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 3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은 누구니?"

『새초미』

"뭐?'

『새초미요.』




"...사과 먹고 싶다."

"하아...?"

거대 콩나무로 반파된 사령궁 복구를 끝내고 며칠 뒤, 여느 때처럼 쥬켄과 노닥이며 휴칙을 취하던 중,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쥬켄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심코 말을 꺼낸 나도 쥬켄의 반응에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고.
방금 전 내뱉은 말의 경위를 곱씹어 보다가 마주앉은 쥬켄에게 눈길을 보냈다.

빨간 신발과 빨간 오픈핑거글러브.
노란 고양이 눈 문양이 박힌 붉은 갑옷과 그 아래에 녹색 허리띠로 고정한 분홍 치파오.
슬릿 사이로 보이는 연보랑 타이츠에 감싸진 늘씬한 다리.
그리고 허리까지 오는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
...응. 원인은 저거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거야 너?"

물끄러미 응시하는 시선이 거북한 듯 시선을 피하는 쥬켄에게 손가락을 들어 머리카락을 가리켜 보였다.

"네 머리카락 말인데."

"이거?"

양옆으로 세가닥씩 갈라진 붉은 머리칼을 쥬켄이 매만져 보이자 고개를 끄덕였다.

"빨간 색이잖아."

"그런데?"

"사과도 빨갛지."

"응? 그야 뭐,"

"그리고 「사과」하면 「백설공주」잖아?"

"어...응?"

"그러니까, 이번에 침공할 이야기 나라는 「백설공주」로 하자."

"...어째서일까? 나말야, 지금 로우란 네가 하는 말을 도무지 따라가질 못하겠는데..."

골치가 아픈듯 쥬켄은 미간을 문지르며 얕은 신음을 내뱉었다.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터무니 없다는건 둘째 치고, 우선 하나 지적하고 싶은게 있는데 말야.
백설공주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예전에 공격했던 곳이거든?"

그렇다. 지금와서 말하는것도 그렇지만, 사실 백설공주 이야기는 해라가 '스파이 로봇'을 통해 꾸러기 수비대의 존재를 알아낸 곳이다.
오오라 공주의 곁에서 이야기 나라를 지키고 원더랜드의 평화를 수호하는 12지, 꾸러기 수비대.
오오라 공주에게 복수하고픈 해라는, 원더랜드의 오오라 성을 공략하기 위해 흑의 겐엔과 양동 작전을 세웠고, 결국엔 실패했다.
패배후 이마에 피를 흘리며 귀기어린 표정을 짓던 해라의 모습은 꽤나 으스스했지.

아무튼, 쥬켄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이야기 나라를 다시금 침공하지 못할 이유는 또 뭔가.
작품 외적으로 보면 이야기 전개의 신선함을 위해 재침공을 피하는걸지도 모르겠지만.

"그거야 나도 알지만 적어도 한번은 재침공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어째서?"

고개를 갸웃하는 쥬켄의 앞에서 양손에 허리를 얹고 당당히 선언했다.

"내가, 사과를, 먹고 싶으니까."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물론."

확신에 찬 내 대답에 쥬켄은 한심하다는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쳐다봤다.

"난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를 뻔뻔스레 입에 대는 네가 어쩔수 없을 정도로 한심해 보이는데..."

"너무 그렇게 괄시하지 마. 지금 내 머릿속은 벌써부터 사과로 가득해서 어쩔수 없을 지경이니까.
생각해봐. 새빨갛게 잘익은 달콤한 사과를. 반들거리는 새빨간 껍질을 베어물면 드러나는 꿀처럼 샛노란 속살.
입안 가득히 퍼지는 새콤달콤한 맛을 상상하면 지금도 군침이 돌아. 이런 내 맘을 넌 알 수 있겠어?"

"지금 네가 바보같을 정도로 사과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은데."

"거기다 만약, 이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난 분명 사과 금단증상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겠지."

"아니, 거기까지 괴로워하지 않아도...애초에 「사과 금단증상」이란게 뭔데?"

"빨간 것만 보면 식욕으로 제정신을 못차리게 되는 현상."

"하아아..."

시덥잖은 나와의 대화에 슬슬 넌더리가 난다는 듯 쥬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쥬켄? 반응이 좀 쌀쌀맞지 않아~?"

"알게 뭐야 그런 대충 지어낸듯한 증상 같은거 발병하든 말든."

"에에...매정해."

귀찮다듯 퉁명스레 대꾸하는 쥬켄에게 좀 더 반응을 이끌어내고 싶어 조금 심술궂은 미소로 불렀다.

"그러고보니 쥬켄."

"왜? 사과 바보야."

"네 볼은 새빨간게 참 먹음직스러워보여."

"어...뭐라고?"

황금빛 눈동자를 깜빡이며 날 올려다보는 쥬켄에게 양팔을 벌리며 샐쭉 웃어보였다.

"어때? 그루밍 해줄까?"

"결국 그게 목적이지? 이 저질아!"

퍽!

"구훅!?"

사정없이 옆구리를 파고드는 묵직한 훅에 숨이 막혀 주저앉았다.
그런 날 몰아붙이려는듯 날아오는 쥬켄의 걷어차기를 황급히 몸을 굴려 피하곤 양팔을 내저었다.

"자, 잠깐만 쥬켄! 농담! 농담이야!
혀로 핥아주기 같은건 고양이끼리 친애의 표현이잖아?"

"시끄러 이 엉큼한 능구렁이야!"

씩씩 거리며 날 노려보던 쥬켄은, 주저앉아선 옆구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내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왕 넘어진거, 아예 바닥에 대(大)자로 누운채로 천장을 보며 체력을 회복하고 있자, 딴죽을 걸기도 귀찮아진건지 쥬켄은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해진 쥬켄의 앞에서 누워있다가,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을 따라 이리저리 바닥을 뒹굴었다.

"아아~ 사과 먹고 싶어어~"

"뒹굴거리면서 말하지마. 네가 애야?"

애 맞습니다. 빙의했건 어쨌건 쥬켄 너나 나나 태어난지 1년도 안됐잖아.

"솔직히 사과도 먹고 싶긴 하지만...어쨌든 밖으로 나가고 싶어.
사령궁 같이 어두침침한 곳에 언제까지고 있어야 하다니 심심해서 몸이 근질근질하다구."

"...거기엔 나도 동의해. 이런 따분한 곳에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건지.
나도 하루빨리 이야기 나라랑 원더랜드에 놀러...침략하고 싶다구."

쥬켄... 너도 이제와선 놀러나가고 싶다는 걸 숨길 생각도 안하는구나.
나도 이야기 나라를 망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출동하는게 아니긴 하지만.
확실히 해라의 질책을 피하려면 사과 탐험을 하는 김에 겸사겸사 다른 것들도 조사해둬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둔 출동 이유 정도는 마련해 두고 있다.
이번 이야기 나라에서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적당히 기분은 풀렸어 로우란?"

"그래. 사과를 먹고 싶다는 기분 빼곤."

"적당히 포기하는게 낫지 않아?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이야기 나라에 갈 수는 없다니까."

"후후, 쥬켄. 그런걸 할 수 있으니까 사천왕인거잖아. 지금부터 내가 그걸 증명해줄께."

"옆구리를 어루만지면서 잘난듯 말해봐야 하나도 멋지지 않거든?"

한심하다는듯 쳐다보는 쥬켄을 무시하고 알현실로 향하는 통로를 응시했다.

"해라님은 지금쯤 알현실에 계시려나?"

"야, 설마 너 정말 가려고?"

농담이 아닌걸 알았는지 황당해하며 말리려는 쥬켄에게 한손을 흔들어주곤 알현실을 향해 돌진했다.

"이야기 나라에 가거든 기념품 들고 올께~!"

"자, 잠깐만! 그런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 정말 해라님께 통할거라고...!
...아 진짜! 어떻게 되든 난 몰라!"




"허락 받고 왔어."

"거짓말!?"



경악한채 떠들어대는 쥬켄을 뒤로하고 냉큼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로 갈 채비를 서둘렀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에 온건 좋은데 말이지...

마음에 드는 답변을 얻을때까지 집요하게 캐묻는 왕비가 있을거라곤 생각 못했다.
적어도 그 독살스럽고 심술궂음이 물씬 넘쳐흐르는 인상부터 고치고 온다면, 아무리 왕비가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같은 외모라 해도 나도 조금쯤은 대화에서 양보란걸 할 수 있었겠지만...
거울에 빙의한 이후 틈만 나면 '세계 제일의 미인은 누구니?'라는 왕비의 질문에 답해야 했고, 매번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나도 차곡차곡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는 누구니?"

『새초미요.』

"...다시 한번 말해주겠니?"

『새초미요.』

"흐음..."

툭- 툭-

망치를 거울 앞에 흔들어대면서 뭘 말하고 싶으신겁니까 왕비님?

"자아,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

『새초미』

까앙-!

『아얏!?』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건 누구지?"

『새초미래두요.』

깡-! 까앙-! 까아앙-! 까앙-! 깡깡-!

『그-만-둬-!』

"후우 후우...이제 세계 제일의 예쁜이는 누구지?"

『새초미입니다. 「깡!」고장난거 아니니까 그만 때려요!』

나는 요술 거울이지, 45도 각도로 두드리면 고쳐지는 브라운관 TV가 아니라고.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이는?"

『새초미. 아까부터 단어만 다르지 똑같은 질문만 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자는!?"

『아 글쎄 새초미라니까!!!』

"......"

『......』

"세상에서가장뷰티풀한여자는?"

『SAECHOMI.』

"세상에서가장러블리한여자는?"

『새초미.』

"세상에서가장어글리한여자는?"

『그건 너.』



와장창-!!!



『I CAN FLY---!!!』



결국엔 왕비도 나도 히트업해서 신경질을 부리다가 제 화를 못참은 왕비에게 창밖으로 내던져진 결과가 지금 이 꼴이다.
조금쯤은 왕비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이미 지나간 열차다.

...뭐, 상관없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목적 달성을 위한 계획관 전혀 상관 없는 해프닝이고, 풀숲에 방치된 지금 상황도 그 나름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고.
왕비가 날 찾으러 오거나, 만에 하나 꾸러기 수비대가 날 발견할 때까지 잠시 쉬도록 할까.
일단은 햇살이 눈부시니까 거울 표면은 먼지로 흐릿하게 가려두고.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어라? 이런 곳에 거울이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버려져 있는걸까요?"

"어? 설마 이 거울..."

근처에서 바스락 풀을 밟는 걸음 소리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에 누군가 있나?
잠에서 깨어났지만 눈앞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고보면 자기 전에 거울 표면을 먼지로 덮어 뒀었지.
이대로 묵묵히 입다물고 있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누군가 날 들어올렸다.
누군가 가까워지는 기색 뒤, 뜨거운 입김이 거울 표면에 번졌다.

하아아-

뽀득 뽀드득.

하아-

뜨거운 입김이 거울 표면을 덮고, 당황스러운 가운데 수건으로 정성스레 거울을 닦는 손길이 있었다.
먼지가 걷히자 본 시야엔, 주황색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거울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다시금 소녀의 입이 천천히 벌어진다.

"하아아..."

우와아... 눈을 뜨고서 처음 보는 광경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벌어진 입 안으로 보이는 고른 치아와 잘게 떨리는 목젖, 물기를 머금고 반들거리는 붉은 혀가 보인다.
뽀드득하고 표면을 정성스레 닦는 소리에 정신이 각성하며 눈 앞의 상대를 인식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주황색 머리칼과 귓가와 앞머리에 넣은 붉은 브릿지. 그리고 짙은 속눈썹 아래 아쿠아 블루의 눈동자.
꾸러기 수비대 멤버인 닭의 정령 「키키」다.
인간 모드인 지금의 모습에서 닭의 흔적을 찾아보래야 닭벼슬 모양의 붉은 앞머리, 날개 모양의 흰 손목밴드, 엉덩이께에 달린 흰꼬리털 정도지만.
키키의 어깨 너머로는 쫑긋거리는 새초미의 토끼귀와 은발, 미미의 양의 귀와 웨이브진 분홍 머리칼이 보인다.
참고삼아 확인해 본 키가 큰 순서는 키키, 미미, 새초미.
그나저나 버려져 있는 더러운 거울을 참 정성스레도 닦아준다 싶은 차에, 미미가 키키를 불렀다.

"그런데 이게 정말로 요술 거울이 맞을까요?"

"그렇지 않을까? 저번에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에 왔을 때 봤던 거울과 똑같이 생겼는걸. 어째서 이런 곳에 버려진건진 몰라도."

"아, 과연..."

과연.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는 이번이 「두번째」방문이니까 요술거울도 금방 알아봤단 말이로군?
확실히 그건 두번째 방문이 가지는 장점이라 할 수 있겠네.
그럼 이제 꾸러기 수비대도 도착했으니 쉬는건 여기까지로 하고 거울의 역할에 충실할 때구나.
생각을 정리하곤 거울 표면을 닦는걸 막 끝낸참인 키키에게 말을 건넸다.

『...좋은 꿈 꾸셨습니까?』

"앗, 깜짝이야!"

"방금 말했죠?"

"응. 말했네."

소란스러운 셋이 진정하길 기다려 다시 입을 열었다.

『더러워진 절 깨끗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누구신가요?』

"키키야." "난 새초미." "미미라고 해요."

『그렇군요. 전 요술거울이라고 합니다.』

"정말 요술거울이야?"

"새초미도 참.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잖아."

"아...!"

"요술거울하면 역시 이거지~!"

키키가 샐쭉 웃으며 나를 들어올렸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누구니?"

『키키님입니다.』

"어?" "에?" "엣?"

놀란 셋 중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뜬 키키를 마주한다.
겨드랑이를 드러낸, 몸에 착 달라붙는 군청색 민소매 상의는 지금와서 보니 제법 대담한 패션이었네.

『섹시하고 유려한 굴곡의 몸매. 맑고 푸른 눈동자.
더불어 강인함 속에 상냥함을 겸비한 섬세함.
키키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죠.』

"아, 아하하~! 이 녀석도 참 입바른 소릴 하네."

곤란해 하면서도 쑥스러운지 키키는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어색하게 손을 내저으면서도 헤실헤실하는 키키를 보다가 미미가 중얼거렸다.

"이상해요."

"뭐, 뭐야? 내가 제일 예쁘단 소릴 들은게 그렇게 이상해?"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부루퉁한 키키의 모습에 미미가 당황해 부정하곤 내게 묻는다.

"거, 거울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는 누구죠?"

『그야 물론 미미님입니다.
곱게 웨이브진 보송보송한 분홍머리카락.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눈동자.
누구보다 조신하고 다소곳한 태도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은 미미님임에 틀림없습니다.』

"엣...고, 고마워요."

"아, 치사해! 나도 해볼래!"

당황한채 쑥쓰러워하는 미미 옆에서 새초미가 냉큼 끼어들곤 붉은 눈동자를 깜박였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건 누구야?"

『핫핫핫~! 그야 물론 새초미님이죠.
이른 새벽에 내린 첫눈처럼 새하얀 피부. 은하수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 루비처럼 예쁜 붉은 눈동자.
경쾌하고 발랄한 당신은 어디에서든 환하게 빛나고 있겠지요.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이란 바로 새초미 님을 위해 있는 말이랍니다.』

"꺄아~♪"

이야아...양뺨을 감싸며 즐거워하는 새초미라니, 이거 참 신선하네.
이렇게나 활기찬 새초미는 처음봤다. 이번으로 겨우 두번째 만남이지만.
첫 만남 때 울적해하던거랑 달리 활기찬 미소가 정말이지 마음에 든다.

"봤죠?"

"확실히 이상하네."

미미가 동의를 구하자 김샜다는듯 키키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이봐 너. 정말로 요술거울 맞는거야?"

『그 무슨 실례되는 말씀을. 세상에 말하는 거울이 저말고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묻는거야.
나도, 미미도, 새초미도 제일 예쁘다니, 왜 그렇게 줏대가 없어?
요술거울인데 누구에게나 세계 제일의 미녀라고 말하다니 이상하잖아?"

『...아아, 그거 말입니까?』

"뭐야 그 뜸은?"

『망치로 얻어맞고 창밖으로 내던져지고 나니 싫어도 이렇게 바뀌더군요.』

"「「「엑!?」」」"


경설(鏡設)

어떤 거사가 거울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먼지가 끼어서 흐릿한 것이 마치 구름에 가린 달빛 같았다.
그러나 그 거사는 아침저녁으로 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가다듬곤 하였다.
한 나그네가 거사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든지, 아니면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거사의 거울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때가 묻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항상 그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거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얼굴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맑고 아른아른한 거울을 좋아하겠지만, 얼굴이 못생겨서 추한 사람은 오히려 맑은 거울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추한 얼굴을 한번 보기만 해도 깨뜨려 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거울을 깨뜨려 버릴 바에야 차라리 먼지에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낫지요.
먼지로 흐리게 된 것은 겉뿐이지 거울의 맑은 바탕은 속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만난 뒤에 닦고 갈아도 늦지 않습니다.
아! 옛날에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히려 흐린 것을 취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이를 이상스럽게 생각합니까?"

하니, 나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왕비님의 심기를 거스르고 버려진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때론 진실을 말하기 보다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요.
거울 표면을 흐린 것도 옛 이야기의 교훈을 본받기 위함이었죠.』

"흐응...그럼 우리에게 서로 다른 대답을 한 이유는 우리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였단 거로구나?"

『그렇긴 합니다만, 적어도 마음에도 없는 아부는 아니었습니다.
장담하건데, 여러분은 모두 제가 만난 분들 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미인인걸요.』

"들었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미인이래! 헤헷~"

"어, 그건 참 고마운데. 아, 아니, 별로 신경쓰고 있진 않았지만."

『신경쓰고 있었네요. 압니다.』

"......"

『아니, 농담이에요.
농담이니까 그 시꺼먼 걸레는 치우고 얘기하죠?』

말없이 걸레를 꺼내들곤 거울에 가져다 대는 키키의 행동에 질겁하며 달랬다.

"하아...뭐, 좋아. 그나저나 요술 거울이 이런 상태면 곤란한데.
거울은 왕비의 물음에 제대로 「백설공주」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잖아?"

"그건 그래. 이래서야 백설공주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을텐데."

"어쩌면 이게 바로 사령 몬스터의 계획일까요?"

『...바라신다면 비위 맞추는건 그만할까요?』

"어? 그렇게 간단히?"

눈을 껌뻑이는 키키에게 긍정했다.

『어쩐지 비위를 맞춰드리는것 만으론 순수하게 기뻐하진 않으시는 듯 보여서...
솔직하게 말하든, 거짓으로 말하든, 어느쪽이든 곤란하다면 기왕이면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더 낫겠죠.』

"잘 생각했어 거울아!"

"이거 생각보다 일이 수월히 풀리겠는걸?
거울만 제대로 답한다면 이야기 나라는 원래 전개대로 무사히 진행될테니까."

"그러게요."

호오...과연 그럴까?
그런 식의 안이한 대사를 내뱉는건 실패하는 패턴이라구?

"...쉿, 잠시만."

갑자기 새초미가 귀를 쫑긋하더니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왜그래 새촘아?"

"성문 쪽에서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아마 왕비님이겠죠. 절 회수하러 오신걸테죠.』

"아, 그럼 우린 근처 수풀에 숨어있을께."

"대답 잘 부탁해?"

『솔직하게 말하는거라면 예전부터 해왔던거니까 문제없어요.
애초에 쫓겨난 것도 그 탓이고.
또 화가 날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아하하, 미안. 그럼 힘내줘~!"

다짐과 응원의 뒤에 새초미, 미미, 키키는 근처 수풀에 몸을 숨겼다.
셋이 몸을 숨기고 잠시 후, 저만치서 두리번거리며 무언갈 찾는 왕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왕비님! 당신의 거울이 돌아왔습니다!』

"...내가 온거거든?"

『그렇죠.』

푸른 로브를 입은 오뚜기 몸매에 대충 그린 호박같은 얼굴의 왕비가 인상을 찡그린채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날 내려다 보고 있다.

『겨우 와주셨군요 왕비님!』

"흥! 깨져버렸나 생각했는데 어지간히도 튼튼하구나.
기분은 어때? 풀숲에서 적당이 반성했느냐?"

『네! 그야 물론이죠!
그렇잖아도 방금까지 미혹에 빠졌던 자신을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듯 왕비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좋아. 그렇다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바닥에 놓인 날 집어들고선 왕비는 가볍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커흠.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이는 누구지?"

『새초미요.』

"......"

『새초미요.』

입을 다문 왕비에게 의기양양한 태도로 선언했다.

『훗, 진실은 언제나 하ㄴㅏ「반성은 개뿔이---!!!」

와장창!

『끄아아---!?』



바닥에 내팽겨쳐져 비명을 지르는 날 자근자근 밟으며 씩씩 거리던 왕비는 다시금 나를 집어들었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라 거울아.
내가 그 새초미란 녀석 보다 못한게 뭐지?"

『우선 「토끼귀」가 없,』

"그녀석 토끼였냐!?"

까앙-!

『아팟~!? 뭐하시는거에요 왕비님!』

"내가 할 말이다! 이 빌어먹을 거울이!
누가 동물 중에 미인 고르랬냐!
사람 중에서 답하라고!!!"

『거참 뭘 모르시네!
자고로 바니걸하면 옛부터 섹시함을 어필하는 요소로 정평이 나있,』

"닥쳐! 이 정신나간 짐승 애호가가!!"

까아앙---!!!

『FREEDOM---!!!』



왕비의 지팡이 풀스윙에 직격해 하늘을 날았다.
원바운드 투바운드 쓰리바운드.
물수제비 마냥 몇번이나 풀바닥을 튀어오르다가 새초미 일행이 숨은 수풀 너머로 날려졌다.

날아온 내게 놀란 미미가 엉겁결에 받아들자, 옆에서 새초미가 내게 따졌다.

"얘기가 다르잖아! 너 어째서 백설공주라고 말하지 않은거야?"

『에? 그야 당신보다 예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이대론 이야기 나라가..."

"...「당신」?"

"아..."

씩씩대던 왕비가 수풀속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눈을 번뜩였다.

"오호라...네가 바로 거울이 주구장창 떠들어대던 그 새초미라는 계집애로구나?"

"에?"

"너만 해치우면 내가 세계 제일의 미녀가 되는 거렸다?"

"어, 어라..."

식은땀을 흘리는 새초미를 노려보는 왕비의 말에 경악해 외쳤다.

『그런!? 세계제일의 미녀가 되겠다니...!
설마 세상 모든 여자의 씨를 말릴 생각입니까!
그 무슨 사악한...!』

빠각-!

아, 왕비 손에 들린 지팡이에 금이 갔네.

"네놈은 스크랩해서 화로에 처넣어주마!!!"

부득부득 이를 갈며 왕비가 트럼프카드 뭉치를 집어던지곤 주문을 외웠다.
주문과 함께 트럼프 카드에서 늑대 형상의 유령이 솟아오르기 무섭게 새초미 일행은 몸을 돌려 힘껏 뛰었다.

"「「「도망쳐!」」」"

"세계제일의 미녀는 나야아아아!"




"하아하아..."

"헥헥..."

"이, 이젠 더이상 못뛰어요..."

한참을 뛰어 왕비의 추격에서 벗어난 셋은 사이좋게 바닥에 쓰러졌다.
도망치는 와중에 의리있게 나를 챙겨온 셋에게 감사.
거기 있었으면 왕비의 망치질에 고통받거나 아직도 똑같은 질문을 끝없이 들어야 했겠지.

"이대론 안돼. 만약 또다시 왕비랑 얽히면 일이 까다롭게 될거야.
적어도 새초미만이라도 숨지 않으면..."

"어쩌지?"

"변신으로 모습을 바꾸는건 어떨까?"

"아! 그렇지."

미미의 제안에 새초미가 반색하며 왼손을 옆으로 휙 뻗었다.
순간 빛무리와 함께 꼭대기에 토끼장식이 달린 나선무늬의 요술봉이 나타났다.

"Rabbit Carrot Pretty Change~!"

몸을 돌리며 크게 휘둘러진 요술봉의 끝에서 노란 별과 분홍색 빛줄기가 폭죽처럼 튀어올랐다.
분홍 빛줄기 속에 감싸진 새초미의 몸이 점점 성장하며 몸의 윤곽이 뚜렷해진다.
빛이 사라지자 나이스 바디로 바뀐 붉은 바니걸 의상의 새초미가 모습을 드러낸 채 귀엽게 포즈를 취했다.


"짠~! 라비쨩이에요~!"

바니걸 왔다━━━━━━━━━━(˚∀˚)━━━━━━━━━━!!!!!!!

거울이 박살날 기세로 환호하는 가운데 새초미, 미미, 키키가 일제히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바니걸 차림의 새초미가 볼을 부풀린채 날 째려봤다.

"자, 이제 어째서 백설공주가 아니고 날 세상에서 제일 예쁘단 소릴 했는지 얘기해봐.
너 때문에 우린 오늘 하루종일 도망쳐다녀야 했으니까."

『결혼해주세요.』

"무, 뭐..."

『처음 봤을때부터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뻐끔뻐끔 입을 여닫는 새초미의 반응에 키키가 히죽 웃었다.

"어머나~ 거울에게 고백도 받고 새초미는 좋겠네."

"노, 놀리지마 키키!"

"뭐어~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새초미 대신 앞에 나선 키키가 삐딱한 어조로 물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라고?"

『새초미라니까 그러네 깍쟁이 언니.』

"까, 깍쟁이?"

이마에 핏대가 선 키키가 입술을 씰룩였다.

"그, 러, 니, 까아~! 어째서 백설공주가 아닌거야?
너무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걸까나? 응? 응?"

뽀드득 뽀드득

『우아아아!? 걸레가! 걸레가아아---!?』



"자, 대답은?"

『무심코 말했습니다. 반성은 하지 않,』

뽀득 뽀득

『아아아아아!? 더렵혀진다아아아!?』

"무슨 거울이 이래? 완전 푼수잖아?"

걸레를 치운 키키가 어이없다는듯 중얼거렸다.

『너무해! 무저항의 거울을 이렇게 심하게 다뤄도 되는겁니까? 귀신! 악마! 왕비님!』

"자업자득이야. 그나저나 거기까지 왕비가 싫어?"

『당연하죠! 제가 얼마나 왕비에게 시달렸는데요.
무엇보다 아름다움에 미쳐 사람을 해치우려고 했던 비인외도잖습니까?』

"아하~! 그렇구나. 그럼 난 그런 왕비랑 동격이란거네?"

『그렇게 되는군요.』

"하하하 이자식."

뽀득 뽀득

『히이이-!?』

웃는 얼굴로 걸레를 문질러대는 키키에게 시달리던 차에, 곰곰히 생각에 잠겨있던 미미가 중얼거렸다.

"...역시 이상하네요."

"응? 뭐가 말야?"

"어째서 거울씨는 새초미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야 처음 만났을때 우리가 자기소개를 했으니까잖아."

"아뇨. 그게 아녜요.
왕비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세요."

- 네가 바로 거울이 주구장창 떠들어대던 그 새초미라는 계집애로구나?

"우리를 만나기 전부터 거울은 새초미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거라구요."

"그러고보니..."

"그럼 거울은 대체 어떻게 새초미를 알고 있었던 걸까요?"

의심스러운듯 지그시 응시해오는 셋 눈길이 꽂혔다.

『아, 아하하~ 그렇게까지 빤히들 쳐다보시면 부끄럽잖습니까~』

"...혹시 너..."

새초미가 조금 주저하면서 물었다.

"...로우란, 이야?"

『......』



"...저기, 설마 정말로,"

스르륵-

조용히 거울을 먼지로 덮었다.

"......"

"아. 도망쳤네." "도망쳤네요."

부들부들.

거울을 꽉잡은 새초미의 양손이 떨린다.

빡-빡-!

순식간에 거울을 닦아낸 새초미가 매섭게 눈을 치켜세웠다.

"야! 너 로우란이지!?"

『HAHAHA, 그런 멋진 이름의 신사분은 대체 어디의 뉘신지 저로선 도무지,』

"좋아하는 색깔은?"

『파란색.』

"로우란 맞잖아! 당장 나와!"

빨간 눈을 부릅뜬 새초미가 거울을 꽉쥔 양손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어지러워! 막무가내로 흔들지마!
「사령조람(邪靈照覽)」을 쓰라고! 네 뒤에서 요지경을 든 미미가 난처해하며 널 부르고 있잖아?

『아, 자, 잠깐만,』

"잠깐이고 자시고!"

거칠게 상하로 붕붕 거울을 휘두르는 새초미의 기새에 채 말을 잇지도 못했다.

...아, 이젠 무리네.
힘껏 휘둘러진 거울 밖으로 내팽겨쳐지듯 튕겨나온다.

"『스페셜 다이나믹 롤링 어택-!』"

쿠당탕! 빠악-!

튀어나온 기세로 힘껏 바닥을 구르다가 나무 밑둥에 요란하게 충돌했다.
뒤통수가 아리면서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아, 아야야..."

화끈대는 뒤통수를 부여잡고 웅크린채 끙끙 신음을 흘리다, 이상하게 조용한게 신경쓰여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

"......"

눈물로 번진 시야 너머로 미묘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셋의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수습하지 이거...




"「「「식도락 여행?」」」"

"그래. 사령궁 안에 틀어박혀 있다보니 뭔가 맛있는걸 먹고싶어져서 말야.
먹을것 관련 이야기들을 찾으면서 쓸만한 걸 모으고 있었지."

뒤통수에 난 혹을 매만지면서 답했다.

"그럼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를 고른건..."

"사과가 먹고 싶으니까."

"그런 이유로 괜찮은건가 이녀석..."

무심코 딴죽을 거는 키키에게 당당히 코를 세웠다.

"훗, 욕망에 솔직한건 우리에겐 미덕이지."

"안돼. 글러먹었다 이건..."

"납득할 수 없는 이유인걸요? 사령 사천왕인데."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라구 미미야.
너희도 사과 하나씩 먹을래? 그렇잖아도 사과는 많이 있으니까. 아침의 사과는 미인을 만든다고도 하잖아?."

"나 참 이 녀석은..."

"새초미 넌 어때? 하나 먹지 않을래?"

"응. 잘 받을께."

"자, 잠깐만요!?"

새초미가 웃으며 사과를 받아들려는 차에, 화들짝 놀란 미미가 재빨리 새초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돼요!"

"왜, 왜그래 미미야?"

갑작스런 미미의 제지에 새초미와 키키가가 당황했다. 미미가 나를 경계하며 말했다.

"로우란씨! 당신의 목적을 알아챘어요!"

"응? 내 목적?"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였어요. 어째서 새초미가 백설공주 대신이 되었는지 알았다면 깨달을 수 있는 문제였는데!"

"그야 새초미가 제일 예쁘니까. 물론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갖고 있기도 했지만."

"엣, 고, 고마워."

"중증이네 저건." "......새초미에게 사과를 건네려는 로우란씨의 진의는...!"

"계속하는거냐?"

"꿋꿋한 아이니까."

거기엔 나도 동의한다지만, 대견스레 바라보는 키키는 뭔가.
기세를 되찾은 미미의 에메랄드 색 눈이 반짝하고 빛난다.


"로우란씨. 당신, 새초미에게 독사과를 먹일 셈이었던거군요!"

파아앗-!

난데없는 삿대질에 멍하니 있다가 확인차 물었다.

"그러니까 미미 네 의심은...그거지?
내가 「꾸러기 수비대 말살계획」 같은걸 세우고 있지 않느냐는거.
「원숭이와 게의 싸움」이야기 나라에 원숭이 정령을 등장인물로 만들어서 해치우려는 것처럼?"

"과연! 그런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계셨던거군요?"

"예를 들면의 이야기야. 예를 들면."

원작대로라면야 몽치가 원숭이 역을 맡아서 게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겠지만, 내가 그런일을 할 생각은 없고.
손을 내저으며 부정하자 미미가 옆구리에 손을 얹곤 흐흥-! 코를 울렸다.

"하지만 유감이에요. 이제 로우란씨의 검은 속셈이 드러난 이상 뜻대로 되진 않을테니까요."

유감인건 자네의 추리 실력이네 왓슨군.
아니, 보통 사령몬스터라면 그렇게 할테니 이상한 추리는 아니려나.

"그 음험한 계획의 일환으로 새초미가 백설공주의 대신 독사과를 먹고 잠에 빠지게 만들 속셈인거죠?"

"핫핫핫. 설마 그럴리가."

"시치미 떼지 마세요. 이 상황에서 사과를 준다는데 의심하지 않으란게 이상한거니까요.
핫!? 설마 잠에 빠진 새초미에게 이상한 짓 할 속셈은 아니겠죠?"

"이상한 짓?"

고개를 갸우뚱하자 미미가 낯을 붉히곤 우물쭈물했다.

"키...키스라든가..."

"에엣!? 미미 너 무슨 말을 하는거야!?"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지켜보던 새초미가 덩달아 얼굴이 새빨개진다.

"하, 하지만 백설공주의 잠을 깨우는건 왕자님의 입맞춤이잖아요. 그러니까..."

"로, 로우란은 상관없잖아!
쟤는 왕자님이 아니고 사령사천왕이니까!
로우란 너도 입다물고 있지말고 뭐라고 말 좀...왜 갑자기 눈을 빛내는거야?"

가만히 주먹으로 손바닥을 퐁-하고 두드렸다.

"...그런 방법이 있었네!"

"엣?" "에엣!?" "어이!?"

벌떡

"잠깐 왕비한테 독사과 받아올께!"

"기, 기다려 이 바보야!" "멈춰요!" "얌마 그만둬!?"

"이 거 놔-!"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키스로 잠을 깨우는 순간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가 원래대로 돌아가버리므로 시도는 포기했습니다."

"...냉정하게 될때까지 대체 얼마나 걸렸다고 생각하는거에요?"

"지, 지쳤어..."

"뭐야...뭐야 이 체력 바보는..."

왕비에게 되돌아가려던 날 말리다, 실랑이 끝에 지쳐 뻗어버린 셋의 불평을 흘려들었다.

"아무튼 그렇게까지 경계하는데 억지로 사과를 줄건 없겠지. 요컨데 이상한 의심을 받지 않을 물건이면 괜찮다는거지?"

"또 뭔가 있는거에요?"

"물론. 활용할 수단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나를 못믿더라도 이야기 나라의 물건이라면 신뢰할 수 있을테고."

말과 함께 등 뒤로부터 식탁보를 꺼내들었다.

"짜안-! 노르웨이의 이야기. 「북풍의 세가지 선물」중 그 첫번째!
펼치면 음식이 나오는 신비한 식탁보!"

"로우란 너 또 다른 이야기 나라를 섞었어?"

"응. 이야기 나라에 있는 동안 유용하게 쓸 것 같아서 마련해두고 싶었거든."

"이야기 좌표 탐색기가 흔들렸던건 이것 때문이었네요."

"응? 그거 내가 다른 이야기를 뒤섞은 탓이야?"

"목적지를 표시하는 탐색기는 섬세하니까요.
여러 이야기가 섞어 있다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찾는게 어려울 수 밖에요.
강력한 사령 에너지가 방해할 때도 흔들리기도 하지만, 로우란씨의 경우는 이야기 나라를 뒤섞은 탓도 있겠죠.
하지만 그 덕분에 이번 이야기 나라에 어쩌면 사천왕이 있을지 모른다고 예상할 수 있었지만요."

그런거였나. 생각해보면 사천왕인 흑의 겐엔이 이야기 나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에피소드에서는 키린더의 탐색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었지.
사천왕이 내뿜는 강력한 사령 에너지의 방해 탓도 있었겠지만,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 염소」를 「늑대와 아기돼지 삼형제」의 이야기로 위장시킨 것도 주요 원인일 듯 하다.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로 위장했던 첫 등장 이후로는 키린더의 탐색기가 사천왕의 사령 에너지로 혼동을 일으킨 경우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말이다.

어찌됐건 지금 신경쓸 일은 아닌가.
식탁보가 잔디위에 펼쳐지자 어느샌가 티타임을 위한 과자와 음료가 놓여있었다.
자리를 잡고선 바닥을 펑펑 두드리며 권했다.

"그렇게 서있지 말고 다과라도 들면서 잠시 쉬는게 어때?
안그래도 방금전까지 도망쳐 다니느라 지쳤잖아."

"애초에 누구탓으로 도망치는 처지가 된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자 그럼 시작하자구. 매드 티 파티를."

"그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고. 하여튼 막무가내라니까."

핀잔을 주곤 새초미가 냉큼 자리에 앉았다.
그 뒤를 이어 미미와 키키도 먹음직스런 다과에 이끌려 머뭇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후우...차가 맛있네요."

"미미 너도 적응이 빠르구나."

"이런 엉망진창인 이유로 이야기 나라에 오는 분을 상대로 언제까지고 진지하게 있으면 피곤하니까요.
로우란씨가 좀 더 제대로 된 사람이었으면 제 추리도 창피를 당하지 않고 끝났을텐데. 그랬을텐데..."

"에, 에이~ 그런걸로 상심하지마 미미야. 응?"

찻잔을 든채 원망스런 시선을 보내는 미미의 등을 키키가 토닥이며 위로했다.
마침 화제거리로 삼을만한 소재인지라 보충을 해줄겸 말을 받았다.

"식도락으로 온건 맞지만, 물론 제대로 된 이유도 있어."

"...정말요?"

"당연하지. 사과먹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이야기 나라에 오려고 했다면 해라 총사령관님께서 내게 불벼락을 내리셨을걸?"

"그럼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알려줄 수 있어?"

"음...지금와선 얘기해도 상관 없으려나.
너희들의 대응을 보기 위해서였지."

"우리들의 대응?"

"그래. 똑같은 이야기 나라를 침공 했을 때 꾸러기 수비대는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거지.
출동하는 꾸러기 수비대 멤버는 이전과 동일한가? 이전과 똑같은 상대를 사령 몬스터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행동하는가?
뭐, 그런 것들에 대한거지."

"뭐야~ 역시 꿍꿍이가 있었잖아?"

"......"

"미미야?"

내 말에 미미의 어깨가 움찔 떨자 키키가 이상한듯 묻는다.

"로우란씨. 한가지 확인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응. 어떤거지?"

"로우란씨의 말은...저번의 멤버를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은거겠죠?"

"아..."

미미의 지적에 새초미와 키키가 덩달아 눈을 크게 뜬다.

"그래. 왜냐하면 이 곳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는 우리가 너희 꾸러기 수비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장소니까."

"생각보다 알아차리는게 늦었네요."

"그렇게 핀잔주지 마.
해라님의 분신인 우리들 사천왕이라면 모를까, 정신연결로 모니터링 하는게 불가능한 사령몬스터로는 우리들을 방해하는게 누군지 알 수 없었으니까.
스파이 로봇을 함께 파견하지 않았다면, 사천왕이 직접 나서기 전까진 너희들에 대한건 알지 못하고 있었겠지."

미미의 도발을 가볍에 넘기면서 은근히 정보를 넘긴다.
지금 상황도 해라가 마음 먹기에 따라선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간떨리지.
정신 연결은 내쪽에서도 인지할 수 있으니까, 적당히 무마할 수는 있다만, 역시 신경쓰이는건 어쩔수 없다.
나를 떠보고 싶은건지 미미가 경계하며 물었다.

"...만약 여기 있는 셋이 출동한 멤버 전부라면 어떻하시겠어요?"

조심스러운 미미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으음, 설마하니 비전투 요원에 해당하는 너희 셋만 출동하진 않았을거라 생각하는데.
사령몬스터를 찾는 「요지경」을 들고 있지 않았더라면 거짓말이라고 판단했겠지만..."

때 마침 적당한 기회니까 여기서 미리 주의를 해두는게 좋을까.

"만약 지금 이 멤버가 전부라면 나는 추가적인 정보수집을 위해서 움직일거야."

"뭘하려고?"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거야."

"엥?"

키키를 비롯한 셋의 눈이 동그래진다.

"음, 정보수집을 위해 움직인다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건 모순이려나?"

"아니 그게 아니라..."

한차례 머리를 긁적이곤 키키가 확인했다.

"어,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에게 아무짓도 안한다는거지?"

"그래."

"그게 뭐야?"

"여성에겐 손찌검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 상황에서 나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이라고.
무엇보다 확인해보고 싶은게 있으니까."

"확인해보고 싶은것?"

"...어떤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너희들, 우리를 찾는데 「제한시간」이 있지?"

"「「「......」」」"

입을 다문 셋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해보였다.

"음? 찾는게 아니라면 우리를 쓰러뜨리기 까지의 시간제한인가?
하여간 「이틀」정도 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거죠?"

"그렇게 숨기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 미미야.
새초미랑 이야기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거니까."

"나랑?"

"그래. 나와 함께 사령 몬스터를 탐색할 적에 네가 중얼거린적이 있었지?
남은 시간은 하루라고."

"혹시 로우란씨가 잘못 기억하고 계신건 아닌가요?"

"그럴리가. 새초미와 만나서 나눴던 대화는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는걸."

"읏...이상한 말 하지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은 비겁하네요 로우란씨." "그러게."

새초미가 당황해선 참견해오고, 그 덕분이라고 할까 긴장했던 분위기가 다시금 완화되었다.
지금 내가 행동을 방기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했다는 것도 있겠지만.
셋이 진정하고나서 다시 대화를 이었다.

"그러니까 나로선 「이틀」이라는 제한시간을 넘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해보고 싶은거야.
제한시간이 지나도 이야기 나라에 계속 머무를 수 있가? 아니면 원더랜드로 되돌아 가는가? 되돌아갈 방법은 있는가?
키린더라는 시공간 타임머신은 제한시간을 넘긴 뒤에도 이야기 나라에 진입할 수 있는것인가?
진입하기 위해선 특별한 대가가 필요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이틀이라는 제한시간은 꾸러기 수비대의 첫 모험부터 주의사항으로 언급된다.
그런데 정작 제한시간의 위험에 제대로 된 대비책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마지막에 가서 치명적인 문제로 불거진다.
이틀을 넘겨 이야기 나라에 갇혀버린 멤버를 구하기 위해서 오오라 공주는 자신의 영력을 키린더에게 쏟아붇고는 기절하지.
나중에 가면 영력 충전이고 나발이고 없이 부서진 이야기 나라에 잘만 기어들어가더니만...

아무튼, 이때의 영력소모가 심각했던지 오오라공주는 기력 고갈로 쓰러져 버리고, 오오라 공주의 수호가 약해진 틈을 타서 사령몬스터들의 이야기 나라 총공격이 시작되면서 원더랜드는 멸망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원더랜드를 수호하는 오오라 공주가 건재했다면 사령몬스터가 집단으로 활개칠 수도 없었을테고, 머지않아 사령신 마라는 수명이 다한 어둠의 원더랜드와 함께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소멸했을텐데.
'어둠의 원더랜드'가 마그마 아래로 가라앉고 마라가 자멸하기까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었는데!
꾸러기 수비대에게 충분히 유리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는데!
「이틀」이라는 제한시간 탓에 모든게 파탄나고 순식간에 원더랜드 멸망 테크를 타게 되는 전개는 참으로 기구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런 꼴 당하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평소부터 조금씩 키린더의 영력 리액터 충전해두라고!
가련한 미소녀 타입의 오오라 공주에게 운동을 시키거나 장어 같은걸 사먹이거나, 이야기 나라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아서 갖다 먹이거나...
팔굽혀펴기나 달리기 하는 오오라 공주는 도저히 상상이 안가지만.

"이런 이유로, 이틀이 지날 경우 너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보고 싶어.
설마 제한시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너희들이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이야기 나라에 왔을리는 없을테고 말야."

"...후후, 그야 물론이죠. 그렇지?"

"그, 그렇네."

"맞아. 너희를 쓰러뜨리는덴 이틀이면 충분하니까 그다지 선보일 일이 없었을 뿐이라구."

생글생글 웃으며 천연덕스레 동의를 구하는 미미에게 새초미와 키키가 맞장구친다.

"뭐, 나도 그다지 일부러 시간을 끌어서까지 확인하고 싶은건 아냐.
상대가 전부 여자라서 싸우지 않을 다른 수단을 고육지책으로 떠올린 것 뿐이니까.
전투를 회피하기만 하는건 다른 사천왕 녀석들에게 얕보일 수 있으니, 왠만하면 선택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기도 하고."

"하아...그런가요?"

내 말에 미미는 맥빠짐인지 안도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오면 굳이 숨길것도 없겠죠.
로우란씨의 생각했던 것처럼 저희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 나라에 왔어요."

"생각보다 시원하게 실토하는구나?"

"이틀의 제한시간을 넘겨보려는 로우란씨의 의도에 순순히 어울려줄 순 없으니까요.
제한시간 뒤에 쓸 저희쪽의 비장의 패는 온전히 숨겨두고 싶고요."

"좋은 판단이로군. 비장의 수단이라는 건 드러나지 않을수록 가치가 있는거니까.
그런건 평생에 한번 써도 많은거지."

"후후...좋은 말이네요."

그래. 비장의 수단은 드러내지 않는게 좋지.
부탁이니까! 부탁이니까 이틀이라는 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주의하라구.



"그럼 동료들을 이쪽으로 부를 시간을 줄테니까 다녀와.
미미 네가 가진 컴팩트로 통신이 가능했었지?"

"...정보를 속속들이 알려진다는거, 생각보다 신경쓰이네요."

찝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미미가 컴팩트를 들고 근처 수풀로 들어간다.
잠시 후 미미가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자, 준비해둔 물음을 던졌다.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너희에게 하나 듣고 싶은게 있는데 괜찮을까?
...이상한 질문 아니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구."

"대화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정보를 뽑아지고 싶진 않은데요?"

"그런거 아니라니까. 개인적인 흥미로 묻고 싶은게 있을 뿐이야.
만약 너희에게 불리한 정보라고 생각한다면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혹시라도 괜한 수작 부린다는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미미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뒤에 얘길 꺼낸거구."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뭐가 알고 싶은거죠?"

"꾸러기 수비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창설된거지?"

"어째서 그런걸 묻는거야?"

그거야 해라의 과거인 고양이 정령 쿠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지.
지금 물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쿠키에 대한 정보 탐색을 진행할 때 당위성이 떨어지고 불필요한 의심을 살 수도 있고.

"딱히 중요한 이유는 없는데...지금까지의 만남에선 주로 내 쪽에서 이야기를 했잖아.
이야기를 하는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듣는 입장으로도 되어보고 싶어.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자신과 연관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거야."

내 말에 셋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다.

"그정도는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그러네요."

"그럼 내가 해줄께."

새초미가 손을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전, 천국을 관장하는 대령신 코로나님의 전갈을 받은 오오라 공주님께서, 원더랜드의 평화를 지킬 12인의 정령을 꾸러기 수비대로 뽑기로 결정하셨어.
선발 방식은「정월 초하루날」 오오라 성에 가장 먼저 도착한 정령들을 차례로 12지로 임명하는 것.
단, 모든 정령들은 공평함을 위해서 한가지 약속을 했어.

- 12지를 바라는 정령은 12시가 되기 전에 자신의 집을 출발해서는 안됩니다.

12시를 어기고 먼저 출발한 정령은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12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우리 12명이 뽑힌거야."

"12지는 달리기 시합으로 정해진거였구나?"

정확히 달리기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뱀의 정령 요롱이는 새총으로 몸을 쏘아서 오오라성까지 가려 했고.
드라고는 구름을 타고 골인지점까지 날아갔으니.

"그리고 12지로 선발된 증표로 오오라 공주님께서 하사해 주신게 바로 이 「뱃지」야."

새초미는 붉은 재킷 왼가슴께에 달린 푸른 수정 구체를 보였다.
미미는 블라우스 가슴께에 달린 노란 리본 가운데에 푸른 수정이 장식되어 있었다.
키키는 허리띠 중앙에 푸른 수정이 달려 있었다.

"그게 증표란 말이지. 푸른색 수정이라니 꽤나 센스가 좋은걸?"

"넌 푸른색이면 뭐든 좋은거구나?"

"청(靑)의 로우란이니까. 혹시 수정에서 「빔」도 나오거나 하지 않아?"

"나오겠냐!?"

"에에? 나올것 같은데..."

시무룩해진 내 모습을 보기 힘들었는지 새초미가 참견해왔다.

"생각해보니 찡찡이는 그걸로 빔을 쓸 수 있어."

"정말로!?"

"으, 으응. 울보광선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럼 분명 너희들도 빔을!"

"아니아니. 우린 무리라니까 그러네."

"상식에 사로잡히면 안되지. 너흰 동화나라를 지키는 꾸러기 수비대잖아. 좀 더 꿈을 가지라고."

농담이 아니고 꾸러기 수비대의 최종 필살기 「12지 합체광선」은 저 뱃지를 통해 나온 힘을 모아서 날리는거라니까.

"증표라길래 분명 굉장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없다니까 그러네."

"쳇- 두고봐. 언젠가 그 푸른 뱃지의 비밀을 밝혀내면 꿈이 없던 너흴 실컷 비웃어줄테니까."

"네네, 기다리고 있을테니 힘내보라구."

키키는 팔랑팔랑 손을 내저으며 흘려들었다.




"아까 전 12지 달리기 말인데, 역시 달리기 하면 나를 빼놓을 순 없겠지.
한걸음에 7리그(약 33km)를 간다는 「세븐리그부츠」를 준비한다면 1등은 식은 죽 먹기니까."

"그거 좀 치사하지 않아?"

"농담이야 농담. 아무튼 재밌는 이야기였어.
그래도 아쉽네. 「6년전」달리기 시합때 고양이가 있었다면 분명 12지에 들 수 있었을텐데.
원더랜드엔 고양이 정령은 없어?"

"「쿠키」라는 고양이 정령이 있었어. 지금은 행방불명이지만..."

왔다! 여기서 쿠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내심을 드러내지 않고 물었다.

"행방불명? 언제부터?"

"그러니까, 조금 있으면 이제「6년」이 되어가는구나."

"그것도 6년전? 어쩐지 시기가 공교로운데. 12지 달리기 코스에 험난한 지형이 있거나 하진 않았어?"

"글쎄. 원더랜드에는 그런 지형도 있지만 적어도 집에서 오오라 성까지 가는데 위험한 코스를 선택하진 않을거라고 봐."

"혹시 「쿠키」 이외에 12지 달리기 이후로 모습이 안보이는 정령은 없었어?"

"응?"

조금 집요하게 흥미를 보이는 내게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새초미와 둘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곧 떠오른게 있는지 새초미가 고개를 들었다.

"아, 「앨버트」."

"맞다. 그녀석 요즘 안보이네."

"「앨버트」?"

"원더랜드의 신문기자인 「기린(麒麟)」의 정령이에요."

"어쩌면 기사거리를 찾으러 여행을 떠났을지도.
12지에 들 수 있을 능력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기자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사양한 녀석이니까 말이지."

"헤에...기린의 정령이란 말이지."

사령신 마라에게 힘을 받고 해라로 각성한 쿠키를 목격한 탓에 살해당한 그 「앨버트」말이로군.
죽으면서도 원더랜드를 지키고 싶어한 앨버트가 오오라 공주의 힘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 바로 신수 기린의 형상을 띈 시공간 타임머신 「키린더」다.
내 반응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새초미가 볼을 부풀리며 반박했다.

"12지 달리기에 어떤 오해를 갖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 달리기는 그렇게 위험한 시합이 아니었어.
달리기 도중 사고로 행방불명이 된다니 이상하다구."

달리기 도중이 아니라 달리기가 끝난 뒤에 모든 참극이 일어난거지만 여기서 이야기 할 내용은 아니라 말을 얼버무렸다.

"의심한건 아니고, 그냥 나랑 같은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기에 신경이 쓰여서 물어봤을 뿐이야."

"흐응...그렇구나."

새초미가 눈을 가늘게 뜬다.

"...말해두지만 쿠키에겐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엉뚱한 생각 품지마."

오? 여기서 추가 정보를 얻을 기회가?

"엣 정말? 그게 누군데?"

"호치."

"호치? 아, 그때의 그 덩치 큰 호랑이 형씨 말이로군."

"그래. 그 둘은 사이가 정말 좋았으니까."

"하지만 사이 좋았다곤 해도 벌써 6년이나 지난 이야기지?
그럼 딱히 내가 쿠키를 만나도 호치는 별로 신경 안쓸것 같은걸?
6년이나 지났다면 호치도 쿠키라는 고양이는 벌써 한참 전에 잊어버렸을테니까."

"그런거 아냐! 매년 생일마다 꼬박꼬박 쿠키네 집을 찾아갈 정도니까!"

"그, 그래?"

정색하며 반박하는 새초미의 기세에 눌려 말을 더듬었다.

"알겠어? 그러니까 쿠키를 노리는거라면 꿈도 꾸지마."

"응. 딱히 노리고 있는건 아니었지만."

"......"

"......"

"...별로,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 그래?"

정보수집 하려다가 애꿎게 화만 사는구나.
토라진 새초미의 모습에 곤란해하고 있는데, 화제를 돌리려는듯 미미가 끼어들었다.

"그럼 이번엔 로우란씨의 얘길 들려주시겠어요?"

"내 이야기?"

"네. 이야기 나라에 오지 않을땐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거든요."

생글생글 웃으며 미미는 얘기를 재촉했다.
기왕 말해주는거, 사천왕간의 알력 다툼이라든지 은근히 흘려두면 얘네들에게 도움이 되려나?

"평소에는 해라님의 지사를 따라서 이야기 나라에 침략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시작부터 뒤숭숭한 얘기네. 좀더 재미난거 없어?"

"사령 사천왕의 일상에 대체 뭐가 있길 바라는거야?
사천왕인 백의 고우센이나 흑의 겐엔과는 만나면 빈정대는 사이라서 그녀석들과 있었던 재미난 얘긴 없어.
덕분에 대개는 쥬켄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쥬켄이라면 로우란씨의 파트너었죠?"

미미의 말에 새초미가 움찔하고 반응했다.

"쥬켄이라는 아이는 여자야?"

"응? 물론. 적(赤)의 쥬켄이라고 하는데, 호칭에 걸맞게 붉은 치파오를 입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칼에 예쁜 황금빛 눈을 가진 소녀야."

"...어떤 아이인데?"

"뭐라고 할까...으음..."

적절하게 쥬켄을 나타낼 말을 찾다 툭 내뱉았다.

"말괄량이?"

"말괄량이?"

"뭐랄까.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달까...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하는 꼬마 녀석? 앙칼진 새끼 고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외 적절한 표현이 없나 생각했지만 이 이상 적합한 표현은 없어보였다.

"아, 고양이니까 말괄'냥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네. 다음에 그 별명으로 불러볼까나."

보나마나 쥬켄이 자랑하는 발차기나 곡도 난사를 받을 처지가 될테니 자중할테지만.

"흐응..."

"왜그래 새촘아?"

"아무것도..."

새초미는 부루퉁하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미미와 키키는 곤란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그 쥬켄이라는 분과는 잘 지내고 계세요?"

"잘지낸다고 해야할지 아웅다웅 지낸다고 해야할지...
쥬켄 녀석, 사령궁 안에만 틀어박혀있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아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것 같아.
그 탓에 내가 이야기 나라에 다녀올때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가끔은 부러운건지 신경질을 부리기도 해서 대하기가 곤란할 때도 있어."

내 불평에 미미가 키득였다.

"후후, 그래도 선물로 꽃도 챙겨간걸 보면 꽤나 신경써주시는거죠?"

"뭐...그런거려나? 다른 두 사천왕은 몰라도 쥬켄과는 말이 통하는 편이니까.
아, 맞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쥬켄이랑 둘이서 꽃을 가꾸고 있었는데 말야.
실수로 요술콩에 물이 묻는 바람에 거대 콩나무로 사령궁이 박살나버렸지 뭐야.
이야아~ 덕분에 해라님껜 잔뜩 꾸중듣고, 쥬켄이랑 둘이서 며칠동안 사령궁 복구를 하느라 꽤나 고생했었지. 아하하~"

"아, 아하하. 그거 큰일이었네요."

"......"

"...새촘아?"

"...왜?"

"혹시 기분이 안좋아?"

"...별로."

볼멘 소리로 아니라고 주장해도 설득력이 없다만...

"혹시 내가 뭔가 실수한거라도..."

".....그것보다 이제 다과회를 마칠 준비를 하는게 좋겠어."

"응?"

"동료들이 온 것 같거든."

귀를 쫑긋 움직이며 무뚝뚝하게 새초미가 답했다.

새초미의 말에 자리를 정리하고 잠시 뒤, 저만치서 다가오는 세 사람이 보였다.

흰옷 위로 푸른 민소매 재킷을 입고 붉은 캡모자를 쓰고 뻣뻣한 걸음을 옮기는 생쥐 「똘기」.
연녹색 옷에 초록 반팔 재킷을 걸친 호랑이 「호치」.
그리고 미끈한 갈색 허벅지를 드러낸채 커다란 가슴을 흔들며 걸어오는...?

셋의 모습을 봤을때 직감했다.

...이번에도 제대로 된 싸움이 되기엔 글러먹었다고.

다행이랄까 착찹하달까 미묘한 기분으로 기다리던 중, 등 뒤에서 두런거리는 셋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초미가 미미와 키키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그걸 하자."

"그거?"

"로우란 대책으로 생각해뒀던거말야."

"엣...그거 정말로 할거에요?"

내키지 않는다는 듯 미미가 되묻자 새초미가 당연하다는듯 긍정했다.

"물론. 믿을만한 동료가 지켜줄테고, 마침 우리 셋도 다 모였어.
무엇보다 이걸 먼저 제안했던건 미미 너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여, 역시 비장의 수는 역시 온존해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포기해 미미야. 방금전 일로 새초미에게 불이 붙은것 같으니까.
불만이 쌓인것 같으니까 이번은 따라주는게 좋을것 같아."

"그런..."

"걱정마. 이런건 담력만 있으면 다 되는거라구~"

우물쭈물하는 미미를 키키가 독려하는사이 새초미가 웃는 얼굴로 날 불렀다.

"로우란~"

"왜 새촘아?"

"여자와 아이랑은 싸우지 않는다고 했었지?"

"응? 그야 물론이지. 그래서 방금전까지도 얌전했잖아?"

"헤에~ 그렇구나."

부드럽게 웃곤 새초미는 왼손을 옆으로 뻗었다.
빛무리와 함께 토끼장식이 달린 나선무늬 요술봉이 나타났다.
손에 쥔 요술봉으로 나를 겨누곤 새초미는 씨익 미소지었다.

"그 말, 믿고 있을께."




"플레이-! 플레이-!"
"프, 플레이~ 플레이~!"
"야호~ 힘내라구~!"

치어걸 복장으로 활기차게 깡총깡총 뛰면서 치마를 펄럭이는 새초미.
동일한 복장으로 늘씬하게 빠진 몸매를 쭉쭉 뻗으면서 응원하는 키키.
그 둘 사이에 끼어선 한손으로 치마를 누르면서 춤추던 미미가 울상을 지었다.

"이, 이런건 역시 저한텐 무리에요!"

"맨날 책만 읽고 지내니까 그렇게 힘든거잖아. 기운내!"

"힘든것도 문제지만 이런 차림으로 춤추는건 부끄럽단 말예요!"

"자자~ 기운내. 여자는 담력이야!
애초에 응원이라도 하자고 제안한건 미미 너잖아?"

"이렇게 본격적으로 할 줄은 몰랐단 말예요."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게 나오고 있잖아?" "그래.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라구?"

"우우... 프, 플레이 플레이~!"


새초미와 키키의 격려에, 허벅지를 비비 꼬다가 결국은 반 울상이 된 얼굴로 미미는 응원수술을 흔들며 춤추기 시작했다.
물론 한손으로 치맛자락을 누르면서.

새초미, 미미, 키키가 치어걸 차림으로 응원하는 동안 나는 뭘 하고 있냐고?

그야 당연히 전투 멤버들이랑 치고 받고 있지.
응원에 한눈팔다가 얻어맞기도 하지만! 나는 나쁘지 않아!

호치의 돌진을 피하면서 손가락 끝에서 불꽃을 일으켰을 때였다.

"다-크 파이-「로우란~!」응?"

"힘내~ 브이!"

"아! 물론~! 브이!「퍼억-!」컥!?"

브이 사인을 보내온 새초미에게 반응해 브이 사인을 만들다 호치의 숄더 태클에 바닥을 뒹굴었다.

"큭, 새초미 너 정말 치사..."

"응?"

"...최고로 귀엽다고! 제길...!"

스커트 자락을 집어들고 살짝 팔랑이며 윙크를 던지는 새초미의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연이은 호치의 공격을 황급히 뒹굴어 피했다.

"잘하는데 새촘아?"

응원수술을 상하좌우로 흔들면서 키키가 웃었다.
길게 뻗은 새하얀 다리가 쭉쭉 뻗어지고, 상체의 사과 두개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뭐랄까... 야해. 굳이 지적하자면 민소매로 드러닌 겨드랑이 근처가.

"우오오-!"

"큭!?"

팔락거리는 치맛자락 부근과 매끈한 겨드랑이와 흔들리는 상체의 과일 두개에 시선에 빠져있던 차에 하마터면 또다시 공격을 허용할 뻔 했다.
위태위태하게 공격을 피하면서 춤추는 셋을 향해 항의했다.

"아 정말! 너희들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뭐긴? 응원하고 있는걸? 별로 방해하려던게 아니니까 우린 신경쓰지 말고 싸우라구."

"응원? 미인계라고 해야 하는거 아냐 이거?"

"그렇게 생각하면 보지 않으면 되잖아?"

"그런 응원을 보지 말라니 당치도 않아!"

"계속 보는거구나?"

"나는 무력해... 음모라는걸 알면서도 지켜볼 수 밖에 없어..."

"...아, 그래."

키키가 딱하다는 눈길로 포즈를 잡았다.
겨드랑이를 시원스레 드러낸 자세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공격을 맞고 몸을 굴렀다.

"그리고 애초에 집중하라고 해도..."

몸을 일으키곤 손가락으로 아까전부터 줄곧 신경쓰이던 녀석을 가리킨다.

"저런 녀석 상대로 집중할 수 있겠냐!?"

노란 롱부츠 위로 드러나는 매끈한 허벅지의 각선미.
새빨간 미니 스커트와 수영복 아머. 입술엔 붉은 립스틱. 목에는 분홍 머플러.
마지막으로 붉은 리본으로 검은 단발을 꾸민 우람한 갈색 황소.

"뭐야 저녀석!? 저런 녀석 12지에 있었어!?"

"「마법소(牛)녀 떵이」당무~"

"......하?"

사고가 정지한 나를 추격하듯, 방금부터 짧은 치맛자락을 앞뒤로 누르고 있던 미미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덧붙였다.

"떵이는 여자에요. 설마 여자를 공격하진 않으시겠죠?"

어이가 날아간 내 귀에 들려온 미미의 지원사격에 결국 폭발했다.

"세상에 쟤 같은 여자가 어딨어!?
차라리 소로 변장하는게 낫겠다!"

"소 맞당무."

"아, 그러냐..."

원래 황소였지...

"백설공주가 해준 코디의 효과는 톡톡히 봤네요.
덕분에 로우란씨의 기세가 한풀 꺾였잖아요?"

미미 네 생각이었냐? 아까 통신을 주고 받으면서 이런걸 지시했던가.
효과적인 정신공격이라는건 부정할 수 없는데...

확실히 왕비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선 백설공주도 마법을 쓸 수 있었지.
덜렁이 체질인지 죄다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마법투성이었던걸로 기억하지만....
떵이의 마법소녀 변신도 원래는 백설공주의 자기변신마법이 실패해서 나온 결과물이고.

"그나저나 여자와는 싸우지 않는다는건 정말이었나보네."

"응. 여장도 통하는것 같고. 아까부터 로우란, 떵이의 공격은 피하기만 하고 반격을 못하고 있으니까."

"통하기는 무슨! 징그러우니까 손섞기 싫은거라고!"

"에~ 어째서당무~?

"너 설마 그 복장 마음에 든거냐?"

이해가 안가는지 넓적한 각선미를 강조하는 포즈를 취하는 떵이의 행태에 기가 찼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들 슬랩스틱 개그에 가끔씩 나사빠진 행동도 잘하는 녀석들이었지...

그나저나 가장 신경쓰이던걸 지적했으니 다른 것도 지적해둬야지.
저만치서 뻣뻣한 자세로 굳어서 있는 똘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아까부터 똘기는 왜 저만치 떨어져서 싸움을 방관하고 있는거지?"

"똘기는 우리의 비장의 카드니까요."

너 그 말로 뭐든 다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똘기가 고양이 공포증을 갖고 있다는걸 아직까진 숨기고 싶은 모양인데, 여성이나 찡찡이 같은 어린애가 아닌 바에야, 적어도 눈앞에 나타난 이상 싸우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구?
내가 생각을 끊어버리듯 본격적으로 떵이의 인정사정없는 공격이 이어졌다.

「소(牛)녀 킥!」「소(牛)녀 펀치!」「소(牛)녀 숄더 태클!」「소(牛)녀 헤딩!」

여장한채로 육탄전을 해오는 떵이의 모습은 바야흐로 악몽이었다.
특히 하이킥을 날리면서 크게 벌어지는 미니 스커트 속 고관절 대(大) 서비스 씬에는 눈이 썩을 것만 같았다.

"칫, 다-크 파이-어이쿠!?"

떵이의 모독적인 춤사위에 억지로 휘말리는 동안 호치가 그 사이를 비집고 덤벼들었다.
위협적인 기세로 돌진하는 호치의 몸통박치기를 피하다가,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는 떵이의 발길질에 하마터면 뒤통수에 롱부츠 자국이 새겨질 뻔 했다.
덕분에 또 한차례 땅바닥을 구르는 처지가 되었고.

"제길...정말이지 무례한 만행을...!"

"생각 이상으로 끈질기다떵."

"그렇군. 제대로 싸웠다면 얼마나 더 무서울지 모르겠군."

"너희도 강적이군. 엽기적이라는 의미로 말이지."

"엽기적이라니 납득이 안간당무."

항의하는 떵이와 옆에서 틈을 살피는 호치와 대치하고 있는데, 둘의 뒤편에선 새초미와 키키가 미미를 독려하고 있었다.

"자자, 미미도 좀 더 화끈하게 움직여 보는게 어때?"

"그렇게 움츠러 들어선 춤을 제대로 못춘다구?"

"무, 무리예요!"

"에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몸을 좀더 크게 뻗어봐~!

"꺄아악~!? 그, 그만둬 키키! 배가 보여버린단 말야~!"

미미의 몸이 쭉 뒤로 젖혀지면서 올라간 상의 아래로 하얀 배가 보였다.
배꼽을 드러낸채 바둥거리는 미미의 모습에 감탄하며 휘파람을 불렀다.

"휘익~! 그런 멋진 자세라니 미미는 훌륭하네~!"

"로우란씨는 최악이네요!"

"하하하~ 여장으로 날 속여먹으려 한 너만할까?"

"뭐에요!?"

"오오? 그렇게 발끈하면 옷이 더 흐트러진다구?"

"읏...! 보지 말아요!"

"「「......」」"

어라? 나와 미미의 대화에 떵이와 호치의 낌새가 이상하다.
움찔움찔 귀가 반응하는게 영 수상쩍다.

"......"

"「「......」」"

둘과 노려보기를 계속하던 중, 나는 갑자기 둘의 뒤로 시선을 향하곤 놀란 눈으로 외쳤다.

"아앗!? 안돼 미미야! 그렇게 세게 누르면 오히려 치마가 벗겨진다구!"

"엣?"

미미의 아연한 말에 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경악성을 내뱉았다.

"흰색!?"

""「「뭐!?」」""

순간 호치와 떵이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차안-스!

"뒈져라아아아아아------!"

로우란 킥-!

"떵~!" "커윽!?"

삽시간에 둘을 눕혀버리곤 폭소했다.

"하하하하하! 꼴좋다! 그런 트러블 있을리가 없지!
유혹에 진 녀석들의 배신당한 얼굴을 보는건 통쾌하구나!"

"여러분 전부 최악이에요~!!!"

울상을 지으며 비난하는 미미에 덩달아 새초미와 키키도 비난의 소리를 높인다.

"떵아! 호치야! 그런데 속으면 어떡해?"

"야 이 멍청이들아! 싸우다 말고 대체 뭐하는거야!
우리가 뭣땜에 이렇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있는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정신차리게 엉덩이를 걷어 차줄까!?"

"아, 아니당무!" "자, 잠시 방심했을 뿐이라고!"

황급히 일어서는 떵이와 호치의 모습에 의기양양한 얼굴로 허리에 손을 얹었다.

"이것이 바로 NINJA류 술법 이간질.
동료들의 우정을 찢어놓는 편리한 방법이죠."

"과연 NINJA. 더럽당무!"
"친구를 미끼로 속이다니 역시 NINJA는 비겁하구나!"

"「「「......」」」"

여자 셋의 싸늘한 시선이 떵이와 호치의 뒤통수에 꽂힌다.
식은땀을 흘리는 둘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아핫핫~! 변명은 죄악이라구?
적을 상대하는데 한눈 팔다 지는게 내 탓은 아니지?"

"그러는 너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닐텐데?"
"맞다 떵. 너도 한눈 팔다 당했잖냥무."

"난 욕망에 충실한게 미덕이지만 너흰 다르잖아?
너희는 동료들의 신뢰를 중요시 하니까, 고개를 돌리지 말았어야지.
그래, 비록 지금처럼 미미가 스커트 끝자락을 들어보여도 말야."

"엣?"

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미미와, 그런 미미의 반응에 동요하는 떵이와 호치를 좀 더 구슬려본다.

"신뢰를 잃은 너희에게 기회를 주고자 미미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저렇게 셔츠를 걷어올리고 있어도 말이지."

"자, 잠깐만요!"

"너희의 강철같은 의지를 믿고서 미미가 스커트까지 내린건 칭찬해줘야겠네."

"로우란씨!"

"동료를 소중히 여기라구. 너희들의 신뢰를 시험하기 위해서라지만 저기까지 벗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 「딱!」아얏!?"

미미가 던진 사과에 머릴 맞았다.

"하아, 하아...저, 적당히 하세요!"

던지던 자세 그대로 미미는 빨갛게 된 얼굴로 씩씩거렸다.

"왜 저만 갖고 놀리는거에요?
게다가 왜 그런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거죠!?"

"아니, 처음 만났을때 파렴치 컨셉이었으니까, 분명 이런 쪽 도발이 동료들에게 가장 먹혀들지 않을까 하고..."

"절대 아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말야..."

"무엇보다?"

"그 편이 더 재밌으니까."

"......"

"미미야 얼굴! 얼굴!"
"지금 여자애가 하면 안되는 얼굴을 하고 있다구!?"

두 여자의 몸에 미미의 얼굴은 금새 가려졌다.
트집잡힐까봐 내쪽만 쳐다보려던 떵이와 호치는 지금은 다른 이유로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은가보다.

"너희가 지금 뒤돌아 보지 않은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봐."

"그렇겠당무"
"전부 네녀석 탓이지만..."

"아하하, 그것도 그런가?"

일시적으로 싸움이 멈춘 김에 호치와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이봐, 호치라고 했나?"

"왜 그러지?"

"사령궁으로 와라."

"뭐?" "뭔말이냐떵?"

내 말이 예상외 라는듯 호치와 떵이는 눈을 크게 떴다.

"네가 호랑이니까. 같은 고양이 과인 네게 기회를 주겠다는 거다.
꾸러기 수비대를 그만두고 우리에게 와라. 해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영광을 주마."

"무슨 짓이야 로우란!" "멋대로 휘저어 놓고서 우리 동료까지 뺏으려 하지 말아요!" "그런다고 호치가 넘어갈 리 없다구!"

내 말에 방금전까지 미미를 진정시키던 여성진도 놀라서 아우성쳤다.
셋의 말을 긍정하듯 호치는 굳은 얼굴로 날 노려봤다.

"무슨 속셈인진 모르지만 거절이다!"

"그렇게 고집부리지 말라구. 사령궁에는 미인 고양이도 있다니까?
그렇게 고집부려도 해라 총사령관님을 뵙게 된다면 너도 생각이 바뀔걸?
해라님은 정말로 아름다우신 분이시니까. 아, 물론 새초미 다음으로."

"새초미 다음이냐..." "저 바보..." "설득하는 장면에서까지 저렇게 고집스러우면 반대로 감탄스러울 정도네요."

마지막에 덧붙인 말에 화내다 만 얼굴이 된 호치에게 미끼를 던진다.

"설마 「쿠키」라는 고양이 정령 때문에 망설이는건 아니겠지?

"뭣!? 어, 어째서 네가 쿠키의 이름을 알고 있는거지!?"

"후후, 그건 어째서일까?"

격렬하게 동요하는 호치의 반응에 미소가 짙어졌다.
그때 키키가 동요하는 호치를 진정시켰다.

"진정해 호치! 우리들이랑 이야기 하면서 쿠키의 이름이 나왔던것 뿐이니까.
네 심정을 모르진 않지만 저녀석의 말에 말려들지 마."

"아, 아...그랬던거군. 미안."

키키의 말에 호치의 동요가 가라앉았다.
무심코 혀를 차자, 미미와 새초미, 키키가 못마땅하다는 듯 험담을 내뱉았다.

"과연 NINJA. 더럽네요."
"치사한 NINJA네."
"친구를 미끼로 속이다니 NINJA는 최악이구나."

그거 방금 호치랑 떵이가 한 말이거든?
그리고 NINJA는 상관없잖아 NINJA는...

아무튼 호치의 반응은 이것만으로도 적당히 정보를 날조해 해라에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발짝만 더 파고들어 볼까.
이상하다는 듯한 어투로 호치를 자극해본다.

"그 반응을 보면 쿠키라는 고양이랑 꽤 친했나보군?
하지만 6년전에 네게 말 한마디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매정한 꼬맹이에게 더이상 매달릴 가치가 있을까?
그런 계집애 따윈 잊어버리고 대신 우리 해라 총사령관님을 뒤따르는 편이 좀 더 현명한 선택 아니겠어?"

"허튼 소리 마라!"

"어이쿠."

고리눈을 뜨고 난폭한 기세로 덤벼드는 호치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네 녀석이 쿠키의 뭘 안다는거지!? 그녀석은...쿠키는 분명 돌아온다!"

"흐응~ 폼으로 6년간을 기다린건 아니란 말이로군? 그렇게나 그 계집애가 소중한가?"

"......"

나와는 더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은지 호치는 침묵했다.
반응을 보는건 여기까지인가... 그럼 이쪽의 정보를 흘릴 차례로군.

"흐음...어쩐지 네게선 「고우센」을 닮은 기색이 느껴져서 권유해 봤건만...
너 정도의 사내라면 어쩌면 해라님께서도 받아들여 주실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할 수 없지."

백(白)의 고우센의 호랑이 같은 외모와 변신 능력은 마치 호치를 떠올리게 하는 점이 있으니까.
어쩌면 해라의 마음 속에 있는 호치의 기억이 고우센으로 형상화 되었을지도 모르지.
다만 겉은 비슷할지 몰라도 고우센의 내면은 비인외도의 악당일 뿐이지만.

"아아~ 호치만 포섭하면 싸움이 수월해질거라 생각했는데 유감이네."

뒤통수을 매만지며 입맛을 다시는 내게 새초미가 이상하다는듯 물었다.

"떵이는 권하지 않아?"

"여장 취미인 녀석을 권하는건 조금..."

"너무하당무."



"아무튼. 협상은 결렬이로군.
그럼 이제부터 봐주지 않겠다!
방금까지처럼 유혹에 흔들릴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건 우리가 할 말이다! 가자 떵아!" "알겠다 떵~!"

내 선언에 표정을 긴축시킨 둘이 먼저 움직였다.

"「호치호치!」"

호치가 파란색 선글라스를 쓰고 대호(大虎)로 변신했다.

"무우..."

미미가 던졌던 빨간 사과를 응시하는 떵이의 몸이 움찔 떨린다.

"...「빨간색」..."

빨간 사과를 뚫어져라 보는 떵이의 안구가 붉게 물들며 몸을 숙인다.
몸을 낮춘 떵이의 손가락이 소발굽으로 변하고 온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무오오오오오---!"

"커허어엉---!"

집채만한 거대 황소로 변신한 떵이와 대호로 변한 호치의 포효에 털이 거꾸로 일어선다.

"짜릿한데...! 좋아, 와라!
이쪽도 진심으로 상대해주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돌진해오는 떵이와 호치를 마주하고 기합을 넣었다.

"간다! NINJA 인법!"

"그쪽으로 진심!?"

날카로운 키키의 딴죽 속에 옆으로 손을 뻗는다.
뻗어진 손에는 어느샌가 커다란 망토가 들려 있었다.

"우선 떵이 너부터 잡는다! 「여자」로 변장했던 걸 후회할거다!"

"무오오오------!"

호치를 피해 떵이의 돌격 방향으로 위치를 옮기며 큰 동작으로 망토를 흔든다.
묵직하게 울부짖고선 길게 뻗은 뿔을 앞세워 망토를 향해 돌진해오는 떵이를 피하면서 망토를 쥔 손을 놓으며 외쳤다.

"묶어라!"

"무우---!?"

순간, 내 외침에 호응해 망토가 꿈틀거리며 떵이의 상체를 뒤덮곤 강하게 옭아맨다.

"떵아!"

호치의 외침도 허무하게, 망토에 얼굴이 가려지고 앞다리가 꽉 죄여 비틀거리던 떵이가 무릎을 꿇었다.

"하하하! 봤느냐! 이것이 바로 덴마크 인법!「마법사의 요술 망토」다!"

"인법이라고 말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지마!!!"
"또 새로운 이야기야?"
"대체 몇개의 이야기를 뒤섞은거에요!"

새초미 일행의 의문을 해소해주기 위해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후후, 이 망토에는 올라탄 「여자」를 보쌈해서 납치하는 마법이 걸려있지!
여장한걸 후회할거라 내가 말했지?
자, 이제 남은 상대는 호치 하나「찌이익-」...엑?"

뿔로 망토를 찢고 나온 떵이가 일어서 포효했다.

"무오오오------!"

"...힘으로 찢어버린다니 반칙에도 정도가 있지..."

"마법 망토 치고는 재질이 보통이네요."
"오히려 떵이를 자극해버린것 같은데."
"첫 진심부터 엉망진창이네 저녀석..."

망토에 덮혀있는 동안 잔뜩 흥분했는지 폭주할 기세로 떵이가 덤벼들었다.
덩달아 옆에서 덮쳐오는 대호 호치를 상대로 마른 침을 삼켰다.

"칫. ○지폭염탄! 에? 으아악!?"

견제로 다크 파이어(小) 5연발을 날렸다가 그대로 불꽃을 뚫고 돌진해오는 둘에게 기겁해서 옆으로 몸을 굴렸다.
약하게 했다지만 다크 파이어를 피할 생각도 않는 둘의 막무가내 전술에 황당해서 물었다.

"너희들 그거 안 아프냐?"

"무-!" "이런건 조금 뜨거운 정도밖에 안돼!"

"아, 그러냐."

내 오○폭염탄이 좀 만만하긴 하지.
다섯 손가락에서 불꽃이 동시에 뻗어 나가려면 불꽃은 탁구공 수준이어야 하니까.
일부러 힘을 밀집하지 않는 바에야 그 크기에서 나올 위력은 고만고만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인간형일때의 호치는 ○지폭염탄 세례에 잠시나마 쓰러졌었지만...
역시 변신모드는 인간형일 때보다 덩치가 커졌기에 다크파이어에 대한 내성도 올라간 듯 했다.
확실히 털이 조금 그을린것 빼곤 건재해 보이는게 인간형일때보다 훨씬 더 강인하구나.
...그럼 신기술을 조금 이르게 선보여도 괜찮겠네.

떵이와 호치의 공격을 피해 크게 거리를 벌리고 멈춰선다.

"...되도록이면 둘 중 하나를 먼저 제압해두고 이 기술을 쓰려고 했지만, 이래서야 어쩔 수 없군."

"그런 허세를 부린다고 지금 상황을 만회할 수 있을것 같으냐?"

덩치에서 오는 기백에 밀리긴 했지만 열세는 아냐.

"흥. 방심하다가 후회하지나 마라."

코웃음을 치곤, 검지를 편 오른손을 하늘로 향한뒤 시계방향으로 크게 원을 그린다.
검지 끝에서 생겨난 12개의 푸른 불꽃이 둥글게 고리를 이룬다.
허공에 뜬 채 고리를 형성한 불꽃을 쓸듯이 훑자 12개의 불꽃이 고리를 따라 회전한다.
그대로 오른손바닥을 고리 중앙을 밀듯이 내지른다.

"「12지대차륜(十二支大車輪)」"

선언과 함께 12개의 불꽃이 나선을 그리며 떵이와 호치를 향해 쏘아졌다.

"무우우우우아---!?" "흐오아아아---!?"

"떵아!?" "호치!?" "여러분!"

12방향에서 쏟아진 푸른 화염에 휩싸여 떵이와 호치자 쓰러지자 새초미 일행이 비명을 지른다.

"무...무우..."
"괘, 괜찮아! 이 정도는 견딜만해!"

「쥐의 시집보내기」에서 야구공 크기의 기탄을 쏘아대던 다람쥐 무투가를 본받아서, 야구공 정도 크기로 조절한 다크 파이어는 제법 효과가 있는듯 하다.
다만 공격을 둘이서 나눠서 받은 탓에, 예상대로 둘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진 않았다.
둘이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자랑스레 기술을 과시했다.

"어떠냐? 이것이야 말로 오○폭염탄의 강화 형태 「12지대차륜(十二支大車輪)」이지."

"12지?"

"그거 우리들이잖아?"

"그래. 12지를 상대로 쓰기엔 적당한 기술이겠지?
다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서 아직은 쓰고 싶진 않았지만."

"치명적인 결함?"

"불꽃을 12지 모양으로 다듬지 못했어."

"「「「......」」」"

"그딴거 뭔 상관이야!?"

"12지의 이름을 쓰는데 불꽃이 평범하면 낭만이 없잖아!
NINJA에게 낭만을 빼면 대체 뭐가 남아?"

"사천왕 중에 컨셉에 목숨거는 바보가 있는 것에 관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그런데도 강하다는 점이 불합리하네요."
"차라리 사천왕 대신 쭉 NINJA라고 자칭하는편이 낫지 않아?"

대화가 오가는 사이 체력을 회복한 떵이와 호치가 일어섰다.

"어라? 생각보다 피해가 적었나보네."

"무우..." "이정도론 어림없지!"

"으음...역시 산탄으로는 안되는건가? 엇차~!"

다시금 용맹히 덤벼드는 떵이와 호치의 공격을 피한다.
언제까지 피하고만 있을 순 없기에 이번에야 말로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기술을 피로하기로 했다.

"산탄이 안된다면 큰거 한방은 어떠냐!
간다! 12지대차륜 제2형태!"

양팔을 좌우로 뻗고 몸을 축으로 회전한다.
반바퀴만에 원이 그려지는 동안, 양손에서 각각 6개씩, 합계 12개의 불꽃이 생겨나 큰 고리를 그리며 내 주변을 둘러싼다.
방금전보다 훨씬 큰, 축구공 만한 12개의 불꽃이 수평으로 큰 고리를 이루고 떠있는 모습에 떵이와 호치가 돌진을 멈춘다.

"모여라!"

외침과 함께 오른손 검지를 하늘로 뻗자 12개의 불꽃이 솟아올라 하나로 뭉친다.
내 머리 위에 높이 떠오른 사람 몸만큼 거대한 푸른 불덩어리를 보고 긴장한 둘을 향해 검지를 내렸다.

"12지대차륜(十二支大車輪) 「유성(流星)」"

내 손가락을 보고 황급히 좌우로 뛴 떵이와 호치의 사이로 유성이 쏘아져 나갔다.
유성이 바닥에 충돌한 직후 굉음과 함께 푸른 화염이 터져나왔다.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낸 공격에 둘은 잔뜩 경계한채 자세를 낮췄다.

"어때? 12개의 불덩이를 하나로 모은 힘이라면 너희들에게도 충분히 통하겠지?"

훗날 꾸러기 수비대가 사용할 「12지 합체광선」을 흉내낸 기술이다.
합체광선의 시범용으로 만든 기술이니까, 원한다면 몇번이고 보여줄 의사가 있지만.



...그러나 이 전투에서 또다시 유성이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방금 전 공격을 경계한 호치와 떵이가 모든 힘을 쏟아 접근전을 강요해왔으니까.
뿔로 들이받으려는 떵이를 피하곤, 머리를 박살낼듯 휘둘러지는 호치의 앞발에 황급히 몸을 굴린다.
이어진 둘의 가열찬 공격에 꽤나 낭패스런 상황에 처했다.

12지대차륜은 발동시간이 있어서 육박전으로 들어가면 기술이 봉쇄된다.
오지폭염탄은 빠르지만 저지력이 약해서, 피해를 무시하고 뚫고 들어오는 호치와 떵이를 막기엔 역부족이고.
...이제 퇴각할 때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출격에서는 꽤 성과를 보았다.
쿠키와 앨버트 실종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쿠키와 호치의 관계도 확인했다.
이야기 나라를 섞어보면서 나름대로의 활용법도 기억했고.
꾸러기 수비대에게 단서가 될진 모르겠지만 12지 합체광선을 흉내낸 기술도 선보였고.
이대로 패배한 척 이야기 나라에서 도망치느냐, 아니면 좀 더 시간을 끌것이냐가 문제인데...

문득 옆으로 시선을 보낸다.
저만치 떨어져 새초미, 미미, 키키와 함께 호치와 떵이를 응원하는 똘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각성하기 전까진 사천왕과의 전투에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열외 취급받는 똘기의 사정은 알지만,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원래라면 똘기의 고양이 공포증 극복과 키린더의 강화는 동시에 진행된다.
다만 그건 사천왕인 고우센과 겐엔에 의해 똘기의 고양이 공포증이 악화되고, 더불어 그 둘에 의해 키린더마저 파괴되는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똘기의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호치는 마음의 공포가 그대로 드러난다는「환상의 방」으로 똘기를 데려간다.
그곳에서 똘기는 고양이의 환상을 쓰러뜨림으로써 고양이 공포증을 극복하고 「폭렬질풍검」을 깨우친다.
사실 똘기가 쓰러뜨렸던 고양이의 환상은 호치였지만.
...생각해보면 그때의 호치는 똘기 각성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네.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날아오는 똘기의 「폭렬질풍검」은 사령몬스터 정도는 일격에 즉사시키는 문자 그대로 필살기니까.
자칫 잘못했으면 목숨이 위험했을 상황에서 고작 어깨에 칼침맞은걸로 끝난 호치는 정말이지 억세게 운이 좋았다.

응. 운이 좋았어...

......

좋아. 결심했다. 적어도 똘기에게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자.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랴.
잘되면 여기서 똘기가 각성하는거고, 못되더라도 트라우마를 악화시키진 않게 조심할테고.
우선은 일시적으로나마 떵이와 호치의 발을 묶어두는게 먼저다.

호치와 떵이의 공격을 피하면서 가까이 있는 커다란 나무로 유인한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호치에게 능글거리며 말을 건넨다.

"야자 나무 아래를 빙글빙글 돌던 호랑이 이야기 알고 있나?
너무 빨리 뛰다가 녹아서 버터가 되어버린다는 결말이었지.
어때? 야자 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를 돌더라도 버터가 만들어지는지 한번 시험해보는건?
궁금하지 않아? 과연 어느 정도의 빠르기에서 호랑이가 버터로 변하는지말야?"

"......"

"속지 마 호치!" "이야기처럼 빨리 돌지 않으면 문제 없을거야!"

"후후, 과연 그럴까? 엇차~!?"

떵이의 돌격을 피해서 나무의 뒤로 돌았다.
떵이를 피해 나무를 도는 동안 호치는 주의깊게 걸으며 날 공격하기 위해 나무 주변을 천천히 기웃거렸다.

유감이지만...나무를 돌지 않는다는 선택은 틀렸어.
내 목적은 그 나무 자체보다는 나무의 그림자에 내 그림자를 숨기는 것이니까.
그리고 뛰지 않고 발걸음을 늦춘 것 자체가 실패야.
호치의 몸이 나무 그림자에 들어왔을 때, 발걸음을 떼려던 호치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뭐야!? 다리가...!?"

"이걸로 끝이다!"

손톱을 세우고 호치를 향해 달려가는 척하자, 그런 나를 방해하려 떵이가 돌격해왔다.

"무오오오오---!!!"

"걸렸구나!"

떵이가 가까워졌을 때, 허리춤에서 꺼낸 마지막 남은 세번째 요술콩을 호치와 떵이 사이로 던진다.

"커져라!"

우드득---! 촤아악---!

"무?" "이런!?"

요술 콩나무가 자라면서 얼기설기 둘을 둘러쌌다.
엉성하게 형성된 콩나무 장애물을 호치와 떵이가 빠져나오려 했을 때, '하얀 호리병'을 추가로 던졌다.
콩나무 바리케이트 안쪽에서 호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나고, 순식간에 콩나무는 수많은 가시 덩굴로 뒤덮혀버렸다.
콩나무와 가시덩굴로 이루어진 감옥에 둘을 가두고선 이마를 훔치며 몸을 돌렸다.
아연해하는 새초미 일행을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방금 뭘한거야?"

"가시 덩굴이 나오는 하얀 호리병. 「여우 누이」의 길을 막는데 쓰였다고 하지.
저 둘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빠져나올수 있을테지만, 그전에 해두고 싶은게 있어서."

"...뭘 말야?"

"별건 아니고, 저기 서있는 너희들의 비장의 카드에 관심이 있달까."

"엑..."

당황한 셋을 뒤로하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똘기에게 시선을 향한다.
눈이 마주치자 똘기의 수염이 빳빳하게 일어선다.
똘기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레 똘기와의 거리를 좁혔다.

"똘기라고 했던가? 너와는 한번쯤 검으로 겨뤄보고 싶었지."

똘기를 마주한채 허리춤에서 다크사벨 자루를 꺼내든다.
검붉은 빛이 자루 끝에서 길게 뻗어 나와 검날의 형태를 갖췄다.

"엑!? 검을 쓰는거야?"
"왜 이제와서?"

"응? 그야 광선검을 상대로 맨손으로 싸우는건 무섭고..."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아! 사실은 검사대 검사로서 승부하고 싶었거든!"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검사?" "인법만 썼잖아요!" "NINJA잖아!"

"......"

아무리 NINJA가 낭만이 있다지만, 낭만 쫓다가 검도 없이 폭렬질풍검을 맞으면 죽습니다, 내가.
새초미, 미미, 키키의 아우성 속에 똘기의 공포가 조금 수그러든것 같았다.
똘기를 자극하지 않게 신경쓰며 말을 골랐다.

"무술대회때의 네 시합은 멋졌다. 기공포를 튕겨내는 기술은 대단하더군."

기공포 난사를 광선검으로 모조리 튕겨냈을때, 황당함을 숨기지 못하고 패배한 다람쥐 무투가의 얼굴은 정말 인상깊었다.
마법이나 기공포 공격을 막아내는 똘기의 풍차돌리기 검법은 솔직히 사기지.
고양이 공포증만 없다면 풍차돌리기 검법 하나만으로도 흑의 겐엔 정도는 이길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인정하지. 너는 생쥐지만 우리 고양이와 대등할 자격이 있는 강자다.
너 뿐만 아닌 다른 꾸러기 수비대들도 마찬가지.
동화에서 악을 쓰러뜨리는건 언제나 너희와 같은 자들이었지."

발걸음을 옮긴다.

"새초미가 말했었지. 이야기 나라를 지키고 싶다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서 꾸러기 수비대가 되었다고.
자신의 무력감을 이유로 물러서진 않을거라고.
사람들을 위해 두려움을 참고 악에 맞설 용기를 내는 그 모습을 동경했지."

"...그래."

똘기의 귀가 움직인다. 수염의 잔떨림이 가라앉고 녹색 눈에 빛이 머문다.

"그리고 생쥐인 널 보았을 때 줄곧 궁금했다.
본능적으로 갖는 고양이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고 우리와 맞설 수 있는 용기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것인지 말이다."

"...알게 뭐야 그딴거..."

씹어뱉듯 짜증스레 똘기가 중얼거린다.
입을 다문 날 노려보며 똘기가 떨리는 손을 광선검으로 가져간다.

"내가 아는건...네가 이상한 고양이든 아니든, 나는 고양이 따윈 죽을만큼 싫다는 거고...!"

광선검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자루 끝이 세갈래로 갈라진다.
힐트로 변한 칼자루 중앙에서 찬연한 빛의 기둥이 솟아오른다.

"고양이랑 마주하는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 미칠 지경이라는거고...!"

떨리는, 하지만 빛나는 녹색 눈동자로 똘기가 나를 본다.
흔들리는 검자루를 억지로 부여잡고 앞니를 꽉 다문다.

"하지만...그런데도...! 나는...우리들의 원더랜드가...!「이야앗~!」어?"

어?

갑작스런 외침과 함께 누군가 내 허리에 매달렸다.
가벼운 충격에 비틀거리다가 고개를 내리자 웨이브진 분홍 머리와 양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엑!? 미미?" "미미야!?"

뭐야? 난데없이 왜 미미가 튀어나와?
지금은 똘기가 공포를 극복하고 용기의 찬가를 부르는 장면 아니었어?

"야!? 비켜! 위험하게 왜 갑자기 덤비는거야!?"

"똘기만 싸우게 놔둘 순 없어요!

"만용부리지마!"

"용기에요 이건!"

"너 나중에 사전이나 찾아보고 다시 와라.
아얏!? 턱수염 잡아당기지 마!"

아니 이거 진짜 위험하니까!?
나 지금 칼들고 있고 내 갑옷엔 스파이크가 달려 있어서 잘못 움직이면 찔린다니까!?
일단 다크사벨을 해제했다.

"아아 좀~!? 달라붙지마!
너 진짜 얌전 뺄 것처럼 생겨가지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건 더 싫어요!
저도...! 저도 꾸러기 수비대라구요!
그리고...전 아직 똘기에게...!"

미미가 내 옷자락을 꽉하고 움켜쥐었다.
에? 이런 상황에서 난데없이 고백?
미미를 떼어내려다 거북해져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췄다.

"똘기에게...「친겐사이로 시작하는 조금 눈물나는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구요!"

똘기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진다.

알게 뭐야 그런거!?
정말 쓸데없는데 집착하는구먼 어이!
엔딩때까지 그 이야기에 집착하던걸 떠올리면 얘도 참 사차원 소녀라니까.
그렇게 친겐사이가 궁금하냐?

"옛날옛적에..."

"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

"......"

"어? 그걸로 끝?"

"잡았다!"

"엄마야~!?"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미미를 낚아챘다.

"비, 비겁해요!"

"싸움중에 한 눈 판 네가 잘못이지!"

"새초미한텐 제대로 이야기해 줬으면서!"

"그런데에만 신경쓰니까 실패하는거지!
저거봐. 네가 잡혀 있으니까 네 친구들도 공격 못하잖아."

"핫!?"

미처 몰랐다는 듯 새초미와 키키를 보고 아차 하는 미미.

"꼴좋다 풋-"

"......"

꾸우욱-

"아, 아-!? 그러니까 수염은 안된다고!?"

찔끔 눈물이 나올만큼 아픈지라 더이상 미미를 방치해두는건 안될것 같다.

"으라차~!"

"꺄악!?"

미미를 거꾸로 옆구리에 꼈다.

"아야야...정말이지, 이렇게까지 멋대로 해두고 무사할거라 생각하지마?"

"엣..."

사근사근한 어조로 미미를 불렀다.

"미미야?"

"네, 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야기 나라에서 숙박했을때 기억나? 그때 내가 숙박비를 지불했었지?"

"그, 그랬죠?"

"후후후...방금전까지 너에게 당하고서, 갑자기 네 몫의 숙박비를 지불받고 싶어졌거든."

"저, 돈은 없는걸요?"

"뭘, 걱정마~ 지불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저기...그런데 그것과 지금 이 자세가 무슨 상관이...?"

"후후후..."

"로, 로우란씨?"

"NINJA인법!「북풍이 준 선물」 그 두번째!
엉덩이를 두드리면 돈을 쏟아내는 양이다!"

"에에엣!?"

"이제부터 엉덩이 팡팡이다.
각오는 되었나? 참고로 나는 되어있다."

"시, 싫어!"

"아얏!? 꽁지머리 잡아당기지 맛!"

"꺄아아~! 어딜 손대려는 거에요! 이 저질! 변태! 구더기! 짚신벌레!"

"으갹!? 너야말로 내 꽁지머리에 손대지마!?"

빨개진 얼굴로 왁왁 소리지르며 바둥거리는 미미.
뒤통수에 꼬리처럼 난 꽁지머리를 붙잡혀 쩔쩔매는 나.
그렇게 한참을 아웅다웅하던 차였다.

"Rabbit Carrot Pretty Change~!"

강렬한 분홍색 빛무리가 눈을 찔렀다.
갑옷의 딱딱함이 부드러운 천의 감촉으로 바뀌고, 커다란 후드가 얼굴을 덮으며 시야를 가렸다.

"이야압-!"

퍽-!

"크!?"

갑작스레 시야가 차단된 상태에서 상황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키키의 기합소리와 함께 등뒤에 강력한 발차기를 맞았다.
크게 휘청거리면서 미미를 붙잡은 팔의 힘이 헐거워지자, 누군가 미미를 잡아채갔다.
황급히 거리를 벌이는 둘의 기색에, 얼굴을 가린 후드를 들어올리고 상황을 확인했다.
삭막한 푸른 갑옷이었던 내 복장은, 어느샌가 팬시한 디자인의 분홍색 전신 토끼 파자마로 바뀌어 있었다.
새초미의 「변신마법」으로 시야를 차단하고 그 틈에 키키가 미미를 구출한건가.
이런 방식으로도 변신마법을 활용할 줄은 몰랐는데.
감탄하며 저만치 떨어진 셋의 모습을 확인했다.

키키는 날 경계하며 자세를 잡고 있다.
새빨개진 얼굴의 미미는 어깨로 가쁜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방금전 대활약한 새초미는 요술봉을 내게 겨눈채 매서운 눈으로 날 쏘아보고 있다.

여자 셋이 경계를 늦추지 않는 동안, 어느새 가시덤불을 빠져나온 호치와 떵이가 세명과 합류한다.
새초미가 요지경을 하늘 높이 들었다.

"「정령소환」 드라고!"

요지경에서 나온 빛이 하늘을 찌르고 허공에서 드라고가 구름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어...
드라고, 떵이, 호치라니, 힘타입은 죄다 모았네...

"음, 여기까지 와서 증원은 좀 비겁하지 않을까?"

"시끄러 변태."

싱긋 웃으며 매도하는 새초미에게 움찔했다.

"해치워~"

"「「「오...오우...」」」"

구름을 타고 접근해오는 드라고.
좌우에서 협조해 돌진하는 떵이와 호치.

이 셋을 상대로 맨손으로는 위험할 듯해서 결국 다시 검을 뽑아들었다.



"으라차아아아아!"

드라고의 손끝에서 쏘아진 화염을 검으로 베어낸다.

"무우우---!" "웃!?"

드라고의 화염세례를 막는데 정신이 팔린 날 떵이가 들이 받았다.
정말이지 정신없게 만드는구만!
억지로 자세를 고쳐세우며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호치가 덤벼들어 이빨로 다크사벨을 물었다.
체격차로 그대로 호치 밑에 깔려버릴 뻔 한걸 버티고 섰다.

"칫 이렇게 되면, 「Rabbit Carrot Pretty Change~!」"

난데없이 검을 쥔 양손에「야구 글러브」가 씌여졌다.

......하?

덥썩-!

"아아앗!?"

야구 글러브로 검을 잡은 황당한 상황에서, 눈깜짝할 새에 호치가 다크사벨을 뺏어물고 달아났다.

"나이스 콤비네이션!" "굉장하잖아 새촘아!"

호치가 멀리 던진 다크사벨을 키키가 회수했다.

"이, 이봐!? 너희들 이건 좀 치사한 게 아닐까?"

"NINJA라는 자가 할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태연히 대꾸하며 불꽃을 날려오는 드라고에게 이를 갈았다.
검을 빼앗기고 양손이 글러브로 부자유스런 상황에선 마땅한 방도가 없는지라 필사적으로 드라고와 호치, 떵이의 공격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이제 이야기 나라를 떠날 때인가.

"...손에 든 패도 다 떨어졌고, 검까지 뺏기다니...
이래서야 내 쪽이 불리해 보이는걸."

"불리하다는걸 아셨다면 항복하십시오."

드라고의 권고에 가당찮다는듯 고갤 저었다.

"핫~! 항복 따위 할 것 같으냐? 이렇게 된 이상 사령궁으로 귀환하는것 뿐이라고.
참. 돌아가기 전에 내 다크사벨은 돌려받고 싶은데?"

"바보야. 이 상황에서 누가 돌려줄 것 같아?"

다크사벨을 한손에 들고 코웃음치는 키키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그럼 내가 직접 받지 뭐."

팟-!

"아앗!?"

키키의 뒤에서 솟아오른 검은 그림자가 키키의 손에서 다크사벨을 낚아챘다.
그림자는 그대로 바닥을 기어 내 발밑까지 늘어나 붙었다.

"뭐, 뭐야 그건!"

"내 그림자. 「피터팬」에서 그림자라는건 떨어져 움직일 수 있는거잖아?"

"나무 그늘에서 내 발을 붙잡았던건 그거였나..."

호치가 낮게 신음을 흘렸다.

"어쨌든...오늘은 이만 얌전히 물러가도록 하지.
더이상 싸우다간 새초미가 준 파자마가 더러워질 것 같고."

"우와, 거 참 속이 빤한 변명이네."

진심이다만.
마침 새초미에게 주려고 준비해둔 것도 있고, 파자마의 답례겸 주는게 좋을까?

"새촘아."

"...뭐야?"

내 부름에 새초미는 뚱한 얼굴로 반응한다.
꽤나 화가 났나보네...
곤란한 얼굴로 준비해 둔 물건을 꺼내들어 새초미에게 내민다.
내밀어진 물건을 본 새초미의 눈이 깜빡인다.

"이건..."

"역시 백설공주하면 사과잖아?
음, 먹을 수는 없는 사과이긴 하지만..."

"......"

새초미가 은빛으로 빛나는 사과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파자마를 선물받은 답례라는 것도 있지만, 네 머리카락과 잘 어울리는 예쁜 색이니까 꼭 건네주고 싶었어."

"어째서 너는 이럴때만..."

"이제 이야기를 끝마칠 시간이니까, 적어도 끝은 화해로 마무리하고 싶어서.
부디 이야기 나라 전개를 생각해서라도 받아주지 않을래?"

"......다음엔 그냥 줘도 돼.
굳이 이야기 나라를 변명거리 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조심스레 새초미는 은사과를 집었다.

"...고마워."

"나도 선물로 준 파자마 고마워. 소중히 할께."

"...별로 선물로 준게 아니었거든?"

"에~ 그런식으로 말할건 없잖아~?"

미미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다.
키키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린채 키득거린다.
미미와 키키의 반응을 애써 무시하며 은사과를 받아든 새초미의 얼굴은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사령궁으로 돌아와 알현실에서 해라에게 보고했다.

"...꾸러기 수비대 선발은 달리기였습니다.
원더랜드에 가보지 않았기에 확실히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오오라성에 가까이 사는 정령들일수록 유리해보였습니다.
반대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정령」은 그만큼 불리하겠지요."

기억에 의하면 쿠키는 오오라성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었지.
내 보고에 해라는 옛 기억이 떠오르는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로우란."

"예."

"만약, 네가 그 달리기 시합에 나간다면...오오라성에서 가장 먼곳에서 출발한다면 이길 수 있겠느냐?

"별로 오오라 공주의 수호전사가 되고싶은건 아닙니다만...그래도 저라면 그 누구보다도 빨리 오오라 성에 도착할 수 있을겁니다."

날아서 가든, 세븐리그부츠를 신고 달리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일등할 자신은 충분히 있다.
사천왕의 기술을 쓰지 않으면? 쿠키가 그랬던 것 처럼 그냥 죽어라 뛰어야지 별 수 있나.

"덧붙여 오오라 공주가 따로 널 찾아와 너에게 5분 먼저 출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어쩌겠느냐?"

"정각에 출발합니다."

"...어째서지? 혹시 정정당당 따윌 주장하고 싶은거냐?"

"진 녀석들에게 변명거리 따윌 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오라 공주에 대해 모릅니다. 모두의 앞에서 했던 말을 번복하다니, 무슨 꿍꿍이를 가졌을지 모르잖습니까."

애초에 오오라 공주는 오오라성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금제를 받고 있어서 해라의 가정은 실현 불가능하지만.
그날, 운명의 날 자신의 방에 찾아온 이가 오오라 공주로 변장한 사령신 마라였다는걸 모르는 상황이니...

"......쿡쿡... 아핫핫~! 그래 네 말이 옳다.
누구랑 달리 순진해 빠진 얼간이는 아니로구나 로우란."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건지 해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만약 오오라 공주가 아닌 해라님께서 같은 말을 해주셨다면 따랐을 것입니다.
해라님 당신을 위해서는 긍지도 버릴수 있는 것이 저희 사천왕이니까요."

"...내가 그런말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며 너를 탈락시킨다면?"

"슬프겠지요."

"슬프다?"

"가장 소중한 분께 버림받은 슬픔은 감당하기 힘들겠지요.
순간적으로나마 잘못된 생각을 해버릴정도로."

"...「슬픔」이라고...?"

해라가 의자의 팔걸이를 거칠게 움켜쥔다.

"하! 멍청하구나 네 녀석은. 그건 슬픔이 아냐. 분노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했을 때 응당 느껴야 하는 정당한 감정이지.
아무래도 태어난지 오래지 않은 넌 감정이 많이 미숙한가 보구나."

"설령 절 속이신다 하더라도...제게 거짓말을 하셨다 하더라도, 해라님은 저의 가장 중요한 분이십니다.
소중한 이를 미워해야 한다는 건 제게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 멍청이가..."

"해라님께서는 저를 속이고자 하십니까?"
"아니."

의식하기도 전에 해라가 빠르게 내뱉았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거다 로우란. 나는 오오라 공주가 아니니까.
...그래. 그렇게 웃는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무심결인지 해라가 팔걸이를 손톱으로 세차게 긁는다.
피투성이가 된 손톱으로 오오라 성문앞에서 애원하던 쿠키의 모습이 잠시나마 보인것 같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널 배신한다면, 나는 네가 슬퍼하기보다 내게 화를 내는 편이 더 속편하겠구나."

"으음...어려운 명령이군요."

"...왜 너 같은 녀석이 내 분신이 된건지 모르겠군."

곤란해하는 내 모습에 해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제가 화내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내 손에 죽겠지."

"아, 아하하 그렇겠죠..."

당연한걸 왜 묻느냐는듯 대꾸하는 해라의 반응에, 그럼 대체 왜 물어본거냐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그리고 특이사항으로는...6년전 12지 달리기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듯 합니다."

"불미스러운 일이라?"

"네. 실종자 중에 고양이가 있더군요. 「쿠키」라는 이름의 정령입니다.
고양이라는 점이 신경쓰여서 좀 더 알아봤는데, 듣자하니 꾸러기 수비대의 호치와 사이가 좋았던것 같더군요.
쿠키가 실종된 이후에도 매년 생일마다 호치가 쿠키의 집을 찾아갈 정도니까요."

"......뭐?"

해라의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바보같은...! 설마, 여태껏...?"

혼란스러운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해라는 묵묵히 대기하고 있는 날 인식하곤 얼굴을 추스렸다.

"......계속해 보도록."

"네. 호치와 쿠키의 관계를 알게된 뒤, 호치의 회유를 시도했습니다.
고양이와 사이가 좋았던 호치였기에 어쩌면 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만약 성공한다면 꾸러기 수비대 사이의 단결을 흐트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으니까요."

"...너 혼자 온걸로 봐선 당연히 회유는 실패했나보군."

"유감스럽게도... 호치는 어지간히 쿠키가 소중한 것 같더군요.
언제까지고 원더랜드에서 쿠키를 기다리겠다는 답변만 받았습니다."

"흐응..."

해라는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며 심드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다만 목소리완 달리 히죽 올라가려는 입술끝을 애써 수습하는게 보였지만.

"...옛 여자친구에 대한 미련인가? 바보같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동의를 구하는 척하는 해라의 질문에 의뭉스레 답했다.

"네? 그야...호치는 저희의 적인 꾸러기 수비대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까지고 기다린다는 점은 고평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의 녀석에게 거기까지 사랑받는다니, 분명 쿠키라는 소녀는 대단히 멋진 여성일테죠."

"그, 그런가..."

흠흠.



머쓱한 듯 헛기침을 하는 해라는 입꼬리가 올라가려는걸 참고 있었다.
입술이 씰룩씰룩하는건 어쩔 수 없지만.

"아무튼, 거기까지 일편단심인 사내가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그 정도는 되겠지."

"......"

우와아...이 사람, 지금 시치미떼고 자기 얼굴에 금칠하고 있어.

"시시한 보고였지만, 시간 때우기론 나쁘지 않았다.
독단으로 꾸러기 수비대를 포섭하려 했던건 칭찬해줄 수 없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호치의 덩치와 대호변신이 백의 고우센을 떠올렸는지라 그만..."

"고우센과 닮았다, 인가."

입을 다문 해라는 잠시후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련, 인건가..."

"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그거 지금 물어봐달라는 어필이죠?
쓸쓸한 모습으로 두번씩이나 강조하고 있잖습니까.

"왜 그러느냐 로우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우연이긴 하지만 고우센이 호치를 닮아 있으니, 저도 뭔가를 닮아있는 쪽이 더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

"바보같은 생각이군."

"실례했습니다 ."

애초에 닮았다는건 그냥 입발린 소리였으니까.
쥬켄이야 쿠키를 닮아 있다지만.
고우센이 호랑이 같은 체형이거나 변신능력을 지닌건 호치랑 연결짓기 편하긴 해도, 악의로 가득찬 그 놈을 호치랑 연결짓는건 모욕이지.

"...어쩌면."

"네?"

생각에 잠겨있던 중 갑작스런 해라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회상에 잠겨있는지 해라는 왼팔에 찬 파란 팔찌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로우란 너도 무언가를 닮은 걸지도 모르지."

"제가 말입니까?"

의외의 말에 눈을 깜박이자 해라가 한차례 왼팔을 흔들었다.

짤랑-

파란 팔찌에 달린 맑은 방울소리가 알현실을 채웠다.

"그건...?"

"...옛 기억이지."

"......"

"...괜한 말이었군.
이만 가보거라."

"...네."

일어나 알현실을 뒤로 한다.
그나저나 호치에게 받은 생일선물을 로우란과 연관시킨다는건 생각도 못해봤는데...
추억에 젖은 나머지 해라도 감상적이 되어버린것 같다.

사령신 마라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쿠키도 원더랜드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겠지.
쿠키는 어쩌면 꾸러기 수비대의 멤버가 되어 있었을테고.
신문기자 앨버트는 여전히 유쾌한 기사를 쓰며 지내고 있었을테지.

똘기는 고양이 공포증이 악화되었을지도 모르지만서도...
다만, 쿠키가 미용체조라는 명목으로 똘기를 집요하게 쫓아 다니는 이유를 떠올려보면, 무심코 다른 쪽으로 상상이 번질것 같다.

- 혼자 달리는건 외롭잖아

똘기를 귀여운 생쥐쨩이라 표현하던 것까지 더하면, 어째 고양이와 쥐의 커플 구도가 스물스물 머릿속을 맴돈다.
묘하게 김유정의 「동백꽃」 생각이 나는 내가 엉뚱한건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 속에 빠져있을 때, 마지막으로 해라가 불러 세웠다.

"로우란."

"네."

"너무 쥬켄을 조롱하진 말도록."

"...? 알겠습니다."




해라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알현실을 나왔다.
보고도 끝마쳤겠다, 이제 쥬켄에게 가볼까「야 이 나쁜놈아~~~!」응?
쥬켄의 고함에 반응해 고개를 돌려서 보게 된 건, 지척까지 다가온 늘씬한 다리였다.

"우아아아악-!?"

퍼억!

"큽!?"

옆구리에 깊숙히 꽂힌 킥에 신음이 샜다.
비틀거리는 내 멱살을 쥬켄이 잡고 얼굴을 들이댔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울상을 지은 쥬켄의 얼굴을 보고 방금전 해라의 말이 떠올랐다.
...이 녀석 뭔가 저질렀구나.



아니나 다를까, 내가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로 가면서 부렸던 허풍은 본의 아니게 쥬켄에게 헛바람을 불어 넣었나보다.
내가 나간 뒤, 쥬켄은 해라에게 놀러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가 해라에게 불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두근두근거리던 마음이 한순간에 숯덩이가 되어버렸다고.

"아, 아하하...그건 참...미안한 일을 했네."

울먹이는 쥬켄의 모습에 미안해진 나머지 자연스레 고개가 수그려졌다.
멱살을 잡힌 상태라 고개는 어지럽게 앞뒤로 흔들렸지만.

"거기다 그걸 또 겐엔 녀석에게 들켜서 비웃음당했단말야!"

"저런! 좋아, 걱정마. 너의 원한은 반드시 겐엔에게 되갚아줄테니까."

"네가 원인이잖아 네가!"



"대체 너 해라님께 뭐라고 말씀드리고 이야기 나라에 간거야?"

"동일한 이야기 나라를 공격했을때 꾸러기 수비대의 대응을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지.
저번과 똑같은 등장인물을 사령몬스터로 착각해서 헤멜지도 모르고.
아니면 반대로 현지의 등장인물들의 협력을 받아 사령몬스터 수색에 나설지도 모르지.
꾸러기 수비대 녀석들의 판단력을 확인해 보기엔 마침 적당한 기회였으니까.
식도락 여행이 목적이긴 해도 그걸 솔직히 말하면, 과묵 카리스마 검사라는 내 이미지가 망가지잖아."

"사과 먹고 싶다고 바닥을 굴러댈 적부터 그딴건 없었어.
정말이지 너 때문에 잔뜩 꾸중 들은걸 생각하면 앞날이 깜깜하다구.
나 정말 이야기 나라에 갈 순 있는걸까...?"

"널 놀려댄걸로 방금전 해라님께 질책받기도 했으니, 해라님께서도 굳이 문제삼진 않으실거야.
그리고 초조해하지 않아도 머지않아 기회가 올테니까."

"으응...그럴까?"

"그렇다니까~"

꾸러기 수비대 말살과 키린더 파괴를 목적으로 한 백의 고우센과 흑의 겐엔의 합동작전이 실패한다면, 쥬켄도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무대에 오르게 되겠지.

"나도 이번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네가 출동할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께."

"정말? 약속한거다?"

틱틱거리면서도 귀를 쫑긋 세운 쥬켄을 살살 구슬리면서 달랬다.



"아, 그렇지. 선물 가져왔어."

"먹을거?"

"먹을것도 있는데 지금 줄 건 다른거."

품에서 황금사과를 꺼냈다.

"이건 「파리스의 황금사과」란 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건네졌다고 해."

"헤에...굉장하네."

"거짓말이지만."

"거짓말!?"

"그쪽 이야기의 여신들이랑은 얽혀봤자 좋은 꼴 볼 리 없으니까, 찾을 생각도 안했거든."

"그럼 왜 말한건데..."

애시당초 그딴 꿈도 희망도 시궁창에 버린 이야기가 이야기 기둥에 있을것 같지 않지만.
「대부」나 「모비딕」같은 근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기준은 애매하다 해도 말이다.

"그럼 이 황금사과는 대체 어디서 구해 온거야?"

"연못 속에서."

"어?"

예상치 못한 대답에 쥬켄이 당황했다.

"실은 이거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나라에서 가져온거거든.
연못에 사과를 던지고 연못의 여신으로부터 받은거야."

사심이 가득한 내 행동을 웃으면서 관대히 넘어가 주신 여신님께는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냥 가기에는 양심이 찔렸기에 연못에 던졌던 사과는 여신님께 공양했다.
필요하다면 「그 사과」는 다음에 다시 구하면 되니까.

"해라님 말마따나, 요즘들어 널 너무 놀리기만 한 것 같아서 사과의 의미로 주고 싶었어.
네 눈은 예쁜 금빛이니까 분명 이 사과도 어울릴거라 생각했거든."

"어, 으응. 고마워. ...그것보다 알면 놀리지 말란 말야."

황금사과를 받아들고 만지작 거리던 쥬켄은 문득 궁금한 얼굴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은사과는 없어?"

"그건 새초미 줬는데."

"새초미? 네가 노래를 불러대던 그 토끼 소녀?"

"응."

"흐응...그렇구나."

중얼거리면서 황금사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쥬켄이 씨익하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황금사과를 줬다는건 내가 제일 예쁘단거지?"

"어...미안. 새초미보다 예쁜 애는 없어."

"......"

"......"

"아, 그래도 너도 제법 귀여우니까 두번째 정도는,"

퍽!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쥬켄에게 걷어차였다.

"아야! 갑자기 뭐야!?"

"시끄러 바보야!"

"바, 바보!? 야, 선물까지 줬는데 이럴 땐 좀 귀염성을 보여야지!
새초미를 본받으라구!「쌔액-!」히익-!?"

휘둘러진 곡도를 기겁해서 피했다.
곡도를 겨누고 선 쥬켄의 금빛 눈이 희번뜩였다.

"쥬, 쥬켄? 그건 장난치곤 좀 심한게 아닐까?
해라님께 들키면 또 혼날거라구?"

"해라님껜 그 바보는 사과먹고 체해서 죽었다고 해줄께!"

"야! 그럴땐 키스해서 깨워줘야지! 백설공주 안봤냐?"

"그냥 이대로 평생 깨어나지마! 이 토끼 애호가야!"

"악악!"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이는 누구니?"

『라비쨩요.』

"「「「적당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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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 터틀러님 축전(꾸러기 수비대)
2. 터틀러님 축전(나는 이차원에 불타는 이단 옆차기)
3. 참조 이미지
4. 등장인물 소개


*** 터틀러님 축전(꾸러기 수비대) ***

청출어람 2화 미미의 해프닝 Ver2 (러프)

미미의 역전재판(톤없음)

치어걸 응원(톤없음)

표정관리하는 해라(데셍)


*** 터틀러님 축전(나는 이차원에 불타는 이단 옆차기) ***

(이불이 촬영 해프닝)료스케 첫 메이크업+코테가와,룬,미캉

30화 삽화 쿄코의 사인본

크리스마스 특집 료스케 성전환 버전

*** 참조 이미지 ***

(▶한꺼번에 보려면 클릭◀)

새초미 변신마법

새초미 변신 - 라비쨩

새초미 뚱한 얼굴

떵이의 하트 어택

마법소녀 떵이

변신한 떵이와 호치

해라의 추억


*** 등장인물 소개***

(▶한꺼번에 보려면 클릭◀)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드라고

미미

키키

사령궁 멤버(왼쪽부터 쥬켄,로우란,겐엔,고우센)

청의 로우란

적의 쥬켄

해라 총사령관

백설공주

왕비(이상)

왕비(현실)

샘의 여신(오리지널)

샘의 여신Ve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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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하고도 반만에 찾아뵙네요.m(_ _)m;

축전과 삽화를 보내주신 터틀러님과 1년도 넘게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네요...m(ㅠㅠ)m
7월에 업로드 한다고 한 것도 못지켜서 염치가 없고...orz

재취업한다고 한동안 삽질하며 지내다보니 글쓰기 쪽이 많이 소홀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완성한 글도 이래저래 부족한 점이 많이 보여서 안타깝고요OTL;

(다행히 얼마전 재취업은 성공했습니다^^;)

...다음편엔 좀 더 나아지겠죠@_@a;

이불이는 조금만 더 있다간 연중 2주년을 맞겠네요;

연재3년에 연중2년이라니 웃을 수 없어...

끄적이고 있던 에피소드 3개 중에 먼저 완성되는걸 40화로 올려보겠습니다.

청출어람 4화랑 이불이 40화중에 뭐가 먼저 올라갈지는 확신이 안가지만요( --);;
(청출어람은 삽화까지 미리 받아놓고 참 염치없게 지낸다 싶어요...쿨럭...ㅠㅠ)

티스토리 이미지 링크가 죄다 깨져버려서, 청출어람은 복구한 상태지만...
이불이39화는 이상하게 이미지 링크가 제대로 안먹히더군요.
(39화는 글을 수정하면서 이미지 링크를 건드리면 글내용이 하나도 안보이게 되버려서 손을 못쓰겠더군요--;)

이불이 삽화 링크는 주말까진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들 월요일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m(_ _)m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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