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하미소녀전설(銀河美少女傳說) 제7편(第七篇) 모모타로이야기 =


어느 여름의 밤,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양을 세고 있었습니다.

양이 하나
양이 둘
양이 셋
양이 넷
양이 다섯
양이 여섯
양이 일곱

그 때, 밤하늘에서 은하수를 따라 복숭아가 떠내려왔습니다.

"이런? 탐스럽게 생긴 복숭아구나.
때마침 출출한데 잘 되었군. 어디 맛 좀 볼까?"

할아버지가 기뻐하며 복숭아 껍질을 벗기려 하자 복숭아(モモ, 모모)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꺄아아아아!?"

"모모에게 손대지 마!"

"어훅!?"

모모를 벗기려던 할아버지는 나나에게 숄더태클을 먹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졌습니다.
쓰러진 할아버지 위에 마운팅 포지션을 잡은 나나가 으르렁 송곳니를 드러냈습니다.

"뭐, 뭐야 너? 갑자기 난입해와선...
대체 어디서 나타난거야?"

"이쯤(↓)부터 있었거든?"

양이 일곱(ナナ, 나나) ← 이쯤

"알기 어렵다고!"

확실히 눈치채고 보니 나나는 양 모양의 파자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양 모양 파자마를 입고 있어?"

"양의 마음이 되어보려고."

그런가. 그런 이유라면 어쩔수 없는데.

"그런 이유로 괜찮은건가요?"

납득한 할아버지는 은하수에서 떠내려온 소녀에게 '모모타로'라는 이름을 붙였답니다.

"...여자아이 이름에 '타로'를 붙이는건 어떨까 싶어요."

모모, 아니, 모모타로는 불만스러웠지만 참았습니다.
그야 이야기 제목부터 '모모타로'니까요.



할아버지는 나나와 모모타로를 소중히 키웠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모모타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문제가 생겼어요 할아버지."

"무슨 일이니 모모타로야?"

"용돈이 다 떨어졌어요."

"뭐? 저번에 준 용돈은 어쩌고?"

"게임기를 사는데 썼습니다."

"...너무 당당하니까 오히려 말문이 막히는구나..."

"하지만 곤란하네요.
이대론 연애시뮬레이션 '미소녀 300명 공략 우햐우햐'를 살 수 없어요."

"부탁이니까 내 말 좀 들어!?
그리고 쓰레기 게임 냄새가 풀풀 나는 타이틀 고르는건 그만둬라..."

"그래서 어떻게 부족한 용돈을 메꿀지 나나랑 얘기해보다가, 도깨비섬에 있는 보물을 가져오기로 했어요."

"설마하던 도둑질 선언!?"

은하수에서 흘러온 모모타로는 발상부터가 귀신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둘을 말려보려고 했지만, 새 게임을 갖고 싶었던 모모타로와 나나를 설득할 순 없었답니다.
네 이놈 '미소녀 300(이하생략)!'

모모타로와 나나가 떠나던 날 할아버지는 경단을 만들어 둘에게 건넸습니다.
둘은 기뻐하며 경단을 맛있게 먹었답니다.
개와 원숭이와 꿩에게 줄 경단은 둘의 뱃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당연히 할아버지는 비명을 질렀죠.

"어째서 먹어버린거야!? 대답해!"

"엣?" "엣?"

"'엣?' 이 아니야! '엣'이!"

"엣? 하지만 이거, 저희들 간식이죠?"
"우리더러 먹으라고 준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경단이 없으면 동료는 어떻게 구해!?
모모타로라고 하면 개, 원숭이, 꿩이 있어야 하잖아?"

그러자 모모타로가 곁에서 코를 세우고 뽐내고 있는 나나를 가리켰습니다.

"그거라면 괜찮아요 할아버지. 나나가 동물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있거든요."

"아니아니, 모모타로가 주인공인 이야기인데 나나가 동물들을 이끌면 어쩌겠다는거야?"

그러자 나나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내밀었습니다.

"문제 없어. 애초에 주인공은 나인걸?"

"설마하던 타이틀 사기!?"

"실례잖아! 이번 이야기는 내가 주연이니까!
이쯤(↓)부터 눈치채야 하는거 아냐?"

7(ナナ, 나나)← 이쯤

"그러니까 알기 어렵다고!"



우여곡절 끝에 모모타로와 나나와 할아버지는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배역을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며 그들은 마침내 동료들을 모을 수 있었답니다.

캐스팅
주인공: 모모(モモ)타로와 나나(ナナ)

개: 마론. 보스턴 테리어. 식물도 동료로 하고 싶었다는 모모타로의 투정에 이름을 '마론 플라워(marron flower, 밤꽃)'로 개명당했다고 합니다.

원숭이: 할아버지. '탈무드'에서는 노년을 원숭이에 비유한다죠?

꿩: 야미. 바니걸. 할아버지가 붕어빵으로 꼬신 토끼입니다. 옛날엔 '토끼 = 새'라고 우겼다니까 괜찮겠죠. 실제로 날개도 있는 모양이고.




수많은 모험의 끝에 모모타로와 나나 일행은 도깨비섬에 도착했습니다.
도깨비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자그마치 백과사전 수십권 분량의 대서사시였어요, 라고 모모타로와 나나는 회상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는 믿지 않았지만요.

수많은 시련 끝에 개와 꿩을 잃은 슬픔이 우리를 강하게 했다며 모모타로와 나나는 회상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는 믿지 않았지만요.

마론은 산책을 마치고 주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을 뿐이거든요.
야미는 '라푼젤' 쪽에서 주연 제의가 들어와서 빠졌을 뿐이구요.

...안되잖아...
동료들 하나도 도움이 안되잖아...

긴장감 없는 모모타로와 나나를 대신해 할아버지는 용기를 내기로 했답니다.
'우리들의 진짜 모험은 지금부터다!'라며 막무가내로 도깨비 섬으로 돌입한 모모타로와 나나를 뒤쫓느라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요.



간신히 도깨비섬에 상륙해 모모타로와 나나를 찾아 헤메던 할아버지는 눈을 비볐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모모타로와 같은 복장을 한 도깨비들이.
모모타로와 같은 꼬리를 한 도깨비들이.
고개를 숙여 모모타로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도깨비들과 같은 복장을 한 모모타로가.
도깨비들과 같은 꼬리를 한 모모타로가.
고개를 들어 도깨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인가 할아버지의 눈앞에는 보물의 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눈은 보물의 산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모모타로와 나나의 뒤에서 흔들리는 검은 하트 모양의 꼬리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습니다.
보물의 산을 올려다보던 모모타로와 나나는 뒤로 돌아 미소지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용돈을 받아 오는것 뿐이라고."




할아버지는 깨달았습니다.
깨달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돌보던 소녀들이야 말로 도깨비였음을.



도깨비는, 처음부터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 파랑새 끝(終) -



"모모타로였잖아!?"




그런 꿈을 꾸었다.




"...그러니까 알기 어렵다고..."

천방지축 전개의 꿈에 딴죽을 걸다가 잠이 깨 중얼거렸다.
뭐, 확실히 도깨비가 곁에 있는건 맞지만서도.

눈을 뜨자 곁에는 머리를 푼 나나가 새근새근 숨소리를 울리며 잠들어 있었다.

...어째서 나나가 여기서 자고 있는거야?

헐렁한 탱크톱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앙가슴이 드러나 보였다.
아무리 여름이 덥다지만 탱크톱 한벌에 팬티바람으로 자는건 좀 위험하지 않나?
개인실을 쓰게된 해방감 탓에 개방적으로 입었는지도 모르지만 보는 입장으로선 가슴에 해롭다.
웨이브진 머리카락에서 좋은 향도 나고, 눈에 들어오는 장면 탓에 조금 위험한 기분도 들고...
여러모로 야릇한 느낌도 들지만, 밤 중이라 다소 어두운게 그나마 다행이려나.
그렇긴 해도...

잠든 나나를 보다가 살짝 코를 눌러봤다.

우으음~

"풋."

눈썹을 꿈틀하며 웅얼거리는 모양새가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샜다.

"귀여운 도깨비도 다 있네."

단잠에 빠진채 누워있는 나나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해보다 이내 방치하기로 했다.
딱히 뭔가를 한것도 아니고, 깨우는것도 미안하고, 번거롭고.
저번에 꿨던 야릇한 꿈 탓에 조금 두근두근 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뭐, 내일의 일은 내일 고민합시다.
머릿결에서 나는 내음과 새근새근 고르게 내쉬어지는 숨소리 탓에 가슴께가 간지럽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다음날.

산뜻한 기분으로 눈을 뜨자, 곁에는 여전히 잠에 빠진 나나가 있었다.
날이 밝은 탓인지 흐트러진 탱크톱에 드러난 피부가 묘하게 선정적이라 생각하곤 나나를 깨웠다.

"나나, 일어나렴. 아침이야."

"으응..."

나나의 어깨를 잡고 흔들자 흐리멍텅한 눈을 깜빡이며 나나가 몸을 일으켰다.
상체만 일으킨 나나는, 잠이 덜 깼는지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생각도 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다시 한번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자, 어깨를 잡은 날 멍하니 쳐다보던 나나의 입을 열렸다.

"...파파?"

"......"

어째, 평소보다 귀엽네 이 녀석.
잠꼬대 하듯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린 나나의 대사는 제법 마음에 와닿았다.
귀한 장면을 보고 있다는 만족감에 물끄러미 나나를 바라보길 얼마나 되었을까.
점차 흐리멍텅한 나나의 시선에 또렷이 힘이 들어오며 눈이 크게 뜨였다.


"...에에에엣!?"

얼빠진 비명을 지른 나나는 패닉에 빠진채 황급히 다리를 오무리며 가랑이를 가렸다.

"어, 어째서 네가 여기에 누워있는거야!? 모모는!"

"모모는 벽장 속 방에 있을텐데."

"......어? 벽장...?"

붉어진 얼굴로 하반신을 가리던 나나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나나의 외침에 깼는지 방문 너머에서 벽장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모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나? 혹시 방에 있어?"

철컥-

말과 함께 문 손잡이가 돌아가다가 멈췄다.

"엣? 잠겨있어?
나나! 안에 있는거 맞지? 료스케씨?"

문이 잠겨있는 상황에 당황했는지 모모가 초조한 목소리로 나나와 나를 불렀다.
이 상황은 대체 뭐람...



나나는 속옷차림을 숨기느라 바빴기에, 내가 대신 문을 열고 모모를 방 안으로 들였다.
방안에 들어오는 모모의 얼굴이 다급해 보였던걸 보면 어지간히 나나가 걱정되었나보다.

잠시 후, 나나가 핫팬츠로 갈아입고 모모와 함께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모여서 셋이서 대화를 나눈 뒤, 어째서 나나가 내 방에서 자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요컨데 오늘부터 잠자리를 바꿨다는 사실을 나나가 깜빡했단거다.

정확히는, 밤중에 깨서 화장실을 다녀온 나나가, 잠결에 무심코 평소처럼 내 방 침대로 들어와 잠이 들어버렸다는게 사건의 전말이다.
습관이란 무서운거네요.

그리고 방문이 잠겨있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저번의 속옷 도둑 해프닝 때, 갈아입을 옷을 꺼내려고 내가 나나와 모모가 자고 있던 방안에 몰래 들어갔던 적이 었었으니까.
그 날 이후 나나와 모모는 방문을 잠그고 자는게 습관이 되어버린 듯 하다.
남자랑 같이 생활하는 환경에서 방문을 잠그지 않고 잔다는 상황이 나나와 모모에겐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던거겠지.

문을 잠근 이유를 말하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는 둘에겐, 그건 당연한 대처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해뒀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으니까.
외간남자랑 같이 지내는 상황에서 그정도 처신은 해야 안심이 되겠지.
실제로 나도 오늘 나나가 곁에서 자는걸 방치한채 뻔뻔하게 잠들기도 했었고.

아침부터 부끄러운 차림을 보인게 신경쓰이는지 나나는 붉은 얼굴로 투덜대고 있었다.
상황 파악을 끝내고 여유가 생긴 모모가 그런 나나를 능글맞게 놀려댔다.

"나나~ 혹시 일부러 방에 들어간건 아니지?"

"뭐, 뭐야 모모? 잠결에 깜빡했을 뿐이라구!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부끄러운 일 할 리가 없잖아?"

"후응, 그러려나? 그럼 문을 잠궈두고 료스케씨랑 어떤 일 했어?"

"어떤 일이라니?"

"키스라도 했어?"

"키, 키스!?"

화들짝 놀란듯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나나가 모모를 나무랐다.

"무슨 말이야 모모! 결혼 전에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엣...?"

"뭐, 뭐야? 내가 틀린말 했어?"

키스는 결혼한 다음입니까.
설마 입맞춤하면 아이가 생긴다고 생각하는걸까?
생각해보면 나나랑 모모는 아직 중학생뻘이고 그럴 수도 있는거겠지.
무엇보다 이런 순수함은 소중하니까.

"...나나. 넌 지금 모습 그대로 있어줘."

"료스케 넌 또 왜 그래!?"

아이취급하는거냐고 발끈하는 나나와 곁에서 부채질하는 모모에 엮이면서 소란스러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침의 소란 뒤, 식사 후 산책을 나섰다.
나나와 모모는 오늘 중에 은하통신판매에 배송 주문을 넣는다니까 아마 집에서 시간을 보낼듯 했다.

주말의 공원 이곳저곳에서는 아침부터 놀러나온 가족들의 화목한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 공원에서 친구들과 놀던 낯익은 꼬마들도 있고, 장보기 때 가끔 마주치는 아주머니들의 모습도 보인다.
걔중엔 마주치면 손을 흔들며 인사해오는 기특한 아이도 있어서 기분이 들떴다.

산책은 조용히 지나갈 때도 있지만 때때론 놀랄만큼 떠들석한 일도 적지 않다.
꼬마들의 놀이에 휘말릴 때도 있고, 굳이 산책을 공원에만 한정하지 않다보니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잦은 편이다.

서민들의 생활을 체험한다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사키 선배 일행을 만나기도 하고.
거만한듯 보여도 사키 선배는 여러가지 봉사활동에 헌신하고 있어서, 장래에 좋은 아가씨가 될거라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에 애완동물을 산책시키는 사람들 같은 경우엔, 특정한 시간에 나오면 거의 확실히 마주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애완견인 '마론'을 산책시키러 나오는 하루나라든지 말이다.
저만치 공원 한켠에서 혼자 어슬렁거리는 얼룩 강아지를 보며 문득 하루나를 떠올렸다.

...아니, 문득이고 자시고, 저 녀석 '마론'이잖아?

목줄을 땅에 끌면서 돌아다니는 마론의 꼴을 보면, 아마도 나비 따위에 정신이 팔려 뛰어다니다 하루나와 헤어진것 같다.
말썽꾸러기라니까 정말...
저렇게 정신없이 다니다간 언제 한번 크게 다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마론과 만나면 곤란하기도 하고.
어지간히도 멀리 떠나왔는지, 주인을 찾는것마냥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마론의 모습에 안되겠다 싶어 가까이 다가가 마론을 불렀다.

"마론."

멍!?

날 보자 마론이 한발짝 뒤로 물러나며 짖었다.
내 손길을 피하려는 마론이 도망가지 못하게 목줄을 잡았다.

왈! 왈!

"얌전히 있어봐 마론. 적당히 나한테 익숙해질때도 되지 않았어?
하루나는 어쩌고 마론 너 혼자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거야?"

앙탈을 부리는 마론을 달래면서 물었다.
나나처럼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건 아니었지만,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네면 덜 긴장할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어쩐다?
이대로 마론을 하루나의 집까지 데려다 줄까?
아니면 직접 발품 팔면서 하루나를 찾아볼까나?
하루나와 엇갈리지 않도록 하루나에게 연락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하루나의 전화번호는 휴대폰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왕-!

"자자, 진정해 마론.
마론 네 주인을 함께 찾아봐 줄테니까."

짖어대는 마론을 달래는데, 저만치 뒤에서 타박타박 잰걸음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하루나를 찾아 돌아다닐 필요는 없을것 같다.

몸을 돌리자 흰 블라우스에 짧은 스커트 차림의 하루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안녕, 사이렌지."

"엣, 아키츠군?"

당황해하는 하루나에게 마론의 목줄을 건넸다.

"산책 중이었나보구나?
마론 혼자 공원에 있길래 걱정했어."

"아, 고마워. 샌달을 고쳐신다가 그만 마론을 놓쳤거든."

다행이라고 할까, 마론을 되찾아서 안심한 탓인지, 나를 대하는 하루나의 반응은 어제보다 자연스러워 보였다.



마론을 찾아준 예를 표하는 하루나로부터 마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얘기를 듣자하니 마론은 집에서 심심할땐 옷가지를 침대삼아 누워있기도 한다고 했다.

"말썽꾸러기라서. 가끔 옷가지를 물고 다니기도 하거든."

"아, 그 고생 알거 같아. 나도 얼마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거든."

나나가 만든 '사이버 사파리 랜드'에서 빠져나와서는 빨랫감을 먹잇감마냥 보던 동물들을 말리느라 아침부터 분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아키츠군도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었어?"

"나는 아니고, 나나가 키우는 동물들이야.
그 애는 동물들을 좋아하거든.
사이렌지도 어제 마트에서 나나랑 만났었지?"

"응. 가상현실에서 만났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지만.
사실 대화를 나눈것도 어제가 처음이었어."

"어라? 그랬던거였어?"

생각해보면 트러블 퀘스트 사건 때는 나나와 모모는 대개 라라하고만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아직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는 그렇게 깊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나랑 모모와 교우관계가 있는 친구들로는, 라라를 만나러 자주 방문하는 리토와 미캉 정도일까?

애견인인 하루나로서는 나나가 키우는 동물친구들에 관심을 보이는것 같았다.

"그 아이들은 나나를 잘 따르는가봐?"

"응. 나나는 동물이랑 대화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거든."

"신기한 능력이네. 나도 마론이랑 얘기할 수 있으면 기쁠텐데."

"뭐, 알아듣는것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어."

"어? 정말?"

아니. 농담인데.
다만, 놀라는 하루나의 반응이 재밌었기에 장난스레 마론을 불러봤다.

"마론. 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킁-.

"어? 혹시 부끄러워서 튕기는거야?"

콧방귀를 끼는 마론에게 능청스럽게 물어대는 내 모습에 하루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아마 방금전 내 말이 농담이었다는걸 눈치챈 것 같다.

멍~!

"오 그래. 너도 예쁜건 알아가지곤."

와우~!

"음음. 그렇지?"

알은체를 하는 내게 맞장구치며 하루나가 물었다.

"쿡...마론이 뭐라고 했는데?"

"자기는 가끔 나비를 쫓는데 정신이 팔려 주변을 안살피니까 사이렌지가 자길 놓치지 않게 해달라는데?"

"뭐야 그게?"

실없는 소리에 하루나가 살풋 웃는다.

"그리고...호오? 인기 많은 주인을 모시고 있어서 괴롭다고?
최근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가 있어?"

"어엣?"

새된 목소리로 깜짝 놀라는 하루나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아키호씨도 인기가 많아서 큰일이네."

"...어? 언니?"

"응. 아키호씨는 미인이니까 여러 남자들이 자꾸만 귀찮게 군다는데?"

그제사 놀림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하루나가 뚱하니 날 쳐다봤다.

"...아키츠군, 방금거 일부러 그런거지?"

"엣? 뭐가 말야?"

"...몰라."

아, 토라졌네.

"아하하~ 미안미안."

"정말..."

"아니, 사이렌지도 인기 많다니까?
분명 내가 알기론 우리 학교에서 사이렌지가 좋다는 사람은 한손에 꼽는다고?"

리토도 있고, 1학년생인 타치바나 녀석도 있으니까.
다만 스토커는 노카운트. 애초에 사이난 고교생도 아니고.

내 말에 하루나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건, 인기가 적단 말 아냐?"

사이난 고교 남학생에게 받는 인기는 없는 편이 오히려 다행인게 아닐까?
근년의 남학생은 보기드문 흉작이라는 신랄한 평가가 여학생들 사이에서 도는 지경이고.

"음, 그래도 한손에 꼽는다는 표현을 하면 어쩐지 대단해 보이잖아?"

"...완전 엉터리..."


뿌우-하고 살짝 볼을 부풀리는 하루나에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보면 아키츠군도 산책 중 자주 만나네.
혹시 산책하는걸 좋아하는거야?"

"물론. 조용히 걷는것도 좋아하지만 때때로 친구들이나 마을 사람들을 만나는게 즐겁거든."

"그래?"

"응. 미캉이나 유우키, 야미를 처음 만났던것도 쇼핑 겸 산책을 통해서였으니까.
그 덕분에 지금처럼 알고 지낼 수 있었기도 하고."

사키 선배 일행이나 리사와 재회했던것도 쇼핑 덕분이었다.
그 외에도 친구들을 만나거나 도움을 줄 수 있었던것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가능했던거였고.
유우사키라든지 나나랑 모모처럼 직접 집을 방문한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라고 봐야겠지.

"그러니까 언제나 산책을 나설 때면 오늘은 누구를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되거든. 너도 그렇지 마론?"

왈-!

내 부름에 귀찮다는듯 짖은 마론의 반응에 귀를 기울여 보이곤 웃었다.

"응응-? 마론은 그런것 보단, 가끔은 아키호씨랑도 산책하고 싶다네."

"그 초능력 설정 계속 하는거야?"

"뭐, 사이렌지가 내 엉터리 설정을 믿지 않는것 같으니 좀 더 분발해볼까 해서 말이지."

"대놓고 엉터리라고 말했잖아 아키츠군."

피식 웃은 하루나는 내 말에 맞장구치듯 마론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다음 산책은 언니에게 부탁해볼께 마론."

와후-!

"『부탁을 들어줘서 기뻐.』"

"그렇지만 다음엔 혼자 돌아다니진 말아줘 마론."

왕왕-!

"『답례로 육구를 만져도 화내지 않을께. 그렇다고 할까, 만지게 해줘.』"

"지금 은근슬쩍 아키츠군의 욕망이 들어간거 아냐?"

"귀여운건 좋아하니까."

"좋아한다기 보단 굶주린 사람 같은걸."

"쓰다드고 싶지만 동물들은 대개 날 피해다녀서 말야. 어째서일까?"

"음...맹수같은 느낌이라서 그런걸까?"

와웅-!

"『머릴 쓰다듬어주면 기쁘겠어.』"

"브러쉬가 필요한걸까?"

"그리고 '맹수같은 느낌'이라니...뭐야 그게?"

"지금은 익숙해진 편이지만...아키츠군은 뭐랄까, 위압감이 있으니까.
동물들이 그런데엔 더 민감한게 아닐까?"

"만화중에서는 동물을 아끼는 불량배의 모습을 통해서 착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내용도 있던데, 나는 왜 시작조차 안되는걸까?"

"응...이야기랑 실제는 다른게 아닐까?"

"...적어도 희망은 갖고 싶었는데 말야."

"미, 미안."

"아니, 미안할 것 까진 없는데."

와울-!

"『산책을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걸 좋아해.』"

"후후, 어쩐지 아키츠군 같네."

"나말야?"

"아키츠군도 마론처럼 산책을 좋아하니까."

사이렌지가 웃으며 마론을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도 함께 산책할래?"

왕~!

"『응. 사이렌지랑 함께 걷는 시간은 즐거우니까.』"

마론 녀석도 어지간히 하루나를 좋아하니까.
달라붙어오는게 심해서 하루나가 곤란할 정도로.
애완동물과 주인간의 스킨쉽도 중요하지만 마론의 경우에는 적당히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루나에 맞춰 발걸음을 늦추며 공원의 입구를 지나쳤다.



"그러고보면 사이렌지."

"으, 으응..."

"이제 공원을 나왔는데, 사이렌지는 좀 더 걸을거야?"

"...난 이만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키츠군은?"

"나는 이대로 쇼핑을 하러 갈까 해.
얼마전에 괜찮은 홍차를 사서, 홍차와 함께 먹을 쿠키를 골라보려 하거든."

"어떤 홍차인데?"

"K○rel."

"아, 디자인이 귀여운 홍차 말이구나?"

"사이렌지도 아는 제품이야?"

"으응. 홍차에 대해선 그럭저럭 아는 편이니까."

"그럼 모모와도 얘기가 잘 맞을것 같은걸?
모모도 홍차를 좋아하거든."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덧 갈림길에 이르렀다.

"그럼 난 이쪽 방향이니까."

내일 보자- 라는 인사와 함께 하루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키츠군!"

"응?"

"저기..."

돌아보자 하루나가 손을 내민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하루나의 입술이 작게 열렸다 이내 다물어졌다.

"...으응. 내일봐."

"응. 사이렌지도 조심해 들어가."

두번째 부름은 없었다.




미소라당의 스콘을 사서 귀가하자 모모가 반색하며 맞이했다.
나나는 가구 주문을 마치고 놀러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나가 돌아온건 저녁이 가까워질 즈음이었다.
집에 도착한 나나의 손에는 종이가방이 들려있었다.

"다녀왔어~!"

"어서와 나나. 생각보다 늦었네?"

"응, 하루나의 집엘 다녀왔거든."

"응?"

나나의 말로는 밖을 거닐다 우연히 마론을 만났다고 한다.
듣자하니 아키호씨와 오후 산책을 나왔던 마론이 또다시 폭주해서 혼자 뛰쳐나갔다나.
그러다가 하마터면 코너에서 자동차에 치일뻔 한걸 나나가 구해줬다고.
거기까진 좋았지만, 마론을 구하려고 급해게 몸을 날렸던 탓에 나나는 마론을 안은채 근처 하천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뒤늦게 마론을 쫓아온 아키호씨가 온몸이 젖어버린 나나를 자신 집으로 데리고 간걸로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참고로 아키호씨가 하루나의 언니라는 사실을 나나가 알게된건 아키호씨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나가 가져온 종이가방의 내용물은 하루나가 어릴적에 입던 옷이란다.
나나를 귀여워하면서 어쩔줄 몰라하던 아키호씨가 이것저것 어울릴법한 걸 챙겨줬다나.
귀엽다며 이리저리 매만져지면서 당황했던 나나로서는 호의를 거절하기도 그래서 얌전히 받은 옷들을 들고 왔다고 한다.

뭐, 옷시착이 끝난뒤에는 거의가 마론과 놀았던 이야기 뿐이었지만.
'재밌게 생긴 녀석'이라고 마론을 평한 나나는 마론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아, 그리고 마론 말인데, 품종이...보, 보스...?"

"보스턴 테리어?"

"그래! 보스턴 테리어!
료스케도 마론을 알고 있었어?"

"응. 마론 산책시키러 나오는 사이렌지와 가끔 만나거든.
그런데 그것보다 나나 너 물에 빠졌는데 몸은 괜찮아? 다친덴 없고?"

"괜찮으니까 그렇게 호들갑 떨지마.
하루나네 집에서 확인했지만 그냥 물에 젖었을 뿐이었고.
아, 그런데 말야 료스케."

"응?"

"혹시 아키호 알고 있어?"

"아키호씨? 사이렌지의 언니잖아? 방금 네가 말했으면서."

"아니. 내 말은, 예전부터 알고 지냈느냔 말야."

"응. 사이렌지네 집에 갔을때 만났던 적이 있어."

"에...그렇구나."

"료스케씨는 아키호씨를 이름으로 부르시네요?"

"사이렌지씨라고 부르면 사이렌지와 함께 있을땐 헷갈리니까."

실은, 처음 만났을때 아키호씨를 사이렌지씨라고 불렀더니,

- 그럼 헷갈리잖니~ 날 이름으로 부르든지, 우리 하루나를 이름으로 부르든지 둘 중에 하나로 하렴.

- ...그럼 아키호씨로.

- 어머?

이상, 아키호씨를 이름으로 부르게된 간단한 경위다.
애초에 하루나는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허락받지 않았으니까.

...그러고보면 하루나와의 관계도 개선해야 할텐데.
오늘 아침의 만남땐 다소 사이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엔 말을 삼키면서 도로 서먹서먹하게 헤어진것 같아.
다시 평소대로 돌아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한걸까?

아니면 다음엔 애견인인 하루나랑 강아지를 화제삼아 이야기하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네.
내일 도서관에 들러 강아지 관련 책도 몇권 빌려둘까.
생각에 빠져있는 차에 나나가 물었다.

"료스케? 무슨 생각해?"

"응? ...그냥, 조금 동물에 흥미가 생겨서 말야.
내일 학교 도서관에서 동물 관련 책 좀 알아보려구."

"아! 그럼 나도 같이 따라가도 괜찮아?
마론 같은 지구의 개들은 어떤 품종이 있는지 궁금하거든."

"그래? 그럼 내일 방과후에 함께 학교 도서관을 돌아볼래? 모모는 어때?"

"저는 내일은 미카도 선생님과 약속이 있어서 시간이 안될 것 같아요.
대신 야생화 도감 같은게 있다면 한권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미카도 선생님이라면 학교 보건실에 계실텐데, 방과후 학교에서 만나는게 아닌걸까?
고개를 갸웃하며 승낙했다.




저녁에 은하통신판매에서 주문한 침대가 도착해 나나와 모모의 방에 각각 하나씩 놓았다.
홍차에 스콘을 곁들인 저녁 티타임 뒤, 욕실에 들어간 나나와 모모가 안에서 시끌벅적 소란을 피우는게 들렸다.
새어나오는 소리로 판단컨데 나나가 몸매에 신경쓰고 있는 장면을 모모에게 들켜서 놀림을 받았나보다.
모모의 은근히 몸매 어필에 발끈한 나나가 외친게 분쟁의 시작이었다.

"모모 넌 가슴에 살이 쪄서 무겁잖아!"

"어머? 그럼 정말로 그런지 볼까?"

"해볼래?"

으르릉거리며 욕실을 나와서 체중에 앞에 선 둘을 흥미진진한 얼굴로 지켜봤다.

먼제 체중계에 올라간 건 나나였다.

"...나나. 한발로 선다고 눈금이 내려가진 않아."

"진짜!?"

"풋."

내 충고에 한발을 들어올린 학같은 자세로 깜짝 놀라는 나나와, 그 뒤에서 비웃는 모모.
모모를 째려보면서 나나가 투덜투덜 체중계에서 내려오자 모모가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미소지었다.

"후후. 난 살찐게 아니라 몸매가 좋을 뿐이란 걸 보여줄께."

- 반중력 윙 전개.

"야! 모모 너 대놓고 반칙 쓰지마!"

폭소하는 나와 나나의 항의를 가볍게 무시하고 모모는 사뿐히 체중계에 올라섰다.

"......에?"

안색이 새파래진 모모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눈금은 알 만했다.
신기록 갱신 축하합니다.

"거짓말...이건 꿈?"

"과, 과연...그렇게 심한거구나?"

"아, 아녜요 료스케씨! 뭔가, 뭔가 잘못된거에요! 그렇지 나나?"

창백해진 모모가 동의를 구하듯 나나를 쳐다봤다.


발끝으로 나나가 체중계를 누르고 있었다.


"나...나나아아아아!?"

"냐아앗!?"

허리가 꺾어져라 웃는 날 무시하고 나나와 모모는 뒤엉켜서 사이좋게 거실을 뒹굴었다.

"아앙~!"
"냐핫~!"

다투던 소리가 어느새 야릇한 소리로 뒤바뀐채 아웅다웅하길 한참.
칠칠치 못한 모양새로 쓰러져선 헐떡이는 둘을 양 옆구리에다 끼고 그네들 침대로 옮겨다주는걸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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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사항: 1. 나나와 모모의 침대 배치 완료라는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2. 마론의 말을 흉내내는 부분의 일부에 『』표시를 하였습니다.)

원래 생각했던 진도까진 못나가서 일단 여기까지 끊고 41화로 올립니다^^;;
나머지는 42화로 써봐야죠^^;
그럼 다들 즐거운 월요일 맞으세요~!



p.s.1.

키스에 대한 나나의 태도: "결혼 전에 그런일을 할 리 없잖아!" (108화)

p.s.2. 청출어람4화도 쓸 예정입니다^^;
다만 좀 시간이 걸리겠지요;
이야기 나라 하나당 1화씩으로 예정해뒀는데, 분량이 많아서 쓰다가 진이 빠질 것 같으면 나눠쓰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a;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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