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테가와와 시즈의 거리가 가깝다.
쉬는 시간에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사이가 좋아진게 한눈에 보인달까.
풍기단속 기간때만해도 시즈를 '무라사메씨'라고 부르던 코테가와가 최근에는 시즈를 '오시즈짱'이라고 부르는걸 듣는다면 누구라도 깨닫겠지만.
시즈도 코테가와의 호칭을 '코테가와씨'에서 '유이씨'로 바꿨고.
아마 풍기단속 기간 때 벌어진 해프닝 탓으로, 시즈가 코테가와네 집에 숙박했던 것이 둘의 사이가 진전하는데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코테가와랑 시즈랑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둘의 얘길 듣기론, 그날 밤은 파자마 파티 같은 느낌으로 고민이나 일상의 얘길 나누면서 지냈다는 듯 하다.

시즈와 있을때 코테가와는 평소보다 분위기가 들떠 보인다.
그때 이후로 가끔 시즈가 코테가와네 집에 놀러가곤 한다니까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둘이 죽이 잘 맞나보다.
평소의 새침한 태도도 좋아하지만, 동갑내기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코테가와의 모습이 꽤나 신선하달까.

다만, 이 감동을 말로 표현했던건 실수였지만.

"코테가와에게도 친구가 생길줄이야..."

"실례군요! 그럼 마치 제가 외로운 사람인것 같잖아요?"

"그렇지만 코테가와는 절친이라고까지 할 상대 있었어?"

"무, 무슨 말이에요! 당연히 있죠! 야미짱이라든가! 미캉이라든가!"

당황하면서 항의하는 코테가와의 말에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봤다.

"야미랑 미캉, 그리고 시즈랑 나를 합쳐서 넷인가."

"은근슬쩍 자기를 절친에 끼워넣지 말아요 아키츠군."

"에이~ 왜 그래? 1년이나 넘게 함께 지냈으면서."

"본의 아니게도 말이죠."

"핫핫핫, 쑥스러워하기는."

"쑥스러워하지 않았어요!"

"진정하세요 유이씨.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그러니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니까!"

시즈의 보충에 코테가와가 신음을 흘렸다.
능글맞은 사람이랑 태평한 사람 상대로는 상대적으로 약한 코테가와다.

"그러는 아키츠군이야 말로 절친이랄 사람 없죠?"

"......"

정정. 의외로 반격이 강하다.

"이, 있어! 코테가와라든지,"

"아, 전 빼주세요."

"......울어도 돼?"

"저 말고 절친이 있냐는 뜻이었으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말아요."

귀찮다는듯 코테가와가 손을 내저었다.

"그 다음은..."

"그리고 여성은 제외하고요."

"어째서!?"

코테가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전 아키츠군의 교우관계가 신경쓰이는거지, 여성 편력을 듣고 싶은게 아니에요."

"맞아요. 여성 앞에서 다른 여성의 얘길 하는건 실례고 말예요."

코테가와도 심한 소릴 하네.
시즈의 말은 정론이다만.
그래도 남성 중에서 친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유, 유우키라든가?"

"유유상종이로군요."

"엣?"

"둘이서 나란히 교내 풍기문란의 대표주자잖아요?"

"항상 문제만 일으키는건 아니잖아?"

"그랬다면 지금쯤 징계감이었어요.
그렇잖아도 풍기단속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그 다음 절친은?"

"음......렌?"

"...렌군인가요?" "렌씨요?"

"왜 그래?"

"하지만...렌군은 최근 모습을 본적도 그렇게 많지 않았죠?"

"학교에 오는건 대개 룬씨였으니까요."

"그리고 아키츠군이 렌군이랑 얘기했던 적은 거의 없지 않나요?"

"저도 료스케씨가 렌씨랑 이야기 하는걸 본 적은 그다지..."

"......"

그러고보면 최근엔 라라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는 렌의 모습도 거의 본적이 없었구나.
학교에서 렌보다 룬으로 있는 빈도가 높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러니까 결국 아키츠군의 동성친구는 유우키군 한명뿐이란거군요."

"레, 렌도 있다니까?"

"...정말 절친인가요?" "정말일까요?"

"우..."

"뭐야 수염? 렌의 이야기?"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의아한 얼굴의 룬이 서 있었다.
오전 수업 동안엔 없었는데 이제 온건가?

"룬씨? 지금 온건가요?"

"아침에 촬영이 있어서 늦었어. 이래뵈도 서둘러 온 편이지만."

"룬씨~ 혹시 괜찮다면 점심 같이 드시지 않을래요?"

"...수염이랑 넷이서?"

힐끗 내쪽을 내려다보는 룬의 모습에 머리가 번뜩였다.

룬 = 절친 = 렌

지체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 벌려 룬을 반겼다.

"오! 마이 소울 프렌드!(영혼의 벗이여!)"

"엑!? 뭐야 수염?"

난데없는 환대에 당황한 룬이 무심코 한걸음 물러난다.
내 외침에 반친구들도 놀라서 쳐다보고 있고.
흥분한 나머지 그만 소리가 컸나보다. 반성.
하여튼 지금은 룬에게 권유하는게 우선이다.

"그렇잖아도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자, 우선 시즈 말대로 점심 함께 먹지 않을래?"

"어째서 내가 너랑..."

"어째서냐니, 너와 나 사이잖아!"

"너와 나 사이라니 뭐야!"


"친구! 아니, 그 이상!"

"그 이상!? 너, 너...!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건데!?"

룬이 새된 소리로 외쳤다.

"좋잖아? 절친끼리 식사를 함께 하는 것 정돈 보통이라구?"

"좋지 않아! 애초에 너랑 그렇게 된 기억도...?"

"룬?"

눈썹을 찌푸린 룬이 되물었다.

"...절친?"

"응. 절친."

"......"

"......"

"으럅-!"

"훕!?"

룬의 붕권이 배에 작렬했다.
렌에게 배우기라도 했는지 묵직하게 찔러온 룬의 일격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꺼져버려! 이 멍청아!"

"기, 기다려! 마이 프렌드! 뭔가 실수했다면 사과할테니까!"

"그런거 없어!"

씩씩 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려는 룬을 애타게 불렀다.




"...오랜만에 먹는 와사비 샌드위치는 각별한데...
으으...코가 아려."

어디서 꺼낸건지 모를 와사비를 샌드위치에 발라선 내게 먹이려는 룬을 막지 못했다.
와사비로 괴로워하는 내 모습에 코웃음을 치는 룬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왜그래? 한개 더 먹고 싶어?"

"와사비 샌드위치는 더는 필요없어.
그리고 팬 제 1호는 소중히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팬 1호? 네가?"

"네가 아이돌이 되기로 한 순간을 목격한 첫 팬이잖냐."

"글쎄...내가 큰 맘먹고 첫 싸인 해주겠다고 할 때 거절한게 누구였더라?"

"팬 1호까지 차지했는데, 거기다 첫 싸인까지 가로채는건 역시나 다른 팬들에게 실례일것 같아서 사양한건데."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고개를 내저으며 룬이 샌드위치에 와사비를 바르곤 내게 건넸다.

"...또?"

"미운 녀석 떡 하나 더 준다잖아."

"미, 미운녀석...? 아무리 그래도 와사비는 바르지 않아도 괜찮잖아?"

"어머나, 이것 좀 봐. '와사비로 싸인한 샌드위치'야. 응? 팬 1호씨."

"쓸데없이 고퀄리티네! 이런건 비겁해!"

웃음을 삼키는 룬에게서 울상을 지으며 샌드위치를 받아들었다.
그냥 먹긴 아까워서 샌드위치를 촬영한 뒤에 한입 베어무는데 빤히 쳐다보던 코테가와가 툭하고 중얼거렸다.


"...룬씨와 사이가 좋아보이네요 아키츠군?"

"절친이니까."

"웃기지마. 너랑 절친이라니 사양이니까."

방금전 절친 운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룬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룬 = 절친 = 렌'이라는 내 도식에 코테가와의 한심하다는 시선이 꽂힌건 덤이다.

"애초에 조금 가까워진걸로 바보같이 들뜨니까 방금 같은 꼴을 당하는거라구."

"『그렇게 말하면서 쑥스러움을 숨기려는 룬이었다.』"

"멋대로 나레이션 넣는거 그만둬!"

"하하하! 유감이지만 샌드위치는 이제 다 떨어졌으니까 더이상 무서운건 없다구?"

"너...진짜 두고봐. 방송에서 학교 화제가 나오면 기대하라구?"

"리얼하게 무서운 복수는 좀 봐주지 않겠습니까?"

악명을 넓히는건 좋지만 뒷감당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의 악명은 이젠 좀 사양하고 싶다.



티격태격하면서 얘기를 나누던 중, 방금전 화제로 되돌아간 시즈가 화살을 룬에게 돌렸다.

"그런데 룬씨는 절친이 있나요?"

"그러니까 나,"

"시끄러 수염. 아직은 딱히 없네. 라이벌은 있지만."

"혹시 라라야?"

"...아냐."

내 말에 룬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랑의 라이벌 같은 느낌으로 생각했는데 룬의 생각은 좀 더 견실했나보다.

"그 괴력녀라면 지금은 됐어.
지금 이기고 싶은 상대라면 키리사키 쿄코."


"쿄코라면, 그 여고생 아이돌이죠?""

"아! 매지컬 쿄코 말이군요? 예전 할로윈 특집에 라라씨와 야미씨랑 함께 참가해서 만난적 있어요!
그 분이 룬씨의 라이벌이에요?""

"그래. 그 녀석은 8개 정규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현역 고교생 아이돌이니까.
언젠가 내가 톱아이돌이 되어서 쿄코를 넘어설거라구."

"멋진 꿈이네요 룬씨!"

"그렇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게 부럽네요."

코테가와랑 시즈가 감탄한듯이 룬을 본다.
라이벌이 쿄코라...
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룬은 아직 쿄코와 함께 일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쿄코로부터 룬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적도 없었고.
개인적으로는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


...사이가 가까워진다고 하니 다시 생각하는거지만...
점심을 함께 먹고 있는 리사와 미오, 하루나의 모습을 힐끗 본다.
리사와 미오의 장난질에 곤란한 웃음을 흘리는 하루나.
저렇게 보면 평소와 다를바 없는 모습인데...
굳이 신경쓰이는게 있다면, 교실을 나서려다 우연찮게 문앞에서 마주쳤을때 흠칫하고 놀라는 하루나의 반응이라든지.

"「「......」」"

아. 눈 마주쳤다.

...그리고 지금처럼 금새 시선을 딴데로 돌려버리는 하루나의 태도라든지.

사려깊은 하루나의 인품을 고려할 때, 내가 하루나에게 미움받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역시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화해, 라고 표현하긴 이상하지만, 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손놓고 있는건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고 본다.
개에 대해서 알아보려 했던것도 '장수를 쏘려면 우선 말을 쏘아라'는 말에 따라서, 애완동물인 마론을 화제삼아 하루나와 서먹함을 줄이고 싶다는 이유였고.

...그러고보면 애완동물이 있는 아이가 한명 더 있었네.

"룬."

"왜? 수염."

"네 애완동물은 요즘 잘 지내고 있어?"

"응? 모도리 스컹크 말야?"

"응. 그녀석."

"어? 룬씨는 애완동물을 키우셨던가요?"

"아, 시즈는 그 때 없었지?"

그러고보면 시즈는 모도리 스컹크 사건땐 아직 학생이 아니었지.
고개를 갸웃하는 시즈에게 코테가와가 모도리 스컹크에 대해 짧게 설명해줬다.

"그래서, 그녀석은 잘 지내고 있어?"

"잘 지낸다고할까, 그 아인 평소엔 잠만 자고 있으니까."

"의외로 잠꾸러기네.
그런데 아이돌 활동으로 바쁜데 키우기 힘들거나 하진 않아?"

"응...바쁜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챙겨주려고 애쓰고 있으니까, 아직까진 큰 문제는 없어."

"혹시 키우는데 힘이 들면 우리집에 데리고 올래?"

"...수염 너희 집에?"

"응. 나나의 사이버 사파리에서 지내게 할 순 없는지 부탁해볼테니까."

"흐응...그러고보면 라라네 동생들이 네 집에 있었지?"

잠시 생각하던 룬은 고개를 저었다.

"좀 더 내가 키워볼께.
일단 내가 산 책임도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내가 돌봐주고 싶고."

"룬씨는 정말로 상냥하시네요~"

"아이 차암~♡ 비행기 태우지 말아~"

시즈가 눈을 반짝이며 칭찬하자 룬이 부끄러운듯 배배 몸을 꼰다.
...이런 내숭도 배울점이 많구나.



"그러고보면 수염이랑 너흰 좋아하는 동물 있어?"

"난 개랑 고양이, 토끼."

"저는 고양이가 좋네요."

"전 고양이...이려나요? 개는 무서워서..."

코테가와가 고양이를 좋아하는건 1학년때부터 알고 있었고.
시즈는 개를 무서워하니까. 개를 만나서 패닉에 빠져서 염력으로 구교사를 뒤흔든적도 있었으니.

"솔직히 수염 네가 그런걸 좋아하는건 그다지 안어울리네.
육식동물같은 눈을 하고 있으면서."

"눈은 상관없잖냐. 좋아하는거랑 사이좋게 지내는거랑은 다른 문제라 고민이지만 말야.
길가다 만나는 개나 고양이에게 다가가면 죄다 도망가버리거든."

"역시 동물들도 네가 위험한건 아나보네."

"...코테가와. 힘내자."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코테가와를 보자 코테가와가 당황한다.

"난데없이 뭘 힘내자는거에요?"

"고양이에게 사랑받지 않는 모임의 동료로서.
고양이에게 사랑받기 위해 힘내자구."

"동료 취급 하지 말아요!
적어도 전 동물들이 달아나진 않는다구요!"

"다가오지도 않잖아."

"윽...!"

"뭐야뭐야? 무슨 얘기?"

"모미오카씨?"

시끌벅적한 대화에 리사가 끼어들어왔다.

"그러니까 료스케씨랑 유이씨랑 룬씨랑 좋아하는 동물을 얘기하는거였어요."

"그게 의외로 이야깃거리가 되서 말야."

시즈와 나의 설명에 리사가 눈을 가늘게 뜨곤 히죽 웃었다.

"아하앙~ 그러니까 아키츠군은 동물을 화제 삼아 여자아이들과 친해지려는 거구나?"

"갑자기 화제가 엉뚱하게 튀었어 모미오카.
여자애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건 부정하지 않지만, 지금은 동물들과 친해지고 싶은 거라구."

"후후. 솔직하네~
그래서, 동물들과 친해져서 어떻게 여자들에게 어필하려는 거려나?"

그러니까 그런게 아니라니까...
곤란해하는 내 반응을 즐기는 듯 리사는 능글능글 웃으며 내 볼을 쿡쿡 눌러댔다.
어지간히 한가했는지 대답을 재촉하는 리사에게 맞장구쳐볼까 싶어 잠시 생각하곤 입을 열었다.

"...그렇네.
이런 식의 어필은 어떨까?"

(입에 빵을 물고 통학하는 소녀)

소녀: 아앗! 지각! 지각!

(누군가와 충돌)

소녀: 꺄!
불량: 아!

불량:(주저앉은 소녀의 치맛속을 보며) 아? 딸기?
소녀: !? 꺄아아! 어딜 보는거야!
짜자자자작-!

소녀: 정말, 오늘은 아침부터 최악이야.

선생: 전학생을 소개하마.

소녀: 아아앗!?
불량(전학생): 아! 넌 아침의 딸기팬티!
소녀: 싫어어어!!!

비오는 날. 떠돌이 개에게 모자를 씌워주는 불량.

불량: 너도 외톨이냐?
소녀: 두근!

(황혼의 학교 옥상에서)

불량: 네가 좋아!
소녀: !

(결혼식장에서 소녀를 안아든 불량)

"「「합체!」」"

(병원)

아기: 으엥~ 으엥~

(라이○ 킹 심바의 탄생 풍으로 아기를 들어올리며)
불량: 내 아들이다!
소녀: 여보, 딸이에요!



"...이런 식으로, 개를 보살피던 불량의 모습에 소녀는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과연과연, 의외성을 노리는 계획이로구나?"

"동물에게 상냥한 불량이라는 갭은 확실히 사랑스럽지. 응응."

"아키츠군이라면 그전에 개가 달아나겠지만요."

"...말씀대로입니다."

리사와 미오에 뒤이은 코테가와의 날카로운 딴죽에 속공으로 좌절했다.

"아하하~ 그렇게 풀죽을 것 없잖아 아키츠군."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리사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료스케는 동물들이랑 사이좋게 놀고 싶은거야?"

"응. 귀엽잖아. 한번정도는 날 무서워하지 않는 동물들이랑 놀아보고 싶은데."

"아니아니. 라라찌. 여기선 동물보다는 여자애랑 노는게 아키츠군의 본래 목적이겠지?"

"이상한 쪽으로 이야기를 몰아가지 말아줘 모미오카.
확실히 동물을 보살피는걸 계기로 만남을 갖는 것도 동경하긴 하지만."

"속셈 가득이네. 수염."

모처럼 라라가 내 소망을 알아줬지만 리사와 룬이 거기에 초를 치고 있었다.

"아무튼, 딱히 내가 아니더라도 동물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니까."

"헤에~그래~?"

"그으렇단 말이지~"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말을 얼버무리는데 내게 리사와 미오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우리 하루나는 어때?"

"리, 리사!?"

난데없이 리사에게 어깨를 잡혀 내쪽으로 향하게 된 하루나가 당황하며 등뒤의 리사를 쳐다봤다.

"맞아맞아! 아키츠군은 알고 있어? 하루나는 말이지~귀여운 개를 키우고 있다구~?"

"미오!?"

"아, 마론 말이구나."

"어레? 아키츠군 마론을 알고 있었어?"

"산책할 때 가끔 사이렌지와 만나거든."

"호오오~?"

이거 특종이네-하고 중얼거리며 리사와 미오가 눈을 빛냈다.

"어레레~? 하루나, 혹시~?"

"아, 아냐! 그런거!"

"아~아~직 아~아~무 말도 안했는데~?"

"저기저기, 그런거라니 어떤거? 응? 어떤거?"

"엣, 그, 그러니까..."

"에잇에잇~! 얌전한 척 하고선 요 내숭쟁이녀석~"

"꺄아, 아하하하~! 그, 그만해에에~~~!"

와오-
요즘 여학생들의 스킨십은 대담하네.
남학생들 앞에서 동성의 가슴을 주물러대는 행동에서, 여성의 문란함에는 관대한 이 동네의 사고방식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달까...
하루나에게 달라붙어 잔뜩 간질이던 리사와 미오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아키츠군은 우리 하루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거니~?"

"응응? 우리한테 솔직하게 말해보라구~ 우훗훗~"

"그, 그러니까 그런게 아니라, 읍?"

"자자, 우리 하루나는 신경쓰지 말고 계속해~"

당황하는 하루나의 모습이 둘의 장난기에 불을 붙었은지 리사와 미오는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바둥거리는 하루나를 붙잡았다.

"으응~ 그러니까~"

말꼬리를 늘이며 머릴 굴려봤다.
여기서 진지하게 둘을 상대했다간, 장난감을 찾는 이 둘에게 낚여선 대화가 수렁에 빠질것만 같다.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새를 봐선 어떻게든 하루나를 - 운 나쁘면 나도 포함해서 - 놀려먹을 속셈 만만이고.
차라리 무난한 말로 맞장구치며 웃어넘기는 방향으로 가는게 좋겠지.
둘의 장난에 휘말린 하루나에게 속으로 애도하곤, 능글맞은 웃음을 띄며 경박한 어조로 맞장구쳤다.

"그러네~ 사이렌지처럼 동물에게 다정한 미소녀는 매력적이니까.
사이렌지와 사귀게 될 사람은 행운아가 아닐까?"

"오오~! 역시 아키츠군은 뭘 좀 아는구나?"

"후후후~ 드디어 아키츠군도 하루나의 매력에...하루나?"

"......"

새빨갛게 달아오른 하루나를 보고 놀란 미오가 이름을 부르자, 굳어있던 하루나가 움직였다.

타앗-!

"꺄!?"

"하루나!?"

리사랑 미오를 뿌리치곤 하루나가 복도로 뛰쳐나갔다.

오우- 멈춰. 여기서 그 선택지는 수렁으로 가는 길이다.
무엇보다 날 혼자 두고 가지마!

호기심 또는 경악 섞인 시선이 꽂히는 가운데, 하루나를 뒤쫓아 떠나가버린 리사와 미오를 원망했다.

"너 혹시 위원장도 꼬셨어?"

"사이렌지씨의 저 반응에 짐작가는거 없나요?"

"혹시 하루나씨랑 가까운 사이셨던거에요?"

"아키츠군, 혹시나 하루나랑 무슨 일 있었어?"

"료스케? 괜찮아?"

"사, 사이렌지랑..."

꼬신거 아니고 몰라. 사이가 가까워지긴 했어도 무슨 일은 없,었나. 괜찮지 않으니 혼자 있게 해주세요.

"...이젠 나도 모르겠어..."

주저앉아 머리를 싸맸다.



소란은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에야 가라앉았다.
가라앉았다고 해야 하나, 정확히는 흐지부지 끝나버린거지만.
하루나를 교실로 데려온 리사와 미오가 교실에 홀로 질문 포화를 받는 날 발견하고선 도움의 손길을 뻗어줬다.
나와 리사, 미오 셋의 농지거리에 순진한 하루나가 과민반응해서 뛰쳐나간 것 뿐이라고.

고마워요. 고마워요...

다행히 몇몇 친구들은 납득해주는 분위기였고.
룬 가라사대, 대사가 상투적이라 그다지 설득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대나.
한때 '멋있어, 상냥해, 용감해'라는 단어를 늘어놓던 룬이 상투어 운운을 할 줄이야.
양심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납득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평소 소문이나 행실을 생각하면 전원을 설득하길 바라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 수그러들거나 새로운 풍문에 묻히길 바랄 수 밖에.
시선이 마주칠 때 하루나의 반응을 보면, 명백히 점심 때의 해프닝을 의식하고 있는게 보여서 솔직히 조마조마하고.
무난한 선택지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개를 통한 관계 개선의 현실미가 점점 희박해져가는 것만 같았다.



하교시간.
가방을 챙기던 내게 미오가 다가와선 귓가에 속삭였다.

"(하루나랑 다음에 또 우리 카페에 오면 잔뜩 서비스 해줄께~)"

뭐라나, 오늘 일을 사과하는 의미란다.
사과의 의미라면 하루나랑 같이 오라는 말은 빼야하는거 아냐?
아니면 혹시, 알아서 하루나랑 화해한 뒤에 데려 오라는 의미입니까?
히죽 웃으며 멀어지는 미오의 등을 보다 한숨을 쉬곤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교문 근처가 시끌시끌하다.
교문에 모여있는 학생 몇몇이 누군가를 에워싸듯 모여있다.

"너 귀엽네."
"어디 중학교?"

누가 왔나?
좀 더 다가가니 학생들 사이로 눈에 익은 분홍색 웨이브 장발이 언듯 보였다.

"그러니까, 아케치 료스케를 만나러 왔다니까?"

"'아키츠' 료스케다."

"아, 료스케~!"

무리에 둘러싸여있던 조그만 소녀가 뛰쳐나왔다.

"...나나?"

풀어내린 웨이브 머리를 흔들며 나타난 나나가 손을 흔들었다.
...추가하자. '중학교 하복을 입은' 나나다.
여중생 교복 차림의 나나를 놀란 얼굴로 보니 나나가 만족스러운듯 양팔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어때? 이거면 나도 제법 어른 티가 나지?"

"응. 굉장히 예쁜데?
그런데 어째서 교복이야? 그전에 교복 구할데가 있었어?"

"응? 학교에 오려면 교복이란걸 입어야 하는거잖아?
모모가 그랬는데."

모모의 장난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구나.

"그리고 교복은 아키호랑 하루나가 준 옷 중에 들어있었어."

고마워요 아키호씨.
덕분에 희귀한 나나의 여중생 차림도 보게 되네요.
감동에 젖어 있는데 뒤따라오던 리토와 라라도 나나를 봤나보다.

"어라? 나나?"

"언니~!"

나나가 달려가서 라라에게 안겨든다.
'언니 좋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여동생 어택은 제법 그림이 됐다.

"나나는 학교에 왠 일이야?"

"도서관에 동물들 책이 많다고 료스케한테 들어서 구경왔어~!"

양손을 맞잡고 화기애애 대화를 나누는 자매의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는데 누군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응?"

몸을 돌렸다. 그리곤 바로 후회했다.

"어머 과연과연~"

"'동물책'을 좋아하는 미소녀라~"

히죽히죽 웃으며 노골적으로 수근대는 리사와 미오가 있었다.

"저기저기, 혹시 아키츠군은 연하 취향?"

"언제나 여동생 카페를 애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냥~♡"

"룬룬의 '모도리 스컹크'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설마 그 때문!?"

"오빠가 여동생 카페에 잔뜩 놀러와준다면 미오미오는 기쁘겠다냥~♡"

쉬지도 않고 떠들어대는 둘의 수다에 하교하던 학생들이 수근덕댄다.

"또 저녀석인가..."
"여중생이 학교까지 만나러 올 정도라니, 이런거 절대로 이상해!"
"저 녀석이 연하 취향이란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미오땅 최고-"
"연상의 멋짐을 모르는 저녀석이 불쌍해."
"응. 미카도 선생님이라든지 섹시하지."
"뭔소리야. 모르니까 다행이지. 알았다간 여성 피해규모가 늘어나잖아."

"무슨 일이래?"
"글쎄, 라라네 동생이 놀러왔는데, 그게 어느새 아키츠군 연하 취향이란 화제가 되서."
"소문이라는거 저렇게 만들어지는거구나...저 애들 꽤나 짓궂네."
"어쩌면 저애들 나름대로 사이좋게 지내는 방식 아냐? 봐봐, 저렇게 능글맞게 골려대는걸 보면."
"여자애는 구해주는데 자신은 구하지 못하는 아키츠군이네."
"오랜만에 단팥빵이라도 하나 건네줄까."

오늘도 하교길은 떠들석 합니다.
이게 다 심심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리사와 미오 덕분이죠.
수근거리는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의 시선이 쿡쿡 꽂힌다.
도움을 구하려 주변을 돌아봤지만 상황은 비정했다.

리토는 '연하인가...'라고 중얼거리곤 엄지를 치켜세우며 윙크나 하고 있고.
...뭐? 사이바이씨 일손 돕기? 그렇담 어쩔수 없네.
리토의 도움받는건 포기하고 교문 밖으로 뛰어가는 리토를 전송했다.
어쩐지 평소보다 리토의 달음박질이 빨라보였던건 기분탓이라 믿고 싶다.

라라는 원래 뜬소문에 관해선 별 관심이 없는 편이고, 나나랑 대화하느라 이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죄다 흘려듣고 있는것 같다.
나나도 라라랑 얘기한다고 바쁘고, 어떤 상황인지도 잘 모르는 눈치고.

코테가와나 룬, 시즈 셋은 소란스러움에 신경쓰지 않고 나란히 하교하고 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가까워졌는지, 붙임성 좋은 시즈가 있어서인지 셋이서 꽤나 이야기가 살고 있나보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레 교문을 나서는 셋의 모습에 부질없는 희망을 담아 외쳤다.



"헬프 미! 마이 프렌즈!"

"우리는 당신 친구가 아닙니다."

즉, 절친이란거군요.


동의를 구하는 내 등을 폭소하며 두드리는 리사와 미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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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교길이 룬의 팬들로 붐비지 않는다니, 아이돌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는 좋은 팬들이군요!
무대 위로 난입해오는 팬들도 있었지만 그런걸로 합시다.(뻔뻔)


2. 여동생 카페는 지금 냥냥 캠페인 시행중.


3. 중간에 나왔던 불량과 소녀의 이야기는 미연시 30초 요약 동영상의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고양이가 아니라 '개'였다는 점이 좋았지요.
(여기 동네는 고양이 이외의 동물은 취급이 엉성하니까.)


주말엔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급성충수염이래서 수술받고 일요일부터 오늘까지 병원에서 지내나 왔네요^^;

이젠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m(_ _)m


...원래 쓸 내용이 43화로 밀린건 어떡해야 하나 걱정입니다만...;
계속 쓰다보면 되겠죠 쿨럭쿨럭...=x=a;


바나나 쉐이크가 맛있네요.
(다쓰고 보니 먹고 있는게 수박으로 바뀌었습니다만^^;)
더운 여름 시원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41화 수정사항:

1. 나나와 모모의 침대 배치 완료라는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플롯상에 써둔게 살붙이는 도중에 빠졌더라고요-_-;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41화에서 나나와 모모를 침대에 옮겨줬다는 서술을 했으니 '침대 배치 완료'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2. 료스케가 마론의 짖는 소리를 번역(?)하는 부분에 『』표시를 하였습니다.
의도적으로 번역이랑 대화를 뒤섞어 넣은 부분이긴 한데, 읽는 분들이 헷갈리게 글을 쓰는건 잘못된 것 같아서...=_=a;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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