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 6




"「「「「잘 먹었습니다~!」」」」"

"이야아~ 초(超) 맛있는 아침이었어~! 그렇지?"

"그렇습니다. 오타마씨의 요리 솜씨가 정말 대단하군요."

아침 식사를 한 꾸러기 수비대의 반응은 꽤나 호평이었다.
똘기와 드라고의 칭찬에 오타마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실은 오늘 아침 식사는 저희 할아버지께서 준비하신거예요."

"어? 진 영감님이?"

"그렇다네. 매번 손녀에게만 일을 맡기는 것도 부끄럽잖은가."

"할아버지, 그런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마주보며 다정히 웃는 나와 오타마의 모습에 호치가 말을 건넸다.

"진 영감님과 오타마씨는 정말로 사이가 좋으시군요?"

"그렇게 보이는가?"

"물론이외다! 이토록 사이좋은 조손(祖孫) 관계라니 부러울 따름이외다."

"후후, 감사해요 강다리씨, 호치씨."

"벼, 별말씀을..."
"무얼...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외다, 오타마양."

오타마의 웃음에 부끄러운듯 호치와 강다리는 낯을 붉혔다.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는 동안, 생각에 빠진듯 말없이 앉아있던 미미가 고개를 들었다.

"오타마씨."

"네? 미미씨."

"괜찮으시다면 상을 치우는 것과 설거지를 거들어도 될까요?"

"아뇨, 그런! 손님에게 일을 시킬 순 없어요."

"사양하지 말아주세요.
절 도와주신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으니까요.
아직 치료비도 못 드렸고..."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까 신경쓸 것 없다네 미미양."

내 말에 미미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라도 보은을 하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 맘이 편치 않을 것만 같아요."

"상냥한 아가씨로구먼."

미미의 부탁에 오타마가 곤란한 얼굴로 도움을 구하듯 날 쳐다보았다.

"오타마야. 저기까지 부탁하는데 그냥 저 아가씨의 도움을 받도록 하려무나."

"하지만..."

"손님에게 폐를 끼치는게 아니라, 미미양의 마음의 부담을 덜어준다고 생각하거라.
그 편이 미미양도 기뻐할거란다."

"그러시다면야...
그럼 도움 부탁드릴께요 미미씨."

"네! 오타마씨!"

생긋 웃은 미미와 오타마가 상을 정리해 방을 나갔다.
미미와 오타마가 나가는걸 확인하고 꾸러기 수비대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늘은 어떻게 보낼 예정이신가?"

"그게...폐가 되지 않는다면 실례를 무릅쓰고 여기서 잠시만 더 머물렀으면 합니다 진 영감님."

"폐라니, 당치도 않는 말일세.
내 손녀를 구해준 분들에게 내가 뭘 아까워한단 말인가?
신경쓰지 마시고 원하는만큼 있도록 하게나."

호치의 말에 손사레를 치며 체류를 허가하자 강다리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외다. 원래라면 오늘은 곧장 사령 몬스터를 찾으러 나갈 예정이었소만...
미미공이 조금만 더 여기서 기다려 달라고 하더구려."

"뭐, 미미에게도 뭔가 생각이 있지 않겠어?
아직 아침이니까, 조금 정도는 기다려 줘도 괜찮겠지."

"음. 어쩌면 무언가 단서를 찾았을지도 모르지요.
여긴 알라딘의 집이니 요술 램프의 행방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강다리와 똘기, 드라고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아직 미미는 나의 정체에 대해서 말하진 않은 듯 했다.
어쩌면 아침이라 미처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을 수도 있겠군.
식사 뒷정리까지 돕다니 미미로서도 이래저래 지금의 상황이 신경쓰였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꾸러기 수비대의 대화를 듣고 있을 때였다.



쨍그랑!



"꺅! 괜찮으세요 미미씨!?"

부엌에서 들려온 소리와 오타마의 비명에 놀라 자리에 일어섰다.

"내가 가보겠네."

"저희도 가겠습니다!"

"아니.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혼란스러울 뿐이라네.
심각한 상황이라면 도움을 청할테니 일단 여기서 기다리시게나."

"진 영감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덩달아 일어서려는 꾸러기 수비대를 말리곤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 도착해보니 미미가 한손을 감싸쥔채 주저앉아 괴로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미미의 곁엔 산산히 부서진 그릇이 널부러져 있었다.
깨진 그릇에 피가 묻어 있는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설거지 도중 깨진 그릇을 치우려다 다친 듯 했다.
당황하며 미미의 상태를 살피던 오타마가 부엌에 들어온 날 보곤 다급히 말했다.

"할아버지, 미미씨가!"

"괜찮은가 미미양?"

"아라기토씨..."

생각보다 깊게 베였는지 미미의 손가락에선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오타마야. 진료실에서 구급상자를 가져오려무나."

"아, 네!"

오타마가 황급히 부엌을 떠나자, 품에서 계수나무 잎을 꺼내 미미에게 건넸다.

"이걸로 상처를 감싸고 문지르게나."

"감사해요 아라기토씨."

미미가 건네받은 계수나무 잎으로 손가락을 문질렀다.
잠시 후, 계수나무 잎을 치우자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손이 드러났다.
이걸로 문제 해결이로군.

"고마워요."

"별말을. 우리 손녀를 거들어주는건 좋다지만, 좀 더 몸을 소중히 여기는게 좋겠네."

미미의 감사에 너털웃음을 짓고 도로 내밀어진 계수나무 잎을 잡았을 때였다.



찌이익-



"......"

"...어머?"

힘없이 내 손에서 흔들리는 계수나무 잎 반조각.
미미의 손에 쥐여진 나머지 반쪽잎.
두 조각으로 찢어져버린 계수나무 잎에 미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죄송해요 아라기토씨.
실수로 잎이 그만 찢어져버렸네요."

"...실수로?"

"네. 실수로."

"......"

방긋 웃는 미미의 얼굴과 반쪽난 계수나무 잎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노라니, 구급상자를 챙긴 오타마가 돌아왔다.

"할아버지! 구급상자를 가져왔어요!
...할아버지?"

"아, 아...그래. 여기 놓아두렴."

"네!"

오타마에게 받은 구급상자에서 붕대와 솜, 약품을 꺼내 미미의 상처 부위를 닦고 감쌌다.
응급처치를 받고는 능청스레 감사를 표하는 미미에게 무심코 입술이 떨려오는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리고 불행히도 아침의 트러블은 방금 전으로 끝이 아니었나보다.

"아침 진료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라기토씨?"

"......"

진료실에 마주앉은 미미를 침묵한채 바라보다 물었다.

"...따로 더 아픈 곳은 없지 않았나?"

"그게...실은 새로 다친 곳이 있어서..."

"또?"

방금 전 손가락을 베이고선 다시 뭔가 저지른건가?
질린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곤 고개를 내젓곤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또 어디인가?"

"...요."

"응? 뭐라고 했나?"

쥐꼬리만한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미미가 새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허, 허벅지 안쪽이요!"

"......"



"(부, 부럽다아아~!)"

"(크으, 진 영감님이 부럽구료!)"

"(음음.)"

"(커흠-! 자자, 부디 침착하고 이만 방으로 돌아갑시다 여러분.)"



밖에서 들려오는 저 괴상한 소리들은 그 탓이냐?
미미의 귀에도 대화가 들렸는지 미미가 양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최악이에요."

"진정해. 네 동료들이잖아."

"최악인건 최악이에요."

"애초에 네 동료들이 저렇게 떠들어대는건, 네가 동료들에게 상처 부위를 말한 탓 아냐?"

"함께 진료실에 들어오려는걸 막으려고 그런거였단 말이에요!"

아 그러셔요?

"그럼 상처 났다는건 거짓말인거지?"

"엣? 아뇨. 정말인데요?"

미미가 허벅지 안쪽에 손을 대었다 떼자, 손가락에 붉은 피가 묻어났다.
민감한 부위인건 둘째치고, 대체 왜 거길 다쳤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쩌다가 다친거야 그거?"

"여성에게 그런걸 물어보시는건가요?"

"그야 이상하니까잖아? 허벅지 안쪽에 상처가 날 일이 얼마나 있다고 그래?
손톱으로 상처를 내기라도 했어?"

"......"

"...너, 혹시 정말로?"

"아라기토씨도 차암~! 제가 그럴리 없잖아요?"

손을 내저으며 웃는 미미가 가증스러워 보였다.

"아무튼 아라기토씨, 상처자국이 남지 않는 좋은 약은 없을까요?

"알게 뭐야. 침이라도 발라."

"......"

매정한 내 말에 미미가 입을 다물고 노려봤다.

"뭐야? 왜 그렇게 봐?
계수나무 잎은 네가 찢어버려서 이제 없다구."

"아이 차암! 그건 고의가 아니었다니까요?"

아...그거 참 잘도 믿어주겠습니다.

"아라기토씨라면,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다른 좋은 회복약을 준비해뒀을거잖아요?"

"...대체 무슨 근거로?"

"아라기토씨의 교활함에 대한 믿음과 신뢰요."

"하나도 기쁘지 않은 믿음과 신뢰로구먼..."

"그래서, 약은 없어요? 슬슬 따끔한게 견디기 힘든데요."

"줄 것 같냐?"

뚱한 얼굴로 미미를 보자 미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뭐야? 그런 얼굴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읏...윽...!"

미미의 입술이 잘게 떨리나 싶더니, 이윽고 눈에 눈물을 머금어졌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걸 애써 모른척 시선을 돌리자, 코를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울먹이는 미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훌쩍...
아픈데...정말로 아픈데..."

"......"

안절부절안절부절

힐끔.

앗.

우는 체를 하는 미미의 모습에 초조해하는 걸 들켰다.
눈이 마주치자, 붉어진 눈가의 눈물을 훔치곤 미미가 배시시 웃었다.

...귀여운척 하기는...

매정하게 구는 것도 정말 못해먹겠군.
군말 없이 품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품에서 물병을 꺼내보이자 미미가 물었다.

"그게 뭐죠?"

"'죽음의 물'"

멈칫-

눈을 반짝이며 물병을 보던 미미의 몸이 굳었다.

"...아라기토씨. 혹시 저보고 죽으라고?"

"의원에게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네..."

미미의 의혹에 어처구니 없어서 코웃음을 치곤 물의 유래를 설명했다.

"이건 저승에만 있다는 신비로운 물이야.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가졌다고 하지."

"그런데도 이름이 '죽음의 물'인가요?
보통은 '생명의 물'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아요?"

"'생명의 물'은 따로 있어.
용도가 달라서 지금 써먹진 못하지만."

"다른 용도가 있는건가요?"

"죽은 이를 되살리는 것."

"...어디서 난건가요?"

"'죽음의 물'과 '생명의 물' 둘 다 '이반 왕자와 회색늑대'에서 회색늑대가 까마귀를 위협해서 구한 물이지."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니...말도 안되는 효능이네요."

미미의 감탄에 게슴츠레 눈을 떴다.

"...계수나무 잎이 훨씬 더 귀한거였거든?"

"네?"

"그거 죽음의 물이랑 생명의 물 두개를 합친 효과를 가졌었다구."

"엑? 그랬어요?"

"그래. 휴대성도 편해서 애용하는거였는데..."

실제로 '노시와 유탄'에선 죽은 연인을 상처없이 온전히 살려내는데 계수나무 잎을 사용했으니까.
작게 푸념을 흘리곤 물병의 마개를 열었다.

"아무튼, 허벅지 내밀어. 다친 곳에 뿌려줄테니까."

"......"

"왜?"

"저질! 시집도 안간 처녀에게 무슨 파렴치한 말을 하는거예요?"

"의원 앞에서 파렴치고 뭐고 따지는거냐?"

"벼락치기 의원이면서."

"뭐? 지금까지 내가 치료한 환자만 수천명이 넘어.
에도시대의 슈퍼 닥터가 바로 이 몸이라고!"

"네네. 그런 설정이었군요?"

이게 정말...
코웃음치는 미미에게 애써 웃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

"알았으면 군말 말고 얌전히 허벅지 내밀어라. 응?"

"싫어요. 치료하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이상한 짓 하려는거죠?"

"...진짜로 이상한 짓 저질러주랴? 응?"

"새초미에게 일러바칠까요?"

"...그, 그게 대체 누군데 그러시나?"

눈알을 떼구르르 굴리며 딴청을 피우는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미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흐응~ 글쎄요? 정말이지 누굴까요?"

"......치사하긴."

"뭐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내밀어진 미미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죽음의 물을 올려놓곤 당부했다.

"부탁이니까 다 쓰진마라? 조금만 뿌려도 충분하니까."

"네, 조금만 말이죠."



촤아악-



"앗. 실수로 전부 쏟아버렸네요.
죄송해요."

"......"

응. 알고 있었어. 이렇게 되리란 것 정도는...

흠뻑 젖은 미미의 허벅지가 묘하게 야해보였다는건 비밀로 하자.
뒤돌아서 허벅지를 확인해본 미미가 밝게 웃었다.

"정말로 상처가 다 나았네요.
들은대로 대단한 효능이에요.
감사해요 아라기토씨."

"...넌 두번 다시 환자로 찾아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머, 섭섭한 말씀을."

"그리고 다음에는 그런 부위에 상처 내지마.
만약 치료할 약이 없었다면 어쩔뻔 했어?"

"어라? 혹시 걱정해주신건가요?"

"그야 흉터라도 남으면 큰일이잖아.
아무리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그런 결과가 되면 나로서도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안 드니까 말야."

내 말에 미미가 콩-하고 자기 머리를 두드리곤 윙크하며 혀를 내밀었다.

"실은 이거, 계수나무 잎에 묻어있던 피를 바른거예요."

"너야말로 진짜 최악이잖아!?"




오늘 하루...아니, 오늘 아침만에 벌써 2개의 보물을 소비해버린 탓에 정신적인 피로감이 몰려왔다.

"너랑 있으면 자꾸만 내 밑천이 죄다 털리는 것 같아."

"그야말로 기분 탓 아닌가요?"

"...'요정의 가루'는 돌려줘.
그건 아직 가지고 있겠지?"

"치사하게 한번 준걸 도로 가져가려는거예요?"

"주기는 무슨? 네가 하늘을 무서워하니까 잠시 빌려준거였잖아?
시치미떼지 말고 그만 내놔."

내 말에 미미가 볼을 부풀였다.

"...좋아요.
그럼 어디 마음대로 가져가시면 되잖아요."

"어디 놔뒀는데?"

"여기요."

미미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농담이지?"

"아뇨."

"......진짜로?"

"네. 정말이에요."

"......야."

"자아,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보세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내민 미미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져 그만 머리를 움켜쥐었다.
혼란스러움에 빠져 신음소리를 흘리는 날 보곤 기세가 올랐는지 미미의 음성이 들떴다.

"왜 그러시나요 로우란씨?
혹시 요정의 가루가 필요없으신건가요?
그럼 제가 가져도 되는거죠?
아, 생각해보면 하늘을 나는 양탄자도 비행감이 좋았는데...
참! 혹시 요술 망원경은 없나요?"

이런 뻔뻔한 날강도를 봤나!?
집안 살림을 아예 대들보까지 뽑아갈 셈인양 들떠있는 미미의 태도에 대응을 정했다.
손가락을 쥐락펴락 하면서 한차례 심호흡을 하곤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미미 네 말은...어제 진맥 만으론 부족했다...이거로구나?"

품에서 청진기를 꺼내들고 미미를 향해 내밀었다.

"자, 와이셔츠를 벗어보렴."

"...네?"

행복한 상상에 젖어있다 내 말에 현실로 돌아온 미미가 눈을 깜빡였다.
가슴을 내민채로 고개를 갸웃하는 미미에게 씨익 웃음지었다.

"그렇게 가슴을 내미는걸 보니, 네가 아직도 환자 역할에 미련을 못 버렸나본데...
실은 나도 지금 생활을 끝내기엔 조금은 아쉬웠거든?
그러니 네가 그렇게까지 바란다면야, 나도 조금만 더 의원으로서 어울려줄께."

한손으로 미미의 어깨를 붙잡고 흥얼거렸다.

"자아~ 즐겁고 즐거운 의사 놀이 시간입니다~♪
환자 아가씨? 어디가 아픈지 확인해봐야 하니 얌전히 상의를 풀어주지 않겠니?"

"엣? 따, 따로 아픈 곳은 없는데요?"

"그럴리가! 너 방금전까지 가슴을 쑥쑥 앞으로 내밀고 있지 않았니?
분명 아가씨는 가슴에 좋지 않은 무언가를 품고 있을텐데?
구체적으로는 요정의 가루라든지 말야.
설마 의원더러 직접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서 확인하게 만들 셈은 아니겠지?
혹시라도 순순히 요정의 가루를 돌려준다면 험한 짓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놔, 놔주세요!"

"거절이야. 나도 조금은 화가 나 있거든?
애당초 내가 어제 오늘 동안 너랑 있으면서 써버린 보물이 얼마나 되는지 알면서 방금전 태도를 취한거니?"

"어, 얼마나 되는데요?"

"탈무드의 요술사과, 피터팬의 요정의 가루, 마량의 요술 붓, 노시와 유탄의 계수나무 잎, 이반왕자와 회색늑대의 죽음의 물.
북풍이 준 요술 지팡이는 패널티가 있어서 더는 못 써먹는다는걸 알았고."

"와, 와아...정말로 보물을 많이도 갖고 계셨네요?"

"하하하, 이젠 죄다 못쓰게 됐단다.
그런데 무엇보다 심한건...바로 너 하나에게 쓴 보물이 절반이 넘어간다는 사실이야!"

"아하하...그, 그랬던가요?"

눈을 희번득거리는 날 보곤 미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니까...적어도 그 가슴에 숨긴 요정의 가루만은 되돌려 받아야겠다구?"

"그, 그만두세요 로우란씨!
새초미에게 이를거예요!?"

하! 물건을 돌려줄 생각도 없으면서 이제와서 새초미 타령이냐?
택도 없는 소릴!

"응? 로우라안~? 그게 누군데 그러니?
대체 어디에 사는 멋쟁이 신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원으로서 나는 지금 네가 착란하고 있진 않은지 걱정이 된단다."

"로, 로우란씨?"

"내 이름은 아라기토 진나이! 로우란이 아냐!
이상한 소리 말고 순순히 요정의 가루나 내놔!"

"꺄아아!"



드르륵-



"「「앗」」"



난데없이 열린 진료실 문에 놀라서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죄송해요. 아까부터 작게 소근거는 소리만 들려서...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을 들여다보던 오타마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 붉게 젖어있는 방바닥과 옷자락이 흐트러진체 뒤엉켜있는 나와 미미의 모습을 본 오타마가 어안이 벙벙한듯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무슨 일인거죠?"

오타마의 물음에 필사적으로 대답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진찰 중이란다."

"지, 진찰 중이에요!"

나와 내 말에 맞장구치는 미미의 말에 오타마는 입을 다물었다.

"......아. 죄송해요. 실례했어요 할아버지, 미미씨."

애매한 웃음을 띄며 오타마가 고개를 숙였다.

"엣, 잠깐,"

탁-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진료실 문이 닫혔다.
타박타박 멀어지는 발소리는 어느새 들리지 않았다.

물끄러미 미미와 서로를 마주보길 잠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우성쳤다.

"오타마씨가 오해했잖아요! 어쩔거예요!?"

"웃지기마! 네가 먼저 이상한 수작으로 내 걸 모조리 가져가니까 그런거잖아!?
나야말로 나잇값 못하고 손녀뻘 되는 여자애를 탐하는 호색한 할아버지로 보이는건 싫다고!
오타마가 동갑뻘 여자애를 새할머니로 모셔야 하는지 고민하면 어쩔거야?"

"누가 할머니예요!?"




한참을 다투다 화를 가라앉히곤 미간을 문질렀다.

"젠장...이제 오타마는 신경 안 쓸거라고 결심했는데, 아침부터 신경쓰여 죽을것 같아..."

"흐흥! 제가 후회하게 만들어 드린다고 어제 그랬죠?"

"하핫. 의도한 것도 아니었으면서 함부로 뽐내는거 아니다?"

"뭐예요!?
....아,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더부룩한데 뭐 먹을거 없나요?"

"너 또 병약한 척하는거냐? 요술 사과를 먹은지가 바로 어제인데 벌써부터 몸이 안 좋아질리 없잖아."

"정말로? 정말로 더 쓸만한거 없어요?"

"있을 턱이 있나? 쓸만한 보물 세가지를 전부 너한테 써버렸는데.

만병통치의 『요술사과』! 상처를 낫게하는 『죽음의 물』! 치유와 부활의 『계수나무 잎』!

이제와서 뭘 더 쓰라는거야?"

"째째하게 그런걸로 꿍해있지 말아요."

"...이걸 째째하단걸로 끝내는 넌 진짜 거물이구나..."

"뭐예요? 혹시 이걸 빌미로 저한테 뭔가 요구하실 셈이에요?"

"너야말로 부탁하면 들어주기라도 할거야?"

"...미리 말해두지만, 이상한걸 부탁할 셈이라면 그만두세요."

시작부터 예방선을 치고 들어가는 미미의 말에 어이없어하다가 손을 내저었다.

"필요없어. 생각해보니까 대가는 이미 받았으니까."

"뭘 받았는데요?"

"「고마워요」라고 말했잖아.
꾸러기 수비대 상대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령 사천왕은 나 뿐일테지."

"...그런걸로 되는건가요?"

"응. 만약 새초미였다면 결혼해달라고 말이라도 걸어봤겠지만."

"아, 그래요? 그건 참 로우란씨다운 생각이네요."

내 농담이 아니꼽다는듯 미미가 빈정거렸다.




"원한다면 요정의 가루는 가지고 있어."

"네? 괜찮은건가요?"

"생각해보니 어차피 보물들의 효능은 전부 확인했어.
이제 와서 구태여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

"...효능을 확인할 뿐이에요?
그 보물들은 전부 저희랑 싸우기 위해서 준비해둔 물건이 아니었나봐요?"

...그게 걱정되서 회복약을 죄다 망가뜨린거로구먼?

"글쎄다? 만에 하나 너희들과 놀아주다가 생채기라도 난다면 시험삼아 써보려고는 했었지."

생각해보면 회복약을 써대는 보스 같은건 반칙이고.
성능 시험을 굳이 꾸러기 수비대를 상대로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자신만만하시네요.
그런 허세부려도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미미의 도발에 피식 웃었다.

"이런? 설마 내가 저런 '기물(奇物)에 의지할 정도로 경계하는 상대'가 너희들이라고 주장하려는건 아니겠지?"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에선 이것저것 이상한 능력을 잘도 써댔잖아요?"

"그야 그 편이 더 NINJA같잖아."

"......"

내 말에 미미가 머리가 아프다는듯 눈가를 문질렀다.

"정말이지...로우란씨랑 얘기하다보면 진지해지려는 이쪽이 자꾸만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에요."

"...후후."

"왜 웃으시는거예요?"

"아니, 나도 너랑 다투다보니 아침부터 긴장했던게 바보처럼 생각되서."

"긴장하고 있었던 거예요? 로우란씨가?"

"응. 뭐,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아침 식사도 실은 손녀랑 먹는 최후의 만찬같은 느낌으로 준비한거니까.
다만 식사후부터 있었던 어처구니 없는 일들 탓에 긴장이 풀어져버렸지만...
...아, 혹시!"

말을 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작게 감탄사를 터뜨리곤 눈으로 미미를 봤다.

"설마 미미 너...이걸 노린건 아니겠지?"

"이런거라뇨?"

"아침부터 내딴에는 한껏 진지한 분위기 잡고 있었는데, 전부 초를 쳐버린 것 말야.
내 의욕을 팍 떨어뜨려서 잠시 뒤에 있을 싸움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계획이라거나?"

"......"

"이봐?"

아무래도 헛 짚은것 같은 생각이 물씬 들 무렵, 미미가 코를 쓰윽 훔치곤 어깨를 폈다.

"...과연 로우란씨! 잘도 알아차렸네요.
로우란씨가 짐작한대로, 지금까지 일은 전부 로우란씨의 전투 의욕을 떨어뜨리기 위한 계획이었던거예요!
계수나무 잎을 찢은 것도! 죽음의 물을 쏟아버린 것도 전부!"

어이, 너 방금 고의로 저질렀다는걸 자백했다구?
흐흥-!하곤 의기양양해하는 미미의 모습을 어이없이 보다가 김이 빠져버렸다.
정말이지...

...뭐, 그래도 덕분에 기분도 나아졌고.
이러니 저러니해도 역시 이 정도 분위기가 제일 안심이 되니까.




"싸울 장소는 언덕 정도가 무난하겠지.
오타마에겐 함께 갈 곳이 있다고 말해둬야겠군."

"오타마씨도 데려가는건가요?"

"그래. 어제 듣자하니 아리마 만조 녀석을 놓쳤다면서?
그럼 아무 대책도 없이 오타마를 홀로 진료소에 둘 순 없잖아.
만약에 또 다시 오타마가 납치된다는 전개 따위가 일어난다면, 우리들의 싸움이고 뭐고 엉망이 될테니까.
뭐, 구출극을 하려다가 이틀이 지나버린다면 나야 상관없지만.
'이틀'이 지난 시점에 쓰일 너희들의 '비장의 수'를 볼 기회가 될지도 모르고."

"...오타마씨를 데려가면 오타마 앞에서 로우란씨의 정체를 드러내게 될 텐데요?"

"네가 그런걸 걱정해주는거야?
각오는 이미 했다고 어제 말했다구?"

"...그렇게 오타마씨가 소중하다면, 이야기 나라를 부수는걸 포기하면 되는거잖아요?
그러면 아리마 만조에게 오타마씨가 납치될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될텐데."

"이봐...나는 '사령 사천왕'이지, '꾸러기 수비대'가 아냐.
너희가 이야기 나라를 구하려고 하는 것처럼, 나도 해라 총사령관님을 위해서 행동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뭐, 만약 조건만 맞는다면 그 제안을 고려해봐도 좋아."

"정말인가요?"

"응. 내가 바라는 것 중 하나가 이뤄진다면, 나도 굳이 이야기 나라를 부술 이유는 없겠지."

"뭔가요 로우란씨가 바라는건?"

"알고 싶어?"

"물론이에요."

기대를 담은 눈으로 바라보는 미미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오라 공주가 해라님에게 용서를 구하는걸 보고 싶어."

"......"

미미의 얼굴이 무표정해졌다.
미소를 지우지 않는 날 가만히 응시하던 미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로우란씨는 사람을 화나게 하는데 능숙하시군요?"

"그런가?"

"...정말로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겠어요."

"하핫~! 기대할께."




『금일 휴업』이라는 팻말을 문에 걸고 꾸러기 수비대와 오타마와 함께 진료소를 나섰다.

걸음을 옮기는 미미를 뒤따라가면서 꾸러기 수비대는 이따금 확인하듯 날 쳐다보았다.
경계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오는 똘기, 호치, 드라고, 강다리.
특히 똘기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면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걸로 봐선 이미 내 정체는 들통난 것으로 보였다.

그런 수상한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날 따라 걷는 오타마가 불안한 듯 내 소맷자락을 잡았다.
말없이 웃곤 오타마의 손을 잡아주자 오타마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어느덧 마을로부터의 거리가 제법 멀어졌다.
한참 언덕을 오르던 미미 일행이 걸음을 멈췄다.
그 뒤를 따라가던 나와 오타마도 자리에 멈춰섰다.
천천히 뒤로 돈 미미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오타마씨. 이리로 오세요."

"...싫어요."

오타마가 내 손을 꽉 쥐었다.
그런 오타마의 태도에 곤혹스러워하며 미미가 재차 오타마를 불렀다.

"오타마씨?"

"......"

"...부탁이에요.
여기로 와주세요 오타마씨."

"...뭔가 이상해요."

"네?"

"어째서 여러분은...'그런 눈'으로 저희를 보고 있는건가요?"

두려움, 슬픔, 분노. 그런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걸 깨달았는지, 오타마가 내 손을 잡은채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할아버지...어서 돌아가요.
지금 저분들은...어쩐지 무서워요."

"오타마야..."

내 팔을 잡고 재촉하는 오타마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날 응시하던 미미가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싫은 역할이나 떠맡기고...
원망할거에요 로우란씨..."

미미가 크게 심호흡하곤 눈을 떴다.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내게 똑바로 향한채 미미가 외쳤다.

"로우란씨!
이야기 나라에 침입해서 알라딘의 몸을 빼앗은 당신을 퇴치하겠어요!
오타마씨에게 진짜 할아버지를 돌려줄 시간이에요!"

미미의 선언에 내 팔을 당기고 있던 오타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저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예요 미미씨?"

"물러나 있으렴 오타마야."

"할아버지...?"

오타마의 팔짱을 풀곤 오타마에게 한걸음 물러나며 웃었다.

"오타마 네 말대로 저 분들은 날 찾아온 손님이 맞더구나.
아쉽지만...언젠가 찾아올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을 뿐이란다.
위험하니 너는 잠시 물러나 있으렴."

"위험하다니...저분들이 할아버지께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거죠?"

"...내 이름은 '아라기토 진나이'가 아니란다."

"네...?"

"로우란. 그게 내 이름이지."

"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

"이런 얘기예요 오타마씨."

침착한 태도로 미미가 요지경을 내게 겨눴다.



"사령조람(邪靈照覽)!"



요지경에서 쏘아진 강렬한 녹색빛이 나를 감싼다.
불타는 듯 온 몸이 뜨거운 가운데 몸에서 푸른 불길이 솟아오른다.

"우, 오오...아아아아------!!!"

"할아버지!?"

푸른 불길로 변한 내가 알라딘의 몸에서 빠져나온다.
불덩이 상태로 허공에 떠있길 잠시, 길쭉하게 늘어난 불덩이 속에서 재구성되는 몸의 감각이 점차 선명해진다.
이 고통. 이 힘. 그리고 몸을 두른 갑옷의 무게.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본 육체의 감각.

한껏 고양된 기분에 두 주먹을 움켜쥔다.
눈앞에서 긴장한 듯 자세를 잡고 있는 꾸러기 수비대를 마주보며 이빨을 드러내 웃었다.

자아, 그럼 시작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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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완성이 덜되서 6화 분량을 다시금 쪼갭니다.=x=;
덕분에 에피소드 종료는 7화로 미뤄졌네요;
죄송합니다(_ _);

그럼 주말 잘보내시고 다음화에 뵙겠습니다~!^^;




p.s. (이름 수정)아라이 만조 -> 아리마 만조

이름에서 실수가 있었네요-_-;

수정하였습니다.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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