극인데 정작 맡은 배역을 생각하면 짖궂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야미나 오시즈도 나름대론 연극을 즐긴것 같으니까 나쁘진 않았겠지.



결국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버린 연극을 종료하고, 코테가와, 오시즈, 야미와 함께 2-A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중, 커다란 외침이 귓가를 때렸다.

「가슴은 우리들의 청춘이자 낭만, 그리고 꿈이다!!」

...뭐냐 저 변태적인 발언은.

체육시간 중 난데없이 들려온 외침에 학생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리토의 단짝 친구인 사루야마 켄이치.
이마에 핏대를 세운 사루야마는 엄청난 기세로 리토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사루야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향하자 트랙을 뛰는 라라와 리사, 미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니테일로 묶어 올린 라라의 머리카락이 라라의 뜀박질을 따라 경쾌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라라 특유의 활기찬 매력이 한층 돋보이는 머리 모양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상하로 출렁이는 라라의 가슴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또 브래지어 안 했네.
흔들거리는 가슴을 가린 체육복 위로 작게 도드라진 부분을 목격하자, 사루야마가 인중을 늘리곤 헤벌쭉하던 이유가 납득이 갔다.
하지만...

「남자의 인생은 가슴의, 가슴에 의한, 가슴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우주의 진리!!」

바보다 저건.

"...저질이군요."

남녀가 함께 있는 장소에서 터무니 없는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는 사루야마의 행태에 야미와 2-A의 여학생들의 눈살이 찌푸려 졌다.
멀찌감치에서 오물 보듯 사루야마를 보는 사야카와 코요미, 그리고 그런 두명에게 동조하는 여학생들을 보면 사루야마의 청춘에 가슴은 있어도 여자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하는 건 자유라지만 입에 담지 않을 정도의 판단력 만큼은 잃지 맙시다.
이상한 열기에 취한 사루야마의 대화 상대를 맡으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리토에게 조용히 애도를 표하는 가운데, 옆에서 오시즈와 코테가와의 소곤거리는 대화가 들려왔다.

"시대가 바뀌어도 남자들이 생각하는건 바뀌지 않나보네요."

"무라사메가 살던 시대도 마찬가지였어?"

"그런 셈이죠. 저렇게까지 노골적인 분은 드물었지만...
제가 살던 시대의 남자분들에겐 순산형 체형를 가진 여성이 제일이었어요.
코테가와씨처럼요."

"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무라사메?"

말을 더듬는 코테가와의 얼굴은 당황스러움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야미는 침묵한채로 고개를 숙이곤 가슴 아래를 받치듯 낀 팔짱을 슬그머니 들어올려보고 있었고.
비난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 쪽으로 신경이 쓰이는 건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둘의 대화를 들으며 걷고 있는데, 수근거리던 2-A 여학생들 무리가 우리 쪽을 가리키며 속삭이는게 눈에 들어왔다.
여학생들끼리 잠시 대화가 오가는 것 같더니, 다른 학생들에게 등 떠밀리듯 앞으로 나선 여학생이 있었다.

단정하게 정돈된 단발과 양옆을 장식한 머리핀.
리사의 말에 따르자면 1학년 때에 비해서 성장한 것 같다는 특기사항을 가진 소녀, 아라이 사야카다.
친구들에게 떠밀려 앞으로 나선 사야카는 당황스러워하며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쉬곤 우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어느덧 걸음을 멈춘 우리들에게 다가온 사야카는 내쪽으로 얼굴을 향하며 어쩐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응~ 아키츠군..."

"왜그래 아라이?"

"아키츠군에게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말야, 혹시 대답해 줄 수 있어?"

"물어보고 싶은거? 내가 알고 있는거라면야 얼마든지."

"그럼, 사루야마가 말했던거 말인데."

가슴이 어쩌고 저쩌고 한 것 말인가.
우물쭈물 주저하던 사야카는 작게 경련하는 입가를 숨기듯 애매한 미소를 띄웠다.

"그...아키츠군도...큰게 좋아?"

"......"

"자, 잠깐만 아라이씨? 어째서 그런 낯부끄러운 질문을 하는거야?"

말을 잊고있는 나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코테가와가 사야카를 나무랐다.

"그게...방금전 사루야마의 발언을 놓고 비난하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남자들은 과연 큰가슴을 좋아할까?」라는 걸로 화제가 바뀌어와서 말야..."

스스로도 민망한 질문이란걸 자각하곤 있었는지, 물어놓고선 얼굴이 붉어진 사야카는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던 중에, 천명의 애인과 사귄 아키츠군이라면 분명 도움되는 답변을 해줄거라는 의견이 나와서..."

그래서 친구들한테 등 떠밀린거냐.
아니, 그래도 말이지...애초에 애인이 천명이란 소문은 단순한 루머란걸 사야카한텐 얘기하지 않았었나?
그런 내 대답이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만.

"아, 물론 난 기대도 안했어."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라이."

"웃으면 좋다고 생각해."

"......"

「우리반 여학생들은 대체 뭘 생각하는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코테가와는 골치가 아파진듯 이마에 손을 얻었다.

"그래서, 아키츠군의 의견은 어때?"

흥미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나한텐 수치심이란 게 있다고.
방금 전까지 저만치 떨어져 소곤거리던 여학생들이 조용히 시선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게, 정말이지 가시방석 위에 앉은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어떻게든 민망한 얼굴을 추스르곤 사야카를 마주보며 조심스레 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건 딱히 상관없는데."

"흐응...그렇구나."

의외로 간단히 수긍하곤 물러서는 사야카의 태도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궁금한건 이걸로 끝이야?
혹시나 좀더 파고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으응...원래는 좀더 질문이 있었지만, 나머진 내가 어떻게든 무마해볼께.
사루야마처럼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런 질문 같은건 아키츠군에게 폐가 되는걸."

"아라이..."

이 무슨 친절함!

"맞습니다. 알몸 와이셔츠가 좋다든지 하는 개인의 취향 같은걸 밝혀봤자 서로 거북할 뿐이겠죠."

"멋대로 사람의 취향을 날조하지 말아주시겠습니까 야미씨?"

배려의 깊이에 감동하려는 찰나 초를 치는 야미에게 무심코 딴죽을 걸어버렸다.

"에? 료스케씨는 속옷 위에 백의 가운 차림을 좋아했다고 미카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큭, 미카도 선생님 또..."

집을 찾아갔다가 그런 차림으로 나온 선생님을 우연히 봤을 뿐이잖아!?
양호실에서의 대화를 훔쳐들은 걸 비꼰거에 대한 심술?

"무라사메랑 야미도 아키츠군을 놀리는건 그쯤 하도록 해.
이야기가 자꾸만 파렴치한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

둘을 나무라며 이야기가 엇나가는걸 막으려는 코테가와를 보며 쓴웃음을 지은 사야카는 한걸음 내딛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럼 대답을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으니 난 이만 실례할께."

"아라이 네가 곤란한 입장이 된 것 같아 미안한데...
그냥 내가 직접 여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해주는게 낫지 않을까?"

"뭐야, 걱정해주는거야~?
괜찮아 괜찮아~"

피식 웃은 사야카는 손을 설레설레 내저으며 사양했다.

"사실은... 좀더 아키츠군에 대해 알고 싶은게 많이 있지만, 이런데서 물어볼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발돋움한 사야카가 내 왼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해 작게 속삭였다.

"다음번에 또 테니스 코치 해줄테니까...기다리고 있어줘."

속삭여 오는 목소리가 귓가를 어지럽게 울리는 가운데,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내뱉어진 한숨이 귀뿌리까지 뜨겁게 달궜다.
붉어진 내 얼굴을 보며 작게 웃은 사야카는 한차례 손을 흔들곤 여학생들에게로 돌아갔다.
달아오른 양빰을 식히며 옆을 돌아보니 코테가와가 묘한 표정으로 사야카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라이씨...최근 인상이 바뀌었군요."

"그렇게 보여?"

"네. 뭐라고 할까, 어쩐지 허물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려나요?
아라이씨는 아키츠군과는 서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였어요.
아키츠군도 할 땐 하는군요?"

"어, 으음...혹시 그거 칭찬인거야?"

"칭찬이에요. 아니면 뭘로 이해한건가요?"

"......비꼬기?"

"실례네요. 전 그렇게 삐뚤어지게 말하진 않아요.
뭐, 친해진 사람들 대부분이 여자아이들이란 점은 확실히 파렴치하지만 말이죠.
반성하세요."

"네..."

이렇게 된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 보다 용감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굳이 지적하지 않는다.

그나저나...사야카랑 다른 여자애들은 무슨 말들을 하고 있으려나.
여차하면 거들어주려고 코테가와, 오시즈, 야미와 함께 여학생들 무리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응~ 그러니까 아키츠군은 딱히 가슴 크기 같은걸 신경쓰진 않았어.」

「에~ 혹시 아키츠군이 거짓말 한 거 아냐?」

「정말이라니까...」

못 믿겠다는 듯한 여학생들의 반응에 사야카는 곤란해 하는것 같았다.
의심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여학생들 가운데 안경을 쓴 투사이드업의 갈색머리 소녀가 나서서 사야카와 함께 나를 두둔했다.
사야카의 단짝인 시라유리 코요미다.

「잠깐만. 사야카의 말대로 아키츠군은 그런거에 집착하지 않을거야.」

「시라유리씨마저...?」

미심쩍어하는 여학생들의 반응에 코요미는 단호히 쐐기를 박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런걸 따졌다면 천명의 애인같은건 무리였지 않을까?」

「「「아, 납득.」」」

천명의 애인부터가 무리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그리고 변호는 좋지만 방향성이 다릅니다.설득력을 얻기 위해 그런것 같지만, 잠시나마 감동했던 내가 밉다.
내 감동을 돌려줘.
약간 침체한 티를 드러냈던건지, 뒤따라오던 오시즈가 날 격려해주었다.

"괜찮아요 료스케씨!
제가 살던 시대에는 남자 한명이 여자 여럿을 거느리는건 이상할 것 없었으니까요.
료스케씨처럼 네자리수는 과연 무리였지만요."

오케이. 오시즈 네가 날 어떻게 보고 있는진 잘 알았다.
오시즈 안에서의 나는 경험이 풍부한걸로 되어있는 것 같다.

어느새 여학생들 무리 근처까지 가까워진지라, 오시즈의 말을 들은 여학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집중된 시선에 당황한 나와 오시즈를 번갈아 바라보던 여학생들은 뭔가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속닥거렸다.

"(하긴, 유령 시절의 무라사메씨에게도 수작을 부린 아키츠군이잖아?)"
"(여성이기만 하면 귀신마저도 그 마수를 피하지 못한다는 아키츠군인데, 육체 같은거에 연연할거라 생각한게 실수였어.)"
"(귀신을 꼬시기 위해선 사령술 같은거도 배울 정도라니까.)"

아니. 뭔가 요상하게 의미가 와전된것 같은데, 억지로 구분하자면 내 기술은 귀신 퇴치지 꼬시는게 아냐.

이상한 오해가 생겼지만 거북한 화제도 슬슬 끝나가는 느낌이라 안심하고 있을 때, 운동을 끝마치고 온 리사와 미오, 라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응? 뭐야뭐야? 무슨 얘기?"

"아키츠군은 큰가슴을 좋아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
"본인도 부정해서 아니라고 결론이 났지만 말야."

소녀들의 말에 사정을 파악한 리사와 미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아아, 뭐야~ 그런거였어?
별로 아키츠군은 그런걸 신경쓰지 않을걸?"

"맞아맞아. 확실히 아키츠군은 가슴같은건 따지지 않았지?"

멋진 도움이다 리사, 미오.
이래서 친구는 잘둬야 하는거군요.

"정말?"

"응. 아키츠군, 여자아이 십여명의 가슴을 보고 전부 코피를 흘렸는걸?"

"응응. 정말로 크기에는 상관없이 반응했다니까?"

그 이야긴 금지이이이이---!

마음속의 절규가 허망하게도, 침착해가던 여학생들에게서 다시금 불온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여자 탈의실이라도 훔쳐본건가?)"
"(대중목욕탕에 숨어들었다가 퇴치됐단 얘길 들었는데 그거 아냐?)"
"(그러보고니 얼마전에 라라네 친구들이 학교를 빠진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키츠군도 결석이었지?)"
"(단체로 온천 여행이라도 다녀온걸까? 노천탕이면 훔쳐보기 딱 좋은 곳이잖아.)"

수군거리던 소녀들을 뒤로하고 사야카가 미오에게 물었다.

"그래서 누구누구 였는데?"

"응...그러니까..."

"사, 사와다씨 잠깐만...!"

당황한 코테가와의 제지도 허무하게 미오는 손가락을 꼽아보며 각각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나랑 리사랑 하루나, 코테가와, 시즈, 룬, 야미야미, 텐죠인 선배, 쿠죠 선배, 후지사키 선배...
아, 유우키의 여동생도 있었어. 초등학교 6학년이었지 아마?"

"「「「...헤에에...」」」"

제발 그만. 아까부터 여학생들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안경 너머로 날 째려보던 코요미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키츠군 저질..."

......알고 지내는 여자애가 보내는 비난의 시선은 이렇게도 속을 후벼파는거였군요.

"(그냥 가슴이면 뭐든 좋다는거네.)"
"(로○콘.)"
"(원숭이.)"

여학생들이 보내오는 싸한 눈빛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데, 이야기를 듣던 라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하지만..."

"왜그래 라라찌?"

"나랑 목욕할 땐 코피 안 흘렸는데?"

"「「「......」」」"

시간이 얼었다.

- 9초 경과다! WRYYYYYYYYYY------!

데빌루크의 초과학력은 시간마저 멈출 수 있는거였네요.
HAHAHA.

"......함께?"

한참을 이어진 침묵속에서, 툭하고 내뱉듯 중얼거린 사야카의 말에 라라가 답했다.

"응. 그게말야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더니 거기서 료스케가 고양이과 맹수같은 눈을 하고선 날..."

"왁! 와악!"

"읍읍~?"

기겁해서 라라의 입을 막았다.
우사미더러운눈이 된 여학생들을 뒤로하며 바둥거리는 라라를 데리고 한쪽으로 이동했다.

"라라...그때 일은 사과할테니까 제발 말하지 말아줘."

"푸하~ 어째서?"

갑갑했었는지 숨을 내뱉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기울이는 라라를 설득하기 위해, 될 수 있는한 심각한 얼굴을 만들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상하게 오해받는 말을 했다간 잘못하면 시집 못가게 된다구."

"에~ 그건 곤란해."

"그렇지? 그러니까 여기선 그냥 장난이었던걸로 입을 맞추자구."

"으응...알겠어."

고민하던 라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곤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여학생들에게 돌아가자 소녀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아키츠군, 방금전 얘기는..."

"아, 아하하...잘못들은거 아닐까?
그렇지 라라?"

동의를 요구하는 몸짓을 보내자 라라가 수긍했다.

"응, 그러니까 그 일은 그냥 장난이었대."

그게 아냐아아아!?
천연소녀 라라가 팀킬을 시전하고 있습니다.
라라의 말에 여학생들의 눈이 빛났다.

"그일?"
"장난?"
"그냥 놀이였어?"
"솔직하게 말해줘 라라.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눈을 희번뜩거리며 몰려오는 친구들에게 놀란 라라가 무심코 말을 더듬었다.

"어? 아, 아무것도 아냐.
그게 료스케가 입을 맞추자고 해서..."

"이, 입맞춤!?"
"그걸로 끝났을리 없잖아?"
"설마 착한 라라의 마음씨를 이용해선 점점 더 과격한 요구를...!"

호들갑스럽게 망상을 부풀리던 소녀들은 한차례 숨을 꿀꺽 삼키곤 물었다.

"그, 그래서?"

"미안... 료스케가 더이상 말하면 안된다고 했어.
알려지면 시집가지 못한다고..."

"「「「......」」」"

살기위해 잡았던 동앗줄은 썩은 동앗줄이었습니다.
창백한 얼굴, 푸른 얼굴, 빨개진 얼굴, 험상궂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여학생들의 시선에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다.

"...리얼 귀축이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라라를 유혹해서 그런 짓을..."

그런짓이라니 뭔데?

"라라도 불쌍하게...저런 변태에게 시달리다니."

"응? 아냐. 꼬리를 흔드는걸 칭찬 받은건 기뻤으니까.
리토한테도 칭찬받고 싶은데 헤헷..."

"「「「...대체 무슨 플레이를 시킨거야!?」」」"

얼굴을 잔뜩 붉히는 여학생들과 엿듣고 있었는지 콧김을 훅훅 뿜으면서 충혈된 눈을 한 근처의 남학생들.
망상전개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열기에 밀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 무언가에 등을 부딪혔다.

"어딜가시나요 아키츠군?"

끼기긱...
고개를 돌리자 이마에 십자마크를 새긴 코테가와가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코...코테가와?"

"사람이 기껏 호의적으로 봐주고 있었더니... 잘도 파렴치한 짓을 저질러 줬더군요?"

"그...! 일단 엄청나게 내용이 왜곡됐다고 자기변호를 하고 싶은데 말이죠...?"

"자...일단 둘이서 목욕했다는 이야기를 먼저 부정해 보시죠."

"......"

"......"

"......왜곡도 뭣도 없습니다."

"역시 파렴치했잖아요 이 호색한!"

"으아아아아!"

코테가와에게 귀를 힘껏 잡아당겨져 비명을 질렀다.

"이리와요 이 색골!
오늘 아주 수염을 뽑아버릴테니까!"

"뜨아아아악!"

「변태!」「짐승!」「치한!」「바람둥이!」「원숭이!」「난봉꾼!」

여학생들의 야유를 들으며 코테가와에게 귀를 꼬집힌채로 풍기위원실로 끌려갔다.
구경하던 여학생들도 덩달아 풍기위원실로 따라왔다.
체육시간이잖아. 운동을 하라구!



게임속에서 벌어졌던 일의 상세보고를 하고나서야 엄청나게 화가 난 코테가와를 어느정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라라와 함께 욕탕을 썼다는점 때문에 째려보는 코테가와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거칠어진 아드님과 함께 욕조 밖으로 몸을 내밀라는건 조금 가혹한 요구 아니야?
아무튼 다음 수업 준비도 해야 했기에 코테가와랑 여학생들이 탈의실에 가면서 나도 간신히 풍기위원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목욕탕 한번 잘못 썼다가 무슨 고생이야 이게...

여학생들 시달림에 진이 빠진채로 터덜터덜 걷던 중 복도를 뛰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읏흥~ 거기서 룬쨔앙~♥"

"쫓아오지마!"

양팔을 벌린채 쫓아오는 교장에게 질겁하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룬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룬?"

"아, 수염! 도와줘!"

달려오면서 날 발견한 룬이 절박하게 날 불렀다.
황급히 내 뒤로 숨은 룬이 교장을 가리키며 외쳤다.

"자, 해치워 수염!"

과격해!
내모습은 보이지도 않는지 룬쨩~ 하고 하악하악하며 껴안을듯 달려오는 교장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순간적으로 주먹이 나갈뻔 한걸 참곤 등뒤에선 룬을 안아들었다.
그리곤 그대로 교장을 피해 도주.

"꺄악!? 뭐하는거야?"

"뭐하긴? 달아나고 있잖아!"

"이거 놔! 난 리토꺼란 말야!"

"니가 무슨 물건이냐!?"

룬은 룬의 것입니다.
양팔에 안겨선 내 얼굴을 밀어내며 발버둥치는 룬을 데리고 교장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왜 저 변태교장을 때려눕히지 않는거야?"

"저기, 난 교장 선생님을 때린 학생으로 징계받고 싶진 않거든?"

"무슨 상관이야? 애초에 학생상대로 성희롱하는 교장도 징계받지 않고 있는데."

반박할 말이 없네요.

룬을 안아 올린채 뛴 행위가 조금 거칠었던지, 바닥에 내려선 룬은 내 손이 받쳐들었던 오른팔 옷자락에 생긴 주름을 매만지고 있었다.

"아무튼 교장도 지금쯤이면 포기했을테니 이제 그만 교실로 돌아가자구."

"...알았어."

룬과 복도를 걸었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방금전엔 그냥 렌과 바뀌면 되지 않았어?"

"...좋아서 후추 같은걸 사용하는게 아니란 말야.
렌도 여자옷 입은 모습을 남앞에 보이는걸 싫어하기도 하고...
...게다가 저번엔 렌과 몸을 바꿨는데도 교장은 좋다고 쫓아왔다구."

"진짜냐..."

정말로 교장의 변태성은 상식을 까마득히 초월했군요.

"하아...2학년 와선 리토군이 있는 반에도 못들어가고, 학교에 와선 변태 교장에게 쫓기기만 하고...우울해."

"그, 뭐냐...힘내."

"아무튼 다음 번에도 이런일이 있으면 부탁할께."

"오~ 의지해주는거야?"

"넌 변태지만 적어도 교장관 달리 상식은 통하니까."

평가가 참으로 박합니다.

"애초에 교장 이하가 존재 하긴 하는거야?"

내 물음에 룬은 붉어진 얼굴로 날 노려봤다.

"...남의 얼굴에 흉악한 물건을 들이댔던 어디의 누구씨는 원래라면 교장보다 더 심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과분한 평가 정말로 감사합니다."

급반전하여 싹싹해진 내 반응에 룬은 얼굴을 외면한채 흥-하고 코를 울렸다.
...울어도 됩니까?

예전 일이 떠올라 삐졌는지 입을 꾹 다물고 앞장서 걷기 시작한 룬의 뒤를 쫓아가는데, 복도 코너에서 자신만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호호호호~ 이 균형잡힌 몸매엔 라라도 이길수 없겠죠.」
「물론입니다 사키님.」
「아름다우세요 사키님.」

"이 이상한 웃음소리는...분명 3학년의 바보퀸 텐죠인 사키?"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구나?"

"흥. 냅둬."

투덜거리며 코너를 돌던 룬이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룬?"

의아해하며 룬을 따라 코너를 돌자 사키 선배 일행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교복 차림의 린 선배와 아야 선배, 그리고 란제리 속옷 차림으로 맨살을 쬐고있는 사키 선배.



......엥?

타악-

내가 눈을 부비곤 다시 앞을 확인하려 했을 때 갑자기 새하얀 손바닥이 눈을 가렸다.

"...보지마."

"어? 룬?"

갑자기 가려진 시야에 당황해서 눈을 가린 룬의 손바닥을 잡았다.

"치우면 죽을 줄 알아."

"네."

룬의 협박에 룬의 손바닥을 잡고 치우려던 손을 그대로 멈춘채 가만히 섰다.
눈을 가리고 있는 룬의 손바닥은 차가웠다.
룬의 피부에 닿아있는 손끝에선 기분좋은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은하 통신판매에서 좋은거라도 사서 쓰는걸까?

"뭘 꼼지락꼼지락 만져대는거야!"

"윽...!"

서늘하고 말랑한 감촉에 나도 모르는 새 손등을 쓰다듬기라도 했었는지 화가 난 룬에게 발등을 밟혔다.

촤락~
사르륵-
부스럭...

눈이 가려진 동안 천이 스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이윽고 바스락거리던 소리가 멎고 룬이 손바닥을 치웠다.

눈을 뜨자 눈앞에는 교복을 입은 사키 선배와 그 일행이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눈을 깜빡이는 내게 사키 선배는 작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평안하셨나요 아키츠군?"

"어...? 예, 안녕하세요 사키선배."

난데없이 양갓집 규수처럼 정중한 태도로 인사해오는 사키선배의 모습에 당황해 인사하곤 갸웃했다.

"...허깨비를 본건가...?"

"왜 그러시죠 아키츠군?"

"아뇨...방금전 뭔가 굉장한 모습의 선배를 본 것 같은 기분이...「착각입니다.」 네?"

"착각입니다."

볼이 살짝 붉어진 채로 사키선배가 미소지었다.
그 뒤를 이어 린 선배와 아야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착각이다 아키츠."

"착각이에요 아키츠군."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셋의 모습에 룬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룬은 태연한 얼굴로 응수했다.

"착각이야."

"...그래?"

넷의 반응에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생각하는걸 그만두기로 하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사키 선배의 취미는 음악 감상인가요?"

"그렇답니다. 우아한 취미겠죠?
생각난김에 오늘은 일반인들의 생활을 체험할 겸 린과 아야와 함께 상점가의 음반매장에 가보는것도 좋겠네요."

복도를 걸으며 사키 일행과 가볍게 담소했다.
추천 도서 관련으로 아야 선배와 대화하던 중 서로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키 선배는 음악, 린 선배는 드럼과 영화 감상,
아야 선배는 피아노와 독서, 룬은 은하통신판매 쇼핑과 노래였다.
내 취미는 말하던 도중 룬에게 딴죽이 걸렸다.

"네 취미? 여자 꼬시기 아냐?"

이 녀석이...

"아냐, 독서랑 산책이라고."

"노인네 같아 너."

냅둬...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심심한데다가, 산책은 만남의 시간이기도 하단 말야.
예전과 달리 마주치면 인사 나눌 정도로 알고 지내는 마을 사람들도 늘었으니까.

이후 계단에서 사키 일행은 3-D반으로 향하면서 우리와 헤어졌다.

룬과 함께 2학년 복도를 걷던중 학교 한귀퉁이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퍼엉~!

"운동장 근처인것 같은데...무슨 일이지?"

"글쎄? 또 라라가 뭔가 했겠지.
어차피 발명품같은거 실험하다가 폭발시킨거 아냐?"

...있을법해! 보통 저런 소리는 안들릴테고.

"소꿉친구라서 잘 아는가보구나?"

"당연하지. 내가 지금까지 어떤 꼴을 당했는데...
예전부터 걔란 애는 말이지..."


「꽃밭에서 화관을 만들고 있을때」"루운~"

"왜 그래 라라?"

"에헤헤~ 놀랄만한걸 만들었어~♪
봐봐~ 강력 물대포-!!"

콰콰콰---!

"꺄악---!"

"어때? 놀랐어?"

"......옷이...화관이..."

"그것 뿐이 아니지, 그때도..."

「발디딜 면적도 모자란 높이 솟은 바위기둥」"여기선 경치가 잘 보이지?"

"으아앙~! 높아-! 무서워-!"

"그 때도..."

「집채만한 괴물의 앞에서」"멋진 생물을 잡았어-"

"꼬르륵...(기절)"


"으...지금 생각해도 열받아..."

"뭐랄까,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라 그 아가씨는 어릴적부터 터무니 없는 트러블을 일으켰나보다.
푸념을 늘어놓는 룬에게 맞장구쳐주면서 교실로 돌아갔다.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도 라라와 리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종례시간이 되서야 리토와 라라가 조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방과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와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훗? 귀여운 여자아이 발겨언~♥」

「히이익!?」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쇄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교장에게 쫓기고 있었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필사적으로 뛰는 소녀의 모습은 정말로 절박해 보였다.
이젠 학교 밖에서도 변태같이 행동하시는군요 교장 선생님!
숨을 가쁘게 내쉬며 뛰는 소녀의 모습을 보건데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이대론 자칫하면 좋은 꼴은 못볼 것 같아 소녀의 옆에 따라붙어 뛰며 물었다.

"헤이~! 거기 소녀! 도움이 필요한거야?"

"큭, 보면 알잖아요~~~!"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힘겹게 대답한 소녀는 호흡이 흐트러졌는지 몸을 비틀거렸다.

"그럼 그 말, 승낙으로 받겠다구?"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소녀의 어깨와 오금을 받치곤 소녀를 안아들었다.

"아앗? 뭐, 뭐하는...?"

"도망."

짧게 대답하곤 다리에 힘을 주며 호기롭게 외쳤다.

"전방을 향해 전속전진DA!"

"우아아아앗~~~!?"

소녀가 내지른 비명을 무시하고 재빠른 속도로 교장을 따돌렸다.


교장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한참이 지난 뒤에 소녀를 내려놓았다.
낯선 남자에게 안긴터라 소녀의 볼은 새빨개져 있었다.

"고, 고마워...요."

"뭘, 별말을 다."

"저...그런데 여기는?"

"아...여긴 우리집앞."

익숙한 길로 뛰다보니 그만 집까지 와버렸다.

"음...내가 살고 있는 곳이 여기라서 무심코 뛰어왔어.
혹시 이 근처 지리를 모르는거라면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줄께."

"아, 아니에요.
그것보다, 저기..."

"왜 그래?"

"으......"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며 몸을 움츠리던 소녀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잠시만 당신 집에 머물러도 될까요?"

"......응?"



뭐, 이상한건 없었다.
그저 화장실이 급했을 뿐이었다.
소녀의 명예를 위해 말해두는데 작은쪽이다.

...그나저나 안나오네.
화장실에 들어간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끙끙 앓는 소리만 내며 나올 생각을 안하는 소녀를 기다리다가,
그사이 음료수라도 한잔 준비해놓는게 낫겠다 싶어 주방으로 향했다.

지이잉-

"히야악!?"

응?

비데소리와 함께 내질러진 묘한 비명에 냉장고 문을 잡은채로 동작을 멈췄다.
비데소리가 멎고 헐떡이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핫...하앗...위, 위험해 이건...)"

...뭐가?

"(차라리 그냥...)"

도르르-탁-

부스럭.

"(흐읏...으응...읏...)"

"......."

대체 뭔 소리냐 이건...
화장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신음소리에 머리가 띵해졌다.
남의 집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히, 히잇...!?)"

어쩐지 당황스러움이 배어나오는 소녀의 높아진 신음소리를 듣다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변태 교장에게서 구해온 소녀가 실은 특이한 취향을 가진 아이였습니다'라는 상황에 오랜만에 골치가 아파졌다.
남한테 알려졌다간 부끄러워 죽을지도 모르니 그냥 모른척 해주자...

잠시후 우우-하는 신음을 흘리며 한껏 붉어진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온 소녀에게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음료를 대접했다.
모처럼 집에 들어온 사람을 그냥 보내기도 미안하고.
차가운 음료에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안색을 고친 소녀가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방금전 신음을 듣고 인식하게 된거지만, 이 소녀, 상의가 반팔티 한벌이 끝이다.
그러니까 속칭 노브라...
옷 위로 작게 도드라진 부분 때문에 시선을 두기가 곤란했다.
설마 교장이 흥분해서 쫓아다닌 이유가 이것 때문은 아니겠지...?
...나중에 안입는 잠바 한벌이라도 입혀서 보내자.
바짓부리를 접어 올린 청바지와 티 한벌의 간소한 차림이었지만,
두 다리를 옆으로 모아 앉은채 지친듯 나른한 눈으로 음료수를 마시는 모양새가 묘하게 요염했다.
음료를 마시고 후아-하며 작게 내뱉은 한숨 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하곤 물었다.

"혹시 피곤해?"

"아, 아뇨..."

말은 부정하지만 살짝 잠긴 눈빛에 피로가 엿보인다.

"피곤하면 잠시 쉬었다 가도 돼.
네가 거북해하지만 않는다면."

방금전까지 뛰느라 약간 땀에 젖어기도 하고.

처음보는 남정네 집에서 목욕하라고 권할 생각까진 없지만.
내 제안에 소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수긍했다.

"...그럼 잠시만 쉬었다 갈께요."

"응. 편하게 있으라구.
심심하면 책장에 꽂힌 책을 읽어도 돼.
소설이나 만화책 같은 것도 있으니까."

"네. ...어?"

대화하며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던 소녀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그래?"

"...휴대폰이 없어요.
잃어버린건 아닌데...급하게 나오느라 집에서 안가져 왔나봐요."

"급한 약속이 있었나보구나?
혹시 연락해야 할 곳이 있는거라면 내걸 써."

내 휴대폰을 꺼내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무심코 내 휴대폰에 받아든 소녀는 번호를 누르려다 손을 멈추었다.
뭔가 걸리는게 있는지 한참을 주저하던 소녀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휴대폰을 도로 돌려주었다.

"...아뇨. 배려는 고맙지만 사양할께요."

"약속이 있는게 아니었어?"

"딱히 갈데가 있어서 집을 나온건 아니었으니까요."

...혹시 가출?

"집에 연락하는건?
혹시 부모님이 걱정하시진 않을까?"

"별로요. 두분 다 바쁘셔서 집에는 거의 안들어 오시니까..."

"그, 그래?"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배어나왔나보다.
내 얼굴을 본 소녀가 쿡-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배려해주신건 고맙지만...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은듯 싱긋 웃는 소녀의 행동에 말문이 막혔다.



소녀는 설마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가출소녀는 아니었다.
집에서 동생에게 시달리다가 욱하는 마음에 집을 뛰쳐나온거라고 한다.
언니답지 못했다고 쓴웃음을 지은 소녀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적당히 쉰것 같으니 전 이만 가볼께요."

"벌써?"

"동생도 걱정할테니 늦기전엔 돌아 가봐야죠."

"좋은 언니구나."

"아, 하하...그런가요? 가끔 절 곤란하게 하지만, 착한 동생인걸요?"

"음료수 마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좀 더 쉬었다 가는건?"

"감사하지만 괜찮...윽...?"

사양하던 소녀는 갑자기 안색이 변해선 배를 부여잡았다.

"왜 그래?"

"아, 아뇨 갑자기 속이..."

「어째서 또...?」라며 곤혹스러워하던 소녀는 엉거주춤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몸이 안좋은건가?
쌀쌀한 가을 날씨에 티 한벌로 밖에 있다보니 배탈이 난걸지도.
조금만 더 소녀를 쉬게 하고 방에 불을 넣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화장실 안에서 풀썩- 하고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올 봄, 고열로 쓰러졌던 야미의 모습이 떠올라 화장실 앞에가서 조심스레 소녀를 불렀다.

"어이? 괜찮아?"

......

응답이 없자 곧바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다행이랄까 무방비하달까 화장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열자 청바지를 반쯤 벗은채로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가 보였다.

"어이!?"

놀라서 황급히 소녀를 안아 상체를 일으켰다.
피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소녀의 하반신에서 흘러나온 핏덩이가 허벅지 안쪽과 속옷, 청바지, 화장실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변기에 담긴 물마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혈? 아, 아니...월경인가 이거?

공황상태에 빠진 나의 마음과는 별개로, 다행히 소녀에겐 바닥에 쓰러진걸로 인한 상처같은건 없어보였다.
기절한건...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리빈혈 때문인걸까?
어쨌든 이대로 화장실 바닥에 소녀를 방치할 수도 없었기에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소녀를 안아들고 침대에 뉘였다.
핏덩이로 더러워진 소녀의 바지는 일단 벗기고, 소녀의 몸에 묻은 피를 미지근한 물을 묻힌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야미 때의 일도 있고 해서 생각보단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몸을 닦은 뒤 급한대로 내 파자마 바지를 소녀에게 입혀주었다.
크기가 맞지 않았기에 일어서면 흘러내릴듯 헐렁하기 그지 없었는 바지였지만 맨몸인것보단 나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실수였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핏덩이가 묻은 소녀의 옷가지를 찬물에 담가 애벌빨래를 하고나서 세탁기에 넣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파자마 바지의 가랑이 부위에서 핏자국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침대 시트에도 빨간 얼룩이 작게 번져 있었다.

...월경이란거 조금씩 계속해서 피가 나오는거 였습니까?
이래서야 마냥 옷을 갈아입히는걸론 해결이 안될듯 했다.
임시로 타월을 몇장 침대 시트위에 깔고 다시 소녀를 누인 뒤, 파자마 바지는 탈의하고 하반신을 수건으로 가린후 이불로 소녀의 몸을 덮었다.
혹시나 또 핏덩이가 흘러나와 시트를 적실지도 모르니까.
파자마 바지도 찬물에 담가두고 핏덩이를 씻어낸 뒤, 세탁기에 추가로 넣었다.

그리고 집을 나와서 곧장 약국으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손님. 무엇을 드릴까요?"

"...음...그게..."

공교롭게도 맞이해준 사람이 여성 약사였다.
마음은 초초한데 거북함까지 겹쳐서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보던 약사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금새 '아~!' 하고 입을 벌리더니 초승달 같은 눈매를 하곤 힐쭉 웃었다.

"그거 찾는거죠? 여깄어요."

탁-

약사가 선반에 올려놓은 물건을 봤다.

「콘○」

"...아닙니다."

"어머? 그럼 혹시...이건?"

「치질약」

어림짐작으로 약을 내놓지 말아주세요.
계속 머뭇거리다간 이상한 오해만 늘어날 것 같아 주저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저...다, 달거리 약을..."

"네? 무슨 약요?"

한번에 좀 알아들어주세요.

"...생리통의 약이 필요해요."

민망함에 뜨거워진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자 약사가 아...하곤 쓴웃음을 지으며 약을 건네주었다.

여동생의 일 때문이라고 변명을 한 내게 '좋은 오빠네요.'라고 웃은 약사에겐 양심이 찔렸다.
약과 함께 생리대를 사면서 주의 사항을 들었다.
보통은 생리통이 오기전에 복용하는게 좋으니까, 앞으론 미리 먹어두도록 동생에게 말해주라고 했다.
참고로 생리땐 평소보다 신경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니까, 다소 투정을 부리더라도 이해해주라는 얘기도 들었다.
기절한 소녀를 떠올리면서 조금 빈혈기도 있는 것 같다고 하자, 약사는 친절하게도 월경시에 주의할 점을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철분 섭취에 좋은 음식 섭취도 중요하다는 약사의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약국을 나서려는 내게 「착한 오빠니까, 이건 덤으로 줄께~」라며,
바지 주머니에 콘○을 집어넣어준 약사에게 어색한 얼굴로 감사를 표하곤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 생리용품을 내려놓고 소녀의 상태를 살폈다.
침대 위에 누운 소녀는 고른 숨을 내쉬며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생리통 약은 일어났을 때 먹이면 되겠지만...
살짝 이불을 들춰서 조금씩 피가 스며들어가는 수건들을 확인한다.
언제 소녀가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너무 시간이 지나면 침대 시트랑 수건은 꽤나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만 같다.
무심코 약국에서 사온 생리대를 본다.
......아니, 역시 갈아입혀준다는 선택지는 기각.
아무리 못볼꼴까지 봤다지만 거기까지 하는건 친절은 커녕 성추행이겠지.
혹시나 갈아입혀주던 중에 깨어난 소녀와 눈을 마주친다거나 한다면 변명의 여지도 없이 인생이 끝장날거다.
차라리 시트를 새로 갈고 말지.

이대로 소녀가 깨어나길 기다리는걸로 방침을 정하곤 침대 머리맡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서 소녀의 상태를 지켜보는데, 조용하던 소녀가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으응... 시, 싫어 그런건..."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거부하듯 고개를 비트는 소녀의 행동에 윤기가 도는 갈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악몽을 꾸고 있는건가?
괴로운 가운데 꿈속에서 뭔갈 찾고있는건지 팔을 뻗어 침대 위를 더듬는 소녀의 행동에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소녀의 손바닥에서 온기가 전해져온다.
맞잡은 손에 조심스레 힘을 주자 소녀가 미소를 흘렸다.
위안이 되었나보네. 다행이다...

쪽-

...응?

진정한듯한 소녀의 상태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소녀의 입술에 내 손가락이 닿아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채 이해하기도 전에 소녀는 내 손가락을 입안에 넣었다.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아가씨?
내 손가락은 까까가 아니에요.

입안에 넣은 손가락을 할짝 핥거나 하면서 응석부리듯 매달려오는 소녀에게 당황하다가 문득 방금전 소녀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집에서 부모님이 걱정하시진 않겠냐고 물었을 때 소녀의 대답.

- 별로요. 두분 다 바쁘셔서 집에는 거의 안들어 오시니까...
- 배려해주신건 고맙지만...괜찮아요.

이 아이...설마 애정결핍인가?

집에 계시지 않는 부모님.
제대로 입지 않은 옷.
부족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하는 성적 행동.
잠결에 달라붙어 아기 마냥 무언가를 빠는 행동.
어쩌면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무의식중에 갈구하고 있는 행동인지도 모른다.
배고픈 아이가 모친의 젖을 갈구하는 것처럼, 이 소녀도 결여된 모친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건 아닌지?

소녀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한 확신은 못하겠지만, 신경쓰이게 만든 대사나 행동을 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안쓰러움에 살며시 소녀의 볼을 쓰다듬자, 닿은 손바닥에 얼굴을 비벼오는 소녀.
아직 어림이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미소에 입맛이 썼다.

나도 참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추측만으로 연민에 젖어있는 내 모습은 도저히 부끄러워서 남앞에 보일만한 장면은 아니다.
뭐,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도 지금처럼 쓸데없이 감상에 빠져있는 거지만.

손가락을 입에 물곤 할짝이듯 빨고 있는 소녀를 내려다본다.
이래서야 무슨 젖먹이에게 젖을 주는 느낌이다.
나, 남자에다가 아직 청소년인데 아기엄마 노릇이냐...
소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침이 배게를 눅눅히 적시고 있는 상황에 살짝 한숨이 나왔다.

"움움...우웅...?"

한숨 소리가 들렸던 걸까, 아니면 입안에 들어온 손가락에 이물감을 느꼈던 걸까.
내 손가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소녀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우응...?

"아, 일어난거야?"

아직도 내 손가락을 입에 넣은채 눈을 뜬 소녀는, 아직 상황이 이해가 안되었는지 눈을 깜빡이며 머리맡에 앉아있는 내 얼굴을 마주보았다.

"몸은 이제 괜찮아?"

"......"

"아직 잠이 덜깼어?"

"......"

"?저기...?"

"......에에에에에엑------!?"

기겁해선 내 손을 빼내고 황급히 뒤로 물러나던 소녀는 힘차게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아, 아야야...!"

"어이? 괜찮아?"

머리를 부여잡곤 몸을 웅크리고 끙끙대는 소녀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운듯 머리를 흔들며 소녀는 기억을 더듬는듯 작게 중얼거렸다.

"어...? 나, 음료수를 마시고... 의식을 잃어선..."

"머리 부딪힌 곳은 괜찮은거야?"

"아, 괜찮, 아윽...!?"

도중에 생리통이 왔는지 소녀는 말을 잇다말고 배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배안에 이물감이...?"

갸웃하며 이불 안에서 손을 부스럭거리던 소녀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바, 바지가 없어..."

"아...그거라면 지금 세탁중이야.
피가 묻어서 말이지."

"...피...?"

내말에 굳어있던 소녀가 황급히 이불을 걷어내곤 눈을 크게 떴다.
하반신을 가리던 수건과 침대 시트에 스며든 핏자국을 발견한 소녀가 믿을수 없다는 눈빛으로 뚫어져라 시트의 핏자국을 응시했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소녀의 하반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무례한 일이라, 딴곳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방금전 사온 생리용품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면 생리통약을 깨어나면 주려고 했었지.

"이, 이건...?"

"아 맞다. 지금 약 먹을래?"

"...약..."

"약국에 가서 사왔어. 통증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거야.
약사분이 그러시던데 원랜 사전에 복용하는게 좋으니까, 앞으론 미리 먹어두라고 하시더라구.
뭐, 약간 늦은감이 있지만 그래도 안 먹는것보단 나을테니까..."

「먹어두도록 해.」라는 말은 결국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숙여진 고개를 들어 눈을 부릅뜬채 날 노려보는 소녀의 얼굴을 보았으니까.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절규하면서 침대를 박차듯 몸을 일으키며 덤벼드는 소녀에게 밀려 방바닥에 쓰러졌다.
하반신 알몸의 소녀가 내 위에 올라탔다는 상황 묘사는 지금 분위기에선 농담거리도 안되었다.

"큭!? 뭐하는..."

"어째서야!?"

"뭐?"

"어째서냐구!"

난데없는 고함에 어안이 벙벙해서 넘어뜨려진채로 소녀를 올려다 보았다.
내 위에 올라탄 소녀가 내 양 어깨를 꽉 누르며 사나운 눈빛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거야!
어째서 이렇게 된거야!?
어째서 날 집으로 데려 온거야!?"

배 위에 올라탄채 고함치는 소녀의 몸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말하다 말고 감정이 복받친듯 소녀는 입을 앙 다물고선 떨림을 참으려 애쓰는것 같았다.
작게 들썩이는 어깨, 눈물이 흘러내릴 것처럼 흔들리는 눈망울.
울음소리를 참으려는듯 한껏 비틀린 입매가 공연히 슬퍼보였다.

"어째서...어째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해?
어째서 내겐 이런 일 뿐이야?
난 평범한 일상만 있으면 되는데...왜 자꾸만 날 가만두지 않는거야?
어째서...날 위한다면서 날 힘들게 만드는거야...
왜 아무것도 모른채로 언제까지 휩쓸려야 하는거야...?"

기분 탓일까, 노려보는 소녀의 시선은 나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툭...투툭...

말을 이어갈수록 노려보던 소녀의 시선이 점차 무너져갔다.
소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볼을 타고 내얼굴 위로 떨어졌다.

"이젠 싫어...이렇게 시달리는건..."

목멘듯 한껏 잠긴 목소리로 호소하는 소녀가 안쓰러웠다.
정신적으로 벼랑끝에 몰려있는 느낌.
소녀의 가정사에 대해 멋대로 해본 내 추측을 아득히 넘어서는 반응이었다.
얼마나 가혹한 삶을 보내온거야 대체...

"날...구해줬었잖아...?
도와준거였잖아..."

일그러진 내 얼굴을 마주한 소녀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작아진채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안심해버렸던거야...
그랬는데...어째서...?
이런곳에서...어째서...?"

패닉상태에 빠진 듯 소녀는 「어째서」만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소녀의 주변 환경이라든지 현재 심리상태라든지에 대한 정보는 잘 얻었다.
우선은 지금 이 상황부터 정리하도록 하자.
일방적인 소녀의 외침을 들으면서 이 아이가 뭘 오해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천천히 손을 들어 소녀의 뺨에 가져갔다.

"아..."

조심스럽게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훔쳐준다.
코를 훌쩍이면서 발갛게 볼을 물들이는 소녀의 모양새가 어쩐지 사랑스러웠다.

"진정했어?"

"우윽..."

또다시 울음을 터뜨릴듯 한 얼굴의 소녀에게 급하게 말했다.

"우선, 내 착각이 아니라면 네가 오해하고 있는게 있어."

"훌쩍...뭔데요?"

음료수를 마시고 나서의 모모와 나나의 반응을 떠올리면서 확실하게 소녀의 추측을 부정했다.

"난 음료에 이상한 약 같은걸 타지 않았어.
그때 네가 화장실에서 기절했던건 순전히 생리빈혈 때문이었다구."

"......?"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소녀.
왠지 이해가 안가는것 같은 얼굴이라 나도 덩달아 해괴한 표정이 되었다.
자기가 뭘 겪은 건지 정말 모르는건가?

"...너 설마 이번이 초경인거야?"

"......에에에에에------!?"




"아, 아하하하하~
그, 그러니까 그거였단 말이죠?
초...으...아무튼 그거!"

민망한듯 새빨개진 얼굴을 손부채로 식히면서 소녀는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오해가 풀리고 필사적으로 사과해오는 소녀에게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날이 되면 여성은 신경이 예민해지니까 조심하라고 약사님도 말씀하셨으니까 이정도는 감수해야지.

"끝났다 나..."

초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소녀는 얼굴이 빨개진채로 좌절포즈를 취했다.
뭔가 심각하게 좌절하는 소녀를 격려해주려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없어.
결국 좋게좋게 끝난거잖아?"

"우우...내버려둬요 제발.
자기혐오로 죽을것 같단 말이에요..."

"뭘 생각하는진 몰라도 좀 더 기뻐하는게 어때?
어머니가 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니까.
그런 의미로 오늘 저녁은 팥찰밥이라구?"

흐뭇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다가 소녀가 집어던진 배게에 얼굴을 맞았다.




"그래서 말예요, 난데없이 「결혼해줘!」라는 얘길 들었다구요.
이상하지 않아요?"

"아하하, 그거 고생이었네."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소녀의 푸념에 어울렸다.
교장을 만나기 전까지 길가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꼬였었나보다.
하긴 귀엽게 생긴 얼굴에 상의는 헐렁한 겉옷 한벌 뿐이니 아무일 없는게 용한거지.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는 소녀의 말에 맞장구쳐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참을 얘기하고나서 스트레스가 풀렸는지 개운한 얼굴이 된 소녀는 문득 궁금한듯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잘 대해주는거에요?"

"응?"

고개를 갸웃하는 내 모습에 우물쭈물하던 소녀는 양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게... 전 오늘 처음 본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옷이랑 시트도 더럽혔고, 맘대로 오해해선 잔뜩 화내버렸는데..."

"음...외로워보였으니까?"

"네?"

"너, 잠결에 계속 무언가를 잡으려 했다구."

"제가...말인가요?"

"그래. 불안해하는것 같아서 손을 맞잡았더니, 아기마냥 손가락을 빨거나 했다구."

"아, 아우웃..."

내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소녀의 모습을 못본척하고 말을 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했어.
무의식중에 나온 그 행동은 네가 외로움을 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외로움?"

"아,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라서 어쩐지 말하기 거북한데..."

민망함에 한차례 머리를 긁적이곤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나는...「혹시 이 아이는 어린 시절을 고독하게 보낸건 아닐까?
그리고 그 외로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유년기를 보낸건 아닌가?」하고 생각했단거야.
뭐, 쉽게 말하자면 애정결핍이란거지."

"......"

내가 말해놓고도 어째 넘겨짚은 감이 강한지라 찝찝하기도 했고,
무반응인 소녀의 태도를 봐선 아무래도 잘못 짚은것 같아 손을 내저었다.

"뭐, 결국은 전부 내 상상일 뿐이니까 기분나빴다면 사과할께.
「이 아이는 그냥 잠결에 아무한테나 달라붙는 헤픈 여자구나.」라고 생각하긴 싫어서, 나 나름대로 꾸며본 설정이었으니까."

"제, 제가 그런 사람일리 없잖아요!"

마무리로 넣은 농담에 놀랄정도로 당황하던 소녀는, 이내 실실웃는 내 얼굴을 보며 농담인걸 깨달았는지 볼을 부풀리며 날 외면했다.

"음, 혹시 삐졌어?"

"......"

"저기... 이상하게 농담해서 미안."

"......아뇨. 그냥, 당신의 말을 듣고 조금, 어릴적 생각이 났어요."

내 사과에 고개를 저은 소녀의 얼굴에는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방금전까지 보통으로 얘기하다가, 갑자기 가라앉은 분위기로 바뀐 소녀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뭔가 내가 실수한 것 같아서 어떻게든 분위기를 전환시켜 보려고 애썼다.

"혹시 고민이라든지 말하고 싶은게 있다면 들려주지 않을래?"

"일면식도 없는 당신한테요?"

"그러니까 더 적당하지.
「어차피 오늘 보고 끝일 사이니까 말해도 별 상관없나?」정도로 편하게 생각하라구.
고해성사듣는 신부님처럼 진지하게 들어줄테니까."

"킥..."

내 허풍같은 말에 피식웃은 소녀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저희 부모님은 둘다 바쁘셔서 어렸을 때부터 집엔 언제나 저랑 동생 뿐이었어요.
동생은 겁이 많고 외로움을 잘타서, 내가 어깨에 힘을 주고 동생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단둘이 있는 집에서 무서워하는 동생을 달래는건 항상 제 역할이었어요.

천둥번개가 치던날은 '내가 곁에 있으니까 무섭지 않아'라고 말해주면서 동생은 울음을 달래줘야 했어요.
그런날이면 언제나 동생이 안심하고 잠에 들 수 있도록 동생의 머리맡을 지켜주었죠.

...사실은 저도 무서웠는데...

울다 지친 동생이 마침내 잠에 빠지고 나면... 불하나 켜지지 않은 어둡고 적막한 집안에는 저 혼자만 남은것 같은 감각을 느꼈어요.
한밤중에 세차게 쏟아지는 비가 창문을 때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이 덜커덕덜커덕 소리를 낼 때면,
마치 창밖에서 모르는 누군가가 창문을 거칠게 두드리고 있는것 같아서...아빠나 엄마가 곁에 있어줬으면 했어요...

하지만 약한 소린 할 수 없었어요.
그게...전 언니잖아요?
여동생이 무서워서 울고 있었는데, 동생을 지켜줘야 할 제가 약한 소릴 할 순 없었던거죠.
가끔 창밖의 소리에 동생이 깰때면 애써 손이 떨리는걸 감추면서 웃어주었어요.
그렇게 있기로 결심했으니까...오기로라도 당당해야 했던거에요.

크리스마스의 밤에도 부모님은 오지 않으셨어요.
결국 또 동생과 단 둘 뿐이었죠.
쓸쓸해하는 동생을 위해서 서툴게나마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조금씩 모아뒀던 돈으로 동생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주었어요.
가족이 함께 모일 순 없었지만 쓸쓸함을 지우곤 행복하게 웃는 동생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충분히 행복했어요."


행복해보이는 소녀의 얼굴과는 반대로, 훈훈하다기 보단 적막함이 감도는 옛 이야기에 무심코 질문이 튀어나왔다.

"...네 선물은?"

내 물음에 소녀는 쓴웃음을 짓곤 고개를 저었다.

"없었죠. 크리스마스땐 저랑 동생 둘 뿐이었는데 당연하잖아요?
부모님은...바쁘셨으니까."

"...네가 동생에게 부모님의 역할을 했던거구나..."

소녀가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입어 넣던건 역시 어릴 적의 외로움 때문인가...
부모님이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면...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위해서 외로움을 참아야 했던 이 아이의 외로움은...누가 달래줘야 하는걸까?
처연한 미소를 지은 소녀가 내 눈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입을 뗐다.

"...이런 설정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엥?"

한창 몰입해서 듣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단어가 들린것 같다.
쨘~! 하고 함박 웃음을 지은 소녀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날조한 과거 이야기 열심히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전부다 뻥이었다고오오오오오------!?

"뭐야 이 결말은!? 난 정말로 진지하게 듣고 있었는데...!"

"그쪽이 재미없는 농담같은걸로 놀려대니까, 저도 제가 당한걸 그대로 값아준 것 뿐이에요.
잠결에 손가락을 물었던건 부끄럽지만, 애초에 그런 행동에 거창한 이유 같은게 붙을리 없잖아요.
전 이제 다 컸다구요."

억울해하는 내 모습이 고소한지 소녀는 입을 가릴 생각도 않고 낄낄댔다.

"한방 먹었군 젠장...아아, 걱정해서 손해봤잖아."

"킥킥, 센티멘탈한 아저씨."

"시꺼 냅둬."

"뭐, 농담관 별개로 오늘 도와준 일은 감사드려요.
남의 집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건 부끄럽지만, 솔직히 저 혼자선 당황했을테니까..."

"하긴...너 공부 열심히 해야겠더라."

"네?"

"성지식도 제대로 없는걸 보면 수업시간에 졸았거나 제대로 안들은거겠지.
적어도 필요한 지식은 몸에 익혀두라고."

"우...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런걸 배워봤자 실감도 안날 뿐더러, 오늘 일은 저도 황당했으니까요.
오늘 일을 동생한테 들켰다간 되려 비웃음 당할뿐일테니까 어찌보면 다행이죠."

"동생보다 남이 덜 부끄럽냐..."

"가족한테 들키느니 이편이 차라리 나아요."

"...그리고 축하의 팥찰밥을 주는 것도 가족 외의 사람이 되어버렸군... 유감입니다."

풋-

"아하하하, 하하- 아하하하하~~~!"

맥빠진 내 대답의 어디가 그렇게 웃겼는지 소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면서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음을 멈추지 않는 소녀의 행동에 한숨이 나왔다.
저렇게 쉬지않고 웃다 진 빠지겠네...

"하하핫...하앗...하...킥..."

결국 웃다 지친듯 숨이 흐트러진 소녀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숨을 고르면서도 소녀는 눈을 가린 손바닥을 치우지 않았다.
들썩이는 어깨도 어째선지 쉬이 멈추지 않는것 같았다.

"내 말이 그렇게 재밌었어?"

"......윽...우윽..."

"어, 어이...?"

웃음을 멈추려고 앙 다문 소녀의 입술 사이로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잦아들어가던 웃음소리는 어느새 울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흘러넘치는 무언가를 참으려는듯 입술을 깨문 소녀가 소리를 죽여 울었다.

"읏...으으읏..."

"어, 야...? 왜 그러는거야?"

소녀의 얼굴을 손바닥 틈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당황해서 손수건을 건네주려 했지만 소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울음을 참으려 애썼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읏...달라...울고 싶은게 아닌데..."

소녀의 노력도 허무하게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방금전 설정에 몰입하기라도 한거야?"

"몰라 바보..."

날 흘겨본 소녀는 자기도 혼란스러운지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었다.

"몰라...뭐가 슬픈지 모르겠어. 이런거 이상한데...

아래의 찝찝한 감촉이 기분나빠...
남자들한테 쫓기는 경험도 기억하기 싫어.
이상한 아이로 오해받은게 억울해.

내가 외로워 한다구?
그저 지나간 옛 이야기일 뿐인데.
지금와선 아무것도 아닌 기억일 뿐인데...

울적해지는 내 모습이 싫어...
왜 내가 너한테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하는거야?
부끄러워 죽을것 같아...
...전부...엉망진창이야..."

감정이 격해졌는지 울음을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훌쩍이는 소녀에게 내가 해줄수 있는건 말없이 등을 두드려 주는것 정도 밖에 없었다.




"아하하~너 귀여운 얼굴을 하고선 그렇게 부은 눈을 하고 있으니까 우습다구."

"우우...누구 탓으로 이렇게 된거라 생각하는거에요!"

한참을 울고난 뒤 눈두덩이가 퉁퉁 부은 소녀를 보고 폭소했다.
뭐, 소녀가 진정했기에 마음놓고 웃어버린거지만.
원망스러운듯 바라보는 소녀에게 싱글거리면서 놀렸다.

"아무튼, 방금전 일을 생각하면 네 잠버릇도 네 어린시절이랑 영 상관없는건 아닌가봐?"

"그건 실수에요! 몸이 안 좋아서 괜스레 감성적이 되었을 뿐이라구요!"

"뭐, 나도 순전히 옛일로 잠버릇이 생겼다곤 생각안해.
반은 그거겠고 반은 아마도 네 성욕이겠지.
사춘기잖아? 뭔가 엄청 쌓여있는거 아냐?"

"읏, 아니라구요!"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던 주제에 뻥치지 마시죠.

"그래그래. 얼른 멋진 애인이나 만들라구.
욕구불만을 해소하면 그런 잠버릇도 사라지겠지."

"그러니까! 욕구불만이 아니래두요?
전혀 믿지않고 있잖아?!
그리고 그, 그런 일은 결혼하고 나서...!"

이상한 잠버릇과는 반대로 순수한 소녀다.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으려니, 바락바락 대들던 소녀는 울상을 지으며 불평했다.

"우우...역시 이런 심술궂은 사람한테 얘기하는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좋아하는 아이는 있는거야?"

"윽..."

"뭐, 이럴땐 남자나 여자나 필요한건 용기라구.
혹시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영화라도 보자고 권해보라구.
너라면 분명 OK 할 사람들이 널렸을 걸?"

"놀리지 말아요!"




이런저런 투닥거림 뒤에 소녀를 배웅했다.
소녀의 청바지는 아직 마르지 않았기에, 어릴적 내 바지 한벌을 입도록 건네 주었다.
추가로 상의 한벌인 소녀의 몸을 가릴 잠바도.

"여기 잠바. 그 차림으로 나갔다간 또 이상한 시선을 받을테니까 입고가도록 해.
어릴적 입던거지만 너한텐 맞을거야."

"고마워요. 그런데..."

소녀는 어색한 손길로 바지를 매만졌다.
생리대 찬 부위에 손을 댄 소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으...이런거 불편하네요...
생리란거, 역시 저한텐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요."

"익숙해져야 할걸?
어머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신호라구."

"장담하건데 그럴 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없어요."

"자신만만하네. 아무튼 자, 이거 받아."

생리통약이랑 생리대를 담은 봉투를 건네준다.

"솔직히 이런거 필요없는데..."

"잔말말고 받아.
약사 누나가 그러는데 그날엔 하루에 1~2장으로 끝내진 않는다더라.
초경은 어쩐진 모르겠지만, 어차피 남자 혼자사는 우리 집에선 쓸 수도 없는 물건이라구.
궁시렁대지 말고 얼른 받아."

"으..."

소녀는 붉어진 얼굴로 머뭇거리며 봉투를 받아들었다.

"혹시라도 다음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찾아와.
밥 정도는 대접해 줄 수 있으니까."

"...고마워요. 아키츠 료스케."

"어? 내 이름 알았어?"

"물론. 사이난에서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럼 안녕~!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아! 저기 네 이름은..."

"다음번에 만나거든 가르쳐줄께요!
아마도 그럴일은 없겠지만~"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소녀는 떠나갔다.
뭐, 사이난에 산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

집안으로 돌아와 식기를 정리했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시간을 확인한 뒤 산책을 나섰다.
새로이 다가온 만남은 아직까지도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저녁인걸?




"......"

"......"

"...야미."

"왜 그러십니까?"

"미카도 선생님께 가자.
금방 원래대로..."

"싫습니다. 아니, 실례입니다.
전 정상이니까요."

"정상은 무슨!?
그 얼굴에 그 가슴은 반칙이라고!"

평소와 다르게 빵빵하게 커진 가슴에 배틀 드레스가 밀려서 겨드랑이 부근이 부자연스럽게 벌어져 있었다.

"천만에요. 이 가슴은 유전적으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니 전혀 문제될건 없습니다.
원래 전 이렇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던 겁니다.
트랜스 능력같은거 없어도 여기까지 성장할 수..."

"누구도 하루만에 그렇게까지 성장하진 않습니다."

하루만에 그렇게 바뀐다는것부터 이상하잖아!
그리고 평소보다 부자연스럽게 말이 많은게 오히려 더 수상하다고!

내 반박에 야미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외면했다.

"자, 남길 말은?"

"...못본척 해주는건?"

"기각."

달아나려는 야미를 잽싸게 잡아 옆구리에 껴 들었다.
발버둥치는 야미의 저항을 상쾌한 웃음으로 무시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미카도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경찰서에 잡혀갈뻔 했다.
납치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해명하던중 야미는 도망가고, 설상가상으로 신분증이 든 지갑을 꺼내다가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돔이 발각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숫제 변질자 보는 눈으로 쫓아오는 경찰 아저씨에게서 필사적으로 달아나느라 그날의 산책은 물건너가 버렸다.
새로운 만남으로 들떴던 저녁 산책은 결국 경찰 아저씨와의 술래잡기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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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마켓에서 jota 텍스트 편집기를 깔았습니다.
짱 편해! 빨라!
메모 1만자 제한같은것 땜에 나눠쓰기도 더이상 없다 야호~ㅠㅠ/
(스마트폰 메모장을 쓰면서 알게된 사실. 메모장은 10000자가 한계더라...-_-;;)
세상은 참 편해지고 있군요;_;b
감격에 겨워 남기는 기록(4월11일)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OTL;;;
3달 만이네요;
4월에 구성해둔거 수정하는걸 이렇게 질질 끌게 될줄은 저도 몰랐습니다...-_-;;

만우절용 작품을 써보기도 하고, 쌩뚱맞게 34화 먼저 손대보기도 하고, 룬 이야기 생각해보기도 하고...이것저것 손대보면서 4월은 나름 제대로 보냈건만, 5월 중순부턴 그냥 죽은듯 지냈습니다...=_=;;;
...뭐, 그래도 제일 문제는 게으름이라는데는 반박의 여지가 없네요...OTL

34화는 어떻게 보면 33화와 연결되는 이야기니까 분발해서 써야죠^^;
기다려주신 독자분들께 죄송하며, 새편도 노력하겠습니다*^^*



축전 올려주신 암천묵시록님, 터틀러님, 떠돌이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것도 3개월만에 감사드리는거네요.ㅠㅠ)

우선 암천묵시록님.

리토, 료스케의 각각 TS 버전 + TS 여름학교편 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성화 버전이 정말 참하게 그려졌더라고요*^^*
예쁜 처자들로 나와서 정말 기뻤습니다.

비교체험 男, 女 버전은 최고였습니다.
양아치(男)인데 엄청 멋지게 그려진 료스케의 그림에 그저 포풍눈물ㅠㅠb
여성버전은 누님! 소리가 나오게 예쁘더군요.
료스케 여성 버전을 다루는 이야기도 언젠간 나오겠죠^^
(연재가 빨라지는 수 밖엔 없지만! 그러니까 힘내겠습니다+_+)

19금 게시판의 리사&미오도 맛있게 먹었습니다~(*=w=*)


지금은 제대하셔서 사회인이 되셨을 터틀러님 감사드립니다.^^

쾌남아 료스케와 어쩐지 츤데레끼가 보이는 귀여운 료스케(女)를 그려주셔서 감사드려요!^^

군대계시면서도 틈틈히 축전을 보내주신 정성에 감동했고,
정작 저는 월간연재도 제대로 못한지라 민망할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다음편은 7월에...
(이제 7월이지만...;;;)


자창게에 아키츠 료우코의 탄생을 써주신 떠돌이님 감사드려요.^^
자비심 없는 설정에 료스코는 그저 안구에 쓰나미ㅠㅠ
성변환 이야기를 기대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니 관련 이야기도 잘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고로 축전들은 전부 제 맛폰 안에 고이 모셔두고 보고 있습니다 냠냠.



p.s.1.
- 소녀의 초경에 관해서.
호르몬 불균형으로 생겨난 무배란 월경입니다.
에스트로겐이니 테스토스테론이니 하는건 굳이 몰라도 좋고(...) 아무튼 호르몬 이상 분비로 인해 일어난 현상입니다.

원랜 사족을 붙이는 것 같아서 안 적었는데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추신에 넣습니다=ㅂ=;



p.s.2. 터틀러님의 33화 축전


울고 있는 소녀



p.s.3. 참조 이미지

아라이 사야카, 시라유리 코요미, 라라

야미 : 스트레칭 땐 주의를(1)

야미 : 스트레칭 땐 주의를(2)

오시즈의 유체이탈

룬의 교내 일상

룬과 라라의 추억1

룬과 라라의 추억2

눈의 착각

사키

집을 방문한 소녀

유전적으로 증명된 성장 - 티아유 루나틱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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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축전입니다.


축전은 올려주신 날짜 순으로 업로드하였으며, 그림과 글은 따로 업로드 했습니다.

그림 축전은 터틀러님, 신이다님, 암천묵시록님, 절삭기님이고,
글 축전은 은팔님, 불장구님, 암천묵시록님, 절삭기님 입니다.

축전 올려주신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8/14 추가사항 : 떠돌이님 작품 후속편 추가


은팔님이 올려주신 3차 창작입니다.
[트러블SS 3차] 이단 옆차기 - 야미.






불장구님이 올려주신 3차 창작입니다.
[트러블SS 3차] 이단 옆차기 - 룬






암천묵시록님이 올려주신 3차 창작입니다.
[트러블3차]나는이단옆차기(!?) - 크리스마스다!! ~1~






절삭기님 올려주신 3차 창작입니다.
[단편] [트러블3차] 나는 이단옆차기 - 비오는 날 (미캉 루트/ 삽화有)






위의 작품 뒤에 이어지는 절삭기님의 3차 창작입니다.
[트러블3차] 나는 이단옆차기 - 비오는 날 IF 루트(흑역사) 두편.






떠돌이님이 올려주신 3차 창작입니다.
[트러블3차TS]이단옆차기 - 아카츠 료우코의 탄생



떠돌이님이 올려주신 위 작품의 후속작입니다.
[트러블3차TS]이단옆차기 - 아키츠 료우코의 인연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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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축전입니다.

축전은 올려주신 날짜 순으로 업로드하였으며, 그림과 글은 따로 업로드 했습니다.

그림 축전은 터틀러님, 신이다님, 암천묵시록님, 절삭기님이고,
글 축전은 은팔님, 불장구님, 암천묵시록님, 절삭기님 입니다.

축전 올려주신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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