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준비와 여행 준비가 겹쳐서 퇴고 작업이 거의 되지 않았습니다(_ _);

일단 여행 기간에 퇴고 완료하고 귀국후 업로드 예정입니다.

더 늦진 않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저녁 되시길!m(_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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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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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靑出於藍) 10



- 빨간모자 -



"숲에서 빠져나가는 건 아주 간단하지(Exiting the forest is super simple)
그냥 길만 따라가면 돼~♪(All you do is follow these path turns)
대충 한 평생 동안만...(For the rest of your gaming life)"

숲의 오솔길을 따라 흥얼거리며 걷는 동안 목적지에 도착했다.
빨간모자의 할머니가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집.
뭐,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에서 숲에 있는 외딴집 하면 빨간모자의 할머니의 집 뿐이지.

입고 있는 늑대 옷을 확인하고 늑대머리 후드를 고쳐쓰곤 집으로 다가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톡톡

"할머니~♪ 빨간모자예요~♪"

달콤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엄마 심부름으로 맛있는 음식이랑 포도주를 가져왔어요~♪"

......

"...저기? 할머니? Grandma? 여보세요~?"

묵묵무답인 상황에 조금 당황해서 목소리를 바꾸는것도 잊고 다시금 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인기척이 났다.
문너머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두어번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양팔을 들곤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어흥~! 잡아먹을테다~!"

"......"

마주한 상대의 눈이 깜빡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상대가 입술을 달싹였다.

"...호랑이?"

"아니, 늑대라구. 보면 알잖아?"

"「어흥」하고 우는 늑대가 어딨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한숨을 쉰 여성이 붉은 눈으로 응시해왔다.

"하여튼, 늑대옷 차림으로 뭐하는거야 로우란?"

"...그러는 새초미 너야말로 어째서 여기 있어?"

흔들리는 토끼귀의 소녀, 새초미의 등장에 의문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얼떨떨히 서있다가 새초미에게 손을 잡혀 집안으로 이끌렸다.
얌전히 바닥에 앉자, 나를 마주한채 침대에 앉은 새초미가 물었다.

"그래서, 로우란 네가 『늑대』 역할인거야?"

"맞아. 악역이니까."

"그럼 어째서 늑대의 몸에 빙의하는 대신에 그런 늑대 인형옷 따윌 입은거야?"

"늑대모양 파자마도 늑대는 늑대니까."

"대충대충이네..."

"이런건 대충 구색만 맞추면 돼.
등장인물과 비슷한 점이 있으면 해당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건 너희도 이야기 나라에서 경험해 봤을거잖아?"

내 말에 이해가 간듯 새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모모타로 이야기 나라에선 닭의 정령인 키키가 꿩의 역할을 맡았으니까."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 나라에서 미미도 지금의 새초미와 같은 말을 했었지.
아무튼 새초미의 의문은 해결되었으니 이번엔 내가 질문할 차례로군.

"그러는 새초미 넌 어째서 빨간모자네 할머니 집에 있는거야?"

"내가 빨간모자의 할머니 역할이니까."

"세상에 너같은 할머니가 어딨어?"

"머리카락이 회색이라서 그런거 아닐까?"

"회색이라기 보다는 예쁜 은색이라고 생각하는데."

"으응, 고마워."

"그나저나 머리카락 색깔로 할머니 역할이라니, 예상밖에도 정도가 있어..."

"늑대 파자마 입고서 늑대역을 맡은 로우란이 할 말이 아닌것 같은데?"

피식 웃으며 지적하는 새초미에게 그저 멋적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요술 식탁보』(북풍이 준 선물)를 꺼내 식사를 차렸다.
할머니 집에 있는 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새초미는 반색하며 식탁에 마주 앉았다.
엄연히 적군 측인 나랑 마주 앉아 화기애애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지금껏 쌓아온 신용이 다소는 있다는거겠지.
여자나 아이 상대로는 적대행위를 삼가한다는걸 여러차례 강조한 덕분일지, 괴짜 NINJA라는 컨셉이 먹힌 덕분일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빨간모자는 언제 오는걸까?"

"아마 내일이 아닐까?
밤이 늦은 지금 숲에 들어올 생각은 안하겠지."

어둑해진 바깥을 한차례 살피곤 답하자 새초미는 잠시 머뭇거렸다.

"왜그래?"

"...저기, 로우란?"

"응."

"어째서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에 온거야?
동일한 이야기 나라에 반복해서 침략해 본다는 시도는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로 충분했잖아?
그런데도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를 두번이나 찾아온건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어?"

새초미의 물음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대답할 말을 골라보았다.

"『빨간모자』는 결말이 바뀌어도 무사했던 이야기니까."

"뭐!?"

경악과 함께 새초미가 식탁을 치며 일어났다.
진정하라며 양손을 들어보이는 나를 당혹과 의문섞인 눈으로 노려보던 새초미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결말이 바뀌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 염소』의 결말은 알고 있어?"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 염소가 잠자는 늑대의 배를 가르고 잡아먹힌 아기 염소들을 구하는거지?
늑대의 배에는 돌을 대신 채워놓고 말야."

"전개가 『빨간모자』와 비슷하지?"

"...그러네."

동의하면서도 새초미는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의 『빨간모자』는 빨간모자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결말 뒤에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의 결말을 덧붙여진 세계거든."

"뭐?"

"'늑대의 배를 가른다.', '잡아먹힌 이를 구해낸다.', '늑대의 배를 돌로 채운다.'
여기까지 노골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차용했다고 티를 내는데 눈치채지 못하는게 이상하지.
『늑대』라는 등장인물의 공통점이 두 이야기를 위화감 없이 잇는 매개가 된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말야.

뭐, 어쩌면 결말 자체는 바뀌지 않았을지도 몰라.
빨간모자가 지혜를 발휘해서 늑대에게서 달아났다는 결말이 원래 『빨간모자』의 결말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애초에 빨간모자가 무사히 도망쳤다면 모를까, 늑대에게 잡아먹힌 뒤라면 빨간모자가 살아나는 결말따윈 없었겠지.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가 『빨간모자』의 결말을 덮어쓰지 않았다면 말야."

내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새초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로우란은 이곳에서 뭘하고 싶은거야?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가 섞인 『빨간모자』이야기가 어느 정도까지의 변화를 허용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그 말대로라면, 로우란은 빨간모자 이야기를 최대한 엇나가게 진행하려고 하는거지?"

"...응, 뭐...그렇지."

내 대답에 결심한듯 새초미는 자신만만하게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럼 난 최대한 원래의 이야기대로 흐름이 이어지도록 할거야. 로우란을 방해하면서 말야."

그렇게 대놓고 선언하면 반응하기 곤란합니다만?

"뭐, 좋아. 지혜를 겨루는 대결이라면 나도 사양하지 않을테니까.
슬기로움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에게는 거기에 응해주는게 악역의 도리겠지.
힘이면 힘, 지혜면 지혜! 뭐든 좋다구.
나는 힘밖에 모르는 난폭하고 무식한 사령 몬스터와는 다르니까."

"...로우란은 의외로 분위기를 잘 타는구나?"

"악당의 미덕에 충실할 뿐이라고 해주지 않을래?"

머쓱해하는 날 보곤 새초미가 싱긋 웃었다.




밤이 늦었기에 이만 잠자리에 들었다.

"늑대옷은 갈아입지 않는거야?"

"이걸 벗으면 늑대가 아니게 되잖아.
나는 늑대로서 행동해야 한다구."

"잘 때까지 그러진 않아도 되잖아?"

"...실은 여벌옷이 없어.
예전에 네가 준 파자마는 입기엔 낡아버렸거든."

"벌써?"

"『알라딘과 요술램프』에서 입고 지냈거든."

"...아."

새초미는 뭔가 깨달은듯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 속에서 30년이나 세월이 흘렀으니 옷이 낡아버린게 당연하지.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는 새초미의 모습에 피식 웃곤 손을 저었다.

"자업자득이니까 신경쓰지마.
아무튼 그런 이유로 지금은 갈아입을 옷 따윈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새초미의 손에서 빛무리와 함께 토끼장식이 달린 나선무늬의 요술봉이 나타났다.
요술봉 끝에서 노란 별과 분홍색 빛줄기가 방을 가득 채우며 튀어올랐다.
빛이 사라지자 새초미의 손에는 옷 한벌이 들려있었다.

"이거 줄께."

"아...고마워."

새초미가 건넨 옷을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고양이 발자국 무늬가 찍힌 파자마네.


구석에서 갈아입고 돌아온 뒤에는 잠자리를 두고 새초미와 짧은 실랑이가 있었다.
내가 바닥에서 자겠다는 제안을 새초미는 단칼에 끊었다.

"침대는 충분히 넓어. 그리고 바닥은 지저분해.
애써 만들어준 파자마를 더럽힐 셈이야?"

손가락을 까딱까닥하며 이리 오라는 표시에 얌전히 침대 위로 올랐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침대에 함께 자는 편이 나로서는 기뻤으니까.

침대에 새초미와 마주보며 옆으로 눕자 새초미가 키득 웃었다.

"혹시 이상한 생각 하고 있어?"

"...설마."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자 새초미의 눈에 장난기가 돌았다.

"늑대씨, 늑대씨."

"왜?"

"늑대씨는 왜 그렇게 귀가 커?"

"엣, 그러니까...네 말을 더 잘 들으려고?"

"늑대씨는 왜 그렇게 눈이 커?"

"너를 더 잘 보려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고, 이불 밑으로 가만히 내 손을 맞잡는 새초미의 손길이 전해졌다.

"늑대씨는 손도 참 크네."

"...너를 더 잘 잡으려고."

"입도 굉장히 크잖아?"

"너를 더 잘 잡아먹으려고!"

"아하하하하~!"

벌떡 몸을 일으키며 위협하자 새초미가 웃음을 터뜨리며 발버둥쳤다.
가벼운 힘으로 어깨를 잡힌채 침대에 눌려 바둥거리던 새초미와 눈이 마주쳤다.

"안 잡아먹을거야?"

"어?"

얼빠진 얼굴로 답하는 내게 새초미가 한차례 웃었다.

"로우란은 늑대잖아?"

새초미가 장난스레 물었다.

"빨간모자가 오기 전에 할머니를 잡아먹어야 하잖아?"

"그건 원래 이야기잖아."

"잡아먹지 않는거야?"

"그래. 나는 이야기에 순응하지 않는 나쁜 늑대니까."

"이상한 말..."

새초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밤이었다.

...그런 탓인지 나도, 다음날 상황을 예상할 순 없었다.




"로우란! 너 거기서!"

"쫓아오지 않으면 멈출께!"

"무리야!"

"거기선 안쫓는다고 해라!?"

난데없이 대낮부터 집안에서 새초미와 술래잡기를 하는 처지가 될 줄은 몰랐으니까.
새초미의 돌격을 숨가쁘게 피하면서, 술래잡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시간은 정오.

"...빨간모자가 늦네."

"그러게."

늑대 파자마로 갈아입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너무 늦어!
벌써 정오가 되었는데도 안와!
어째서 이렇게 늦는거야?
설마 아직까지도 찡찡이랑 놀고 있는건 아니겠지?
강다리, 키키, 미미는 대체 뭘하고 있는거람.

"혹시 로우란 네가 빨간모자한테 뭔가 한거 아냐?"

"뭐든 내 탓으로 돌리는건 좀 봐주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늦잠 자고 있는걸지도 모르잖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구."

의심스러운듯 쳐다보는 새초미의 시선에 억울한 듯 항의했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슬슬 조바심을 드러내던 새초미가 뭔가 떠오른듯 손바닥을 두드렸다.

"로우란, 로우란."

"왜그래?"

"어쩌면말야,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빨간모자가 안 오는게 아닐까?"

"그게 무슨 말이야?"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먹히지 않았으니까 빨간모자가 안오는거야."

"아니, 그 논리는 이상하잖아."

내 딴죽을 무시하고 새초미가 말을 이었다.

"원래 『빨간모자』이야기 대로라면,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먹힌 뒤에 빨간모자가 찾아오잖아.
그러니까 아직까지 빨간모자가 오지 않는건, 아직까지도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먹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걸 인과관계로 묶는건 이상하지 않아?
애초에 둘은 별개의 사건이라구."

"하지만 여긴 이야기 나라니까, '이야기의 순서'가 인과로서 성립할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면 부정하기 어려운걸."

"그러니까 로우란! 나를 먹어!"

"싫습니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네.
술래잡기의 원인을 떠올리곤 눈앞에서 으르렁거리는 새초미를 살폈다.

"순순히 먹어줄 생각은 없어 로우란?"

"없어. 내가 왜 새초미 널 먹어야 하는데?"

"애초에 늑대 역할인 로우란이 날 잡어먹지 않으니까 아무 사건도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날 닥달하곤 새초미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게다가 어제 내가 말했지?
난 최대한 원래의 이야기대로 흐름이 이어지도록 할거라구!"

"...그래서 나에게 먹히겠다?"

"이것이 나의 각오야!"

"누가 거기까지 하라고 했어!?"

"시끄러! 먹어라!"

"으아아!? 잡아먹힌다!"

"네가 먹는쪽이잖아!"

"누군가! 도와줘~~~!!"

"야! 너 거기서! 여자애를 부끄럽게 만들 셈이야? 아앗!?"

콰당!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덤벼들던 새초미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새초미의 모습에 놀라서 뜀박질을 멈추고 되돌아왔다.

"괜찮아 새촘아?"

쓰러진 새초미를 부축해 일으키는데 새초미의 손이 움직였다.

꽉.

"잡았다..."

"엑?"

"가만있어."

무릎을 굽힌채 부축하던 날 새초미가 껴안았다.
뻣뻣하게 굳어선 옴짝달싹 못하게 된 내 귀로 새초미가 속삭였다.

"날 먹어."

"내키지 않아."

"부탁할께."

"그런걸 내게 부탁해도..."

"...조금 정도는 내 부탁을 들어줘도 좋잖아.
가끔은 변덕을 부려도 괜찮잖아?
로우란은...나쁜 늑대니까."

"......"

이 녀석은 치사해.
장난스레 부탁을 말하는 주제에 훌쩍이는거 말야.

새초미의 어깨를 잡아 몸을 밀어내곤 새빨간 새초미의 눈의 마주봤다.

"...좋아. 네가 바란다면 잡아먹어주겠어.
빨간모자를 먹기 전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화색을 띄는 새초미에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방식은 내 방식대로 하겠어."

"어?"

그대로 새초미를 안아들고 침대에 뉘였다.
침대에 누워 날 올려다보는 새초미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먼저 말해두지.
이제와서 무섭다고 말해도 그만두지 않을테니까."

"......"

새초미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조심스레 내 귀를 쓰다듬으며 새초미가 중얼거렸다.

"...할머니의 귀는 왜 그렇게 커...?"

그게 네 대답이구나.
새초미의 물음에 한차례 눈을 감았다 떴다.

"...상냥한 네 목소리를 더 잘 듣고 싶어서."

귀를 만지던 손이 눈가를 어루만졌다.

"할머니의 눈은, 왜 그리 커?"

"어여쁜 네 모습을 더 눈에 담고 싶어서."

천천히 새초미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참 크네."

"너의 온기를 더 잘 느끼고 싶으니까."

"입도 굉장히 커졌잖아?"

"가까이 있으니 그렇게 느껴지는 거란다."

"얼굴...가까워 할머니."

"...그야, 너를 잡아먹으려 하니까."

지이익

늑대 파자마 앞섶의 지퍼를 내리는 소리에 새초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똑똑똑!

"「「!?」」"

"할머니~! 있어~?"

문 밖에서 빨간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해가 왔군.
새초미는 숨죽인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잠시 생각하다가 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 주겠니?
곧 끝난단다."

"엣, 잠깐, 로우, 읍?"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하는 새초미의 입을 막았다.

"쉿, 여기까지와서 그만둔다는 선택은 없다구?"

"...할머니?"

밖에서 의아한듯 부르는 빨간모자의 소리에 화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할머니는 조금 볼 일 중이니까, 미안하지만 조금만 밖에서 기다려주렴."

"......"

빨간모자는 대답이 없었다.

삐걱

"어?"

드드득- 우직!
문 손잡이에서 나는 심상찮은 소리에 당황해서 불렀다.

"저, 저기 빨간모자야? 할미를 보고싶단 마음은 알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지 않으련?"

"할머니 목소리가 아니잖아!!!"

콰직! 벌컥!

힘차게 문이 열렸다.

"「「「......」」」"

부서진 문고리를 쥔채 푸른 눈동자를 부릅 뜬 빨간모자.
그리고 침대 위에서 새초미의 입을 틀어막은채 위에 올라탄 나(늑대).
빨간모자의 손에 들린 바구니가 떨어졌다.

"할머니한테서 떨어져!"

순식간에 덤벼든 빨간모자의 다리가 크게 휘둘러졌다.

빠악!

"큭!"

우당탕!

침대밖으로 구르는 날 뒤로하고 빨간모자는 새초미를 부축했다.

"할머니! 괜찮아!?"

"괘, 괜찮아 빨간모자."

새초미를 등뒤에 숨긴 채 날 노려보는 빨간모자를 보곤 입가를 훔치곤 일어섰다.

"흥, 빨간모자가 오기 전에 할머니를 잡아먹으려 했는데 귀찮게 됐군."

"너...! 뭐하는 짓이야 이 똥개야!"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빨간모자에게 코웃음치곤 정정했다.

"하! 누가 똥개라는거냐? 이 몸은 개가 아니라 늑대다!"

"...뭐?"

"너랑 네 할머니를 잡아먹기 위해서 지금까지 얌전히 있었던거라구."

"너, 너...! 날 속였구나!"

"속이고 자시고간에, 애초에 애완견으로 삼는다면서 다짜고짜 끌고온게 누군데그래!"

"으윽...!"

이를 갈며 분해하던 빨간모자는 등뒤에 선 새초미에게 사과했다.

"할머니 미안해. 내 탓에 할머니를 위험하게 만들어버렸어."

"아, 아냐! 빨간모자는 나쁘지 않아! 나쁜건 저 늑대라구!"

당황하며 빨간모자를 달래는 새초미.

"눈물겨운 가족애로군. 그래봤자 소용없지만."

"뭐?"

"그야 너희 둘 모두 사이좋게 내 뱃속에 들어갈 운명이니까.
마지막 배려로 내 뱃속에 들어갈 순서 정도는 정하게 해주지. 아하하하하!"

분한듯 노려보는 빨간모자를 보곤 피식 웃었다.

"뭐야? 그 눈은?
네가 먼저 잡아먹히고 싶으냐?"

"그, 그래! 할머니에겐 절대로 손대지 못하게 할테니까!"

"아, 안돼!"

빨간모자의 결심에 새초미가 당황해 앞으로 나섰다.

"할머니!? 위험해!"

"빨간모자보다 날 먼저 먹어! 안그러면 이야기의 순서가...!"

"...할머니..."

새초미의 외침에 뒤에 선 빨간모자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할머니에게 손대게 하진 않아! 부탁이야. 할머니 대신 나를 먹어!"

"아, 안돼!"

"어째서야? 나는 할머니를 지키고 싶은데...!"

"에... 그치만 그럼, 이야기 나라가... 아무튼 안돼!"

"영문을 모르겠어 할머니!"

아니, 그 장면에선 적어도 빨간모자가 소중하니까라고 말해라. 할머니잖아.
새초미의 대답에 빨간모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빨간모자와 새초미 사이에 누가 먼저 나(늑대)에게 잡아먹힐 것인지 말다툼은 계속되었다.
새초미는 원래 이야기대로 할머니인 자신이 먼저 늑대에게 잡아먹혀야 한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빨간모자는 자신이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하는지를 언급하며, 자신이 먼저 잡아먹히겠다는 주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부탁이야! 우리 할머니를 잡아먹는 대신에 나를 먹어!"
"안돼! 빨간모자 대신 날 먹어!"

빨간모자의 푸른 눈동자와 새초미의 붉은 눈동자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나야! 나를 먹어!"
"안돼! 나를 먹어!"

빨간모자가 새초미를 가리키며 외쳤다.

"할머니는 주름투성이니까 맛이 없을거야! 그러니 날 먹어!"
"뭐, 뭐라구?"

발끈한 새초미가 빨간모자를 삿대질하며 외쳤다.

"빨간모자 같은 어린애는 풋내가 날거야! 그러니 날 먹어!"
"뭐, 뭐야!?"

"내가 뭐 틀린말 했니?"
"이, 이...!"

부들부들 떨며 서로를 노려보는 빨간모자와 새초미의 모습에 질려 둘을 말리기 위해 손을 들었다.

"자자, 이제 그만 진정하라구.
어차피 조손 모두 사이좋게 나한테 먹힐 처지인데, 사이좋게 지내자구. 응?"

"그럼! 너는 어느 쪽이 좋은데!"
"맞아! 누가 더 좋은거야!"

"엣?"

둘 사이에 튀던 불똥이 내게 옮겨붙었다.

"애초에 네가 순서를 정하라니 뭐니 하니까 이렇게 된거 아냐!"
"그래! 무슨 강건너 불구경 하듯 나몰라라 하고 있어?"

눈을 부릅뜨고 따지는 둘의 박력에 밀려 뒷걸음질쳤다.

"자! 말해봐!"
"누가 먼저야?"

"지, 진정해! 순서 같은건 아무래도 좋잖아?"

"거짓말하지마!
난 금발에 푸른눈이고, 할머니는 은발에 붉은 눈이잖아!
애초에 타입이 정반대라구!"

"내쪽이지?
내 눈이 보석 같다고, 내 머리카락이 예쁘다고 말했잖아?"

"아니, 내쪽이지?
애초에 애완견이 된것도, 네가 내 금발 푸른눈에 헤롱헤롱해서 날 따라온거잖아?"

...죽을 맛이다.

선택을 강요하는 둘에게 끙끙대고 있던차에 툭하고 새초미가 중얼거렸다.

"...말했던 주제에."

"응?"

"무섭다고 말해도 그만두지 않겠다고 말했으면서."

"......"

빨간모자의 눈이 험악하게 빛났다.

"아, 그래! 그랬었지! 하하하! 그래. 역시 말을 번복할 순 없으니까!"

"이겼다!"
"으그극..."

새초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빨간모자는 분한듯 신음을 흘렸다.

어째서 이런걸로 분해하는지 나야말로 영문을 모르겠다.

아무튼 고민을 털어내고선 새초미의 손을 잡았다.

"자, 그럼 방금전의 계속을 해보자구."

"아, 으응."

시선을 피하는 새초미의 손을 잡고 이끌던 차였다.

꾹꾹.

내 파자마를 붙잡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저기..."

"응?"

빨간모자가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너...딸기 케이크 먹을 때, 맛있는 딸기는 먼저 먹는 쪽? 아니면 나중에 먹는 쪽?"

빨간모자의 질문에 새초미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이젠 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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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10화 빨간모자편 중(中)편을 올립니다.

일단 평일중에 퇴고하고 이번주 수요일까지는 다듬어서 10화 제대로 올리겠습니다.

빨간모자 후반부는 용량은 확보할만큼 썼는데 글로 다듬어진 수준까지는 아니라서 하(下)편으로 따로 올리겠습니다m(_ _)m;



그리고 이불이는 청출어람 11화 다듬으면서 1화부터 정주행 해보려 합니다.

에피소드별 내용은 기억하고 있지만, 소소하게 깔아둔 밑밥이랑 각 편마다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다 기억하는건 아니라서=ㅁ=;

(전체 플롯이나 소재를 적어둔 노트는 있지만, 솔직히 각 에피소드 시점에서 각각의 인물들의 심리까지 세세하게 적어두진 않은터라...;)

등장인물들 서로 간의 심리상태 , 후반부 전개와 관련된 대화 같은걸 재확인한 뒤에 이불이 55화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주말 마무리 잘하세요~!

Posted by 루트(根)
,


청출어람(靑出於藍) 9




- 빨간모자 -



"또 출동이야?"

퉁명스레 건네진 말에 몸을 돌렸다.
기둥에 몸을 기대고 선 쥬켄이 팔짱을 낀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현실에서 나오는거 봤어.
보아하니 다시 이야기 나라에 갈 예정인가봐?"

"응."

"흥. 재주도 좋네."

긍정하는 내게 코웃음치고선 쥬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매번 지고 돌아오는 녀석을 해라님은 어디가 좋다고 임무를 맡기는건지 몰라.
대체 어떻게 해라님을 구슬린거야?"

불만과 의아함이 뒤섞인 핀잔에 멋적게 웃었다.

"...치사하게 매번 혼자 나가구.
도대체 언제까지 나만 사령궁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거람?"

아마도 부럽다라는 마음이 본심인가보다.
부루퉁하니 투덜대는 쥬켄에게 손짓했다.

"쥬켄."

"뭐야?"

"이번엔 너도 함께 가는거야."

"...어? 정말?"

"물론. 네 도움이 꼭 필요하거든."

"해냈다~~~!"

어지간히 기뻤는지 쥬켄은 환호와 함께 만세를 부르며 주변을 맴돌았다.
폴짝폴짝 뛰며 한참을 들떠있던 쥬켄은 숨을 고른 뒤 자세를 바로하고 한차례 헛기침 했다.

"뭐, 뭐어...네가 그렇게까지 내 도움을 바란다면 어쩔 수 없네!
한심한 파트너를 위해서 조금 정돈 힘내줄게.
넌 혼자 이야기 나라에 보내기엔 못미더우니까.
혹여나 꾸러기 수비대 녀석들에게 당하기라도하면 곤란하고."

솔직한 반응 뒤에 도도한척 하는건 나로선 귀여울 뿐인데.

"고맙군. 잘 부탁한다구 쥬켄."

"맡겨만 줘~!
그런데 놀러갈 이야기 나라는 어디야?"

본심이 새나오고 있잖아.
출동하는걸 「놀러나간다」고 표현하는 쥬켄을 보곤 피식 웃었다.
장난기 넘치는 쥬켄의 성향을 생각하면 잘못된 표현은 아니지.
반짝반짝 기대를 담은 쥬켄의 눈동자에 응해서 우리의 목적지를 입에 담았다.

"『빨간모자』"




빨간 베레모, 빨간 조끼, 빨간 미니스커트, 빨간 신발.
흰색 블라우스와 흰색 하이 삭스, 앞섶을 장식한 녹색 리본을 제외하면 붉은색으로 가득한 복장.
긴 금발에 푸른눈의 앳된 소녀-빨간모자-가 활짝 웃으며 기합을 넣었다.

"자, 그럼 모두! 힘내서 할머니께 가져다 드릴 과자를 만드는거야~!"

"「「「오~!」」」"

빨간모자에 호응하며 주먹을 치켜든 키키와 미미, 강다리가 문득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어쩐지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어?"

"그러게요?"

"으음, 그러게 말이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꾸러기 수비대를 도울 겸 한발 먼저 답을 내놓았다.

"흠흠, 아마도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 나라랑 비슷한 전개라 그런거 아닐까?"

"아! 그렇군요!"
"과연..."
"...응?"

"「「「.......어?」」」"

찌를듯한 시선을 보내오는 세명을 의아한듯 마주보았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어째서 네가 태연하게 과자 만들기에 섞여있어!?"

키키의 삿대질에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어째서냐니...그야 여긴 우리 집이니까."

"무슨 말이야? 여긴 빨간모자네 집이잖아."

"맞아. 난 빨간모자의 집에서 애완견을 하고 있거든."

키키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애완견? 고양이면서?"

"어쩔수 없잖아. 이런 복장인걸."

늑대 머리모양 후드가 달린 파자마 차림을 강조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령사천왕이 애완견 흉내라니, 못봐주겠네."

투덜거리는 키키의 곁에서 미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라? 그런데 그거 늑대 파자마 아녔어요 로우란씨?"

"...늑대?" "늑대이외까?"

미미의 발언에 강다리와 키키가 의아하다는듯 미미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나요 여러분?"

"소생은 애완견 운운 하길래 당연히 개 파자마라고 생각했소이다만..."

"나도. 그런데 미미 넌 어쩐지 '늑대 파자마'라고 확신하듯 말하네.
혹시 저녀석이 입고 있는 파자마를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거야?"

둘의 의문에 미미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 저, 저기, 그러니까 그게..."

보아하니 미미는 『헨젤과 그레텔』이야기 나라에서 나와 나눴던 이야기를 다른 꾸러기 수비대에게 흘리진 않은 것 같다.
사소한 배려였지만, 그 탓에 미미가 동료들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식으로 이상한 오해를 받게 하고 싶진 않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지 더듬거리는 미미의 곁에 끼어들어 미미의 말을 이어 받았다.

"빨간모자 이야기에는 『늑대』가 등장하니까.
아마도 내가 등장인물인 늑대 역할을 맡은거라고 의심한거려나?"

"마, 맞아요!"

미미가 반색하곤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가슴에 손을 얹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미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흘렀다.

"제법 공부했나봐?
처음 만났을 때랑은 딴판인걸?"

"머리 나쁜 아이 취급은 하지 말아주시겠어요?"

눈을 흘기는 미미를 키득거리며 상대하고 있으려니 키키가 묘한 얼굴로 우리를 번갈아보았다.

"어라? 제법 사이가 좋아 보이잖아?"

"절대 아니거든요?"

"응응, 놀리는 재미가 있는 녀석이지."

"뭐라구요!?"

발끈하는 미미에게서 과장스레 뒤로 물러나며 손을 내젓자 키키와 강다리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앞에서 저렇게 실실대기나 하구. 정말 헷갈리게 만드는 사천왕이네."

"동감이오. 종잡을 수 없는 사천왕인 것 같구료."

"걱정마. 이렇게 구는건 나랑 내 파트너 정도 뿐이니까."

"그거 사천왕의 절반이 문제란거잖아!"

"나머지 둘은 착실하게 사악하니까 괜찮아."

"착실하지도 괜찮지도 않아!"

"거참 핏기 많은 녀석일세."

빠직-
울컥한 키키가 주먹을 쥐자 잽싸게 미미의 몸 뒤에 숨어 내 몸을 가렸다.

"잠깐? 뭐하는거에요?"

"키키라는 녀석을 보면 알잖아.
저녀석 방금 진짜로 때리려 했단 말야."

"그렇다고 하필 제 뒤에 숨는거에요?"

"네가 양이니까."

"무슨 이유가 그래요?"

"실은 난 양치기 개였던거야."

"양한테 지켜지는 양치기 개가 어딨어요!
사령사천왕이라면서 한심하지도 않아요?"

아웅다웅하는 미미와 내 꼴에 강다리가 나직이 탄식했다.

"...개의 정령으로서 도저히 못봐주겠구려."

"진지하게 상대하는 이쪽이 바보가 될 것 같아."

키키는 짜증내듯 닭볏 같은 붉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헤집었다.




"그래서? 넌 사령사천왕인 주제에 어째서 애완견을 하고 있는거야?
늑대 파자마를 입었으면 제대로 늑대 역할을 맡아야 하잖아."

"빨간모자를 잡아먹으려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빨간모자에게 들켰거든.
그랬더니 빨간모자가 날 애완견으로 삼겠다며 집으로 데려왔어.
내가 개인줄 알았나봐."

저만치서 찡찡이와 놀고있는 빨간모자의 모습을 힐끗보며 설명하자 강다리가 팔짱을 낀채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늑대와 개는 같은 조상이니까 빨간모자가 착각할 법 하겠구료."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에 처음 왔을 적에도 빨간모자는 찡찡이가 마음에 든다고 냉큼 집으로 데려갔으니까요.
로우란씨도 비슷한 이유로 데려왔겠죠."

빨간모자의 행동에 납득한 듯 미미가 첨언했다.

"그런데 이제 슬슬 과자 만들기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빨간모자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지만, 이대로는 할머니 댁에 갈 즈음엔 밤이 되어 버릴거라구?"

"...그러네. 여기서 이 능글능글한 녀석을 닦달해봐야 시간만 낭비할것 같으니까, 우선은 과자 만들기부터 끝내자구."

"응응! 놀기 좋아하는 빨간모자를 다독여서 할머니 댁에 보낼 때까지 힘내라, 빨간모자네 엄마."

"네가 말 안해도 할거야.
......응?"

혀를 차며 몸을 돌리던 키키가 멈춰섰다.
녹슨 경첩마냥 끼기긱 소리를 내며 키키의 고개가 돌아갔다.

"...엄마라니? 누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키키의 눈동자를 보며 환하게 웃음 짓곤 손가락으로 키키를 가리켰다.

"너말야 너, 너."

"나!?"

경악하던 키키가 이내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었다.

콱!

"켁?"

"너냐!? 응? 네녀석 탓이냐!? 아니, 분명 네 놈 탓이지!?
네녀석이 날 이런 역할에 집어넣은걸 누가 모를줄 알아!?"

멱살을 잡은채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키키.
탈탈탈 정신없이 흔들리는 내게 키키가 비난을 퍼부었다.

"뭐야? 뭣땜에 날 애 엄마로 만드는거야 엉?
어디 한번 골탕먹어봐라 이거냐? 아앙!?"

"어,어,어,어,어,자,잠,깐,"

"키, 키키! 너무 난폭하게 굴면 안돼요."

"진정하시구려 키키공!"

옆에서 키키를 말리는 미미와 강다리 덕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자 다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건 내 탓이 아냐. 나로서도 예상외였으니까.
아마도 엄마 역이 너에게 어울렸기 때문에 빨간모자의 엄마 역할을 맡게된 것 뿐이야."

"어울리긴 뭐가 어울려!
그런 이유라면 애완견이나 늑대 역할은 강다리가 하는게 맞는거였잖아!"

"어엇!? 그 무슨 소리요 키키공!?"

기겁하며 항의하는 강다리를 흘려넘기곤 키키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눈에 힘을 줬다.

"HAHAHA! 주인공을 잡아먹는 꾸러기 수비대라니 그거 참 볼썽 사납겠네.
뭐, 늑대 역할이야 내가 먼저 맡았으니 어쩔수 없었다지만, 네 경우는 굳이 말하자면..."

"말하자면?"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키키의 굴곡진 가슴께로 시선을 내렸다.

"모성이 풍부해서 그런게 아닐까?"

빡!

"악!?"

정강이를 맞고 데굴데굴 구르는 내게 키키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한대 패줄까?"

"벌써 때렸잖아!?"

"로우란! 시끄러! 엄마한테 대들지마!"

저만치서 들려온 빨간모자의 고함소리에 다급히 입을 가렸다.
바닥에 드러누운채 빨간모자의 눈치를 살피는데 미미가 나무랐다.

"방금전은 로우란씨가 잘못하셨어요.
무신경한 발언은 나빠요."

내 앞에서 키키 가슴이 크다고 말한 녀석이 할 말이냐.

"알았으니까 저기서 궁상맞게 있는 키키를 달래서 과자 만들기 시작하자구."

"네?"

빨간모자의 '엄마' 발언에 충격을 받았는지 키키는 처량한 어조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엄마...내가, 엄마..."

"너무 신경쓰지 마시구려 키키공."

낙담한 키키를 위로하며 강다리가 상냥히 어깨를 토닥였다.




다소 소란이 있었지만, 이후 침착해진 키키의 주도로 과자 만들기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럼 찡찡아~ 우리 같이 먹을 과자 만들까~♪"

"응! 빨간모자 누나~!"

지지부진하던 우리 모습에 저만치 떨어져 놀고 있던 빨간모자와 찡찡이도 본격적으로 과자 만들기가 시작되자 사이좋게 손을 거들었다.
노려보는 키키를 애써 무시하곤 나도 과자 만들기에 끼어들었고.

과자 만들기 도중 이따금 미미가 던지는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로우란씨는 어째서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에 온거죠?"

"이야기를 바꾸기 위해서인게 당연하잖아? 사령 사천왕이니까."

"다른 꿍꿍이는 없나요?"

"없진 않지만, 가르쳐주면 방해할거지?"

"당연하잖아요. 저희는 꾸러기 수비대니까요."

"그럼 알려주지 않을거야."

"으..."

불만스레 볼을 부풀리는 미미를 보곤 웃음을 떠뜨렸다.

"뭐, 딱히 말해도 상관없어.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를 선택한 꿍꿍이 정도라면."

"...뭔데요?"

"『빨간모자』이야기의 줄거리 알고 있어?"

"할머니 집에 간 빨간모자가, 할머니를 잡아먹은 못된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나중에 사냥꾼이 늑대의 배를 갈라서 할머니와 빨간모자를 구하는 이야기죠?"

"그래. 그런 줄거리였지."

"그런데 이게 로우란씨가 이곳에 온 꿍꿍이와 무슨 관계인거죠?"

"빨간모자 이야기는 『결말이 달라도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무슨 의미에요?"

"이 이야기 나라는 빨간모자가 구해지건, 늑대에게 잡아먹힌채 끝나건 부서지지 않는단 말이야."

"말도 안돼요!"

"뭐, 뭐요!?"

"뭐야? 무슨일이야?"

"괜찮아 미미찡?"

미미의 외침에 깜짝 놀라 키키와 강다리, 빨간모자와 찡찡이가 돌아봤다.

"아, 아뇨. 아무것도..."

말을 더듬는 미미의 모습이 수상한듯 빨간모자가 내쪽을 힐끔 쳐다보곤 추궁하듯 물었다.

"왜그래? 로우란이 뭔가 했어?'

"그, 그게..."

"그게말야~ 빵이랑 과자에 생선을 넣으면 맛있을 것 같다고 말했더니 미미가 화를 내더라구."

품에서 생선 통조림을 꺼내 흔들어 보이자 다들 어처구니 없단 시선을 보내왔다.

"...저녀석, 자기가 고양이란걸 숨길 생각이 전혀 없네."

"그러게 말이외다. 노골적으로 고양이 어필을 하니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소."

"......"

눈썹을 찡그린채 한참을 나와 눈을 마주하던 빨간모자가 이내 입을 열었다.

"...맛있으려나?"

"아니아니아니. 안된다구."

흥미가 이는지 눈을 빛내는 빨간모자를 키키가 다급히 말렸다.

"지금 만드는 빵에는 생선이 어울리지 않으니까 무리야."

"에... 맛있을거 같은데. 생선..."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는 빨간모자를 키키가 차분히 달랬다.

"자자, 생선요리는 다음에 따로 만들어 줄테니까. 응?"

"정말? 약속이야 엄마!"

"그, 그래."

입술을 씰룩이는 키키에게 빨간모자는 반색하곤 얌전히 자리로 돌아갔다.
미미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설마 빨간모자의 미각을 고양이 입맛으로 바꾼건 아니겠죠?"

"안 그랬어. 애초에 생선 빵이나 생선 과자가 뭐가 이상하단거야?
붕어빵 같은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모양만 붕어일 뿐이거든요?
물고기는 안들었어요."

"...거짓말이지?"

"정말이예요."

"내가 사령궁에만 지내니까 세상물정 모른다고 놀리려는거 아냐?"

"제가 뭐하러 그러겠어요?
이상한데서 상식이 없네요 로우란씨는."

"진짜냐..."

"다음에 사드릴까요?"

"...부탁하지."

미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장난은 이쯤에서 하고 다시 과자 만들기를 해볼까.

열심히 반죽을 주물럭거리는데 미미가 조심스레 물었다.

"로우란씨."

"왜?"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가 '결말이 달라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신 이유가 뭐죠?"

"비슷한 이야기가 존재하니까."

"비슷한 이야기?"

"그래. 빨간모자의 결말을 덧쓸만큼 비슷한 이야기야."

"저기..."

"응?"

말을 잇다가 밑에서 들려온 부름에 고개를 숙였다.
노란 모자를 쓴 찡찡이가 불안한듯 흔들리는 눈으로 내게 매달려 있었다.

"왜그러니 찡찡아?"

안심시키듯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로우란찡은 빨간모자 누나를 잡아먹을 셈이야찡?"

"응. 빨간모자 이야기는 원래 그런 내용이니까."

"...잡아먹지 않으면 안되는거야찡?"

"으응...어쩔까."

초조해하는 찡찡이의 모습에 잠깐 고민하는척 신음을 흘리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후후후, 그럼 빨간모자를 먹기 전에 찡찡이 너부터 잡아먹을까~?"

"어, 어째서찡?"

"그야 이야기에서 늑대가 잡아먹는건 빨간모자랑 돼지로 정해져 있으니까~!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알지?"

"나, 난 멧돼지라구찡!"

"비슷하니까 문제 없음~!"

"히이익!?"

"로우란씨! 찡찡이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거에요!"

장난스레 위협하는 포즈를 취하는 내게 대항하듯 미미가 찡찡이 앞에서 팔을 벌리고 섰다.

"후하하하하! 방해한다면 미미 너도 찡찡이와 함께 잡아먹어주마~!"

"누굴 잡아먹는다고?"

"그야 물론 찡찡이랑 미미를..."

대꾸하다 흠칫 놀라 몸을 틀자 어느샌가 다가온 빨간모자가 주먹을 힘껏 뒤로 젖히고 있었다.

"찡찡이 괴롭히지마 이 못된 똥개야!!"

빠악-!!!

"아팟!?"

강렬한 펀치에 뺨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찡찡이는 빨간모자에게 안겨들며 칭얼댔다.

"조심해 빨간모자누나! 로우란찡이 누나를 잡아먹을거래찡!"

"아하하하! 걱정마. 이 누난 강하니까!"

팔뚝에 힘을 줘보이고는 빨간모자는 호쾌하게 웃었다.
찡찡이를 안아든 빨간모자는 바닥을 뒹구는 날 힐끗보곤 미미에게 당부했다.

"혹시나 저 바보가 또 엉뚱한짓 하려거든 얘기해.
내가 혼쭐을 내 줄테니까."

"네, 넷!"

"자, 그럼 찡찡아? 우린 과자나 먹으러 가자~!"

"응~!"

뻣뻣이 굳은 미미를 뒤로하곤 빨간모자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멀어져갔다.
방금전 거침없는 일격이 충격이었는지 오도카니 서있는 미미에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말을 걸었다.

"...과자나 만들까."

"...네."

작게 한숨을 쉬곤 우리는 다시금 과자 만들기에 집중했다.




키키, 미미, 강다리, 그리고 나의 노력 끝에 과자 만들기가 끝났다.
맛보기를 한다며 사이좋게 과자를 먹어치우던 빨간모자와 찡찡이를 말리곤, 사이좋게 방에 넣어둔 뒤에야 무사히 과자 만들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빨간모자와 찡찡이의 떠들석한 소리를 확인하곤 물러났다.

빤히 날 쳐다보는 강다리와 키키, 미미에게 두 손을 펼쳐 들곤 싸울 생각이 없음을 피력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아.
별로 여기서 승부를 가릴 생각은 없으니까."

"정말이오?"

"그래. 설령 날 믿지 않더라도 빨간모자의 집에서 싸움을 벌일 생각은 그만두는게 좋을걸?
아무리 내가 밉상이라지만 자기 애완견이 맞고 있는 꼴을 놔두고 있진 않을테니까 말야."

"애완견이라니, 너...그렇게 말하면 안부끄럽냐?"

어처구니 없다는듯 키키가 딴죽을 걸었지만 어깨를 으쓱하고 흘려넘겼다.

"엄마라고 불리는거에 비하면 딱히?"

"또 맞고 싶냐?"

으르렁거리는 키키의 기세에 한걸음 물러났다.

"그럼 나는 이만 빨간모자의 할머니 댁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
빨간모자보다는 먼저 가있어야 하니까 말야.
빨간모자는 내일 출발하는거지?"

"그래야겠지. 벌써 시간도 늦은데다가 빨간모자가 찡찡이랑 놀고 싶다고 난리였으니까.
찡찡이는 찡찡이대로 빨간모자랑 노는게 즐거워 보이고."

"뭐, 괜찮지 않소이까?
아직 시간엔 여유가 있으니 내일 출발한다고 그다지 문제되진 않을테니 말이오."

"느긋하구나 너희들?"

"조급해봤자 자네 같은 괴짜를 상대로는 골머리만 썩일것 같아서 그렇소이다.
고민해도 답이 안나올 바엔 나중에 싸우는 것만 생각하는 편이 낫소."

"내가 어쨌길래 괴짜란거야?"

"NINJA" "파자마 입은 괴짜" "자칭 애완견"

"...너무해."

더이상 있다간 내 평가만 하락할 것 같았다.

"...어쨌든, 난 이만 간다.
내일 길 잃지 말고 제대로 빨간모자네 할머니 집으로 찾아오라구?"

과자 몇개를 파자마에 챙겨넣곤 빨간모자네 집을 나왔다.




밖은 제법 어둑해져 있었다.
서두르면 깜깜한 밤이 되기 전에는 숲을 지날 수 있을 듯 했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에 뒤에서 난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날 따라 집 밖으로 나온 미미가 머뭇거리다 시선을 맞췄다.

"뭐야? 혹시 할말이라도 있어?"

"...로우란씨는 정말로 빨간모자의 결말이 바뀌어도 이야기 나라가 변함없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래."

방금전 과자 만들기때 나눈 대화의 계속인가?
여간 호기심이 많은게 아닌가보다.

"하지만 결말이 바뀐 이야기 나라는 파괴되는데..."

"『개미와 베짱이』는 베짱이가 얼어 죽는 결말도, 개미와 함께 겨울을 무사히 보내는 결말도 존재하잖아?"

말문이 막힌 듯 미미가 입을 다물었다.

"뭐, 빨간모자의 경우에는 결말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원래 결말에 뒷 이야기가 덧붙여진 형태지만."

"네?"

"그러니까 '빨간모자가 잡아먹혔다'는 결말의 뒤에 '잡아먹혔던 빨간모자가 구해졌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단거지."

알듯말듯 눈을 깜빡이는 미미를 위해 말을 덧붙였다.

"사령사천왕으로서 이야기 나라를 돌아보면서 알게된건, 생각 이상으로 이야기는 튼튼하단거야.
결말이 바뀌더라도 무너지지 않을만큼.
때로는 등장인물이 바뀌어도 대충 비슷하다 싶으면 이야기 나라는 신경쓰지 않잖아?
너희가 다녀왔다던 『모모타로 이야기』에서도 닭의 정령인 키키가 꿩의 역할을 대신했다며?"

"...늑대 파자마를 입고 늑대나 애완견인척 해도 허용되는 것처럼요?"

"맞아."

미미의 지적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로우란씨는 저희와는 다르게 등장인물의 몸에 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늑대씨의 몸에 빙의하지 않고, 굳이 늑대 파자마를 입은거예요?"

"...그야 나는 늑대보다 본래 모습이 더 마음에 드니까."

"...아, 네."

"그리고 이 파자마가 생각보다 편리하거든.
방금전처럼 빨간모자한테 얼버무릴 도구도 보관할 수 있고 말야."

앞섶의 지퍼를 슬쩍 열어보이자 미미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애한테 이상한거 보이지 마세요."

"아, 이거 실례."

도로 지퍼를 끌어올린 뒤에야 미미는 시선을 바로했다.

"그럼 로우란씨는 빨간모자를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결말로 바꾸기 위해서 이곳에 온건가요?"

"응?"

황당해하는 내 모습에 미미가 되려 놀랐다.

"아, 아닌가요?"

"내가 뭐하러 그런 수고를 해?"

"그치만 빨간모자가 불행해지길 바랄거 아녜요?"

그제야 근본적으로 미미와 나의 인식이 어긋나 있다는걸 깨닫곤 미간을 문질렀다.

"이봐...나는 사령 사천왕이지 불행 애호가가 아냐.
이야기를 바꾸는게 중요하지, 주인공을 불행하게 만드는게 목표가 아니라구."

"그럼 뭐하러 결말이 바뀌어도 괜찮다는 둥 얘길 꺼낸거예요?"

"그건 알아서 고민해보라구."

"...역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거군요?"

미미의 경계서린 눈초리에 피식 웃었다.

"글쎄? 아무튼 난 이만 간다."

노려보듯 눈매에 힘을 주는 미미를 모른척 걸음을 옮겼다.

휙-

미미가 앞을 가로막았다.

"......"

빤히 미미를 바라보다가 한걸음 움직여 옆으로 비켜섰다.

휙-

미미가 덩달아 옆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다시금 내 앞을 가로막았다.
길을 가로막고선 미미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곤란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지나가게 해주지 않을래?"

"싫어요."

"억지로 지나가는건 취향이 아닌데."

"알아요."

"내가 여자에게 손찌검 못한다는걸 이용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이번 일은 내겐 정말 중요하니까, 누구도 내 발목을 잡게 둘 순 없어."

"그럼 해결책은 간단하네요."

"뭐가 간단하단거야?"

"로우란씨는 늑대죠? 그리고 전 여자아이구요."

"뭐야, 설마 널 잡아먹기라도 하란거야?"

"원한다면 해보시겠어요?"

무심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심?"

묵묵히 수긍하는 미미를 보곤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저었다.

"사양할께."

"어째서죠?"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으, 그런식으로 말해도 안돼요!
다정한척 입발란 소리를 해도, 어차피 지금 상황을 모면할 속셈인거죠?"

"...이거 안통하네?"

"이, 이...!"

새빨개진 얼굴로 발끈하던 미미는 이내 태도를 고치곤 코웃음쳤다.

"뭐, 잡아먹는것도 로우란씨가 할 수 있다면 말이죠.
어차피 진짜 늑대도 아니고, 그 정도 크기의 입으로 빨간모자를 삼킬 수나 있겠어요?"

"응? 설마 너, 내가 빨간모자를 잡아먹을 수단을 알고 싶단거야?"

싱긋.

미미는 말없이 웃었다.

맙소사.
이런 대범한 태도라니.

"자, 그러니 잡아먹든 뭘하든 해보시라구요."

숫제 몸을 들이미는 미미의 태도에 뒷걸음질치다 질린 얼굴로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여기까지 무모할 수 있는거야?"

"믿으니까요."

"뭘?"

"설령 제가 정말로 잡아먹히더라도, 나중에 분명 제 동료들이 절 구해줄거라 믿으니까요."

동료를 믿는다는 거로군.
하지만 내 입장에선 굳이 여기서 미미를 상대로 패를 내보이고 싶진 않다.
만약 내 수단을 빨간모자가 알게 된다면, 빨간모자를 잡아먹는데 꽤나 애를 먹게 될테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게 좋겠지.

미미의 기세에 밀려 어느새 빨간모자의 집 벽에 등을 기대고 선 자세가 되어버린 상황에 한탄하고는 미미를 내려다보았다.

"...잡아먹혀도 좋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그래요."

그 말에 곧장 미미의 손목을 잡고선 몸을 돌려 미미를 벽에 밀어붙였다.

"로우란씨?"

나를 몰아세우다 오히려 자신이 벽쪽에 밀어붙여진 미미가 얼떨떨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미미의 표정에 웃곤 속삭이듯 물었다.

"잡아먹힐 각오가 있다고 했지?"

"...그래요."

결연한 미미의 표정은 다음 질문으로 부서졌다.

"아이들은 좋아해?"

"네? 그야...좋아하는데요.
그런데 갑자기 어째서 그런걸 묻는건가요?"

"그야 나는 네가 그저 잡아먹히는 것만으로 끝나길 바라지 않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방금 질문이랑 무슨 상관이..."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지 미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차례 숨을 들이쉬곤, 미미의 손목을 잡은 손에 작게 힘을 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께.
차라리 엄마가 되어볼 생각은 없어?"

"...에에엣!?"

비명을 지른 미미의 눈이 급격히 흔들렸다.

"엣? 에엣?
서, 설마 잡아먹는다는게 그런...!?
게다가 아이!? 어째서 아이!?"

"좋잖아, 아이들. 한 일곱명 정도."

"많아!?"

"너라면 단순히 잡아먹히는 것보단, 엄마가 되는 쪽을 더 바랄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아니!? 거기까지 가면 동료들이 구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괜찮아. 네가 구하는 쪽이 되면 문제 없으니까."

"의미를 모르겠다구요!"

"싫어?"

"곤란한 거라구요!
잡아먹히는 것도! 엄마가 되는 것도!"

"멋대로네."

"로우란씨가 할 말이에요!?"

허둥지둥하며 차츰 붉어지는 미미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엣? 저기, 로우란씨...?"

"왜 그렇게 당황하는거야?
아이가 아니니까, 잡아먹히는걸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저는 그렇게 가벼운 아이가 아녜요."

"알고있어."

"그렇다면 왜...!"

"네가 진지하고 노력하는 녀석이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권유하고 있는거라구."

"으..."

말문이 막힌채 얼굴을 붉힌채 미미가 고개를 숙였다.
바둥거리던 팔이 천천히 힘을 잃고 움직임을 멈췄다.

"...이런건, 곤란해요."

"어째서?"

"로우란씨는 사령사천왕이잖아요."

"그래."

"저는, 꾸러기 수비대..."

"그러니까야."

"네...?"

고개를 숙여 미미의 얼굴에 가까워졌다.
잘게 떨리는 눈썹 아래 미미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질끈 눈을 감은 미미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 조용히 속삭였다.

"늑대에게 잡아먹힌 녀석을 구하는건, 『엄마 양』이니까."

"......네?"

"빨간모자를 구하고 싶다면, 잡아먹힌다는 생각은 다시하는 편이 좋을걸?"

미미의 손목을 놔주고선 가만히 눈을 깜빡이는 미미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잡아먹어 달라는 말은 함부로 하는게 아냐.
남자는 다 늑대니까 조심하라구."

"......"

고개를 숙인채 손목을 매만지는 미미를 보곤 몸을 돌렸다.
이젠 정말로 빨간모자의 할머니 집으로 출발할 시간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다다다다 잰걸음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나를 지나쳐간 미미가 양팔을 벌린채 다시금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요."

"왜?"

한차례 미간을 문지르곤 미미가 확인하듯 물었다.

"...『엄마 양』은, 무슨 뜻이었죠?"

"뭐야,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

"시끄러우니까, 빨리 답이나 하세요."

강압적인 미미의 어조에 떨떠름한 얼굴로 설명했다.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 염소』이야기는 알고 있지?"

"...엄마 염소가 장보러 나간 사이에, 못된 늑대가 아기 염소들을 잡아먹었고, 막내 염소와 엄마 염소가 늑대의 배를 갈라서 아기 염소들을 구하는 이야기잖아요?"

새삼 듣고보니 살벌한 이야기네.
안색이 변하려던걸 억지로 바로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책에 따라서는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 양』이라는 제목으로 염소 대신 양이 등장하기도 해."

"...그러니까, 방금 전 로우란씨의 말은,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 양』의 『엄마 양』 역할을 저보고 맡으라는 거죠?"

"그래."

"...그럼 로우란씨는요?"

"당연히 '아기 양들을 잡아먹는' 늑대 역할이지."

"아하, 역시 그렇군요?"

내 대꾸에 미미가 활짝 웃었다.

"그래. 너도 그저 잡아먹힐 뿐인 아기 양 역할로 만족할 생각은 없잖아?
꾸러기 수비대의 사명은 이야기 나라를 지키는 것이니까, 기왕이면 『엄마 양』이 되라는거지.
아기 양들을 구하는건 언제라도 엄마 양이니까."

미미의 미소가 짙어졌다.

"좋은 제안이네요.
후후...예, 정말로."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널 잡아먹을 예정은 없어.
네게 무슨 짓을 했다간, 다른 꾸러기 수비대가 덤벼들테니까 말야.
이런데서 귀찮게 발목을 잡히고 싶진 않거든."

"어머, 그건 참 고마운 말이네요."

생글생글 웃는 미미에게 마주 웃어주곤 몸을 비켰다.

"자 그럼, 설명도 끝냈으니 난 이제 간다."

"......"

휙-

미미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번엔 또 왜그래?"

미미가 싱긋 웃었다.

하웁-

크게 숨을 들이킨 미미가 양손을 입가에 모았다.

"도와주세요 빨간모자씨---!
 
로우란씨에게 잡아먹히겠어요!"

"어, 어? 야? 누가 널 잡아먹어,"

두두두두두두두두------!

"손님을 꼬실 생각이냐 이 똥개야!!"

퍼어어어억------!

"케엥~~~~~~!?"




한참을 짓밟혀 철부덕 바닥에 달라붙은 내 꼴을 내려다보며 씩씩거리던 빨간모자는 거칠게 콧소리를 내곤 몸을 돌렸다.

쾅-!

문이 닫히고, 바닥에 널부러진채 꿈틀거리는 내게 미미가 조심조심 다가와 물었다.

"저기, 괜찮아요?"

"네가 할 말이냐..."

"...흥."

원망스런 시선을 보내자 미미는 입술을 삐죽 내밀곤 고개를 돌렸다.

"...빨간모자, 잡아먹을 수 있겠어요?"

"......아마도...?"

바닥에 쓰러진채 자신없는 목소리를 내는 내게 미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빨간모자가 너무 난폭해서 괴롭다.
아무래도 저 왈가닥을 삼키려면 어지간히 고생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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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다녀온 이후로 처음 올리는 글이네요!

그러니까...반년만에 업로드입니다...OTL;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2018년도에 글을 3개 밖에 못썼다니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빨간모자편은 다음편으로 마무리짓고 이불이도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m(_ _)m;;;



빨간모자

적색의 쥬켄

미미

키키

강다리

찡찡이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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