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쫓는다.

「여왕」은 「호위」에게 횃불을 넘기고,
「호위」는 「시종」에게 횃불을 넘기고,
「시종」은 메아리에게 횃불을 넘긴다.

     어둠이 찾아오고, 「여왕」과 「호위」와 「시종」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잉태되지 않은 자」가 「꼬리 달린 자」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꼬리 달린 자」는 바다에 빠지고 「잉태되지 않은 자」는 파도에 삼켜진다.

「눈물 흘리는 자」가 「쌍둥이」에 기대어 울부짖는다.

     「쌍둥이」가 메아리에 떨어진다.

「동류가 아닌 자」가 「그림자」에게 덤벼든다.

     「그림자」가 메아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눈물 흘리는 자」가 「동류가 아닌 자」를 메아리에 내던진다.

「부정하는 자」가 메아리를 부정한다.

     「눈물 흘리는 자」가 춤추고, 「부정하는 자」는 「눈물 흘리는 자」를 부정한다.

「이끄는 자」가 메아리를 찾는다.

     「이끄는 자」가 메아리에 손짓한다.

「잊혀진 자」가 되돌아온다.

     더이상 목소리도 메아리도 울리지 않는다.





쉬는 시간이 되어 조용히 수업 내용을 숙지하려고 책을 훑던중,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창가에 하루나와 라라, 리사, 미오가 서있었고
허리에 교복 겉옷을 동여맨 스타일의 리사가 최근 떠도는 소문에 대해 즐거운 듯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저기저기 들었어? 최근 소문의 유령 이야기!"

"에...? 유령!?"

유령 이야기가 나오자 하루나가 움찔하고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고보면 하루나는 유령 같은거에 약했지?
유령이란 단어 하나에도 저렇게 겁먹는 태도는 확실히 리토 취향의 얌전하고 가련한 모습이긴 하지만...
패닉 상태의 하루나는 그야말로 무쌍난무라서, 솔직히 유령이 더 걱정될 따름이다.

무서워하는 하루나와는 반대로 라라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리사와 미오에게 물어온다.

"뭐야 뭐야? 유령이라면 귀신?"

"뭐, 비슷한거지."

"구교사 있잖아?
최근 거기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

그때 책상에 엎드려있던 리토가 피식거리며 이야기에 끼어든다.

"그냥 소문일 뿐이잖아? 없다구 유령따위."

소문을 부정하며 김새는 소리를 하는 리토에게 리사와 미오가 발끈한듯 약간 눈을 치켜뜨며 대꾸한다.

"진짜야! 수상한 소리가 들려온다든가."

"기분 나쁜 목소리로 [나가~]라고 말하는 걸 들은 사람도 있대!"

도깨비불이 주위에 뜰 듯한 분위기로 유령 흉내를 내며 양손을 슬쩍 드는 미오의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십대 소녀들의 에너지는 정말로 재밌는 방법으로 뿜어져 나오는구나.

"거기다, 저번에 아키츠군이 1학년생의 생령을 불러내는거 유우키군도 봤잖아?"

...그때 그 안경 쓴 1학년생 말인가.
이름도 기억안나는 그 녀석을 혼내준 뒤로 사령술사(네크로맨서)따위의 이상한 칭호가 생겼었지만.
(생령을 불렀으니 생령술사 아닌가 하는 지적은 받지 않겠다. 생령술사 같은 직업은 몰라.)

그 때의 일은 나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잊고 싶은 기억일 따름이지만,
본인 있는데서 저런 사건들을 태연히 얘기하는걸 보면 악의는 없겠지.
음, 없을꺼다...

"그, 그건...생령이랑 유령이랑은 달라!
애초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남아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예상치 못한 반박에 리토는 당황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주장을 관철했다.
미오는 방금전의 유령같은 분위기를 풀고 안경을 고쳐쓰며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상한건 그것 뿐만이 아니야.
소문이 신경쓰여 구교사 근처로 갔던 학생 한명이
구교사 근처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팻말을 봤다는거야.
호기심에 팻말을 바라보던 학생은 섬뜩함을 느꼈데.
팻말에 적힌 의미불명의 글귀들에 말야."

의미불명의 글귀들?
학교내에 유령에 대한 소문이 꽤나 퍼진지라 주변에서 듣고있던 반아이들도 호기심에 미오를 바라본다.
글귀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리사가 문득 떠오른듯 물었다.

"그러고보니 다른반의 친구도 그 글을 봤다던데 뭐라더라...?
무슨 예언처럼 보였다더라고."

"그럴줄 알고 예의 그 예언이란 걸 적어뒀지~"

리사가 고개를 갸웃하자 미오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낸다.

"역시 미오! 그래서? 어떤 내용이야?"

"잠시만 기다려봐, 그러니까, 음흠..."

잠시 목을 가다듬던 미오는 꺼낸 종이를 차분히 읽어내린다.



"12명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쫓는다.

「여왕」은 「호위」에게 횃불을 넘기고,
「호위」는 「시종」에게 횃불을 넘기고,
「시종」은 메아리에게 횃불을 넘긴다.

     어둠이 찾아오고, 「여왕」과 「호위」와 「시종」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잉태되지 않은 자」가 「꼬리 달린 자」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꼬리 달린 자」는 바다에 빠지고 「잉태되지 않은 자」는 파도에 삼켜진다.

「눈물 흘리는 자」가 「쌍둥이」에 기대어 울부짖는다.

     「쌍둥이」가 메아리에 떨어진다.

「동류가 아닌 자」가 「그림자」에게 덤벼든다.

     「그림자」가 메아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눈물 흘리는 자」가 「동류가 아닌 자」를 메아리에 내던진다.

「부정하는 자」가 메아리를 부정한다.

     「눈물 흘리는 자」가 춤추고, 「부정하는 자」는 「눈물 흘리는 자」를 부정한다.

「이끄는 자」가 메아리를 찾는다.

     「이끄는 자」가 메아리에 손짓한다.

「잊혀진 자」가 되돌아온다.

     더이상 목소리도 메아리도 울리지 않는다."



무언가 상징적이면서도 불길한 여운을 남기는 시가 끝나자 클래스메이트들이 살짝 몸을 떤다.
다 읽은 미오도 살짝 눈을 찌푸리며 신음소리를 낸다.

"으음...뭐랄까. 구교사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진다는 걸까?
솔직히 여기에 언급된 '메아리'라는 게 유령을 가리키는게 아닐까 생각은 하는데..."

"그런데 왠지 찜찜하게 끝나버린 결말이네?"

"응. 되돌아오지 않는다니 무슨말?
정말로 유령에 의해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일까?"

미오가 리사와 말을 주고 받고 있는동안 하루나는 완전히 안색이 새하얘졌다.
저러다 기절하는건 아닐지 모르겠네...
유령따위 안 믿는다는 리토도 이상한 시를 듣고선 약간 얼굴이 파래져 있고...

시의 내용은 그야말로 공갈치기 좋아하는 사이비 예언가가 적을법한 글이다.
소문 좋아하는 십대들에게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가 될수도 있겠지만,
'되돌아오지 않는다'느니 따위의 글귀가 있는데
정작 구교사로 들어갈만큼 담력있는 학생은 별로 없겠지.

"그럼 말야! 진짠지 아닌지 다 같이 확인하러 가보자!"

...데빌루크의 공주님처럼 활기를 주체하지 못해 폭주하는 소녀를 제외하면 말이다...

"헤?"

"좋은데 그거!"

"가자~가자~!"

갑작스런 라라의 발언에 당황해하던 리토의 목소리는 환호하는 리사와 미오의 목소리에 삼켜졌다.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는지 리사와 미오는 그야말로 의욕이 만만한 상태다.
하루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창백한 안색으로 애써 웃으며 친구들을 말리려 한다.

"저기이~...맘대로 구교사에 들어가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반 위원으로서 나는..."

척-

소극적으로 손을 들어올려서 자기 의견을 말하던 하루나를 제지하곤,
오른 손가락을 척 내밀며 단호한 목소리로 리사가 선언했다.

"이러쿵 저러쿵 하지말고 너도 오는거야!"

"에-----!?"

기겁하는 하루나의 모습에 리토가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식은땀을 약간 흘리며 쉴새없이 표정이 바뀌는게,
이 구교사 탐험에 하루나와 함께 참가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고민하는것 같았다.
그런 리토가 안보이는 듯 하루나는 혼이 빠져나갈듯이 얼이 빠진 모습이다.

원래의 무난한 학교 생활 속에서라면 하루나도 얌전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있을수 있었겠지만,
리토와 라라의 트러블에 휘말린 이후로는 원래의 정숙하고 성숙한 분위기가 말그대로 날아가고
망가진 모습들을 자주 보이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학창시절이 아니면 언제 친구들과 이렇게 활기넘치는 경험을 해보겠니.
힘내라 하루나.

어느새 마음을 정했는지 리토가 눈을 부릅뜨며 손을 들어 리사에게 구교사 탐험 참가 의사를 표명한다.

"나...나도 갈래!"

"좋아! 그럼 점심시간에 다 같이 가보자!
구교사의 유령에 대한 소문과 그 이상한 예언의 비밀을 파헤치는거야!"



건강하구나 리사.
들떠있는 모습의 리사들을 한가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옆자리의 코테가와가 읽던책을 내려놓곤 약간 못마땅한듯한 시선으로 리사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코테가와, 왜그래?"

의아한듯 내가 물어보자 코테가와가 나에게 시선을 돌려 낮게 말한다.

"저 애들, 또 뭔가 할 생각이 아닌가요?
구교사는 출입 금지인데 풍기 위원으로서 그냥 넘어갈순 없다구요."

"그게...최근에 도는 유령 소문 코테가와도 듣고 있지?"

"방금전 이상한 시를 읊을 때부터 들었어요.
그런 이상한 글, 누군가의 악질적인 장난이 분명해요.
게다가 유령같은 비과학적인걸 믿을리 없잖아요?"

우주인도 있는데 유령이 없을까 코테가와...
이 세상엔 그야말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아하하...뭐, 저 애들이 구교사에 들어갔다와서 「유령따윈 없었다」라고 말하면,
이런 소문을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소문같은건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져요.
저런 행동은 오히려 소문을 띄울뿐이라고요.
혹시라도 겁먹고 되돌아온다면 소문이 더욱 커지겠죠."

"으응..."

"게다가 선생님들이 구교사를 출입금지 시킨건 노후된 건물이 위험하기 때문이에요.
잘못해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요?"

교칙을 고집하는게 아니라 학생들을 걱정하는 거라 반박하기가 곤란하네...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코테가와의 말이 옳으니까.
...그러고보면 구교사가 많이 낡아서 바닥이 노후했다고 했었던가?

"그건 맞는말이네...
그래서, 코테가와는 지금 저애들을 말릴꺼야?"

"우선은 상황을 지켜보죠."

"어이..."

방금전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나요 코테가와씨?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코테가와는 약간 당황하며 손사레를 쳤다.

"트, 틀려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확실히 지금 저지하면 점심시간에 구교사로 가는걸 막을순 있겠죠.
하지만 수긍만 하고는 다른때에 몰래 구교사를 찾아갈 수도 있으니까,
뒤를 쫓아가서 분명히 충고하고 데려오는게 낫다고 생각한거라고요."

"확실히...저 애들 행동력은 보통이 아니니까."

지금 말린다고 곱게 들을 사람은 애초에 망설였던 리토와 하루나 둘뿐이겠구나.

"그럼 나중에 점심시간에 저 애들의 뒤를 따라가는걸로 괜찮을까?"

"그래요.
...그런데 혹시 아키츠군도 따라오려는거에요?"

내 말투에서 행동을 같이하겠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지 코테가와가 물어온다.

"물론이지.
애초에 혼자서 을씨년스러운 건물에 가게 놔두기엔 솔직히 걱정이라고.
게다가 유령이 아니더라도 혹시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든든한 보디가드 한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가슴을 탁하고 치는 내모습에 웃으면서 코테가와가 답례한다.

"풋...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아키츠군.
그럼 점심시간에 함께 가보도록 하죠."

"응. 기왕이면 점심도 같이 먹자고 점심~"

"무, 무슨소릴 하는건가요!"

얼굴이 빨개져서 속삭이듯 작은소리로 외치는 코테가와에게 뻔뻔스럽게 말한다.
공적인 이유를 대며 사적인 목적을 완수한다.

"그게 말이지 점심먹으면서 조금전 계획을 점검해보는게 나을까 싶어서."

"그, 그런건 쉬는시간에도 이야기 할 수 있잖아요?"

"점심시간때 저애들이 어떤 돌발행동을 할진 모르잖아?
갑작스레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때를 대비해선 필요하다고."

"하지만..."

주저하는 코테가와의 모습을 보고 공적인 이유는 포기한다.
더이상은 꾸며낼 얘기도 마땅치않고,
역시 솔직하게 내 개인적인 부탁임을 드러내는게 차라리 편하겠다.

"그리고 말이지...
아직 이 반의 친구들에게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코테가와도 최근 혼자서 점심을 먹잖아?
게다가 나도 계속 혼자서 식사를 하다보니 좀 쓸쓸해.
그러니 기왕이면 점심은 함께 먹는게 외롭지도 않고 좋을것 같아서."

"어느새 매일 함께 먹는다는 전제가 깔린건가요?!"

"그러니까...내친김에?"

"무슨!"

"하지만 혼자보다는 함께 먹는 편이 더 즐겁지 않을까?"

"그, 그래도 좀 부끄럽지 않아요?"

약간 주저하듯이 코테가와가 물었다.
아? 부끄러운게 문제였나.
교내에서 클래스메이트들이 보는앞에서 이성이랑 함께 밥먹는건...솔직히 좀 부끄럽긴 하다.
하지만...

"「외로운 점심식사」와 「부끄러운 점심식사」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난 후자를 고를꺼야.
알고 있겠지만, 난 이미 작년 이맘때쯤에 수치심을 버렸다고?"

오체투지로 코테가와에게 싹싹빌었을때부터 수치심은 이미 날려보냈다.
더이상 부끄러울 일 같은게 있을쏘냐?
있을지도 모르지만...

"게다가 리토도 라라랑 사이좋게 점심을 먹고 지내잖아?
나랑 코테가와가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해도 생각만큼 반응이 크진 않을꺼라고."

애초에 「미녀와 야수」라느니 「맹수 조련사」라느니, 「아가씨와 보디가드」라느니 하는 소문까지 도는데,
점심을 같이 먹는다는게 추가된다고 더이상 바뀔게 있을것 같진 않다.
...덕분에 남학생들 사이에서 「벽의 꽃」취급을 받는게 미안할 따름이지만...
(벽의 꽃 : 댄스파티에서 자발적인 파트너가 나타나지 않아서 홀로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대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으..."

코테가와의 시선이 헤엄치듯 흔들린다.
뭔가 당혹한듯 우물쭈물 하더니 입안으로 중얼거린다.
예민한 귀의 감각과 어설픈 독순술로 해석해보니 대강 이런 문장인듯 했다.

'약혼자였잖아요 그 둘은...'

...코테가와씨.
이쪽을 양아치를 넘어 이성으로 의식해 주는건 정말로 감사한데,
이성간의 관계에 지나치게 놀랍도록 반응해서 대응이 곤란합니다.
그렇고 그런쪽으로 사고가 전개되면 나도 코테가와를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대하기 힘들어 진다고요?
잘못하다간, 의미없는 동작 하나하나조차 신경이 쓰이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진정하고 지금까지 허들이 높은 시도를 해왔던 과거를 떠올려보자고.
「유령의 밤」이라든가,「수영연습」이라든가,「크리스마스 선물」이라든가,
「발렌타인데이」이라든가...!

노려라! 점심함께먹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코테가와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고개를 숙여 붉어진 얼굴을 숨기며 속삭이듯 코테가와가 말한다.

"...함께 먹을 친구가 생길때까지 만이에요?"

꿈은★이루어진다.
고마워요 페이스○스...
악당이지만.





딩동 댕동 -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코테가와와 책상을 맞붙이고 도시락을 꺼낸다.
몇명이 이상한걸 보듯 바라보지만 무시.
양민 몇명의 시선에 신경쓰느니, 정면에 앉은 코테가와에게 주의를 돌리는게 훨씬 낫다.
코테가와는 주변의 시선이 신경쓰이는지 약간 머뭇거리는 모습이었지만,
싱글싱글 웃는 내 얼굴을 보곤 째릿하고 노려본다.

...나 뭔가 잘못했나요?

한숨을 쉬곤 호흡을 가다듬고 도시락을 꺼내는 코테가와.
수저를 들면서 코테가와가 이야기를 꺼낸다.

"그럼, 식사후에 할 일을 생각해보죠."

"응?"

어리둥절한 내 모습에 코테가와는 수저를 내려놓고 약간 화가 난듯이 날 쳐다본다.

"...아키츠군?"

"네?"

"「점심먹으면서 계획을 점검해보자」라고 먼저 말한건 어디의 누구였죠?"

"...나 입니다."

압도되어서 속삭이듯 고백하는 나를 기가 막힌듯 쳐다보던 코테가와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아무튼, 식사가 끝나는대로 저 아이들을 따라가보도록 하죠.
식사를 하지 않고 간다면 우리도 그대로 일어나야겠지만요."

"그렇겠지?
그리고, 그 예언같은 글 말인데..."

"그건 신경쓸 필요 없어요.
어차피 누군가의 못된 장난일테니까요."

"아하하...그렇겠지."

코테가와와의 회화에서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냥 들키지않게 뒤에서 쫓아간다는것 정도가 결론이었다.
뭐, 난 그저 코테가와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점심식사가 복도를 나서 계단을 내려가던 우리는 보건실을 나오는 야미를 만나게 되었다.

"야미, 보건실에는 왠 일이야?"

"아키츠 료스케?"

날 바라보며 대답하는 야미에게 말한다.

"보통은 학교에 오면 도서실에 있는줄 알았는데, 혹시 어디 아픈거야?"

약간 걱정이 되어 물어본다.
원래는 구교사의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던가?
보건실에서 나올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걱정스러운 시선에 야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런게 아닙니다, 아키츠 료스케.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으라는 조언으로,
보건실에 들러서 닥터 미카도와 이야기 하고 오는 길입니다.
도서실에는 이제 가려던 참이죠."

"아키츠군.
그 아이...가끔 학교 안에서도 보이던데,
아는 사이인가요?"

의아한듯이 야미를 바라보던 코테가와가 물어온다.
그러고보면, 코테가와는 야미와의 접점은 없었지?

"아, 이 아이는 야미라고, 라라와 같은 우주인이야.
책을 좋아해서 우리학교 도서실을 자주 찾아오고 있어."

유령은 믿지 않아도 라라가 있으니 우주인은 믿겠지?
코테가와는 약간 놀란듯 야미를 바라보다가,
잠시후 웃으면서 야미에게 말을 건다.

"에...야미라고 하는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코테가와 유이라고 해요.
아키츠군과 친구인가요?"

"친구...말입니까?"

야미는 코테가와의 말에 약간 어리둥절한듯한 표정을 짓다가 나를 바라본다.
한동안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당황하고 있으려니,
야미가 천천히 코테가와에게 시선을 돌려 이야기 했다.

"친한가라는 질문에 답하자면 노(No)입니다."

"그, 그래요?"

코테가와가 약간 당황한듯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나도 좌절한다.
나도 그다지 많이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나로선 우호적일 생각이었다고?
나름대로 원만한 관계를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저번의 알몸을 봤던게 치명타였나.
마음속에 우울함이 몰아치려는데 야미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좀더 가까워지고, 좀더 알고싶어하는 사이가 친구라면,
저는...아키츠 료스케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에..."

놀란듯 야미를 바라보는 코테가와.

"그리고, 그때 그는 저에게 친구가 되자고 해주었으니까..."

속삭이듯 말하던 야미는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려서 묻는다.

"아키츠 료스케, 그때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지요?"

발렌타인데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더불어 황당무계한 허세로 첫만남을 장식했던 날의 기억도.
약간 불안한듯 하면서도 곧게 응시해오는 야미의 눈동자가 예쁘게 느껴졌다.
이 외로움 타는 아가씨도 어느새 상대를 똑바로 바라볼만큼 용감해졌구나란 생각에 유쾌함을 느끼며 활기차게 대답한다.

"물론이지~! 그땐 정말 진심이었다고?"

"...신용이 안갑니다."

"그렇게 장난스레 말하면 누가 믿어요 아키츠군?"

"심해?!" 

희미하게 입가가 올라가며 고개를 돌린 야미나, 맥빠진듯 웃는 코테가와를 보면 진담으로 하는 말은 아닌것 같지만,
적어도 감동적인 분위기로 끝맺었으면 했습니다.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는 날 제쳐두고 코테가와가 야미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키츠군과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야미씨.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해요."

"감사합니다. 코테가와 유이."

"굳이 풀네임으로 부르지 않아도 괜찮은데요?"

"아, 그거 야미의 습관이야.
대부분 사람들에게 경어를 쓰거나 호칭을 부르거나, 풀네임을 부르니까 말이지."

"음...우주인의 습관이라면 제쪽이 존중해야겠죠."

아니...딱히 우주인이라 그런건 아닌데?
굳이 지적 안해줘도 상관없으려나?

첫만남치곤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야미가 문득 떠오른듯 물었다.

"그런데...방금 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어딘가 가던 중이었습니까?"

순간 방금전까지의 목적을 떠올리곤 코테가와도 나도 당황하며 허둥댔다.

"...아! 아키츠군. 빨리 서둘러야 겠어요.
이러다가 점심시간이 다 지나간다고요!
그럼 야미씨 안녕히!"

"까, 깜빡할뻔 했다. 얼른 구교사로 가지 않으면...!
그럼 야미, 잘있어~!"

"구교사...입니까?
그럼 같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에?""



구교사의 도서실에 꽂힌 오래된 책들을 읽으러 자주 간다는 야미의 말에
코테가와는 낙후된 건물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 하며, 원한다면 구교사내의 책들은 모두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어차피 버려진 장소고, 가져간다고 신경쓸 사람도 없을테니.
하지만 책을 둘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다는 사실과,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에 빠지더라로 변화능력을 통해 벗어날수 있다는 야미의 말에
결국 구교사 출입을 눈감아주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낙후되었음이 뚜렷이 보이는 2층짜리 구교사 건물 근처에 도착하자 철조망 근처에 거대한 팻말이 바닥에 꽂혀 있는게 보였다.
아니, 팻말이 아니라 차라리 거대한 나무판이었다.
정상적으로 나무판에 붙어있는 말뚝이 바닥에 꽂혀 있는게 아니라,
말뚝은 없고 나무판 자체가 우악스럽게 바닥을 파헤치며 박혀있는것이 굉장히 거친 솜씨로 만들어진 팻말이라고 느끼게 했다.
야미가 팻말을 보더니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건..."

"왜 그래요 야미?"

야미의 반응에 신경을 쓴 코테가와가 물어보자 야미는 잠시 주저하더니 말했다.

"...이상하군요.
분명 지난주에 이곳에 올땐 이런 팻말같은건 없었던걸로 기억합니다만..."

"에?"

"게다가 이 나무판에 쓰여진 글씨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것처럼 보입니다."

야미의 말을 듣고는 코테가와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불평했다.

"역시 누군가의 못된 장난임에 틀림없어요.
유령이라니 그런 비합리적인 존재도 있을리 없고..."

"하지만 나무판을 땅에 박은 힘은 심상치 않아 보이는군요...
근처에 기계의 흔적도 없고...
...유령...이란건 잘 모르겠지만.
이 건물...조사해 봐야 할 필요가 있겠군요.
그리고 이 글귀들도..."

나무판이 박혀있는 바닥을 살펴보던 야미가 일어서서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최근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읽고 있는지 탐정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야미는 꽤 글에 빠진듯 했다.



12명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쫓는다.

「여왕」은 「호위」에게 횃불을 넘기고,
「호위」는 「시종」에게 횃불을 넘기고,
「시종」은 메아리에게 횃불을 넘긴다.

     어둠이 찾아오고, 「여왕」과 「호위」와 「시종」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잉태되지 않은 자」가 「꼬리 달린 자」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꼬리 달린 자」는 바다에 빠지고 「잉태되지 않은 자」는 파도에 삼켜진다.

「눈물 흘리는 자」가 「쌍둥이」에 기대어 울부짖는다.

     「쌍둥이」가 메아리에 떨어진다.

「동류가 아닌 자」가 「그림자」에게 덤벼든다.

     「그림자」가 메아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눈물 흘리는 자」가 「동류가 아닌 자」를 메아리에 내던진다.

「부정하는 자」가 메아리를 부정한다.

     「눈물 흘리는 자」가 춤추고, 「부정하는 자」는 「눈물 흘리는 자」를 부정한다.

「이끄는 자」가 메아리를 찾는다.

     「이끄는 자」가 메아리에 손짓한다.

「잊혀진 자」가 되돌아온다.

     더이상 목소리도 메아리도 울리지 않는다.



글을 읽어본 야미가 잠시 생각하더니 뒤에서 기다리는 우리를 돌아보며 이야기한다.

"이 글... 아무래도 구교사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12명의 목소리는 12명의 사람을 뜻하는게 되겠지요.
메아리는 유령을 상징하겠지요.

꺾쇠(「」)표시로 묶어진 것은 각자의 사람을 상징하는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여왕」은 아마도 프린세스 라라.

다른 이름이 가리키는 의미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그거라면 말이 안되요.
들어간 사람은 라라씨, 하루나씨, 모미오카씨, 사와다씨, 유우키군 이 다섯 뿐이라고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을 합쳐도 여덟뿐이잖아요?"

코테가와의 반박에 야미가 침묵을 지킨다.
마땅한 대답을 못하는 야미를 지원해줄까싶어서 옆에서 말참견을 한다.

"...혹시나 우리 말고 들어온 사람이 있지 않을까?"

"무슨?"

"유령의 소문을 듣고 호기심을 드러낼 학생이 우리반에만 있는게 아닐꺼란 말이야."

"설마? 아직도 더 사람이 찾아온다는 말인가요?"

코테가와가 골치아프다는듯 한손으로 이마를 잡는사이,
야미는 무언가 영감이 떠오른듯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프린세스 이전에 이미 누군가 다녀갔을수도 있겠군요.
프린세스를 가리키는것이 「여왕」이 아니라 데빌루크를 상징하는「꼬리 달린 자」라면,
그 앞에 이미 「여왕」,「호위」,「시종」이 들어왔었다고 할수 있겠군요.
그런데 「꼬리 달린 자」에 매달린「잉태되지 않은 자」라는건...?"

"...페케 아닌가?"

"네?"

내말이 의외였는지 쳐다보는 야미에게 추가로 근거를 말한다.

"왜 있잖아... 라라의 머리에 악세서리처럼 달린 메카말야.
옷을 구성하는 메카지만 가끔 말도 하잖아.
12명의 '목소리'라고 했으니까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되었던게 아닐까?"

"과연...메카는 확실히「잉태되지 않은자」이니까 글귀와 맞아떨어지는군요."

이야기를 듣고있던 코테가와도 대화에 참여했다.
왠지 김샌듯이 맥빠진 어조로 예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뭐에요...결국 말그대로의 의미로, 신체적 특징을 이야기 하는거였잖아요?
「꼬리 달린 자」라느니「잉태되지 않은 자」라느니 괜히 불길한 용어만 사용해선, 겁만 먹게 만들려는 수작이었어요."

"하지만...세번째 문장이 신경쓰이는군요.

「여왕」과 「호위」와 「시종」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어째서 이런 말을 적었을까요?"

"...설마 아직까지 그들이 구교사에 남아있다는 뜻이란 건가요?
무언가의 사고로?"

코테가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예언같은 글따위 장난이라고 생각했으면서...
한숨을 내쉬면서 손뼉을 쳐서 주의를 환기시킨다.

나를 돌아보는 코테가와와 야미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이렇게 의견을 나눠봤자 더이상 건질건 없어.
우린 절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고 이대로 이야기만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이제 슬슬 구교사로 들어가서 직접 사람들을 찾는게 좋다고 생각해."

"아...역시 그래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앞서간 아이들과도 지나치게 떨어진것 같고.
우선 안의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지 않으면...
예언 따위 믿지 않지만, 혹시라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 갇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동의합니다...
그럼 어느 방향으로 들어갈까요?
구교사로 들어가는 문은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한개씩 있습니다만."

구교사 내부로 들어가는 문의 위치를 말하며 의견을 물어보는 야미에게 단호하게 주장했다.

"오른쪽!"

"...근거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오른쪽은 바른쪽이야. 난 언제나 바른길을 걷는다고."

""......""

겨울도 아닌데 차가운 바람이 셋사이에 흘렀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이고 침묵마저 차가웠다.
빤히 나를 쳐다보던 둘은 이윽고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왼쪽으로 가죠."

"어째서?!"

항의하는 나를 무시하고 구교사 왼쪽문을 향해 걸어가는 두사람을 바라보다
투덜대며 황급히 걸음을 옮기는 나였다.



구교사에 들어가자 곧바로 계단이 보였다. 위를 향하는 계단과 아래로 향하는 계단.
구교사엔 지하층도 있었던가?
갸우뚱하는 나와 상관없이 코테가와는 야미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지하와 1층, 2층. 어느쪽을 먼저 탐색하죠?"

"2층을 먼저 조사하고 1층, 지하 순으로 탐색하는게 어떻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죠."

서로 고개를 끄덕이곤 2층으로 올라가는 둘을 보며 나도 졸래졸래 따라갔다.
보통은 남자인 내가 앞장서야 하는게 매너가 아닐까 합니다만...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두운 구교사.
정오의 시간엔 햇빛이 거의 수직으로 내려쬐는지라, 깨진 유리창 너머로 빛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복도에 코테가와는 약간 위축된듯 했다.

"낮인데도 꽤...어둡네요..."

"시간이 좀 지나면 어두운곳도 잘 보일테니까 너무 걱정마."

"별로...불안해한건 아니에요."

"...불빛이 보입니다."

"에?"

앞장서던 야미의 말에 앞을 바라보자 복도의 구석에서 무언가 빛나는 물체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불이 켜진 상태의 손전등이 복도에 쌓인 목재더미들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건..."

"손전등이군요.
이렇게 불이 켜진채 떨어져 있다는건...역시 누군가 이곳에 왔다가 사고를 당한걸까요?"

"서, 설마... 구교사에 흉악범 같은자가 잠복하고 있는건 아닐까요?"

"성급한 가정은 금물입니다만...확실히 불안하군요."

"그런...학생들은 대체 어디에?"

겁을 먹은듯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찾으려는 코테가와의 모습을 대단하다고 느끼며
우선 코테가와를 달래기 위해 어깨를 툭 친다.

"꺅-?!"

"으앗?"

화들짝 코테가와에게 나도 덩달아 놀라서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내쪽을 바라보던 코테가와는 안심한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화를 내며 따진다.

"무, 무슨짓이에요 아키츠군! 놀랐잖아요?"

"미, 미안. 그냥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어."

"아키츠군은 그 아이들이 걱정되지 않는건가요?"

"그게 아니라...여기에 난투의 흔적이나 피같은건 보이지 않잖아?
우선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되고, 어딘가 숨어있는게 아닐까 생각해.
장소는 이 구교사로 한정되어있으니, 하나하나 교실들을 돌아보면서 찾아보면 언젠간 학생들을 발견할수 있다고 봐."

"그...그럴까요?"

"그렇다니까. 우선 내가 교실에 들어가면 야미가 복도에서 망을 봐주면서 코테가와를 지켜주길 바래."

"그러도록 하죠."

내 부탁에 야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코테가와가 놀란듯 반문한다.

"에? 야미에게?"

아마도 언니격인 자신이 야미를 지켜야 겠다고 생각했나보다.
확실히 그림은 되는데...

"저래뵈도 야미는 우주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그래요?"

"걱정마십시오. 코테가와 유이."

"아...그럼, 잘부탁해요 야미씨."

당황하면서도 답변하는 코테가와를 바라보곤 2층의 계단입구의 화장실부터 들어간다.

"그럼 난 하나씩 방을 둘러볼께. 혹시나 무슨 일이 있거든 소리쳐서 알려줘?"

"알겠어요 아키츠군."
"알겠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화장실을 돌아보고 교실을 돌면서 혹시몰라서 청소도구함마저 열어봤으나 숨어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새 복도 끝의 화장실도 둘러보고 나자 남은건 대강당으로 보이는 홀로 들어가는 철문.
여기마저 없다면 2층에는 사람이 없는거겠지.

한숨을 내쉬며 홀로 향하는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돌려 당기자 덜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 뒤에 무언가로 막아놓은듯 하다.
...나무막대라도 걸어놓은 건가?
잠시 멈칫하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코테가와와 야미가 다가온다.

"아키츠군? 무슨일이에요?"
"무슨 일입니까? 아키츠 료스케."

"그게...여기 문이 잠겨있어. 안쪽에서 뭔가로 닫아놓은거 같은데?"

"그렇다는것은...?"

"아마도 이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거겠지?
글에서 적힌대로라면, 먼저 들어왔던 3명의 학생들인지도 모르지.
아무튼 문을 열테니 잠시 물러나있어."

본격적으로 문을 뜯어낼 의욕 만만인 나를 보며 야미가 묻는다.

"차라리 제가 칼로 문 사이의 장애물을 베어내는게 더 낫지 않습니까?"

"문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잘못하면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베일지도 모르잖아?
어차피 당기는 문이라면 뜯어내는편이 좋을꺼라고 생각해서 말이지."

"혹시나 건너편에 있는게 흉악범이라면 당신이 위험할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내 몸 튼튼한거야 야미도 알고있잖아?
트럭에 치여도 난 멀쩡하다고~
설사 칼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니까 걱정마."

"...당신은 정말로 지구인인지 가끔씩 의문이 듭니다."

"그거...칭찬은 아니지?"

어이없다는듯한 야미의 얼굴을 바라보다 피식 웃고는 철문을 잡는다.

"혹시나 파편이 튈지 모르니까 조심하라고...「저기...」?"

팔에 힘을주며 양쪽으로 문을 뜯어내려는 나를 보곤 코테가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의아한듯 쳐다보는 나에게 코테가와는 주저하듯이 말한다.

"...그냥 경첩(문 이음새)부분을 잘라내면 되지 않나요?"

""......""

지적해놓고서도 민망한듯 볼을 긁적히는 코테가와를 쳐다보다,
나도 야미도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사람은 때론 힘보단 머리를 써야 합니다...



사악-!



야미의 머리칼이 철문의 양쪽 경첩들을 베어낸다.
위아래에 쇠막대로 잠금이 되어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우드득.

손잡이를 잡고 철문이 앞으로 넘어지지 않게 뒤로 당긴다.
천천히 철문을 바닥에 내려놓자 대강당처럼 생긴 홀이 나타났다.

"그럼, 들어가볼까..."

빛하나 들어 오지 않은채 어둠으로 뒤덮힌 홀 안으로
조심스러 들어가며 혹시나 사람이 있을까 싶어 목소리를 높여본다.

"어이~ 누구 없~「타아앗-!」네?"

빠악-!

"꺄악? 아키츠군!"

무언가 머리에 부딪히자 엉겁결에 덤벼오는 검은 인형을 구속한다.
바닥이나 벽 상태가 어떤지 모르기에 쓰러뜨리거나 벽에 밀어붙이는 행동을 피하고,
다시금 휘둘러지는 길쭉한 물체를 팔을 들어 막고 상대방의 뒤로 돌아 팔과 허리를 끌어안고 깍지를 낀다.

"꺄-?!"

고음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숨어있는 여학생인가보다.
당황해서 발버둥치는 인형을 달래기 위해서 열심히 말을 내뱉는다.

"지, 진정하세요! 도와주러 온거「린을 놔줘!」「놔줘요!」"

팍- 퍽-

뒤쪽에서 다른 두명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나를 항해 공격해온다.
세사람...역시 처음 온 일행이다.
우선 진정시키는게 먼저일 듯 하다.
흉악범은 아니니 안고있던 사람, 쿠죠 린 선배를 놓아준다.

껴안았던 몸을 풀자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리는 셋.
경계하는 눈빛으로 손에 든 막대기들을 놓지않으려는 세명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코테가와와 야미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아키츠군?"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아, 괜찮아. 저쪽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는걸 미처 생각못했네."

둘을 안심시키는 말을 할때, 거리를 벌렸던 셋이서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아키츠군? 혹시 그쪽은 아키츠 료스케인가요?"

"네.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데 텐죠인 선배신가요?"

"맞아요. 그 둘은?"

"동급생인 코테가와랑 친구인 야미입니다.
최근 구교사에 대한 소문때문에 잠시 조사할 겸 찾아왔죠."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막대기를 내리는 셋을 보니 긴장이 탁 풀린것 같았다.
이제 셋을 데리고 1층으로 내려가서 구교사 밖으로 보내는 것이 최선일 듯 하다.

"그나저나, 좀더 가까이 오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요."

"그러지요."

천천히 셋이 그늘 밖으로 나온다.
가까워진 셋을 보니 옷이 약간 지저분해져 있고 피곤한듯 눈에 기미가 져 있었다.
초췌한듯한 세명의 표정을 보니 고작 몇시간으로 이렇게 될 얼굴이 아닌것 같았다.

"오랜만이군요 아키츠군."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이에요."

태연함을 가장하며 말하는 텐죠인 선배와는 별개로 쿠죠 선배는 약간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까 껴안았을때의 일 때문인듯 한데...저도 경황이 없었던지라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배님...
우선 걱정되는 점부터 묻는다.

"저기, 텐죠인 선배. 실례지만 여기에 들어온건 언제인가요?"

"어제 저녁이었어요."

허... 구교사에서 밤을 새었단 말이잖아?
이렇게 초췌할법 하다고 생각하며 텐죠인 선배에게 넌지시 권유했다.

"저기, 그러시다면 이제 저희와 함께 구교사를 빠져나가시지 않겠습니까?"

승낙할것이라 생각한 질문에 텐죠인 선배는 초췌한 상태에서도 도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지요. 이 학교의 여왕인 내가 이 학교에서 모르는 일 따윈 있어선 안됩니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할 때까지는 돌아가지 않아요!"

"그런...사키님!"
"이제 이런 이상한 곳엔 더이상 있고 싶지 않아요~!"

"린? 아야까지?"

아우성치는 둘에게 당황해하는 텐죠인 선배를 바라보던 야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키에게 말을 걸었다.

"「여왕」...당신이 「여왕」이었습니까?"

"맞아요. 내가 바로 사이난 고교의 여왕 텐죠인 사키랍니다?"

자부심 강한듯 뽐내는듯한 표정으로 의기양양해하는 텐죠인 선배를 바라보던 야미는,
쿠죠 선배와 후지사키 선배에게 시선을 돌렸다.

"과연...그리고 저들이 당신의 「호위」와「시종」이겠군요."

"이상한 표현이군요. 그렇다면 그렇지만..."

"그리고 '횃불'은 방금전 손전등인가?"

"무슨 말을...?"

"야미씨. 또 그 예언 이야기인가요?"

"예언...? 그건 무슨 말이죠?"

코테가와가 야미에게 말을 걸자 듣고있던 텐죠인 선배가 이상한듯 물어온다.
야미가 고개를 갸웃하며 텐죠인 선배에게 묻는다.

"구교사 앞의 팻말에 적힌 글을 못보셨습니까?"

"팻말? 그런게 있었나요?
우리가 들어올땐 어두운 밤이라 그런건 보지 못했어요."

"그렇습니까..."

"그래서, 그 예언이란건 대체 뭔가요?"

"그건..."

야미가 텐죠인 선배와 쿠죠 선배, 후지사키 선배에게 구교사 근처에 적힌 글을 읊어준다.
토시하나 안틀리고 읊는 야미의 기억력이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해서, 저는 당신들이 각각「여왕」,「호위」,「시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도에서 보았던 손전등은 당신들이 들고온 '횃불'일테고,
그곳에서 '메아리'라는 존재를 보고 당신들은 도망친것이겠죠."

"마, 맞아요. 어둠속에서 비친 두개의 불빛이 마치 눈동자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후지사키 선배가 동의해온다.

"이...이상한 예언이군요.
되돌아오지 않는다니..."

텐죠인 선배도 태연한듯 하지만 약간씩 목소리가 떨리는게 느껴진다.

"사키님...역시 그냥 돌아가죠.
이곳은 뭔가 이상합니다."

"린..."

쿠죠 선배의 간언에 마음이 흔들리는 듯한 텐죠인 선배에게 나도 더불어 말한다.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굳이 이상했던 두개의 불빛을 제외하더라도,
이곳은 매우 낙후되어서 잘못하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서 구교사 탐험은 이만 포기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할수 없군요.
린과 아야도 걱정이니 이만 돌아가기로 하죠."

마지못해 수긍하듯한 텐죠인 선배에게 안심하면서 일행을 이끌로 계단이 있는 복도 반대편을 향해 걸어간다.
부서진 유리창들, 삐걱거리는 바닥, 떨어져나간 문짝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하는 가운데,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선지 텐죠인 선배가 야미에게 말을 건다.

"그나저나, 그 예언이란것 말인데, 우리말고도 따로 들어온 학생들이 있다는 건가요?"

"네. 프린세스 라라와 유우키 리토와 그의 동료들이 소문을 듣고 구교사에 들어온 상태입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릅니다만..."

"?! 라라도 왔다고...?"

"아키츠 료스케와 코테가와 유이의 말로는 방금전 들어온 인물은 모두 여섯이라고 합니다.
프린세스 라라가 「꼬리 달린 자」.
그녀의 머리에 달린 장식(페케)이「잉태되지 않은 자」
그외 나머지 학생들도 각각의 호칭을 갖고 있겠지요."

"저...저기..."

그때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던 후지사키 선배가 주저하듯이 말을 꺼낸다.
시선이 집중되자 위축되던 후지사키 선배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이 예언,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무슨...?"

"그게...줄의 앞이 띄어쓰기가 되어있는 문장과 그렇지 않은 문장들을 따로 모아뒀더니 이렇게 되었어요."

후지사키 선배가 수첩에 적어둔 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12명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쫓는다.

「여왕」은 「호위」에게 횃불을 넘기고,
「호위」는 「시종」에게 횃불을 넘기고,
「시종」은 메아리에게 횃불을 넘긴다.

「잉태되지 않은 자」가 「꼬리 달린 자」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눈물 흘리는 자」가 「쌍둥이」에 기대어 울부짖는다.

「동류가 아닌 자」가 「그림자」에게 덤벼든다.

「부정하는 자」가 메아리를 부정한다.

「이끄는 자」가 메아리를 찾는다.

「잊혀진 자」가 되돌아온다.



     어둠이 찾아오고, 「여왕」과 「호위」와 「시종」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꼬리 달린 자」는 바다에 빠지고 「잉태되지 않은 자」는 파도에 삼켜진다.

     「쌍둥이」가 메아리에 떨어진다.

     「그림자」가 메아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눈물 흘리는 자」가 「동류가 아닌 자」를 메아리에 내던진다.

     「눈물 흘리는 자」가 춤추고, 「부정하는 자」는 「눈물 흘리는 자」를 부정한다.

     「이끄는 자」가 메아리에 손짓한다.

     더이상 목소리도 메아리도 울리지 않는다.



순서가 바뀐 시를 보이며 후지사키 선배가 이야기 한다.

"왼쪽에 붙은 문장은 메아리를 쫓는 사람들의 행동,
오른쪽으로 밀려나간 문장은 그후의 결말을 이야기 하는걸로 보이지 않아요?"

"확실히...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수긍하는 야미와 반대로 코테가와가 당치 않다는듯 반박한다.

"하지만 이 시의 내용은 틀렸어요.
지금 우리는 이렇게 선배들과 만나서 구교사를 나가려 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그렇지만...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무슨말이죠 아야?"

텐죠인 선배가 물어오자 후지사키 선배가 수첩에서 꺾쇠 부분을 가리킨다.

"꺾쇠 표시로 된 호칭들...전부 12개 였어요."

"그런데요?"

"「쌍둥이」는... '둘'이잖아요?"

"...에?"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이 시에 등장하는 목소리는 전부 '13명'이라고요...?"

"......"

갑자기 추위를 느끼는지 살짝 팔을 껴안는 일행들을 보며 후지사키 선배가 말한다.

"설사 장난이라도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 위협하는 시를 써놨는데,
숫자에서 실수를 한다는건 말이 안되요.
혹시나 「쌍둥이」가 둘을 의미하는게 아니고 단순한 그 사람만의 특성이라면 모르겠지만..."

"구교사에 들어온 클래스메이트 중에 쌍둥이가 있다는 얘긴 못들어봤는데요."

내가 추가로 이야기 하자,
야미도 심각하게 얼굴을 바꾸곤 후지사키 선배에게 물었다.

"...그말은, 이 시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는 '목소리'가 아니란 뜻입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그게...몇몇 목소리의 행동은 무언가 이상해요.

「그림자」에게 덤벼드는「동류가 아닌 자」.
「동류가 아닌 자」를 메아리에 내던지고 춤추는「눈물 흘리는 자」.
메아리에 손짓하는「이끄는 자」.
그리고, 되돌아온「잊혀진 자」.

적어도 이 넷은 무언가 이질적이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요.
혹시, 그중 누군가가 '메아리'이지 않을까요?"

"이...이상한 소린 그만두세요 아야!"

"하지만 사키님..."

"괜한 억측으로 쓸데없이 겁먹어봤자 소용없어요!
우리가 이대로 구교사를 빠져나간다면 이런 예언 따윈 상관없는 거잖아요?
이 텐죠인 사키에게 그런 시시한 예언 따위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걸 알려드리죠."

약간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당당하게 말하며 학생들을 진정시키는 텐죠인 선배.
오랜만에 다른 이들의 위에 서는 사람다운 모습을 보는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코테가와도 텐죠인 선배의 말에 힘껏 수긍하며 동의한다.

"그, 그래요. 어차피 구교사를 나가면 두번다신 예언이라는 것에 휘둘릴 일도 없을테니까요.
그렇죠 아키츠군?"

"응? 아...그렇겠지.
예언같은거, 어차피 그냥 재미로 받아들이면 되는거잖아?"

"...그렇겠죠?"

"물론. 그것보다 이제 슬슬 가보자고요.
남아있는 학생들도 신경쓰이고."

약간 긴장한듯한 코테가와를 안심시키면서 다시 계단이 있는 복도 끝으로 일행을 이끈다.
방금전 대화를 생각하는지 야미는 말없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고,
쿠죠 선배와 후지사키 선배는 텐죠인 선배의 옆에서서 뒤따라 오고 있었다.
침묵을 지킨 가운데 삐걱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며 복도를 걸어가길 잠시,
조금전 지나쳤던 손전등이 목재더미들 사이에 떨어져 있는것이 보였다.

"아, 저건...우리 손전등이에요 사키님."

"그렇군요. 그 귀신과 만나서..."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몸을 살짝 떠는 세 선배를 보려니,
코테가와가 앞으로 나가 손전등을 주웠다.

"다행히 아직 불이 켜지는군요.
낮이긴 하지만, 교사내로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으니까 손전등이 있다면 좀더 시야가 밝아지겠죠."

"그럼 내가 앞장설께."

손전등을 받아들기위해 코테가와에게 걸어간다.
야미와 선배들도 내 뒤를 따라온다.
코테가와로부터 손전등을 건네받고 앞을 바라본다.
계단까진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곧 계단이 보일겁니다.
1층에 내려가는대로「빠직-」...?"

발밑에서 들린 무언가 균열이 가는 소리에 뒤에 선 세명의 선배들이 크게 뒤로 물러서고,
야미와 코테가와도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굉음과 함께 바닥이 무너져내렸다.

쿠르릉-!

"꺄아---!"

"코테가와!"

다행히 야미는 우주인다운 운동신경으로 가볍게 뒤로 날아뛰었다지만,
코테가와는 미처 벗어나지 못하고 무너지는 바닥과 함께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대로 바닥에 부딪히면 좋은 꼴은 못볼거 같아 황급히 코테가와의 몸을 끌어당겨서 어깨와 다리를 안아올린다.
코테가와도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내 목을 끌어안는다.
적어도 목을 안는 행동이 안전벨트 대신은 되겠구나.
남은건 충격이 가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럽게 착지하는것-!

탁-

급작스런 추락에 비해 조용한 소리를 내며 무사히 착지에 성공했다.
그리고 살며시 몸을 낮춰 코테가와를 안고있는 팔을 내린다.
제대로 복도에 선 코테가와는 놀라면서도 안심한듯한 표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해왔다.

"고, 고마워요 아키츠군."

"뭘~당연한 일이라고.
그나저나..."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쌓여있던 목재더미와 우리 여섯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해서 떨어져 내린 복도는 굉장히 큰 구멍이 나있었다.
복도의 앞뒤가 완전히 단절될만큼 넓게 뚫린 커다란 구멍은, 일반인이 뛰어넘기엔 무리로 보였다.
어떻게 한다...

이윽고 야미가 구멍 근처로 조심스레 다가와 안부를 묻는다.

"괜찮으십니까 코테가와 유이?"

"아, 괜찮아요 야미. 아키츠군 덕에 살았어요."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고마워요."

"어이~ 내 걱정은 안해주는거야?"

"...당신은 이런걸론 다치지 않으니 걱정은 불필요합니다."

"지금 네 말로 다쳤다고?!"

"그렇습니까...
아키츠 료스케. 성격. 의외로 소심함."

"이봐?!"

"그나저나...건물의 낙후가 예상이상으로 심각하군요. 조심해야 겠습니다."

"......"

시선 돌리지 마? 그리고 말 돌리지마!
은근슬쩍 피식거리는걸 숨기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아무튼, 이대로 2층 복도 반대편으로 건너가는건 무리일듯 합니다.
한명씩 안고 뛴다면 모르겠지만 반대편쪽이 착지시의 충격을 버틸지도 모르겠으니까요."

어떻게 할까요...라고 중얼거리는 야미에게 제안해본다.

"그러지말고 그냥 이쪽 구멍으로 한명씩 내려오면 안돼?
내가 한사람씩 들고 착지할테니까 1층으로 바로 가자고.
지금 서있는 바닥은 위층보단 튼튼해 보여서 한명씩 내리다가 무너질것 같진 않아."

살짝 바닥을 발로 통통 쳐보며 얘기하는 나에게 야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요..."

"그?!...파렴치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겠죠."

코테가와가 잠시 항의하려다가 단념하고 수긍한다.
뛰어서 위로 올라가기 전에 코테가와를 바라보며 주의를 준다.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얼마 걸리진 않겠지만,
혹시나 주변에서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소리쳐.
즉시 내려올테니까."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아키츠군."

"그럼..."

탓 하는 소리와 함께 뚫려진 구멍을 통해 가볍게 2층으로 넘어온다.
어안이 벙벙해져 나를 바라보는 세선배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들으셨겠지만 구멍을 통해서 한명씩 1층으로 내려드리겠습니다.
혹시나해서 말씀드리는거지만, 맹세코 절대 이상한 행동같은건 하지 않을테니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으음...어떡하죠?"

"사키님, 여기선 우선 승낙하시는것이 좋겠습니다."

"2층 계단을 못쓰는 이상 다른 방법은 없어요."

의견을 나누던 선배들은 이윽고 수긍하더니,
우두머리격인 텐죠인 선배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도도한 표정을 지은 텐죠인 선배가 나를 마주 보며 당당히 말한다.

"이 나를 수행하게 된걸 영광으로 아세요."

이런 때마저도 고귀함을 잊지않는 모습에 약간 감탄과 함께 귀여움을 느끼면서
허리를 숙이며 정중한 인사와 함께 장난스레 말한다.

"예이 공주님~."

"?!누, 누가 공주예요?
여왕이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해선 얼굴을 빨갛게하며 반박하는 텐죠인 선배를 보며 아차했다.
평소의 태도가 도도하지만 말괄량이 왕녀님같은 느낌이라 그만 말실수를 했다.
실수했단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정중히 응대한다.
좀더 연극풍으로 무난히 상황을 넘기는게 좋을것 같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여왕님.
부디 아둔한 저의 무례를 용서하시길..."

"......앞으론 주의하도록 하세요."

시선을 외면하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텐죠인 선배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쿠죠 선배와 후지사키 선배의 모습이 보인다.

살짝 내밀어진 텐죠인 선배의 손을 잡고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러자 깜짝 놀라며 텐죠인 선배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뭐, 뭐하는거죠?"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더듬는 텐죠인 선배에게 어리둥절하다가 깨달았다.
아...아까 코테가와랑 함께 떨어질때 내 행동이 안보였나?

"그게...공주님 안기로 한분씩 내려드릴껍니다만...?"

"에?!"

목소리가 높아지며 목덜미까지 붉어진 텐죠인 선배가 더듬거리며 묻는다.

"어, 업는건 안되나요?"

...선배님.
포즈상으론 나을지 몰라도,
전 그게 더 부끄러울것 같은데요?

"업힌 상태로 착지하면 잘못하다간 혀를 깨물거나, 턱을 다칠수 있거든요.
게다가...신체 접촉이 더 많아서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구체적으론 가슴이라든가 허벅지라든가 말입니다...

"?!아, 알았어요.
이대로 좋아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채로 수긍하는 텐죠인 선배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어깨를 잡고,
다리 뒤로 팔을 넣어 텐죠인 선배를 안아올린다.
흠칫-하며 텐죠인 선배의 몸이 떨리는게 느껴진다.
음...이렇게까지 반응하시면 저도 좀 송구한데요...
...더 부탁할것도 있는데 가능하려나?

"저기, 텐죠인 선배?"

"...뭔가요, 아키츠군?"

"그게...죄송하지만 착지시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제 목에 팔을 두르는걸 추천합니다만..."

"......"

"이, 이상한 뜻이 아니에요?
그냥 혹시모를 위험에 대비한 안전벨트같은 용도로..."

"...알았어요."

살그머니 텐죠인 선배의 손이 내 목을 감싸 안는다.
방금전의 급박한 상황과 달리 이렇게 천천히 상황이 전개되다보니 괜시리 의식이 간다.
가까워진 텐죠인 선배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숨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 버린다.
덕분에 약간 어색한 걸음으로 구멍쪽으로 다가가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야미가 툭-하고 내뱉는다.

"엣찌한 인간이군요."

"아냐!"

이건 이상한 생각을 해서 하반신이 이상해졌다든가 해서 걸음이 어색한게 아니라고?
그저 몸이 긴장해서 뻣뻣하게 굳었을 뿐이라니까!
구멍 앞에 서서 코테가와에게 신호를 보낸다.

"코테가와~! 지금 내려갈테니 구멍근처에서 조금만 떨어져 있어줘."

"알겠어요 아키츠군.

...이제 내려와도 괜찮아요~!"

밑에선 준비가 끝난것 같아 내려가기 전 텐죠인 선배에게 주의를 준다.

"하나, 둘, 셋 하면 밑으로 내려갈테니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선배."

"난 여왕이에요.
한심한 모습따윈 보이지 않아요."

"하하, 알고 있다고요 선배."

"..."

"그럼 갑니다. 하나, 둘, 셋~"

쉬익-

사뿐-

최대한 충격을 완화시키면서 사뿐히 바닥에 착지한다.
바닥은 역시나 큰 삐걱거림없는게 안정적인듯 하다.
텐죠인 선배는 따로 다치거나 하진 않았지?
고개를 살짝 숙여 바라보니 눈앞을 가리는 금발머리가 보인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채로 텐죠인 선배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천천히 앉으며 텐죠인 선배를 내려놓으며 일으켜 세운다.

"이제 끝났어요 텐죠인 선배."

"으응? ...! 그, 그렇군요."

화들짝 놀라며 내게서 거리를 벌린 텐죠인 선배는 잠시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헛기침을 하곤 답례를 해왔다.

"언제 내려왔는지도 모를만큼 정중했어요.
믿음직스러운 후배군요 아키츠군은."

"아하하~ 영광입니다 텐죠인 선배."

사람들의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하물며 그것이 가뭄에 콩나듯 한 빈도라면 더더욱.
쑥쓰럽게 웃으며 뒷통수를 매만지던 나는 다시 2층을 바라본다.

"그럼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올테니 두분은 잠시 기다려 주시길..."



위로 올라와서 다음 사람을 안고 가기로 했다.
이번 차례는 쿠죠 린 선배.

"자, 잘부탁 해."

"걱정마세요 쿠죠 선배."

개인적으로 상상했던 검도 소녀의 이미지랑 달리 쿠죠선배는 남자다운 씩씩한 말투가 아니라 정중한 어투를 쓴다는걸 처음 알았다.
대화해본 적이 적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가씨에게 실례되는 생각을 했다며 속으로 사죄.
붉어진채로 머뭇거리는 쿠죠 선배를 안아들고 가볍게 1층으로 착지한다.
세번째 하는 일이다 보니 방금전보단 훨씬 긴장이 풀린것 같았다.



다음 차례는 후지사키 아야 선배.
약간 겁먹은 듯 눈가에 약간 눈물이 맺혀있는게 보였다.
그나저나 안경...좀 위험하지 않을까?

"저기, 후지사키 선배."

"네?"

"그 안경, 착지할 때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잠시 포켓에 따로 보관해두시는게 어떨까요?"

"아...그럴께요."

그나저나 후배에게 존대말은 좀 그렇지 않나요 후지사키 선배.
원래 성품이 그러시다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후지사키 선배는 안경을 벗어서 옷안에 넣은뒤 나를 바라보았다.
불투명한 둥근 안경을 치우자 드러난 눈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깨끗했다.
안경 같은거...투명하거나 좀더 예쁜 안경으로 바꾼다면 훨씬 귀여울텐데...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이 이상했는지 후지사키 선배가 약간 겁먹은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저, 저기...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아...아뇨. 그냥, 안경을 벗으니 예쁘다고..."

"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심코 말해버린 말에 선배를 헌팅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급히 얼버무렸다.
하지만 급히 고개를 돌린 후지사키 선배의 붉어진 귓가를 보니 이미 늦은것 같았다.
민망해서 후딱 끝내버리자고 생각해 후지사키 선배의 어깨를 잡고 훌쩍 들어올렸다.

"꺄!"

놀라는 후지사키 선배를 무시하고 구멍 앞으로 다가가 말한다.

"셋하면 내려갑니다. 하나, 둘"

"자...잠깐만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셋!」꺄아아아---!"

황급히 내 목을 끌어안으며 후지사키 선배가 비명을 질렀다.
조용히 착지한 뒤에도 후지사키 선배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날 끌어안고 있었다.
바닥에 내리려고 하니까 눈을 감은채로 필사적으로 끌어안는 모습이 어지간히 놀랐나보다.
내 어깨에 머리를 꼭 파묻고 달라붙은 후지사키 선배의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목덜미 근처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은...음...저기요?
약간 붉어진채 곤란해하는 내 얼굴을 보곤 텐죠인 선배, 쿠죠 선배, 코테가와가 다가와 후지사키 선배를 진정시킨다.

"아야, 이제 그만 진정해요."

"사키님 말씀대로, 이만 정신차려."

"후지사키 선배, 이제 괜찮아요."

"...사키님?"

텐죠인 선배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한 후지사키 선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곤 황급히 팔을 풀어 떨어져 나간다.

"죄...죄송해요!"

얼굴을 붉힌채 필사적으로 사과해오는 후지사키 선배의 모습에 대응이 곤란한지라, 
조금 상기된 목덜미를 살짝 매만지면서 하하 웃어넘길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아직 2층에 야미가 남아있지?



다시 2층으로 뛰어 올라오자 1층의 상황을 보던 야미가 나를 쳐다본다.

"무슨 일입니까 아키츠 료스케?"

"그야, 널 데리러 왔지."

"저를?"

의아한듯 물어오는 야미의 모습이 이상해서 대답한다.

"이제 남은건 야미 뿐이잖아. 그러니 데리고 가려고."

"전 혼자서도 내려갈 수 있습니다.
굳이 변화능력을 쓸것도 없습니다."

고개를 젓는 야미에게 굴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혼자서 내려올수 있건 없건은 상관없어.

건물에 들어갈 때 뒤따라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건,
뒤에 선 사람이 문을 열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잖아?

타인을 생각해주는 상냥한 문화라고.
가끔씩은 다른 사람이 내민 손을 맞잡아 주는것도 좋잖아."

"......"

혼자 내려갈 수 있었다면 방금전의 대화 도중에도 스스로 내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길 바랐으니까,
다른 이들처럼 배려를 받고 싶었기에 내려오지 않은게 아닌가?
그렇기에 아무말없이 위에서 바라만보고 있었던게 아닐까?

침묵하던 야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확실히...상대의 배려는 감사히 받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그렇지?"

싱긋 웃는 나에게 야미가 천천히 다가와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그럼, 부족한 몸이지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잠깐?!
무슨 대사가 그래?
이 상황에서 쓰기엔 뭔가 이상하지 않아?

"어이? 그 말 대체 어디서 배웠어?"

당황한 내 말투에서 이상함을 느꼈는지 야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온다.

"구교사의 도서실의 옛 서적에서 읽은 책에 나와있던 대사입니다만...
여성이 쓰는 고풍스러운 표현이라 생각해서 썼는데 이런때 쓰는게 아니었습니까?"

"...노 코멘트."

뉘앙스가 완전 다르다고?
대체 무슨 책을 읽은거냐 야미...

한숨을 쉬며 야미의 몸을 안아든다.
긴 금발이 바닥에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쓸어담으며 들어올린다.
조그만 몸이 품에 안겨들며 목에 팔을 감아왔다.
작은 입술을 벌려 속삭이듯 야미가 말했다.

"에스코트 잘 부탁드립니다 아키츠 료스케."

"맡겨주세요 작은 공주님~."

외모나 가끔 보이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귀여운 어린 공주님이니까.
고양이 나라의 공주님이래도 믿을꺼라고 속으로 웃으며 1층을 향해 뛰어 내렸다.



모두들 1층으로 내려와 몸을 추스르고 복도를 바라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출구로 나가는 문이 보였고, 그 옆에 2층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반대편 복도 너머는 어둑한 그림자에 가려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텐죠인 선배가 쿠죠 선배와 후지사키 선배를 대신해 나에게 물었다.
(적당히 서로간에 안면도 익혔고, 생각으로 부를땐 이름 쪽이 편하니까 이후론 사키, 린, 아야 선배로 지칭하겠다.)

"그럼 이대로 구교사 밖을 나가는건가요?"

"선배님들께선 교사 밖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들은 앞서온 친구들을 찾아서 돌아가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우리들도 같이 가도록 하죠."

"네?"

"사, 사키님?"

의외의 답변에 어리둥절한 나를 바라보며 사키 선배가 선언했다.

"학생들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학교의 여왕인 내가 혼자서 도망친다는건 말도 안되요.
그러니까, 나머지 1층과 지하도 함께 둘러보도록 하죠."

「라라랑 유우키군을 구하는건 본의가 아니지만...」이라며 첨언하는 사키 선배를 기가막힌듯 바라보다가 살짝 웃음이 새었다.

나의 학생들입니까...
평소엔 나르시즘끼가 약간 있지만, 지금 모습은 정말 멋졌어요 선배.

린 선배와 아야 선배도 사키 선배의 말에 감화된듯 「역시 사키님!」을 말하며 동의했다.
너털 웃음을 지으며 사키 선배들과 함께 어둠으로 덮힌 반대편 복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씩 화장실과 교실안을 둘러보면서 차근차근 조사하던중 복도 중간 부근의 직원실로 보이는 방에서 무엇인가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손을 들어 일행의 주의를 환기시킨뒤, 조심스럽게 직원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한 직원실 내부.
잘못 들은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숨어있는 누군가가 기척을 감추고 있는듯 해 보였다.
숨어있는게 학생이라면 안심시키기 위해서 목소리를 낸다.

"어이~아무도 없어요~?
라라~? 유우키~? 모미오카~? 사와다~? 사이렌지~?
나 아키츠라고~"

"라라씨- 혹시 아무도 없나요~?"

나와 코테가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뒤, 직원실 구석에 있는 캐비넷이 살짝 들썩인다.
세 선배와 코테가와가 움찔하며 약간 물러서자 내가 조용히 캐비넷으로 다가간다.

"혹시 거기 있는거 라라야? 아니면 유우키?
지금 여기 코테가와랑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어."

"...아, 아키츠군이야?"

"이 목소리는, 모미오카?"

순간 캐비넷이 활짝 열리면서 눈물에 젖은 리사와 미오가 내게 달려들었다.

"우와앙~! 아키츠군~!"
"무서웠어~!"

"에, 잠깐?"

엉겁결에 달라붙은 둘을 마주안고 당황하고 있자 코테가와와 야미와 선배들이 다가왔다.

"침착하세요 모미오카씨, 사와다씨. 이젠 괜찮아요."

"괜찮습니까?"

"불쌍하게도, 무서웠나보군요..."

"훌쩍..."
"킁..."

저기...나 교복 젖어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가는 내 교복 상의에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두사람의 등을 토닥거려 주며 달래려고 노력했다.

훌쩍이던 둘이 진정하고 떨어지자,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내밀려다 주저한다.
...사람은 둘인데 손수건이 하나면 어떡하지?
그때 내 행동을 지켜보던 코테가와가 자신의 손수건을 내게 건네온다.

"이것도 함께 건네 주세요."

"아, 고마워 코테가와."

"천만에요. 여자아이의 얼굴은 항상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고마워 아키츠군. 코테가와씨."
"고마워요."

손수건을 건네받고 얼굴을 닦은 리사와 미오는 이윽고 감사의 말을 건내왔다.
겸양하며 코테가와는 방금전 떠오른 의문을 꺼내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곳에 숨어서 뭘 하고 계셨나요?"

"그게..."



리사와 미오가 더듬거리면서 방금전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라라, 하루나, 리토, 리사, 미오 이렇게 다섯이 구교사 1층을 둘러보고 있을때,
어디선가 이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는 것이다.

{나가...}

{나가...}
{나가...}
{나가...}

수많은 소리가 중첩되어 울리는 현상에 일행들이 창백해져 있으려니
복도의 바닥이 무너지며 라라, 하루나, 리토가 떨어져 내렸다는 것이다.
리사와 미오만이 1층에 주저앉아있다가 떨어진 세명을 찾기위해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과실 근처를 걷던중 갑자기 의자가 떠오르며,
이어서 쓰레받기, 책, 신발 따위가 날아오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기겁해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처음 봤어 폴터가이스트 현상..."
"정말로 무서웠어..."

방금전에 겪었던 상황이 떠오르는지 살짝 몸을 떠는 리사와 미오를 보던 야미가 중얼거렸다.

"울리는 목소리...
역시 그건 '메아리'인 걸까요?"

생각에 잠기는 야미의 모습을 눈치챈 리사와 미오가 순간 눈을 반짝이며 야미를 바라보았다.

"저...저기 아키츠군."

"왜그래 모미오카?"

말을거는 리사에게 답하자, 왼손으로 야미를 가리키며 리사가 물어왔다.

"저 아이 가끔 학교 안에서도 보이던데...친구?"

"아, 그래. 야미라고 해.
책 읽는걸 좋아해서 도서실에 자주 오는 편이야."

"헤-"

"정말 귀엽다~!"

"......"

신기한듯 바라보는 리사를 제치고 갑작스레 미오가 야미에게 달라붙었다.
무언가 사랑스러운 생물을 보는듯한 얼굴로 야미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리사마저 덩달아 달라붙으며 야미의 볼이 약간 밀려 올라가며 야미의 진지한 눈매가 엉망이 되는게 보기 우스웠다.

"꺄~ 피부 매끈매끈~!"

야미가 얼떨떨해 하거나 말거나 한동안 야미에게 달라붙어 꺄꺄 소리를 내는 리사와 미오는 방금전까지의 두려움을 잊은듯,
완전 활기가 넘쳐 보였다.

"건강하네..."

"안말려도 되는건가요 아키츠군?"

"뭣하러? 덕분에 저애들 긴장도 많이 풀린것 같잖아?"

"그렇다면 그렇지만..."

"확실히...귀여운 아이군요. 뭐 아무리 그래도 학교 넘버원은 바로 나 텐죠인 사키지만 말이죠."

얌전히 지켜보는 나와, 음음 하며 수긍하는 사키 선배의 모습에 코테가와는 포기한듯 가만히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



한동안의 진한 포옹이 끝난뒤 떨어진 두명을 보며 야미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당신들이 「쌍둥이」인듯 하군요."

""「쌍둥이」?""

"구교사 앞에 적혀있던 글 말입니다."

"아~! 우리도 그거 봤어~.
굉장히 불길하게 써놨던데 대체 무슨 말인진 모르겠더라고."

"맞어~맞어~"

이상한 글에 대해서 불평하는 리사와 미오를 보며 야미가 추리모드로 들어가서 설명을 시작했다.

"「여왕」과「호위」와「시종」은 여기의 텐죠인 사키, 쿠죠 린, 후지사키 아야 입니다.
「꼬리 달린 자」는 프린세스 라라, 「잉태되지 않은 자」는 메카인 페케입니다."

"어? 그렇게 해석되는거였어?"

"확실히 라라찌는 꼬리가 달렸으니까~.
그럼, 「눈물 흘리는 자」는 하루나일까?
하루나는 왠지 울것만 같았으니까."

"그런데 어째서「쌍둥이」가 나랑 미오인거야 야미야미?"

"...야미야미?"

첫만남부터 이상하게 귀여운 호칭을 얻어버린 야미는 반응이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애들 텐션은 원래 저러니까 신경쓰지 마 야미...
헛기침을 하곤 야미는 다시 말했다.

"당신들은 둘이서 한팀의 페어(Pair)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점이 「쌍둥이」라는 호칭을 갖게 했겠죠."

"에~ 그런가?"

"그럴지도~"

둘중 하나가 빠지면 어색한 느낌이 드니까 확실히 「쌍둥이」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동류가 아닌자」는 아마도...유우키 리토라고 생각합니다.
여섯명중 유일하게 성별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아키츠군도 남자잖아~?"

"남자가 두명인데 「동류가 아닌 자」는 이상하지 않아?"

"글쎄요...저도 정확히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애초에 이 글은 이상한 내용 투성이니까요.
그저 추측해볼 따름이죠.
계속해보면 「부정하는 자」는 코테가와 유이입니다."

"에...나?"

코테가와가 놀란듯 자신을 가리키자
야미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당신은 유령을 믿지 않습니다.
메아리가 가리키는 것이 유령이라고 한다면,
유령을 부정하는 당신이 「부정하는 자」가 되는게 맞습니다."

"그럼, 야미 당신은 어디에 해당하나요?"

"저는...아마도 「그림자」가 아닐까 합니다.
어둠(야미)이니까요."

뭐냐, 그 「키라다까라(키라니까)」같은 발언은...

"그렇다면, 아키츠군은?"

"에? 나?
난...별로 어울리는 호칭이 없는데?
그런 이야기 보단, 우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라라 일행을 데려오는게 우선 아닐까?"

"그건 그렇네요."

코테가와와 사키 선배들의 동의하에 발걸음을 되돌려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추리를 방해받아서 기분이 상했는지 야미는 볼을 약간 부풀렸다.
리사와 미오는 귀엽다고 꺄아-거릴 따름이었지만...



1층으로 떨어졌던 위치를 지나서 어느덧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발견한 미오와 리사가 들떠서 말한다.

"앗 계단이다! 드디어 찾았어~!
이걸로 지하로 내려갈 수 있어!"

"라라찌 일행은 괜찮을까~"

"아무튼...드디어 남은 후배들을 찾으러 내려갈수 있겠군요.
방금전 두 명이 겪은 이상한 현상에 대해선 충분히 조심하는게 좋겠네요."

"사키님은 꼭 지켜 드리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아키츠군. 사내아이다운 모습 기대하겠어요."

"걱정말라고 코테가와. 모두들 무사히 밖으로 나가게 할테니까."

서로 회화를 주고받으면서 약간 고조된 분위기로 계단을 향하려니,
갑자기 야미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멈추세요...!"

"왜그래? 야미야미."

리사의 질문이 끝나자 마자 갑자기 복도 한쪽에 놓여진 소화기가 달각 달각 흔들리더니 공중에 떠오른다.
머리위 높이까지 떠오른 소화기를 보며 리사와 미와가 서로 손을 맞잡으며 비명을 지른다.

"꺄---! 또 다시 폴터가이스트!"

"미, 믿을수 없어요!"

"사, 사키님!" "어, 어떻하죠?"
"지, 진정해요 둘다."

당황하는 동료들과 별개로 야미는 냉정하게 소화기로 다가가 머리카락의 칼날을 휘두른다.

푸화학-!

소화기의 허리부분이 머리칼날에 의해 끊어지며 안의 분말이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우왓?!"

분말을 피해 뒤로 물러난 우리들 앞에 이윽고 새하얀 분말가루를 가득묻은채 소화기를 든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하얀 사람은 당황한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소리를 낸다.

"어...얼레?"

"새하얀...사람!?"

중얼거리는 리사의 말에 설명하듯, 몸에 묻은 분말을 털어내며 야미가 말한다.

"투명한 몸도 이렇게 하면 아주 잘 보이는군요."

"투...투명인간!?"
"그럼 폴터가이스트는 저 녀석의 짓!?"

리사와 미오가 놀라는 사이에 야미는 새하얀 투명인간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왠지 이럴땐 내가 나섰어야 할것 같은데 말이지...
능력의 다양성 면에선 야미가 우세라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힘드네...

"대답하세요.
당신이 누구이고...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것인지..."

"......!"

주춤거리던 투명인간은 소화기를 바닥에 내던지곤 뒤를향해 도망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힉-! 모두들 도와줘!"

"모두?"



{크흐흐흐 어리석은 녀석들
얌전히 나갔으면 됐을 것을...}




이상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자 야미가 긴장한채 위를 쳐다본다.
순간 벽의 나무가 박살나며 거대한 촉수한개가 튀어나와 야미의 몸을 휘감았다.

"!"

"야미야미!...꺄?!"

"야미씨?! 모미오카! 사와다!"

"무, 뭔가요 저 괴물은?!"

놀랄새도 없이 선두에 선 야미와 리사와 미오를 촉수로 휘감은채 괴 생물체는 그대로 지하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선두와 후위의 거리가 벌어진게 문제였다.
남은 이들을 여기에 놔두고 가기에도 불안하다.
서둘러 일행을 향해 외친다.

"코테가와! 사키 선배!"

"에...?"

어리둥절한 사키 선배를 바라보며 황급히 외친다.

"얼른 계단으로 내려가자고요!
저런 괴물따위, 금방 해치워 버릴테니까!"

"저, 정말인가요?"

믿지 못하겠다는듯이 바라보는 사키 선배에게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을 한다.

"물론이죠! 깡패 수십명을 상대로도 상처하나 없었던 몸이라고요!
야미랑 두명을 최대한 빨리 구해낼껍니다!"

"그렇다면, 좋아요.
서두르죠 린, 아야."

"네, 사키님."
"괜찮을까요?"

"서두르는게 좋겠어요 아키츠군."

발걸음을 서두르며 계단을 내려가는 나를 뒤따라오는 코테가와와 선배들의 발걸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뭔가 중얼거리는 사키 선배의 소리도 함께.

'방금 사키 선배라고...'

...실수.
머릿속으로 이름을 부르다보니 급할때도 이름으로 튀어나오는군요.
지금은 넘어가고, 혹시라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면 사과하도록 하자.

계단을 다 내려가자 철문으로 닫힌 입구가 보인다.
뒤에서 당황하는 선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문제없다.
장애물따위, 이젠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코테가와. 그리고 선배들. 문을 열테니 혹시나 파편이 튀지 않도록 피해 있으세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면서 오른쪽 주먹을 말아쥐고 힘껏 휘두른다.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철문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

"무슨...!"

놀라는 코테가와와 선배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간다.
혹시라도 모를 사태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지하 복도로 한걸음 들어가서 본것은 하나의 폭풍이었다.

그것은 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엄청나게 크고 두껍고 무거운, 그리고 조잡했다.
그건 말 그대로 철퇴...아니, 인간이었다.
리토오오오---?!

"싫어어어어어!
오지마~~~!"


리토의 팔을 양손으로 잡은채 돌개바람처럼 뱅글뱅글 돌며 괴물들을 문자그대로 '날려버리는' 하루나.

「와-!」
「갸-?!」

하늘을 날며 비명을 지르는 괴물들과 더불어,
쉴새없이 돌아가는 가운데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고 혹이 잔뜩 난 리토의 모습.
「사...사, 사, 사이렌지...! 진정해...!」라고 필사적으로 외치는 리토의 소리가 들리지만,
하루나에겐 닿지 않는 모양이다.

{뭐!? 뭐냐~~!?}

풍차마냥 빙글빙글 돌면서 리토를 휘두르며 다가오는 하루나에게 겁먹은듯
야미와 리사, 미오, 라라를 잡은 상태의 문어괴물이 당황하며 소리친다.

{우와와와! 오지마~!
너...너도 붙잡아주마!}


그리곤 스르륵하고 촉수를 꺼내 하루나의 몸을 아래에서부터 휘감아 올린다.
가랑이 사이를 공략하다니, 꽤나 저질적인 속박술이군요...

"---------!
......!"

촉수가 몸에 닿은 순간 하루나의
눈이 땡그랗게 변하며 눈물 맺혔다.

파앙-!

그리곤 바닥에 발을 힘차게 내딛으며
리토를 이용한 강력한 양손 서브를 날려버렸다.

콰앙-!

방금전 내가 철문에 먹였던 일격과 맞먹는 소리를 울리며
리토의 몸이 문어의 눈위 이마에 부딪쳤다.
문어 괴물의 갑옷같은 이마에 금이 가며 문어 괴물은 뱅글뱅글 눈을 돌리며 기절해버렸다.

쿵...!

굉음을 내며 쓰러진 문어괴물과 마찬가지로,
어느새 찐빵모양으로 얼굴 부풀어 오른 리토도 덩달아 기절해버렸나보다.
가련....

어느샌가 하루나에 의해 괴물들은 모두 기절한채 쓰러져있었다.
코테가와는 부들부들거리며 경악한채로 하루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사이렌지씨...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야...야만스러운 아가씨군요. 품위가 없어요."

"사키님, 얼굴에 땀이 흐르고 있습니다."

"! 시, 시끄러워요!"

빽하니 당황해하는 사키선배의 반응처럼, 잡혀있던 라라랑 야미도 하루나에게 놀랍다는 시선을 보낸다.

"하루나 굉장해!"

"꽤 하는군요..."

정말로 공감.
내가 별달리 활약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하루나의 능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엉망진창이 되서 "규우~~~" 하는 소리만 내는 리토를 간호하며 끊임없이 사과하는 하루나를 바라보며,
지구인 최강 전설은 어쩌면 하루나가 가져갔을수도 있었을꺼라 생각하곤,
이 엄청난 아가씨를 좋아하게 된 리토에게 애도를 표했다.
내구력 하나 만큼은 리토도 지구 최강급이니 어떻게보면 잘 어울리는 커플이지만.

놀라움을 표현하던 라라와 야미는 시선을 돌려 쓰러진 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귀신들 잔뜩 있었네."

"아닙니다. 프린세스.
어딜봐도 모두 우주에서 온 내방자입니다."

"에?"

"그...그 말대로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문어 괴물을 보고 야미가 움찔 놀란다.
방금전 잡혀있을때 도무지 힘을 못쓰는것 같더니 저런 류의 미끌미끌한 상대는 질색이었지?
라라야 꼬리를 잡혀서 맥도 못췄을테고.
...트러블 세계관 최강 4인방인데 의외로 우스꽝스러운 약점이 있네요.
(패닉모드의 하루나라면, 최강 사천왕을 오천왕으로 만들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문어 우주인은 이마를 촉수로 쓰다듬더니 말했다.

"우...우리들은 모두 고향 별에서 정리해고 당했어.
우주를 방랑하다가 이곳에 흘러들어오게 되었지.
그리고 어느샌가 그런 녀석들이 모여들어서..."

"저...정리해고?
우...우주에 정리해고 같은게 있는거야?"

어느샌가 정신을 차리곤 하루나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 리토가 어이없다는듯 물었다.
코테가와조차 같은 감상인듯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다.

"과연... 그래서 거처를 지키기 위해 유령소동을 일으켰다 이거로군."

부서진 철문방향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며 말하는 소리에 모두들 놀라서 고개를 향했다.
하얀 의사용 가운을 입고 뾰족한 귀를 가진 짧은 흑발의 여성. 미카도 보건 선생님이다.

"미카도 선생님!"

"오랜만이네."

라라의 반가운듯한 목소리에 미카도 선생님이 답하자 우주인들이 저마다 수근거린다.

"미카도...?"
"그 유명한 닥터 미카도!?"

우주인들의 반응이 재밌는지 입가를 가리며 쿡하고 웃던 미카도 선생님이 우주인들에게 놀랍다는듯 이야기해왔다.

"후후...당신들 이 아이들에게 손을 대고도 용케도 그 정도로 끝났나 보네."

"에?"

...또 놀려먹을 생각이시군요 미카도 선생님.
아니나 다를까 노린듯한 극적인 연출로 우주인들은 엄청나게 경악한 반응을 보였다.

"데빌루크의 공주와...!
살인청부업자 「금색의 어둠」!?"

아니, 야미는 아마도 폐업했을껀데...
과거의 명성이 어디로 가는건 아니지만.

우주인들이 한곳에 모여 부들부들 떨며 생명을 청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미카도 선생님...심술궂게 너무 겁주지 마시지 그러셨어요.

"히이이익~
죽이지마~"

"아이 참 그런짓 안 해~"

난처해하는 라라의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문어 우주인이 야미에게 달라붙으려 하며 울고있는게 보인다.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조...조금이라도 건드렸다간 베어버릴거예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다가오는 문어 우주인의 모습은 불쌍해 보이기도 하면서도,
솔직히 좀 무섭다...
징그러운게 질색인 야미는 몸을 뒤로 빼면서 왼손을 칼날로 만들어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카오스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가운데 따라가지 못한 학생들이 멍하니 있으려니,
장본인인 미카도 선생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면서 우주인들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사정은 알겠는데 역시 여기에서 사는것은 안 좋을거라 생각해.
...어쩔 수 없지.
내가 당신들에게 일을 소개해 주도록 할까!"

"에!?"

놀라며 바라보는 우주인들에게 웃으며 미카도 선생님이 말한다.

"아는 사람 중에 지구에서 유원지 경영자를 하고 있는 우주인이 있어.
당신들 귀신의 집 같은 곳에 딱 맞지 않아?"

"저...정말입니까! 야호~!"

환호하는 우주인들을 바라보던 코테가와가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 묻는다.

"아키츠군... 설마하니 저 선생님도 우주인인가요?"

"응. 닥터 미카도라고 하면 우주의 유명한 의사라고 하더라고.
야미의 치료를 담당하는 주치의기도 해."

"아...그래서 야미씨가 학교 보건실에서...
그나저나 우주인들이 꽤 많이 지구에 와있나 보군요?"

"그렇지? 나도 좀 신기하게 생각해."

코테가와와 대화를 주고 받고 있으려니 옆에서 사키 선배도 대화에 참가해왔다.

"그럼 구교사의 유령에 대한 소문은 귀신에 의한 소행이 아니었군요."

"아, 텐죠인 선배?"

내가 반응하자 사키 선배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말한다.

"...편하게 불러도 괜찮아요 아키츠군."

"어...그래도 되나요?"

어색하지 않았으려나 걱정했는데 말이지...
내가 난처해하는 걸 눈치챘는지 사키 선배가 말을 덧붙인다.

"뭐, 당신에게는 발렌타인데이때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유우키군이 이상한 짓을 하려던걸 막아줬던 적도 있고,
오늘 구교사에 갖혀있던걸 도와준것도 있으니...이름을 부를 자격은 충분해요.
린과 아야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요.
그렇죠?"

"에?...아, 사키님 말씀이 맞습니다."

"네, 이름으로 부르는 정도라면..."

"아하하...고마워요 사키 선배도, 린 선배도, 아야 선배도."

"...나야말로 멋진 후배를 알게되서 기쁘군요.
불량스러운 외견에 비해서 꽤나 견실하잖아요?"

"하...하...하...그런 소리 많이 듣는 편이죠."

어딜가나 이 외모가 문제라는건 참 고민이다.
사람에 대한 인식은 첫인상이 70%를 차지한다는데,
언제쯤 이놈의 수염과 머리를 고칠수 있을까 답답해졌다.

한편 리사와 미오는 눈물자국이 남아있는 하루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루나 진정됐어?"

방금전의 소행을 벌인 일도 있기에 하루나는 난처한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그런것 같아."

"근데 결국은 귀신의 짓이 아니었구나."

"맞아 맞아. 몇 번이나 쫄아서 손해만 봤잖아."

"그건 그렇고 저 사람들도 우주인이란걸 알고 나니까
그렇게 무섭지 않아 그치?"

"아하하!"

리사와 미오가 가볍게 떠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다행이네요...모두들 일자리를 찾아서...}

"에?"

처음으로 듣는 맑은 목소리에 리사가 깜짝놀라 돌아본다.

거기에 서있는건 도깨비불 두개에 감싸진 상태로,
전통복을 다소곳이 차려입고 양 귀밑 머리에 장식을 한 장발의 소녀 유령.

{이걸로 저도 조용히 지낼 수가 있게 됐어요.}

하루나는 눈이 점으로 되어 창백해지고,
리사와 미오는 입을 쩍 벌린채 굳어있다.
리토는 얼굴에 종선이 나있고, 라라와 야미는 멍하니 바라본다.
코테가와는 땀을 흘리고 있고 사키선배 일행도 눈을 크게 뜬 상태다.
미카도 선생님도 어머나 하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괴물들은 쉴새없이 땀을 흘리고 있다.

이쪽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은듯 소녀의 유령은 활짝 웃으며 자기 소개를 한다.

{아, 말씀드리는게 늦었네요.
전 400년전에 이 땅에서 죽은 오시즈라고 해요♪}



「「「끼......

끼야아아아 정말로 나왔다~~~~!!」」」

「「「우와아아~~~~!!!」」」





허겁지겁 구교사 밖으로 달아나는 동료들과 우주인들을 내보내며 가만히 오시즈를 바라본다.
홀로 남은 나를 바라보던 오시즈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말을 걸어왔다.

{당신은 도망가지 않나요?}

"무섭지 않으니까 도망가지 않아."

웃으며 말을 건네는 여자애 유령은 무섭다기보단 코미컬할거다.
「유령의 밤」때 보았던 유령분장은 진짜 유령도 능가했다고.

{그런가요?}

"그것보다 400년이나 이곳에서 혼자 지냈다면 외롭지 않아?"

{모르겠네요...심심하다면 심심하지만요.}

"지금의 세상...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이 마을은 우주인마저도 납득하는 곳이니까,
원한다면 밖으로 나와 방금전 사람들을 만나보는것도 좋아.
친절한 사람들이니 익숙해지면 금새 웃으며 대해줄거라고."

{그럴까요?}

"그래. 방금전 흰 가운을 입은 미카도 선생님을 찾아서 보건실로 가본다면,
어쩌면 활동할수 있는 육체를 줄수도 있을테니까 힘내보라고."

{에...정말인가요?}

"그렇다니까.
다만, 이 마을의 개는 이상한 녀석들이 많으니까 마을을 다닐땐 조심하고."

{...고마워요.}

살짝 웃음을 보이는 오시즈의 모습에,
400년전의 아가씨면서도 왠지 연하로 느껴져 웃으면서 오시즈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손을 치우자 놀란듯한 얼굴로 머리를 매만지는 오시즈가 보인다.

"그럼, 나도 이만 가볼께. 안녕~"

{아...당신, 어떻게...?}

"바깥에서 다시 만나면 대답해줄테니까~!"

점심시간도 거의 끝나가겠다,
수업에 늦으면 안되니까 이만 아디오스~
당황하는 오시즈를 뒤로하고 나도 재빨리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섰다.



나와보니 구교사 앞의 철조망 근처에 서있는 일행들이 보였다.
우주인들은 미카도 선생님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린듯 했다.
곧 수업이 시작할텐데 어째서 저렇게 서있는지 궁금해 다가가 물었다.

"어이~ 다들 지금 뭐하고 있어?"

"아, 아키츠군."

약간 당황한듯 답하는 코테가와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곧 수업종이 울릴텐데 여기서 뭐하는거야?"

"그게...함께 팻말에 적힌 글을 해석하고 있었어요."

"아직도?"

"아뇨. 이제 막 끝난 참이에요. 그런데..."

머뭇거리는 코테가와의 모습이 이상해서 갸웃하고 있으려니,
야미가 진지한 분위기로 내게 말했다.

"아키츠 료스케."

"으응?"

"방금전 닥터 미카도와 함께 이곳으로 나온뒤 글이 적힌 팻말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문득 일행을 쳐다보니 당신만이 빠져있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걸 말입니다."

어느새 추리모드로 들어간건지 심각한 분위기를 잡고 말하는 야미의 모습에
다른 친구들도 왠지 집중하는듯 했다.
방금까지 어떤 결론을 낸듯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데 대체 어째서?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이 구교사에서 일어난 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가 없었다면?"

"네."

"글쎄...특별히 뭔가 바뀌기라도 하는거야?"

"바뀝니다."

척- 하며 손가락을 내세우며 야미가 말했다.

"아키츠 료스케. 당신이 빠졌을때의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보건실을 나선 저는 코테가와 유이와 이야기 하지않고 좀더 일찍 구교사로 갔을테고,
구교사 2층엔 신경쓰지 않고 평소처럼 1층의「도서실」로 향했겠지요.
그리곤 1층을 탐색하던 프린세스 일행과 마주칠수도 있었겠죠.

코테가와 유이도 복도에서 마주친 저와 이야기 하느라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구교사로 갔겠지요.
시간이 늦지 않아 1층의 클래스메이트들과도 제대로 합류할수도 있었을테고 말이죠."

"그렇다면...그렇겠지?
야미와 코테가와의 접점은 그당시 없었으니까 말야."

내가 수긍하자 야미와 코테가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주의를 모으고 야미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면, 이제 시를 분석하겠습니다...

12명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쫓는다.

목소리는 우리를 가리킵니다.
메아리는...유령이라고 생각했지만 우주인들이었습니다.

「여왕」은 「호위」에게 횃불을 넘기고,
「호위」는 「시종」에게 횃불을 넘기고,
「시종」은 메아리에게 횃불을 넘긴다.


「여왕」「호위」「시종」은 각각 텐죠인 사키, 쿠죠 린, 후지사키 아야를 가리킵니다.

어둠이 찾아오고, 「여왕」과 「호위」와 「시종」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횃불은 그들이 떨어뜨린 손전등을 의미하고,
저희가 2층으로 가지 않았다면 세사람은 아직도 구교사에 갇혀 있었겠죠.

「잉태되지 않은 자」가 「꼬리 달린 자」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잉태되지 않은 자」는 프린세스의 옷을 구성하는 메카인 페케를,「꼬리 달린 자」는 프린세스를 의미합니다.

「꼬리 달린 자」는 바다에 빠지고 「잉태되지 않은 자」는 파도에 삼켜진다.

방금전 지하에서 있었던 일을 일행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걸어다니는 인체모형, 해골들에 의해서 수도관이 터져 프린세스가 쏟아지는 물에 휩싸였다더군요.
그 도중에 페케가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눈물 흘리는 자」가 「쌍둥이」에 기대어 울부짖는다.

「눈물 흘리는 자」는 사이렌지 하루나. 유령을 극도로 무서워 합니다.
「쌍둥이」는 콤비(페어)인 모미오카 리사와 사와다 미오를 상징합니다.

「쌍둥이」가 메아리에 떨어진다.

방금전 두명이 문어 우주인에게 사로잡혔을때의 상황을 뜻합니다.

「동류가 아닌 자」가 「그림자」에게 덤벼든다.

아키츠 료스케...당신이 없었다면, 유우키 리토는 유일한 남성이 됩니다.
따라서 「동류가 아닌 자」는 유우키 리토를 의미하는거죠.
「그림자」는 어둠(야미)을 뜻하는 저입니다.
그러면 유우키 리토가 저에게 덤비는 상황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없었죠.
다만 예상하자면, 아마도 1층의 도서실에 제가 있었다면,
긴장한 유우키 리토와 사고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림자」가 메아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투명인간의 정체를 밝힌다는걸 의미합니다.
하얀 분말가루를 뒤집어쓰고 투명인간은 결국 정체를 드러냈지요.

「눈물 흘리는 자」가 「동류가 아닌 자」를 메아리에 내던진다.

지하에서 사이렌지 하루나가 유우키 리토를 휘둘러 우주인들을 쓰러뜨린걸 의미합니다.

「부정하는 자」가 메아리를 부정한다.

코테가와 유이가 유령의 존재...실제는 우주인이지만, 유령을 부정한것을 뜻합니다.

「눈물 흘리는 자」가 춤추고, 「부정하는 자」는 「눈물 흘리는 자」를 부정한다.

사이렌지 하루나가 몸을 회전시키면서 공격하던걸 춤을 춘다로 표현한것 같습니다.
코네가와 유이는 그 모습을 보고 사이렌지 하루나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이끄는 자」가 메아리를 찾는다. 

가르치는 자, 교사인 닥터 미카도가 우주인들을 발견하는걸 뜻합니다.

「이끄는 자」가 메아리에 손짓한다.

닥터 미카도가 우주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걸 의미합니다.

「잊혀진 자」가 되돌아온다.

방금전 스스로를 '오시즈'라 소개한 유령이 나타난걸 뜻합니다.
400년전에 죽었다고 했으니...잊혀졌다는 표현은 들어맞겠지요.

더이상 목소리도 메아리도 울리지 않는다.

우리들이 모두 구교사를 벗어나고,
우주인들도 모두 떠나가버린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꺾쇠(「」)표시가 된 인물이 모두 13명임에도,
12명의 목소리라 표현한 이유는...
「잊혀진 자」는 메아리를 쫓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중 동료가 아닌자는 「잊혀진 자」였던 거죠."

긴장한 얼굴로 야미를 바라보던 일행들이 야미의 대사가 끝나자 하나 둘 크게 숨을 몰아쉰다.

짝짝짝-

라라가 순수하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박수를 친다.

"대단해 야미짱!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어?"

"과찬입니다. 프린세스."

"야미야미는 대단하네~"

"귀여운 아이치곤 꽤나 흥미로운 설명이군요."

"재밌는 설명이었어요 야미씨."

"아아~ 결국엔 이 글도 그렇게 무섭진 않았잖아?"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행들을 보고는 왠지 소외된듯한 느낌에 입술을 비죽거리다가 야미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야미?"

"왜그러십니까 아키츠 료스케?"

"어째서 12명이어야 하는데 13명이었는지,
각각의 호칭의 의미가 뭔지는 정말 흥미있게 들었어.
솔직히 정말 감탄했다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어?"

"네?"

어리둥절한 야미에게 좀더 직접적으로 추궁한다.

"그,러,니,까. 어째서 이 시에서 '나'는 빠졌을까요 명탐정 야미씨?"

"그건..."

"한문장으로 깔끔한 결론을 부탁해요~"

"그, 그러니까..."

아...당황한다. 당황한다.
놀리면 안되는데 당황하는 야미의 모습이 무언가 가슴을 간질인다.
코테가와가 심술궂게 구는 내 모습을 보더니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째려본다.
미안, 장난이었으니까 얼른 사과할께.

"야미, 그냥 농담이었으니까..."

"...버, 범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시에선 등장도 못한 사람이 난데, 어째서 갑작스레 범인설?!
야미도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이상한 말을 꺼내고선 얼굴이 빨개져서 침묵하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매만지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야미에게 물었다.

"야미...너 최근에 추리소설 읽고있어?"

"...소년탐정 김○일. 재밌었습니다..."

그거였냐?!

나와 야미의 웃기지도 않는 말놀음을 보던 리토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결국, 아키츠도 와서 14명이 되었으니 이 예언은 틀린거지? 
애초에 나와 관련된 예언 하나도 확실히 빗나갔잖아."

"우응~아마도 그렇겠지~?"

라라가 동의를 표하자 리토가 질린다는 듯이 나무판을 바라본다.

"누가 이런 악취미적인 시를 썼는지 몰라도,
더이상 이런건 보고 싶지도 않아.
계속 놔두다간 학교에 괴담이 추가될거라고."

"에~ 재밌지 않아?"

"그래 그래. 그건 그거대로 재밌을거라고~"

"재밌겠냐!"

에~하며 불만을 품는 리사와 미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리토를 바라보던 라라가 웃으며 말한다.

"그럼 내가 이거 뽑을께~!
친구들이 불안해하는건 치우지 않으면~!"

그리곤 바닥에 박혀있는 나무판을 엄청난 괴력으로 단번에 뽑는다.

후두둑-

깔끔하게 뽑아져 나온 나무판 아래로 흙이 떨어져 내렸다.
라라는 웃으면서 나무판을 한쪽 손에 들고 말했다.

"그럼 이건 내가 가져가서 처리할께~.
어딘가 적당한데 버리면 되겠지.
...어라?"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 하는 라라의 모습에 일행이 행동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대표로 궁금해하던 코테가와가 물었다.

"왜그러나요 라라씨?"

"에, 그게...
땅속에 한문장이 더 있는데?"

「「「에-?」」」

모두가 라라가 들고있는 나무판에 가까이 다가가자,
흙이 묻어 지저분한 나무판 바닥에 무언가 글씨가 쓰여져 있다.
호기심에 들뜬 일행이 라라에게 물었다.

"뭔데 뭔데?"

"그게, 흙이 묻어서 잘 안보여~. 좀 털어낼께."

"어디 어디..."

"...에?"

"이건...?"





- 그러나 이 예언은 시작하지 않으면 끝나지도 않는다.



「「「......」」」

으스스한 공기가 일행을 감싸안으며, 주위는 한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예, 예언따위...안 믿어.」
「귀...귀신?」
「누군가요 대체! 이, 이런 악질적인 장난을 한 사람은...!」
「사, 사키님...추우신가요?」
「...꼬르륵」
「하, 하루나?!」
「사, 사이렌지! 괜찮아?」

반쯤 패닉 상태에 빠져 엄청난 광경을 연출하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으로 말했다.

......미안.





이후 구교사에 대한 괴담이 엄청난 기세로 학교에 퍼졌다.
예언같은 글귀와 그대로 일어난 사실.
만약 일행의 숫자가 딱 맞아떨어졌다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에 대한 이야기가
과장되어 피에 점철된 소문으로 바뀌어 버렸다.

괴담의 이야기 속에 내 존재가 빠져 있었던 것도 구설수에 올랐다.
어째서 괴담에는 아키츠 료스케가 등장하지 않았는가?
유령이 아키츠 료스케를 두려워 했다든가,
아키츠 료스케야말로 괴담의 진짜 주인이라든가,
모든 괴담의 배후에는 아키츠 료스케가 있다든가,
사령술사(네크로맨서) 아키츠 료스케의 공동묘지 괴담따위의
얼토당토 안한 이야기들이 돌면서 나를 보는 학생들의 시선속에 깃든 두려움이 증폭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심지어는 지금까진 벌레보듯한 시선만 보내오던 여학생들마저도 섬뜩해하며 시선을 피하는게 울고 싶었다.

미안한거 취소.

난 그저 반복적인 교내 봉사가 좀 따분했을 따름이고,
봉사하는 김에 구교사에 들어가려는 녀석들을 좀 막고 싶었을 따름이고,
어쩌다보니 팻말이 좀 깊숙히 박혀서 마지막 문장이 파묻혔을 뿐인데...

자업자득이라지만 지금의 상황은 내게 너무나 힘듭니다...





p.s. 아야 선배가 최근들어 조금은 센스가 돋보이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맵시없는 불투명 동그라미 안경에서 벗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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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추가

(왼쪽부터 쿠죠 린, 텐죠인 사키, 후지사키 아야 )


(후지사키 아야 - 안경 벗었을 때)


(어릴적 셋의 모습)


(오시즈 - 유령)


마지막 시구는 국내 모 대작의 오마주.
(10년 전 작품이니 네타는 아니겠지?-_-;)

아무튼...원작상으로도 4화에 걸쳐 진행된 이야기다 보니 분량이 좀 되는군요=_=;

그리고, 도도한 아가씨 사키양은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자주 이야기에 등장할 아가씨가 아니었지만,
'스토리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을 활약시킨다'는 것에 충실하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스틴과 행복하게 되길 바라는건 정말이에요?( -_-);; 



p.s. 원작의 이야기는 야미가 해석한 내용과 같습니다.

구교사의 유령의 소문을 밝히기 위해 사키,린,아야가 밤중에 구교사를 들렀다가
어둠속에서 빛나는 두개의 눈동자를 보곤 비명을 지르며 손전등을 떨어뜨리는걸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다음날, 유령의 소문을 들은 라라, 하루나, 리토, 리사, 미오가 구교사를 찾습니다.
도서실에서 나오는 야미를 흉악범으로 오해하고 리토가 덮치는 에로한 해프닝이 벌어지고 야미가 합류합니다.
이후 코테가와가 등장해서 유령따윈 없다며 학생들을 밖으로 내보내려고 합니다.

이때 {나가}란 소리와 함께 복도가 붕괴되면서 라라,하루나,리토,코테가와가 떨어집니다.
야미, 리사, 미오는 떨어진 일행을 찾기위해서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아보게 됩니다.

아래층에선 조그만 털뭉치 우주인들에 의해 움직이는 인체모형과 해골모형으로 인해서 수도관이 터져
라라가 물에젖어 페케가 떨어져나가서 알몸이 되는 해프닝이 벌어집니다.
이때 하루나는 기절합니다.

위층에선 투명인간을 만난 야미가 소화기를 터뜨려 투명인간의 정체를 밝혀냅니다.
이후 동료의 도움을 바라는 투명인간으로 인해서 거대 문어 우주인에 의해 야미,리사,미오가 붙잡힙니다.

굉음과 함께 아래층으로 떨어진 문어 우주인에게 라라마저 잡혀버리고,
수십명의 괴물들이 복도에서 튀어나와 절체절명의 순간,
기절했던 하루나가 괴물들을 보곤 패닉상태에 빠져 리토를 휘둘러 괴물들을 때려눕힙니다.

상황이 정리되고, 그들의 정체가 유령이 아닌 우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소란스러운 구교사의 상황을 보러온 미카도 선생님이 우주인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해줍니다.

이후 진짜 유령인 오시즈가 우주인들이 직장을 구한걸 축하하러 나타나자 모두들 비명을 지릅니다.

이때 구교사의 창고같은 곳에 숨어있던 사키, 린, 아야는 갑자기 들려온 비명소리에 벌벌 떠는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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