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의 구교사 괴담을 통해서 학교에 모습을 드러낸 유령 오시즈가 드디어 육체를 얻었다.
미카도 양호 선생님이 제공한 인공육체에 빙의함으로써 육신을 가지게 된 오시즈는, 2-A에 편입해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출석부에 등록된 이름은 「무라사메 시즈」.
다만,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그냥 오시즈라고 부르는지라 개명의 의미가 없어보여 유감이었다.

400년 만에 몸을 가지게 된 오시즈는 행복해 보였지만, 사이난 고교의 짧은 교복 치마 길이가 무척이나 신경쓰이는듯 했다.
이전 하루나에게 빙의했을땐, 즐거운 나머지 그런것엔 신경쓰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는 오시즈가 쭈뼛쭈뼛하며 치마를 부여잡는 동안, 남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며 설레임으로 가슴을 부여잡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장발이 어울리는 단아한 외모의 소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소년들의 마음을 자극했나보다.
다리가 드러나는 상황을 부끄러워하던 오시즈는 결국 치마 아래에 검정 스타킹을 입어 맨다리를 가렸다.
그리고 이전을 능가하는 남학생들의 폭발적인 반응.
검정 스타킹에 집착하는 녀석들이 그렇게 많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특히 교장선생님.「스타킹을 신은 그 발에 밟히고 싶어~!」라니, 순진한 아이한테 무슨 짓을 시키려는 겁니까?

아무튼, 몸을 얻은 오시즈에게 환호하며 달라붙어선 이것저것 만져대던 리사와 미오는, 주말에 오시즈와 함께 상점가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교복외에 입을 가을철 옷과 더불어, 계절이 지나 할인에 들어간 여름 옷도 함께 구매할 생각인 듯 했다.

리사와 미오의 의견처럼 나도 할인 기간동안에 여름옷 몇벌 정도는 사두는게 좋을것 같았기에,
한가한 주말을 이용해 상점가 쇼핑이나 할겸 나들이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어? 저건...혹시 코테가와?"

운이 좋다면 오시즈나 리사, 미오와 만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상점가를 향하던 중 멀찍이 앞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숄더백을 왼쪽 어깨에 매고 걸어가는 검은 장발의 여성이었는데, 모양새나 걸음걸이로 보아 코테가와가 맞아보였다.
2년이나 함께 지냈으니 못알아보는게 이상한거지만.
상의에 걸친 숏코트, 미니 스커트와 그 위로 둘러진 골반 벨트(Low-Sling Belt), 무릎 아래까지 오는 롱부츠를 맵시입게 입은 사복차림이 신선해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나 할까 싶어서 발걸음을 조금 빨리하는데 고개를 숙인 코테가와의 낮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고민이라도 있는건지 작게 투덜거리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평범하게 인사하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기운을 좀 북돋아줄겸 살짝 장난이라도 쳐볼까?
잰걸음으로 코테가와와의 거리를 좁힌후 코테가와의 바로 뒤까지 접근했다.
걸음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접근한뒤, 뒤에서 양손을 뻗어 코테가와의 눈을 가리며 익살맞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얏호~ 누구~게~?"

"꺄아아악!?"

퍽!

"크흡!?"

비명소리와 함께 뒤로 힘껏 내질러진 코테가와의 오른쪽 팔꿈치에 배를 직격당했다.
전해져오는 충격으로 보건데 올해들어 맞은것 중에선 최고로 깔끔한 일격이네요.
배를 부여잡은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웅크린 날 발견한 코테가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키츠군?"

"쿨럭...! 멋진 반격이다 코테가와..."

"노, 놀랐잖아요! 그보다 괜찮은거에요 아키츠군?"

"아아, 괜찮다구..."

허둥지둥하는 코테가와를 진정시키려고 고개를 들다가, 교복치마 정도의 길이(엄청나게 짧다는 의미다)의 미니 스커트 아래로 새하얀 허벅지가 보였다.
주저앉은 상태에서 로앵글로 코테가와를 올려다보는지라 아슬아슬한 스커트 안이 보일것 같아 무심코 침을 삼켰다.

"어딜 빤히 쳐다보는 거에요!"

꾸욱!

"응앗!?"

고성과 함께 코테가와의 손이 내 머리를 꽉 누르자 몸뚱이가 앞으로 쏠렸다.
균형을 잃은 몸이 코테가와의 다리를 밀듯이 쓰러지면서, 코테가와의 몸도 덩달아 뒤로 넘어졌다.

"엣? 꺅!?"
"웁?"

난데없이 뒤로 넘어져 놀란 코테가와가의 허벅지 사이로 내 얼굴이 파묻히면서 남들 보기 민망한 풍경이 벌어졌다.
얼굴에 전해지는 말랑한 감촉에 당황해서 상체를 일으킨순간, 얼굴을 향해 힘차게 휘둘러지는 숄더백이 보였다.

"이 저질!"

퍽!

"컥?"

냅다 얼굴에 꽂힌 숄더백의 충격에 신음성을 흘리며 한탄했다.
가벼운 장난으로 눈가리기나 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꼬인건 대체 뭣 때문일까 하고...



"정말이지, 놀래키지 말라구요."

"아야야...미안."

"저기...많이 아팠어요?"

"흠집났어. 이젠 장가갈 수 없게 되어버렸어..."

"...엄살이군요."

어이없다는듯 코테가와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농담은 이쯤하기로 하고 코테가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방금전 한숨을 쉬고 있던데, 무슨일이야?"

"들린거에요?"

"응. 뭔가 고민이 있나 걱정되서 말야."

"...오빠 일로 조금..."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코테가와는 오빠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코테가와의 말로는 오빠인 코테가와 유우(19세)는 집에서 단정치 못한 차림으로 돌아다닌다고 한다.
웃통을 훨훨 벗고 다닌다나? 과년한 여동생 앞에서 상반신 알몸으로 활보한다니, 조금 배려심이 부족하시군요.

오늘 밖에 나온것도 오빠의 단정치 못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외출한거라고 했다.
내심 쌓인게 많았던지 코테가와의 불평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코테가와의 기분을 풀어주고자 응응 고개를 주억거리며 코테가와의 말에 맞장구 쳐주었지만,
불만사항이 하나 둘 나열될수록 내 얼굴은 웃는 채로 굳어져갔다.

가라사대, 금발 염색이 마음에 안든다.
귓볼에 한 피어싱과 목걸이가 불량해보인다.
바람둥이처럼 이여자 저여자 번갈아가며 사귀는 행동이 마음에 안든다.
단정한 차림을 부탁해도 여전히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 등등...

...어쩐지 온몸을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도무지 지울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나를 쳐다보며 푸념하던 코테가와의 눈매가 점점 사나워져가는게,
잘못하다간 비난의 화살이 내쪽으로 돌아올것 같아 식은땀이 흘렀다.
날카롭게 날 째려보는 코테가와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저기말야..."

"뭐죠? 아키츠군?"

"...지금 코테가와의 오빠 이야기 하고 있는거 맞지?
내 이야긴 아니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죠?"

"그...왠지 모르게 자꾸만 기시감이..."

솔직히 말해서 지금 눈앞에서 내 위아래를 훑어보고 계시는 풍기위원장으로서의 눈이 무섭습니다.
내심 찔리는게 많아 위축된 내 모습을 보던 코테가와는 잠시 입을 다물고 서있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아키츠군 앞에서 불평해봤자 위안이 안된다는걸 깨달았을 뿐이에요."

반박할 말이 없었다.
유우씨보단 내쪽이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으니까.
낙담하던 코테가와는 오빠에서 나에게로 표적을 바꾸었다.
직접적인 거라기보단 학교에서 떠도는 나와 관련된, 그다지 긍적적이지 않은 소문들에 대한 것이었다.

- 실존하는 학교 7대 괴담 중 하나
- 중학교 시절을 아득히 초월한 천명의 애인
- 초등학생도 수비범위
- 여동생 모에
- 수염이 민감...
- 최종귀축
- 여자라면 유령도 가리지 않는다
- 귀신을 다루는 사령술사
- 야쿠자 후계자 또는 야쿠자의 비밀병기
- 수십개의 도장을 파괴한 난폭자 등등...

거...소문 한번 참 많네요.
뜬 소문을 좋아하지 않는 코테가와조차 알고 있는게 이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많은 소문이 더 있다는거야?
그야말로 온갖 도시괴담들이 총 집합된 이야기에 내가 멍해있자 코테가와는 어리벙벙한 내 반응에 한숨을 쉬었다.

"하아...이렇게 말도 안되는 뜬 소문들이 범람하면 학생들의 분위기도 흐려지는데 말이죠.
대체 어째서 말도 안되는 도시괴담에까지 아키츠군의 이름이 들어가는걸까요?"

"글쎄말야..."

중학교때 깡패들 상대로 지껄인 허풍 때문에 흑막같은 이미지가 퍼져서 그런건가?
오토바이를 집어던지며 날뛴다는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한 뒤, 깡패들 사이에서 퍼지던 말도 안되는 소문들이 이상하게 확산된건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악명이 높아지는거라 딱히 신경쓰지않고 그냥 방치하고 있었는데,
고교 들어서 교우관계 개선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어버린지라 조금은 골머리를 썩였다.
평소엔 교내 봉사 활동도 빼먹지 않으니까 조금쯤은 좋은 이미지가 생겨도 괜찮을법한데,
가끔씩 사건에 엮일때마다 자꾸만 평판이 떨어져가는 현실이 서글프다.
사이가 어느정도 가까워진 친구들은 비교적 소문에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워낙 나도는 뜬소문이 많다보니 사소한 소문들은 며칠내로 식어버린다는 점은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 미묘했다.


푸념을 마친 뒤 기분이 나아진 코테가와와 함께 상점가를 돌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서의 일이야 같은 반이다보니 서로 알고 있는게 많았기에, 주말에는 뭘하며 지내는가 같은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래서 말이지, 저번 주말에 '러브러브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아이들한테 붙잡혀선 난데없이 '매지컬 쿄코' 연극을 해줘야 했다구."

"동네 아이들과 사이가 좋나보네요?"

"그런 편이지. 작년에 공원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뒤론 종종 만나면 놀아주고 있어.
워낙 말썽꾸러기 들이라 내쪽이 먼저 진이 빠질때도 있지만...
저번주엔 나한테 악역 연기를 해달라면서 괴상한 뽀글머리 가발을 가져와선 씌우더라고."

아이들이 '매지컬 쿄코 플레임'을 즐겨보는지 나한테 거기에 나오는 악역을 연기해달라고 졸랐었다.
뭐라더라...모작크 장군인가 하는, 콧수염을 기른 아프로 헤어의 괴인역이었다.
아프로 머리가 된 날보고 잘 어울린다며 폭소하던 꼬마들에게 약이 올라서 한동안 술래잡기를 벌인건 지금와선 좋은 추억이다.
도중에 공원에서 매지컬 쿄코 마술봉을 들고 있던 여자아이가 꺄르륵하고 봉을 휘두르며 참전했던것도 즐거운 기억이었고.

"흐응...의외로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는군요?"

"중학교나 고등학교랑은 사정이 다르니까.
몇명은 그냥 우주인 오빠 취급 하던데?"

"수염성인이라던가 하는거 말이로군요."

"응. 사실 학생들 이외엔 나름 사이가 나쁘진 않은 편이라구?
시장에서 만나는 아주머니들이나 상점가 어른들과도 꽤 친숙해졌으니까.
공원에 갔을땐 아이 어머니께서 음료수도 사주셨는걸?"

공원에서 놀아주던 아이의 어머니께서 수고했다고 웃으시며 음료수를 건네주셨을땐 정말이지 기뻤다.
마을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미캉과 함께 장보기를 하는 동안, 점점 어른들도 나에게 익숙해지신것 같았다.
다만 목욕탕을 엿보는 악동같은 짓은 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어색하게 웃을수 밖에 없었지만...

미캉과 장보기를 시작한 며칠동안 「귀여운 따님과 함께 장보기 나온거요?」라는 귀가 따갑게 들었다며 볼멘소리를 하자 코테가와는 입을 가리며 킥킥거렸다.

"그래도 지금은 구레나룻을 자르고 외모도 많이 나아졌잖아요?
산적처럼 보이던 1학년때와는 큰 차이라구요?"

사, 산적...?
무슨 밤송이 수염을 뽐내는 우락부락한 털보 산도적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 고개를 휘휘 젓는 내 모습에 코테가와는 싱긋 웃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역시 자주 보면 아키츠군의 인상도 익숙해 지는가보군요.
학생들도 조금은 루머같은데 신경쓰지 않았으면 하는데 말이죠."

"아하하~ 그건건 힘들지 않을까?
지금이야 뜬소문 같은데 열광할 나이니까 말이지."

다만 그 소문이 확장되는 속도의 터무니없음에는 나도 참 할말이 없었다.
애초에 악명쌓기라는 명목하에 베개를 눈물로 적시면서 소문을 어느정도 방치하기도 했다지만,
사람들이 죄다 가십거리에 굶주린 건지 「자고 일어나보니 유명해져 있었습니다」마냥 하루만에 마을 전체에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가히 전율스러울 정도였다.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소문을 방치하기 이전에 막을수나 있는거야?
미카도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던가.
「HAHAHA. 포기하면 편해요」라고.
어쩐지 대사가 달라진 것 같지만 기분탓이다.


퍼버버버벅-!

코테가와와 함께 이야기하던 중 갑작스럽게 골목 안쪽에서 들려온 구타음에 놀라 코테가와와 서로 마주보았다.
무슨일인지 살펴볼까 싶어 슬쩍 골목길 안으로 고개를 내밀자 바닥에 쓰러진 3명의 남자를 밟고 있는 야미가 보였다.

"야미?" "야미짱?"

"아키츠 료스케, 코테가와 유이?"

"이런 곳에서 뭘하고 있는거야?"

"별거 아닙니다. 잠시 이상한 사람들과 얽혔을 뿐."

「「「우우...」」」

바닥에 쓰러진채 신음하는 녀석들을 보니 뭔가 맞아도 싼 짓을 했나보다.
평범한 복장을 봐선 깡패는 아닌것 같고, 혹시 야미에게 헌팅하다가 얻어맞기라도 한건가?
아, 참고로 이동네에서 건들거리는 녀석들중 깡패와 헌팅남을 구분하는 법은 단순하다.
모히칸이거나 대머리검은 선글라스가죽점퍼를 입었으면 깡패고, 그게 아니면 헌팅남이다.
중학교때 세기말 폭주족 같은 모습의 깡패들을 처음 봤을땐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와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납득하고 있는 상태다.
요즘은 깡패짓하며 돌아다니는 녀석들의 모습은 거의 사라진것 같은데 다들 철이 든건가?

내가 쓰러진 헌팅남들을 살펴보는 동안 코테가와가 야미와 이야기를 나눴다.

"주말에 이런곳에서 둘과 만나다니 우연이군요."

"으응. 실은 나도 기분전환겸 나왔다가 아키츠군이랑 우연히 만났을 뿐이지만."

"그렇습니까?"

"이렇게된거 야미짱도 함께 상점가 쇼핑이라도 하러 가지 않을래?"

"미안하지만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미캉의 초대를 받아 미캉네 집에 갈 예정입니다."

"그래?"

야미와 미캉의 사이는 꽤나 진전된것 같아 보였다.
수영장이나 전골파티를 통해서 서로 가까워진걸까?
내심 잘됐다고 생각하며 쓰러져있는 헌팅남들을 툭툭 찔렀다.

"어이, 살아있어?"

"으윽..."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든 헌팅남은 내 얼굴을 본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컥? 아, 아키츠 료스케!?"

"어."

"뭐!?" "켁?"

순식간에 각성하면서 패닉상태에 빠진 세명에게 손가락으로 야미를 가리켜보이며 안됐다는듯 얘기했다.

"너희도 참 재수가 없다.
어쩌다 하필 골라도 야미를 건드린거냐?"

"서, 설마 아는 사이인가?"
"같은 금발? 혹시 남매였나!"

"...내 머린 염색인데?"

"뭐!?"

과장되게 놀라는 헌팅남들중 한명이 경악하며 외쳤다.

"초사○어인이라 그런게 아니었어!?"

그런 버프 스킬 같은거 모릅니다.
머리에 나사가 하나 빠진것 같은 헌팅남들의 모습에서, 과거 중학교때 만났던 깡패중 '전투력 53만' '프리○' '3단 변신' 운운하던 만화 매니아가 떠올랐다.

"...야미, 혹시 쟤내들 머리를 심하게 맞은거야?"

"아닙니다만..."

부정하는 야미의 모습에 다시금 헌팅남들을 보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그런게 가능할리 없잖아?
애초에 그건 순수한 녀석만 가능하다면서?"

난 번뇌도 많고 고민 많은 청소년이라구.
내 대답에 녀석은 코웃음치곤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순수한 악」이니까."

...야...

"킥..."

"...바보군요."

내 심정을 대변해주는 코테가와랑 야미의 반응이었다.
푸욱 한숨을 쉬곤 둘에게 주의를 주었다.

"코테가와, 야미, 가까이 오지마.
계속 여기에 있다간 이녀석들한테 바보가 옮겠어."

"코테가와? 설마 그 맹수 조련사인가!"
"아키츠 료스케의 101번째 목표라는...!"
"어? 이미 애인이 천명이라던데 101번째는 좀 이상하지 않아?"

바닥에 쓰러진채 멋대로 떠들어대는 헌팅남들의 모습에 코테가와는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영양가 없는 대화가 적당히 질려왔기에 몸을 털며 일어섰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터는 내게 야미가 물었다.

"그런데...옷에 꽤나 먼지가 묻어있군요."

"아아, 방금전 길거리에서 코테가와랑 둘이서 사이좋게 뒹굴었지."

"아키츠군이 밀어 넘어뜨려서 그런거잖아요. 이 저질."

코테가와의 말에 나를 보는 야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야한 짓을 한겁니까 아키츠 료스케?"

"아, 아니. 그건 코테가와가 찍어눌러서「제탓이란 거에요?」...아닙니다."

"그리고 그 수염좀 깎을 수 없어요? 방금전 닿였을때 까끌거렸다구요."

"다시 말하지만 그건 무리."

야미에게 변명하면서 코테가와에게 대꾸하고 있자니 헌팅남들의 경악하며 외쳤다.

"밀어 넘어뜨려? 길 한복판에서?"
"역시나 아키츠 료스케...! 귀축이란 소리는 거짓이 아니었어!"
"수, 수염이 뭐 어쨌다고오오오!?"

눈에 핏발이 서며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헌팅남들을 보다못해 내용을 정정해 주려고 입을 열었다.

"딱히 이상한 곳은 아니고 다리 사이에..."

"와아앗!? 제발 좀 그만해요!"

"읍?"

얼굴이 빨개져선 황급히 내 입을 막은 코테가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오옷!? 키스도 아니고 아래쪽이라고오!?"
"거물이다... 터무니없는 거물이다..."
"얼마전엔 남탕에까지 여자애를 데리고 왔다더니 과연..."

"뭐라고요?"

눈이 날카로워지며 나를 쏘아보는 코테가와에게 당황해 입을 막은 손을 치우곤 급히 변명했다.

"아, 아냐! 걔 렌이라구!"

"아, 납득했어요."

재채기로 성별이 바뀌는 렌(男)-룬(女)을 떠올린 코테가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테가와의 태도가 의외였는지 헌팅남들은 멍하니 코테가와와 나를 한참 번갈아 보더니 중얼거렸다.

"...대인배?"
"공인 양다리?"

"...아키츠군...불량들은 다들 사고방식이 저런가요?"

"...저 녀석들이 나사빠진게 아닐까?"

한숨만 나오는 녀석들의 반응에 주저앉아 얼굴을 마주하곤 충고했다.

"그나저나 너희들도 참 징하다.
요즘엔 깡패 녀석들도 거의 없어졌는데, 너희도 적당히 이런일은 그만두는게 낫지 않아?"

지금껏 목격한 헌팅 수법들도 강요로밖에 안보일 정도로 조악해서 도무지 성공할 확률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
깡패들의 틀에 박힌 패션센스 만큼이나, 헌팅남들의 헌팅 수법도 틀에 박혀서 이쪽 계열의 장래성은 그야말로 절망적이다.
내 충고에 헌팅남은 허탈한 웃음을 내뱉곤 중얼거렸다.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정말이지 이쪽 길은 꿈도 희망도 없다는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젠장...
건드리는 여자마다 죄다 네 이름을 대니까 이젠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구."

아직까지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지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로 헌팅남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사이난에서 깡패짓을 할만큼 겁을 상실한 녀석은 없잖아?
진짜 뒷세계의 무서움을 알아버렸으니까..."

"어? 뒷세계?"

진짜 야쿠자라도 만난건가?
애초에 이 평화로운 사이난에 그런게 존재하는지도 솔직히 의문이다만.

"뭐야 몰랐던거냐?"

"설마하지만 '도내학군단연합'같은 정신나간 집단 얘기는 아니겠지?"

"하, 기껏해야 중고생 수준의 잔챙이들의 모임이 진짜 뒷세계에서 살아남을거라 생각하는거냐?"

뭔가 스케일이 커지는 것 같은 분위기에 야미와 코테가와가 걱정스레 물었다.

"심각한 이야기인가보군요, 아키츠 료스케."

"괜찮은건가요 아키츠군...?"

"후후...거기 뒤에 두 아가씨도 알아두는게 좋을걸?
다름아닌 아키츠 료스케 본인과 관련된 이야기니까."

어? 나랑 관련된 얘기였어?

"...그 이야기, 좀 자세히 알려주겠어?"

조금 굳어진 얼굴로 바뀐 내 모습에 헌팅남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걱정스러운 코테가와와 진지해진 야미와 함께, 심각한 얼굴로 헌팅남의 설명을 듣던 내 표정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요상하게 변해갔다.



"처음 뒷세계에 대해서 알게된 건 작년 가을 즈음, 어느 바보 녀석의 무모한 사기 행각 때문이었지.
간 크게도 아키츠 료스케, 너를 사칭하는 녀석이 있었거든.
널 사칭하며 길거리에서 사람들 상대로 공갈이나 치는 삼류 깡패였지.
뭐, 진짜와는 얼굴이나 체격도 달랐지만 보통은 사람들이 기억하는건 아키츠 료스케의 대략적인 외관적 특징 뿐이잖아?
수염, 금발, 목걸이 따위의 악세서리를 차고 다니니 모르는 녀석들은 그저 벌벌 떨면서 숨을 죽일수 밖에.
그렇게 며칠동안 사칭하면서 다닌 결과, 어떻게 됐을거 같아?

야쿠자가 찾아왔다고.

길거리에서 학생들을 협박하며 거들먹거리던 녀석에게 갑자기 선글라스를 쓴 흑발의 검은 양복의 떡대가 다가와서는 그대로 녀석을 집어던져 버렸어.

「네녀석! 치프(사이바이씨)의 따님(미캉)을 인질로 삼았던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런 저열한 짓까지 하다니!
역시 그때 네놈을 처리했어야 했다!」

「히, 히이이이이이익------!?」

그때 보여준 야쿠자의 실체는 절대로 잊을수 없어.
'콘크리트를 박살내고 트럭을 집어던지면서' 난동을 부리는 야쿠자를 잊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

아무 생각없이 아키츠 료스케를 사칭하던 그녀석은 그때 진짜로 죽을뻔 했다구.
혼비백산한 그녀석은 엉엉울면서 싹싹빌어서 겨우 오해를 풀어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다고 해.

그때 이해했지. 아키츠 료스케가 말하던 「학생은 학생답게 놀아」라는 말의 의미를...
진짜 뒷세계의 야쿠자는 그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존재란걸 말야.
게다가 치프라느니, 따님이라느니, 인질로 삼았다느니 하는 말에서 아키츠 료스케가 야쿠자 파벌과 항쟁중이라는 루머가 진짜인걸 알수 있었지.
야쿠자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는 터무니없이 위험한 녀석 이라는 인식을 각인시켜준 사건이었지."

...선글라스의 검은 머리 야쿠자라면 라라의 호위인 마울이로군.
작년 가을이라니까, 미캉을 인질로 잡았던 연극에 대해 오해를 풀기 전에 벌어진 사건인가?

"그 소문의 진위를 다시 한번 확실하게 증명한 사건은 올해 가을에 일어난 일이었지.

해골갑옷같은 이상한 옷으로 코스프레한 미청년의 얼굴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시비를 걸려고 접근한 불량들이 있었어.
타고있던 오토바이로 미청년 주위를 포위하곤 히히덕거리면서 욕설을 내뱉었지.
그런데 이리저리 협박 비슷한 말을 걸었는데 녀석이 도무지 겁을 먹지 않더란 말이지.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는 녀석에게 발끈한 깡패 한놈이 내뱉은 말이 사건의 시작이었어.

「아앙? 눈깔지 못해? 우리가 누군줄 알아?
사이난 고교의 아키츠 료스케가 바로 우리 형님이라고!」

「...호오...?」

순간 청년의 눈초리가 바뀌면서 천천히 한손을 들었어.

「브왓츠. 처리해.」

「네.」

「어?」

어느새인가 불량들의 뒤에선 청년의 부름에 대답한 검은 양복의 사내가 서있었지.
한쪽 눈에 세로로 난 살벌한 상처가 인상적인 금발의 야쿠자였다고해.
곧이어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불량들은 허공에 붕 뜬뒤 지면에 널부러져 버렸어.
다들 한방에 넘어가서 도무지 일어설 생각을 못했다더군.

그리고...고통에 떨던 한명이 억지로 얼굴을 든 순간 녀석은 말도 안되는 광경을 보고 만거야.
코스튬 플레이어같던 청년의 손에서 빛이 번쩍인다 싶더니 그들이 타고왔던 오토바이들이 조각조각 썰려나가는 장면을...
수십개로 매끄럽게 조각난 오토바이의 잔해에 창백해진 불량들에게 청년이 조용히 말했어.

「아키츠 료스케에게 전해라...
마피아 몇놈 잡았다고 너무 기고만장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저번에 못다한 결판은 언젠가 내주겠다고 말이다.
가자 브왓츠.」

「네 단장님.」

그 괴물같은 야쿠자가 언급한 것들이 정말로 결정타였지.
아키츠 료스케는 마피아를 잡았다는 사실과, 그 괴물과 적대관계에 있다는걸...

그 두사건 이후로 이 동네 불량들은 거의 씨가 말라버렸지.
아키츠 료스케를 사칭한 가짜 행세를 한다든가, 아키츠 료스케를 등에 업은 행동 따위를 하려는 간큰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졌어.
잘못하다간 트럭으로 공기놀이를 해대는 진짜 야쿠자에게 파뭍힐 수 있으니까."

...저스틴이랑 브왓츠까지 건드렸냐...
저번에 뒷처리를 부탁했던 SOLGAM의 조직원들이 우주 마피아니까 틀린말은 아닌데.
그나저나 설마 작년 공원에서의 일을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는건 아니겠지?

아무튼 뒷세계니 어쩌니 무서운 소릴 해대더니, 라라의 호위기사단이었군.
현재는 호위기사라기보단 사이바이 스튜디오의 어시스턴트가 메인 직함으로 보이지만.
브왓츠와 마울의 얼굴의 워낙 험악하게 생긴데다 복장마저 검은 정장이라 확실히 야쿠자로 오해할만 했네.

"후후...그러니까 조심하도록 해, 아키츠 료스케.
아무리 너라도 인간을 초월한 진짜 야쿠자들을 상대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테니까..."

"아, 아...충고 고마워. 조심하도록 하지."

괜시리 긴장했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마치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헌팅남들에게 예의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몸을 가누며 비틀비틀 일어서는 헌팅남들은 딱히 부축해주지 않아도 되겠지.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 코테가와와 야미에겐 나중에 설명해주기로 하고 둘을 데리고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정말이지...큰일나는줄 알았잖아요."

"이야기의 인물들은 프린세스 라라의 호위들이었군요."

라라의 호위기사단인 저스틴, 브왓츠, 마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나서 가슴을 쓸어내린 코테가와와 조용히 수긍한 야미였다.

"차라리 방금전 이야기를 듣고 바로 해명해줘도 괜찮지 않았어요?"

"뭐 어때. 덕분에 이 동네에서 깡패같은 녀석들이 많이 줄었으니 좋은거잖아?
날 사칭한 녀석이라든가 호가호위하는 녀석들도 한꺼번에 막아버리는 사건이었다니까 기왕 이렇게 퍼진거 두고두고 잘 써먹어야지."

애초에 그런 녀석들이 있는지조차 몰랐으니까, 뒷세계 운운하는 저런 소문은 계속 유지되는게 오히려 좋을것 같았다.
곰곰히 생각하던 코테가와도 그편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더이상 참견하지 않았다.

이후 미캉과의 약속이 있었기에 야미와는 헤어지고 다시금 코테가와와 함께 거리를 걸었다.
이런저런 소재거리를 찾던 가운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코테가와는 표정이 밝아지며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고양이 인형 말고도 고양이 관련 이야기 책도 가지고 있는지 「한밤중의 데이트」라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소설에 대해서 즐겁게 소개해주었다.
그외에도 고양이 관련 상품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주택을 둘러싼 담벼락 위에 서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어? 고양이다."

"에? 어디요?"

담벼락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고양이의 모습에 나와 코테가와는 가만히 멈춰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갈색털로 뒤덮힌 고양이가 나른하게 하품하는 모습에 무심코 얼굴이 풀릴것 같았다.
입맛을 다시는 고양이의 행동이 귀여워 보여서 손을 내밀어 고양이를 불러보았다.

"츳츳- 이리온?"

쌩-!

자길 부르는 소리에 날 쳐다본 고양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몸을 일으켜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고양이를 코테가와가 멍하니 쳐다보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코테가와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도 아키츠군의 외모가 무섭게 느껴지는걸까요?"

"...미안."

난 그냥 친근하게 불렀을 뿐이라구? 어째서 도망치는거야?
차에 치일뻔한 강아지를 도와줬을때도 깨물리기만 하고, 이번엔 고양이를 불렀을 뿐인데 달아나고.
나한테서 무슨 육식동물같은 분위기가 풍기기라도 한다는건가?
코테가와는 고양이가 있던 담벼락을 물끄러미 응시보다 내 얼굴을 보곤 낙담하며 중얼거렸다.

"...아키츠군의 외모가 단정했더라면 달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우...설마 내 외모 탓이란거야?"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전 앞으로 5년간은 고양이 인형으로 대리만족을 해야하는거로군요.

"저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하는데 그런 생각을 안가지는게 오히려 이상하죠.
깔끔한 외모라면 동물들도 반겨줬을지 모르잖아요?
눈매는 뭐...어떻게든 되겠죠."

"어떻게든 됩니까..."

"눈매가 좀 사나워도 웃으면 보통은 분위기가 완화된다구요."

"음...이렇게?"

미소를 띄며 코테가와를 바라보자 코테가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억지로 웃지 말아요 아키츠군.
익숙해졌다지만 역시 조금은 무서우니까."

"으..."

황급히 표정을 추스르며 양뺨을 두드리자, 기분이 풀린듯 코테가와는 피식 웃었다.

"너무 의식하지말고 자연스럽게 미소지어요.
크리스마스땐 꽤나 멋지게 웃을수 있었잖아요?"

"노력해보겠습니다..."

코테가와의 격려를 들으며 방금전의 아쉬움을 달래려던 차에, 반대편 담벼락에 서있는 또다른 고양이가 보였다.
새하얀 털을 한차례 부르르 떨던 고양이는 나른한 표정으로 담벼락 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빤히 고양이를 쳐다보다가 방금전의 실패가 떠올라 코테가와를 불렀다.

"무슨 일이죠 아키츠군?"

"이번엔 코테가와가 고양이를 불러보는게 어때?"

"제가요?"

"코테가와라면 고양이가 도망가진 않을테니까.
그러니까 단정한 미모의 코테가와 선생님의 숙련된 기술로 직접 고양이 홀리기 시범을 보여주세요."

"...그건 비꼬는 거에요?"

살짝 볼을 부풀린 코테가와는 그래도 내심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었는지 담벼락의 고양이를 조심스레 불렀다.

"냐, 냥냥-"

코테가와의 야옹하는 소리에 고양이는 잠깐 고개를 돌려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혹시 통한걸까?
하지만 무심하게도, 고양이는 얼마 안있어 우리를 외면한채 가던 길을 따라 스윽 사라져버렸고,
고양이 소리를 흉내내던 코테가와는 팔을 뻗은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고양이 앞발처럼 살짝 손을 오므리던 모습 그대로 멈춰버린 코테가와의 얼굴에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한껏 붉게 달아오른 석양이 장엄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풋..."

"왜, 왜 웃는거에요!?"

"아니, 코테가와의 냥냥하는 목소리랑 포즈가 귀여워서..."

"읏! 놀리지 말아욧!"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채 발끈하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폭소하다가 코테가와에게 등을 얻어맞곤 겨우 웃음을 멈췄다.

"아하하~! 그러지말고 우리 팬시샵에라도 한번 가보지 않을래?
오늘은 귀여운 고양이 인형으로 만족하기로 하자구."

"...그러죠."


조금 풀이 죽은채로, 별로 고양이가 안와도 상관없었다며 새침을 떼는 코테가와를 위로하면서, 예전에 갔던 영화관 근처의 펜시샵에 들렀다.
고양이 얼굴이 그려진 분홍빛 머그컵이라든지, 매지컬 쿄코 플레임의 마스코트 고양이 시로네 인형들이 놓인 진열대를 코테가와와 함께 둘러보았다.
동물 인형들은 이렇게 쓰다듬을수 있는데...고양이들은 알은체도 안하고 달아나기 바쁘니 현실은 가혹하군요.
꼬리에 작은 방울이 달린 다람쥐 인형을 조심스레 쓰다듬어보면서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여러가지 귀여운 물건들의 유혹속에서 고민하길 한참, 마음에 드는 용품과 인형들을 골라 코테가와나 나도 만족한 표정으로 펜시샵을 나설 수 있었다.
쇼핑백 안에 들어간 인형들을 살펴보며 코테가와가 물었다.

"아키츠군은 이제 어떻게 할거에요?"

"오늘은 할인중인 여름옷이나 알아볼까 싶어서 나온거라 별 다른 예정이 없다면 옷가게에 들르지 않을까?
코테가와는 어때?"

"전 기분전환도 되었으니 이만 집으로 갈까해요.
충동적으로 나온거라 딱히 지갑에 여유가 있는게 아니라서요."

"그래...? 아, 그럼 가기전에 점심이라도 함께「휘유우우우우--- 쿠웅-!」응?"

코테가와에게 점심 제의를 하려던 차에 갑자기 들여온 굉음에 놀라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역시 골목길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오늘따라 왜이리 어수선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는거야?
내심 불평하며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자 바닥에 쓰러져있는 저스틴, 브왓츠, 마울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전의 희안한 추락음이나 쓰러진 상태를 봐선 하늘에서라도 떨어진건가?
대체 뭘 어떻게 해서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지만서도...

가까이 다가가서 세명의 상태를 살피는 내게 코테가와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아키츠군, 이 사람들은...?"

"아까 이야기했던 라라의 세 호위들이야.
아무래도 뭔가 트러블에 휘말린것 같은데?"

"이 사람들이... 그런데 다들 괜찮은건가요?"

"일단 위험한 상처는 없는것 같은데?"

하늘에서 떨어졌는데도 큰 상처는 없다는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세명 모두 기절한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육체로는 다른 우주인과 비교를 불허하는 데빌루크인이니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아는 사이인데 이대로 골목길에 쓰러진걸 내버려둘 수도 없고...
역시 사이바이 스튜디오까지 데려다주는게 나아보였다.
코테가와에게 점심 제의를 하는건 아쉽지만 포기해야 할것 같았다.
바닥에 쓰러진 저스틴을 부축하며 코테가와에게 사과했다.

"그럼 난 저스틴이랑 이 둘을 집까지 데려다줄께.
갑자기 헤어지게 되서 미안."

아쉬워하는 내 모습에 코테가와는 피식 웃더니 내 등을 툭 두드렸다.

"신경쓰지 말아요. 사람이 우선인게 당연하잖아요?
택시를 불러올테니까 잠시 기다려요."

코테가와가 택시를 부르러 골목길을 벗어난 동안, 기절한 저스틴을 등에 업고 브왓츠와 마울을 양 옆구리에 끼워서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자세가 불편해서 비틀비틀 움직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도로변으로 나와 코테가와가 잡아준 택시 뒷좌석에 세명을 태운후 코테가와와 헤어졌다.

사이바이 스튜디오에 도착한뒤, 놀라는 사이바이씨에게 설명하고 나서 화실에 셋을 눕혀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기껏 평화로운 마을에 지내면서도 이래저래 불쌍한 처지에 놓이는 저스틴과 그 부하들의 고달픈 삶이 안타까웠다.
힘내라 저스틴. 부디 만화계에서 너의 재능을 꽃 피울수 있길.
그리고 힘내라 마울. 힘내라 브왓츠. 야쿠자처럼 생겼지만...
제대로 지구에 적응해서 셋의 인생에도 꽃이 피길 바라며, 주말의 나들이를 마무리지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제가 할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키츠 료스케가 야쿠자를 쓰러뜨렸다!」

월요일 아침 등교하자마자 귀에 들어온 소문이었다.
소문의 근원지는 골목길에서 쓰러진 세명을 끌고 나오는 아키츠 료스케를 목격했다는 헌팅남들이었다.
그 세명의 야쿠자라는 것이 트럭을 집어던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오토바이를 해체하던 바로 그 괴물들이었다는 이야기까지 곁들여서...
일반인과 동떨어진 뒷세계의 야쿠자들마저도 아키츠 료스케에겐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뒷세계의 최종병기, 아니면 진정한 뒷세계의 정점이라는 소문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확신에 가깝게 증폭되어 있었다.

터무니없는 소문에 황당해서 멍하니 서있던 중 툭툭 내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내 어깨를 잡은 코테가와가 곤란한 표정으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

"뒷세계 어쩌구 하는 루머, 역시 해명해 주는게 낫지 않았어요?"

"...일상입니다."

사이난에선 '소문의 뒤엔 언제나 아키츠 료스케'라고요.
눈가를 매만지며 애써 담담하게 말하는 내 등을 코테가와가 토닥토닥 두들겨 주었다.



==============
짧게 써서 11월에 올리려고 했는데, 글쓰다 11월이 지나버렸어...OTL
뭐...12월안에 더 쓰겠죠^^;
미캉은 예정대로라면 다음편이나 다다음편에 등장할듯 합니다.

리사랑 미오, 오시즈는 옷가게에서 만날수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짧게 쓴다고 뺐습니다.
여름옷 사러가는 이야기에서 나올 예정이었는데, 도중에 코테가와랑 만나서 펜시샵을 가버렸으니-_-a
운이 좋으면 다음편에 등장할 수도 있겠죠(...)

그럼 좋은 밤 되세요^^

p.s.이번화 참조 : 92화
요약 : 미캉네 집에 놀러간 야미를 본 저스틴이 암살로 오해하여 야미에게 덤벼들다가 마울&브왓츠와 함께 라라에게 맞고 저하늘의 별이 된다.

***참조 이미지***

코테가와 사복차림 및 표정

코테가와 남매(유이, 유우)

코테가와 : "냐옹냐옹"

하늘에서 떨어진 저스틴, 브왓츠, 마울(by 라라의 분노 펀치)

***기타 이미지***

오시즈(교복)

오시즈(검정스타킹)

오시즈(원피스) : 하복 구매하면서 만나는 이야기를 넣으려다 짧게 쓰려고 제외.

매지컬 쿄코의 모작크 장군

헌팅남

깡패 : 어째서 중학교시절 료스케앞에 나타난 녀석들이 세기말 버전이었는지 알 수 있는 장면. 료스케도 처음엔 어이없어 했지만 지금에와선 납득(체념)한 상태입니다^^;

가짜 아키츠 료스케 : 금발에 수염, 악세서리를 흉내. 현재 사이난 고교 3년생.
머리카락 올백이 아니라 앞머리를 뿔마냥 길게 앞으로 뻗어 고정시킨 리젠트 스타일이라는것에서부터 이미 가짜.
(엘비스 프레슬리 머리에서 과장더해서...)
원작에서 1회 등장했기에 써봤습니다.

트럭을 집어던지는 마울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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