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스케 오빠, 모래 저희 집에서 전골파티를 할 예정인데 오실래요?"

"전골파티?"

"네. 오늘 아침 라라 언니가 야미짱에게 지구음식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주 금요일에 전골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시간 되시면 오지 않으실래요?"

오랜만에 미캉과 상점가 쇼핑을 하던중 파티 초대를 받았다.
나로서야 당연히 이런 초대는 기쁠 따름이니 흔쾌히 승낙했다.

그나저나 야미를 위한 파티인가.
야미는 라라를 은근히 따르는 느낌이었으니까, 라라의 권유를 받는다면 야미도 두말없이 승낙할것 같다.
남은건 야미랑 사이가 좋은 친구들을 초대하는 거려나?

"혹시 말야, 다른 친구들도 초대해도 괜찮아?
기억나는 아이들중 야미랑 친한 애들이 몇명 있어서 말야.
식재료는 각자 준비해올테니까."

"물론이죠. 사람은 많을수록 즐거우니까요."

"역시 그렇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미캉을 보곤 나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처럼 상점가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띄며 활기를 띄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흥정소리는 시장을 더 정겹게 느끼게 했다.
물건을 고르던 중 멀찍이서 두런대는 손님과 상인의 대화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이 야채 한단에 얼마요?」
「240 엔 이라우.」
「으음...그러지말고 그냥 2단에 500엔 해줘요.」
「안돼! 그럼 난 뭐먹고 살라고?」

가끔씩은 얼빠진 행동을 하는 분들도 계시네요.
입꼬리가 미묘하게 실룩이는 날 이상하게 바라보는 미캉의 모습에 억지로 표정을 바로하곤 장보기를 계속했다.
이후 미캉과 전골파티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한동안 상점가를 돌아다녔다.




다음날.
쉬는시간 복도를 걷던 중 창밖에서 라라의 손에 이끌려 교사를 걷고 있는 리토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있을 야미에게 전골파티 권유를 하러 가는거겠지.
나도 슬슬 다른 친구들에게도 권유해볼까 싶어서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료스케씨...}

"이 목소리는, 오시즈?"

주위를 둘러봤지만 오시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갸웃하고 있는데 오른쪽 벽을 통과하며 오시즈가 상반신이 드러냈다.

"오래간만이네요 료스케씨~"

"...아, 잘지냈어 오시즈?"

깜짝이야.
벽을 빠져나온 오시즈의 양옆으론 도깨비불이 떠오른 채 일렁이고 있었다.
벽에서 불쑥 나타나다니...
상식을 벗어난 이동 방법이 과연 유령답다고 해야하나? 솔직히 조금 놀랐다.
하지만 을씨년스럽게 울리던 목소리가 지금은 평범한 목소리에 가까워진걸 보면 보통으로 사람과 대화를 하는 방법에는 점점 익숙해져 가는듯 했다.

"그런데 복도에서 만날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아, 양호실에서 미카도 선생님께 상담을 하고 오는 중이었거든요."

"양호실에?"

"네. 어떻게든 실체가 되고 싶어서..."

오시즈는 내가 미카도 선생님에 대해 언급했던걸 떠올리곤 최근 미카도 선생님을 방문하는 중이라고 한다.
구교사에서 지내는것이 왠지 적막하게 느껴져서 요즘에는 상담이 끝난 뒤엔 학교 건물들을 배회하며 지낸다고 한다.

"잘못하다 사람들을 만나면 놀래킬지도 모르는데, 혹시 마주치진 않았어?"

"그게...마주치긴 했는데 이상한 반응들이었어요."

"이상한?"

"네. 그러니까...「힘든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상담해줘.」「미안. 내가 힘이 모자라서...」라고...
어쩐지 걱정해주는 얼굴들이었어요."

...세상은 참 소녀들에게 훈훈하네요.

뭐, 그 일은 넘어가고...그 때 이후로 지금껏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오시즈와 한동안 잡담을 했다.
예전에 폐를 끼쳤던 하루나에게 사과했던 일을 들어보건데 하루나도 예전에 비해선 오시즈를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오시즈에겐 결과적으로 좋게 일이 풀렸으니, 그 때의 일은 나쁜일만 있었던건 아니었네...
한동안 속이 좀 쓰렸지만 이번 일은 나로서도 기쁘니까.
미카도 선생님이 문제를 해결해주실때까지 당분간은 학교를 구경하고 싶다며 웃는 오시즈에게 함께 기뻐해주곤 수업시간이 가까워졌기에 이만 교실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미캉이랑 얘기해봤는데 전골파티에 다른 친구들을 더 초대하면 즐겁지 않을까?"

"응 그게 재밌겠네~ 그럼 하루나짱이랑 리사랑 미오랑 유이에게 얘기해볼께.
야미짱도 더 즐거워 하겠지 리토?"

"으, 으응...! 그, 그렇네!"

쉬는시간에 라라와 리토에게 전골파티에 대해서 의견을 구하자 흔쾌히 동의를 얻었다.
그나저나 리토는 하루나가 온다고 하니까 정말 기쁜듯 하네. 표정으로 다 드러나고.
아...갑자기 얼굴이 빨개져선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뭔가 야한 망상이라도 한건가?
수영복 차림의 하루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지는 리토니까 어떤 생각을 한건진 모르지만.

약간은 뻣뻣해진 동작으로 하루나에게 다가가는 리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연하다고 할까, 하루나는 얇게 미소지으며 리토의 권유를 승낙했다.
코테가와랑 리사와 미오도 흔쾌히 수락했고. 뭐, 셋다 야미를 귀엽게 생각하니까.
마주보며 작은소리로 속닥이는 리사랑 미오의 모습을 보건데 뭔가 놀거리를 준비하는것 같았다.
보통 일상적인 즐길거리는 저 둘이 준비하곤 했으니까.
어쨌든 즐거운 시간이 될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잘먹겠습니다.」」」

"하루나 이 고기 맛있다~"

"우리집 근처 정육점에서 사왔어. 가격도 저렴해."

"좋은 가게구나~"

금요일 저녁. 리토네 집 거실에 앉아 전골요리를 먹으며 떠들썩한 식사시간을 가졌다.
정원에선 집채만한 우주식물 셀린이 6장의 꽃입 사이의 암술 위치에 난 입술로 라면을 먹고 있었다.
입술 안으로 날카로운 이빨과 혀까지 보이는데...재주도 좋게 줄기를 이용해서 젓가락질까지 하는 묘기를 보이고 있었다.
셀린이 나중에는 귀여운 아기로 바뀌는 것도 대단하지만, 저 식사 장면은 저것 나름대로 진귀한 장면이었다.
내가 우주의 신비에 눈뜨는것관 별개로, 하루나와 즐겁게 전골 이야기를 하는 라라처럼 야미도 전골요리가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것 같았다.

"...지구의 음식은 맛있군요..."

"야미짱은 어떤 음식을 먹어?"

오물거리며 전골을 먹는 야미의 모습에 미캉이 문득 떠오른듯 물었다.
설마하지만...아직도 삼시 세끼 붕어빵으로만 때우는 건 아니겠지?

"붕어빵..."

"에!?"

진짜였냐...

"음식에 특별한 조건은 없습니다."

"아니...조금 더 특별한 것이 좋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야미에게 미캉이 난처해하며 말했다.
나도 동감이다. 지구에 와서 처음 먹은 음식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의미깊은 음식인것도 안다.
리토와의 연결고리를 상징하면서 야미를 나타내는 아이콘의 하나로 정착된다는 것도 아는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식이 붕어빵이라니, 영양 섭취는 대체 어떡하라고?
설마 이것도 「우주인이라 괜찮아요」로 해결되는 문제인가? 정말 그런건가?
코테가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야미에게 충고했다.

"그래 야미짱, 미캉의 말대로 앞으론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먹는게 좋다고 생각해."

코테가와의 말에 동의하는 리사와 미오의 모습에 야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예전에 아키츠 료스케를 만날 때마다 그는 항상 단팥빵만 먹고 있었습니다만...
가끔은 제가 붕어빵을 먹고 있을때 옆에 앉아서 단팥빵을 권한 적도 있습니다."

「「「......」」」

...도라○몽 취급받았을때 얘기로군요.
반장난으로 건네받은 단팥빵이었지만 여자애들한테 받은걸 버린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으니,
결국 한동안은 삼시세끼 단팥빵만 먹고 지내는 지경이 되었다.
그나마 붕어빵 먹던 야미에게 별식으로 단팥빵을 나눠주었기에 보름만에 다 먹을수 있었지만...
덕분에 한동안은 단팥빵만 봐도 신물이 날것 같았다.

아무튼, 순간적으로 쏠린 친구들의 시선에 어색하게 젓가락질을 계속했다.

"...어, 음...그러니까...
전골 참 맛있네. 아, 아하하..."

야미의 편식을 내 탓으로 돌리지 말아줘.
...아주 조금은 내 탓도 있겠지만.
전골을 집으며 뻣뻣하게 움직이는 내 모습에 코테가와의 피식거리는 웃음소리를 시작으로 하나둘 키득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얌전한 하루나 마저도 「풋...」하는 소리를 내면서 입을 가리고 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리사와 미오가 다시금 야미를 설득했다.

"아키츠군처럼 편식하면 안돼~ 야미짱.
그렇게 먹다간 피부 미용에 안좋다구?
봐봐, 수염이 덕지덕지 나서 보기 흉하잖아?"

"맞어맞어. 부시시한 얼굴이 되버린다구~!"

딱히 내 피부는 나쁘진 않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살짝 윙크를 하는 리사와 미오의 모습에 야미의 설득을 위해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다.

"골고루 먹으면 라라찌나 코테가와처럼 가슴도 커질지 몰라?"

"네?"

"무, 무슨말을 하는거야 모미오카씨!"

리사의 말에 코테가와는 당황해서 새된 소리를 내었다.
잡고있던 수저를 놓친채 멍하게 있던 야미는 붉어진 얼굴을 내저었다.

"저...저는 그런거에 관심없습니다."

약간 토라진듯 고개를 돌리는 야미의 모습은 어쩐지 새침 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미로서는 거북한 주제였나보다.
사내 아이들도 있는 자리에서 그런 얘길 꺼내는 리사랑 미오가 대담한건지도 모르지만.



조금 혼란스러웠던 식사가 끝나고 목욕탕을 사용할 순서를 정했다.
원래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기에 목욕은 계획에 없었지만,
내일은 학교에 가지 않으니 기왕 놀러온거 파자마 파티를 하자고 라라가 제안했기 때문이다.
라라의 말에 미캉도 기꺼운듯 말했다.

"옷이라면 저나 라라 언니의 옷도 있어요.
료스케 오빠라면 아빠 옷이 있으니까 아마도 괜찮을꺼에요.
게다가 전 야미랑 더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그래~ 이런 때야말로 친목 도모할 절호의 기회라고!"

"야미야미도 물론 찬성이겠지?"

야미와 어깨를 맞추며 즐거운 표정을 하는 미캉의 모습에 리사랑 미오도 기쁘게 동의했다.
머뭇거리던 하루나의 경우엔 리토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곤 조금 기쁜듯한 모습으로 승낙했고.
사랑하는 아가씨니까 좋아하는 사내아이의 집에 머무는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겠지.
코테가와도 다른 친구들의 반응에 약간 고민하다가 집에 연락을 드린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하루나도 코테가와의 뒤를 이어 휴대폰을 손에 들고 일어나 복도 한쪽으로 갔다.
둘이 집에 연락을 하는 동안 어느덧 대화는 목욕 순서를 정하는 쪽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다함께 들어가는게 어떠냐는 라라의 제안에 놀란 미캉이 걱정했다.

"에!? 함께 목욕이라니?
그러기엔 목욕탕이 좁아서 무리야 라라언니."

"괜찮아! 「공간왜곡장치」로 공간을 넓히면 돼!
그정도의 기계라면 금방되니까~"

과연...발상의 스케일이 다르다.
식은 죽 먹은 느낌으로, 목욕탕에 함께 들어가기 위해 공간왜곡장치를 만들다니...
엉뚱하지만 확실히 엄청난 아가씨로군요 라라양.

라라에 대해서 황당함과 감탄이 반반 섞인 감상을 가지고 있을때 갑자기 복도 끝에 서있던 코테가와의 외침이 들렸다.

"아, 아니야!"

응?
당황한듯한 코테가와의 목소리에 의아해하며 코테가와를 바라보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코테가와는 황급히 목소리를 죽였다.
휴대폰 너머로는 왠지 유쾌한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머, 그러니? 난 또 료짱네 집인줄 알았지.」

이건 코테가와의 어머니 목소리인가?
근데 료짱? ...아, 나였던가?
그러고보니 그렇게 부르신적이 있었지.
코테가와네 오빠는 유짱, 나는 료짱.
친근하게 느껴지는 호칭에 살짝 웃음이 나왔지만...그런데 어째서 거기서 제가 나오나요 어머님?

"(어째서 거기서 아키츠군 얘기가 나오는거야?)"

「하지만 유이짱~ 저번에 아키츠군 전화 받고선 수영장에 갔다가 하룻밤 자고 왔었잖아?」

"(그땐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있다고 말했었잖아?)"

「어라, 그랬나?」

"(그렇다니까. 어쨌든 오늘은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테니까... 이만 끊을께.)"

「아, 유짱한텐 비밀로 해줄께-」

"그런거 아니라니까!"

딸깍-

그대로 휴대폰을 닫아버리곤 볼을 살짝 부풀린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곤 코테가와는 「정말...」이라는 한마디를 내뱉곤 한숨을 쉬었다.
진절머리 나는듯 머리를 홰홰 돌리다가 멍하니 지켜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 코테가와는 금새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별거 아니야. 자고 오는 일은 드물었으니까 조금 걱정을 받았을 뿐이니까.
그나저나 사이렌지는 허락 받았어?"

"응, 언니가 친구들이랑 재밌게 보내라고..."

은근슬쩍 하루나에게 물어보는걸로 코테가와는 화제를 바꿨다.
언니라...그러고보면 하루나는 언니(사이렌지 아키호)랑 단 둘이서 지내고 있었지?
나중에 가면 하루나의 언니와 코테가와의 오빠가 만나기도 하던데 어떻게 될라나 몰라.
잘만 된다면 코테가와랑 하루나의 사이가 경사스러운 관계가 될지도 모르니까 개인적으론 응원하고 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라라의 공간왜곡장치가 완성되었다.
빨라!? 정말 식은 죽 먹을 시간도 안걸렸네...
손바닥 만한 반구형 기계를 들고 싱글벙글 하며 라라가 일어섰다.

"그럼 이제 다들 목욕하러 가자~
...아, 그전에 식기 정리부터 해야지?"

깜빡 잊었다는듯 손으로 입을 가리는 라라의 모습에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그러지말고 다들 욕실로 들어가.
뒷정리는 내가 할테니까."

"에? 료스케가?"

"안돼요. 료스케 오빤 손님이잖아요?"

놀라는 라라와 미캉이 만류해왔다.

"어차피 나랑 유우키는 너희들이 씻고나서 욕실에 들어갈테니까 그동안 식기를 정리해두면 돼.
그리고 자취하면서 설거지 한두번 해본것도 아니니까 딱히 불편해할 것도 없다구."

"그래도..."

"괜찮다니까?"

가벼운 설전이 오가고 난 뒤, 밀어붙이기 식의 내 주장이 받아들여져 여자애들은 목욕탕으로 향했다.
나와 리토는 식기들을 부엌으로 옮긴뒤 설거지를 위해 고무장갑을 찾았는데...

"...한 켤레 밖에 없네?"

"...그러게?"

나와 리토 둘이서 식기를 씻기엔 조금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미캉에게 혹시 여분의 장갑이 있나 물어보고 싶지만 이미 욕실에 들어간 뒤고,
싱크대의 서랍들을 뒤져봤지만 여분 장갑 같은건 없어 보였다.
이리저리 찬장을 뒤지는 내모습을 보던 리토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일을 나눠서 하는게 어때?
여자애들이 씻는동안 난 자고 갈 빈방을 청소하고 있을께."

"응. 그게 좋겠네.
그럼 설거지는 내게 맡겨~!
아, 기왕이면 내가 입을 파자마도 한번 찾아 봐줘."

"기억하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청소하면서 아버지 파자마도 찾아볼테니까.
그럼 난 2층에 올라가볼께."

말을 마치고 리토는 방정리를 위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도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들을 차례로 씻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식기를 씻어 건조대에 올려놓는 작업을 반복했다.
마무리로 테이블을 닦기 위해서 한차례 행주를 씻었다.
리토는 아직 2층에서 방정리 중인건가?
행주로 테이블을 닦으며 설거지를 마무리하려는데 갑자기 목욕탕 쪽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구우웅-!
우당탕!

「꺄악!」
「엄마야?!」

"뭐, 뭐야?"

욕실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소리와 심상치 않은 진동음, 그리고 여자아이들의 비명에 놀라서 욕실로 향했다.
거실에서 욕실로 가는 세면실 문을 열자 좌측에 수건비치대와 세면대, 우측에 세탁기가 놓여져 있었다.
(리토 집 욕실 구조는 [거실]▷[세면실]▷[목욕탕] 의 2중 구조로 되어 있다.)
세면실 중앙의 맞은편에는 욕실 문이 있었는데, 문 손잡이 위에는 방금전 라라가 발명한 반구형의 공간왜곡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욕실 문 건너편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졌기에 걱정되어 욕실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물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간다는 파렴치한 짓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욕실문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보일러가 꺼졌다든가 문제가 생겨서 응급처치나 구급품이 필요하다든가 하는건 아닌지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

"이상하네? 어째서 갑자기 목욕탕이 원래대로 된거지?"

벌컥-

거침없이 안쪽으로 활짝 열린 목욕탕 문 앞에선 발가벗은 라라가 문고리를 잡아 당긴채 서있었다.
새하얀 피부가 망막을 가득 채우는 장면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채로 굳어버렸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채 피부에 달라붙은 핑크빛 머리카락.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들이 몸을 따라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매끄럽게 흘러내렸다.
흐르던 물방울이 배꼽에 고였다가 또르륵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에 홀린듯 시선을 내리다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어라? 료스케?"

날 보고서도 고개를 갸웃할 뿐 몸을 가리는 행동조차 취하지 않는 라라.
때 뭍지 않은 아이같은 무방비함이 내 죄악감을 부추기고 있었다.
의아해하던 라라는 다시금 할 일을 떠올렸는지 내게서 시선을 때곤 몸을 숙여 욕실문에 붙은 공간왜곡장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라라의 몸이 숙여지면서 자연스레 목욕탕 내부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욕조안에서 코테가와의 가슴을 찌르고 있던 리사.
하루나의 등뒤에 붙어서 하루나의 가슴을 양손으로 받치며 희롱하던 미오.
욕조 밖에서 미캉의 등을 밀어주는 야미.
야미에게 등을 맡긴채 욕실 스툴(목욕 의자)에 앉아 있던 미캉.
목욕이 끝나갈 즈음이었는지 소녀들은 피부를 가려줄 비누거품조차 없이 적나라하게 알몸을 드러낸 상태였다.

초여름은 벌써 한참 전에 지나갔는데 말이지.
이렇게나 앵두가 한가득...

아하하 이녀석 아하하.

황급히 몸을 가리곤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소녀들의 시선에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어, 어째서 이곳에?"

창백해진채 물어오는 소녀들의 물음에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억지로 굴려 말을 꺼냈다.

"그...혹시 다치진 않았나 걱정이 되서...
아, 아하하..."

"변론은 그게 전부입니까?"

위아래를 감싼채 머리카락을 천천히 떠올리는 야미의 모습에 꿀꺽 군침을 삼켰다.
욕실을 가득메운 금빛 실타래는 어느새 주먹, 철퇴, 용의 머리로 바뀌어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쬐는 빛으로 절묘하게 음영이 드리운 무표정한 얼굴로 야미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상냥하게 부탁해..."

"...거절합니다!"

부끄러운듯 몸을 배배 꼬는 내 모습에 야미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곤 외쳤다.
「어라? 어째서 장치가 꺼져 있었던거지?」라는 라라의 말을 들으며 다가오는 심판 앞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페케가 리토를 도와 잠자리를 준비해줬기에 방정리와 함께 숙박 준비도 완료된 것 같았다.
모두들 목욕이 끝나고 파자마 차림으로 갈아 입은 뒤 거실에 모이기로 했다.
나도 리토가 건네준 사이바이씨의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고.
아직은 약간 얼얼한 볼을 매만지며 거실 바닥에 앉아 있으려니 여자애들이 방에서 나오는게 보였다.
리토네 어머니(유우키 링고) 파자마까지 꺼낸건지 다행히 파자마 수는 모자라지 않은듯 했다.
서로의 파자마 차림을 보며 즐거운듯 이야기 하던 소녀들은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들 바닥에 앉자 리사와 미오가 우리에게 쪽지와 필기구를 나눠주었다.
아마도 뭔가 놀거리를 생각해 온 것 같았다.

"그럼 받은 쪽지들에 신체 부위 3가지, 행동 3가지를 적어서 라라에게 건네줘."

주술목 게임이라도 하려는걸까?
인원수가 적으니까 1인당 선택지를 늘인것 같았다.
어떤걸 적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쪽지에 옮겨 적었다.

「머리카락」「빗어준다」
「코」「쥔다」
「배꼽」「약손」

쪽지를 라라에게 건네주자 라라는 작은 스크린이 달린 네모난 금속 함에 쪽지를 집어 넣었다.
그새 또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었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모습을 보고 라라가 웃으며 알려줬다.

"아, 이건 받은 단어를 적당히 조합해서 말이 통하는 문장으로 만들어 내는 장치야.
「혀로 팔굽혀펴기한다」같은 이상한 말이 안나오게 조합해주는 용도로 만들었거든~"

"오~그거 굉장한데?
그 짧은 시간만에 이런걸 만들었다니, 솔직히 놀랬어.
즐거운 게임이 될것 같은걸?"

"에헤헤~"

조금은 호들갑스러운 내 반응에 라라는 멋쩍은 표정으로 기계를 만지작 거렸다.
라라로서는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 약간 쑥쓰러운것 같았다.
쪽지함을 보며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리토를 보았다.
라라의 재능을 병기개발에 쓰려는 다른 약혼자들과 달리 악의가 없는 리토의 태도를 좋아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리토도 라라의 발명품에 조금은 긍정적인 관심을 가져준다면 라라도 기뻐할텐데 말이지.
뭐, 라라가 가장 기뻐할 일은 리토가 라라에게 정식으로 고백하는거겠지만 하하하.

여튼, 쪽지가 전부 쪽지함에 들어가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위이잉.


- 사와다 미오가 야미의 어깨를 주무른다.

조금 걱정했던것과 달린 건전한 내용의 문장이 만들어져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리사가 푸념을 했다.

"아아~ 어째서 가슴이 안걸린거야~"

적었냐 그걸!?

"야미야미는 어깨도 부드럽네~"

어처구니 없어하는 나와 별개로 미오는 즐거운듯 야미의 뒤에서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가만히 앉아서 마사지를 받는 야미에게 미오가 웃으며 물었다.

"저기 말야~ 가슴을 만져주면 커진다는데 야미야미도 어때?"

"...거절합니다."

"에에~ 유감~"

마사지가 끝나고 미오가 자리에 앉자 다음 추첨이 계속 되었다.


- 아키츠 료스케가 라라 사타린 데빌루크의 머리카락을 빗어준다.

"...어라?"

내 쪽지가 걸렸네...
그것도 목적어랑 서술어 한세트로.
조금 신기해하며 일어나 라라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료스케가 빗어주는거야?"

"그렇게 됐네. 혹시 빗 있어?"

"제가 가져올께요 료스케 오빠."

미캉이 일어나 세면실에서 빗을 가져다 주었다.
덤으로 머리끈도 건네주었는데...본격적으로 하란 얘긴가?
빗과 머리끈을 건네받곤 라라의 뒤에 앉자 라라가 말을 건네왔다.

"으응~그러고보면 데빌루크에 있을땐 시녀들이 빗어줬는데 지구에 와선 남이 해준 적은 없었네.
예쁘게 빗어줘 료스케~"

"아하하...그렇게 능숙하진 않겠지만 노력해볼께."

조심스레 라라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받치곤 빗으로 빗겨 주었다.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에서 사라락 하는 기분좋은 소리가 들렸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장발이라서 혹시 빗겨주다가 엉키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말이지 비단처럼 부드럽네...
얌전히 앉아 기분이 좋은듯 콧노래를 부르는 라라의 모습에 내심 안심하며 빗질을 계속했다.
그런데 빗질도 거의 다 끝나갈 때 즈음 리사가 뭔가 불만인듯 야유를 해왔다.

"에에~ 그걸로 끝이야?
이대로 끝내면 시시하니까 뭐라도 좀 해보라구 아키츠군~!"

조금은 시끌벅적한 게임 진행을 기대했었는지 리사는 김이 샌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머리 빗는데 무슨 재미를 추구한다고 그래?
어쩐다...
아, 머리끈.
문득 떠오른 생각에 라라에게 물었다.

"저기, 라라. 괜찮다면 네 머릴 한번 묶어봐도 될까?"

"응? 괜찮아 료스케."

"그럼 조금 실례할께."

라라의 허락을 받고 라라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서 올린다.
가마 부분까지 틀어올린 머리카락을 머리끈을 이용해서 하나로 묶고나서 손을 떼었다.

"쨘~ 포니테일 완성!"

포니테일로 묶은 뒷머리는 자화자찬일진 몰라도 꽤나 잘 어울렸다.
귀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가슴까지 내려오고 있었고
모아진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흰 목덜미는 건강미 넘치는 느낌을 주었다.
하루나나 다른 친구들도 호의적인 반응으로 머리 스타일을 평가해주었다.

"잘어울리는데 라라?"

"평소랑 다른 느낌이 정말 예뻐 라라찌~"

"아하하~ 그래? 고마워 료스케~"

"으응...천만에. 나야말로 드문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까 감사할 따름이야."

여자애 머릴 빗어주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으니.
조금 설렌 채로 제자리에 앉자 다시금 기계음과 함께 추첨이 시작되었다.


- 유우키 리토가 코테가와 유이의 발바닥을 약손...정정합니다. 쓰다듬는다.

...저건 내꺼네.
「내손은 약손이다」라는 표현은 쓰임새가 한정되서 안좋았으려나?
그나저나 근처에서 리사가 분한듯한 표정을 짓는걸 보니 뭔가 발바닥과 조합할 행동이 따로 있었나보다.
아마도 건전한건 아닐테니까 신경쓰지 않는게 정신건강에 좋을 듯 했다.
남자애한테 발을 매만져지는 경험을 한 코테가와는 부끄러운듯 조금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후로 몇번의 추첨이 이어졌다.

「사이렌지 하루나가 모미오카 리사의 가슴을 쥔다.」라는 공수 역전의 문장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시행하는 하루나 쪽이 더 부끄러워 하는것 같았지만.
그리고 다시금 내 차례가 돌아왔다.


- 야미가 아키츠 료스케와 코를 맞댄다.

...이건 또 무슨 단어의 조합인거냐.
일어나서 아이들이 둘러앉은 원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야미도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잘 부탁드리죠 아키츠 료스케."

"어...으응."

내 앞에서서 날 올려다 보는 야미를 보다가 시선을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저기, 얼마정도 맞대고 있으면 돼?"

"더도 말고 딱 1분."

미오의 말에 수긍하곤 야미를 내려다 보았다.
차분히 서있는 야미의 모습에 살짝 목덜미를 긁적이곤 야미의 양어깨에 손을 짚었다.
순간 약하게 어깨가 떨린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떨림은 가라앉았다.
나를 응시하는 야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조금씩 가까워져가는 야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몸을 숙이고 있는데 내 얼굴을 작은 손바닥이 감싸왔다.

"야미?"

"혹시나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잡아두겠습니다."

따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지만요.
야미의 행동에 딱히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상황이 묘한것 같았다.
마주보고 서있는 야미의 어깨를 잡고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하는 나.
내 양뺨에 손을 얹고서 고개를 들어 나와 얼굴을 맞대려는 야미.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만큼 거리가 가까워지며 가만히 응시하는 상황.
...어쩐지 키스하는 장면처럼 느껴지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건 아닌지 리사와 미오는 꺅-꺅- 거리면서 법석을 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나와 코테가와, 미캉도 약간 얼굴이 붉어진채 바라보고 있었고.
리토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돌리고 있고...
힐끗 곁눈질을 하던 도중 뺨을 눌러오는 손바닥에 야미를 바라보았다.
살짝 눈살을 찌푸린 야미는 조용히 말했다.

"어딜 보고 있는겁니까?
이쪽을 향하십시오."

"아...그래."

나를 향한 야미의 진홍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다시금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점점 가까워져 마침내 코가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살짝 벌어진 야미의 입술 사이로 얕게 내쉬어진 한숨이 얼굴을 간질었다.
숨결에서 느껴지는 묘한 근지러움에 긴장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뜨겁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미, 미안..."

약간 얼굴이 상기된 야미에게 사과하곤 침을 삼켰다.
야미의 오똑한 코가 내 코에 닿으며 살짝 누르는 느낌을 주고 멈췄다.
작게 들려오는 호흡소리와 숨결로 살짝 달아오른 공기에 조금씩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입술이 닿을것만 같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진홍빛 눈동자는 빨려들어갈 만큼 깊게 느껴졌다.
뺨을 잡은 야미의 손가락이 조금씩 꼼지락 거리자 무심코 야미의 작은 어깨를 움켜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던 찰나 미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1분 지났습니다~!
둘다 이만 자리에 앉아도 좋아."

"...아? 아아, 그래."

"...수고하셨습니다."

어느새 내 뺨에서 손을 뗀 야미의 모습에 나도 야미의 어깨에 올려진 손을 내려놓았다.
가슴을 쓸어내리곤 자리에 앉아 크게 숨을 내쉬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1분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구나.
가슴에 손을 얹은 날 발견하곤 리사가 풋-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하하~! 아키츠군 얼굴이 새빨개졌어!"

"아키츠군도 의외로 숙맥이네~"

"너희들이 내 입장이 되보면 그런 소리 못한다구..."

정말이지 키스하기 직전의 거리였단 말야.
뜨거운 숨이 닿았던 방금전 상황을 떠올리며 몰래 손가락으로 입술을 한차례 매만지다가 야미와 눈이 마주쳤다.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는 야미의 시선에 어색하게 눈인사를 하자
야미는 가만히 날 따라하듯 입가로 오른손을 가져가 오른손 검지로 아랫 입술을 살며시 눌렀다.
살짝 눌러진 입술이 말랑말랑할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망상에 빠진 스스로가 부끄러워져 입술에 가져댔던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이후 몇번의 추첨이 돌아가며 해프닝들이 연출되었다.
리토가 하루나에게 목마를 해주다가 넘어져서 쓰러진 리토의 얼굴이 하루나의 가랑이에 파뭍혀 하루나가 비명을 지르며 따귀를 날렸다든가,
라라에게 무릎 베개를 받고서 얼굴이 확 붉어진 야미를 리사와 미오가 깔깔거리며 놀리거나,
코테가와가 미오의 엉덩이를 쓰다듬는다라는 문장이 나와서 코테가와가 곤욕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금 나의 차례가 되었다.


- 아키츠 료스케가 유우키 미캉의 배꼽을 핥는다.

"잠깐만!?"

기겁해서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경악한채 일어선 날 보던 리사가 낄낄대며 말했다.

"오오~! 이거 생각보다 더 굉장한게 나왔잖아?"

...생각보다? 뭔뜻이냐 리사?

"원래는 「발바닥을 핥는다」를 예상했는데 말이지~"

...아까전에 발바닥만 나왔을 때 아쉬워한게 이것 때문이었군.
미캉을 바라보니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당황스럽지? 나도 그래.
배꼽 핥기라니...매니악하기 그지없는 플레이다.
게다가 알고 지내는 초등학생 여자애한테 그걸 하라니...변태가 따로 없다고.

"그, 그럼..."

"잠깐 미캉!? 멈춰! 타임!"

"료스케 오빠?"

머뭇거리면서 상의 아래를 조금 들어 배꼽을 내보이려는 미캉의 모습에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당황한 내 모습에 리사와 미오는 재밌어하며 부추겼다.

"어서 하라구 아키츠군. 하지 않으면 벌칙이 있다구~?"

"그냥 벌칙을 받을께..."

"에에~ 아키츠군. 하지 않는거야?"

"그런짓, 할수 있을꺼 같아?"

"우우~ 재미없어~!"

야유하는 미오의 반응은 무시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이건 틀림없는 아웃.
게다가 미캉의 오빠인 리토도 있다고.
자기 눈앞에서 여동생한테 그런 짓 하는 걸 용납할 오빠가 있을거 같으냐?
그냥 벌칙을 받고 말지.

"그럼 아키츠군, 벗어줘~"

"...어?"

"벌칙이야. 명령을 실행하지 못할 경우엔 한벌씩 옷을 벗는거라구~"

주술목 게임에 덧붙여 탈의 게임인거냐...
다른 선택지는 재고의 가치도 없었기에 순순히 파자마 상의를 벗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을까...
게임은 어느새 파렴치함을 점점 더해갔다.
도중에「코테가와의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는 선택지가 걸린 뒤,
째려보는 코테가와의 시선을 받고선 또다시 벌칙 받기를 선택해 버렸고.
바지를 벗고나서야 '그냥 소매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어쩔수 없나.

파렴치한 선택지를 피하기 위해서 내쪽이 속옷만 입은 파렴치한 모습으로 되어버리자 몇몇 아이들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라라야 알몸에 거리낌이 없었기에 딱히 시선을 돌리거나 하진 않았고
리사랑 미오의 경우엔 오히려 노골적으로 날 바라봐서 부끄러운 나머지 은근슬쩍 손으로 몸을 가리기도 했다.



한동안 진행되던 게임도 시간이 많이 흘러 끝내기로 했다.
다행히 팬티 한장을 남긴채 벌칙 방어에 성공해 한숨을 쉬고 다시 파자마로 갈아 입었다.
이미 보여줄건 거의 다 보여준것 같아서 수치심도 뭣도 안 남은것 같지만...

숙박은 여자애들의 경우 미캉과 라라의 방에 나눠서 자기로 했다.
라라의 방엔 하루나와 라라, 리사랑 미오가, 미캉의 방에는 미캉과 야미와 코테가와가 자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리토의 방엔 나와 리토 둘이서 자게 되었고.

"그럼, 잘자 아키츠."

"응. 유우키도 좋은 꿈 꾸라구."

리토의 침대에 함께 누워 눈을 감았다.
친구랑 같이 자는 경험은 오랜만이구나.
어색하지만 조금은 기뻤기에 약간 미소지으며 잠에 들었다.



뭉클...



...?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촉에 눈을 뜨자 내쪽을 향해 리토가 돌아누운채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내몸에 걸쳐진 리토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리토의 손이 내 파자마 바지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있었다.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워하는데 「으음...」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리토의 손가락이 내 바지를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뭐, 뭐하는거냐 리토!?

"음...맛있을거 같은 마시멜로..."

마시멜로가 아냐!
뭐야 이 파렴치한 손놀림은...!
엉덩이에 파고든 손가락이 점점 가랑이 안쪽을 향하자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대, 대체 어딜 만지는거야!? 적당히 하라고!

침대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마시멜로를 찾아 침대위로 손을 더듬거리는 리토를 보았다.
꼼지락 거리면서 침대를 만지는 리토의 손놀림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곤 리토에게 사과했다.

미안 리토...
내가 널 과소평가 하고 있었어.
평소의 순진함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너의 손놀림과 망상만큼은 파렴치했다는걸...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서 자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끼이익 소리가 나며 리토의 방문이 열렸다.
놀라서 문쪽을 바라보니 반쯤 눈이 감긴채로 꾸벅꾸벅 졸면서 라라가 침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몽유병처럼 다가와 리토의 침대로 올라온 라라는 리토를 껴안은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리토오~♡"

리토를 부르며 그대로 골아 떨어진 라라를 침대구석에 쭈그리고 앉은상태로 가만히 지켜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둘의 사이에 끼어서 자는건 도저히 못할 짓이지...
잠결에 라라의 꼬리에 손을 뻗어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리토와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한 라라를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리토의 방을 나왔다.
...둘을 배려해주는것 이전에 여기 있다간 정신이 못버틸것 같았다.
밤새도록 이상한 잠꼬대와 신음소리를 듣고 태평하게 잘만큼 내 신경이 굵진 않다고.

별수 없이 1층으로 내려가 거실의 소파에 드러누워 눈을 붙이기로 했다.
초가을이라 조금 쌀쌀한 느낌이 들지만...이불을 가지러 리토의 방에 되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고,
몸도 튼튼하니까 이정도는 괜찮겠지.
천천히 잠기운이 돌며 몽롱해지는걸 느끼곤 소파에 누운채 다시금 잠에 빠졌다.




흔들흔들...

"아키츠군?"

"...으응...?"

어깨를 잡고 흔드는 누군가의 손길에 눈을 떠보니 코테가와가 고개를 숙인채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코테가와?"

"어째서 이런 시간에 여기서 자고 있는건가요?
유우키군의 방에서 자는거 아니었어요?"

의아한 얼굴로 묻는 코테가와를 보곤 한차례 하품을 하곤 답했다.

"아함...도중에 라라가 리토의 침대위로 올라와서 말이지.
그...왠지 그 방에 있기 힘들어 졌달까. 분위기를 읽었다고 할까..."

한손으로 허리를 매만지면서 하품을 하는 나에게 코테가와는 한숨을 쉬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저희 방에서 자도록 해요. 바닥에서 잘 공간은 있으니까."

"아니, 난 여기서 자도 괜찮은데?"

"이런데서 이불도 없이 자면 몸에 안좋다구요.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말고 방에 올라가 있어요."

"어, 응."

내 손을 잡고 억지로 날 일으켜 세운 코테가와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코테가와는 물이라도 마시려 내려온거야?"

"조금 손을 씻으러 나온거에요."

손을? ...아아, 화장실을 돌려 말하는 거로군.
모른척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미캉의 방으로 올라갔다.



「미캉(みかん)의 방」이라고 쓰인 하트무늬 팻말을 확인하고 조용히 미캉의 방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는 미캉이 몸을 옆으로 살짝 기울인채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평온하게 자고 있었다.
...야미는 어디있지?

이상하게 생각하며 미캉의 방안으로 한걸음 내딛자 갑자기 오른편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옆구리를 향해 휘둘려졌다.
난데없는 횡액에 급히 몸을 뒤로 젖히며 칼날면을 잡아내자 방의 오른편 귀퉁이에서 금빛 물체가 내쪽으로 튀어나왔다.
야미...!?
이번엔 변형된 손칼날을 휘둘러오는 야미의 손목을 잡고 급히 바닥에 쓰러뜨렸다.
수면상태에서 나온 무의식중의 공격이었는지 생각보다 손쉽게 야미를 제압할 수 있었다.
위에서 내리누르듯 양팔을 잡고 야미를 바닥에 눕히고 나서야 숨을 돌릴수 있었다.
수면중에도 경계상태라니, 잘 때 함부로 건들면 안되겠네...
용케도 수영장 호텔에서 숙박할 땐 문제가 없었다며 안도하고 있을때 천천히 야미의 눈이 떠졌다.

"...아키츠 료스케?"

"아. 안녕 야미, 좋은 꿈 꿨어?"

가볍게 인사한 날 보곤 야미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무슨...!?"

"쉬...조용히. 미캉이 깬다구."

몸부림치며 바닥에서 일어나려는 야미의 양팔을 잡은채 당황하며 말했다.
얌전히 자러와 놓고선 곤히 자고 있는 미캉을 깨우면 민폐일 따름이다.
멈칫하는 야미에게 다시 주의를 환기시키려 얼굴을 마주한채 속삭였다.

"(한밤중에 시끄럽게 떠들면 좋지 않잖아?
물론 나도 소란스러워 지는건 바라지 않으니까.)"

"......"

조용히 귓가에서 속삭인 내 말에 야미는 살짝 벌어졌던 입을 다물고 침묵해버렸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진홍색 눈동자로 조용히 나를 바라보던 야미는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야한 짓은, 싫습니다..."

"...으응?"

스러질듯 귀에 들려온 야미의 말에 의아해 하다가 문득 현재 상황을 되돌아 봤다.
야미를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 야미의 양팔을 속박하고 있는 나.
...누가 봐도 야한 목적으로 방에 침입한 변태로군요 이건.
흐트러진채 바닥에 넓게 퍼진 길다란 금빛 머리카락이 야미의 모습을 더 가련하게 보이게 했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 꿀꺽 침을 삼키곤 천천히 야미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빼려는데 등 뒤에서 무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키츠군?"

조용하고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목덜미가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기기긱-소리가 날 듯 삐걱거리며 억지로 고개를 돌리자 코테가와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보며 서있었다.
이마에 핏대를 세운채 코테가와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당신을 신용한 건 제 실수였나보네요."

"아니, 그게 말이지..."

"안심해요. 그렇다고 방에서 내쫓지는 않을테니까.
...그것보다 아키츠군도 이불 하나 정돈 필요하겠죠?"

왠지 초가을에는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이불을 들고서 코테가와는 생긋 미소지었다.




"...더워..."

고치처럼 두꺼운 이불에 둘둘 말려 끈으로 꽁꽁 묶인채 방 바닥에 방치되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코테가와가 베개도 함께 챙겨줬기에 머리를 공중에 붕 띄운 채로 잠자게 될 처지는 아니었지만...
밤이라 쌀쌀하다곤 해도, 막 여름이 끝난 초가을이었기에 이렇게 둘둘 말려선 그저 덥게만 느껴질 따름이다.
방금전까지 방 귀퉁이에 선채로 자던 야미는 코테가와의 말을 듣고 침대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코테가와는 침대를 사이에 두고 나와 반대편에 누웠고.
이불에 말려 덥고 갑갑한 느낌 속에 '물이라도 한모금 마시고 잘걸'하는 생각을 하며 얌전히 눈을 감았다.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 선인장도, 오아시스도 없는 황량한 사막을 정처없이 걷고 있었다.
내려쬐는 강렬한 햇살속에 타오르는 갈증을 느끼며 헐떡이던 낮이 지나고 밤이 되었다.
이상한데...분명 사막의 밤은 춥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더워...
억지로 잠에 들었는데 한밤중에 느껴진 온 몸을 짓누르는 묵직한 감촉에 눈이 떠졌다.
어째선지 하늘에서 내려온 타원형 바위가 날 짓누르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날 깔아뭉개고 있는 바위를 치우려다가 바위에 맺힌 이슬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강우량이 적은 사막에서 식물들의 귀중한 수분 공급원.
갈증에 목마른 입을 열어 바위에 맺힌 이슬을 정성스레 핥았다.

「햐악?」

...응? 기대했던 차갑고 시원한 감촉이 아닌, 따듯하고 말캉한 감촉이 혀에 느껴지며 위화감 속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이는건 얼굴을 덮은 부드럽고 새하얀 피부와 말려올라간 파자마 상의.
컥...설마?
고개를 움직여 상황을 확인하자 침대에서 떨어진 미캉이 내 얼굴에 착지한 상태였다.
미캉의 배가 내 얼굴을 가리는 형태로.
말려올라간 파자마 아래로 보이는, 움푹 파인 홈 근처에 반들거리는 액체를 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부스스한 얼굴로 미캉이 눈을 떴다.

"...료스케 오빠?"

"여...조, 좋은 아침 미캉?"

"아, 죄송해요! 지금 비킬께요."

날 깔고 있는 상황을 인식하고서 미캉은 얼굴을 붉히곤 일어났다.
일어난 미캉이 옷차림을 바로하면서 반들거리던 배꼽은 파자마 아래로 사라졌다.

"좋은 아침이에요 료스케 오빠.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그런 모습으로 있는거에요?"

"첫째로, 여기에 있는 이유는 유우키네 방 침대로 라라가 들어와서.
둘째로, 이런 모습으로 있는 이유는...목줄이랄까?"

"? 어쨌든, 이불은 이제 풀어드릴께요."

미캉은 솜씨좋게 이불을 묶고있던 끈을 풀어주었다.
갑갑한 상태에서 겨우 벗어나 한숨을 쉰 나에게 미캉이 티슈를 건네주었다.

"아, 그리고...침 흘렀어요.
고개는 똑바로 하고 자야한다구요. 료스케 오빠."

"어...고마워. 아, 아하하..."

졸면서 흘러 나온건 아니지만...
조금 죄책감을 느끼면서 받아든 화장지로 입가를 닦았다.



이후 세수를 한 뒤 주방으로 들어간 미캉의 옆에서 아침식사 준비를 도왔다.
아침에 벌어졌던 해프닝에 대해서 사과하는 의미도 있었으니까.
요리를 준비하는 도중 2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오, 오해야 사이렌지!」「꺄악!」「짜악-!」

신음소릴 내는 라라의 꼬리를 움켜쥔 리토의 모습을 하루나가 보기라도 한걸까?
리토의 방에서 들려오는 하루나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테이블을 정리했다.
역시나랄까...리토가 있고 라라가 있는 생활은 트러블이 끊이질 않는구나.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내려오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살짝 웃음짓곤 요리한 음식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오늘도 언제나 처럼 즐거운 하루가 될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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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다 새었네요...쿨럭;
다들 좋은 꿈 꾸세요~*^^*
Zzz...ㅇ<-<

(처음 나왔던 시장 콩트는 실제로 가끔 있는 일이더군요^^;)

p.s.1.리토 집의 욕실은 거실에서 세면실을 지나서 욕실로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세면실]▷[욕실]

그리고 잠자는 방을 정할 때 왜 미캉이랑 라라, 리토 방 3개 밖에 선택지가 없었던건 원작 설정이 애매해서 그랬습니다.
원작 116화에서 나나와 모모가 리토네 집에서 지내길 부탁하면서, 천장과 지붕 사이에 공간왜곡장치로 방을 만들죠.
2층 집인데...집도 큰데...왜 그냥 다른 방을 쓰지 않고 번거롭게?=_=;
게다가 다른 방은 창고로 쓰이는지, 문이 잠겨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래서 결국 이야기에선 미캉과 라라, 리토의 방만 등장시켰습니다.



p.s.2.본문에 나온 주술목의 원래 조합 몇개는 이렇습니다.

코 - 쥔다
손바닥 - 맞댄다
배꼽 - 약손
발바닥 - 핥는다

아무튼 주술목 게임이다보니 조금 매니악한 선택지도 나올수 있었지만 자중.
뭐, 매니악한 플레이로는 제이더 님의 부서진 세계 팬픽(19禁)에서 봤던 나래가 퀘이사 눈 핥는 플레이가 최고(퍽...)

도중에 라라 머리카락 빗어주기가 나온 이유는...개인적으로 보고 싶었던 머리 스타일이었기 때문(...)=x=;;



p.s.3. 관련 이미지

학교를 배회하는 오시즈

범인은 페케

라라 머리 묶음1

라라 머리 묶음2

라라 머리 묶음3

서서 잠자는 야미

미캉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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