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에 신간이 들어왔다.
학생들의 희망도서를 학교측에서 구매해 도서실에 배치했다고 한다.
역시 이 학교는 학생 복지에 관해선 확실히 대응해준다.
교장 선생님은 조금...문제가 많지만서도.

여튼 빌린 도서를 반납하고 신간도 살펴볼 겸 점심시간을 이용해 도서실을 찾았다.
도서실에 들어서자 대출반납 카운터에 앉아 사서를 맡던 여학생이 웃는 얼굴로 인사해왔다.
그간 종종 도서실을 들르며 적당히 낯을 익히기도 했고, 올 여름에 무너진 서가의 정리를 도운 일도 있었기에, 나에 대한 사서 소녀의 평가는 양호한 편이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책을 반납하고 새로 빌릴 도서를 찾아 서가를 돌던 중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아키츠군?"

"아라이?"

좌우에 머리핀을 2개씩 꽂은 단발머리 소녀, 아라이 사야카였다.
날 만난게 의외였는지 사야카는 신기한듯 나를 바라보았다.

"도서실에서 아키츠군을 만날거라곤 생각못했는데.
아키츠군은 무슨 일? 설마 사서 아이를 꼬시러 온거야?"

"그럴리가 있냐..."

"흐응, 꽤나 그럴싸한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보통은 책을 빌리러 왔냐고 물어보는게 맞지 않아?"

"그게 말야, 아키츠군은 하급생들 사이에선 '로사리오의 수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잖아?
'여동생 모에'라는 소문까지 합쳐져서 하급생들은 다들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몸을 사리던걸?"

"......"

...허허...난 그저 로사리오를 목걸이 마냥 목에 걸겠다고 망발을 한 철없는 하급생들을 쫓아낸 것 뿐인데...
말을 잊은 내게 사야카가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도서실엔 대체 무슨 일인가요 아키츠 '오빠'?"

...심금을 울리는 좋은 호칭이군요. 부끄럽지만.
곤란하면서도 쑥쓰러운 나머지 난처한 얼굴을 하자 사야카가 킥킥대며 작게 웃었다.

"끙...짖궂은 농담은 그만해줘.
난 그저 짬짬이 읽을 책을 빌리러 온 것 뿐이라구."

"...진짜?"

"진짜냐니...그럼 도서실에 책을 빌리러 오는것 말고 무슨 이유가 있겠어?"

"으응~그러고 보면 저번에 대출 도서가 젖었다고 호들갑 떠는 모습을 봤던 것도 같고..."

팔짱을 낀채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야카에게 물었다.

"그런 아라이도 책을 보러 온거 아냐?"

"아, 난 패션 잡지 같은게 들어오진 않았나 살펴보러 왔어."

...학교 도서실에 그런것도 비치해주나?
교장 선생님 부터가 설렁설렁한 학교니까 의외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키츠군은 이곳에 자주 오는거야?"

"가끔. 우리 학교는 도서실이 꽤나 좋은 편이라 읽을거리가 많거든."

저번에 야미가 쓰러뜨린 서가를 정리할 때 '쌀의 재배법'같은 제목의 책도 있던걸 떠올리면 정말이지 별의별 도서가 다있구나 싶다.
여러모로 책을 빌려보기엔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솔직히 아키츠군은 이런 곳과는 전혀 인연이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이상해?"

"응. 그게, 우리반 남자 아이들 중에서 도서실에 올만한 사람은 위원장인 마토에군 정도라고 생각했거든.
유우키군은 아버지 일로 드물게 오는것 같지만."

뭐, 실제로 사이난 고교의 도서실은 규모에 비해서 이용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니까.
그동안 도서실에서 만난 사람은 사서인 여학생을 제외하면 야미, 아야 선배, 오시즈, 리토, 그리고 오늘 만난 사야카가 전부다.

도서실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건 야미. 가끔 만날 땐 키가 안닿는 위치의 책을 대신 집어주기도 한다.
이젠 슬슬 변화능력을 사용해도 괜찮을거라 생각한다. 서가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사서도 더이상 뭐라하진 않을테고.

아야 선배는 린 선배와 함께 사키 선배의 수행원으로 행동하느라 바쁜듯 했지만, 틈틈이 짬을 내서 도서실을 찾아오곤 한다.
덕분에 아야 선배에겐 양서를 고르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문학소녀란건 아야 선배같은 사람을 말하는 거겠지.

오시즈는 요즘엔 양호실에서 미카도 선생님을 돕느라 도서실에 방문하는 횟수는 조금 줄었다.
처음봤던 동화책이 마음에 들었는진 몰라도 그런쪽 관련으로 가끔 야미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리사나 미오와 대화하는걸 보면 고교 여학생 답게 연애 관련 이야기에도 흥미가 있어 보였다.

리토의 경우는 사이바이씨의 부탁으로 동물도감을 빌리던걸 본 적이 있다.
고증에 충실하려는 사이바이씨의 자세는 본받을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망토개코원숭이'를 그릴 예정이라니...가끔은 사이바이씨가 어떤 장르의 만화를 그리시는건지 헷갈린다.
리토 본인은 딱히 도서실을 애용하진 않는 것 같다.
저번에 리토의 방에 들어갔을 때, 책장에 꽂혀있는게 교과서를 제외하면 만화책이랑 스포츠 관련 책들이었던걸 떠올려보면, 독서 자체엔 크게 흥미는 없는 것 같다.

"기왕 구교사의 책들까지 추가되서 도서실 규모도 커졌는데, 꽂혀있는 책을 마냥 썩히려니 아깝잖아.
그리고 여긴 책 동료들의 만남의 장소라고 할까?"

"책 동료?"

"오시즈나 야미, 아야 선배랑은 가끔 책을 읽으러 와서 마주치거든.
오시즈나 야미와는 서로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도 하고, 아야 선배에겐 마음에 드는 책을 추천받기도 해서 책 고르는데 도움을 받고 있어."

"응...아키츠군은 생각외로 책을 좋아했구나."

적어도 꾸준히 읽는 편이긴 하지만...

"아키츠군은 그런 것 말고 다른걸 좋아할거라 생각했어."

"어떤?"

"격렬한 투쟁. 음험한 모략. 그리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

「나처럼」이라고 장난 삼아 말하는 사야카의 모습에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아무튼 굳이 외모만이 아니더라도 가끔 보이는 장난기도 충분히 사랑스러운데 말이지.

"아하하, 물론 농담이야.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이야.
지금와선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오? 그건 정말 기쁜데?"

"아, 실은 아직도 그런식으로 보일 때는 가끔 있어."

"들어올리기 무섭게 능숙하게 깎아내리시는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못을 박는 사야카의 발언에, 서가 위쪽의 책을 꺼내다가 힘이 빠져 고개가 쳐졌다.
등뒤로 깍지를 끼고 선 사야카는 선반에서 책을 꺼내든 내 모습을 올려다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이렇게 도서실에서 책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니까 확실히 인텔리한 야쿠자 보스처럼 보이거든.
저번에 공부할 때 썼던 안경만 끼고 있으면 정말 딱인데 말야."

"...그거 칭찬인거야?"

"아키츠군의 소문 중에선 그게 제일 낫지 않았어?"

확실히...적어도 여자아이 관련으로 나온 질나쁜 소문들보단 차라리 두뇌파 악당으로 불리는게 훨씬 낫다.
애매하게 웃음으로 얼버무리자 사야카는 조금 생각하더니 물었다.

"응...갑자기 떠오른건데, 아키츠군은 운동은 좋아하지 않아?
아키츠군, 운동신경은 좋아 보이니까 스포츠를 해보면 정말 잘할 것 같은데."

"으응...초등학교 이후론 딱히 뭘 해보진 않았는데."

초등학교 때 했던 피구라면 취향을 조금 넣어서 허리케인 버스터 같은 눈요기 거리를 만들며 놀기도 했지만,
중학교 이후로 딱히 운동으로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나도 경우란걸 아니까 농구같은걸 하면서 강백호의 '훗훗 디펜스' 같은 반칙같은 기술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애초에 놀이에 끼워주질 않으니 의미가 없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우울한 흑역사로 고민하는건 정신 건강에 안좋으니까 그만두자.
고교에 들어선 친구들도 꽤나 생겼다고 나름 자신하니까, 다음에 기회를 봐서 코테가와나 다른 아이들이랑 배드민턴이라도 해보는게 좋으려나?

"그럼 테니스 해보지 않을래?"

"테니스?"

"응.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가신다구.
아키츠군도 좋아하는 운동 하나쯤은 있는게 좋아.
구경해보고 혹시 관심이 있다면 가르쳐줄께."

"어? 아라이가 가르쳐 주는거야?"

"나도 조금 정돈 가르쳐줄 수 있으니까.
싫으면 사스가 선생님께 대신 부탁드려도 되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아라이 선생님."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자 사야카는 묘한 얼굴이 되었다.

"...뭐랄까, 방금전이랑 분위기가 바뀌었어 아키츠군.
조금 침체한것 처럼 보이길래 독려해주려고 한 소린데, 내가 권한거지만 어쩐지 속은것 같아..."

"아냐아냐. 사실 친구들이랑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은 해보고 싶기도 했고...
미소녀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걸로 이미 충분할만큼 가치가 있으니까."

"의욕이 넘치는건 기쁘지만, 중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가지면 안되잖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사야카 말대로 고교 시절에 좋아하는 운동 하나정돈 배워두는게 좋고, 다가온 기회는 떠나기 전에 잡는 것이 성공의 열쇠다.
의욕을 불태우는 내 모습에 사야카는 작게 한숨을 쉬곤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수업이 끝나고 테니스 코트장으로 와.
구경하고 있으면 내가 코트 사용하는 시간에 함께 들어가서 가르쳐줄께.
체육 비품중에 예비 라켓도 있으니까."

"고마워 아라이. 정말로 기대하고 있을테니까."

"후후, 그렇게까지 말해주면 권한 보람이 있는걸?
그나저나 슬슬 점심 시간도 끝나 가는데 아키츠군도 이만 책 고르는걸 끝내야 하지 않아?"

"아, 벌써 시간이..."

기다려줄 생각인지 동행해 온 사야카와 함께 빌릴 책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사서가 대출 처리를 하는동안, 사서를 꼬시러 왔냐던 사야카의 말이 떠올라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보면 이 아이...이름은 뭐였지?
그동안 도서실을 방문하면서 줄곧 인사를 나누었는데, 정작 이름도 모르는 사이라니.
어쩐지 실례인것 같다고 생각하던 중 사서가 책을 돌려주었다.

"끝났어요. 재밌게 보세요."

"언제나 고마워."

"뭘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즐거우니까요.
요즘은 도서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서 저도 사서를 맡은 보람이 있거든요."

"그거 다행이네.
음...그런데 말야..."

우물쭈물하며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내 모습에 사서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그렇달까...
이제와서 이런 말 하기도 뭐한데, 슬슬 서로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네?"

눈을 깜박이는 사서에게 민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말야, 그동안 여기 오면서 네 이름도 몰랐거든.
그러니까 괜찮다면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어?"

내 물음에 여학생이 싱긋 웃었다.

"도서실에서 헌팅은 금지에요, 바람둥이씨."

"......"

안되나보다.
뒤에서 기다리던 사야카가 킥킥대면서 축처진 내 어깨 위로 손을 얹었다.

"상당히 막무가내인 설득방식이로구나 아키츠군?"

"부탁이니 내버려둬..."

놀려대는 사야카의 모습에 낙담해 고개를 떨궜다.

뭐, 둘다 농담이었던 것 같고 결국 어떻게든 통성명엔 성공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체육 비품으로 마련되어 있던 테니스 라켓을 하나 골라 테니스 코트장으로 향했다.
코트장에는 테니스복으로 갈아입은 여학생들이 도란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몇몇 남학생들은 하교길 발걸음을 멈추곤 녹색 철망 너머로 생동감이 느껴지는 여학생들의 복장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다들 청춘이군요.
사야카는 아직 탈의실에서 나오지 않은것 같았기에 코트 밖을 서성이던 중, 코트 옆 수돗가에서 대화중이던 리사와 미오와 마주쳤다.

"어라, 아키츠군이 여긴 왠일이야?
하교한 줄 알았는데?"

"다른 남자애들처럼 여학생들을 훔쳐보러 온거야~?
신경쓰이는 여자애가 있다든가 말야~"

호기심이 깃든 눈초리로 리사와 미오는 내 모습을 훑어보았다.
운동복 차림으로 테니스 라켓을 쥐고 있는 내게 리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면 아키츠군, 지금 운동복 차림이네.
혹시 테니스를 하러 온거야?"

"음, 솔직히 테니스는 오늘이 처음인데..."

"그래? 그럼 나랑 미오가 테니스 가르쳐 줄까?
하나하나 정성스레 가르쳐줄 수 있는데~"

"구석구석까지 가르쳐줄께. 기대해도 좋다구~?"

요염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할짝이는 리사와 장난기가 배인 시선을 보내오는 미오에게 쓴웃음을 짓곤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선약이 있어서 사양할께.
아라이가 테니스를 가르쳐 주기로 했거든."

"어? 사야카가?"

"응. 아라이와 이야기하다 취미로 스포츠 하나정돈 배워두는게 좋을거란 얘기가 돼서, 아라이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어."

"에... 후후, 아키츠군도 꽤나 손이 빠르구나?"

"권유해준건 아라이였지만..."

"그걸 곧이 곧대로 받은 아키츠군도 보통이 아닌거야.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이건 진리라구?"

쯧쯧하며 검지를 흔들며 리사가 미소지었다.

"그나저나 사야카도 많이 변했네."

"변해?"

딱히 바뀐건 없어 보이는데.
머리에 단 액세서리가 바뀌거나 하진 않았고.

"뭐, 사내아이들은 여자아이의 변화 같은거엔 둔하니까.
학년 초의 사야카는 아키츠군을 무서워 했거든."

"그건 다른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였잖아?"

"그야 그랬지만 말이지.
그래도 코테가와가 아키츠군을 휘어잡고 있으니까 2-A의 다른 여학생들은 비교적 빨리 아키츠군에게 익숙해졌지만, 사야카는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렸어.
학년 초엔 아키츠군쪽을 힐끗 바라보거나 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혐오? 두려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말을 마친 리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헌팅당하던걸 아키츠군이 도와준 뒤로는 사야카도 아키츠군에게 익숙해진것 같지만."

"즉, 지금은 괜찮다는거지?
그럼 상관없잖아."

"상당히 태평하구나 아키츠군은?"

"뭐 어때? 사이가 나빠졌다면 신경쓰일지 몰라도, 사이가 좋아졌다는건 기쁜 일이잖아?"

"확실히 좋은 일이긴 하지만...하아~ 고민이 없어서 좋겠어 아키츠군은~"

나라고 고민이 아예 없는건 아닌데...
한숨을 내쉰 리사는 분위기를 바꿔서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사야카 말인데...어때?"

"뭐가?"

"뭐긴~ 가슴이지 가슴.
탱글탱글한게 정말 훌륭하다구~?"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리사는 양 손으로 자기 가슴을 살짝 쥐어보였다.
미소녀인데 입에서 침이 흐를 것처럼 실실 웃음 짓는게 진성 에로 아저씨 같습니다 리사씨.
양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는 폼이 한두번 주물러본게 아닌가보다.

"최근 만져봤는데, 사야카, 분명 1학년 때보다 더 커진것 같았다구~?"

"호, 호오...?"

귀가 솔깃해지는 정보에 무심코 침을 삼키며 반응하자 리사의 미소가 짙어졌다.

"후후후...대단할 것 같지?
아키츠군도 한번 만져본다면 벗어날 수 없을걸~?
어때? 사야카의 위크 포인트(약점테니스 용어입니다), 알려줄까?"

이 무슨 육식계 미소녀...!

"리사!!"

"어라? 일찍왔네 사야카."

태연히 손을 흔들며 웃는 리사의 모습에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새빨개진 얼굴의 사야카가 양손으로 라켓을 쥔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빨개진 얼굴로 서있던 사야카는 팔을 뻗어 내 손을 꽉 쥐곤 냉큼 테니스 코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칠게 발걸음을 옮기는 사야카에게 당황한채로 질질 끌려가는 날 보곤 리사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선 명심해둬. 테니스는 사람을 맞추는 놀이가 아냐."

"...? 당연하잖아?"

"분신술을 써서 혼자서 복식 경기를 뛰지도 않아."

"...아라이...테니스가 격투기나 판타지가 아니란건 나도 알고 있어."

"응. 그럼 다행이네.
실은 사스가 선생님이 초보자를 가르칠 땐 꼭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스포츠 만화를 보고 흉내내려는 입문생이라도 있었던거야?"

"아니. 테니스공으로 크레이터를 만든 꼬마에게 기절한 뒤로 트라우마가 생기셨어."

...리얼 테○스의 왕자님을 겪으셨군요.
언제부터 스포츠가 판타지로 넘어간거야?

"원래는 이런 설명은 그냥 넘어가는데, 솔직히 아키츠군이라면 그런 일을 벌릴지도 몰라서 말야."

안합니다 그런건.
허리케인 버스터야 피구공으로 하는 초등학생용 놀이니까 장난삼아 만든거긴 하지만.

"그런 못된 장난은 하고 싶지도 않아."

"...할 수 있어?"

"노 코멘트로."

"흐응...?"

고개를 갸웃하던 사야카는 테니스 라켓을 위로 들었다.

"우선 그립 잡는법 부터 가르쳐줄께. 이렇게 잡는거야."

사야카가 라켓의 그립을 잡은 모양새를 보고 따라서 라켓을 오른손으로 쥐었다.

"어때?"

"음...조금 더 위쪽으로."

말을 하며 사야카는 내 오른손 위에 손을 얹고 잡는 법을 교정해 주었다.

"이렇게야. 알겠어?"

"응, 고마워 아라이."

"...음..."

"왜 그래?"

"아니, 뭐랄까. 딱히 이상한 의도는 없었다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담백해서야 약간 실망이라고 할까?"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하길 바라기라도 한거냐...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이성에 서먹하진 않다구?
약간 부루퉁한 사야카의 모습이 재밌게 보여 태연하게 응수했다.

"핫핫핫. 꽃이 떨어지는걸 봐도 부끄러운 시기라고 하지만,
규중 아가씨도 아니고 손이 닿는걸로 부끄러워할 만큼 순진하진 않다구?"

"하긴 그래. 여자 경험이 많은 아키츠군이니까 당연하지요?"

"......아! 역시 다시 생각해보니까 엄청 부끄러운것 같기도 하고..."

"맘에 없는 소리는 됐어 아키츠군~"

내 뻔한 능청에 피식 웃은 사야카는 다시금 지도를 시작했다.

"잘봐. 이게 포핸드 자세야. 따라해봐."

사야카는 양발을 벌리고 옆으로 서서 라켓을 쥔 오른손을 뒤로 빼면서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사야카의 자세를 따라 몸을 움직여 보았다.

"이렇게?"

"음, 좀 더 이렇게 팔을 빼고..."

사야카는 내 등뒤에서 내 손목을 잡고 자세를 고쳐줬다.
밀착하듯 붙어서 지도해주는 사야카의 몸이 등에 닿은 순간 무심코 어깨를 떨었다.

"아, 지금 긴장했지?"

"......"

"...혹시 두근거려?"

"으응, 솔직히 조금 부끄러워."

"아하하, 아키츠군은 솔직하네."

달아오른 내 얼굴에 사야카는 킥킥 웃으며 몸을 치웠다.
...일부러였군.
하나하나 내 자세를 교정해주면서 사야카는 작게 불평했다.

"...역시 남을 가르치는건 좀 어렵네.
아아~ 어째서 내가 아키츠군을 가르쳐 준다고 했던걸까?"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나중에 음료수 살테니까..."

"...뭐, 그걸로 좋겠지.
그럼 코치라고 불러볼래?"

"아라이 코치님?"

"후후, 착한 학생이구나 아키츠군은?"

차근차근 자세를 고쳐주면서 사야카는 잡담을 계속했다.

"코치라는 호칭은 듣기 좋았지만, 그래도 이런건 역시 남녀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미남 코치가 미소녀를 지도해주는 구도가 제일 이상적인데."

"은근슬쩍 자신을 미소녀라고 하지마.
틀린소린 아니지만 자기 얼굴에 금칠하는건 부끄럽지 않아?"

"그럼 이건 어때?
여기서 내가 미소녀인걸 긍정한다면, 아키츠군은 미남 코치가 될 수 있습니다."

"미소녀로 좋습니다.
네, 미소녀이고 말고요."

"...지조가 없어 아키츠군."

"인생, 때로는 뻔뻔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고.
상부상조, Win-Win 전략이란건 이 때를 위한 거로군요.

"근데 아키츠군, 코치는 할 수 있는거야?"

"수영 코치라면 해줄 수 있는데."

지금까지 수강생은 코테가와 한명 뿐이다.
그마저도 아직껏 맥주병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라 코치로서의 내 자질이 의심되지만...
내말에 사야카가 지긋이 나를 응시했다.

"아키츠군은...은근히 야해?"

"흑심은 없습니다."

"정말로?"

의심스러운듯 바라보는 사야카의 눈길에 무심코 사야카의 수영복 차림을 상상해버렸다.

"...역시 요만큼 정도는..."

엄지와 검지로 동전 굵기 만큼의 틈을 만들어봤다.

"풋- 적어도 솔직해서 좋네."

웃음지은 사야카는 다시 테니스 지도를 시작했다.

사야카의 지시에 따라 포핸드 자세로 서서, 바닥에서 튀어 오른 공을 테니스 라켓으로 맞춰봤다.
라켓에 맞은 테니스 공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떠올라선 철망 너머로 날아가버렸다.

"해냈어 아라이~! 첫구부터 홈런이야!"

"테니스는 야구가 아냐 아키츠군.
밖으로 날아간 공은 나중에 챙겨와줘."

"미안..."

엄격하게 말하는 사야카의 모습에 기가 죽었다.
아니, 나도 알고 있었어요.
그저 이 민망한 실책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구요.
침체한 내 모습에 사야카가 표정을 풀고 등을 두드리며 위로해줬다.

"뭐, 보통 처음은 누구나 그렇지.
공을 때리는게 아니라 밀듯이 쳐야 한다구.
제대로 치는 법을 익히도록 해.
안그럼 시합에선 지금처럼 홈런만 날리게 될지도 몰라?"

"응.
...저기, 그런데..."

"왜?"

"어쩐지 다들 쳐다보고 있는것 같은데?"

테니스 코트장에서 연습을 하던 여학생들이 가끔씩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여자애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테니스 코트장에 남학생이 들어온건 드물기도 하고, 그것도 아키츠군이다 보니 다들 호기심으로 저러는거니까."

"...철망 밖에서 남학생들도 보고 있다만?"

테니스 코트장을 두른 철망에 매달려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는 남학생들의 시선이 온몸을 찌르고 있었다.

"신경쓰지마. 다들 별볼일 없는 남자들이니까 아무렇지 않아.
하교도 안하고 여학생들 테니스복 치마나 응시하는 원숭이 같은 애들은 특히나."

워, 원숭이...

"좀 평가가 너무한것 같은데?"

"그래? 그럼 저 애들중에 아키츠군에게 뭐라고 할 담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도 좋아."

난 담력 시험의 대상입니까?
아무래도 그럴만한 녀석은 안보이는지라 침묵하고 있는데 사야카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고교 시절의 절반이 지나가는데 좋은 사내아이 찾긴 힘드네.
이상한데 몰두해선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법석을 떠는 남학생들이라든지, 음침하게 도촬이나 하는 변태라든지, 여자아이들 가슴만 훔쳐보는 사내아이라든지...
어째서 우리 학교 남자애들은 다 이런걸까?"

"하하..."

적어도 가운데 끼어있는 남학생은 청춘이란 이름으로 용서가 되는 레벨조차 아니군요.
여학생들은 심신양면으로 좋은 아이들이 많은데, 남학생의 레벨은 여학생 레벨의 절반도 못 따라가는 것 같다.
사이난 고교는 그야말로 좋은 남자의 불모지일지도...

"정말이지 렌이 다른반이 된 이후론, 쓸만한 남자아이는 우리반에선 아키츠군 정도일지도."

"...그 거짓말 진짜?"

"...어째서 거짓말이란 전제를 까는거야?"

"핫핫핫~ 그렇게 너무 띄워주면 넙죽 물어버릴지도 모른다구?"

"아하하, 아키츠군이 그렇게 말하면 정말로 물것 같아 무서우니 그만둘래."

"...난 무슨 맹수입니까?"

"1학년 때부터 나온 코테가와씨의 별명을 보면 알잖아?"

네. 반막할 말이 없네요.
'맹수 조련사'라는 호칭 덕분에 코테가와는 1학년 때부터 풍기위원회의 정점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코테가와로서는 그런 별명을 달갑지 않게 여기겠지만.

"음, 농담이 아니고 아키츠군은 좀 무서워.
무엇보다도 그 눈이."

"눈?"

"맹수같은 눈이야. 그대로 바라보고 있으면 잡아먹힐것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 보았을 땐 그런 기분이 들어서 정말로 무서웠거든.
처음부터 아키츠군과 1대 1로 마주보며 얘기하는 코테가와씨나 리사같은 사람이 대단한거라고.
뭐, 그래도 지금와선 나도 익숙해져서 괜찮지만."

아아...그래서 학년 초에 사야카가 날 꺼려했던건가?
그랬던게 지금처럼 보통으로 이야기를 나눌정도가 되었다니, 사야카의 대범함에 감사해야겠군.

잡담을 끝내고 사야카는 바구니에 담긴 테니스공을 가리키며 연습 사항을 지시했다.

"이제부턴 방금 배운 포핸드 스트로크를 계속 반복하는거야.
라인 안쪽으로 테니스 공이 들어가도록 연습하도록 해.
바구니에 든 공을 다 쓰면 다른 사람에게 코트를 양보해줘.
코트 수가 모자라서 돌아가면서 써야 하거든.
바닥에 떨어진 공은 다시 바구니에 담아놓도록 하고."

"응, 그렇게 할께."

"그럼 난 코요미랑 연습하고 있을테니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줘?"

말을 마친 사야카는 라켓을 들고 코트 한쪽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코요미에게 다가갔다.

라켓과 테니스 공을 들고서 네트 너머에 텅빈 상대편 코트를 바라보았다.
네, 솔직히 공 몇번 쳐보고 바로 시합이라는 전개는 우습죠.
조금쯤은 단식 경기 같은걸 기대한건 사실이지만요.
'우후후-', '아하하-' 하면서 알콩달콩 치는것까진 바라진 않았습니다만.
포핸드 스트로크만 배운 상태론 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사야카가 정성껏 가르쳐줬으니 배운대로 열심히 연습해봅니까.

포핸드 스트로크로 공이 라인 안으로 들어가도록 연습했다.
공을 담은 바구니가 비워지자, 코트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학생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코트 구석을 돌며 바닥에 널려있는 공을 도로 주워담으며 코트를 둘러보았다.

사야카는 방금전 말한대로 코요미와 함께 연습중이었다.
리사는 미오와, 하루나는 양갈래 댕기머리 소녀와 함께 연습을 하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라켓을 휘두르는 여학생들의 움직임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이거라면 확실히 철망 밖에서 구경하는 남학생들의 심정을 알것도 같다.

곧 테니스 공으로 바구니가 가득차자 코트 구석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여학생들의 운동하는 자태를 감상했다.
시원시원하게 치는게 정말이지 멋지네.
나도 포핸드 스트로크 외에도 백핸드 스트로크나 서브 같은것도 해보고 싶은데.
나중에 사야카의 연습이 끝나면 가르쳐달라고 할까?
활기 넘치는 소녀들의 모습을 지켜고보고 있을 때,
라인 구석으로 찔러들어온 코요미의 공을 받아넘기려고 급하게 움직이던 사야카가 발을 헛디뎠는지 균형을 잃고 코트를 굴렀다.

"사야카!?"

코요미의 외침과 쓰러진 사야카의 모습에 놀라 사야카에게 달려갔다.

"아라이? 괜찮아?"

"아야야..."

오른쪽 무릎을 부여잡으며 사야카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구르면서 다쳤는지 무릎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어서 손수건 같은건 가져오지 않았는데...우선 양호실로 데려가야할 것 같았다.
단짝인 코요미가 사야카의 몸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사야카...걸을 수 있겠어?"

"응, 어떻게든..."

코요미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 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사야카의 모습에, 보다 못한 리사가 둘을 불러세우곤 나를 지목했다.

"그렇게 억지로 움직이는 것도 상처에 안 좋을것 같은데, 그냥 아키츠군에게 업어달라고 하는게 어때?"

"맞어맞어~ 사내아이는 힘이 세잖아?
사야카에게 테니스도 배웠으니까 아키츠군도 그정도 서비스는 해주라구."

"응... 아무래도 그러는게 낫겠지."

리사와 미오의 말에 수긍하곤 사야카의 앞에 앉아 등을 내밀었다.

"자, 업혀 아라이."

"어? 아냐, 아키츠군이 거기까지 하지 않아도..."

"에이~ 힘들게 걷는게 뻔히 보이면서 고집부리진 말라구~"

"순순히 업혀업혀~"

"꺄악~?"

거절하는 사야카의 양어깨를 리사와 미오가 붙잡곤 억지로 사야카를 내 등뒤에 태웠다.
당황한 사야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사야카의 허벅지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작게 소리를 내지른 사야카를 업은채 리사와 미오의 휘파람 섞인 야유를 들으며 양호실로 향했다.




코트를 벗어나 운동장을 지날때 등뒤에 업힌 사야카가 말문을 열었다.

"...고마워 아키츠군."

"뭘, 나야말로 아라이에게 테니스를 배웠는데 이 정도야 약과지.
아, 혹시 지금 업은 상태가 불편하진 않아?
상처에 자극이 간다든지 말야."

"...그럼...조금 천천히 걸어줬으면 해."

나름대론 조심해서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걸음걸이가 좀 거칠었던가?
사야카의 요구대로 속도를 늦춰 좀더 느릿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이래서야 무슨 거북이 걸음 같군.

"...무겁진 않아?"

"전혀."

여자아이들은 그런게 신경쓰이는걸까나?
룬도 그랬고, 역시 이런쪽 얘기는 되도록 피하는게 상책이다.

"아키츠군은...역시 친절하구나.
사납게 생겼는데."

"친절까지야...당연한 일이라구.
게다가 사내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동경하니까."

"그래?"

"그렇다니까. 여자아이에게 의지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건 모든 남학생들의 꿈이라구?
그런식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호감도 업~! 이라는 느낌일까나?"

"아하하~ 동기가 불순해."

"그래서 싫어?"

"아니. 노력하는 사내아이는 싫어하지 않으니까.
방금전 코트장에서 말했지? 아키츠군에게 뭐라고 할 담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도 좋다고. 그거랑 같은거라구."

"모미오카도「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역시 어떻게든 행동으로 옮기는게 보기 좋은거려나?"

"그런 의미에선 아키츠군은 합격이야. 자랑해도 좋아."

"핫핫핫. 고마운 말씀을.
그렇게까지 좋게 평가해주면 나로선 정말 기쁜걸?"

"...좋은 평가라...응..."

사야카의 호의적인 평가에 발걸음도 가벼워진 것 같았다.
살짝 들뜬 기분에 잠겨 있는데 사야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실은 말야...나, 아키츠군이 싫었어."

"...그래?"

"오해하진 말아줘. 예전엔 그랬다는 얘기니까."

"응..."

"...화내지 않아?"

"안내. 예전일이라고 했잖아?
지금은 아니란 거니까 괜찮다구."

직설적인 말이 조금은 아팠지만 과거형이라는게 위안이 되었다.

"...얘기, 좀더 계속할까?"

"응. 아라이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다른 사람에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도 알고 싶었으니까."

"...렌을 알고 있어?"

"알고 있어. 라라의 소꿉친구잖아?"

"남자인 아키츠군이 보기에 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음...얼굴도 예쁘게 생겼고, 성격도 그렇게 나쁘진 않은것 같고, 나름 머리도 좋은 것 같고, 운동도 어느정도 하는데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편단심이지.
그야말로 남녀 모두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타입이랄까?
적어도 내가 만난 남학생들 중에선 렌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없었어."

라라를 설득하는 화술은 느끼해서 닭살이 돋는 수준이었지만, 여자들에겐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테니 그건 넘어가고.

"역시 그렇지?
1학년 때 렌이 우리반으로 전학왔을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아, 이 사람은 정말 왕자님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왕자님 같은 사람이 아니고 진짜로 왕족이지만.

"렌은 라라 외엔 관심이 없는것 같았지만...그래도 렌을 볼 때면 두근거렸어.
아키츠군을 보면 반대로 무서워서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예전 일이 떠오른듯 사야카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곤란한 녀석...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학년으로 올라오면서 렌과는 다른반이 되었어.
...왜였을까?"

"응?"

"이상하지... 어째서 1-A반의 친구들이 전부 2-A반으로 올라왔는데, 어째서 렌만 그렇게 다른 반이 되었을까...?"

그러게 말이다.
2학년이 되면서 라라랑 다른 반이 되어 눈물을 글썽이던 렌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억세게 운이 나빴다고 말해줄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아키츠군이 2-A반으로 등교하는 모습을 봤을 때 생각했던거야.
아...이사람만 아니었으면 렌은 계속 우리반에 있어주었을텐데...하고 말야."

"......"

"하하...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투정이었지만 그땐 나도 정말로 심각했어.
미소년인 렌이랑 무서워보이는 불량배가 뒤바뀌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가 없었어.
그리고...자꾸만 늘어가는 이런저런 괴담 속에서 자꾸만 네가 무서워져서...어느새 같은 반에 있는 것조차 싫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이건 뭐, 더러운 벌레를 보는듯한 정도의 혐오감이 아니었던거로군요.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궁금했다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이상으로 견디기 힘들다.
직접적인 원망이 깃든 솔직한 고백 덕분에 마음이 실시간으로 브레이크 하고 있었다.

"그런데...코요미랑 함께 헌팅남들에게 붙잡혔을 때, 네가 와줬던거야."

"...아? 아아, 금연한다고 했을 때 말야?"

"...응."

어깨를 잡은 사야카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해서, 음흉한 미소로 다가오는 남자들이 무서워서,
제발 누군가 도와주길 바랐을 때...정말로 싫어하던 사람이 도와주러 온게 이상하면서도 기뻤어..."

스스로 말해놓고서도 이상한 듯 사야카는 작게 키득거렸다.

"피에 굶주린채 언제나 분쟁거릴 찾아 다니면서,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상대도 무자비하게 쓰러뜨린다는 소문 때문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조마조마 했는데 생각과 달리 헌팅남들을 말로 타일러 보낸 것도 이상했어.
아니, 신기했다고 할까? 그때 아키츠군이 소문처럼 흉포한 사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어."

실은 나중에 철권제재를 가했습니다.
물론 반성없이 헌팅을 계속했던 헌팅남들의 자업자득이지만요.

"그 때 아키츠군이 말해준 옛 소문의 진상이란걸 듣고 정말 웃었어.
중학교 때 히로인은 정말로 권(拳)이었던거야?"

"하하, 애초에 중학교 때 여학생들은 말을 걸기라도 하면 다들 무서워하며 달아났는걸."

그놈의 몹쓸 소문 덕에 여학생들에게 짐승 취급 당했던 걸 생각하면...
씁쓸한 추억이 되살아 나서 살짝 풀이 죽었다.

"...미안해."

"네가 미안할게 아니잖아."

"......"

"뭐, 솔직히 예전일은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하지만, 이제와서 바꿀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우리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다!」라는 대사도 있잖아?
지금은 아라이 너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랑 대화해주는 여학생도 있고...그러니까 내 청춘의 시작은 고교생 부터라구?"

"풋-, 긍정적이네 아키츠군은."

작게 웃은 사야카는 잠시 뜸을 들이곤 말을 이었다.

"흡연에 대해 해명하는 아키츠군에게 가까워졌을 때, 정말로 곤란해하는 아키츠군의 모습이 신선했어.
그때 문득 생각했던거야. 아, 이 사람은 어쩌면 정말로 보통의 소년은 아닌가.
험악해보이는 주제에 실은 순진해서...불량스러워 보이려고 고집을 피우면서도, 정작 행동은 우리랑 다를바없는 사람인건 아닐까...하고 말야."

...놀랐다.
그렇게까지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보였던거야.
아키츠군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
코테가와씨에게 쩔쩔매는 모습이라든지, 리사나 미오가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걸 볼 때마다, 아키츠군은 생각하고 있던 모습과는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내가 사야카를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사야카가 보통으로 접해왔었기에 몰랐지만 그런 사정이 있었던가.

"그리고...언제였더라? 아키츠군, 등교하면서 물벼락을 맞은 적이 있었지?"

"아아, 그땐 정말 나도 황당했어.
비도 오지 않는 날에 하늘에서 물벼락을 맞을 줄은 몰랐거든.
앞으론 꼬박꼬박 우산을 챙겨오자고 생각했었다구? 아하하~"

"...아키츠군은...조금은 화를 낼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수로 벌어진 일이었잖아?
누구나 실수는 하니까 그런것에까지 화를 낼 생각은 없어?"

"그런게 아냐!"

"어, 어...?"

갑작스런 사야카의 외침에 놀라 무심코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우뚝멈춘 날 상관하지 않고 사야카는 가라앉은 어조로 속삭였다.

"난 말야...물뿌리개를 뒤집어쓰고 물에 빠쥔 생쥐마냥 꾀죄죄한 꼴로 서있는 아키츠군을 봤을 때...싫었어.
아키츠군이 그런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는게.
물에 젖어서 떨고 있는걸 마치 구경거리처럼 둘러싸선, 아무도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슬펐어."

어깨를 잡은 사야카의 손길이 강해졌다.
어쩐지 후회가 섞인듯한 목소리로 사야카는 내뱉듯 중얼거렸다.

"중학교 시절에도...아키츠군은 그런 식으로 주욱 혼자였던걸까?"

"......"

"나는...그런 시간을 보내고서도 아키츠군이 계속 상냥함을 가지고 있었다는게 놀라워..."

스트레스는 중학교 3학년의 6개월 동안 완전히 날려보냈습니다.
스트레스의 주원인이자, 더불어 스트레스 해소의 발판이 되어준 도내학군단연합에겐 고맙게 생각한다.
이류쯤은 되어보이던 두뇌파 보스 녀석도.
뭐, 그건 그거고... 물벼락 맞았을 때는 사야카의 도움으로 상황을 넘길수 있었으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때 손수건을 건네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구경하던 아이들도 다들 흩어졌잖아?"

"나는 그 때...도움이 될 수 있었던걸까?"

"물론. 넌 내게 웃어줬잖아?
그걸로 이미 넘치도록 충분해.
스마일은 공짜지만 마음의 양식이니까."

"...풋, 뭐야 그게?"

웃음을 터뜨린 사야카는 답답한 기분이 나아진 듯 밝은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아키츠군도 참 운이 나쁜 것 같아.
그 일이 있고 바로 다음날 '여동생 모에'니 하는 소문을 뒤집어 써버렸잖아?"

"아..."

범인은 미오인가, 아니면 여동생 카페에 들어온 다른 학생인가.
덕분에 하급생들을 대하기 껄끄러워 졌다.
애초에 만날 일은 거의 없으니까 별 상관은 없는것 같지만.

"후후, 그나저나 그날 손수건 돌려줄 때 혹시 두근거렸어? 아키츠 '오빠'?"

"...조금은."

동급생에게 오빠라고 불리니까 좀 미묘하긴 했지만.
머뭇거리며 답하자 사야카는 작게 키득거렸다.

"오빠라고 하니까 생각난건데 말야, 아키츠군은 가끔 연상으로 보이기도 해."

"음...그거 나이 들어보인단 얘긴 아니지?"

"아니. 의지가 된다는 말이야.
행동력이랑 추진력이 강하다고 할까...
돌발상황 같은거에도 침착하게 잘 대응해왔잖아?"

"그랬던가?"

"응. 헌팅남들에게서 여자아이들을 빼내온거라든지, 운동회 때 낙하하는 여학생을 쫓아가서 안전하게 받아들인 거라든지,
이상한 가스로 다들 어린애가 됐을 때 아이들을 돌봐준 거라든지 말야.
그 때문인지 지금 와선 다른 아이들도 은근히 아키츠군에게 의지하고 있는걸?
그러니까 어른스러워 보인다는건...믿음직 하다는거야."

「가끔 얼빠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이라고 중얼거리며 사야카는 내 목에 팔을 감곤 몸을 기대왔다.

"아키츠군의 등은 크구나...어쩐지 안심이 돼."

"아하하~ 그런 칭찬은 기쁜걸?"

"...코요미는...이런 기분이었던걸까?"

작게 귓가를 울리는 사야카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도착한 양호실 문을 열었다.



양호실은 텅 비어 있었다.
미카도 선생님과 오시즈 둘다 자리를 비운것 같았기에, 어쩔수 없이 구급상자를 찾아서 사야카의 상처를 소독하기로 했다.
양호실 침대 위에 사야카를 앉히곤, 바닥에 앉아 구급상자에서 약을 꺼내 사야카의 무릎을 치료했다.

"아야..."

"많이 아파?"

"아니, 소독하고 나니 참을만해."

"그건 다행이네."

"...그런데 아키츠군?"

"왜?"

"지금 이렇게 날 앉힌건...일부러 그런거야?"

"응?"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우뚱 기울이자, 사야카의 허벅지 사이에 있는 새하얀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노골적이야 아키츠군."

"......"

테니스복 차림으로 침대 밖으로 다리를 내밀고 앉아있는 사야카.
양호실 바닥에 앉아 사야카의 다리 앞에서 얼굴을 기울여 허벅지 사이를 바라보는 나.
...어떻게 보나 소녀의 치마 속 풍경을 노골적으로 훔쳐보는 짐승이군요.
냉큼 고개를 숙여 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구급상자를 정리하고 원래 위치에 가져다 두었다.
대범해진건지 아니면 익숙해진건지 딴청을 피우는듯한 내 행동을 보며 피식 웃은 사야카는 내게 손짓했다.

"아키츠군."

"왜그래?"

"미안하지만 침대에 좀 눕고 싶어서 그런데, 오른쪽 다리를 들어올리는걸 좀 도와줄래?"

"...알겠어."

환자는 왕이로군요.
한숨을 쉬곤 사야카의 다리를 조심스레 침대 위로 올려주었다.

"자, 그럼 이제 미카도 선생님이 오실때까지 여기서 얌전히..."

"에잇-!"

"엇?"

양호실 침대에 사야카를 눕히고 몸을 일으키려다 갑자기 내 목뒤로 감겨진 양팔에 이끌려 앞으로 쓰러졌다.
양손으로 침대를 짚으며 겨우 쓰러지는걸 면하자 눈앞에 사야카의 얼굴이 들어왔다.
침대에 드러누운 사야카는 양팔로 내 목을 붙잡은채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라이...?"

양호실 천장의 불빛 탓에 내 몸에 깔린듯 드러누운 사야카의 몸 위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침대로 쓰러지면서 흐트러진 듯 밀려올라간 치마 밑으로 속옷이 드러나 보였다.
내 목을 휘감은 여자아이의 피부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살짝 흐트러진 단발 아래로 보이는 예쁜 눈동자.
가만히 응시해오는 사야카의 시선에 심장의 고동이 차츰차츰 빨라져만 갔다.

"...두근두근해?"

살짝 웃은 사야카는 조금 몸을 일으켜 내 옷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곤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스읍-

목덜미 근처에서 들려오는 간지러운 숨소리에 목덜미가 떨려왔다.
곧 내 품에서 얼굴을 뗀 사야카는 싱긋 웃음지었다.

"응...역시 담배 냄새 같은건 나지 않네.
살짝 땀내음이 나지만."

"읏..."

나도 모르게 귓가가 빨개졌다.

"아하하, 신경쓰이는거야?
응...리사의 말이 맞네."

"...뭐가?"

"아키츠군은 위기상황이나 돌발상황엔 터무니없이 행동력이 강한 주제에, 여자아이와 두근두근한 상황에 처하면 정말이지 귀여운 반응을 한다고."

오해요 그건.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상정외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목덜미를 휘감은 양팔을 놓아주지 않은채 킥킥거리던 사야카가 다시 눈을 마주했다.
그대로 가만히 내 눈을 응시한채 사야카의 오른손이 내 머리에서 헤어밴드를 벗겨내었다.

"아..."

헤어밴드가 치워지면서 올백으로 넘겼던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시야를 가릴듯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사야카가 미소가 짙어졌다.

"응...그래.
체육제 때 헤어밴드 빌리면서 생각했던거지만...역시 이쪽이 훨씬 맘에 들어."

헤어밴드를 쥔 사야카의 오른손이 다시금 목에 둘러졌다.

"아키츠군의 눈은 무섭지만...가끔은 매력적으로 보이기도해.
왜냐하면 아키츠군은 상냥한데다가 믿음직하니까, 그걸 알고나면 오히려 용맹한 눈으로 느껴지거든."

사야카의 눈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차분하게 응시해오는 사야카의 시선에 홀린듯 눈을 떼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만났을때 말야, 책을 좋아한다는걸 알고나서 재밌어져서 무심코 웃음이 나왔어.
아. 이 사람은 정말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말야.
의외로 책을 좋아하고, 곤란한 일엔 손을 내밀어주고, 불량배처럼보이지만 실은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그리고 조금은 엉큼하고 말야."

"윽..."

"매지컬 쿄코 사인본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무심코 웃어버렸어.
의지가 되면서 조금 무서운 아키츠군도 이성에 관심이 있는 사내아이였구나 하고 말야.
응. 보통의 사내아이..."

「우리반 남자애들을 보면 '보통'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이라며 나지막이 중얼거린 사야카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런 보통이, 여자아이들에게 기대를 갖게 만드는거야."

긴 이야기를 끝낸 사야카가 기대가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키츠군은...어떤게 궁금해? 나에 대해 알고 싶은건 없어?"

"아라이에 대해서?"

"그래. 보답이랄까, 뭔가 바라는건 없어?
아키츠군이라면...지금이라면 나의 삼부수치 정돈 알려줄 수 있는데."

마지막에와서 분위기가 엉망인것 같습니다만...
농담처럼 말하는 사야카에게 방금까지 굳어있던 몸이 약간 풀리는 것 같았다.
사야카에 대해서 알고 싶은건 많이 있지만, 삼부수치 같은건 굳이 필요없다.

"...나로선 네 취미라든지, 네가 잘하는거라든지, 네가 좋아하는 책이나 머리장식 같은거에 더 관심이 있는데..."

수치 몇개를 아는것 보다는, 같은 걸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게 더 보람있다고 생각하니까.
내 대답에 눈을 깜빡이던 사야카는 살짝 볼을 물들이며 싱긋 웃었다.

"...후후. 응, 그런 섬세한 점이 맘에 든다는거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야카는 내 목을 잡고있던 양팔을 풀었다.



"오늘은 고마웠어 아키츠군."

"나야말로 고마워.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눠본것도 오랜만이었으니까 즐거웠다구.
그나저나 슬슬 미카도 선생님을 찾으러 나가볼테니 여기서 기다릴래?"

"응, 그럼 부탁할께."

...드르륵-

침대에서 일어나 양호실 문에 가까워지자,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리며 미카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안으로 들어와 양호실 문을 도로 닫은 미카도 선생님은 그제서야 우릴 발견한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 너희들 아직 안가고 뭐했니?
혹시 다치기라도 한거야?"

"아, 네. 아라이가 무릎을 다쳐서 말이죠.
일단 응급 처치는 했지만..."

"그래? 어디 내가 한번 볼께."

미카도 선생님의 진단 결과는 간단한 찰과상 이었다.
구급상자로 해둔 응급처치만으로도 충분했는지 무릎에 거즈와 테이프로 상처를 가리는걸로 치료는 끝났다.
충격이 많이 가셨는지 적당히 걸을수 있게된 사야카를 부축한뒤 미카도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양호실을 나왔다.
도중에 미카도 선생님이 닫아놓은 문을 열면서 고개를 돌려 미카도 선생님을 향했다.

"그런데 미카도 선생님."

"왜그러니 아키츠군?"

"곧 있으면 퇴근 시간인데, 굳이 양호실 문을 도로 닫을 필요는 없지 않았어요?"

"...글쎄, 이상해?"

"...아뇨. 별로."

잠시 뜸을 들이더니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응수하는 미카도 선생님을 보다가 양호실을 나왔다.

"6명인가..."

"뭐가 말야 아키츠군?"

"아니 아무것도. 그냥 선생님이나 친구들도 참 취미가 나쁘다고."

"응?"

알쏭달쏭한 얼굴의 사야카를 부축하곤 복도를 걸었다.
복도의 구석을 돌자, 의리있게도 아직껏 테니스복도 갈아입지 않고 남아있던 하루나, 리사, 미오, 코요미가 간호복 차림의 오시즈와 함께 사야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처는 어떠냐며 호들갑을 떨며 사야카를 대하는 다섯명을 보곤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섰다.




다음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 자리에 앉자, 사야카가 인사해왔다.

"좋은 아침이지 아키츠군?"

"아, 좋은 아침 아라이.
다리는 이제 괜찮은거야?"

"물론. 간단한 찰과상이라서 금방 나았다구?
그것보다... 이거 받아."

씨익 웃은 사야카는 한손에 든 조그만 주머니를 내게 건내었다.

"뭐야 이건?"

"쿠키야. 집에서 간식으로 만들어 본건데, 어제 일도 있으니 아키츠군에게도 좀 나눠줄까 싶어서."

"아, 고마워. 그럼 사양않고~! 잘 먹겠습니다~"

기꺼워하며 건네받은 주머니의 포장을 풀어서 안에 든 쿠키를 집어 입에 넣었다.
오물거리며 맛을 음미하고있자 사야카가 궁금한듯 물었다.

"어때? 맛있어?"

"응. 정말로 맛있어.
아라이는 쿠키를 잘 만드는구나?"

"물론. 이번건 자신작이니까."

"고마워 아라이."

"후후...같은 반이 되었으니 잘 부탁할께 아키츠군."

"아핫~ 뭘 새삼스럽게...응. 나도 잘 부탁해 아라이."

"아, 그리고 공부 가르쳐줘."

"공부?"

"아키츠군은 공부 잘했지? 모르는게 있어서 말야.
대신 앞으로도 테니스 가르쳐 줄께."

"좋아. 나로서도 바라던 바니까."

"그래서 이것 말인데..."

의지되는 사내아이라는 칭찬에 혹해서 쉬는 시간을 죄다 문제 풀이로 보내버렸다.
방과후엔 사야카도 그만큼 열심히 테니스 지도를 베풀어 주었기에 상관없었지만.
공부나 테니스와는 별개로 사야카와 일상적인 화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늘어나 즐거웠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리사가 사야카의 바디체크를 실시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싱글싱글 웃으면서「크게 해줄께~」하곤 달라붙는 리사가 사야카는 곤란한 듯 했다.
그때마다 코요미가 정색하면서 리사를 말리는 해프닝이 계속되는 나날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 반은 정말이지 트러블이 넘치는구나」하고 생각하곤 대출 도서를 덮으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p.s. 며칠 뒤 도서실에서 만나 책을 추천해달라는 오시즈에게 동화나 설화 관련 책을 골라주었다.
고마워하는 오시즈에게 덤으로 한권 더 책을 골라주었다.

「일주일만에 배우는 닌자 은신술」

다 읽으면 미카도 선생님께도 보여드리라는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수긍하는 오시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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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보면서 하악하악하며 썼습니다(...)
삽화를 그려주신 암천묵시록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ㅅ☆)/~♥

그동안 구지가를 부르시며 스스로를 갈아버리신 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m(_ _)m

은팔님, 불장구님, 절삭기님, 암천묵시록님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야미의 도서관 이야기를 써주신 은팔님 감사드립니다.
감상은 그저 야미는 귀엽귀엽...*=ㅅ=*b~♥

룬의 욕실 이야기를 써주신 불장구님 감사드려요^^
새침떼는 룬의 모습이 마음을 간질이는게 실실 웃음이 나왔습니다+ㅠ+b

미캉의 비오는날 이야기와 그 흑역사, 비오는날의 그림, darkside 그림을 올려주신 절삭기님 감사드립니다~(+_+)~
어리지만 고민많은 소녀의 이야기가 보기 좋았습니다(>ㅅ<)b

마지막으로 수많은 축전과 32화 삽화를 그려주신 암천묵시록님.
축제의 코테가와&료스케, 배꼽 핥기(...)의 미캉, 버서커DX의 붕가붕가&료스케 최후의 날,
자창게 크리스마스 버전으로 올리신 글 + 간지쩌는 터프가이 료스케 양아치 버전&액막이 제거 버전, TS버전 료스케(女)&리토(女) 흑백&컬러판.
그리고 이번에 32화에 쓰인 아라이 사야카과 료스케의 양호실 침대 이벤트씬까지...!ㅠㅠb
그야말로 명장면의 향연이었습니다. 부왘-! 하고 눈이 뚫어져라 봤네요.(◎ㅅ◎)^
다만 32화 삽화 받고 약속한 오늘 정오까지 업로드는 실패...쿨럭쿨럭...=3=;

다시한번 축전을 보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읽어주시는 독자분들도 정말 감사드려요!(>_<)/~★


p.s. 참조 이미지

커졌다.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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