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케이즈.
데빌루크에 대항하는 우주 마피아 'SOLGAM'의 일원이다.
살인청부, 불법무기제조 등 실질적인 모든 범죄에는 모두 우리가 관련되어 있을 만큼 거대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은하에서 이름 높은 의사, 닥터 미카도의 행적을 찾고선 보스의 명을 받아 닥터 미카도를 데려오고자 부하들과 함께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 지구로 파견되었다.
닥터 미카도의 의학 기술을 이용한다면, 생체 강화수술로 상식을 넘은 능력을 가지는 최강의 병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병사들이 우리 조직의 상품으로 우주에 나돌면 데빌루크가 통일한 이 우주를 다시 전란의 세상에 되돌리는 일도 꿈이 아니지.

지구에 도착한 뒤 6명의 수하들과 함께 며칠간 닥터 미카도의 행동을 관찰하고선 헛웃음만 지었다.
은하 제일의 의학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겨우 젖내나는 꼬맹이들의 생채기 따위나 돌보고 있다니.
너의 쓰임새는 그런 하찮은 게 아니야 닥터 미카도.
우리 'SOLGAM'이라면 너의 능력으로 우주를 혼돈의 도가니로 되돌릴 수 있단 말이다.
이제 그만 너의 소꿉장난도 끝날 시간이다.
금색의 어둠과 데빌루크의 왕녀만 조심한다면 이런 미개한 행성에서 우릴 방해할 녀석 따윈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게스텔이 배신했다.

네즈란과 함께 여학생 납치 임무를 수행하던 중, 갑자기 동행한 네즈란을 공격한 것 같다고 한다.
게스텔, 네즈란과는 별도로 미카도 감시역으로서 맞은편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덱스터와 베르난도의 보고였다.
미카도를 감시하던중 갑자기 학교 한쪽에서 큰 굉음이 들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더니
그곳에는 거대하게 함몰된 복도 벽에 파묻혀 정신을 잃은 네즈란의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긴급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게스텔은 납치하려던 여학생을 내버려둔 채 그 자리에 멈춰서 가만히 네즈란을 내려다보았다고 했다.
덱스터가 당황하며 게스텔에게 통신을 보냈지만 게스텔은 통신을 연결하려는 행동도 보이지 않은 채 어리둥절해하는 여학생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굉음에 놀란 학생들이 복도로 모여들기 시작하고 닥터 미카도조차 양호실을 벗어나는 바람에 애초의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건너편 옥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대기상태로 미카도를 감시하던 덱스터와 베르난도로서는 기절한 네즈란을 데려올 여력이 되지 않았다.
결국, 기절한 네즈란은 데려올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게스텔과 네즈란을 내버려둔 채 임시 거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덱스터와 베르난도였다.
징후조차 없었던 게스텔의 배반으로 「인질을 이용해 닥터 미카도를 회유한다」는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게스텔 녀석...여자를 밝히는 놈이었는데, 설마하니 납치할 여학생과 눈이 맞은 건 아니겠지?
여자에게 홀려 임무를 망각할 정도로 글러 먹은 녀석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찌 됐건...조직을 배신한 대가는 무섭다 게스텔.
저 세상에서조차 후회하게 해주마.
솟아오르는 분노를 눌러담고 남은 부하 넷과 함께 다음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밤이 찾아왔다.




...뭐냐.

{...아...아...아...}
{...롭다...괴...롭...}
{...워...추워...}
{나...살...고...싶...어...다시...!}
{외...로워...누...군가...}


뭐냐고 이건...

{...즈...님?}
{아아...케이...님...!}
{...째서...우릴...왜...}
{아...파...괴...로워...그...러...니까...}
{...도...함께...!으...흑...}
{흑...흐...쿠흐흐흐흐...!}
{크흐흐흐흐흣...!}
{크...크크큭...!}


"게...게스텔!? 네즈란!? 너, 너희들이야!?"

허공에 떠있는 희뿌연 인형들 사이에서 발견한 익숙한 녀석들의 모습에 덱스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채로 머리가죽이 반쯤 벗겨지고 눈알이 빠져나간 채,
뜯겨져나간 입술 때문에 이빨과 잇몸이 고스란이 드러난...이제는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외모로 변해버린 녀석들을...
처참한 모습으로 이제는 살아있는 것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반투명한 두 녀석의 모습에 할 말을 잊은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등뒤에서 누군가의 이빨이 딱딱 소리내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낮게 깔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반투명한 모습으로 허공에서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녀석들의 아래에서 검은 로브를 쓴 인형이 홀로 서있었다.
한손으로 로브에 가린 얼굴을 잡은채 우리를 바라보는 녀석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작게 키득거리던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품평하듯 우리를 바라보았다.
바로 등뒤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절규하는 망령들을 아랑곳 하지 않는 녀석의 모습에 오한을 느끼곤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바보같은...겨우 눈만 마주친 정도로 설마 이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나는 전 우주에 공포로 통하는 'SOLGAM'의 간부.
위험도 'Lv.S'인 행성도 아닌, 겨우 미개한 문명의 혹성에 사는 원주민 따위에게 겁먹을 것 같으냐?
낮게 울부짖는 망령들을 애써 무시하며 녀석을 마주보았다.

"넌...누구냐?"

"......"

내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녀석은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녀석의 말은 내가 원하던 답이 아니었다.

"...태양의 가호가 사라진 밤은 망자들의 시간..."

"...뭐?"

"너희들의 운명...심연의 어둠속으로 끌어내려 주겠다."

"미친...! 쏴버려!"

무저갱에서 들려오는듯한 음산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불안한 마음을 고함속에 파뭍은채 총을 꺼내어 녀석을 겨누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미증유의 힘이 손에서 총을 빼앗아 가버렸다.

"뭣!?"

부하들의 총마저 모두 공중에 뜬채 정지해 있는 모습에 헤스테르가 당황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케, 케이즈님! 이건...!"

"우선 후퇴한다!"

순식간에 무장이 해제되어버린 우리는 허공에 높이 떠오른 총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상대에게 무장도 없이 덤비는 자살행위를 할 생각 따윈 없다.
달아나며 뒤를 돌아보니 검은 로브의 놈은 달아나는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뭘하는거지?

"으아악!"

갑자기 철퍽소리와 함께 덱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져 뒹굴었다.
바보 자식! 아무 장애물도 없는 평평한 바닥에서 넘어지다니...
......!?

"도...도와...꺽!?"

"덱스터!?"

"멍청아! 어서 달려!"

쓰러진 덱스터의 비명에 놀라 발걸음을 멈춘 헤스테르를 닥달하며 두번 뒤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바보 녀석의 뒤치닥거리를 한다고 발걸음을 지체했다간 분명 놈에게 붙잡힐게 틀림없다.
그리고...본능이 절대로 멈추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일어나려고 발버둥질치던 덱스터의 몸이 기이한 모습으로 꺾이던 걸 보고선...



덱스터를 내버려 두고 베르난도, 에스텔, 헤스테르와 함께 방금전의 장소에서 벗어나자 어느덧 개천가에 가까워 졌다.
검은 로브와의 거리가 한참 떨어졌다고 판단, 잠시 멈춰서 몸을 추스렸다.
숨을 몰아쉬던 헤스테르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헉...허억... 이, 이제 어쩌죠 케이즈님?"

"......"

남은 부하는 베르난도, 에스텔, 헤스테르 3명.
데빌루크의 왕녀 라라-사타린-데빌루크와 우주 제일의 킬러 금색의 어둠 두명을 신경쓰는 것만도 힘든데 부하들마저 잃었다.
나타난 적의 정체도 알지 못하는 기분 나쁜 상황에서는 굳이 위험한 선택을 할 이유는 없지.

"...귀환한다. 닥터 미카도 포섭은 실패다.
이미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불가해한 적이 나타난 마당에 증원을 요청하고 기다리거나 할 처지가 아니야."

불가사의한 힘을 사용하는, 닥터 미카도와의 연계성조차 알 수 없는 적.
이유도 모른채 알수도 없는 적에게 공격 당하는 상황에 처해서 임무를 실패하다니, 이 케이즈 인생 최대의 오점이다.

"하지만...다른 동료들은..."

"멍청한 자식! 방금전 그 꼴을 보고도 모르겠나?
그 녀석들은 이미 죽은 거라고! 살아있는 녀석이 그렇게 투명해져서 허공을 둥실둥실 떠다닐것 같으냐!"

"......"

입을 다물어버린 헤스테르의 모습에 진정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우선, 이곳을 벗어난다.
방금전의 적에게 공격당한다면 우리 안전도 장담하지 못해."

화륵-

"응?"

작은 소리와 함께 오른쪽에서 밝은 빛이 나며 어두운 밤을 밝혔다.
베르난도의 옷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우와악!? 부, 불이다!"

"베르난도!?"

갑자기 옷자락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베르난도는 황급히 손으로 옷을 털었다.
그러나 옷자락에 붙은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타올랐다.
당황한 베르난도는 바닥에 누워 몸을 뒹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적으로 옷전체로 번져가는 불길에 베르난도는 점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아...아으으으으!"

"진정해라 베르난도!"

"미친! 너라면 진정할거 같냐!"

"뭐, 뭐!?"

눈이 돌아갔는지 벌개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베르난도는 미친듯이 주변을 살피다 개천을 향해 몸을 던졌다.
어둠속에서 검게 출렁이는, 허리까지 오는 물에 들어간 베르난도는 그대로 쭈그리고 앉아 온몸을 물에 담갔다.

풍덩-!
풍덩-!

......?
방금전...물에 들어가는 소리가 '두번' 들렸다.
에스텔과 헤스텔에게 손짓으로 개천가에서 물러나게 한뒤 주위를 살피다가 눈이 커졌다.
개천 상류에서 집채만큼 거대한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그르르....

그림자가 이동하며 부글거리는 물소리와 짐승같은 울음소리에 전신의 털이 쭈뼛쭈뼛 일어서는것 같았다.
황급히 개천에 잠겨있을 베르난도를 불렀다.

"베르난도! 개울은 위험하다!
어서 나와라!"

......

"베르난도!"

첨벙-

베르난도가 들어갔던 물위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하나 올라왔다.
허공을 필사적으로 움켜쥐려고 애쓰던 손은 이내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 이건 무슨..."

「그르르...워어억------!」
「캬우우우우---」
「크르릉...」
「가아아아아아------!」
「그워어어어------!」


갑자기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맹수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들에 놀라 에스텔과 헤스테르와 함께 황급히 개천가를 벗어났다.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피해 달리기 시작하길 한참.
정신을 차려보니 숲속이었다.
...최악이다.
습한 기운을 품고 있는 숲엔 희뿌연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거리가 떨어지면 서로를 놓칠지도 모를만큼 짙은 안개.
부하들의 모습을 살피자 에스텔과 헤스테르는 창백해진 표정으로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한시바삐 숲을 벗어나 우주선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려고 안개에 가려진 나무들을 조심하며 나가는 길을 찾았다.
나와 헤스테르, 에스텔이 일렬로 서서 좁은 숲길을 헤쳐나갔다.
한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자 헤스테르만이 등뒤에 서있었다.
...에스텔은 어디있지?

"...에스텔은 어디갔나?"

"네?"

"에스텔은 어디 갔냐고 물었다."

내말에 뒤를 돌아본 헤스테르는 약간 당황한듯 나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습니다.
언제 사라졌는지..."

"그걸 대답이라고...!"

흥분해서 얼굴이 시뻘개져서 헤스테르를 질책하려던 나는 이내 진정하고 몸을 돌렸다.

"...에스텔을 찾는다."

"네?"

"길을 잃었을 뿐인지도 모르니까, 옷에 달린 통신기를 이용해 위치를 추적한다."

"아..."

에스텔이 가진 통신장치의 신호는 금새 잡을 수 있었다.
여기서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에스텔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안개가 짙어서 잠시 헤메었을 뿐인가.
당황해서 통신으로 연락을 취한다는 생각조차 못한건지 한곳에 멈춰있는 에스텔의 행동을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통신을 연결했다.
통신으로 위치만 파악한다면 에스텔 쪽에서 금새 우릴 쫓아올 수 있겠지.

...에스텔이 통신을 받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헤스테르를 데리고 에스텔의 신호가 잡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것은 흙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에스텔의 옷 뿐이었다.
벨트조차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는 옷가지들.
마치 증발한것 마냥 사라진 에스텔의 흔적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풀쪽을 향해 질질 끌려간듯 옷 앞자락은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발이 들린채로 끌려갔었는지 구두는 바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 놓여있었다.
그리고...수풀쪽으로 난 커다란 흔적 위로 깊게 파인 10개의 손가락 자국.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우우우우우------!

앉아서 흔적을 살피고 있던중, 멀리서 들려오는 귀곡성에 헤스테르가 한차례 몸을 떨었다.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던 헤스테르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헤스테르? 무슨일이냐?"

"...가야해요..."

"가다니 어딜?"

"...들리지 않아요?"


{...리...와...}
{...께...가자...함...}
{워...추...워...필요...해...너...의...가...죽...}
{...를...먹고...다...시...살아...날...크흐...!}
{크...흐흐흣...!}



"...!"

"...동료들이...부르고 있어요..."

들려오는 망령의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자 헤스테르는 가만히 귀곡성이 들려오는 수풀 저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멈...춰!?"

떠나가는 헤스테르를 말리기 위해 다가가다가 무심코 뒷걸음질쳤다.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풀속에서 두개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몸의 절반의 피부가 벗겨져 붉은 근육이 드러난 인형과 해골 인형이 헤스테르에게 말없이 손짓하고 있었다.

"지금 갈께요..."

"헤스테르!"

수풀가까이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자리에 서서 외치는 내 모습에 헤스테르가 살짝 뒤돌아 보았다.

...키득...

- ...아직도 내가...로...

멀어져가던 헤스테르가 남긴 목소리가 속삭이듯 내 귓가를 맴돌았다.
어느새 헤스테르는 두 인형과 함께 숲의 안개 너머로 사라졌다.

한치앞도 보기 힘든 어두운 숲속에서 결국은 나 하나만 남았다.
...기분나쁜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배신한 녀석은 벽에 처박혀 기절했던 녀석과 나란히 처참한 몰골로 나타났다.
허공에 고정된채 뒤틀리던 녀석.
허리밖에 안차는 검은 개천속으로 자취를 감춘 녀석.
안개속에서 증발해버린 녀석.
동료의 목소리에 홀려버린 녀석.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점점 등뒤가 축축히 젖어갔다.

사아아아아---

흠칫-!

어느새 바람에 부딪히며 들려오는 풀잎의 소리마저도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미카도의 소꿉놀이에 어울리는 태평함만이 가득차있다며 조소했던,
바보같을 정도의 평화로움만 느껴지던 마을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어떻게 된거지...?

닥터 미카도의 포섭은 실패인가?
보스의 질책은 어떻게 하지?
적은 누구지?
왜 우릴 공격한 거지?
내 부하들은 어떻게 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태평스러워 보이던 낮의 풍경이 거짓말처럼 미친 광기로 가득한 밤.

...여긴...대체 어디지?

여기는...
이 미친 공간은...

...난...지금 어디에 있지?

흔들리는 정신을 억지로 다잡곤 비틀거리면서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헤메고서야 숲을 빠져 나오고서야 압박받던 정신이 편안해지는것 같았다.

숲을 벗어난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아지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둔 예비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 할 때, 뒷자리에서 낯익은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로 걸어들어 오다니...이제 도망은 포기한 모양이군."

"우아아아악!?"

백미러에 비친, 뒷좌석에 앉아있는 검은 로브의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자동차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자동차 문을 당겨 닫았다.
......당겨?

"...알지 못했나...
내게서 벗어날 순 없어..."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다시 운전석에 앉은채 차문을 닫고 있었다.
그럴리가...난 분명 자동차 밖으로 나갔는데...!
조금씩 등뒤가 축축히 젖어가는 가운데 놈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동요하고 있군.
두려운건가?"

옴짝달싹 못하고 굳어버린 나의 어깨 너머에서 놈은 무감정한 어조로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타락한 자야...
그렇게 겁먹을 필요 없으니.
...그저..."

{우...우우...}
{아...아아아...!}
{...파...아파...}
{...즈...님...함께...}


어느새 뒷자석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통스러운 얼굴의 부하들의 사령(死靈) 속에서 놈은 고개를 들었다.
백미러 너머로 비춰진, 로브 아래의 얼굴은 치아를 드러낸 채 입술이 찢어질 듯 웃고 있었다.

"...네 부하들과 똑같이 만들어줄 뿐이니까."

"우,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철컥-

콰아아아아앙------!!!



차문을 열고 도망치면서 기폭 장치를 발동시켰다.
형편없이 땅바닥을 구르면서 간신히 고개를 들어 폭염에 휩싸인 자동차를 보았다.
이거라면 그 놈도...

"...더러운 불꽃이군."

"!?"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목이 꺾어져라 뒤를 돌아보자 상처하나 없는 놈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도 안돼... 뒷문은 열리는 소리조차 없었는데, 어느새 놈은 내 등뒤에 서있다고?
타오르는 불꽃 너머에서 일그러져가는 사령들의 모습이 보인다.
기괴하게 비틀어지는 사령들은 원념이 가득한 목소리를 쉴새없이 내뱉기 시작했다.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죽은 부하들의...사령들의 단말마가 끊임없이 귓가를 맴돈다.

악몽이다...

온몸을 짓누르는것 같은 진득한 비명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귀를 틀어막았다.

아냐...내가 죽인게 아냐...
이젠 됐잖아. 제발 사라져...!

원념섞인 저주에 마음이 꺾일것만 같은 가운데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와닿았다.
방금전까지 들려오던 절규도, 흐릿하게 일그러져가던 사령의 모습도 격렬해진 화염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맺힌 절규조차 집어삼킨 화염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토할 듯한 메스꺼움에 욕지기가 일었다.
도망치는것조차 잊곤 바닥을 짚고 헛구역질을 하는 내 등 뒤에서 녀석의 속삭임이 들렸다.

- 진정해...구토를 할 정도로 무서워할 것 없어...
안심해...
안심해... 케이즈.

방금전까지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마치 거짓말이었던것처럼...
아이를 달래는듯 부드럽게 속삭여오는 녀석의 목소리는,
그저 이대로 녀석의 말에 몸을 맡긴채 안심감을 얻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켰다.
기괴한 모습으로 사라져간 부하들도,
귓가에 메아리치던 짐승의 울부짖음도,
어둠속에서 보았던 불가사의한 물체들도...
차라리... 전부 꿈이었다면...

하지만 코를 찌르는 뜨겁고 매캐한 연기 내음은...악몽같은 이 순간이 현실임을 잔혹하리만치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 ...케이즈.

그만둬...

- 케이즈...

날 내버려 둬...

- 눈을 떠...케이즈.

더 이상 날 혼란시키지 마...!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린채 귀를 틀어막자 귓가를 파고들던 녀석의 속삭임이 멎었다.
눈과 귀를 막으면 모든 무서운 일들이 사라질 것이라 믿는 어린 아이처럼,
그렇게 한동안 눈을 감고 지금 이 현실에서 벗어나길 기원했다.


"...그런가.
그럼 결국 이걸로 마지막이로군..."

틀어막은 귀로 가늘게 들려온 목소리에 강제적으로 현실감이 돌아왔다.
눈을 뜨자 어느샌가 내 앞에 선 녀석의 로브의 발치가 보였다.
천천히 웅크린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들어 녀석을 올려다 보았다.
후드의 그림자에 가려진 녀석의 얼굴은 어둠으로 가득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약간 아래로 숙여진 후드의 모양새 만이 녀석이 날 내려다 보고 있음을 알게 했다.

"유감이군...이렇게 끝나 버리게 되다니.
...아무튼, 괜찮겠지. 저 불꽃속의 것과 마찬가지로 너 또한 훌륭한 재료가 될테니까..."

마찬가지...라고?

설마 진홍빛 화염 속에서 아우성치던 원귀들처럼...나 또한 그렇게 만들 셈이냐?
껍질이 벗겨지고, 눈알이 빠지고, 입술조차 뜯겨져나간채 비참하게 절규하던 그 모습으로?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중얼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미쳤어.

평온한 어조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목소리에선 스산한 광기가 느껴졌다.
목적을 알 수 없는 음습한 악의가 온몸을 강렬하게 찔러온다.

공포로 미칠것만 같은 정신을 애써 붙잡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통제가 안되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달아나는건 포기했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놈의 시선을 마주하며 억눌린 목소리를 쥐어짜 물었다.

"대체 넌...누구냐! 이 괴물아...!"

"...스..."

미약하게 입술을 움직이며 짧게 대답한 놈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검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그만 미혹의 달빛 아래 잠들어라."



뇌리를 흔드는 충격에 서서히 의식이 멀어져갔다.
어느샌가 바닥에 쓰러진채 억지로 눈을 떠 녀석을 올려다 보았다.
화마로 검붉게 물든 밤하늘, 달빛을 등지고서 녀석은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깨어나면 네 부하들과 같은 처지가 되어 있을테니..."

낮게 울려퍼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이 감겼다.
멀어져 가는 의식속에서 생각했다.
어둠속을 환히 물들인 검붉은 화염.
영혼의 단말마를 들으며 광희하던 녀석은...틀림없이 악마였다고...



...죽고 싶지...않아...




- 문제편 終 -




「에비~!」
「크헤헤헤헤-!」

"우아아-!"
"꺄아아!"
"으악!"
"꺄! 나왔다!"

날카로운 이빨을 세운 늑대인간, 피쉬맨, 설인, 외눈의 거인, 미이라들에 놀라 도망치는 사람과 호기심에 이끌려 몰려든 사람들로 번잡한 「귀신의 집」.
올해들어「사이난 유원지」의 단골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시설이다.
학년초 구교사의 유령 사건 때 미카도 선생님의 소개로 우주인 실업자들이 사이난 유원지의 귀신의 집에 대거 채용된 뒤 일어난 쾌거다.

전골파티 다음날.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던중 다 함께 「사이난 유원지」로 놀러왔다.
롤러 코스터를 타고 자이로 스윙 등을 타면서 즐기던 도중 귀신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꽤나 인기있는 추천 장소였고 마침 대기줄의 길이도 적당했던지라 한번 구경해 보기로 했다.
유령을 무서워하는 하루나도 있었기에 귀신의 집에서 부터는 팀을 나눠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라라는 리토에게 매달렸고, 미캉은 야미와 팔짱을 꼈고, 라사와 미오는 하루나의 양옆에 붙으며 물었다.

"그럼 하루나찌는 어딜 가고 싶어?"

"으응...이번엔 조금 조용한걸 탈까?"

"그럼 저기 회전 그네에 가보자. 같이 갈 사람?"

"으응...우리도 같이 가볼래 라라?"

"응, 좋아 리토~"

역시나라고 할까, 리토는 하루나가 속해있는 그룹과 동행하는걸 선택했다.
리토와 라라, 하루나랑 리사, 미오가 회전 그네를 타러 떠나고,
미캉은 야미의 팔을 잡은채 귀신의 집을 가리켰다.

"야미짱. 나랑 귀신의 집 보지 않을래?
친구들이 여기가 정말 무시무시하대."

"그러죠."

"아키츠군은 어떻게 할꺼죠?"

"나도 귀신의 집으로 가볼까 하는데...코테가와도 함께 가지 않을래?"

"그럴까요?"

미끌미끌한 문어형 우주인씨가 나오면 야미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조금 걱정이고,
인원을 나눈다면 반반으로 하는게 좋겠지.
코테가와랑 함께 야미와 미캉의 뒤에 줄을 서 기다리면서 귀신의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캉네 초등학교에선 담력시험 비슷하게 생각하고 도전하는 아이들이 많은것 같았다.

"「구교사 묵시록 괴담」?"

"네. 유원지에서 그렇게 홍보하던걸요?
불가사의한 예언에 따라 차례차례 벌어지는 참극의 결말.
실화에 바탕을 뒀다고 선전하는지라 인기 만점이라구요?"

뭐야 그거? 「구교사의 유령 사건」으로 불리던게 아니었어?
쓸데없이 거창한 명칭이 붙은 이야기를 듣는새 어느덧 귀신의 집에 입장하게 되었다.
어디...얼마나 무서울지 기대되는데?



「에비...히이익!?」
「크흐......흐악!?」
「히이익~! 죽이지마~!」
「죄송합니다아아아! 용서해주세요!」

"...어째서 귀신들이 다들 도망치는거죠?"

"......"

의아해하는 미캉 옆에서 야미는 침묵했다.
귀신의 집에서 튀어나오던 귀신들은 야미를 보는 순간 모조리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 버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여기 우주인들은 모두 야미의 얼굴을 알고 있으니...
우주제일의 킬러로 유명한 야미를 상대로 겁주려는 녀석이 있다면 내 쪽에서 한번 얼굴을 보고 싶다.

"미안 야미짱. 괜히 내가 여기로 오자고 해서..."

"괘, 괜찮습니다."

사과해오는 미캉의 모습에 야미로선 드물게 말까지 더듬고 있고...
내심 찔리는게 많은가보다.
두려움으로 가득차야 할 귀신의 집이 웃지못할 이상 현상으로 채워져 가는 모습에 어떻게 반응해야 모르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남녀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여기가 그렇게 무섭다면서?
그런데 어째서 귀신들이 다들 저렇게 우왕좌왕하는거야?"

"(쉿...조용. 저 앞에서 걸어가는 금발 녀석 보여?
사이난 최악의 양아치 아키츠 료스케라구.)"

"(설마...그 악명높은 불량배?)"

"(그래. 뒷골목에서 얼쩡거리는 녀석들 치고 그녀석에게 안맞아본 녀석이 없을 만큼 폭력적인 녀석이라고.
보나마나 여기서 일하는 녀석들은 저녀석에게 맞아봤던 놈들이겠지.
저기봐. 얼굴을 보자마자 겁먹곤 냅다 튀고 있잖아?)"

"(야만적이야...)"

아니, 내가 아니라 야미를 보고 도망친거라고.
누가 누굴 겁줬다는거야?
야미를 바라봤지만 흐지부지하게 변해버린 귀신의 집에 대해 불평을 하는 미캉 때문에
야미는 식은땀을 흘리며 모른척 딴청을 피우고 있고.
코테가와는 쓴웃음을 짓곤 야미를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귀신의 집 탐험은 엉망진창인 감상만 남고 끝나버렸다.



"야아아...미안. 그만 우리도 모르게 몸이 반응해서 말이지."
"놀러온건데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해."

귀신의 집 탐험이 끝나고 잠시 귀신역을 하고 있던 우주인들과 이야기 할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놀러왔다는 말로 오해를 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 우주인들은 미캉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그쪽의 꼬마 아가씨는 못보던 분인데?"

"아...전 미캉이라고 해요."

"구교사 탐험 때 있던 유우키 리토의 여동생이에요."

"그때 그 소년 말이로군?"

리토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우주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곳이 꽤나 인기가 있나보죠?
사람들도 많이 찾고 있고."

"물론이지. 우리 유원지의 명물이라구.
닥터 미카도 덕분에 다시 할 수 있었던 직장인데 기왕 하는거 최고로 만들지 않으면!"

프로정신이 넘치시네요 아저씨들.
의욕적인 우주인들의 태도에 감탄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듣기론 유원지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매지컬 쿄코 플레임」에서 단역으로 출연을 제의 받았단다.
그렇기에 좀더 박진감있는 귀신 흉내를 내기 위해서 최근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그동안 인기를 끌었던 「구교사 묵시록 괴담」이외에도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 내려고 고민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꼭 연락 부탁한다면서 명함을 건네주던 우주인들에게 인사를 한뒤 헤어졌다.



그후 넷이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놀이기구들을 타고 돌아다니던 중, 멀찍이서 리토와 하루나 단 둘이 걷고 있는걸 보게 되었다.
걷다가 근처 벤치에 피곤해 하는 모습의 하루나를 앉히곤 아이스크림을 사러 판매대로 뛰어가는 리토의 모습에 상황이 대충 짐작이 갔다.
활력이 넘치는 라라, 리사, 미오의 페이스에 따라가지 못한 리토와 하루나가 잠시 쉴겸 산책을 하는것 같았다.
하루나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면서 리토는 하루나에게 대관람차를 권하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피곤하지도 않고 유원지 전체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놀이기구니까 좋은 선택인데, 단둘이 대관람차라니...대담해졌구나 리토.
관람차에 타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의식할지도 모르겠지만.
탈만한 놀이기구는 거의 다 돌아봤기에 우리도 리토와 하루나를 따라 대관람차로 유원지 투어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리토와 하루나, 나와 코테가와, 야미와 미캉이 순서대로 관람차에 탔다.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관람차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바퀴의 제일 아래부분에 위치한지라 볼만한 풍경은 없었기에 다시 고개를 돌려 맞은편의 코테가와를 바라보았다.
유원지 투어가 즐거웠는지 코테가와는 살짝 미소지은채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가만히 코테가와의 옆모습을 감상하다가 시선을 느꼈는지 문득 고개를 돌린 코테가와와 눈이 마주쳤다.
빤히 쳐다보는게 들켰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코테가와랑 마주보는 상황이 쑥쓰러워서 그랬을까
무심코 고개를 밑으로 숙이다가 코테가와에게 툭-하고 정강이를 채였다.

"윽?"

"변태-. 어딜 보는거에요?"

다리를 오무리고 살짝 치마를 움켜쥔채로 코테가와는 얼굴을 붉혔다.
아무래도 시선을 피하는 행동이, 치마 아래 속옷을 엿보려 한다는 식으로 코테가와에게 오해를 산 것 같았다.

"따, 딱히 이상한 의도는 없었어?"

"말을 더듬는건 내심 찔리는게 있기 때문이죠?"

"으..."

경치가 아니고 네 얼굴을 감상하고 있었다고 고백하면 맞으려나?
살짝 볼을 부풀린 코테가와의 모습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오른편 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코테가와를 불렀다.

"그럼, 여기에 앉아."

"에?"

"훔쳐볼까봐 걱정되는거라면 함께 앉아서 구경하자고."

"그, 그건..."

"주저하는건 내심 걸리는게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근처의 아이가 말했습니다."

"...하아...알겠어요."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코테가와는 이윽고 체념한듯 조심스레 일어나 내 오른편 자리에 앉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한차례 숨을 내쉰 코테가와는 눈을 흘기며 물었다.

"...혹시 이걸 노린건 아니겠죠?"

"계획대로"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대사입니다.
기왕이면 검은 공책이라도 펼쳐 들고서.

"이...이 난봉꾼!"

"노, 농담이야!"

얼굴이 빨개져선 주먹을 휘두르려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황급히 사과하며 성난 코테가와를 달랬다.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요란법석을 떠느라 관람차가 소리를 내며 덜컹거리자 통제실에서 경고가 들어왔다.

「거기 두사람, 관람차에서 외설행위는 금지입니다.
대관람차 안에선 얌전히 경치를 감상해주세요.」

"읏...!"

터무니없는 방송을 듣고선 코테가와는 움직임을 딱 멈춰버렸다.
째려보는 코테가와의 시선에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식으로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빛내고 있자
코테가와는 들어올린 주먹을 말아쥔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이것이야 말로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법이지.
결국 코테가와는 불합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어느덧 관람차는 절반 높이까지 올라왔고, 창 너머론 유원지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코테가와도 기분을 풀곤 내려다보이는 경치들을 차근차근 감상하기 시작했다.
나도 경치 구경이나 할겸 왼쪽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코테가와를 바라보았다.
코테가와는 어떤 풍경을 보고 있을까?
시선을 느꼈는지 코테가와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의아한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키츠군? 왜 그렇게 쳐다보는거죠?"

"그냥, 오른쪽 경치는 어떤가 싶어서 말야."

"왼쪽에 앉아서 오른쪽 창밖을 쳐다보려면 불편하지 않아요?"

그야 불편은 하지만...
함께 앉아 있으면서 서로 반대 방향만 바라보니까 어쩐지 외면하는것 같잖아.

"음...나로선 코테가와랑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달까...? 아하하..."

"...아키츠군은..."

"응?"

"후우...뭐, 아키츠군이 불편하지 않는다면 좋아요."

한차례 머리를 매만진 코테가와는 별다른 이견없이 수긍했다.
그렇게 한동안 코테가와가 앉은 쪽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올라가는 관람차 속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평화로운 분위기에 잠겨있었다.
그런데 코테가와로서는 창밖을 바라도던 내 시선이 어쩐지 신경쓰였나보다.
힐끔 내쪽으로 시선을 돌린 코테가와의 모습에 미안해하며 사과했다.

"아, 미안. 혹시 신경쓰인다면 이제 그만 고개 돌릴테니까..."

"그게 아니에요."

코테가와는 부정하곤 내 얼굴에서 비스듬히 시선을 옮겼다.

"저도 그냥 반대쪽 경치가 궁금해졌을 뿐이니까요."

내 뒷편에 있는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한 코테가와의 모습에 민망해져서 약간 얼굴이 붉어졌다.
자의식 과잉이었던 건가 나는...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그대로 코테가와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걸 계속했다.
그런데...

관람차 안에서 바로 옆에 앉은채로 맞은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이 상황.
서로의 어깨가 붙을 정도의 거리에 있다보니 의도치 않게 시선이 자꾸만 코테가와의 얼굴을 향하게 된다.
허리까지 흘러내린 부드러운 흑빛 머리카락.
오똑한 코 아래로 윤기가 도는 붉은 입술.
그리고...흔들림없이 또렷한 눈동자.
청아함 속에 강인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 가만히 코테가와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면,"

"으, 으응?"

갑자기 말문을 연 코테가와에 당황해 버벅이고 있자 코테가와가 말을 이었다.

"구레나룻은 이제 기르지 않네요?"

"아...이젠 익숙해졌으니까."

구레나룻을 처음 잘랐을 땐 인생이 끝난 것만 같은 좌절감으로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었지만...
4년 동안 쌓아왔던 인연의 무게는 구레나룻 하나 자르는 정도로 위협받을만큼 가볍지는 않았나보다.
최근 1년동안엔 점점 학우들과의 사이도 개선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개선되고 있는걸까?
적어도 이래저래 얼토당토 않은 소문으로 시끄러운 나랑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생긴걸 보면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과거 구레나룻으로 덥수룩했던, 지금은 맨들맨들해진 볼에 살짝 손을 댄다.
까끌까끌한 느낌이 아닌 매끌한 피부의 감촉이 기분좋게 느껴진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코테가와는 피식 웃곤 말했다.

"구레나룻을 다시 기르지 않기로 한건 잘했다고 봐요.
덕분에 털보처럼 보였던 1학년때 보단 많이 나아졌으니까요."

"그, 그래?"

털보입니까.
그래도 양아치 보단 훨씬 낫네.

"나중에 가선 익숙해졌지만, 처음 아키츠군을 봤을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아요?
사나운 눈매에 털보같이 무성한 수염. 무슨 산적두목처럼 보였다고요."

"......"

...구세대 양아치 마냥 한껏 구레나룻을 길러서 다니던 예전의 나는 참 대단했네요.
그런 털보 패션으로 용케도 4년을 버텼으니 말이죠.

"그래도 그때 용케도 말을 걸었네 코테가와는.
보통은 무서워서 피하질 않아?"

"옳지 않다고 생각한걸 그냥 보고 지나칠 순 없었어요.
명확하게 말을 하면 알아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올바름을 추구하는 코테가와가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듯 했다.
그래도 1년이 지난 지금은 코테가와도 꽤나 유연함이 늘어났다고 본다.
만약 코테가와가 지금의 성격이었다면 1년전 고교 입학식때 나에게 말을 걸어줄 일은 없었겠지.

"그리고...잘못이 있다면 지적해주는게 친구잖아요?"

"......"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것은 좋은 가족과 친구라는 말이 정말이었군요.
약간 감회에 젖어 만족감에 잠겨있는데, 그런 내 침묵을 오해했는지 코테가와가 약간 당황한듯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그때 아키츠군이 나빴다는건 아니에요.
그대신 1학년 학급 활동에서 아키츠군은 여러모로 힘써줬으니까 솔직히 감사하고 있어요.
...저기, 혹시 방금전 말 때문에 기분 상했어요?"

"으으응...코테가와가 그런 사람이라서 기뻤어."

"뭐, 뭐에요. 부끄러운 소릴 하기는..."

쑥쓰러운듯 코테가와는 살짝 시선을 외면했다.
잠시 후, 힐끗 내쪽을 바라본 코테가와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보니까 하는 말인데요."

"응?"

"역시 아키츠군은 수염을 자르는게 나을거 같아요."

"에...또 그 이야기야?
그건 교내 봉사랑 시험 내기때 이미 끝난 얘기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만...조금은 단정한 모습이 보기도 좋지 않을까 해서 말이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코테가와는 양손을 들어 내 얼굴쪽으로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무슨...?"

"...잠시만 그대로 있어요."

코테가와는 가만히 내 입가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입술을 살짝 누른 손가락이 내 코 밑과 턱 아래를 살며시 가렸다.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손가락의 감촉에 당황하면서 빤히 나를 바라보던 코테가와를 마주보았다.
이윽고 코테가와는 뭔가 납득한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얼굴에 얹어진 두 손을 치웠다.
양 손을 내린 코테와가는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그래요."

"뭐가 말야?"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는건 아니란걸 말예요."

"심해!?"

"그러니까, 수염 잘라볼 생각 없어요?"

"이야기의 맥락을 못잡겠습니다만!?"

어째서 거기서 「그러니까」로 연결되는거야?

풋...

"억지로 권하진 않아요.
그냥 그랬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것 뿐이니까."

킥킥대던 코테가와는 다시 오른편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우리가 탄 관람차는 다시금 지상으로 내려왔다.
유원지 직원이 관람차 문을 열어주자 코테가와는 기운차게 밖으로 나갔다.

"읏차-"

대관람차에서 가볍게 뛰어내린 코테가와는 내쪽을 향했다.

"당신은 수박이라고 봐드리죠."

"어?"

"줄이 이렇~게 그어져 있잖아요?"

코테가와는 양쪽 검지 손가락을 코밑에 대고선 콧수염을 그리듯 양옆으로 주욱 선을 그었다.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인 코테가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쿡쿡거리며 웃곤 양손을 뒤로 돌렸다.
등 뒤로 손깍지를 낀채 살짝 몸을 숙인 코테가와는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한번 정도는 생각해봐요."

말을 마치고 경쾌하게 몸을 휙 돌린 코테가와는 멀찍이서 보이는 라라 일행을 향해 걸어갔다.
개구쟁이처럼 활기 넘치는 코테가와의 뒷모습을 홀린듯 바라보다 방금전 권유를 떠올려 보았다.

...이걸 정말 잘라버려...?

제자리에 멈춰서 턱을 괸채 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심했다.
고등학교 들어서 처음 본 코테가와의 장난스런 행동에 무심코 마음이 움직였다가 놀라 고개를 홰홰 저었다.
진정하자 나...이성적으로 생각하자고.
순간적인 유혹 때문에 약속을 어기고선 하나같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던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대체 몇이던가.
꼭 하지 말라는걸 했다가 스스로 불행에 빠지는 결말을 내가 따라할 것 같아?
몸에 닥치는 물리적인 위험 같은거야 이제와선 아프지 않을만큼 튼튼해졌지만,
남은 5년을 기다리지 못해서 염색이랑 수염을 없애버리곤 하루하루가 사고로 가득찬 엉망진창 생활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뭐, 솔직하게 말해서 코테가와에게 단정하게 변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도 있다.
코테가와에게 권유받기도 했으니까, 수염을 깎은 뒤에 코테가와의 평가도 들어보고 싶고.
언젠가는 반드시 코테가와 앞에서 「음핫핫! 이것이 바로 이몸의 완전체다!」라고 뽐내줄거라고.
그러니까... 5년 후에 말이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갔던 수많은 선인들의 교훈을 헛되이 하진 않습니다.
기왕 얘기가 나온거 내심 핀잔 들을 각오를 하고, 「강산이 반만큼 변할 정도의 세월」을 기약하며 코테가와에게 답했다.

"...5년만 기다려 줄 수 있어?"

"네?"

"어?"

예상했던 코테가와의 것이 아닌 앳된 목소리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자, 놀란 얼굴의 미캉이 내 앞에 서있었다.
미캉의 뒤에서 따라 내려오는 야미를 보건데 관람차에서 이제 막 내린 것 같았다.
방금전까지 바로 눈앞에서 등을 돌려 걸어가던 코테가와는, 어느새 멀찌감치 떨어져서 라라 일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오랫동안 상념에 잠겨 있었나보다.
기껏 고민하다 꺼낸 말이 대답없는 메아리로 끝나버린 덕분에 영 모양새가 민망하다.
본의 아니게 내 말을 듣게 된 미캉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료스케 오빠? 방금 말은..."

"...아무것도 아냐. 못들었다면 그냥 잊어줘."

부끄러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적당히 얼버무리곤 관람차에서 내린 야미와 미캉을 인솔해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미캉은 납득가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런가요...」라고 중얼거린 후, 더이상 의문을 표하진 않았다.
나이에 비해서 어른스러운 미캉의 태도가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고맙게 느껴졌다.
리토처럼 하늘에서 여자애가 뚝 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고개를 들었더니 어느새 딴 사람이랑 얘기하는 상황을 겪을 줄이야.
다음엔 적어도 얼굴을 들고 얘길 해야지. 생각에 너무 빠져있지도 말고.

그렇게 대관람차를 마지막으로 주말의 유원지 투어는 끝을 맺었다.




그리고...즐겁게 주말을 보내고 나선, 또다시 유쾌한 한주가 계속될거라는 기대를 안았지만...
세상일이 꼭 바라는대로 돌아가진 않는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으아악!」

쿠우우웅---!

쉬는시간. 학교 한쪽에서 들려온 굉음에 놀라 소리가 들린 곳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도중에 도서실에서 뛰쳐나온듯, 책을 들고 복도를 달려가던 야미와 합류했다.

"야미, 너도 들었어?"

"당연합니다. 그런 큰소리, 듣지 못하는게 이상하지요.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요?"

"글쎄? 우선 가보면 알겠지. 큰일은 아니어야 할텐데..."

대화를 나누며 현장에 도착해서 먼저 본것은 당황한채 서있는 하루나와 코테가와의 모습이었다.
하루나와 코테가와의 근처에는 바이저를 쓰고 광택이 나는 소재의 코트를 입은 두명의 사내가 있었다.
옆머리를 밀어버린 모히칸 스타일의 장발 사내는 무너진 벽에 파묻혀 기절해 있었고,
웨이브진 머리를 포니테일로 틀어올린 사내는 제자리에 선채 쓰러진 동료 사내를 삿대질하고 있었다.
두 손가락으로 쓰러진 남자를 가리키던 사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녀자를 겁박하는 남자는 맞아도 싸다고."

멋진 할머님이시로군요. 동경합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며 말하는 사내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 자체였다.

그런데 멋지게 서있는 사내를 보던 야미의 표정이 굳었다.
조용히 한손을 칼로 변환시킨 야미는 옆에 서있던 나에게 작게 말했다.

"저 남자의 가슴에 새겨진 마크... 'SOLGAM'의 표식 입니다."

"SOLGAM?"

"우주의 모든 범죄와 관련되어 있는 마피아 조직입니다."

"허어...?"

'SOLGAM'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그런 악명 높은 조직이 여긴 무슨 일이지?

포니테일의 남자는 하늘을 찌를듯 올렸던 손을 내리곤 하루나와 코테가와를 바라보았다.

"다치신곳은 없으세요? 하루나씨, 코테가와씨?"

"엣?" "에에?"

웃으면서 살갑게 말을 건네는 남자의 모습에 하루나와 코테가와는 당황해서 어쩔줄을 모르고 서있었다.
둘은 바닥에 쓰러져있는 남자와, 안부를 물어오는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하던 중 멀찍이 서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 아키츠군!"
"아키츠군!"

"료스케씨?"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남자는 환한 얼굴이 되어 한팔을 크게 흔들었다.

"아! 료스케씨! 야미씨!"

반가운듯 팔을 휘휘 흔드는 남자의 모습이 트리거가 됐는지 칼로 변형시킨 손을 치켜들고 야미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놀라서 남자를 향해 공격해 들어가는 야미의 뒷덜미를 잡곤 야미를 들어올렸다.
내 손에 매달려 공중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던 야미는 빼꼼 고개를 돌려 나를 째려보았다.

"무슨 짓입니까 아키츠 료스케?"

"진정해. 오시즈잖아?"

"무슨...?"

"아! 알아보겠어요?"

"오랜만...은 아니구나 오시즈."

반가운듯 다가오는 남자, 정확히는 남자에게 빙의한 상태인 오시즈를 향해 남은 한손을 들어올리며 화답했다.

"이런 모습이라 혹시나 못 알아볼까 걱정했어요."

오시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바이저에 가려진 눈과 코트에 가려진 입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에게 말을 건네온 오시즈는 어쩐지 기분이 좋은것 같았다.

"후후...이걸로 벌써 두번째네요?"

"응? 뭐가?"

"료스케씨가 알아차려 준 횟수말예요."

"아..."

하루나에게 오시즈가 빙의했을 때를 말하는거로군.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일때 톡톡하고 내 팔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있었다.
팔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덜미를 잡힌 고양이 같은 포즈로 나를 노려보는 야미가 있었다.

"...아키츠 료스케."

"어?"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껍니까?"

"아...미안해 야미."

오시즈랑 대화하느라 야미를 들고 있던걸 깜빡했네.
팔을 내려 뒷덜미를 잡힌 야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미안. 혹시 옷이 늘어나진 않았어?"

"전투복이라 상관없습니다.
그나저나 잘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있었군요."

"다음부턴 주의할께."

"에티켓을 문제 삼은게 아니라, 바보같은 완력이라고 말한거 였습니다만..."

야미는 어이없다는듯 고개를 돌리곤 오시즈를 향했다.

"구교사에서 만났던 유령...입니까?"

"네. 야미씨도 건강해보여서 다행이네요~"

생글생글 웃던 오시즈는 문득 호기심이 인듯 나를 바라보며 약간 들뜬 분위기로 물었다.

"그래서...이번엔 어떤 추리를 하셨나요 명탐정님?"

오시즈라고 눈치챈 것 말인가?
뭐, 날 「료스케씨」라고 부르는건 오시즈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부르는 방법이나 말투도 낯이 익었고.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반쯤 찍기였지.
설마 리토나 하루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오시즈가 빙의할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아무튼 오시즈의 의문에 답해주려고 입을 열었다.

"그건..."

"아! 역시 듣지 않을래요~♪"

오시즈는 갑자기 손가락으로 살짝 내 입술을 눌렀다.
말문이 막힌채 의아하게 바라보는 내 시선에 오시즈는 생긋 웃었다.

"때로는 모르는게 더 기쁘거든요."

알쏭달쏭한 말이네.
뭐, 트릭이 밝혀진 마술은 재미가 시들해지는것과 같은거려나?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우리 셋의 모습은 다른 이들을 당황시켰나보다.
코테가와와 하루나는 물론이고, 어느새 몰려온 리토, 라라, 미카도 선생님께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요컨데 'SOLGAM'이라는 조직의 남자에게 오시즈가 빙의한 상황이라고 간략하게 요약했다.
솔직히 지금 내가 알고 있는건 그것 뿐이었고.
자세한 이야기는 오시즈가 설명했다.

오늘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학교를 돌아다니던 오시즈는 복도 구석에 숨어있는 두 남자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상한 낌새에 몰래 다가가던중 두 남자가 코테가와와 하루나를 납치하려는 장면을 목격했단다.
난데없는 위기 상황에 놀란 가운데 오시즈는 기지를 발휘해 남자들 중 한명의 몸에 빙의했다.
두 남자를 동시에 상대하기보다는 한명의 몸에 들어가서 나머지 한명을 쓰러뜨리는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한명의 남자(포니테일)의 몸을 빼앗은 오시즈는 옆에서 코테가와를 납치하려던 남자(모히칸)를 염력으로 날려버렸다.
복도를 함몰시키며 벽에 처박힌 모히칸 남자는 기절했고 그 이후의 상황은 나와 야미가 지켜본것과 같다.
사정을 들은 우리는 오시즈(포니테일 남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오시즈 덕분에 위험한 사태를 사전에 피할수 있었던 둘은 안도했고, 사정을 들은 미카도 선생님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미카도 선생님과 'SOLGAM'은 과거에 연관된 적이 있었던것 같았다.

...기억났다. 미카도 선생님을 데려가려고 인질을 이용해 협박하던 그 조직 말이군.
지금에 와선 코빼기도 안보이는 라라의 약혼자 후보들 만큼이나 존재감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학생들이 위기에 처할뻔 했다며 자책하는 미카도 선생님을 친구들과 함께 달래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우선 기절한 모히칸 사내는 놔두고 빙의당한 상태인 포니테일 남자에게서 정보를 받아내기로 했다.
오시즈가 포니테일 사내의 몸 밖으로 빠져 나온뒤 정보를 얻어내자는 의견에 오시즈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나를 보았다.

"저...몸 밖으로 빠져나오는걸 좀 도와주실래요 료스케씨?"

"응?...아, 아직 익숙하지 않은가보구나?"

"...네."

저번에 하루나에게 빙의했을때도 완전히 자력으로 빠져나온건 아니었으니 오시즈로서는 아직 경험이 미숙했나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런걸로 미안해 할 필요는 없는데.

우선 오시즈가 빠져나가고 난 뒤 정신을 차릴 남자에 대응하기 위해 오시즈의 눈을 천으로 가렸다.
시야가 가려진 상태가 된 오시즈는 불안한듯 살짝 몸을 떨었지만 손을 마주잡자 조금씩 진정해갔다.
마주잡은 손바닥으로 굳은살이 박힌 투박한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잘 부탁드릴께요 신사님."

"물론이죠 아가씨."

긴장을 풀려고 했는지 떨림이 가시지 않은 어조로 농담처럼 말을 건네오는 오시즈의 장단에 맞춰주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뭐, 그야 남성의 손을 잡으며 할말은 아니었지만 속은 엄연히 오시즈라고.
리토도 말했잖아. 겉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고.
마주잡은 손이 조금씩 쥐어지며 힘이 실리는걸 느낀다.
그대로 의식을 집중한채 오시즈를 남자의 몸에서 빼내었다.



이후 눈이 가려진 채 정신을 차린 남자를 추궁한 결과 알게된 정보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1. 이들은 우주 마피아 'SOLGAM' 소속이다.
2. 지구에 온 인원은 모두 7명. 간부인 '케이즈'와 그의 부하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이곳에 온 목적은 미카도 선생님을 'SOLGAM'으로 끌어들이는 것.
4. 포니테일의 남자와 모히칸 장발 남자가 학교에 온 목적은 미카도 선생님을 협박할 수단으로 쓸 인질을 납치하기 위한것.

포니테일 남자와 모히칸 남자를 다시 잠재운 뒤 적당한 곳에 가둬두고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 미카도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눴다.
남은 적의 수는 5명뿐.
적들의 위치는 포니테일 남자의 통신기로 왔던 신호를 라라가 역추적 할수 있다.
빙의와 염력을 사용하는 오시즈, 다양한 트랜스폼 능력을 쓰는 야미, 천재 발명가이자 괴력의 소유자인 라라, 거기에 덤으로 나.
뭐...오시즈는 개를 무서워하고, 야미는 미끌거리는 것에 약하고, 라라는 꼬리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런거야 서로서로 보충해주면 되는거고.
천재 의학자 미카도 선생님은 후방 지원쪽에 특화되신 분이니 제외한다 하더라도
그냥 이대로 적의 아지트로 냅다 쳐들어가서 정면에서 박살을 내놓아도 간식먹을 시간도 안걸릴 전력이다.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나 전력은 많을 수록 좋지.
한 손을 들고 친구들의 주의를 끌었다.

"저기말야. 이런 건 어떨까?"

"어떤?"

"머릿수가 많은 쪽이 유리하니까 좀더 인원을 늘리는것 말야."

"하지만 전력이 될만한 사람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라구요.
설마 위험한 적을 상대로 일반인을 말려들게 할 셈은 아니겠죠?"

"안심해. 추가될 사람들은 보통이 아니니까."

"그럼?"

의문을 표하는 친구들을 보곤 지갑을 열었다.
「사이난 유원지」라는 글자가 크게 박힌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친구들에게 보이곤 씨익 웃었다.

"그 아저씨들...요즘 새로운 소재로 고민이라던데 이번 기회에 보은이라도 하라고 해야지."

명함에 적힌 연락처를 보며, 귀신의 집에서 봤던 수많은 이형의 외계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보의 부재는 인식의 괴리를 낳는다.

이제 미지에 대한 무서움을 알려줄 시간이다.




밤이 되고 모든 것이 어둠에 가려진 가운데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협력해주셔서 감사해요 아저씨들."

"뭘, 닥터 미카도에겐 신세진것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일은 우리 전문이기도 하고. 오히려 불러줘서 고맙다고."

괜찮다며 손을 내저으며 웃는 늑대인간을 바라보았다.
집채만한 외눈의 갑각 문어를 필두로, 온몸이 비늘로 뒤덮힌 피쉬맨, 돌고래같은 얼굴의 괴인, 두개의 뿔이 난 드라큘라같은 외모의 외계인,
길다란 털로 뒤덮힌 설인, 다른 이들보다 머리 두개는 더 큰 외눈의 거인, 붕대를 칭칭 감은 미이라, 온몸을 가시와 같은 갑주로 두른 외계인,
작은 털뭉치같은 수십명의 소형 외계인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까지.
「사이난 유원지」에 근무하는 우주인들을 이번 일에 끌어들였다.
미카도 선생님 덕분에 다시금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 우주인들은 그동안 미카도 선생님께 보답할 기회를 갖고 싶었나보다.
'SOLGAM' 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조금 위축되던 우주인들이었지만 위험상황을 최대한 제거한뒤 전개되는 계획을 듣고 다시금 기운을 찾은것 같았다.
설사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땐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니까.
라라, 야미, 오시즈, 내가 각각 적을 1명씩 상대하고 남은 1명을 우주인들이 단체로 상대하면 끝나는 일이고.
다만 이번 계획은 외계인들에게 「귀신의 집」용으로 쓸 소재를 재공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으니까 되도록이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저마다의 몸에 소형 카메라를 장착하곤 나중에 영상을 하나로 편집해 「귀신의 집」에 쓸 예정이라고 하니까.

「귀신의 집」처럼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잡아보는게 이번 계획의 요지였다.
이번 계획에서 라라는 「데루데루비전군」을 만들어 주었다.
「데루데루비전군」은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실감나는 영상을 보여주는 기계로,
작년 수학여행의 「유령의 밤」때, 유령으로 분장했던 사람들마저 꽁지 빠져라 도망칠 정도로 리얼한 귀신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나의 요구사항을 반영해서 붙잡아둔 'SOLGAM' 소속 두 남자의 모습을 추가했다.
눈좀 뻥 뚤리고 입도 시원하게 열린, 좀 많이 호러틱한 모습으로.

처음에 적들의 정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건 나 하나로 하기로 했다.
라라나 야미의 경우는 이미 적들이 둘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상황.
정체불명의 것을 접했을 때의 공포심을 자극할 계기를 만들려면 내가 나서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라라와 야미, 오시즈 외계인 아저씨들과 다시 한번 계획을 확인한후 각자의 위치로 이동한 뒤 계획을 시작했다.
「데루데루비전군」이 보이지 않도록 내 등에 배치하고서 준비해둔 검은 로브로 온몸을 가리고 적들의 아지트로 들어섰다.
나를 발견한 'SOLGAM' 의 사람들은 경계하는 모습으로 대형을 짰다.

"왠 놈이냐!"

"......"

내가 누군지 묻는다면 대답해주는게 인지상정이지만, 「알수없는 상대」라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 대답은 불가.
침묵으로 일관하며 몰래 「데루데루비전군」의 영상 재생 기능을 작동시켰다.

{...아...아...아...}
{...롭다...괴...롭...}
{...워...추워...}
{나...살...고...싶...어...다시...!}
{외...로워...누...군가...}


순간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찔했다.
이거 왜 이렇게 음이 끊기는거야?
반나절만에 이것저것 기능을 많이 넣다보니까 조금 부실한가?

{...즈...님?}
{아아...케이...님...!}
{...째서...우릴...왜...}
{아...파...괴...로워...그...러...니까...}
{...도...함께...!으...흑...}
{흑...흐...쿠흐흐흐흐...!}
{크흐흐흐흐흣...!}
{크...크크큭...!}


의도했던것과 달리 단락적으로 들려오는 느릿느릿한 목소리는 예상했던것 보다 더 음울했다.
으음...내가 지정한 대사였지만 이런 방식으로 재생되니까 나도 듣기가 참 거북하네.

"게...게스텔!? 네즈란!? 너, 너희들이야!?"

내 등 뒤로 나타난 영상에 경악해 굳어있던 남자 중 한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게스텔이랑 네즈란이었나보네.
뭐, 그 두 녀석들은 지금쯤 미카도 선생님의 창고에서 얌전히 자고 있을거라고.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던 녀석들 사이로 누군가의 이빨이 딱딱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효과가 빨리 나타난것같아 즐거워 무심코 웃음이 새었나보다.
다른 녀석들과는 디자인이 조금 다른 옷을 입은, 간부로 보이는 인물이 나를 노려보았다.
(바이저로 시선이 가려졌지만 비틀린 입매로 보건데 노려보는게 맞았다.)
오른쪽 이마에서 입술 오른쪽 옆까지 길게 흉터가 나있는 모히칸 스타일의 인물이 간부인 '케이즈'인것 같았다.
들었던 정보를 재확인 하기 위해 적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들었던대로 남은 인원은 다섯명이 맞는것 같네.
이정도 인원이라면 나름대로 괜찮은 귀신의 집 시나리오가 짜여질 것 같은데?
가만히 서서 물끄러미 녀석들을 주시하던 중 갑자기 케이즈가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무언가에 화가 난 듯 케이즈는 나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넌...누구냐?"

"......"

그러니까 알려줄수 없다니까 그러네...
아니면 나한테 「너희들에게 알려줄 이름따윈 없다!」라는 대답을 바라는거야?
케이즈의 의문을 무시하고 분위기를 잡을겸 음성의 고저와 장단에 주의하면서 적당히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를 꺼냈다.

"...태양의 가호가 사라진 밤은 망자들의 시간..."

"...뭐?"

"너희들의 운명...심연의 어둠속으로 끌어내려 주겠다."

나름대론 분위기를 잡는다고 한껏 목소리를 끌어내렸는데 생각만큼 잘 먹히진 않았나보다.
어안이 벙벙해진 케이즈는 이내 고함을 치며 부하들을 지휘했다.

"미친...! 쏴버려!"

부하들은 제각기 총을 꺼내들어 나를 겨누었다.
역시 생각처럼 이야기가 풀려가는건 아니로군요.
하지만 어차피 이것도 상정하던 범위 안이다.
적들이 방아쇠를 당기려던 순간 갑자기 손에서 총들이 빠져나와 허공으로 떠 올랐다.

"뭣!?"

당황하는 케이즈와 부하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건물벽을 통과해서 상황을 지켜보던 오시즈가 폴터가이스트로 적들의 무장을 해제시켜 버린 거니까.

"케, 케이즈님! 이건...!"

"우선 후퇴한다!"

오시즈의 폴터가이스트로 순식간에 무장이 해제되어버린 녀석들은 허공에 떠오른 총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달아나는 녀석들을 가만히 주시했다.
로브를 입은채로 녀석들을 뒤쫓아 뛰었다간 신비감이고 뭐고 죄다 박살이다.
그렇게 할거였다면 애초에 절규가면을 쓴채로 식칼 들고 등장했겠지.
내 역할은 여기서 끝이다.
도망친 녀석들을 몰아넣는건 다른 사람들의 역할.
귀신역을 맡은 아저씨들이 잘해줘야 할텐데 말이지.

놀라는 역할에 충실해주길 바라는 의미로, 도망가는 녀석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배웅해주었다.

"으아악!"

...엥?

갑자기 철퍽소리와 함께 달아나던 한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져 뒹굴었다.
난데없이 바닥을 구른 녀석은 황급히 일어서려다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도...도와...꺽!?"

"덱스터!?"

"멍청아! 어서 달려!"

일어나려고 발버둥질치던 남자의 양팔과 다리가 허공쪽으로 꺾이는 모습을 보곤 케이즈는 남자를 내버려둔 채 달아났다.
도망치는 녀석들을 보다가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기절시켰다.
바닥에 널부러진 남자가 기절한걸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며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다.

"위험하니까 혼자 나서는건 피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투명인간 아저씨..."

"아, 미안. 그래도 방금전 모습은 꽤나 심령현상 같았지?"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해 몰래 동행한 투명인간의 넉살좋은 태도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멋졌어요 아저씨."

"고마워. 그럼 난 이만 약속 장소로 가볼테니까 일이 다 끝나면 만나자구."

투명인간의 기척이 사라지고 오시즈가 아래로 내려왔다.

"수고하셨어요 료스케씨."

"오시즈야말로 수고많았어.
나야 뭐 수상쩍은 행동을 연기하기만 했으니."

"그럴리가요. 방금전 달아난 사람들을 대할때의 료스케씨의 목소리는 정말 실감났다구요."

"아...그거야, 불량배들 상대로 가끔씩 했던 짓이라...
경험이 있다고나 할까?"

영양가 따윈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 경험도 지금에 와선 도움이 되는군요.

"사실 내 목소리보단 라라의 발명품이 더 공이 컸지.
알수 없는 현상을 보면 두려워하는게 보통이니까."

무시무시한 귀신들의 형상을 담은 「데루데루비전군」이 없었다면 이만큼 효과를 내긴 힘들었겠지.

"오시즈도 이만 약속장소로 가봐. 이번 계획은 오시즈의 역할이 크니까 힘내주길 바랄께."

"아, 네! 맡겨주세요~!"

기운차게 대답한 오시즈는 의욕적인 모습으로 떠나갔다.
오시즈의 떠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지정된 위치로 이동했다.

도주경로를 예상해 각 지점에 배치된 인원들.

현재 오시즈는 개천가로 지원을 나갔다.
개천가에는 피쉬맨과 문어괴인을 비롯한 수중형 우주인들이 잠복하고 있다.
아마도 계획대로 된다면 개천가에서 한명을 잡을 수 있겠지.
나머지 적들은 우리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몰이식으로 조금씩 포위망을 좁히기로 했다.
개천가의 일이 끝나고 여유가 된다면 오시즈랑 다른 사람들은 각자 다른 지점을 지원하러 가게 될 예정이었다.

투명인간은 숲으로 지원을 나갔다.
늑대인간과 사이클롭스, 미이라 등의 우주인들은 숲에서 대기중이었다.
털뭉치같은 소형 외계인들은 구교사 건물에서 꺼내온 인체모형에 들어가 수풀 사이에 숨어 있었고.
라라의 도움으로 숲에 인공 안개를 형성한뒤 무리의 가장 뒤에 떨어진 녀석을 포획하는 작전이었다.
혹시나 저항이 심하거나 소리를 막는데 실패할 위험에 처한다면 라라의 「뿅뿅 워프군-개량형」으로 붙잡은 적을 강제 워프시키기로 했다.
준비해둔 함정 안으로 워프될테니까 탈출 할 생각 따윈 못하겠지.
미리 말해두지만 알몸 상태라서 도망치지 못하는게 아냐. 구덩이가 깊어서 못 탈출하는거라고.

계획의 구체적인 실행 같은거야 우주인 분들에게 위임했다.
어차피 놀래키기 전문은 그분들이고, 「귀신의 집」에 어울리는 시나리오를 나름대로 생각해둔게 있을테니까.
다들 알아서 잘 놀래켜 주시겠지.

라라와 야미는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서 공중에서 지상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여차하면 라라의 전송 시스템 「데다이얼」에 우주인들을 등록해뒀으니 적들이 도망치는 방향에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수도 있고.

그리고 나는 녀석들 소유의 자동차 근처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혹시 도망책으로 자동차를 사용할지 모른다며 제기된 의견에 내가 지원한거 였는데...
자동차가 두대였다.
한대는 아지트 옆에 세워둔 차량. 다른 하나는 아지트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에 주차된 차량.
설마 들통난 아지트에 다시 되돌아와서 차를 탈 생각을 할 녀석은 없겠지.
두번째 차량이 있는 공터의 경우는 숲이랑 가까웠기에 아무래도 확률상 더 높다고 판단했다.
두번째 차량이 있는 공터에 도착해 자동차 뒷자석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 앉아 있었다.
혹시나 숲에서 빠져나오는 녀석이 있다면 그때가 내 차례겠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주인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고함을 통한 위협으로 적들을 한곳으로 유도하고 있는듯 했다.
만약에 적들이 예상에서 한참 벗어나는 돌발 행동을 한다면 한명씩 사로잡는걸 포기하고, 그대로 포위망을 좁혀가면서 일망타진할 예정이었다.
아직까지 따로 연락이 없는걸 봐선 현재까지는 예정되로 되고 있는것 같은데...

가만히 있기도 심심해서 챙겨왔던 「데루데루비전군」을 만지작거렸다.

{케...님...}
{...로워...}
{께...가자...}


...이거 아직도 말썽이네.
방금부터 지직거리는 음향효과는 여전히 고쳐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다시 스위치를 켜면서 뭔가 조작 미스라도 있었는지 영상마저도 제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걸 계속 위협용으로 쓸수 있을까 모르겠네...
심령현상으로 치부시킨다면 깜빡거리는 유령도 있을법하다고 우기고 싶지만 그렇게 쉽게 속아넘어 갈지가 문제다.
잠시 스위치를 내려놓고 「데루데루비전군」을 사용하지 않고 놀래킬 방법을 생각하던 중 오시즈가 자동차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왔다.

"료스케씨."

"아, 오시즈. 하던 일은 잘 됐어?"

"물론이죠."

오시즈의 설명으론 대부분의 일은 예정되로 되었다고 한다.
개천에서는 오시즈가 염력으로 한명의 옷자락에 불을 붙이고 개천가로 유도해서 적을 포박했다고 한다.
숲에서는 안개속에서 동료들에게서 떨어진 남자를 우주인들이 달려들어 속박하고 숲으로 들어가려고 했단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동료들에게 어떻게든 연락을 취하려는 남자의 모습에 다급하게 「뿅뿅 워프군」을 사용해서 함정 안으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남자는 알몸인채 함정에 빠졌고, 숲의 바닥에는 남자의 옷만 떨어져 있는 이상한 형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리고는 다음 지점으로 우주인들이 이동하려던 중 변수가 생겼다.
부하 한명이 사라진걸 간부인 케이즈가 눈치채곤 신호를 추적해서 되돌아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정에 없던 일에 우주인들과 오시즈는 당황했지만,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즉흥적인 무대를 마련했다.
바닥에 흩어진 동료의 옷을 조사하는 두명(케이즈와 부하 한명)의 뒤에서 몰래 접근한 오시즈는 그대로 부하의 몸에 빙의했다.
그리고는 부하의 몸에 들어간채로 오시즈는 우주인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케이즈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비틀거리면서 사라져버렸고.
그리고 이제 막 케이즈가 숲을 벗어나 이쪽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이제 남은건 케이즈 뿐인거야?"

"아마도요. 그래도 함정에 빠진 사람의 행방을 확인한 뒤에야 모든게 확실하게 끝나겠죠."

오시즈의 말이 끝날즘 차창 너머로 비틀거리며 공터로 걸어오는 케이즈의 모습이 보였다.
난 뒷자리 아래에 숨고, 오시즈는 케이즈가 걸어오는 방향의 반대쪽 차문으로 통과해 나간뒤 숨어서 케이즈의 움직임을 살폈다.
자동차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케이즈는 털썩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려고 키를 꺼내는 케이즈의 뒤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을 걸었다.

"제발로 걸어들어 오다니...이제 도망은 포기한 모양이군."

"우아아아악!?"

백미러를 통해 나를 발견한 케이즈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자동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야!? 잠깐만!?
타이밍 실수했다.
시동을 걸고 자동차가 출발하고 나서 말을 걸었어야 했는데...!
쫓아가려고 뒷문을 열려고 할때 갑자기 케이즈가 달아나던 자세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무슨 일이지?

의아해하며 뒷문을 열고 내리자 케이즈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료스케씨~!"

"...오시즈?"

"네. 혹시 몰라서 일단 이 몸에 깃들었는데 괜한 참견이었던가요?"

"아냐. 덕분에 한시름 놓았어...고마워 오시즈."

"헤헤..."

오시즈(케이즈)는 쑥쓰러운듯 웃었다.

"그럼 이대로 이 몸 상태로 우주인 여러분들께 돌아가는게 좋을까요?"

"...아니. 그럴게 아니라 우선 다시 차 안으로 돌아가자.
차안에서 케이즈가 차문을 잡고 문을 열기 직전의 상황을 다시 재현하는거지."

"그리고는요?"

"빙의를 풀고 잠시 대기해줘.
혹시나 또다시 케이즈가 도망치려거든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빙의를 시도해줄래?"

"물론이에요 료스케씨."

오시즈(케이즈)와 함께 자동차로 돌아가 방금전 상황을 연출했다.
오시즈(케이즈)는 운전석에 앉아 자동차 앞문에 닫은 채로,
나는 뒷자석에 앉아 오시즈(케이즈)를 쳐다보는 채로.
그 상태로 오시즈는 케이즈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정신을 차린 케이즈는 차문을 닫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악한듯 입을 크게 벌렸다.

케이즈의 입장에선 귀신이 곡할 노릇일거다.
분명 문을 열고 달아났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자동차 안이라는 상황.
오시즈의 빙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트릭이다.
1:1 상황에 한정한다면 상대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 수 없을테니까.
놀라는 케이즈의 마음을 좀더 흔들어 보기로 했다.

"...알지 못했나...
내게서 벗어날 순 없어..."

대마왕에게선 벗어날 순 없습니다.
RPG에서 보스 필드에선 도망칠 수도 없다고.
물론 진정한 흑막, 히든 보스는 오시즈.

케이즈의 심박수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동요하고 있군.
두려운건가?"

뻣뻣하게 굳어버린 녀석의 등을 보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타락한 자야...
그렇게 겁먹을 필요 없으니.
...그저..."

{우...우우...}
{아...아아아...!}
{...파...아파...}
{...즈...님...함께...}


「데루데루비전군」의 스위치를 켰다.
조금씩 끊김 현상이 심해지면서 귀신들의 음성은 이제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한데 어우러진 절규로 변해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의도한건 아니지만 호러 분위기 좀 연출한 뒤에 쓰러뜨릴 뿐이라고.

"네 부하들과 똑같이 만들어줄 뿐이니까."

"우,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철컥-

또다시 차문을 열고 뛰쳐나가던 케이즈의 움직임이 멈췄다.
오시즈가 다시한번 케이즈의 몸에 빙의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자동차 안에 케이즈를 잡아두는건 오시즈로서도, 나로서도 번거로운 짓이었기에 나도 이만 자동차 밖으로 나왔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무슨 외부적인 충격이라도 있었던걸까? 아니면 평소처럼 라라의 덤벙 스킬이 작동한 걸까,
「데루데루비전군」은 뭐가 잘못 되었는지 화면도 음성도 마음대로 꺼져버렸기에 그냥 자동차 뒷좌석에 내버려둔 채 나왔다.

자동차로부터 빠져나온 오시즈(케이즈)에게서 10미터 가량 떨어진 정면에 자리를 잡고 오시즈(케이즈)에게 신호를 보냈다.
오시즈가 케이즈의 몸에서 빠져나온 순간, 갑자기 폭음과 함께 자동차가 화염에 휩싸이며 폭발해버렸다.

콰아아아아앙------!!!

머엉...

폭발에 밀려 넘어져 땅바닥을 구르는 케이즈를 황당하게 쳐다봤다.
몸을 일으킨 케이즈는 내가 바로 근처에 있는것도 모른채 내게서 등을 돌린 상태로 자동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케이즈 이자식...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기본 스킬인 자폭장치를 자동차에 부착해 뒀던건가?
멋모르고 자동차 안에 남아있었다간 낭패를 면치 못했을꺼라 생각하며 타오르는 화염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은 뭐가 있나...

"...더러운 불꽃이군."

"!?"

내 목소리에 목이 꺾어져라 뒤를 돌아본 케이즈는 눈을 크게 뜨곤 그 자세로 굳어 버렸다.
그런 케이즈를 무시하고 타오르는 자동차를 보았다.
자동차 뒷자석에서 일그러져가는 귀신의 영상들이 보였다.
기괴하게 흔들리는 영상과 함께 저주처럼 느껴지는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어째서내가?


...아...
이거 좀 무섭다...

화염속에서 완전히 고장났는지 「데루데루비전군」은 똑같은 말만 무수히 반복하고 있었다.
케이즈는 바닥에 주저앉아 귀를 막은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약간 쫄아서 불타는 자동차를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자동차는 완전히 폭염에 휩싸였다.
뜨거운 열기속에서 결국 「데루데루비전군」이 폭발한 것 같았다.
덕분에 방금전까지의 소름끼치는 음성은 사라져버려서 내심 안도했다.

바닥을 짚고 헛구역질을 하는 케이즈의 모습이 악당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뭐, 방금전의 상황은 나도 조금 무서웠으니까...
살짝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면서 케이즈를 진정시켜보기로 했다.
사실은 케이즈에게 말을 걸면서 나 자신도 달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케이즈의 등뒤로 얼굴을 가까이 해서 살살 달래보았다.

"진정해...구토를 할 정도로 무서워할 것 없어...
안심해... 안심해... 케이즈."

케이즈에게 말을 걸면서 조금씩 나 자신도 진정해가는것 같았다.
내 몸의 떨림은 이제 가셨는데 케이즈는 도무지 진정하는것 같지 않았다.
설마 울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케이즈."

응답없음.

"케이즈?"

수신거부.

"눈을 떠. 케이즈."

이젠 아예 무릎을 꿇고선 몸을 웅크리고 귀를 틀어막아버린 케이즈의 모습에 할말을 잃었다.
...'SOLGAM' 이라며. 우주 제일의 마피아라면서.
이렇게까지 애가 맛이 간것처럼 굴다니, 그렇게까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건가?
정면으로 돌아서 몸을 웅크린 녀석을 내려보다가 한숨을 쉬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
여기서 더 압박을 해도 나중에가면 외부의 자극을 외면해버릴테니 슬슬 끝을 내야 하는데...
고민하며 서있던 나에게 라라로부터 받은 통신기에 신호가 들어왔다.

- 료스케! 다른 녀석들은 전부 붙잡은거 확인했어.
이제 료스케쪽으로 간 한명만 잡으면 돼~

"...그런가.
그럼 결국 이걸로 마지막이로군..."

이제 이 무대도 여기서 막을 내리면 되겠지.
케이즈는 천천히 웅크린 몸을 펴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더 이상 호러같은 장면은 없을테니까 진정하라고 케이즈.

"유감이군...이렇게 끝나 버리게 되다니.
...아무튼, 괜찮겠지. 저 불꽃속의 것과 마찬가지로 너 또한 훌륭한 재료가 될테니까..."

「데루데루비전군」도, 케이즈 너도 「귀신의 집」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꺼라고.
그래도 솔직히 아쉽네. 내 역할은 처음이랑 마지막에 대사 몇번하고선 끝이라니.
투덜투덜 부루퉁한 얼굴을 억지로 숨기고 있자 케이즈가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풀린듯 억지로 몸을 일으킨 케이즈는 날 노려보며 탄식하듯 목소리를 내뱉었다.

"대체 넌...누구냐! 이 괴물아...!"

...이 모히칸 머리가 지금 싸움거는건가?
눈꼽만큼 생겨났던 동정심마저 사그라들며 머리에 핏대가 섰다.
하여간 깡패들이나 이 놈이나 레퍼토리는 하나도 변하질 않아요.
내 정체를 물어봤자 알려주지도 않았을테지만,
조금 약이 오른 김에 들릴듯 말듯 입을 작게 열어 속삭였다.

"...캐스퍼."

꼬마유령 캐스퍼.
유령인 오시즈가 떠올라서 내뱉은 이름이다.
애초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하기도 했지만, 들렸더라도 도움도 안되는 정보.
최후의 최후까지 기만으로 가득찬 대답에 잔뜩 고민이나 하라고.

화난건 화난거고, 그래도 마무리는 깔끔하게 해야 했기에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검지 손가락으로 케이즈의 이마를 짚었다.

"...그만 미혹의 달빛 아래 잠들어라."

하지만 검지 손가락은 훼이크.
엄지 손가락에 올려놓고 한껏 힘을 모은 가운데 손가락으로 케이즈의 이마를 튕겼다.
손가락 한개라고 만만하게 생각하진 않았겠지?
이마를 맞고 케이즈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눈꺼풀을 들려는 케이즈를 내려다 보았다.
끈질기네...이만 안심하고 기절하라고.

"깨어나면 네 부하들과 같은 처지가 되어 있을테니..."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끝난 「귀신의 밤」계획에 자축하며 웃는 날 보던 케이즈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절한 케이즈와 부하들을 전부 묶어둔 뒤, 라라가 저스틴에게 연락을 취했다.
저스틴이 온다면 이들을 은하 경찰에게 넘겨주겠지.

미카도 선생님께선 자신을 위해 힘써준 라라, 야미, 오시즈, 나, 그리고 「귀신의 집」의 우주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들 미카도 선생님께는 도움을 받은 사이였기에, 보은의 차원으로 한 일이었지만.
매드 사이언티스트 끼가 보이긴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미카도 선생님의 인망이 이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이번 「귀신의 밤」을 실행하면서 촬영한 영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처음 'SOLGAM'과 조우하고 한명을 잡을 때의 영상.
개천에서 한명을 잡을 때의 영상.
숲에서 두명을 잡을 때의 영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부인 케이즈를 잡은 영상.

오시즈가 빙의해서 전개되는 이야기중에 케이즈를 잡을때의 부분은 적당히 편집이 필요해 보였다.
도망치다가 멈춰선 난데없이 명랑한 어조로 되어버리는 케이즈의 모습은 실소를 자아내니까.
모아진 영상을 들고 우주인들은 고마워하면서 돌아갔다.
얼마뒤면 「사이난 유원지」의 「귀신의 집」에선 새로운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겠지.
직접 출연까지 한 입장인 우리로서는 사람들의 반응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몇주 뒤, 「사이난 유원지」에 명물 「귀신의 집」에서 들리는 비명이 더 커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구교사 묵시록 괴담」에 이어서 새로 내놓은 프로그램은 「귀신의 집」을 훨씬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모티브가 된 참조영상을 「귀신의 집」에서 볼 수 있도록 해뒀는데 그 영상을 두고 이야기가 많았다고 한다.

「데루데루비전군」으로 처리한 귀신의 모습과 절규라든지 허공에 떠오르는 총기들.
홀로 몸이 공중으로 꺾어지는 남자.
물속으로 사라져버린 남자.
옷만 남긴채 증발해버린 남자.
귀신에 홀려 떠나가버린 남자.
자동차에서 기이한 현상을 겪고 결국엔 붙잡혀버린 남자.
그리고...사령(死靈)들을 이끌고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검은 로브.

영상이 CG 처리 되었다느니 아니라느니,
중간에 필름을 이어붙인것 같은 장면이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적으로 검은 로브의 정체에 쏠려있었다는 것.
분명 이야기의 전개에서는 우주인 아저씨들과 오시즈의 역할이 가장 컸는데 말이다.
관객들의 눈에는 마치 검은 로브의 사내가 모든 현상을 일으키며 괴물들을 조종하는것처럼 보였나보다.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서 유원지측이 「'구교사 묵시록 괴담'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 또한 실화에 바탕을 두었습니다.」라고 홍보한게 문제였다.

관객들은 「구교사 묵시록 괴담의 배후에 아키츠 료스케가 있었듯이
사이난에서 벌어진 이번 이야기의 배후에도 아키츠 료스케가 있을것이다.」라는
실로 논리와 합리성이 무시된 폭거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한 것 같았다.

사령을 다루며(데루데루비전군이었습니다), 염력을 사용하고(오시즈였습니다),
괴물들을 지휘하는 비스트 마스트로서(귀신의 집 우주인 아저씨들입니다), 시간마저 멈추는 무시무시한 악마(The W○rld?) 아키츠 료스케.

어디의 삼류 스토리에나 나올법한 만능 캐릭이냐?

가관인건 마지막에 케이즈의 질문에 답했던 말을 가지고 별의별 추측이 난무했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들린 「...스...」라는 글자를 가지고 온갖 추측이 나왔다.
당연히 검은 로브의 정체(누구 마음대로?)인 「아키츠 료스케」가 나와야 한다는 대답은 양반이었다.
온갖 마술에 능통한 「캐스터」일 것이라고 하는 녀석이 있었다.
초능력을 사용했으니 「에스퍼」일 것이라고 하는 녀석도 있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하데스」라고 주장하는 녀석까지 나왔다. 명부를 관장하는 「명왕」이라나...



결국...「귀신의 밤」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제목은 잊혀지고
어느샌가 관객들 사이에서는 「사령왕(死靈王)의 저주(詛呪)」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덕분에 우주인 아저씨들의 원망섞인 불평을 듣을 처지가 되었다.
다행히도 「매지컬 쿄코 플레임」 출연준비를 하느라 우주인들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게 되자 그런 불평은 더이상 듣지 않게 되었지만.
「사령왕」이니 「명왕」이니 하며 수근거리는 학생들을 모습에 살며시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우주인 아저씨들이 미카도 선생님께 보은할 기회를 준답시고 나름 선의에서 계획한건데 말이지...
어쩐지 조금 곤란한 소문에 시달리게 된것 같아 골머리가 아팠다.




p.s. 편집된 영상을 본 야미가 감상을 말해줬다.

"기분 나쁠만큼 집요하게 사람의 마음을 추적하더군요.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충분히 당했다고 생각했지만...제 착각이었군요.
당신과의 심리전은 진심으로 피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 해결편 終 -



======================================
...다음편은 훈훈한걸로 쓰자.

SOLGAM은 원작 78, 79화에만 등장하고 그대로 끝.
오시즈와 '귀신의 집' 우주인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SOLGAM 편이었습니다.



솔직히 75화에서 오시즈가 학교에 등장했을땐 78화의 하루나, 코테가와 납치편에서 활약할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옴니버스. 그런건 없고 원작에선 그저 트러블만 일으키고 살지...OTL
평소 미카도 선생님께 신세를 지던 외계인들이 도와준다는 전개도 살짜쿵 기대했었지만...

관우 : 그런거 없다.



별수 있나요; 어차피 저분들이 없어도 사건은 해결되니까.
그래도 저로서는 미카도 선생님이 평소에 은혜를 배풀어준 사람들이
거꾸로 미카도 선생님께 도움을 줄수 있을정도로 나타나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번편은 그런 의미에서 조금 살을 붙여본 것^^;

오시즈는 여러모로 능력의 활용도가 높았기에 이번 편에서 가장 많이 활약해주었습니다.
빙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염력을 이용해 물체들을 움직이거나, 불을 일으키거나, 각성 상태의 사람마저도 꼭두각시마냥 조종할 수 있으니까요.
다크니스에 나왔던 암살자의 잉여 염력과 비교하자면...

그나저나 원래 유원지 이야기는 원작 100화 이후에나 쓸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보내는군요=_=a;
뭐, 다음에 소재거리가 떠오르면 다시한번 유원지 보낼지도 모르죠=ㅅ=;

유원지 명칭이야 「사이난 유원지」일거라고 찍었습니다.

악마꼬리,날개의 우주인은 「데빌루크 성인」
불쓰는 우주인은 「후레이무 성인」
연인들의 공원은 「러브러브공원」
수영장 이름이 「사이난 워터랜드」
학교 이름이 「사립 사이난 고교」
그러니까 유원지 이름은 「사이난 유원지」



p.s.부하들의 이름은 게스텔, 네즈란, 덱스터, 베르난도, 에스텔, 헤스테르.
부하 6명은 악역인데다 단역이고, 일일이 이름짓기 귀찮아서 선현의 예를 모범으로 삼아 가나다 네이밍으로 갑니다(...)

괴기한 대사 형식은...칠성전기에서 참조했습니다.
나름대로 괴기한 분위기를 떠올리려고 해도 제 기억속에서 가장 괴기스러웠던 장면은 저주받은 시스콤(...) 성기사씨의 전투 장면이었으니까요-_-a;
쓰다보니까 어느새 비슷한 양상으로 되어버린...OTL;;

p.s.2.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유원지 놀이기구로 이계트립은 선례가 없었으므로 료스케는 신경쓰지 않고 지냅니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식으로 살다간 노이로제 걸리기도 할테고.
혹여 롤러 코스터 앞에 갑자기 웜홀이 나타나서 빨려들어간다는 식의 초전개는 없음(...)

p.s.3.근데 저스틴도 확실히 데빌루크 성인이었군요. 꼬리가 있었네요.
다른 이들보다 훨씬 쎄보이는 땋은 댕기 머리처럼 생긴 꼬리가.

p.s.4. 내용 설명을 위한 이미지 링크

SOLGAM

차량 2대

데루데루비전군

귀신 영상

귀신의 집에서 일하는 우주인들

털뭉치형의 우주인들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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