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동네 야쿠자들의 패싸움 소문이 퍼진 이후 며칠간,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날따라 늦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어둑해진 골목길 앞에서 젊은 아가씨 한명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집에 돌아가 세탁물을 돌릴 걸 생각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아가씨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더니,
별안간 걸음이 빨라졌다.
온몸이 긴장한 듯한 느낌으로 뻣뻣이 잰걸음을 옮기는 아가씨를 보고 내심 실수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저 아가씨가 생각하고 있는 게 대강 짐작이 간다.
아무튼, 어둑한 밤길을 홀로 걷는 여성이 뒤에 선 남자를 경계하는건 당연하다.
안 그래도 최근에 난 흉흉한 소문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시점인데,
거기에 더해서 뒤따라오는 남자가 험악한 인상의 수염난 금발 양아치라면 경계도가 최대로 높아지는건 당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려나...
첫째, 추월한다.
기각. 추월하려다가 오히려 더 겁을 줄 위험이 심대하다.
비명을 지르지나 않을지 걱정이므로 제외.
둘째, 건물들을 뛰어넘으며 지나간다.
기각. 평범하게 가고 싶습니다.
「뭐든지 초상(超常)의 힘에 의지하고 있으면 타락할 뿐이니까」라는 네기○몽의 말을 좋아합니다.
잘 지키지는 못한 편이지만.
셋째, 걷는 속도를 늦춘다.
가결. 그저 발걸음을 늦추고 저 아가씨가 안심할 만큼 멀어질때까지 느긋하게 걸어가도록 하자.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가다보면 적당히 떨어지겠지.
조용히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
「...누군가를 위해서 강해지도록 해
...보고 있기만 해선 시작되지 않아
이것이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괜찮아
그저 그것만 할 수 있다면
「꺄악!」」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놀라 앞을 바라본다.
왼쪽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섰던 방금 전의 아가씨가 놀란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것이 보인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이어폰을 빼자 희미한 신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긴장하며 옆으로 샌 골목길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들어온 광경에 맥이 탁 풀렸다.
「끄응...」
「우우...」
얼굴이 떡이 된 채로 널부러져 있는 깡패 몇 명.
그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서있는 검은 옷을 입은 금발의 소녀, 야미가 있었다.
아마도 추근대던 깡패들을 때려눕혀 버린 거겠지.
생각했던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 안도하며 야미에게 다가간다.
내 발걸음 소리에 야미가 고개를 들자 웃으며 농담을 한다.
"착한 아이는 이제 집에 들어갈 시간이에요~."
나름대로는 반박을 기대하며 꺼낸 말에 야미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
"응?"
어두운 골목길이라 내 모습이 그림자에 가려졌나?
예상치 못한 야미의 반응에 서로의 얼굴이 보일만큼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간다.
가까이 오는 나에게 야미가 조용히 말한다.
"...다가오지 마시죠."
"그러니까, 나야. 아키츠 료스케."
"...아...?"
왠지 기운이 빠진듯한 목소리에 의아해하며 다가가자, 그림자 너머의 야미의 얼굴이 보였다.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릿한 눈동자.
갸날프게 몰아쉬는 한숨.
벽에 몸을 기댄 채로 힘이 풀린 듯한 몸.
약간 붉어진 얼굴에 땀이 배인 이마.
이거 혹시 위험한거 아냐?
걱정되서 야미의 이마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 야미의 머리칼이 칼날로 변하여 쏟아진다.
"자, 잠깐?!"
설마 나를 못 알아본 거야?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자 갑자기 머리카락의 칼날이 기세를 잃고 형태를 무너뜨리며 흩어진다.
의도하지 않은듯한 변화능력의 해제.
"가까이...오지 마시죠."
스르륵-
경고를 말하면서 벽에 등을 기댄채로 주저앉아 버리는 야미.
하아...하아...하며 힘겹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한다.
재빨리 야미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는다.
치익-
...무지 뜨겁잖아?!
닿은 손에서 연기가 날만큼 열이 전해진다.
"야미 너...몸이 정상이 아니잖아?
열이 장난이 아니라고?"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냐?
식은땀을 이렇게나 흘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될때까지 가만히 있었던거지?
우주인 의사 미카도 보건 선생님께 가지 않은거야?
"미카도 선생님에게 가지 않은거야?"
"미카도...? 그녀가 왜...?"
설마 미카도가 지구에 있다는걸 모르나?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쓰러졌을 때, 리토와 라라가 데려다 줬을 텐데...
...처음?
"야미, 최근 지구에 와서 이렇게 쓰러진적 없어?"
"없...습니다."
...망했어요.
아무래도 야미가 지구에 와서 쓰러진건 지금이 최초인듯 하다.
능력을 지나치게 사용해서 훨씬 더 일찍 쓰러진건가,
아니면 능력을 아껴 써서 원래보다 더 늦게 쓰러진 건가.
아마도 후자가 맞을 듯 하다.
야미로부터 리토를 구할 때 최대한 전투를 피하는 방향으로 끌었기 때문일까.
저스틴과 라라와의 전투를 피했기에 변화능력을 최대한 억제했기 때문인지,
타이밍 상으로 피로의 축척이 늦게 진행된 것 같았다.
아무튼, 지금은 야미를 빨리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가는 것이 우선이다.
벽에 기댄 채 주저앉은 야미를 들어올린다.
"그...그만."
야미가 팔로 내 가슴을 밀며 저항한다.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건다.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갈 테니 좀 참으라고."
"내려놔주...세요."
내 말이 안 들리는 상태인가...?
미카도라는 말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 말은 꺼내는데, 실제로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잠시 저항하던 야미는 순간 현기증을 느낀 듯 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렸다.
이거...서둘러야겠는데?
밤늦은 시간이지만 직원실에서 미카도 선생님의 주소를 알기위해 야미를 안은 채로 학교로 달려가서는 당황했다.
학교 전체에 불이 꺼져 있었으니까.
직원실로 가려고 해봤지만 직원실 문은 자물쇠로 잠겨진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어째서 사람이 없어?!
주말엔 당직 선생님도 안계신가 이 학교는?!
경비원에게도 물어봤지만 직원실 열쇠는 없고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도 모른다는 대답뿐.
같은 외계인이며 이상한 발명품을 만드는 라라에겐 혹시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리토네 집으로 뛰어 가봤지만
벨소리에도 응답이 없는 게 집을 비운 것 같았다.
사이바이 스튜디오로 갔나 싶어서 전에 받은 명함을 보며 전화를 걸어봤지만...
「주말을 맞아 셋이서 여행을 떠났기에 일요일에 돌아온다」는 답변이었다.
덕분에 마감인데도 손이 부족하다는 불평을 한귀로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여행? 그런 이야기 기억에 없어.
3일에 한번은 트러블에 휘말리는 걸로 기억하는 리토와 라라인데...주말정돈 그냥 평범히 집에서 보내면 안 되는 거야?
병원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곧 포기했다.
신분증 없는 우주인도 병원에서 받아주나?
게다가 저번의 외계인용 진정제가 지구인인 리토에겐 알코올과 같은 작용을 했던걸 떠올려보면,
지구인용 주사를 야미가 맞았을 때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른다.
자칫하면 치명적인 상태가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야미의 상태는 야미 개인만의 특이체질로 인한 부작용.
능력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
예전에 한번 야미를 진료한 우주인 의사 미카도 선생님 외엔 치료 방법이 없을 듯 해 보였다.
양팔에 안긴 야미를 바라본다.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야미의 상태는 호전되어 보이지 않는다.
이마에 배인 땀은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몸 전체가 땀으로 젖어 축축한 상태임에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기위해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
더 이상 움직였다간 야미의 현재 상태가 더 나빠질지도 몰라 우선 야미를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급한 대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간호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안겨있는 야미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조심하면서 빠르게 집으로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두를 벗기고 내 방의 침대에 야미를 조심스레 눕힌다.
무의식중에 시트를 잡고 괴로운 듯 숨을 내쉬는 야미의 모습을 보고 살며시 야미의 옷깃으로 손을 내린다.
그러고 보면 의식이 없는 환자는 숨쉬는 것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몸을 조이는 단추들을 풀어준다고 했었지.
그런데...단추가 어디지?
잠시 야미를 일으켜 앉은 자세로 하고 옷을 둘러본다.
곧 등에 달린 지퍼를 발견하고 조심스레 지퍼를 내린다.
이런...등까지 완전 땀에 절었잖아?
이 옷, 나중에 한번 빨아줘야겠네...
있다가 수건으로 등이라도 한번 닦아주자.
지퍼를 다 내려 옷이 몸을 조이는 걸 막고, 허리의 벨트, 팔소매의 벨트, 다리와 발에 매인 벨트를 모두 풀어준다.
개조 소매와 다리의 벨트는 아예 떼어내서 따로 놔뒀다.
지금은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니.
검은 옷만 남은 채로 조심스레 야미를 침대에 도로 눕히고 욕실로 들어간다.
대야에 물을 받고, 몸을 닦을 수건을 몇 개 꺼내어 방으로 되돌아간다.
얼굴과, 목, 등을 닦아주며 열을 식히면 될까 생각하며 방문을 연 순간 하마터면 대야를 떨어뜨릴 뻔 했다.
등의 지퍼가 열린 상태였기에 야미가 괴로운 듯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자 앞섶이 흘러내리며 봉긋한 부위가 들어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기겁하며 다가가서 가슴을 다시 가려주자 야미가 신음소리를 내었다.
"괴...괴로워..."
헐떡이며 손으로 목을 만지자 다시 흘러내리는 상의
...괴롭다니 억지로 가리기도 그렇고 이대로 계속 앞섶을 가려봤자 시간만 낭비할듯 했다.
지금은 가슴에 시선을 둘 게 아니라, 땀에 젖은 몸을 닦아 주는게 우선이니까.
노출된 가슴에서 시선을 떼고서 바닥에 놓인 대야에 수건 하나를 담근다.
적당히 물을 짜내고 땀에 젖은 야미의 이마와 붉은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준다.
"으응..."
얼굴을 닦자 야미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낸다.
얼굴을 닦고 나서 야미의 얼굴이 벽을 향하도록 몸을 누인 다음 등을 닦아주기 시작한다.
땀에 젖은 등을 닦으며 보니 방금 전 등이 닿았던 시트 부위가 땀으로 눅눅해져 있었다.
시트도 새로 갈아줘야겠네...
꼼꼼히 야미의 등을 닦아주는 도중 옆구리 부근을 닦을 때 야미가 신음을 흘렸다.
"흐읏..."
...차가운 느낌이라 그런 반응을 하는건 줄은 알지만 그 소리는 좀 곤란하네요.
젖은 목덜미로 흐트러진 금발이 달라붙은 야미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키다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미쳤냐!
아픈 애를 두고 정신이 나가서 어쩌자는 거냐?
양손으로 뺨을 두드리며 다시 한번 정성스레 얼굴과 등, 팔, 다리를 닦아준다.
그후 침대 시트를 새로 가져와 깔아주려고 보니,
옷이 워낙 땀에 젖은 상태라 이대로는 소용이 없어 보였다.
...부모님. 이 불민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숨을 죽이고 야미의 검은 옷을 천천히 벗긴다.
뒤의 넝마 같은 천과 스커트를 함께 내리며 옷을 벗겨낸다.
그리고...마지막 남은 속옷 한 장도 마저 벗겨내었다.
벗기기 전에 이불로 하반신을 가려준건 나의 마지막 양심이라 하겠다.
이미 늦은 것 같지만.
"더워..."
야?! 이불 치우지마! 몸 뒤척이지 마!
기겁해서 고개를 돌리곤 다시 새 수건을 물에 적신뒤 이번엔 얼굴과 등뿐이 아닌, 온 몸을 닦아 주었다.
앞과 뒤에서 뭔가 몰캉한 느낌들이 든거 같지만...상관없어.
침대의 시트를 갈고 야미를 다시 뉘인 뒤에
얇은 이불을 살짝 덮어주고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었다.
그리고 방을 나와 야미의 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우주인 옷을 보통 방식으로 세탁해도 되려나?
드라이클리닝은...?
검은색 옷과 같이 빨 수 없었던 속옷은 세제를 푼 물에 넣어두었다.
있다가 손빨래 한 뒤 탈수해서 말리지 뭐...
방으로 돌아가니 여전히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내는 야미가 흐트러진 이불안에 있었다.
대야의 물을 새로 갈아 와서 다시 몸을 닦아 주고 있으려니
야미가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았다.
"으음...물..."
"응? 아, 잠시만!"
닦는 걸 멈추고 재빨리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컵과 함께 가져왔다.
컵에 물을 담아 야미의 입에 조심스레 댔다.
흘리지 않도록 목에 수건도 살짝 둘러주었지만.
물을 마신 야미는 방금 전보다 약간 나아진 듯 편안한 안색을 했다.
방금 전까지 흐르던 땀도 많이 줄어있었다.
세탁이 끝나기 전까지 입을 옷으로 옷장에서 와이셔츠를 하나 꺼냈다.
야미의 체형으론 많이 크겠지만,
우리 집엔 여성용 속옷이 없는데다, 야미같은 장발머리 소유자에게 T셔츠 처럼 목만 뚫린 옷을 입힐 방법 따윈 몰라...
남성용 트렁크스 따윌 입히는 것도 에러.
마른 수건으로 야미의 몸을 한번 닦아준 뒤 와이셔츠를 입힌다.
무릎까지 가려지는 와이셔츠의 크기에 다행히 트렁크스를 입히는 만행을 안해도 될 것 같았다.
더워 보이기에 이불도 치우고 찬물수건만 새로 이마에 얹어주고 조용히 야미를 바라보았다.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야미.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이 지금은 편안한 듯 살짝 미소 짓고 있다.
이렇게 보면 귀엽기만 한 소녀인데...
우주제일의 위험도 특급 살인청부업자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쿠로에게 구해지고 나서도, 그것밖에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한 일.
가족이나 친구 하나 없이 그녀를 두려워하거나 이용하려는 이들만 만나며 살아온 생애에서
무표정한 얼굴은 그녀가 겪은 아픔을 숨기기 위한 방패였을까.
적어도 지구에 와서 라라의 말에 보인 놀란 표정,
리토의 행위에 대한 부끄러운 표정,
친구들의 장난에 대한 당황한 표정,
미캉과의 대화에서 보인 희미한 미소는 그녀가 감정을 모르는게 아니라 오랫동안 잊고 지냈기에 표현이 서투를 따름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부디 이 소녀의 괴로운 운명을 보듬어줄 이가 나타나기를...
삐- 삐-
상념에 잠겨있는 사이 탈수가 시작되는 알람이 울린다.
정신을 차리고 욕실로 들어가 세제물에 담가둔 속옷을 꺼내어 간단히 씻는다.
탈수가 끝난 검은 옷들을 꺼내 건조기에 올려놓고, 속옷을 세탁기에 넣고 탈수를 누른다.
이후 속옷도 마찬가지로 건조기에 놓고 방으로 돌아간다.
대강 30분에서 1시간 사이면 옷이 마를 것 같았다.
야미가 일어나면 옷을 되돌려주자고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자 괴로운듯 목주변에서 손을 꼼지락대는 야미가 보인다.
와이셔츠가 약간 불편한가 싶어서 윗쪽 단추를 두어개 풀어준 다음 물수건으로 얼굴과 목 부위를 닦아준다.
벌어진 와이셔츠 사이로 약간 볼록한 부분도 보이지만 일일이 신경쓰다간 닦는것도 못한다.
"으음...?"
목 부위를 닦아주고 있으려니 야미가 신음소리를 내며 살짝 눈꺼풀을 연다.
이제 정신을 차린건가?
수건을 치우고 야미를 바라본다.
눈가를 찌푸리고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던 야미는 옆에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키츠 료스케?"
"여~ 좋은 저녁이야 야미.
갑자기 쓰러져서 걱정했다고."
"무슨...?"
말을 하던 야미는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자신의 목 아래를 본다.
침대위에 누운 몸.
알몸에 와이셔츠 한벌.
게다가 위의 단추는 풀려있어 부풀어 오른 가슴이 살짝 드러난 상태.
점점 야미의 얼굴이 붉어진다.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아키츠 료스케..."
"잠깐?! 너 지금 환자야! 무리하면..."
"야한 것은...싫습니다!"
야미의 머리카락들이 몇 마리 용들로 변해 이빨을 보이며 날카롭게 덤벼들었다.
콰직-!
따가워?!
옷이 찢어지는 감촉과 함께 용들에게 팔과 어깨, 옆구리 등을 물리고 들이받혀서 뒤로 날아간다.
벽이라도 부서지면 큰일이다!
쿵-!
손바닥과 발로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여 벽에 부딪친다.
다행히 벽이 박살날 만큼의 충격을 전달하진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야미에게 소리친다.
"이봐!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
야미는 침묵하며 나를 노려보곤, 오른손을 해머로 만들어 내게 달려들었다.
아 진짜...!
뭔가 심각하게 오해한 것 같아 아무래도 진정시킬 필요를 느꼈다.
집을 박살내지 않기 위해서, 피하기보단 맞받아치기로 결정했다.
야미를 향해 달려들어 휘둘러지는 해머의 손잡이 부분을 왼손으로 잡는다.
곧이어 오른손으로 야미의 왼쪽 어깨를 잡고 침대로 밀어붙인다.
체중 차에서 우세이고, 건강 문제도 있는지라 손쉽게 침대위로 야미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어느새 해머가 풀리고 보통 손으로 돌아온 야미의 오른 손목을 머리위로 올려 붙잡고,
야미의 왼쪽어깨를 오른손으로 고정시킨 채,
나를 노려보는 야미를 바라본다.
방금 전의 움직임으로 와이셔츠가 흐트러지고 허벅지 위까지 말려 올라간 모습에
야미가 얼굴을 붉히며 저항했지만 지금은 내가 우세.
수치심으로 눈물까지 맺히려는 야미에게 당황하며 어떻게든 오해를 풀려고 한다.
"저기, 그러니까 오해야.
네가 갑자기 쓰러져서 집에서 간호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그럼...제 옷을 벗기고 이런 변태적인 옷차림을 강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네 옷은 땀에 절어서 지금 세탁해 말리고 있어.
그대로 두면 시트까지 계속 젖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
잠시 입을 다문 야미는 다시 물었다.
"...당신의 남은 수염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응?"
"당신이 아끼는 수염에 걸고 방금 전 말이 진실임을 맹세할 수 있습니까?"
"어? 잠깐. 어째서 수염에 맹세를 해야 하는 건데?"
난 수염성인도 아니고, 그런 맹세했다가 또다시 잘리는 건 사양이라고?
"당신이 수염성인이건 아니건은 관계없습니다.
솔직히, 예전과 방금 전 움직임을 보면 정말로 지구인인지 의심이 들지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당신이 자신의 수염에 비정상적일만큼 집착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히 하는 것도 말이죠."
그야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평범한 삶을 보장해줄 방패막이기 때문이지.
솔직히 구레나룻이 잘려나갔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으니 집착이라면 집착이지만.
그래도 방금 전 내 말은 사실이니 상관은 없나...
"...아. 좋아. 그걸로 믿어준다면.
나 아키츠 료스케는 내 목숨과도 같은 수염에 걸고 방금 전 대화가 진실임을 맹세합니다.
...이런 걸로 괜찮아?"
"...그럼, 믿겠습니다."
"휴우-"
"그리고..."
"...?"
아직 뭔가 남았나?
갸웃하는 나로부터 고개를 살짝 돌려 시선을 외면한 채 야미가 중얼거렸다.
"이제 그만... 비켜주세요."
"으응?"
지금의 자세를 확인한다.
소녀의 한 팔과 어깨를 속박하고 침대에 눕힌 나.
게다가 소녀의 옷차림은 알몸 와이셔츠 한 장.
그야말로 범죄자 확정.
"미, 미안!"
황급히 손을 치우고 일어난다.
야미도 붉은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는다.
하지만, 나를 보는 방향으로 침대에 걸터앉은 야미의 허벅지 사이가 프라이빗 스퀘어.
차라리 안보이게 서 있어줘!
...아픈 사람에게 바랄게 아닌가.
새하얀 허벅지에 살짝 드리운 그림자에 민망한 나머지 고개를 돌리며 화제를 전환한다.
"그, 그나저나 미카도 선생님을 알고 있어?"
"닥터 미카도 말입니까?
우주에서 유명한 의사죠.
예전에 저를 치료해 주었기에 알고 있습니다."
"우주인 선생님이시라 보통은 아닐꺼라 생각했지만...
아무튼, 앞으론 몸이 아프면 우리 학교 양호실로 와.
미카도 선생님이 거기 계시니까."
"닥터 미카도가 지구에...
몰랐던 사실이군요."
"사실은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가고 싶었지만
연락처를 몰라서 갈수가 없더라고.
학교 직원실에는 선생님도 안계시지 알아낼 방법이...?"
말을 하다가 도중에 입을 다문다.
"무슨 일입니까 아키츠 료스케?"
이상한 듯 바라보는 야미의 시선을 받으며 자책한다.
있었잖아! 다른 선생님을 통해 아는 방법이.
"잠시만 기다려줘.
잘하면 미카도 선생님이 계신 곳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무슨?"
어리둥절하는 야미를 방에 둔 채로 마루로 나와 핸드폰을 꺼낸다.
수첩에 적힌 호네카와 담임 선생님의 댁으로 전화를 건다.
혹시나 집에 안계시지나 않으면 좋으련만...
뚜-뚜- 하는 소리가 몇번 반복되고, 수화기를 드는 소리와 함께 나이든 영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네카와 선생님이다.
"여보세요?"
"호네카와 선생님 댁인가요?"
"그렇습니다만."
"늦은 밤중에 죄송합니다. 아키츠 료스케입니다만,
혹시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고계신가요?"
"아키츠군이로구나. 그런데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는 어째서?"
"미카도 선생님이 주치의를 맡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연락처를 모른다고 해서 말이죠.
진료를 받은 지 꽤 시일이 지난 터라 다시 찾아가야 하기에 연락처를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럼 잠시만 기다려 보려무나.
비상연락망이 있나 찾아보도록 할테니..."
"아,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든 채로 기다린다.
바보같이...좀더 빨리 전화해볼걸 그랬어.
그랬다면 방금 전처럼 요란을 피울 것도...「털썩-」
방안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야미의 모습.
"괘, 괜찮아 야미?"
놀라며 쓰러진 야미를 부축한다.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이 붉어진 야미.
손을 대어보자 처음 때보다 훨씬 더 뜨거운 이마의 감촉이 느껴진다.
겨우 진정되었던 상태가 방금 전의 변화능력으로 급격히 악화된 것 같았다.
굉장히 괴로운 듯 내 옷을 부여잡으며 신음소리를 낸다.
"하악...하...읏..."
"자, 잠시만 기다려.
곧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다 줄 테니까...!"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고 있으려니 핸드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키츠냐?"
"호, 호네카와 선생님?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는요?"
"그게...미안하구나 아키츠.
비상연락망이 적힌 수첩이 지금 보이지 않는구나.
혹시 급한 일이니?"
"그런..."
생각지도 못한 답에 할말을 잊는다.
침묵을 지켜버린 나에게 미안한지 호네카와 선생님이 말을 덧붙이신다.
"혹시나 바쁜 일이라면 수첩을 찾는 대로 전화를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호네카와 선생님."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절망감이 엄습한다.
어째서 하필 오늘이 토요일이었지?
어째서 학교의 직원실은 잠겨있었지?
어째서 경비원은 열쇠가 없었지?
어째서 리토는 여행을 간 거지?
어째서 비상연락망은 발견되지 않은거지?
어째서 야미는 이렇게 괴로워해야 하는거지?
어째서...그때 야미를 멈추었지...?
좀더 빨리 증세가 나타났다면, 누군가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당직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경비원에게 좀더 권한이 있었다면,
라라가 집에 있었더라면,
비상연락망이 발견되었더라면,
내가 그때 리토를 돕지 않았다면...
고개를 젓는다.
위기에 처한 리토를 돕지 않는다는 선택사항은 없었다.
주사위를 던진 100개의 미래에서 모두 6이 나온다는 믿음은 내겐 없으니까.
차라리, 내가 방금 전 야미의 첫 공격을 그대로 맞았더라면 혹시나...
"크읏..."
소매를 잡는 힘이 강해지며 발해진 야미의 신음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지금은 도움이 안 되는 원망이나 후회 따윈 필요 없다.
어떻게 하면 야미를 도울 수 있을까가 중요하다.
이대로 다시 간호를 해도 처음처럼 진정이 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토요일 밤.
월요일이 되어 미카도 선생님을 학교에서 만나기까지,
주말 내내 야미의 괴로움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도시전체를 뒤져서 그중에 미카도 선생님의 집을 찾는 것도 불가능.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도 없고, 그 사이에 쓰러진 야미를 혼자 둘 수도 없다.
어느새 와이셔츠가 땀에 젖어 속살이 비쳐 보일정도가 되자 상황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지금 상황이 된 원인이 나에게 있다면,
역시 내가 나서서 해결하는 게 순리지.
밤바람이 춥기에 담요로 야미의 몸을 감싼 채로 밖으로 나서 학교로 향한다.
한밤중의 학교는 쥐죽은 듯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옥상 문을 열고 교내로 들어간다.
직원실 앞에 도착해 자물쇠를 뜯어내고 직원실 안으로 들어간다.
야미를 직원실 소파에 잠시 내려놓고 선생님들의 연락처가 적힌 명단을 찾는다.
미카도 료코...미카도 료코...
...있다!
연락처를 옮겨 적은 뒤, 자리를 정리하고 야미를 안고 직원실을 나온다.
집에서 가져온 새 자물쇠를 직원실 문에 대신 걸어두고 학교를 나선다.
...정학 정돈 각오하기로 하고, 이만 미카도 선생님 댁으로 가볼까.
적혀있는 주소로 찾아가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저택이 도시 내에 세워져 있었다.
쇠창살 너머로 괴상한 우주식물이 몇 개 심어져 있고, 까악~ 까악~ 하는 까마귀 소리가 흡사 마녀의 집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울타리를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가 벨을 누른다.
딩동-
한밤중에 깨어있을까 걱정했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자 문이 열리며 미카도 선생님이 나왔다.
검은색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그 위에 흰색 의사 가운을 입은 차림이었다.
졸린 듯 눈을 비비던 미카도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입을 열었다.
"어라...너는...?"
"아키츠 료스케라고 합니다.
야미의 치료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야미?"
의아한 듯 내 품에 안겨있는 담요를 덮어쓴 인형을 쳐다보는 미카도 선생님.
"그 애는...!"
"선생님, 빨리 치료를...!"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던 미카도 선생님은 땀으로 절어있는 야미의 얼굴과 내 절박한 목소리에
곧 정신을 추스르고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
박제들이 진열된 실험실 분위기가 나는 방의 진료용 침상에 누운 야미를 진료하던 미카도 선생님께,
노파심에 걱정이 되어서 방금전까지 간호하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자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구나. 이건 보통 병이나 감기가 아니라 이 아이 특유의 증상이야."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악화된 듯 한데 괜찮을까요?"
내심 원래보다 치료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자 미카도 선생님은 문제없다는 듯 장담하셨다.
"물론이지. 죽은 사람만 아니라면 어떤 환자라도 고쳐줄께."
"다행이네요..."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는 나를 바라보던 미카도 선생님은 약간 걱정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아키츠군이었지?"
"네."
"너는 괜찮니?"
"에?"
"지금 네 찢어진 옷들이 심상치 않아서 말이야."
미카도 선생님이 내 옷 이곳저곳에 뚫린 구멍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방금전 야미에게 공격당했을때가 떠올랐다.
"아, 이건 야미에게 살짝 물린거에요."
"물려?"
묘한 표정을 짓는 미카도 선생님을 이상하게 여기며 대답했다.
"오해가 있어서 화를 내면서 물어오더라고요."
"오해?"
"네. 옷을 갈아입힌 것에 대해서 이상한 오해를 해서 그만..."
"그러고보면 야미의 옷차림이 굉장히 파격적인데 네 솜씨였니?"
알몸에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친 야미의 옷차림을 가리키며 물어보는 미카도 선생님.
땀에 젖은 상태라 속살이 적나라하게 비치는 야미의 모습에 당황해서 변호를 한다.
"그, 그건...땀에 젖어서 옷을 세탁하느라..."
"그런데 참 매니악한 옷차림이네. 알몸 와이셔츠라니. 꽤나 좋아하나봐?"
키득거리며 웃는 미카도 선생님께 무안해서 볼을 긁적인다.
절 놀리시는 것보단 치료를 해주시는게 더 건설적이지 않을까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미카도 선생님이 좀더 추격해왔다.
"혹시, 옷을 벗기면서 이상한 짓을 했다든가 하진 않았겠지?"
"...아파하는 아이에게 손을 댈 만큼 못되먹진 않았어요."
아파서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면서 야한 짓을 했냐고?
그럴 바엔 차라리 혀를 씹고 만다.
굳어진 내 얼굴에 약간 지나쳤음을 알고 미카도 선생님이 사과해오셨다.
"...농담의 작정이었는데, 미안하구나."
"아, 아뇨...
사실... 도중에 몇번 두근거렸던 적은 있었으니까, 사과 받으면 오히려 할말이 없는데요..."
"후후...솔직한 아이구나."
살짝 웃던 미카도 선생님은 곧이어 야미를 일으킨다.
"이제 슬슬 이 아이를 치료해야지.
땀에 젖어서 좀 벗기기 힘들겠는데...
아키츠군, 와이셔츠를 벗기는 것 좀 도와줘."
"아...네."
미카도 선생님의 부탁에 따라 야미의 몸을 감싼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하나둘 버튼을 풀고 있으려니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미묘한 표정의 미카도 선생님이 보인다.
"...정말로 도와주는구나?"
"에? 치료에 필요한 것 아니었나요?"
"그건 그런데...좀더 당황할줄 알았는데 말이지."
정말 놀리는 걸 좋아하는 선생님이시군요.
"역시 100명의 여자와 잤다는 아키츠군 답달까?"
"그거 유언비어에요?!"
선생님들도 다 알고 있구나 이 괴상한 소문...
그전에, 그 소문이랑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은 별개라고요.
"뭐...평소였다면 못할 일이지만,
아픈 걸 고치기 위한거니까요.
어머니가 아기의 대소변을 싫은티 하나 안내고 치워주시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비유가 좀 이상한 듯 하구나?"
"그냥, 지금은 부끄러워 할 때가 아니라는 거죠 뭐..."
버튼을 다 풀고 와이셔츠를 벗겨내자 땀이 맺힌 새하얀 피부가 드러난다.
부푼 가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라인에 순간 눈이 뺏겼다가 고개를 흔들곤 마음속으로 암시를 건다.
나는돌부처나는돌부처나는돌부처...
야미는고양이야미는고양이야미는고양이...
중얼중얼거리는 내모습을 보던 미카도 선생님은 피식 웃으면서 다음 사항을 전달했다.
"아키츠군, 탈의 시키는 솜씨가 좋구나~
그럼 옮기는 것도 도와줘."
"...네?"
설마 알몸을 안고 가라고?
...그렇겐 못하지.
방금 전 야미의 몸을 감쌌던 담요를 야미의 몸에 두른다.
그리고 양팔로 야미의 어깨와 무릎안쪽으로 넣어 안아 올린다.
어안이 벙벙해진 미카도 선생님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럼, 어디로 옮기면 되죠?"
기가 막힌 듯 쳐다보면 미카도 선생님은 이내 한숨을 쉬며 자리를 옮겼다.
진료실에 도착해서 담요를 치우고 야미를 힐링 캡슐 안에 넣는다.
힐링 캡슐을 작동시키고 미카도 선생님이 돌아서서 나를 본다.
"이제 괜찮아.
이제부턴 나한테 맡겨요."
"감사합니다 미카도 선생님."
"뭘 이정도야."
"그럼 전 야미의 옷을 찾아올게요.
집에 빨래 건조기에 넣어뒀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다 말랐을 거예요."
"꼼꼼하네. 나중에 좋은 남편이 될 꺼야."
"아하하...그랬으면 좋겠네요."
웃으며 돌아서려다 깜박 잊은 게 떠올라 미카도 선생님을 바라본다.
"아, 그리고 그전에 이걸..."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미카도 선생님께 건넨다.
얼떨결에 열쇠를 받은 선생님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이건?"
"직원실 열쇠예요.
선생님 계신 곳을 몰라서 직원실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서 연락처를 찾았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새로 달아놓은 자물쇠의 열쇠."
"뭐? 비상연락망은 어쩌고?"
"그러니까..."
야미를 만나고 나서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주말에다가 직원실에서 숙직하시는 선생님도 없었고,
라라와도 연결이 안되고, 호네카와 선생님께선 비상연락망이 없었던 것까지.
이야기를 듣고 난 미카도 선생님은 어이없어 하시며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운이 나쁠 수가 있지?"
"글쎄요...아무튼,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께 사과해야죠.
급한 일이었다지만 직원실 침입까지 했으니까요."
CCTV같은 거에도 이미 찍혔을 테고,
자수하는게 그나마 좋겠죠.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야미를 돕고 싶었니?"
"따지고 보면 제 탓이니까요."
"뭐?"
"아뇨...그냥, 그렇다고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야미가 깨어나기 전에 옷을 가지고 오려면 좀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미카도 선생님의 집을 벗어나 집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도중에 야미를 발견했던 장소를 지나치게 되었다.
여전히 깡패들은 인사불성인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뼈가 부러진 녀석은 없는걸 보면 야미도 사정을 봐준 거 같은데.
...가만 보니 이자식들만 안 깝죽댔으면 됐잖아?
슬그머니 약이 오르는걸 느낀다.
내심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를 하며 분풀이를 하기 위해 다가간다.
기절한 녀석들을 더 때리는 것도 그래서 적당히 바지랑 팬티를 벗겨놓고 차곡차곡 교차로 포개놓았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수염을 그려주며 부디 기도했다.
액땜했다 치고 앞으론 밤길에 여성을 괴롭히는 짓따윈 하지 말길...
집에 돌아가 건조기에서 야미의 옷을 꺼낸다.
그동안 완전히 말랐는지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진다.
종이가방에 옷들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미카도 선생님의 집에 도착해서 서둘러 진료실로 들어간다.
"선생님! 옷 가져왔습니다!"
기운차게 벌컥 문을 열자 미카도 선생님이 놀란 듯 쳐다본다.
그리고 어느새 캡슐 밖으로 나온 야미 또한 놀란 얼굴로 바라본다.
알몸에 머리카락을 타월로 닦던 채로...
타이밍 최악이네...
그 깡패놈들에게 장난만 안치고 왔다면 늦지 않았을까나?
당황해서 변명을 한다.
"어...저기, 고의가 아니었어?
입을 옷을 서둘러 가져오다보니까...
...미안."
붉어진 채로 수건으로 몸을 가리는 야미의 모습에 그냥 체념하며 사과한다.
그냥 맞고 말지.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이나 맞을 짓을 했냐.
맞고 끝내는 걸로 용서 받을 수 있다면 싸게 치는 거지...
하지만 노려보던 야미는 이내 쏘아보던 시선을 거두고 말을 걸어왔다.
"옷...돌려주십시오."
"어? 그, 그래."
당황해서 급히 손에 든 종이가방을 야미에게 내밀었다.
야미가 종이가방을 받아든걸 확인하자 얌전히 진료실 커튼 밖으로 나가서 커튼을 쳐주고 돌아섰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커튼이 걷어지며 야미가 붉어진 얼굴로 나왔다.
입을 다문채로 나를 바라보는 야미의 시선에 얌전히 사과했다.
"...쳐다봐서 미안해."
"...이번은 용서하겠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정말?"
머리칼날 공격이라도 받을까봐 덜덜하고 있었는데 의외다.
"네. 그것보다...
오늘은 도움을 받았군요. 감사합니다."
얌전히 고개를 꾸벅이며 고마움의 표시를 하는 야미.
"아니, 뭘...나랑 다투다가 네 상태가 악화돼서 나로선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라고?
게다가 정말로 도움이 된 건 결국 미카도 선생님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이곳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저는 더 곤란했을 겁니다."
"그렇지만...「그냥 얌전히 감사의 인사를 받으렴 아키츠군.」미카도 선생님?"
갑자기 끼어든 미카도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방금 전 야미가 깨어났을 때 이야기 했단다.
네가 야미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 걸 말야.
보통 그렇게까지 하는 건 힘든데 말이지."
그건 미카도 선생님 당신 이외에는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까지 된건 제가 일에 간섭하면서 타이밍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에 책임을 지려던 거고요.
미카도 선생님이 이어 말했다.
"직원실 열쇠를 건네줬을 땐 정말 놀랐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야미를 생각할 줄은 몰랐으니까."
"정학 정도까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어요.
도와줄 수 있는데 못 도와주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어느 정도 피해를 보더라도 나중에 가서 자책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게 제일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선택을 한다면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건 대학에 들어간 뒤엔 별 문제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단 거니?"
"적어도 저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
"바보구나."
"아니~ 솔직히 교장선생님 같으면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하실 거라고요?
미소녀와 직원실 보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미소녀를 고르실 껄요?"
비유가 잘못되었지만 이때는 교장이 옳다고 본다.
보나마나 나중에 대가로서 팬○를 달라는 둥의 헛소리를 하겠지만 넘어가자.
...확실히 비유가 잘못되었는지 야미의 기분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설마 벌써부터 성희롱 시도를 당하기라도 했던가?
미카도 선생님은 한숨을 쉬곤 웃으며 말했다.
"뭐, 앞으로 야미의 담당 주치의로서 환자를 데려와준 걸 감사할게.
보답이랄까, 학교에서 처분을 받게 된다면 잘 변호해 줄 테니 너무 걱정 하지마."
레알?
"아...감사합니다~!"
고마움에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매드 닥터니 뭐니하며 피하기만 해서 죄송해요 미카도 선생님.
지금껏 오해하고 있었지만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이십니다.
감격하고 있는 나의 옆에서 다시 야미가 인사를 한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원실 문제도 괜찮게 해결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는지라 흔쾌히 야미의 인사를 받는다.
"그래. 평소에도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분명히 친구들도 많이 생길 거라고~."
"그렇습니까?"
"그럼! 친구 백명 사귀기 같은 건 문제도 안될 거라고~아하하!"
친구 숫자가 두 손에 꼽는 내가 할말은 절대 아니지만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희희낙락한 내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짓던 미카도 선생님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러고보니 아키츠군은 수염성인이라고 했던가?"
"쿨럭...!"
"괜찮습니까 아키츠 료스케?"
웃던 도중 예상치 못한 대사에 놀라 사레가 들려 버렸다.
동네 꼬맹이들 사이에만 퍼진거 아니었나 그 소문?
계속해서 기침을 해대는 나를 걱정하는 야미.
미카도 선생님이 계속해서 물었다.
"그런데 예전에 있던 구레나룻은 어떻게 된 거니?"
"그러니까, 쿨럭...!수염성 쿨럭...!"
"그건...제가 잘랐습니다."
야미가 약간 표정이 굳어지며 답했다.
미카도 선생님이 크게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왠지 심술궂게 느껴지는 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지만, 기침이 멎질 않아서 주의를 주질 못하겠다.
"야미는 데빌루크 성인들에 대해 알고 있지?"
"네. 프린세스 라라와는 알고 지내는 사이니까요."
"그럼 아키츠군의 수염을 깎은 것의 의미를 알고 있나보구나?"
"무슨 의미입니까?"
"잠...쿨럭?"
수염 깎는데 의미가 있어?
아니 애초에 수염성인 따위가 어딨다고 그래?
있을지도 모르지만...적어도 나는 아니다.
게다가 저 짖궂어 보이는 얼굴은 절대 거짓말을 하려는 게 틀림없다고!
"데빌루크 성인을 상징하는 건 꼬리지. 그들의 꼬리는 굉장히 민감해서 약점임에 동시에 성감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해.
그래서 남이 만지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 하지.
그럼, 여기서 문제.
수염성인을 상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설마?"
싱긋-
눈이 크게 뜨여진 야미에게 미카도 선생님이 눈부신 미소를 짓는다.
이봐요! 당신 지금 학생을 앞두고서 성희롱 하고 있는 거 알아요?
사람을 무슨 수염이 성감대인 괴생명체 마냥 취급하지 말라고요.
나도 만만찮게 쇼크를 먹었더니 도무지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끊임없이 기침을 하는 나를 향해 천천히 돌아선 야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있다.
"아, 아키츠 료스케..."
"쿨럭...잠시만 그거 오...쿨럭!"
수염이 잘린 피해자인 나에게 가해를 입히려는 게 아닐까하며 기침 속에서도 가드자세를 하고 있으려니,
점점 창백한 얼굴이 엄청나게 붉어지는 야미의 얼굴이 보인다.
분노? 아니다.
어떻게 봐도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이다.
입을 벌린 채로 제대로 말도 못 꺼내고 있다고?
입가에 손을 댄 채 더듬거리며 야미가 말한다.
"아...저...나...야, 야한 짓은..."
"나,큽? 수염 같은거,풉! 성감대 아,쿨럭...! 아니, 애초에 수염성인이..."
털썩-
......어라? 이봐!
야미가 기절했다?
무언가 말을 하려던 걸 멈추고선 제자리에서 풀썩 쓰러져버린 야미에 놀라 안아 일으킨다.
설마 아직까지 완치가 안 된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카도 선생님을 바라보려니까,
태연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어머나~ 역시나 야미는 야한 짓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하네~
자기가 한일에 대해서 부끄러워 기절할 정도라니."
아아...몸의 이상이 아니고 단순한 기절인가?
아하하~다행이네...가 아니고!
정정. 이 사람은 정말로 어른 악동이다.
개인적으로 알고지내고 싶진 않다고 절실히 생각한 순간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께 직원실에 들어간 사연을 고백한 뒤, 직원회의가 열렸다.
이때 야미의 주치의로 미카도 선생님이 나서면서, 학교 직원실을 침입했던 나를 변호해주셨고,
담임인 호네카와 선생님께서도 주말에 전화내용을 증언해주시면서 내 처분에 대한 수위를 낮춰주셨다.
덕분에 내심 정학까지 각오하고 있었던 나는 교내봉사 일주일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분으로 끝날 수 있었다.
나에게 교내봉사 처분이 내려진 게 알려지자 놀란 코테가와는 나에게 경위를 물어왔다.
주말동안 있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자 걱정하던 표정을 바꿔 화를 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땐 자신에게도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설마 환자의 간호를 부탁했으면 한밤중에 남학생 혼자 사는 집까지 찾아 올 생각이었습니까 코테가와씨?
월요일 하교 도중 나에게 「그, 성감...수염을 잘라서 죄송합니다...야한 짓 해서...」라며 얼굴을 붉히며 사과해오는 야미에게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난 수염성인도 아닐뿐더러 내 수염은 성감...뭐시기가 아니다 라는 식으로.
(성감○ 라고 완전히 말하지 못하는 야미 때문에 ...로 적절히 건너뛰며 설명했다.)
이후 겨우 납득한 야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고, 나도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오해를 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교 도중의 학생들을 제외하곤...
그 후 아키츠 료스케 수염○○○전설이 학교에 퍼졌다.
더불어 불량배들 사이에서 패배자의 얼굴에 수치의 증거라며 수염을 그리는 행위가 유행하면서,
10대들 사이에서 수염을 기르는 녀석들은 사라져 버렸다.
...수염 따위...
==============
수염성인 운운은 이걸로 끝입니다.
연극중의 수염성인, 우주인 흉내를 내며 허세, 수염 성감대 루머(데빌루크 꼬리 성감대설에서 차용).
나올거 다나온것 같으니 수염성인 루머를 다시 쓸일은 없을겁니다.(기껏해야 쓸만한 남은 사람이 라라아빠 말고 있나?--;)
그와 별개로 수염과 관련된 트러블들은 있을순 있겠지만요.^^;
그나저나 요즘 생각하는게...
메인스토리에서 반정도 비껴나간채로 진행했던 1~7편이 본편에 완전 합류한 8~12보단 좀더 재밌는것 같기고 하고,
좀 복잡한 심정입니다-_-;
1~7편은 보통 [오해->해결->주인공의 심정(평화?)->오해(or폭발)끝] 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8~12은 원작전개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심정->오해(or폭발)끝' 부분이 좀 부족한듯도 하고...
(이게 있어야 주인공 갈구는게 쉽기도 하고...)
글 쓴걸 폐기하고 아예 뒤엎어서 새로 쓰는 시도를 할만큼 시간이 되질 않아서 그런지,
오해성분이 무지하게 부족해서 그런지,
아니면 리토의 역할을 대신하기만 하는 모습이 영 안내켜서 그런진 잘 모르겠는데,
우선 유령아가씨(오시즈) 등장편, 축제편(코테가와or미캉) 쯤 쓰면서 고민좀 해봐야 할듯합니다^^;
정 안되면 중간에 오리지널로 스토리 한개씩 짜넣어서 1~7편때처럼 본편과 약간 벗어난 상태로 진행하는것도 생각해 봐야겠죠=ㅂ=;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서도...)
리토가 휘말리는 여난중에 이야기로 삼을만큼 플롯이 안짜여 지는 경우는 그냥 리토가 하도록 내버려 두든가,
아예 새로운 스토리를 추가해서 여성들을 그 해프닝에서 빼오든가 하겠죠;
학생들이 주인공에 대해 가지는 오해에 대한 묘사가 적어진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요즈음...
이대로 가다간 오해물이 오해물이 아니게 되어버려;
오해장르 소설이나 만화를 시간날때 한번씩 다시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안선생님...OTL
<이번화 원작 45화 야미 아픔>
아버지의 부탁으로 학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온 리토.
도중에 만난 야미와 시비가 붙지만 도중에 야미가 쓰러진다.
놀라서 미카도 선생님께 달려가지만 학교에 오지 않은 상황.
직원실에서 주소를 얻어 라라와 함께 미카도 선생 집을 방문한다.
힐링 캡슐에서 야미는 치료를 받아 회복하고,
야미는 적인 자신을 구해준 리토에게 의문을 갖는다.
이후 팬티만 입은 상태에서 난입한 리토에게 제재를 가하고 저택이 망가지며 미카도는 비명을 지르며 끝난다.
동네 야쿠자들의 패싸움 소문이 퍼진 이후 며칠간,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날따라 늦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어둑해진 골목길 앞에서 젊은 아가씨 한명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집에 돌아가 세탁물을 돌릴 걸 생각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아가씨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더니,
별안간 걸음이 빨라졌다.
온몸이 긴장한 듯한 느낌으로 뻣뻣이 잰걸음을 옮기는 아가씨를 보고 내심 실수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저 아가씨가 생각하고 있는 게 대강 짐작이 간다.
아무튼, 어둑한 밤길을 홀로 걷는 여성이 뒤에 선 남자를 경계하는건 당연하다.
안 그래도 최근에 난 흉흉한 소문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시점인데,
거기에 더해서 뒤따라오는 남자가 험악한 인상의 수염난 금발 양아치라면 경계도가 최대로 높아지는건 당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려나...
첫째, 추월한다.
기각. 추월하려다가 오히려 더 겁을 줄 위험이 심대하다.
비명을 지르지나 않을지 걱정이므로 제외.
둘째, 건물들을 뛰어넘으며 지나간다.
기각. 평범하게 가고 싶습니다.
「뭐든지 초상(超常)의 힘에 의지하고 있으면 타락할 뿐이니까」라는 네기○몽의 말을 좋아합니다.
잘 지키지는 못한 편이지만.
셋째, 걷는 속도를 늦춘다.
가결. 그저 발걸음을 늦추고 저 아가씨가 안심할 만큼 멀어질때까지 느긋하게 걸어가도록 하자.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가다보면 적당히 떨어지겠지.
조용히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
「...누군가를 위해서 강해지도록 해
...보고 있기만 해선 시작되지 않아
이것이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괜찮아
그저 그것만 할 수 있다면
「꺄악!」」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놀라 앞을 바라본다.
왼쪽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섰던 방금 전의 아가씨가 놀란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것이 보인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이어폰을 빼자 희미한 신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긴장하며 옆으로 샌 골목길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들어온 광경에 맥이 탁 풀렸다.
「끄응...」
「우우...」
얼굴이 떡이 된 채로 널부러져 있는 깡패 몇 명.
그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서있는 검은 옷을 입은 금발의 소녀, 야미가 있었다.
아마도 추근대던 깡패들을 때려눕혀 버린 거겠지.
생각했던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 안도하며 야미에게 다가간다.
내 발걸음 소리에 야미가 고개를 들자 웃으며 농담을 한다.
"착한 아이는 이제 집에 들어갈 시간이에요~."
나름대로는 반박을 기대하며 꺼낸 말에 야미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
"응?"
어두운 골목길이라 내 모습이 그림자에 가려졌나?
예상치 못한 야미의 반응에 서로의 얼굴이 보일만큼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간다.
가까이 오는 나에게 야미가 조용히 말한다.
"...다가오지 마시죠."
"그러니까, 나야. 아키츠 료스케."
"...아...?"
왠지 기운이 빠진듯한 목소리에 의아해하며 다가가자, 그림자 너머의 야미의 얼굴이 보였다.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릿한 눈동자.
갸날프게 몰아쉬는 한숨.
벽에 몸을 기댄 채로 힘이 풀린 듯한 몸.
약간 붉어진 얼굴에 땀이 배인 이마.
이거 혹시 위험한거 아냐?
걱정되서 야미의 이마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 야미의 머리칼이 칼날로 변하여 쏟아진다.
"자, 잠깐?!"
설마 나를 못 알아본 거야?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자 갑자기 머리카락의 칼날이 기세를 잃고 형태를 무너뜨리며 흩어진다.
의도하지 않은듯한 변화능력의 해제.
"가까이...오지 마시죠."
스르륵-
경고를 말하면서 벽에 등을 기댄채로 주저앉아 버리는 야미.
하아...하아...하며 힘겹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한다.
재빨리 야미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는다.
치익-
...무지 뜨겁잖아?!
닿은 손에서 연기가 날만큼 열이 전해진다.
"야미 너...몸이 정상이 아니잖아?
열이 장난이 아니라고?"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냐?
식은땀을 이렇게나 흘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될때까지 가만히 있었던거지?
우주인 의사 미카도 보건 선생님께 가지 않은거야?
"미카도 선생님에게 가지 않은거야?"
"미카도...? 그녀가 왜...?"
설마 미카도가 지구에 있다는걸 모르나?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쓰러졌을 때, 리토와 라라가 데려다 줬을 텐데...
...처음?
"야미, 최근 지구에 와서 이렇게 쓰러진적 없어?"
"없...습니다."
...망했어요.
아무래도 야미가 지구에 와서 쓰러진건 지금이 최초인듯 하다.
능력을 지나치게 사용해서 훨씬 더 일찍 쓰러진건가,
아니면 능력을 아껴 써서 원래보다 더 늦게 쓰러진 건가.
아마도 후자가 맞을 듯 하다.
야미로부터 리토를 구할 때 최대한 전투를 피하는 방향으로 끌었기 때문일까.
저스틴과 라라와의 전투를 피했기에 변화능력을 최대한 억제했기 때문인지,
타이밍 상으로 피로의 축척이 늦게 진행된 것 같았다.
아무튼, 지금은 야미를 빨리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가는 것이 우선이다.
벽에 기댄 채 주저앉은 야미를 들어올린다.
"그...그만."
야미가 팔로 내 가슴을 밀며 저항한다.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건다.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갈 테니 좀 참으라고."
"내려놔주...세요."
내 말이 안 들리는 상태인가...?
미카도라는 말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 말은 꺼내는데, 실제로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잠시 저항하던 야미는 순간 현기증을 느낀 듯 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렸다.
이거...서둘러야겠는데?
밤늦은 시간이지만 직원실에서 미카도 선생님의 주소를 알기위해 야미를 안은 채로 학교로 달려가서는 당황했다.
학교 전체에 불이 꺼져 있었으니까.
직원실로 가려고 해봤지만 직원실 문은 자물쇠로 잠겨진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어째서 사람이 없어?!
주말엔 당직 선생님도 안계신가 이 학교는?!
경비원에게도 물어봤지만 직원실 열쇠는 없고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도 모른다는 대답뿐.
같은 외계인이며 이상한 발명품을 만드는 라라에겐 혹시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리토네 집으로 뛰어 가봤지만
벨소리에도 응답이 없는 게 집을 비운 것 같았다.
사이바이 스튜디오로 갔나 싶어서 전에 받은 명함을 보며 전화를 걸어봤지만...
「주말을 맞아 셋이서 여행을 떠났기에 일요일에 돌아온다」는 답변이었다.
덕분에 마감인데도 손이 부족하다는 불평을 한귀로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여행? 그런 이야기 기억에 없어.
3일에 한번은 트러블에 휘말리는 걸로 기억하는 리토와 라라인데...주말정돈 그냥 평범히 집에서 보내면 안 되는 거야?
병원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곧 포기했다.
신분증 없는 우주인도 병원에서 받아주나?
게다가 저번의 외계인용 진정제가 지구인인 리토에겐 알코올과 같은 작용을 했던걸 떠올려보면,
지구인용 주사를 야미가 맞았을 때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른다.
자칫하면 치명적인 상태가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야미의 상태는 야미 개인만의 특이체질로 인한 부작용.
능력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
예전에 한번 야미를 진료한 우주인 의사 미카도 선생님 외엔 치료 방법이 없을 듯 해 보였다.
양팔에 안긴 야미를 바라본다.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야미의 상태는 호전되어 보이지 않는다.
이마에 배인 땀은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몸 전체가 땀으로 젖어 축축한 상태임에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기위해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
더 이상 움직였다간 야미의 현재 상태가 더 나빠질지도 몰라 우선 야미를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급한 대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간호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안겨있는 야미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조심하면서 빠르게 집으로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두를 벗기고 내 방의 침대에 야미를 조심스레 눕힌다.
무의식중에 시트를 잡고 괴로운 듯 숨을 내쉬는 야미의 모습을 보고 살며시 야미의 옷깃으로 손을 내린다.
그러고 보면 의식이 없는 환자는 숨쉬는 것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몸을 조이는 단추들을 풀어준다고 했었지.
그런데...단추가 어디지?
잠시 야미를 일으켜 앉은 자세로 하고 옷을 둘러본다.
곧 등에 달린 지퍼를 발견하고 조심스레 지퍼를 내린다.
이런...등까지 완전 땀에 절었잖아?
이 옷, 나중에 한번 빨아줘야겠네...
있다가 수건으로 등이라도 한번 닦아주자.
지퍼를 다 내려 옷이 몸을 조이는 걸 막고, 허리의 벨트, 팔소매의 벨트, 다리와 발에 매인 벨트를 모두 풀어준다.
개조 소매와 다리의 벨트는 아예 떼어내서 따로 놔뒀다.
지금은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니.
검은 옷만 남은 채로 조심스레 야미를 침대에 도로 눕히고 욕실로 들어간다.
대야에 물을 받고, 몸을 닦을 수건을 몇 개 꺼내어 방으로 되돌아간다.
얼굴과, 목, 등을 닦아주며 열을 식히면 될까 생각하며 방문을 연 순간 하마터면 대야를 떨어뜨릴 뻔 했다.
등의 지퍼가 열린 상태였기에 야미가 괴로운 듯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자 앞섶이 흘러내리며 봉긋한 부위가 들어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기겁하며 다가가서 가슴을 다시 가려주자 야미가 신음소리를 내었다.
"괴...괴로워..."
헐떡이며 손으로 목을 만지자 다시 흘러내리는 상의
...괴롭다니 억지로 가리기도 그렇고 이대로 계속 앞섶을 가려봤자 시간만 낭비할듯 했다.
지금은 가슴에 시선을 둘 게 아니라, 땀에 젖은 몸을 닦아 주는게 우선이니까.
노출된 가슴에서 시선을 떼고서 바닥에 놓인 대야에 수건 하나를 담근다.
적당히 물을 짜내고 땀에 젖은 야미의 이마와 붉은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준다.
"으응..."
얼굴을 닦자 야미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낸다.
얼굴을 닦고 나서 야미의 얼굴이 벽을 향하도록 몸을 누인 다음 등을 닦아주기 시작한다.
땀에 젖은 등을 닦으며 보니 방금 전 등이 닿았던 시트 부위가 땀으로 눅눅해져 있었다.
시트도 새로 갈아줘야겠네...
꼼꼼히 야미의 등을 닦아주는 도중 옆구리 부근을 닦을 때 야미가 신음을 흘렸다.
"흐읏..."
...차가운 느낌이라 그런 반응을 하는건 줄은 알지만 그 소리는 좀 곤란하네요.
젖은 목덜미로 흐트러진 금발이 달라붙은 야미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키다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미쳤냐!
아픈 애를 두고 정신이 나가서 어쩌자는 거냐?
양손으로 뺨을 두드리며 다시 한번 정성스레 얼굴과 등, 팔, 다리를 닦아준다.
그후 침대 시트를 새로 가져와 깔아주려고 보니,
옷이 워낙 땀에 젖은 상태라 이대로는 소용이 없어 보였다.
...부모님. 이 불민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숨을 죽이고 야미의 검은 옷을 천천히 벗긴다.
뒤의 넝마 같은 천과 스커트를 함께 내리며 옷을 벗겨낸다.
그리고...마지막 남은 속옷 한 장도 마저 벗겨내었다.
벗기기 전에 이불로 하반신을 가려준건 나의 마지막 양심이라 하겠다.
이미 늦은 것 같지만.
"더워..."
야?! 이불 치우지마! 몸 뒤척이지 마!
기겁해서 고개를 돌리곤 다시 새 수건을 물에 적신뒤 이번엔 얼굴과 등뿐이 아닌, 온 몸을 닦아 주었다.
앞과 뒤에서 뭔가 몰캉한 느낌들이 든거 같지만...상관없어.
침대의 시트를 갈고 야미를 다시 뉘인 뒤에
얇은 이불을 살짝 덮어주고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었다.
그리고 방을 나와 야미의 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우주인 옷을 보통 방식으로 세탁해도 되려나?
드라이클리닝은...?
검은색 옷과 같이 빨 수 없었던 속옷은 세제를 푼 물에 넣어두었다.
있다가 손빨래 한 뒤 탈수해서 말리지 뭐...
방으로 돌아가니 여전히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내는 야미가 흐트러진 이불안에 있었다.
대야의 물을 새로 갈아 와서 다시 몸을 닦아 주고 있으려니
야미가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았다.
"으음...물..."
"응? 아, 잠시만!"
닦는 걸 멈추고 재빨리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컵과 함께 가져왔다.
컵에 물을 담아 야미의 입에 조심스레 댔다.
흘리지 않도록 목에 수건도 살짝 둘러주었지만.
물을 마신 야미는 방금 전보다 약간 나아진 듯 편안한 안색을 했다.
방금 전까지 흐르던 땀도 많이 줄어있었다.
세탁이 끝나기 전까지 입을 옷으로 옷장에서 와이셔츠를 하나 꺼냈다.
야미의 체형으론 많이 크겠지만,
우리 집엔 여성용 속옷이 없는데다, 야미같은 장발머리 소유자에게 T셔츠 처럼 목만 뚫린 옷을 입힐 방법 따윈 몰라...
남성용 트렁크스 따윌 입히는 것도 에러.
마른 수건으로 야미의 몸을 한번 닦아준 뒤 와이셔츠를 입힌다.
무릎까지 가려지는 와이셔츠의 크기에 다행히 트렁크스를 입히는 만행을 안해도 될 것 같았다.
더워 보이기에 이불도 치우고 찬물수건만 새로 이마에 얹어주고 조용히 야미를 바라보았다.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야미.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이 지금은 편안한 듯 살짝 미소 짓고 있다.
이렇게 보면 귀엽기만 한 소녀인데...
우주제일의 위험도 특급 살인청부업자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쿠로에게 구해지고 나서도, 그것밖에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한 일.
가족이나 친구 하나 없이 그녀를 두려워하거나 이용하려는 이들만 만나며 살아온 생애에서
무표정한 얼굴은 그녀가 겪은 아픔을 숨기기 위한 방패였을까.
적어도 지구에 와서 라라의 말에 보인 놀란 표정,
리토의 행위에 대한 부끄러운 표정,
친구들의 장난에 대한 당황한 표정,
미캉과의 대화에서 보인 희미한 미소는 그녀가 감정을 모르는게 아니라 오랫동안 잊고 지냈기에 표현이 서투를 따름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부디 이 소녀의 괴로운 운명을 보듬어줄 이가 나타나기를...
삐- 삐-
상념에 잠겨있는 사이 탈수가 시작되는 알람이 울린다.
정신을 차리고 욕실로 들어가 세제물에 담가둔 속옷을 꺼내어 간단히 씻는다.
탈수가 끝난 검은 옷들을 꺼내 건조기에 올려놓고, 속옷을 세탁기에 넣고 탈수를 누른다.
이후 속옷도 마찬가지로 건조기에 놓고 방으로 돌아간다.
대강 30분에서 1시간 사이면 옷이 마를 것 같았다.
야미가 일어나면 옷을 되돌려주자고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자 괴로운듯 목주변에서 손을 꼼지락대는 야미가 보인다.
와이셔츠가 약간 불편한가 싶어서 윗쪽 단추를 두어개 풀어준 다음 물수건으로 얼굴과 목 부위를 닦아준다.
벌어진 와이셔츠 사이로 약간 볼록한 부분도 보이지만 일일이 신경쓰다간 닦는것도 못한다.
"으음...?"
목 부위를 닦아주고 있으려니 야미가 신음소리를 내며 살짝 눈꺼풀을 연다.
이제 정신을 차린건가?
수건을 치우고 야미를 바라본다.
눈가를 찌푸리고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던 야미는 옆에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키츠 료스케?"
"여~ 좋은 저녁이야 야미.
갑자기 쓰러져서 걱정했다고."
"무슨...?"
말을 하던 야미는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자신의 목 아래를 본다.
침대위에 누운 몸.
알몸에 와이셔츠 한벌.
게다가 위의 단추는 풀려있어 부풀어 오른 가슴이 살짝 드러난 상태.
점점 야미의 얼굴이 붉어진다.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아키츠 료스케..."
"잠깐?! 너 지금 환자야! 무리하면..."
"야한 것은...싫습니다!"
야미의 머리카락들이 몇 마리 용들로 변해 이빨을 보이며 날카롭게 덤벼들었다.
콰직-!
따가워?!
옷이 찢어지는 감촉과 함께 용들에게 팔과 어깨, 옆구리 등을 물리고 들이받혀서 뒤로 날아간다.
벽이라도 부서지면 큰일이다!
쿵-!
손바닥과 발로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여 벽에 부딪친다.
다행히 벽이 박살날 만큼의 충격을 전달하진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야미에게 소리친다.
"이봐!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
야미는 침묵하며 나를 노려보곤, 오른손을 해머로 만들어 내게 달려들었다.
아 진짜...!
뭔가 심각하게 오해한 것 같아 아무래도 진정시킬 필요를 느꼈다.
집을 박살내지 않기 위해서, 피하기보단 맞받아치기로 결정했다.
야미를 향해 달려들어 휘둘러지는 해머의 손잡이 부분을 왼손으로 잡는다.
곧이어 오른손으로 야미의 왼쪽 어깨를 잡고 침대로 밀어붙인다.
체중 차에서 우세이고, 건강 문제도 있는지라 손쉽게 침대위로 야미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어느새 해머가 풀리고 보통 손으로 돌아온 야미의 오른 손목을 머리위로 올려 붙잡고,
야미의 왼쪽어깨를 오른손으로 고정시킨 채,
나를 노려보는 야미를 바라본다.
방금 전의 움직임으로 와이셔츠가 흐트러지고 허벅지 위까지 말려 올라간 모습에
야미가 얼굴을 붉히며 저항했지만 지금은 내가 우세.
수치심으로 눈물까지 맺히려는 야미에게 당황하며 어떻게든 오해를 풀려고 한다.
"저기, 그러니까 오해야.
네가 갑자기 쓰러져서 집에서 간호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그럼...제 옷을 벗기고 이런 변태적인 옷차림을 강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네 옷은 땀에 절어서 지금 세탁해 말리고 있어.
그대로 두면 시트까지 계속 젖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
잠시 입을 다문 야미는 다시 물었다.
"...당신의 남은 수염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응?"
"당신이 아끼는 수염에 걸고 방금 전 말이 진실임을 맹세할 수 있습니까?"
"어? 잠깐. 어째서 수염에 맹세를 해야 하는 건데?"
난 수염성인도 아니고, 그런 맹세했다가 또다시 잘리는 건 사양이라고?
"당신이 수염성인이건 아니건은 관계없습니다.
솔직히, 예전과 방금 전 움직임을 보면 정말로 지구인인지 의심이 들지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당신이 자신의 수염에 비정상적일만큼 집착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히 하는 것도 말이죠."
그야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평범한 삶을 보장해줄 방패막이기 때문이지.
솔직히 구레나룻이 잘려나갔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으니 집착이라면 집착이지만.
그래도 방금 전 내 말은 사실이니 상관은 없나...
"...아. 좋아. 그걸로 믿어준다면.
나 아키츠 료스케는 내 목숨과도 같은 수염에 걸고 방금 전 대화가 진실임을 맹세합니다.
...이런 걸로 괜찮아?"
"...그럼, 믿겠습니다."
"휴우-"
"그리고..."
"...?"
아직 뭔가 남았나?
갸웃하는 나로부터 고개를 살짝 돌려 시선을 외면한 채 야미가 중얼거렸다.
"이제 그만... 비켜주세요."
"으응?"
지금의 자세를 확인한다.
소녀의 한 팔과 어깨를 속박하고 침대에 눕힌 나.
게다가 소녀의 옷차림은 알몸 와이셔츠 한 장.
그야말로 범죄자 확정.
"미, 미안!"
황급히 손을 치우고 일어난다.
야미도 붉은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는다.
하지만, 나를 보는 방향으로 침대에 걸터앉은 야미의 허벅지 사이가 프라이빗 스퀘어.
차라리 안보이게 서 있어줘!
...아픈 사람에게 바랄게 아닌가.
새하얀 허벅지에 살짝 드리운 그림자에 민망한 나머지 고개를 돌리며 화제를 전환한다.
"그, 그나저나 미카도 선생님을 알고 있어?"
"닥터 미카도 말입니까?
우주에서 유명한 의사죠.
예전에 저를 치료해 주었기에 알고 있습니다."
"우주인 선생님이시라 보통은 아닐꺼라 생각했지만...
아무튼, 앞으론 몸이 아프면 우리 학교 양호실로 와.
미카도 선생님이 거기 계시니까."
"닥터 미카도가 지구에...
몰랐던 사실이군요."
"사실은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가고 싶었지만
연락처를 몰라서 갈수가 없더라고.
학교 직원실에는 선생님도 안계시지 알아낼 방법이...?"
말을 하다가 도중에 입을 다문다.
"무슨 일입니까 아키츠 료스케?"
이상한 듯 바라보는 야미의 시선을 받으며 자책한다.
있었잖아! 다른 선생님을 통해 아는 방법이.
"잠시만 기다려줘.
잘하면 미카도 선생님이 계신 곳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무슨?"
어리둥절하는 야미를 방에 둔 채로 마루로 나와 핸드폰을 꺼낸다.
수첩에 적힌 호네카와 담임 선생님의 댁으로 전화를 건다.
혹시나 집에 안계시지나 않으면 좋으련만...
뚜-뚜- 하는 소리가 몇번 반복되고, 수화기를 드는 소리와 함께 나이든 영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네카와 선생님이다.
"여보세요?"
"호네카와 선생님 댁인가요?"
"그렇습니다만."
"늦은 밤중에 죄송합니다. 아키츠 료스케입니다만,
혹시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고계신가요?"
"아키츠군이로구나. 그런데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는 어째서?"
"미카도 선생님이 주치의를 맡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연락처를 모른다고 해서 말이죠.
진료를 받은 지 꽤 시일이 지난 터라 다시 찾아가야 하기에 연락처를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럼 잠시만 기다려 보려무나.
비상연락망이 있나 찾아보도록 할테니..."
"아,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든 채로 기다린다.
바보같이...좀더 빨리 전화해볼걸 그랬어.
그랬다면 방금 전처럼 요란을 피울 것도...「털썩-」
방안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야미의 모습.
"괘, 괜찮아 야미?"
놀라며 쓰러진 야미를 부축한다.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이 붉어진 야미.
손을 대어보자 처음 때보다 훨씬 더 뜨거운 이마의 감촉이 느껴진다.
겨우 진정되었던 상태가 방금 전의 변화능력으로 급격히 악화된 것 같았다.
굉장히 괴로운 듯 내 옷을 부여잡으며 신음소리를 낸다.
"하악...하...읏..."
"자, 잠시만 기다려.
곧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다 줄 테니까...!"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고 있으려니 핸드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키츠냐?"
"호, 호네카와 선생님?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는요?"
"그게...미안하구나 아키츠.
비상연락망이 적힌 수첩이 지금 보이지 않는구나.
혹시 급한 일이니?"
"그런..."
생각지도 못한 답에 할말을 잊는다.
침묵을 지켜버린 나에게 미안한지 호네카와 선생님이 말을 덧붙이신다.
"혹시나 바쁜 일이라면 수첩을 찾는 대로 전화를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호네카와 선생님."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절망감이 엄습한다.
어째서 하필 오늘이 토요일이었지?
어째서 학교의 직원실은 잠겨있었지?
어째서 경비원은 열쇠가 없었지?
어째서 리토는 여행을 간 거지?
어째서 비상연락망은 발견되지 않은거지?
어째서 야미는 이렇게 괴로워해야 하는거지?
어째서...그때 야미를 멈추었지...?
좀더 빨리 증세가 나타났다면, 누군가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당직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경비원에게 좀더 권한이 있었다면,
라라가 집에 있었더라면,
비상연락망이 발견되었더라면,
내가 그때 리토를 돕지 않았다면...
고개를 젓는다.
위기에 처한 리토를 돕지 않는다는 선택사항은 없었다.
주사위를 던진 100개의 미래에서 모두 6이 나온다는 믿음은 내겐 없으니까.
차라리, 내가 방금 전 야미의 첫 공격을 그대로 맞았더라면 혹시나...
"크읏..."
소매를 잡는 힘이 강해지며 발해진 야미의 신음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지금은 도움이 안 되는 원망이나 후회 따윈 필요 없다.
어떻게 하면 야미를 도울 수 있을까가 중요하다.
이대로 다시 간호를 해도 처음처럼 진정이 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토요일 밤.
월요일이 되어 미카도 선생님을 학교에서 만나기까지,
주말 내내 야미의 괴로움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도시전체를 뒤져서 그중에 미카도 선생님의 집을 찾는 것도 불가능.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도 없고, 그 사이에 쓰러진 야미를 혼자 둘 수도 없다.
어느새 와이셔츠가 땀에 젖어 속살이 비쳐 보일정도가 되자 상황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지금 상황이 된 원인이 나에게 있다면,
역시 내가 나서서 해결하는 게 순리지.
밤바람이 춥기에 담요로 야미의 몸을 감싼 채로 밖으로 나서 학교로 향한다.
한밤중의 학교는 쥐죽은 듯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옥상 문을 열고 교내로 들어간다.
직원실 앞에 도착해 자물쇠를 뜯어내고 직원실 안으로 들어간다.
야미를 직원실 소파에 잠시 내려놓고 선생님들의 연락처가 적힌 명단을 찾는다.
미카도 료코...미카도 료코...
...있다!
연락처를 옮겨 적은 뒤, 자리를 정리하고 야미를 안고 직원실을 나온다.
집에서 가져온 새 자물쇠를 직원실 문에 대신 걸어두고 학교를 나선다.
...정학 정돈 각오하기로 하고, 이만 미카도 선생님 댁으로 가볼까.
적혀있는 주소로 찾아가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저택이 도시 내에 세워져 있었다.
쇠창살 너머로 괴상한 우주식물이 몇 개 심어져 있고, 까악~ 까악~ 하는 까마귀 소리가 흡사 마녀의 집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울타리를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가 벨을 누른다.
딩동-
한밤중에 깨어있을까 걱정했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자 문이 열리며 미카도 선생님이 나왔다.
검은색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그 위에 흰색 의사 가운을 입은 차림이었다.
졸린 듯 눈을 비비던 미카도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입을 열었다.
"어라...너는...?"
"아키츠 료스케라고 합니다.
야미의 치료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야미?"
의아한 듯 내 품에 안겨있는 담요를 덮어쓴 인형을 쳐다보는 미카도 선생님.
"그 애는...!"
"선생님, 빨리 치료를...!"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던 미카도 선생님은 땀으로 절어있는 야미의 얼굴과 내 절박한 목소리에
곧 정신을 추스르고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
박제들이 진열된 실험실 분위기가 나는 방의 진료용 침상에 누운 야미를 진료하던 미카도 선생님께,
노파심에 걱정이 되어서 방금전까지 간호하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자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구나. 이건 보통 병이나 감기가 아니라 이 아이 특유의 증상이야."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악화된 듯 한데 괜찮을까요?"
내심 원래보다 치료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자 미카도 선생님은 문제없다는 듯 장담하셨다.
"물론이지. 죽은 사람만 아니라면 어떤 환자라도 고쳐줄께."
"다행이네요..."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는 나를 바라보던 미카도 선생님은 약간 걱정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아키츠군이었지?"
"네."
"너는 괜찮니?"
"에?"
"지금 네 찢어진 옷들이 심상치 않아서 말이야."
미카도 선생님이 내 옷 이곳저곳에 뚫린 구멍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방금전 야미에게 공격당했을때가 떠올랐다.
"아, 이건 야미에게 살짝 물린거에요."
"물려?"
묘한 표정을 짓는 미카도 선생님을 이상하게 여기며 대답했다.
"오해가 있어서 화를 내면서 물어오더라고요."
"오해?"
"네. 옷을 갈아입힌 것에 대해서 이상한 오해를 해서 그만..."
"그러고보면 야미의 옷차림이 굉장히 파격적인데 네 솜씨였니?"
알몸에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친 야미의 옷차림을 가리키며 물어보는 미카도 선생님.
땀에 젖은 상태라 속살이 적나라하게 비치는 야미의 모습에 당황해서 변호를 한다.
"그, 그건...땀에 젖어서 옷을 세탁하느라..."
"그런데 참 매니악한 옷차림이네. 알몸 와이셔츠라니. 꽤나 좋아하나봐?"
키득거리며 웃는 미카도 선생님께 무안해서 볼을 긁적인다.
절 놀리시는 것보단 치료를 해주시는게 더 건설적이지 않을까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미카도 선생님이 좀더 추격해왔다.
"혹시, 옷을 벗기면서 이상한 짓을 했다든가 하진 않았겠지?"
"...아파하는 아이에게 손을 댈 만큼 못되먹진 않았어요."
아파서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면서 야한 짓을 했냐고?
그럴 바엔 차라리 혀를 씹고 만다.
굳어진 내 얼굴에 약간 지나쳤음을 알고 미카도 선생님이 사과해오셨다.
"...농담의 작정이었는데, 미안하구나."
"아, 아뇨...
사실... 도중에 몇번 두근거렸던 적은 있었으니까, 사과 받으면 오히려 할말이 없는데요..."
"후후...솔직한 아이구나."
살짝 웃던 미카도 선생님은 곧이어 야미를 일으킨다.
"이제 슬슬 이 아이를 치료해야지.
땀에 젖어서 좀 벗기기 힘들겠는데...
아키츠군, 와이셔츠를 벗기는 것 좀 도와줘."
"아...네."
미카도 선생님의 부탁에 따라 야미의 몸을 감싼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하나둘 버튼을 풀고 있으려니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미묘한 표정의 미카도 선생님이 보인다.
"...정말로 도와주는구나?"
"에? 치료에 필요한 것 아니었나요?"
"그건 그런데...좀더 당황할줄 알았는데 말이지."
정말 놀리는 걸 좋아하는 선생님이시군요.
"역시 100명의 여자와 잤다는 아키츠군 답달까?"
"그거 유언비어에요?!"
선생님들도 다 알고 있구나 이 괴상한 소문...
그전에, 그 소문이랑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은 별개라고요.
"뭐...평소였다면 못할 일이지만,
아픈 걸 고치기 위한거니까요.
어머니가 아기의 대소변을 싫은티 하나 안내고 치워주시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비유가 좀 이상한 듯 하구나?"
"그냥, 지금은 부끄러워 할 때가 아니라는 거죠 뭐..."
버튼을 다 풀고 와이셔츠를 벗겨내자 땀이 맺힌 새하얀 피부가 드러난다.
부푼 가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라인에 순간 눈이 뺏겼다가 고개를 흔들곤 마음속으로 암시를 건다.
나는돌부처나는돌부처나는돌부처...
야미는고양이야미는고양이야미는고양이...
중얼중얼거리는 내모습을 보던 미카도 선생님은 피식 웃으면서 다음 사항을 전달했다.
"아키츠군, 탈의 시키는 솜씨가 좋구나~
그럼 옮기는 것도 도와줘."
"...네?"
설마 알몸을 안고 가라고?
...그렇겐 못하지.
방금 전 야미의 몸을 감쌌던 담요를 야미의 몸에 두른다.
그리고 양팔로 야미의 어깨와 무릎안쪽으로 넣어 안아 올린다.
어안이 벙벙해진 미카도 선생님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럼, 어디로 옮기면 되죠?"
기가 막힌 듯 쳐다보면 미카도 선생님은 이내 한숨을 쉬며 자리를 옮겼다.
진료실에 도착해서 담요를 치우고 야미를 힐링 캡슐 안에 넣는다.
힐링 캡슐을 작동시키고 미카도 선생님이 돌아서서 나를 본다.
"이제 괜찮아.
이제부턴 나한테 맡겨요."
"감사합니다 미카도 선생님."
"뭘 이정도야."
"그럼 전 야미의 옷을 찾아올게요.
집에 빨래 건조기에 넣어뒀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다 말랐을 거예요."
"꼼꼼하네. 나중에 좋은 남편이 될 꺼야."
"아하하...그랬으면 좋겠네요."
웃으며 돌아서려다 깜박 잊은 게 떠올라 미카도 선생님을 바라본다.
"아, 그리고 그전에 이걸..."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미카도 선생님께 건넨다.
얼떨결에 열쇠를 받은 선생님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이건?"
"직원실 열쇠예요.
선생님 계신 곳을 몰라서 직원실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서 연락처를 찾았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새로 달아놓은 자물쇠의 열쇠."
"뭐? 비상연락망은 어쩌고?"
"그러니까..."
야미를 만나고 나서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주말에다가 직원실에서 숙직하시는 선생님도 없었고,
라라와도 연결이 안되고, 호네카와 선생님께선 비상연락망이 없었던 것까지.
이야기를 듣고 난 미카도 선생님은 어이없어 하시며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운이 나쁠 수가 있지?"
"글쎄요...아무튼,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께 사과해야죠.
급한 일이었다지만 직원실 침입까지 했으니까요."
CCTV같은 거에도 이미 찍혔을 테고,
자수하는게 그나마 좋겠죠.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야미를 돕고 싶었니?"
"따지고 보면 제 탓이니까요."
"뭐?"
"아뇨...그냥, 그렇다고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야미가 깨어나기 전에 옷을 가지고 오려면 좀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미카도 선생님의 집을 벗어나 집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도중에 야미를 발견했던 장소를 지나치게 되었다.
여전히 깡패들은 인사불성인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뼈가 부러진 녀석은 없는걸 보면 야미도 사정을 봐준 거 같은데.
...가만 보니 이자식들만 안 깝죽댔으면 됐잖아?
슬그머니 약이 오르는걸 느낀다.
내심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를 하며 분풀이를 하기 위해 다가간다.
기절한 녀석들을 더 때리는 것도 그래서 적당히 바지랑 팬티를 벗겨놓고 차곡차곡 교차로 포개놓았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수염을 그려주며 부디 기도했다.
액땜했다 치고 앞으론 밤길에 여성을 괴롭히는 짓따윈 하지 말길...
집에 돌아가 건조기에서 야미의 옷을 꺼낸다.
그동안 완전히 말랐는지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진다.
종이가방에 옷들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미카도 선생님의 집에 도착해서 서둘러 진료실로 들어간다.
"선생님! 옷 가져왔습니다!"
기운차게 벌컥 문을 열자 미카도 선생님이 놀란 듯 쳐다본다.
그리고 어느새 캡슐 밖으로 나온 야미 또한 놀란 얼굴로 바라본다.
알몸에 머리카락을 타월로 닦던 채로...
타이밍 최악이네...
그 깡패놈들에게 장난만 안치고 왔다면 늦지 않았을까나?
당황해서 변명을 한다.
"어...저기, 고의가 아니었어?
입을 옷을 서둘러 가져오다보니까...
...미안."
붉어진 채로 수건으로 몸을 가리는 야미의 모습에 그냥 체념하며 사과한다.
그냥 맞고 말지.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이나 맞을 짓을 했냐.
맞고 끝내는 걸로 용서 받을 수 있다면 싸게 치는 거지...
하지만 노려보던 야미는 이내 쏘아보던 시선을 거두고 말을 걸어왔다.
"옷...돌려주십시오."
"어? 그, 그래."
당황해서 급히 손에 든 종이가방을 야미에게 내밀었다.
야미가 종이가방을 받아든걸 확인하자 얌전히 진료실 커튼 밖으로 나가서 커튼을 쳐주고 돌아섰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커튼이 걷어지며 야미가 붉어진 얼굴로 나왔다.
입을 다문채로 나를 바라보는 야미의 시선에 얌전히 사과했다.
"...쳐다봐서 미안해."
"...이번은 용서하겠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정말?"
머리칼날 공격이라도 받을까봐 덜덜하고 있었는데 의외다.
"네. 그것보다...
오늘은 도움을 받았군요. 감사합니다."
얌전히 고개를 꾸벅이며 고마움의 표시를 하는 야미.
"아니, 뭘...나랑 다투다가 네 상태가 악화돼서 나로선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라고?
게다가 정말로 도움이 된 건 결국 미카도 선생님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이곳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저는 더 곤란했을 겁니다."
"그렇지만...「그냥 얌전히 감사의 인사를 받으렴 아키츠군.」미카도 선생님?"
갑자기 끼어든 미카도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방금 전 야미가 깨어났을 때 이야기 했단다.
네가 야미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 걸 말야.
보통 그렇게까지 하는 건 힘든데 말이지."
그건 미카도 선생님 당신 이외에는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까지 된건 제가 일에 간섭하면서 타이밍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에 책임을 지려던 거고요.
미카도 선생님이 이어 말했다.
"직원실 열쇠를 건네줬을 땐 정말 놀랐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야미를 생각할 줄은 몰랐으니까."
"정학 정도까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어요.
도와줄 수 있는데 못 도와주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어느 정도 피해를 보더라도 나중에 가서 자책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게 제일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선택을 한다면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건 대학에 들어간 뒤엔 별 문제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단 거니?"
"적어도 저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
"바보구나."
"아니~ 솔직히 교장선생님 같으면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하실 거라고요?
미소녀와 직원실 보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미소녀를 고르실 껄요?"
비유가 잘못되었지만 이때는 교장이 옳다고 본다.
보나마나 나중에 대가로서 팬○를 달라는 둥의 헛소리를 하겠지만 넘어가자.
...확실히 비유가 잘못되었는지 야미의 기분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설마 벌써부터 성희롱 시도를 당하기라도 했던가?
미카도 선생님은 한숨을 쉬곤 웃으며 말했다.
"뭐, 앞으로 야미의 담당 주치의로서 환자를 데려와준 걸 감사할게.
보답이랄까, 학교에서 처분을 받게 된다면 잘 변호해 줄 테니 너무 걱정 하지마."
레알?
"아...감사합니다~!"
고마움에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매드 닥터니 뭐니하며 피하기만 해서 죄송해요 미카도 선생님.
지금껏 오해하고 있었지만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이십니다.
감격하고 있는 나의 옆에서 다시 야미가 인사를 한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원실 문제도 괜찮게 해결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는지라 흔쾌히 야미의 인사를 받는다.
"그래. 평소에도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분명히 친구들도 많이 생길 거라고~."
"그렇습니까?"
"그럼! 친구 백명 사귀기 같은 건 문제도 안될 거라고~아하하!"
친구 숫자가 두 손에 꼽는 내가 할말은 절대 아니지만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희희낙락한 내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짓던 미카도 선생님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러고보니 아키츠군은 수염성인이라고 했던가?"
"쿨럭...!"
"괜찮습니까 아키츠 료스케?"
웃던 도중 예상치 못한 대사에 놀라 사레가 들려 버렸다.
동네 꼬맹이들 사이에만 퍼진거 아니었나 그 소문?
계속해서 기침을 해대는 나를 걱정하는 야미.
미카도 선생님이 계속해서 물었다.
"그런데 예전에 있던 구레나룻은 어떻게 된 거니?"
"그러니까, 쿨럭...!수염성 쿨럭...!"
"그건...제가 잘랐습니다."
야미가 약간 표정이 굳어지며 답했다.
미카도 선생님이 크게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왠지 심술궂게 느껴지는 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지만, 기침이 멎질 않아서 주의를 주질 못하겠다.
"야미는 데빌루크 성인들에 대해 알고 있지?"
"네. 프린세스 라라와는 알고 지내는 사이니까요."
"그럼 아키츠군의 수염을 깎은 것의 의미를 알고 있나보구나?"
"무슨 의미입니까?"
"잠...쿨럭?"
수염 깎는데 의미가 있어?
아니 애초에 수염성인 따위가 어딨다고 그래?
있을지도 모르지만...적어도 나는 아니다.
게다가 저 짖궂어 보이는 얼굴은 절대 거짓말을 하려는 게 틀림없다고!
"데빌루크 성인을 상징하는 건 꼬리지. 그들의 꼬리는 굉장히 민감해서 약점임에 동시에 성감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해.
그래서 남이 만지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 하지.
그럼, 여기서 문제.
수염성인을 상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설마?"
싱긋-
눈이 크게 뜨여진 야미에게 미카도 선생님이 눈부신 미소를 짓는다.
이봐요! 당신 지금 학생을 앞두고서 성희롱 하고 있는 거 알아요?
사람을 무슨 수염이 성감대인 괴생명체 마냥 취급하지 말라고요.
나도 만만찮게 쇼크를 먹었더니 도무지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끊임없이 기침을 하는 나를 향해 천천히 돌아선 야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있다.
"아, 아키츠 료스케..."
"쿨럭...잠시만 그거 오...쿨럭!"
수염이 잘린 피해자인 나에게 가해를 입히려는 게 아닐까하며 기침 속에서도 가드자세를 하고 있으려니,
점점 창백한 얼굴이 엄청나게 붉어지는 야미의 얼굴이 보인다.
분노? 아니다.
어떻게 봐도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이다.
입을 벌린 채로 제대로 말도 못 꺼내고 있다고?
입가에 손을 댄 채 더듬거리며 야미가 말한다.
"아...저...나...야, 야한 짓은..."
"나,큽? 수염 같은거,풉! 성감대 아,쿨럭...! 아니, 애초에 수염성인이..."
털썩-
......어라? 이봐!
야미가 기절했다?
무언가 말을 하려던 걸 멈추고선 제자리에서 풀썩 쓰러져버린 야미에 놀라 안아 일으킨다.
설마 아직까지 완치가 안 된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카도 선생님을 바라보려니까,
태연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어머나~ 역시나 야미는 야한 짓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하네~
자기가 한일에 대해서 부끄러워 기절할 정도라니."
아아...몸의 이상이 아니고 단순한 기절인가?
아하하~다행이네...가 아니고!
정정. 이 사람은 정말로 어른 악동이다.
개인적으로 알고지내고 싶진 않다고 절실히 생각한 순간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께 직원실에 들어간 사연을 고백한 뒤, 직원회의가 열렸다.
이때 야미의 주치의로 미카도 선생님이 나서면서, 학교 직원실을 침입했던 나를 변호해주셨고,
담임인 호네카와 선생님께서도 주말에 전화내용을 증언해주시면서 내 처분에 대한 수위를 낮춰주셨다.
덕분에 내심 정학까지 각오하고 있었던 나는 교내봉사 일주일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분으로 끝날 수 있었다.
나에게 교내봉사 처분이 내려진 게 알려지자 놀란 코테가와는 나에게 경위를 물어왔다.
주말동안 있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자 걱정하던 표정을 바꿔 화를 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땐 자신에게도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설마 환자의 간호를 부탁했으면 한밤중에 남학생 혼자 사는 집까지 찾아 올 생각이었습니까 코테가와씨?
월요일 하교 도중 나에게 「그, 성감...수염을 잘라서 죄송합니다...야한 짓 해서...」라며 얼굴을 붉히며 사과해오는 야미에게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난 수염성인도 아닐뿐더러 내 수염은 성감...뭐시기가 아니다 라는 식으로.
(성감○ 라고 완전히 말하지 못하는 야미 때문에 ...로 적절히 건너뛰며 설명했다.)
이후 겨우 납득한 야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고, 나도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오해를 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교 도중의 학생들을 제외하곤...
그 후 아키츠 료스케 수염○○○전설이 학교에 퍼졌다.
더불어 불량배들 사이에서 패배자의 얼굴에 수치의 증거라며 수염을 그리는 행위가 유행하면서,
10대들 사이에서 수염을 기르는 녀석들은 사라져 버렸다.
...수염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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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성인 운운은 이걸로 끝입니다.
연극중의 수염성인, 우주인 흉내를 내며 허세, 수염 성감대 루머(데빌루크 꼬리 성감대설에서 차용).
나올거 다나온것 같으니 수염성인 루머를 다시 쓸일은 없을겁니다.(기껏해야 쓸만한 남은 사람이 라라아빠 말고 있나?--;)
그와 별개로 수염과 관련된 트러블들은 있을순 있겠지만요.^^;
그나저나 요즘 생각하는게...
메인스토리에서 반정도 비껴나간채로 진행했던 1~7편이 본편에 완전 합류한 8~12보단 좀더 재밌는것 같기고 하고,
좀 복잡한 심정입니다-_-;
1~7편은 보통 [오해->해결->주인공의 심정(평화?)->오해(or폭발)끝] 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8~12은 원작전개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심정->오해(or폭발)끝' 부분이 좀 부족한듯도 하고...
(이게 있어야 주인공 갈구는게 쉽기도 하고...)
글 쓴걸 폐기하고 아예 뒤엎어서 새로 쓰는 시도를 할만큼 시간이 되질 않아서 그런지,
오해성분이 무지하게 부족해서 그런지,
아니면 리토의 역할을 대신하기만 하는 모습이 영 안내켜서 그런진 잘 모르겠는데,
우선 유령아가씨(오시즈) 등장편, 축제편(코테가와or미캉) 쯤 쓰면서 고민좀 해봐야 할듯합니다^^;
정 안되면 중간에 오리지널로 스토리 한개씩 짜넣어서 1~7편때처럼 본편과 약간 벗어난 상태로 진행하는것도 생각해 봐야겠죠=ㅂ=;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서도...)
리토가 휘말리는 여난중에 이야기로 삼을만큼 플롯이 안짜여 지는 경우는 그냥 리토가 하도록 내버려 두든가,
아예 새로운 스토리를 추가해서 여성들을 그 해프닝에서 빼오든가 하겠죠;
학생들이 주인공에 대해 가지는 오해에 대한 묘사가 적어진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요즈음...
이대로 가다간 오해물이 오해물이 아니게 되어버려;
오해장르 소설이나 만화를 시간날때 한번씩 다시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안선생님...OTL
<이번화 원작 45화 야미 아픔>
아버지의 부탁으로 학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온 리토.
도중에 만난 야미와 시비가 붙지만 도중에 야미가 쓰러진다.
놀라서 미카도 선생님께 달려가지만 학교에 오지 않은 상황.
직원실에서 주소를 얻어 라라와 함께 미카도 선생 집을 방문한다.
힐링 캡슐에서 야미는 치료를 받아 회복하고,
야미는 적인 자신을 구해준 리토에게 의문을 갖는다.
이후 팬티만 입은 상태에서 난입한 리토에게 제재를 가하고 저택이 망가지며 미카도는 비명을 지르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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