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 맴- 맴-



"더, 더워..."
"덥네요..."

한여름에 내려쬐는 대낮의 햇살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주말. 미캉과 오랜만에 장을 보러 나와선 장보기를 마칠때쯤엔 더위를 먹을대로 먹어버렸다.
누가 내 더위 좀 가져가라...
고개를 설레설레 젓곤, 옆에서 힘겹게 걷는 미캉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미캉. 괜히 아침부터 불러서..."

"괜찮아요. 어차피 곧 장보기를 해야할 때였는걸요.
...기왕이면 어제 저녁에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요."

"그러게...미안."

겁도 없이 여름의 한낮부터 나오다니 장볼 시간을 잘못 잡았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오늘이 되어서야 먹거리가 다 떨어진걸 깨달은 내가 잘못이지만서도...
어찌됐건 옹색한 변명거리밖에 안될 뿐, 미캉에게 함께 장보기를 권유한게 지금에 와선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정말 덥네...
슬슬 목도 말라가는 참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을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만큼 호쾌하게 아이스크림을 씹는 모습이 정말 시원해 보였다.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지 않을래?"

"으~ 그러는게 좋겠네요..."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미캉은
어느새 이마에 배인 땀을 훔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토와 라라의 몫까지 아이스크림을 산 뒤 각자 하나씩 아이스크림을 물고는 귀가길에 올랐다.

"이야~ 살겠다~ 역시 더위엔 아이스크림이 제격이지!"

"후훗, 그러게요~
방금전 보단 훨씬 시원해진 것 같은데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혀로 느껴지는 시원함에 자연스레 얼굴이 풀리면서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오늘은 정말이지 덥구나..."

"그러게요. 정말이지 비라도 내려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살짝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미캉은 아이스바를 베어 물었다.
여름의 더위에 미캉은 평소보다 시원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어깨부터 겨드랑이를 노출시킨 민소매를 입은 미캉의 몸에선
찌르는 듯한 더위에 배어나온 땀방울이 쇄골 아래에 맺혀 반짝이고 있었다.

땀이 배인 매끈한 피부가 묘하게 색정적이네요...
미캉의 저 반칙적인 자태는 도무지 익숙해 지질 않는다.

"료스케 오빠?"

"으,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 아니. 아무것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뿌리친다.
한숨 돌릴만 하니까 괜히 이상한 쪽으로 신경이 쓰이는구나...
먹고남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곤 몰래 한숨을 쉬었다.



미캉의 집에 도착하자 우주 식물 셀린이 암술부위에 난 입에서 혀를 내밀며 헐떡이고 있었다.
부채까지 부치는 폼이 어지간히 더운듯 했다.
확실히 올 여름 더위는 쉽게 볼게 아니네요.
잎에서 땀까지 흘리는 모습엔 나도 식은땀이 났지만.
식물이 땀을 흘리다니, 과연 우주는 얕볼 수 없구나...

거실에 미캉의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이만 돌아가려 할때 미캉이 만류해왔다.

"료스케 오빠. 여기까지 오느라 더우실텐데 잠깐 쉬었다 가세요."

"후우...그럴까?"

더위 때문에 옷도 땀으로 살짝 젖었는데, 잠시 말리고 가는게 나으려나...

"그럼 잠시 실례할께."

"간단히 먹을거라도 준비해 갈테니 들어가서 리토랑 얘기라도 하고 계세요."

"그럴께."

냉장고에 장거리와 아이스크림을 넣은 뒤 리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응? 아무도 없잖아?
방 한가운데는 사각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위엔 잡지와 물컵, 리모컨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옆으론 선풍기가 콘센트에 연결된 상태로 멈춰 있었고 맞은편엔 담요가 떨어져 있었다.
창가에 놓인 침대 아래로는 이불이 밀려 내려가 있었다.
문 옆엔 TV와 DVD 플레이어, 게임기가 있었고 그 아래로 몇개의 CD 케이스가 흩어져 있었다.

장보러 간 사이에 잠시 외출한건가?

리토가 돌아올때까지 책이나 읽을까.
방을 두리번거리며 읽을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만화책이랑 스포츠 관련 책들이 대부분이네.
뭐, 리토는 공부보단 운동을 더 좋아하니 딱히 놀랄건 없으려나?
응? 이건...

눈으로 제목들을 훑어보던중 책장 한쪽 끝에 놓인 앨범이 보였다.
리토의 어릴 적 앨범일까...?
어렸을적 리토의 모습을 어땠을지 궁금해졌기에 앨범을 뽑아 들어 펼쳐보았다.

어디보자...
교복차림의 리토네.
중학교 때 찍은 앨범인가?
지금의 모습보다 약간 어린티가 나는 얼굴로 친구들에게 둘러싸인채 정면을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기분좋아질 정도로 밝은 웃음이네...
나도 저렇게 웃어봤으면 좋으련만.
지금의 양아치 스타일로 바꾼 뒤론 날카로운 눈매까지 더해져서 웃으면 모두들 시선을 피할만큼 살벌한 인상이었으니...
그래도 딱 한번, 작년 크리스마스때 코테가와에게 괜찮은 평가를 받은적은 있으니 언젠간 가능하겠지.

왜 있잖아?

진정 행복을 원한다면 아주 큰소리로 웃어요
환한 웃음 하나로 이세상이 달라 보여요
멋진 사랑을 원한다면 밝은 미소를 지어봐요
밝은 미소 하나로 이세상을 다 바꿔봐요

...하루하루를 깡패들이랑 아웅다웅 하는데 질려서
좋은 날이 찾아오길 바라며 쉴새없이 웃었다가 질겁하며 도망가던 깡패들이 떠오르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을 때를 잘못했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지?

그래도 지금은 구레나룻도 없으니 예전보단 나을것 같은데 어쩔라나 몰라.



「들어가요. 료스케 오빠~」

앨범을 뒤적여보고 있는데 미캉이 수박을 담은 접시를 들고 방에 들어왔다.
어느새 노란색 끈 민소매와 검은색 짧은 주름치마로 갈아입은 미캉은 테이블 위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더운데 수박 좀 드세요."

"아, 고마워. 잘먹을께~"

테이블에 앉아 앨범을 내려놓곤 접시에 놓인 수박에 손을 뻗었다.
한입 수박을 베어물자 느껴지는 시원함과 달콤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뭘 보고 계셨던 거에요?"

"응, 그냥 유우키의 중학교 앨범을 잠시 보고 있었어."

"리토의 앨범요?"

"유우키의 중학교 시절은 어땠나 싶어서.
사루야마나 사이렌지도 같은 중학교 였다길래 궁금했었거든.
그런데, 유우키는 잠시 어딜 나갔나봐?"

"아...!"

뭔가 생각난듯 미캉은 한손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러고보니...오늘은 라라언니랑 친구들하고 바다에 간다고 했어요.
벌써 간 건가?"

「오늘 중에는 오겠지만요...」라고 중얼거리는 미캉.

"바다인가..."

라라의 발명품으로 주말동안 다녀오려는걸까...
푸른 하늘, 시원한 바다.
...가고 싶다아아아...

리토와 라라 일행이 놀고있을 광경을 상상하며 멍하니 있으려니
미캉도 약간 아쉬운듯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더울줄 알았다면 저도 따라갈걸 그랬나봐요.
...저, 그런데... 료스케 오빤 초대되지 않은건가요?"

조심스레 물어오는 미캉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었다.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미캉.
올해가 되서야 겨우 얼굴을 알게된 사이인데 그렇게 초대를 받는쪽이 의외일거라고."

"섭섭하지 않으세요?"

"아니라니까~
애초에 유우키가 먼저 여행을 계획했을리는 없으니까,
아마도 라라가 계획했겠지.
그럼 자연스레 라라랑 친한 하루나나 리사, 미오랑 함께 여행가지 않았을까?
1학년때부터의 친구들끼리 가는 모임일텐데 그런 상황에서 멋없게 끼어드는것도 좀 그렇잖아?"

하루나 생일 잔치에 찾아간 사람들도 리사, 미오, 라라, 리토 였으니까.
라라가 여행을 갈 친구로 자연스럽게 떠올리는게 당연할꺼다.

괜스레 미안한 표정을 짓는 미캉의 관심을 돌릴겸 앨범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고보면 아까 전 유우키의 앨범 말인데...
이건 운동회때 사진인가?
굉장히 열심히 뛰고 있네."

"아...그건 아마 리토가 중학교 2학년일때 사진일꺼에요.
체육제 릴레이때 활약했던걸 찍은거죠."

"헤에...엄청 적극적인 모습의 유우키구나."

고등학교 들어와선 주로 라라에게 휘둘리느라 이렇게 스스로 나서서 하는 활동적인 모습은 거의 못본것 같은데.

"리토 덕분에 이때 운동회에서 리토네 반이 우승할수 있었다고 해요."

"이야~ 그거 멋진데?"

앨범의 사진들을 보며 한동안 리토의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중학교 시절엔 축구부에 속해 있었고 집의 꽃들을 관리하는건 리토의 몫이었다는 이야기 등등...
의외로 고등학교에선 리토는 축구부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두분다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사일을 미캉에게만 맡겨둘 수 없었다고 한다.
역시 훌륭한 오빠구나 리토.

한동안 앨범을 넘기던 중 리토의 중학교 시절 단체 사진을 보게되었다.

오른손으로 브이(V)자를 하며 환히 웃고 있는 리토의 왼쪽 어깨 너머로 다소곳이 서있는 하루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사이렌지네?"

"아마도 2학년때 단체 사진인가보네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를 한 하루나는 차분한 차림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리토의 이상형은 이렇게 얌전하고 조신한 아가씨란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라라는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중학교때부터 하루나 일편단심이었던 리토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다니 말이다.
마지막엔 리토로부터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받았으니...
아무튼, 좋아하는 여자애가 세명(하루나, 라라, 룬)이나 되는 리토도 꽤나 인기가 있구나.

"그런데 료스케 오빠?"

"응?"

"료스케 오빠의 중학교 시절은 어땠어요?"

"어? 나말야?"

"네. 뭔가 색다른 경험은 없었나요?"

"으응...잠시만..."

색다른 경험?
확실히 보통은 아니지만...
깡패들이랑 줄기차게 치고박는 경험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확실히 보통 중학생으론 겪지못할 특별한 경험은 경험이지만,
깡패녀석들을 쓰러뜨린 경험같은걸 추억이랍시고 내놓을만큼 경우가 없진 않다.

웃었다가 주변 친구들이 질겁해 도망갔던건 농담거리도 안되고.

그외 뭔가 다른 경험이...
...아, 있긴 하네.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때 말야..."



중학교 1학년.
오후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

"응?"

옆을 바라보니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손에 작게 포장된 주머니를 든 채 서있었다.
처음보는 얼굴로 보건데 다른반 학생인것 같았다.
그것보다 손에 든 주머니는...?
뭔가 싶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여학생은 선물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이, 이거 오늘 실습시간에 만든 쿠, 쿠키에요!
괘, 괜찮으시면 드셔주세요!"

"엥?"

"히익!?"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무심코 발해진 소리에 여자애가 겁먹은 듯 움찔하는게 보였다.
하지만, 여학생 만큼이나 나도 만만찮게 놀랐다.

여자애가 나한테 쿠키를 건네줘?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냐?

물론 지금 장면에 부합하는 상황 전개는 떠올릴 수 있었다.
다른반 여자애가 실습시간에 만큰 수제 쿠키를 신경쓰이는 남학생에게 건네주는 전개다.

뭐, 보통이라면 이후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서 알콩달콩한 분위기가 일어나면서 점점 가까워지는게 정석이지만...
그 남학생이 나라는게 문제다.
교내 제일의 불량이자 야쿠자 의혹까지 받고 있고 여자의 적으로 알려진 상태에서 고백을 받어?

차라리 여자쪽이 발랑까진 날라리 타입이었다면 어렵사리 수긍은 할 수 있다.
과시욕이라든지 뭐 그런 이유로 대쉬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아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다가 두려움에 질린 표정이 정말 가련해 보입니다만...?
비호욕구를 자극하는, 단정하지만 심약해보이는 외모를 한 여자애의 모습은 지금 상황을 이해불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대체 뭐를 어떻게 하면 이런 전개가 되는건가 고민하고 있을 참에 교실밖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힐끗 바라보니 옆반의 다른 여학생들이 조마조마 하면서도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관찰하고 있었다.

「저, 저기...실수한게 아닐까?」
「벌칙게임이라고 한게 이렇게 될줄은 몰랐네...」
「아키츠군, 왠지 무서운 표정으로 쿠키를 바라보고 있어...」
「서, 설마 다음 사냥감으로 찍힌건 아니겠지?」
「어, 어떡해?」
「대체 아키츠군에게 쿠키를 건네준다는 쪽지를 적은게 누구야?」

...벌칙&담력시험이냐?
그런거에 날 끼워넣지마!
손끝을 떨면서 쿠키 봉지를 들고 있는 여학생은 이젠 아예 울듯한 표정으로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진짜 울음이 터지는게 아닐까 싶어서 우선 내밀어진 쿠키 주머니를 받았다.
스스로 건네 주면서도 흠칫하는 모습의 여학생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고마워. 잘 먹을께."

"네? ...아. 네, 넷!"

여학생은 당황하면서도 표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다음에 답례할께. 그러니까...이름이?"

"에? 아, 아뇨! 답례할것도 아니니까,
정말로 별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그럼 이만 실례할께요!"

"아, 저기?"

휑...

기겁한채로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복도로 도망가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복도에서 지켜보던 여학생들과 함께 삽시간에 사라진 여학생.
괜히 이름을 물어본게 잘못이었나...

혹시나 겁먹게 한건 아닌지 걱정하며, 선물받은 주머니의 포장을 조금 풀어서 안에 든 쿠키를 하나 집어들어 입안에 넣었다.
잘 부스러지는게 흠이지만 맛있네...

이후 딱히 내쪽에서 그 여학생을 찾는다고 돌아다니거나 하지 않았고,
점차 늘어만가는 깡패들과의 주먹다짐 사건들이 더욱 구설수에 오르면서,
그날의 해프닝은 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잊혀져갔다.



"아무튼, 담력시험같은 느낌으로 건네받은 쿠키 사건이 그나마 얘기할만한 추억거리랄까?"

"으응..."

이야기를 듣던 미캉은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이해해 미캉.
내가 양아치 외모만 아니었다면, 그당시 나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은근한 로맨스를 바랬을 꺼라고.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지...
무서워 하면서 도망가는 여자애들을 보면서 로맨스고 나발이고 꿈도 못꾸던 중학교 시절의 잊지못할 기억이다.
그래도 쿠키 받은건 기뻤지만...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 결말에 감상을 말하기도 뭣했는지 주저하던 미캉은 문득 떠오른듯 내 얼굴로 시선을 향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그럼 료스케 오빤 중학교 시절부터 그런 외모였던건가요?"

"뭐...대충 그쯤일까?"

"예전엔 어떤 모습이었나요?"

"어릴적에야 어디에라도 있는 보통의 사내아이였지.
눈매 때문에 노려보지 말라는 소리는 좀 들었지만..."

멋적은듯 웃으며 금발로 염색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러고보면 마지막으로 검은머리를 했던게 언제적이더라...
3년은 더 지난것 같네.

"처음 만났을때 료스케 오빠가 말한걸론
지금 스타일이 좋아서 하는건 아니라고 했었죠?"

"응... 내가 그랬던가?
아무튼, 액을 피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하는 외모인데."

사실 1년도 전에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좀 가물가물 하다.
미캉과의 만남은 정말 인상깊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만,
외모 관련 대화는 나로선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지라...

"뭐라고 할까...좀 이상한 액막이네요."

"그, 그런가?"

하긴 깡패 모습이 액막이 대용이라니 설득력이 없네요.

"보통은 외모를 바꾸기 보단 부적을 갖고 다닌다든가 하는게 맞지 않나요?"

"그게...중학교때 한번 그래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래서요?"

"...도중에 해괴한 일을 겪은뒤로 외모 바꾸는걸 포기했어."

"어떤 일인데요?"

"음...그러니까 무슨일이 있었냐면..."



중학교 3학년, 주제파악 못하고 덤벼드는 깡패들에게 인내심이 끊겨서 이쪽에서부터 찾아가서 깡패들을 몽땅 때려잡던 시기.
학군단연합인지 뭔지하는 놈들이 아지트로 삼은 공원(현재의 「러브러브공원」)의 공터에서 이제는 해체 직전인 깡패그룹과 맞붙었다.

저글링하듯이 깡패들을 하늘로 날려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정신없이 깡패들을 때려눕히고 나서 옷을 털던중 헤어밴드랑 손목에 찼던 체인팔찌가 안보였다.
싸우면서 어딘가 떨어뜨린건가?
뭐, 여긴 공터라서 차도 다니지 않고, 낙하물 같은것도 없다.

느긋하게 찾으면 될꺼라 생각하곤 상의 포켓에 손을 넣어 담배갑을 꺼내서 열었다.
...담배도 없네.
그러고보면 요즘엔 바빠서 새로 담배 사는것도 잊고 있었구나...
비어버린 담배갑을 쓰레기통에 버리곤 헤어밴드랑 체인팔찌를 찾기위해 공터를 잠시 배회하고 있으려니 쓰러졌던 불량배 녀석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슬슬 깨어난건가?

정신을 차린 녀석들은 상처하나 없는 내 모습을 보곤 질린듯한 표정으로 치를 떨었다.

「...괴물같은 자식...!」

「젠장! 네놈도 양아치인 주제에 클럽이란 클럽들을 몽땅 박살내? 이 빌어먹을 위선자 놈!」

건강하네...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못하는 주제에 입만은 열심히 움직이는구나.

「악마놈!」

「싸움에 미친 녀석!」

...어디보자, 그러니까 헤어밴드랑 팔찌를 어디서 떨어뜨렸더라?

「야쿠자도 울고갈 자식!」

「여자나 후려치는 글러먹은 놈인 주제에 혼자서 겉멋만 들어선...!」

빠직-

멋대로 지껄이는 녀석들의 비난에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며,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려 고함쳤다.

"야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애초에 난 야쿠자도 아니고 여자를 후려치지도 않았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다고!
애초에 나쁘기로 따지면 네놈들이 더...!"

번쩍!

꽈과광-----!

"으갸갹?!"

순간 하늘에서 엄청난 번개가 내게 내리꽃혔다.
마른하늘에서 난데없는 벼락이 사람에게 떨어지는 장면을 생으로 목격하게 된 깡패들의 비명이 들리고(아마도 눈이 부셔서),
바닥이 파이며 엄청난 먼지가 일어났다.
먼지가 뭉게뭉게 일어나 시야가 가려진 가운데 깡패중 한 녀석이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 천벌인가?」

"웃기고 있네..."

「히익?!」

먼지가 걷히고 파헤쳐진 바닥에 서있는 내 모습에 깡패들이 기겁했다.

「머, 멀쩡해?!」

멀쩡하긴...온몸이 안쑤신 곳이 없다고.
깡패놈의 헛소리에 무심코 대꾸하긴 했는데...
이거 무지 아파?!
자동차 사고 따위랑은 비교가 안된다고!
겉은 멀쩡하지만 덕분에 옷도 완전 너덜너덜이고...
정말이지 살다살다 별의별 사고를 다 겪는군.
머리를 만져보니 뻣뻣하게 세워진 머리카락이 느껴졌다.
고슴도치냐?

"젠장...머리가 삐죽 섰잖아?"

투덜거리며 머리를 쓸어넘기는데 철부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전까지 고개를 들고 있던 녀석들 중 몇명이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있었다.

"어이~? 이보세요?"

기절했나?
눈을 까뒤집고 있는게 확실히 깨어있는건 아닌것 같았다.
옆에서「불사신」이라느니 「'천벌 받은' 놈」이라느니 「하늘도 노한 악당」이라느니 중얼거리는 놈들은 친절하게 다시 재워주었다.
그나저나 지린내난다 이놈들아...



"아무튼 그때 크게 당한 이후로는 도무지 이 모습을 그만둘 엄두를 못내겠더라고.
장신구 몇개 치웠다고 그 꼴을 당했는데 수염이랑 머리까지 바꾸면 어떻게 될까 겁나서 말야.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단지 그날따라 무지하게 재수가 없었던 것일수도 있지만...역시 찝찝하잖아?"

"그, 그래요?"

좀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는지 미캉도 당황한듯 입가를 씰룩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살다가 벼락맞는 경험을 한 사람은 드물지...
그래도 외국엔 평생동안 7번이나 벼락맞은 사람도 있다던데 거기에 비하면야 나는 나은 편이다.

아무튼 그때 몸안에 뭔가 잡령도 잠시 들어왔던것 같은데
들어오자마자 벼락을 맞고는 강제로 쫓겨난 것 같았다.
졸지에 지금까지 빙의된 영혼들 중에선 가장 화끈한 방식으로 쫓겨난 녀석에게 애도...



리토와 나의 중학교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앨범을 넘기다가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앨범이 끝났다.
꽤나 길게 이야기를 한것 같은데...
시간이 좀 지났으려나?

"그나저나...왠지 좀 어두워진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난건가?"

"그러게요...?"

아직 어두워질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기에 갸웃하고 있으려니
미캉이 일어서 리토의 침대쪽에 있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침대에 올라가 커튼을 걷으니 구름으로 뒤덮힌 하늘이 창너머로 보였다.

"구름이 잔뜩 꼈네요...
비가 올수도 있겠어요."

"...그래?"

확실히 창너머엔 어두운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비라도 내릴것 같은데...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고...
...팬티가 훤히 보입니다만?

침대에 무릎을 댄 채 창틀에 손을 얹고 창밖을 바라보는 미캉의 자세.
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듯 창쪽으로 시선을 향한 나.
매끈한 허벅지가 시야를 차지하는 가운데 짧은 치마 아래로 연분홍빛 속옷이 드러났다.
게다가 치마 너머로 엉덩이 굴곡이 묘하게 선명히 드러나면서 눈을 둘 곳이 곤란했다.

"어, 어쨌든 적당히 쉬었고 수박도 다 먹었으니 이만 가볼께."

"벌써 가시려고요?"

"슬슬 저녁준비도 해야 하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비오기 전에 일찍 들어가는게 낫겠지."

대충 이유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이상 있다간 나의 아드님이 자중할것 같지도 않고,
그랬다간 미캉에게 변태 오빠란 소릴 들을지도 모른다고...

주방의 냉장고에서 내 장거리를 챙겨 도로 장바구니에 담에 넣었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며 미캉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이만 가볼께.
수박 맛있었어."

"혹시 모르니 우산이라도 하나 빌려드릴까요?"

"괜찮아.
방금전 집에 들어올 때까진 맑았잖아?
서둘러 집까지 간다면 일부러 빌릴것 까지야..."

활짝-

쏴아아아아아아아-----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요.
문을 열자마자 비가 쏟아지다니.
아무래도 우산을 빌리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아 몸을 돌리며 부탁했다.

"미캉, 미안한데 우산 하나만..."

번쩍-!
꽈르릉!

"꺅?!"

덥석-!

"에엑?!"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며 품안에 안겨오는 미캉의 행동에 내가 더 놀랐다.
가슴께에 머리를 기대오는 미캉을 엉겁결에 살짝 감싸안곤 사고회로가 마비되어 버렸다.
미캉의 어깨는 생각했던것 보다 부드럽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어째서 갑자기?

내 목둘레의 앞섶에 한손을 얹은 미캉.
무심코 힘이 들어가서 옷의 목덜미가 늘어나지 않을지 걱정이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쓰이는게...
내 옷의 목덜미를 움켜 잡은채 안으로 굽혀진 손가락들이 내 쇄골 아래의 가슴께에 직접 닿고 있다는 것이다.
부들부들 떨고있는 미캉의 몸에 맞춰, 잘게 떨리는 손가락이 가슴을 자극해 오면서 머리가 오버히트 할것 같았다.

"미 미 미, 미캉?
우, 우선 좀 진정하고..."

- 우선 너부터 진정해.

"죄...죄송해요.
조금 놀라서..."

화들짝 놀라며 내게서 떨어져선 미캉이 사과해왔다.
힐끗 바라본 미캉의 시선은 현관 밖을 향하고 있었다.

...아. 번개에 놀란건가?
그러고보면 천둥번개를 무서워했었지?

콰콰콰쾅!

"꺄아!"

"으햑?!
자, 잠...! 아, 아니. 지 지 지, 진정해 미캉?"

"무, 무리한 부탁하지 마세요.
료스케 오빠야 말로 긴장하고 있잖아요?"

아니, 난 미캉 네가 달라붙어와서 그런건데?
고의가 아닌건 알지만 그렇게 허리에 팔까지 감으면서 들러붙진 말아줘!
허벅지에 닿는 살갗의 감촉이 부드러운게 너무 자극적이라고...!
무섭고기쁘고두렵고행복하고조마조마하고간지럽고... 별의별 감정이 다 들고 있단말야...

두근두근쿵쾅쿵쾅콩딱콩딱쿵떡쿵떡콩떡콩떡팥떡찹쌀떡메밀떡가래떡무지개떡수수떡...

뭔가 엄청난 소리가 심장에서 들려오면서 혈류속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우, 우선 거실로 가서 진정하는게 좋겠어."

현관문을 도로 닫고 미캉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무릎을 가슴에 대고 앉은 미캉은 조금은 진정된듯 해 보였다.

"방금전은 죄송해요 료스케 오빠...
전 천둥소리는 서투르거든요."

"그, 그래?"

부끄러운듯 대답하는 미캉을 마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난 미캉 네 색기쪽이 서투르다만...
그나저나... 소파에 앉을때 무릎을 가슴에 모으는건 습관인거니 미캉?
두 다리가 위로 향하면서 치마 속이 드러나며 허벅지 사이로 연분홍빛 속옷이 훤히 드러났다.
골이 파인 부분마저 적나라하게 보이는 모습에 현기증이 나는것 같았다.
방금전 리토의 방에서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잖아...!
집안에서 보이는 미캉의 무방비한 모습은 정말이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게 나을까?

그냥 우산을 빌려서 얌전히 떠나가는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불안한듯 무릎에 얹은 손위에 턱을 괸채 바닥을 내려다 보는 미캉의 모습을 보았다.
문득 방금전 천둥소리에 무서워하던 미캉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혼자 있을때 외로워하던 미캉의 모습도...

「적어도 미캉이 외로워하진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언제까지나 리토가 함께 있을수도 없었기에, 가끔은 미캉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할 할 경우도 있었지요.
그때...미캉이 외로움을 느낄 때조차 함께 있어주질 못했던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비록 엉터리였지만, 아빠 역할이랍시고 잘난척 말했던 걸 뒤집을순 없지.

무릎을 모아 앉은채 불안한듯한 얼굴의 미캉을 보며 입을 열었다.

"...유우키랑 라라가 올때까지만 머물러도 될까?"

"네?"



미캉의 동의를 얻고 장바구니를 내린뒤,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저녁을 준비하려는 미캉을 말리고 도로 거실로 쫓아냈다.
천둥소리 때문에 놀라서 손이라도 베이지 않을까 걱정이니까.
미캉이 만든 요리는 확실히 먹어보고 싶지만... 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요 1년간 나름대론 노력했는지라 요리에 대한 미캉의 평가는 나쁘진 않은편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훌륭한 요리를 내놓진 못하더라도, 요리책에 적힌대로의 정석적인 맛을 낼 만큼은 만들수 있다.
적어도 라라처럼 못먹을 음식을 만들진 않으니까...
(유감스럽지만 라라의 음식은 같은 우주인도 못먹었으니...)

저녁 식사후 거실에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리토와 미캉의 어릴적 이야기라든가, 부모님 이야기라든가,
중학교시절 내가 겪었던 어이없는 해프닝이라든가, 라라의 취미 등등...

라라가 TV 프로 「매지컬 쿄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문득 시계에 눈이 갔다.
그러고보면 이제 곧 매지컬 쿄코가 방영할 시간인가?

"저기 미캉?"

"왜 그러세요?"

"혹시 모르니까 라라가 볼 매지컬 쿄코도 녹화해두는게 좋을거 같아.
여행이 길어져서 못봤다고 아쉬워하면 불쌍하잖아?"

"그러고보면 그렇네요.
그럼 보면서 녹화할까요?"

"응, 뭐...그러지.
어차피 딱히 이시간에는 볼것도 없으니."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켜고 「매지컬 쿄코」를 틀었다.



「뼈속까지 태워주마! 매지컬 체인지!」

과격한 변신 대사와 함께 검은 마녀복 차림으로 변신해서 악당들을 무찌르는 매지컬 쿄코.
주인공인 쿄코도 그렇지만 당하는 역의 악당들도 참 귀엽게 생겼네.

그런데 좀 야한 장면이 있는데 이거 정말 어린이용 맞아?
기억하기론 팬들 중에 남자들이 많았던거 같은데...
비쥬얼은 확실히 예쁜데 여자애랑 보기는 좀 거북할것 같다.
지금 내 심정이 바로 그렇다고...
바로 옆에 앉은 미캉이 어떤 생각을 할지가 걱정되면서 TV에서 시선을 떼고 창쪽을 바라보았다.

우르릉-

창밖으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간간히 멀리서 들려오는 우레소리에 미캉은 흠칫하며 어깨를 내쪽으로 살짝 기대었다가 다시 몸을 치웠다.

"아, 죄송해요..."

사과하려는 미캉을 손을 저어 제지했다.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미캉.
어깨정돈 언제라도 빌려줄수 있으니까."

"그, 그래도..."

"천둥을 무서워하는게 딱히 부끄러운 일도 아니잖아?
누구나 하나쯤은 무섭거나 거부감이 느껴지는게 있으니까.
사이렌지도 유령을 무서워하지만 그걸 가지고 흉보는 사람은 없다고."

"그런가요?"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미캉도 그렇게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아.
뭣하면 대신 손이라도 잡아줄께."

리토였다면 좀더 위로해줄 방법도 있었겠지만...
가족도 아니고, 나로서 해줄수 있는건 손정도 잡아주는게 다겠지.

미캉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모습이었지만,
다시금 들려온 천둥소리에 마음을 정한듯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왔다.

"저...그럼, 잠시만 부탁드릴께요."

"아, 응...뭐, 잘 부탁해."

그렇게 주저하면 나까지 부끄럽잖아.
천둥번개가 치는 밤을 미캉 혼자 보내는게 걱정되서 맘 고쳐먹고 머물기로 한건데, 다시금 미캉을 의식하게 되면 곤란하다고?
잡아진 손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기분좋으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모처럼의 주말인데 이렇게 비가 내려선 곤란하겠어요."

"그러게. 시원해진다는 점에선 좋지만, 이러면 밖에서 제대로 놀수가 없으니..."

적어도 내일만큼은 날이 맑았으면 좋겠는데...

"아, 그렇지."

"?"

갸우뚱 하는 미캉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캉. 혹시 안쓰는 천 있어?"

"있는데 왜 그러세요?"

"테루테루보즈(照る照る坊主)를 만들어서 달아 보는게 어때?"
(테루테루보즈 : 내일 날씨가 맑아지길 바라며 처마끝이나 창문에 달아 놓는 일본의 전통적인 인형)

주술적인 기원일 뿐이지만 적어도 위안은 되겠지.
혹시 알아?
라라가 기합으로 태풍 날렸을때처럼 기합으로 어떻게든 될지.

내 의견을 들은 미캉도 웃으며 수긍했다.

"그럴까요? 확실히, 가만히 있는것도 심심하니까요."

연결된 손을 풀고 미캉의 방에서 쓰다남은 헝겊들을 가져와서 간단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둘둘둘 인형을 만들고 나니 왠지 너무 간단해서 허전하게 보였다.
내친김에 얼굴도 그려넣자 싶어서 유성펜으로 간단히 눈과 수염을 곁들였다.
너무 자세히 그리면 비가 온다지만 수염정도는 괜찮겠지.
나 특제 테루테루보즈 완성~

내가 하는 모양새를 보던 미캉도 자신이 만든 인형의 머리에 간단히 머리카락을 추가했다.
아, 저건 미캉의 파인애플머리 스타일인가?

"그럼 이리 건네줘.
내가 처마 밑에 걸어둘께."

"네~ 여기요.
아, 혹시 아이스크림 하나 더 드실래요?"

냉장고에 넣어둔거 말인가?

"아니. 난 괜찮으니까, 먼저 먹고 있어."

"예."

부엌으로 간 미캉을 뒤로하곤,
창너머로 비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레 천장에 테루테루보즈를 달았다.
두개를 나란히 달아놓고 내려와보니 조금 간격이 좁은듯 했다.
음, 어째 두개가 좀 가까운데?
머리를 서로 맞대고 기댄 테루테루보즈들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인형끼리 사이좋아 보이는데 일부러 떨어뜨리기도 뭣하고...

거실로 돌아오니 미캉은 소파에 앉아서 한손에 아이스크림을 든채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선 아직 매지컬 쿄코가 방영되고 있었다.
설마 주말이라서 재방송인걸까?
거실에 들어선 날 본 미캉이 반겨주었다.

"수고하셨어요 료스케 오빠."

"아니 뭘~"

"저녁 식사도 만들어 주시고, 방금전 일도 그렇고...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뭔가 해드릴건 없을까요?"

"그런 과장된...
그렇게까지 신경쓸 일이 아냐~"

괜스레 예의를 차리는 모습에 손사레를 치며 사양했다.
애초에 그런걸 바라고 한게 아니고.
단지 미캉 혼자 두는게 걱정이었을 뿐이니까.

"그러지 말고 뭐라도 답례를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답례는 필요 없...「답례로 XXX 해드릴께요♡」...으, 으응?"




「답례로 XXX 해드릴께요♡」

(***이 작품은 19세 미만 관람 가능입니다***)




"무, 무슨!?"

"아, 아니에요! 제가 아녜요!"

선채로 놀라서 굳어진 내 모습에 당황해서 부정하는 미캉.
얼굴이 빨개진게 정말이지 당황한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미캉...아까도 그랬지만, 소파엔 언제나 그런 포즈로 앉아있는거니?
팬티가 훤히 보여...핑크색...「앗싸! 핑크다!♥」




「앗싸! 핑크다!♥」

(***본 작품은 게시판의 심의규정을 준수합니다***)




팟 - !

순식간에 다리를 모으며 홱- 소리가 나도록 치마를 내리는 미캉.
얼굴이 빨개져서 나를 바라보는 미캉의 눈가엔 약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료, 료스케 오빠..."

"아, 아냐! 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면서 필사적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뭐냐 대체!? 아까부터 들려오는 이 괴상한 목소리는?!

「뼈속까지 태워주마! 매지컬 체인지!」

...매지컬 쿄코였냐!
아무리 그래도 방금전 대사는 안되잖아...!
그거 소년만화라고!

아무튼 사태도 파악했겠다 남은건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미캉에게 해명하는것 뿐이다.

"그, 그러니까 미캉.
방금껀 TV에서 나온 소리..."

"...봤어요?"

"아니, 그러니까..."

"봤죠?"

"......죄송합니다..."

시끌벅적한 TV의 음성,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거실 한가운데서 조용히 오체투지로 연하의 소녀에게 사죄하는 나였다.




"미안해 미캉..."

"...그건 이제 됐어요."

"그, 그런데..."

"왜요?"

"...어째서 난 여기에 있는걸까요...?"

벽에 걸린 모자, 꽃으로 장식된 걸이.
침대 옆에 붙어있는 스티커 사진.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놓인 곰인형과 강아지 인형.
다름아닌 미캉의 방풍경이다.

의아한듯한 내 표정에 미캉은 살짝 시선을 외면하면서 말했다.

"방금전 일 말인데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리는 내모습을 보던 미캉은 주저하듯 작게 입을 열었다.

"...잠들때까지 기다려 주는걸로 용서할께요."

"응?"

"그, 천둥소리가 시끄러우니까..."

어색하게 말하는 미캉의 목덜미는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건 확실히 부끄러우니까...
괜히 어색해지기 전에 분위기를 바꿀겸 밝은 목소리로 승낙했다.

"좋아. 그걸로 변제가 된다면 기꺼이."

"승낙, 한거에요...?"

"물론~!"

동의를 구하듯 물어오는 미캉에게 수긍하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올린 미캉의 머리맡에 의자를 내려놓고 전등의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럼, 불 끌께."

"네."

탁-.

스위치를 누르자 불이 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뭐, 눈이 금방 어둠에 익숙해졌는지라 의외로 그렇게 어둡진 않았지만.
조용히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의자로 다가가 앉자 미캉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료스케 오빠. 거기 있어요?"

"응. 바로 머리맡에 앉아 있어."

"그래요..."

빗방울이 유리창을 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아직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지지 않은 탓도 있어서 그런지,
미캉은 양손으로 이불을 꽉 잡은채 조금 초조해 하는것 같았다.
뭔가 안심을 시켜줄 방법이 있다면 좋을텐데...

"저기... 손이라도 잡아줄까?"

"네?"

"아니, 그... 조금은 안심이 되지 않을까 해서."

"으응...그럼 부탁할께요."

이불을 움켜쥐고 있던 미캉의 왼손에 힘이 풀려 이불위에 얹어지자,
나도 왼손을 내밀어 조용히 미캉의 손에 올려놓았다.

살짝 움찔하며 손가락을 떤 미캉은 이내 내밀어진 내손을 살며시 잡아왔다.
연결된 손을 조심스레 거머쥐며 편하게 자세를 고쳤다.

"어때? 불편하진 않아?"

"네, 편안해요."

"그래...
그나저나 유우키랑 라라는 자고 오려나 보네."

"...연락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후우...하고 한숨을 쉬는 미캉의 목소리가 왠지 쓸쓸한 것처럼 느껴졌다.
설마하니 내일도 집에 안들어 오는건 아니겠지...?
리토가 휘말리는 트러블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꺼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되면 모처럼의 주말인데 미캉 혼자 집을 보는건가?

혹시 미캉은 이번 리토들의 바다여행에서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적어도 여름 바캉스의 기분이라도 만끽하게 해줄까.

"갑자기 떠오른건데 말야..."

"뭔데요?"

"내일, 날이 맑으면...함께 수영장에 가자."

"...수영장이요?"

"응. 「사이난 워터랜드」라고, 이번에 새로 오픈한 수영장이 있거든.
상점가에서 홍보 전단지도 봤었는데 엄청나게 크다고 하더라고.
이번 기회에 코테가와랑, 야미랑 함께 넷이서 수영장에 다녀오지 않을래?"

"......"

이야기를 듣던 미캉은 내 손을 잡은채로 그대로 침묵했다.
...별로 놀러가고 싶었던게 아니었던가?
설마 나 혼자서 착각한거야?

괜히 감상적이 되어버려서 놀러갈 제안을 한게 부끄러워 죽을것 같았다.
챙피함에 몸이 배배 꼬이며 뒤틀리려는걸 억지로 참고 있으려니 미캉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좋아요..."

"어? 정말?"

승낙받았다-!
부끄러움은 이제 끝.
순식간에 기분이 들떴다.

"이번 일행은 축제때의 계속인가요?"

"응. 그렇지 않아도 다들 더위에 불평하는것 같았거든.
수영장에서 한껏 놀다보면 여름의 더위도 잊을수 있을꺼라구~"

"네...정말 즐거울꺼에요..."

어둑한 가운데 미캉이 살짝 미소짓는게 보였다.
쓸쓸하던 느낌이 사라진것 같아 다행이네.
이윽고 졸음이 몰려온듯 미캉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럼 이만, 안녕히 주무세요 료스케 오빠."

"그래... 잘자 미캉."

대화가 끝나고 다시금 고요해진 방의 정적은 방금전 처럼 적막하지 않았다.
왼손에 잡은 미캉의 손의 온기를 느끼며, 미캉의 조용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미캉이 잠에 들기까지 얌전히 침묵했다.

한참이 지나고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숨소리에서 미캉이 잠든것을 확인하고는
미캉과 연결된 손을 조심스레 풀고 있을때, 귓가에 미캉의 속삭이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

잠꼬대인가.
아무튼, 기특한 말을 해주는군.

무사히 연결된 손을 풀고는 살며시 의자를 치우고 일어나 미캉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은채 새액-새액- 귀여운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진 모습에선,
깨어있을때의 어른스러움과 달리 나이에 걸맞는 앳됨이 느껴졌다.

"좋은 꿈 꾸길..."

사랑스런 모습에 미캉의 머리위에 살짝 손을 올렸다 떼곤 조용히 미캉의 방을 나왔다.
그럼 나도 이만 자볼까...
리토의 방으로 가서 말려내려간 이불을 침대위로 끌어올린 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오늘만 침대를 빌릴께 리토...

부디 내일은 비가 그치길 바라며 밀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일어나세요..."

"우웅..."

"일어나세요 료스케 오빠."

"으응?"

눈을 떠보니 빛을 등지고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얼굴이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였다.
한차례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자 어딘지 평소와 달리 위화감이 느껴지는 주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낯선 천장이다..."

"네?"

"아니. 아무것도."

...그러고보면 리토네 방이었지.

"읏샤...!"

두 팔을 머리위로 뻗어 한껏 기지개를 켠 뒤 옆에 선 미캉에게 인사했다.

"좋은아침 미캉."

"네. 좋은아침이에요 료스케 오빠.
다행히 오늘은 맑음이에요."

"그래?"

커튼을 치운 창 너머로 보인 하늘은 어제까지의 폭우가 거짓말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잘됐다...
그럼 오늘은 수영장에 갈수 있는거로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자 미캉이 웃으며 돌아섰다.

"그럼 씻고 거실로 와주세요.
아침식사가 준비됐거든요."

이런, 벌써 아침까지 해놓은건가?
부지런하구나 미캉은...

"그래. 그럼 먼저 내려가 있어.
곧 따라갈께."

아침의 생리현상으로 일어난 아드님을 미캉에게 보일수도 없으니
미캉 먼저 조용히 내려 보내도록 하자.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릴께요.
아, 그리고..."

문을 나서려던 미캉은 고개를 돌려 내쪽을 돌아보았다.

"어젯밤엔 정말 고마웠어요 료스케 오빠."

싱긋 웃은 미캉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오늘의 미캉은 정말이지 기분 좋아 보이는구나.
왠지 오늘은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은데...



테루테루보즈 두개가 사이좋게 창밖을 바라보는,
맑게 개인 어느날의 아침풍경이었다.



p.s. 미캉의 아침식사 정말 맛있었습니다.

=============================

갈길이 멀군요.
수영장 이야기를 쓴뒤엔
하루코 선생님 이야기라든가,
사키양의 이야기도 써야 되는데...

p.s.1. 이번화에 참조한 원작의 컷들

(1. 리토의 중학교 사진)

(2. 미캉의 자세 참조 - 창틀에 기댐)

(3. 미캉의 자세 참조 - 소파에 앉음)

(4. 미캉의 자세 참조 - 소파에서 아이스크림 먹음)

(5. 치마색 참조 - 원작131화)

(6. 상의색 참조 - 애니메이션)

(7. 상의색 참조 - 원작73화 서비스 컷)

(8.매지컬 쿄코 작품 내 대사1 : "답례로...")

(9.매지컬 쿄코 작품 내 대사2 : "앗싸!...")

p.s.2.
이번 파트의 원작 시나리오를 다시 보기 전까진,
전 라라나 리토가 일부러 외계별로 피서를 간줄 알고 있었습니다-_-;

-----------
(제 기억속의 이야기 전개)

라라 : 사람 드물고 놀기 딱 좋은 행성으로 여행가자~!
일행들 : 와~ 신난다!
-----------

설마 '오키나와'나 '오키와나' 이름차이로 엉뚱하게 워프된 일인줄은 몰랐네요.
(애초에 별 이름도 기억에 없었고)

1학년 때의 돌고래 이벤트도 그렇고, 제대로 기억나는게 없네요;

덕분에 어떤 의미로 글쓰기에는 좀더 편하지만 말이죠=_=;
(하지만 나중에 하루나랑 유이가 납치된 사건을 '미캉'이 납치 되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나는 대체...쿨럭쿨럭;;;)

료스케는 「바다에 갔다」는 미캉의 말을 듣고는, 리토들이 국내 피서지로 워프해서 놀러간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바다에 가는 이벤트가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수도 없고...

코테가와까지 바다에 따라갔다는 얘길 들었다면 어쩌면 떠올릴순 있었겠지만,
지난 1년간 료스케랑 투닥거리다보니 규율에 엄격한 정도가 줄어들어서
코테가와도 그렇게까지 바락바락 달려들지 않았거든요-_-a;
반장 선거때 라라의 발명품 간이 페케뱃지를 압수하지도 않았고...적당히 융통성이 늘어났습니다.

따라서 66화~69화의 외계별 조난 사건에 코테가와는 함께하지 않았고(원작에선 "남녀함께? 풍기문란이야!" 라며 감시명목으로 합류),
74화의 풍기 강화 기간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성품이 완화되었는데 저 두 이벤트를 발생시키는건 억지 같아서 무리더군요=ㅅ=a;

(혹시나 74화가 발생될만한 상황이 떠오른다면 좀 완화된 방법으로 전개가 되겠지만 지금으로선 떠오르지 않네요.)

p.s.3. 파랜드 택틱스 팬픽이나 프린세스 메이커2 조연 빙의물도 떠올려 봤는데 언제 쓸수 있으련지...-_-;
트러블 연재 밀린것도 있고...
나중에 트러블 쓰다 막히면 조금씩 쓸듯.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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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관련 출처 : http://bidong.namoweb.net/bidong/pm25.html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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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의 당신에게!
오늘의 럭키 아이템은 「우산」.
들고 다니시면 행운이 올꺼에요~」

유감. 이곳 날씨는 맑음입니다.





촤아아악---!

뚝...뚝...

"미안! 다친덴 없...꺄아악!?"

드르륵-! 탁!

"......"



등교시간.

4층 교실에서 화단 앞에 있는 사람에게 사과하다가 황급히 창문을 닫고 숨어버리는 여학생.
그리고 떨어진 물뿌리개를 머리에 뒤집어 쓴채 가만히 서있는 양아치.
뒤집어진 물뿌리개가 얼굴을 덮으며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웃는 학생은 한명도 없었다.

난데 없는 돌발사고에 근처에 서있던 학생들이 순식간에 자리를 피하면서 양아치를 중심으로 반경 5미터 가량의 공터가 생겨났다.
방금까지의 소란스러운 등교 풍경이 거짓말같이 생각될 정도로 조용해진 가운데, 타박거리는 걸음소리, 부스럭거리는 옷자락소리, 몇몇 학생들의 작은 속삭임만이 운동장의 거북한 공기속을 맴돌고 있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양아치를 경계하며 학생들은 조심스레 교실로 향했다.

「어, 어이. 무슨 일이야?」
「못봤어? 아까 4층에서 물뿌리개가 떨어졌다고.」
「꽃에 물주던 여학생이 실수로 떨어뜨린것 같아.」
「괘, 괜찮은걸까 그 여학생?」
「그, 글쎄...? 학교내에서 말썽은 안일으킨다는 주의인것 같은데 괜찮지 않을까?」
「확실히 고등학교에 와서 말썽을 피운적은 없었잖아?」
「그거야 모르지... 저기봐.
아무런 미동도 없는게 꼭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 같이 보인다고?」
「에? 설마...」
「진짜로 폭발하는거 아냐?」
「요즘엔 시비거는 불량들도 없어서 얌전해 보였는데...」

오해야...

난데없는 물벼락에 어안이 벙벙한데다가, 주변이 휑하게 비어서 당황해서 멈춰있을 뿐이라고.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지만, 옷째로 온몸이 흠뻑 젖어버린 지금은 약간의 추위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저기봐...!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어...」
「이거 정말 위험한거 아냐?」
「코테가와씨에게 알려야 하는거 아닐까?」

알리지 마.

추워서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을 뿐이라고?
솔직히 여학생을 걱정하기보다는, 물뿌리개를 맞은 날 걱정해줘야 하는거 아냐?
「느껴진다. 녀석의 살기가...!」라고 말하는 녀석은 또 뭡니까?
절묘하게 얼굴을 가린 물뿌리개 때문에 당황한 내 얼굴이 안보인다지만 그런식의 오해는 사양하고 싶습니다.

대체 평화로운 등교시간에 이 무슨 횡액이람?
아침에 본 별자리 점 방송을 코로 웃었다지만,
물벼락은 정말 예상에 없었어요...
설마 방금 전 재난이 이계트립 이벤트였다면, 참으로 소심한 재난이라고 딴죽을 걸고 싶다.
재난이라기 보단 오히려 못된 장난?

영양가 없는 분석은 그만두고, 그냥 오늘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찌됐건 지금은 눈앞을 가득채운 물뿌리개부터 치우는게 우선이다.
얼굴을 가린 물뿌리개를 양손으로 들어올리자 눈앞에 내밀어진 손수건이 보였다.
이건...?

"괜찮아 아키츠군?"

"...아라이, 시라유리?"

좌우로 내린 머리칼에 머리핀을 2개씩 꽂은 단발 소녀가 손수건을 내밀며 서있었다.
같은 반이자 테니스 부원인 아라이 사야카다.
그 옆에는 투 사이드 업의 장발에 리본을 장식한 안경을 쓴 소녀, 시라유리 코요미도 있었다.
얼떨떨해 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사야카가 손수건을 좀더 앞으로 내밀었다.

"우선 이걸로 얼굴을 닦아."

"괘, 괜찮아.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온몸이 흠뻑 젖은채로 말하지 마.
이번에도 불량이니까 강한척 해야한다고 주장하는건 아니겠지?
...설마 닦아주길 바라는거야?"

"아, 아냐!"

히죽 웃으면서 가까워지는 사야카의 손에서 손수건을 낚아채선 허겁지겁 얼굴을 닦는다.

"아하하~ 그렇게 사양하지 않아도 좋은데?"

"호, 혼자서 할수 있어!"

쾌활하게 웃는 사야카의 목소리를 들으며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
왠지 당황하는 내 모습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곤란했다.
허둥지둥 얼굴을 닦고 있으려는데 주변의 분위기가 바뀐듯 했다.
안도의 한숨이 들리고 다시 소란스럽게 바뀐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럭키!
고마워요 두사람.
난데없이 조성된 긴장을 무난하게 풀어지도록 해줘서.
안도한듯한 코요미의 모습을 보건데, 방금전 사야카의 적극성은 다소는 의도한 행동이었나보다.
대충 얼굴을 닦고선 싱글싱글 웃는 사야카를 마주 보았다.

"...고마워. 아라이."

"천만에~. 저번에 도와줬던 답례야."

"손수건은 나중에 씻어서 돌려줄께."

"에,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눅눅해진 손수건을 그대로 돌려줄 순 없다고."

굳이 상대가 여자애가 아니더라도 사용한 물품은 깨끗하게 해서 돌려주는게 예의.
예를 들면 우산이라든가 손수건이라든가 건네받은 도시락이라든가.
아, 물론 도시락 같은걸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으응~아키츠군은 신사적이네?"

"기본 매너라고 생각하지만..."

"저기..."

사야카와 대화중 코요미가 머뭇거리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응? 왜그래 코요미?"

"그...가방속에 책은 괜찮을까 아키츠군?"

"에?"

코요미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내리자 물로 흠뻑 젖어 늘어진 가방이 보였다.

"우아아악---?!"

「「꺅!」」

갑작스런 내 비명에 놀란 둘의 모습을 신경쓸 새도 없이 재빨리 가방을 열었다.
책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보니 종이가 젖어 구불구불해진 모양새였다.
무엇보다도...도서실에 반납하려고 가져온 대출도서마저 눅눅해진 상태였다.

"...망했다..."



젖은 가방을 어깨에 매고 양손엔 책을 든채로 사야카와 코요미랑 함께 교실로 들어섰다.
물에 흠뻑 젖은 내 모습을 본 클래스 메이트들이 놀란 모습을 하지만 우선은 책들을 말리는게 먼저다.
수업전까지 마르면 좋을텐데...
눅눅해진 대출도서는 말렸다가 점심시간때 도서실에 반납하는게 좋을까?

"아키츠군? 아침부터 굉장한 몰골이네~?"

"아, 모미오카. 좋은아침."

"좋은아침...이 아니겠지? 무슨일 있었어?"

"화단에서 광합성을 했습니다."

"에?"

방금전 물뿌리개를 뒤집어쓴 내 모습을 떠올렸는지 사야카와 코요미가 피식 웃으면서 리사에게 설명해줬다.
이야기를 들은 리사는 기가막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재수가 없었네 아키츠군."

"그러게~ 갈아입을 옷은 있는거야?"

"그렇지 않아도 교복을 말리는 동안엔 체육복을 입으려고."

미오의 물음에 답하며 비닐 봉투에서 체육복을 꺼내들었다.
적당히 갈아입을 장소를 생각하려는데 지켜보던 라라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럼 내가 탈의실로 보내줄께~
조금 있으면 수업시간이니까 빨리 다녀와야 하잖아?"

"응?"

어리둥절한 나를 두고 라라는 삑-삑- 휴대폰 모양의 기기를 만지작 거리더니 손에서 팔찌 모양의 도구를 소환했다.

"쨔짠~!「뿅뿅 워프군 - 개량형」!"

"에에엑?!"

라라의 발명품 이름 같은건 기억 못하지만, 놀라는 리토의 모습을 보건데 변변찮은 물건은 아닌듯 하다.
사양하는게 최선일듯 하여 즐거운듯한 라라에게 정중히 거절하려고 했다.

"자~ 이걸로 탈의실에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어~!"

"아니, 난 그냥 화장실에서...「얍!」으악!?"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주세요.
친절은 좋지만 우선은 대답을 듣고 난 뒤에 부탁합니다 라라양...

시야가 일그러지며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가운데, 부디「개량형」이라는 호칭이 긍정적인 의미이길 간절히 바랬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눈을 떠보니 다행히도 탈의실에 제대로 워프된 듯 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너머로 줄지어선 캐비닛함들이 보이는걸 보면...
과연 개량형. 엉뚱한 곳에 떨어지지 않나 걱정했지만 역시 엉망진창인 기능이 개선된 듯 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이마 위쪽으로 손을 올려보니 금발이 한가득 잡혔다.
...헤어밴드는?

당황해서 몸을 더듬거리다가 경악했다.
목걸이도, 팔찌도 없어!
아니,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다.
아까까지의 축축함 대신 온몸에서 느껴지는 휑-함.



나, 지금 알몸이야...



알몸으로 워프 되는걸 개량한게 아니었습니까?!
목적지 설정이 가능하게만 개량한거야?

알몸쪽이 더 문제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

우주인에게 상식을 들먹여도 무리인가...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갈아입으려고 들고있던 체육복조차 교실에 남겨두고 와버린 상태다.
탈의실로 워프한 의미 없지 않아?
악세서리 하나도 걸치지 않은 태초의 모습 그대로.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어떻게 교실로 돌아가지?

리토나 다른 학생이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와주길 바라는수 밖에 없으려나?
이른 아침부터 탈의실에 올 학생이 있을리도 없고...



"아, 아키츠군?"



...있었습니다.

그것도 「여학생」이...

당황해서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자,
발가벗은 상반신을 양팔로 가린채 서있는 코테가와의 모습이 보였다.
몰캉-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처럼 팔에 가슴이 압박되며 도드라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켜 버렸다.

과연 프로포션에선 라라와 함께 교내 투톱인 코테가와...가 아니라...!
어, 어째서 남자 탈의실에 코테가와가...?!

서, 설마...

「여자 탈의실」?!

놀라는 나와 마찬가지로 코테가와는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뻐끔뻐끔 벌리고 있었다.
이윽고 몸을 꽉 껴안은 코테가와가 눈을 질끈 감는게 보였다.
어? 잠깐 타임!

"꺄...「자, 잠깐?!」읍?!"

엉겁결에 달려가선 손으로 코테가와의 입을 틀어막았다.
만약 비명을 지른다면 몰려오는 학생들에게 들키면 빼도박도 못하게 변태 확정이다!

"으읍! 읍-!"

강제로 입이 틀어막힌 코테가와가 발버둥치며 오른팔로 나를 밀어내려 했다.
가슴을 가리고 있는 왼팔을 치울순 없어서 그런지 오른팔에 실린 힘이 크지 않았다.
공포심이 섞인 눈동자로 저항하는 코테가와에게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말을 생각해 보았다.

알몸으로 여자 탈의실에 난입한 남학생과 입을 틀어막힌채 붙잡힌 소녀.
...어떻게 봐도 범죄자군요. 감사합니다...

"저, 저기...진정해 코테가와?"

내 말이지만 내가 들어도 설득력이 없네요.
어느덧 눈에 물기까지 띈 채로 날 노려보는 코테가와의 시선에 쿡쿡 양심이 찔렸다.

"그, 그러니까...오해야.
고의로 난입한게 아니라고?
처분이라면 나중에 얼마든지 받을테니까,
적어도 지금은 변명을 좀 들어줘..."

더듬더듬 얘기를 하면서 코테가와에게 호소했다.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두서없이 말을 꺼내고 있으려니 조금씩 코테가와의 저항이 잦아들었다.
아, 알아준건가?
진정한듯 보이는 코테가와의 얼굴을 보며 나도 천천히 손을 치웠다.
코테가와는 조용히 양팔로 가슴을 가렸다.

"저, 저기. 미안해 코테가와.
난폭하게 굴어서..."

"...우선, 몸을 가리세요."

"...?!"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고보면 나 지금 알몸이었어!
가, 가릴것은 어디에?
...없잖아?!

"아키츠군. 이제 다 입었...왜, 왜 아직도 그 모습인가요?!"

어느새 상의를 걸친 코테가와가 나를 바라보다가 얼굴이 새빨개지며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게...나 갈아입을 옷도 못가져왔는걸."

"...그럼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건가요?
아니,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선은 이 수건이라도 걸쳐요."

"고, 고마워."

손바닥으로 중요부위를 가린 내 모습을 보다못한 코테가와로부터 수건을 받아서 허리에 두른다.
...다 보여버렸어...
초등학교 이후론 어머니에게도 보인적 없는데...!
좌절감이 몰아닥치는 가운데 코테가와가 붉어진 얼굴을 추스르며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래서, 방금전의 상황은 대체 무슨 일인가요?"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된 코테가와의 모습에 겨우 패닉 상태를 추스르곤 설명했다.

"그러니까...
교복이 물에 젖어서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라라의 발명품으로 탈의실에 워프했더니 이곳이었어."

"파렴치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유는?"

내가 알고 싶어.

"도착했더니 알몸이었습니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코테가와는 이마를 짚었다.

"뭐, 믿도록 하죠.
항상 끼고 있는 장신구들도 없는걸 보면."

휴우...
다행히 의도적인 상황은 아니었다는건 알아준듯 했다.
나도 갑자기 여자탈의실에서 코테가와랑 마주칠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그런데 코테가와는 어째서 이런 시간에 여기 있었던거야?
아니, 방금 질문은 취소. 배려가 부족했네."

"...아침에 사이렌지씨와 잠시 말썽이 있었거든요."

"그, 그래?"

인상을 살짝 찌푸린 코테가와의 모습을 보니 더이상 말하고 싶진 않아 보였다.
여자애한테 탈의실에 온 이유를 묻는것도 몰상식했는데, 더 추궁하진 말아야겠다.

"그럼, 교실에서 체육복을 가져올테니까 아키츠군은 여기서 기다려요."

"고마워 코테가와."

수건 하나만 걸친채 밖을 돌아다닐수도 없는지라, 탈의실에서 조용히 코테가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

아...수업종 소리다.
수업이 시작됐으니 당분간 돌아오는걸 바라긴 무리려나.

2교시가 체육인 반이 없길 바랄 수 밖에.
정 뭣하면 캐비닛 속에 숨어있어야 겠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있으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키츠군? 들어가요."

"에? 코테가와?"

놀란 내 목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코테가와가 탈의실 안으로 들어와 체육복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전 나가있을테니까 얼른 갈아입도록 해요."

얼떨떨하면서 내밀어진 봉투와 코테가와를 번갈아 바라봤다.

"...수업을 듣고 있는게 아니었어?"

"어째서요?"

"그야, 방금전 수업종이 울렸잖아."

"그러니까 수업을 듣고 있을거라고 생각한건가요?"

"...응."

"실례군요, 전 그렇게까지 매정하지 않아요."

"미, 미안."

뾰루퉁한 표정이 되어버린 코테가와의 모습에 사과하면서 코테가와의 손에서 봉투를 받아들어 가슴에 안았다.
휑한 몸뚱이에서 느껴지는 쌀쌀함과 반대로 체육복이 든 봉투가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키츠군이 그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고마워 코테가와..."

"풋...오늘따라 그말 자주 하는거 알고 있어요?"

가볍게 웃던 코테가와는 탈의실을 나섰다.

"그럼 전 나가 있겠어요.
얼른 갈아입고 돌아가자고요."

"응!"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뒤 함께 교실로 돌아갔다.
수업중 들어온 우리 둘에게 의아한 모습의 선생님께 옷이 젖어 갈아입느라 늦었다며 양해를 구하곤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의 배려인지 친절하게도 책상위에 놓여있는 악세서리를 착용하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뭘 보고 있어야 하지?
아직까지 물기가 가득한 상태인 교과서를 손에 들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페이지 넘기다가 찢어지지 않을라나 몰라...

"(아키츠군.)"

"응?"

젖은 교과서를 펼치기는 좀 곤란해서 열심히 칠판이나 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코테가와가 속삭였다.
돌아보니 어느새인가 책상을 내것과 붙여 앉고선 교과서를 펼쳐들고 있었다.

"(교과서까지 젖어버린건가요?)"

"(어쩌다 보니...)"

"(할 수 없네요. 오늘은 제 책을 함께 보도록 해요.)"

진짜?

"(괜찮아?)"

"(물론이에요. 설마하니 수업시간동안 그저 멍하니 있을 셈은 아니겠죠?)"

여차하면 노트에 필기만이라도 할까 생각했습니다만...
귀중한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진 않습니다.

"(당연하지. 그나저나 오늘은 신세만 지는것 같아 미안하네...다음에 꼭 답례할께.)"

"(별로, 보답을 바라고 한게 아니에요.
그보다 이만 수업에 집중하세요.)"

"(으응...)"

그래도 뭔가 해주고 싶었는데...
그동안 필기한 노트라도 보여주려고 해도, 필기는 나보단 코테가와가 더 잘할것 같다.
꼼꼼하기도 하고 모범생이니까.
그다지 괜찮은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얌전히 수업을 듣기로 했다.

그나저나 여자애와 책 함께 보기라니 왠지 좀 근지러운데...
슬쩍 코테가와에게 시선을 향하다가 어깨가 맞닿을듯이 앉은 코테가와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목덜미를 살짝 가리며 흘러내린 코테가와의 머릿결에선 산뜻한 샴푸향이 느껴졌다.
후각을 자극하는 기분좋은 향기에 마음이 붕 뜨는듯 했다.
코테가와의 머리카락... 부드러워 보이는게 쓰다듬으면 기분 좋을것 같은데...

"(아키츠군?)"

"(...!)"

코테가와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무심코 거리를 벌렸다.

"(좀, 가까이 오세요. 안보이겠죠?)"

"(그, 그렇네... 미안.)"

안돼... 방금전부터 머리속이 꽃밭이 되어버린 것같다.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에 사고가 마비된듯이 뺨에 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까부터 뭘 멍하니 있던거에요?)"

"(비밀입니다.)"

"(...설마 파렴치한 생각을 한건 아니겠죠?)"

눈초리가 날카로워지며 날 노려본다.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것이 아무래도 아침의 탈의실에서의 사건을 떠올리고 있나보다.
설마 내가 코테가와의 알몸을 상상하고 있었다던가 하는 착각을 하는건 아니겠지요?!
이대로 있다간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 코테가와를 눈으로 범한 인면수심의 파렴치한으로 찍힐까봐 황급히 자기변호를 했다.

"(아니, 그게... 코테가와는 어떤 샴푸를 쓰는가 하고...)"

"무, 무슨?!"

어? 잠깐!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당황한듯 코테가와는 속삭이는듯 말하는것도 잊고선 새된 소리를 내었다.

"(코테가와! 수업중, 수업중!)"

"(아...)"

코테가와가 황급히 입을 가렸지만 한발 늦은듯 선생님께서 우리를 쳐다보고 계셨다.

"거기 두사람. 수업시간엔 조용히 하세요."

"...죄송합니다."

코테가와가 면목없다는듯 고개를 숙였다.

꾸욱-

"윽?! 죄, 죄송합니다..."

따가워?!
옆구리 꼬집지 말아줘 코테가와.
잘못했어요오오...

"흐음...그럼 수업을 계속합니다."

선생님의 시선이 칠판으로 향하자 코테가와는 나를 째려보았다.

"(아키츠군이 이상한 소릴 하니까 이렇게 됐잖아요!)"

"(하, 하지만 좋은 향기가 났는걸...)"

"(벼, 변태!)"

"(너무해?!)"

억울하다는듯한 내 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코테가와는 천천히 교과서로 시선을 돌렸다.

"(...저한테 신경쓸 틈이 있으면 수업에 집중하세요.)"

"(으...명심하겠습니다.)"

꼬집힌 옆구리를 매만지며 책으로 시선을 향했다.
책 보여준 답례가 아니라 기분을 풀어줄 거리를 생각해하려나?
이번에 새로 오픈한 수영장 티켓이라도 구해줄까?
축제때 야미나 미캉이랑 사이도 좋아졌겠다 함께 수영장에 데리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승락해준다면 말이지.

「그래서...이 문제의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평면에 수직인 벡터를...」

탁-탁-탁-

힐끗 옆을 보니 코테가와는 여전히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방금전의 동요가 거짓말같이 침착하게 수업을 듣는 코테가와는 과연 성실하구나.

...지금은 책이 아니라 칠판을 봐야 하지 않나?

선생님이 판서하고 계실 때마저 책만 읽는게 뭔가 이상하다 싶어 지적하려다가 희미하게 상기된 코테가와의 뺨이 보였다.
뺨만이 아니라 귓볼과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물들어서
한손으론 살며시 머릿결을 매만지는 모습은 전혀 침착해 보이지 않았다.

책에 눈을 떼지 않은게 아니라 시선을 둘 곳이 없던거였습니까.
방금 한 말을 굉장히 신경쓰고 있었잖아?!

약간 힘들게 치켜뜬 눈매와 반대로 동요하듯 흔들리는 코테가와의 눈동자가 뇌리에 박혔다.
흘러내리는 코테가와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느껴지는 묘한 간지러움에, 나도 슬쩍 볼을 매만지며 따듯해진 얼굴을 식히려 했다.
결국, 1교시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1교시가 끝난 쉬는시간에 코테가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수업전의 사건에 대해서 친구들이 물어오는 마당에 좀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리토가 내 체육복을 들고 남자 탈의실에 다녀 왔었나보다.
아무도 없는 탈의실의 모습에 당황해서 교실로 돌아오다가 코테가와에게 체육복을 건네주었던것 같았다.

"저기...미안 료스케~"

"아, 아하하...괜찮아 라라."

사과하는 라라에겐 뭐라 반응해야 할지 곤란해서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도와주려고 한 덤벙쟁이 아가씨에게 화내기도 그렇고,
약간은 분홍빛 해프닝도 있었으니 항의하기엔 양심이 찔린다.
무엇보다도 방금 수업시간의 상황 때문에 머리가 익는것 같아 다른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저기말야 아키츠군~"

"응?"

"방금전 교실에 들어올 적에 헤어밴드 하고 있지 않았지?"
"벗었을때 모습이 꽤 괜찮아 보였는데, 평소에도 그렇게 머리 내리고 다니는게 어때?"
"그래그래~. 여자아이의 미적 감각을 믿어보라고~"

리사와 미오가 눈을 반짝이며 악세서리에 대해 지적 해왔다.
외형에 대한 이야기는 한동안 뜸했는데...
그나저나 물에 쫄딱 젖어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멋있어?
그거 믿어도 되는거야?

"거절. 이건 내 몸과 같은 거라고.
잠시라면 모르겠지만 계속 벗고 다닐 생각은 없어."

적어도 고등학교 시절동안엔 무리입니다.
기껏해야 대학교 졸업 즈음 되어서야 벗을 수 있겠지.

"에~ 10년은 젊어 보일텐데~"

"쿨럭...!"

시...십년?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에 비수를 박는 말을 하시는군요 리사양.
하지만 젊게 보이고 싶다고 재난에 휩싸이는걸 선택할만큼 절박하진 않습니다.

"그나저나 코테가와씨는 어딜 간거지? 아키츠군은 혹시 알아?"

"그, 글쎄?"

나한테 묻지말아줘.
개인적인 용무일 수도 있는데 남자애한테 말하고 가는 여자애가 어딨어?
그때 뒤늦게 대화에 참여한 사야카가 손을 들었다.

"아, 나 알아. 방금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있던데?
머리를 다듬는것 같았어."

"코테가와씨, 머릿결 좋으니까.
평소부터 특별한 관리라도 하는걸까?"

"......"

제 탓이군요, 압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까지 의식할 줄은 몰랐다고요?
나중에 코테가와에게 잘 대해주자고 다짐하며
화제가 코테가와에서 모발관리로 넘어간 리사와 사야카 일행에게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점심시간. 대출도서가 말랐기에 반납을 위해 도서실로 내려갔다.
다행히 표지를 제외하곤 크게 젖은 부분이 없어 딱히 주름이 진 부분은 없었다.
도서실에 들어가 사서를 맡은 여학생에게 다가가자 여학생은 잠깐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인사해왔다.

"아...안녕하세요."

"안녕~"

예의바른 아가씨네.
보통은 누가 오든간에 본체만체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번에 책을 빌릴때 낯을 익혀서 그런지 익숙한 모습으로 책을 건네받곤 반납처리를 해주었다.

반납이 끝나고 그대로 돌아가려다가 조금 바뀐듯한 도서관의 모습에 의아해서 사서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네, 넷?"

"......"

"죄, 죄송해요!"

당황해 했다가 얼굴이 빨개져선 사과해오는 여학생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괜찮잖아.
그냥 물어볼게 있어서 말야."

"궁금한거요?"

"왠지 책장들이 저번에 왔을때보다 높아진것 같아서 말이지."

"아, 그거 말인가요?
그게...요전번에 구교사에 있는 도서실에서 책들을 옮겨 왔거든요."

"구교사에서?"

"네. 예전부터 책들을 옮기자는 이야기는 있었는데 제대로 논의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저번에 구교사에 대한 괴담이 퍼져버려서 한동안 학교가 떠들석했잖아요?
그래서 구교사 출입 통제에 관해서 선생님들이 토론을 하시다가,
이왕 내친김에 구교사의 도서를 정리하자는 의견이 모여서 지금처럼 책이 늘어난거에요."

"그, 그렇습니까?"

「덕분에 일거리가 늘었지만요」라고 불평하는 여학생의 말을 들으며
찔리는게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더듬거렸다.

"아무튼 책을 들여놓을 공간을 확보하느라 책상과 의자는 잠시 창고에 넣어둔 상태에요.
얼마뒤엔 다시 원위치 시키겠지만 정리가 끝나기 전까진 좀 불편하겠죠.
예전보다 책이 늘어났으니 빌려보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더군요.
그나마 자주 보이는 금발 여자아이 덕에 보람을 느끼지만요."

"그, 그래요?"

"저...선배신듯 한데 편하게 말하셔도 되요."

"아뇨, 왠지 모르게..."

"풋...어색해요."

"어색해?"

"그게, 풍기는 분위기랑 전혀 안어울리니까요.
좀더 강경한 분으로 보였는데 말이에요."

"하, 하...그런소리 많이 듣습니다."

킥킥대는 사서의 모습에 무안해 하다가 다시 도서실을 둘러보았다.
천장까지 닿을만큼 높이 쌓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많구나...이걸 언제 다 옮긴거지?
적어도 한번쯤 둘러보는게 양심이 덜 찔릴것 같아 점심시간 동안에 빌릴 책이나 찾을겸 천천히 도서실을 걸었다.

구교사에 있던 책들은 고서의 분량이 많아보였다.
흥미로운 주제의 책들을 살펴보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으읏...」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보니 높은곳에 꽂힌 책을 꺼내려고 발돋움하는 하루나가 보였다.
안타까운듯 손을 뻗으며 분투하는 하루나의 모습을 보고만 있긴 힘들었기에, 뒤로 다가가 하루나의 손끝에 있는 책을 꺼내들었다.

"아..."

뒤에서 내밀어진 팔에 조금 놀란듯한 하루나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찾던 책, 이게 맞아?"

"아, 고마워요."

웃으며 하루나는 책을 받아 가슴에 안아들었다.

"혹시나 더 찾는 책이 있다면 도와줄께."

"감사해요.
...저기, 그러니까...?"

인사를 해오면서 하루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걸까?
확실히 자기 소개는 안해서 모를수도 있지만, 적어도 학교에선 내 이름을 모르는 학생은 없을꺼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저는 자의식 과잉이었네요. 반성.

"아키츠 료스케야.
그러고 보면, 2학년때는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지?"

"아, 저는..."

"알아. 사이렌지 하루나잖아.
같은반 위원장 이름을 모르진 않는다고."

"예..."

"그런데 빌려보고 싶은 책이라도 있었어?"

"네. 이걸 보고 싶었거든요."

웃으며 안아든 책을 내보인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에?

"사이렌지, 이건..."

"왕자님과 공주님의 이야기에요."

하루나는 책을 껴안으면 기쁜듯 웃었다.
소중한듯 책을 쓰다듬으며 미소짓는 하루나의 모습엔 평소의 조용함이 아닌 활발함이 깃들어 있었다.

"사이렌지는, 동화책을 좋아했던거야?"

"그게, 사실 동화책이란걸 읽은건 오늘이 처음이라서요."

우와~ 삭막해 그거.
그럼 어릴적엔 뭘하고 지냈다는거야?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시간이 가는줄 모를만큼 푹 빠져 버렸어요.
시련을 겪는 주인공이 마지막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해 지는걸 볼땐 정말 기뻤으니까요..."

즐거운듯 얘기 하던 하루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요즘 세상에도 왕자님 같은 분이 있을까요?"

"으응...?"

어...음, 이럴땐 뭐라고 반응해야 하지?
영국에 있어?
승마도 왕족의 교양이니까 백마탄 금발 왕자님까진 기대해도 괜찮아?

"이야기속 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줄, 그런 사람이요."

아, 아...그런 의미였군.
그런 사람이라면 없진 않겠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애사를 들어보면 좀 과장 섞인듯 했지만 비슷류의 일도 했던것 같고.
무엇보다도...

"그런 녀석이라면 사이렌지도 알고 있잖아?"

"네?"

"언제나 사건에 휘말리고 여자애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지만,
정말로 필요할때는 누구보다 멋진 녀석을 말야."

딱잘라 말해서 리토라고 하지 않는건 하루나의 구상을 모르는척 해주는 배려입니다.
멍하니 듣고있던 하루나는 살짝 입을 가리며 밝게 웃었다.

"아하하~ 우유부단한 왕자님이네요."

리토...네 구상인에게 넌 우유부단이란 평을 받고 있구나.
좀더 힘내보렴.

- 드르륵...

응?

이상한 소리가 머리위에서 들린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전 책을 뽑은 곳 주위의 책들이 조금씩 기울어지며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거 위험하지 않아?
인식한 직후 기울어지던 책더미들이 책장 밖으로 떠밀려 하루나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사이렌지!"

"엣? 꺅!"

황급히 하루나의 손을 잡고 내쪽으로 당긴뒤 하루나의 머리를 보호하듯 감싸안았다.

- 촤락! 퉁! 투툭...

몇권의 책이 몸에 부딪쳐 바닥에 떨어졌다.
이거...조금 무리하게 책들을 꽂아넣은거 아냐?

고개를 내리자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뜬 하루나의 얼굴이 보였다.
다행이 다친곳은 없어보여 안도했다.

"괜찮아 사이렌지?"

"네. 괜찮아요."

대답을 하던 사이렌지는 문득 생각난듯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올려진 내 손바닥에 가져갔다.

"아, 이제 치울테니..."

사과하며 안은 자세를 풀고 하루나의 머리에 얹은 손을 치우려는데,
하루나가 양손으로 내 손을 살짝 잡았다.

"왜, 왜 그래 사이렌지?"

"아...미안해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고 있으려니
하루나도 쥐었던 손을 치우곤 자세를 바로하고 일어났다.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던 하루나는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은 고마워요."

"아니 뭘...사이렌지가 다치지 않았다면 다행이야.
그런데 방금전 내가 머리에 손을 댄거...혹시, 기분 나빴어?"

여자아이의 머리는 정돈하는게 고생이라니까.
함부로 머리에 손을 대서 헝클어뜨린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살짝 손을 들어 어색한 웃음을 짓는 나에게 하루나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그런게 아니에요.
전혀 기분 나빴다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저..."

"그저?"

주저하던 하루나는 손바닥을 펴 내 손바닥에 겹쳤다.
가늘고 작은 손바닥의 감촉이 느껴지며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듯한 하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였으니까요..."

...하루나는 무엇을 회상하는걸까.
지금은 떨어져 지낸다는, 부모님과의 어릴적 추억?
동화책조차 읽어보지 못했다던 하루나의 어릴적 삶은 대체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약간의 아련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하던 하루나는
이내 나를 보며 밝게 웃었다.

"그나저나... 료스케씨의 손바닥은 참 크군요?"

히죽 웃으면서 내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하루나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거야 사내 아이니까.
여자 아이의 손길은 참 부드럽네...가 아니고!
난데 없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어째서 하루나가 이런 행동을?

처음엔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동화책에 빠져있다가,
나중엔 감수성 넘치는 소녀와 같이 로맨틱한 이상형을 그리고,
그리움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얼굴을 하고선,
지금은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으로 내 손을 잡아오는 하루나.

하루나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 사정없이 깨지고 있었다.

아무리 여자는 기묘막측한 존재라지만, 이렇게까지 바뀔수 있는건가?

게다가 료스케씨?

아니, 혹시...

"잠깐 실례"

하루나의 손을 잠시 치우곤 하루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에?"

어리둥절한 하루나를 무시하고 다른 한손으로 가만히 내 이마를 짚는다.
어디보자...

"...열은 없는데?"

"료스케씨?"

"아, 미안...「뭐하고 있는겁니까 아키츠 료스케...」...야미?"

고개를 뒤로 돌리자 한손에 책을 든 야미가 나를 비난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란스럽길래 와보면...사이렌지 하루나에게 무슨 짓을 하는겁니까?"

"오해다! 별로 이상한 일을 한게 아냐?"

"아, 야미씨!"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하루나를 보고 야미는 한숨을 쉬더니 우리에게 다가왔다.

"도서실에서는 조용히 하는게 예의입니다."

"미, 미안."
"아, 미안해요."

목소리를 줄여 대답하는 우리에게 야미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사이렌지가 책 찾는걸 도와주고 있었어."

"책을 꺼낼때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렇습니까..."

석연치 않다는듯 우리를 바라보던 야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바라 보았다.

"그럼 저도 좀 도와주십시오."

"야미도?"

"원하는 책을 찾았는데 너무 높이 있더군요.
받침대를 구하려고 했는데 창고에서 정리중이라 미처 준비가 안된 모양입니다."

"변화능력은 어쩌고?"

"...저번에 책더미가 쏟아지는 일이 있어서 자중을 부탁받았습니다."

부루퉁한 얼굴로 볼을 부풀리는 야미의 모습에
「...그거참 큰일이었네...」라고 밖에 말할수 없었다.



아무튼 떨어진 책들을 꽂아넣고 야미가 찾는 책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천장 가까이 있잖아?
그냥 선채로 잡기엔 높고, 그렇다고 점프해서 꺼내려다간 천장에 머리를 부딪힐 염려가 있었다.
게다가 잘못하면 방금전처럼 빽빽히 늘어선 책들이 쏟아질수도 있고...

"...곤란하네."

"곤란하죠."

어딘가 적당히 받침대가 될만한건...없구나.
떠오르는 방안은 하나뿐이네.

"...목말은 어떨까?"

"목말?"

"야미 네가 내 어깨에 올라타서 직접 책을 꺼내는거지."

나름대론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했지만 야미는 지긋이 나를 쳐다보았다.
의심스럽다는듯한 눈초리에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어 곤혹해할 즈음 야미가 말문을 열었다.

"혹시, 야한 짓을 하려는건 아니겠지요?"

"...왜 그렇게 되는건데?"

아니 뭐, 야미랑은 조금 해프닝이 있기도 했지만
흑심이 있어서 그랬던건 아닌데...
게다가 그런말을 들으니 괜히 의식이 되잖아?

"...아무튼, 닥터 미카도의 말도 있고, 당신은 신뢰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 정말?"

선생님...제가 당신을 잘못 알고 있었군요.
선생님의 농담 덕에 수염○○○설이 퍼져 버려 고생한뒤론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순진한 아이들을 골탕먹이길 좋아하는 괴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렇게까지 저를 신용하고 계셨을줄이야.
없던 존경심마저 솟아나려고 하는군요.
예상치 못한 호평가에 쑥쓰러워져서 볼을 긁적이며 실없는 자랑을 해보았다.

"핫핫핫. 평소 품행이 좋았으니까 말이지."

"...뭐, 알몸에 와이셔츠를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만 조심하면 될거라더군요."

...미카도 선생니이이이임---!
대체 나에 대해 어떤 선입관을 심어주려는 겁니까!
솟아오르던 존경심이 바닥을 뚫고 추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끄응...어쨌든 책이나 꺼내자구.
그래서, 목말 타는걸로 좋아?"

"...좋습니다."

"그럼 잠시만..."

목에 걸친 목걸이를 빼서 주머니에 넣는다.
야미가 불편한 감촉을 느낄수도 있으니까.

"이제 됐어. 올라타라구."

야미의 앞에서 등을 돌린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야미는 잠시 머뭇거리는듯 하더니 조심스레 내 어깨에 왼쪽 다리를 올렸다.
볼에 따뜻한 체온과 함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양다리를 모두 어깨에 올리고 난 후 야미는 양손으로 내 머리를 잡아 왔다.

"준비됐습니다. 천천히 일어서 주세요."

"으응."

조심스레 야미의 허벅지 위에 손을 대고 균형을 잡았다.

"...이상한 곳에 손대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안한다고..."

"......"

허벅지에 손을 대는 순간 움찔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더이상 추궁은 없었다.
천천히 무릎을 펴며 몸을 일으키자 갑자기 양볼에서 강한 압력이 전해졌다.

꽈악-!

"켁?!"

"부, 불안정한 자세로군요..."

야미가 허리를 숙인채로 내 머리를 잡으며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안쓰러지니까 그렇게 꽉 눌러잡지 마.
튼튼한 몸이라서 아프진 않은데, 이상한 느낌이 들려고 한단 말야.

허벅지가 꽉하고 볼에 밀착되고 있다고?
게다가, 그... 속옷이 있는 부위가 달라붙을 정도로 목덜미를 압박하고 있다고요 야미씨.
볼에서부터 목덜미까지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사고회로의 퓨즈가 나갈것 같았다.

이대로 계속 있다간 나도 이성이 남아나질 않을것 같아서 빨리 야미가 책을 꺼내도록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잘못해서 책장에 야미가 부딪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몸을 일으킨뒤 균형을 잡았다.

"야미, 높이는 맞아?"

"조금만, 앞으로 움직여 주십시오."

"이렇게?"

"네. 잠시만..."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뒤적거리며 야미가 책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의외로 책들이 빽빽히 꽂혀 있는지 꺼내는데 시간이 걸리는듯 했다.
옆의 책이 함께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꺼내는거겠지.

그런데 너무 그렇게 움직이지 마.
목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현기증이 날듯한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며 어떻게든 몸을 가누었다.

- 스○2 당시 춘리 누님의 허벅지는 뭇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 야미의 허벅지도 정말이지 괘씸하네요.

번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길 한참(실제 시간은 그렇게 흐르지도 않았지만),
야미는 간신히 책을 꺼내들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됐습니다...내려주십시오 아키츠 료스케."

"어? 응."

엉거주춤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추자 야미가 내 어깨에서 내려왔다.
야미가 내린걸 확인하고 일어서자 약간 상기된 표정의 야미가 책을 든채 서있었다.

"...감사합니다 아키츠 료스케."

"아니, 별말을..."

긴장했던 탓인지 부끄러웠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머뭇거리며 감사의 인사를 하는 야미의 모습에 어색해하며 대답해버렸다.

"그, 그나저나 찾는 책은 이걸로 끝이야?"

"저쪽에 한권 더 있습니다만..."

야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보니 방금전과 비슷한 높이에 꽂힌 책이 보였다.
또다시 목말을 하려고 주저앉으려는데 방금전 모습을 바라보던 하루나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기..."

"사이렌지? 무슨일이야?"

"저도 목말 해볼수 있을까요?"

"에?"

목말을? 내가? 하루나한테?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자 하루나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제가 야미씨에게 목말을 해주고 싶단 뜻이었어요."

"사이렌지가?"

"어째서입니까?"

고개를 갸웃하는 우리 둘에게 하루나는 재미있어 보인다는듯 말했다.

"그게... 목말을 태워줄때 료스케씨, 어쩐지 기분 좋아 보였는걸요?"

"!...아, 아키츠 료스케..."

"이,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았어?!"

얼굴이 붉어져선 노려보는 야미에게 손사래를 쳤다.
그야, 맨살의 감촉에 두근두근하긴 했지만... 음흉한 속셈으로 제안한건 아니었다고?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는 야미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때 하루나가 야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미씨, 어서요."

"...사이렌지 하루나. 당신에게는 조금 힘들지 않을지..."

"사양하지 않아도 좋아요."

안듣고 있군...
아무래도 어떻게든 목말을 태워주고 싶은듯 하루나는 야미의 앞에서 목말을 태울 자세를 취했다.
태워주는 사람이 더 즐거워 보이는건 무슨 일이야?
오늘의 하루나는 조금 행동력이 넘치는듯 보였다.
야미는 어쩔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체념한 표정으로 하루나의 어깨위에 올라탔다.

"무리하진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세요.
으읏..."

하루나가 힘을 주어 일어나자 야미의 상체가 크게 흔들렸다.
갑작스럽게 일어나 균형이 흐트러진것 처럼 보여서 걱정이었다.
도와줘야 하는거 아닌지 몰라...

"사, 사이렌지 하루나. 조금 천천히..."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야미가 초초한 표정을 지었다.
썩은 동아줄을 잡은 호랑이 같은 느낌일까...
하루나는 사시나무 떨듯 다리를 부들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끄응...무, 무거워요~"

"......실례군요."

야미는 볼이 빨개져선 침묵해버렸다.
허허, 체중 얘기랑은 상관도 없어보이는 야미도 저런 소릴 듣게 되는군.
애도...
...그런데, 이거 좀 위태위태한거 아냐?
힘겨워 보이는 하루나의 모습에 말리는게 나을까 생각해서 말참견을 했다.

"저기, 사이렌지. 이제 그만 내려주는게..."

"으윽...꺄아?!"

"읏?!"

와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야미와 하루나가 바닥에 뒤엉켜 쓰러졌다.
하루나에게 허벅지를 붙잡혀 있어서 그랬는지 야미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넘어진듯 했다.
말을 거는도중 벌어진 일이라 나도 미처 도와주지 못하고 당황해서 둘에게 가까워졌다.

"괘, 괜찮아 둘다?"

"아야야...아파요..."

"그러니까 그만두자고 했잖습니까..."

신음소리를 내면서 넘어져 있는 둘은 아직껏 자세를 바로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위험한 곳에 부딪히거나 크게 다친것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자세가 좀 범죄적이네요.
앞으로 넘어지면서 치마랑 상의가 밀려올라갔는지 적나라하게 위아래가 드러나 보이는 하루나.
전투복(배틀 드레스) 치마부분이 들춰진채로 넘어져있는 야미.
속옷이 훤히 보입니다만...?

오다가 멈춰버린 내쪽으로 시선을 돌린 야미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키츠 료스케..."

"응?"

"야한시선은...용서 못합니다."

야미의 머리카락들이 일어서며 수많은 주먹으로 바뀌는걸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그, 불가항력이었습니다만...?"

퍼억-!

"꽥?!"

쿠당-!
와르르르-!

「무, 무슨일이에요?」

야미의 펀치에 날아간 내가 책장에 부딪치면서 책무더기가 쏟아지자, 소란을 들은 사서가 다가왔다.
바닥에 흩어져있는 책을 보며 놀라던 사서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대체 무슨..."

"...변명은 죄악입니다."

"하-호-해-허-(잘못했어~~~~)"

"차, 참으세요 야미씨!"

머리카락을 손모양으로 변형시켜서 내 볼을 꼬집고 있는 야미.
볼이 잡혀서 한심한 목소리로 사과하는 나와, 야미를 뒤에서 말리는 하루나.

멍하니 우리를 보던 사서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툭하고 중얼거렸다.

"...치정싸움?"

"아-야-(아니야!)"
"아닙니다."



도서실에선 조용히 하는게 예의라더니 결국 가장 소란스러웠던건 야미였습니다.
무너진 서가의 모습에 울상짓는 사서를 달래느라 고생했다.
넘어진 책장을 세우고 흩어진 책들을 제자리에 꽂아놓느라 오후 첫수업은 하루나랑 함께 지각이었다.

「역시 사내아이는 믿음직스럽네요.」라며 사서 아이가 겨우 웃어준건 다행이었지만...

마지막 수업 즈음엔 젖었던 교복도 전부 말랐기에
탈의실에서 체육복에서 교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방과후 저녁거리를 생각하면서 상점가를 돌던중 하루나를 발견했다.
하교시간으로 부터 꽤나 지났는데 아직 집에 가지 않았던가?
상점가 건물들을 돌며 윈도우 쇼핑을 하고 있었는지, 하루나는 유리 너머로 보이는 TV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재밌는 볼거리라도 있는걸까?

TV에서 방영하는 프로는...매,「매지컬 쿄코」?
라라 말고도 저걸 보는 여학생이 있었구나...

「매지컬 쿄코」
주인공을 맏은 쿄코는 실제로 발화능력을 쓰는 우주인과 지구인의 혼혈로,
다수의 정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현역 여고생 아이돌이다.
작품은 귀여운 등장인물, 조금 파렴치한 복장과 해프닝들 때문에 남학생들에게도 꽤나 인기라고 한다.

딱히 신경쓸건 없어 보여서 다시 장을 보려는데 하루나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남자들이 보였다.
헌팅남인가?

귀찮은 일이 되기 전에 중간에 끊고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할즈음 하루나가 헌팅남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날라리 끼가 보이는 헌팅남들에게 둘러싸인채 웃으며 외진곳으로 따라가는 하루나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저기서 승낙해?
보통은 거절하는게 맞잖아?

즐거운듯 웃고있는 하루나의 모습을 보니 내가 뭔가 착각한게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수년간의 경험으로 단언하건데 저놈들은 100% 헌팅남이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서 조용히 뒤를 쫓으며 하루나와 헌팅남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재밌는 곳이라니 어딘가요?」

「조금만 더 기다려봐. 근사한 곳으로 데려다 줄테니.」
「실망시키진 않을꺼라구~」

「에...기대되네요.」

...댁은 무슨 초등학생입니까!
기대되네요가 아니겠지?!
아무리 들어봐도 헌팅남들의 대사잖아?!
녀석들의 정체도 파악했겠다 얼른 하루나를 불러세웠다.

"어이-! 사이렌지!"

"...료스케씨?"

날 보고 놀란듯 멈춰서며 바라보는 하루나에게 급히 다가갔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에? 그치만 이분들이 재밌는 곳에 데려다 준다고..."

의아한듯 대답하는 하루나에게 어이가 없었다.
댁 지금 헌팅되고 있는걸 모르는거요?

헌팅남들을 보니 당황해서 우리 둘을 쳐다보는게 적당히 말로 쫓아내면 될 듯 했다.

"허탕치게해서 미안하지만 여기 아가씨는 데려가야겠어."

「크...」
「맘에 든 여자들은 꼭 저녀석이 후려친 애들뿐이라니...」
「머피의 법칙?」
「정말로 다른 동네로 가든가 해야지 원.」
「초등학생까지 수비범위라던데...변태자식.」

"......"

...말로 하지 말고 주먹으로 해결할까?
이를 바득바득 갈자 움찔한 녀석들이 부리나케 달아났다.
왠만해서는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니까 꼭 이렇게 신경을 긁고 튀는구나.
잘못하다간 be폭력주의로 전향할지도 몰라 두렵다.

아무튼 적당히 헌팅남들로부터 주의를 돌려서
어리둥절하며 도망치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하루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살짝 하루나의 이마를 튕겼다.

딱-!

"아얏-?!"

이마를 매만지며 울상을 지은채 나를 바라보는 하루나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시키지 말라고, 이 말괄량이 아가씨야..."

오늘의 하루나는 활기차달까, 호기심이 넘친달까, 어리버리하달까...
옆에서 보는 입장으로서 안심이 되질 않았다.
평소에 비해 확실히 귀엽긴 한데...

문득 든 엉뚱한 생각을 털어버리곤 하루나에게 충고했다.

"사이렌지? 사이렌지처럼 조신한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저런 말로 유혹하는 남자들은 함부로 따라가면 안된다고.
애초에...「꼬르륵~~~」...?"

난데없는 울림에 말을 멈추자 하루나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살짝 배를 가리면서 얼굴을 숙이는 모습에 설교를 멈추곤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사이렌지...
혹시 배고파?"

"그게...하루종일 빈속이었거든요."

아하하- 하며 멋적게 웃는 하루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점심은 어쩌고?"

"책을 읽느라..."

- 꼬르륵~

설마 점심도 안먹고 도서실에서 계속 시간을 보냈던건가?
분위기 파악도 못한채 계속 울리는 배곯는 소리에 하루나는 붉어진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안된다.
이대로 계속 방치했다간 하루나가 죽는다.
수치심적인 의미로.
어디서 요기할 만한 곳이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방금전 TV가 놓여있던 상점 맞은편 건물에 CAFE라 적힌 광고판이 보였다.

"...파르페 먹으러 가지 않을래?"

"네?"



하루나를 데리고 광고판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가까이 와서 보니 「妹 CAFE(여동생 카페)」라고 적혀 있는데...음식도 파는거 맞겠지?

"저...여기는?"

"배고프니까 우선 간단히 요기라도 하자고."

"아, 네."

수긍하는 하루나를 보며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양갈래 머리에 안경을 쓴 웨이트리스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오세요♡"

"...사와다?"

어째서 미오가 이곳에?
의외의 만남에 놀라자 미오가 우리를 알아보곤 신기한듯 바라보았다.

"어머? 하루나랑 아키츠군?
별일이네!"

"사와다, 그 차림은..."

"아, 이거?
여기 제복이 내 취향이라서 말야~"

미오는 웃으며 제자리에서 가볍게 한바퀴 돌았다.

"어때? 예쁘지?"

날개가 조각된 리본 목걸이와 프릴이 수놓아진 헤드드레스(머리에 쓰는 장식), 웨이트리스복 의상이
마음에 드는지 미오는 평소보다 활기 넘쳐 보였다.

"응, 정말 잘 어울려.
평소보다 밝게 웃으니까 훨씬 예뻐 보이네."

"어..."

미오는 잠시 멈칫하더니 애매하게 웃으면서 볼을 매만졌다.

"그...옷차림을 물어본거였는데."

"어? ...아아, 미안. 옷도 정말 귀여워."

"아하하, 고마워 아키츠군~"

약간 쑥스러워 하던 미오는 몸을 기울여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활짝 미소지었다.

"그럼, 편히 쉬다 가세요!
오빠♡"

"오...오빠?"

여동생카페란게 이런의미였냐!
하루나는 방금전 상황이 이해가 안가는지 갸우뚱 하는 모습이었다.
잘못 들어온것 같단 생각이 물씬 들었지만, 미오가 반겨주기까지 했는데 이대로 돌아가긴 염치가 없어 보였다.
우선 창가쪽 좌석에 하루나와 마주보고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간단히 파르페로 요기를 하고 하루나를 집까지 보내주던가 해야겠다.
오늘의 하루나는 왠지 안심이 되질 않아.
우물가에 아이를 혼자 놔두는것 같다고.

"사이렌지. 먹고싶은게 있다면 거기서 골라봐.
오늘은 내가 사도록 할께."

"아, 고마워요.
그럼 여기 딸기가 얹어진 걸로..."

딸기 파르페를 가리키며 이야기 하는 하루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종업원을 부르자
미오가 주문을 받으러 다가왔다.

"무얼 주문할꺼에요 오빠?"

"...그거 호칭은 항상 붙이는거야?"

"원한다면 바꿔줄수도 있어~
오빠? 오빠야? 오라버니? 오라버님? 형? 형님?"

"...그냥 오빠로 해줘."

"알았어 오빠~
그래서, 주문은 뭘로?"

"딸기 파르페랑 초코 파르페 하나씩 부탁할께."

"주문 감사합니다 오빠~"

웃으며 멀어지는 미오를 보내곤 한숨을 쉬었다.
이런 분위기는 왠지 지치네...
하루나는 낯선 분위기에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여긴 예쁘게 꾸며져 있네요.
저기 벽에 적힌 그림이랑 글들은 뭔가요?"

벽에 붙은 하트모양에 적힌 글귀와 옆의 커플들의 사진말인가?

"아, 저거?
하트 무늬에 적혀있는 글은 여기에 방문한 사람들이 남긴거고,
사진들은 아마도 여기의 종업원들이나, 함께온 사람들과 같이 찍은걸 붙여놓은 거겠지."

"재미있을것 같네요."

"나중에 나갈때 사이렌지도 뭐라도 적어보는게 어때?"

"그럴까요?"

"주문하신 파르페 나왔습니다~"

미오가 파르페를 올린 접시를 들고 돌아왔다.

"하루나는 딸기 파르페, 아키츠군은 초코 파르페였지?
맛있게 드세요~ 아. 이건 서비스~"

미오는 또다른 접시를 테이블 가운데 내려놓았다.
고양이 그림과 하트표시가 그려진 접시위에 둘로 나뉜 샌드위치가 놓여있었다.

"와아~"
"고마워 사와다."

"뭘~ 데이트 잘해 하루나~"

"아니, 우린 그냥 요기나 하러 온건데..."

"괜찮아 괜찮아~ 코테가와씨한텐 비밀로 해줄테니까. 료스케 오빠~"

"쿨럭..."

료, 료스케 오빠...?
미오도 접객하는데 심취했는지 거리낌없이 내 이름을 부르곤 돌아섰다.
하루나는 딱히 반응하지 않고 파르페와 샌드위치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지금은 허기를 달래는게 우선일듯 했다.

"그럼 이만 먹도록 하자."

"네~ 잘먹을께요."

스푼으로 파르페를 조금 덜어 입에 넣자 사르르 녹으며 달콤함이 느껴졌다.
하루나도 파르페를 한입 먹으며 즐거운듯 입을 열었다.

"와아~ 맛있네요.
이런 시원함이라니. 게다가 정말 달콤해..."

"왠지 처음 먹는것처럼 이야기 하는구나?"

"에? 아...별로 이런곳은 와보질 않았거든요."

"그래?"

하루나의 말을 들으면서 샌드위치로 손을 가져갔다.
샌드위치를 집어 입가로 옮길때 하루나의 시선이 느껴져 손을 내렸다.

"사이렌지?"

"네?"

"배고프다면 다른 걸 더 시켜도 괜찮아."

내말을 듣더니 하루나는 화악- 얼굴이 붉어지더니 손사레를 쳤다.

"아, 아니에요!
전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라고요!"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러니까, 아니라니까요?"

투덜거리면서 하루나는 조심스레 샌드위치를 양손으로 잡았다.
갉아먹듯 조금씩 먹는게 방금전 내 말을 신경쓰는것 같아 약간 미안했다.
너무 무신경했네...

볼을 긁적이다가 다시 파르페를 먹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왠지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하는것 같다고.

아침에 물벼락은 맞아요.
옷갈아 입으려다가 알몸으로 코테가와랑 만나요.
도서실에선 야미랑 하루나를 돕다가 파렴치범으로 추궁당해요.
방과후엔 헌팅당한줄도 모르고 따라가는 하루나를 빼내와요.
요기하러 들어왔더니 미오를 만나고 데이트 오해까지 받았다.

...하루나랑 이렇게 얽힐 생각은 없었는데.

하루나는 주로 트러블에 말려들어가는 쪽이고,
자신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었기에 방심하고 있었달까.

그러고보면...코테가와도 아침에 하루나와 말썽이 있었다고 했지?

파르페를 먹으며 뺨에 손을 얹고 행복해하는 하루나는 평소보다 어려보이는 느낌이었다.
귀엽네...
피식하고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사이렌지. 기르는 고양이는 잘 있어?"

...

한동안 대화를 나누고, 파르페도 다 먹었기에 이만 카페를 나서기로 했다.
나가기전에 미오에게 매직펜을 받아서 하루나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걸로 벽에 남길 글을 적어봐.
기왕이면 그림도 첨부하면 좋고 말이지."

"으응...어떤걸 적을까요?"

고민하던 하루나는 벽에 붙은 메모판에 매직을 달렸다.

「음식 맛있었어요.
장식들도 예뻤고요.
언젠가 다시 올 수 있기를.」


간략하게 글을 남긴 하루나는 글 옆에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둥근 코에 가는 눈매, 갸름한 입술의 얼굴 뒤로 물결같은 구름이 그려졌다.
...풍속화냐?

메모를 남긴 하루나는 나에게 펜을 건내주었다.

"나도 남기라고?"

"네. 저 혼자만 남기면 좀 그렇잖아요?"

"음...뭐라고 적어야 하나?"

「여동생이 준 파르페 맛있었습니다.
데칼챠~」


나도 이름 대신 디폴메로 그린 내 얼굴을 남기곤 펜을 닫았다.

"그럼, 이만 가볼께 사와다.
서비스 고마웠어~"

"잘가 하루나~ 아키츠군~"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는 미오를 뒤로하고 카페를 나와
하루나를 집까지 보내주기로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러브러브공원」을 지날 즈음에는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늦으면 곤란하겠다고 생각할즈음 옆에 선 하루나가 말을 건네왔다.

"벌써 어두워졌네요..."

"응. 여름인데도 오늘은 해가 빨리 저문것 같아."

"여러가지 일로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소란스러운 날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구교사 이후로 처음이지 오시즈?"

우뚝-

하루나의 걸음 소리가 그쳤다.
몸을 돌려 하루나를 마주보자 놀란 얼굴을 한 하루나...아니, 오시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있었나요?"

"응."

"어떻게..."

"방금전 카페에서 고양이를 키우느냐고 물었지?
사이렌지는 애견인이거든."

하루나가 집에서 키우는건 얼룩무늬 강아지고...

오늘 하루나의 상태가 조금 다르다는건 알았지만
열병처럼 갑자기 텐션이 오른 날이었다던가, 미카도 선생님께 이상한 약이라도 먹은건 아닌가 생각했었다.
아침에 코테가와가 언급한 「하루나와의 말썽」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오시즈가 하루나에게 빙의한 상태라는걸 눈치채지 못할뻔 했다.
평소의 하루나에 비해 활동적인 느낌은 있었지만 기억속에서처럼 덜렁거리는 행동도 적었고...

카페에서 날 바라봤던건 샌드위치 먹는 법을 따라 하려고 그랬던걸까?
떠올려보면 파르페도, 샌드위치도 내가 먹은 다음에야 먹기 시작했으니 아마도 맞겠지.

내 설명을 들은 오시즈는 「방심했네요...」라고 말하며 살짝 혀를 내밀었다.

"전 혹시나 료스케씨가 하루나씨의 눈동자를 보고 알았다거나,
영혼을 알아보았다거나 한게 아닌가 생각했다고요."

...뭐냐 그 주인공 보정스러운 특기는.

"그런게 가능하진 않은데..."

"그럼 구교사에서 제 머릴 쓰다듬을수 있었던건 무언가 특이한 힘이 있었던게 아닌가요?"

아, 그거 때문인가?
그때 오시즈의 의문에 답해준다고 약속했었지.

"옛날 이야기를 보면 담력이 센 사람들이 귀신을 잡는 내용이 많잖아.
그거랑 비슷한 방식으로 만진거야."

기백이 넘치는 사람은 기합만으로도 유령을 날려버릴수 있으니까.
지금와선 나도 꽤나 이골이 나서, 예전처럼 자학하지 않아도 몸에 씌인 귀신은 쫓아낼 수 있고.
...말하고 보니 정말 별거 없네.
뭐, 구교사에서 만났을때 바로 대답해줘도 됐었지만, 그땐 오시즈가 구교사에서 벗어날 계기를 주고 싶었던거니까.

"그런데 생각했던것보다 조용히 지냈나보구나?
고의가 아니었겠지만 몸을 얻었으니 좀더 활발하게 돌아다닐꺼라 생각했는데."

지금쯤이면 벌써 빙의가 풀려있을 시점인데 아직까지도 이렇게 있다는건
리토나 라라가 오시즈를 찾으러 학교밖을 수색하던 일은 없었던걸까?
미오도 딱히 하루나를 보고 이상한 반응을 보이거나 하지 않은걸 보면 정체를 알리지도 않은것 같고...

오시즈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더니 가방을 열어 책을 꺼냈다.
책표지에는「인어공주」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건..."

"도서실에서 빌려온 책이에요."

"어째서 갑자기 그걸?"

"...행복하게 끝맺은 동화들을 찾던 중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봤어요.
사랑하는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대가로 다리를 얻었지만,
왕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쓸쓸한 듯한 얼굴로 동화책을 쓰다듬으며 오시즈는 말을 이었다.

"결국엔 사랑하는 왕자님을 찌르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를 보았을 때,
부정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슬프게 끝나선 안된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바친 인어공주가 물거품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자신을 구해준 인어공주를 왕자님이 알아보지 못해선 안되는 거라고..."

"오시즈..."

"이야기일 뿐이란건 알아요.
하지만, 납득할 순 없었어요.
그때, 료스케씨와 왕자님에 대해 이야기 했던게 떠올랐어요.
하루나씨의 주변엔 그런 사람이 있다고..."

"에..."

설마 거기에 기대를 걸었던 건가.

"혹시나 하루나씨의 모습을 한 저를 알아차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쓸쓸하게 끝나버린 동화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것 같았어요."

"알아차린건 사랑의 힘 같은게 아니라 명탐정도 울고갈 추리 능력이었지만요."

딱잘라 말하는 내게 오시즈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금전까지의 우울함이 거짓말처럼 한참을 웃던 오시즈는 눈물을 닦고 대답했다.

"아하하~ 그런가요?
그러고보면 저도 지나치게 책에 몰입해버렸던것 같네요.
애초에 전 이야기에 나오는 공주님도 아닌데 말이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젓던 오시즈는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어쨌든, 더 이상은 하루나씨에게 민폐겠죠.
이제 그만 하루나씨의 몸에서 나올까 하는데...어떻게 나오죠?"

난처한듯한 표정을 짓는 오시즈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했다.

"몸에서 나올 의지가 있다면 내가 도와줄께."

"어, 정말요?"

"이런덴 나름 경험이 있으니까."

오시즈의 손을 잡으려다가 손에 들린 「인어공주」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정도는 오시즈의 장단에 맞춰줘도 좋으려나?
약간 거리를 벌리는 나를 이상한듯 바라보는 오시즈를 향해
한손은 등에, 다른 한손은 가슴께에 댄채로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럼, 하룻밤의 나들이는 즐거우셨습니까 공주님?"

"풋..."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예를 갖추는 내 모습을 보고 오시즈는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네. 정말로 즐거웠어요.
신기한 것들도 많이 보았고 야미씨들과 이야기 하는것도 즐거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에 한손을 얹은 오시즈는 살짝 눈을 감으며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스치는 바람의 시원함도, 내리쬐던 햇살의 따스함도, 이곳에서 느껴지는 온기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하지만 정말 소중한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다행이구나."

저런 얼굴을 보면 평소의 고민도 사소한 문제처럼 느껴질것 같네...
나도 좀더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하는게 좋을까 생각했다.

"아, 료스케씨가 사준 파르페도 맛있었어요~"

방금전의 진지함이 거짓말처럼 싱글벙글 웃음지으며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는 오시즈.
표정이 참 다양하게 변하는구나 오시즈는.

"그럼 이제 슬슬 하루나에게서 빼내줄께."

"아, 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프거나 힘든게 아니니까."

긴장을 풀어주면서 오시즈의 한손을 맞잡았다.

"잡은 손에 의식을 집중해줘.
상대방의 동의를 얻고 꺼내는건 처음이니까 협조가 필요하거든."

"네."

오시즈의 손을 잡은 손바닥에 의식을 집중했다.
오시즈가 손가락 하나라도 하루나의 몸에서 빠져나온다면 훨씬 수월하겠지만
그게 힘들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천천히 오시즈를 잡은 손에 힘을 넣으려 할때, 가만히 있던 오시즈의 입이 열렸다.

"료스케씨의 손은...따스하네요."

"그래?"

"네. 구교사에서 머리를 쓰다듬었을때도 생각했지만 역시 따듯한것 같아요."

유령일때도 체온을 느낄수 있나?
갸우뚱 하면서도 그럭저럭 납득했다.
만질수 있었다면 온기도 느낄수 있겠지...

"...그러고보면 료스케씨가 말했던 왕자님 말인데요."

"응? 아, 그거 말이군."

결국 찾지는 못한것 같지만.
하루나의 심층의식 속에라도 들어갔다면 모르겠는데.

"그땐 참 우유부단한 사람도 있구나 싶었어요."

"아,하,하..."

오시즈가 상상한 왕자님의 모습이랑은 달랐나보네.

"하지만, 지금은 왠지 알것 같아요..."

마주잡은 오시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느낌이 왔다...!
맞잡은 손에 의식을 집중한채 손을 끌어당겼다.

- 고마워요 상냥한 왕자님.

"어?"

"아...아키츠군!? 여긴?"

귓가를 스쳐가듯 들린 소리에 망연하다가 정면에서 들린 소리에 깨어났다.
나와 한손을 마주잡은 상태인 하루나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대로 성공한건가?
하루나의 손을 놓고 주위를 바라보자 허공에 떠있는 오시즈의 모습이 보였다.

"휴우...성공했나보네."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료스케씨.}

"별말을.
그것보다 사이렌지에게 사과하는게 좋을것 같아."

{아, 그렇네요.}

"...?!"



기절할것 같은 표정의 하루나를 달래서 오시즈에게 자초지정을 설명받았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어떻게든 괜찮다고 말하는 하루나를 보기 안쓰러워서 간략히 소개를 끝내고
이후 오시즈는 구교사로 돌아갔다.
가기전, 몸에 관해선 미카도 선생님께 상담해보라고 조언해주었기에, 학생 신분으로 다시 만날 날이 기대되었다.

밤도 늦었기에 하루나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러브러브공원을 통과하던중 들고양이가 내는 소리에도 반쯤 패닉상태에 빠지는 하루나를 진정시키는게 고생이었다.
유령을 무서워 하는 모습은 가련한데, 패닉 상태의 힘은 가련함이란 단어를 무색하게 하는군요 하루나양...
하마터면 리토 대신 인간 철퇴가 될뻔한 위기를 피하면서 간신히 하루나가 사는 맨션에 도착했다.
미안한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하는 하루나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얘기해주곤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나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문제는 거의다 해결된거겠지.
남은건 오시즈의 혼이 들어갈 몸을 미카도 선생님이 준비해주시는것 뿐이구나...
피부에 느껴지는 온기를 소중히 여기던 오시즈의 모습도 있었고,
내일부턴 좀더 일상을 소중히 여겨야 겠다고 다짐했다.





"안녕 료스케 오빠~"
"안녕 아키츠 오빠~"
"좋은 아침이에요 아키츠 오라버니~"

"뭐...뭐야?"

"저기저기~ 아키츠군은 여동생을 저엉~말~! 좋아한다는게 진짜야?"

"뭔 소리야?!"



「아키츠 료스케는 여동생 모에다」



「여동생 카페」에서 식사를 하던걸 들켰는지,
아니면 내가 남긴 메모를 알아본건지,
어느샌가 학교에선 내가 여동생 속성에 심취해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이전의 행각들에 상승효과를 받아 소문은 더욱 가속하고 있었다.

여동생 모에. 로리콤 스핑크스.

"우린 지금까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근래에 아키츠 료스케가 조용했던건 얌전해 졌기 때문이 아냐!
고교에 와서 여학생에게 손대지 않았던건 단지 여동생 캐릭이 좋아서였던 것이다!"

"""뭐, 뭐라고오오오---?!"""

"그 주장에 이의있다아아아---!"



하루만에 다짐이 깨져버린 어느 여름날의 풍경이었다.





p.s. 깨끗이 씻은 손수건을 돌려주자 사야카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아키츠 오빠."

...브루투스...너도냐?




========================================
늦어서 죄송합니다아아아아아!;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다지만 16화 업로드가 엄청 늦었네요=_=;;

한 15화로부터 2주쯤 지난 뒤부터 구상만 줄창하던중 꼬여서 이렇게까지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오시즈 시점, 료스케 시점, 제3자의 시점 중 어느걸 할까 설레발을 치면서
각각의 분량으로 삽질을 하기도 하고.
소재를 넣었는데 원작이랑 똑같은 전개에 역할만 슬쩍 뺏아버리는것 처럼 보여서 삭제하고
새 스토리를 넣어보기도 하고.
맘에 안들어서 썼던 소재를 몽땅 잘라내기도 하고...
50kb를 쓰고 있을것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30kb로 되돌아와 있더라는 식의 경우도 당해보고...
뭐, 여러가지 있었습니다-_-;;

덕분에 노트에 끄적여 놓은건 많은데 루트 분기가 되면서 전부 폐기(...)

어찌되었건... 연재가 늦은점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m(_ _)m;

- 이번편에 사용된 원작 이미지 -

1. 코테가와의 브래지어 사건

2. 야미가 책을 쏟은 사건

3. 사와다 미오의 웨이트리스복

4. 오시즈가 그린 풍속화


p.s.1.
16화의 오시즈는 원작시의 행동에 비해서 좀더 얌전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사실 첫등장시 오시즈는 조신한 이미지로 보였는데...

약간 밝지만 차분함과 동시에 조금은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있던 아이가...(첫 등장시 이미지)

재등장후엔 이렇게 변해버렸습니다.(후반부의 이미지)

사랑도, 연애관련 해프닝도 없는 덤벙이 캐릭터로 전락한 오시즈를 보았을때 안구에 습기가 차더군요...-_-;;
(귀엽게 변하긴 했지만 보면서 두근거리진 않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편은 최초 구교사에서 등장할 당시 분위기의 오시즈로 묘사해 보았습니다.

사실 천방지축 이미지로 나오면 글 초반부터 오시즈라고 들켜서 재미없으니까...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ㅅ=a;


p.s.2.
원작에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은 추가시키지 않는다는 주의지만 글쓰다보면 좀 아쉬운 점들이 생기더군요.
어째서 트러블 원작엔 하급생이 하나도 없어?!
도서관 사서도, 격투 아가씨도, 사건에 휘말리던 야쿠자 가계의 아가씨도!

하지만 이 작품은 원작을 준수하지...
매력적으로 꾸며볼까 생각해봐도 원작에 없으니까 그런건 못나와...OTL
(조연 아가씨 둘에게 이름을 붙여준것도 많이 조심했던 부분이라...-_-;)

그냥 포기하고 주요 등장인물들 묘사를 더 강화해 주자고 결론지었습니다.-_-;


p.s.3.
미캉은 다음편.

그리고 다음엔 되도록이면 한편에 소재를 두세개 정도만 넣어서 짧게 써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초반부는 편당 분량이 보통 30kb 이하였기도 하고...

괜히 여러 이야기가 뒤섞이다보니 중심적인 내용이 죽어버리는것 같습니다.
(일부러 분량을 늘리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쓰다보니 계속계속 살이 붙네요.)


p.s.4. 원작 줄거리 (64화, 65화)

개에게 쫓기던 오시즈가 등교중이던 하루나에 빙의한다.
리사와 미오랑 성희롱적인 장난을 하고
코테가와의 브래지어를 벗기는 등 평소와 동떨어진 하루나(오시즈)의 태도에 친구들은 어리둥절한다.
리토에게 가짜 고백을 하고 오시즈는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하지만 빙의 해제를 할줄 몰라 당황해서 학교를 벗어난 오시즈를 찾아 친구들은 흩어진다.
이후 하루나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 리토와 키스하려던 오시즈이지만,
도중에 개들이 짖는 소리에 놀라며 빙의가 풀리고 원상태로 돌아온다.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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