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초대권"오늘도 불태워서 해결~!"

인기 아이돌 키리사키 쿄코가 열연하는 『폭렬소녀 매지컬 쿄코 플레임』!
한층 더 화려한 볼거리와 함께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매지컬 쿄코 관련 상품이 경품으로 증정됩니다.



"...뭐지, 이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면서, 우편함에서 꺼내온 편지봉투를 열자 나온 티켓에 적힌 내용이다.
날짜와 장소를 확인하니 며칠 뒤, 근처 공연장에서 열리는 매지컬 쿄코 공연의 VIP 티켓인가보다.

"설마 이거 쿄코한테서 온건가?"

편지봉투 겉면의 발신인 란엔 확실하게 「from K.K」 라고 적혀 있다. 맞구나.
일부러 티켓을 보내준 정성에 고마워하며, 함께 동봉되어 있던 편지를 읽어보았다.



오랜만이네 아키츠군. 그간 잘 지냈어?
아니면 여전히 다사다난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아키츠군과 처음 만나고 나서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난데없이 아마존 탐험을 하고 왔다는 소식을 떠올리자면 후자 쪽이 맞을것 같지만.
그 소식을 들었을 땐 아키츠군에 대한 이런저런 황당무계한 소문들도 진짜인걸까 한동안 고민했었다구.

이번에 아키츠군이 사는 곳에 다시 한번 공연하러 가게 됐어.
얼마전, 공원에서 했던 공연이 꽤나 호평이어서 그랬던걸까?
의외로 난 사이난이랑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혹시 어쩌면 아키츠군과의 인연이라든지?


작렬하는 화염으로 당신의 하트를 캐치~☆ 랄까나~(웃음)


...조금 부끄러워졌어.
아키츠군처럼 로맨티스트 분위기를 내보려다가 자폭한 느낌이야.

사실 사이난은 유원지나 워터랜드 같은 명소도 많고, 「열혈학원」으로 유명한 사이바이 화백이라든지, 데뷔 후 눈깜짝할 새에 유명해진 RUN 같은 유명인들도 많은 곳이니까,
다시 한번 사이난에 공연을 가게 된 것도 생각만큼 신기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렇게 이유를 따지는 것 보단, 역시 특별한 인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낭만적이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마법소녀로서나, 빛나는 아이돌로서가 아니더라도, 청춘을 구가하는 소녀는 언제나 꿈이 넘치는거니까 말야.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사이난에 가는김에 시간이 된다면 아키츠군이랑 얼굴정돈 보고 싶어서 티켓을 보냈어.
공연하는 곳 근처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초대하라고 VIP 티켓을 몇장 받았거든.
2장 보낼테니까 함께 올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꼭 보러봐줘~


from K.K



"물론이지! 꼭 갈께! 반드시!"

듣는 사람도 없는데 중얼거리다가 괜스레 쑥쓰러워져 고개를 숙였다.
친구에게 처음으로 받아본 편지라는 점과 쿄코의 배려에 감동에 겨워 무심코 말이 입밖으로 나왔나보다.
아이돌 활동으로 바쁠텐데 편지까지 곁들여서 신경써줄 줄이야.
이런 정성들인 편지까지 받았는데 누구인들 안가고 배길쏘냐.

그런데...누구랑 함께 가지?

매지컬 쿄코 공연에 함께 갈만한 친구를 마음 속으로 물색해 보았다.

- 쿄코쨩의 공연 티켓이 있다길래 달려왔어~!

곧바로 매지컬 쿄코의 열렬한 팬인 라라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자작 가상현실게임에 매지컬 쿄코 커스텀 NPC를 만들어 넣을 정도로 매지컬 쿄코를 좋아하니까.
순수하게 공연을 즐기는것만 생각한다면야 라라와 함께 가는게 최선의 선택이겠지만, 그래도 라라라면 아마 리토랑 함께 보러 가려 할테니 안되겠지.
거기다 라라에게 함께가길 권유했다가 괜스레 리토에게 눈흘김 당하고 싶지도 않고.
하루나도 마찬가지 이유로 권유는 무리다.
침착하고 성실한 위원장인 하루나가 이런쪽에 흥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나랑 모모는 둘 중 한명만 데리고 갈 순 없으니 무리.
거기다 딱히 매지컬 쿄코에 관심이 있는것 같진 않으니 일단 제외해두자.

코테가와는 예전에 마스코트 고양이 시로네 인형을 마음에 들어했는데 어떠려나.
매지컬 쿄코 얘길 했을때 묘한 얼굴을 한 걸 떠올리면 조금 주저하게 되지만...
함께 보러 가자고 구슬릴 이유가 좀 궁색하긴 해도, 일단 권유해 볼 순 있을 것 같다.

사야카는 붙임성이 좋은편이니까 권유하면 의외로 승낙할지도 모르겠다.
코요미는...모르겠다. 안경을 쓰고 있어서 이지적인 느낌이 나는데 이런 공연을 과연 좋아할지?

시즈는 호기심이 많아서 공연을 즐길수 있을것 같으니까 시즈에게 동행을 권유하는 것도 제법 괜찮은 선택일 듯 하다.
매지컬 쿄코 할로윈 특집때 무대 위에서 제법 즐거워 했었으니까.
평소에 시즈는 미카도 선생님의 보조로 일하고 있으니까, 만약 권유한다면 나중에 시즈의 스케쥴을 확인해봐야겠다.

리사랑 미오는 이런거랑 인연이 없어 보이는데.
사키, 린, 아야 선배도 마찬가지고.
야미랑 미캉도 할로윈 공연에서 풍선 나눠줬을 때의 반응을 떠올리면 이런 공연엔 그다지 흥미가 없는것 같다.

...아! 그러고보면 미오는 코스튬 플레이에 관심이 있으니까, 변신 마법소녀물인 매지컬 쿄쿄에도 흥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미오에겐 다음에 넌지시 물어보기로 하자.

룬은...권했다가 가당찮다며 콧방귀나 뀌지 않으면 다행이지.
쿄코와 같은 아이돌이니까 라이벌 의식이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룬은 최근 아이돌 활동에 바빠서 학교에 오는 날이 드물잖아.

그 다음은...누가 있지?
하루코 선생님? 보통 선생님께 마법소녀 공연에 함께 가자고 권하진 않겠지. 열혈학원 관련 작품이면 권유해봐도 좋을테지만.
미카도 선생님은 언제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시니, 이런 공연에 가서 「와와~! 꺄꺄~!」하고 환호하는 타입은 절대 아닐것 같다.
어른의 여유를 즐기는 타입인 미카도 선생님께 마법소녀물 공연을 권유하는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봐서 포기했다. 무엇보다 주말엔 우주인 환자들 때문에 바쁘실 것 같고.

공연에 함께 가줄것 같은 후보들이 정해졌기에, 나머지는 내일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일 학교에서 직접 한명씩 물어보면 되겠지.
권유하는게 부끄러우면 뭐 어떠냐. 운이 좋다면 여자애랑 함께 갈 수도 있는 기회인데.

만약 운이 나빠서 여자애들 전부에게 거절 당한다면, 남는 한장은 열혈학원의 연재에 도움을 주고 있는 마울에게 평소의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건네 주도록 하자.
마감 때문에 마울이 공연을 볼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매지컬 쿄코의 열성 팬인 그 녀석이라면 열혈과 근성으로 원고를 완성하고 당당히 공연을 보러올지도 모르지.
기회가 된다면 마울에게 사이바이 선생님의 근황이나 열혈학원 다음편에 관한 소식이라도 물어보고, 나중에 하루코 누나, 아니, 하루코 선생님께 열혈학원 소식으로 연락할 건수로 삼지 뭐.

생각을 마치고 쿄코가 쓴 편지를 다시 한번 천천히 곱씹어 읽었다.
공연장에 갈때 꽃다발 정도는 준비해 가자고 마음 먹으면서.
우선, 메일로 쿄코에게 감사의 답장부터 보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교문을 들어선 이후, 공연보러 가자고 누구에게 먼저 권유해볼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다가, 복도 맞은편에서 오던 라라와 마주쳤다.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오던 라라가 날 발견하자마자 기운차게 손을 흔들었다.

"얏호~ 좋은 아침 료스케~!"

"좋은 아침이야 라라.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들떠 보이네?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었어?"

"헤헤, 그래보여? 궁금해? 궁금해?"

히죽히죽 풀어진 얼굴을 추스리지 못하는 라라를 보며 슬쩍 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지...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표정을 지으면 안물어 볼래야 안물어 볼 수가 없잖아.

"그야 엄청 궁금하지. 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거야?"

"후후, 그게 말야~ 며칠뒤에 이 근처에서 매지컬 쿄코 공연을 한대~!"

양볼을 감싸쥐면서 꺄아꺄아 거리는 라라의 모습에 자연스레 표정이 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공연 때문인가. 역시나 매지컬 쿄코의 열성팬 라라.

"아아, 이번 주말에 잡힌 공연 말하는거구나?"

"어? 료스케도 알고 있었어?"

"응. 키리사키 쿄코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챙겨보는 편이니까."

"그러고보면 료스케는 쿄코짱 사인도 갖고 있었지?"

"응."

정중하게 코팅해서 보관하고 있다. 야한 사인본이서 그런건 아니고.
쿄코에게 직접 받은 것이기도 하고, 쿄코의 메시지가 적혀 있는 소중한 사인본이니까.

"우우...나도 그거 갖고 싶었는데..."

손가락을 물고 아쉬운 표정을 짓던 라라는 곧 기분을 고쳐 가슴을 폈다.

"엣헴~! 그래도 나한텐 안될껄?
난 쿄코짱이랑 함께 무대위에도 있었는걸~!"

양손을 허리에 얹은채 가슴을 한껏 내밀며 뽐내는 모습이 도발적이라기보단 귀여워 보여서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그러고 보면 그랬지?
나도 사인본을 받는것 보단 쿄코를 직접 만나는 쪽이 더 기쁠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쿄코랑 같은 무대에 서게 됐던거야?"

"그게 말이지~ 리토랑 미캉이랑 야미쨩이랑 다함께 할로윈 공연 보러 갔는데 말야..."

내 물음에 반색하며 라라는 생기 넘치는 얼굴로 매지컬 쿄코와 만났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평소에 매지컬 쿄코를 화제로 삼아 대화할 친구가 없었던 탓인지, 매지컬 쿄코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라의 얼굴엔 평소보다 활력이 돌고 있었다. 




재미있는 몸짓을 보여주며 한참을 재잘대던 라라가 후련한 얼굴로 이야기를 마치자, 화제는 곧 있을 공연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그럼 료스케도 이번 매지컬 쿄코 공연 보러 갈꺼야?"

"물론이지. 이미 VIP 티켓까지 준비해뒀으니 공연에 안 갈 생각은 애초에 없다구."

주머니에서 티켓을 꺼내들자 라라의 눈이 빛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VIP 티켓? 일반 티켓이랑 다른거야?"

"VIP는 Very Important Person의 약자인데, VIP 티켓은 다른 티켓보다 조금 비싼 티켓 정도로 보면 돼.
VIP 티켓이 있으면 우등석에 앉아서 공연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일까?"

"좋겠다~ 나 그 티켓 한번 봐도 돼?"

"응, 여기."

티켓을 건네주자 라라는 흥미로운듯 티켓을 살펴보았다.

"헤헤, 매지컬 쿄코가 티켓에 그려져있네.
일반 티켓도 이렇게 똑같은 그림으로 되어 있으려나? ...어...?"

웃으며 티켓을 훑어보던 라라의 움직임이 멈췄다.

"라라?"

"......"

내 말이 들리지 않는듯 라라는 대답없이 티켓에 눈이 고정되어 있었다.
먹혀들어가듯 티켓을 쳐다보는 라라의 시선을 따라가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 매지컬 쿄코 관련 상품이 경품으로 증정됩니다.」

「* 매지컬 쿄코 관련 상품이 경품으로 증정됩니다.」

「* 매지컬 쿄코 관련 상품이 경품으로 증정됩니다.」

...아, 경품...
그러고보면 경품은 VIP 티켓 특전이던가.
홀린듯이 티켓을 응시하는 라라의 정신을 깨울겸 티켓을 도로 회수했다.

"...아..."

손에서 떠나간 티켓을 안타까운듯 바라보며 손가락을 입에 물던 라라가 문득 뭔가를 눈치챈듯 눈이 동그래졌다.

"...료스케."

"으, 으응?"

반짝이는 라라의 눈빛에 놀라 말을 더듬자, 라라가 티켓을 챙기던 내 손을 가리켰다.

"티켓, 「2장」이네...?"

"...아아, 혼자가면 심심할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오늘 학교에서 함께 매지컬 쿄코 공연 보러 갈 사람을 알아보려던 중이었,"

"나! 나! 내가 갈래!"

"어? 아, 아니...넌 유우키랑 가면 되잖아?"

"하, 하지만 경품인걸...! 경품 갖고 싶은걸!"

폴짝폴짝 점프하며 필사적으로 티켓을 낚아채려는 라라에게 당황하면서도 손을 위로 올려 티켓을 사수했다.

"우으...! 같은 팬이잖아~!
이번 정돈 함께 보러 가도 괜찮잖아~!"

미안. 그렇게 우르르 눈물이 고인 얼굴을 해도 이번엔 양보 못하니까.
다른 때였다면 리토랑 둘이서 공연 보러 가라며 티켓 2장을 전부 양보해주는 호의를 내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건 꼭 공연을 보러 와달라며 쿄코가 직접 보내준 티켓이라, 쿄코의 성의를 무시하는 선택을 할 순 없다고.
...그러니까 이만 포기하고...너도 슬슬 브래지어는 좀 하고 다니라고!

- 가랏! 얼티메이트 버스트(bust)!

그리고 버스트는 그 버스트가 아니니까!
궁극 가슴이라니, 차라리 호빵 버스트나 마시멜로우 어택이...라니, 내가 뭔 생각을 하는거야?
고의인지 우연인지 몸을 접하면서 가슴이 밀듯이 흘러가는 감촉에 내가 움찔할때마다 틈을 노린 라라가 덤벼들어왔다.

어머니...요즘 고교에선 여학생이 남학생을 덮칩니다.
최악인건 여자애가 순진해 빠진 주제에 쓸데없이 발육만 좋아서 차분한 대응을 할 만큼 제가 냉정해지기 힘들다는 거죠.


휘몰아치는 번뇌에 휘둘리며 한동안 곤욕을 치르다, 붉어진 얼굴을 추스리며 가까스로 라라의 육탄 돌격으로부터 티켓을 보존한 내게, 라라는 결국 울상을 지으며 물러났다.
서로 잠시 진정하고 난 뒤, 여전히 미련이 남은건지 티켓을 바라보던 라라가 우는 소리를 냈다.

"하아아~ 나도 공연 보러 가고싶어... 경품 갖고 싶단 말야..."

"경품은 그렇다 쳐도, 공연이라면 넌 유우키랑 함께 가면 되잖아."

"리토랑 함께 보러 가고 싶은데에 안된단 말야~~~"

"왜? 설마 사이바이씨의 만화 원고 마감 때문에 유우키가 바쁜거야?"

"아니..."

"그럼?"

"애들이나 보는거라 싫대. 정말~"

...그러고보면 그랬던가.
성적승부에서 패한 뒤의 리토는 매지컬 쿄코 보러 가자는 라라의 제의에 질색했었지.
볼을 뿌우-하고 부풀린 라라에게 뭐라 위로해줄 말을 찾지 못한채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이 책 이상해.
리토랑 매지컬 쿄코 보러 가려고 이 책에 나온대로 따라했는데 제대로 된건 하나도 없었구..."

불평하며 라라가 집어든 책 제목에 눈길이 갔다.

"...『남자를 사로잡는 기술 100』?
라라 네 책이야?"

"아니. 리사꺼야. 저번에 말야..."



"리토~! 이번에 매지컬 공연 함께 보러가자~!"

"그러니까 그딴 유치원생이나 보는 쇼엔 가기 싫어!"

"히잉...정말 재밌을텐데..."

"후후후, 여전히 진도가 안나가는구나 라라찌."

"어? 리사?"

"내 생각엔 라라찌는 좀더 연애에 대해 알아야 해.
그런 라라찌를 위해~
떼렛떼~! 『연애입문서』~!"




"...이런 일이 있었어."

도○에몽이냐.

"그런데 이것대로 해봐도 리토에겐 전혀 먹히질 않구...정말로 이게 도움이 되는걸까?"

"괜찮다면 내가 한번 읽어봐도 될까?"

"응. 여기. 정 안되면 료스케한테 물어보라고 리사도 그랬으니까."

"핫핫~! ...기대가 무겁네."

라라에게 책을 건네 받았다.
책의 커버를 장식한, 여자 엉덩이에 깔려 정신을 못차리는 남자의 모습에, 미묘한 심정으로 책을 펼쳐 대충 내용을 훑어보았다.

- 우선은 그를 데이트로 유혹합니다. 다만 확실히 데이트라고 하는 것은 안돼!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 요령이야♡

- 부끄러워하며 대화하면 호감도 UP

- 연애는 밀고 당기기가 중요해요♡

- 상대의 여자 취향도 중요

- 말과는 정반대로 사실은 좋아하는다는 것을...



경박한 느낌의 표지에 비해선 못 볼 정도의 내용은 아닌데...

"적당히 참고할 정도는 되는것 같은데? 어떻게 했길래 그래?"

"우웅...그러니까..."

양손 검지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생각을 떠올리던 라라는, 이윽고 양손을 살짝 깍지끼며 검지를 서로 맞댄채 얼굴을 붉히며 힐끗 내쪽을 바라보았다.

"오늘 학교도...즐거웠어."

아직 1교시도 시작 안했는데? ...아, 혹시 상황 재현인가?
아마도 예전에 리토에게 했던 걸 그대로 보여주는 모양이다.
하교시간에 리토에게 저런 식으로 말했었나보네.

"아, 참고로 활용한 문장은 여기야."

라라가 책을 펼쳐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을 확인했다.

- 부끄러워하며 대화하면 호감도 UP

방금전 표정은 그런 이유였군.

"그래서, 어땠어 료스케?"

"응? 그야 엄청 귀여웠는데.
라라 네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는건 정말 드문 편이니까, 신선하기도 했고 평소보다 귀여워 보였어."

"그래? 헤헷..."

쑥스러운듯 배시시 웃으며 라라는 책을 몇장 뒤로 넘겼다.

"그 다음엔~ 으응...아! 이거야."

- 연애는 밀고 당기기가 중요

...뭔가 예시가 없고 개략적인데, 항상 리토에게 적극적인 스킨쉽을 하는 라라한테 과연 이게 이해가 됐으려나?

"혹시나 해서 묻지만 라라 넌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어?"

"으응...글쎄, 솔직히 나도 정말 밀고 당기는데 의미가 있는건지 의심이 가는데.
그래도 한번 해봐도 돼?"

"이해가 안되는데도?"

"그게, 첫번째껀 리토한텐 안통했는데 료스케한텐 통했으니까.
이번것도 어쩌면 혹시...라고 할까?"

"뭐, 그렇다면야. 아, 너무 기합 넣고 하진 말구.
라라 네 경우엔 기세가 지나쳐서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좀 더 어깨에 힘을 빼는게 좋을거야."

"응. 좀 더 힘을 빼고 살살이란 말이지..."

내 말을 되뇌이듯 중얼거린 라라는 「좋아!」라고 중얼거리며 양손을 꽉 잡고 기합을 넣었다.
...방금 힘빼란 소릴 했는데 정말로 알아들은건가?
의욕 만만인 라라의 모습에 스멀스멀 불안감이 밀려오는 가운데, 라라가 천천히 양손을 내 어깨에 올렸다.

"생각해보면 그땐 뒤에서 밀어서 실패했는지도 모르겠네."

"음?"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쥔 손길에 고개를 갸웃하는 내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라라는 두근두근하는 얼굴로 내 어깨를 잡은채 내 몸을 벽에 밀어붙였다.

"어...라라?"

당황한채, 올려다보는 라라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 그럴지도. 이렇게 있으니 조금 다른 느낌?"

분명 내 충고대로 힘은 안들어갔는데...지금 라라의 얼굴, 엄청 진지하네.
응시해오는 라라의 눈빛에 괜스레 양뺨이 뜨거워진다.
부끄러워하는 내 거동을 눈치챈 라라가 만족한듯 웃었다.

"아, 역시 이렇게 정면에서 하는게 훨씬 효과가 좋았을지도."

...정면?
그러고 보니 아까 라라가 뒤가 뭐 어쨌다고 했더라?

"유우키에겐 어떻게 했길래?"

"뒤에서 목덜미를 잡고 힘껏 밀었다 잡아당겼더니 막 화를 냈어.
우웅~ 료스케 말대로 너무 힘준게 문제였을까?"

"아하하...그럴지도..."

목 아팠겠네 리토...
그렇다기 보다는 원래 '밀고 당기기'의 의미는 이런 물리적인 의미가 아닌데.
한숨이 나오려는걸 숨기곤 라라에게 물었다.

"그럼 밀고 당기는건 이랬다 치고, 다른건 뭘 했어?"

"아, 그전에 잠시만."

"왜그래?"

"우음..."

내 양 어깨를 잡은채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는 라라의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어 낯을 붉혔다.
아까부터 내 안색을 살피고 있었던 건지, 내 반응을 본 라라가 눈을 반짝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떠오른게 있어."

"뭐가?"

"료스케가 버서커 DX를 먹은 날."

"아..."

약에 취해서 라라의 어깨를 잡고선 라라를 벽에 밀어 붙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그걸 얘기하는 거겠지.

"그땐 조금 아팠어."

"...그 일은 미안했어."

"그러니까...이번엔 내 차례네?"

"어?"

싱긋-하고 라라가 웃는다.

"밀고 당기기 연습이잖아. 아직 '당기기'가 남았지?
료스케의 반응은 참고가 될 것 같으니까 좀 더 협력해줘."

내 어깨를 잡고 있던 라라의 손이 어느샌가 내 목덜미를 깍지로 감싸고 있다.
깍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천천히 라라가 내 얼굴을 잡아당긴다.
상체가 앞으로 이끌리면서, 라라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당혹해서 흔들리는 내 눈을 관찰하듯 라라는 내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어디까지 끌어당길 셈이야 너...

순간, 목덜미를 잡고 매달리듯, 발돋움한 라라가 천천히 이마를 맞댄다.

"어, 어이..."

"열은...없진 않네?"

라라가 중얼거릴 때마다 맞닿은 이마를 통해서 울림이 파고들어 찌르르하고 몸이 떨린다.
뺨을 간질이는 숨결 탓에 달아오른 뺨도 움찔거리는듯 하다.
눈썹이 닿을듯 가까운 거리에서 응시해오는 라라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에 당황해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도톰하고 윤기가 도는 입술에 눈이 고정되면서, 사라락 흔들리는 머리카락 내음이 비강을 간질인다.

"어때 료스케? 효과가 있어?"

"......"

"료스케?"




"뭐하는 짓이야!"

어지러움 속에 뿌옇게 흐려진 정신을 깨우는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시야 한구석에서 황급히 달려오는 렌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 렌?"

내 얼굴에서 눈을 뗀 라라가 렌에게 인사하는 틈을 타 라라에게서 벗어났다.

라라의 진지한 태도 때문에 긴장해선 묘하게 두근두근해버렸다.
그야 얼굴이 그렇게나 가까이 있으면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으란게 무리한 요구지만...
하마터면 라라를 의식해버리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는줄 알았네.

고조된 체온과 더불어 가슴께에서 두근대는 박동 탓에 진정하려고 작게 숨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렌이 내 한 손을 잡아챘다.

"너 잠시 따라와."

"에? 어엇?"

당황하는 라라의 시선을 뒤로한채, 혼란스러운 맘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눈에 쌍심지를 켠 렌에게 손을 잡힌채로 화장실까지 끌려갔다.




"너 라라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거야!"

화장실 좌변기실 안으로 날 이끌고 들어와 문을 닫고선 렌이 내 멱살을 잡고 눈을 부라렸다.
라라와 내가 보인 모습 탓이 사나운 기세로 으르렁거리는 렌을 달래려고 양손을 내저었다.

"우선 진정해. 그냥...책 이야길 하다가 조금...해프닝이 있었을 뿐이야.
그리고 비위생적이게 구태여 이런 장소에서 대화할 필요는 없잖아?"

"남자의 싸움은 화장실에서 벌어진다고 들었다!"

...소변기 앞에서 벌어지는 자존심 싸움 같은거? 지저분한 싸움이네요.
어디서 이상한 상식을 주워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좌변기실 안에서 남자 놈 둘이라는 상황은 공갈협박 또는 동성애 의혹 받기 딱 좋다고.
문제인건 미소년 스타일인 렌이랑 둘이 이런 비좁은 공간에 있었다간 십중팔구 이상한 방향으로 의심을 받을거란 사실이지.

"그리고 말 돌리지마! 책 이야길 하는데 라라랑 그...키, 키스할것 같은 자세를 취하는거냐! 이자식!"

"아... 그건 라라가..."

"라라가 뭐!? 설마 라라가 네 녀석한테 들이대기라도 했단 거... 에, 에츄-!"

펑-!

"...항상 생각하는거지만, 너 정말 재채기에 약하네..."

재채기로 성별과 인격이 뒤바뀌어 버리는데, 이래서야 렌으로 있는 시간은 거의 없겠네.
안그래도 룬이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렌의 활동 시간이 줄어들었을텐데.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듣지 못한채 렌의 모습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연기 너머로 삐져나온 에메랄드빛 머리카락 두가닥이 더듬이마냥 살짝 흔들렸다.
연기가 걷히자 팔짱을 낀 룬이 뚱한 얼굴로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라라까지 꼬시려는거야 수염?"

"아니거든?"

불만스러운 룬에게 난처해져 방금전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설명했다.
매지컬 쿄코 공연 이야기를 하다가 연애 입문서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연애의 '밀고 당기기'라는 개념을 라라가 물리적으로 이해한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솔직히 마지막의 당기기는 굉장히 도발적이었던게 사실이라 그걸 파고들면 변명의 여지도 없지만.

"흐응...그런거야?"

"그래. 딱히 라라에게 추파를 던지려던건......?"

"응? 왜 말끝을 어물거리는거야 수염?"

"아, 아니. 아무것도."

"...?"

여름이라 그런지 룬이 입은 남학생용 교복 모양새가 참 시원시원했다.
정말이지...방금전 라라의 도발적인 행동 때문에 자꾸만 사고가 이상한 쪽으로 향하는것 같다.
남학생용 하복 위로 부풀어오른 룬의 가슴과, 그 위로 도드라져 보이는 부위에 당황해서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말을 얼버무렸다.
갸웃하며 고개를 숙인 룬은 이내 내 시선이 머물렀던 곳을 눈치채곤 황급히 양손으로 가슴 부위를 가렸다.

"어, 어딜 보고 있던거야 이 변태야!"

"들켰어!?"

"이...! 변태 수염!"

붉어진 얼굴로 노려보던 룬이 날 차버릴듯 한쪽발을 들어올렸을 때였다.

「여기다!」
「렌! 무사한거야?」

벌컥-!

"꺄악!?"

"우왓?"

왁자지껄한 학생들의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안으로 열렸다.
발길질을 하려고 한발을 든 상태로 서있던 룬은, 열리던 문에 등을 떠밀려 균형을 잃은채 내게 매달리듯 넘어졌다.
엉겁결에 기대오는 룬을 안아들자, 막 안을 확인하려던 학생들의 경악섞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룬!?"
"RUN쨩?"
"너, 너희들 이런 곳에서 둘이서 뭐하는거야?"

얼싸안은 상태로 낯을 붉힌채 굳어있던 룬은 왁자지껄한 학생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곧바로 내 등 뒤로 숨어버렸다.
아마도 남자 하복이라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지금 옷차림을 신경쓴 것 같다.
다만, 날 방패막이로 써서 숨어버린 룬의 행동에 학생들의 곤혹하는 눈빛이 더욱 강해졌다.

"어, 어째서 숨는거야 RUN쨩?
"뭐야 이거? 렌이 아키츠에게 끌려갔다고 해서 왔는데 어째서 룬이..."
"서, 설마 밀회? 남자 화장실에서!?"

"에? 아, 아냐! 그런게! 수염 너도 가만 있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

아니, 일단 수염이란 별칭을 쓰는것 부터가 이상한 오해를 조장하고 있습니다만.
상황을 어떻게 오해했는지 학생들의 망상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룬은 룬대로 당황해선 내 뒤에 숨어서 자꾸만 날 재촉하고.
화장실에서의 터무니 없는 소란은 조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정말이지 터무니 없는 아침이 되어버렸어.
화장실에서 밀회라니, 최악이야..."

"아아, 그러게..."

여자 교복으로 갈아입고서 교실로 돌아와 불평하는 룬에게 지친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거기다 하필이면 이런 변태 수염이랑."

방금전 내가 가슴께를 훔쳐봤던 일을 떠올렸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는 룬의 반응에 대처하기 곤란했다.

"그러니까 방금전 일은 미안하다니까?
거기다 화장실로 끌려갔던건 오히려 내쪽이었잖아..."

"...흥."

작게 코를 울린 룬은 시선을 피하며 한차례 옆머리를 쓸어넘겼다.

"하아...오랜만에 학교에 왔는데 벌써부터 피곤해졌어."

"확실히 학교에 온것도 거의 일주일만이네.
용케 오늘은 시간이 비었구나?"

"아이돌이라지만 나도 아직은 학생이니까.
출석일수 문제도 있고 팬층의 연령이랑 시청 시간대 같은것도 고려해서, 기획사 측에서 스케쥴을 오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걸로 조정해 준거야."

"그러고보면 어제도 늦게까지 라이브 공연 있었지?"

"그래. 대신 오늘은 재충전의 시간이라 오랜만에 한가해서 좋지만."

"역시 인기 아이돌이 되면 스케쥴 소화하는것도 큰일이네."

"후흥~ 칭찬해봐야 아무것도 안나온다구."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은근히 자랑스러운듯 룬은 살짝 코를 치켜세웠다.


나와 룬이 대화하고 있는 사이, 교실 한쪽에선 리사와 미오가 라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매지컬 쿄코 공연으로 들떠있다가도, VIP 티켓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노골적으로 아쉬워하는 라라를 리사와 미오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위로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의 리사와 미오는 성실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뿐.
라라를 격려하고자 이런저런 위로를 하던 리사와 미오는, 연애입문서 이야기가 나오자 흥미진진한 얼굴로 라라의 연애사정을 듣기 시작하더니,
라라의 늦됨을 타박하면서도 아니나 다를까 어느샌가 평소의 하이텐션 성희롱 타임에 들어가버렸다.

"정말이지 유우키에겐 위기감이란게 없어. 이것 보라구."

"와앗~?"

말과 동시에 뒤에서 가슴을 움켜쥐는 리사에게 라라가 당황한 비명을 흘렸다.

"흐음? 오늘도 노브라인거야 라라찌는~?"

"꺅~ 간지러워~~!"

"으음~ 역시 라라찌의 가슴은 대단하네~
게다가 이 가느다란 허리, 터질것만 같은 엉덩이!"

눈앞에서 찹쌀떡마냥 말랑말랑하게 모양이 변해가는 라라의 가슴께에 눈이 동그래져 있는데 갑자기 볼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쭈욱-

"아얏!?"

잡아당겨진 볼에 살짝 눈물을 흘리며 시선을 돌리자, 내 볼을 꼬집은 룬이 실눈을 뜨고 날 째려보고 있다.

"음흉하게 뭘 빤히 바라보는거야?"

"긋, 비명에 놀라서 무심코 바라본것 뿐이야."

"헤에...? 뚫어져라 나랑 라라의 가슴을 바라보고 있었으면서 잘도 말해 주잖아?"

"우갸!?"


양볼을 주욱 잡아당기는 룬에게 이끌려 고개가 돌아간 사이, 리사는 라라의 몸을 주무르는걸 멈추고 물러났다.

"봐봐. 이런 몸매를 지닌 라라찌처럼 예쁜 여자는 언제 누가 가로채가도 이상하지 않다구?
유우키도 슬슬 위기감을 가져야 할텐데 말야."

"에~ 그럴일은 없어. 난 리토를 좋아하니까."

렌이 들으면 울겠군.

"쯧쯧쯧. 그게 문제란 말야 라라찌."

"어?"

쭉 세운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유우키에게만 매달리니까 유우키는 그런 라라의 호감 표시를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는거라구.
물론 일편단심이 좋지만 연애의 핵심은 밀고 당기는거야.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행동만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구.
저번에 빌려준 연애입문서에도 적혀있었잖아?"

"우우..."

일편단심이면 괜찮은거 아닌가?
지적당한 리토는 어떻게 반응할까 신경쓰여서 살펴보자, 어쩐지 머뭇거리는 리토의 모습이 보였다.
시선의 끝에는...하루나가 있네.
가만히 라라를 바라보는 하루나의 모습에 리토는 리사와 미오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해 하는 것 같다.
...뭐, 당연한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자애를 신경 써주라는것도 가혹한 요구지.
「트러블 퀘스트」에서 리토가 라라에 대한 감정을 모호하게 표현한 것도 하루나를 의식했기 때문이었을테니까.
리토가 라라에 대한 감정을 명확히 하는건 좀 더 시간이 걸릴듯 하다.
리토의 고뇌가 허무하게도, 상식을 돌파하는 라라라면, 자신과 하루나와 리토가 셋이서 함께 결혼하는 미래를 꿈꾸겠지만.
거기다 나도 내코가 석자니까 남 연애사 걱정할 처지도 아니고.

아, 볼 잡힌거 풀렸다.
룬은 어느새 볼을 꼬집고 있던 손을 풀고 리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일방적인 구애방식은 룬의 특징이기도 하니까 방금 전 리사의 말을 신경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리토의 반응이 시원찮자 리사는 살짝 한숨을 쉬더니 다시금 웃음을 띄웠다.

"그러니까 말야~ 이런건 어때?"

"우?"

내쪽을 힐끗 본 리사와 미오는 주눅든 라라를 복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라라를 데리고 나가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룬이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저 애들 대체 뭘 꾸미는거야?"

"글쎄? 뭔가 조언이라도 해주려는걸까?"

"방금 네쪽을 봤잖아. 분명 너한테 뭔가 귀찮은 일을 부탁하려는거야."

"아, 혹시 걱정해주는거야?"

"꿈 깨."

반색하는 내게 룬은 가당찮다는듯 집게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밀어내며 핀잔을 주었다. 매정하네요.

잠시 후, 교실로 돌아온 리사와 미오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라라를 이끌고 내쪽으로 왔다.

"아키츠군. 라라찌에게 들었는데 매지컬 쿄코 공연에 함께 갈 사람을 찾고 있다며?"

"응. 그렇지 않아도 같이 갈 사람이 없나 알아볼 참이었는데."

"그럼 바로 여기에 딱 알맞는 사람이 있잖아?
우리반 제일의 매지컬 쿄코 열성팬이~!"

말과 함께 리사는 라라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나와 마주한 라라는 헤실헤실하는 얼굴을 숨길 생각을 못하고 풀어진 모습으로 생긋 웃었다.

"에헷, 그러니까 잘 부탁해 료스케."

"어? ...아니, 잠시만. 난 괜찮지만 너로선 역시 유우키와 함께 가는 쪽이 좋지 않아?"

"그야 나도-웁?"

"아하하~, 싫어하는걸 억지로 강권하는 행동은 좋은 여자의 표본이 아니니까. 라라찌, 네 의견은 어때?"

내 말에 무심코 답하려던 라라의 입을 막은 리사가 내 말에 대신 답했다.
눈을 데구르르 굴리는 라라의 귓가에 미오가 작게「가르쳐준대로 말해봐.」라고 속삭였다.
뭘 가르쳤길래?
미오의 말에 다짐한듯 리사에게서 벗어난 라라가 마주한 양손을 꼼지락거리며 살짝 고개를 숙인채 내 쪽을 바라보았다.

"저, 저기...매지컬 쿄코 공연...함께 보러 가고 싶은데..."

"...어?"

수줍은듯한 작게 속삭이는 라라의 태도에 당황해서 멍하게 있다가 옆구리를 찌르는 룬의 손가락에 정신을 차렸다.
부끄러운 척? 이거 부끄러운 척이지?
무심코 움찔할 만큼 귀여웠지만 이건 유혹이 아니다.
「데이트 신청? 데려가고 싶어~!」라고 생각할만큼 귀여웠지만!
하지만 라라가 리토에게 푹 빠져있는건 잘 알고 있으니까!
...일단, 침착하자, 나. 부끄러워하는 라라의 그 모습은 분명 가식이 아니지만, 두근두근 기대에 부푼 눈빛의 의미가 영 수상하다.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금새 VIP 티켓에 생각이 미쳤다.
...역시 매지컬 쿄코 경품이 목적인가? 애초에 이거 밖에 생각나는 이유가 없지만...
포기한줄 알았더니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거야?
한번 포기했다가 다시한번 되찾은 찬스인 탓인지, 눈이 아침때보다 훨씬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데려가 주지 않을래...?"

"그, 그만...! 더 이상 내 죄악감을 부추기지마...!"

방금전 라라가 귀엽다고 생각했던 탓인지, 라라의 간청에 쓸데없이 동요하며 흔들리는 나를, 룬이 바보를 보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알아. 나도 안다고 룬.
하지만 저 기대로 가득 찬 시선이 귀여워서...가 아니고!
도리를 무시하고 내 양심을 들쑤시는, 일방적으로 기대를 품은 저 시선이 사랑스러워...가 아니고!

......

아, 제길! 그래! 저런 귀여운 몸짓으로 부탁해오니까 곤란한거라고!
신음성을 흘리며 몸을 뒤로 빼자, 날 살피던 리사가 히죽 웃으며 라라를 부추겼다.

"오오~ 효과가 있는데? 좀더 힘껏 밀어붙여 라라."

리사의 말에 따르듯 라라가 깍지를 푼 양손을 뻗어 내 어깨를 붙잡았다.

"함께...가고 싶은데..."

"저, 저기 라라? 우선 이것 좀 놓고 좀 더 냉정하게 이야기를..."

"료스케?"

"응?"

"나, 사실 데빌루크 성인이야."

"...아는데?"

"으응...? 료스케의 여성 취향은 이게 아닌가?"

응? 여성취향?
이거 분명 어디선가...

- 상대의 여자 취향도 중요.

...설마...아침의 해프닝의 계속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황급히 아침에 훑었던 책 내용을 상기했다.

- 연애는 밀고 당기기가 중요해요♡

- 상대의 여자 취향도 중요.

- 말과는 정반대로 사실은 좋아한다는 것을...

이 다음이 분명...


- 몸으로 알려 줍니다.


...어?


- 몸으로 알려 줍니다.


네?


- 몸으로 알려 줍니다.


뭐, 뭐 이따위 정신나간 연애 입문서가...


- 한층 더 대담한 복장으로 유혹하는 것도 GOOD.
찍어 눌러 마음껏 어필해!!


연애입문서라더니 이거 성인용이었잖아!!!

CAUTION! CAUTION! CAUTION!

전골 파티 날 밤에 알몸으로 리토의 침대 안으로 파고 들어오던 라라의 모습이 떠오르며 머리속에서 붉은 빛이 격렬하게 깜박였다.

"이래도 안돼? 그럼 찍어눌러줄,「예전부터 꼭 같이 가고 싶었습니다.」"

당장에라도 덤벼들려는 라라의 양 어깨를 꽉 잡고 말리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얏호~! 고마워 료스케~♪
매지컬 쿄코 공연이다~♪"

"하...하하..."

만세를 부르며 방실방실 웃는 라라에게서 떨어져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결국 공연은 라라와 가게 되는건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결정될 줄은 몰랐는데...
그렇지만...응석받이 동생의 부탁을 들어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냥 이번 티켓은 마법소녀를 정말 좋아하는 철없는 여동생을 위해 썼다고 생각하는게 좋을것 같다.
외동이지만.
어릴적 부모님께 생일선물로 동생을 갖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라면 가족계획을 다시 세우셨으려나...?
그랬다면 지금쯤 나나나 모모뻘 되는 동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저렇게 기뻐하는 라라의 모습을 봤으니, 이제와서 도로 물릴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만 걱정되는거라면...

힐끗 리토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굉장히 초조한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습니다만!?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서 시선을 외면하는 리토였지만, 중얼거리는 대사 중에 「또」라느니, 「총」이라느니, 「빌린다」느니 하는 단어가 섞여있는게 정말로 무섭습니다만!?

평소처럼 생각이 폭주하고 있는건 대충 알겠는데,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 셈인지 감도 안잡혔기에, 일단 생각에 빠져있는 리토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유우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아, 아키츠!?"

깜짝이야.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드는 리토의 행동에 나도 덩달아 놀랐다.
놀라서 잠시 멈춰있는 날 보던 리토는 한차례 주저하더니 물었다.

"그 공연 말인데...라라 말고 다른 사람이랑 갈 생각은 없어?"

"다른 사람? 예를 들면?"

"내, 내 친척이랑 보러 가는건...?"

리토의 친척?
...아, 유우사키 말인가.

"유우사키 말야?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건 라라지 유우사키가 아니잖아?
그리고 이런 일로 친척을 부려먹는 건 좋지 않다고."

"여, 역시 그런걸까..."

"그리고 만약 내가 유우사키랑 공연에 간다고 치면, 유우키 네가 대신 라라를 데리고 공연 보러 갈 수 있어?"

"내, 내가? 그건..."

당황하는 리토의 모습에 손사레를 치며 말을 끊었다.

"곤란하게 하려고 한 질문은 아니니까 신경쓰지마.
싫은걸 굳이 강요하진 않으니까.
이런 공연은 즐길 수 있는 사람들끼리 보는게 즐겁기도 하고.
그리고 라라는 너한테 푹 빠져 있고, 나도 이상한 의도로 동행하는건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구."

"거, 걱정이라니...! 난 그냥..."

얼버무리듯 답한 리토는, 들뜬 모습으로 즐거워하는 라라를 미묘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결국 마지못한듯 쓴웃음을 짓곤 자리에 앉았다.
생각이 폭주하던 방금전과 달리 차분해진 리토의 모습에, 더이상 리토가 「총」같은 뒤숭숭한 단어는 생각하지 않을거라고 다소나마 안심하고 있으려니, 뒤에서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리사와 미오가 「그러면 안되지!」라고 말할 것만 같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뭐 실수한 거라도 있나?
룬의 추측대로 방금전 일은 뭔가 리사와 미오의 꿍꿍이가 있었던것 같은데 아무래도 방금전 내 행동 탓에 그 의도가 어긋난 것 같다.
뭐가 어긋난건진 짐작이 안간다만, 둘은 뭔가를 의논하는지 이마를 맞대고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그런 둘을 이상하게 여기는 내게, 텐션이 오른 라라가 방실거리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저기저기 료스케! 경품이란거 어떤걸까? 매지컬 쿄코 인형? 마스코트인 시로네 인형? 요술봉? 아니면 쿄코쨩 사인본?"

"어? ...으응~ 어쩌면 실용적인 방향의 경품이 나올지도 몰라. 예전에 사용했던 입욕제처럼 말야.
매지컬 쿄코 관련 상품은 다양하니까, 시계라든지 휴대폰 커버라든지, 매지컬 쿄코 쿠션이나 타월일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역시 메인은 공연 그 자체지만 말야."

"에헤헤...오늘밤은 두근두근해서 잘 수 없을것만 같아.
쿄코짱이랑 한번 더 얘기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들떠있는 라라와 맞장구치던 나를 보던 리사와 미오는 속삭이는걸 멈추고 다시금 히죽 웃었다.

"뭐, 그래도 일단 반은 성공했네."

"그러게. 생각보다 라라찌랑 얘기가 잘통하잖아?"

"그럼 아키츠군. 점심시간에 잠시 밖에 나가자.
잠시 얘길 나눠야 할 것 같으니까."

"아, 룬룬도 같이 가자~!"

"어? 나도?"

"맞어맞어. 룬룬의 도움도 꼭 필요하니까 말야.
룬룬에게도 나쁜 이야긴 아닐거라구?"

폴짝폴짝 뛰는 라라를 못마땅한 듯이 보다가, 난데없이 권유를 당해 당황하던 룬은, 1교시 수업이 시작할때까지 리사와 미오의 구슬림을 듣는 처지가 되었다.




점심시간.
리사랑 미오와의 약속 때문에 점심은 밖에서 먹는다고 코테가와에게 말하자, 코테가와는 아침의 해프닝을 떠올리곤 떨떠름한 얼굴로 납득했다.
구교사 탐험 이후로 함께 하던 점심시간이 이렇게 날아가는구나.
꾸준하기로는 개근상 감이었는데...
시즈와 함께 점심을 먹는 코테가와를 아쉬운 눈길로 보곤 교실을 나섰다.
풍기단속 주간에 합숙사건 이후로 코테가와랑 시즈의 사이가 가까워진것 같다고 생각하며, 도시락을 들고 리사와 미오, 룬과 함께 옥상으로 향했다.
나, 룬, 리사, 미오의 순서로 둘러 앉아 각자 도시락을 꺼내보았다.
다른 사람의 도시락을 슬쩍 둘러보다가 룬이 바구니를 열어 샌드위치를 꺼내들었다.
순간, 대중 목욕탕 난입 사건의 보복으로 룬이 내게 먹였던 최루탄 샌드위치가 떠올라서 몸이 움찔거렸다.

"뭐야 수염?"

"아, 아니. 생각보다 샌드위치 양이 많다고 생각해서 말야."

"먹고 싶으면 먹어도 좋아. 일부러 넉넉하게 싸왔으니까.
사실은 리토군이랑 함께 먹으려고 많이 싸온거지만 말야."

아니,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할테니까.
미각이 맛이 갈 정도로 끔찍한 경험은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굳이 리토를 들먹이면서 생색내지 않아도 괜찮아.

"룬룬! 그럼 나도 하나 괜찮아~?"

"상관없어."

"고마워~! 그리고 유우키 일이라면 괜찮다고~ 의외로 룬룬에겐 좋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야."

"하아...?"

의아해하는 룬에게 웃어주며 리사와 미오는 샌드위치를 집어들었다.

"오오, 이거 맛있네! 아키츠군도 얼른 하나 먹어봐."

"...난 먹지 않아도 괜찮아."

"내걸 먹기 싫단거야?"

"실례네. 정중히 사양하고 있는거라고."

"네쪽이 더 실례잖아! 긴장하고 있는게 다 보인다고!
뭐야 그 위험물을 접한 것만 같은 눈은?"

"오, 오해라니까?"

"......"

"지, 진짜야? 봐봐, 이렇게..."

말없이 도끼눈으로 노려보는 룬에게 황급히 고개를 내젓곤 얼버무리듯 룬의 샌드위치를 집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최대한 감추며 각오를 다시곤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물었다.
입안에 퍼치는 맛을 음미하곤 눈을 깜박였다.

"어라...? 엄청 맛있어..."

"흐흥~ 어때? 간고기로 만든 패티라거나 드레싱 만드는데도 이래저래 신경썼으니까."

"고춧가루랑 후추랑 와사비로 점철된 맛인줄로만 알았,「퍽!」 큭!?"

"...잊어버려 그건."

옆구리를 가격당하곤 몸을 웅크리는 내 옆에서 룬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샌드위치를 입에 가져갔다.
희안한걸 보는 얼굴을 한 리사와 미오에게 룬이 물었다.

"그래서, 할 이야기라는건 대체 뭐야?"

"아아 그거 말이지?"

입가를 한번 핥고 리사는 말을 꺼냈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했다.
내가 라라를 꼬시는척 하면서 리토의 관심을 라라에게 향하도록 한다는 것.

"이름하여 질투작전! 어때?"

"싫어."

탐탁치 않은 제안에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즉석에서 거절했다.

"에에~ 그러지 말고~ 재밌을것 같잖아?
라라도 승낙했는데."

"그건 매지컬 쿄코 경품으로 꼬신거잖아.
확실히 나도 공연에 함께 가는건 라라가 제일 적임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건 라라가 공연을 가장 즐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안그래도 유우키가 신경쓸까봐 라라에게 권하는걸 사양하고 있었는데, 구태여 그런 질척질척한 삼각 관계까지 연기해야 한다는건 영 찝찝하다고.
무엇보다 라라는 농담으로라도 이런 연기는 못할것 같은데?"

"라라찌는 그냥 공연을 즐기라고 했어.
나머지는 아키츠군이 알아서 잘 리드해 줄테니까, 나중에 아키츠군에게 적당히 말을 맞춰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야~"

아...그렇습니까?
결국 내가 알아서 다 하라는거로군.
이거 불평 한마디 정돈 해도 되는거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내 안색을 확인했는지 리사가 다독이듯 말했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진마 아키츠군~
좋게 생각해보면 라라찌같이 매력적인 여자애랑 데이트를 만끽할 기회잖아?
한껏 즐기고 오라구."

"...틀린 말은 아니네."

"후후, 그렇지?"

데이트인건 둘째 치더라도, 매지컬 쿄코의 팬인 라라와 함께 보는 공연은 확실히 즐거운 시간이 될테니까.
역시 이런건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끼리 가는게 제일이지.
나름대로 납득하고 있는데 미오가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데이트는 라라찌가 연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거라고 생각해.
저번에 라라찌에게 연애입문서를 빌려준건 좋았지만 그다지 효험이 없던것 같고.
역시 실전을 통해서 배우는게 가장 좋을테니까 말야~
그런면에서 아키츠군은 적임이지. 중학교때 백명의 여자애들이랑 사귀었다잖아.
연애교습 같은건 아키츠군이 데이트하면서 능숙하게 가르쳐주겠지~?"

그런거 나한테 의지하지 마.
순식간에 자신감이 사라졌다.

"헤에에...저런 수염 투성이 얼굴로 말이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내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보는 룬의 시선에 민망해져 낯을 붉히자 룬은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그럼 대체 난 왜 부른거야?
이 난봉꾼이 혼자서 다 맡을 거라면 난 부를 필요 없었잖아."

"어라? 룬룬에겐 좋은 얘기 일텐데?"

"대체 뭐가?"

이해가 안간다는듯 작게 눈살을 찌푸리는 룬에게 미오가 웃었다.

"이걸 빌미로 유우키군에게 어필할 기회잖아~?"

"어? 리토군?"

"그러니까 말야..."

요점은 나랑 라라가 공연을 보는 동안 룬이 리토와 함께 「미행」을 명목으로 데이트를 한다는 거다.
소극적인 리토의 질투를 끌어내기 위해서, 「미행」이라는 명목의 데이트를 룬이 리토에게 권한다는 건데...
리토가 라라를 신경쓰게 만든다는게 이번 계획의 목적 아니었어?
아까도 「질투 작전」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여기에 룬의 연애 사정이 섞이게 되는거지?

혹시 라라와 룬을 둘다 응원하려는건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리토를 부추겨 보라'는 미오의 말에, 아침의 풍경이 머리를 스쳤다.
라라가 나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간다는 전개를 어떻게든 납득하고 기분을 진정시키던 리토의 모습을.
아마도, 원래 예정대로라면 라라의 데이트 신청에 초조해야 할 리토가 생각보다 시원찮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리토를 부추겨 데이트의 「미행」이라는 수단을 선택하도록 룬을 끌어들인거다.
만약 질투 작전이라는 이 계획에 룬이라는 변수가 빠진다면, 그때의 리토가 단독으로 미행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확률은 낮을테니까.

일단 리토를 미행으로 끌어들인 다음엔, 나머지는 룬의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인것 같은데...
들어보니 뭐랄까...이거 참 대충대충인 계획이구먼.
미행해서 뭘 할건지는 완전 애드립이고.
말이 미행이지 데이트니까 일일이 리사와 미오가 지시하는것도 이상하겠지만.
그래도 「룬룬에게도 좋은 기회」라는 미오의 말과는 달리, 이 미행은 룬에게 그다지 좋은 방법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룬은 리사와 미오의 설득을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작전은 룬룬의 도움도 필요하단거야~"

"어때? 룬룬? 할 의욕이 생겼어?"

"나는..."

생각을 정리하려는듯 대답하기 전에 리사와 미오에게서 시선을 뗀 룬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도리도리도리.

룬과 눈이 마주치자 부정의 의미로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평소의 바보같이 높은 텐션으로 밀어붙일 셈으로 이 제의를 승낙한다면, 그다지 좋은 결과는 못 낼거야.
그러니까 좀 더 신중해, 룬.
내 간절한 눈빛이 닿았는지, 룬은 멈칫하더니, 리사와 미오에게 답했다.

"...일단, 생각해볼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도시락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룬은 어딘지 모르게 싱숭생숭한 분위기였다.
내려갈 준비를 마친 리사와 미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한번 룬에게 물었다.

"이제 슬슬 내려가봐야겠네.
방금전 제안 말인데, 룬룬은 어떡할지 결정했어?"

"...일단 수염이랑 이야기해보고 결정할께.
만약 한다면 의견을 맞춰봐야 하니까."

"그래? 그럼 우린 잠시 비켜줄테니 맘껏 얘기해~"

"힘내 아키츠군, 룬~"

뭘 힘내라는거냐?
잽싸게 옥상 아래로 내려가는 둘의 뒷모습을 보다가 룬에게 불렸다.

"...그래서?"

"응?"

"방금전 나한테 신호 보낸거지? 뭐 때문에 그런거야?"

새침한 얼굴로 룬은 한차례 머리를 쓸어넘겼다.

"사와다의 제안 말인데, 혹시 받을 생각이었어?"

내 물음에 룬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신경쓰여?"

"신경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에에..."

"그도 그럴께, 방금전 제안은 너한테 그다지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잖아?"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그야 단순히 너랑 유우키가 데이트를 하는건 몰라도, 「미행」이라는 명목을 붙여서 나랑 라라를 따라오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면, 분명히 유우키는 미행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엔 신경쓰지 못하게 될테니까."

설령 룬 대신에 하루나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리토와 하루나의 관계가 진전되기 보단, 라라의 데이트에 초조해하는 리토의 모습에 하루나가 마음앓이를 할 뿐일터...
애초에 하루나는 라라에게서 리토를 빼앗을만큼 공격적이지도 하지만.
차라리 리사나 미오처럼 아예 구경꾼 근성으로 달라붙을 속셈이 아니라면, 이 역할은 말 그대로 계륵이다.
제안을 거절하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대뜸 받아들이자니 도무지 실속이 없다.

"사와다도 말했지? 이건 「질투」작전이라고.
이건 누가 누구를 걱정하도록 만드느냐가 제일 중요하잖아.
유우키가 라라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동안엔 넌 들러리 밖에 안될껄?"

말을 계속하려다가, 내 대답에 인상을 찌푸린 룬의 얼굴에 멈칫했다.

"왜?"

"아니...그, 기분 나빴어?"

"별로."

"어, 어쨌건...이건 네가 절대 불리한 이야기니까 무턱대고 받아들이지 않는게 좋아."

"이해했어. 그러니까 결국 네가 라라와 데이트하는건 리토군을 흔들어보기 위한거잖아."

"난 사실 공연을 보는게 목적이지만."

"아무튼 점심 먹으면서 저 둘과 나눴던 꿍꿍이는 그거지?"

"맞아."

"그 애들...난 들러리가 아니라구."

음...룬도 마땅찮은것 같네.
톱 아이돌로서 자긍심을 갖고 있는 룬에게, 남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권한건 역시 실책이었다.

"뭐어~ 걔내들 나름대론 라라를 걱정한거니까 너무 탓하진 말아줘."

"시끄러. 애초에 네가 받아들이지만 않았다면 내가 이런 제안을 받을 일도 없었잖아.
하필이면 티켓이 2장이었다니...
아침에 라라랑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했구, 결국 넌 처음부터 라라랑 같이 갈 생각 만만이었다는거 아냐?"

"그럴리가 있냐.
그 티켓은 공연 관계자 중 아는사람에게 선물 받은거라구.
마침 2장이라, 누구랑 갈까 고민중에 일이 꼬인 것 뿐이야."

"그럼 누구랑 갈 생각이었는데?"

"그야 먼저 떠오른건 라라였지만..."

"뭐야, 역시 라라잖아?"

"방금전 점심 먹으면서도 말했지만, 라라는 유우키랑 보러 갈거 같아서 선택에서 제외했어."

"그럼 누구랑?"

"학교에서 만나는 여학생 순으로 권해볼까 생각했는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응? 그럼 혹시 나한테도 권유할 속셈이었어?"

"음? 아! 그러고보면 네가 라라 말곤 오늘 처음 봤던 여학생이네."

룬의 말에 갸웃하다가 아침의 일을 떠올리곤 손바닥을 탁하고 쳤다.

"그게, 최근 네가 아이돌 활동에 바빠서 학교에서 만날 수 있을거라곤 기대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그만 권유하는걸 깜빡하고 있었어...
...생각해보면 아까운 일을 했네."

"...역시 난봉꾼이네."

양손을 허리에 얹은채 고개를 숙여 한숨을 쉬는 룬을 보다가 문득 생각난게 있었다.

"그러고보면 맨 처음 너한테라도 권하고 있었으면 「질투작전」같은 얘긴 안나왔을텐데..."

"...역시 수염 네 탓이잖아!"

"으악!?"



목을 잡힌채 앞뒤로 흔들리며 룬의 불평을 들었다.
마지막엔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지 말라(잡지도 않은 너구리 가죽값 계산하지 마라)」는 핀잔을 받았다.
...그럼 방금전까지 나한테 불평해댄건 어째서요?
나에게 화풀이를 한 룬은 왠지 상쾌해진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다.
불합리함이 느껴지는 상황을 곱씹으며 목을 매만졌다.

"아고고 목이야...그래서, 룬 넌 어떡할거야?"

"상황은 파악했어. 결국 라라는 리토군의 관심을 끌려고 너에게 데이트 신청한거지?"

"그래."

"그리고 넌 내가 그 둘 사이에서 손해보는 역이라 걱정인거고?
질투작전이 성공하면 리토군은 라라에게 신경이 쏠려있어서 날 신경써주지 않을테니까."

"그런 셈이지. 네가 아무리 긍정적으로 산다지만 이번엔 솔직히 걱정이라구."

"그리고 만약 내가 이번 일을 맡지 않으면, 너는 걱정도 덜고, 라라랑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는거고?"

"그야 물론이지. 나도 미행같은거 신경쓰지 않고 맘편이 놀다오고 싶으니까."

"흐응..."

팔짱을 끼고서 비스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룬이 입을 열었다.

"...인간은 말야, '하지 않고 후회하기보다는 하고선 후회하는 게 낫다'는 말을 자주 하잖아.
이 말, 어떻게 생각해?"

"응?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말야, 만약에 말인데, 현 상태를 유지한다면 더욱 악화될 뿐 이란걸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 방향으로 돌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그야......어?"

"일단 어떻게든 좋으니까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차피 현재 상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 그렇겠지?"

룬의 말에 무의식중에 한걸음 물러나 룬을 관찰했다.
......응, 없어없어. 군용 나이프 같은거, 룬은 들고 있지 않아.
양손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걸. 애초에 여긴 어딘가의 우울한 신님이 사는 곳이 아닌걸.
움츠러든 날 보고 기세에 밀렸다고 생각했는지 룬은 콧대를 올리곤 선언했다.

"그럼 내 선택은 이미 정해졌어.
잘봐둬 수염. 이것이 바로 나의 선택이란걸!"

팔짱을 푼 룬에게 움찔하고 무심코 방어자세를 취한 내 앞에서, 룬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뒤돌아 옥상을 뛰어내려갔다.



"......어이!?"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리곤 룬을 뒤따라 내려가보니, 교실 밖으로 리토를 불러낸 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룬에게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리토의 모습도 함께.

「어떠냐!」하고 묻는듯 자신만만하게 날 쳐다보는 룬의 모습에 두통이 일어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바보다...바보가 여기 있다.
자신만만하게 선언해놓고선 선택이 결국 그거냐!?
사랑에 빠진 아가씨는 자중하지 않는거군요. 압니다.
룬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가 정말이지 걱정이다.

"후후...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는걸?"

어느샌가 리사와 함꼐 뒤에서 다가온 미오가 입을 가리며 키득거렸다.

"사와다...이거 정말 성공할까?"

"에이~ 자신감을 가져 아키츠군. 유우키군이 의욕이 없으면 「이래도냐?」하고 팍~! 라라찌를 유혹해보라구~"

라라를 도와주긴 커녕 한걸음 잘못하면 우정이 파탄날것 같습니다만...

"요점은 유혹의 절묘한 가감이야. 아키츠군이라면 분명 가능하다니까."

믿어주는건 고맙지만 헛바람 불어넣으면 낭패를 보는건 나라구.

"아, 혹시 아키츠군도 이거 필요해?"

리사가 내민 책을 받아들었다.

"...여자용 책이잖아, 이거."

"뭔데 그래 수염?"

옆에서 쑥-하고 룬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마 유쿠의 연애 입문서?『남자를 사로잡는 기술 100』?"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는 룬에게 책을 건냈다.

"그럼 이건 룬에게 빌려주자."

"에? 나?"

"너도 이 계획에 참여하기로 했으니까, 이걸로 유우키의 맘을 사로잡아 보는게 어때?
너까지 끌어들였는데 라라만 응원하는것도 불공평하잖아."

얼떨결에 책을 받은 룬이 책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수염은 이 책 필요없어?"

"여자용이잖냐 그거. 난 도서실에라도 가서 읽을걸 찾아봐야지."

"역시 꼬실 생각 만만이구나?"

"일단 하기로 한 이상 노력은 해봐야지.
연애 이론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쓸데없이 성실하네.

고개를 젓곤 룬은 책을 안아든채 교실로 들어갔다.




방과후 가방을 챙겨들고 도서실로 향했다.
에어컨 덕에 도서실은 여름임에도 시원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피부에 느껴지는 서늘함을 만끽하면서 연애관련 서적을 찾아보았다.
라라에게서 빌린 연애입문서는 여성이 남성을 대하는 방법뿐이었으니까,
남자인 나로서는 여성의 심리를 분석해놓은 책을 찾아보는게 더 좋을거라 생각해서였다.
일단 자기계발 코너와 심리학 코너를 돌아보며 연애관련 서적이 있나 훑어보았다.

남자의 속마음 여자의 속마음
연애 심리학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그림으로 읽은 생생 연애 심리학
연애와 결혼 심리학
당신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이유
여자는 서운하고 남자는 억울하다
똑똑한 여자들의 연애심리학개론
아무도 울지 않는 연애는 없다
사랑에 빠지는 비밀 심리학
...



어떤걸 골라야 하지?
진열된 도서가 생각보다 많아서 고민하고 있던 중 인기척이 났다.

"...저번에 도서관에 함께 가자고 권했던거, 농담이 아니었던거구나?"

중얼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숄더백을 맨 룬이 기가막힌듯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룬? 여긴 어쩐일이야?"

"방금 받은 연애 관련 책 말고 다른건 없나 살펴보려구."

"그래?"

"넌? 원하는 책은 찾았어?"

"몇개 정도는. 이런게 얼마나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남자가 모르는 여자의 마음』을 꺼내들고 훑어본다.

"헤에...그런데 이런거 정말 도움이 되는걸까?"

"글쎄. 참고할 정돈 되겠지 않을까?
그나저나 앞으로 어떡할거야?"

"뭘 말야?"

옆에 나란히 서서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살피는 룬에게 물었다.

"나랑 라라가 공연보러 가는 날, 유우키랑 만날거잖아.
모미오카랑 사와다의 제안에 동의한건 좋지만 뭔가 생각해둔건 있어?"

"...그다지."

"그럼 함께 생각해보는게 어떨까?
책 빌린 뒤에, 교실에 가서 의견이라도 나눠 보지 않을래?"

"의견? 너랑 말야?"

룬이 눈을 가늘게 뜨며 뚱한 얼굴을 했다.

"너... 혹시 단 둘이 있을때 이상한 짓 하려는건 아니겠지?"

"안 해 요."

당당하게 대놓고 묻는게 대범하네.
하긴, 생각해보면 별 민망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몇번이나 엮여 놓고서도 날 기피하지 않는 것만해도 어디냐.
내가 고른 책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던 룬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좋아. 어차피 나도 오늘은 한가하니까."

룬의 승낙을 받고선 고른 책을 빌려 들고서 교실로 향했다.




방과후의 교실에서 룬과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빌려온 책을 펼쳐들었다.

- 처음은 인사로 시작하세요.
화창한 날씨 이야기 같은걸로 말이에요.

- 상대방이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노력도 필요하답니다.

요일별로 머리모양을 바꾸던 스즈미야 하루○처럼 말인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닿는걸 깨닫곤 다시 책에 집중했다.

- 우연한 만남도 반복되면 필연! 여성은 의도치않게 벌어지는 만남이 지속될수록 운명을 느낍니다.

- 헌신만이 답이 아닙니다. 적당한 긴장관계가 매력적이겠지요.

- 당신의 앞에서 예전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자신은 이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여성」이라는 어필입니다.
자신을 고른 너는 행운이라는 의미입니다. 덤으로 살짝 질투심을 유발하지요.

- 여성의 내숭은 중요합니다. 여성의 말은 신중히 판단하세요.
그녀의 행동과 말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는게 중요합니다. 쌀쌀맞음 속에 숨겨진 마음을 지나치지 마세요.

- 여성이 머리카락을 넘기는 행동은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오오, 그런건가?
왠지 그럴싸한 내용이 나온지라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룬을 바라보았다.
펄럭펄럭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룬은 어쩐지 따분해 보였다.
리사가 빌려준 책이 생각만큼 성에 차지 않았나보다.
라라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이성에게 어필하는 타입인 룬으로서는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하는 내용이어서 그런걸지도.
그나저나 어떤 내용이길래 그러는거지?

방금 읽은 페이지에 인덱스 스티커를 붙여두곤 책을 덮었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읽어보기로 하곤, 룬이 읽는 책을 살펴보기로 했다.

"룬."

"왜?"

"지금 네가 읽고 있는거 같이 봐도 괜찮아?"

"...상관 없지만 별로 재미는 없을텐데?"

"그렇게 별로인거야?"

내용이 어떻길래 그런가 싶어서 룬이 앉아있는 자리로 갔다.
룬의 책상 옆에 다른 책상을 이어 붙이곤 룬의 옆에 앉았다.
살짝 몸을 기울여 룬이 읽고 있는 연애 입문서를 훔쳐보았다.

"엣? 잠깐, 너무 가까이 붙지 말아."

"아, 미안."

몸을 기울이다 룬과 팔이 맞닿았나보다.
접한 피부에서 부드러움과 서늘함이 전해졌다.
사과하고 몸을 떼자, 접했던 팔뚝을 잠시 손으로 매만지며 힐끗하고 내쪽을 바라보던 룬은, 이윽고 시선을 돌려 독서를 재개했다.
옆에서 같이 보는 날 신경썼는지, 룬은 책을 두 책상 가운데 위치로 옮겨 놓고서 페이지를 넘겼다.

- 상대의 여자 취향도 중요
예) 불가사의 계열 "나 ○○별 사람이야."
...


- "나 데빌루크 성인이야!"

아침의 카오스한 해프닝이 떠오른다.
아침에 읽었던 내용의 반복이라서 현재 페이지의 내용에 대한 흥미는 떨어졌다.
안 읽어본 페이지가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기 지루해서 책에서 시선을 떼고 룬의 얼굴을 구경했다.

조용한 교실 안에선 얕은 숨소리와 때때로 바스락하고 책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차분한 분위기의 룬이라...이건 또 신선한 모습이다.
독서중인 룬의 모습을 관찰하는건 제법 운치가 있었다.

정수리 부근에서 역방향으로 솟아오른 두가닥의 더듬이라든지,
가만히 책을 응시하고 있는 자주빛 눈동자라든지,
말랑말랑해 보이는 입술의 움직임이라든지,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에메랄드 빛 머리카락이라든지...

...뭐라고 할까, 때때로 생각하는거지만 룬의 머리카락은 어쩐지 몽실몽실하게 부푼 느낌이라서 한번 눌러보고 싶어진다.
진짜로 그랬다간 화낼것 같지만.

고르게 내뱉어지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룬의 얼굴을 살피길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책을 읽던 룬이 고개를 돌려 내쪽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날 보고 있는거야?"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룬에게 머쓱해져선 답했다.

"아니, 그냥... 얌전히 있는 네 모습이 의외로 그림이 되서 말야.
평소와 분위기도 다른게 신선하기도 해서 무심코 눈이 갔다고 할까."

"...흥, 칭찬은 됐으니까 책이나 봐."

「정말이지...」라고 중얼거리며 룬은 얼굴을 돌렸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는 룬에선 옅은 샴푸향이 풍겨왔다.




어느덧 룬이 책을 덮자, 룬을 구경하는걸 끝내고 이번 주말에 있을 데이트의 사전 준비를 위해 룬과 의견을 나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에 대한 대응방법에 대한 의견 교환이었지만.

"네가 읽은 책에서 쓸만한 내용은 없었어?"

"글쎄...여자는 행동과 말에 상반된 의미가 숨겨져 있으니까 주의하라고 하던데?
예시도 없이 말로만 적혀있어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하긴, 남자들은 보통 그런데 둔하지."



"분위기를 띄우는 방법 말인데, 은유적인 표현도 괜찮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그래. 「달이 아름답네요.」라든지."

"달이 아름다워? 무슨 뜻이야 그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 조금 오래된 표현이라고 할까?
보수적이던 옛날에, 달이 보이는 야심한 시각에 남녀가 함께 있다는건, 그 정도로 서로를 좋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으니까.
지금은 잘 쓰이진 않지만."

"흐응..."

"뭐어~ 하지만 이번에 써먹긴 힘들겠지."

"어째서?"

"라라에게 쓸만한 방법은 아니잖아.
지구에서 쓰이는 은유적인 표현에 서먹한 라라에게 이런 은유를 써먹어도 그다지 소용이 없을테니까.
거기다, 이번 공연이 오후에 열리긴 하지만, 달이 드러날 저녁 시간대까지 라라와 함께 있을것 같진 않은걸?"



- 상대의 여자 취향도 중요

"그러고보면 수염? 방금전에 책에서 여자 취향 분류하던거 기억나?"

"응. 예시로 불가사의 계열 따위가 나온거 말이지?"

나 사실 ○○별 사람이야! 라니...예시가 왜 이렇게 엉망진창인 전파계냐.
...혹시 글쓴 사람이 우주인이거나 한거 아냐?
그러다 문득 룬과 라라의 관계가 떠올라 입을 열었다.

"그 외에 유명한 계열하면 그거지. 「소꿉친구」 속성.
너랑 라라처럼 말야."

"엑~!?"

노골적으로 싫은티를 내면서 질색하는구나 룬...

"그런데 정말로 이런 책이 도움이 되는거야 수염?
TV에서도 자주 나오잖아. 정말로 중요한건 마음이라고."

"그야 물론 가장 중요한건 마음가짐이지만, 기왕이면 화술도 있으면 좋잖아.
로맨틱한 밀어를 속삭이면서 분위기를 만드는것도 연애의 기술이니까."

"뭐어, 틀린말은 아니네.
나도 역시 로맨틱한 대사 정돈 속삭여지고 싶으니까."

"오오~ 예를 들면?"

"예를 들면...그래, 이렇게..."



"리토군...나...리토군을 좋아해!"

"톱 아이돌인 네 고백이라면 거절할 수 없겠는데..."

"아아...리토군♡"

"하지만 널 독차지하면 전국의 남자들의 적이 돼버리는데..."

"괜찮아!
내가 리토군을 지키겠어..
나는 리토군만의 것이니까......♡"

"룬..."

"꺄아~리토구운~(>∇<)"

헤롱헤롱



"어때? 로맨틱하지?"

귀여운 이모티콘 감사합니다.

"...일단 묻겠는데, 누구야? 너한테 고백받은 녀석은?"

"리토군인데. 말했잖아?"

"......"

"뭐야? 내 상상에 불만있어?
아니면, 부러워?"

"미안. 전혀 방금전 상황이 상상이 안가서 무리."

"상상력이 빈곤하네."

빈곤한건 네 현실감각이야.
내가 아는 리토는 그런 말 안한다구.

"...내 상상력으론 어떻게 해도 유우키가 그런 대담한 말을 하는 광경이 그려지지 않는데."

"칫. 리토군이 멋진 말을 해준적도 있어.
날 보고 은하에 피어있는 한송이의 꽃 같다고 말해줬다구."

"에에~? 유우키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어? 대체 언제?"

"......"

갑자기 입을 닫고 우물쭈물하는 룬의 모습에 의아해하고 있으려니, 고개를 돌린채 룬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체육복 가져와달라고 문자 보냈는데 네가 왔던 날."

아...그 날인가.
'원기 1천배!'라는 어처구니없는 효과를 가진「버서커 DX」를 먹고선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날의 이야기다.
실수로 룬의 속옷을 얼굴에 뒤집어 쓰곤 한바탕 룬에게 휘둘렸던 날이기도 하다.
룬에게도 나에게도 거북한 사건이었던지라 방금전 룬의 반응을 보면 괜히 물어본것 같기도 하다.
음...그래도 그때 리토가 그렇게 버터 바른것 같은 대사를 했던 이유는 기억하기론 분명히...

"그거 유우키가 이상한 약먹고 말한거잖아.
거기다 너 그때 좋아하긴 커녕 울었다면서?"

"누, 누가 그래!?"

"야미가."

약의 효과 때문에 바람둥이처럼 행동하던 리토는 불운하게도 양호실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리토를 간호해준 룬은 지극정성이라고 해야할지 콩깍지라고 해야할지...
어깨를 으쓱하곤 말을 이었다.

"평소의 유우키였다면 그런식의 대사는 하지 않았겠지.
거기까지 여성을 치켜세우는 말은 왠만큼 뻔뻔하지 않고선 숙맥인 남자들에겐 허들이 높다구."

"수염 너한테도?"

"나한테야 그정돈 간단하지."

"과연...예를 들면 어떻게?"

"예를 들어? 방금전 네 망상 속의 상황 같은 때에 말야?"

"하...하하...그래. 그럴 때 말야."

망상이라는 말에 룬의 입술이 씰룩였다.
잘못 건드리면 화내겠네.
일단 룬이 고백하는 씬부터 떠올려본다.

- 수염나수염을좋아해

- 아이돌 몰래카메라야?

...국어책 읽기라니, 상상속에서조차 건성이구나 룬.
눈앞에 분노 게이지가 상승해있는 룬의 모습 때문에 망상조차 건성이 된 것 같다.
아무튼, 건성으로 한 고백에 진심으로 답해줄 이유따윈 없어요.
그래도 그런 망상에 날 집어넣으면 왠지모르게 분위기를 타고 싶어지는데..
만약 렌이 라라에게 고백을 받는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으려나?
망상전개의 고백에 나의 반응도 하이 텐션!

- 수염...나, 수염을 좋아해.

"슈퍼 아이돌 RUN님의 고백을 받다니 아아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솔직히 말해봐. 너 지금 비꼬는거지?"

눈앞엔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의 룬이 서있다.

"어라? 안 통했어?"

"너처럼 뻔뻔하게 웃으면서 외치는걸 누가 믿어?"

"솔직한 대사였는데."

역시 높아진 텐션에 솔직하면 안되네요.

"...앞의 슈퍼 아이돌 RUN님에서 다분히 악의가 느껴졌어."

"과연, 여자의 직감은 무섭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버럭 화내는 룬에게 다시 한번 재도전해봤다.

"그럼 룬 엘시 쥬에리아님의 고백을 받다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

"호칭 빼곤 그대로잖아! 게다가 풀네임? 하나도 친밀감이 없잖아!"

"에 그럼...쥬엘쨩."

"뭐야 그건!?"

"귀여운 애칭으로. 신선하지?"

"왜 하필 이름도 아니고 성인데?"

"에~ 까칠하긴. 그럼 너도 날 츳짱이라 불러도 좋아."

"부를꺼같냐!"




룬의 타박은 엉터리같은 대사에서 호칭의 센스없으로, 그리곤 내 스타일에까지 화살을 향했다.

"아무튼 그런 호칭은 네 센스가 의심돼. 그 수염처럼.
대체 왜 그런 지저분한 스타일을 고수하는거야? 반항기?
혹시 지구에선 너같은 남자가 이상형이야?"

"엉?"

"그야 넌 좋게봐주면 그럭저럭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수염은...
지구인들은 너 같은 타입을 좋아하는거야?"

"우주인의 미관념은 어떤데?"

"흐음, 참고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거 볼래?"

룬이 가방에서 우주 잡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알수없는 문자로 쓰여진 잡지를 닭벼슬머리의 인간이 타이틀 화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윗쪽 눈두덩에 짙은 아이쉐도우를 하고 긴 눈썹을 붙이고, 보라색 립스틱이 입술에 발려있고, 왼뺨엔 별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개목걸이에 연결된 쇠사슬하며 깃털이 잔뜩 달린, 가슴골을 드러내놓은 옷에 절로 「으엑...」하는 대사가 나와버렸다.
이런 기괴한 패션이라니, 역시 우주의 미관념은 알 수가 없어.
타이틀의 패션모델과 룬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잡지를 내려놓았다.

"이런 사람보다 네가 훨씬 예쁜데."

"뭐..."

놀란 얼굴로 굳어있던 룬은 잠시 후 새빨개진 얼굴로 외쳤다.

"야! 이 모델 남자라고오오오!"

"에엑!? 남자!? 이런 변태같은 분위기의 복장으로!?"

"나가 죽어 이 멍청아!"

새빨개진 얼굴로 씩씩대던 룬은 기운빠진 모습으로 잡지를 가방에 도로 챙겨놓고 풀석 자리에 앉았다.

"하아...좀 제대로 된 칭찬같은건 할 수 없는거야?"

"아하하~ 미안. 그래도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넌 예쁘잖냐."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으고 있는 톱 아이돌이기도 하고 말이지.

"자, 그럼 누구보다?"

"음?"

"라라보다 내가 예뻐?"

같은 여고생 아이돌이랑 비교할줄 알았더니 라라랑 비교하냐.
룬이 라라를 굉장히 의식하고 있는거야 알고 있었지만.

"둘다 예쁜걸론 안될까?"

"...하아~"

내 물음에 룬이 푸욱 한숨 내쉬었다.

"그러니까 넌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거야 수염."

아무래도 방금전 내 답은 연애적 사고라는 방향으로는 낙제였나보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재시도를 하고 싶어지는데."

"후우...뭐, 좋아. 그럼 다시 물어줄까?"

"오케이. 와라!"

양손으로 컴온! 하는 사인을 보내자 룬이 업신여기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수염아 수염아. 이 우주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니?"

"그야 물론 프린세스,"

"라라라고 말한다면 독사과를 네 얼굴에다 처박아줄테니까."

"...은하 제일의 미소녀 초특급 슈퍼 아이돌 프린세스 쥬엘쨩이 더 예쁩니다."

"쥬엘쨩이라고 하지마아아아아------!"

룬이 휘두른 가방으로 스매쉬를 먹었다.




"알겠어?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길 하는건 감점 사항이야.
매너 위반이니까 똑똑히 기억해두라구."

백설공주에서 거울을 위협한다는 선택지를 고른다는 것도 매너 위반이라고...

"과연...이 아픔은 깨달음의 고통인거네."

가방이 직격한 배를 움켜쥔채 룬의 설교를 들었다.

"자업자득이야. 말은 재앙의 근원이니까."

"그렇다고 냅다 가방을 휘두기냐... 폭력은 싫다고 지옥같은 샌드위치를 먹인 녀석은 어디의 누구였어?"

"불량배가 폭력이 나쁘다고 해봤자 설득력 없어.
그리고 요리하는건 손이 번거롭단 말야.
뭐어, 그쪽을 원한다면 해주지 못할것도 없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아, 그래?"

혀를 차는 룬을 보면서, 지금의 모습과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 썼을 때의 모습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에 신음을 흘렸다.
솔직한건 좋지만 이런 식의 가차없는 솔직함은 사양하고 싶은데.
그러고보면 어려졌을때의 룬은 제법 기특했었건만...

"제길...어릴때 모습은 귀여웠는데 어쩌다 이렇게 말괄량이로 자란거야 너는?"

"핫~! 그러는 너야말로 남말할 처지가 아니잖아?
꼬맹이일땐 이상한 수염도 없이 깔끔했었는데.
그때의 귀염성은 어디가고 지금은 이런 수염투성이가 된거야?"

"...너, 좋은 녀석이었구나..."

"하아...?"

어린시절 모습에 한정이지만 오랜만에 받은 호평가에 감동의 눈빛을 룬에게 보내자, 룬은 거북한 얼굴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면 상처받는다고.

"어쨌든 그 눈초리만 유달리 사납던 꼬맹이가 이런 수염덮힌 산적으로 된다는게 상상이 안가.
솔직히 그렇게 기른 수염은 지저분해 보일 뿐이라구.
저번에 제모제도 줬겠다, 그 미적 센스가 결여된 수염은 그냥 없애버리는게 좋지 않아?"

"안 없앤다니까."

"...그렇게 수염에 집착하니까 다들 수염성인이라고 부르는 거잖아."

나도 이 모습 좋아서 하는건 아니다만.

"혹시 수염에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거야?"

"사연?"

"그러니까, 그...실연이라든지..."

"...뭐?"

주저하면서 입을 연 룬의 말에 멍한 얼굴로 있다가 피식 웃었다.
실연하고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여자들의 일화처럼 말인가.

"그런거 아냐. 이 꼴로 지낸지가 거의 5년이 다 되어 가는데, 5년 전에 여자 관련의 일이 있을리 없잖아."

요즘 애들은 조숙하니까 혹시 모르지만.

"소꿉친구라든가 있지 않아?"

"양아치에겐 소꿉친구 따윈 없어."

"...그럼 왜 그런 수염을 고집하는거야?
설마 너 정말로 수염성인이야?"

"그런건 아닌데..."

비정기적으로 몸에 닥치는 이상현상은 정신적으로 피곤하니까.
빙의령 따위를 신물나게 상대하다보니까 어느샌가 제령하는것도 능숙해져 버렸고.
기합으로 귀신 쫒아내는거 따위, 이야기로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안전 사고랑 맞딱뜨리는건 일상 수준으로 줄었다만, 예전에 담배갑 없이 다니다가 강아지 구한답시고 도로에 뛰어들었던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안심이 안된다.
사고 같은걸 당한다손 쳐도 생채기가 나거나 하는 일도 없지만, 사후처리는 정말 곤란하기도 하니까 되도록 조심하는 편이고.
아무튼 의아한 듯한 룬에게 어떻게 대답할까 잠시 생각하곤, 시시콜콜 설명할 이유는 없었기에 대충 상황을 뭉텅거려서 얘기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귀찮은 일이 있어서.
그걸 피하려고 이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거라구."

"흐응...뭔진 모르겠지만, 항간에 말하는 수염 매니아 같은 이유는 아닌가보구나?"

"나도 일부러 이런 스타일로 있는게 아닌걸.
안그럼 뭐가 아쉬워서 이런 수염 패션으로 지내지 않으면 안돼?
덕분에 중학교땐 친구도 안생기고, 쓸데없이 깡패놈들에게 휘둘려서 싸움박질만 하고...
이상한 꿈 때문에 잠도 설치고 번거롭다구."

"...뭐랄까, 너도 고생이었네. 힘내 수염."

"말 만으로라도 고맙네요."

"그런데 무슨 꿈을 꿨길래 네가 잠까지 설치는거야?
혹시 문어발 연애질이 걸려서 여자애들한테 모멸받는 꿈?"

"...상상만해도 무서우니까 그런 소린 하지마."

"그런게 아니면, 어떤 꿈이었어?"

오늘따라 룬은 호기심이 넘치는구나.
아니면 방금 전 수염에 대한 질문에 얼버무리는 식으로 대답해서, 이번엔 좀 더 자세히 추궁해 보려는건가.
민망하긴 해도 그다지 숨길것도 아닌지라 솔직하게 답했다.

"결혼하는 꿈."

"에..."

내 대답에 룬이 눈을 깜빡이더니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상한 꿈이라는게 그거?
뭐야 그게? 「결혼은 인생의 무덤입니다」그런 의미?"

"아니, 그런건 아니고. 결혼식장에 혼자 서있는 꿈이었거든."

중학생 시절 가끔씩 보던 꿈.
결혼식장 입구에서 턱시도 차림으로 결혼식 장 안으로 들어서면, 새빨간 양탄자 위로 구두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가까워지는 단의 오른쪽으론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뒷모습이 보인다.
단위에 올라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주례사를 듣고 나서, 식은 어느새 신랑과 신부의 키스 절차로 진행된다.
고개를 숙인 신부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신부의 베일을 걷어 올리자 천천히 신부가 고개를 든다.
보이는건 이목구비 없이 검은 구멍만 뚫려있는 신부의 얼굴.

놀라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고 나서야 깨닫는다.
어째서 양탄자를 밟던 내 구두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는지.
단위에서 내려다본 객석은 텅 비어있다.
결혼식장엔...나 뿐이었다.

...내 곁엔...정말 아무도 없는거구나.

점점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결혼식장.
바닥 아래로 점점 가라앉아가는 내 몸은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벌어진 입으론 울음인지 비명인지 알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악몽에서 깨어난다.


"이 학교에 오기 전까진 변변하게 이야기를 나눌 녀석들은 없었으니까.
이대로 가다간 언제까지고 친구하나 못 사귀는건 아닌가 하고 교우관계로 고민하던 차에 꾼 꿈이었거든.
쓸데없이 생생해서 꿈을 꾼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말이 아니었지."

"...혹시 외로웠어?"

어쩐지 조심스러워하는 룬의 반응이 간지러워서 뒷통수를 매만졌다.

"쓸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젠 괜찮아.
더이상 그 꿈은 꾸지 않거든.
그리고 아무리 내가 친구가 적다지만 설마 꿈처럼 아무도 없을린 없잖아?"

"알면 신경쓰지마, 그런 바보같은 꿈."

"아하하...신랄하네."

"뭐어... 적어도 네 결혼식장엔 나도 함께 있어줄 테니까.
그럼 적어도 너 혼자는 아니잖아?"

...왈가닥 아가씨인줄만 알았더니 이런 기특한 면도 있네요.
자기가 말해놓고선 어쩐지 민망해하는 룬의 모습이 재밌어서 웃음을 지었다.

교우 관계로 받는 스트레스와 쓸데없이 조숙했던 사고방식 때문에 중학교 시절에 때때로 꿨던 꿈이지만,
룬의 걱정과는 달리, 이제와선 터무니없이 현실감이 떨어지네~ 하고 웃어줄 수도 있다.
신부가 달아나지 않는한 혼자서 결혼식을 할일 따윈 없을테고,
설령 내 하객이 없더라도 신부측 하객은 있을테니까! 아핫핫~!

"하긴, 혼자선 결혼식도 못하니까 말야."

"무, 무슨 오해를 하는거야!?
말해두지만 하객석이니까! 누가 네 옆에 서기라도 한대!?"

"......"

"뭐...뭐야? 그 반응은?"

"아아, 슈퍼 아이돌 룬쨩이 결혼식에 와주다니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

"놀리지 마아아아아------!!!"



아하하하하.



상쾌해졌다.




"아아~ 후련해졌다."

"허억허억...힘빠져...정말이지 비꼬기나 하고..."

"미안. 그래도 고마워 룬. 덕분에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꿀거 같은걸?"

"뭐야. 이제와서 고마운 척해도 이상하다구."

"아무튼 언젠가가 될진 모르겠지만 결혼식엔 꼭 연락할테니까 와주면 정말 기쁠거야."

"흥. 축가정돈 불러줄께."

"정말?"

"비극의 전 여친 흉내를 내면서 울면서 불러주지."

"야!? 제발 그만둬!?"




놀렸다가 본전도 못찾을뻔 하곤 화제를 옮겼다.
결혼 하니까 문득 떠오른거기도 했지만.

"룬, 혹시 란○ 라고 알아?"

"○마? 그게 뭔데?"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인데,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면 남자로, 찬물을 뒤집어쓰면 여자로 변하는 녀석이야.
몸만 바뀌고 정신은 남자뿐이지만.
넌 재채기로 변신하니까, 너 처음 봤을때 그 녀석을 떠올렸었거든."

"그런 애를 나랑 비교하지 말아주겠어?
나랑 렌은 엄연히 독립된 인격이라고."

맘에 들지 않는지 룬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긴 왜 꺼낸거야?"

"방금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건데, 란○의 경우는 애초에 한 인격이었지만, 너와 렌은 별개의 인격이잖아.
그럼 너희들은 나중엔 어떻게 되는거야?"

"나중이라니?"

"나이를 먹어서도, 결혼하고나서도 여전히 너와 렌은 둘이서 한 몸인거야?"

"......"

내 물음에 룬은 침묵했다.
내쪽을 가만히 응시하는 룬의 얼굴이 조금 경직되어 보였다.

...어라?
이거 혹시 괜히 물어본걸까나?

가늘게 뜬 눈으로 날 응시하는 룬의 시선에 초조해졌다.
이윽고 룬이 작게 한숨을 내뱉곤 책상에 걸터 앉았다.

"갑자기 무슨 이야길 하는가 했더니...
미리 말해두지만 나랑 렌은 재미로 한몸으로 지내는게 아냐.
내 모성은 태양이 둘이라서 밤이 없어.
행성 대부분이 사막이라는,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메모루제인들은 한 몸에 남녀 두 사람이 들어가 태어나는거야."

생각보다 가혹한 이유다.
호기심에 물어볼 질문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래서, 수염 넌 내가 이대로 렌과 계속 함께 있는건지가 궁금한거구나?"

"으음, 그랬지만...가볍게 물어볼 질문은 아니었던것 같네. 미안."

책상에 걸터앉아 다리를 앞뒤로 흔드는 룬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룬이 허락할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잠시 뒤, 침묵하던 룬이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쩔래?"

"응?"

고개를 들자 가라앉은 눈빛으로 날 응시하는 룬과 시선이 마주쳤다.

"언제까지고 한 몸이라고 한다면, 넌 어떻게 할거야?"

말하고 난 뒤 룬은 고개를 숙였다.
룬의 얼굴은 앞머리에 가려 어떤 표정을 담고 있는지 몰랐다.
후회? 단순한 장난기? 비웃음? 짓궂음? 업신여김? 빈정거림? 아니면 슬픔?
어떤 감정을 안고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건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룬의 몸이 렌과 하나라는 사실이 내가 룬과 거리를 둘 이유는 되지 않았기에 솔직히 대답하기로 했다.

"나는...별로 신경쓰지 않아."

"...자기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네.
뭐, 됐어. 어차피 나도 너한테서 제대로된 대답 같은걸 기대하진 않았으니까."

내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인건지, 룬은 한차례 혀를 차더니 짜증나는듯 몸을 일으켰다.
유감스럽게도 내말은 그다지 룬에게 신뢰를 주진 못한것 같다.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해주었다면 반응이 달랐으려나?

"역시 이것봐. 제대로 된 위로 하나 못해주잖아.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런꼴로 잘도 라라를 유혹하겠구나?
네가 말하는 화술이란게 이런거라면, 주말의 데이트는 정말로 볼만 하겠네."

"윽, 일단 노력은 해볼거라구."

룬의 비난하는 꼴을 보아하니, 지금 상태론 룬의 문제를 건드린걸 사과하는건 역효과일듯 싶다.
이죽이는 룬의 폄하에 작게 항의하곤 문득 떠오른게 있어서 화제 전환겸 물었다.

"화술하니까 떠오른건데, 렌한테 내가 라라를 유혹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하면 안될까?"

"...지금은 렌의 의식이 잠들어 있으니까 나중에 물어봐줘도 좋지만, 아마 십중팔구 너한테 덤벼들텐데?"

"미안. 방금 부탁은 취소."

아침의 오해 때문에 불같이 화내던 렌의 모습을 떠올리면, 확실히 부탁할 상대를 잘못 선택한거였다.
남자다움을 이상하게 집착하고 있는 렌에게 라라를 걸고 결투신청이라도 받으면, 빼도박도 못하고 이상한 오해를 받는데다가 리토와의 관계도 미묘해질테니까.

"그리고 걔가 라라를 유혹하는 방법대로는 백년이 걸려도 안돼.
그런 유치한 대사로는 아첨하는것 밖엔 안된다구."

"가, 가차없구나 너..."

"당연한걸 얘기한거야. 렌 녀석, 얼굴만 번지르르해선 화술이 엉터리니까.
라라를 대놓고 신격화하던데, 라라니까 재밌어 하는거지 다른 여자애 같았으면 부담스러워서 거리를 뒀을걸?"

"...그럼 혼자서 어떻게든 해봐야 하나..."

이럴때 의지할만한 연애 경험자가 주변에 없다는건 문제네.
코테가와의 오빠에게 이번 일로 도움을 구하는 것도 코테가와 때문에 좀 껄끄러운데.
끙끙대며 고민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룬이 살짝 입술을 물었다 떼곤 입을 열었다.

"...정 자신이 없으면, 한번 시험해볼래?"

"뭐?"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여름이라 그런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밝았다.
텅빈 교실에서 룬과 마주선 채 시선을 맞췄다.

방과후 교실에서 마주선 남녀 한쌍이라...
구도만 보면 딱 고백장면이네.
앞에 「연습」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지만.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던 룬이 손가락을 들어 날 가리켰다.

"미리 얘기해두지만 넌 내 취향이 아냐.
센스가 의심되는 그런 수염은 절대로 거절이니까."

어딜가도 이 수염이 문젠가.
굳이 연습을 도와주는 룬에게 싫은 소리를 할 생각은 없었기에 적당히 넘겨듣기로 했다.

"네네~ 그렇겠죠. 톱 아이돌인 RUN쨔응에겐 반짝반짝한 왕자님이 찾아올테니까요."

"부읍-"

"풉...!"

히죽이는 내 반응에 심통이 났는지 볼을 부풀린 룬에게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뭐랄까 룬 녀석...오늘따라 감정 변화가 다채로운게 정말이지 상대하는 재미가 있다.

"이익...! 비웃지마! 왕자님, 왕자님하고 놀리는데 나도 엄연히 공주님이라고!"

"아하핫~! 응? 그러고보면 그런가?"

"그래! 이래뵈도 메모루제 별의 왕족이니까."

"헤에..."

"뭐야 그 눈은?"

"별로. 우주인 공주는 죄다 말괄량이라고 생각했을 뿐."

"열받아..."

뚱한 얼굴이 된 룬은 이내 얼굴을 고치곤 서로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룬의 제안을 받아서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라라를 유혹하는 방법에 대한 예행연습이다.
아이돌로서 연기에도 재간을 쌓은 룬이니까, 확실히 이 연습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룬이 '라라'의 역할을 맡고, 내가 라라를 유혹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상한 점이라면 '리토'의 위치에 렌을 대신 집어넣는다는건데...
그러니까 렌과 라라가 서로 좋아하는 가운데, 내가 그 둘의 사이에 끼어드는 상황이라고 한다.
굳이「렌-라라-나」라는 삼각관계로 설정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이유를 물어보았다.

"어째서 라라의 연인으로 설정된게 유우키가 아니라 렌인거야? 특별한 의미라도 있어?"

"그야 내가 리토군 대신 널 선택할리 없는걸?"

"...심하잖냐."

그러니까 역할을 맡은 룬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라라의 연인을 리토 대신 렌으로 설정한건가.
그야 네가 리토한테 푹 빠졌단건 알고 있다만, 그렇게 비교당하면 자존심이 상한다구...

"그러니까 이정도까지 허들을 낮춰줬으니 노력해서 날 유혹해보라구 수염."

"반박의 여지가 없구만요."

룬 나름대로의 배려가 오히려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어서, 작게 신음을 흘리곤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연습이라지만 라라를 꼬시는게 목표라고 하니 어째 기분이 껄끄러운걸.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알아챘는지 룬이 물었다.

"왜그래 수염?"

"그냥...데빌루크의 공주를 유혹하는 미션이라고 생각하니까,
이거 어쩐지 미남계 같아서."

"......"

"...룬?"

"풋..."

"...?"

"푸, 푸하하하하하흐하하하~!!"

"에? 룬?"

"지,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거야 수염?
그 산적같은 패션으로 미남계라니 크큭...아아, 안돼...배, 배가...!"

어깨를 들썩이면서 입을 가리고 웃던 룬은, 이내 배를 부여잡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야 원...분위기가 엉망이네요.
연극이고 뭐고 할 분위기가 아니다.
괜한 말을 꺼냈다 싶어 민망한 얼굴로 룬이 진정할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큭큭...아핫핫~ 혹시나 미남계 쓰려거든 적어도 수염정돈 없애고 해보라구 수염.
혹시 알아? 좋다고 해줄 사람이 있을지?"

"아아, 알고 있다고. 젠장..."

아무튼 룬의 웃음도 그쳤고 다시 연습을 시작해볼까.
교실 안에서 마주보고 선 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룬도 나름대로 분위기를 잡으려는지 새침한 얼굴로 마주서 있었다.
으음...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만 하다가 시간만 지날것 같아서 우선 가볍게 말을 건네 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이 렌이라고 했지?"

"응. 내 소꿉친구야."

"많이 친했던거야?"

"물론. 렌과 난 어릴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니까.
처음 만난 순간 난 운명과도 같은 이끌림을 느꼈어.
지금까지 손으로 셀수 없을 만큼 즐거운 추억을 잔뜩 쌓아왔고,
심지어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날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어.
후후...정말 다정한 사람이야."

"......"

가볍게 날린 왼손 잽의 답례로 냅다 크로스 카운터로 오버핸드 라이트가 날아왔다.

와 제길 잠깐만.
농담이 아니고 진짜 허들 높잖아!?
운명과도 같은 이끌림이니 10년 전의 추억이니, 상상 이상으로 공략 난이도가 귀축.
룬...솔직히 너, 고백 연습 성공시킬 생각 없지!?
추억의 소년 보정이 너무 높아서 울 것 같다.
당황함을 추스리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일단 침묵한다.

그야 10년 동안 라라와 렌이 양호한 관계를 쌓아왔다면야 둘이 알콩달콩하는 미래도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둘의 사이에 끼어들어야하는 내 입장을 생각하면 예행 연습에서 이런 설정은 좀 봐줬으면 한다.
이래서 소꿉친구 설정의 관계는 건드리기 번거롭다니까...

우선 '라라'와 '렌'의 추억에 대항해서, '라라'와 나 사이에 있었던 추억을 호소하는 방식은 졸책.
지금 이자리에서 '라라'와의 추억을 풀어낸다 하더라도, 라라 본인이 아닌 룬으로서는 그 추억에 제대로 공감할리가 없으니까.
결국 여기서 분위기를 쇄신하고 룬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룬과 있었던 일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밖엔 없나?
으음...하지만 그랬다간 잘못하면 룬의 화를 북돋우는 해프닝도 꺼낼 위험이 있는데.

...별수 없네.
기껏 룬이 자원해서 마련해준 무대다.
실패해 굴러도 웃어넘겨버릴수 있는 예행연습이라면...
농담 속에 섞어 건네는 진담 대신에, 평소라면 하지 않을 부끄러운 말도, 지금 여기서 조금이나마 토해내어 보자구.
룬도 진지하니까 설령 내가 실수하다러도 분위기를 맞춰서 제대로 대응해 주겠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제법 길었는지 반응을 기다리던 룬이 슬슬 초조해한다.
참지 못하고 재촉하려는 룬에 앞서 입을 연다.

"넌...그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그럴까? 으응, 그럴지도..."

"...그래..."

쑥스러운듯 살풋 웃음짓는 룬의 얼굴을 보며 가만히 가슴에 손을 댄다.
내 기억속에 십년이상 이어온 교우관계는 없었다는걸 떠올리며 그 상실감을 표현하려 애쓴다.

"나는...10년전, 너희 둘의 사이가 어떤 관계였는지는 몰라.
어떤 추억을 쌓고, 어떤 감정을 가졌는 지도 몰라.
하지만..."

이야기의 시작부터 호감도 MAX를 찍고 시작하는 소꿉친구에게 공감 같은게 가능하겠냐.
반칙에도 정도가 있지.
애초에 나, 소꿉친구 같은거 없었으니까 공감하라고 해도 무리야.

분명 연습 설정상의 렌과 라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다가온 강렬한 만남도,
가을내내 쌓인 낙옆처럼, 세월의 흐름속에 겹겹이 쌓아온 소중한 추억들도 가지고 있을 테지만...

미화된 옛 추억이라든지, 운명이 정한 사랑 같은 머나먼 이야기도 좋지만,
필연성이 없는 우연한 만남 같은것도 제법 매력적이지 않아?

"일상에서 사소한 엇갈림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엉뚱한 만남이, 어느샌가 서로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는것처럼...
인연이란건 사소한 계기에서도 시작될 수 있는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

룬과의 만남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처음 너와 이야기를 나눴을 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고뭉치 같은 행동에 골치가 아팠어."

"아, 아하하...그땐 좀 너무했으려나?"

너무하긴 너무했지. 하마터면 학교가 박살날뻔 했으니까.
네가 나한테 「라라에게 세상의 고통을 좀 알려줘」라고 의뢰했을 적 이야기란다.
내가 뭘 이야기 하는지 눈치채지 못한 룬이 곤란해하면서도 라라의 반응을 연기한다.

"어려졌을 때...업힌채 우는 어린 네 모습이 곤란하면서도 사랑스러웠어."

"어?"

모도리 스컹크 때의 룬은 귀여웠지.
물론 다른 아이들도 전부 귀여웠지만.

"공연날, 무대 위에서 진심으로 즐거운 듯 노래부르는 네 모습이 빛나 보였어."

"어? 저기, 수염?"

룬이 당황한다.
방금전 이야기가 라라와의 추억이 아니라 자신과 있었던 추억이라는걸 깨달은듯 하다.
호칭도 평소처럼 수염으로 돌아와 있고.

"결혼식의 악몽을 들었을때, 웃지 않고 함께 있어주겠다고 말해줘서 기뻤어."

룬에게 한걸음 다가간다.
물리적인 거리를 줄이는게, 심리적인 거리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까 생각하면서.

"...불평하면서도 다가와주는 서툰 상냥함이 좋았어."

가슴에 얹은 손에서 전해져오는 고동을 음미하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쉬고 얼굴을 든다.
들리고 있는건 누구의 고동일까 생각하며 당황한 룬과 얼굴을 마주했다.

"나는...그런 네가 좋아."

"......"

팔을 뻗으면 서로가 닿을 거리에 멈춰서 룬을 응시하자 룬은 어색한 얼굴로 시선을 회피했다.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룬의 얼굴은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마치 머리카락으로 표정을 숨기는것 같은 모습이라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넌 그런 식으로 표정을 숨기는구나."

"벼, 별로...앗?" 




손을 뻗어 룬의 손을 잡자, 깜짝 놀란 얼굴로 룬이 고개를 들었다.

"방금전 네게 고백 했을때, 네가 고개를 숙였을 때,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를거야.
지금 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혹시 내가 널 곤란하게 만든건 아닐까 하고 말야."

고개를 든 룬과 눈을 맞추곤 작게 웃었다.

"그러니까...머리카락에 가려진 네 얼굴을 보고 싶었어."

"자, 잘도 그런 부끄러운 말을..."

"이건 고백이니까."

"윽..."

"고백할 땐 시선을 마주하는거니까.
눈을 감지 않고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고 하는거니까.
그러니까 나는...처음으로 용기를 내고 있는거야."

부끄러움에 룬의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 렌과 한몸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냐며 묻던 쌀쌀맞은 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와 지금의 반응 차이를 보곤, 문득, 지금이라면 방금전과는 다른 반응을 얻을 수 있을거라 기대하며 입을 열었다.

"...렌과 함께라도 좋아."

"뭐, 뭐가?"

"평생의 절반의 시간만 너와 함께 해도 좋아.
내 남은 삶의 절반은 렌과 함께여도 괜찮아.
그러니까..."

"자, 잠깐. 그건..."

당황하며 말하려는 룬의 말을 가로챈다.
고백씬이잖아.
거기다 라스트 씬인데 기왕이면 깔끔하게 마무리 짓게 해달라구.

"너의 삶이 다른 사람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면...
너의 반생을 렌에게 주었다면...
남은 절반의 인생은, 나와 함께 있어줘..."

"......"



룬이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벙긋벙긋 여닫으며 버벅거리고 있다.
조금만 더 이대로 손 잡고 있다간 얼굴 익겠네.
룬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 가볍게 양손을 어깨위로 들었다.

"자, 이걸로 연습 끝."

"......어?"

"어때? 나 제대로 한 것 같았어?"

"...우..."

"응?"

"웃기지마아아아아아!"

룬의 고함에 잽싸게 귀를 막았다.
새빨개진 얼굴로 손을 휘젓는 룬을 피해서 뒤로 물러나자, 룬은 양뺨을 손으로 감싸쥐었다.

"부끄러워... 부끄러웠다구!
뭐야 방금전 그 대사?
너 지금껏 이런 말들로 여자애들을 꼬신거지!?"

"오?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좋았나보네. 메모해둬야지."

"무시하지마!
뻔뻔스레 그런 말을 장난으로 내뱉어 왔던거야!?"

"그럴리가. 적어도 연기할 때 만큼은 진심이었는걸?"

"뭐?"

"네가 아까 말했었잖아. 화술이니 뭐니해도, 가장 중요한건 마음이라고.
거짓으로 발라낸 말로 설득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결국은 마음을 담아서 하는 수 밖에 없잖아."

연극이 아니었으면 내뱉을 대사도 아니었지만.

"우..."

"그래서? 방금전 연습의 평가는?"

내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룬은 붙잡혔던 손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너...정말로 난봉꾼이야..."

"극찬이네. 고마워."

아무튼, 다행히 평가는 나쁘지 않은 것 같네.
「수염주제에...」라고 중얼거리는 룬에게 싱긋 웃었다.




고백 연습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자 석양으로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늦은것 같은데 집까지 데려다 줄까?"

"됐어. 그렇게 어둡지도 않고. 필요하면 여기로 부르면 되니까."

불러? 뭐를? 집을?
어안이 벙벙한 내 반응에 룬이 쿡-하고 웃었다.

"나, 우주선에서 살고 있으니까."

"아, 그래서..."

"그나저나 수염."

"왜?"

"공연 말인데, 정말로 라라랑 갈 생각이야?"

"이제와서 뭘. 이미 라라랑 약속했잖냐.
거기다 비록 억지로 동행하게 된거지만, 솔직히 라라랑 가는게 제일 즐거운건 사실이니까."

"아, 그래? 그렇다면야 힘껏 잘해봐.
그동안 난 리토군이랑 잔뜩 꺄하하우후후 할테니까."

...그거 정말로 가능하려나?
미행을 하면서 데이트를 동시에 신경써줄 정도로 리토가 유연하진 않을 것 같은데...
걱정이 되었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룬이 그만두지도 않을테니, 조금이나마 룬을 응원해두기로 했다.

"하아...그, 뭐냐... 너도 노력해."

"......"

맥빠진것 같은 내 격려에 룬이 입을 다물었다.

"...역시 너도 라라가 좋은거야?"

"뭐?"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곤란한 녀석...

고개숙인 룬의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라라만 신경쓰면 되었을텐데...언제나 일이 생각처럼 굴러가는건 아니군요.
한차례 머리를 긁적이곤 숄더백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어이, 룬."

"...?"

"이거 빌려줄께."

고개를 든 룬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남자가 모르는 여자의 마음』

책을 받고선 룬이 의아한듯 날 올려다본다.

"...남자용 책이잖아..."

"나한텐 필요없으니까.
모미오카랑 사와다의 부탁에 부응하려고 빌린거긴 하지만...역시 이건 읽지 않을래.
그러니까 이건 룬 네가 가져가. 필요하다면 읽어봐도 좋아."

라라한테 이걸 써먹을 생각도 없고.

"...읽지 않을거야?"

"뭐야, 필요없으면 도로 가져간다?"

룬의 손에 잡힌 책으로 도로 손을 뻗자 룬이 휙하고 내 손을 피했다.
자신의 숄도백에 책을 집어넣은 룬은 작게 코를 울렸다.

"말해두지만 나도 굳이 이런책은 필요없어.
단지 네가 안 읽는다니까 성의를 무시하기도 그래서 받는거라구."

"그래그래."

"무읏...너 일부러 그러는건 아니지?"

적어도 그 책은 일부러 건네준거지만.
라라를 꼬실 의도는 없다는 표현으로 말야.
나름대론 괜찮은 책이었기에 드는 아쉬움을 감추곤, 숄더백을 고쳐매는 룬에게 제안했다.

"맞다. 휴대폰 번호 교환하지 않을래?"

"뭐?"

"주말에 유우키랑 나가는거지?
미행한다면 혹시라도 나랑 라라를 놓칠 수 있으니까, 연락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비상 연락망을 찾아봤는데, 룬 너는 다른반이었다가 2-A로 반이 바뀐탓인지 연락처가 안적혀 있더라고.
그러니까 생각난김에 지금 번호 교환 하지 않을래?"

"너어..."

"아, 기왕이면 메일 주소도 부탁할께."

"...하아...거기까지 뻔뻔하니까 오히려 화낼 기분도 안나..."

맥빠진 어조로 답하는 룬과 번호랑 메일주소를 교환했다.
방금전까지 가라않았던 분위기는 사라져서 다행이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번호를 받곤 싱글벙글하고 있는 차에 룬이 나를 불렀다.

"저기..."

"응?"

"...라라에겐 이상한 말 하지마."

"어떤 말?"

"그러니까...이상한 말."

"......이상한 녀석."

"윽..."

욱-하는 룬의 반응에 고개를 젓고는 룬과 함께 귀가길에 올랐다.




그날 밤. 룬에게서 메일이 왔다.
번호 교환한 날에 바로 연락이 와서, 반가운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했더니 「나한테 이 책을 빌려준 이유가 뭐야?」라고 묻는 내용이었다.
순순히 받아들일땐 언제고 왜 이제와서?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답장하려다가 재미없는 내용을 보내기도 심심했기에 답장 내용을 고쳐보냈다.

렌보고 읽으라고 준건데?
아니면 그거 보고 유우키한테 써보면 어때?
연애 입문서 2권으로 네 여자력도 2배 UP~!
너랑 맞는건 하나도 없어 보이는게, 그다지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메일을 보낸 뒤, 물이나 마시려고 부엌으로 가던 중 휴대폰 벨이 울렸다.
룬이네.
통화를 연결하곤 휴대폰을 귀에 가져갔다.

"네. 여보세「웃기지마아아아아!」아아아악!?"

귀청을 뚫는 외침에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띠로롱-♪ 하는 통화 종료음이 들렸다.
내 비명이랑 폰에서 들린 룬의 고함 소리에, 마루에서 게임을 하며 놀던 나나와 모모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료스케? 방금 그거 뭐야?"

"룬에게 빌려준 책 때문에 전화가 온거야. 으~ 귀야..."

"...룬씨에게 에로책이라도 빌려주신건가요?"

"아냐..."

울리는 머리를 가누면서 빌었다.
그책 학교책이니까 부디 열받은 룬이 책을 찢어버리지는 않길...




다음날 아침. 학교에서 늘어져있는 룬을 목격했다.
피곤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책상위에 축 처져있는 룬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톱 아이돌의 자태라기엔 영 엉망이네."

"시끄러 수염..."

"그나저나 어제 빌려준 책이 어땠길래 그래? 도움이 안됐어?"

"...전혀. 그러니까 돌려줄께."

거북한듯 시선을 돌린 룬이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몇장 읽다 덮었어.
엉터리야 이거."

"에...그렇게 엉망이었어?"

"그래. 덕분에 잠도 설치고 이상한 꿈을..."

"꿈?"

"아냐. 아무것도."

난 그런대로 설득력 있는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심한 내용인건가?

"흐음...?"

책을 받은채 고개를 갸웃하다가 어제 붙여둔 인덱스 스티커가 보였다.
그러고보면 룬에게 건네줄 때 떼는걸 깜박했네.
밖으로 삐져나온 스터커를 잡고 책을 펼쳤다.
룬이 「아!」라고 외치는걸 흘려듣곤 인덱스 스티커를 떼면서 페이지를 훑어보았다.

- 우연한 만남도 반복되면 필연! 여성은 의도치않게 벌어지는 만남이 지속될수록 운명을 느낍니다.

- 헌신만이 답이 아닙니다. 적당한 긴장관계가 매력적이겠지요.

- 당신의 앞에서 예전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자신은 이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여성」이라는 어필입니다.
자신을 고른 너는 행운이라는 의미입니다. 덤으로 살짝 질투심을 유발하지요.

- 여성의 내숭은 중요합니다. 여성의 말은 신중히 판단하세요.
그녀의 행동과 말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는게 중요합니다. 쌀쌀맞음 속에 숨겨진 마음을 지나치지 마세요.

- 여성이 머리카락을 넘기는 행동은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과연...

어제 내가 읽던 부분 그대로인걸보면 룬은 딱히 인덱스 스티커를 옮겨 붙이진 않았나보다.
내용을 보면 룬의 반응도 납득이 가는것 같았기에 차분히 책을 덮고 룬을 내려다본다.

"확실히 너한텐 별로 맞지 않는 내용이네."

"...그러니까 엉터리라고 했잖아..."

내 담백한 반응이 원망스러운듯, 책상위에 엎어져있다 고개를 든 룬의 얼굴은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아하하, 자존심 상할건 없어.
너만이 아니고 라라도 유우키를 대할때 직설적으로 행동하잖아?
너희가 이런식으로 돌려말할거라곤 요만큼도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싸움걸고 있어?"

"그럴리가. 그냥 이건 지구인용 책이니까 우주인의 상식과는 차이가 있겠지.
어제 봤던 패션모델의 우주적 센스처럼 말야."

"넌 날 그런 변태 취급할 생각인거야!?"

책상에 엎어져 있던 자세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룬의 춉을 피했다.
과하게 부끄러워 하는것 같아서 점잖게 위로해줄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화를 북돋웠나보다.
결국 책은 점심시간에 반납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매지컬 쿄코 공연 당일이 되었다.

문제라면...

"료스케~! 준비는 끝났어?"

"...공연은 오후인걸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약속 장소는 우리 집이 아니었잖아?"

"하지만 오늘이 오길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걸~?"

"절조가 없네요 료스케씨."

"너, 너너너! 이젠 우리 언니한테까지 손을 댄거야!?"

"그엑!?"

라라가 기대에 부푼건 알고 있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우리 집에 쳐들어올거라곤 생각 못했다는거다.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라라를 본 나나와 모모에게 채근당하곤 사정을 이야기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매지컬 쿄코 공연 티켓이 2장 생겨서 라라랑 보러 가기로 했다고 얘기했다.
리토와 룬의 미행은 둘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나는 몰라도 모모라면 혹여 이상한 참견을 할지도 몰랐으니까.
사정을 이해한 나나와 모모는, 라라가 공연을 보러 나가기 전까지 라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주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져 경품을 기대하며 들떠있는 라라를 데리고, 나나와 모모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잊지않고 가는 길에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곤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에 들어선 후, VIP 티켓 경품을 받자마자 라라가 포장을 뜯어보았다.
귀에 꽃는 둥근 부분에 매지컬 쿄코의 얼굴이 이어폰과, 마스코트 고양이 시로네 모양의 이어캡(earcap)이었다.
경품이 만족스러운지 내용을 확인한 라라가 풀어진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검은 타이트의 괴인과 귀여운 인형옷을 입은 괴인들을 상대로 매지컬 쿄코가 화염을 내뿜었다.
「폭렬소녀 매지컬 쿄코 플레임(炎)」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무대 밖으로 화끈한 열기가 전해져 왔다.
녹화가 아닌 무대 공연이라 화염도 CG라고 숨길 수 없는 진짜 화염이지만, 이거 마술이란 걸로 넘길수 있는걸까?
배치된 소화기로 불똥을 진화하는 무대 스탭들의 행동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열심히 쿄코를 응원하는 라라의 모습에 나도 부끄러움은 잠시 벗어던지고 함께 쿄코를 연호하며 공연을 즐겼다.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간 쿄코를 쫓아 팬들이 쿄코가 향한 곳으로 우르르 몰렸다.
나도 준비한 꽃다발을 쿄코에게 전해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도 붐비는지라, 우선 화장실에서 간단히 매무새를 정리하고 가기로 했다.

라라에게 잠시 공연장의 광장에서 기다리라고 한뒤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약속한 광장으로 갔지만 라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라라도 화장실을 간건가 싶어서 주위를 살피다가, 저만치에서 어린 여자아이랑 부모로 보이는 남녀와 함께 있는 라라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일인가 싶어 가보니 아이의 부모가 미안한 얼굴로 라라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라라?"

"아, 료스케?"

곤란해하던 라라가 날 보곤 반색했다.

"돌아와보니 갑자기 없어져서 걱정했다구."

"아하하 미안~"

"그런데 무슨 일인거야?"

"어...그게..."

갑자기 머뭇거리는 라라의 태도에 의아해하고 있으려니 여자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분이 미안한 얼굴로 사과해왔다.

"그게...거기 여자분이 저희 아이에게 경품을 양보해주셨거든요."

"네?"

두 남녀의 말로는 어린 딸과 함께 매지컬 쿄코 공연을 보러 왔다고 한다.
그런데 VIP 경품을 보게 된 딸이 경품을 갖고 싶다고 부모에게 부탁했나 보다.
이미 공연이 끝난 뒤라서 티켓을 바꿀 수도 없었지만, 딸이 울기 시작하자 직원에게 남은 경품이라도 문의해보려고 하던 찰나에, 옆에 서있던 라라가 그 모습을 보곤 딸에게 자신의 경품을 건네주었다는 거다.

라라가 얼마나 매지컬 쿄코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놀란 얼굴로 라라를 보자 라라가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아하하~ 그래서 줘버렸어~"

"야, 너..."

"고마워 예쁜언니~!"

어린 여자아이가 눈물자국이 남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라라에게 감사를 표하자, 라라도 마주 웃어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응응~ 언니도 쿄코짱을 정말 좋아하니까, 그걸 소중히 여겨주면 언니도 기쁠거야."

"응! 정말 소중히 여길께~!"

"아하하~ 고마워. 그럼 엄마 아빠랑 조심해서 돌아가렴~"

고마워하며 떠나는 아이의 가족들에게 라라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손을 흔드는 여자아이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던 라라는, 아이와 가족의 모습이 인파에 묻혀 사라지자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추욱하고 힘없이 아래로 처진 꼬리가 지금 라라의 낙담한 심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곧 기분을 고치며 고개를 든 라라는 평소처럼 웃으며 날 불렀다.

"료스케~ 그럼 우리도 얼른 쿄코짱이 있는 대기실로 가자.
방금전에도 엄청 많은 사람들이 저쪽으로 향했는걸.
료스케도 쿄코짱에게 주려고 꽃다발까지 준비해왔잖아?"

"......"

발걸음을 재촉하는 라라의 모습에 어쩔수 없는 쓴웃음이 나왔다.

"너...좋은 여자가 될거야."

말과 함께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내 경품을 라라에게 건넸다.

"에?"

"경품 때문에 데이트까지 신청했으면서 남한테 양보하지 말라구.
뭐, 이번은 특별하지만."

눈을 깜박이는 라라의 손에 억지로 경품을 쥐어주었다.

"하지만...료스케도 경품 갖고 싶었잖아."

"선물받은 티켓이 중요했을 뿐이야.
거기다 너랑 둘이서 보러 온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만족했으니까."

"료스케..."

"뭐야? 말해두지만 경품 반품 같은거 안 받는다?"

"정말 고마워!"

"으엑?"

힘껏 달라붙은 라라에게 기겁했지만 한손에 꽃다발을 든 상태라 제대로 떼어내지 못했다.
라라식 애정 표현은 역시나 스킨쉽이 많네.
엄청 기쁜지 품에 안긴채 꼬리를 흔들며 부비부비 달라붙는 통에, 떨어뜨릴 생각도 못한채 엉거주춤 라라의 등에 한손을 대곤 라라가 진정할 때까지 서 있었다.


라라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쿄코에게 메일을 보내서 컨택을 취할 수 있었다.
저번의 아르바이트 활동도 있어서, 관계자라는 명목으로 대기실에 들어가자, 분장을 지우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쿄코가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어서와 아키츠군. 어? 그쪽은 혹시?"

"또 만났네 쿄코짱~!"

내게서 꽃다발을 받아들고서 웃던 쿄코는 들떠있는 라라의 얼굴을 보며 놀라워 했다.
저번 공연에서 함께 했던 일도 있어서 쿄코는 라라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때의 여학생들이 아키츠군이랑 아는 사이였다니 놀랐어."

"어? 설마 료스케랑 쿄코짱이랑 아는 사이였어?"

"응. 할로윈 공연하러 여기 왔을때 친구가 됐어. 그나저나 정말로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응~!"


유감스럽게도 쿄코의 스케쥴 문제로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너무 짧은 만남에 아쉬워하는 라라에게 사인본을 건네주며 기운을 북돋워준 쿄코는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예쁜 아이네. 저 애가 아키츠군의 애인이야?)"

"(아니. 매지컬 쿄코의 열렬한 팬이라서 함께 온거야.
이런건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랑 보러 오는게 좋잖아?)"

"(어? 그럼 여자친구가 화내지 않았어?)"

"(...화내 줄 사람이 없는데.)"

"(그런거구나. 후후...미안.)"

전혀 미안한 것 같지 않다만.
뭐, 이 나이대엔 다들 그런데 관심이 많으니까 말이죠.

"그럼 잘 있어 쿄코짱~!"

"응. 그럼 아키츠군, 라라. 다음에 봐~"

웃음을 흘리는 쿄코를 뒤로하고 사인본을 안아든 라라와 함께 대기실을 벗어났다.



그럼...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라라도 사인본을 받아 만족한 것 같고 이대로 귀가하는걸로 끝맺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라라에게 여동생 카페로 이끌렸다.
라라가 말하길, 공연이 끝나고 쉴때 한번 찾아오라고 미오가 권했단다.
저번처럼 서비스로 디저트라도 주려나?
기대를 품고 카페에 가자 고양이 귀를 착용한 미오가 반겨주었다.
...아, 맞다. 여기 코스프레 카페였지.

자리를 안내해 주면서 미오가 지금까지의 경과가 궁금했는지 질문을 던졌다.

"어때 라라찌? 아키츠군은 잘 리드해 주었어?"

"리드고 뭐고 우린 공연 끝나고 바로 여기로 왔다만..."

"에~ 뭐야 그게. 좀더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올 줄 알았는데.
라라찌? 뭔가 재밌는 일은 없었어?"

"응! 공연 뒤에 쿄코짱을 만나서 사인을 받았어!"

"그게 아니라...아니, 물론 라라찌한텐 좋은 일인데~"

미오는 축하해주면서도 뭔가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이었다.
주문을 접수하고 떠나기 전에 미오는 내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했다.

"(저런거 말고 뭔가 러브러브한건 없어?)"

"(요만큼도.)"

"에에~"

노골적으로 실망하지 마라.
떠나가는 미오를 보면서 생각했다.
역시 이 녀석들, 순전히 재미로 이번 계획을 꾸민거라고.

그 생각은 잠시 후, 서비스 메뉴로 커플용 빨대가 꽂힌 스무디가 나왔을 때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라냥~ 우냥냥~"

입가를 가리며 웃곤 고양이 꼬리를 흔들며 물러나는 미오의 뒷모습을 째려보곤 눈 앞의 스무디를 보았다.
하트 모양으로 빨대 두개가 얽힌 모양의 커플용 빨대라니...
한숨을 쉬곤 스무디를 라라에게 권했다.

"이건 라라 네가 마셔."

"응? 료스케는 안마셔?"

"난 그다지 생각 없으니까.
그리고 그 빨대는 다음에 유우키랑 함께 왔을 때 써보도록 해."

"그래?"

갸우뚱하면서 라라는 스무디에 꽂힌 빨대를 입에 물었다.

주문한 메뉴가 나온 뒤, 아직까지 공연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라라와 매지컬 쿄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할로윈 공연 얘길 하다보니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우주인 아저씨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라라에게 쿄코의 활약상에 대한 일장연설을 듣기도 했다.
나로선 악당들의 민폐보다 매지컬 쿄코가 불태운 거리의 피해 규모가 더 크다는 불합리함이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매지컬 쿄코 관련 이야기 외에는 라라가 언니로서 평소 나나와 모모의 행실에 대해 물어오기도 했다.
어릴적 나나와 모모 둘의 다툼에 시끌벅적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는 라라는 즐거워 보였다.
이따금 지뢰같은 질문도 있었지만.

"응~ 평소부터 궁금했는데 말야."

"뭐가?"

"담배란거, 맛있어?
료스케가 항상 들고 다니는거 말야."

"이거? 이건 물고만 있는거야.
별로 불을 붙이거나 하진 않아."

"불을 붙여서 쓰는 거로구나?
한번 써봐도 돼?"

"...뭐?"

아니아니아니. 안된다구 이건. 이거 건강에 안좋은거니까?
나중에 아기한테도 안 좋을테니까!
행실에서 타의 모범이 되지 못하여 이런일로 전전긍긍해야하는 내 입장이 안타까웠다.
담배에 호기심을 보이는 라라에게 담배의 해악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담배에 대한 관심을 끊게 하느라 제법 시간을 보내버렸다.



"라라찌! 아키츠군! 앞으로 적어도 세군데 정도는 더 돌아다니라구~!
나중에 확인할테니까~!"

어디의 강압적인 동아리 단장입니까 당신은?
쓸데없는 곳에 정신력을 소모한 이후, 미오의 배웅을 받으며 카페를 나왔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 료스케?"

"음~ 기왕 이렇게 된거, 오늘 하루는 마지막까지 어울려줄께."

편하게 친구랑 놀러간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일부러 멋진 모습 보일 필요도 없으니까 뭘 할지 고민 안해도 되니까 좋네 뭐.




오락실.

CLEAR!

"료스케? 랭킹에 AAA라는 사람이 잔뜩 있는데?"

"그거 이름 적기 귀찮은 사람들이 해놓은거야."

모든 장르에서 쾌속행진을 한건 아니었지만, 특유의 센스와 운빨이 받쳐주는 라라의 게임 플레이는 거침없었다.
다만, 때때로 비상식적인 돌발 행동을 하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건슈팅 게임을 하다가 만능툴로 총을 개조하려 한다든가. 물론 문제가 되기 전에 말렸다.




놀이터.

"왓하하하하!
덤벼라 매지컬 라라!"

"나타났구나 수염 레슬러!
쿄코짱을 대신해서 매지컬 라라가 해치워 주겠어!"

어린이 미끄럼틀 위에서 자신만만한 얼굴로 라라가 포즈를 취했다.
놀이터를 지나면서 이따금 꼬맹이들의 상대를 해주면서 악당역을 맡았던 이야기를 꺼냈더니,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라라의 말에 즉흥적으로 시작한 연기다.
다행히 인적도 드물겠다, 기세등등한 라라의 연기에 맞춰 이쪽도 대범하게 연기에 몰입했다.
미끄럼틀 위에서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느라, 짧은 치마 밑으로 벌어진 라라의 허벅지 사이로 시선이 가려는걸 참고선 라라를 도발했다.

"훗훗훗~ 불꽃도 쓰지 못하는 네가 이 수염 레슬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더욱이 네 꼬리가 약점이란 것도 잘 알고 있는 이상, 나의 패배는 없다!"

"흥이다~! 불꽃 같은거에 의지하지 않고도 널 쓰러뜨릴 방법을 생각했으니까!"

그리곤 라라는 몸을 낮춰 미끄럼틀에 손을 얹었다.
솔직히 뭘 하려는 자세인진 몰라도, 이런 장면에선 일단 놀라주고 보는게 매너지. 나는야 분위기를 읽어주는 친절한 악당.
라라의 선언에 과장된 포즈와 함께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외친다.

"뭣이? 서, 설마 그 자세는...!"

"그래! 미끄럼틀의 높이만큼 증가한 내 위치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꾸는 공격!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져 내려가서 그대로 몸통 박치기야!
간닷~!"

"큭!"

과연 이공계 천재 미소녀 전사!
「파일더 온!」이라는 회심의 외침과 함께 미끄럼틀 경사면에 몸을 던진 라라의 모습에 황급히 얼굴을 양팔로 가드했다.

"......"

"......?"

"...어..."

"응?"

이상하게 조용한 침묵의 뒤, 방금전까지만해도 기세등등하던 라라가 얼빠진 소리를 흘린다.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들자, 미끄럼틀에 몸을 맡기던 자세 그대로 굳어선 낭패한 얼굴을 한 라라가 중얼거렸다.

"...끼어 버렸다..."




"아하...아하하하하~!"

"우우...료스케~! 그렇게 웃지만 말고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어린이용 미끄럼틀에 엉덩이가 끼인채 라라가 울상을 지었다.
동심으로 돌아간건 좋지만 괘씸한 발육 상태가 문제가 되었네요.
이대로 놔었두다가 라라가 공공기물 파손을 감수하고 미끄럼틀을 우그러뜨리는 결과가 되는 것도 곤란하고,
짧은 스커트 차림의 라라가 계속 미끄럼틀에 끼어있는걸 보는것도 민망했기에 웃음을 그치곤 미끄럼틀 계단을 올랐다.

미끄럼틀에 올라, 경사면에 엉덩이가 끼인채 앉아 있는 라라의 등 뒤에 섰다.
겨드랑이를 잡고 들어올리는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예전 워터랜드에서 코테가와에게 비슷한 방법을 시도했다가, 가슴에 손이 닿아 따귀를 맞은 기억이 떠올랐기에 우선 그 안은 기각했다.
대신, 주저앉은 상태로 라라의 등 뒤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양손을 집어넣고, 라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도와주려고 하는 일이라지만, 역시 이건 스킨쉽이 과한 것 같은데...
팔뚝에 전해지는 가느다란 허리의 감촉이 공공연히 신경쓰였기에, 이대로 곧장 라라의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라라의 허리를 껴안은 양팔에 힘을 주려던 차였다.

"앗...?"

허리에 손을 대어진 라라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리다, 뒤에서 라라의 허리를 껴안은 상태의 나와 뺨이 맞닿았다.
뺨에 닿은 말랑말랑한 볼의 감촉에 당황해선, 라라의 허리에 감았던 팔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젖혀서 날 바라보는 라라의 눈이 동그랗게 떠져 있었다.

"료스케? 방금 그건..."

과연 방금 전 행동은 라라에게도 허용 범위 밖이었나보다.
거기다 방금전은 잘못하면 뺨이 아니라 입술이 닿을지도 모르는 해프닝이었으니까.
성희롱에 가까운 스킨쉽에 사과 하려고 몸을 숙인 순간, 두근두근한 눈빛의 라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설마 저먼 스플렉스...!?"

"...아니야."

"어? 아니야? 분명 위기에 빠진 내게 회심의 일격을 가하는걸까 생각했는데."

히어로 놀이는 아직도 진행중이었던겁니까.
기대에 찬 라라의 시선에 맥이 빠져선 안도감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앞에서 당겨줄께."

뺨이 맞닿았던 일도 있어서, 다시 한번 뒤에서 끌어안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꺼려졌기에, 미끄럼틀 경사면 아래로 이동해서 라라의 앞에 섰다.
경사면 위에 다리를 고정하고선 라라의 양손을 마주잡고서 앞으로 잡아당겼다.
생각보다 꽉 끼었는지 시험삼아 약하게 잡아당기는걸론 라라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끄럼틀 위에서 라라의 몸을 빼내려 분투하는 와중에, 라라도 내 행동을 보고 가만있기 뭣했는지, 양손에 잡아당기는 힘을 강하게 하며 몸을 일으키려했다.

"으으응~~~!"

휘청

어? 아니, 협력해 주려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여기서 네가 날 잡아당기면 안되지.
미끄럼틀에 붙박힌 라라의 바보같은 파워에 내 쪽이 오히려 라라에게 끌려갈뻔 해서, 무심코 당기는 힘을 과하게 준게 문제였다.

뽁-!

"와앗~!?"
"으앗!?"

병뚜껑 따는 듯한 경쾌한 소리와 함께 라라가 미끄럼틀에서 튕기듯 떨어져나왔다.
기세를 죽이지 못하고 그대로 내게 몸을 던지듯 부딪혀온 라라에 얽혀 균형을 잃은 나는 그대로 라라와 함께 미뜨럼틀에서 굴러 떨어져서 사이좋게 놀이터 바닥을 뒹굴었다.

"아야야..."

"큭..."

스커트가 뒤집혀진채로 내 위에 거꾸로 올라타 넘어져있던 라라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공중 덤블링을 한데다, 어지간히도 뒹굴었는지 올라탄 라라의 스커트며 상의가 말려올라가 있었다.
...어디의 러브 코미디야 이거.

"괜찮아 라라?"

"으응...그렇게 아프진 않아."

"다행이네. 그럼 슬슬 일어나줄래?"

"응. 알겠어. 앗..."

찰그락-

금속음과 함께 몸을 일으키려던 라라의 움직임이 멈췄다.

"왜 그래?"

"그, 그게...머리카락이 료스케의 옷에 끼어서 일어나질 못하겠어..."

"아..."

무릎까지 내려오는 라라의 장발이 화려하게 퍼져 있다. 내 몸 아래로 깔린 머리카락에 라라가 곤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며 신음을 흘렸다.
몸에 깔린 머리카락이야 어떻게든 된다지만 문제는 옷과 장신구에 엉켜버린 머리카락들인가보다.
특히 내 헤어밴드랑 목걸이, 체인형 팔찌, 허리띠의 버클 부분이 문제였다.

"잠깐만 움직이지 말아줘 료스케.
머리카락 엉킨걸 풀어낼 테니까..."

내 허벅지 근처에서 라라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찰그락하며 허리띠를 매만지는 라라의 손길이 느껴졌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구도다 정말...
어지간히도 걸린 부분이 나빴는지 라라가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 못한채로 엎드려서 분투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 심상치 않다.
특히 지금 눈앞에 펼쳐진, 스커트 속의 하얀 천조각과 허벅지가 위험.
깔리고 뒤엉킨 라라의 머리가 잡아당겨질까봐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서, 누운채로 여학생의 치마 안쪽을 바라보는 지금 상황이 곤혹스러워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슥-

"햣!?"

고개를 돌리다가 그만 코가 라라의 허벅지를 스치면서 라라가 놀란 비명을 흘렸다.

"미, 미안! 실수야 라라!
절대로 고의가 아니니까!?"

"으응..."

당황한 내 사과에 수긍하면서도 방금전 해프닝이 신경쓰였는지, 라라는 머뭇머뭇거리면서 내 머리를 자신의 양다리 사이에 끼워서 고정시켜 두었다.

Oh...

빼도박도 못하고 시선이 라라의 허벅지 사이로 고정되어 버렸다.
코앞에 드리운 허벅지에 눈을 떼지 못했던건 불가항력이기도 하지만 슬픈 남자의 성 탓이라 변명해보았다.
내 허리띠를 찰칵찰칵 매만지며 분투하는 라라의 고민섞인 신음소리와, 뺨에 닿은 다리의 감촉과 시야를 채운 흰색과 살색의 향연에 머릿속에서 엄청난 기세로 위험신호가 울렸다.

"어? 료스케. 바지에 뭔가 들어 있어?"

"......"

누가 좀 살려줘...



아드님의 이상현상에 패닉상태에 빠진지라 생각외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누운 상태라서 라라의 머리카락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내 몸 아래에 깔린 라라의 머리카락을 치운답시고 엉덩이를 치켜드는건 최악의 선택이란건 확실히 이해했다.
자중하지 않고 날뛰려는 아드님과, 하반신 근처에 라라의 얼굴이 있는 상황에서 요가 브릿지 같은 자세를 취했다가 일어날 참사는 절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로맨스는 커녕 범죄라고.

결국 비교적 시야가 자유로운 라라의 지시에 따라 내가 몸을 치우는 방향으로 행동방침을 결정하고, 그동안 난 아드님을 달래기 위해 잡념을 버리는데 신경을 기울이려 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려는 차에 들려온 라라의 말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저기, 료스케."

"왜그래 라라?"

"료스케의 헤어밴드랑 목걸이에 엉킨 내 머리카락을 대신 떼줄수 있어?
내쪽에선 안 보이는데다가 손이 닿지 않으니까, 일단 팔찌에 끼인 머리카락을 뗐으니까 팔은 움직여도 좋아."

"......"

"료스케?"

이젠 나도 뭐가 뭔지...

"...일단, 도와줄려고 해도 지금 네 다리 때문에 얼굴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여서 말야."

"아..."

얌전히 라라의 다리 사이에 붙잡혀있는 내 머리를 새삼 인식한 라라가 잠시 침묵했다.

"...지금 치울테니까.
대신, 료스케는 그대로 움직이지마."

라라의 꼬리가 스르르 내 얼굴에 가까이로 다가왔다.
하트 모양의 꼬리 첨단이 얼굴을 따라 내려오더니 목덜미에 달라붙었다.
그대로 목을 휘감은 꼬리에 당황하는데 머리를 붙잡고 있던 라라의 다리가 떨어졌다.
모으고 있던 양다리가 벌어지면서 내 머리를 죄어오는 압력은 사라졌다.
벌어진 다리 때문에 라라의 몸이 조금 내려오면서 가까워진 라라의 허벅지엔 기겁했지만.
피부에 달라붙은 속옷이 엉덩이 라인을 따라 파고들어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는 장면에 입을 뻐끔뻐끔 여닫다가 목에 감긴 라라의 꼬리가 움직이는 감촉에 정신을 차렸다.

"얼른 빼줘. 고개 돌리면 안돼?"

"...알았어"

나라면 다리에 얼굴이 닿는것보다, 허벅지 사이를 직시하는쪽이 더 부끄러울것 같은데요.
라라의 다리에 닿지 않도록 팔을 움직였다.
헤어밴드 쪽에 엉킨 머리카락은 헤어밴드를 벗는것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문제라면 목걸이 쪽이었다.
체인형으로 되어있는 목걸이에 엉킨 라라의 머리카락을 풀기 위해서 목걸이를 풀었을때, 목을 살짝 들면서 치마 속 풍경이 가까워 진것도 문제였지만, 목뒤로 손을 돌리면서 라라의 꼬리를 건드린게 더 문제였다.
손이 스칠때마다 목을 감은 꼬리가 움찔하고 경련하는게 식은땀이 났다.
적어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 목이 졸리는 경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후아..."

흘러내린 목걸이에서 라라의 머리카락을 전부 빼내고 나서야 라라는 작게 숨을 들이쉬며 내 목에 감았던 꼬리를 풀었다.

일어난 라라는 살짝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나도 만만찮게 얼굴이 붉었지만.
놀이터에 놀러왔다가 운 나쁘게도 험한 꼴을 많이 겪었다.
솔직히 라라가 꼬리로 목을 감아 왔을땐 나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라라의 꼬리가 성감대였다는 사실이 떠올라 목걸이를 벗는 와중엔 도대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옷매무새를 바로하고 서로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먼저 라라에게 사과했다.

한참을 서로 사죄하고 사양하는 지루한 모습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사죄의 말을 고르며 당황하다가, 서로의 낭패한 얼굴을 보고 스스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방금전의 꼴불견인 해프닝 때문에 부끄러워하며 휘둘리는 우리 둘의 모습이 어쩐지 터무니 없이 우스꽝스럽게 생각되서,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것 없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부끄러워 하면서도 사죄를 받아준 라라의 너그러움에 감사하면서, 기분을 바꿔 다시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라라를 데리고 공원으로 향했다.




놀이터를 나와 러브러브 공원에 도착할 즘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공원을 거닐자 다시금 이전 공연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이번으로 몇번째로 들었을지 모를 이야기를 라라가 떠들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매지컬 쿄코 공연을 했어."

"할로윈 특집 공연이었지?"

"응. 나랑 야미랑 시즈 셋이서 무대에 올랐어.
쿄코짱이랑 함께 무대에 섰던 그땐 엄청 흥분됐어."

"어지간히도 재밌었나 보네. 그러고보면 그땐 우주인 아저씨들도 있었다고 했지?"

"맞아. 악당역으로 나와서 활약했었어.
처음보는 토끼씨도 있었지만."

"토끼?"

"응. 분홍색의 귀여운 토끼인형씨였어.
거기다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었어."

엥?

"적이 친절해?"

"응. 무대위에서는 분명 악당이었지만 원래는 좋은 사람이야."

"에...대단히 평가가 좋구나?
그렇게 생각한 이유라도 있어?"

"으음...그야 물론,"

넌지시 질문을 던지자 라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툭-하고 중얼거렸다.

"...굉장히 상냥한 노래를 불러줬는걸."

"노래?"

"들어볼래?"

"응. 부탁할께."

"좋아. 그럼 잠시만...음음~"

목청을 가다듬은 라라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언젠가 불렀던 노래가 들려온다.

오늘 저녁 밥상 앞에 우주인이 있다면
심지어 요리도 우주인의 솜씨면
처음 보는 반찬들에 일단 기가 질려 버리고
왕성한 식욕 짐싸들고서 나가겠죠
후회되겠죠 내가 왜 그때 손 잡았을까
어떻게 벗어나 볼까 눈치만 보고 있지만
하지만 단지 우주인의 약점 같은것만 찾으려 하지마요
함께 할 때 미련없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요
흘러가는 것이 우주의 너나 할 것 없는 서로의 철학이죠
이제 가식은 구겨던져 모두가 우주에 사는 거죠.


내가 불렀을때의 가짜 목소리와 다른, 라라의 미성으로 불려진 노래가 마음을 채운다.
노래를 마친 라라가 부끄러운듯 배시시 웃음을 흘린다.

"어땠어? 제대로 불렀는지는 자신없지만."

한번 밖에 듣지 않았을텐데 가사와 음정이 정확하다.
설마 그 때 들은걸 곧바로 외운건가?
과연 은하에서 이름 높은 천재.

"자신 없기는? 멋진 노래 솜씨였는걸.
그리고 네 말대로 상냥함이 담긴 노래 같네."

"그렇지?"

내 대답에 라라가 생긋 웃으며 하늘을 쳐다봤다.

"나, 이 노랠 들었을때 리토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랐어.
리토가 내 손을 잡고 마울과 브왓츠에게서 달아나던 때를 말야.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두근두근해.
리토도 함께 이 노랠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응? 할로윈 공연땐 유우키와 함께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

의아한 내 물음에 라라가 고개를 저었다.

"으응...아마 듣지 못했을거야.
그때 리토는 피곤했던건지 벤치로 가버렸으니까..."

아...뭐, 리토에게 내 조언 같은게 필요하진 않을테니까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그건 리토랑 라라가 떠올라서 부른 노래였으니까, 기왕이면 리토도 함께 노랠 들어줬다면 좋았을텐데.

"리토와 함께 있으면서 많은 일이 있었어.
수학여행도 가보고, 리토 생일 선물로 우주꽃 셀린을 구해오기도 하고, 사키네 별장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도 하고, 여름축제를 즐기기도 하고...정말 즐거웠어."

웃으며 옛일을 회상하던 라라는「그렇다고 좋은 일만 있었던건 아니었지만...」이라며 말을 이었다.

"어떤 때는 약혼자 후보들에게 휘말리기도 하고,
아빠 때문에 막무가내로 약혼이 진행될뻔 하기도 하고,
실수로 외계행성에 불시착해서 헤매기도 하고.
최근엔 발명품이 리토랑 야미에게 오폭해서 리토한테 화가 나기도 했어."

"오폭?"

"아! 이건 리토가 말하지 말랬는데...!"

'아차...'하고 당황하는 라라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하곤 방금전 얘긴 넘겨 들었다.
개그 보정을 받을 때의 리토의 튼튼함을 생각하면, 오폭 같은거야 평소의 해프닝이랑 딱히 다를것도 없는데 뭐.

"아하하...아무튼 유우키가 엄청 고생했겠네."

"...응...정말 그래."

천천히 라라가 고개를 숙였다.

"리토와는...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언제나 멋지고 상냥하니까. 하지만...가끔 생각하곤 해.
내가 실수해서 리토를 곤란하게 할 때마다, 화난 얼굴의 리토를 볼 때마다, 리토는 날 도와줬던 그날의 일을 후회하고 있진 않나 하고 말야.
얼마전 들었던 이 노래처럼, 혹시 어쩌면 리토도 내 손을 잡았던걸..."

말을 잇지 않은채 침울해진 라라는 고개를 숙였다.

...거, 노래 하나 갖고 되게 진지하게 생각하네.
꿈과 희망이 가득찬 「밥상과 우주인」노래를 대체 어떻게 해석하면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건지...최근 라라도 어지간히 리토와의 연애 문제로 고민이 많았나보다.
그래도 즐거운 데이트의 마지막을 이런식으로 우울하게 보내는건 이쪽에서 사양이다.

"유우키가 후회할거라 생각해?
네 손을 잡았던걸?"

"...몰라. 리사의 말처럼, 난 연애에는 어린애니까..."

"연애에 서투르건 아니건은 상관없잖아."

"하지만, 모르는걸...리토의 마음을.
난 바보같으니까. 그런데도 리토는 상냥하니까... 날 걱정해서 애써 웃어주는건 아닐까 생각하니까 하고..."

"...아아, 그래. 바보야 너는."

"우..."

"평소에도 힘껏 달라붙어서 유우키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모험에 유우키를 휘말리게도 했지."

"......"

완전히 풀이 죽어버린 라라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더니 정말이지 옛말에 틀린게 하나도 없네요.

"처음 야미와 만났을때 네가 했던 말 기억해?"

"응...?"

"이 우주를 홀로 살아가는 괴로움을 아느냐고 야미가 물었을 때의 대답을 기억해?"

"으응..."

"그러니까 왕궁을 나온거라고, 네가 모르는 것이 아직도 많이 있으니까, 라고 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난 무책임한 말을 한거였을까?"

슬픈듯 얼굴을 흐린 라라에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말이 야미에게 희망을 줬다는걸 본인만 모르고 있네요.
이 녀석이 자기를 낮춰볼 이유 같은건 없는데도.

"그럴리가.
그때 너의 말을 들었을 때, 난 네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

"엣..."

놀란 얼굴로 라라가 고개를 든다.

"다른 사람을 알기위해 다가가는 네 모습이 눈부셨어.
유우키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어쩌면 우리는 모두 오해 속에서 엇갈리며 허우적대는 바보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어떻다는거야? 그렇다고해서 네가 유우키와 함께 했던 시간마저 부정되는건 아니잖아?

난, 너희와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유우키와 네가 함께 쌓아온 시간에 거짓은 없었다고 믿고 있어."

저스틴의 부하들에게 잡혀서 데빌루크 별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인 라라의 손을 잡고 함께 도망친 리토.
자신의 마음을 생각해주라고 저스틴에게 외치던 리토에게 반한 라라.
분명 그것은 오해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그건 단지 계기였을 뿐이다.

"여태까지 네가 유우키와 함께 걸어온 시간,
즐거웠던 일,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그 모든 것이 너와 유우키를 이어주고 있다고 믿고 있어."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라라에게 손을 내민다.

"만약, 그런데도 네가 불안해 한다면...손을 내밀어줄께."

리토 본인이 아니니까 라라의 불안을 완전히 해소해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 대는 녀석을 끄집어낼 순 있겠지.
수학여행의 밤.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로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코테가와처럼.
내밀어진 손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라라의 시선에 그만 옛 추억이 떠올라 멋적은 웃음을 짓고 있으려니 조심스레 라라가 물었다.

"료스케는...후회하지 않을거야?
난 바보 같으니까...료스케도 곤란하게 만들지 몰라."

"글쎄,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르지.
세상에 후회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딨겠어?"

어딘가의 권왕씨는 그랬다고 말하고 승천했다지만.

"하지만 말야, 다치는게 두렵다면 춤 추는 법을 배우지도 못해.
꿈이 깰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기회를 잡지 못해.
그리고...손을 내밀지 못하는 사람은 내밀어진 손을 맞잡아줄 수도 없어."

거기다 이런건 라라가 인지하지 않았으면서도 평소에 행하는거지만.
하지만 언제나 밝은 라라라도 지금처럼 침체되어 있는 일도 있을테고, 그럴때의 라라도 격려해줄 말 정도는 필요하겠지.

"방향을 잃고 헤메인다면 손을 이끌어 줄께.
서툰 걸음으로 뜀박질 하다가 넘어질라치면 손을 잡아줄께.
설령 기세가 지나쳐 함께 나뒹굴게 되더라도 멋적게 웃으면서 일어나 손을 내밀 정도는 되어줄께.

만약...내밀어진 손을 잡을 용기가 없다면, 기다려줄께.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손을 맞잡아 줄 때까지."

머뭇거리며 내밀어진 라라의 손이 내 손과 두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잠시 멈춰선다.
긴장한건지 멈춰선 손바닥이 한차례 쥐었다 펼쳐진다.
그리고 잠시 후, 가까워진 라라의 손이 내 손을 맞잡는다.
겨우 접하듯 조심스럽게 내 손에 닿아있는 라라의 손에 고개를 가우뚱한다.

"...뭐하는거야? 그렇게 약하게 잡아서야 잡은 느낌도 안나.
손 하나 잡는데 그렇게 조심스러울 필요는 없잖아?"

"하, 하지만...꽉 잡으면 료스케가 아플지도 모르잖아.
료스케도 말했잖아. 난 기세가 지나치니까 힘을 빼는게 좋다고...
아까 놀이터에서도 실수했으니까..."

우물쭈물하는 라라의 모습에 맥이 빠진다.

"...바보야. 지금 배려를 받아야 하는건 내가 아니라 너라구."

"앗..."

당혹하는 라라를 무시하고 라라의 손을 힘을 주어 잡는다.
굳은살 하나 없는 부드러운 손바닥의 감촉이 전해져 온다.
이런게 손을 잡는다는거지.

"따뜻하네. 손이 따뜻하면 마음이 따뜻하다고 하던데."

"그래?"

"응. 그리고 이 주장을 믿는다면 손이 따뜻한 사람하면 매지컬 쿄코지.
손바닥에서 불꽃을 일으키니까 말야.
혹시나 악수할땐 「작렬하는 화염으로 당신의 하트를 캐치~☆」라고 말하면서 손바닥에서 불을 뿜어댈지도 몰라."

"...풉."

쿄코가 들었다면 나에게 화염세례를 날렸을법한 농담에 라라가 갑자기 입을 가린다.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으려는 라라의 모습에 고개를 젓는다.
내가 한 농담이지만 라라의 개그 코드를 모르겠어...
고개를 숙이곤 한참을 킥킥대던 라라가 얼굴을 올린다.
살짝 물기가 남은 눈가를 닦고 가만히 라라가 맞잡은 손을 본다.

"이상해... 방금전까지만 해도 걱정투성이었는데 지금은 왠지 후련해.
손을 잡는다는게 이렇게나 안심이 될 줄은 몰랐어."

"다행이네. 그렇게까지 말해주면 나도 기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면 아마 좀 더 기뻤을지도 몰라."

"뭐어~ 방금전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긴 했지만, 나도 고집이 있으니까.
후회한단 말 같은건 하지 않을거라구.
아, 그리고 말인데, 조금 전에 네 말은 잘못됐어."

"응?"

"나'도' 후회하지 않는거야.
유우키가 그런것처럼."

의외의 말이었을까, 라라의 눈이 흔들린다.

"그러니까...내가 널 믿고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너도 유우키를 믿어줘."

"......료스케는...이따금 치사해."

콧잔등이 떨리더니 이내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채로 라라가 훌쩍인다.
마주 쥔손을 꽉쥐며 원망스러운듯한 시선을 보내오는 라라의 투정에 멋적게 웃는다.

"네 우는 모습을 보는것도 신선하네.
이야~ 오늘은 정말이지 귀한 경험을 했다구?"

"...거기다 심술궂어."

익살맞게 구는 날 보며 라라는 눈물을 떨구면서도 배시시 웃었다.
날이 어둑해진 켜진 가로등이 얼굴을 라라의 비춘다.
볼을 타고 흐르며 빛으로 반짝이는 눈물이 마치 보석같다고 생각하곤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잠시 마음을 맡겼다.


"료스케."

"응?"



"고마워."



상냥하게 웃음짓는 라라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우는 얼굴도 신선해서 좋긴 했지만, 역시 넌 웃을때가 제일 예뻐."

"후후, 료스케도 방금전은 멋졌어."

"그야 당연하지. 난 언제나 멋지잖아?"

"아하하~ 그럴지도."

실없는 농담에 라라가 맞장구쳐준다.

"아무튼, 연애입문서 같은건 신경쓰지마. 그다지 도움되는 내용도 아니었고.
정 곤란하다면 연애입문서 보다는 네 사정을 잘 아는 친구들에게 의지하는 쪽이 훨씬 더 도움이 될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라라 넌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제일 빛나 보이니까 말야."

"으응...그말은 어쩐지 부끄러운데..."

배배꼬는 라라의 모습도 희귀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아~ 정말이지 귀여워가지곤...
천진난만함이 묻어나는 라라의 반응에 가슴 한켠이 간지러웠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한 바람이 한차례 공원을 쓸고 지나간다.
작은 쓰레기와 모래가 휘말려 올라와 한손으로 눈을 가리는데 라라의 짤막한 비명이 울렸다.

"으엣-?"

"왜그래 라라?"

"눈에 뭔가가 들어간것 같애..."

인상을 찌푸리며 힘겹게 뜬 눈을 매만지려는 라라를 말렸다.

"아, 손대지마. 함부로 만져댔다간 눈 다친다구?"

"하지만..."

"이럴땐 보통 만지기 보다는 눈물로 흘려보내는게 낫다구."

"으응..."

내 말에 라라는 우우웅 하는 신음과 함께 몸을 떨면서 눈물을 흘리려 애썼다.
라라 나름대론 진지하게 하는 행동이었지만, 부르르 떨면서 눈물을 짜내려고 용쓰는 모습이 솔직히 좀 웃겼다.

"우우...쿄코짱의 머리가 보글머리로..."

...대체 뭔 상상을 하는거야?

해괴한 망상이 라라에겐 효과가 있었는지 질끔찔끔 눈물을 흘리고선 라라가 한차례 눈을 깜박였다.

"어때 라라? 눈은 괜찮아졌어?"

"아니, 어쩐지 아직 이물감이 남아있는데?"

불편한듯 라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내가 한번 봐줄께."

"응. 부탁해 료스케."

라라의 승낙을 받고 라라와의 거리를 줄였다.
눈물을 머금은 작은 실오라기가 아래쪽 눈꺼풀에 묻어 있다.

"료스케...아직 멀었어?
계속 눈뜨고 있으려니까 눈이 뻑뻑해..."

"아, 잠시만. 눈에 붙은거 찾았으니까 곧 떼어 줄께."

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감쌌다.
근처에 수돗가라도 있었으면 물을 적셔서 했을테지만, 아쉬운대로 손수건이 깔끔한걸 위안으로 삼아야지.

"조금만 더 고개를 들어줄래?"

"이렇게?"

얼굴을 든 라라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마주한다.
건조해진 눈 탓에 살짝 울상이 된 라라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숙여 몸을 낮췄다.


"「「뭐하고 있는거야!?」」" 




아, 나왔다.

눈가에 묻은 실오라기가 말이다.

덤으로 리토랑 룬도.



라라와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털어내려는 순간, 공원 수풀 한구석에서 리토와 룬이 뛰쳐나왔다.
안색이 변해가지고선 허겁지겁 뛰쳐나온 둘의 모습에 나도 놀랐다.
건조해진 눈 때문에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이물감이 사라져 기뻐하는 라라의 손을 잡고 내게서 떼어놓는 리토나,
널 믿은 내가 바보였다며 사람의 얼굴에 삿대질을 해대며 사납게 닥달하는 룬이나...

...하아...

...어쩌면 우리는 모두 오해 속에서 엇갈리며 허우적대는 바보일지도 몰라.

역시 난...틀리지 않았어.

그렇다고 이대로 눈을 감아봤자 룬의 잔소리가 그치는것도 아니었기에 현실도피는 그만하고,
저만치 떨어져선 왜 여기에 리토와 룬이 있는지 어리둥절하는 라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늘은 덕분에 즐거웠어 료스케.
정말 고마워~!"

라라가 리토와 함께 떠나가고 공원엔 나와 룬, 둘이 남았다.

"가버렸네."

"아아...가버렸네."

둘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룬에게 맞장구를 치곤 물었다.

"그래서, 데이트는 만족스러웠어?
넌 미행보단 유유키와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쪽을 선호할거라 생각했는데."

"흥, 네가 정신 못차리고 헤죽대는 꼴을 눈뜨고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

"심한 평가구만 그거."

고개를 내젓곤 시간을 확인한다.
이미 날은 저물어 어두워진 공원엔 드문드문 세워진 가로등의 불빛만이 산책로를 밝히고,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바람에 뒤섞여 주변을 맴돈다.

"슬슬 어두워졌는데 우주선까지 바래다줄께."

"...뭐야, 그거 헌팅?"

"설마. 에스코트라고. 오늘의 난 신사니까."

"네 에스코트는 필요없어."

룬이 고개를 팩 돌린다.
쌀쌀맞구먼.

"......하지만, 밤은 위험하니까 보디가드 정돈 있는게 좋겠지."

도도하게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룬을 보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어둑해진 공원을 룬과 함께 걷는다.
흘러가던 구름이 달을 가려가는 모습에 문득 룬이 중얼거렸다.

"슈크림..."

"슈크림?"

"그냥, 구름을 보니까 어쩐지 모르게."

"그러고보면 너 저번에 미소라당에서 슈크림 골랐었지?
좋아하는거야?"

"...좋아해. 거기 슈크림은 특별히 맛있으니까."

"그럼 다음에 나도 한번 사먹어 볼까나.
그나저나 오늘은 달이 예쁘네."

동그란 보름달이고, 구름에 반쯤 가리운 모습이 운치를 더한다.

"...난 별이 더 예쁜것 같은데."

"그래?"

"아이돌은 별에 비유되니까.
그러니까... 언젠가 달도 부끄러워 자취를 감출만큼 빛나는 아이돌이 될거야."

"후후, 응원할께."

꿈을 향해 노력하는 것만큼 빛나는 모습도 없지.
정말이지 오늘 밤은 별이 아름답구나.




"리토오~!"

"우와앗!?"

월요일 아침부터 언제나처럼 리토에게 달라붙는 라라를 지켜보았다.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변함없이 뜨겁구나~
기분탓인지 라라에게 힘껏 달라붙어진 리토의 몸에서 이상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저거 괜찮은건가...?
안색이 변한 리토를 보며 혹시 라라를 말려야 하는게 아닌가 고민하던 중 룬이 다가왔다.

"안녕 수염."

"아. 안녕 룬. 오늘은 일찍왔네?"

근처에 앉아 교실 한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라라의 애정 행각을 바라보곤 룬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이랑 달라진게 없네.
주말 동안 우리가 한건 대체 뭐였던거야..."

"뭐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해프닝의 하나였겠지."

"담담하네."

"평소의 일이잖아?
나야 오랜만에 즐겁게 놀았으니까 만족스러웠지만."

"흐응..."

룬은 마땅찮은듯 리토에게 달라붙는 라라에게서 시선을 치우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꼽았다.
눈을 감고 손가락을 까딱이던 룬은 이윽고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처음 들어보는 음에 궁금증이 일어 쳐다보고 있자 내 시선을 눈치챈 룬이 이어폰 한쪽을 빼곤 대답했다.

"다음에 부를 신곡이야.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부를 순 없지만, 이정도 연습은 할 수 있으니까."

"에에...열심이구나. 진지한 네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것 같아."

"뭐어...처음은 리토군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시작한 아이돌이지만, 난 노래를 좋아하니까."

"오~멋져! 역시 톱 아이돌이라는건 그냥 되는게 아니였네."

"너 또 날 놀리려는거지?"

눈을 흘기는 룬에게 손사래를 쳤다.

"그럴리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구 이건.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은 언제나 좋아하니까 말야.
그러니까 나도 응원해줄께. 빛나는 톱 아이돌이 되서, 언젠간 네 노래에 담긴 구상도 이루어지길 말야."

"...변함없이 넌 입만은 능숙하구나.
왜 네가 맹수라고 불리는지 납득할 것같아."

"에? 그 별명이 갑자기 왜 나와?"

난데없는 맹수 발언에 갈피를 못잡고 있자, 손가락으로 이어폰을 뱅글뱅글 돌리면서 룬이 신랄하게 말했다.

"맹수는 사냥의 마지막에 사냥감의 목덜미를 이빨로 물어뜯잖아.
사냥감의 숨통을 끊는 건 맹수의 발톱이 아니고 이빨이니까.
맹수라는 별명은 분명 네 주먹에 대한 평가보단 네 입에 대한 평가가 높아서 지어진 걸꺼야.
넌 렌보다 더 질이 나쁘니까, 너에게 꽃잎을 떨군 수많은 여학생들이 후회의 마음을 담아 네 혓바닥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지어낸 별명이겠지. 불쌍하게도..."

"참신하기 그지없는 발상이긴 한데, 터무니없는 망상으로 날 모함하진 말아줘..."

게다가 렌은 거기서 왜 나오는거야?
룬도 진심은 아니었는지 피식 웃곤 다시금 이어폰을 꼽고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룬의 허밍으로 흘러나오는 선율에 문득 궁금해져 룬을 불렀다.

"저기, 룬."

"왜?"

"신곡이 어떤지 궁금한데 나도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

"맨입으로?"

"어? ...으음, 저번에 말한 미소라당의 슈크림을 사주는 건 어때?"

"먹을걸로 협상하는건 애들 상대로나 하는 짓이야 수염."

좋아하는 음식이라길래 제안해봤더니 튕겼다. 생각만큼 현실은 만만찮네요.
다른 제안거리를 떠올리느라 신음을 흘리는 내 모습에 룬은 고개를 내저었다.

"...농담이니까 진지하게 생각하지마.
이런것에까지 대가를 바라진 않으니까."

룬이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자리에 앉자 룬이 이어폰 한쪽을 뽑아서 내 귀에 꽂아주었다.

어...

"가만있어. 이어폰 빠지니까 너무 움직이진 마."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내게 태연히 주의를 준 룬은 곧 이어폰의 소리에 집중했다.
음...이러면 나도 조금은 부끄러운데.
나란히 앉아서 이어폰 하나를 나눠쓰는 구도에 당황했지만, 어색한듯 반대편 귓가를 만지작거리는 룬의 모습을 보곤 얌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래로 늘어진 시계바늘은 조례시간을 향해 거북이 마냥 굼뜬 걸음을 옮긴다.
복도로 뛰쳐나가던 리토가 막 교실로 들어서던 하루나와 부딪혀 나뒹굴며 갸냘픈 비명이 들려온다.
들뜬 아우성이 소란스레 교실을 울리는 가운데, 이어폰에서 들려온 음악이 부추기듯 LOVE LOVE를 연호하고 있다.
일상이 되어버린 해프닝에 쓴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룬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

6개월 만에 뵙습니다.
38화 3월에 올리고 잠수가 너무 길었네요;
4월 초에 구상해놓은걸 쓰는게 여기까지 미뤄질줄은 몰랐습니다-_-;
3주년을 그냥 날려보냈고(...)
게으르게 6개월동안 축전만 처묵처묵 맛있게 먹고 지냈...쿨럭쿨럭...( --);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m(_ _)m;;;

삽화를 그려주신 터틀러님 감사드려요^^
삽화 외에도 3주년 축전이랑 엔딩 컷 등의 축전들 보내주셔서 오오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4월에 보내주신 삽화를 이제서야 사용할 수 있어서 엄청 면목없민망하네요 핫핫^^;;;

료스케 축전 보내주신 아샤(를)님 감사합니다. 연재 늦는중에 축전 메일 받고는 민망하면서도 기뻤습니다^^

처음 플롯 짤때와 달리 살붙이면서 변경된것도 있고 생략된 것도 있고, 8월말 들어 새롭게 추가된 전개도 있네요.
연재 속도가 빠른 쪽이 더 나을테지만 말이죠^^;
늑장연재라 이전편이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읽는 분들께 즐거움을 주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_ _)
그럼 다들 좋은 꿈 꾸세요~*^^*



p.s.1. 참조 이미지1

삽화1 러프(라라가 귀엽게 나와서)

3주년 축전

이불이 미연시 축전: 나나 엔딩


p.s. 참조 이미지2

달려오는 렌

룬 등장

라라와 연애입문서

리사의 성희롱1

리사의 성희롱2

룬의 상상

우주의 패션 모델

놀이터 씬에서 참조한 라라의 복장

고마워

Posted by 루트(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