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고 여름축제가 다가왔다.
반팔 티셔츠에 긴바지 차림으로 집을 나와 어스름해지기 시작한 거리를 걸었다.

유카타와 나막신(게다)을 차려 입고 나가볼까 생각했었지만
그 차림으로 축제 거리를 계속 돌아다니는건 좀 버거울듯해서 경장으로 나왔다.
작년 축제때도 유카타 차림의 젊은이들은 드물었으니 딱히 이상하게 보이진 않겠지.
듣자하니 리토도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간다는 것 같고.

그러고보면 리토는 여름 축제에 딱히 흥미를 가진것 같진 않았다.
의욕없는 얼굴을 하던 리토를 떠올리면 나도 덩달아 기운이 빠지는듯 해서 얼른 머릿속에서 리토의 얼굴을 지웠다.
모처럼 코테가와랑 함께 보낼 여름 축제인데 기운내지 않으면!

코테가와에게 축제구경을 권했을때의 대답을 떠올려본다.

「에? 축제 말인가요? 저랑?
...조, 좋아요. 아키츠군 혼자만 축제에 보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리고 학생들이 풍기가 흐트러지는것도 걱정이니까.
말해두지만, 딱히 축제에 가고 싶은건 아니에요?」

축제에 가고 싶었던 거군요. 압니다.
솔직한 라라와는 정 반대 의미로 알기 쉬운 아가씨로군요.
저렇게까지 속내가 드러난다면 솔직하지 못한 모습도 오히려 귀여울 따름이다.

그리고 정한 약속장소가 지금 내가 향하는 코테가와의 집이다.
축제거리로 향하는 방향에 코테가와의 집이 있었기에 축제 가는 도중에 들러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코테가와랑 약속을 잡은 이후 야미에게도 여름 축제에 함께 가는걸 권하려 했으나 리사와 미오에게 선수를 뺐겼다.
유카타를 골라줄 때부터 함께 가기로 약속했나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더니...
리사 일행과는 일정이 맞지 않았기에 나중에 축제에서 만나길 바랄 따름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어느새 코테가와의 집앞에 도착했다.
코테가와는 준비가 끝났으려나?
코테가와의 옷차림을 기대하며 벨을 눌렀다.

딩동-

「네」

목소리가 들리며 현관문이 열렸다.
금발에 목걸이, 검은 티를 입은 남성이 현관문을 연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테가와의 오빠인 '코테가와 유우'이다.
나를 본 유우씨가 놀라며 입을 벌렸다.

"너는...!"

뭔가 경계하는듯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유우씨의 모습에 내심 아차싶었다.
크리스마스때의 첫만남때 인상이 좀 안좋았나보다.
우선 유우씨에게 화해의 표시로써 웃음지으며 말을 걸어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코테가와 오라버님."

"...누가 네놈 오라버니야!"

교섭실패.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 첫인상이 좀 안좋았다는 수준이 아닌데?
그야말로 도둑놈 쳐다보듯 날 보는 유우씨의 시선은
사람의 첫인상이란 이렇게까지 나쁘게 박힐수 있다는걸 실감하게 해주었다.
어찌됐건 침묵만 해선 될것도 안되니까
용건을 전하고 코테가와를 불러와서 중재를 부탁하는게 최선일것 같다.

"저기, 여름축제에 함께 가려고 코테가와를 데리러 왔습니다만..."

"누구 맘대로?"

"그게...코테가와랑 약속했는데요?"

"뭐, 뭐라고?!"

엄청난 목소리와 함께 마루에 무릎을 꿇고 좌절포즈를 취해버린 유우씨.
난데없는 오버 액션에 놀란 나를 신경쓰지도 않고
유우씨는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며 믿을수 없다는듯 중얼거렸다.

"마, 말도 안돼...
유이가...그 까칠한 여동생이 남자랑 약속을?
그것도 저런 소문자자한 불량배랑!"

...첫만남 때문이 아니라 소문 때문이었습니까...
고등학교 들어와선 학교내에서 벌어지는 트러블을 제외하면 별다른 말썽없이 지냈건만...
중학교때 소문이 사그라들려면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걸까요?

나도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몰라서 엉거주춤 서있으려니 부엌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나오셨다.
코테가와의 어머님인 듯 했다.

"유짱. 현관앞에서 뭐하고 있어?
어머? 너는...?"

놀란듯 나를 바라보는 코테가와의 어머니께 당황하면서도 인사를 드렸다.

"아, 안녕하세요.
코테가와의 클래스메이트인 아키츠 료스케라고 합니다."

아주머니의 반응을 보기가 무서뭐서 90도로 인사를 드린채 고개를 들지 않고 있으려니
갑작스레 들린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올려버렸다.
아주머니께서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웃고 계셨다.

"난 또 누구라고.
네가 유이의 친구였구나?"

"저기...죄송한데 혹시 절 아시나요?"

왠지 안면이 있는듯한 아주머니의 반응에 언제 만난적이 있던가 열심히 기억을 뒤지고 있으려니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하셨다.

"놀래켰다면 미안하구나.
상점가에서 가끔씩 동생이랑 함께 장보는 널 봤거든.
인상깊은 외모라서 기억하고 있었단다."

미캉과 장보기를 하던걸 보셨나보다.
다행히 나에 대한 인상이 나빠보이지 않는지라 안도하며 용건을 말씀드렸다.

"다름이 아니고, 여름 축제에 코테가와와 함께 갈 약속을 해서요.
그래서 데리러 왔습니다."

"에..."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시던 아주머니는 이내 웃으며 말씀하셨다.

"유이는 너무 결벽해서 친구들과 잘 사귈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사내아이까지 집에 초대할 정도였다니 놀라운걸?"

"그, 그런가요?
하지만 풍기위원으로서 엄격한 태도는 보이지만
실제론 학생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덕에 클래스메이트들도 신뢰하고 있고요."

"그러니?"

"물론이죠."

당연하지만 코테가와를 가장 신뢰하고 있는건 나.
코테가와가 아니었더라면 고등학교에서 반친구들과 어울린다는건 바람으로만 끝났을지도 모르니까.

웃으며 코테가와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아주머니는 문득 생각난듯 나에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곧 축제가 시작되지 않니?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할지도 모르는데."

"아...그러고 보면 코테가와는?"

"2층에 유이의 방이 있단다.
지금쯤이면 준비가 거의 끝났을테니 올라가보렴.
아, 그리고..."

살짝 내 귓가에 얼굴을 대고 아주머니가 조용히 속삭이셨다.

"올라가면 유카타를 차려입은 유이에게 감상을 들려주려무나.
네가 오기까지 3시간동안 옷단장을 했거든."

"에...?
...아, 알겠어요."

얼떨떨해하면서도 수긍하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옷단장에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였다니...
문득 내가 입고 있는 옷을 확인한다.
가벼운 반팔티에 긴바지.
...코테가와의 옷차림을 칭찬하기보다 격에 안맞는 내 차림에 사과부터 해야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에 1층을 내려다 보자 아주머니는 바닥에 주저 앉은 유우씨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있었다.

「유짱. 이런데서 앉아 있으면 안돼요.」

「하지만 유이가...」

...코테가와의 오빠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데도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서도.



코테가와의 방문에 서서 노크를 한다.
혹시나 옷을 덜 입은 상태라면 곤란하니까.
리토네 집에서 배운 교훈은 아직 잊지 않았다고.

똑-똑-

"코테가와?
지금 도착했는데. 준비는 끝났어?"

"아키츠군?
잠시만 기다려요."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코테가와의 방문이 열렸다.

세종류의 꽃무늬가 수놓아진 유카타와 오비(허리부분을 감싸는 띠).
긴 생머리를 틀어올려 양어깨로 흘러내리도록 한 머리모양.
평소와 달리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가 이상할 만큼 요염해 보였다.

"많이 기다렸나요 아키츠군?"

"......"

"저기...아키츠군?"

"으, 으응?"

아무말 없이 계속 코테가와를 쳐다만 보고 있자 약간 얼굴이 붉어진 코테가와가 나를 부른다.
놀라서 정신을 차리곤 대답하는데 영 미덥지근한 반응이었나보다.
코테가와는 의심스러운듯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저질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건 아니겠죠?"

"처, 천만에!
난 단지..."

"단지?"

잠시 말을 주저하는 내 모습을 코테가와가 추궁한다.

"단지, 코테가와의 유카타 차림과 지금 머리 올린걸 보고 말이지..."

정직하게 말해야 하나...
...방금전 아주머니가 감상을 들려주라고도 하셨는데 솔직하게 말하기엔 정말이지 부끄럽다.
여자애에게 정면에서 예쁘다고 말하려니 무슨 추파 던지는것 같다고?
이런 부끄러움 따위엔 좀더 무신경해도 좋았는데...!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퉁명스럽게 구는 초등학생도 아닌데 이 무슨 솔직하지 못함?

솔직함과 수치심의 싸움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다가 코테가와와 시선을 마주한다.

조용히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코테가와의 모습이 보인다.
약간 긴장한 듯 목덜미를 매만지는 코테가와를 보고 마음을 굳혔다.

그래...이럴때 안 말하면 평생동안 언제 말해보겠냐.
말하고 나서 파렴치하단 소릴 들을지언정 침묵한뒤 후회하진 않겠다!
부서져라 나의 수치심!

"...아찔해서 넋을 잃었습니다."

"......"

내 얼굴이 뜨거워지는게 느껴지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여자애가 듣고 싶어하는 대사 순위권에 이 말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여성을 보고 넋을 잃을 경험을 해보는건 남자로선 일생에 바라마지 않는 일이니까.

코테가와도 내 낯뜨거운 대사에 얼굴이 붉어져선 양손으로 뺨을 살짝 가리고 있다.
이윽고 안색을 회복하며 답례한다.

"칭찬 고마워요 아키츠군...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해봤는데 괜찮았나 보네요?"

"물론! 정말로 예쁘다고.
사진을 찍어 두지 못하는게 후회될 따름이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내 모습에 당황하며 코테가와가 물었다.

"그, 그래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맵시있게 입은 유카타도, 꽃장식된 끈으로 틀어올린 머리모양도 정말 어울려.
하지만 그중에서도 드러난 목덜미가 굿!
매끈하고 새하얀게 그야말로 최고!"

"역시 파렴치 했잖아요?!"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올려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나에게
새빨갛게 된 코테가와가 빽하고 소리질렀다.
수치심을 한번 버리니 나중에 뭔가가 망가진듯 했다.
마음의 소리가 필터링도 없이 새어나오네.

"...이제 됐어요!
얼른 축제나 가요."

흥- 소리를 내며 살짝 시선을 외면한 코테가와가 나를 제치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걸음을 빨리했다.
나도 뒤따라 가면서 약간 걱정이 되어 주의를 주었다.

"저기, 유카타 차림으로는 뛰는건 위험「꺄아-!」?!"

주의를 채 끝내기도 전에 균형을 잃고 계단에서 넘어지려는 코테가와를 황급히 부축한다.
다행히 굴러떨어지기 전에 무사히 잡을수 있었음에 안도하며 코테가와의 안부를 묻는다.

"괜찮아 코테가와?"

"아...?"

순간적으로 일어난 상황에 당황해서 아직 어리둥절해 있는 코테가와였지만 이내 안색을 고친다.

"......"

정정.
안색을 고치는게 아니다.
안색이 바뀐거다.

붉어진 표정이 매서워지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내가 코테가와를 안는 포즈여서 그렇다던가 하는게 아니다.
원인은...그러니까 그거다.

유카타 옷섶 안으로 파고들어간 내 오른손.
코테가와의 왼가슴을 쥔 내 손바닥을 느끼곤 깨달았다.
...이 세상에선 유카타 안에 속옷은 안 입는게 매너군요.

"아, 아키츠군..."

워낙 엄청난 일을 당해서 그런지 말까지 더듬으면서 노려보는 코테가와가 무섭다.
하지만, 역시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네요.
손을 치우고 얌전히 심판을 받는게 그나마 구제의 여지가 있군요.
얌전히 물러나 똑바로 서자 눈앞에서 힘껏 팔을 휘두르는 코테가와가 보인다.

"파렴치한!"



"어머? 료짱 얼굴이 왜 그러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놀라는 아주머니께 대답하는 나.
팔짱을 끼곤 시선을 외면한 코테가와의 옆에서 따로 할 말을 찾지못한 채,
오랜만에 뺨에 물든 단풍을 매만지면서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료짱」... 친숙해서 좋네요 아주머니.

그때 어느새 회복한듯한 유우씨가 다가와 내게 말했다.

"혹시나 축제를 빌미삼아서 유이한테 허튼짓을 한다면..."

"무슨말을 하는거니 유짱?
유이의 친구를 너무 박정하게 대하지 말아줘."

도중에 아주머니가 타박하자 유우씨가 난처해하며 반박했다.

"하지만 어머니!
저녀석에 대한 소문은 모르는 녀석이 없다고요.
다른건 몰라도, 천명이 넘는 여자랑 사귀었다잖아요?
유이를 장난으로 갖고 놀려는 수작인지도 모른단 말예요!"

...그걸 믿습니까.
말이 안되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
아예 면전에 대고 말하는건 고맙지만요...

방금전 일로 토라졌는지 코테가와는 나에 대한 소문을 변호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별수없이 스스로 오해를 풀수 밖에 없을듯 했다.
우선 유우씨부터 설득하는게 좋을까...
유우씨에게 손을 들어 전제가 틀렸음을 말한다.

"저...따로 사귀고 있는 사이는 아닌데요."

"역시 장난인거냐?!"

...오히려 더 화를 내?
어떻게 진정시키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진지하게 대답해봤다.

"실은 사귀고 있...「그딴 교제 허락할까보냐!」"

...대체 나보고 어떻게 반응하라고요?
원래 이렇게 다혈질인 오라버니가 아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동생문제로 바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난처해하는 나를 보다가 결국은 코테가와가 끼어들었다.

"오빠. 너무 그렇게 흥분하지마.
이번에 가는 축제는 다른 친구들과도 함께 하는거라고.
그리고 아키츠군에 대한 소문은 전부는 모르지만,
적어도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보여준 태도는 성실했어.
...게다가 오빠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잖아?"

"윽..."

여럿의 여성과 교제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당하자 약간 주춤하는 유우씨를 보던 아주머니가 이야기에 쐐기를 박는다.

"자자~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고 유이랑 료짱은 이만 가보렴.
이러다가 축제에 늦을지도 몰라?"

"그러고보니...이만 가도록 하죠 아키츠군."

"으응. 안녕히 계세요 아주머니, 코테가와 오라버님."

"그래. 다음에도 놀러오도록 하렴~"

채 말을 끝내지 못한 유우씨를 뒤로하고 아주머니께 인사한뒤 재빨리 코테가와의 집을 벗어났다.



"휴우...갑갑해 죽는줄 알았어."

크게 한숨쉬며 어깨를 늘어뜨리는 나를 보며 코테가와가 풋 하고 웃는다.

"엄살부리지 말아요.
아키츠군에 대한 소문을 오빠도 알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그야 내가 중학교 땐 유우씨도 고등학생이었을테니, 야쿠자 양아치 소문은 듣고 지냈겠지.
주로 중고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나이 또래들의 뜬 소문은 대개는 허황된거라고?

유우씨에게 박혀있는 인상을 지우려면 좀더 함께 부대끼면서 서로를 알아가든가,
아니면 내가 지금 스타일을 포기하는수 밖엔 없을듯 하다.
물론 후자는 당분간 무리이므로 전자쪽이 빠를듯 하다. 아마도...



축제거리에 도착하자 신사 입구의 문(토리이)으로 이어지는 노점상의 행렬이 보였다.
일렬로 나란히 늘어선 등불이 어둑한 밤거리를 운치있게 밝히고 있었다.
혹시나 양아치 외관의 나를 신경쓰진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낮보다는 어두운 주변과 축제의 들뜬 분위기속에서 지나가는 이를 신경쓸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어보였다.
덕분에 축제의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에 덩달아 즐거워지는 기분이 들며 코테가와에게 말을 건넸다.

"그럼 코테가와, 어디를 먼저 가볼까?"

"물어봐주는 배려는 고맙지만, 그런건 남자쪽이 제안하는거에요 아키츠군."

"그, 그런가?"

여자애랑 함께 뭘 해본 경험이 있어야 말이지...
으음, 어느걸 해볼까.
고개를 들어 어둑해진 하늘을 본다.
여름이라 밤이 짧음에도 이정도 어둠이라면 저녁을 먹지 않았다면 시장할 시간이다.

"그럼 우선은 간단히 요기하면서 노점상을 둘러볼까?
축제를 기다리느라 저녁은 아직이거든."

"그러는게 좋겠네요. 저기 장어구이가 어떤가요?"

"축제에 장어구이 노점상이라...특이하네.
한번 가볼까?"

코테가와가 가리킨 방향에선 머리에 흰두건을 쓴 숏컷의 소녀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장어를 팔고 있었다.
그 옆에선 친구로 보이는 장발 소녀가 노래에 맞춰 능숙하게 불길을 조종하며 양념을 바르고 있었다.
노점상을 하는 동갑뻘 소녀를 보는건 또 처음이네...
가까이 다가가자 단발 소녀가 웃으며 반긴다.

"어서오세요 손님~"

붙임성 좋아보이는 아가씨네.
내 외모에도 신경쓰지 않고 밝게 미소 짓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며 장어구이를 주문한다.

"장어구이 2인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기 장어구이 2개 부탁해요~"
"응. 잠시만~"

주문하고 금새 얇게 썬 파와 부추, 생강 외 재료가 얹어지고 소스를 바른 장어구이가 나왔다.
일회용기에 담아진 장어구이를 건네며 단발 소녀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애인이 참 예쁘시네요."

"애, 애인?!"

의례적으로 하는 말에 코테가와가 놀라며 반응했다.
어리둥절하는 단발 소녀로부터 장어구이를 받고 대답했다.

"아하하...고마워요.
장사 잘하세요~."

"네. 손님도 즐거운 축제 보내세요~."

장어구이 하나를 코테가와에게 건네주고 노점상을 벗어났다.
코테가와는 당황하면서도 일회용기를 받고 뒤따라 왔다.
대나무 이쑤시개로 장어를 집어들고 입가로 옮긴다.
부드럽게 녹아내릴듯 하면서도 탱탱한 느낌, 그리고 절묘한 소스의 맛이 어울어져 감탄사가 절로 났다.
노점상에서 이런 맛을 느낄수 있다니 놀라울 정도.

"이거 생각 이상으로 맛있는데?...코테가와?"

동의를 구하며 뒤를 돌아보자 코테가와는 일회용기를 잡은채로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장어구이에 손대지도 않고 물음에 반응이 없는것에 이상해서 다시 한번 코테가와를 불렀다.

"어이~ 코테가와?"

"...아키츠군?"

"멍하니 왜그러고 서있어?"

"그게..."

"혹시 아까 노점상에서 들은 말 때문이야?"

"네. 조금 놀라서..."

양손으로 일회용기를 든채 제자리에 서서 수긍하는 코테가와.
애인으로 오해받는건 생소한 경험이었는지 당황스러움이 느껴지는 태도에 코테가와에게 말을 한다.

"너무 그렇게 신경쓸건 없어.
방금전 소녀는 손님의 기분을 띄워주기 위한 의례적인 인사를 한거잖아?
거기서 괜히 부정해도 서로 어색해 지니까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는게 좋다고."

공기(분위기)를 읽는 정도의 능력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해서 진한 농담을 하시는 아저씨에게 걸려도 하하하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고.

코테가와는 내 말을 듣고 있더니 물었다.

"아키츠군은... 어땠나요?

"뭐가?"

"방금전 여자애의 말을 들었을 때 말이에요."

"나야 기뻤지.
그런 말을 듣는건 나로선 처음이기도 했고,
게다가 코테가와를 칭찬하는 말이었잖아?"

"...그래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코테가와는 일회용기를 열어 대나무 이쑤시개에 꽂힌 장어구이를 집어든다.
입에 장어구이를 넣고 맛을 음미하던 코테가와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맛있지?"

끄덕-

수긍하는 코테가와를 보며 웃곤 등불을 따라 늘어선 노점상을 하나씩 구경하며 축제거리를 걸었다.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을 지나며 특이한 음식들을 보기도 하고 희귀한 구경을 하기도 했다.
돈내고 산 타코야키를 자기 것처럼 먹어치우는 오흉폭투라는 이름의 무시무시한 동아리도 보았지만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 같고 이름에 비해선 무난히 축제를 즐기는 모습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한동안 노점상들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금붕어 노점상을 지날때쯤 몸빼옷에 머리를 빡빡민 중년 아저씨가 우리들을 불러 세웠다.

"헤이~ 거기 커플!
한번 해보지 그래?"

금붕어 낚시를 가리키며 손짓하는 모습에 넉살도 좋다고 웃으며 금붕어 낚시터로 다가갔다.
코테가와도 익숙해진듯 쓴웃음을 지으며 따라와 옆에 섰다.

"오오~ 잘생각했어!
애인한테 멋진 모습을 보여주라고~"

"고마워요 아저씨~.
코테가와도 한번 해볼래?"

"좋아요. 승부해보지 않을래요 아키츠군?"

축제에 와서 첫 게임이라 그런지 의욕에 넘치는 모습으로 코테가와가 승부를 제안해왔다.
이럴땐 승부를 받아 주는게 예의.

"그럴까? 아저씨 여기 두사람 부탁해요."

"그러지, 힘내보라고 둘 다!"

아저씨로부터 각자 종이 망을 받아들고 금붕어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바라본다.
축제에 와서 제대로 해본 경험은 없지만 이런건 금붕어를 낚는 것보단 즐기는 걸로 충분하니까 편하게 생각하자.
가벼운 마음으로 금붕어를 향해 종이 망을 내민다.

찌익-

"...아저씨. 종이 망 하나 더!"

정정. 조금은 불타올랐을지도 모른다.



바닥에 놓여진 종이 망들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하나같이 찢어져있는 종이망들.
...이걸로 어떻게 금붕어를 낚아올리란거지?
게임이라고 만만하게 볼게 아니군요.
결국 코테가와도 나도 한마리도 잡지 못하고 패배의 쓴잔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약간 불쌍하다는듯 바라보던 아저씨가 갑자기 생각난듯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넌 낯이 익은데?
상점가에서 여동생이랑 자주 장보러 왔었지?"

"어, 그렇습니다만..."

미캉이랑 장보는걸 아는사람이 의외로 있었구나...
내쪽이 너무 튀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코테가와가 의외의 사실을 알았다는듯 물어온다.

"여동생이 있었나요 아키츠군?"

"응? 아니. 친동생은 아니고 미캉이라고... 유우키의 여동생이야.
예전에 장보기에서 내쪽이 도움을 받은 후론 항상 함께 장보기를 하고 있어."

"그래요?"

"이런, 친동생이 아니었나?
사이가 좋길래 영락없는 오누이인줄 알았지 뭐야."

사이좋게 보였다니 감사하군요 아저씨.
혼자 고개를 끄덕이던 아저씨가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별 상관없겠지만...방금전 그 여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금발의 긴머리 여자애랑 함께 왔다 갔어."

"금발의 여자애...야미일까요?"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미캉이라면 라라와 함께 축제에 왔을텐데...
어째서 미캉과 야미만 함께 있는거지?"

원래라면 리토랑 라라와 함께 다닐텐데 무슨 일일까?
이상하다 싶어서 아저씨에게 물어본다.

"저기, 그 둘은 어느쪽으로 갔나요?"

"저쪽. 아까부터 게임이 있는 노점상들만 돌아다니고 있던데?
저 방향으로 주욱 가면서 게임이 있는 노점상들을 찾다보면 나올거다.
그나저나 금발 여자애 말인데, 표정은 무뚝뚝해 보였는데 왠지 약간 화가 난것 같더라.
만나거든 좀 달래주도록 해~"

"고마워요 아저씨~
이만 가보자 코테가와."

"그래요."



금붕어 노점 아저씨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격 노점상에서 인형들을 상대로 분투하는 야미의 모습이 보였다.
미캉은 옆에서 프랑크 소시지를 든채로 야미가 게임하는걸 구경하고 있었다.
둘에게 다가가자 나를 발견한 미캉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료스케 오빠도 축제에 왔었네요? 옆의 언니는?"

"안녕 미캉. 이쪽은 우리반 풍기위원인 코테가와 유이야.
코테가와는 알겠지만 이쪽이 유우키의 여동생인 유우키 미캉이고."

코테가와가 미캉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건넨다.

"만나서 반가워. 코테가와 유이라고 해."

"유우키 미캉이에요. 미캉으로 부르시면 되요."

무난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우리를 눈치챈 야미가 공기총을 내리고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코테가와 유이. 그리고 아키츠 료스케."

"안녕 야미."

"안녕하세요 야미.
유카타가 정말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코테가와 유이."

야미가 입은 화사한 꽃무늬가 수놓아진 유카타를 바라보던 코테가와가 내 옆구리를 툭툭 친다.

"아키츠군도 뭐라고 한마디 해봐요."

"어? 으응...정말 사랑스럽다고 생각해.
게다가 평소와 머리장식도 다른게 신선해서 정말 좋은걸?"

이국적인 외모에 새하얀 피부를 감싼 유카타는 야미의 모습을 한층 더 신비롭게 보이도록 했다.
유카타 위에 새겨진 수많은 꽃들과 원래 머리를 묶던 장식 대신 올린 꽃모양의 악세서리는 평소보다 더 정갈한 느낌을 갖게 했다.
...노출도가 훨씬 적어져서 그렇게 보이는건지도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아키츠 료스케."

답례하는 야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자 미캉이 조용히 날 쳐다보는게 보인다.
그러고보면 자기소개를 하느라 아직 미캉의 옷차림을 칭찬하지 않았구나.
꽃잎 모양의 고기가 달린 끈으로 오비를 장식하고 둥근 꽃잎 무늬가 그려진 유카타를 입은 미캉.
잘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말을 걸었다.

"미캉도 정말 예쁘게 차려입었구나.
훨씬 더 어른스러워 보이는걸?"

"고마워요 료스케 오빠."

싱긋 웃으며 미캉이 대답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나보다 하고 다행으로 생각하며 미캉에게 방금까지 궁금했던 점을 물어본다.

"그런데 미캉. 원래는 라라와 함께 있던거 아니었어? 리토는?"

"리토는 축제에 오자마자 지쳤다면서 근처 의자에서 쉬고 있을꺼에요.
그리고 라라 언니는..."

살짝 야미의 방향을 쳐다보더니 슬며시 나에게 다가와 귀에 손을 댄다.
귓가를 간질이는 숨소리에 약간 묘한 기분을 느끼며 미캉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야미가 게임에 서툴잖아요?
라라 언니가 자꾸자꾸 경품을 타는바람에 비교당한 야미가 기분이 상했어요.
그래서 야미랑 같이 왔던 언니 둘이서 라라 언니를 데리고 딴곳으로 가고,
제가 남아서 야미와 노점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아아...그래서였군.
아무리 놀이라지만 옆의 사람과 지나치게 비교되는건 기분좋진 않겠지.
그런 의미에선 나와 코테가와는 야미와 좋은 시합이 될것 같다.

"야미. 사격 대결 하지 않을래?"

"당신과 말입니까?"

"나말고도 코테가와랑 미캉과도 함께 하는게 어떨까?
어차피 나도 축제를 제대로 즐겨보는건 이번이 처음이고.
방금까진 금붕어 낚시에서 참패를 하고 와서 이번엔 꼭 설욕하고 싶다고~!"

"...그렇다면 좋습니다."

"사격은 금붕어 낚시보단 낫겠죠. 이번에야 말로 맞춰보이겠어요."

"에? 저도 하는거에요?"

수긍하는 야미와 의욕만만한 나와 코테가와.
미캉은 의외의 참전에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기껏 축제에 와서 놀이한번 안하고 가긴 그렇잖아 미캉?"

"으응...료스케 오빠 말이 맞네요."

고개를 끄덕이고 미캉도 사격 시합에 합류하기로 했다.
내가 맨먼저 공기총을 들고서 셋을 보며 말한다.

"그럼 나먼저 시작한다. 꼴찌하는 사람이 간식 사주는거다?"

약간 놀란듯한 셋의 표정이 보이지만 대답은 듣지않아!
승부 시작!



...한개도 못맞췄다.
완전히 쭈그리고 그자리에 앉아버린 나.

공기총에 코르크 마개.
이런 조합을 생각해낸 녀석은 틀림없이 악마다.
이걸로 대체 어떻게 상품을 맞추란거야?
공기총 명중률은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코르크는 바람만 살짝 불어도 휘어지고.
게다가 어쩌다 한번 상품에 코르크가 명중했을 땐,
툭...소리와 함께 코르크가 힘없이 떨어졌다.
대책이 없네요 정말...

"기운내요 아키츠군.
친구랑 동생에게 사준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생각하라고요."

"코테가와...난 소지금 걱정으로 이러는게 아냐.
아무리 놀이라지만 여기까지오면 내 자존심 문제라고."

"그, 그런가요?"

의기소침해진 나를 코테가와가 위로하는 사이 야미가 두번째로 나선다.
첫번째인 나의 패배를 위안으로 삼았는지 방금전보다 훨씬 기분이 풀린듯한 얼굴로 상품들을 조준했다.

아까까지 고군분투하던 것의 결실인지 결국 빗자루를 든 마녀 인형 하나를 떨어뜨리는데 성공하곤 야미가 미소지었다.
그 기쁨 이해하지...
나도 느껴보고 싶었지만.
그나저나 방금 인형, 검은 모자에 흑백 의상을 보고 매지컬 쿄코라고 생각했는데 금발인걸 보니 다른 건가보다.
예쁘게 디폴메된 마녀인형을 소중히 안으며 야미는 물러났다.

세번째 차례는 코테가와.
동지의식을 느끼는 코테가와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코테가와도 나른한 표정의 고양이 인형을 맞춰서 떨어뜨렸다.
배반했군? 야미와 같이 나를 배반했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캉의 차례.
의외로 빠르게 돌아온 순서에 아직까지 다 먹지 못한 프랑크 소시지를 손에 들고 우물쭈물 하는 미캉.
대신 들고 있어줄까 싶어서 쭈그린 자세에서 일어나려니까 미캉은 그대로 소시지를 입에 문채로 공기총을 잡았다.
상품들을 바라보며 조준하는 미캉을 보면서 약간 고개가 갸웃했다.

특별히 이상한건 없는데...왠지 모를 묘한 느낌이 드는데 뭘까?
뭔가 두근두근 하면서도 이유를 몰라서 고민하고 있으려니 이윽고 미캉이 사격을 마치고 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방금전 물고있던 프랑크 소시지를 마저 먹기 시작하자
아까까지 느껴지던 이상한 두근거림 또한 사라졌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쪽보단 시합 결과가 좀더 궁금했기에 나는 생각하는걸 그만두었다.

결과는 미캉이 곰인형, 과자, 스누○ 인형을 맞춰서 3개로 1등.
코테가와와 야미가 각각 인형 1개씩을 맞춰서 공동 2등.
그리고 내가 0개로 4등. 꼴찌였다.

한숨을 나왔지만, 기지개를 편뒤 곧 기운을 차리곤 세명에게 물었다.

"그럼 각자 뭘 먹고 싶어?"

"글쎄요...프랑크 소시지는 방금 먹었고.
료스케 오빠가 추천하는건 있나요?"

"아까 축제에 오면서 봤는데, 신사 경계의 토리이(신사 입구의 문)에서 파는 장어구이는 어때?
먹어보니까 정말 맛있더라고."

"그럼 전 그걸로 할께요."

미캉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머지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코테가와랑 야미는?"

"전 방금 장어구이를 먹었으니까 지금은 사양할께요 아키츠군.
나중에 축제를 좀더 즐긴 뒤에 고르도록 하죠."

"저도 이쪽의 고리 던지기를 한뒤에 선택 하겠습니다."

"그럼 함께 고리던지기를 할까요 야미?"

"좋습니다. 코테가와 유이."

코테가와랑 야미는 아무래도 지금은 식욕이 없는 듯 했다.
둘이서 고리 던지기를 할동안 미캉을 데리고 다녀오는게 나을듯 해서
미캉으로 부터 방금전 경품 3개를 받아 코테가와랑 야미에게 건네준다.

"그럼, 미캉이랑 장어구이 노점상에 다녀올테니 잠시만 기다려.
그동안 미캉이 딴 경품들 보관 부탁할께."

"알았어요."

코테가와랑 야미에게 미캉의 경품을 맡기곤 미캉과 함께 장어구이 노점상으로 향했다.



신사입구로 향하던 중 부채가게 앞에서 잠시 미캉이 멈춰섰다.

"왜그래 미캉?"

"조금 더워서 부채를 하나 사는게 어떨까 해서요."

찬찬히 부채들을 살피던 미캉은 이윽고 꽃 세송이와 꽃잎 3장이 그려진 둥근 부채를 골랐다.
지갑을 꺼내며 가격을 물어보려던 미캉을 말렸다.

"부채는 내가 계산할께. 물론 장어구이도 함께."

"에? 그럴것까진 없어요 료스케 오빠!"

사양하는 미캉에게 그다지 문제될건 없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괜찮잖아? 원래 장어구이는 코테가와랑도 같이 먹은거라서,
안그래도 한번은 사주고 싶었던거니까.
방금전 시합 벌칙은 부채를 사는걸로 하는게 나로선 마음이 찜찜하지 않을것 같은데?"

"...료스케 오빤, 손해볼 타입이에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풋...뭐에요 그게?"

실없는 소리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미캉은 부채를 받아들곤 고맙다고 인사해왔다.
몇번의 트러블로 미캉에게 빚진듯한 심정이 이걸로 나았으면 좋겠건만...
그런 꿍꿍이를 내심 품고 있으려니 미캉이 오른손에 든 부채를 천천히 부쳤다.

"후우...밤이지만 역시 여름이라 그런지 덥네요."

"그러네......?"

동의하며 왼쪽에 선 미캉을 바라보다 순간적으로 심장에 격통이 느껴졌다.
쉽게 말해서 하트에 게○볼그.

왼손으로 유카타 상의를 살짝 들추며 오른손에 든 부채를 팔락거리는 미캉.
쇄골 아래에 맺힌 땀방울이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리며 유카타 틈새로 사라져갔다.
벌어진 유카타 사이로 보이는 하얀 피부가 뇌골수를 직격하는 충격을 주었다.

"되도록이면 시원하게 입고 나온다고 했는데 이렇다니...언젠가 한번 수영장에라도 가보고 싶네요."

"그, 그래..."

되도록 시원하게 입어?
설마 너도...

땀을 식히려고 부채를 부치는 오른손에 힘을 주다가 왼쪽손에도 힘이 들어갔나보다.
약간 헤쳐진 옷섶사이로 애, 앵두가...!

순간적으로 코로 피가 쏠리는걸 느끼며 황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다행히 정말로 피가 나오진 않았다.

"정말 덥네요..."

그, 그만해! 날 엿보기 변태로 만들 셈이냐 미캉?!
필사적으로 코에 몰리는 피를 억제하는것도 버거울 지경인데 하반신에서마저 반역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고?
제발 좀 봐주라...

아까전 사격 노점상에서 느꼈던 두근거림의 실체를 지금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느꼈던 이상한 분위기는 소시지를 입에 물고 있던 미캉이 풍기던 묘한 색기였다는걸...

발걸음에 어색함이 느껴질만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
미캉은 유카타 옷섶을 잡고있던 왼손을 내렸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었다.



혼자만의 허무한 투쟁을 끝내고 기운 빠진 상태로 장어구이점에 도착하자 방금전과 마찬가지로 단발소녀가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두분~
...어라?"

왠지 묘한 표정을 짓는 단발소녀의 모습에 갸우뚱하면서도 피곤했기에 신경쓰지 않고 주문을 한다.

"장어구이 하나 부탁해요."

"아...네. 알겠습니다.
여기 장어구이 하나~"
"네. 장어구이 하나 갑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장어구이를 일회용기에 담아 단발 소녀가 건넸다.
장어구이를 받아들고 미캉이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왔다.

"고마워요 료스케 오빠. 방금전 부채도, 장어구이도."

"천만에 미캉."

그때 대화하는 우리를 지켜보던 단발소녀가 주저하면서 물었다.

"저기...실례지만 여동생인가요?"

"아뇨. 친구의 여동생입니다만...?"

"아, 그러신가요? 축제 즐겁게 보내세요~"

"고마워요 예쁜 언니~"

"아하하..."



왠지 맥이 빠져 보이는 단발소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노점상을 떠났다.

장어구이는 미캉에게 대호평이었다.
저 노점상엔 무언가 특별한 비법이 있는듯 했다.
고리 던지기 상점으로 돌아가보니 이제 막 야미가 놀이를 끝내고
코테가와의 순서가 돌아온 상태였다.
미캉이 들고 있는 일회용기를 보며 야미가 물었다.

"유우키 미캉. 그건?"

"아까 료스케 오빠가 말한곳에서 산 장어구이.
하나 남았는데 먹어볼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대나무 이쑤시개로 장어구이를 집어 입안에 넣은 야미는 눈이 살짝 커졌다.

"...맛있군요."

"그렇지?
야미도 이걸로 간식을 하는게 어떨까?"

"코테가와 유이가 고리 던지기를 하는 동안 다녀온다면 괜찮겠네요."

"에...그럼 지금 바로 가는건가?"

이럴꺼면 넉넉하게 두개를 사오는게 나았을껄 그랬나?
미캉과 야미가 자리를 교대하고 다시한번 신사 입구쪽으로 향했다.



도중에 야미가 멈추며 가면가게를 보며 물었다.

"여러가지 가면이 있군요.
우주인의 얼굴을 본뜬 것인가요?"

"아니. 그냥 애니나 만화, 특촬물에서 나온 캐릭터들을 본떠 만든 가면들이야.
혹시 마음에 드는 가면이 있어?"

"...이 고양이 가면이..."

"응, 그럼 이걸로 주세요."

미캉때와 마찬가지로 잠시간의 실랑이를 벌인뒤 고양이 가면을 사서 야미에게 건네주었다.

그나저나...고양이 귀처럼도 보이는 악세서리.
고양이 같은 성격.
좋아하는 동물 고양이.
게다가 지금의 고양이 가면.
...사랑스럽구먼.
귀여운건 정의.



고양이 가면을 비스듬히 쓴 야미와 함께 세번째로 장어구이점에 도착하자 단발소녀가 애매하게 웃으면서 맞이한다.

"아...어서오세요.
그런데..."

야미와 나를 번갈아보면서 시시각각 얼굴이 묘하게 변하는 단발소녀의 상태를 걱정하며 재차 주문을 한다.

"장어구이 하나 부탁해요.
...그나저나, 어디 아픈가요?"

"아, 아뇨... 여기 장어구이 하나~"
"장어구이 하나 갑니다~
...에? 아까전 그 손님이잖아요?"

"아하하~ 그게 어쩌다보니 자주 만나네요..."

계속해서 같은 곳에 오는것도 민망한지라 볼을 긁적이고 있으려니
장어구이를 일회용기에 담아 단발 소녀가 야미에게 건넸다.

"가면과 장어구이 고맙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응? 아아...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네 야미.
그럼 장사 잘하세요~"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갑자기 단발소녀가 나를 부르며 멈춰세웠다.

"손님?"

"응?"

고개를 돌려보니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는 표정의 단발소녀가 보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만히 서 있으려니 주저하던 단발소녀가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자애를 울리면 안돼요?"

"아니, 그거 오해..."

"안돼요?"

"네..."

이해한다는듯이 상냥하지만 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두건 소녀에게 얌전히 수긍하고 물러났다.
고작 몇시간만에 나에 대한 인상이 커플에서 철없는 바람둥이 수준으로 내려가다니...
다음번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남자(리토)와도 함께 가서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야미와 함께 고리던지기 노점상으로 돌아갔다.



고리던지기가 끝나고 야미도 왠만한 놀이는 즐겨본터라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축제 분위기를 즐기기로 했다.
한쪽에서는 무대를 만들어서 빙고대회나 장기자랑을 하고 있기에 구경하면서 웃기도 했다.
축제의상으로 보이는 화려한 옷을 입은 아가씨가 텅빈 양산안에 손을 넣어 고양이를 꺼내는 묘기를 보이자 관객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방금전까지 장어구이를 팔던 단발 소녀와 친구로 보이는 소녀도 장기자랑에 참가해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며 축제 분위기를 북돋웠다.
맵시있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아기자기한 인형극을 선보일땐 아이들과 여성들이 굉장한 반응을 보이며 환호했다.
코테가와랑 미캉, 야미도 귀여운 인형들이 움직이는 모습에 흠뻑 빠져든 듯 보였다.

예상 이상으로 화려한 장기자랑에 한동안 시간가는줄 모르고 있다가 시장기가 느껴져 근처 노점상에서 먹을걸 찾아보았다.
문어빵(타코야키)과 떡꼬치(미타라시 당고)를 사먹으며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노점상의 줄이 끝나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이런...축제장소 구석까지 와버렸네?"

"축제에서 즐길건 이제 거의 다 보았죠?"

"......"

"야미, 뭘보고 있어?"

미캉의 말에 야미의 시선이 향한 쪽을 바라보니 벤치가 놓여진 공터에 연인들이 서로 손을 잡고 사이좋게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러브러브공원같은 분위기네...
알면서도 굳이 말해본다.

"여긴...커플들의 집합장소구나.
역시 축제라서 그런가?"

동의를 구하듯 셋을 바라보자 저마다 제각각의 반응을 보인다.
야미는 지긋이 커플들을 바라보며 진지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미캉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쳐다보고,
코테가와는 당황해서 시선을 둘곳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코테가와는 연상인데 가장 늦됨이군요.
진한 키스까지 하는 커플도 있으니 저런거엔 내성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는데...

어찌됐건 조금은 긴장을 풀어주는게 좋을까 싶어서 코테가와를 부른다.

"코테가와?"

"왜, 왜요 아키츠군?"

"저사람들이 신경쓰여?"

"그, 그런거에 흥미없어욧-!"

흥미 있네요.
더듬지만 않았으면 설득력 있었을겁니다.
야미와 미캉도 흥미있게 보고 있으니 딴곳으로 이동하기도 그렇고,
우선은 지나치게 저사람들을 의식하는 코테가와를 달랜다.

"너무 그렇게 정색하지 마.
서로 좋아하니까 자연스레 저렇게 되는거라고."

"자연스러운건가요...?"

"...아마도."

"아마도는 또 뭔가요?"

"초심자의 한계입니다."

그러고보면 설득하고 있는 나도 늦됨이라고.
우리 넷중에 연애해본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
코테가와는 기가 막히다는듯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키츠군의 말을 진지하게 들은 내가 바보같아요."

"저기, 그래도 긴장은 풀렸지?"

"뭐...어느정도는요."

좋은 평가는 못받았지만 목적을 달성한것에 만족하며 야미와 미캉에게 시선을 향하니 야미가 나에게 물어본다.

"아키츠 료스케. 당신은 사랑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응?"

"연애라는 감정...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알고 싶습니다.
뭔가...매우 소중한 감정이란 생각이 들어서..."

대답을 기다리는 야미를 보다가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려본다.
혹시 누구 대신 대답해줄 사람 없어?
코테가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는다.
미캉쪽으로 쳐다보니 부채로 얼굴을 슬쩍 가리고 있다.
귀엽긴 한데 지금 필요한건 도움이라고?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입니까?

별수없이 그냥 내 생각을 말한다.

"나는...서로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게 연애라고 생각해.
그 사람을 바라보는것만으로 행복하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울고 웃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게 사랑 아닐까?"

굳이 연인간의 사랑이 아니고 우정이나 가족애일수도 있지만.
어쩌다보니 이렇게도 저렇게도 정의될 말을 해버렸네...

"의미가 된다...입니까?"

나로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말을 듣고선 곰곰히 생각에 빠진 야미를 보니 약간 걱정이 되었다.
기억하기론 연애소설 쪽이야 야미가 찾아서 볼테니 난 다른 방면에서 조언을 해보자.
연애 쪽 조언은 못해주더라도 때로는 의외의 방향에서 출구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음, 생텍쥐페리의「어린왕자」에서 여우와의 대화를 읽어본다면 혹시나 도움이 될지도 몰라.
네가 바라는 연애와 맞진 않더라도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에 대해선 알 수 있을테니까."

"고맙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별말을..."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야미와의 대화를 듣던 미캉이 문득 생각난듯 말했다.

"아참! 잠시 후에 불꽃놀이가 벌어지잖아요?"

"어머? 그러고보니..."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행사입니까?"

이제야 기억났다는듯 반응하는 우리를 미캉이 이끌었다.

"이럴게 아니라 불꽃놀이 구경하기 좋은 곳으로 가요.
거리는 인파 때문에 구경하기도 불편하니까요."



미캉을 따라 거리를 걸은 뒤 한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축제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옥상에 도착하자 미캉이 입을 열었다.

"여기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에요.
불꽃놀이 볼때 좋은 곳이죠."

"헤에...이런 곳을 알고 있었구나 미캉?"

"옛날에 리토와 둘이서 왔을때 찾아낸 곳이죠."

유이가 축제거리를 내려다보며 신기해 하는것에 대답한 미캉은 걸어올라오느라 더웠는지 다시금 부채를 부치기 시작했다.
더운건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은근슬쩍 왼손으로 옷섶 끌어당기는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쇄골 뿐만 아니라 땀방울이 맺힌 가슴 한가운데가 죄다 드러나 보인다고?

요염한 자태속에서 느껴지는 배덕감이 마음을 쿡쿡 찔러댔기에 시선을 돌려 축제 거리를 바라보았다.
신사 입구에서부터 우리가 지나왔던 곳을 차례로 훑어보던중 무심코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라?"

"왜그래요 료스케 오빠?"

의아한듯한 내 반응에 미캉이 궁금한듯 물어오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말했다.

"아니, 유우키랑 사이렌지가 보여서."

"어디인가요?"

"그게...아까 지나왔던 연인들의 공터인데?"

"에?"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미캉이 바라보자
코테가와와 야미도 덩달아 연인들의 공터쪽을 쳐다본다.

노점상과 공터가 만나는 중간에 리토와 하루나가 서로를 마주보고 서있었다.
무언가 리토가 말하는걸 하루나가 듣는 모습이었다.
리토가 주먹을 꽉 쥐고 있는걸 보면 무언가 심각한 내용이 아닐까 싶었다.
...설마 고백인가?

"유우키 리토와 사이렌지 하루나군요.
마주보고 가만히 서있는데 무얼 하는 걸까요?"

"리토...설마?"

"설마...아, 아니. 라라가 있는데?"

야미와 미캉, 코테가와는 둘을 보며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것 같았다.
야미와 코테가와도 왠지 모르게 흥미진진한 눈빛을 보내는걸로 보아 연애쪽에 아예 무지하거나 흥미가 없는건 아닌것 같았다.
어떻게 될까 나도 궁금해서 바라보려는데 순간 하늘높이 솟아오른 불빛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타타탁-
퍼엉-

본격적으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불꽃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쁘다..."
"화려하네요."
"보기 좋죠?"
"멋지네. 그나저나..."

불꽃이 수놓아진 하늘을 향하던 고개를 내려 아래를 보니 어깨를 축 늘어뜨린 리토의 모습이 보였다.
고백 실패냐...

"...어째 잘 안된것 같지?"

"거절당한 걸까요?"

"그렇다기보단...아마도 불꽃 소리에 고백이 묻힌게 아닐까...?"

"한심해 리토..."

"사랑에는 상황도 따라줘야 하는군요..."

어째 불꽃놀이보다 연애사정에 관심이 더 큰 것 같다?
여하튼 화려하게 피던 불꽃도 어느새 하나 둘 짐으로써 축제의 끝을 알렸다.

건물을 내려가 리토가 있던 공터쪽으로 가니 라라와 리사, 미오가 온것이 보였다.
사람 몸만큼 커다란 상품더미를 든 라라를 보니 할말이 없었다.
명중률과 균형이 엉망인 총이랑 고리들로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까지 딸 수 있는거냐...
잠시 고민했지만 깊게 생각하면 패배이므로 신경을 끊었다.



축제가 파하고 야미는 리사와 미오, 하루나와 함께 돌아갔고, 미캉은 리토와 라라랑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이만 돌아가려고 코테가와를 불렀다.

"우리도 이만 돌아가자 코테가와.
집까지 바래다 줄께."

"아. 고마워요 아키츠군."

코테가와와 함께 인파속을 헤치며 신사 입구로 향하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축제 때 돌아다니면서 손이라도 잡아볼껄 그랬나?
고백에 실패한 리토를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군요.

약간 아쉬움을 느끼며 코테가와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있으려니
코테가와가 잠시 멈춰서며 무릎을 굽혀 발을 주무른다.
다리가 불편한가 싶어 허리를 숙여 물어본다.

"괜찮아 코테가와?"

"네, 괜찮아요.
단지 게다(유카타 신발)가 조금 불편해서 그런거에요."

하긴...목재로 된 신발로 계속 걸었으니 아프기도 할듯했다.
축제 여기저기를 돌면서 혹사한 발을 매만지는 코테가와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럼 조금 쉬었다가 돌아가도록 할까?
일부러 서둘러 돌아갈 필요도 없고 말야."

몇분 정도 쉬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겠지 싶어서
앉은자세로 코테가와를 마주보며 동의를 구하자
잠시 침묵하던 코테가와가 말했다.

"아키츠군..."

"응."

"방금전 내기...기억하고 있겠죠?"

"응? 아아. 기억하고 말고."

사격게임을 하면서 했던 내기 같았다.
미캉에겐 부채를, 야미에겐 고양이 가면을 사줬었지.
축제에 몰입하다보니 코테가와에게만 아무것도 해준게 없구나.
하지만 지금은 노점상도 다 철수했는데...
어떡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으려니 코테가와가 내 귓가에 얼굴을 대었다.

"...대신이에요. 집까지 업어다 주세요."

「내기니까...」

속삭이는듯한 코테가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둑한 밤길을 조용히 감싸는 달빛속을 걸으며 코테가와의 집으로 향했다.
등에 업힌 코테가와는 방금전부터 가만히 팔을 내 목에 두른채 침묵하고 있었다.
신사 근처 숲에서 매미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느껴지는 적막감은 의외로 나쁘진 않았다.

아무말 없이 걸음을 옮기길 몇분...
귓가에 코테가와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이번 축제는...정말로 즐거웠어요.
지인들과 이렇게 축제를 즐기는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거든요."

"나도 정말 즐거웠어.
경품을 따지 못한건 유감이었지만
축제에 와서 이렇게 기분 좋았던 적은 처음이야."

친구들과 함께 오는 축제는 몇년만인지 모르겠다.
근심없이 웃으며 축제를 맞이하는 것도...
싱글싱글 거리고 있으려니 코테가와가 약간 주저하듯 내게 물었다.

"아키츠군은...지금 행복한가요?"

"물론이지! 굳이 오늘 축제뿐만이 아니고,
수학여행이라든가 크리스마스 파티라든가...
학교 행사나 명절이 이처럼 즐거웠던적은 처음이야.
요즘들어선 좋은 일만 생기는것 같아서 오히려 걱정일 지경이라고?"

중학교때 깡패들과 사이좋게 주먹다짐을 하던 기억따윈 추억조차 아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코테가와나 미캉, 야미,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선배를 알게된 것.
친하게 된 동네 꼬맹이들과 상점가의 어른들.
고등학교부터 다가오기 시작한 따스한 만남은 정말이지 잊지못할 추억일꺼다.

"풋...긍정적이네요 아키츠군은."

"엥?"

왠지 모르게 킥킥대는 코테가와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내 말이 그렇게 이상했던가?
뭔가 잘못 말한게 있었나 고민하려니 코테가와가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노점상 아저씨와 알고 있는 사이 같던데 무슨일이 있었나요?"

"그게 말이지..."



고교입학 첫날에 상점가에서 겪었던 일을 코테가와에게 풀어나갔다.
기막혀하면서도 재미있게 듣는 코테가와에게 흥이 나서는
상점가 어른들과 알게된 사건 이외에도 동네 꼬마들과 친해진 이야기라든가
만화가인 유우키네 아버지께 사인북을 받은 이야기 등을 계속 이어갔다.



재미있던 경험을 이야기 하며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새인가 코테가와의 집앞에 도착했다.

"...벌써 도착했네?"

"고마워요 아키츠군. 이제 내려주세요."

"으응..."

자리에 주저앉고 조심스레 코테가와를 내린다.
내려선 코테가와가 물러나는걸 확인하고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내 볼에 무엇인가 부드러운 물체가 닿은게 느껴졌다.
시선을 돌려보니 축제에서 코테가와가 딴 고양이 인형이 나른한 표정으로 내 볼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코테가와가 고양이 인형을 내 볼에 누르고 있는거였지만.

아리송한 얼굴로 바라보자 코테가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업어준 답례예요."

"어...?"

"그럼, 잘자요 아키츠군."

코테가와가 손을 흔들며 집으로 들어갔다.
다른 한손엔 고양이 인형을 들고서...

문이 닫히는걸 바라보면서 고양이 인형이 닿았던 볼을 살짝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답례? 인형을 준다는 얘기 아니었어?

...뭐, 상관없나.

모처럼의 여름 축제를 여자아이들과 보낼수 있었기에 기분은 최고였다.
유카타 차림이 잘어울렸던 셋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휘파람을 불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사이난 고교의 스핑크스 문제.

문 : 아침엔 초등학생, 점심엔 중학생, 저녁엔 고등학생을 먹는것은?
답 : 아키츠 료스케.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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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유카타 차림

코테가와

미캉1

미캉2

야미



늦었습니다...-_-;
추석때 끙끙대서 생각해봤지만 소득은 없었고,
역시 직접 적으면서 하는게 진도는 나가는군요;
(노트에 필기하건, 텍스트를 두드리건)

축제때 소재로 생각해둔 만남들은 많았는데 중구난방이 될까 걱정되어 이하생략(...)
원작에서 하와이안 셔츠의 교장은 내보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뒤통수가 나왔던 저스틴은 노점상 대결을 생각해보다가 파기.
남자들끼리의 이벤트는 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쓰는 저도 재미가 없습니다-_-;

사키들은 원작에선 없었고
축제에 등장했던 인물들 전부와 만나는건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해서 팀을 적당히 나눴습니다.

료스케-코테가와-미캉-야미
라라-리사-미오(경품 게임에 빠짐)
리토-하루나(커플 분위기)

원래라면 리토가 의욕없이 벤치에만 앉아 있을경우, 하루나를 못 만날 가능성도 높습니다만...
화장실을 다녀오던중 만났다던가, 이동중의 하루나를 우연히 보았다던가...운이 좋다고 해야겠죠^^;
(원작에선 코테가와랑 대화하려고 벤치에서 일어나 있을때 미코시(가마행렬) 구경 인파에 휩쓸려서 하루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나저나 1학년때 그냥 넘어갔던 문화제,
2학년땐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요.
혹여나 연극제 같은걸 한다면 주어진 배역은 후크선장 정도겠지만...
한 15~20편 정도 더 진행된 뒤에 플롯이 잘 짜진다면 가을 문화제로 나올지도요.

...한참 남았네...-_-;


뭐, 개인적인 희망사항은 만화속에서 본편 내용과 상관없이 서비스 컷으로 주어지는 페이지를
가끔 이야기에 등장시켜 보는거죠=ㅅ=a
(이야기 전개상 활용 가능하다면 말이죠.)
근데 기억나는 서비스 컷은 죄다 미캉뿐이네요(...)



p.s.각자가 서로를 대하는 어조에 관해서.

(수정사항)미캉은 하루나의 경우에 이름으로 부르더군요.
(도중에 사이렌지 언니라고 하기도 하던데...번역본이었기에 그런걸까요?-_-;)
다른 이들에게 존칭을 붙이던에 아직은 미정.
미캉이 코테가와를 부를때는 코테가와씨나 코테가와 언니 둘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코테가와는 미캉에겐 평대.
원작에선 코테가와가 야미를 대할때도 평대에 야미짱이라고 부릅니다만...(107화쯤)
만나는 방식이 좀 달랐으니 어쩌겠습니까-_-a;

몇화쯤 더 지나고 나면 사이가 가까워져서 편하게 대하게 되었다 식으로 가지 않을까 합니다.
(한 대여섯편 안에 그렇게 되겠죠.)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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