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 맴- 맴-
"더, 더워..."
"덥네요..."
한여름에 내려쬐는 대낮의 햇살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주말. 미캉과 오랜만에 장을 보러 나와선 장보기를 마칠때쯤엔 더위를 먹을대로 먹어버렸다.
누가 내 더위 좀 가져가라...
고개를 설레설레 젓곤, 옆에서 힘겹게 걷는 미캉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미캉. 괜히 아침부터 불러서..."
"괜찮아요. 어차피 곧 장보기를 해야할 때였는걸요.
...기왕이면 어제 저녁에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요."
"그러게...미안."
겁도 없이 여름의 한낮부터 나오다니 장볼 시간을 잘못 잡았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오늘이 되어서야 먹거리가 다 떨어진걸 깨달은 내가 잘못이지만서도...
어찌됐건 옹색한 변명거리밖에 안될 뿐, 미캉에게 함께 장보기를 권유한게 지금에 와선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정말 덥네...
슬슬 목도 말라가는 참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을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만큼 호쾌하게 아이스크림을 씹는 모습이 정말 시원해 보였다.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지 않을래?"
"으~ 그러는게 좋겠네요..."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미캉은
어느새 이마에 배인 땀을 훔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토와 라라의 몫까지 아이스크림을 산 뒤 각자 하나씩 아이스크림을 물고는 귀가길에 올랐다.
"이야~ 살겠다~ 역시 더위엔 아이스크림이 제격이지!"
"후훗, 그러게요~
방금전 보단 훨씬 시원해진 것 같은데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혀로 느껴지는 시원함에 자연스레 얼굴이 풀리면서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오늘은 정말이지 덥구나..."
"그러게요. 정말이지 비라도 내려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살짝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미캉은 아이스바를 베어 물었다.
여름의 더위에 미캉은 평소보다 시원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어깨부터 겨드랑이를 노출시킨 민소매를 입은 미캉의 몸에선
찌르는 듯한 더위에 배어나온 땀방울이 쇄골 아래에 맺혀 반짝이고 있었다.
땀이 배인 매끈한 피부가 묘하게 색정적이네요...
미캉의 저 반칙적인 자태는 도무지 익숙해 지질 않는다.
"료스케 오빠?"
"으,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 아니. 아무것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뿌리친다.
한숨 돌릴만 하니까 괜히 이상한 쪽으로 신경이 쓰이는구나...
먹고남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곤 몰래 한숨을 쉬었다.
미캉의 집에 도착하자 우주 식물 셀린이 암술부위에 난 입에서 혀를 내밀며 헐떡이고 있었다.
부채까지 부치는 폼이 어지간히 더운듯 했다.
확실히 올 여름 더위는 쉽게 볼게 아니네요.
잎에서 땀까지 흘리는 모습엔 나도 식은땀이 났지만.
식물이 땀을 흘리다니, 과연 우주는 얕볼 수 없구나...
거실에 미캉의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이만 돌아가려 할때 미캉이 만류해왔다.
"료스케 오빠. 여기까지 오느라 더우실텐데 잠깐 쉬었다 가세요."
"후우...그럴까?"
더위 때문에 옷도 땀으로 살짝 젖었는데, 잠시 말리고 가는게 나으려나...
"그럼 잠시 실례할께."
"간단히 먹을거라도 준비해 갈테니 들어가서 리토랑 얘기라도 하고 계세요."
"그럴께."
냉장고에 장거리와 아이스크림을 넣은 뒤 리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응? 아무도 없잖아?
방 한가운데는 사각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위엔 잡지와 물컵, 리모컨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옆으론 선풍기가 콘센트에 연결된 상태로 멈춰 있었고 맞은편엔 담요가 떨어져 있었다.
창가에 놓인 침대 아래로는 이불이 밀려 내려가 있었다.
문 옆엔 TV와 DVD 플레이어, 게임기가 있었고 그 아래로 몇개의 CD 케이스가 흩어져 있었다.
장보러 간 사이에 잠시 외출한건가?
리토가 돌아올때까지 책이나 읽을까.
방을 두리번거리며 읽을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만화책이랑 스포츠 관련 책들이 대부분이네.
뭐, 리토는 공부보단 운동을 더 좋아하니 딱히 놀랄건 없으려나?
응? 이건...
눈으로 제목들을 훑어보던중 책장 한쪽 끝에 놓인 앨범이 보였다.
리토의 어릴 적 앨범일까...?
어렸을적 리토의 모습을 어땠을지 궁금해졌기에 앨범을 뽑아 들어 펼쳐보았다.
어디보자...
교복차림의 리토네.
중학교 때 찍은 앨범인가?
지금의 모습보다 약간 어린티가 나는 얼굴로 친구들에게 둘러싸인채 정면을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기분좋아질 정도로 밝은 웃음이네...
나도 저렇게 웃어봤으면 좋으련만.
지금의 양아치 스타일로 바꾼 뒤론 날카로운 눈매까지 더해져서 웃으면 모두들 시선을 피할만큼 살벌한 인상이었으니...
그래도 딱 한번, 작년 크리스마스때 코테가와에게 괜찮은 평가를 받은적은 있으니 언젠간 가능하겠지.
왜 있잖아?
진정 행복을 원한다면 아주 큰소리로 웃어요
환한 웃음 하나로 이세상이 달라 보여요
멋진 사랑을 원한다면 밝은 미소를 지어봐요
밝은 미소 하나로 이세상을 다 바꿔봐요
...하루하루를 깡패들이랑 아웅다웅 하는데 질려서
좋은 날이 찾아오길 바라며 쉴새없이 웃었다가 질겁하며 도망가던 깡패들이 떠오르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을 때를 잘못했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지?
그래도 지금은 구레나룻도 없으니 예전보단 나을것 같은데 어쩔라나 몰라.
「들어가요. 료스케 오빠~」
앨범을 뒤적여보고 있는데 미캉이 수박을 담은 접시를 들고 방에 들어왔다.
어느새 노란색 끈 민소매와 검은색 짧은 주름치마로 갈아입은 미캉은 테이블 위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더운데 수박 좀 드세요."
"아, 고마워. 잘먹을께~"
테이블에 앉아 앨범을 내려놓곤 접시에 놓인 수박에 손을 뻗었다.
한입 수박을 베어물자 느껴지는 시원함과 달콤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뭘 보고 계셨던 거에요?"
"응, 그냥 유우키의 중학교 앨범을 잠시 보고 있었어."
"리토의 앨범요?"
"유우키의 중학교 시절은 어땠나 싶어서.
사루야마나 사이렌지도 같은 중학교 였다길래 궁금했었거든.
그런데, 유우키는 잠시 어딜 나갔나봐?"
"아...!"
뭔가 생각난듯 미캉은 한손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러고보니...오늘은 라라언니랑 친구들하고 바다에 간다고 했어요.
벌써 간 건가?"
「오늘 중에는 오겠지만요...」라고 중얼거리는 미캉.
"바다인가..."
라라의 발명품으로 주말동안 다녀오려는걸까...
푸른 하늘, 시원한 바다.
...가고 싶다아아아...
리토와 라라 일행이 놀고있을 광경을 상상하며 멍하니 있으려니
미캉도 약간 아쉬운듯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더울줄 알았다면 저도 따라갈걸 그랬나봐요.
...저, 그런데... 료스케 오빤 초대되지 않은건가요?"
조심스레 물어오는 미캉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었다.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미캉.
올해가 되서야 겨우 얼굴을 알게된 사이인데 그렇게 초대를 받는쪽이 의외일거라고."
"섭섭하지 않으세요?"
"아니라니까~
애초에 유우키가 먼저 여행을 계획했을리는 없으니까,
아마도 라라가 계획했겠지.
그럼 자연스레 라라랑 친한 하루나나 리사, 미오랑 함께 여행가지 않았을까?
1학년때부터의 친구들끼리 가는 모임일텐데 그런 상황에서 멋없게 끼어드는것도 좀 그렇잖아?"
하루나 생일 잔치에 찾아간 사람들도 리사, 미오, 라라, 리토 였으니까.
라라가 여행을 갈 친구로 자연스럽게 떠올리는게 당연할꺼다.
괜스레 미안한 표정을 짓는 미캉의 관심을 돌릴겸 앨범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고보면 아까 전 유우키의 앨범 말인데...
이건 운동회때 사진인가?
굉장히 열심히 뛰고 있네."
"아...그건 아마 리토가 중학교 2학년일때 사진일꺼에요.
체육제 릴레이때 활약했던걸 찍은거죠."
"헤에...엄청 적극적인 모습의 유우키구나."
고등학교 들어와선 주로 라라에게 휘둘리느라 이렇게 스스로 나서서 하는 활동적인 모습은 거의 못본것 같은데.
"리토 덕분에 이때 운동회에서 리토네 반이 우승할수 있었다고 해요."
"이야~ 그거 멋진데?"
앨범의 사진들을 보며 한동안 리토의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중학교 시절엔 축구부에 속해 있었고 집의 꽃들을 관리하는건 리토의 몫이었다는 이야기 등등...
의외로 고등학교에선 리토는 축구부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두분다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사일을 미캉에게만 맡겨둘 수 없었다고 한다.
역시 훌륭한 오빠구나 리토.
한동안 앨범을 넘기던 중 리토의 중학교 시절 단체 사진을 보게되었다.
오른손으로 브이(V)자를 하며 환히 웃고 있는 리토의 왼쪽 어깨 너머로 다소곳이 서있는 하루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사이렌지네?"
"아마도 2학년때 단체 사진인가보네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를 한 하루나는 차분한 차림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리토의 이상형은 이렇게 얌전하고 조신한 아가씨란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라라는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중학교때부터 하루나 일편단심이었던 리토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다니 말이다.
마지막엔 리토로부터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받았으니...
아무튼, 좋아하는 여자애가 세명(하루나, 라라, 룬)이나 되는 리토도 꽤나 인기가 있구나.
"그런데 료스케 오빠?"
"응?"
"료스케 오빠의 중학교 시절은 어땠어요?"
"어? 나말야?"
"네. 뭔가 색다른 경험은 없었나요?"
"으응...잠시만..."
색다른 경험?
확실히 보통은 아니지만...
깡패들이랑 줄기차게 치고박는 경험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확실히 보통 중학생으론 겪지못할 특별한 경험은 경험이지만,
깡패녀석들을 쓰러뜨린 경험같은걸 추억이랍시고 내놓을만큼 경우가 없진 않다.
웃었다가 주변 친구들이 질겁해 도망갔던건 농담거리도 안되고.
그외 뭔가 다른 경험이...
...아, 있긴 하네.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때 말야..."
중학교 1학년.
오후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
"응?"
옆을 바라보니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손에 작게 포장된 주머니를 든 채 서있었다.
처음보는 얼굴로 보건데 다른반 학생인것 같았다.
그것보다 손에 든 주머니는...?
뭔가 싶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여학생은 선물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이, 이거 오늘 실습시간에 만든 쿠, 쿠키에요!
괘, 괜찮으시면 드셔주세요!"
"엥?"
"히익!?"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무심코 발해진 소리에 여자애가 겁먹은 듯 움찔하는게 보였다.
하지만, 여학생 만큼이나 나도 만만찮게 놀랐다.
여자애가 나한테 쿠키를 건네줘?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냐?
물론 지금 장면에 부합하는 상황 전개는 떠올릴 수 있었다.
다른반 여자애가 실습시간에 만큰 수제 쿠키를 신경쓰이는 남학생에게 건네주는 전개다.
뭐, 보통이라면 이후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서 알콩달콩한 분위기가 일어나면서 점점 가까워지는게 정석이지만...
그 남학생이 나라는게 문제다.
교내 제일의 불량이자 야쿠자 의혹까지 받고 있고 여자의 적으로 알려진 상태에서 고백을 받어?
차라리 여자쪽이 발랑까진 날라리 타입이었다면 어렵사리 수긍은 할 수 있다.
과시욕이라든지 뭐 그런 이유로 대쉬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아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다가 두려움에 질린 표정이 정말 가련해 보입니다만...?
비호욕구를 자극하는, 단정하지만 심약해보이는 외모를 한 여자애의 모습은 지금 상황을 이해불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대체 뭐를 어떻게 하면 이런 전개가 되는건가 고민하고 있을 참에 교실밖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힐끗 바라보니 옆반의 다른 여학생들이 조마조마 하면서도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관찰하고 있었다.
「저, 저기...실수한게 아닐까?」
「벌칙게임이라고 한게 이렇게 될줄은 몰랐네...」
「아키츠군, 왠지 무서운 표정으로 쿠키를 바라보고 있어...」
「서, 설마 다음 사냥감으로 찍힌건 아니겠지?」
「어, 어떡해?」
「대체 아키츠군에게 쿠키를 건네준다는 쪽지를 적은게 누구야?」
...벌칙&담력시험이냐?
그런거에 날 끼워넣지마!
손끝을 떨면서 쿠키 봉지를 들고 있는 여학생은 이젠 아예 울듯한 표정으로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진짜 울음이 터지는게 아닐까 싶어서 우선 내밀어진 쿠키 주머니를 받았다.
스스로 건네 주면서도 흠칫하는 모습의 여학생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고마워. 잘 먹을께."
"네? ...아. 네, 넷!"
여학생은 당황하면서도 표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다음에 답례할께. 그러니까...이름이?"
"에? 아, 아뇨! 답례할것도 아니니까,
정말로 별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그럼 이만 실례할께요!"
"아, 저기?"
휑...
기겁한채로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복도로 도망가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복도에서 지켜보던 여학생들과 함께 삽시간에 사라진 여학생.
괜히 이름을 물어본게 잘못이었나...
혹시나 겁먹게 한건 아닌지 걱정하며, 선물받은 주머니의 포장을 조금 풀어서 안에 든 쿠키를 하나 집어들어 입안에 넣었다.
잘 부스러지는게 흠이지만 맛있네...
이후 딱히 내쪽에서 그 여학생을 찾는다고 돌아다니거나 하지 않았고,
점차 늘어만가는 깡패들과의 주먹다짐 사건들이 더욱 구설수에 오르면서,
그날의 해프닝은 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잊혀져갔다.
"아무튼, 담력시험같은 느낌으로 건네받은 쿠키 사건이 그나마 얘기할만한 추억거리랄까?"
"으응..."
이야기를 듣던 미캉은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이해해 미캉.
내가 양아치 외모만 아니었다면, 그당시 나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은근한 로맨스를 바랬을 꺼라고.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지...
무서워 하면서 도망가는 여자애들을 보면서 로맨스고 나발이고 꿈도 못꾸던 중학교 시절의 잊지못할 기억이다.
그래도 쿠키 받은건 기뻤지만...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 결말에 감상을 말하기도 뭣했는지 주저하던 미캉은 문득 떠오른듯 내 얼굴로 시선을 향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그럼 료스케 오빤 중학교 시절부터 그런 외모였던건가요?"
"뭐...대충 그쯤일까?"
"예전엔 어떤 모습이었나요?"
"어릴적에야 어디에라도 있는 보통의 사내아이였지.
눈매 때문에 노려보지 말라는 소리는 좀 들었지만..."
멋적은듯 웃으며 금발로 염색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러고보면 마지막으로 검은머리를 했던게 언제적이더라...
3년은 더 지난것 같네.
"처음 만났을때 료스케 오빠가 말한걸론
지금 스타일이 좋아서 하는건 아니라고 했었죠?"
"응... 내가 그랬던가?
아무튼, 액을 피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하는 외모인데."
사실 1년도 전에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좀 가물가물 하다.
미캉과의 만남은 정말 인상깊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만,
외모 관련 대화는 나로선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지라...
"뭐라고 할까...좀 이상한 액막이네요."
"그, 그런가?"
하긴 깡패 모습이 액막이 대용이라니 설득력이 없네요.
"보통은 외모를 바꾸기 보단 부적을 갖고 다닌다든가 하는게 맞지 않나요?"
"그게...중학교때 한번 그래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래서요?"
"...도중에 해괴한 일을 겪은뒤로 외모 바꾸는걸 포기했어."
"어떤 일인데요?"
"음...그러니까 무슨일이 있었냐면..."
중학교 3학년, 주제파악 못하고 덤벼드는 깡패들에게 인내심이 끊겨서 이쪽에서부터 찾아가서 깡패들을 몽땅 때려잡던 시기.
학군단연합인지 뭔지하는 놈들이 아지트로 삼은 공원(현재의 「러브러브공원」)의 공터에서 이제는 해체 직전인 깡패그룹과 맞붙었다.
저글링하듯이 깡패들을 하늘로 날려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정신없이 깡패들을 때려눕히고 나서 옷을 털던중 헤어밴드랑 손목에 찼던 체인팔찌가 안보였다.
싸우면서 어딘가 떨어뜨린건가?
뭐, 여긴 공터라서 차도 다니지 않고, 낙하물 같은것도 없다.
느긋하게 찾으면 될꺼라 생각하곤 상의 포켓에 손을 넣어 담배갑을 꺼내서 열었다.
...담배도 없네.
그러고보면 요즘엔 바빠서 새로 담배 사는것도 잊고 있었구나...
비어버린 담배갑을 쓰레기통에 버리곤 헤어밴드랑 체인팔찌를 찾기위해 공터를 잠시 배회하고 있으려니 쓰러졌던 불량배 녀석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슬슬 깨어난건가?
정신을 차린 녀석들은 상처하나 없는 내 모습을 보곤 질린듯한 표정으로 치를 떨었다.
「...괴물같은 자식...!」
「젠장! 네놈도 양아치인 주제에 클럽이란 클럽들을 몽땅 박살내? 이 빌어먹을 위선자 놈!」
건강하네...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못하는 주제에 입만은 열심히 움직이는구나.
「악마놈!」
「싸움에 미친 녀석!」
...어디보자, 그러니까 헤어밴드랑 팔찌를 어디서 떨어뜨렸더라?
「야쿠자도 울고갈 자식!」
「여자나 후려치는 글러먹은 놈인 주제에 혼자서 겉멋만 들어선...!」
빠직-
멋대로 지껄이는 녀석들의 비난에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며,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려 고함쳤다.
"야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애초에 난 야쿠자도 아니고 여자를 후려치지도 않았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다고!
애초에 나쁘기로 따지면 네놈들이 더...!"
번쩍!
꽈과광-----!
"으갸갹?!"
순간 하늘에서 엄청난 번개가 내게 내리꽃혔다.
마른하늘에서 난데없는 벼락이 사람에게 떨어지는 장면을 생으로 목격하게 된 깡패들의 비명이 들리고(아마도 눈이 부셔서),
바닥이 파이며 엄청난 먼지가 일어났다.
먼지가 뭉게뭉게 일어나 시야가 가려진 가운데 깡패중 한 녀석이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 천벌인가?」
"웃기고 있네..."
「히익?!」
먼지가 걷히고 파헤쳐진 바닥에 서있는 내 모습에 깡패들이 기겁했다.
「머, 멀쩡해?!」
멀쩡하긴...온몸이 안쑤신 곳이 없다고.
깡패놈의 헛소리에 무심코 대꾸하긴 했는데...
이거 무지 아파?!
자동차 사고 따위랑은 비교가 안된다고!
겉은 멀쩡하지만 덕분에 옷도 완전 너덜너덜이고...
정말이지 살다살다 별의별 사고를 다 겪는군.
머리를 만져보니 뻣뻣하게 세워진 머리카락이 느껴졌다.
고슴도치냐?
"젠장...머리가 삐죽 섰잖아?"
투덜거리며 머리를 쓸어넘기는데 철부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전까지 고개를 들고 있던 녀석들 중 몇명이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있었다.
"어이~? 이보세요?"
기절했나?
눈을 까뒤집고 있는게 확실히 깨어있는건 아닌것 같았다.
옆에서「불사신」이라느니 「'천벌 받은' 놈」이라느니 「하늘도 노한 악당」이라느니 중얼거리는 놈들은 친절하게 다시 재워주었다.
그나저나 지린내난다 이놈들아...
"아무튼 그때 크게 당한 이후로는 도무지 이 모습을 그만둘 엄두를 못내겠더라고.
장신구 몇개 치웠다고 그 꼴을 당했는데 수염이랑 머리까지 바꾸면 어떻게 될까 겁나서 말야.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단지 그날따라 무지하게 재수가 없었던 것일수도 있지만...역시 찝찝하잖아?"
"그, 그래요?"
좀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는지 미캉도 당황한듯 입가를 씰룩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살다가 벼락맞는 경험을 한 사람은 드물지...
그래도 외국엔 평생동안 7번이나 벼락맞은 사람도 있다던데 거기에 비하면야 나는 나은 편이다.
아무튼 그때 몸안에 뭔가 잡령도 잠시 들어왔던것 같은데
들어오자마자 벼락을 맞고는 강제로 쫓겨난 것 같았다.
졸지에 지금까지 빙의된 영혼들 중에선 가장 화끈한 방식으로 쫓겨난 녀석에게 애도...
리토와 나의 중학교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앨범을 넘기다가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앨범이 끝났다.
꽤나 길게 이야기를 한것 같은데...
시간이 좀 지났으려나?
"그나저나...왠지 좀 어두워진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난건가?"
"그러게요...?"
아직 어두워질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기에 갸웃하고 있으려니
미캉이 일어서 리토의 침대쪽에 있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침대에 올라가 커튼을 걷으니 구름으로 뒤덮힌 하늘이 창너머로 보였다.
"구름이 잔뜩 꼈네요...
비가 올수도 있겠어요."
"...그래?"
확실히 창너머엔 어두운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비라도 내릴것 같은데...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고...
...팬티가 훤히 보입니다만?
침대에 무릎을 댄 채 창틀에 손을 얹고 창밖을 바라보는 미캉의 자세.
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듯 창쪽으로 시선을 향한 나.
매끈한 허벅지가 시야를 차지하는 가운데 짧은 치마 아래로 연분홍빛 속옷이 드러났다.
게다가 치마 너머로 엉덩이 굴곡이 묘하게 선명히 드러나면서 눈을 둘 곳이 곤란했다.
"어, 어쨌든 적당히 쉬었고 수박도 다 먹었으니 이만 가볼께."
"벌써 가시려고요?"
"슬슬 저녁준비도 해야 하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비오기 전에 일찍 들어가는게 낫겠지."
대충 이유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이상 있다간 나의 아드님이 자중할것 같지도 않고,
그랬다간 미캉에게 변태 오빠란 소릴 들을지도 모른다고...
주방의 냉장고에서 내 장거리를 챙겨 도로 장바구니에 담에 넣었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며 미캉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이만 가볼께.
수박 맛있었어."
"혹시 모르니 우산이라도 하나 빌려드릴까요?"
"괜찮아.
방금전 집에 들어올 때까진 맑았잖아?
서둘러 집까지 간다면 일부러 빌릴것 까지야..."
활짝-
쏴아아아아아아아-----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요.
문을 열자마자 비가 쏟아지다니.
아무래도 우산을 빌리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아 몸을 돌리며 부탁했다.
"미캉, 미안한데 우산 하나만..."
번쩍-!
꽈르릉!
"꺅?!"
덥석-!
"에엑?!"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며 품안에 안겨오는 미캉의 행동에 내가 더 놀랐다.
가슴께에 머리를 기대오는 미캉을 엉겁결에 살짝 감싸안곤 사고회로가 마비되어 버렸다.
미캉의 어깨는 생각했던것 보다 부드럽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어째서 갑자기?
내 목둘레의 앞섶에 한손을 얹은 미캉.
무심코 힘이 들어가서 옷의 목덜미가 늘어나지 않을지 걱정이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쓰이는게...
내 옷의 목덜미를 움켜 잡은채 안으로 굽혀진 손가락들이 내 쇄골 아래의 가슴께에 직접 닿고 있다는 것이다.
부들부들 떨고있는 미캉의 몸에 맞춰, 잘게 떨리는 손가락이 가슴을 자극해 오면서 머리가 오버히트 할것 같았다.
"미 미 미, 미캉?
우, 우선 좀 진정하고..."
- 우선 너부터 진정해.
"죄...죄송해요.
조금 놀라서..."
화들짝 놀라며 내게서 떨어져선 미캉이 사과해왔다.
힐끗 바라본 미캉의 시선은 현관 밖을 향하고 있었다.
...아. 번개에 놀란건가?
그러고보면 천둥번개를 무서워했었지?
콰콰콰쾅!
"꺄아!"
"으햑?!
자, 잠...! 아, 아니. 지 지 지, 진정해 미캉?"
"무, 무리한 부탁하지 마세요.
료스케 오빠야 말로 긴장하고 있잖아요?"
아니, 난 미캉 네가 달라붙어와서 그런건데?
고의가 아닌건 알지만 그렇게 허리에 팔까지 감으면서 들러붙진 말아줘!
허벅지에 닿는 살갗의 감촉이 부드러운게 너무 자극적이라고...!
무섭고기쁘고두렵고행복하고조마조마하고간지럽고... 별의별 감정이 다 들고 있단말야...
두근두근쿵쾅쿵쾅콩딱콩딱쿵떡쿵떡콩떡콩떡팥떡찹쌀떡메밀떡가래떡무지개떡수수떡...
뭔가 엄청난 소리가 심장에서 들려오면서 혈류속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우, 우선 거실로 가서 진정하는게 좋겠어."
현관문을 도로 닫고 미캉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무릎을 가슴에 대고 앉은 미캉은 조금은 진정된듯 해 보였다.
"방금전은 죄송해요 료스케 오빠...
전 천둥소리는 서투르거든요."
"그, 그래?"
부끄러운듯 대답하는 미캉을 마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난 미캉 네 색기쪽이 서투르다만...
그나저나... 소파에 앉을때 무릎을 가슴에 모으는건 습관인거니 미캉?
두 다리가 위로 향하면서 치마 속이 드러나며 허벅지 사이로 연분홍빛 속옷이 훤히 드러났다.
골이 파인 부분마저 적나라하게 보이는 모습에 현기증이 나는것 같았다.
방금전 리토의 방에서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잖아...!
집안에서 보이는 미캉의 무방비한 모습은 정말이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게 나을까?
그냥 우산을 빌려서 얌전히 떠나가는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불안한듯 무릎에 얹은 손위에 턱을 괸채 바닥을 내려다 보는 미캉의 모습을 보았다.
문득 방금전 천둥소리에 무서워하던 미캉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혼자 있을때 외로워하던 미캉의 모습도...
「적어도 미캉이 외로워하진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언제까지나 리토가 함께 있을수도 없었기에, 가끔은 미캉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할 할 경우도 있었지요.
그때...미캉이 외로움을 느낄 때조차 함께 있어주질 못했던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비록 엉터리였지만, 아빠 역할이랍시고 잘난척 말했던 걸 뒤집을순 없지.
무릎을 모아 앉은채 불안한듯한 얼굴의 미캉을 보며 입을 열었다.
"...유우키랑 라라가 올때까지만 머물러도 될까?"
"네?"
미캉의 동의를 얻고 장바구니를 내린뒤,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저녁을 준비하려는 미캉을 말리고 도로 거실로 쫓아냈다.
천둥소리 때문에 놀라서 손이라도 베이지 않을까 걱정이니까.
미캉이 만든 요리는 확실히 먹어보고 싶지만... 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요 1년간 나름대론 노력했는지라 요리에 대한 미캉의 평가는 나쁘진 않은편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훌륭한 요리를 내놓진 못하더라도, 요리책에 적힌대로의 정석적인 맛을 낼 만큼은 만들수 있다.
적어도 라라처럼 못먹을 음식을 만들진 않으니까...
(유감스럽지만 라라의 음식은 같은 우주인도 못먹었으니...)
저녁 식사후 거실에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리토와 미캉의 어릴적 이야기라든가, 부모님 이야기라든가,
중학교시절 내가 겪었던 어이없는 해프닝이라든가, 라라의 취미 등등...
라라가 TV 프로 「매지컬 쿄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문득 시계에 눈이 갔다.
그러고보면 이제 곧 매지컬 쿄코가 방영할 시간인가?
"저기 미캉?"
"왜 그러세요?"
"혹시 모르니까 라라가 볼 매지컬 쿄코도 녹화해두는게 좋을거 같아.
여행이 길어져서 못봤다고 아쉬워하면 불쌍하잖아?"
"그러고보면 그렇네요.
그럼 보면서 녹화할까요?"
"응, 뭐...그러지.
어차피 딱히 이시간에는 볼것도 없으니."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켜고 「매지컬 쿄코」를 틀었다.
「뼈속까지 태워주마! 매지컬 체인지!」
과격한 변신 대사와 함께 검은 마녀복 차림으로 변신해서 악당들을 무찌르는 매지컬 쿄코.
주인공인 쿄코도 그렇지만 당하는 역의 악당들도 참 귀엽게 생겼네.
그런데 좀 야한 장면이 있는데 이거 정말 어린이용 맞아?
기억하기론 팬들 중에 남자들이 많았던거 같은데...
비쥬얼은 확실히 예쁜데 여자애랑 보기는 좀 거북할것 같다.
지금 내 심정이 바로 그렇다고...
바로 옆에 앉은 미캉이 어떤 생각을 할지가 걱정되면서 TV에서 시선을 떼고 창쪽을 바라보았다.
우르릉-
창밖으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간간히 멀리서 들려오는 우레소리에 미캉은 흠칫하며 어깨를 내쪽으로 살짝 기대었다가 다시 몸을 치웠다.
"아, 죄송해요..."
사과하려는 미캉을 손을 저어 제지했다.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미캉.
어깨정돈 언제라도 빌려줄수 있으니까."
"그, 그래도..."
"천둥을 무서워하는게 딱히 부끄러운 일도 아니잖아?
누구나 하나쯤은 무섭거나 거부감이 느껴지는게 있으니까.
사이렌지도 유령을 무서워하지만 그걸 가지고 흉보는 사람은 없다고."
"그런가요?"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미캉도 그렇게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아.
뭣하면 대신 손이라도 잡아줄께."
리토였다면 좀더 위로해줄 방법도 있었겠지만...
가족도 아니고, 나로서 해줄수 있는건 손정도 잡아주는게 다겠지.
미캉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모습이었지만,
다시금 들려온 천둥소리에 마음을 정한듯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왔다.
"저...그럼, 잠시만 부탁드릴께요."
"아, 응...뭐, 잘 부탁해."
그렇게 주저하면 나까지 부끄럽잖아.
천둥번개가 치는 밤을 미캉 혼자 보내는게 걱정되서 맘 고쳐먹고 머물기로 한건데, 다시금 미캉을 의식하게 되면 곤란하다고?
잡아진 손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기분좋으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모처럼의 주말인데 이렇게 비가 내려선 곤란하겠어요."
"그러게. 시원해진다는 점에선 좋지만, 이러면 밖에서 제대로 놀수가 없으니..."
적어도 내일만큼은 날이 맑았으면 좋겠는데...
"아, 그렇지."
"?"
갸우뚱 하는 미캉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캉. 혹시 안쓰는 천 있어?"
"있는데 왜 그러세요?"
"테루테루보즈(照る照る坊主)를 만들어서 달아 보는게 어때?"
(테루테루보즈 : 내일 날씨가 맑아지길 바라며 처마끝이나 창문에 달아 놓는 일본의 전통적인 인형)
주술적인 기원일 뿐이지만 적어도 위안은 되겠지.
혹시 알아?
라라가 기합으로 태풍 날렸을때처럼 기합으로 어떻게든 될지.
내 의견을 들은 미캉도 웃으며 수긍했다.
"그럴까요? 확실히, 가만히 있는것도 심심하니까요."
연결된 손을 풀고 미캉의 방에서 쓰다남은 헝겊들을 가져와서 간단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둘둘둘 인형을 만들고 나니 왠지 너무 간단해서 허전하게 보였다.
내친김에 얼굴도 그려넣자 싶어서 유성펜으로 간단히 눈과 수염을 곁들였다.
너무 자세히 그리면 비가 온다지만 수염정도는 괜찮겠지.
나 특제 테루테루보즈 완성~
내가 하는 모양새를 보던 미캉도 자신이 만든 인형의 머리에 간단히 머리카락을 추가했다.
아, 저건 미캉의 파인애플머리 스타일인가?
"그럼 이리 건네줘.
내가 처마 밑에 걸어둘께."
"네~ 여기요.
아, 혹시 아이스크림 하나 더 드실래요?"
냉장고에 넣어둔거 말인가?
"아니. 난 괜찮으니까, 먼저 먹고 있어."
"예."
부엌으로 간 미캉을 뒤로하곤,
창너머로 비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레 천장에 테루테루보즈를 달았다.
두개를 나란히 달아놓고 내려와보니 조금 간격이 좁은듯 했다.
음, 어째 두개가 좀 가까운데?
머리를 서로 맞대고 기댄 테루테루보즈들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인형끼리 사이좋아 보이는데 일부러 떨어뜨리기도 뭣하고...
거실로 돌아오니 미캉은 소파에 앉아서 한손에 아이스크림을 든채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선 아직 매지컬 쿄코가 방영되고 있었다.
설마 주말이라서 재방송인걸까?
거실에 들어선 날 본 미캉이 반겨주었다.
"수고하셨어요 료스케 오빠."
"아니 뭘~"
"저녁 식사도 만들어 주시고, 방금전 일도 그렇고...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뭔가 해드릴건 없을까요?"
"그런 과장된...
그렇게까지 신경쓸 일이 아냐~"
괜스레 예의를 차리는 모습에 손사레를 치며 사양했다.
애초에 그런걸 바라고 한게 아니고.
단지 미캉 혼자 두는게 걱정이었을 뿐이니까.
"그러지 말고 뭐라도 답례를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답례는 필요 없...「답례로 XXX 해드릴께요♡」...으, 으응?"
"무, 무슨!?"
"아, 아니에요! 제가 아녜요!"
선채로 놀라서 굳어진 내 모습에 당황해서 부정하는 미캉.
얼굴이 빨개진게 정말이지 당황한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미캉...아까도 그랬지만, 소파엔 언제나 그런 포즈로 앉아있는거니?
팬티가 훤히 보여...핑크색...「앗싸! 핑크다!♥」
팟 - !
순식간에 다리를 모으며 홱- 소리가 나도록 치마를 내리는 미캉.
얼굴이 빨개져서 나를 바라보는 미캉의 눈가엔 약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료, 료스케 오빠..."
"아, 아냐! 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면서 필사적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뭐냐 대체!? 아까부터 들려오는 이 괴상한 목소리는?!
「뼈속까지 태워주마! 매지컬 체인지!」
...매지컬 쿄코였냐!
아무리 그래도 방금전 대사는 안되잖아...!
그거 소년만화라고!
아무튼 사태도 파악했겠다 남은건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미캉에게 해명하는것 뿐이다.
"그, 그러니까 미캉.
방금껀 TV에서 나온 소리..."
"...봤어요?"
"아니, 그러니까..."
"봤죠?"
"......죄송합니다..."
시끌벅적한 TV의 음성,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거실 한가운데서 조용히 오체투지로 연하의 소녀에게 사죄하는 나였다.
"미안해 미캉..."
"...그건 이제 됐어요."
"그, 그런데..."
"왜요?"
"...어째서 난 여기에 있는걸까요...?"
벽에 걸린 모자, 꽃으로 장식된 걸이.
침대 옆에 붙어있는 스티커 사진.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놓인 곰인형과 강아지 인형.
다름아닌 미캉의 방풍경이다.
의아한듯한 내 표정에 미캉은 살짝 시선을 외면하면서 말했다.
"방금전 일 말인데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리는 내모습을 보던 미캉은 주저하듯 작게 입을 열었다.
"...잠들때까지 기다려 주는걸로 용서할께요."
"응?"
"그, 천둥소리가 시끄러우니까..."
어색하게 말하는 미캉의 목덜미는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건 확실히 부끄러우니까...
괜히 어색해지기 전에 분위기를 바꿀겸 밝은 목소리로 승낙했다.
"좋아. 그걸로 변제가 된다면 기꺼이."
"승낙, 한거에요...?"
"물론~!"
동의를 구하듯 물어오는 미캉에게 수긍하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올린 미캉의 머리맡에 의자를 내려놓고 전등의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럼, 불 끌께."
"네."
탁-.
스위치를 누르자 불이 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뭐, 눈이 금방 어둠에 익숙해졌는지라 의외로 그렇게 어둡진 않았지만.
조용히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의자로 다가가 앉자 미캉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료스케 오빠. 거기 있어요?"
"응. 바로 머리맡에 앉아 있어."
"그래요..."
빗방울이 유리창을 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아직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지지 않은 탓도 있어서 그런지,
미캉은 양손으로 이불을 꽉 잡은채 조금 초조해 하는것 같았다.
뭔가 안심을 시켜줄 방법이 있다면 좋을텐데...
"저기... 손이라도 잡아줄까?"
"네?"
"아니, 그... 조금은 안심이 되지 않을까 해서."
"으응...그럼 부탁할께요."
이불을 움켜쥐고 있던 미캉의 왼손에 힘이 풀려 이불위에 얹어지자,
나도 왼손을 내밀어 조용히 미캉의 손에 올려놓았다.
살짝 움찔하며 손가락을 떤 미캉은 이내 내밀어진 내손을 살며시 잡아왔다.
연결된 손을 조심스레 거머쥐며 편하게 자세를 고쳤다.
"어때? 불편하진 않아?"
"네, 편안해요."
"그래...
그나저나 유우키랑 라라는 자고 오려나 보네."
"...연락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후우...하고 한숨을 쉬는 미캉의 목소리가 왠지 쓸쓸한 것처럼 느껴졌다.
설마하니 내일도 집에 안들어 오는건 아니겠지...?
리토가 휘말리는 트러블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꺼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되면 모처럼의 주말인데 미캉 혼자 집을 보는건가?
혹시 미캉은 이번 리토들의 바다여행에서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적어도 여름 바캉스의 기분이라도 만끽하게 해줄까.
"갑자기 떠오른건데 말야..."
"뭔데요?"
"내일, 날이 맑으면...함께 수영장에 가자."
"...수영장이요?"
"응. 「사이난 워터랜드」라고, 이번에 새로 오픈한 수영장이 있거든.
상점가에서 홍보 전단지도 봤었는데 엄청나게 크다고 하더라고.
이번 기회에 코테가와랑, 야미랑 함께 넷이서 수영장에 다녀오지 않을래?"
"......"
이야기를 듣던 미캉은 내 손을 잡은채로 그대로 침묵했다.
...별로 놀러가고 싶었던게 아니었던가?
설마 나 혼자서 착각한거야?
괜히 감상적이 되어버려서 놀러갈 제안을 한게 부끄러워 죽을것 같았다.
챙피함에 몸이 배배 꼬이며 뒤틀리려는걸 억지로 참고 있으려니 미캉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좋아요..."
"어? 정말?"
승낙받았다-!
부끄러움은 이제 끝.
순식간에 기분이 들떴다.
"이번 일행은 축제때의 계속인가요?"
"응. 그렇지 않아도 다들 더위에 불평하는것 같았거든.
수영장에서 한껏 놀다보면 여름의 더위도 잊을수 있을꺼라구~"
"네...정말 즐거울꺼에요..."
어둑한 가운데 미캉이 살짝 미소짓는게 보였다.
쓸쓸하던 느낌이 사라진것 같아 다행이네.
이윽고 졸음이 몰려온듯 미캉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럼 이만, 안녕히 주무세요 료스케 오빠."
"그래... 잘자 미캉."
대화가 끝나고 다시금 고요해진 방의 정적은 방금전 처럼 적막하지 않았다.
왼손에 잡은 미캉의 손의 온기를 느끼며, 미캉의 조용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미캉이 잠에 들기까지 얌전히 침묵했다.
한참이 지나고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숨소리에서 미캉이 잠든것을 확인하고는
미캉과 연결된 손을 조심스레 풀고 있을때, 귓가에 미캉의 속삭이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
잠꼬대인가.
아무튼, 기특한 말을 해주는군.
무사히 연결된 손을 풀고는 살며시 의자를 치우고 일어나 미캉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은채 새액-새액- 귀여운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진 모습에선,
깨어있을때의 어른스러움과 달리 나이에 걸맞는 앳됨이 느껴졌다.
"좋은 꿈 꾸길..."
사랑스런 모습에 미캉의 머리위에 살짝 손을 올렸다 떼곤 조용히 미캉의 방을 나왔다.
그럼 나도 이만 자볼까...
리토의 방으로 가서 말려내려간 이불을 침대위로 끌어올린 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오늘만 침대를 빌릴께 리토...
부디 내일은 비가 그치길 바라며 밀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일어나세요..."
"우웅..."
"일어나세요 료스케 오빠."
"으응?"
눈을 떠보니 빛을 등지고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얼굴이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였다.
한차례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자 어딘지 평소와 달리 위화감이 느껴지는 주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낯선 천장이다..."
"네?"
"아니. 아무것도."
...그러고보면 리토네 방이었지.
"읏샤...!"
두 팔을 머리위로 뻗어 한껏 기지개를 켠 뒤 옆에 선 미캉에게 인사했다.
"좋은아침 미캉."
"네. 좋은아침이에요 료스케 오빠.
다행히 오늘은 맑음이에요."
"그래?"
커튼을 치운 창 너머로 보인 하늘은 어제까지의 폭우가 거짓말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잘됐다...
그럼 오늘은 수영장에 갈수 있는거로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자 미캉이 웃으며 돌아섰다.
"그럼 씻고 거실로 와주세요.
아침식사가 준비됐거든요."
이런, 벌써 아침까지 해놓은건가?
부지런하구나 미캉은...
"그래. 그럼 먼저 내려가 있어.
곧 따라갈께."
아침의 생리현상으로 일어난 아드님을 미캉에게 보일수도 없으니
미캉 먼저 조용히 내려 보내도록 하자.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릴께요.
아, 그리고..."
문을 나서려던 미캉은 고개를 돌려 내쪽을 돌아보았다.
"어젯밤엔 정말 고마웠어요 료스케 오빠."
싱긋 웃은 미캉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오늘의 미캉은 정말이지 기분 좋아 보이는구나.
왠지 오늘은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은데...
테루테루보즈 두개가 사이좋게 창밖을 바라보는,
맑게 개인 어느날의 아침풍경이었다.
p.s. 미캉의 아침식사 정말 맛있었습니다.
=============================
갈길이 멀군요.
수영장 이야기를 쓴뒤엔
하루코 선생님 이야기라든가,
사키양의 이야기도 써야 되는데...
p.s.1. 이번화에 참조한 원작의 컷들
(1. 리토의 중학교 사진)
(2. 미캉의 자세 참조 - 창틀에 기댐)
(3. 미캉의 자세 참조 - 소파에 앉음)
(4. 미캉의 자세 참조 - 소파에서 아이스크림 먹음)
(5. 치마색 참조 - 원작131화)
(6. 상의색 참조 - 애니메이션)
(7. 상의색 참조 - 원작73화 서비스 컷)
(8.매지컬 쿄코 작품 내 대사1 : "답례로...")
(9.매지컬 쿄코 작품 내 대사2 : "앗싸!...")
p.s.2.
이번 파트의 원작 시나리오를 다시 보기 전까진,
전 라라나 리토가 일부러 외계별로 피서를 간줄 알고 있었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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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속의 이야기 전개)
라라 : 사람 드물고 놀기 딱 좋은 행성으로 여행가자~!
일행들 : 와~ 신난다!
-----------
설마 '오키나와'나 '오키와나' 이름차이로 엉뚱하게 워프된 일인줄은 몰랐네요.
(애초에 별 이름도 기억에 없었고)
1학년 때의 돌고래 이벤트도 그렇고, 제대로 기억나는게 없네요;
덕분에 어떤 의미로 글쓰기에는 좀더 편하지만 말이죠=_=;
(하지만 나중에 하루나랑 유이가 납치된 사건을 '미캉'이 납치 되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나는 대체...쿨럭쿨럭;;;)
료스케는 「바다에 갔다」는 미캉의 말을 듣고는, 리토들이 국내 피서지로 워프해서 놀러간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바다에 가는 이벤트가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수도 없고...
코테가와까지 바다에 따라갔다는 얘길 들었다면 어쩌면 떠올릴순 있었겠지만,
지난 1년간 료스케랑 투닥거리다보니 규율에 엄격한 정도가 줄어들어서
코테가와도 그렇게까지 바락바락 달려들지 않았거든요-_-a;
반장 선거때 라라의 발명품 간이 페케뱃지를 압수하지도 않았고...적당히 융통성이 늘어났습니다.
따라서 66화~69화의 외계별 조난 사건에 코테가와는 함께하지 않았고(원작에선 "남녀함께? 풍기문란이야!" 라며 감시명목으로 합류),
74화의 풍기 강화 기간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성품이 완화되었는데 저 두 이벤트를 발생시키는건 억지 같아서 무리더군요=ㅅ=a;
(혹시나 74화가 발생될만한 상황이 떠오른다면 좀 완화된 방법으로 전개가 되겠지만 지금으로선 떠오르지 않네요.)
p.s.3. 파랜드 택틱스 팬픽이나 프린세스 메이커2 조연 빙의물도 떠올려 봤는데 언제 쓸수 있으련지...-_-;
트러블 연재 밀린것도 있고...
나중에 트러블 쓰다 막히면 조금씩 쓸듯.
"더, 더워..."
"덥네요..."
한여름에 내려쬐는 대낮의 햇살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주말. 미캉과 오랜만에 장을 보러 나와선 장보기를 마칠때쯤엔 더위를 먹을대로 먹어버렸다.
누가 내 더위 좀 가져가라...
고개를 설레설레 젓곤, 옆에서 힘겹게 걷는 미캉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미캉. 괜히 아침부터 불러서..."
"괜찮아요. 어차피 곧 장보기를 해야할 때였는걸요.
...기왕이면 어제 저녁에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요."
"그러게...미안."
겁도 없이 여름의 한낮부터 나오다니 장볼 시간을 잘못 잡았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오늘이 되어서야 먹거리가 다 떨어진걸 깨달은 내가 잘못이지만서도...
어찌됐건 옹색한 변명거리밖에 안될 뿐, 미캉에게 함께 장보기를 권유한게 지금에 와선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정말 덥네...
슬슬 목도 말라가는 참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을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만큼 호쾌하게 아이스크림을 씹는 모습이 정말 시원해 보였다.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지 않을래?"
"으~ 그러는게 좋겠네요..."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미캉은
어느새 이마에 배인 땀을 훔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토와 라라의 몫까지 아이스크림을 산 뒤 각자 하나씩 아이스크림을 물고는 귀가길에 올랐다.
"이야~ 살겠다~ 역시 더위엔 아이스크림이 제격이지!"
"후훗, 그러게요~
방금전 보단 훨씬 시원해진 것 같은데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혀로 느껴지는 시원함에 자연스레 얼굴이 풀리면서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오늘은 정말이지 덥구나..."
"그러게요. 정말이지 비라도 내려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살짝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미캉은 아이스바를 베어 물었다.
여름의 더위에 미캉은 평소보다 시원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어깨부터 겨드랑이를 노출시킨 민소매를 입은 미캉의 몸에선
찌르는 듯한 더위에 배어나온 땀방울이 쇄골 아래에 맺혀 반짝이고 있었다.
땀이 배인 매끈한 피부가 묘하게 색정적이네요...
미캉의 저 반칙적인 자태는 도무지 익숙해 지질 않는다.
"료스케 오빠?"
"으,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 아니. 아무것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뿌리친다.
한숨 돌릴만 하니까 괜히 이상한 쪽으로 신경이 쓰이는구나...
먹고남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곤 몰래 한숨을 쉬었다.
미캉의 집에 도착하자 우주 식물 셀린이 암술부위에 난 입에서 혀를 내밀며 헐떡이고 있었다.
부채까지 부치는 폼이 어지간히 더운듯 했다.
확실히 올 여름 더위는 쉽게 볼게 아니네요.
잎에서 땀까지 흘리는 모습엔 나도 식은땀이 났지만.
식물이 땀을 흘리다니, 과연 우주는 얕볼 수 없구나...
거실에 미캉의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이만 돌아가려 할때 미캉이 만류해왔다.
"료스케 오빠. 여기까지 오느라 더우실텐데 잠깐 쉬었다 가세요."
"후우...그럴까?"
더위 때문에 옷도 땀으로 살짝 젖었는데, 잠시 말리고 가는게 나으려나...
"그럼 잠시 실례할께."
"간단히 먹을거라도 준비해 갈테니 들어가서 리토랑 얘기라도 하고 계세요."
"그럴께."
냉장고에 장거리와 아이스크림을 넣은 뒤 리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응? 아무도 없잖아?
방 한가운데는 사각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위엔 잡지와 물컵, 리모컨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옆으론 선풍기가 콘센트에 연결된 상태로 멈춰 있었고 맞은편엔 담요가 떨어져 있었다.
창가에 놓인 침대 아래로는 이불이 밀려 내려가 있었다.
문 옆엔 TV와 DVD 플레이어, 게임기가 있었고 그 아래로 몇개의 CD 케이스가 흩어져 있었다.
장보러 간 사이에 잠시 외출한건가?
리토가 돌아올때까지 책이나 읽을까.
방을 두리번거리며 읽을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만화책이랑 스포츠 관련 책들이 대부분이네.
뭐, 리토는 공부보단 운동을 더 좋아하니 딱히 놀랄건 없으려나?
응? 이건...
눈으로 제목들을 훑어보던중 책장 한쪽 끝에 놓인 앨범이 보였다.
리토의 어릴 적 앨범일까...?
어렸을적 리토의 모습을 어땠을지 궁금해졌기에 앨범을 뽑아 들어 펼쳐보았다.
어디보자...
교복차림의 리토네.
중학교 때 찍은 앨범인가?
지금의 모습보다 약간 어린티가 나는 얼굴로 친구들에게 둘러싸인채 정면을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기분좋아질 정도로 밝은 웃음이네...
나도 저렇게 웃어봤으면 좋으련만.
지금의 양아치 스타일로 바꾼 뒤론 날카로운 눈매까지 더해져서 웃으면 모두들 시선을 피할만큼 살벌한 인상이었으니...
그래도 딱 한번, 작년 크리스마스때 코테가와에게 괜찮은 평가를 받은적은 있으니 언젠간 가능하겠지.
왜 있잖아?
진정 행복을 원한다면 아주 큰소리로 웃어요
환한 웃음 하나로 이세상이 달라 보여요
멋진 사랑을 원한다면 밝은 미소를 지어봐요
밝은 미소 하나로 이세상을 다 바꿔봐요
...하루하루를 깡패들이랑 아웅다웅 하는데 질려서
좋은 날이 찾아오길 바라며 쉴새없이 웃었다가 질겁하며 도망가던 깡패들이 떠오르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을 때를 잘못했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지?
그래도 지금은 구레나룻도 없으니 예전보단 나을것 같은데 어쩔라나 몰라.
「들어가요. 료스케 오빠~」
앨범을 뒤적여보고 있는데 미캉이 수박을 담은 접시를 들고 방에 들어왔다.
어느새 노란색 끈 민소매와 검은색 짧은 주름치마로 갈아입은 미캉은 테이블 위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더운데 수박 좀 드세요."
"아, 고마워. 잘먹을께~"
테이블에 앉아 앨범을 내려놓곤 접시에 놓인 수박에 손을 뻗었다.
한입 수박을 베어물자 느껴지는 시원함과 달콤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뭘 보고 계셨던 거에요?"
"응, 그냥 유우키의 중학교 앨범을 잠시 보고 있었어."
"리토의 앨범요?"
"유우키의 중학교 시절은 어땠나 싶어서.
사루야마나 사이렌지도 같은 중학교 였다길래 궁금했었거든.
그런데, 유우키는 잠시 어딜 나갔나봐?"
"아...!"
뭔가 생각난듯 미캉은 한손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러고보니...오늘은 라라언니랑 친구들하고 바다에 간다고 했어요.
벌써 간 건가?"
「오늘 중에는 오겠지만요...」라고 중얼거리는 미캉.
"바다인가..."
라라의 발명품으로 주말동안 다녀오려는걸까...
푸른 하늘, 시원한 바다.
...가고 싶다아아아...
리토와 라라 일행이 놀고있을 광경을 상상하며 멍하니 있으려니
미캉도 약간 아쉬운듯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더울줄 알았다면 저도 따라갈걸 그랬나봐요.
...저, 그런데... 료스케 오빤 초대되지 않은건가요?"
조심스레 물어오는 미캉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었다.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미캉.
올해가 되서야 겨우 얼굴을 알게된 사이인데 그렇게 초대를 받는쪽이 의외일거라고."
"섭섭하지 않으세요?"
"아니라니까~
애초에 유우키가 먼저 여행을 계획했을리는 없으니까,
아마도 라라가 계획했겠지.
그럼 자연스레 라라랑 친한 하루나나 리사, 미오랑 함께 여행가지 않았을까?
1학년때부터의 친구들끼리 가는 모임일텐데 그런 상황에서 멋없게 끼어드는것도 좀 그렇잖아?"
하루나 생일 잔치에 찾아간 사람들도 리사, 미오, 라라, 리토 였으니까.
라라가 여행을 갈 친구로 자연스럽게 떠올리는게 당연할꺼다.
괜스레 미안한 표정을 짓는 미캉의 관심을 돌릴겸 앨범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고보면 아까 전 유우키의 앨범 말인데...
이건 운동회때 사진인가?
굉장히 열심히 뛰고 있네."
"아...그건 아마 리토가 중학교 2학년일때 사진일꺼에요.
체육제 릴레이때 활약했던걸 찍은거죠."
"헤에...엄청 적극적인 모습의 유우키구나."
고등학교 들어와선 주로 라라에게 휘둘리느라 이렇게 스스로 나서서 하는 활동적인 모습은 거의 못본것 같은데.
"리토 덕분에 이때 운동회에서 리토네 반이 우승할수 있었다고 해요."
"이야~ 그거 멋진데?"
앨범의 사진들을 보며 한동안 리토의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중학교 시절엔 축구부에 속해 있었고 집의 꽃들을 관리하는건 리토의 몫이었다는 이야기 등등...
의외로 고등학교에선 리토는 축구부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두분다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사일을 미캉에게만 맡겨둘 수 없었다고 한다.
역시 훌륭한 오빠구나 리토.
한동안 앨범을 넘기던 중 리토의 중학교 시절 단체 사진을 보게되었다.
오른손으로 브이(V)자를 하며 환히 웃고 있는 리토의 왼쪽 어깨 너머로 다소곳이 서있는 하루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사이렌지네?"
"아마도 2학년때 단체 사진인가보네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를 한 하루나는 차분한 차림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리토의 이상형은 이렇게 얌전하고 조신한 아가씨란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라라는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중학교때부터 하루나 일편단심이었던 리토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다니 말이다.
마지막엔 리토로부터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받았으니...
아무튼, 좋아하는 여자애가 세명(하루나, 라라, 룬)이나 되는 리토도 꽤나 인기가 있구나.
"그런데 료스케 오빠?"
"응?"
"료스케 오빠의 중학교 시절은 어땠어요?"
"어? 나말야?"
"네. 뭔가 색다른 경험은 없었나요?"
"으응...잠시만..."
색다른 경험?
확실히 보통은 아니지만...
깡패들이랑 줄기차게 치고박는 경험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확실히 보통 중학생으론 겪지못할 특별한 경험은 경험이지만,
깡패녀석들을 쓰러뜨린 경험같은걸 추억이랍시고 내놓을만큼 경우가 없진 않다.
웃었다가 주변 친구들이 질겁해 도망갔던건 농담거리도 안되고.
그외 뭔가 다른 경험이...
...아, 있긴 하네.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때 말야..."
중학교 1학년.
오후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
"응?"
옆을 바라보니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손에 작게 포장된 주머니를 든 채 서있었다.
처음보는 얼굴로 보건데 다른반 학생인것 같았다.
그것보다 손에 든 주머니는...?
뭔가 싶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여학생은 선물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이, 이거 오늘 실습시간에 만든 쿠, 쿠키에요!
괘, 괜찮으시면 드셔주세요!"
"엥?"
"히익!?"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무심코 발해진 소리에 여자애가 겁먹은 듯 움찔하는게 보였다.
하지만, 여학생 만큼이나 나도 만만찮게 놀랐다.
여자애가 나한테 쿠키를 건네줘?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냐?
물론 지금 장면에 부합하는 상황 전개는 떠올릴 수 있었다.
다른반 여자애가 실습시간에 만큰 수제 쿠키를 신경쓰이는 남학생에게 건네주는 전개다.
뭐, 보통이라면 이후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서 알콩달콩한 분위기가 일어나면서 점점 가까워지는게 정석이지만...
그 남학생이 나라는게 문제다.
교내 제일의 불량이자 야쿠자 의혹까지 받고 있고 여자의 적으로 알려진 상태에서 고백을 받어?
차라리 여자쪽이 발랑까진 날라리 타입이었다면 어렵사리 수긍은 할 수 있다.
과시욕이라든지 뭐 그런 이유로 대쉬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아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다가 두려움에 질린 표정이 정말 가련해 보입니다만...?
비호욕구를 자극하는, 단정하지만 심약해보이는 외모를 한 여자애의 모습은 지금 상황을 이해불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대체 뭐를 어떻게 하면 이런 전개가 되는건가 고민하고 있을 참에 교실밖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힐끗 바라보니 옆반의 다른 여학생들이 조마조마 하면서도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관찰하고 있었다.
「저, 저기...실수한게 아닐까?」
「벌칙게임이라고 한게 이렇게 될줄은 몰랐네...」
「아키츠군, 왠지 무서운 표정으로 쿠키를 바라보고 있어...」
「서, 설마 다음 사냥감으로 찍힌건 아니겠지?」
「어, 어떡해?」
「대체 아키츠군에게 쿠키를 건네준다는 쪽지를 적은게 누구야?」
...벌칙&담력시험이냐?
그런거에 날 끼워넣지마!
손끝을 떨면서 쿠키 봉지를 들고 있는 여학생은 이젠 아예 울듯한 표정으로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진짜 울음이 터지는게 아닐까 싶어서 우선 내밀어진 쿠키 주머니를 받았다.
스스로 건네 주면서도 흠칫하는 모습의 여학생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고마워. 잘 먹을께."
"네? ...아. 네, 넷!"
여학생은 당황하면서도 표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다음에 답례할께. 그러니까...이름이?"
"에? 아, 아뇨! 답례할것도 아니니까,
정말로 별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그럼 이만 실례할께요!"
"아, 저기?"
휑...
기겁한채로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복도로 도망가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복도에서 지켜보던 여학생들과 함께 삽시간에 사라진 여학생.
괜히 이름을 물어본게 잘못이었나...
혹시나 겁먹게 한건 아닌지 걱정하며, 선물받은 주머니의 포장을 조금 풀어서 안에 든 쿠키를 하나 집어들어 입안에 넣었다.
잘 부스러지는게 흠이지만 맛있네...
이후 딱히 내쪽에서 그 여학생을 찾는다고 돌아다니거나 하지 않았고,
점차 늘어만가는 깡패들과의 주먹다짐 사건들이 더욱 구설수에 오르면서,
그날의 해프닝은 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잊혀져갔다.
"아무튼, 담력시험같은 느낌으로 건네받은 쿠키 사건이 그나마 얘기할만한 추억거리랄까?"
"으응..."
이야기를 듣던 미캉은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이해해 미캉.
내가 양아치 외모만 아니었다면, 그당시 나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은근한 로맨스를 바랬을 꺼라고.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지...
무서워 하면서 도망가는 여자애들을 보면서 로맨스고 나발이고 꿈도 못꾸던 중학교 시절의 잊지못할 기억이다.
그래도 쿠키 받은건 기뻤지만...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 결말에 감상을 말하기도 뭣했는지 주저하던 미캉은 문득 떠오른듯 내 얼굴로 시선을 향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그럼 료스케 오빤 중학교 시절부터 그런 외모였던건가요?"
"뭐...대충 그쯤일까?"
"예전엔 어떤 모습이었나요?"
"어릴적에야 어디에라도 있는 보통의 사내아이였지.
눈매 때문에 노려보지 말라는 소리는 좀 들었지만..."
멋적은듯 웃으며 금발로 염색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러고보면 마지막으로 검은머리를 했던게 언제적이더라...
3년은 더 지난것 같네.
"처음 만났을때 료스케 오빠가 말한걸론
지금 스타일이 좋아서 하는건 아니라고 했었죠?"
"응... 내가 그랬던가?
아무튼, 액을 피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하는 외모인데."
사실 1년도 전에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좀 가물가물 하다.
미캉과의 만남은 정말 인상깊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만,
외모 관련 대화는 나로선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지라...
"뭐라고 할까...좀 이상한 액막이네요."
"그, 그런가?"
하긴 깡패 모습이 액막이 대용이라니 설득력이 없네요.
"보통은 외모를 바꾸기 보단 부적을 갖고 다닌다든가 하는게 맞지 않나요?"
"그게...중학교때 한번 그래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래서요?"
"...도중에 해괴한 일을 겪은뒤로 외모 바꾸는걸 포기했어."
"어떤 일인데요?"
"음...그러니까 무슨일이 있었냐면..."
중학교 3학년, 주제파악 못하고 덤벼드는 깡패들에게 인내심이 끊겨서 이쪽에서부터 찾아가서 깡패들을 몽땅 때려잡던 시기.
학군단연합인지 뭔지하는 놈들이 아지트로 삼은 공원(현재의 「러브러브공원」)의 공터에서 이제는 해체 직전인 깡패그룹과 맞붙었다.
저글링하듯이 깡패들을 하늘로 날려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정신없이 깡패들을 때려눕히고 나서 옷을 털던중 헤어밴드랑 손목에 찼던 체인팔찌가 안보였다.
싸우면서 어딘가 떨어뜨린건가?
뭐, 여긴 공터라서 차도 다니지 않고, 낙하물 같은것도 없다.
느긋하게 찾으면 될꺼라 생각하곤 상의 포켓에 손을 넣어 담배갑을 꺼내서 열었다.
...담배도 없네.
그러고보면 요즘엔 바빠서 새로 담배 사는것도 잊고 있었구나...
비어버린 담배갑을 쓰레기통에 버리곤 헤어밴드랑 체인팔찌를 찾기위해 공터를 잠시 배회하고 있으려니 쓰러졌던 불량배 녀석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슬슬 깨어난건가?
정신을 차린 녀석들은 상처하나 없는 내 모습을 보곤 질린듯한 표정으로 치를 떨었다.
「...괴물같은 자식...!」
「젠장! 네놈도 양아치인 주제에 클럽이란 클럽들을 몽땅 박살내? 이 빌어먹을 위선자 놈!」
건강하네...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못하는 주제에 입만은 열심히 움직이는구나.
「악마놈!」
「싸움에 미친 녀석!」
...어디보자, 그러니까 헤어밴드랑 팔찌를 어디서 떨어뜨렸더라?
「야쿠자도 울고갈 자식!」
「여자나 후려치는 글러먹은 놈인 주제에 혼자서 겉멋만 들어선...!」
빠직-
멋대로 지껄이는 녀석들의 비난에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며,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려 고함쳤다.
"야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애초에 난 야쿠자도 아니고 여자를 후려치지도 않았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다고!
애초에 나쁘기로 따지면 네놈들이 더...!"
번쩍!
꽈과광-----!
"으갸갹?!"
순간 하늘에서 엄청난 번개가 내게 내리꽃혔다.
마른하늘에서 난데없는 벼락이 사람에게 떨어지는 장면을 생으로 목격하게 된 깡패들의 비명이 들리고(아마도 눈이 부셔서),
바닥이 파이며 엄청난 먼지가 일어났다.
먼지가 뭉게뭉게 일어나 시야가 가려진 가운데 깡패중 한 녀석이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 천벌인가?」
"웃기고 있네..."
「히익?!」
먼지가 걷히고 파헤쳐진 바닥에 서있는 내 모습에 깡패들이 기겁했다.
「머, 멀쩡해?!」
멀쩡하긴...온몸이 안쑤신 곳이 없다고.
깡패놈의 헛소리에 무심코 대꾸하긴 했는데...
이거 무지 아파?!
자동차 사고 따위랑은 비교가 안된다고!
겉은 멀쩡하지만 덕분에 옷도 완전 너덜너덜이고...
정말이지 살다살다 별의별 사고를 다 겪는군.
머리를 만져보니 뻣뻣하게 세워진 머리카락이 느껴졌다.
고슴도치냐?
"젠장...머리가 삐죽 섰잖아?"
투덜거리며 머리를 쓸어넘기는데 철부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전까지 고개를 들고 있던 녀석들 중 몇명이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있었다.
"어이~? 이보세요?"
기절했나?
눈을 까뒤집고 있는게 확실히 깨어있는건 아닌것 같았다.
옆에서「불사신」이라느니 「'천벌 받은' 놈」이라느니 「하늘도 노한 악당」이라느니 중얼거리는 놈들은 친절하게 다시 재워주었다.
그나저나 지린내난다 이놈들아...
"아무튼 그때 크게 당한 이후로는 도무지 이 모습을 그만둘 엄두를 못내겠더라고.
장신구 몇개 치웠다고 그 꼴을 당했는데 수염이랑 머리까지 바꾸면 어떻게 될까 겁나서 말야.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단지 그날따라 무지하게 재수가 없었던 것일수도 있지만...역시 찝찝하잖아?"
"그, 그래요?"
좀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는지 미캉도 당황한듯 입가를 씰룩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살다가 벼락맞는 경험을 한 사람은 드물지...
그래도 외국엔 평생동안 7번이나 벼락맞은 사람도 있다던데 거기에 비하면야 나는 나은 편이다.
아무튼 그때 몸안에 뭔가 잡령도 잠시 들어왔던것 같은데
들어오자마자 벼락을 맞고는 강제로 쫓겨난 것 같았다.
졸지에 지금까지 빙의된 영혼들 중에선 가장 화끈한 방식으로 쫓겨난 녀석에게 애도...
리토와 나의 중학교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앨범을 넘기다가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앨범이 끝났다.
꽤나 길게 이야기를 한것 같은데...
시간이 좀 지났으려나?
"그나저나...왠지 좀 어두워진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난건가?"
"그러게요...?"
아직 어두워질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기에 갸웃하고 있으려니
미캉이 일어서 리토의 침대쪽에 있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침대에 올라가 커튼을 걷으니 구름으로 뒤덮힌 하늘이 창너머로 보였다.
"구름이 잔뜩 꼈네요...
비가 올수도 있겠어요."
"...그래?"
확실히 창너머엔 어두운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비라도 내릴것 같은데...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고...
...팬티가 훤히 보입니다만?
침대에 무릎을 댄 채 창틀에 손을 얹고 창밖을 바라보는 미캉의 자세.
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듯 창쪽으로 시선을 향한 나.
매끈한 허벅지가 시야를 차지하는 가운데 짧은 치마 아래로 연분홍빛 속옷이 드러났다.
게다가 치마 너머로 엉덩이 굴곡이 묘하게 선명히 드러나면서 눈을 둘 곳이 곤란했다.
"어, 어쨌든 적당히 쉬었고 수박도 다 먹었으니 이만 가볼께."
"벌써 가시려고요?"
"슬슬 저녁준비도 해야 하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비오기 전에 일찍 들어가는게 낫겠지."
대충 이유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이상 있다간 나의 아드님이 자중할것 같지도 않고,
그랬다간 미캉에게 변태 오빠란 소릴 들을지도 모른다고...
주방의 냉장고에서 내 장거리를 챙겨 도로 장바구니에 담에 넣었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며 미캉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이만 가볼께.
수박 맛있었어."
"혹시 모르니 우산이라도 하나 빌려드릴까요?"
"괜찮아.
방금전 집에 들어올 때까진 맑았잖아?
서둘러 집까지 간다면 일부러 빌릴것 까지야..."
활짝-
쏴아아아아아아아-----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요.
문을 열자마자 비가 쏟아지다니.
아무래도 우산을 빌리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아 몸을 돌리며 부탁했다.
"미캉, 미안한데 우산 하나만..."
번쩍-!
꽈르릉!
"꺅?!"
덥석-!
"에엑?!"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며 품안에 안겨오는 미캉의 행동에 내가 더 놀랐다.
가슴께에 머리를 기대오는 미캉을 엉겁결에 살짝 감싸안곤 사고회로가 마비되어 버렸다.
미캉의 어깨는 생각했던것 보다 부드럽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어째서 갑자기?
내 목둘레의 앞섶에 한손을 얹은 미캉.
무심코 힘이 들어가서 옷의 목덜미가 늘어나지 않을지 걱정이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쓰이는게...
내 옷의 목덜미를 움켜 잡은채 안으로 굽혀진 손가락들이 내 쇄골 아래의 가슴께에 직접 닿고 있다는 것이다.
부들부들 떨고있는 미캉의 몸에 맞춰, 잘게 떨리는 손가락이 가슴을 자극해 오면서 머리가 오버히트 할것 같았다.
"미 미 미, 미캉?
우, 우선 좀 진정하고..."
- 우선 너부터 진정해.
"죄...죄송해요.
조금 놀라서..."
화들짝 놀라며 내게서 떨어져선 미캉이 사과해왔다.
힐끗 바라본 미캉의 시선은 현관 밖을 향하고 있었다.
...아. 번개에 놀란건가?
그러고보면 천둥번개를 무서워했었지?
콰콰콰쾅!
"꺄아!"
"으햑?!
자, 잠...! 아, 아니. 지 지 지, 진정해 미캉?"
"무, 무리한 부탁하지 마세요.
료스케 오빠야 말로 긴장하고 있잖아요?"
아니, 난 미캉 네가 달라붙어와서 그런건데?
고의가 아닌건 알지만 그렇게 허리에 팔까지 감으면서 들러붙진 말아줘!
허벅지에 닿는 살갗의 감촉이 부드러운게 너무 자극적이라고...!
무섭고기쁘고두렵고행복하고조마조마하고간지럽고... 별의별 감정이 다 들고 있단말야...
두근두근쿵쾅쿵쾅콩딱콩딱쿵떡쿵떡콩떡콩떡팥떡찹쌀떡메밀떡가래떡무지개떡수수떡...
뭔가 엄청난 소리가 심장에서 들려오면서 혈류속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우, 우선 거실로 가서 진정하는게 좋겠어."
현관문을 도로 닫고 미캉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무릎을 가슴에 대고 앉은 미캉은 조금은 진정된듯 해 보였다.
"방금전은 죄송해요 료스케 오빠...
전 천둥소리는 서투르거든요."
"그, 그래?"
부끄러운듯 대답하는 미캉을 마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난 미캉 네 색기쪽이 서투르다만...
그나저나... 소파에 앉을때 무릎을 가슴에 모으는건 습관인거니 미캉?
두 다리가 위로 향하면서 치마 속이 드러나며 허벅지 사이로 연분홍빛 속옷이 훤히 드러났다.
골이 파인 부분마저 적나라하게 보이는 모습에 현기증이 나는것 같았다.
방금전 리토의 방에서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잖아...!
집안에서 보이는 미캉의 무방비한 모습은 정말이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게 나을까?
그냥 우산을 빌려서 얌전히 떠나가는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불안한듯 무릎에 얹은 손위에 턱을 괸채 바닥을 내려다 보는 미캉의 모습을 보았다.
문득 방금전 천둥소리에 무서워하던 미캉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혼자 있을때 외로워하던 미캉의 모습도...
「적어도 미캉이 외로워하진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언제까지나 리토가 함께 있을수도 없었기에, 가끔은 미캉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할 할 경우도 있었지요.
그때...미캉이 외로움을 느낄 때조차 함께 있어주질 못했던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비록 엉터리였지만, 아빠 역할이랍시고 잘난척 말했던 걸 뒤집을순 없지.
무릎을 모아 앉은채 불안한듯한 얼굴의 미캉을 보며 입을 열었다.
"...유우키랑 라라가 올때까지만 머물러도 될까?"
"네?"
미캉의 동의를 얻고 장바구니를 내린뒤,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저녁을 준비하려는 미캉을 말리고 도로 거실로 쫓아냈다.
천둥소리 때문에 놀라서 손이라도 베이지 않을까 걱정이니까.
미캉이 만든 요리는 확실히 먹어보고 싶지만... 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요 1년간 나름대론 노력했는지라 요리에 대한 미캉의 평가는 나쁘진 않은편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훌륭한 요리를 내놓진 못하더라도, 요리책에 적힌대로의 정석적인 맛을 낼 만큼은 만들수 있다.
적어도 라라처럼 못먹을 음식을 만들진 않으니까...
(유감스럽지만 라라의 음식은 같은 우주인도 못먹었으니...)
저녁 식사후 거실에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리토와 미캉의 어릴적 이야기라든가, 부모님 이야기라든가,
중학교시절 내가 겪었던 어이없는 해프닝이라든가, 라라의 취미 등등...
라라가 TV 프로 「매지컬 쿄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문득 시계에 눈이 갔다.
그러고보면 이제 곧 매지컬 쿄코가 방영할 시간인가?
"저기 미캉?"
"왜 그러세요?"
"혹시 모르니까 라라가 볼 매지컬 쿄코도 녹화해두는게 좋을거 같아.
여행이 길어져서 못봤다고 아쉬워하면 불쌍하잖아?"
"그러고보면 그렇네요.
그럼 보면서 녹화할까요?"
"응, 뭐...그러지.
어차피 딱히 이시간에는 볼것도 없으니."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켜고 「매지컬 쿄코」를 틀었다.
「뼈속까지 태워주마! 매지컬 체인지!」
과격한 변신 대사와 함께 검은 마녀복 차림으로 변신해서 악당들을 무찌르는 매지컬 쿄코.
주인공인 쿄코도 그렇지만 당하는 역의 악당들도 참 귀엽게 생겼네.
그런데 좀 야한 장면이 있는데 이거 정말 어린이용 맞아?
기억하기론 팬들 중에 남자들이 많았던거 같은데...
비쥬얼은 확실히 예쁜데 여자애랑 보기는 좀 거북할것 같다.
지금 내 심정이 바로 그렇다고...
바로 옆에 앉은 미캉이 어떤 생각을 할지가 걱정되면서 TV에서 시선을 떼고 창쪽을 바라보았다.
우르릉-
창밖으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간간히 멀리서 들려오는 우레소리에 미캉은 흠칫하며 어깨를 내쪽으로 살짝 기대었다가 다시 몸을 치웠다.
"아, 죄송해요..."
사과하려는 미캉을 손을 저어 제지했다.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미캉.
어깨정돈 언제라도 빌려줄수 있으니까."
"그, 그래도..."
"천둥을 무서워하는게 딱히 부끄러운 일도 아니잖아?
누구나 하나쯤은 무섭거나 거부감이 느껴지는게 있으니까.
사이렌지도 유령을 무서워하지만 그걸 가지고 흉보는 사람은 없다고."
"그런가요?"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미캉도 그렇게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아.
뭣하면 대신 손이라도 잡아줄께."
리토였다면 좀더 위로해줄 방법도 있었겠지만...
가족도 아니고, 나로서 해줄수 있는건 손정도 잡아주는게 다겠지.
미캉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모습이었지만,
다시금 들려온 천둥소리에 마음을 정한듯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왔다.
"저...그럼, 잠시만 부탁드릴께요."
"아, 응...뭐, 잘 부탁해."
그렇게 주저하면 나까지 부끄럽잖아.
천둥번개가 치는 밤을 미캉 혼자 보내는게 걱정되서 맘 고쳐먹고 머물기로 한건데, 다시금 미캉을 의식하게 되면 곤란하다고?
잡아진 손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기분좋으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모처럼의 주말인데 이렇게 비가 내려선 곤란하겠어요."
"그러게. 시원해진다는 점에선 좋지만, 이러면 밖에서 제대로 놀수가 없으니..."
적어도 내일만큼은 날이 맑았으면 좋겠는데...
"아, 그렇지."
"?"
갸우뚱 하는 미캉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캉. 혹시 안쓰는 천 있어?"
"있는데 왜 그러세요?"
"테루테루보즈(照る照る坊主)를 만들어서 달아 보는게 어때?"
(테루테루보즈 : 내일 날씨가 맑아지길 바라며 처마끝이나 창문에 달아 놓는 일본의 전통적인 인형)
주술적인 기원일 뿐이지만 적어도 위안은 되겠지.
혹시 알아?
라라가 기합으로 태풍 날렸을때처럼 기합으로 어떻게든 될지.
내 의견을 들은 미캉도 웃으며 수긍했다.
"그럴까요? 확실히, 가만히 있는것도 심심하니까요."
연결된 손을 풀고 미캉의 방에서 쓰다남은 헝겊들을 가져와서 간단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둘둘둘 인형을 만들고 나니 왠지 너무 간단해서 허전하게 보였다.
내친김에 얼굴도 그려넣자 싶어서 유성펜으로 간단히 눈과 수염을 곁들였다.
너무 자세히 그리면 비가 온다지만 수염정도는 괜찮겠지.
나 특제 테루테루보즈 완성~
내가 하는 모양새를 보던 미캉도 자신이 만든 인형의 머리에 간단히 머리카락을 추가했다.
아, 저건 미캉의 파인애플머리 스타일인가?
"그럼 이리 건네줘.
내가 처마 밑에 걸어둘께."
"네~ 여기요.
아, 혹시 아이스크림 하나 더 드실래요?"
냉장고에 넣어둔거 말인가?
"아니. 난 괜찮으니까, 먼저 먹고 있어."
"예."
부엌으로 간 미캉을 뒤로하곤,
창너머로 비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레 천장에 테루테루보즈를 달았다.
두개를 나란히 달아놓고 내려와보니 조금 간격이 좁은듯 했다.
음, 어째 두개가 좀 가까운데?
머리를 서로 맞대고 기댄 테루테루보즈들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인형끼리 사이좋아 보이는데 일부러 떨어뜨리기도 뭣하고...
거실로 돌아오니 미캉은 소파에 앉아서 한손에 아이스크림을 든채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선 아직 매지컬 쿄코가 방영되고 있었다.
설마 주말이라서 재방송인걸까?
거실에 들어선 날 본 미캉이 반겨주었다.
"수고하셨어요 료스케 오빠."
"아니 뭘~"
"저녁 식사도 만들어 주시고, 방금전 일도 그렇고...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뭔가 해드릴건 없을까요?"
"그런 과장된...
그렇게까지 신경쓸 일이 아냐~"
괜스레 예의를 차리는 모습에 손사레를 치며 사양했다.
애초에 그런걸 바라고 한게 아니고.
단지 미캉 혼자 두는게 걱정이었을 뿐이니까.
"그러지 말고 뭐라도 답례를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답례는 필요 없...「답례로 XXX 해드릴께요♡」...으, 으응?"
"무, 무슨!?"
"아, 아니에요! 제가 아녜요!"
선채로 놀라서 굳어진 내 모습에 당황해서 부정하는 미캉.
얼굴이 빨개진게 정말이지 당황한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미캉...아까도 그랬지만, 소파엔 언제나 그런 포즈로 앉아있는거니?
팬티가 훤히 보여...핑크색...「앗싸! 핑크다!♥」
팟 - !
순식간에 다리를 모으며 홱- 소리가 나도록 치마를 내리는 미캉.
얼굴이 빨개져서 나를 바라보는 미캉의 눈가엔 약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료, 료스케 오빠..."
"아, 아냐! 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면서 필사적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뭐냐 대체!? 아까부터 들려오는 이 괴상한 목소리는?!
「뼈속까지 태워주마! 매지컬 체인지!」
...매지컬 쿄코였냐!
아무리 그래도 방금전 대사는 안되잖아...!
그거 소년만화라고!
아무튼 사태도 파악했겠다 남은건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미캉에게 해명하는것 뿐이다.
"그, 그러니까 미캉.
방금껀 TV에서 나온 소리..."
"...봤어요?"
"아니, 그러니까..."
"봤죠?"
"......죄송합니다..."
시끌벅적한 TV의 음성,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거실 한가운데서 조용히 오체투지로 연하의 소녀에게 사죄하는 나였다.
"미안해 미캉..."
"...그건 이제 됐어요."
"그, 그런데..."
"왜요?"
"...어째서 난 여기에 있는걸까요...?"
벽에 걸린 모자, 꽃으로 장식된 걸이.
침대 옆에 붙어있는 스티커 사진.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놓인 곰인형과 강아지 인형.
다름아닌 미캉의 방풍경이다.
의아한듯한 내 표정에 미캉은 살짝 시선을 외면하면서 말했다.
"방금전 일 말인데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리는 내모습을 보던 미캉은 주저하듯 작게 입을 열었다.
"...잠들때까지 기다려 주는걸로 용서할께요."
"응?"
"그, 천둥소리가 시끄러우니까..."
어색하게 말하는 미캉의 목덜미는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건 확실히 부끄러우니까...
괜히 어색해지기 전에 분위기를 바꿀겸 밝은 목소리로 승낙했다.
"좋아. 그걸로 변제가 된다면 기꺼이."
"승낙, 한거에요...?"
"물론~!"
동의를 구하듯 물어오는 미캉에게 수긍하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올린 미캉의 머리맡에 의자를 내려놓고 전등의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럼, 불 끌께."
"네."
탁-.
스위치를 누르자 불이 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뭐, 눈이 금방 어둠에 익숙해졌는지라 의외로 그렇게 어둡진 않았지만.
조용히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의자로 다가가 앉자 미캉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료스케 오빠. 거기 있어요?"
"응. 바로 머리맡에 앉아 있어."
"그래요..."
빗방울이 유리창을 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아직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지지 않은 탓도 있어서 그런지,
미캉은 양손으로 이불을 꽉 잡은채 조금 초조해 하는것 같았다.
뭔가 안심을 시켜줄 방법이 있다면 좋을텐데...
"저기... 손이라도 잡아줄까?"
"네?"
"아니, 그... 조금은 안심이 되지 않을까 해서."
"으응...그럼 부탁할께요."
이불을 움켜쥐고 있던 미캉의 왼손에 힘이 풀려 이불위에 얹어지자,
나도 왼손을 내밀어 조용히 미캉의 손에 올려놓았다.
살짝 움찔하며 손가락을 떤 미캉은 이내 내밀어진 내손을 살며시 잡아왔다.
연결된 손을 조심스레 거머쥐며 편하게 자세를 고쳤다.
"어때? 불편하진 않아?"
"네, 편안해요."
"그래...
그나저나 유우키랑 라라는 자고 오려나 보네."
"...연락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후우...하고 한숨을 쉬는 미캉의 목소리가 왠지 쓸쓸한 것처럼 느껴졌다.
설마하니 내일도 집에 안들어 오는건 아니겠지...?
리토가 휘말리는 트러블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꺼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되면 모처럼의 주말인데 미캉 혼자 집을 보는건가?
혹시 미캉은 이번 리토들의 바다여행에서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적어도 여름 바캉스의 기분이라도 만끽하게 해줄까.
"갑자기 떠오른건데 말야..."
"뭔데요?"
"내일, 날이 맑으면...함께 수영장에 가자."
"...수영장이요?"
"응. 「사이난 워터랜드」라고, 이번에 새로 오픈한 수영장이 있거든.
상점가에서 홍보 전단지도 봤었는데 엄청나게 크다고 하더라고.
이번 기회에 코테가와랑, 야미랑 함께 넷이서 수영장에 다녀오지 않을래?"
"......"
이야기를 듣던 미캉은 내 손을 잡은채로 그대로 침묵했다.
...별로 놀러가고 싶었던게 아니었던가?
설마 나 혼자서 착각한거야?
괜히 감상적이 되어버려서 놀러갈 제안을 한게 부끄러워 죽을것 같았다.
챙피함에 몸이 배배 꼬이며 뒤틀리려는걸 억지로 참고 있으려니 미캉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좋아요..."
"어? 정말?"
승낙받았다-!
부끄러움은 이제 끝.
순식간에 기분이 들떴다.
"이번 일행은 축제때의 계속인가요?"
"응. 그렇지 않아도 다들 더위에 불평하는것 같았거든.
수영장에서 한껏 놀다보면 여름의 더위도 잊을수 있을꺼라구~"
"네...정말 즐거울꺼에요..."
어둑한 가운데 미캉이 살짝 미소짓는게 보였다.
쓸쓸하던 느낌이 사라진것 같아 다행이네.
이윽고 졸음이 몰려온듯 미캉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럼 이만, 안녕히 주무세요 료스케 오빠."
"그래... 잘자 미캉."
대화가 끝나고 다시금 고요해진 방의 정적은 방금전 처럼 적막하지 않았다.
왼손에 잡은 미캉의 손의 온기를 느끼며, 미캉의 조용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미캉이 잠에 들기까지 얌전히 침묵했다.
한참이 지나고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숨소리에서 미캉이 잠든것을 확인하고는
미캉과 연결된 손을 조심스레 풀고 있을때, 귓가에 미캉의 속삭이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
잠꼬대인가.
아무튼, 기특한 말을 해주는군.
무사히 연결된 손을 풀고는 살며시 의자를 치우고 일어나 미캉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은채 새액-새액- 귀여운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진 모습에선,
깨어있을때의 어른스러움과 달리 나이에 걸맞는 앳됨이 느껴졌다.
"좋은 꿈 꾸길..."
사랑스런 모습에 미캉의 머리위에 살짝 손을 올렸다 떼곤 조용히 미캉의 방을 나왔다.
그럼 나도 이만 자볼까...
리토의 방으로 가서 말려내려간 이불을 침대위로 끌어올린 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오늘만 침대를 빌릴께 리토...
부디 내일은 비가 그치길 바라며 밀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일어나세요..."
"우웅..."
"일어나세요 료스케 오빠."
"으응?"
눈을 떠보니 빛을 등지고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얼굴이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였다.
한차례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자 어딘지 평소와 달리 위화감이 느껴지는 주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낯선 천장이다..."
"네?"
"아니. 아무것도."
...그러고보면 리토네 방이었지.
"읏샤...!"
두 팔을 머리위로 뻗어 한껏 기지개를 켠 뒤 옆에 선 미캉에게 인사했다.
"좋은아침 미캉."
"네. 좋은아침이에요 료스케 오빠.
다행히 오늘은 맑음이에요."
"그래?"
커튼을 치운 창 너머로 보인 하늘은 어제까지의 폭우가 거짓말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잘됐다...
그럼 오늘은 수영장에 갈수 있는거로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자 미캉이 웃으며 돌아섰다.
"그럼 씻고 거실로 와주세요.
아침식사가 준비됐거든요."
이런, 벌써 아침까지 해놓은건가?
부지런하구나 미캉은...
"그래. 그럼 먼저 내려가 있어.
곧 따라갈께."
아침의 생리현상으로 일어난 아드님을 미캉에게 보일수도 없으니
미캉 먼저 조용히 내려 보내도록 하자.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릴께요.
아, 그리고..."
문을 나서려던 미캉은 고개를 돌려 내쪽을 돌아보았다.
"어젯밤엔 정말 고마웠어요 료스케 오빠."
싱긋 웃은 미캉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오늘의 미캉은 정말이지 기분 좋아 보이는구나.
왠지 오늘은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은데...
테루테루보즈 두개가 사이좋게 창밖을 바라보는,
맑게 개인 어느날의 아침풍경이었다.
p.s. 미캉의 아침식사 정말 맛있었습니다.
=============================
갈길이 멀군요.
수영장 이야기를 쓴뒤엔
하루코 선생님 이야기라든가,
사키양의 이야기도 써야 되는데...
p.s.1. 이번화에 참조한 원작의 컷들
(1. 리토의 중학교 사진)
(2. 미캉의 자세 참조 - 창틀에 기댐)
(3. 미캉의 자세 참조 - 소파에 앉음)
(4. 미캉의 자세 참조 - 소파에서 아이스크림 먹음)
(5. 치마색 참조 - 원작131화)
(6. 상의색 참조 - 애니메이션)
(7. 상의색 참조 - 원작73화 서비스 컷)
(8.매지컬 쿄코 작품 내 대사1 : "답례로...")
(9.매지컬 쿄코 작품 내 대사2 : "앗싸!...")
p.s.2.
이번 파트의 원작 시나리오를 다시 보기 전까진,
전 라라나 리토가 일부러 외계별로 피서를 간줄 알고 있었습니다-_-;
-----------
(제 기억속의 이야기 전개)
라라 : 사람 드물고 놀기 딱 좋은 행성으로 여행가자~!
일행들 : 와~ 신난다!
-----------
설마 '오키나와'나 '오키와나' 이름차이로 엉뚱하게 워프된 일인줄은 몰랐네요.
(애초에 별 이름도 기억에 없었고)
1학년 때의 돌고래 이벤트도 그렇고, 제대로 기억나는게 없네요;
덕분에 어떤 의미로 글쓰기에는 좀더 편하지만 말이죠=_=;
(하지만 나중에 하루나랑 유이가 납치된 사건을 '미캉'이 납치 되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나는 대체...쿨럭쿨럭;;;)
료스케는 「바다에 갔다」는 미캉의 말을 듣고는, 리토들이 국내 피서지로 워프해서 놀러간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바다에 가는 이벤트가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수도 없고...
코테가와까지 바다에 따라갔다는 얘길 들었다면 어쩌면 떠올릴순 있었겠지만,
지난 1년간 료스케랑 투닥거리다보니 규율에 엄격한 정도가 줄어들어서
코테가와도 그렇게까지 바락바락 달려들지 않았거든요-_-a;
반장 선거때 라라의 발명품 간이 페케뱃지를 압수하지도 않았고...적당히 융통성이 늘어났습니다.
따라서 66화~69화의 외계별 조난 사건에 코테가와는 함께하지 않았고(원작에선 "남녀함께? 풍기문란이야!" 라며 감시명목으로 합류),
74화의 풍기 강화 기간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성품이 완화되었는데 저 두 이벤트를 발생시키는건 억지 같아서 무리더군요=ㅅ=a;
(혹시나 74화가 발생될만한 상황이 떠오른다면 좀 완화된 방법으로 전개가 되겠지만 지금으로선 떠오르지 않네요.)
p.s.3. 파랜드 택틱스 팬픽이나 프린세스 메이커2 조연 빙의물도 떠올려 봤는데 언제 쓸수 있으련지...-_-;
트러블 연재 밀린것도 있고...
나중에 트러블 쓰다 막히면 조금씩 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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