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꽃내음이 묻어나는 이곳은 사립 사이난 고교.
고교 첫날의 소란스러움이 거짓말인 것처럼 또다시 조용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래.
'말그대로' 조용한...

수업이 끝났음에도 찢어지지 않는 침묵에 쌓인 고요한 교실. 통칭 1-B반.
어-이 모두들-. 이제부터 쉬는시간이라구?
중간중간에 숨돌리고 몸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몸이 피로하다고요?
아하하, 모두들 책에서 손도 떼지 않고 정말 열심이네-.

...현실 도피는 그만하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자 움찔하는 기척들이 느껴졌지만 무시무시.
조용히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는다.
복도를 지나던 학생이 날 바라보곤 질겁하며 종종걸음으로 지나간다.
이윽고 웅성웅성대며 소란스러워지는 교실안.

"봤니? 아까 앉아 있을 때 그 태도?"
"응, 위협적으로 목을 뚜둑뚜둑 거리지 않았어?"
"거기다, 빨리 수업 끝내라고 선생님까지 노려보던데?"
"심해. 아직 젊은 여선생님이시던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혹시라지만, 설마 여선생님마저 타킷으로 노리고 있는거 아냐?"
"미인이라면 선생님이고 뭐고 없다는건가 그녀석은!"
"덕분에 쉬는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선생님 도망치듯 나가셨지."
"우리도 덕분에 꼼짝도 못했잖아."
"아, 어쩌다가 저런 불량배가 우리반에 와서..."



"하아...아 아~"

아... 역시. 내가 안 일어나니까 다들 부담스러워서 못일어 난거로군.
나도 빨리 반에 친숙해지고 싶은데 말이지...
나, 노력했어... 정말 노력했다구.

수업중에 뚜둑 소리 낸건 말그대로 실수야.
칠판만 바라보느라 뻐근한 목을 잠시 풀어주려고 한건데, 무지하게 큰 뚜둑소리가 나서 나도 당황했다구? 위협한거 아니에요, 정말이야!
침착하게 수업하던 여자 선생님이 그자리에서 굳어버리셨을땐 진짜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다.
게다가 나름대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들었는데, 왜 시선을 피하시는 건가요 선생님...?
그리고 어째서 다른 학생들은 아무도 손을 안들어?
혼자만 나서는거 같아 왠지 민망하다고!

인정하기 싫지만 내 목돌리던 소리때문에 경직되어버린 교실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되살리고 싶어서,
수업중에 나서서 문제를 풀어보려도 해보고,
수업의 활기를 불어넣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수업의 요점에 대해 질문해 보기도 하고...
지식적으로는 이미 고교과정은 숙지한 상태라 나름대로는 적절한 수업참여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째서 더 침묵하는 건가요?!
벌써부터 선생님들 사이에도 블랙리스트로 올랐는지, 선생님까지 애들과 함께 침묵 해버렸어?!

처음으로 질문에 대답하려고 손을 든 상태로 있으면, 선생님이 어색한 미소를 띄우고 날 지적했었다.

"에 또... 아, 아키츠 료스케군이 대답해보세요."

...왜 더듬으세요?

"네. 그러니까...(중략)입니다."
"아, 아. 잘했어요. 그럼 다시 진도를 나가도록 하죠."

꽤나 당황하셨지만 선생님은 날 독려하고 수업을 계속하셨다.
여기까진 정상.
약간 경직된 반응이었지만 이제 막 교직을 맡으신 것으로 보이는 여선생님으로선 그럭저럭 괜찮게 대응하셨다고 본다.
문제는... 그 이후로 수업이 끝날때까지 선생님이 더이상 아무 문제도 내지 않으셨다는 거다.

...분명 학생들 반응이 얕아도, 아까 전까지만 해도 꾸준히 질문을 하셨잖아요?!
게다가 왠지 수업 진행 속도가 빨라졌어?
이렇게 나가다간 따라가는 학생도 버겁고, 나중에 숙제라도 나오면 범위도 만만찮을 듯 해서,
방금까지 지나간 요점 질문을 하는걸로 잠시 선생님을 멈추자고 생각했다.

"저기~ 질문 있습니다."

"에엑! 아, 아키츠군?"

"진도를 따라가기가 좀 힘들어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5페이지 전의 ...에 대한 부분을 다시 설명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에, 에 또- 그러니까..."

당황해가면서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더듬거리시면서도 설명하시는 선생님.
너무 긴장 하셨는지 비교 대상의 성향을 뒤바꿔 설명하시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선생님. 그거 성향이 거꾸로..."

"...! 미, 미안해요!"

"......"

왠지 반쯤 울먹이며 대답하는 여선생님에 할 말을 잃은 나.
나를 향해 쏟아지는 클래스메이트들의 매서운 눈빛들이 무섭다.
대체 왜 선생님을, 그것도 아직 신임의 여선생님을 괴롭히는 거냐는 의미가 물씬 풍겨나온다.
"(귀축)""(악마)""(마귀)"라는 속삭임조차 들려온다.
...내가 정말로 마족이었으면 지금 받고있는 라-틸○급 정신공격으로 벌써 죽었을꺼라고요?

"(대체 왜 저런 질문을 한거야?)"
"(뭐라도 꼬투리 잡고 시간이라도 죽이고 싶었던거 아냐?)"

쓸데없이 질문을 해서 수업 진행을 끊는다는 시선마저 받았다.
아니 그거 요점이야. 핵심이라고...
난 그냥 그걸 강조해서 다들 도움이 되라고 한거라고?
기초 만세-. 흑...

어떻게든 선생님도 상태를 수습하고 설명을 마친뒤 다시 수업을 나가기 시작했다.
따라가기 힘들다는 내말을 신경썼는지 이번에는 좀더 천천히 진도를 나가셨다.

아무튼 주변의 힘든 시선들도 수업이 진행되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나도 무안한지라 더이상 질문이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후로 민망해서 가만히 칠판만 뚫어져라 바라본게 문제였나?

'딸꾹'

...어머나?

잠시 책에서 고개를 드셨다가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딸꾹질을 하시는 선생님.
무슨 일인지 선생님과 나를 쳐다보는 주변의 당혹한 시선이 오히려 더 무섭다.

잠깐! 당황하지 마라!
이건 공명의 함정이다!

겉모습은 철판깐 듯 태연했지만 속으론 패닉상태에 빠졌던 나는 그저 잽싸게 칠판에서 눈을 떼고 뚫어져라 책만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딸꾹질은 그칠 생각을 안하고, 클래스메이트들은 나를 향해 끊임없이 날카로운 시선을 향하고.
아니, 그러니까 나보고 어떻게 대응하라고?

딸꾹질 멎을때까지 등이라도 두드려드려?
아니면 안아서 다정히 위로?
사죄의 뜻으로 알몸 퍼포먼스?

수업시간에, 게다가 상대는 선생님이라고?
기껏 나온 선택지조차 상식적이지 않고.
첫째껀 선생님의 위엄 급하락에다가, 옆에서 보면 불쌍한 여선생님 꼬드기는 폐륜 양아치의 구도다.
두번째껀 아예 캐릭터조차 다르고,
세번째에 이르러선 상식이 그야말로 천원돌파 하고 있다. 나, 교장선생이 아니니까...

여선생님은 딸꾹질이 멈추지 않고 눈물마저 맺혔지만,
꿋꿋하게 수업을 마저 진행해 나갔다.
더듬거리면서도 힘겹게 수업을 진행해나가는 모습에 내 양심이 그야말로 브레이크...

중학교때 조우한 불량배들이 보내오던 시선을 능가하는,
지금 클래스메이트들이 보내는 엄청난 비난의 시선에 내 위가 쓰려온다.

- 네가, 울 때까지, 나는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아!

양아치 루머에 휩싸였을때는 나 자신이 무혐의였기에 별 타격이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만든게 나라는 피할수 없는 사실에 차곡차곡 타격이 쌓여간다.
칼보단 펜이 더 강하지만, 때로는 말없는 시선이 더욱 강하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젠장! 도와줘 푸치에몽~!
메이드 ○ 헤븐이 필요해!

부디 이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면서 나는 메마른 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라마지않던 쉬는시간 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재빨리 책을 덮었다.

"그, 그럼 이것으로 수업을 마치겠어요. 모두들, 수고했어요."

그리곤 인사도 받지 않고 잽싸게 교실을 떠나버렸다.
아, 일어나 인사를 하려던 코테가와가 엉거주춤 선채로 굳어버렸다...
미안 코테가와.
다음 수업부턴 조용히 있을테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날 째려 보는건 좀 봐주세요...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복도에 서 있는거고.

"에효효..."

터덜터덜 복도를 걷는다.
원래라면 오해를 푼답시고 선생님을 쫓아가는것도 생각했었지만, 떠올려 버렸다 체인지 ○이.
질문한답시고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난데없는 쫓고 쫓기는 도주극으로,
그리고 결국엔 우연의 중첩으로 계단에서 선생님을 밀어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나 버렸던 강투지의 악운을.
뭐, 나라면 내 몸을 믿고 어떻게든 선생님을 감싸 안은 채 떨어지겠지만서도...

지금 이 외모로 여선생님을 쫓아 뛰어갔다간, 말그대로 교내 강○미수 같은 얼토당토 않은 누명을 쓸거 같다.

- 복도에서 뛰면 안됩니다.
- 특히 오해의 소지가 많은 양아치는.

고교 첫 시험기간이 지나면 반응이 좀 괜찮아 지려나...
이래저래 중학교 당시에는 성적덕분에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에게 그나마 쥐꼬리만큼의 대우는 받았는데 말이지.
「분명 야쿠자급 양아치지만, 성적에 민감해서 교내생활 중엔 사고는 안일으키려 한다」는 인식 정도는.

...모범생 타이틀 따려면 내가 수염을 밀던가, 전국순위를 먹던가 둘 중 하나를 해야 할지도.
'나'적으로는 후자가 차라리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는게 문제지만.

"잠깐만. 거기, 아키츠 군."

응?

들려오는 소리에 무심코 제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양손을 허리에 얹은 자세로 약간 치뜬 눈매의 아가씨가 당당히 서있었다. 코테가와다.

"아, 코테가와. 무슨일이야?"

순간 눈썹 약간 치켜세워지며 코테가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키츠군..."

"네, 넵?"

왠지 모르게 박력이 느껴지는 자세와 조용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존칭을 써버렸다.

"전 말이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위원장을 맡으면서 생각했어요.
일년동안 정말로 반을 위해서 힘내겠다고요.
그러기 위해선 교칙을 준수하고 단정한 학급을 만드는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키츠군이 반을 위해 협조해준다고 할때도 솔직히 기뻤어요."

"아, 그건 정말로 황송..."

"그래요, 정말로 기뻤는데..."

"어-음, 코테가와씨?"

왜일까... 분명히 나로선 감지덕지해야 할 저 말의 뒤에 이어질 무언가가 무섭다.

"어!째!서! 아키츠 군! 당신은 이렇게까지 학급을 시끄럽게 하는걸까요? 네?!"

"시, 시끄럽게 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면 방금 수업은 대체 뭔가요?!
어째서 선생님께서 울먹이고, 시선을 피해?
덕분에 수업은 엉망진창...
인사도 받지 않고 나가시는걸 당신도 봤잖아요!
클래스메이트들 마저 당신을 탓하고 있었다고요?"

"이, 일부러 그런건 아니에요?"

"그럼 대체 뭔가요?"

화를 누르려는듯 후우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는 코테가와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코테가와는 나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었다.
여기서 잘만 대답하면, 클래스메이트의 오해를 풀고 긴장된 반 분위기를 이완시킬 수 있을것이다.
어느샌가 클래스 메이트들은 물론이고 다른반 녀석들마저 교실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을 고르면서 천천히 말을 꺼낸다.

"그러니까 난, 그저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했을 뿐이고,
진도가 빨라져 좀 천천히 해달라고 부탁했을 따름이고,
주변 시선이 거북해서 그저 칠판을 쳐다봤을 뿐이고,
오해한 선생님은 나에게 겁먹었을 뿐이고..."

척-.

갑자기 코테가와가 한손을 들어 나를 제지한다.
그리고는 관자놀이를 다른 한손으로 누르며 나에게 질문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모든게 그저 오해라고 말하는거군요."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자, 그럼... 방금전 선생님이 당신에게 그렇게 겁먹은건 왜일까요?"

"...역시 외모?"

싱긋.

코테가와는 그야말로 꽃처럼 미소지었다.

-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아...

이런 환청이 들리는것 같았다.

"그럼 오늘 경험을 통해 당신도 학생다운 외관을 해야할 필요를 느꼈겠지요?"

"아니, 난 도무지 무슨 말인지..."

"거짓말!"

코테가와짱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말그대로 도끼눈.
미인인 만큼 불필요할 정도로 무서워!
나 정말 쫄았다구...

"여기까지 와서 부정하는건가요?
당신의 스타일이 반의 분위기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그, 그것과 이것은 별개,"

"유감이군요 아키츠군. 전 불량들 상대라면 눈빛만으로도 속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거짓말-?!"

"거짓말입니다."

"......"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을 하는 코테가와에게 경악한 상태 그대로 굳어버린 나.

"아까전, 말까지 더듬고 있었잖아요.
속으론 당신도 알고 있었을꺼예요.
당신의 학생답지 않은 외관이 사람들을 무서워 하게 한다는걸."

"윽..."

"인정하시죠. 당신의 지금 그 모습은 그 자체로 풍기를 어지럽힙니다!"

아. 알아, 나도 안다고 코테가와짱.(혼란중)
하지만 이계트립 이벤트를 피하려면 싫어도 이 외모를 해야 한다고.
요즘 세상에 누가 좋아서 하겠어 이런 털보패션.
질풍노도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나로선 거울로 내 구레나룻을 보는거 만으로도 진짜 괴롭다고?

솔직히 시대착오적인 이런 패션 진짜 웃기잖아?
그러니까 낄낄대면서 마음껏 웃어주면 좋잖아?
그럼 적어도 민망한 웃음이라도 지으면서 이야기 거리로라도 삼을텐데!
아무도 웃지를 않아! 눈만 마주쳐도 피해!
이 스타일이 무서운게 아니야!
쓸데없이 날카로운 이 눈매가 나쁜거라고!

...아니, 미안 부모님.
방금 말은 철회.

양아치 외모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이 '날카로운 눈매로 낳아줘서 미안하다.'라고 울면서 사죄하셨을 때.
그때의 부모님을 떠올리면 방금 말은 진짜 NG.

어쨌든, 이 외관(눈매가 아니다)이 문제라 할지라도 지금 내 사정으로는 외모를 바꿀 순 없다.
적어도 이 외모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길 기다리는수 밖엔 없는데,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난처한 사건이 너무 일찍 터져 버렸다.
첫날의 희망과 달리, 잘못하다간 빼도박도 못하게 말종 양아치로 찍혀버릴수도 있는 문제.
뭔가, 뭔가 대책이 없을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정면을 바라본다.
직접 가위라도 가져와서 내 머리는 물론 수염마저 자를 의욕이 만만한 코테가와가 보인다.
역시나 의욕넘치는 위원장 타입.
아, 진짜 위원장이지.
음?

코테가와 = 위원장 = 풍기단속.
나 -> 위원장 돕기 -> 모범활동 -> 교내 평가 상승

이거다!
재빨리 마음을 정한 나는 결의를 굳혔다.
강렬해진(사나워진) 내 눈빛을 보고 코테가와가 움찔 했지만, 지금이야 말로 최적의 상황이다!

"코테가와."

"뭐, 뭐죠?"

방금전까지만 해도 코테가와의 기세에 밀려 뒤로 젖혔던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접근하자 코테가와가 한걸음 뒤로 물러 선다.
아까까지의 당당했던 기세가 조금 줄어들고 왠지 약간 겁먹은 듯한 눈빛으로 양손으로 상체를 슬며시 가리며 나를 노려봤다.
흔들리는 눈망울도 귀엽네...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을 뿌리치려고 기세를 타고 몸을 숙였다.

볼○맨이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지!
하지만 내가 무릎을 꿇는건, 큰절을 하기 위해서다-앗!

나는 수치심을 버리겠다 J○J○!

중력에 이끌려 하강하는 몸을 느끼며 머리를 박으며 외쳤다.

"죄송합니다아아아!"

통쾌하리만큼 깔끔한 오체투지.
갑작스런 전개에 나를 대하던 코테가와도, 바라보던 클래스메이트들도 모두 굳어진 것 같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코테가와의 바로 앞 바닥에 머리를 댄 상태로 나는 할말을 내뱉는다!

"자, 잠깐. 대체 무슨..."

"위원장 돕기든 뭐든 할테니까 얼굴만은 좀 봐주세요-!"

나의 수치심을 제물로, 근면성실의 타이틀을 소환한다!
나의 모습은 확실히 비굴.
화면 구도는 남두오차성의 일인, 흉악한 거인, 산의 후도우를 굴복시킨 유리○.

지나친 상황에 당황해하는 코테가와를 앞에두고 멈추지 않고 말을 한다.
환경 미화라든지, 과제물 옮기는거라든지, 선생님 심부름이든지 뭐라도 좋으니까
불량한 외모와 변재가 될만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식으로.
이렇게까지 사정하는데 말을 안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트러블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이 아가씨가 규범에 엄격하지만 의외로 감정의 흔들림에 약하다는걸 알고있다.
아무리 외관이 흉악해 보이는 양아치라도, 절실한 태도로 부탁해오는 것마저 무시할만큼 매몰차진 못하다는걸.
약점을 공략해서 미안 코테가와-.
고맙게도 코테가와는 아직 당황을 추스르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날 말리려고 했다.

"아, 알았으니까요 아키츠군.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 이해했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그 민망한 자세는 그만두세요. 당신도 부끄럽겠죠?"

배려 고마워요 코테가와.
안그래도 지금 수치심이 바닥에 가까워 지고 있는 참이다.
덕분에 내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화끈거리는게 느껴진다.

"저기, 그러니까 얼른, 고개를 드세요.
다른 학생들도 쳐다보고 있단 말이예요."

코테가와의 말에 '계획대로'라고 뇌까리며 겨우 고개를 든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코테가와. 뭐든 도울테니까..."

말하는 도중 입을 다물었다.

"...아키츠군?"

코테가와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지만 그런걸 신경쓸 수 없었다.

눈앞에 비치는 굴곡진 뽀얀 맨다리.
그 사이로 보이는, 약간의 골이 파인 자국이 보이는 순백의 프릴이 달린 천.

아...그러고보면 그랬지.
이 학교 치마 무지 짧아...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심박수가 대책없이 증가하는걸 느꼈다.

"아키츠군, 괜찮아요?"

아직까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걱정스레 물어오는 코테가와.
그만둬! 이런 더럽혀진 날 걱정하지마...!
이상한 배덕감을 이겨내지 못한 내 양심이 사고회로를 마비시켰고,
결국 사망 플래그가 입에서 튀어 나왔다.

"희-흰색?"

무의식적으로 클래스메이트들에게까진 안들리도록 속삭인건 코테가와보다 내 체면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색골 팬티마란 별명까지 얻으면 나 진짜 운다고...

순간 무슨 말을 들은건지 이해하지 못하던 코테가와였지만,
빨개진 내 얼굴(오체투지때의 수치심으로 더 빨간거지만)을 보고 나자 그제사야 상황파악을 했는지,
점점 얼굴이 새빨갛게 되며 치마를 손으로 가렸다.
아, 평소보다 더 귀엽네라며 생각하며 난 조용히 심판을 기다렸다.



"파, 파렴치해욧-!"

짜-악-!



원치않게도 코테가와의 간판대사를 듣는 첫 상대가 되었습니다.
휘둘러진 손바닥을 맞고, 앉은채로 한바퀴 몸이 스핀을 하면서 다이나믹하게 뒤로 날아가는 나.
'트럭도 튕겨내는데, 어째서 이럴땐 개그 보정이 먹히는 걸까...' 하고 날아가는 주제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나였다.
물론, 볼에 단풍잎도 새겨졌습니다. 아하하.
앗따따...



이때 상황으로 클래스메이트 내의 코테가와의 평가는 급상승.
학기 첫날 '고양이 목의 방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코테가와가,
이날 이후 '맹수 조련사'란 요상한 칭호를 받아버릴 정도로...
맹수는 누구야 맹수는.

본의 아니게 속옷을 엿본 대가는 컸다.
딱히 코테가와가 그걸 약점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악용할 생각도 없어보이지만,
그저 대하는 내가 괜시리 죄책감을 느낄 따름이다.

여자에게 약점을 잡힌 남자는 괴롭다.
일을 도와줄때 마다 가끔씩 생각한다.
코테가와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코테가와는 무의식중에 남자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함락시키는 법을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고.

그때의 일을 코테가와가 따로 언급하진 않지만,
가끔씩 얼굴이 빨개지면서 노려보는걸 볼때면 아직까지도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한다는게 보일 정도다.
덕분에 코테가와의 잔소리를 들어도 대꾸하나 못한 채로 코테가와의 일을 도와줄 수 밖에 없었다.

뭐, 내가 자발적으로 돕고싶다고 했으니 돕는게 싫다는게 아니고,
저런 반응이면 나도 덩달아 못 잊어버리니까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도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여자애들과 이야기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내 화술이 코테가와에게 미안함을 충분히 전할만큼 대단하다고 생각치도 않았고,
일부러 사과하려고 그때의 상황을 들춰내봤자 괜히 나름대로 잘 마무리된 일에 다시 상처를 내는 수도 있었으니까.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코테가와도 서서히 잊어가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 덕분에 1-B의 세력 구도는

아키츠 료스케 - 야쿠자급 양아치 (야쿠자 2세 의혹)
코테가와 유이 - 대항마 (위원장)
(넘을수 없는 사차원의 벽)
그외 - 클래스 메이트

라는 것에서,

코테가와 유이 - 정점 (위원장)
(넘을수 없는 사차원의 벽)
아키츠 료스케 - 꼬붕 (위원장 보조)
그외 - 클래스 메이트

로 바뀌어 버렸다.



클래스 안의 내 평가도 굉장히 하락했다고나 할까.
예전처럼 수업때마다 숨막히는 듯한 긴장과 고요는 없었다.
수업 중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자연스레 몇명이 손을 들어 대답하고,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면서 원활한 수업 풍경이 펼쳐졌다.
아, 물론 난 침묵했다.
슬슬 분위기를 읽을 정도의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니까 나는 이대로 묻어가렵니다~.

선생님들의 분위기도 많이 좋아지셨다.
처음에는 긴장된 클래스 분위기에 덩달아 경직되셨지만,
지금은 유들유들하게 수업을 진행하실 정도로 여유가 생기셨고,
내 잘못으로 반쯤 울려버린 여선생님도 최근 들어선 수업시간에 간간히 미소지으시며 농담을 하실만큼 여유도 생기셨다.
잘됐군 잘됐어.

하루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모두들 하교길에 오르는 시간.
천천히 교실을 나서며 내심 만세를 부르는 가운데 생각했다.

이래저래 이상하게 일이 꼬여 오해를 받고 지내지만,
결과적으론 이렇게나 일이 잘 풀리는걸 보면,
역시나 하늘은 나 아키츠 료스케의 편에 있다고!

「우와아악-!」

복도를 걸으며 느슨하게 풀리려는 얼굴을 억지로 굳히면서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때 창밖에서 무엇인가 비명이 들렸다.
무슨 일이지?

콰-앙-!

호기심에 슬쩍 창가를 바라본 순간 엄청난 충격이 얼굴을 강타했다.
바보같은 육체스펙을 가진 뒤로 거의 느껴본적 없는 충격에,
게다가 약한부위인 코를 맞은 상황에 순간적으로 정신줄을 놓을뻔 했다.
어느새인가 뒤로 넘어간 나의 옆으로 떨어진 하나의 야구공...

에,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일이지?

「우오오오오 멈-춰-줘!」
「꺄, 리토 멋있어!」

아...라라 특제야구배트 사건인가...
가물가물한 정신줄을 억지로 붙잡으며 초점을 잡고나니 시야를 가리는 살색과 하얀색의 물체.
...쿨럭, 이 패턴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살짝 움직여본다.


수거한 프린트물을 양손으로 든 상태로 교실을 나선 코테가와가 새빨개진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안녕 코테가와."

말없이 코테가와는 한쪽 발을 들어올렸다.
아니, 그렇게하면 더 훤히 보인다니까.
눈앞에 떨어져 내리는 실내화를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아, 세상은 어째서 이렇게나...



"파렴치해욧!"



퍽-!



화끈한 발차기를 맞으며 나는 왠지모를 처량함과 안도와 만족감 속에 가물거리는 의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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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러님의 축전을 3화 삽화로 추가했습니다.
축전을 올려주신 터틀러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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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음에 드는 여선생님이라도 사이난 고교에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닛타 하루코 선생님은 미캉네 초등학교 담임이시고...

트러블SS를 쓰기 때문에 주인공 외의 오리지널 캐릭터는 등장시키지 않을 생각이라 여선생님께선 접촉사고도 없이 일회 출현으로 끝.
이름없는 선생님 A라서 미안해요~

어릴적 동경하던 동급생의 요시코 쌤은 지금쯤 뭘하고 계실까요.

별 다른 일이 없다면 4편은 아마도 수학여행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네메스 님// 5살 차이는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특히 2차원에서는.
연풍의 주인공은 회사원 주제에 여학생(妹)과 맺어진 전설이 있지요.
뭐, 아직 뒷 전개는 어쩔지 결정은 안했는데 말이죠^^;

핑크게마 님// 역시나 뭔가 미묘했던가요?^^;
실제로 원래 전개는 훈훈한 이야기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근데 다 쓰고나서 읽어보니 훈훈은 한데 재미가 없어요...-_-;
그래서 어쩔수 없이 갈아엎고 새로 오해가 쌓이는 전개로 나갈수 밖에 없었죠.
다음엔 좀더 노력하겠습니다~
이후 미캉의 등장은 원작의 진행 상황에 따라 결정될겁니다.

sonicboom 님// 댓글은 정말 마약과 같이 무섭죠.
힘내겠습니다^^

유레인 님// 감사합니다 유레인님! (+ㅅ+)> (척)

어어 님// 도덕 건전하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상식인이예요~
그리고 미캉이 어리다지만, 주인공도 꽤나 어린 나이라고요.
나노하쪽에 가서 9살배기 애들한테 플래그 세우는 SS도 많잖...(퍽)

슬픈레퀴엠 님// No. 주인공도 아직은 소년입니다!

kero군 님// 이 글이 19세 게시물로 있지 않다는 것으로 QED.
맺어지는건 어쩔지 모릅니다만.

사심안 님// 전 행복한 결말을 추구합니다.
비바 라리카양.

CloudAngel 님// 기대에 부합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장애물이 높을수록 읽는 재미가 있는 법.( -_)y=~ (담배)

열혈의그라프아이젠 님// 아니오, 마음의 땀입니다.
하지만 전 S가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언젠간 행복해 지겠죠.
언젠간...

lunation 님// 힘내겠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그야말로 메이드 인 헤븐!ㅠㅠ;

적월립견 님// 면도? 사고로 불타서 없어지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 모르겠지만요.

Dietrich 님// 얘가 수염깎아서 될 눈매였으면, 전부터 눈매 더럽단 소린 안들었을껍니다.
뭐, 세월이 흘렀으니 의외로 샤프한 미남으로 자랐을 수도 있긴 한데...
콩깍지 끼면 다 멋져 보이니까 그건 바랄수 있겠죠^^;

착한녀석 님// 불행은 행복과 같이 오니까, 힘내야겠지요.^^;
근성과 인내가 없으면 주인공은 못해먹습니다.

월야의주민 님// 어떻게 답변을 달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 방식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일일이 코멘트 보면서 따로적기가 좀 번거롭긴 하네요^^;
닉네임 적는것도 그렇고요...쿨럭;

노즈 님// 죄송합니다. 제 안의 B를 탓하십시오.
다른 버전인 오타쿠 로드(道)에서 처럼 비대한 귀축 안경 오타쿠로 안해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름 관대한 선택이었어요? ( -_-);;

카르나스필 님// 흐지부지 끝내진 말아야겠죠.
솔직히 굴릴만큼 굴려놓고 솔로로 만들면 불쌍하잖아요?
저도 양심은 있습니다. 털이 났지만.

에피고넨 님// 응원 감사합니다^^
적어도 사는 세계관이 험난하진 않으니 비참하진 않습니다.
고생한 만큼 보답도 받겠지요.

신작 님// 감사합니다. 새편도 잘 써보겠습니다~^^

우레벽력 님// 네. 마음의 소리에서 따왔습니다.
그편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날 로그인 하게 만들다니...-_-b

BlueGlass 님// 기왕이면 색다른 녀석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그 얼굴값을 톡톡히 하도록 노력할 생각인데...
설사 수염이 없었다 치더라도 주인공이 된 이상 오해받는거야 말로 정석(...)

휴트랑 님// 매력적인 아가씨들이 꽤 있지요.
다만 옴니버스 스토리고, 너무 많은 아가씨들을 다루다보니,
각자의 개성이나 매력이 덜 표현된 듯 하지만요.
인물들의 매력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심안 님// 제말이 그말입니다-ㅅ-b
11살 소녀와 16살 소년. 만화적으론 허용범위입니다.
지인의 친구의 부모님은 아버님이 군인일때 어머님이 초등학교 6학년이셨다고...
현실이 더 판타지예요 여러분.

원투비 님// 전 코테가와가 몹쓸 역할을 맡는걸 보고싶지 않아요~
이계트립플래그를 어떻게든 해결한다면 또 모르지만요.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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