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 4




고사기에 이르길, 에도시대는 바야흐로 풍림화산(風林火山)의 시대였다. 이것은 절대.

첫째, 바람(風) 잘 날이 없었다.
끊임없이 싸움이 일어나고 끊임없이 환자가 실려왔다.

둘째, 화재(火)가 끊이질 않았다.
끊임없이 화재가 일어나고 끊임없이 환자가 실려왔다.

뭐? 수풀(林)과 산(山)? 알게 뭐야. 다 타버렸는데.

대체 이따위 말법적인 동네가 세상에 존재한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오 붓다여!



믿기지 않겠지만 이 무대는 실은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 나라다.

...왜곡이라고 화내지 마. 본편의 사령 몬스터의 이야기 나라 왜곡도 이랬었다니까? 진짜야.

나의 이름은 아라기토 진나이. 알고 있겠지만 정체는 청(靑)의 로우란이다.

그리고...유감스럽게도 이 말법적인 도시의 '의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환자들 탓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는 건 내가 바라는게 아니었다고!
작작 좀 싸우고 불조심 좀 하라고 사람들을 계도하는 것도 한두번이여야지, 반성의 기색이라곤 털끝만큼도 보이지도 않는 이 동네 사람들의 혈기왕성함은 보는 내가 질릴 정도였다.

그런 답답한 내 심정과는 별개로, 내 의술은 사람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었다.

머리가 깨져서 혼수상태로 온 환자건, 팔다리 부러져서 실려온 녀석들이건, 알수없는 병에 걸려 실려온 환자이건, 태생부터 불구인 사람이건, 퇴원할 때는 완쾌해서 다들 멀쩡히 돌아갔으니까.
싸우다가 반병신이 된채 실려 온 놈들을 볼 때마다 나는 머리를 싸맸지만.
이 놈들은 혹시 나를 슈퍼 닥터 K인지 뭔지로 착각하는거 아냐?
불구가 되서 온 놈들을 고생고생해서 사지 멀쩡하게 돌려보낸건 지금 와선 실수한게 아닌가 생각한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기껏 치료해줬더니 환자란 녀석들이 하나같이 별의 별 해괴한 소문을 다 퍼트리고 다닐 줄은 몰랐으니까.

가라사대, 아라기토씨는 타국의 공주의 생명을 구한 적도 있다더라.
반신불수의 환자조차 멀쩡히 걷게 할 정도로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더라.
어쩌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라더라.
신의 손을 가지고 있어서 환자를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더라.
만병통치약을 갖고 있다더라.
회춘의 비약을 갖고 있다더라.
탈모약을 갖고 있다더라.
풍유환을 갖고 있다더라.

특히 마지막 두개 소문을 퍼뜨린 놈은 진짜 가만 안둔다.
덕분에 남자고 여자고 환자도 아닌 것들이 진료소를 찾아와서 한동안 난리를 피워댔으니까.

'회춘의 약'이야 의원인 내가 늙어빠진 영감의 모습인 것에서부터 신빙성을 잃었으니 상관없고.

아라기토씨라면 혹시 죽은 사람조차 되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청년의 물음엔 코웃음을 치면서 뒤통수를 갈겨줬지만.

하여간 이런 유명세를 탈 만큼 사람들을 치료한 덕인지, 사람들은 친애의 감정을 담아 나 아라기토 나이를 '아라진'또는 '진 영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알라딘'인지, 램프의 요정 '진(Djinn)'인지 하나로 하라고!

뭐, 최근에는 나의 강력한 요청을 받아들여, 다들 나를 '진 영감'이라고 불러준다.
왜 '진 영감'으로 했냐고? 그 쪽이 파란색이니까.



여하튼, 이 골치 아픈 동네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 있다면 내 손녀인 '오타마'라고 할 수 있다.

하나로 곱게 묶어내린 비단같이 부드러운 쪽빛 장발.
희고 고운 피부에 맑고 단아한 고동색 눈동자.
선녀같이 다정하고 상냥한 마음씨에 걸맞는 예쁜 목소리.

우리 손녀지만 정말로 귀엽다니까.
우리 오타마가 이 도시...아니, 이 세상 제일의 미소녀라구!
이야기 나라고사기에도 그렇게 쓰여있다. 이것은 절대.



실은 내 손녀 오타마는 원래 알라딘과 결혼하게 되는 '공주님'이니까 이야기 나라 제일의 미소녀인게 당연하지만! 와하하하하!

...왜곡이라고 화내지 마. 본편의 사령 몬스터의 왜곡도 이랬었다니까? 진짜야.



하여간 그렇게 소란스런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오타마에게 심부름을 보내고 진료소를 지키고 있었는데, 심부름을 다녀온 오타마가 묘한 것들을 주워...아니, 데려왔다.

다름아닌 똘기, 강다리, 호치, 미미 넷으로 이루어진 꾸러기 수비대였다.

흰 옷, 파란 민소매 재킷, 흰 장갑, 빨간 캡, 생쥐 귀, 잿빛 털, 검은 머리, 초록색 눈. 생쥐 [똘기].
소매를 팔꿈치까지 접어올린 푸른 무도복, 옅은 황토색 털, 꽁지머리마냥 목덜미에 난 갈색 꼬리, 고동색 강아지 귀. 강아지 [강다리].
연녹색 반팔 상의, 녹색 하의, 초록 반팔 재킷, 검은 줄무늬가 섞인 황색 털, 짙은 검은 눈썹 아래에 강렬하게 번뜩이는 푸른 눈. 호랑이 [호치].
그리고 에메랄드 스커트, 노란 리본이 가슴에 달린 하얀 블라우스, 분홍 웨이브 단발, 민트색 헤어밴드, 양의 귀, 감겨있는 눈. 호치에게 업혀있는 양 [미미].

...그런데 미미 얘는 왜 이야기 시작부터 쓰러져 있는거람?

기절한 채 호치에게 업혀온 미미를 황당하게 보고있던 차에 오타마가 사정을 설명했다.

"할아버지. 여기 여성분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진료소로 모셔왔어요. 한번 봐주시겠어요?"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하외다."

"아픈 사람이 있다면 진료소에 오는게 당연하지. 실례랄 것 없으니 신경쓰지 마시게."

고풍스러운 말투를 쓰며 고개를 숙이는 강다리를 말리곤 넷을 진료실로 들였다.




기절한 미미의 이마에 물수건을 얹고 진맥을 한 뒤 이불을 덮었다.

"걱정할 일은 아니라네. 이대로 잠시 쉬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다행이다..."

머리맡에서 시중을 들던 오타마가 안심한듯 미소지었다.
역시 우리 손녀는 마음씨가 착하기도 하지!

그나저나 강다리의 얘기를 들어보니 미미가 기절한 이유가 가관이었다.
정신없는 마을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서 쓰러진것 같다니...
연약해! 병약 미소녀 컨셉입니까?
맹랑한 아이인줄만 알았는데 거참...
혹시 모르니 나중에 미미가 깨어나거든 특제 회복제를 하나 먹이든가 해야겠다.

지금은 일단 다른 꾸러기 수비대와 얘길 나눠보도록 할까.
진찰을 끝낸 내게 강다리가 앉은채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오.
소인은 강다리. 신세를 진 소녀는 미미라 하오."

과연 사무라이. 복장도 말투도 영락없이 고풍스러운 사무라이로구나.
푸른색 도복이라는 점이 고평가 포인트다.
강다리의 다음에 똘기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난 똘기라고해."

"똘기님이시군요. 그 쪽 분은?"

"나, 나 말입니까?"

호치를 향한 오타마의 물음에 호치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시선을 피한채 한동안 머뭇거리던 호치는 눈을 질끈 감고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호...호치입니다..."

얼굴까지 새빨개진 걸 보니까 호치 저녀석, 우리 오타마에게 반했군.
해라...아니, 쿠키 일편단심인줄 알았더니만...
뭐, 우리 오타마가 워낙 예쁘니까 말이지! HAHAHA!

셋의 자기소개가 끝났기에 내쪽도 소개차 입을 열었다.

"난 아라기토 진나이. 보다시피 이곳 '아라비안 나가이'의 의원을 하고 있지.
이쪽은 내 손녀인 오타마라네."

"오, 오타마씨..."

호치가 뚫어져라 오타마를 쳐다보더니 다시금 눈을 질끈 감고 정좌한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어지간히도 깊이 빠졌나보다. 거참, 첫눈에 반한다는게 저런건가?
만약 쿠키가 이 꼴을 봤더라면 십중팔구 호치를 물어뜯었겠군.
고개를 내젓곤 꾸러기 수비대 일행에게 제안했다.

"보아하니 여행자분들 같은데 일행이 쓰러져서 많이 놀랐겠군.
괜찮다면 이 아가씨가 쾌차할 때까진 우리 진료소에서 편히 머물러도 좋다네."

"감사하외다 아라기토공.
그럼 하루만 이곳에서 실례하도록 하겠소이다."

하루라? 이야기 나라에 머무는게 '이틀' 뿐이니까 당연한가.
강다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똘기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라기토씨."

"편하게 '진 영감'이라 불러주게나. 다들 그리 부르니 말일세."

"그럼 진 영감님. 혹시 '요술 램프'에 대해 아시나요?"

"요술 램프?"

바로 이야기 나라 방문 목적으로 들어가는구먼.
그런데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 나라라고 지목한 걸 보니, 이번에는 이야기 나라를 가리키는 탐색기가 흔들리거나 하지 않았나보다.
아무튼 이런 뜬금없는 질문이 황당했지만 일단 알고있는 정보 하나 정도는 답하기로 했다.

"글쎄...'램프'라는게 뭘 말하는건진 모르겠네만, 일단 '요술 램프'라는걸 찾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군."

"그게 정말입니까?"

호치가 몸을 바짝 앞으로 내밀며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최근 들리기 시작한 이야기이네만.
아라...뭐라 불리는 사람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말일세."

내 말에 똘기와 호치, 강다리가 눈을 빛냈다.

"아라...? 설마 아라딘...알라딘!?"

헛짚기도 넘겨짚기도 그만둬.
말리진 않겠지만.

"음? 그랬던가? 아무튼 아라, 어쩌고 하는 인물이 요술 램프를 찾고있다는 소문일세."

"역시! 그럼 그 알라딘에게 가봐야겠어!"

"도움 고맙소외다 아라기토공!"

"별말을. 아니, 그런데 자네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삽시간에 진료소 밖으로 달려나가 버린 셋의 행태에 멍하니 앉아있다 중얼거렸다.

"...원 참, 사람들 급하긴."

"괜찮을까요 할아버지?"

"그러게 말이다.
아라-어쩌고 하는 인물이 어디에 사는지도 묻지 않고 무작정 나갈줄은 몰랐구나."

"아니, 그게 아니고."

"응?"

"'아리마 만조'. 요술 램프를 찾고 있다는 사람 말예요."

"음, 그런 이름이었던가? 나이를 먹으니 기억이 애매해서 말이지."

"...그 사람, 질이 나쁜 부류의 인물 같던데, 저분들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수하들도 거친 사람들 뿐이라고 들었는데..."

요술 램프를 노리는 '사악한 마법사' 역할이니까 당연히 성격은 나쁠테지.
그래도 그 녀석들이 사령 몬스터도 아닌 이상, 꾸러기 수비대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걱정 마려무나. 그 손님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면 좋겠지만요...
그런데 혹시나 그 분들은 할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 아니었을까요?
'알라딘'이라는 사람을 언급했었죠?
할아버지도 한때 '아라진'이라고 불린 적이 있었으니까..."

"마을에서나 잠깐 나돌다 사라진 호칭을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이 알리가 없잖니.
이제와선 진 영감이라는 호칭만 나도는 마당에, 날 찾는다면 '진 영감'이라는 호칭을 썼겠지."

"그럴까요?"

깜찍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오타마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웃으며 답했다.

"네가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나중에 손님들이 돌아왔을때 한번 물어보도록 하마.
혹시나 날 찾고 있었던거라면 내 도움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를테니.
후후, 처음 본 사람들을 거기까지 생각해주다니, 우리 오타마는 상냥하구나."

"할아버지도 차암..."

부끄러운듯 볼을 발갛게 한 오타마가 자리를 비웠다.
진료실 침상에 누워있는 미미에게 먹일 탕약을 달이러 간거지만.

...그러고보면 미처 하지 못한게 있었네.
응급처치로 기절한 사람의 상의 단추를 두어개 풀어주는 편이 좋다는걸.
솔직히 이런건 꾸러기 수비대 녀석들이 미리 해줘야 하는거 아냐?
투덜거리면서 미미를 덮은 이불을 치웠다.
가슴께를 장식한, 푸른 뱃지가 달린 오렌지색 리본을 빼곤 분홍빛 조끼를 벌렸다.
드러난 하얀 와이셔츠에서 목덜미 근처의 단추를 풀어주려고 단추를 만지작 거릴 때였다.

"으음..."

얕은 신음과 함께 미미의 눈꺼풀이 열렸다.

"여긴...?"

힘없이 중얼거리며 눈을 뜬 미미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정신이 들었나보구나."

"당신은...에...?"

머리맡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내 모습에 의아한듯 중얼거리던 미미의 시선이 내 손으로 옮겨졌다.
풀어헤쳐진 리본과 조끼.
버튼이 풀려 벌어진 흰 화이셔츠 사이로 드러난 속살.
와이셔츠 단추를 쥐고있는 내 양손.
조금 거북한 상황을 마주한 미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꺄,"

"어이쿠 이런, 안되지."

"~~~!?!?"

한손으로 미미의 입을 막았다.
새어나오지 못한 비명을 지르면서 바둥거리는 미미를 달랬다.

"진정하렴.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난 그저, 윽!?"

입을 가린 내 손을 미미가 힘껏 깨물었다.
손에서 느껴진 통증에 무심코 손을 떼자 미미가 후다닥 벽 뒤로 물러섰다.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은 듯 바닥을 기어가는 동작이었지만.

깨물린 잇자국이 선명하게 난 손을 바라보다 두어번 흔들곤 미미를 봤다.
방 모서리에 주저앉은 채, 짙은 경계심을 품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내게 향한채 미미에게 웃음을 띄곤 말을 건넸다.

"건강한 아가씨로군.
깨어나자마자 하는 인사치곤 꽤나 거칠었다네."

"...당신은 누구시죠? 여긴 어디고요?"

"나는 아라기토 진나이.
이곳 진료소를 운영하는 의원이란다."

"의원?"

"그래. 너의 친구들이 쓰러진 널 이곳으로 데려왔지."

"...그럼 방금 전 제게 한 행동은 뭐였죠?"

"기절한 상태에서는 흉부를 압박하면 안되니 단추를 풀어둔 거란다.
이렇게 거북하게 될 줄 알았으면 손녀에게 대신 부탁할걸 그랬군."

"그, 그런가요..."

"아직 어지럼증이 남아있니?
괜찮다면 이런데 좋은 과일을 알고 있는데."

"과일? 약이 아니고요?"

"의원이라고 언제나 약으로 해결하는건 아니니까.
하루에 사과 하나면 의사가 필요없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어디선가 꺼내든 사과를 과도로 깎았다.
접시에 사과 조각을 올려두곤 아직껏 방 한구석에 앉아있는 미미를 불렀다.

"그렇게 경계하지 말고 이리 와서 사과라도 한개 들려무나.
아직 깨어난지 얼마 안되었으니 이불 안에서 좀 더 쉬어야 하고 말이다."

"......"

머뭇거리며 미미가 다시금 이부자리로 돌아왔다.
접시에 놓인 토끼모양으로 깎인 사과를 보곤 미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토끼모양이 신경쓰이는가?
어릴 적에 손녀에게 해주던 버릇이 남다 보니...핫핫."

"...정말로 의원이신가요?"

"그렇게 미심쩍은가?
이래뵈도 동네에서는 제법 명의라고 불릴 정도이네만."

사과를 베어물던 미미의 시선이 과도를 든 내 손을 향했다.
뭔가 했더니 아무래도 잇자국이 남은 내 손이 신경쓰이나보다.
살갗에 피가 배어있는 내 손을 보고 미미가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은 죄송해요."

"괜찮단다. 아깐 내가 배려가 부족했지.
그리고 이건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대수롭지 않게 잇자국이 난 손을 계수나무 잎으로 문질렀다.
계수나무 잎을 치우자 잇자국 하나 남지않은 멀쩡한 손이 드러났다.

"'노시와 유탄' 이야기 나라의 계수나무 잎이란다.
이 정도는 상처라고 할 것도 아니지."

"......"

사과를 베어문 채 눈이 휘둥그레 진 미미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재밌는 반응에 미미의 볼을 콕콕 찔렀다.
마치 푸딩같네.

"우물, 호, 호시-"

"...먹으면서 이야기 하는건 보기 흉하니까 먹던 사과는 다 먹고 얘기하렴."

"서, 설마......로우란씨?"

미미의 물음에 싱긋 웃었다.

"정답.
지금은 아라기토 진나이라고 불리지만.
이웃들은 나를 '진 영감', 또는 드물게 '알라딘(아라진)'이라 부르기도 하지."

푸우웃!?

"......"

"죄, 죄송해요!"

미미가 뿜어낸 사과가 얼굴에 잔뜩 튀었다.
타액과 사과 범벅이 된 채 침묵한 내게 새빨개진 얼굴로 미미가 사과했다.

...그러니까 사과는 다 먹고 얘기하라니까...

내심 한탄하며 얼굴에 뿌려진 사과를 손으로 훔쳐서 핥아 먹자 미미의 얼굴이 폭발할듯 빨개졌다.

"뭐, 뭐하는거에욧!?"

"너야말로 뭐하는거야!
이거 진짜 귀한거라고!"

"벼, 변태! 변태변태변태변태!
로우란씨는 변태에요!"

"뭐 임마!?
젠장, 너야말로 웃기지마!
한껏 연약한 척 굴릴래 기껏 신경써서 '탈무드의 요술사과'를 건네 줬더니만..."

"그게 뭔데요!"

"탈무드의 요술사과?
아버지의 세 보물을 세 아들이 물려받은 이야기잖아!
첫째는 천리밖을 보는 '요술 망원경'을, 둘째는 하늘을 나는 '요술 양탄자'를, 셋째는 모든 병을 치료하는 '요술 사과'를 물려 받았지.
그러던 어느날, 첫째가 요술 망원경을 통해서 '공주의 병을 고치는 자에게 공주를 주겠다'는 벽보를 보고, 삼형제는 둘째의 '요술 양탄자'를 타고 왕궁으로 날아가.
그리고 셋째가 가진 '요술 사과'로 공주의 병을 치료하지.
문제는 셋중 누가 공주와 결혼할 것이냐였는데..."

"......"

요설을 내뱉다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미미의 모습에 정신을 차렸다.

"아차, 이게 아니지.
나도 모르게 또 쓸데없는 쪽으로 이야기가,"

"그 다음은요?"

"응?"

"계속해주세요. 요술사과 이야기."

...야...
뭐, 좋지만.
얌전히 앉아서 듣는 미미의 태도에 한숨을 쉬곤 이야기를 계속했다.

"기나긴 고민 끝에 임금님은 셋째가 공주와 결혼할 자격이 있다고 결정했어."

"어째서요?"

"첫째의 요술 망원경도, 둘째의 요술 양탄자도 그대로 남아있지.
하지만 셋째의 요술 사과는 더이상 없어.
공주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셋째는 자신이 가진 모든걸 바쳤으니까."

"자신이 가진 모든걸..."

"그래서 공주님과 셋째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

이야기가 끝났는데 미미로부터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의아해하며 미미를 보자, 힐끗힐끗 나를 바라보며 미미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상한 꿍꿍이로 요술 사과를 준건 아니죠?"

경계어린 미미의 물음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왜? 설마 네가 나랑 결혼해주려구?"

"!? 우, 웃기지 말아요! 제가 어째서 그래야 한다는거에요!?"

"네에~ 그러시겠죠.
명색이 꾸러기 수비대면서 사령 사천왕이 친절히 설명해주기 전까진 '요술 사과'란 이야기는 알지도 못하셨으니, 애초에 그런걸 해줄 수도 없으셨겠지요?"

"으윽...!"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야기 나라를 구한다면서 솔직히 이야기라곤 하나도 모르는거 아닙니까 미미야~앙~~~?"

"시, 시끄러워요!
별의 별 특이한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로우란씨쪽이 비정상인거잖아욧!
아..."

화를 내다가 현기증이 일었는지 미미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걸 부축했다.
품에 안겨 긴장한 미미를 조심스레 도로 눕히곤 이불을 덮었다.

"막 깨어난 환자 상대로 배려가 없었네.
아직 피로가 덜 풀렸을테니 좀 더 쉬고 있어."

"...쉴 수 있을리 없잖아요..."

"어째서?"

고개를 갸우뚱하자 미미가 한참을 우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로우란씨는 어째서 꾸러기 수비대인 절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거죠?
사령 사천왕인데..."

"그야 지금 너는 환자잖아?
그리고 나는 의원이고."

새로 짠 물수건을 불안한듯 눈을 깜박이는 미미의 이마에 덮어주었다.

"네가 십이지 전사가 아닌 환자로 있으니까, 나도 사령 사천왕이 아닌 의원으로서 있는거야."

"......그런가요?"

"그래."

"......"

잠시 침묵이 맴돈다.
차가운 물수건의 감촉을 느끼듯 눈을 감고 얌전히 누워있던 미미가 살며시 눈을 뜨곤 물었다.

"...어떻게 알라딘이 된거에요?"

"어떻게라니?"

"사령 몬스터는 '이야기의 주인공'에겐 빙의할 수 없다고 알고 있었어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령신 고르님의 강력한 가호를 받으니까요."

"그건 일반 사령 몬스터들의 경우지.
나 정도의 사령사천왕이라면 그런 가호는 아무런 제약도 되지 않아."

자랑하는 척 은근히 향후 일에 대한 주의를 줬다.
장화신은 고양이 나라에서는 주인공인 고양이에게 '흑의 겐엔'이 빙의하기도 하니까.

"후후, 어때? 대단하지? 칭찬해줘도 좋아."

"네에~ 대단하네요 로우란씨는."

"노골적일 만큼 건성이구나..."

"그나저나 알라딘이라면서요?
왜 그렇게 늙은거에요? 혹시나 이 곳은 '쥐의 시집가기' 이야기 나라 때처럼 결말 이후의 세상인가요?"

"응? 그런건 아냐. 별건 아니고, 나이든 모습이 의원으로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것 같아서 이런 모습을 한 것일 뿐이니까."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중 밖에서 인기척이 나고 손녀가 탕약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 약을 달여 왔어요."

"고맙구나 오타마야."

"네. 아, 환자분도 깨어나셨군요?"

방으로 들어온 오타마는 이불을 덮은채 눈을 뜬 미미를 보곤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소개하지. 내 손녀인 오타마라네.
자네 일행을 이곳 진료소까지 데려와주었다네."

"아...감사해요 오타마씨.
전 미미라고 해요."

"별말씀을요 미미씨.
친구분들이 많이 걱정하셨는데 쾌차하셔서 다행이에요."

웃음을 띄며 탕약을 내려놓곤 오타마는 다시 일어났다.

"그럼 할아버지. 저는 약재를 자경단에 전해주러 다녀올께요."

"오타마야, 다음엔 자경단 녀석들보고 진료소로 직접 오라고 그래라.
그 녀석들 매번 네 얼굴 보려고 약재를 주문하는거니까 말이다."

"그런 매정한 말씀 하지면 안되잖아요.
다들 상냥한 분들이신걸요."

"그야 너같은 미소녀에게 상냥하지 않은 녀석은 사내도 아니겠지."

"정말이지, 부끄러운 말씀 마세요."

후후 웃으며 오타마는 방을 나섰다.
탕약을 사발에 따르곤 미미에게 약사발을 건넸다.

"우리 손녀지만 참 상냥하다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탕약을 건네받은 미미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렇네요. 손녀 바보 로우란씨."

"손녀 바보라니! 그저 우리 오타마가 세계 제일의 미소녀일 뿐이잖아?"

"그게 그거죠..."

한숨을 쉬며 탕약을 마시면서 문득 생각난듯 미미가 물었다.

"미소녀하니까 생각난건데요.
알라딘과 요술 램프 이야기에선 알라딘은 공주님과 결혼하는거였죠?"

"맞아."

호록-

"그럼 공주님은 지금 어딨죠?"

"응? 내 '손녀'인데?"

푸웃!?

촤악-!

"......"

뚝-뚝-

얼굴이 한약 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너...진짜 적당히 해."

오늘만 벌써 두번째 분무라니.
나는 이런걸로 기뻐하거나 하지 않으니까.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자 미미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아니, 이게 아니지!"

사과하던 미미가 고개를 쳐들곤 삿대질했다.

"로우란씨야 말로 적당히 하세요!
이거 분명히 노리고 그런거죠?"

"뭐가?"

"뭐긴 뭐에요! 공주님을 손녀로 설정한 걸 얘기하는거잖아요!
알라딘과 공주님을 혈연관계로 만들어서 둘이 맺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죠!?"

"핫핫핫. 오해라네."

"...정말로?"

"아무렴, 정말이지."

"제 쪽을 보고 얘기하세요."

"......오늘은 밖이 화창한걸."

"무시하지 마세요!
아, 또 현기증이..."

이마를 짚은 채 쓰러지려는 미미를 부축했다.

"무리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미미가 앓는 소리를 내며 원망스러운 듯 쳐다봤다.
아니, 이거 솔직히 내 탓만은 아니야.
본편의 사령몬스터의 왜곡도 이랬었다니까? 진짜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던 미미가 중얼거렸다.

"...이래선 완전히 엉망이잖아요..."

"엣? 갑자기 왜그래?"

난데없이 눈물을 글썽이는 미미의 모습에 당황하자 미미가 코를 훌쩍였다.

"...기대하고 있었는데."

"뭘 말야?"

"사막의 밤하늘. 마법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알라딘과 공주님.
그 곁에서 함께 날아가는 램프의 마신... 그런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오오, 그건 분명 낭만적인 광경이겠네."

"전부...전부 로우란씨가 망쳐버렸잖아요!"

"음, 그렇군."

"......"

내 대답에 완전히 삐져버린듯 미미는 이불을 돌돌 말은채로 돌아누워버렸다.
어쩐다...?
아무래도 미미는 이야기 나라에 올 때부터 낭만적인 사막의 나라를 어지간히도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그걸 깨버린건 나였고.
...뭐, 이틀이라는 기한이 지나기까진 아직 시간도 넉넉하게 남았으니까, 불만이 가득찬 환자를 위한 서비스 정도는 해줄까.

"미미야."

"...왜요?"

"몸이 불편하지 않다면, 기분 전환도 할 겸 잠시 바람 좀 쐬러 나가지 않을래?"

"...필요없어요."

"에이~ 그렇게 말하지 말구~
요술 양탄자를 타고 하늘 산책이라도 하자구? 응?"

움찔.

내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는지 돌아누운 미미의 양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요술 양탄자, 가지고 있었어요?"

"응. 가끔 손녀에게 태워주기도 했으니까.
'탈무드의 요술 사과'에서 가져온거지만 말야."

"...그러고보면 요술 사과 이야기 나라에도 요술 양탄자가 있었죠.
정말로 온갖 물건을 멋대로 가져오기는..."

투덜대면서 미미가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대되는지 미미의 양 볼은 살짝 상기해있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따라가줄게요.
생각해보면 저는 '꾸러기 수비대'로서 로우란씨가 요술 양탄자를 악용하는지 감시해야 하니까요."

아...네.

기대로 부푼 미미에게 딴죽을 걸고 싶진 않았기에 얌전히 밖으로 나와 요술 양탄자를 꺼내 펼쳤다.
마당에서 낮게 떠있는 요술 양탄자 위에 잽싸게 타곤 즐거워하는 미미의 모습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미미야."

"네? 로우란씨? 얼른 출발 안하나요?"

"그러니까... 하아...그래, 알겠어."

하늘 여행이 기대되는건 알지만, 감시라고 말했으면 적어도 의심하는 척이라도 해라.
아무 의심없이 밝게 웃는 미미를 보곤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고 양탄자에 올라탔다.




하늘 산책으로 미미의 기분을 풀어준다는 의도는 좋았다.
의도는 좋았는데...

덜덜덜.

"로, 로우란씨...?
떠, 떨어뜨리면 가만 안둘테니까요!?"

"큭, 알았어! 알았,으니까 목 조르진 마!
힘들다고! 으겍!?"

적어도 달라붙는건 허리에 손을 두르는 정도로 해주세요.
등 뒤에 업혀선 목에 양팔로 쵸크 슬리퍼를 거는 미미의 행동에 목이 졸려 죽는 줄 알았다.

내 항의에 미미가 자세를 바꾼건 좋은데, 이번엔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마냥 정면에서 사지로 달라붙은 자세였다.
이거야 원 낭만도 뭣도 없는 자세군요.

"너무 달라붙었잖아! 좀 물러나!"

"로우란씨의 뭘 믿고 제가 떨어져야 하죠!?"

"야! 그랬으면 애초에 타기 전에 얘기했어야지!
넌 지금 자세로 부끄럽지도 않냐!"

"지금의 로우란씨는 할아버지니까 괜찮아요!"

"아아! 그러세요?"

부끄러운줄 모르고 내 품에 달라붙은 미미에게 기가 막혔다.

새액-새액-

"...정말이지...
일단 한번 지상으로 내려가자."

잔뜩 긴장해선 숨을 몰아쉬며 귀를 바르르 떠는 미미의 모습에 어쩔수 없이 양탄자의 고도를 낮췄다.
폭신폭신하고 좋은 향기가 나긴 했지만, 이래서야 의도했던 미미의 기분 전환은 눈꼽만큼도 될 것 같지 않았으니까.




지상에 도착해서 가죽 주머니를 미미에게 건넸다.

"이거 줄테니까 안에 든 가루를 한줌 몸에 뿌려."

"이게 뭔데요?"

"하늘을 나는데 필요한 건 약간의 믿음과 신뢰, 그리고 '요정의 가루'지."

"...혹시 '피터팬' 이야기 나라의 물건인가요?"

"맞아. 순수한 마음을 가진 너라면 요정의 가루의 효과를 볼 수 있을테지."

"...사천왕이 믿음이니 신뢰니, 순수한 마음이니 운운하는건 이상하지 않아요?"

묘한 얼굴로 미미가 요정의 가루를 몸에 뿌렸다.
둥실하고 하늘에 뜨는 자신에게 신기해하는 미미를 다시 양탄자에 태웠다.

"이제 보험도 들었으니까 덜 무섭지?
설령 떨어져도 책임지고 구해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러니까 달라붙는건 적당한 정도로만 해줘."

"읏! 저도 좋아서 달라붙은게 아니거든요?"

"그래그래."

항의하는 미미에게 맞장구치며 다시금 양탄자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와아아..."

하늘에서 내려다본 경치에 미미가 탄성을 질렀다.

"좋네요 이 풍경은.
요롱이가 그렇게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뱀의 정령인 요롱이? 생각해보면 그 녀석은 하늘을 나는 발명품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었던가?
아마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구상한 비행기구랑 똑같은 구조의 물건을 만들었던것 같은데.

"경치 구경하는건 좋지만 조심해.
아직 날이 밝으니까 태양 쪽은 바라보지 말구."

"네에~"

내 허리에 양팔을 두른채 구름의 무리를 보거나 아래의 풍경을 구경하던 미미가 문득 날 불렀다.

"로우란씨."

"왜 그래?"

"로우란씨는 이곳에서 무얼 하고 싶었어요?"

"응?"

무슨 말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 힐끗 미미를 쳐다보자 미미가 말을 이었다.

"로우란씨가 여기에 온 이유는 단순히 이곳을...'알라딘과 요술 램프' 이야기 나라 한 곳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로우란씨가 첫번째로 침입한 '쥐의 시집가기' 이야기 나라는 특이하게도 원래 정해진 '결말의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죠.
두번째로 침입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야기 나라에서는 '잭과 콩나무' 이야기 나라의 물건을 사용하고 있었죠.
세번째로 침입한 '백설공주'이야기 나라는, '똑같은 이야기 나라를 두번째로 침공'했다는 것에 더해서 '다수의 이야기 나라'의 물건들이 포함되어 있었고요."

미미가 가만히 등에 머리를 기댔다.

"때로는 치열한 접전 끝에, 때로는 운에 맡긴 결과에 승복한채로, 때로는 어처구니 없을 만큼 허무하게 패퇴했지만...
이야기 나라에 올 때마다 로우란씨는 이전과 달라진 힘을 보이는걸요."

허리에 둘러진 미미의 팔에 힘이 실렸다.

"비록 꾸러기 수비대의 동료들은 로우란씨를 조금 특이한 사천왕이니, 새초미에게 빠져있는 바보라며 떠들고 있지만...
로우란씨가 가진 모습은 그것 뿐만이 아니라고 전 생각하니까요.
네번째로 침입한 이곳,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에서는...대체 무엇을 바라고 오신거죠?"

등에 몸을 기댄채 물어오는 미미의 말을 곱씹어보곤 되물었다.

"음. 즉, 그러니까 미미 너는 내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단거야?"

"그래요. 누군가는 의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제가 그 역할을 맡을 뿐이에요."

"나를 의심한다라...역시 너는 꾸러기 수비대로구나?"

"......"

"음, 아니, 풀 죽으라고 한 소리가 아냐?
칭찬이었어. 정말로, 널 꾸러기 수비대로 임명한 오오라 공주는 현명했다고 생각해."

"...정말인가요?"

"뭐, 사령 사천왕인 내 말이 얼마나 미더울진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한 말이야.
그렇지만 말야...의심하는건 좋은데, 이상한 기대를 품으면 내가 곤란해."

"곤란하다뇨?"

"그야 그렇잖아?
나한테 의외성을 잔뜩 기대한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내가 준비해온 것들이 너희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해?
나도 나 나름대로 의욕내서 이야기 나라에 온건데, 마주한 상대가 잔뜩 실망한 시선을 향해온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해?"

"괜찮아요. 실망은 다른 사령 몬스터들 상대로 잔뜩 하고 있으니까.
항상 만날때마다 하는 말은 하나같이 '네녀석들은 왠 놈들이냐?'뿐인걸요."

"...그, 그건 뭐랄까...양식미잖아?
악당이 '왠 놈이냐!'라고 물으면 지나가던 협객이 '네 놈들에게 알려줄 이름 따윈 없다!'로 되돌려주는 것처럼."

"아, 그건 괜찮은 생각이네요.
다음에 사령 몬스터 상대로 그 대사를 시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에엑? 진짜로!?"

"만약 로우란씨가 준비한게 저희 기대에 못미친다면 로우란씨도 같은 대사를 들을지도 몰라요?
뭐어~ 낭만 NINJA인 로우란씨라면 분명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테지만요~"

"...그렇게 기대를 받으면 부담감에 매몰되서 자멸할 것 같은뎁쇼?"

"...쿡..."

미미가 작게 웃음을 흘리며 껴안은 팔에 힘을 뺀다.
미미도 긴장을 푼 것 같았기에 슬슬 방금전 미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로 했다.

"아무튼 알라딘과 요술램프의 이야기 나라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야기 나라로 이런저런 시험을 해보고 있었지.
아까 보여줬던 계수나무 잎이라든지 요술 사과라든지 하는 것 말야."

"잘도 그런 이야기들을 찾았네요."

"너희가 예상보다 느긋하게와서 생각할 시간이 넉넉했거든.
뭐, 손녀 돌보느라 지루하진 않았지만.
거기다 의원을 하면서 사람들을 고치는 것도 나름대로 보람이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곤 한손으로 지평선 끝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기 바다가 보이지?"

"네."

"저 곳엔 '우라시마 타로' 이야기 나라도 섞여있어.
저 멀리 바다 속 용궁에선 지금쯤 우라시마 타로가 공주님께 호화만찬을 대접받고 있지 않을까?"

"우라시마 타로?
그 이야긴 섞을 필요 있었나요?"

"글쎄? 무대를 옛 일본으로 바꾼 참에 내친 김에?
아니면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용궁의 상자를 쓰려고 섞었을수도 있겠지."

"뭐에요 그건."

어처구니없다는 듯 미미가 중얼거렸다.

"아무튼, 로우란씨가 이번에도 잔뜩 이야기 나라를 뒤섞었다는건 잘 알겠어요.
키린더가 좌표를 헷갈리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로 말예요.
혹시 이게 로우란씨의 힘이 안정화되었다는 의미인가요?"

"저번에도 말한거지만, 내 밑천을 벌써부터 다 드러내게 만들진 말아줘.
그것보단 키린더의 좌표 탐지 능력이 개선된거 아냐?"

"정말이지 그렇게 말을 돌리기나 하고...하나하나 싸우기 귀찮은 상대에요 로우란씨는."

"그건 칭찬이지?"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거기까지 이야기 나라를 멋대로 바꾸면서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지 불안할 뿐이니까요."

"칭찬 아니었구나...
음, 꿍꿍이야 여럿 있지만...굳이 하나 꼽자면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게 있어서."

"해보고 싶은 것? 어떤거죠?"

"그다지 말할만한 건 아냐.
별로 우리 싸움과 상관있는건 아니기도 하고.
어쩌면 너희들과의 싸움이 길어지면 언젠가 드러내 보일 기회가 있겠지."

"뭐에요 정말..."

"자자, 얘긴 여기까지 하고 슬슬 아래로 내려가보자구.
진료소에는 내 귀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랑스런 손녀가 있으니까 말야."

"네에에~ 이 손녀 바보 영감님 같으니."

"간지러우니까 옆구리 찌르는건 그만둬라?"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심술을 부리는 미미에게 한소리하곤 양탄자의 고도를 낮췄다.




미미와의 하늘 산책을 마치고 양탄자를 조종해 진료소 앞으로 내려왔다.
똘기와 호치, 강다리는 아직 진료소로 돌아오지 않은 듯 했다.
그 녀석들 혹시 길을 잃어버리거나 한건 아니겠지?
고개를 젓곤 양탄자에서 내렸는데 왠 편지가 칼에 꽂힌채 진료소 입구에 박혀있는게 보였다.
살벌한 방식의 서신에 의아해하며 미미와 함께 서한의 내용을 읽었다.


네 손녀는 내가 데리고 있다.
손녀가 무사하길 바란다면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순순히 나의 저택까지 와라 진 영감.

- 아리마 만조.


"......"

"로, 로우란씨. 이건..."



그러니까...뭐야?

램프가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요술 램프를 찾네마네 떠들던 왠 등신 같은 놈이...

내 손녀를 납치해?



이런 씹어먹을 놈팡이를 봤나?



===========================

일단 내용을 쪼갭니다.
2번에 나눠서 완성될지 3번에 나눠서 완성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컴퓨터를 밀어서 참조 이미지 캡쳐가 여의치않네요.
일단은 기존에 하드에 보관해둔 참조 이미지를 링크로 겁니다.(_ _);

*** 이미지 링크 ***

오타마

똘기

'호치' 새초미 드라고

미미 키키 '강다리' 새초미

미미


Posted by 루트(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