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흡연자와 비흡연자에게 미치는 피해는 이처럼 심각하며...」



"금연하세요 아키츠군."

"네?"



수업 중 흡연의 폐해에 대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강 건너 불구경하듯 흘려 넘기자 쉬는 시간에 코테가와가 한 말이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코테가와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아키츠군, 지금 담배 가지고 있죠?"

"응? ...어, 그렇긴 한데..."

상의 겉옷 안쪽 포켓에 들어 있는 담뱃갑을 손가락으로 톡 쳐본다.
내 행동을 보고 대충 짐작을 했는지 코테가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본다.

"아까 수업에서 흡연의 위험성에 대해서 들었겠죠?
지금까진 아키츠군이 학교에서 담배를 피운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지적하지 않았었지만, 역시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
그러니까, 금연하세요 아키츠군."

"에..."

자연스레 곤란한 얼굴이 나와버린다.
애초에 흡연 같은 걸 하지도 않으니 금연 운운은 문제가 되진 않는데
몸을 보호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조금 전 대화를 들었는지 클래스메이트들이 하나둘씩 우리 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기 봐, 아키츠군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어.」
「코테가와씨가 금연하라고 하던데?」
「그렇다곤 해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말할 줄이야...」
「아키츠군은 어떻게 대응할까?」

...그걸 몰라서 문제입니다.
이 요구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순순히 안 피겠다고 해도 다음번에 담뱃갑을 들고 있는게 걸리면 수습할 수 없을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담배를 안 피는건 정말이지만 담뱃갑을 가진채로 얘기하면 설득력이 없는데...
...그래도 솔직히 흡연은 안한다고 말해볼까?

"저기...코테가와?"

"뭐죠?"

"나, 담배는 가지고 있지만 피지는 않아."

"......"

입을 다물곤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코테가와.
클래스메이트들조차 못들을걸 들었다는듯한 시선을 보내온다.

「들었니?」
「담배를 가지고 있지만 흡연가가 아니래?」
「믿겨지니?」
「아니, 전혀.」
「너 오타쿠 부정할 때 했던 말과 비슷한데?」
「...애니메이션은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라고!!」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또 있네요.」

괜히 말했다...
오히려 의심만 더 북돋울 뿐이었구나.
코테가와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아키츠군은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거군요."

"음...그렇지 뭐."

"그럼, 담뱃갑을 꺼내 보겠어요?"

"...응?"

"담뱃갑이 개봉되지 않은 새것이라면,
담배를 피지 않는다는 아키츠군의 말을 믿도록 하겠어요."

"......"

식은땀이 등뒤를 타고 흘러내린다.
담배를 피지 않는다곤 하지만 하루에 한번은 의식에 가깝게 담배를 입에 물곤 한다고.
불은 안붙이지만...
게다가 지금 포켓에 들어있는 건 지난주에 산 담뱃갑.
이미 개봉되어 몇개비를 소모한 상황인데, 지금 보이면 빼도박도 못하고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는건 시간문제다.

머뭇거리는 내 모습에 코테가와가 버럭 화를 내며 내 상의쪽으로 손을 뻗어 왔다.

"계속 딴청을 피운다면 직접 확인하겠어요!"

"엑?! 꺄악~!"

설마 이렇게까지 저돌적으로 나올줄은 몰랐는지라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러버렸다.
어울리지 않게 고음으로 내지른 비명에 소리친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포켓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던 코테가와는 비명을 듣자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코테가와는 얼굴을 새빨갛게 하면서 외쳤다.

"무, 무슨 반응이 그래요?!"

아니, 갑작스레 여성이 가슴께로 손을 대어오면 누구나 놀란다고 생각합니다만...
방금전 비명은 확실히 뭔가 어긋나 있었지만.
불량의 가슴에 손을 얹은상태로 얼굴을 마주한 풍기위원의 모습은 클래스메이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나보다.

「까야~코테가와씨 대담해~」
「저렇게 거리낌없이 손을 집어넣을 줄이야...」
「과연 코테가와씨.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태연히 해주는군! 동경해!」
「거기가 저려왔다!」
「「「변태!」」」

주변의 소리를 들었는지 코테가와는 안그래도 붉은 얼굴이 더 달아오르면서 황급히 손을 빼냈다.
그 와중에서도 포켓에서 담뱃갑을 꺼낸건 정말로 대단한 프로정신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드러나게된 이미 개봉된 상태의 담뱃갑.

설사 코테가와가 원래 담배 개비수를 모를지라도, 담뱃갑 안에 빈공간이 명백히 보이는 상황에서 할 생각이란 뻔했다.
담뱃갑을 보던 코테가와가 눈매를 날카롭게 하곤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역시 피고 있잖아요!"

"자, 잠깐. 오해다. 침착하게 이야기하면 안다."

"웃기지 말아요!"

격앙해서 소리치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깨갱-」소리가 날듯 목이 한껏 움츠러 들었다.
지켜보던 클래스메이트들 중 리토도 질린듯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어이, 아키츠...여기까지 와서 변명하는건 무리라고...?"

"남자답게 인정하라구~"
"맞아맞아~"

리사와 미오까지?
...하긴, 나였더라도 이 상황에서 믿어주진 않았을꺼다.
그냥 얌전히 인정하자.
어차피 흡연 소문이야 예전부터 있었던거고, 이제와서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테니.

"더 이상 할말이 있나요 아키츠군?"

"...없습니다."

기가 죽어버린 나를 바라보던 코테가와는 푹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키츠군을 탓하는건 아니에요.
클래스메이트들의 건강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학교 내에서 흡연에 주의하고 있는것도 알고 있고요.
다만, 지금 이걸 압수하는건 아키츠군의 건강을 걱정하기 때문이란걸 알아주었으면 해요."

"어, 으응...고마워."

걱정하는 시선에 깃든 상냥함에 황망히 고개를 주억거릴 따름이었다.

그래...코테가와의 걱정과 위로도 받았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차피 수염이랑 다르게 담뱃갑은 바로 보충이 가능하잖아?
그냥 담배 없이 생활해보고 혹시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다시 사면 되지 뭐.

내가 얌전히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자 코테가와도 안심한듯 미소지었다.
리토와 하루나, 라라, 리사, 미오도 어깨를 토닥이며 저마다 격려의 말을 한마디씩 했다.

"이번 기회에 금연해보라구."

"역시 건강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몸에 안좋다니까 끊게되어서 정말 잘됐네~"

"금연은 정말 힘들다던데 힘내 아키츠군~"

"코테가와씨에게 멋진 모습 보여주라고~"

"어째서 저인가요?!
뭐...자신의 몸이니까 좀 더 소중히 하도록 해요 아키츠군."

"...고마워 모두들."

나... 담배는 안피지만.
그래도 모두들 고마워~.

졸지에 흡연자로 인식된 어색함과 친구들의 격려에 대한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고
표현하기 곤란한 미소를 지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수업이 끝나고 귀가를 하면서 반나절 동안 아무일도 없었다는데 우선 안심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 하루에 2~3번 꼴로 위험한 경험을 했던것과 달리,
양아치 스타일을 고수한 뒤로는 1년에 손에 꼽힐 정도만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물론 위험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튕겨나가는 운전사 분들이지만.
애꿎은 아저씨들 몸걱정, 보험걱정, 직장걱정을 대신 해주느라 열심히 자동차를 피하던 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중학교 1,2,3학년을 거치면서 악명이 쌓일수록 사고 발생률은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깡패들과의 패싸움도 사고라면 사고지만 제외하기로 한다. 그걸 치면 초등학교 때보다 훨씬 사고 발생률이 잦다고...)
고등학교 들어선 사고의 위험성도 많이 낮춰 졌는지 공사장 철근 낙하라든가 교통사고 같은 사고는 한번도 겪은적이 없었다.

며칠동안 상태를 보고 담배를 들고 다니는 것도 그만둘까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으려니
도로에 강아지 한마리가 갑자기 뛰어드는게 보였다.
나비에 정신이 팔린것인지 다가오는 자동차도 눈치채지 못한듯 했다.
이런...!

놀라는 주위 사람들속에서 뛰쳐 나가며 도로 한가운데 선 강아지에게 달려갔다.
갑작스레 잡아온 내손에 놀란 강아지가 짖는게 들리고 바로 옆까지 다가온 자동차가 보인다.

으라차!

잽싸게 도약하며 차들을 넘어 건너편 인도로 뛰어내린다.
돌발 상황에 브레이크를 밟은 방금전 자동차 운전자와 혼란스러워진 도로에 대처하기 곤란한 나머지
조금 멀리까지 도망친 뒤 강아지를 내려다 보았는데...
구해준 은혜도 모르고 쉴새없이 손가락을 깨무는 멍멍이.

...저스틴을 깨물던 그 멍멍이인가?
역시 난 이곳 개들과는 안 맞아...
한숨을 쉬며 멍멍이를 길에 내려놓고 떠났다.



그나저나 강아지가 무사한건 다행인데...
괜히 도로에서 '자동차'와 충돌 위기를 겪었다는 것이 신경쓰인다.
아니, 내쪽에서 먼저 자동차 앞으로 뛰어들었으니 너무 과민한 반응인가?
하지만...으응...

대답이 안나오는 상황에서 끙끙대며 걷고 있으려니 건물 사이의 골목길에서 무언가 불온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그러니까 우린 흥미 없다니까?」

「그런말해봤자. 함께 놀아보자구~」
「좋잖아. 그러지 말고 우리랑 함께 놀자구.」

겁먹은듯한 여자아이의 목소리와 휘파람을 불면서 설득하는 남자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대착오적인 헌팅남들이구먼...
여자애들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설득이 통할것 같냐?
난처한 상황을 도와주면서 방금전 고민도 해결할 겸 해서 골목에 들어서려 하자 또 다른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더이상 억지 부리면 가만있지 않겠어?」

「에~ 가만있지 않으면 어쩔건데?」
「오오~ 무서워! 겁주지 말아줘~」
「너희 언니라도 데려 오려구?」

「아, 아키츠군에게 일러줄꺼야!」

...엥?

예상치 못하게 들려온 나의 이름에 발걸음을 뚝 멈춰버렸다.
어째서 갑자기 내 이름이 나와?
...혹시 내가 아는 여자애인가?
당황해서 잠시 멈칫한 사이에 놀란듯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키츠라고?」
「설마...그 아키츠 료스케?」

「그, 그래! 우리에게 손이라도 하나 까딱했다간 아키츠군이 가만있지 않을꺼라고!」

「너희들...혹시 아키츠의 여자친구냐?」

「?! 마...맞아!」
「그, 그러니까 더이상 귀찮게 굴지 말라고!」

「어이, 이거 정말일까?」
「그, 글쎄? 그 녀석 애인이란 애들이 워낙 많아서...」
「거짓말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대려던 녀석들은 아키츠 놈에게 한명도 남김없이 박살났다고.」
「아키츠 녀석...! 설마 이 동네 여자아이들은 전부 다 먹어 치운건가!」

아냐... 난 무죄라고.
더이상 놔뒀다간 정말로 별의별 소리를 지껄일것만 같았기에 이만 이야기를 멈추기로 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발걸음 소리를 들은 녀석들과 소녀들이 나를 바라보고 놀란다.

"이런 곳에서 뭘하고 있어?"

"엑?!"
"아...아키츠군?"

놀란듯 하면서도 나를 알아보는 소녀들의 목소리에 시선을 향해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같은반 클래스메이트이며 하루나와 같이 테니스부에 속해있는 두명의 소녀들.
한명은 단발 머리로 좌우로 내린 머리칼에 머리핀을 2개씩 꽂고 있는 소녀.
다른 한명은 투 사이드 업으로 한 장발을 리본으로 장식한 안경을 쓴 소녀.
둘이서 함께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아이들인데 정작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조용히 상황을 넘기려고 아는체를 한다.

"오늘은 테니스 부활동은 없었나보네?
아무튼 이만 가자. 사이렌지도 기다린다고."

"에...? 으, 으응."
"하루나를 기다리게 하면 미안하니까..."

내쪽으로 다가오는 두 여학생들에게 길을 비켜주면서 남자들이 신음소리를 낸다.

"...정말이었잖아?"
"그러니까, 반반하다 싶은 여자애들은 다 건드렸다고..."
"크..."

안 건드렸어.
100명과 잤다는 소문 때문에 별 희안한 얘길 다 듣게 되는군.
내심 한숨을 쉬며 여자애들이 내 등뒤로 물러서자 남자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눈이 마주친 남자들이 움찔하며 변명을 한다.

"미, 미안. 모르고 한일이야."
"우린 그냥 얘기나 좀 하려고..."

"아아, 그건 됐고."

도중에 말을 끊는다.
영양가 없는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무난히 해결됐는데 괜히 주먹다짐을 해서 여학생들을 겁먹게 할 수도 없고.
그저 지금 내가 필요한건 하나다.

"그건 그렇고...너희들, 담배 있냐?"

「「「에?」」」

"없어?"

"아, 아니! 여기..."

어리둥절하면서도 주춤주춤 담뱃갑을 내민 남자로부터 담배 한개비를 집어들고 돌려준다.

"땡큐~.
그리고 다음번엔 이런 일로 만나진 않길 바래."

당황한 남자들에게 주의를 주고 여학생들을 데리고 골목을 빠져 나왔다.



여자애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듯 내 뒤를 따라 조용히 걸어 왔다.
어느정도 골목과 거리가 멀리 떨어졌다 싶어서 잠시 멈춰 뒤로 돌았다.
약간 겁먹은 듯한 시선의 여학생들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방금전 녀석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겠지.
그럼 이제 돌아가도록 해."

"저, 저기..."

"응?"

주저하면서도 무언가 말하려는 단발 소녀에게 시선을 보내자
무서웠는지 살짝 시선을 피하면서 인사해왔다.

"고, 고마워..."

"방금전엔 고마웠어..."

단발 소녀에 이어 장발 소녀도 감사의 인사를 해오자 살짝 놀랐다.
저번에 귀신 소동 때문에 눈만 마주치면 피하려던 여학생들이었기에
이렇게 답례까지 들을 줄은 생각못했다.
그래서인지 목덜미를 쓰다듬은채로 약간 더듬으며 대답했다.

"에, 그러니까...천만에요? 아하하..."

이상한 표정으로 웃으며 답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두명.
이윽고 단발 소녀가 궁금한듯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테니스부인거 알고 있었구나?"

"응? 어...사이렌지와 테니스 코트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봤었거든."

"아! 그래서..."

이제 알았다는듯 시원한 표정을 짓는 단발 소녀를 보며 얘기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사이렌지가 기다린다는 건 거짓말이었다고?"

"알고 있어 그정도는~"

"하루나의 이야기가 나왔을땐 놀랐지만..."

두 소녀의 대답을 듣고 괜한 노파심이었다고 생각하곤 말했다.
혹시나 이런 일이 또 있다면 곤란하니...

"그리고 만약에 방금전 같은 상황이 또 생기면
아까처럼 내 이름을 대도록 해.
어차피 이 거리 불량배들은 한번씩 아픈꼴을 당해본 탓에
함부로 건들진 못할꺼라고."

예전처럼 불량서클 규모로 불량배들이 모여있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지금처럼 2~3명 이하로 몰려다니는 불량배들이 그렇게 간큰 행동을 하리라곤 볼 수 없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두명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비쳤다.
어쩔줄 몰라하는 듯한 모습으로 둘이서 눈빛을 주고 받더니 조심스레 나에게 물어온다.

"저, 저기 아키츠군?"

"왜그래?"

"설마...골목길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 들었어?"

"응? ...응 뭐, 난 귀가 밝은 편이라서..."

볼을 긁적이며 대답하는 나에게 창피한듯 얼굴이 빨개지는 두명.
그 「여자친구」발언이 신경쓰였나.
하지만 괜찮다고.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여자친구란건 그때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거짓말이었잖아?
그런 거짓말이야 들으면 기쁘긴 하지만,
따로 이상한 오해는 안하니까 걱정말라고."

"으응, 맞아."

"그래도 미안, 아키츠군."

"괜찮다니까~
어차피 이런 상황은 익숙하니까."

"...익숙해?"

"그러니까 중학교때 말이지..."





중학교 3학년, 반년동안 미쳐 날뛰던 시기가 끝나고 불량서클들도 몽땅 쪼개졌을 즈음이었을꺼다.
현재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슬슬 띄어가기 시작하던 러브러브공원을 걷던중 멀리서 헌팅남들에게 둘러싸여 곤란해하는 5명의 여학생들이 보였다.

도와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데 그중에 당돌해보이는 여학생 한명이 「우린 아키츠군의 애인이야!」라고 외치는걸 듣고 순간 다리가 꼬일뻔 했다.
아마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한 여자애의 임기응변 같았다.
100명의 여자와 잤다는 아키츠 료스케에 대한 악명은 유명했으니까.
하지만 물러설것이라 생각했던 헌팅남들은 오히려 야유를 해대었다.

「이봐이봐...맨날 쌈박질만 하고 다니는 그녀석이 애인같은게 있을리가 없잖아?」
「그녀석은 척봐도 주먹을 치켜들며 「히로인은 권이다!」라고 말할 녀석이라고!」
「거짓말은 상황을 봐가며 말해야 한다고~」

맞는 말이지만 왠지 화가 난다 이놈들아...
머리가 약간은 돌아가는 녀석들이었는지, 최근 반년동안 하루도 빠지지않고 싸움에 미쳐 지냈던 내가 애인과 만날 시간이 없다는걸 눈치챌 만큼은 똑똑했나보다.
예상치못한 대응에 당돌했던 여학생도 당황한듯한 반응을 보이며 주춤했고,
그 모습이 오히려 헌팅남들을 자극했는지 더더욱 다가오며 강압적으로 헌팅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면서 여학생들을 불렀다.

"여어~ 여기 있었구나!
공원이 넓어서 찾는데 헤메었다고~"

"에?"

놀라며 바라보는 5명의 여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준후 헌팅남들을 바라본다.
당사자의 등장에 당황했는지 헌팅남들이 날보며 저마다 떠들어 댔다.

"거, 거짓말?"
"저 특징적인 수염이랑 금발올백...진짜 아키츠 료스케잖아?!"

놀라든 말든 적당히 헌팅남들에게 대꾸한다.

"어쨌든, 얘들이랑 모처럼 만났는데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가라."

그런데 의외로 헌팅남들치곤 꽤나 강단이 있었나보다.
한명이 약간 흥분해선 삿대질을 해대며 나에게 반박해온것이다.

"우, 웃기지마!
거짓말을 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여자애들 어리둥절해 하는게 다 보인다고!"

엥?

고개를 돌려보니 당황한듯 표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여자애들이 보인다.
아놔...분위기 파악 좀 빨리 해서 장단을 맞춰줬으면 좋았는데.
난처한듯한 심정이 내 얼굴에 나타났는지 의기양양해하며 헌팅남이 외쳤다.

"역시 애인이니 뭐니 하는건 거짓말이지?
사실은 저 애들 이름도 모르는 사이잖아?"

...뭘믿고 그렇게 기세등등한지 모르겠네.
어차피 여기서 니놈들을 패버리면 애인이건 아니건 상관없잖아?
하지만, 반년간 질릴정도로 깡패들을 패면서 지냈는데 이제와서 헌팅남들에게까지 일일이 주먹다짐을 하는건 되도록이면 사양하고 싶다.

얼굴을 태연한 표정으로 바꾸며 여자애들에게 묻는다.

"미안한데, 너희들 성이 어떻게 돼?"

"에?...저, 저기...타와라야 입니다."
"키도."
"나, 나가야마..."
"사가노야."
"...유우키라고 해."

보이쉬한 단발 여자애, 방금전 당돌했던 염색한 단발 소녀, 장발 생머리의 소녀 둘, 양갈래 땋은 머리에 안경을 쓴 소녀가 순서대로 대답했다.
고개를 돌려 헌팅남들에게 말한다.

"자, 이제 성은 알았다. 이걸로 됐지?"

"자, 장난치는거냐?!
이름도 모르는 여자친구가 어딨어!"

"여기 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한두명도 아니고 내가 그애들 이름을 어떻게 알아!"


어차피 오늘 만나고 잊을꺼 알아서 뭐하게?
게다가 늬들 앞에서 얘내들 이름까지 알려주고 싶은 생각 없다.
계속 딴죽을 걸어오는 녀석에게 짜증이나서 고함을 쳐버렸더니
왠지 헌팅남들이 경악하고 있다.

"뭐...설마 진짜로 100명의 애인이 있는거냐?!"
"애인이 너무 많아서 이름 조차 기억하지 못할정도라더니..."
"수염주제에수염주제에수염주제에..."

뭔가 심각하게 잘못 이해를 했는지 굉장한 시선을 보내오던 헌팅남들이 사라지고
약간 겁먹은듯 하면서도 감사의 인사를 해오는 여자애들을 적당히 다독이고 공원밖까지 데려다줬다.





"...아무튼, 그때 말고도 몇번 비슷한 상황을 겪어서 말이지.
헌팅 당하는 여자애들에게 아는척하며 한명 두명 빼내오는걸 몇번 하다보니까
(말이 안 통하는 경우는 육체언어로 설득했다.)
어느새인가 동네의 여자란 여자는 다 건드린 녀석으로 헌팅남들한테 찍혔다고...
그땐 100명의 여자설도 슬슬 수그러들 참이었는데 내가 왜그랬는지..."

"헤에..."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재밌는 표정을 하는 둘에게 투덜거리며 시선을 돌리니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 잘됐다 싶어 포켓안에 손을 넣어 방금전 받은 담배 한개비를 꺼낸다.

"아키츠군 그건?"

"방금전 헌팅하던 녀석에게 얻은 담배."

"하지만...코테가와씨에게 금연한다고..."

"아, 이건 피려는게 아니야...봐봐, 라이터도 없잖아?"

괜히 꺼냈다 싶었지만 다시 넣기도 뭣하고, 오해도 풀겸 직접 보이기로 했다.
적당히 담배를 입에 물고 흔들흔들 핸드폰 시계를 보며 있길 1분.
입에서 담배를 빼내 쓰레기통에 버린다.
고개를 돌리니 두사람이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키츠군...방금 그 행동은?"

"담배 피는 시늉."

"왜 그런 걸 하는거야?"

"담배는 피워야 하는데 건강은 소중하니까. 이건 그 절충안."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고들만 없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시늉조차 하지도 않았겠지만.
어쨌든, 매일 담배 한개비로 일상의 평온을 보장받을수 있다면 싸게 치는거다.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장발 소녀가 묻는다.

"...왜 담배를 피워야 하는데?"

"음...불량해야 하니까?"

담배피는 양아치가 이계로 간단 얘긴 못들었다고 했고.
...믿고 있으니까!
예외 상황까지 가정하긴 싫어서 괜시리 불안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려니 단발과 장발 소녀가 킥킥 웃는다.

"...아키츠군의 사고는 이상하네."

"그, 그런가?"

"그랬다면 흡연하지 않는다고 코테가와씨에게 좀더 설명했다면 좋았잖아."

"개봉된 담뱃갑을 가진채로 설득하라고?"

"괜찮지 않았을까? 그게말야..."

단발 여학생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옷가에 얼굴을 내민다.
갑작스런 태도에 당황해서 한걸음 물러서려니
「흐음-」하는 숨을 들이쉬는 소리와 함께 여자애가 물러나 웃으며 말한다.

"아키츠군 옷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잖아?
1년이나 같이 알고 지내온 코테가와씨라면 아마 믿어줄거라고."

"......"

"아키츠군?"

노, 놀랐다.
얼굴 바로 아래에 머리를 들이밀던 방금전 상황에 잠시 당황했었다.
뜨끈해진 볼을 살짝 매만지려니 단발 여자애도 방금 전 상황을 이해했는지
약간 볼이 빨개진것이 보였다.
...의외로 순진하구나? 렌에게 가슴을 쥐였을땐 웃어넘기더니.
뭐, 표정을 추스리지 못한 내가 할말은 아닌가...
나를 보던 안경 쓴 장발 소녀가 장난기가 돈듯 말을 걸었다.

"아키츠군은... 의외로 숙맥이구나?"

"놀리지 말아줘..."

놀림을 받아 붉어질대로 붉어진 얼굴을 왼손으로 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테니스부 아가씨들이라 그런지 활력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별로 접할 기회가 없어서 몰랐었지만...



안면이 없던 여자애들과의 첫 대화는 의외로 편한 느낌이었다.
2-A는 역시나 굉장하구나~란 어긋난 감상을 가지면서도 새로운 아이들과 알게된 것에 감개무량했다.
대화를 나누며 걷다 이윽고 갈림길이 나오자 이만 헤어지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방향도 다르고, 곧 여름철이라 여름용 새 옷도 장만해야 해서 옷가게를 들러야 했으니까.
웃으며 둘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럼 앞으론 그런 헌팅남들에게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잘가 둘다~."

"...잠깐만 아키츠군."

멈칫.

손을 들고 뒤로 돌아서려는데 조용히 부르는 소리에 행동을 제지당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둘을 바라보자 단발 소녀가 눈매를 살짝 찌푸린 채로 나를 바라보는게 보였다.
잠시 침묵하던 소녀는 나에게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설마하지만 아키츠군...우리 이름을 모르는거야?"

"...죄송합니다. 모르겠어요."

애써 대화를 이름을 안불러도 되는 쪽으로 끌고 갔건마아아아안...?!
1-A의 인원이 거의 다 2-A로 왔기에 호네카와 담임 선생님께서도 자기소개를 안시켰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물론 기억 속을 뒤져봐도 이 아가씨들의 이름은 모릅니다.
묘하게 자주 등장하는 아가씨들인건 알지만서도...

평소에 여학생들 대화를 들었다면 알수도 있었겠지만,
여학생들 대화를 훔쳐들을 필요성도 못느꼈다고요.
...바로 어제까지만.

그래도 상대는 내 이름을 아는데 나는 상대를 모른다는 상황에선 사과하는게 제일이다.
(내 악평때문에 유명해서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접어두자.)
한심하게 사죄하는 나에게 두 여학생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아키츠군에게 도움을 받았으니까 이런걸로 화내진 않아.
다만 지금부터 기억해주면 좋아."

단발 소녀(좌우로 내린 머리칼에 머리핀을 2개씩 꽂고 있는 소녀)와
장발 소녀(투 사이드 업으로 한 장발을 리본으로 장식한 안경을 쓴 소녀)가 차례로 자기 소개를 해왔다.

"내 이름은 아라이 사야카. 알고 있겠지만 테니스 부에 들어있어."

"그리고 난 시라유리 코요미. 다음번에 이야기 할땐 이름을 기억하는지 물어볼꺼야?"

농담처럼 말하는 코요미에게 방심하지 않고 대답한다.

"물론이지. 아라이와 시라유리지?
절대로 잊지 않을테니까 너무 걱정말라고."

"...하긴, 100명의 여자들과 교제한 아키츠군이 여자애 이름을 잊을리 없지."

"아키츠군이 이름을 모르는 여자애는 매력이 없다는 소문도 있다고 하니까 말이지~."

"어이, 아까도 말했지만 그거 헛소문...!"

내가 이름을 아는 여자애는 알고 지내는 몇명뿐이라고?
매력도로 이름을 알고 있다면 이 동네 여학생들 이름은 거의 다 외웠겠다...
「젊은 여성 = 미인」의 공식이 99% 이상의 확률로 성립하는 사이난에서 그랬다간 이름 외우다가 내 머리가 앓는다고?
내 반응에 사야카와 코요미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하하 미안미안~ 그렇게 놀라면서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말야."

"아키츠군은 생각했던것 보다 재밌는 사람이구나?"

"재, 재밌습니까..."

반응이 곤란한 나를 보던 두명은 웃으며 손을 흔들곤 귀가했다.
활발해서 좋구나...
좀 난처했지만, 적어도 리사랑 미오처럼 에로하진 않으니 괜찮나...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뒤, 나도 이만 여름 옷을 사기 위해 상점가로 향했다.
그런데 남성용품점에서 괜찮은 옷을 몇벌 골라 나오려니 건너편 길가에서 방금전 헌팅남 3명이 여자애들에게 어슬렁 거리며 다가가는게 보였다.
...세상엔 말만으론 안되는 놈들도 있군요.
후우우...한숨을 내쉬며 신호등 쪽으로 걸어가 불이 바뀌길 기다렸다.
방금전 말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녀석들에게 징계를 결심하고 있을때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호~ 귀여운 아이들이 잔뜩!」
「이봐 이봐 너희들 우리랑 놀지 않을래?」

...틀에 박힌 레퍼토리는 도무지 변하질 않는구나...응? 저 아이들은?
리토, 하루나, 라라, 리사, 미오, 그리고 평소의 흑색 전투복이 아닌 화사한 소녀옷을 입은 야미의 모습이 보인다.
야미의 옷을 맞춰주러 나온건가?
괜히 아이들 기분 상하기 전에 후딱 끝내 버리자.
...그런데 이놈의 신호등은 왜이리 불이 안바뀌는거야?
확 뛰어넘어버릴까?

리사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이 시대착오적인 헌팅남들은.」

「좋잖아 놀자구.」
「오오 이 아이도 쬐그매서 귀여운데!」

야미를 말하는거면 넌 큰일났다.
현재 폐업중이지만 우주제일의 살인청부업자라고.
리토도 동감이었는지 당황해서 야미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만둬!」

「아? 뭐야 넌.」

「나쁜말은 안할께!
험한 꼴 당하기 전에 그만둬!」

오호 친절한 리토.
하지만 인상을 찡그리는 양아치는 생명을 구해주려는 리토의 마음씨를 알지 못했나보다.
리토의 멱살을 움켜쥐며 목소리를 깔며 협박을 하는 폼이 꽤나 익숙해 보였다.

「호오~ 한번 해보자는 거냐?」

「아니...그게 아니라...!」

...아, 신호가 바뀌었다.
횡단보도 위를 걷는 속도를 빨리 한다.
당황하는 하루나와, 화난 얼굴의 라라가 보인다.

「유우키군!」

「이봐~! 리토를 놔 줘~!!」

「...프린세스. 기다려 주세요.」

드디어 야미가 침묵을 끊고 나섰다.
그런데 저 차림으로 행동하다간 잘못하면 옷 찢어진다고?

「응?」

리토를 잡고 있던 양아치가 야미를 쳐다보자
야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사람은...저의 타겟. 손을 대는 것은 용서 못합니다.」

「헤...?」

「하아!? 무슨 소리 하는거야!?」

「푸하하~!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데? 꼬맹아!!」

"이렇게 된다 이자식들아."

「「「에?」」」

갑작스레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린 녀석들을 쳐다보며 웃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웃는건 웃는게 아니야...
이마에 핏대가 선채로 억지로 웃음을 짓는다.
한번은 봐주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건 용서가 안된다고?

"내가 방금전에 이런 일로 만나지 말자고 그랬지?"

「「「히익?!」」」

"어라 아키츠군?"
"료스케잖아?"

"여어~ 모미오카, 라라."

갑작스런 조우에 놀란듯 말하는 둘에게 손을 흔들어 가볍게 인사한다.
어느새 리토의 멱살을 잡고있던 손을 놓은 양아치가 경악한듯 소리친다.

"제, 젠장! 또 아는 여자야?!"
"정말로 이 동네 여자들과 전부 사귄건가!"
"네녀석! 대체 지금까지 몇명의 여자를 먹은거냐!"

누군가의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에 무심코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와 버렸다.

"넌 네가 먹은 빵의 개수를 기억하나?"

「「「이...이녀석...」」」

...아, 실수.
머리 한구석에 박힌 이상한 지식들 때문에 헛소리가 나와버렸다.
불량배들이 질린듯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고,
지켜보던 리토나 하루나, 리사, 미오, 야미도 바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키츠군..."

"설마 정말로?"

"...저질스럽습니다."

아냐. 이건 패러디 재료라고.
우선 이 상황부터 해결한뒤 오해를 풀도록 해야겠다.
방금전까지 멋대로 헌팅하던 세명을 바라본다.

"그럼, 이제 내 말을 무시한 대가를 치뤄볼까..."

「「「자...잠깐?!」」」

퍽- 퍽- 퍽- !
풀썩.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간단하게 세명을 바닥에 재웠다.
친구들 보는 앞에서 설마 내가 무식하게 패기야 하겠냐.

널부러진 녀석들을 옆으로 치우고 리토 일행을 돌아본다.
야미는 조금 불만인 표정이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그야 그랬겠지만, 그 옷차림으로는 잘못하면 옷이 찢어진다고?"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 특히 변화능력같은걸 사용했다간 어쩔지 모른다고...그렇지 모미오카?"

"응,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야미야미의 평소의 옷관 달리 이 옷은 그렇게 튼튼하다고는 볼 수 없으니까~"

"...그렇군요."

"그러니까 이번에 새로 산 옷을 입을땐 조심하라고~"

"네에...충고 고맙습니다."

방금전 야미 대신 나섰던것에 대한 이유도 해명할 수 있어서 야미도 기분이 풀린듯 했다.
표정을 푼 야미에게 안도하며 야미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본다.

별무늬 구슬이 2개씩 달린 끈으로 양머리를 투사이드 업하고,
다양한 크기의 둥근 악세사리로 엮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가슴에 영문과 함께 두송이 꽃이 위아래로 하나씩 그려진 반팔 티셔츠.
주름 치마위에 걸친 삼선 벨트.
샌들을 신은 맨발목엔 예쁜 리본이 달려있었다.

조금 오래 시선이 갔는지 야미가 나를 바라보는게 느껴져 솔직하게 칭찬해본다.

"이번에 새로 고른 옷이야?
평소 옷도 귀엽지만 이것도 정말 예쁘잖아?"

"...감사합니다 아키츠 료스케."

"그리고..."

시선을 돌려 다른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까 말한 「빵의 개수」운운한거 말인데...
그거 만화책에서 나온 대사야. 오해하진 마?"

말실수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 대사가 쓰였던 만화책의 전개를 알려준다.
흡혈귀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사람들의 피를 빨고,
희생자의 수를 묻는 물음에 방금전과 같은 대사를 했었다고.

듣고있는 친구들의 반응을 신경쓸새 없이 열심히 해명하면서
방금전 헤어진 사야카가 해준 말을 떠올린다.

- 1년이나 같이 알고 지내온 코테가와씨라면 아마 믿어줄거라고.

설사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오랫동안 서로를 알아온 사이라면 나를 믿어줄거라고.

...알게된지 반년도 안 지났는데 믿어줄까?

"...그러니까 방금전 대사는 만화가 떠올라 무심코 내뱉은거고,
따로 여자애들을 건드렸거나 한게 아냐."

뭔가 두서없이 말을 꺼내고 끝내버린것 같은 느낌에
안절부절 못하면서 친구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데
금새 라라가 웃으며 말해왔다.

"응~ 믿어!
왜냐하면 료스케는 친구잖아?"

"라...라라!"

이 아저씬 감동했어요.(동갑이지만)
항상 호기심이 넘쳐 말썽을 일으키지만 지금은 그 순수함이 너무나 눈부십니다.
하지만, 보이스 피싱같은건 부디 조심해줘 라라.

이윽고 리사와 미오도 웃으며 동의해왔다.

"그러고 보면 적어도 고교에 와선 여자애들을 건드리는 낌새같은건 보이지도 않았잖아?"

"그래그래~ 아키츠군은 의외로 강경파일지도~"

리토와 하루나도 리사와 미오의 말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 소문은 소문일 뿐이잖아?
내가 들었던 아키츠의 이야기와 실제 아키츠의 행동도 많이 달랐고."

"역시, 소문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건 아니니까...
아키츠군이 그렇게 경박하게 보이진 않았어..."

"...당신이 코테가와 유이에게 쩔쩔매는걸 보면 확실히 소문은 사실이 아닌듯 하군요.
저도 믿도록 하겠습니다."

"오오...그야말로 감동의 절정!"

인생, 착하게 살면 복이 오는군요.
고교시절에 와서 드디어 꽃피게 된 양호한 인간관계에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무언가 이 기쁨을 표현하고 싶은데 뭐 좋은게 없을까 하다가,
내가 들고 있는 여름 옷이 든 종이 가방에 생각이 미쳤다.
번뜩이는 생각에 당장 야미를 향해 기운차게 말했다.

"좋아, 기분이다!
야미! 내친김에 네 유카타 사줄께.
친구들이랑 함께 사러 가자!"

"유카타, 입니까?"

"곧 있으면 여름 축제가 시작되니까, 그때 야미 너도 유카타를 입고 함께 축제를 즐기자고~"

"아! 그러고 보면 이제 곧 축제기간이잖아?"

리사도 이제 생각난듯 날짜를 집어보더니 소리쳤다.
그리곤 야미의 손을 이끌고 다른 상점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럼 이왕이면 야미야미의 유카타도 사러가볼까?
유카타를 예쁜걸로 제대로 사시려면 역시 지금부터 초여름 전에 사는게 낫기도 하고~"

"돈은 아키츠군이 낸다고 했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예쁜걸로 고르자~"

리사와 미오가 희희낙락하며 야미를 데려가고,
그 뒤를 나와 리토, 라라, 하루나가 따라갔다.



유카타를 파는 특설매장을 둘러보며
리토가 약간 걱정스러운듯 나를 보며 속삭였다.

"아, 아키츠. 괜찮아? 그렇게 돈을 써도?"

"괜찮아. 야미에겐 예전에 미안한 일도 있고,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으니까."

불량배 녀석들과 두번이나 얽힌건 귀찮은 일이었지만,
새로운 여자애들을 두명씩이나 알게 되었고
친구들이 나를 믿어준다는 경험도 할 수 있었잖아?

"그리고...야미가 지구에서 좀더 많은 즐거움을 느낄수 있으면 했으니까.
이런걸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거잖아?"

"아키츠..."

"그리고 방금전 타킷이니 표적이니 하던 표현은 좀 과격했지만,
유우키 널 대하는 야미의 태도도 그 나름대로의 접하는 방식이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아줘."

"으...노력해볼께."

약간 기운 빠진듯한 리토의 반응을 보며 라라가 웃으며 다가온다.

"아하하~ 리토랑 료스케는 사이가 좋구나~
그럼 나도 유카타 골라볼까?
하루나가 옷 고르는거 좀 도와줄래?"

"에? 내가?
으응...그래 라라."

그리곤 라라와 하루나도 더불어 유카타를 고르러 매장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미적 센스없는 우리 둘은 그냥 짐꾼이나 하는게 좋으려나...?



한동안의 시착시간이 지나고 야미는 검은색 바탕에 꽃무늬가 새겨진 유카타를 골랐고,
라라는 오비(허리 부분을 감싸는 띠)에 꽃무늬가 수놓아진 유카타를 골랐다.
들어간 돈이야 1~2만엔 안팎으로 약간 높은 액이었지만, 평소에 따로 지출하는 돈도 없었고,
앞으로 계속 입을 옷인데 이정도면 괜찮지 뭘.

이후, 곱게 포장된 유카타를 들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야미의 얼굴을 봤을땐 쌤쌤은 커녕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희미하지만 행복함과 쑥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은 정말이지 귀여웠다고.
축제에 대해 모르는 라라와 야미에게 약간의 황당무계한 과장을 섞어 재밌게 말하는 리사와 미오.
아무것도 모른채 흥미진진하게 듣는 두사람에게 당황하며, 뒤에서 리사와 미오를 말리는 하루나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정말 평화로운 하루라며 웃어버렸다.





다음날 학교에서 사야카와 코요미로부터 사정을 전해들은 코테가와가 나에게 흡연여부를 다시 물어왔다.
불량배 답게 행동하기 위해서란 내 답변을 어이없어 하긴 했지만 내가 의외로 건강에 신경쓰고 있다는 점에 안심한듯 했다.



며칠뒤, 중학교때 이야기를 전해들은 리사가 헌팅남에게 내 이름을 들먹였나보다.
학교에 와서 장난스레 전하는 리사의 말을 듣곤
혹시나 아키츠 료스케 애인 100명 루머가 애인 200명이 되는건 아닌가 걱정하자 옆에 있던 미오가 단호히 부정해주었다.
안심하는 나를 바라보며 미오가 웃으며 알려줬다.
'단위'가 바뀌었다고.

아키츠 료스케와 100다스의 애인들.

몰라 그거 무서워...
하루에 한명꼴로 사귀어도 3년은 걸리겠다?!
그거냐? 「먹은 빵」때문이냐?

좌절하는 내 등을 코테가와가 토닥여 주었다.
클래스 메이트들도 소문의 원인을 들었는지 쓴웃음을 지으면서 쳐다보았다.
리사에게 얘기를 해줬던 사야카와 코요미도 미안한 얼굴로 위로해오는 모습에
그래도 인복은 있다고 위안을 삼으며 겨우 기운을 차렸다.



그일이 있고 며칠 후,
헌팅남에게 얽히던 사이난 고교 여학생들이 「도와줘 아키츠군~」하는 소리를 들었다.
얼떨떨해 하면서도 구해주긴 했는데
내가 무슨 도라○몽인줄 아나보다.
킥킥대면서 고맙다며 단팥빵을 사주는걸 받고선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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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름 축제편으로 넘어갈까 했는데 도중에 떠올라서 쓴 화.
야미의 유카타 고르는 이야기를 만들면, 첫 축제때부터 야미가 등장할 수 있는 계기도 되니까요.

원래는 하루코 선생님도 등장할 예정이었지만 이야기 흐름이 매끄럽지 않게 되므로 삭제되었습니다.
발렌타인 데이 편에서 시간&장소 전환 때마다 느꼈던 어색한 글 흐름을 다시 겪긴 싫어서...-_-;
(하루코 선생님 이야기를 쓰고 싶었건만...OTL;)
회상씬에 잠시 나올 예정이었던 하루나의 언니 아키호씨(현재 22세) 이야기도 생략.

당연하지만 회상씬에서의 소녀들은 더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까메오 등장이었고.

아, 그리고 위에서 나온 아라이 사야카와 시라유리 코요미 말인데.
이 소녀들입니다.
(단발소녀 : 아라이 사야카, 안경장발소녀 : 시라유리 코요미)

원작에서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위키에는 이런 호칭만 나옵니다.

단발 : 주물러지는 여자애 揉まれ子(rou ma re ko)
안경 : 벗겨지는 여자애 脫がし子(tuo ka shi ko)

다크니스 연재후 설정집에 이름이 추가되었습니다.

단발 소녀는 아라이 사야카.
안경 장발 소녀는 시라유리 코요미.

p.s. 우리말배움터 사이트에서 맞춤법 검사를 하다가 이름이랑 몇몇 용어 수정요구가 너무 많아서 일단 그대로 올립니다.
추가적인 오타는 이후 수정하기로 하겠습니다^^;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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