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 10



- 빨간모자 -



"숲에서 빠져나가는 건 아주 간단하지(Exiting the forest is super simple)
그냥 길만 따라가면 돼~♪(All you do is follow these path turns)
대충 한 평생 동안만...(For the rest of your gaming life)"

숲의 오솔길을 따라 흥얼거리며 걷는 동안 목적지에 도착했다.
빨간모자의 할머니가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집.
뭐,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에서 숲에 있는 외딴집 하면 빨간모자의 할머니의 집 뿐이지.

입고 있는 늑대 옷을 확인하고 늑대머리 후드를 고쳐쓰곤 집으로 다가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톡톡

"할머니~♪ 빨간모자예요~♪"

달콤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엄마 심부름으로 맛있는 음식이랑 포도주를 가져왔어요~♪"

......

"...저기? 할머니? Grandma? 여보세요~?"

묵묵무답인 상황에 조금 당황해서 목소리를 바꾸는것도 잊고 다시금 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인기척이 났다.
문너머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두어번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양팔을 들곤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어흥~! 잡아먹을테다~!"

"......"

마주한 상대의 눈이 깜빡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상대가 입술을 달싹였다.

"...호랑이?"

"아니, 늑대라구. 보면 알잖아?"

"「어흥」하고 우는 늑대가 어딨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한숨을 쉰 여성이 붉은 눈으로 응시해왔다.

"하여튼, 늑대옷 차림으로 뭐하는거야 로우란?"

"...그러는 새초미 너야말로 어째서 여기 있어?"

흔들리는 토끼귀의 소녀, 새초미의 등장에 의문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얼떨떨히 서있다가 새초미에게 손을 잡혀 집안으로 이끌렸다.
얌전히 바닥에 앉자, 나를 마주한채 침대에 앉은 새초미가 물었다.

"그래서, 로우란 네가 『늑대』 역할인거야?"

"맞아. 악역이니까."

"그럼 어째서 늑대의 몸에 빙의하는 대신에 그런 늑대 인형옷 따윌 입은거야?"

"늑대모양 파자마도 늑대는 늑대니까."

"대충대충이네..."

"이런건 대충 구색만 맞추면 돼.
등장인물과 비슷한 점이 있으면 해당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건 너희도 이야기 나라에서 경험해 봤을거잖아?"

내 말에 이해가 간듯 새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모모타로 이야기 나라에선 닭의 정령인 키키가 꿩의 역할을 맡았으니까."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 나라에서 미미도 지금의 새초미와 같은 말을 했었지.
아무튼 새초미의 의문은 해결되었으니 이번엔 내가 질문할 차례로군.

"그러는 새초미 넌 어째서 빨간모자네 할머니 집에 있는거야?"

"내가 빨간모자의 할머니 역할이니까."

"세상에 너같은 할머니가 어딨어?"

"머리카락이 회색이라서 그런거 아닐까?"

"회색이라기 보다는 예쁜 은색이라고 생각하는데."

"으응, 고마워."

"그나저나 머리카락 색깔로 할머니 역할이라니, 예상밖에도 정도가 있어..."

"늑대 파자마 입고서 늑대역을 맡은 로우란이 할 말이 아닌것 같은데?"

피식 웃으며 지적하는 새초미에게 그저 멋적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요술 식탁보』(북풍이 준 선물)를 꺼내 식사를 차렸다.
할머니 집에 있는 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새초미는 반색하며 식탁에 마주 앉았다.
엄연히 적군 측인 나랑 마주 앉아 화기애애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지금껏 쌓아온 신용이 다소는 있다는거겠지.
여자나 아이 상대로는 적대행위를 삼가한다는걸 여러차례 강조한 덕분일지, 괴짜 NINJA라는 컨셉이 먹힌 덕분일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빨간모자는 언제 오는걸까?"

"아마 내일이 아닐까?
밤이 늦은 지금 숲에 들어올 생각은 안하겠지."

어둑해진 바깥을 한차례 살피곤 답하자 새초미는 잠시 머뭇거렸다.

"왜그래?"

"...저기, 로우란?"

"응."

"어째서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에 온거야?
동일한 이야기 나라에 반복해서 침략해 본다는 시도는 『백설공주』 이야기 나라로 충분했잖아?
그런데도 빨간모자 이야기 나라를 두번이나 찾아온건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어?"

새초미의 물음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대답할 말을 골라보았다.

"『빨간모자』는 결말이 바뀌어도 무사했던 이야기니까."

"뭐!?"

경악과 함께 새초미가 식탁을 치며 일어났다.
진정하라며 양손을 들어보이는 나를 당혹과 의문섞인 눈으로 노려보던 새초미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결말이 바뀌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 염소』의 결말은 알고 있어?"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 염소가 잠자는 늑대의 배를 가르고 잡아먹힌 아기 염소들을 구하는거지?
늑대의 배에는 돌을 대신 채워놓고 말야."

"전개가 『빨간모자』와 비슷하지?"

"...그러네."

동의하면서도 새초미는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의 『빨간모자』는 빨간모자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결말 뒤에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의 결말을 덧붙여진 세계거든."

"뭐?"

"'늑대의 배를 가른다.', '잡아먹힌 이를 구해낸다.', '늑대의 배를 돌로 채운다.'
여기까지 노골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차용했다고 티를 내는데 눈치채지 못하는게 이상하지.
『늑대』라는 등장인물의 공통점이 두 이야기를 위화감 없이 잇는 매개가 된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말야.

뭐, 어쩌면 결말 자체는 바뀌지 않았을지도 몰라.
빨간모자가 지혜를 발휘해서 늑대에게서 달아났다는 결말이 원래 『빨간모자』의 결말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애초에 빨간모자가 무사히 도망쳤다면 모를까, 늑대에게 잡아먹힌 뒤라면 빨간모자가 살아나는 결말따윈 없었겠지.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가 『빨간모자』의 결말을 덮어쓰지 않았다면 말야."

내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새초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로우란은 이곳에서 뭘하고 싶은거야?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가 섞인 『빨간모자』이야기가 어느 정도까지의 변화를 허용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그 말대로라면, 로우란은 빨간모자 이야기를 최대한 엇나가게 진행하려고 하는거지?"

"...응, 뭐...그렇지."

내 대답에 결심한듯 새초미는 자신만만하게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럼 난 최대한 원래의 이야기대로 흐름이 이어지도록 할거야. 로우란을 방해하면서 말야."

그렇게 대놓고 선언하면 반응하기 곤란합니다만?

"뭐, 좋아. 지혜를 겨루는 대결이라면 나도 사양하지 않을테니까.
슬기로움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에게는 거기에 응해주는게 악역의 도리겠지.
힘이면 힘, 지혜면 지혜! 뭐든 좋다구.
나는 힘밖에 모르는 난폭하고 무식한 사령 몬스터와는 다르니까."

"...로우란은 의외로 분위기를 잘 타는구나?"

"악당의 미덕에 충실할 뿐이라고 해주지 않을래?"

머쓱해하는 날 보곤 새초미가 싱긋 웃었다.




밤이 늦었기에 이만 잠자리에 들었다.

"늑대옷은 갈아입지 않는거야?"

"이걸 벗으면 늑대가 아니게 되잖아.
나는 늑대로서 행동해야 한다구."

"잘 때까지 그러진 않아도 되잖아?"

"...실은 여벌옷이 없어.
예전에 네가 준 파자마는 입기엔 낡아버렸거든."

"벌써?"

"『알라딘과 요술램프』에서 입고 지냈거든."

"...아."

새초미는 뭔가 깨달은듯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 속에서 30년이나 세월이 흘렀으니 옷이 낡아버린게 당연하지.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는 새초미의 모습에 피식 웃곤 손을 저었다.

"자업자득이니까 신경쓰지마.
아무튼 그런 이유로 지금은 갈아입을 옷 따윈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새초미의 손에서 빛무리와 함께 토끼장식이 달린 나선무늬의 요술봉이 나타났다.
요술봉 끝에서 노란 별과 분홍색 빛줄기가 방을 가득 채우며 튀어올랐다.
빛이 사라지자 새초미의 손에는 옷 한벌이 들려있었다.

"이거 줄께."

"아...고마워."

새초미가 건넨 옷을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고양이 발자국 무늬가 찍힌 파자마네.


구석에서 갈아입고 돌아온 뒤에는 잠자리를 두고 새초미와 짧은 실랑이가 있었다.
내가 바닥에서 자겠다는 제안을 새초미는 단칼에 끊었다.

"침대는 충분히 넓어. 그리고 바닥은 지저분해.
애써 만들어준 파자마를 더럽힐 셈이야?"

손가락을 까딱까닥하며 이리 오라는 표시에 얌전히 침대 위로 올랐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침대에 함께 자는 편이 나로서는 기뻤으니까.

침대에 새초미와 마주보며 옆으로 눕자 새초미가 키득 웃었다.

"혹시 이상한 생각 하고 있어?"

"...설마."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자 새초미의 눈에 장난기가 돌았다.

"늑대씨, 늑대씨."

"왜?"

"늑대씨는 왜 그렇게 귀가 커?"

"엣, 그러니까...네 말을 더 잘 들으려고?"

"늑대씨는 왜 그렇게 눈이 커?"

"너를 더 잘 보려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고, 이불 밑으로 가만히 내 손을 맞잡는 새초미의 손길이 전해졌다.

"늑대씨는 손도 참 크네."

"...너를 더 잘 잡으려고."

"입도 굉장히 크잖아?"

"너를 더 잘 잡아먹으려고!"

"아하하하하~!"

벌떡 몸을 일으키며 위협하자 새초미가 웃음을 터뜨리며 발버둥쳤다.
가벼운 힘으로 어깨를 잡힌채 침대에 눌려 바둥거리던 새초미와 눈이 마주쳤다.

"안 잡아먹을거야?"

"어?"

얼빠진 얼굴로 답하는 내게 새초미가 한차례 웃었다.

"로우란은 늑대잖아?"

새초미가 장난스레 물었다.

"빨간모자가 오기 전에 할머니를 잡아먹어야 하잖아?"

"그건 원래 이야기잖아."

"잡아먹지 않는거야?"

"그래. 나는 이야기에 순응하지 않는 나쁜 늑대니까."

"이상한 말..."

새초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밤이었다.

...그런 탓인지 나도, 다음날 상황을 예상할 순 없었다.




"로우란! 너 거기서!"

"쫓아오지 않으면 멈출께!"

"무리야!"

"거기선 안쫓는다고 해라!?"

난데없이 대낮부터 집안에서 새초미와 술래잡기를 하는 처지가 될 줄은 몰랐으니까.
새초미의 돌격을 숨가쁘게 피하면서, 술래잡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시간은 정오.

"...빨간모자가 늦네."

"그러게."

늑대 파자마로 갈아입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너무 늦어!
벌써 정오가 되었는데도 안와!
어째서 이렇게 늦는거야?
설마 아직까지도 찡찡이랑 놀고 있는건 아니겠지?
강다리, 키키, 미미는 대체 뭘하고 있는거람.

"혹시 로우란 네가 빨간모자한테 뭔가 한거 아냐?"

"뭐든 내 탓으로 돌리는건 좀 봐주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늦잠 자고 있는걸지도 모르잖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구."

의심스러운듯 쳐다보는 새초미의 시선에 억울한 듯 항의했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슬슬 조바심을 드러내던 새초미가 뭔가 떠오른듯 손바닥을 두드렸다.

"로우란, 로우란."

"왜그래?"

"어쩌면말야,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빨간모자가 안 오는게 아닐까?"

"그게 무슨 말이야?"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먹히지 않았으니까 빨간모자가 안오는거야."

"아니, 그 논리는 이상하잖아."

내 딴죽을 무시하고 새초미가 말을 이었다.

"원래 『빨간모자』이야기 대로라면,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먹힌 뒤에 빨간모자가 찾아오잖아.
그러니까 아직까지 빨간모자가 오지 않는건, 아직까지도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먹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걸 인과관계로 묶는건 이상하지 않아?
애초에 둘은 별개의 사건이라구."

"하지만 여긴 이야기 나라니까, '이야기의 순서'가 인과로서 성립할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면 부정하기 어려운걸."

"그러니까 로우란! 나를 먹어!"

"싫습니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네.
술래잡기의 원인을 떠올리곤 눈앞에서 으르렁거리는 새초미를 살폈다.

"순순히 먹어줄 생각은 없어 로우란?"

"없어. 내가 왜 새초미 널 먹어야 하는데?"

"애초에 늑대 역할인 로우란이 날 잡어먹지 않으니까 아무 사건도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날 닥달하곤 새초미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게다가 어제 내가 말했지?
난 최대한 원래의 이야기대로 흐름이 이어지도록 할거라구!"

"...그래서 나에게 먹히겠다?"

"이것이 나의 각오야!"

"누가 거기까지 하라고 했어!?"

"시끄러! 먹어라!"

"으아아!? 잡아먹힌다!"

"네가 먹는쪽이잖아!"

"누군가! 도와줘~~~!!"

"야! 너 거기서! 여자애를 부끄럽게 만들 셈이야? 아앗!?"

콰당!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덤벼들던 새초미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새초미의 모습에 놀라서 뜀박질을 멈추고 되돌아왔다.

"괜찮아 새촘아?"

쓰러진 새초미를 부축해 일으키는데 새초미의 손이 움직였다.

꽉.

"잡았다..."

"엑?"

"가만있어."

무릎을 굽힌채 부축하던 날 새초미가 껴안았다.
뻣뻣하게 굳어선 옴짝달싹 못하게 된 내 귀로 새초미가 속삭였다.

"날 먹어."

"내키지 않아."

"부탁할께."

"그런걸 내게 부탁해도..."

"...조금 정도는 내 부탁을 들어줘도 좋잖아.
가끔은 변덕을 부려도 괜찮잖아?
로우란은...나쁜 늑대니까."

"......"

이 녀석은 치사해.
장난스레 부탁을 말하는 주제에 훌쩍이는거 말야.

새초미의 어깨를 잡아 몸을 밀어내곤 새빨간 새초미의 눈의 마주봤다.

"...좋아. 네가 바란다면 잡아먹어주겠어.
빨간모자를 먹기 전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화색을 띄는 새초미에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방식은 내 방식대로 하겠어."

"어?"

그대로 새초미를 안아들고 침대에 뉘였다.
침대에 누워 날 올려다보는 새초미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먼저 말해두지.
이제와서 무섭다고 말해도 그만두지 않을테니까."

"......"

새초미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조심스레 내 귀를 쓰다듬으며 새초미가 중얼거렸다.

"...할머니의 귀는 왜 그렇게 커...?"

그게 네 대답이구나.
새초미의 물음에 한차례 눈을 감았다 떴다.

"...상냥한 네 목소리를 더 잘 듣고 싶어서."

귀를 만지던 손이 눈가를 어루만졌다.

"할머니의 눈은, 왜 그리 커?"

"어여쁜 네 모습을 더 눈에 담고 싶어서."

천천히 새초미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참 크네."

"너의 온기를 더 잘 느끼고 싶으니까."

"입도 굉장히 커졌잖아?"

"가까이 있으니 그렇게 느껴지는 거란다."

"얼굴...가까워 할머니."

"...그야, 너를 잡아먹으려 하니까."

지이익

늑대 파자마 앞섶의 지퍼를 내리는 소리에 새초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똑똑똑!

"「「!?」」"

"할머니~! 있어~?"

문 밖에서 빨간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해가 왔군.
새초미는 숨죽인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잠시 생각하다가 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 주겠니?
곧 끝난단다."

"엣, 잠깐, 로우, 읍?"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하는 새초미의 입을 막았다.

"쉿, 여기까지와서 그만둔다는 선택은 없다구?"

"...할머니?"

밖에서 의아한듯 부르는 빨간모자의 소리에 화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할머니는 조금 볼 일 중이니까, 미안하지만 조금만 밖에서 기다려주렴."

"......"

빨간모자는 대답이 없었다.

삐걱

"어?"

드드득- 우직!
문 손잡이에서 나는 심상찮은 소리에 당황해서 불렀다.

"저, 저기 빨간모자야? 할미를 보고싶단 마음은 알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지 않으련?"

"할머니 목소리가 아니잖아!!!"

콰직! 벌컥!

힘차게 문이 열렸다.

"「「「......」」」"

부서진 문고리를 쥔채 푸른 눈동자를 부릅 뜬 빨간모자.
그리고 침대 위에서 새초미의 입을 틀어막은채 위에 올라탄 나(늑대).
빨간모자의 손에 들린 바구니가 떨어졌다.

"할머니한테서 떨어져!"

순식간에 덤벼든 빨간모자의 다리가 크게 휘둘러졌다.

빠악!

"큭!"

우당탕!

침대밖으로 구르는 날 뒤로하고 빨간모자는 새초미를 부축했다.

"할머니! 괜찮아!?"

"괘, 괜찮아 빨간모자."

새초미를 등뒤에 숨긴 채 날 노려보는 빨간모자를 보곤 입가를 훔치곤 일어섰다.

"흥, 빨간모자가 오기 전에 할머니를 잡아먹으려 했는데 귀찮게 됐군."

"너...! 뭐하는 짓이야 이 똥개야!"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빨간모자에게 코웃음치곤 정정했다.

"하! 누가 똥개라는거냐? 이 몸은 개가 아니라 늑대다!"

"...뭐?"

"너랑 네 할머니를 잡아먹기 위해서 지금까지 얌전히 있었던거라구."

"너, 너...! 날 속였구나!"

"속이고 자시고간에, 애초에 애완견으로 삼는다면서 다짜고짜 끌고온게 누군데그래!"

"으윽...!"

이를 갈며 분해하던 빨간모자는 등뒤에 선 새초미에게 사과했다.

"할머니 미안해. 내 탓에 할머니를 위험하게 만들어버렸어."

"아, 아냐! 빨간모자는 나쁘지 않아! 나쁜건 저 늑대라구!"

당황하며 빨간모자를 달래는 새초미.

"눈물겨운 가족애로군. 그래봤자 소용없지만."

"뭐?"

"그야 너희 둘 모두 사이좋게 내 뱃속에 들어갈 운명이니까.
마지막 배려로 내 뱃속에 들어갈 순서 정도는 정하게 해주지. 아하하하하!"

분한듯 노려보는 빨간모자를 보곤 피식 웃었다.

"뭐야? 그 눈은?
네가 먼저 잡아먹히고 싶으냐?"

"그, 그래! 할머니에겐 절대로 손대지 못하게 할테니까!"

"아, 안돼!"

빨간모자의 결심에 새초미가 당황해 앞으로 나섰다.

"할머니!? 위험해!"

"빨간모자보다 날 먼저 먹어! 안그러면 이야기의 순서가...!"

"...할머니..."

새초미의 외침에 뒤에 선 빨간모자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할머니에게 손대게 하진 않아! 부탁이야. 할머니 대신 나를 먹어!"

"아, 안돼!"

"어째서야? 나는 할머니를 지키고 싶은데...!"

"에... 그치만 그럼, 이야기 나라가... 아무튼 안돼!"

"영문을 모르겠어 할머니!"

아니, 그 장면에선 적어도 빨간모자가 소중하니까라고 말해라. 할머니잖아.
새초미의 대답에 빨간모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빨간모자와 새초미 사이에 누가 먼저 나(늑대)에게 잡아먹힐 것인지 말다툼은 계속되었다.
새초미는 원래 이야기대로 할머니인 자신이 먼저 늑대에게 잡아먹혀야 한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빨간모자는 자신이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하는지를 언급하며, 자신이 먼저 잡아먹히겠다는 주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부탁이야! 우리 할머니를 잡아먹는 대신에 나를 먹어!"
"안돼! 빨간모자 대신 날 먹어!"

빨간모자의 푸른 눈동자와 새초미의 붉은 눈동자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나야! 나를 먹어!"
"안돼! 나를 먹어!"

빨간모자가 새초미를 가리키며 외쳤다.

"할머니는 주름투성이니까 맛이 없을거야! 그러니 날 먹어!"
"뭐, 뭐라구?"

발끈한 새초미가 빨간모자를 삿대질하며 외쳤다.

"빨간모자 같은 어린애는 풋내가 날거야! 그러니 날 먹어!"
"뭐, 뭐야!?"

"내가 뭐 틀린말 했니?"
"이, 이...!"

부들부들 떨며 서로를 노려보는 빨간모자와 새초미의 모습에 질려 둘을 말리기 위해 손을 들었다.

"자자, 이제 그만 진정하라구.
어차피 조손 모두 사이좋게 나한테 먹힐 처지인데, 사이좋게 지내자구. 응?"

"그럼! 너는 어느 쪽이 좋은데!"
"맞아! 누가 더 좋은거야!"

"엣?"

둘 사이에 튀던 불똥이 내게 옮겨붙었다.

"애초에 네가 순서를 정하라니 뭐니 하니까 이렇게 된거 아냐!"
"그래! 무슨 강건너 불구경 하듯 나몰라라 하고 있어?"

눈을 부릅뜨고 따지는 둘의 박력에 밀려 뒷걸음질쳤다.

"자! 말해봐!"
"누가 먼저야?"

"지, 진정해! 순서 같은건 아무래도 좋잖아?"

"거짓말하지마!
난 금발에 푸른눈이고, 할머니는 은발에 붉은 눈이잖아!
애초에 타입이 정반대라구!"

"내쪽이지?
내 눈이 보석 같다고, 내 머리카락이 예쁘다고 말했잖아?"

"아니, 내쪽이지?
애초에 애완견이 된것도, 네가 내 금발 푸른눈에 헤롱헤롱해서 날 따라온거잖아?"

...죽을 맛이다.

선택을 강요하는 둘에게 끙끙대고 있던차에 툭하고 새초미가 중얼거렸다.

"...말했던 주제에."

"응?"

"무섭다고 말해도 그만두지 않겠다고 말했으면서."

"......"

빨간모자의 눈이 험악하게 빛났다.

"아, 그래! 그랬었지! 하하하! 그래. 역시 말을 번복할 순 없으니까!"

"이겼다!"
"으그극..."

새초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빨간모자는 분한듯 신음을 흘렸다.

어째서 이런걸로 분해하는지 나야말로 영문을 모르겠다.

아무튼 고민을 털어내고선 새초미의 손을 잡았다.

"자, 그럼 방금전의 계속을 해보자구."

"아, 으응."

시선을 피하는 새초미의 손을 잡고 이끌던 차였다.

꾹꾹.

내 파자마를 붙잡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저기..."

"응?"

빨간모자가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너...딸기 케이크 먹을 때, 맛있는 딸기는 먼저 먹는 쪽? 아니면 나중에 먹는 쪽?"

빨간모자의 질문에 새초미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이젠 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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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10화 빨간모자편 중(中)편을 올립니다.

일단 평일중에 퇴고하고 이번주 수요일까지는 다듬어서 10화 제대로 올리겠습니다.

빨간모자 후반부는 용량은 확보할만큼 썼는데 글로 다듬어진 수준까지는 아니라서 하(下)편으로 따로 올리겠습니다m(_ _)m;



그리고 이불이는 청출어람 11화 다듬으면서 1화부터 정주행 해보려 합니다.

에피소드별 내용은 기억하고 있지만, 소소하게 깔아둔 밑밥이랑 각 편마다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다 기억하는건 아니라서=ㅁ=;

(전체 플롯이나 소재를 적어둔 노트는 있지만, 솔직히 각 에피소드 시점에서 각각의 인물들의 심리까지 세세하게 적어두진 않은터라...;)

등장인물들 서로 간의 심리상태 , 후반부 전개와 관련된 대화 같은걸 재확인한 뒤에 이불이 55화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주말 마무리 잘하세요~!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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