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거 맛있어 보여."

툭-

"으응, 이거 TV에서 광고하는것 봤어.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툭-

"그리고 이건 미캉네 집에 갔을때 먹어본건데 제법 맛있더라구."

툭-

"...나나."

"응? 료스케 왜?"

"아무리 과자가 좋다지만 너무 많이 사는거 아닐까?"

마트의 식품 코너.
쇼핑카트의 반을 채운 과자봉지들을 가리키며 지적하자 나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홍차 마실때 어울리지 않을까?"

"보통은 홍차엔 과자보단 쿠키나 스콘이 어울릴것 같은데 말야."

"그럼 내 친구들이랑 나눠먹으면 괜찮아~!"

"동물 친구들에게 과자를 주면 안됩니다."

지켜보던 모모가 어쩔수 없다는듯 웃음을 지으며 나나를 설득한다.

"나나. 아무리 그래도 그 변명은 무리가 있어.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몇개는 다음에 올때 사도록 하자. 응?"

"우우..."

"그럼 이것들은 제자리에 놓을께요."

아쉬워하는 나나를 달래며 모모는 카트의 과자를 덜어냈다.

"...모모."

"네? 료스케씨."

"은근슬쩍 당근도 함께 카트에서 빼내는건 어떨까 싶어."

"......"

쇼핑카트에서 과자봉지와 그 사이에 당근을 끼워 집어든 모모가 침묵한다.
나나가 눈을 가늘게뜨고 모모를 빤히 응시하자 모모가 딴청을 피우듯 고개를 돌렸다.

후우...
정말이지, 오늘 저녁 메뉴는 카레라이스라구.
그래도 나나가 피망을 싫어하는거랑 모모가 당근을 싫어하는건 알고 있고, 저렇게 싫다는걸 억지로 먹이고 싶지도 않으니...
한숨을 쉬며 야채코너에서 당근 대신 단호박을 골라 쇼핑카트에 넣었다.
당근 대신 이걸 넣으면 되겠지. 고소한 풍미도 있고.




"...그럼 이걸로 저녁거리는 다 골랐네.
혹시 더 둘러보고 싶은 곳 있어?"

"그럼 가구 코너에 가보는건 어때요?
지구의 가구는 어떤지 흥미가 있거든요."

쇼핑카트를 모는 내 옆을 걸으며 모모가 생긋 웃곤 답했다.

"그러고보면 '새방'을 꾸밀 것들도 있어야지."

여름이라는 계절이 바뀔 정도는 아니었지만, 둘이 우리 집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 제법 시간이 흘렀다.
공간에 여유는 있었지만, 방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여자애 둘에 남자애 하나가 지내는 데에는 어느정도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쓰던 침대를 나나와 모모에게 양보하고, 나는 거실에 이불을 깔고 지내는 정도의 수고는 필요했다고 할까.

다만, 나나와 모모를 배려해서 침대를 양보한 행동이 둘에게는 꽤나 신경쓰였나보다.
어쩌면 얼마전 한밤중에 내가 둘이 자고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가 속옷을 가지고 나왔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속옷 도둑 혐의를 받고 벌어진 해프닝을 생각하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다.
정말이지 둘의 폭주로 말그대로 집이 무너지는거 아닌가 생각했다니까.

아무튼 내 방에서 지내는 상황이 여러가지로 불편했는지, 며칠전, 둘은 집을 개조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거실에 있는 벽장 안을 '공간왜곡장치'를 사용해서 자신들의 방으로 꾸미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리토의 집 벽장에서 생활하는 라라의 상황이랑 다를게 뭔가?
벽장이 내 방 안에 있는게 아니라는 점?
떨떠름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심정으로 증축이 진행되는걸 지켜보았다.
뭐...증축허가는 안받았다만 애초에 그런거 신경쓰며 지내는 세계관이 아니고.

하여간 그렇게 해서 시작한 증축도 얼마전에 완료하고, 이제는 증축한 곳에 놓을 새가구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방금전 모모가 얘기한 가구를 둘러 보는 것도 그 일환이고.
다만 나나는 납득이 가지 않았는지 모모에게 물었다.

"그런데 모모. 우리 침대는 은하통신판매 사이트에서 구매하기로 하지 않았어?"

"응. 그렇지만 지구의 가구류에도 한번 살펴두고 싶어서.
나나 너도 같이 가볼래?"

"아니, 난 애완용품 코너로 가볼거야.
내 친구들이 펫푸드를 한번 먹어보고 싶다길래 몇개 사두려구."

"그럼 나중에 휴대폰으로 연락할테니 이따 봐."

손을 팔랑이며 나나가 떠나고 나와 모모는 가구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음...역시 침대는 꽤 비싸네요."

여러 침대들에 붙어있는 다섯자리수 가격표를 보고 곤란한 얼굴이 된 모모가 중얼거렸다.

"역시 은하통판에서 구매해야 하는걸까요."

"은하통판은 가격이 저렴한거야?"

"그건 아니지만 거기선 대금 청구를 데빌루크 왕성으로 할 수 있거든요."

"아..."

즉, 은하통판에서 구매가능한것 제외한 나머지 물품들 또는 즉시 구매가 필요한 물품들을 지구에서 사는거네.
지구가 외교적으로 닫혀있는 행성이 아니었다면 쇼핑하면서 물건을 골라야 하는 모모의 고민도 줄어들었겠지.
저스틴이 세자매에게 매달 용돈을 건네준다지만 침대 뿐만이 아니고 옷이랑 다른 것들에 쓸 돈도 있어야 하니까.

결국 가구 구매는 은하통판에서 하기로 정했는지 모모는 한결 가벼운 느낌으로 가구를 둘러보았다.

"이런 디자인의 침대도 괜찮네요."

장미문양이 프레임에 새겨진 침대를 유심히 살펴보던 모모는 시선을 돌리더니 눈을 반짝였다.

"아, 나나는 저 침대를 좋아할것 같네요."

"응?"


모모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귀여운 갈색 곰이 해달마냥 배를 드러낸채 드러누운 동물모양침대가 보였다.
귀여운 침대네. 동물을 좋아하는 나나라면 마음에 들어할 것 같다.

"음, 나중에 나나에게 한번 물어볼까요?"

"그러는게 좋겠지?"

다만 장미문양이 새겨진 침대는 고급스러워보이고, 그에 반해 동물모양 침대는 팬시한 느낌을 주다보니, 때때로 모모에 대한 대항의식을 불태우는 나나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다.

"역시 이곳의 가구도 둘러본건 잘한 일 같네요.
나중에 쇼핑에 참고할 수 있을테니까요."

"즐거워 보이니 나도 기쁘네."

"후후, 저희 둘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일인데 즐겁지 않을리 없잖아요?
모처럼 저희만의 방이 생겼으니까 신경써서 준비해야죠~"

즐거운듯 얘기를 나누며 침대를 둘러보던 차에, 지켜보던 점원이 붙임성 좋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을 건네왔다.

"어서 오세요.
신혼 살림 준비하시나봐요?"

"네?" "엣?"

난데없는 신혼 운운에 나와 모모가 당황한 채 서로를 쳐다봤다.

"'두분만의 공간'을 꾸미기에 꼭 맞는 상품들이 많으니 한번 둘러보세요."

...아아, 방금전 둘(나나와 모모)의 보금자리를 그렇게 착각한거로군.
모모는 눈을 깜빡하더니 살풋 눈웃음을 쳤다.

"후후, 제가 어른스러워 보이니 이런 말도 듣나봐요?
에잇~!"

"어엣?"

장난스레 내 오른팔에 팔짱을 끼어오며 생글생글 웃는 모모의 태도에 잠시 놀랐지만 이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다소 두근거리는 이런 장난은 나도 즐겁게 대할 수 있으니까.

"그렇네. 모모는 어른스러워 보이는걸."

"어머, 고마워요."

자연스레 받아넘기면서도 은근히 자랑스러운듯 한 모모가 귀엽게 보였다.
팔짱을 낀채 웃는 우리에게 점원은 한쪽을 가리키며 권유했다.

"이참에 아기용품도 미리 한번 둘러보시는건 어떠세요?
여긴 아동용 동물침대들도 많거든요."

"쿠훕...!"

"모모?"

"자, 잠시만..."

모모가 황급히 입을 가리며 몸을 숙였다.
모모와 팔짱을 낀 나도 덩달아 자세가 엉거주춤해졌고.
방금전 점원의 말이 어지간히도 급소를 찌른건지 방금전까지 살랑거리던 모모의 꼬리가 움찔움찔 떨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동물하니까 나나가 생각났을지도 모르지만 그 행동은 실례야 모모.
'아이 = 동물침대 = 나나'라는 연상에 웃는건 이해하지만.
얼굴이 빨개진채 부들부들 떨던 모모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후, 후훕...훕...!
그, 그렇네요. 지금은 괜찮으니까 좀 더 둘러본 뒤에 결정할께요."

손을 내저으며 사양하는 모모에게 당황하면서도 점원은 곧 미소를 띄우며 물러났다.

잠시 후, 자세를 바로한 모모가 나를 올려다 보며 속삭였다.

"자~ 그럼, 기분을 고쳐 다시 한번 둘러볼까요?
저희 둘만의 보금자리를 위해~"

"너, 즐기고 있구나?"

"후후."

팔짱을 풀지않은채 기분이 고양된 모모의 농담을 웃어넘기며 쇼핑을 계속했다.




다음으로 모모가 관심을 보인 곳은 식물코너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의외로 수공예 아트 플라워 매장이 모모의 마음에 들었나보다.
다양한 조화(모조꽃)의 디자인을 흥미롭게 살펴보고 매장을 나온 모모는 그 옆 코너에 있는 공기청정식물들을 보고 문득 떠오른듯 말을 꺼냈다.

"참, 료스케씨."

"응?"

"저희 집에도 식물들을 놔두는건 어떨까요?
거실에도 공간확장을 사용하면 비좁거나 하는 문제도 없을테고 훨씬 쾌적할거에요.
공기 청정 효과가 있는 우주 식물도 있으니 도움도 될테구요."

"응. 괜찮은 의견이네.
예쁜 꽃은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을 온화하게 하니까요.
그리고 거실 공간을 확장해두면 나나의 동물 친구들도 좋아하겠지."

"그렇죠?"

내 동의에 모모는 기분이 좋아진듯 흥얼거리며 식물들을 살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부디 상식외의 우주 식물을 장식하는 것만은 자제해줬으면 하고 바라면서 모모와 함께 식물 코너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한창 기세좋게 식물 관련 코너를 돌던 모모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전자제품 코너였다.
진열된 다양한 전자기기를 눈으로 훑던 모모의 시선이 문득 한곳에 고정되었다.



"......료스케씨."

"응?"

"저거..."

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기는 모모의 행동에 걸음을 멈추자, 모모가 눈을 반짝이며 신형 게임기를 가리켰다.
사고 싶은걸까? 그간 함께 지내면서 모모가 게임을 좋아하는건 알고 있으니 새삼스럽진 않지만.
모모가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실은 저스틴이 보내준 이번달 용돈이 조금 아슬아슬해서...사는데 돈을 좀 보태주시면 안될까요?"

"게임기만?"

"......게임도요."

"...잠시 생각 좀 해볼께."

가계부 작성하려면 지출은 꼼꼼하게 관리해야 하니까.
고민하는 나를 재촉하듯 모모가 슬며시 팔짱에 힘을 주면서 가슴을 밀착해왔다.
이 녀석...?
오른팔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무심코 몸을 떨자 모모가 고혹스런 미소를 짓곤 속삭였다.

"부탁드려요. 보답으로 잔뜩 서비스 해드릴테니까."

"호오...? 예를 들면?"

"후후, 이런건 어때요?"

새하얀 오른손을 내 눈앞에 들어보였다.
그리곤 막대기를 감싸듯 손을 동그랗게 쥐고선 위아래로 훑듯이 흔들어 보였다.

둥근 봉을 한손으로 쥐고 위아래로 흔들어대는 서비스라...

"이.런.서.비.스."

"마늘빻기군요 압니다."

"......"

멈칫하던 모모는 원망스러운듯 팔을 살짝 꼬집었다.

"정말~~~!
좀 더 이렇-게, 두근두근해줘도 좋잖아요?"

지금 네 행동 쪽이 신선해서 더 두근두근하다구.
애교있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그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오자, 모모가 신음을 흘리더니 팔짱에 힘을 실었다.
가슴어택은 그만둬라.
그건 제법 효과가 있으니까.

"...그럼 정말로 대출혈 서비스에요.
이번엔 정말로 굉장한거니까요? 농담이 아니고 저도 진심이니까요?"

"응. 계속해."

"......"

머뭇머뭇거리던 모모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어머, 귀여워라.

"...료스케씨가 항상 제게 품고있는 욕망을 해소해드릴께요."

"헤에...? 내 욕망이라?"

"...핥는 것 까지라면, 어때요?"

"...하?"

무슨 말을 하는거야 이녀석.
살짝 혀로 입술을 핥아보이는 모모를 빤히 쳐다보다 물었다.

"...뭘 핥는데?"

"아이 차암~ 제 입으로 말하게 하시기에요?"

부끄러운듯 꺄아- 하며 웃는 모모.
와아아- 속이 빤해.

"물론. 나는 부끄러워하는 소녀에게도 대답을 강요하는 나쁜 사람이니까"

"우와아..."

질렸다는 얼굴 하지마!
네가 그런 애매모호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하니까 이런거잖아.
관찰하듯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내게 모모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굵고 단단한 붉은 거요."

"...Pardon?"

"네?"

"그러니까, 뭐라고?"

"...구, 굵고 단단한 붉은 거. 정말이지, 두번씩이나 말하게 하지 마세요."

얼굴을 붉히며 모모는 내 가슴을 가볍게 두드려 댔다.

아아, 과연.
굵고 단단한 붉은 거 말이로군.

......어이 짜샤.

"그래서, 어떨까요?"

상기한 얼굴로 반짝반짝한 눈으로 기대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모모의 모습에, 방금전 솟아오르던 생각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뭐, 거기까지 게임기를 사고 싶다면야.
드물게 보는 아이같은 면이 귀엽기도 하고.
사람의 욕망을 쿡쿡 찌르는 방금전 행동에 대한 대응은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나나랑 만난뒤에 어떤 걸 사고 싶은지 같이 의논해보는게 좋겠어."

"와아~ 고마워요 료스케씨."

모모가 활짝 웃으며 내 팔을 껴안곤 몸을 밀착해왔다.
어른스러운건지 귀여운건지...이 녀석은 영락없이 소악마계네.
차라리 이쪽이 서비스라고 하는 편이 나을것 같다고 생각하며 애완용품 코너를 향해 카트를 밀었다.




"나나는 펫푸드를 산다고 했었지?"

"네. 그러니까 이쯤에 있을텐데요."

모모와 함께 애완용품 코너를 돌며 나나를 찾던중 몇 블록 너머에서 두런두런 익숙한 두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하루나는 개를 키우는거야?"

"응. 마론이라는 보스턴 테리어를 키우고 있어.
오늘은 마론의 먹이를 사러 온거야."

하루나도 쇼핑을 온건가?
애견인인 하루나와 동물을 좋아하는 나나의 조합은 꽤나 이야기가 맞는것 같다.
나나의 들뜬 소리를 들었는지 곁에 있는 모모도 작게 웃고 있고.
생각해보면 쇼핑을 하면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건 오랜만인듯 싶어 코너를 돌아 둘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있었어 나나?"

"료스케?"

"아, 아키츠군!?"

내 소리에 화들짝 놀란듯 당황한 얼굴로 하루나가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말을 걸어서 놀라게 한 것 같다고 생각하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곤 다가갔다.

"이야기 소리가 들려 따라 왔는데 사이렌지도 쇼핑중이었구나."

"으, 으응."

...어쩐지 내쪽으로 몸을 돌린 하루나의 행동이 어색하다.
시선이 어긋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쭈뼛쭈뼛 시선을 피하는게 보인다.
하루나의 반응에 위화감을 느꼈는지 모모가 의아한듯 하루나를 불렀다.

"저, 하루나씨?"

"아! 그, 그럼 난 이만 가볼께 나나쨩, 모모.
아키츠군과 쇼핑 잘해~!"

"에?"

불러세울 틈도 없이 뒤돌아 잰걸음으로 사라지는 하루나의 등을 나나와 모모랑 함께 멍하니 쳐다봤다.
...뭐야 대체...

"아~ 좀 더 하루나랑 얘기하고 싶었는데..."

어리둥절해있다가 아쉬워하는 나나에 이어, 정신을 차린 모모가 힐끗 나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혹시 하루나씨랑 무슨 일 있으셨어요?"

"글쎄..."

나로서도 고개가 갸우뚱 할 따름이라구.
최근까진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데 뭐가 문제지?


......혹시 그건가?
유우사키랑 데이트 했던 날의 해프닝.
하루나는 당황하다 달아나 버리고, 유우사키는 울면서 도망쳐 버리고, 총체적으로 난관이었던 날.
설마 그때 이후로 주욱 저런 상태인거야?

그때 하루나를 쫓아가야 했었나?
몸이 두개가 아닌 이상, 유우사키 쪽을 우선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다음날이라도 하루나에게 보충을 해둬야 했던걸지도 모르겠다.

그 때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보충하기도 애매할 것 같다.
하루나를 붙잡고 난데없이 훨씬 전에 지나가버린 일을 들춰내며 해명하는 꼴도 영 아니올시다고...

"...곤란하게 됐네."

무심결에 왼뺨에 손을 대며 중얼거렸다.




예상외의 사건이 있었지만 쇼핑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전자기기 코너에서 즐겁게 게임기랑 게임을 고르는 나나와 모모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끝났달까.
쇼핑카트를 가득채운 짐들은 '물질디지털화전송장치 데다이얼'을 사용해 손쉽게 옮길 수 있었다.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로는 공간확장시킨 거실에서 저마다 분주히 시간을 보냈다.
나나는 사이버 사파리 랜드에서 지내고 있던 개들을 거실로 데려와 마트에서 사온 펫푸드를 나눠줬다.
모모는 데다이얼을 사용해 디지털 공간에서 우주 식물 몇 종을 꺼내서 거실에 놓았다.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우주 식물들을 지켜보다가 흥미가 생겨 모모에게 말을 걸었다.

"평범하게 예쁜 꽃들이네."

"평범한데 예쁘다는 표현은 어쩐지 이상하지 않나요?"

"아, 내 말은 내가 알고 있는 꽃의 형태라는 의미였어.
그간 우주 식물은 미캉네 집에 있는 '셀린'정도가 다였으니까."

모모가 데리고 있는 인면수(人面樹) 시바리스기도 있지만 그다지 좋은 만남은 아니었으니까.

"아, 그 아이 말이군요. 언니를 만나러 리토씨의 집에 갈 때면 셀린과 대화를 하곤 해요.
언제나 리토씨랑 미캉씨가 소중히 대해주고 있다고 말해주더군요."

"그렇겠지. 유우키는 식물을 소중히 여기니까."

"후후...언니도 참 좋은 분을 고르셨네요."

"그렇지? 그런데 우주식물은 다 셀린처럼 독특한 특징이 있어?
저번에 갔을땐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고 있어서 놀랐거든."

"모두가 다 셀린 같진 않아요. 셀린은 우주에서도 정말로 희귀한 종(種)이니까요.
그래서 셀린의 생태에 대한건 아직 수수께끼인 부분이 많죠."

"그래? 그럼 여기 있는 식물들은 어떤 아이들인지 알려줄 수 있어?"

"료스케씨도 식물에 관심이 있나요?"

"그 정도까진 아닌데, 이 아이들을 가꾸려면 어느 정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료스케씨가요?"

"모모 혼자 식물을 가꾸는것 보다는 함께 돌볼 수 있는편이 좋잖아.
너도 언제나 집에만 있진 않을테고 말야. 가끔은 놀러가고 싶을때도 있겠지?"

"어머, 배려 감사해요. 그럼 가끔은 이 아이들을 부탁드릴께요."

한차례 생긋 웃은뒤 모모는 식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다루는 법을 이야기 해줬다.

"이 아이는 공기를 정화하는 효능이 있어요. 마트에서 본 공기청정식물이랑 같은 역할을 해준다고 보시면 되요.
그리고 보세요. 여기 이 아이는 향기가 좋죠?"

"그러고보니 제법 향긋한 내음이「아삭-」엣?"

향기에 이끌려 왔는지 나나가 풀어놓은 개들 중 한마리가 방금전 모모가 가리킨 식물의 꽃잎을 물었다.

촤아악---!

"깨엥-!?"

"에엣!?"

그리고 그 직후, 개에게 씹히던 식물의 꽃잎이 크게 벌어지더니 개를 집어삼켜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차에 모모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 참고로 저 향기는 먹이를 유혹하기 위해 내는거에요."

"멍멍아!?"

먹이를 주다가 방금전 해프닝을 보곤 경악한 나나가 황급히 일어나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보다 빨리 모모가 달래듯 꽃잎을 쓰다듬으며 식물에게 말을 건넸다.

"얘, 그건 먹는게 아니니 뱉어내렴."

모모의 말에 갸우뚱하는것마냥 꽃잎을 흔들던 식물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듯 숙이곤 다물어진 꽃잎을 동그랗게 모았다.

퉤엣~!

"아앗!?"

벌어진 꽃잎에서 튀어나온 개를 달려온 나나가 놀라며 받아들었다.
수상한 액체 범벅이 되서 축늘어진 개를 안쓰럽게 내려다보던 나나가 눈썹을 치켜세우곤 고개를 들었다.

"모모! 그런 식물을 내놓으면 위험하잖아!"

"자업자득이잖니.
식물을 못살게 구는 버릇을 고쳐준거니 앞으론 조심하겠지."

"그런건 내가 말로 타일러도 됐잖아!"

"어머, 그렇지 않아도 나도 이 아이들에게 입에 아무거나 넣지 말라고 주의를 주려던 참이었거든?
이번엔 그러기도 전에 달려온 강아지에게 잘못이 있지 않을까?"

"윽..."

으르렁 거리는 나나는 결국 투덜투덜거리며 강아지를 쓰다듬곤 돌아섰다.



결국 모모는 식물들에게 동물을 삼키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나나는 동물들에게 거실의 식물을 피하라고 주의를 주는 걸로 일은 마무리되었다.
나나는 흰 탱크탑으로 갈아입곤 점액이 묻은 개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방금전 말다툼이 신경쓰여 모모에게 괜찮냐고 묻자 모모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내다보면 자매끼리 다툴 때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형제자매가 없는 나로서는 잘 모르는 상황이니까 모모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뭐, 식물들에게 주의줬으니 앞으론 이런 일도 없겠지?"

"으음, 그게 말이죠..."

"모모?"

생각과 다른 모모의 반응에 의아해하자, 모모는 조금 고민하더니 내 귀에 입술을 가까이 했다.

"(이런말 하긴 좀 그렇지만, 모든 아이들이 머리가 좋은게 아니라서, 조금 지나면 주의한걸 잊어버릴지도 몰라요.)"

머리 나쁘단 소릴 식물이 들으면 서운해 할까봐 일부러 작게 이야기 하는거야?
귀여우면서도 배려심이 보이는 태도네.

"그리고 제가 식물과 대화할 수 있다는걸, 식물에게 뭐든 시킬 수 있다고 오해하시면 곤란해요.
저는 식물에게 '친구'로서 부탁을 하는거지, 명령을 하는게 아니니까요."

"(앗 차거! 이녀석, 가만 있어!)"

방금전 나나가 들어간 욕실이 소란스럽다.
함께 들어간 점액 범벅의 개가 씻는 와중에 가만있질 않는지, 당황하는 나나의 목소리가 욕실 밖으로 새어나온다.

"들었죠? 동물들이 나나가 부탁을 전부 들어주는건 아닌 것처럼요."

"응. 확실히 이해하겠어."

후다닥-!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욕실 밖으로 물투성이가 된 개가 뛰쳐나왔다.

"잠깐! 좀 더 씻어야 된다니까!?"



도망치는 개를 쫓아서 한손에 애완용 목욕타월을 든 나나가 욕실 밖으로 나왔다.
방금전 소란 와중에 한창 개와 물싸움을 한건지, 물에 젖은 탱크탑 너머로 나나의 살결이 비쳐보였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나나가 당황해서 한손으로 가슴께를 가렸다.

"뭘 보는거야 변태야! 보지마!"

"풋!?"

나나가 집어던진 목욕타월을 얼굴에 맞았다.
철퍽-소리와 함께 얼굴을 때린 타월에서 잔뜩 비눗방울이 튄다.
타올을 치우곤 눈가를 훔치는 내 모습과 씩씩거리며 가슴을 가리는 나나를 번갈아 보던 모모가 킥킥 웃으며 나나에게 주의를 준다.

"나나도 참 상스럽게. 아무리 그래도 브래지어는 하고 있었어야지."

"큭..."

무심코 신음을 흘리는 나나의 모습에 뭔갈 눈치챘는지 모모의 눈초리가 개구쟁이처럼 바뀌었다.

"아, 미안해. 나나에겐 브라 같은거 인연 없는 물건이었지."

"왜 내 가슴쪽을 보는거야!?"

모모의 발언에 신경이 곤두섰는지 나나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두고봐! 나중에 모모보다 훨씬 멋지게 자랄거니까!"

"어머~ 기대할께 나나."

"깨엥!?"

"「「앗...」」"

으르렁 거리던 중 다시금 들려오는 애처로운 개의 비명에 둘의 목소리가 겹친다.
거실을 천방지축으로 헤집으며 달리던 개가 어느샌가 또다시 우주 식물에게 삼켜졌다가 도로 내뱉어졌다.

퉤엣-!

"아앗!? 또!?"

비명을 지르며 내뱉어진 개에게 달려가는 나나의 뒷모습이 애잔하게 보였다.
또 다시 점액범벅이 된 개와 비누 거품 투성이가 된 꽃잎을 흐느적거리는 식물을 번갈아 쳐다보던 모모는 뺨에 손을 대고 곤란한듯 중얼거렸다.

"정말로 머리가 나쁜 아이들이네..."




다망한 가운데 어느새 밤이 되었다.
나나와 모모는 벽장안에 새로 꾸민 자신들의 방에 지낼테니까 오늘은 오랜만에 침대에서 숙면 예정이다.
거실에는 파자마 차림으로 갈아입은 둘이 새로 산 게임을 막 끝내고 정리하고 있었다.
산란해있는 게임들을 보면 한번씩은 다 맛보기를 해본듯 했다.
오늘 지출을 생각하면 이번달은 씀씀이에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때 게임기를 정리하고 일어서던 모모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모모는 눈을 깜빡이더니 문득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검지를 살짝 깨물더니 고개를 숙인다.
모모의 태도에 나나가 이상한듯 고개를 갸웃했다.

"모모? 왜그래?"

"으, 으응...그러고보니 료스케씨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중요한 이야기?"

"곧 끝날테니까 거기서 잠시만 기다려줄래?"

머뭇머뭇 입가를 가리면서 모모가 다가왔다.

"...료스케씨."

"으응. 왜그래? 갑자기."

"...쇼핑때 게임기를 사주는 대가, 기억하세요?"

"응. 그러고보면 그런 약속을 했었지."

"료스케씨가 제게 가진 욕망을 해소시켜 드리겠다는거요."

"...아무튼, 그런 느낌의 서비스였던가?"

"욕망? 무슨 말이야 모모?"

이야기를 듣던 나나가 당황한듯 모모를 부르지만, 모모는 가만히 내 품에 몸을 기댔다.
모모의 뒤에서 헛바람을 삼키는 나나의 모습이 보인다.
나도 품안에 들어온 부드러운 감촉에 당황하며 모모를 내려다보았다.
몸을 기댄채 천천히 고개를 든 모모의 눈가는 살짝 젖어있었다.

"료스케씨..."

"왜, 왜그래?"

"저는 료스케씨에게 약속한걸 지키고 싶어요.
료스케씨가 제게 품고있는 마음에 응하고 싶어요. 하지만..."

내 옷자락을 움켜쥔 모모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린다.

"그런데도...그런일은 아직 제겐 무서워서...
첫 키스조차 아직인데...그런 일을 입으로 하는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기대하는 시선으로, 신뢰가 담긴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모모가 애달픈 목소리로 속삭인다.

"만약, 료스케씨가 저를 소중히 생각하고 계신다면...조금만 더 제게 시간을 주시지 않겠어요?"

"시간을?"

"빌린 돈을 이유로 몸을 내민 여자로 보이고 싶진 않으니까...
빌린 돈은 천천히 갚아나갈테니까...
몸을 내미는건 다른 이유로 하고 싶으니까...
지금은, 조금만 더 저를 소중히 여겨주세요."

"......"

모모가 내 품에 머리를 기댄다.
모모의 뒤에서 이 모든걸 지켜고보던 나나의 눈초리는 덩달아 점점 사납게 바뀌어간다.
이 상황에서 모모의 부탁을 거절했다간 어찌될지 눈에 선하다.

아아...그런가.




...요 깍쟁이가?




"...모모."

"료, 료스케씨..."

살며시 모모를 껴안자 당황한 모모가 낯을 붉힌다.

"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이해했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너의 결심을 나는 가볍게 보고 있었던것 같아.
그 제안을 했던 네가 속으로 얼마나 두려워 했을지 배려하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해."

"료스케씨..."




"하지만, 데빌루크의 공주님으로서 이전에 숙녀로서 자신이 한 약속은 지켜야 하는거겠죠?"

"......엣?"


"읏차!"

"꺄앗~!?"

파자마차림의 모모를 안아 들고선 공주님 안기로 전환한다.
난데없이 공주님 안기가 된 모모가 새된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틈에 잽싸게 내 방으로 직행한다.
방에 들어와 곧바로 침대에 모모를 살짝 집어던지자 통통하며 침대위에서 들썩이며 쓰러진 모모가 당황스러운듯 나를 쳐다봤다.

"료스케씨? 어째서 방으로...?"

"역시 단 둘인 편이 덜 긴장할테니까.
그리고 네가 분위기를 중시하는 것 같아서 나도 최대한 배려를 보이려고."

"부, 분위기? 저기...설마 료스케씨, 제게 부끄러운 짓을 시키실 셈은 아니시겠죠?"

"응응. 전혀 부끄럽지 않아.
적어도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은걸."

"하나도 안심이 안되는걸요!? 꺅!"

나도 침대에 올라앉자 모모가 엉겁결에 나를 피해 뒤로 물러나려다 팔이 미끄러져 침대에 쓰러진다.
일어나려던 모모를 막듯 잽싸게 모모의 겨드랑이 사이로 양손을 뻗은 자세로 모모를 내려다본다.

"아..."

"......"

물끄러미 쳐다보자 모모의 얼굴이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든다.

"저...이런건, 곤란해요..."

"이제와서?"

"그게...분명, 료스케씨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을테니까..."

"헤에...? 착각?"

"읏...!"

싱글싱글 미소짓자 모모가 겁먹은듯 어깨를 움츠린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모모의 귓가에 속삭인다.

"너 말야...실은 그 서비스인지를 할 생각은 원래 없었지?
그러니까 굳이 단둘이 아닌 '나나가 있는' 앞에서 서비스 얘길 꺼넨거였잖아."

"...알고 계셨군요?"

"속이 빤했으니까. 뭐, 조금은 기대하고 있던 차에 그런 식으로 피해가려던 모습을 보면 화나지 않을 수 있겠어?
그리고 착각이라...어떤 부분을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진 몰라도 말야."

천천히 모모의 귓가에서 입술을 치우고선 몸을 세운다.

"여기까지 와서 전부 착각이었습니다라고 하는걸로 '네 그렇습니까'하고 물러나는 사내아이가 있을거라 생각해?
적어도 나는 아냐."

"...료스케씨는, 좀 더 신사적인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레이디의 권유를 거절하는건 신사의 예의가 아니잖아?"

"그건 억지,「모모.」...네."

"적당히 각오해.
나는 이미 각오했으니까."

"읏..."

불안해하는 모모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모모의 몸이 가늘게 떨린다.

"너는 그때, 내게 두근거려줬으면 하고 바랐지."

- 정말~~~!
좀 더 이렇-게, 두근두근해줘도 좋잖아요?

"'진심'이라고도 했어."

- 그럼 정말로 대출혈 서비스에요.
이번엔 정말로 굉장한거니까요? 농담이 아니고 저도 진심이니까요?

"그리고, 내 욕망을 받아들이겠다고도 말해줬지."

-...료스케씨가 항상 제게 품고있는 욕망을 해소해드릴께요.

조심스레 모모의 두손을 감싸쥐자 모모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착각이라도 좋아. 설령 그게 날 놀리기 위한 것이었다 해도...
내 마음을 어지럽힌 만큼, 너의 마음도 두근거려줬으면 하니까.
그러니까..."

"료스케씨..."




"너도 이 당근(500g 40엔)을 먹어서 내 마음에 보답해줬으면 해."

"......헤?"



코앞에 내밀어진 커다란 당근의 모습에 모모가 얼빠진 소리를 흘린다.

"자, 여기 네가 말한 굵고 단단한 붉은 당근이 있습니다."

"에엣!? 어, 어째서? 분명 카트에서 빼뒀는데?"

"몰래 따로 사뒀거든.
자, 그럼~ 오늘부로 편식가를 졸업하기로 한 모모씨에게 지금 소감을 묻겠습니다.
당근을 본 감상은 어때?"

"이, 이렇게 커다란거, 들어가지 않아요!"

대게 그렇게 말하면 다 들어가는 패턴입니다.
그리고 어쩐지 야한 느낌이니까 그만둬.
내 심정이 어떻든간에, 난데없는 당근에 패닉에 빠져있던 모모는 이내 뭔가 달관한듯 「아, 아하하...」하는 허탈한 소리를 흘리곤 눈꼬릴 세웠다.

"설마하니 료스케씨...
그 크고 단단한 붉은 걸 제 입에 억지로 쑤셔넣고 싶어하실줄은 몰랐어요.
그걸 삼키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절 보면서 정복욕을 느끼시려는거죠?"

"...세상에 당근 먹는걸 그렇게 표현하는 건 너 밖에 없을거야..."


푸념과 함께 당근을 내밀자 마주한 모모의 눈매가 떨렸다.

"먹는다뇨...? 전 분명 핥는것 까지만 한다고 그랬죠?"


"내 '욕망'은 네가 편식을 고치는거야.

그리고 당근을 핥는걸 편식을 고쳤다곤 하지 않지?"


내 지적에 모모는 체념한듯 눈을 감았다.


"응, 그럼 얌전히 당근을 먹어줄래?"

"......"

"모모?"


"......"


"여보세요?"


"...우웅...더는 못 먹어요..."


"아니, 못 먹기는 무슨. 아직 당근엔 손도 안 댔잖아?"


웅얼거리며 엉뚱한 소리를 하는 모모에게 딴죽을 걸자 나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저는 지금 자는 중이에요."


"어?"


"료스케씨는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여자애를 상대로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짐승은 아니죠?"

"......"

당근 먹이는게 짐승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

"료, 료스케씨? 당근으로 제 볼을 누르지 마세요."

"아니거든? 네가 고개를 돌리니까 뺨에 닿은거거든?"

(> x <)

어머나 귀여운 얼굴.
침대에 누워서 눈을 꼭 감은채 고개를 돌려 입을 다물고 있는 모모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당근을 들이민다.

"자아, 그러지말고 아~앙~해. 자기야~"

"연인 설정은 쇼핑때 끝난거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런건 보통 케이크 같은걸로 하잖아요!"

"오늘 자기의 '특별서비스' 발언 덕분에 마트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무시무시했던거 알아?
사랑하는 자기가 이렇게도 날 농락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나는 몹시 슬프거든?
편식하는 자길 걱정하는 내 욕망을 해소시켜주겠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당근에 사랑을 담아 아~앙~해."

"무, 무리무리! 입 안에 넣는것 까진 도저히 무리!"

"시꺼 임마! 애초에 누가 당근 먹는걸 그렇게 표현하래!?"

"꺄아아아~~~!"



"야! 너 모모에게 무슨짓...어?"

방 밖에서 안절부절하다가 못참고 방 안으로 쳐들어온 나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침대에 쓰러진 자세로 내 밑에 위치한 모모.
한손에 당근을 들고 모모 위에 위치한 나.
상황이 이해가 안가는지 혼란스러워하는 나나에게 웃으며 한손을 들어보였다.

"여어 나나.
모모가 게임기 사주는 대가로 당근을 먹기로 했단다.
그러니까 협력해."

"......OK!"

"나, 나나아아아아!?"

"흐흥, 모모는 어른스러우니까 당근 정돈 먹을 수 있는거겠지?
별로, 오늘 일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있는게 아니니까?"

"앙심 품고 있잖니!? 적어도 마음 정도는 가슴이랑 다르게 커도 좋잖아!"

"...료스케, 당근 더 있어?"

"한개 더 있는데 왜?"

"배(倍)로 간다."

"꺄아아!?"

당근을 들고 침대로 뛰어든 나나에게 덮쳐져 모모는 비명을 질렀다.



"조금만! 조금만이면 되니까! 끝만 넣을테니까!"

"거짓말! 그렇게 말해놓고선 제게 심한 짓을 할 생각인거죠?
ER○ 동인지처럼!"

세상에 당근을 입에 넣는 전개의 ER○ 동인지도 있어?

"그럼 뿌리만! 뿌리까지만 먹일테니까!"

"...뿌리까지만?"

"응. 뿌리까지만 먹으면 나도 더이상 강요하지 않을테니까."

"미남! 천사! 료스케씨!"

싱긋.

"그런데 말야 모모."

"네?"

"당근은 원래 '뿌리식물'이야."

"그, 그런...!?"

"자아~ 그럼, 끝까지 다 먹어주겠어 자기~?"

"귀신! 악마! 료스케씨!"

"악마(Devil)는 자기잖아?"



이 우스꽝스런 투쟁도 마침내 끝이 다가왔다.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투닥투닥 다투면서 침대위를 뒹굴던 나와 나나와 모모.
나와 나나의 가드가 허술해진 틈을 타 모모는 잽싸게 침대를 탈출했다.

벽에 등을 지고 선 헐떡이는 모모를 마주하고 온갖 구슬림과 협잡이 난무했다.

'당근을 먹고 토끼의 마음이 되는거야.', '토끼는 귀여워!' 같은 빗나간 화제가 튀기도 하고, 당근이 눈에 좋다는 얘기 따윈 대파를 엉덩이에 꽂으면 감기가 낫는다는 수준의 근거없는 얘기라느니 하는 모모의 열변이 불꽃을 튀었다.

나중에 가선 대파꽂기 = 당근먹기 라는 폭론으로 당근을 거부하던 모모는, 결국 궁지에 몰리자 파앗- 소리가 날 정도로 온몸을 펼치며 악을 쓰듯 외쳤다.


"당근을 먹을 바엔 차라리 엉덩이에 대파를 꽂겠어요!"



자그마치 30분에 걸친 투쟁 끝에 나온 결단이랜다.


거기까지 싫습니까...

"에? 그럼 꼬리가 2개가 되는데 괜찮아?"



"......풋."



빠밤-!
모모쨩 아웃-!


파앙-!

"아팟!?"

나나의 발언에 결국 모모가 웃어버림으로써, '절대 웃으면 안되는 파자마편'은 모모가 엉덩이 배트를 맞으면서 끝을 맺었다.

"우우...대체 언제부터 웃으면 엉덩이 배트란 룰이 있었다는거에요?"

솜배트를 들고 휘파람을 부는 나나의 옆에 웅크리곤 엉덩이를 매만지며 모모가 울상을 지었다.

"그럼 당근을 먹는 쪽이 좋았어? 아니면, 착각하고 있는 편이 더 나았을까?"

고개를 든 모모가 울컥한 얼굴로 째려봤다.

"료스케씨는 바보에요!
바보! 멍청이! 낭만이라곤 하나도 없어!"

"네에네에, 그럼 당근을 먹은 다음엔 나랑 방금전 못다한 낭만적인 일을 계속하자구."

"절대로 먹지 않을거니까요!"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하루의 마지막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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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러님과 기다려주신 독자분들 죄송합니다...m(_ _)m;;;

연재가 무지막지하게 느려졌군요-_-;
연중 3년이 다되가다니...;


덕분에 개인 티스토리 계정도 휴면상태가 된지라(...) 비번 갱신하고 복구했습니다=x=;


재작년에 쓴다, 작년에 쓴다, 작년 말에 쓴다, 올해 초에 쓴다...5월까지 쓴다...

별의 별 허풍을 다 떨어놓곤 올린건 겨우 원래 예정해뒀던 40화 초반부네요...orz;;;


원래는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합쳐서 올리려고 했는데, 그렇게 했다가는 쓰는 도중에 제풀에 지쳐버리거나, 또다시 몇달이 지나버릴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일단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가 끝는 부분을 우선 40화로 먼저 올립니다.

생각해보면 수학여행 에피소드나 유우사키 에피소드도 2개 정도로 나눴었고...라고 변명해봅니다 쿨럭쿨럭...( --);;


41화는 40화에 이어지는 내용이긴 한데, 주연의 비중도 40편과 달라서 따로 보셔도 무관할 듯 합니다^^;

그럼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 글로 뵙겠습니닷!




p.s.1. 참조 이미지


1. 펫푸트 코너에서 하루나



하루나가 깜짝 놀라는 얼굴이 굉장히 귀엽더군요*^^*

언제나 좋은 작품 감사드립니다 터틀러님^^




p.s.2. 터틀러님의 축전


거의 3년만에 하는 축전 감사군요...OTL;;;

언제나 멋진 축전과 삽화 감사드립니다.


1. if 이단옆차기가 방송 프로그램이었다면



왼쪽부터 코테가와, 룬, 미캉입니다.

료스케와 함께 네명 다 배우라는 설정.

코테가와가 저렇게 폭소하는건 20년 가량 알고 지내던 연상의 소꿉친구의 격변한 메이크업을 봤기 때문이라고...

"맙소샄ㅋㅋㅋ완벽햌ㅋㅋㅋ"

저렇게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코테가와의 모습이 드물고도 귀여웠습니다!^^b




2. 아키츠 료스케(여성 Ver.) 산타 코스프레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보내주신 료스케TS 버전의 산타복입니다.

예전에 받았던 TS버전은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이번엔 산타복에 어울리는 활기차 보이는 소녀더군요^^b
언젠가 TS 해프닝도 쓸 수 있기를!




3. 엄마 닮은 아들, 아빠 닮은 딸


작년 초에 받은 코테가와 루트의 결혼 후 풍경입니다.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함께 맞는 온화한 아침이라니...!+_+b

모친을 닮아 똘망똘망해보이는 아들이 기특하면서도 귀엽네요.

딸은 그냥 있어줘도 귀여워!(퍽)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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