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꽃내음이 묻어나는 이곳은 사립 사이난 고교.
고교 첫날의 소란스러움이 거짓말인 것처럼 또다시 조용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래.
'말그대로' 조용한...

수업이 끝났음에도 찢어지지 않는 침묵에 쌓인 고요한 교실. 통칭 1-B반.
어-이 모두들-. 이제부터 쉬는시간이라구?
중간중간에 숨돌리고 몸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몸이 피로하다고요?
아하하, 모두들 책에서 손도 떼지 않고 정말 열심이네-.

...현실 도피는 그만하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자 움찔하는 기척들이 느껴졌지만 무시무시.
조용히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는다.
복도를 지나던 학생이 날 바라보곤 질겁하며 종종걸음으로 지나간다.
이윽고 웅성웅성대며 소란스러워지는 교실안.

"봤니? 아까 앉아 있을 때 그 태도?"
"응, 위협적으로 목을 뚜둑뚜둑 거리지 않았어?"
"거기다, 빨리 수업 끝내라고 선생님까지 노려보던데?"
"심해. 아직 젊은 여선생님이시던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혹시라지만, 설마 여선생님마저 타킷으로 노리고 있는거 아냐?"
"미인이라면 선생님이고 뭐고 없다는건가 그녀석은!"
"덕분에 쉬는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선생님 도망치듯 나가셨지."
"우리도 덕분에 꼼짝도 못했잖아."
"아, 어쩌다가 저런 불량배가 우리반에 와서..."



"하아...아 아~"

아... 역시. 내가 안 일어나니까 다들 부담스러워서 못일어 난거로군.
나도 빨리 반에 친숙해지고 싶은데 말이지...
나, 노력했어... 정말 노력했다구.

수업중에 뚜둑 소리 낸건 말그대로 실수야.
칠판만 바라보느라 뻐근한 목을 잠시 풀어주려고 한건데, 무지하게 큰 뚜둑소리가 나서 나도 당황했다구? 위협한거 아니에요, 정말이야!
침착하게 수업하던 여자 선생님이 그자리에서 굳어버리셨을땐 진짜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다.
게다가 나름대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들었는데, 왜 시선을 피하시는 건가요 선생님...?
그리고 어째서 다른 학생들은 아무도 손을 안들어?
혼자만 나서는거 같아 왠지 민망하다고!

인정하기 싫지만 내 목돌리던 소리때문에 경직되어버린 교실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되살리고 싶어서,
수업중에 나서서 문제를 풀어보려도 해보고,
수업의 활기를 불어넣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수업의 요점에 대해 질문해 보기도 하고...
지식적으로는 이미 고교과정은 숙지한 상태라 나름대로는 적절한 수업참여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째서 더 침묵하는 건가요?!
벌써부터 선생님들 사이에도 블랙리스트로 올랐는지, 선생님까지 애들과 함께 침묵 해버렸어?!

처음으로 질문에 대답하려고 손을 든 상태로 있으면, 선생님이 어색한 미소를 띄우고 날 지적했었다.

"에 또... 아, 아키츠 료스케군이 대답해보세요."

...왜 더듬으세요?

"네. 그러니까...(중략)입니다."
"아, 아. 잘했어요. 그럼 다시 진도를 나가도록 하죠."

꽤나 당황하셨지만 선생님은 날 독려하고 수업을 계속하셨다.
여기까진 정상.
약간 경직된 반응이었지만 이제 막 교직을 맡으신 것으로 보이는 여선생님으로선 그럭저럭 괜찮게 대응하셨다고 본다.
문제는... 그 이후로 수업이 끝날때까지 선생님이 더이상 아무 문제도 내지 않으셨다는 거다.

...분명 학생들 반응이 얕아도, 아까 전까지만 해도 꾸준히 질문을 하셨잖아요?!
게다가 왠지 수업 진행 속도가 빨라졌어?
이렇게 나가다간 따라가는 학생도 버겁고, 나중에 숙제라도 나오면 범위도 만만찮을 듯 해서,
방금까지 지나간 요점 질문을 하는걸로 잠시 선생님을 멈추자고 생각했다.

"저기~ 질문 있습니다."

"에엑! 아, 아키츠군?"

"진도를 따라가기가 좀 힘들어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5페이지 전의 ...에 대한 부분을 다시 설명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에, 에 또- 그러니까..."

당황해가면서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더듬거리시면서도 설명하시는 선생님.
너무 긴장 하셨는지 비교 대상의 성향을 뒤바꿔 설명하시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선생님. 그거 성향이 거꾸로..."

"...! 미, 미안해요!"

"......"

왠지 반쯤 울먹이며 대답하는 여선생님에 할 말을 잃은 나.
나를 향해 쏟아지는 클래스메이트들의 매서운 눈빛들이 무섭다.
대체 왜 선생님을, 그것도 아직 신임의 여선생님을 괴롭히는 거냐는 의미가 물씬 풍겨나온다.
"(귀축)""(악마)""(마귀)"라는 속삭임조차 들려온다.
...내가 정말로 마족이었으면 지금 받고있는 라-틸○급 정신공격으로 벌써 죽었을꺼라고요?

"(대체 왜 저런 질문을 한거야?)"
"(뭐라도 꼬투리 잡고 시간이라도 죽이고 싶었던거 아냐?)"

쓸데없이 질문을 해서 수업 진행을 끊는다는 시선마저 받았다.
아니 그거 요점이야. 핵심이라고...
난 그냥 그걸 강조해서 다들 도움이 되라고 한거라고?
기초 만세-. 흑...

어떻게든 선생님도 상태를 수습하고 설명을 마친뒤 다시 수업을 나가기 시작했다.
따라가기 힘들다는 내말을 신경썼는지 이번에는 좀더 천천히 진도를 나가셨다.

아무튼 주변의 힘든 시선들도 수업이 진행되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나도 무안한지라 더이상 질문이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후로 민망해서 가만히 칠판만 뚫어져라 바라본게 문제였나?

'딸꾹'

...어머나?

잠시 책에서 고개를 드셨다가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딸꾹질을 하시는 선생님.
무슨 일인지 선생님과 나를 쳐다보는 주변의 당혹한 시선이 오히려 더 무섭다.

잠깐! 당황하지 마라!
이건 공명의 함정이다!

겉모습은 철판깐 듯 태연했지만 속으론 패닉상태에 빠졌던 나는 그저 잽싸게 칠판에서 눈을 떼고 뚫어져라 책만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딸꾹질은 그칠 생각을 안하고, 클래스메이트들은 나를 향해 끊임없이 날카로운 시선을 향하고.
아니, 그러니까 나보고 어떻게 대응하라고?

딸꾹질 멎을때까지 등이라도 두드려드려?
아니면 안아서 다정히 위로?
사죄의 뜻으로 알몸 퍼포먼스?

수업시간에, 게다가 상대는 선생님이라고?
기껏 나온 선택지조차 상식적이지 않고.
첫째껀 선생님의 위엄 급하락에다가, 옆에서 보면 불쌍한 여선생님 꼬드기는 폐륜 양아치의 구도다.
두번째껀 아예 캐릭터조차 다르고,
세번째에 이르러선 상식이 그야말로 천원돌파 하고 있다. 나, 교장선생이 아니니까...

여선생님은 딸꾹질이 멈추지 않고 눈물마저 맺혔지만,
꿋꿋하게 수업을 마저 진행해 나갔다.
더듬거리면서도 힘겹게 수업을 진행해나가는 모습에 내 양심이 그야말로 브레이크...

중학교때 조우한 불량배들이 보내오던 시선을 능가하는,
지금 클래스메이트들이 보내는 엄청난 비난의 시선에 내 위가 쓰려온다.

- 네가, 울 때까지, 나는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아!

양아치 루머에 휩싸였을때는 나 자신이 무혐의였기에 별 타격이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만든게 나라는 피할수 없는 사실에 차곡차곡 타격이 쌓여간다.
칼보단 펜이 더 강하지만, 때로는 말없는 시선이 더욱 강하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젠장! 도와줘 푸치에몽~!
메이드 ○ 헤븐이 필요해!

부디 이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면서 나는 메마른 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라마지않던 쉬는시간 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재빨리 책을 덮었다.

"그, 그럼 이것으로 수업을 마치겠어요. 모두들, 수고했어요."

그리곤 인사도 받지 않고 잽싸게 교실을 떠나버렸다.
아, 일어나 인사를 하려던 코테가와가 엉거주춤 선채로 굳어버렸다...
미안 코테가와.
다음 수업부턴 조용히 있을테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날 째려 보는건 좀 봐주세요...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복도에 서 있는거고.

"에효효..."

터덜터덜 복도를 걷는다.
원래라면 오해를 푼답시고 선생님을 쫓아가는것도 생각했었지만, 떠올려 버렸다 체인지 ○이.
질문한답시고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난데없는 쫓고 쫓기는 도주극으로,
그리고 결국엔 우연의 중첩으로 계단에서 선생님을 밀어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나 버렸던 강투지의 악운을.
뭐, 나라면 내 몸을 믿고 어떻게든 선생님을 감싸 안은 채 떨어지겠지만서도...

지금 이 외모로 여선생님을 쫓아 뛰어갔다간, 말그대로 교내 강○미수 같은 얼토당토 않은 누명을 쓸거 같다.

- 복도에서 뛰면 안됩니다.
- 특히 오해의 소지가 많은 양아치는.

고교 첫 시험기간이 지나면 반응이 좀 괜찮아 지려나...
이래저래 중학교 당시에는 성적덕분에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에게 그나마 쥐꼬리만큼의 대우는 받았는데 말이지.
「분명 야쿠자급 양아치지만, 성적에 민감해서 교내생활 중엔 사고는 안일으키려 한다」는 인식 정도는.

...모범생 타이틀 따려면 내가 수염을 밀던가, 전국순위를 먹던가 둘 중 하나를 해야 할지도.
'나'적으로는 후자가 차라리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는게 문제지만.

"잠깐만. 거기, 아키츠 군."

응?

들려오는 소리에 무심코 제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양손을 허리에 얹은 자세로 약간 치뜬 눈매의 아가씨가 당당히 서있었다. 코테가와다.

"아, 코테가와. 무슨일이야?"

순간 눈썹 약간 치켜세워지며 코테가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키츠군..."

"네, 넵?"

왠지 모르게 박력이 느껴지는 자세와 조용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존칭을 써버렸다.

"전 말이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위원장을 맡으면서 생각했어요.
일년동안 정말로 반을 위해서 힘내겠다고요.
그러기 위해선 교칙을 준수하고 단정한 학급을 만드는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키츠군이 반을 위해 협조해준다고 할때도 솔직히 기뻤어요."

"아, 그건 정말로 황송..."

"그래요, 정말로 기뻤는데..."

"어-음, 코테가와씨?"

왜일까... 분명히 나로선 감지덕지해야 할 저 말의 뒤에 이어질 무언가가 무섭다.

"어!째!서! 아키츠 군! 당신은 이렇게까지 학급을 시끄럽게 하는걸까요? 네?!"

"시, 시끄럽게 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면 방금 수업은 대체 뭔가요?!
어째서 선생님께서 울먹이고, 시선을 피해?
덕분에 수업은 엉망진창...
인사도 받지 않고 나가시는걸 당신도 봤잖아요!
클래스메이트들 마저 당신을 탓하고 있었다고요?"

"이, 일부러 그런건 아니에요?"

"그럼 대체 뭔가요?"

화를 누르려는듯 후우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는 코테가와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코테가와는 나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었다.
여기서 잘만 대답하면, 클래스메이트의 오해를 풀고 긴장된 반 분위기를 이완시킬 수 있을것이다.
어느샌가 클래스 메이트들은 물론이고 다른반 녀석들마저 교실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을 고르면서 천천히 말을 꺼낸다.

"그러니까 난, 그저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했을 뿐이고,
진도가 빨라져 좀 천천히 해달라고 부탁했을 따름이고,
주변 시선이 거북해서 그저 칠판을 쳐다봤을 뿐이고,
오해한 선생님은 나에게 겁먹었을 뿐이고..."

척-.

갑자기 코테가와가 한손을 들어 나를 제지한다.
그리고는 관자놀이를 다른 한손으로 누르며 나에게 질문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모든게 그저 오해라고 말하는거군요."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자, 그럼... 방금전 선생님이 당신에게 그렇게 겁먹은건 왜일까요?"

"...역시 외모?"

싱긋.

코테가와는 그야말로 꽃처럼 미소지었다.

-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아...

이런 환청이 들리는것 같았다.

"그럼 오늘 경험을 통해 당신도 학생다운 외관을 해야할 필요를 느꼈겠지요?"

"아니, 난 도무지 무슨 말인지..."

"거짓말!"

코테가와짱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말그대로 도끼눈.
미인인 만큼 불필요할 정도로 무서워!
나 정말 쫄았다구...

"여기까지 와서 부정하는건가요?
당신의 스타일이 반의 분위기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그, 그것과 이것은 별개,"

"유감이군요 아키츠군. 전 불량들 상대라면 눈빛만으로도 속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거짓말-?!"

"거짓말입니다."

"......"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을 하는 코테가와에게 경악한 상태 그대로 굳어버린 나.

"아까전, 말까지 더듬고 있었잖아요.
속으론 당신도 알고 있었을꺼예요.
당신의 학생답지 않은 외관이 사람들을 무서워 하게 한다는걸."

"윽..."

"인정하시죠. 당신의 지금 그 모습은 그 자체로 풍기를 어지럽힙니다!"

아. 알아, 나도 안다고 코테가와짱.(혼란중)
하지만 이계트립 이벤트를 피하려면 싫어도 이 외모를 해야 한다고.
요즘 세상에 누가 좋아서 하겠어 이런 털보패션.
질풍노도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나로선 거울로 내 구레나룻을 보는거 만으로도 진짜 괴롭다고?

솔직히 시대착오적인 이런 패션 진짜 웃기잖아?
그러니까 낄낄대면서 마음껏 웃어주면 좋잖아?
그럼 적어도 민망한 웃음이라도 지으면서 이야기 거리로라도 삼을텐데!
아무도 웃지를 않아! 눈만 마주쳐도 피해!
이 스타일이 무서운게 아니야!
쓸데없이 날카로운 이 눈매가 나쁜거라고!

...아니, 미안 부모님.
방금 말은 철회.

양아치 외모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이 '날카로운 눈매로 낳아줘서 미안하다.'라고 울면서 사죄하셨을 때.
그때의 부모님을 떠올리면 방금 말은 진짜 NG.

어쨌든, 이 외관(눈매가 아니다)이 문제라 할지라도 지금 내 사정으로는 외모를 바꿀 순 없다.
적어도 이 외모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길 기다리는수 밖엔 없는데,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난처한 사건이 너무 일찍 터져 버렸다.
첫날의 희망과 달리, 잘못하다간 빼도박도 못하게 말종 양아치로 찍혀버릴수도 있는 문제.
뭔가, 뭔가 대책이 없을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정면을 바라본다.
직접 가위라도 가져와서 내 머리는 물론 수염마저 자를 의욕이 만만한 코테가와가 보인다.
역시나 의욕넘치는 위원장 타입.
아, 진짜 위원장이지.
음?

코테가와 = 위원장 = 풍기단속.
나 -> 위원장 돕기 -> 모범활동 -> 교내 평가 상승

이거다!
재빨리 마음을 정한 나는 결의를 굳혔다.
강렬해진(사나워진) 내 눈빛을 보고 코테가와가 움찔 했지만, 지금이야 말로 최적의 상황이다!

"코테가와."

"뭐, 뭐죠?"

방금전까지만 해도 코테가와의 기세에 밀려 뒤로 젖혔던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접근하자 코테가와가 한걸음 뒤로 물러 선다.
아까까지의 당당했던 기세가 조금 줄어들고 왠지 약간 겁먹은 듯한 눈빛으로 양손으로 상체를 슬며시 가리며 나를 노려봤다.
흔들리는 눈망울도 귀엽네...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을 뿌리치려고 기세를 타고 몸을 숙였다.

볼○맨이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지!
하지만 내가 무릎을 꿇는건, 큰절을 하기 위해서다-앗!

나는 수치심을 버리겠다 J○J○!

중력에 이끌려 하강하는 몸을 느끼며 머리를 박으며 외쳤다.

"죄송합니다아아아!"

통쾌하리만큼 깔끔한 오체투지.
갑작스런 전개에 나를 대하던 코테가와도, 바라보던 클래스메이트들도 모두 굳어진 것 같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코테가와의 바로 앞 바닥에 머리를 댄 상태로 나는 할말을 내뱉는다!

"자, 잠깐. 대체 무슨..."

"위원장 돕기든 뭐든 할테니까 얼굴만은 좀 봐주세요-!"

나의 수치심을 제물로, 근면성실의 타이틀을 소환한다!
나의 모습은 확실히 비굴.
화면 구도는 남두오차성의 일인, 흉악한 거인, 산의 후도우를 굴복시킨 유리○.

지나친 상황에 당황해하는 코테가와를 앞에두고 멈추지 않고 말을 한다.
환경 미화라든지, 과제물 옮기는거라든지, 선생님 심부름이든지 뭐라도 좋으니까
불량한 외모와 변재가 될만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식으로.
이렇게까지 사정하는데 말을 안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트러블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이 아가씨가 규범에 엄격하지만 의외로 감정의 흔들림에 약하다는걸 알고있다.
아무리 외관이 흉악해 보이는 양아치라도, 절실한 태도로 부탁해오는 것마저 무시할만큼 매몰차진 못하다는걸.
약점을 공략해서 미안 코테가와-.
고맙게도 코테가와는 아직 당황을 추스르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날 말리려고 했다.

"아, 알았으니까요 아키츠군.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 이해했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그 민망한 자세는 그만두세요. 당신도 부끄럽겠죠?"

배려 고마워요 코테가와.
안그래도 지금 수치심이 바닥에 가까워 지고 있는 참이다.
덕분에 내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화끈거리는게 느껴진다.

"저기, 그러니까 얼른, 고개를 드세요.
다른 학생들도 쳐다보고 있단 말이예요."

코테가와의 말에 '계획대로'라고 뇌까리며 겨우 고개를 든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코테가와. 뭐든 도울테니까..."

말하는 도중 입을 다물었다.

"...아키츠군?"

코테가와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지만 그런걸 신경쓸 수 없었다.

눈앞에 비치는 굴곡진 뽀얀 맨다리.
그 사이로 보이는, 약간의 골이 파인 자국이 보이는 순백의 프릴이 달린 천.

아...그러고보면 그랬지.
이 학교 치마 무지 짧아...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심박수가 대책없이 증가하는걸 느꼈다.

"아키츠군, 괜찮아요?"

아직까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걱정스레 물어오는 코테가와.
그만둬! 이런 더럽혀진 날 걱정하지마...!
이상한 배덕감을 이겨내지 못한 내 양심이 사고회로를 마비시켰고,
결국 사망 플래그가 입에서 튀어 나왔다.

"희-흰색?"

무의식적으로 클래스메이트들에게까진 안들리도록 속삭인건 코테가와보다 내 체면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색골 팬티마란 별명까지 얻으면 나 진짜 운다고...

순간 무슨 말을 들은건지 이해하지 못하던 코테가와였지만,
빨개진 내 얼굴(오체투지때의 수치심으로 더 빨간거지만)을 보고 나자 그제사야 상황파악을 했는지,
점점 얼굴이 새빨갛게 되며 치마를 손으로 가렸다.
아, 평소보다 더 귀엽네라며 생각하며 난 조용히 심판을 기다렸다.



"파, 파렴치해욧-!"

짜-악-!



원치않게도 코테가와의 간판대사를 듣는 첫 상대가 되었습니다.
휘둘러진 손바닥을 맞고, 앉은채로 한바퀴 몸이 스핀을 하면서 다이나믹하게 뒤로 날아가는 나.
'트럭도 튕겨내는데, 어째서 이럴땐 개그 보정이 먹히는 걸까...' 하고 날아가는 주제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나였다.
물론, 볼에 단풍잎도 새겨졌습니다. 아하하.
앗따따...



이때 상황으로 클래스메이트 내의 코테가와의 평가는 급상승.
학기 첫날 '고양이 목의 방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코테가와가,
이날 이후 '맹수 조련사'란 요상한 칭호를 받아버릴 정도로...
맹수는 누구야 맹수는.

본의 아니게 속옷을 엿본 대가는 컸다.
딱히 코테가와가 그걸 약점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악용할 생각도 없어보이지만,
그저 대하는 내가 괜시리 죄책감을 느낄 따름이다.

여자에게 약점을 잡힌 남자는 괴롭다.
일을 도와줄때 마다 가끔씩 생각한다.
코테가와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코테가와는 무의식중에 남자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함락시키는 법을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고.

그때의 일을 코테가와가 따로 언급하진 않지만,
가끔씩 얼굴이 빨개지면서 노려보는걸 볼때면 아직까지도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한다는게 보일 정도다.
덕분에 코테가와의 잔소리를 들어도 대꾸하나 못한 채로 코테가와의 일을 도와줄 수 밖에 없었다.

뭐, 내가 자발적으로 돕고싶다고 했으니 돕는게 싫다는게 아니고,
저런 반응이면 나도 덩달아 못 잊어버리니까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도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여자애들과 이야기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내 화술이 코테가와에게 미안함을 충분히 전할만큼 대단하다고 생각치도 않았고,
일부러 사과하려고 그때의 상황을 들춰내봤자 괜히 나름대로 잘 마무리된 일에 다시 상처를 내는 수도 있었으니까.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코테가와도 서서히 잊어가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 덕분에 1-B의 세력 구도는

아키츠 료스케 - 야쿠자급 양아치 (야쿠자 2세 의혹)
코테가와 유이 - 대항마 (위원장)
(넘을수 없는 사차원의 벽)
그외 - 클래스 메이트

라는 것에서,

코테가와 유이 - 정점 (위원장)
(넘을수 없는 사차원의 벽)
아키츠 료스케 - 꼬붕 (위원장 보조)
그외 - 클래스 메이트

로 바뀌어 버렸다.



클래스 안의 내 평가도 굉장히 하락했다고나 할까.
예전처럼 수업때마다 숨막히는 듯한 긴장과 고요는 없었다.
수업 중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자연스레 몇명이 손을 들어 대답하고,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면서 원활한 수업 풍경이 펼쳐졌다.
아, 물론 난 침묵했다.
슬슬 분위기를 읽을 정도의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니까 나는 이대로 묻어가렵니다~.

선생님들의 분위기도 많이 좋아지셨다.
처음에는 긴장된 클래스 분위기에 덩달아 경직되셨지만,
지금은 유들유들하게 수업을 진행하실 정도로 여유가 생기셨고,
내 잘못으로 반쯤 울려버린 여선생님도 최근 들어선 수업시간에 간간히 미소지으시며 농담을 하실만큼 여유도 생기셨다.
잘됐군 잘됐어.

하루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모두들 하교길에 오르는 시간.
천천히 교실을 나서며 내심 만세를 부르는 가운데 생각했다.

이래저래 이상하게 일이 꼬여 오해를 받고 지내지만,
결과적으론 이렇게나 일이 잘 풀리는걸 보면,
역시나 하늘은 나 아키츠 료스케의 편에 있다고!

「우와아악-!」

복도를 걸으며 느슨하게 풀리려는 얼굴을 억지로 굳히면서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때 창밖에서 무엇인가 비명이 들렸다.
무슨 일이지?

콰-앙-!

호기심에 슬쩍 창가를 바라본 순간 엄청난 충격이 얼굴을 강타했다.
바보같은 육체스펙을 가진 뒤로 거의 느껴본적 없는 충격에,
게다가 약한부위인 코를 맞은 상황에 순간적으로 정신줄을 놓을뻔 했다.
어느새인가 뒤로 넘어간 나의 옆으로 떨어진 하나의 야구공...

에,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일이지?

「우오오오오 멈-춰-줘!」
「꺄, 리토 멋있어!」

아...라라 특제야구배트 사건인가...
가물가물한 정신줄을 억지로 붙잡으며 초점을 잡고나니 시야를 가리는 살색과 하얀색의 물체.
...쿨럭, 이 패턴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살짝 움직여본다.


수거한 프린트물을 양손으로 든 상태로 교실을 나선 코테가와가 새빨개진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안녕 코테가와."

말없이 코테가와는 한쪽 발을 들어올렸다.
아니, 그렇게하면 더 훤히 보인다니까.
눈앞에 떨어져 내리는 실내화를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아, 세상은 어째서 이렇게나...



"파렴치해욧!"



퍽-!



화끈한 발차기를 맞으며 나는 왠지모를 처량함과 안도와 만족감 속에 가물거리는 의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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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러님의 축전을 3화 삽화로 추가했습니다.
축전을 올려주신 터틀러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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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음에 드는 여선생님이라도 사이난 고교에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닛타 하루코 선생님은 미캉네 초등학교 담임이시고...

트러블SS를 쓰기 때문에 주인공 외의 오리지널 캐릭터는 등장시키지 않을 생각이라 여선생님께선 접촉사고도 없이 일회 출현으로 끝.
이름없는 선생님 A라서 미안해요~

어릴적 동경하던 동급생의 요시코 쌤은 지금쯤 뭘하고 계실까요.

별 다른 일이 없다면 4편은 아마도 수학여행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네메스 님// 5살 차이는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특히 2차원에서는.
연풍의 주인공은 회사원 주제에 여학생(妹)과 맺어진 전설이 있지요.
뭐, 아직 뒷 전개는 어쩔지 결정은 안했는데 말이죠^^;

핑크게마 님// 역시나 뭔가 미묘했던가요?^^;
실제로 원래 전개는 훈훈한 이야기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근데 다 쓰고나서 읽어보니 훈훈은 한데 재미가 없어요...-_-;
그래서 어쩔수 없이 갈아엎고 새로 오해가 쌓이는 전개로 나갈수 밖에 없었죠.
다음엔 좀더 노력하겠습니다~
이후 미캉의 등장은 원작의 진행 상황에 따라 결정될겁니다.

sonicboom 님// 댓글은 정말 마약과 같이 무섭죠.
힘내겠습니다^^

유레인 님// 감사합니다 유레인님! (+ㅅ+)> (척)

어어 님// 도덕 건전하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상식인이예요~
그리고 미캉이 어리다지만, 주인공도 꽤나 어린 나이라고요.
나노하쪽에 가서 9살배기 애들한테 플래그 세우는 SS도 많잖...(퍽)

슬픈레퀴엠 님// No. 주인공도 아직은 소년입니다!

kero군 님// 이 글이 19세 게시물로 있지 않다는 것으로 QED.
맺어지는건 어쩔지 모릅니다만.

사심안 님// 전 행복한 결말을 추구합니다.
비바 라리카양.

CloudAngel 님// 기대에 부합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장애물이 높을수록 읽는 재미가 있는 법.( -_)y=~ (담배)

열혈의그라프아이젠 님// 아니오, 마음의 땀입니다.
하지만 전 S가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언젠간 행복해 지겠죠.
언젠간...

lunation 님// 힘내겠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그야말로 메이드 인 헤븐!ㅠㅠ;

적월립견 님// 면도? 사고로 불타서 없어지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 모르겠지만요.

Dietrich 님// 얘가 수염깎아서 될 눈매였으면, 전부터 눈매 더럽단 소린 안들었을껍니다.
뭐, 세월이 흘렀으니 의외로 샤프한 미남으로 자랐을 수도 있긴 한데...
콩깍지 끼면 다 멋져 보이니까 그건 바랄수 있겠죠^^;

착한녀석 님// 불행은 행복과 같이 오니까, 힘내야겠지요.^^;
근성과 인내가 없으면 주인공은 못해먹습니다.

월야의주민 님// 어떻게 답변을 달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 방식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일일이 코멘트 보면서 따로적기가 좀 번거롭긴 하네요^^;
닉네임 적는것도 그렇고요...쿨럭;

노즈 님// 죄송합니다. 제 안의 B를 탓하십시오.
다른 버전인 오타쿠 로드(道)에서 처럼 비대한 귀축 안경 오타쿠로 안해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름 관대한 선택이었어요? ( -_-);;

카르나스필 님// 흐지부지 끝내진 말아야겠죠.
솔직히 굴릴만큼 굴려놓고 솔로로 만들면 불쌍하잖아요?
저도 양심은 있습니다. 털이 났지만.

에피고넨 님// 응원 감사합니다^^
적어도 사는 세계관이 험난하진 않으니 비참하진 않습니다.
고생한 만큼 보답도 받겠지요.

신작 님// 감사합니다. 새편도 잘 써보겠습니다~^^

우레벽력 님// 네. 마음의 소리에서 따왔습니다.
그편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날 로그인 하게 만들다니...-_-b

BlueGlass 님// 기왕이면 색다른 녀석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그 얼굴값을 톡톡히 하도록 노력할 생각인데...
설사 수염이 없었다 치더라도 주인공이 된 이상 오해받는거야 말로 정석(...)

휴트랑 님// 매력적인 아가씨들이 꽤 있지요.
다만 옴니버스 스토리고, 너무 많은 아가씨들을 다루다보니,
각자의 개성이나 매력이 덜 표현된 듯 하지만요.
인물들의 매력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심안 님// 제말이 그말입니다-ㅅ-b
11살 소녀와 16살 소년. 만화적으론 허용범위입니다.
지인의 친구의 부모님은 아버님이 군인일때 어머님이 초등학교 6학년이셨다고...
현실이 더 판타지예요 여러분.

원투비 님// 전 코테가와가 몹쓸 역할을 맡는걸 보고싶지 않아요~
이계트립플래그를 어떻게든 해결한다면 또 모르지만요.

Posted by 루트(根)
,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아니, 그러니까 이젠 괜찮다고. 원래 내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쏟아진 장바구니를 두고 길 한복판에서 울먹이며 사과하는 어린 소녀와, 먼지를 뒤집어쓴 교복차림의 양아치.
지나가던 제삼자가 봤다면 재수없게 부딪쳐 피해를 입힌 양아치에게 협박당하는 가련한 소녀의 이미지임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지나가던' 제삼자가 아닌, '잠시 멈춰서 자세히 쳐다본' 제삼자로서는 다른 결론을 내었을 것이다.
헝클어진 머리, 빨간 자국들이 남고 한쪽 코에 휴지를 틀어막은 양아치의 난처한 듯한 표정이 그 흉악해 보이는 얼굴을 비참한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실은 그 양아치가 바로 나란 점이다.

그러니까...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더라?



고교 첫 수업을 희망에 부푼 채로 끝내고 나서, 꽤나 텐션이 올랐던 나는 들뜬 마음으로 장보기에 나섰다.
부모님이 해외에 가 계신 동안은 자취를 하며 지내야 하니까.

시장에 가까워 지며 아주머니들이 점점 눈에 띄어 오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은 나를 피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조금 떨어지면 들리는 소리에 귀가 아팠다.

"어머어머, 저기 저 학생 좀 봐요."
"별꼴이야. 겉멋만 요란하게 들어서는."
"생긴게 꼭 야쿠자 같지 않아요?"
"척보면 딱이네. 등에 문신도 했을지 몰라요."
"저기 저 교복 우리 아들 다니는 곳인데, 우리 아들도 조심하라고 해야겠네요."
"그러게요. 애꿎게 잡혀서 돈이나 뺏기는거 아닌지. 교장은 저런 학생을 두고 뭐하는지 몰라."

우리 학교 교장은 변태입니다.

암튼, 문신같은거 안했습니다 아주머니들...
그리고 난 삥뜯기 안한다고요?
 
머릿속으로 나와 학생 A의 대화를 상상했다.

나 : 돈내놔 설정바꿔 새끼야!
A : 드, 드리겠습니다! 바, 바꾸겠습니다!
나 : 필요없어!

뭔가 대화 내용이 이상한듯 하지만 기분탓이다.
그리고 애초에 난 양아치라고 부르는 애들에게 해꼬지 한 적도 없다.
다른 학생 B 와의 대화를 상상했다.

나 : 좋아. 날 양아치라고 부르는건 괜찮아. 그건 사실이니까.
B : 꿀꺽...
나 : 하지만! 네놈이 날 양아치라고 부르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
B : 무, 무슨소리야?
나 : 이딴 설정을 만든 A랑 지옥에서 사이좋게 럭키○ 만화나 실컷 봐라!

...뭔가 울분이 가득한, 은근슬쩍 추신에 태클거는 행위가 벌어진 것 같은데...

뭐, 그래도 이런 인상은 아직은 양호하다고 본다. 아직은.
기타노처럼 300명의 학생을 묻어버린 희대의 악마로 평가되는것도 아니고(by 교장),
교권유지를 위한다고 교육부 7인방이 오거나 한 일도 없다.
애초에 이 세계에 그런게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아무튼, 이런 주변의 눈총속에서도 나는 이루어야 할 일이 있다.
첫 장보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 얼굴에 시장 사람들이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1년 동안 보고 지낼 건데 매일 눈총 받으면 힘들잖아?

그렇게 시작된 의욕넘치는 첫 장보기는 제 일보로 좌절했다.



첫번째로 간 할인마트.

"저기, 뭐 좀 물어볼게 있는데요."
"네. 무엇을 도와드릴...? 히익-?!"
"아. 저기?"
"자, 잠시만요. 점장님! 점장님-!(재빨리 멀어져 간다.)"
"저기요? 이봐요~?"



두번째로 간 채소가게.

"쿨럭쿨럭. 이 노인네가 살날 얼마나 남았다고 이렇게까지 괄시를 하나."
"그런게 아니라요..."
"난 이 좌판 절대로 못치우네."
"그러니까 이 부추..."
"아이고 동네 사람들! 야쿠자가 노친네 잡는다-!"
"그, 그게 아니고...시, 실례했습니닷-!(도주)"



세번째로 간 식육점.

"저기, 수금 날까진 아직 남아있지 않았습니까?"
"......"



길 한복판에서 좌절 포즈를 해버린 나.

나 아직 교복입고 있지요? 학생이지요?!

이상한데... 분명 예정대로라면 어른의 경륜을 보여주며 침착히 대응하는 상인들에 감동하며,
무사히 장보기를 마치고 '과연 어른은 다르네!'라며 감탄할 것이었는데?

적어도 가득차 가는 장바구니를 보게되면, 야쿠자라는 식의 오해를 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줄어들테고,
마지막에 가선 지나가던 아주머니께 "외모완 달리 가정적이구먼."이란 평을 듣길 기대하며,
오늘의 미션 성공에 자축하면서 '비바- 어른. 비바- 장보기' 라고 말할 예정이었는데?

지금 손에는 텅 빈 장바구니.

누군가 말해주세요. 이 상황은 누군가의 농담?

- 아니오. 구제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마치, 어제까지만해도 감독A의 지휘 아래 훈훈한 시나리오가 될 예정이었던 한 화가,
갑작스런 감독B로의 교체로 인해, 난데없는 조폭 액션 활극으로 바뀌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야말로 이차원 보정을 받고 사정없이 불어닥치는 오해의 연속.

그래, 좌절하지 말자...
비록 세상이 각박하기로서니, 희망조차 없을쏘냐.

입학 첫날부터 정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관계도 생겼기에(왜곡입니다),
적어도 몇시간 전까지의 나는 그야말로 최고로 High한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흥얼거리며 묘한 스텝을 밟으며 걷는 내모습에 주변사람들이 쉬쉬 피하는 모습들마저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까,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한번이 안된다면 몇번이라도,
열번찍어 안넘어 간다면 몇십번이라도 찍어보자.

흉악한 외모때문에 기피되던 주인공들도 어느샌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만남을 가지고 더욱 성숙하지 않던가.
게다가 여긴 이차원 -> 나 흉악 양아치 -> 고로 언젠간 행복해진다. 라는 삼단 논법이 성립한다.
대전제로 주인공이어야 한다는게 빠졌지만 무시하자.

유유백서의 붉은머리 깡패 쿠와바라 카즈마도 주인공은 아니지만 결국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잖아?

그러니까 다시 한번 기운을 내 일어나 볼까.
오늘 학교에서 만남처럼만 된다면 고교 생활에서 남들에게 인정도 받고,
뜨거운 우정을 쌓을 친구도 만나고,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고백해서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내게 이렇게 대답하는 미래가 될꺼라 믿으면서,
기운차게 벌떡 일어선다.
"꺅!" 그래, 「꺅」이라고...

...응? 꺅?

기합을 넣고 힘차게 일어선 포즈를 수습하고 제대로 앞을 바라보니,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은, 약간 웨이브진 머리칼의 어린 소녀가 있었다.
그리고 다리사이로 떨어진, 소녀의 것으로 보이는 장바구니 밖으로 깨져버린 달걀들이나, 과일, 야채들이 흩어져 있었다.

"아야야...아파..."

...헐.

기껏 기운을 넣자마자 이런 실수를!

"미, 미안, 괜찮니?"

황망히 손에 든 텅빈 장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넘어진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런데, 이 아이, 왠지 낯이 익은데?
나는 자신의 기억을 뒤지며, 소녀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

살짝 웨이브 진 머리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키.
아픔으로 찡그린 탓에 그 나이대 또래들 처럼 보이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깨끗한 외모.
마음탓인지 약간 다리를 벌린 채 주저앉아 있는 모습에선 알 수 없는 색기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비호욕구가 자극되어 심박수조차 증가하는 내 상태에, 반사적으로 번뇌해산!을 속으로 외치며 속삭였다.
오케이. Be Kool. Kool해져라 아키츠 료스케.
떠올려라.
위기의 순간에,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지만 최후엔 결국 모두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한,
언어의 마술사 규일이가 무엇이라 했더냐?

- 남자가 변태면 어떻단 말인가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왜 하필 그대사?
더 좋은 명대사 많았잖아!
확실히 어느 의미에선 짤방으로 까지 남는 명대사지만,
그 덕분에 내 번뇌가 불타오를 만큼 히트하고 있다고?

-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

그만둬 제발.
아니, 어느 의미론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실제론 1~2초의 짧은 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건 처음이었다.
아무튼, 걱정섞인 나의 물음에 소녀가 뭔가 말하려는것 같았다.

"으윽...네 괜찮..."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에 당황하며 어떻게든 말을 꺼내려는 소녀.
하지만 고개를 들어 대답을 하던 소녀는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아, 아, 아..."

......응?

소녀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깨닫고 말았다.



소녀의 눈망울에 비친, 소녀를 자세히 바라보던 내 모습이, 그야말로 부딪힌 소녀를 죽일듯이 눈매를 구기고 있었다는걸.

뭐야 이거. 무서워.
타인의 망막에 비친 내 모습에 쫄다니,
이건 호러도 스릴러도 아녀. 개그지...

사태를 파악하고는 소녀를 관찰하던 시선을 거두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꺄아-----악!"

자신이 느꼈을 공포심을 그대로 토해내듯이, 소녀는 그 조그마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높은 비명을 질렀다.

지자스 크라이스트!

쳐다본것 만으로 애를 울리는 경험을 실시간으로 체험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이러다 멀쩡한 애한테 트라우마 심어주는거 아냐?
진짜 큰일났다 싶어서 어떻게든 달래주려고 주저앉았을 때,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주위를 바라보니 방금까지 들렀던 상점의 여점원, 야채가게에서 할머니, 식육점 아저씨, 그외에 지팡이를 짚으신 할아버지,
아까까지 뒷담화를 하시던 양산을 든 아주머니들이 소녀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 소녀는 아주머니 한분이 원 밖으로 빼내가셨다. 요령좋게 장바구니도 함께 치워주시는 센스가 돋보인다.
"에?"라며 어리둥절한 상태로 밖으로 나가는 소녀는 일단 관심에서 제외.
우선, 내가 제일 걱정이다.

"어, 음. 일단 여쭙지만, 무슨 일이세요?"

어른들께는 존댓말을~. 올바른 청소년의 모범이다.

"무슨일이냐고?"
"몰라서 묻는거냐?"

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압력이 더 진해지는군요.

"딸뻘이나 될 여자애를 울려두고 무슨일? 너 정말 못됐구나!"

...쿨럭, 딸?
다시 말하지만, 나 지금 교복이예요?! 나 진짜 상처받았다고요?!

"그러고도 네가 사내놈이냐!"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이놈!"

아까까지의 겁먹은 태도는 어디로 가고, 기세 등등하게 눈알을 부라리며 다가오시는 주민들.
오호...정의는 살아있다.

세상의 각박함에 눈물 지은게 방금전인데,
위협에 노출된 어린 소녀를 돕기위해 이렇게까지 어른들이 나서줄 줄이야.
이 마을에는 아직 인의와 정의가...아니, 인심이 살아있다!

다만 그 응징의 대상이 나라는 사실은 불합리함으로 다가오지만서도. 아핫핫-.
조그마한 다듬이용 방망이에 어울리지 않게 굵은 팔뚝의 아저씨들과 판매대의 물품 정리용 막대기를 든 여점원,
지팡이의 할머니, 할아버지, 양산을 든 아주머니 등등 다양한 분들이 원을 좁히며 다가온다.

보통의 불량아라면 어른들 몇이서 타일러서, 불량아가 소녀에게 사과하는걸로 간단히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을것이다.
하지만, 불량의 수준을 넘어 외모부터가 대놓고 막나가는 야쿠자 포스를 풍기고 있는 나에게 말만으로 반성시키는게 가능할꺼라 생각하는 사람은 희귀할 것이다.
뭐, 아까도 쉬쉬 피할만큼 두려움을 줬고, 소녀에게 비명을 지르게 할만큼 흉악한 분위기를 풍겼으니까 그야말로 현행범 확정.
지금 다가오는 사람들도 우선 제압하고 갱생시킨다는 결론을 낸듯 '꼭 갱생시키고 말테다'라는 눈빛을 하고 있고.

자, 이제 마음을 굳히자.
이 세상은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란걸 깨달은 것과는 별개로,
이 괴로운 대치 상황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자리에 일어서자 둘러싼 사람들이 잠시 움찔한 기척이 느껴졌지만, 오히려 더욱 징계에 불타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 그야말로 나도 바라는 바이다.
마음속 깊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의 고양속에서 나는 힘차게 소리쳤다.



"와라 야○토! 난 사실 한번만 찔러도 죽는다!"

"뭐라는거냐!"
"상스러워!"
"말버릇을 고쳐주겠어요!"
"볼기짝을 두들겨 주마!"
"단결된 시민의 힘을 보여주마!"

투닥투닥퍽퍽-

험악한 분위기 치고는 뭔가 사랑스러운 크기의 방망이와, 휘청거리며 휘둘러지는 지팡이, 흐느적거리면서 몸에 닿는 양산.
할아버지나 아주머니의 두들김은 먼지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저씨의 조그마한 몽둥이는 모기무는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역시 반칙같은 육체강도가 한몫하는것 같다.
주저앉은채로 사람들의, 아프지도 않은 두들김을 받아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방금 상황을 생각해 봤는데,
애초에 내쪽이 넘어지는게 속편했을꺼 같애.
근데 난 트럭도 튕기잖아?
난 안될꺼야. 아마...

...그냥 사과하는게 나았나?
훈훈한 인심으로 생겨난 감동의 도가니에서 텐션이 올라, 쓸데없이 분위기에 휩쓸린채 전형적인 패배 플래그를 말한게 문제였다.
왜 그랬나면...그러니까, 그거다.

무대 소도구로 총이 있다면 발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명중율이다.

감동적이고 슬픈 결말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고 치자.

사랑하는 여인을 향해 쏘아진 총알을 막으려고, 자신을 희생할 각오로 몸을 던졌는데,
총알이 엉뚱한 곳으로 빗나갔을 때의 거북함.
쏜 사람도 거북하고, 여인도 거북하고, 몸으로 막으려던 연인도 거북하다.



이해가 안간다고?
좀더 직접적으로 비유하자.
용기있는 사람들이 악을 무찌르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자.

악당의 흉행에 들고 일어난 마을 사람들의 분노.
마을 사람들의 단결로, 희생양이 될 마을 처녀를 투쟁을 통해 구하고 마을은 평화를 되찾는다.
악당! 무찔렀다!

이것이 정석.



악당의 흉행에 들고 일어난 마을 사람들의 분노.
그런데 악당이 미안하다더라. 끗.
이건 뭐 감동도 뭣도 없고...

이것은 사도.



비록 외모는 흉악하지만, 실제론 상식적인 윤리관과 사고를 지닌 나로선 엄언히 정석을 따르는걸 좋아한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흐름을 타버려서 무슨 '오니퇴치 시나리오' 같은 상황이 연출되어 버렸지만...

하지만, 나 자신으로선 그다지 문제 될것도 없다.

원체 튼튼한 나로선 트럭에 부딪혀도 쌩쌩하고, 그나마 신경쓸건 입학첫날부터 새교복을 다시 빨아야 할 상황이 된게 사소한 문제일 따름이다.
혹시나 이번일로 인해 학교안에서의 내 위험도를 낮춰 볼 학생들이 생겼으면 한다.
'여럿이 모여있는 학급내에선 함부로 굴지 못할것이다'정도의 인식만 받아도 감지덕지다.
아, 하지만 깡패들은 사양. 또다시 중학교때처럼 만화같은 싸움인생은 미안이다.

더욱이, 가감을 모르는 애들도 아니고 어른들이니, 양아치라도 이렇게까지 무반격의 학생을 계속 린치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저분들이 나선 것도, 비도리인 폭력을 행사하려는(오해) 나를 징계하려는 의미였기고 하고.



"자, 잠깐만요!"

그때 한 아주머니에 의해 원 밖으로 빠져 나왔던 소녀가 만류해왔다.
혼을 내던 어른들도 저항하지 않는 내 모습에 어느새 때리는 것을 멈추고 훈계 모드로 들어갈 상태였다.

"왜 그러니 얘야?"

"저, 왠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눈에 약간의 물기가 맺힌 상태이지만 소녀는 더듬대면서도 상황을 설명했다.

"굉장히 노려보는 눈빛이 무서워서 비명을 질렀지만, 저 오빠가 「미안, 괜찮니?」라고 물어왔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렇게 나쁜 의도가 있진 않았을꺼예요."

어라? 이건 내 변호?
그나저나 '오빠'라니, 감동했다 소녀!
내가 나이보다 겉늙은게 아니란걸 알려주는구나!
아까도 그래. 딸은 아니잖아 딸은.

소녀의 말을 듣던 어른 중 한 아주머니가 내게 물으셨다.

"정말이니? 이상한 의도는 없었다고?"

"어...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갑자기 이상한 도발을 한건 뭐 때문이니?"

도,도발... 소드마스터 야○토 말입니까...
역시 개그만화 재료는 모르는 사람에게 쓰는게 아니다.
그리고...역시 막무가내로 덤비는 깡패들보다, 차분히 대화하려는 어른들이 오히려 더 힘들어.
텐션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어떻게 말하라고?

결국 끙끙대다가 분위기를 타버렸다고 대답해버려 어른들은 물론 소녀마저 어처구니 없게 나를 바라 보았다.
쓸데없이 분위기를 탔더니 반응이 냉랭해 죽을것만 같습니다 부모님...

아무튼, 몸이 튼튼한건 자신있었기에 그랬다는 추가 자폭대사에 어른들은 기막혀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해 하시며 때린것을 사과해주셨다.
마지막에, 다시는 치기로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건 하지 말라는 충고도 들었다.
부끄러울 따름이옵니다.
아니, 미안해요 진짜로...

용기있는 자들에 의한 오니퇴치 이야기를 상상했을 것인데,
어느새 미녀와 야수(소녀에게 비호받았다는 의미로)로,
그리곤 마을사람들과 화해하는 이상하게 해피한 엔딩으로 끝났어?

...뭐, 앞으로 자주 장보러 올테니 그저 잘 부탁드린다고 하자 넉살도 좋다며 웃어주셨기에, 나름대로 괜찮은 결말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오니퇴치 시나리오로 「정의는 승리한다!」 같은 결정대사는 듣고 싶었지만...
정의 좋잖아 정의.



이렇게 회상끝.

결국 시장 사람들에게 내 얼굴을 익숙하게 한다는 목적은 방식은 좀 달랐지만 결국 달성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라면 장보기도 제대로 할 수 있겠지.
남은 문제라면 바로 지금, 처음 입은 교복이 지저분해진 채의 내 모습에 지나치게 미안해하는 양심적인 소녀에게 있었다.

상인분들과 장보시던 분들도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고, 나도 내 텅빈 장바구니를 들고서,
내 실수로 떨어뜨린 소녀의 장바구니 문제도 슬슬 해결을 해야 겠기에, 사과를 해오는 소녀를 손으로 제지했다.

"힉-?!"

...아나 이 외모... 지난 3년간 유지해온 이 외모가 밉다 정말.
우선, 용건이나 말하자.

"그것보다, 내 부주의로 부서진 네 장거리들을 변상하고 싶어."

"네?"

"애초에 원인이 내가 너에게 부딪쳤기 때문이니까 그 사죄로."

"저... 꼭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애초에 저도 짐에 신경쓰느라 앞을 잘 못살핀것도 있고."

너무 겸양하는 소녀다. 예쁜 외모만큼이나 조숙한 면이 있다고 해야하나?

"내 짐은 이렇게 무사하잖아. 그리고 내탓에 넌 다시 쇼핑을 해야 하잖니.
부모님 심부름인것 같은데 시간도 늦을테고."

그러자 소녀는 무언가 불만인지 볼을 부풀렸다.

"이건 심부름 같은게 아니라 제가 장보는 거예요! 저녁 식사 만들려고 산거란 말이예요!"

순간 쇼크를 먹었다. 그리고 황급히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그, 그래? 미안해 정말로. 난 그런줄도 모르고..."

"자, 잠깐만요! 그렇게 거창하게?!"

"홀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데도 그렇게 똑 부러지게... 어린 나이에 정말, 장하구나..."

"에?"

어안이 벙벙하던 소녀는 이내 내 말뜻을 이해하고 반박했다.

"그게 아니예요! 부모님들이 일 때문에 집에 안계셔서 제가 집안 살림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요!"

"아? 아하하. 그렇군. 미안."

오늘따라 실수가 많네. 뭔가 만회를 해야 하는데...

"그, 그래. 그럼 내가 장보는 것 좀 도와줄께."

"네?"

"사실 나도 부모님이 해외출장 중이시라 당분간 자취해야 하거든.
오늘이 자취 첫날이기도 한터라 경험자인 너에게 조언도 들을겸,
나도 지금부터 장보기를 해야 하고, 하는김에 네 장거리를 사주고 짐을 들어준다는 걸로 어떨까?"

"에... 그게..."

"염치없지만 부탁할께..."

양손을 맞대고 빌듯이 허리를 숙인다.
소녀는 난처한듯 하더니 곧 웃으며 승낙했다.

우선 깨진 계란을 사고, 이후 소녀가 마저 사려던 식재료와 물품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소녀는 내게 몇가지를 물어본 뒤, 내가 살 예정이었던 물건 외에도, 자취를 할 때 필요한 물품들을 추가로 구입하도록 조언해 주었다.
기억상으론 몇년이나 자취를 했건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에게 밀리다니 참...
아니, 이 아이가 정말로 대단한건가.

덕분에 예정보다 짐이 늘어난채로, 시간도 더 걸려서 장보기를 마치고 우리는 귀가길에 올랐다.
장을 보면서 적당히 내 외모에 익숙해 졌는지 소녀도 처음보다는 편하게 나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오빠는 왜 그런 머리 스타일에 수염을 하고 있어요?"

"아...개인적으로 사고가 있었는데, 그 이후 액막이 용으로 이런 외모를 하고 있어."

"액막이요?"

"금붙이를 몸에 지니고 금발로 염색하고, 뭐 이런걸로 액막이를 하는거지."

"흐응-"

왠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의 소녀.
미안. 차원이동따위가 더 납득 안갈테니까 그걸로 납득해줘.

이래저래 내 얼굴을 훑어보던 소녀는 내 교복에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오빠가 입은 교복 사이난 고교 꺼네요?"

"알아보는거야? 나, 오늘 입학했거든."

"에?!"

놀라는 소녀. 지금 어디에 놀랄 부분이 있는거지?

"오빤, 3학년이라고 생각했어요."

OTL...
솔직한 대답 고마워요.
하지만 마음이 아파!
수염만 밀면 훨씬 어릴꺼라고! 밀지 않지만.

"그게, 우리 오빠도 사이난 고교 1년생이거든요."

에, 오빠가 있었구나 이 아이.
이런 아이의 오빠라면 어떤 소년일까?

"그래? 너처럼 똑부러지는 여동생이 있다면 오빠도 분명 멋진 사람이겠지."

내말이 끝나자마자 소녀는 풋-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하하. 전-혀 아니예요. 공부보단 축구를 더 좋아하고, 우유부단해서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몇년째 고백도 못하고 있는 한심한 오빠인걸요."

"아,하,하... 그거 참 심한 평가구나."

웃는채로 굳어진 나.
만약 내게도 여동생이 있어서, 여동생의 저런 말을 듣는다면 난 분명 회복할 수 없을테지.
여동생 무셔-.

"...하지만..."

음?

"서툴고, 바보같아서, 오히려 내가 챙겨줘야 할 남동생 같지만,
가끔은... 정말로 가끔은,
따스하고 상냥해서 의지가 되는 오빠예요."

...뭐야, 역시 멋진 남매잖아.

굳어진 미소가 풀리는 걸 느낀다.

"역시, 네 오빤 멋진 사람인가 보구나."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가요?"

이상한 듯 쳐다보는 소녀에게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그래그래. 그래서 너의 멋진 오라버니의 이름은 어떻게 되니?
나로선 너처럼 자기 앞가림 잘하는 여동생을 둬서 부럽다고 한마디라도 해주고 싶을 따름인데."

"아, 오빠의 이름은..."아, 잠깐만!" 네?"

갑작스런 제지에 놀란 소녀.
하지만 이건 중요한 문제다.
선후관계가 잘못되는 실례가 될.

"미안한데 말야. 혹시 우리, 통성명 했던가?"

"에, 그러고보니...아뇨."

나와 마주보며 이제야 깨달았다는 여자애.
하긴, 애초에 사고로 만나 하루동안 장보기를 같이 한 사이끼리 꼭 통성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오빠라는 소재로 나온 질문 때문에 비로소 의식을 하게 된거다.
오빠의 이름을 아는데 정작 나와 소녀, 당사자끼리의 이름을 모른다면 이 무슨 코미디란 말인가.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여자애의 집까지 다 온듯 했다.
이제 억지로 화제를 이끌어 나갈것도 없이,
여기서 작별인사를 하며 헤어지면, 다시 소녀와 접하는 일도 없이, '오늘의 일은 색다른 경험이었다'는 감상 하나로 모든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만남도 내게 주어진 하나의 인연이라면,
인연을 소중히 하라던 용신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소중한 인연이, 이 세계에 뿌리내릴 내 존재를 지탱해주는 지지대가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건 먼저 손을 내밀 약간의 용기.

어색함 속에 생겨난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내가 먼저 운을 뗐다.

"그럼 늦었지만 내 소개를 할께.
내 이름은 아키츠 료스케. 16세. 사립 사이난 고교 1-B반이야.
외모가 이렇다지만 나로선 모범생일 예정이라고?"

마지막의 약간 농담같은 어조에 여자애가 푸훗하며 웃는다.
모범생인건 사실이지만요!(학업적인 의미로)

"아하하, 그럼 저도 제 소개를 할께요.
제 이름은 유우키 미캉. 11살. 초등학교 5학년이예요.
그리고 제 오빠의 이름은 유우키 리토. 오빠와 마찬가지로 사이난 고교 1학년이죠."

...미캉이었구나.
시장에서의 첫 만남에서 가진 낯익음은 그 때문이었나.
동갑의 소년,소녀들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모습과 반대로 남몰래 관심을 필요로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선, 지금은 대답을 하지 않으면.
머릿속의 사고를 잠시 물리고 말을 꺼낸다.

"그럼 유우키."

"미캉으로 좋아요."

"어?"

"오빠잖아요? 같은 나이도 아니고 일부러 어색하게 하지 않아도 돼요.
게다가, 리토랑 헷갈리겠죠?"

시원시원하구나 지금의 미캉은.

"응. 그럼 나도 료스케로 좋아."

"네, 료스케 오빠."

뭐랄까, 묘하게 근지러운 기분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애에게 이름으로, 그것도 오빠라 불리다니...
감회에 젖어있는 사이 미캉이 말을 계속했다.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 료스케 오빠.
장보기도 도와주셨고, 짐도 들어준 덕분에 편하게 집까지 올수 있었어요."

"아, 아니. 나야말로 미캉덕분에 자취에 필요한 것들도 알 수 있었고,
여러모로 곤란함을 면할 수 있었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야."

"후후, 자취하면서 모르는게 있다면 도와드릴께요.
그럼 전 이만."

어느새 문앞에 선 미캉이 꾸벅하고 인사를 한다.

"응, 그래. 맛있는 저녁 만들길-"

"료스케 오빠도요. 아, 그리고 혹시나 리토가 곤란할땐 잘 부탁드려요-"

생긋 웃으며 미캉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외모의 단정함을 주장하던 코테가와.
처음에는 기피했지만, 양아치 외모의 나에게 훈계하던 시장에서 만난 어른들.
그리고 그 사고로 알게 된, 자취에 대해 조언을 해 준 미캉.

지난 3년간의 소외감을 보상받듯이 하루만에 나에게 밀려오듯 다가온 만남들은,
외로이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막막함 속에서,
정말로 인연을 믿어도 좋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이 끝나고,
어느덧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게된 언젠가의 날로부터 꾸는 꿈.

친구들 사이의 우정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열정에 불타오를 10년을 고독 속에서 보내고, 그렇게 졸업을 하고,
어느새 사회에 나가, 괴로움을 나눌 친구도 없이 외로이 술잔을 기울이며,
결혼식에서, 원래라면 친구로 가득차 있어야 할, 텅 빈 신랑쪽 객석을 쓸쓸히 바라보는 미래를 환시하며
땀에 젖어 눈을 뜨는 악몽의 반복.
시시한 꿈이었다, 라고 웃어넘기면서도 속으로는 두려워하던, 오지 않은 미래.

하지만 오늘의 만남은, 이 달콤한 행운들은 내게 다른 미래를 상상케 해주었다.

친구들과 부대끼며 소란스러운 나날속에서 바보같은 행동을 해서 야단도 맞아보고,
의기투합한 친구들과 자신을 걱정하고 충고해주는 어른들 속에서,
빨리 10년이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좀더 이 순간을 소중히 하고, 지금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타산없는 사랑을 만나보고,
장래에 대한 고민 속에서도 조금씩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모습을.



어느새 도착한 집앞에 서서 물끄러미 문고리를 바라본다.
부모님도 떠나 홀로 1년간 지내야 하는, 기다려 주는 이 없는 텅빈 집으로 통하는 문.
하지만 왠지 지금은 혼자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다.

...용신. 당신은 내가 '이차원에 불타는 영혼'의 정화라고 했지?
그땐 부정했지만 지금은 그말, 믿을께.

기억속의 내가 아닌, '아키츠 료스케'는,
지금의 만남들을 가슴에 새기며,
'이 세상'에 사랑을 하겠다고.



손잡이를 돌려 천천히 문을 연다.

거실의 불빛이 문틈을 통해 바깥으로 새어나온다.

어느새 어둑해진 주변의 암흑을, 조금씩 지워내는 그 빛이 왠지 내가 바란 미래같다고 생각하곤,
나면서 감상에 빠졌다고 피식 웃으며 집으로 들어간다.

문을 닫기 직전 운좋게 보인,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을 보며 소망을 빌었다.

 바라건대 웃을수 있는 매일을 맞이하도록.

오늘 저녁 식단을 구상하면서 싱긋 웃은채 조용히 문을 닫았다.



메모 : 강화+3 저녁식사 대실패.
텐션이 올라 고난이도 요리를 시도한게 안되었다. 반성.
재료값이 아까워 억지로 먹은 탄화 요리는 그야말로 눈물에 젖은 밥이었다.
미캉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p.s. 그날 떨어진 유성이 지구로 도망쳐온 라라의 비행선이었다는걸 알게된것은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기브 미 백 마이 센티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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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러님의 축전을 2화 삽화로 추가했습니다.
축전 보내주신 터틀러님 감사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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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캉이 리토 부를땐 그냥 리토라고 하니까,
리토의 이름이 언급되기 전에는 오빠라는 호칭으로,
이후 리토의 이름을 소개하고 난 뒤에는 리토라고 썼습니다.

미캉과의 마지막 대화 부분에서 약간 난처했던게,
미캉네 초등학교 이름을 모릅니다.
아시는분 계시나요?-_-;
설정집 같은게 따로 있나?

암튼, 역시 재밌는 전개가 되려면 수학여행 담력시험쯤 되야 하나...

p.s. 추신에 있는 기브 미 백 마이 센티멘탈은
원래 Give me back my sentimentalism. 이지만, 보통 센티멘탈을 '센티멘탈하다'라고 명사로도 쓰니까 한글 표기때 저렇게 적었습니다.





혈넘누 님//감사합니다. 아이디는 이름에서 따온거다보니 보통 저걸 씁니다. 운이 좋았죠=ㅅ=a
글쓰기는 9월전까지는 꽤 페이스가 나쁘진 않을듯 하지만, 9월이 되면 아마도 꽤... 느려질테니 그점만 양해해주세요~^^;

DeathYo 님// 사실 차파왕도 생각했었는데, 전투력같은거 안따지고 만화책 내의 상황 묘사만 보면 총알맞고 튕겨내는 포스를 보여주신 우파네 아버지 보라씨가 딱 이었지요. 원래 해당 이미지까지 올리려 했으나, 올릴당시에 이미지를 딴 곳에 둔 상태여서-ㅅ-;

kero군 님// 보통은 투러브루라고 쓰는지 ToLove라고 쓰는지 모르는 상태여서 트러블이라 썼습니다.
트러블 팬픽은 대개 일본판이 많았기에 한국판으로 SS를 쓸때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몰라서-_-;
('루'의 일본어를 추가로 적기 귀찮았다는 점도 있습니다만...)

sonicboom 님// 넵. 어쩔까 하다가 저도 계속은 써보고 싶기에 일반창작으로 왔습니다( --);
도중에 멈추지 않게 노력해야지요.

노즈 님// 터프한 외모의 주인공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날카로운 눈매의 주인공, 악마같은 외모의 주인공은 있으니 구시대 강경파 이미지로.
사실 진짜 양아치놈 한테 주인공을 빙의시키는 스토리도 생각해봤는데, 왠지 죽은 양아치 놈이 불쌍해서 이쪽 방향으로 전환을...-_-;
어떻게보면 저 양아치 외모로 하기 위해서 이세계 트립 이벤트 회피 설정들을 집어넣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어어 님// 야부키 켄타로씨가 트러블 완결까지 계속 힘내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코테가와 유이와 미캉을 더 볼수 있기를 바랐기도 하고요.

붉은촉수괴물 님// 그러게요... 저도 왜 이런 객기를 부렸는지 2화를 쓰면서 고민했습니다-_-;
15kb 채우기가 왜이리 어려운걸까요;

광명군 님// 장편은 아마도...(장편 일까?)
단편은 블리님의 리토X미캉 팬픽이 있지요.^^
비에 젖은 귤을 잘 닦아 주세요.
어째서 19세 버전은 없는걸까요.(갸우뚱)

타이란트 님// 감사합니다^^
트러블 장편 완결된 작품을 보고싶었는데 그런게 없어요~!;ㅅ;
(일본엔 저스틴 빙의물이 있었는데 1편후 무소식, 리토보다 연상의, 미캉의 오빠 설정의 작품은 설정이 좀 미묘하고 갑자기 다크한 분위기라 거리를 두었더니 연중)
그래서 망상에 시달리다가 자급자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메가날백수 님// 고마워요~!^^
그나저나, 이후의 스토리는 원작 따라가기 바쁠듯도 하고...(=x=)
작년에 적게나마 구상했던 기본 줄거리는 방정리 하면서 사라진듯-_-;
옴니버스 전개의 트러블이니 얘기가 생각나면 중간에 넣어도 되겠지요^^;

사심안 님// 아니요. 빙의자는 오지 못합니다.(원작에서 나왔던 오타쿠 귀신 빼고는. 게다가 걔는 이곳의 사람이었고)
우선 육체를 가진 상태로 이 세계로 넘어오는 이는 없으며,
영혼만이 이세계로 넘어오는 경우도 원래라면 없어야 하는데,
주인공의 현재 상태 때문에, '굉장히 드문 확률'로 빙의자들이 현실에서 넘어오게 되며,
넘어온 빙의자들이 모두 주인공에게 차례로 씌이게 되는 상황입니다.

대략적으로 말하면 주인공의 영혼이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와 '이차원 세계'의 경계선에 서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계진입의 조건을 갖춘 '영혼'들은 일차적으로 주인공의 몸에 깃들게 됩니다.
그러면 주인공이 그 영혼들을 현실세계로 되쫓아 냅니다. 그리고 빙의자들은 다시 현실로 되돌아가 원래 육체에 깃듭니다.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이 세계로 오는 빙의자는 굉장히 낮은 확률로 존재하지만,
빙의자들이 오게 되는 원인이 주인공이고,
그들 모두가 주인공에게만 깃들고,
주인공이 그들을 도로 현실로 쫓아내기 때문에 [빙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야부키 켄타로 씨의 원작 트러블의 설정에 따로 추가되는 사항이 있다면 또 모르지만요.
(오리지널 빙의자 같은건 등장시키지 않습니다.)

결론은 이 세상으로 빙의자가 오는건, 현실에 반쯤 걸친 주인공의 영혼때문이고, 그렇기에 주인공에게 최우선적으로 빙의가 되며,
모두가 주인공에게 빙의 실패하고 현실로 되돌아갑니다.
(다른 이들에게 빙의가 되는 경우는 0 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 설정은 그냥 양아치 외모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 만든것...쿨럭-_-;

원래라면 빙의당하는 입장에서의 생각이나 적개심 같은 것도 묘사해볼까 했는데,
괜시리 까도 요상한 안티 작품이나 될것 같고,
싫다싫다 하지만 결국엔 저도 빙의물을 좋아하는지라 그냥 포기했습니다.

결정적인건, 안티빙의물로 가버리면 오시즈가 하루나의 연애를 응원한답시고 강제 빙의 하는 사건이나,
저스틴에게 오타쿠가 빙의한 상황을 그저 웃으며 넘어갈 수 없게 되버려요~^^;

CloudAngel 님// 감사합니다^^ 저로서도 계속 써나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근데 글쓰는건 진짜 시간 잡아먹는 괴물이군요;

슬픈레퀴엠 님// 콧수염의 경우는 슬램덩크의 노구식에서 따왔습니다.(강백호 친구중 수염난 불량.)
턱수염은 추가로 생각했고요. 잔털처럼 입술 밑에서 턱까지 연결된 역삼각형의 수염이 잔잔히 나있는걸 구상했는데, 그냥 하리마 턱수염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흉악해 보이는 양아치 이미지를 19세 코믹의 모 컷을 잘라놨는데, 지금은 지워버렸네요-_-;
눈썹이 가늘고 눈이 작은것을 빼면 외모만으론 확실히 흉악!

지렁이 님// 아하하~ 감사드려요^^
글쓰는 분들이 리플먹고 산다는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휴트랑 님// 예. 불쌍하라고 저렇게 했습니다.
악당처럼 보이는 녀석이 오해받으면서 지내는걸 보는게 재밌죠.
그렇다고 퀘이사나 토우마처럼 진짜 죽을정도로 고생하진 않으니 주인공은 저한테 고마워 해야합니다.(뻔뻔)

에피고넨 님// 기타노 세이치로, 타카스 류지, 팬픽으론 네기마SS에 나오는 불의 귀신처럼 흉악해 보이는 외모로 착한일 하는 녀석들을 좋아합니다.
얘도 좀 그렇게 살면 좋을텐데요.
텐션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좀 고민입니다.
 
그러고보니 투하트2 팬픽으로 '세번째 주인공'이란 작품이 있었는데, 양아치 외모로 오해물이었는데 좀 재미있었지요.
사이트 배경화면이 좀 눈아프고, 후반부는 오해는 해결되고 할렘 전개로 가는듯 했지만 재밌게 읽었습니다.

카르나스필 님// 넵. 저도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뭔가 글쓰고 나면 분량은 찼는데 재미쪽 요소가 많이 떨어져서, 쓴걸 다시 뜯어 고치는 참상을 반복하는지라,
글을 맛깔나게 쓰시는 분들이 정말 부러워요.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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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자유창작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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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님// 트럭에 부딪치고도 다음날 등교할 스펙이 필요했기에 이렇게 되었습니다.-_-;
트러블에서 필요한건 힘이 아니고 여자애의 핀치를 구할 용기라지만,
역시 양아치 외모로 인해 벌어질 트러블을 감당할 육체는 있어야 하기도 하고...^^;

마오군 님// 아무튼, 지구인 한정하지 않고 평균을 낸 용신 나빠요.
뭐, 주인공의 이세계 트립 이벤트 회피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역시 만화 세상에서(그것도 러브코믹물) 물리학은 필요없습니다.

닷식스[......] 님// 덕분에 일창게로 오게 되었습니다^^;
좋은 평 감사드려요~
앞으로 재밌게 쓸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BlueGlass 님// 의식적으로 힘준 상태에선 우선 칼이 안박힐 정도는 되니 적당히 싸울순 있겠지요...?
직접 대치 이벤트는 되도록 피할 예정이긴 한데 상황이 되면 다시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뭐, 주인공이 나 최강! 이러진 않아요. ...정말이예요?

제스처 님// 말씀대로, 연재가 되었습니다.
아니, 흑역사 폴더에 작년에 1화의 절반만 써놓은 글을 찾아서 완성해서 올려놓고선 대뜸 연재할 마음이 들꺼란 생각은 진짜 못해봤어요 정말로.  

네메스 님// 즐거우셨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트러블은 제목 적을때가 참 난감해요. 트러블, 투러브, 투러브루, ToLove, To Love, ToLove루(일어) 어느걸로 적을지 막막하단 말이죠-_-;
결국 주인공이 말려드는건 '트러블'에 해당하므로 트러블로 했지요^^a;

광명군 님// 쓰다보면서 실력이 느는 경우도 있으니까 계속 쓰셨다면 재밌는 작품을 볼수 있었을거 같은데요^^
저도 우선 지르고 봅니다(...)

끝없는쉼 님// 앗,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작가분들도 초반부 설정 파트가 가장 의욕에 넘치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괜시리 일화에는 기합이 들어가게 되서...아하하^^;


Posted by 루트(根)
,
나는 이차원에 불타는 이단 옆차기



양아치에겐 소꿉친구 따윈 없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꿈을 꾸었다. 어두운 하늘에 거대한 용이 홀로 빛의 한가운데 떠있었다.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로 용은 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 소원이 무엇이냐?

"이상형의 애인을 만나고 싶어요."

- 무리

"뭐 임마?!"

드○곤볼의 용신보다 무능한 놈이었다.
물론 대드는 '나'도 정상인 놈은 아니었다.



"...그리운 꿈이구만..."
오랜만에 옛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용신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치던 모습의 '나'는 내가 보기에도 창피할 정도였다. 뭐, 스스로가 꿈속이라는 자각이 있었기에 더 그런 거겠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용신은 소원을 들어줬다.
문제는 '나'란 놈의 이상형은 현실이 아닌 이차원에 있었다는 거고,
용신이 '삼차원 인물의 이상형은 삼차원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할만큼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는 거였다.
결국 용신은 Neetueeeeee!(니트최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하나 갱생시키는 셈 치고 '나'란 놈에게서 이차원에 불타던 마음을 분리시켜 버렸다.
아마도 이후론 '나'란 놈은 '현실의 이상형'을 만나서 사랑을 하겠지.
'나'란 놈으로선 바라지 않았던 상황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용신은 소원을 이뤄주었다.
다만 그때 '나'는 '사라진 이차원에 불타던 마음'이 어떻게 됐는지는 생각도 안했을꺼다.
하지만 용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차원 오덕심(...)'도 결국은 '나'를 이루고 있던 '영혼의 일부'였고, 무엇보다 이차원에 덕질하던 연한이 꽤 길었기에 파생된 '영혼의 파편'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용신은 '삼차원은 삼차원에, 이차원은 이차원에' 라는 생각 아래에 그 '영혼의 파편'을 다른 차원, 내 생각에는 이차원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했다.
그게 바로 나.
대단해 용신~.
물론 위와 같은 사실을 알게된건 이세계로 태어난지 10여 년이나 지나서 였지만.

지금 와서야 소개하지만 내이름은 '아키츠 료스케'.
그리고 본의가 아니지만 양아치입니다.



맨처음 태어났을때 상황파악이 안되었던 나는 이것이 환생인가 싶었다.
다만 의문점은 난 전생에서 죽었던 기억조차 없다는 것과, 전생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거의 모든게 모호했다는 것.
오로지 인간관계와 유리된 기억들.. 지식이라는 이름의, 감히 추억이라고는 말할수 없는 기억들만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추억조차 떠오르지 않는 전생에 대한 고민은 태어나서 몇달이 지나고는 결국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기억조차 나지않는 전생에 대한 고민보다는, 지금 나를 안아주시는 부모님이 더욱 소중했으니깐.
...묘하게 오타쿠 냄새가 풍기는 기억뿐인 전생이 무서웠기 때문은 아니야 절대로!

자라면서 나는 어디에라도 보통으로 있는 아이로 자랐다.  
어린시절은 어린아이 답게 추억을 쌓으며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만의 추억을 위해서가 아닌, 자라나는 자식을 보는 부모님의 추억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자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마음은 육체에 따른다고, 어린 육체에 따라 마음도 덩달아 어려진것 같았기에 나는 위화감없이 어린 시절을 보통으로 보낼 수 있었다.

다만... 그러한 내 신조와는 별개로 내 삶은 꽤나 평탄하지 못한것 같았다.
뭐, 왠지 모르게 성질 더러워 보이는 눈매가 꼭 원인인것은 아닌데. 아니, 그 이유도 없진 않지만...
(무서우니 노려보지 좀 말라는 얘기는 자주 들었다.)
눈매를 제외하곤 나머지는 보통인 학생이었기에 나름대로 학교생활은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고 자신했다.

정작 문제는 내가 아니라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나서부터 내 주위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트러블에 있었다.
길을 걷다 신호등을 건널라 치면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트럭이라든가, 공사현장 근처에 세워진 철근 근처를 걸으면 어느새 철근이 눈앞을 스쳐 간다든가, 학교에서 놀다가 실수로 2층 유리창 너머로 떨어져 버린다든가.
특히 트럭이 가장 심했다.
대체 뭐냐고 그 말도 안되는 사고 발생률은!
그거냐? 이세계 트립 이벤트냐?
세상의 모든 트럭 운전자들이 졸음, 음주운전을 하는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심상치 않은 사건 조우때문에 언제나 6학년때부터 나의 등하교길은 살얼음을 걷는 느낌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불운을 피할순 없었는지 결국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시작후 며칠 뒤에 난 결국 트럭에 받혀 정신을 잃은채 병원에 실려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며칠뒤 꿈속에서 용신을 만났다.

아, 미리 말해두는데 이 세계에도 '드래○볼' 만화는 있더라.

끊이지 않는 교통사고에 대해 끙끙대던 중 꿈에 용신이 나왔다.
뭐랄까, 소원을 들어준뒤 돌이 되어 1년씩 잠들어 있는것도 심심하다고 우연히 상태를 보러 왔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전생이라고 생각했던 기억들에 대해서 진실을 이야기 해주었다.
요컨데 '현실의 어떤 사람의 영혼에서 분리된 이차원적 요소를 가진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레플리카(복제)'가 아니라 분리됨으로서 태어난 '새로운 영혼'이라는 용신의 장담은,
내가 전생자가 아니라 이 세계에 뿌리를 박고 태어난 존재라는 것에 확신을 주었고 난 거기에 안도했다.  
...이차원 오타쿠란 점은 인정 못하지만!

아무튼 최근 일어나는 사고들에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었던 나는 용신의 꼬리에 매달려 붙으며 현재의 문제를 고했다.
잠시 생각하던 용신은 말했다.

- 그건 이세계 트립 이벤트다.

"여, 역시...그런데 이세계 트립 이벤트는 왜 자꾸 발생하는 겁니까?
보통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고요!"

- 우선, 처음에 내가 현실에 있던 누군가에게 소원을 들어줬을때의 이야기부터 하도록 하지.
내가 그런 식으로 소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의 존재 자체가 이차원에 있기 때문에 삼차원의 현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수 없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나타나 소원을 물었던 이유도, 현실에서 구현화 될 순 없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삼차원 세계에 이차원의 인물을 구현하는 것도 불가능했기에, 결국은 그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이차원적 사고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소원을 이뤄줄수 밖에 없었다.
현실적인 이상형을 가지게 함으로써 간접적인 방식으로 소원을 들어줬다고 하겠지.
아무튼, 좋지 않은 표현이겠지만, 너는 그 현실에 사는 누군가에게서 떨어져 나와 탄생한 영혼이다.
그렇기에 이전 세상(현실)과의 연결고리도 적지 않아. 당연히 지금 사는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보통의 사람들보다 얇을수 밖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지금 너의 모습이다.

"제 모습요?"

- 지금 네모습을 봐라. 평범한 머리스타일, 현실에서 얇은 교우관계, 의욕없는 마음가짐.
이세계로 가는 거의 모든 트립퍼들의 특성은 그런 것이다.

"쿨럭..."

- 그들이 이계로 가서 고향에 대해 제대로 된 감상이나 가지더냐?
현실에서 진한 정으로 맺어진 친구가 있더냐? 그들이 가지는 현실과의 얇은 인연은 그들과 현실의 관계가 끊어지기 쉽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이들중에서 특히 너는 '영혼의 조각이 차원을 넘어 이세계에 구현된 존재'로서, 속성상 '트립퍼'와 비슷하기에 그런 이벤트가 집중하는 것이다.

"자, 잠깐만요! 그럼 전 대체 어떻게 해야하나요?
이런식으로 쉬지않고 교통사고를 겪다간 제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고요! 병원비도!"

- 빠른 방법과 느린 방법이 있다. 어느걸 먼저 들을테냐?

"급한 불부터 끄게 빠른 방법을 먼저 부탁드립니다!"

- 간단하다. 외모를 바꿔라.

"네?"

- 평범함이 이계로 가는 조건이라면 평범함을 버려라. 간단한 얘기지.

"어, 어떻게 바꿀까요?"

- 염색하고 머리, 콧수염, 턱수염, 구레나룻 길러. 담배도 펴. 효과 즉빵이지.

"자, 잠깐만? 어째서 그렇게 되는겁니까!"

- 찌질이나 일반인도 아니고, 담배피는 양아치가 이계로 간다는 얘기따위 못들어봤다.

"......그럴싸한데?"

- 그치?

"근데 적어도 담배는 금연담배로 좀 봐주세요...전 건강매니아라구요."

- 그거야 담배를 물고만 있든지, 금연 파이프를 쓰든지 알아서 해. 우선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게 보이면 되는거니깐.

"...부모님이 우시겠는데요..."

- 알까보냐. 네가 잘 설득해.

"...넵. 우선, 빠른 방법부터 시행하도록 하죠. 진짜 급하니까...근데 전 아직 초등학생이라 수염 같은건 안날껀데요?"

- 사춘기 좀 빨리 오게 해줄께.

"...고마워 해야 하나요?"

- 아니.

"암튼, 그럼 느린 방법은 뭡니까?"

- 사람들간의 인연을 강화시켜라. 너와 현실을 이어주는 끈이 될테니.

"저기, 그런데 양아치가 되면 그방법은 제대로 못쓰잖아요? 무서워서 사람들이 오기나 하겠습니까."

- 악연도 인연이지.

네?

- 사람들이 무서워하다보면 악명도 높아질테고 그만큼 인연도 강화되겠지.

...썩을...

- 아, 한 10년쯤 지나면 적당히 인연도 쌓였을테니 양아치 외모 그만둬도 된단다. 고맙지?

아 네...

"음, 그런데 갑자기 떠올랐는데 말인데요. 만약에 재수없이 이세계 트립 이벤트 때문에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또 딴세계로 가나요?"

왠지 날 쳐다보는 용신이 비웃는것 처럼 보였다.
 
- 네 영혼은 소위 말하는 '현실의 너자신'의 일부로 흡수되겠지. 지금의 네 자아는 소멸하고.

...괜히 물어봤다.



그때 나에게 다른 선택사항은 없었다.
악명을 얻어도 결과적으론 인연이 강화되는거니까.
부모님께는 꿈에서 나온 신이 지혜를 알려주셨다고 어떻게든 설득에 성공했다.
사실 설득력은 눈꼽만큼도 없이 두서없는 아이의 말이었지만, 심상치 않은 사고 횟수속에서 부모님께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셨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공부는 제대로 할테니깐 그렇게 울지는 마시라고요...

그리고...

금발로 염색하고, 헤어밴드로 뒤로 넘긴, 어깨까지 오는 머리.
송충이 눈썹에 쭉 찢어진 삼백안.
콧수염과 턱수염, 추가로 구레나룻.
상의 포켓에 들어간 담배갑.(불도 안피고 씹는 용이지만)
그때까지만해도 눈매 사납지만 무난한 학생이었던 내가 열사람이면 열사람이 양아치라고 인정할 외모로 바뀌어 버렸다. 제길.

그나저나 과연 용신이랄까, 수염난 초등학생이라니... 진짜 할말이 없었다.
 
놀랍게도 외모를 바꾸고 난 뒤 교통사고는 없어졌다.
부모님께선 기뻐하시면서 우셨다.
하지만 외모만 바뀌었다 뿐이지 내면은 여전히 변함없었기에 나는 여전히 평범한 아이였다.



아무일도 없었다면 말이다...

누가 말했던가.
스탠드사는 스탠드사를 부른다고.
동류는 동류를 부른다.
내가 동족혐오를 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초등학교 겨울방학때 교통사고후 양아치 스타일로 바꾼지 얼마 뒤,
기분좋게 자고 일어났더니 내 몸을 다른 영혼이 차지 하고 있었다.
하는 꼴과 대사를 보니까 딱 빙의캐릭이었다.
모르는 천장이라느니, 교통사고 당하고 깨어났더니, 양아치따위에 빙의했느니,
나노○니, 네○마니 사망플래그 운운을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란 소리를 해대는게 꼴사나워서 욕을 퍼부우면서 쫓아냈다.

현실세계로 돌아갔을테니 병원에서 "모르는 천장이다" 따위의 말이나 하라그래.

게다가 쓸데없이 오덕스러운 지식들만 머릿속에 가득 들어와 버렸다.
...공부도 좀 해 임마.



아무튼 용신도 역으로 빙의당하는 경우는 생각못했던지 부랴부랴 꿈에 나와선 대책을 알려줬다.
상냥함에 눈물이 나왔다.
그나저나 자주 만나네.
용신도 참 한가하구나...

용신의 대책은 두가지였다.

첫째는 귀신을 쫓는 액막이용 귀금속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것.
금이나 은붙이를 권장하길래 금색 목걸이와 금색의 체인형 팔찌를 추가로 구입했다.
진짜로 빼도 박도 못할 날라리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였다.
튼튼한 육체속에서 영혼도 튼튼해져서 그러한 빙의 현상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가질수 있다는 것이다.
용신이 나의 몸의 잠재능력에 대해 말하길, 용신 자신의 세계로 치면, 지구 사람들의 평균 육체스펙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쉽게 말해서 평균이다 이거군요.

그때부터 시작된 부단한 운동.
여러모로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다이나믹한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육체의 바보같은 스펙을 깨닫게 된건 겨울방학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이젠 전처럼 '이계 진입 플래그' 위험이 잦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통상적인 사고 위험 발생률은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길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돌진해오는 트럭을 보고는 '세상은 언제나 이렇게 되지말아야 할것으로 가득차있다...'라는 감상 따위를 하며 반쯤 해탈한 채 부디 살아남기만을 바라며 트럭과 충돌했다.

그리고, 끔찍한 굉음과 함께 멀리 날아갔다.



...트럭이.



황당해하는 나와 경악해하던 보행자들.
정신을 차리고 급히 날아간 트럭의 운전수 아저씨를 구조해내고 구급차를 불러 보냈다.
괜찮냐며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물음에 나조차 얼떨떨한 상황인지라 적당히 얼버무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가만히 침대에 걸터 앉은 난 머리를 움켜쥐었다.



용신씨...당신, 평균스펙 계산할때 손○공도 넣었지?



크○링이라든가, 야채왕자님이라든가, 인조인간씨라든가, 마인 부○ 라든가.

그게 아니면 이 말도 안되는 스펙은 설명이 안된다.
초등학생주제에, 그것도 한두달의 운동따위로 터무니없는 스펙으로 되어버린 내 육체에 대해선 놀라움을 넘어 비현실감마저 느껴진다.
뭐랄까, 세토의 신○에서 나가스미가 세기말 구세주로 변신한 수준이랄까...이해를 넘어선 변화였다.
근육량에서도 말이 안되잖아!
아니, 그전에 운동량 보존 법칙 부터가 안통해!
사람과 트럭이 부딪혀서 트럭이 날아가는게 어딨어?

이제서야 내가 사는 세계는 이차원이었다고 실감하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딱히 싫어지는것도 아닌데.

우선, 장래 희망에서 물리학자만은 빼도록 하자...



교통사고로 시작한 겨울방학을 교통사고로 마무리한 나는 개학후 당연하게도 등교를 했고, 그결과 엄청난 시선을 받아버렸다.
눈매가 더러워서 은근히 성격나쁜 녀석으로 생각되었던 것에서, 이제는 빼도박도 못할 양아치로 인식되어 버렸다.
애초에 초등학생 주제에 수염에 염색에 목걸이에 팔찌(체인형)라니, 게다가 누가 봤는지 모르겠지만 평온안 하루를 기원하며 피지도 않는 담배를 질겅이던것도 학생들 사이에 퍼져 버렸다.
선생님들께는 횡액을 당한 뒤 액을 피하기 위한 외모라고 나와 부모님이 함께 설명을 드려서 납득을 시켰다지만...(그나마 정말로 납득하는 분들은 적어보였다. 교통사고 당한건 이해하셨지만.)
그리고 이후 초등학교 졸업때까진 변변한 친구들 조차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울지 않는걸.

그 상태로 중학교까진 고난의 연속이었다.
선생님들을 설득시키는건 그나마 쉬운 편이었다.
초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성적 자체는 매우 우수한 편이었으니.
다만 중학생 녀석들 사이에선 완전히 양아치로 찍혀서 접근해오는 아이들조차 없었다.
아니, 있긴 있었다.
중학교 입학당시 소위 논다는 녀석들이 무리에 동떨어져 보이는 나에게 시비걸듯이 접근한 적이 한번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대면한 순간 나도 속으론 두근두근 했다.
힘이야 가지고 있지만, 난 원래 양아치도 아닐뿐더러 그런 인종들과는 연관도 없다고!
...문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그녀석들이 어마 뜨거라 하며 달아나버린것에 있었다.
같은 불량아들도 도망갈 흉악한 놈.
나의 이미지는 입학 첫날부터 그렇게 고정되고 말았다.

결정적이었던건 무슨 헛소문을 들었는지 중학생들 주제에 다른학교 캡틴을 잡는답시고 단체로 날 잡으러 온 사건이다.
중학생이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
무슨 중학생이 세기말 폭주족 버전에 각목이랑 체인을 들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거냐?
이 세계의 교육은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지만 아무리 쫄았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사기성 육체를 가진 나.
돌진해오는 오토바이를 한손으로 잡고 멈췄을땐 내가 생각해도 현실감이 없었다.
이래저래 애들을 상처가 적도록 조심스럽게 집어던지고 다들 바닥에 눕혀버린뒤 점잖게 타일렀다.
학생은 학생답게 얌전히 놀라고.
그때 내 말을 듣던 녀석들의 얼굴 표정이 정말 묘한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는 표정...
그렇다고 해도 한손으로 오토바이를 들어올리면서 협박한건 어른스럽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음...
나중에 듣기론 그녀석들 세기말 폭주족 스타일을 그만두고 보통의 학생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잘됐군 잘됐어~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한참 뒤에 내 귀에 들려온 소문에 난 머리가 아팠다.

가라사대, 100명의 불량배와 싸워 이겼다느니(중학생 20명이었습니다), 한손으로 오토바이를 집어던졌다느니(수리비가 무서워 안 던졌습니다), 하나야마 2세라느니(바○? ○키 입니까?), 100명의 여자와 잤다(마지막 소문 누구야?)따위의 소문이었다.
특히 싸움과 관련해선 뭔가 과장이 엄청나게 심하게 된 감이 적잖아 있었다.
알고보니 그때 싸움당시에 '학생은 학생답게 놀아라'는 말을 '자신은 일반인과는 다른 야쿠자니까 건들지 말아라'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나보다.
진짜 깡패들의 세계는 자신들이 살 곳이 못된다고 깨달았다나.
소위 착각계라는 거군요. 압니다.

그런데 다른 소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소문에 따르면 전 완전 인간 쓰레기군요...
중학생인데 100명의 여자를 따먹었다는 거네요.

덕분에 여학생들 사이에선 두려움 이외에도 때때로 경멸섞인 시선을 받게 되어 울고 싶었다. 흑...

양아치 스타일을 버릴수 있을 만큼의 인연이 쌓이기까지(대략 22세) 갈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추가로 말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공부했더니 3학년 말에 와서는 '엘리트 야쿠자', '후계자 수업중인 야쿠자 2세'라는 호칭이 추가로 생겼을 따름이다.
너무합니다.



그리고... 친구 하나 없이 조용히 지나가버린 중학교 시절은 끝나고 결국 오늘이 왔다.

바로 고등학생으로서 맞이하는 첫날!

처음에는 그냥 검정고시로 대학으로 바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22세가 되기 전까진 이 외모로는 취업도 못하니 착실히 정규 코스를 밟기로 결심했다.
고교생활 만큼은 보람있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내가 이 세계에 태어난 이유도 그놈의 이상형의 애인 타령이었으니,
적어도 학창시절이 가기전에 좋아하는 아가씨라도 한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뭐, 순도 100% 양아치가 고백해서 성공하거나, 오히려 고백받거나 한다면 그게 기적이니 고백까지 바라진 않습니다만...

아무튼, 고교 첫날부터 이런 우울한 기분따위를 가지면 안되지.
얼른 식사 준비를 해야겠다.
지금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두분다 직업을 갖고 계셨는데 승진과 관련되어 두분 다 해외출장을 가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갓 고등학교를 들어가게 될 나를 걱정하셔서 해외 출장을 보류하려시던 두분이지만,
혼자 생활하는데 필요한 '지식'도 있고, 내가 고등학교때까지 부모님이 국내에 계셔도 속앓이만 하실것 같았다.
이미 중학생 야쿠자 전설은 내가 살던 곳에선 꽤 유명했기에 그걸로 학부모 모임 같은 곳에 가시는 부모님께선 항상 불편한 시선을 받으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나도 함께 해외에 가지 않을까 하는 부모님의 제안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고 위협적이지도 않지만 엄연히 '이세계 진입 이벤트'를 실제로 겪고 있는 나다.
확률은 낮지만 비행기 사고로 차원이동은 웃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런 사고는 부모님과 더불어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목숨도 걸린 일이라고.
결국 난 혼자지낼 원룸을 구해서 사는것으로 하고, 부모님께선 1년 내로 돌아오신다고 하셨다.

쓸데없는 과거 회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아침식사가 끝났다.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건 이제 적당히 접어두고 어서 빨리 나가야겠다.

방범대책으로 거실 불만 켜둔채, 서둘러 문을 나서며 속으로 학교까지의 약도를 떠올렸다.
내가 다니게 될 고등학교의 이름은 '사립 사이난 고교'.
부디 고등학교에는 좋은 만남이 있기를.



학교에 도착하자 우선 반 번호를 확인해본다.
어디보자...1-B 인가.

학교들 돌아다니는 도중에 내가 가까워지자 기겁하는 학생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나랑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피하는 학생들의 모습이야 평소의 일이지만... 역시나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나에게 가까워 지는 이는 대부분 주먹부터 날려대는 깡패들이었으니 중학교 이후 친구 없음, 이랄까...
나중에는 그 주먹도 사라졌지만. 아, 물론 아쉽진 않습니다.

나지막히 한숨을 쉬며 나는 터덜터덜 1-B를 찾아 걸어다녔다.

천천히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금발로 염색해서 헤어밴드로 뒤로 넘긴, 어깨까지 오는 머리.
쭉 찢어진 삼백안.
송충이 눈썹, 콧수염, 턱수염, 추가로 구레나룻.
상의 포켓에 들어간 담배갑.
금색 목걸이와 금색의 체인형 팔찌.

어디를 보건 빼도박도 못하게 양아치군요. 감사합니다.
금발 염색만 아니었다면 완전히 구시대 강경파 불량배였을 겁니다.

기타노 세이치로군, 타가스 류지군. 전 지금 절실히 당신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면 당신들과 고뇌를 함께 할수 있을것 같아요...

적어도, 대화로부터 시작되는 첫 친구를 가지고 싶습니다 안선생님...



어느새 도착한 1-B의 입구에 선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다.
떠들석한 소리가 들리던 교실은 내가 발을 딛는 순간 고요함에 휩싸였다.
...뭡니까 이상황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지매지요 이거!
아무튼, 대개 평범한 급우들과의 첫만남은 이런식이군요.

나름대로 신경쓰지 않도록 조용히 구석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조용히 학생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 대체 뭐야?)"
"(양아치 아니야?)"
"(금발에 수염? 터무니 없어.)"
"(목걸이에 팔찌까지 있는데?)"
"(이봐, 저녀석 그놈이라고. 아키츠 료스케.)"
"(어? 너 저녀석 알아?)"
"(알다마다)"

...응? 내 이름을 아는건가? 난 저 친구는 처음 보는데?
호기심에 잠시 귀를 기울인 나는 이내 후회했다.

"(100명의 불량배를 때려눕힌 진짜 양아치라고.)"
"(에엑? 그 미친 양아치?)"

...듣지 말걸그랬습니다.

그런데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자의식 과잉은 아니라고 평소부터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저에 대한 소리겠지요?

"(소근소근... 중학교 때 100명의 여자랑 잤데.)"
"(...최저)"
"(쓰레기)"
"(짐승)"

...세상의 각박함에 눈물도 안나오는 군요.
대체 누군가요 저 사실무근의 헛소문을 처음 퍼뜨린 녀석은?
그런 타이틀은 상○2인조의 영길이만 가질거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습니다.

악명은 착실히 쌓이고 있으니 '인연'이 깊어진다는 점에서는 기뻐해야 하는데 기뻐할수 없는 내가 있군요.
사람들간의 인연을 '악연'말고 쌓을수 있었던건 부모님밖에 없는게 아닌가 생각하니 참 할말이 없네요.
...지금이라도 헤엄이라도 쳐서 부모님이 계신 해외로 갈까?

허황된 망상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앉아있는 도중, 내 눈앞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체크무늬 치마... 여학생?
양아치 스타일로 바꾼 이후 정면에서 마주한적 없는 여학생이란 존재에 순간적으로 의아함을 느끼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눈에 들어 온 것은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에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몸매.
목근처에 맨 초록색 리본과 갸름한 얼굴 모양. 그리고 약간 치켜뜬 눈썹과 드세 보이는, 하지만 올곧아 보이는 눈동자.
처음으로 보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

아름답다...

강인함이 느껴지는 그 여학생의 눈이 순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놀라며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용무라도?"

순간 여학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이건 화났군.
뭐라 할말을 더 생각하기도 전에 여학생의 입이 열렸다.

"당신, 지금 그 모습을 하고도 그렇게 묻는건가요?"

...아.

"도대체 뭔가요 그런 모습? 이상하게 보인다고요."

신선하군. 정면에서 이걸 물어본 사람은 처음이네...
몇년동안 보지 못했던, 나를 마주하는 당당한 눈빛에 당혹감을 느끼며 나는 어떻게든 반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쩍 주위를 바라보니, 소근거리던 남녀 학생들 모두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감한데 저 여학생...)"
"(위험한거 아냐?)"
...우선은 뭐라도 말을 꺼내서 나에게 해의가 없다는 의사 표시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데...뭐라고 변명을 해야하지?

"에, 그러니까... 내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

이세계 진입, 역빙의(逆憑依) 플래그를 꺾고 이 세계에서 살기 위한 대응책이니까.
하지만 내 변명은 역효과였나보다.
오히려 여학생의 눈썹이 찌푸려 졌으니까.
 
"어째서 영어? 그전에 학생의 정체성은 단정함이지 그런 불량한 모습이 아니에요."

태클도 걸줄 아는군...
그전에 내가 의도한 정체성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나'이지만, 그걸 설명할수도 없고 이것참...

"에...하지만 사람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학생에게 그런 모습이 허용된다고 봐요?"

그렇게 따지면 정말 할말이 없다. 그녀의 말은 정석이고 어떻게 봐도 난 불량학생이니까.
하지만 나도 좋아서 이런 모습인건 아니니까 좀 봐주세요.

"하, 하지만 난 머리랑 수염을 깎으면 큰일난다고."

한심한 내 변명에 결국 참다못한 여학생은 폭발했다.

"당신이 무슨 삼손인줄 알아욧?!"

"(움찔)큿...!"

무...무서운데? 외모만은 야쿠자에게도 안꿀린다고 장담하는 내 앞에서 저렇게 달려드는 사람은 또 처음이군.
그나저나 삼손이라. 흉악범이니 야쿠자니 하는 악질적인 별명만 듣다가 저런 센스있는 호칭을 얻으니 신선한 느낌이 든다.
음, 이 아가씬 혹시 문학소녀?

"(굉장한데 저 여학생)"
"(저 흉악한 불량이 밀리고 있어)"

음, 동감이다. 진짜 대단한 아가씨다 이 여학생은.
두려움 보다 자신의 의지를 보이는게 쉬울리가 있나.

아무튼 날 째려보는 여학생과 말이 궁색해져서 침묵해버린 나 사이의 대치는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면서 종료되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그런데...아까 그 여학생, 바로 내 옆자리잖아?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겠어요.(소근)"

"...아무쪼록."

아무래도 일년동안은 이 당찬 아가씨의 등쌀에 시달리는 생활을 해야할듯 하다.
적어도 말을 건네오는 학생(그것도 여학생)이 생겼다는 것과 좀 시달릴것 같다는 것 때문에 미묘한 느낌을 받고 있는 사이에 선생님께서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시키셨다.

아까의 대치 이후로 분위기가 많이 완화된듯 학생들도 무난히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음, 이 여학생에겐 고맙다고 해야하나.

어느덧 내 차례가 와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교실을 감싼 정적.
...이제와서 이러깁니까...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나름 호의를 내보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키츠 료스케입니다. 사정이 있어서 본의 아니게 이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만 성실하게 지내려는 학생입니다. 한해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도 안된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눈길들이 보이지만 무시하자 무시.
자기소개를 끝내고 잽싸게 자리에 앉았다.

"(성실한 불량이라니 들어본적도 없어)"
"(애초에 100명의 여자와...)"

...부탁이니 헛소문은 그만. 특히 마지막 꺼는 제발.

그리고, 차례가 지나고 지나서 내 옆의 여학생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코테가와 유이입니다. 단정한 학급 생활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해동안 잘부탁드립니다."

비할데 없을 만큼 열광적인 박수가 들려왔다.
아까전의 대치가 임팩트가 컸나보다.
과연, 믿을수 있는 위원장이라는 느낌?

그나저나...코테가와 유이라면, 트러블에 나오던 그 아가씨인가?
우리반엔 유우키 리토도, 사이렌지 하루나도 없는데?
하지만 동명이인치곤 정말 닮았네...

...하나만 확인해볼까?

"(저기, 코테가와씨.)"

"(뭐죠?)"

째릿, 하고 날 쏘아보는 게 아직까진 나에 대한 평가는 불량학생에서 바뀌진 않은듯 싶다.

"(음, 혹시 여성편력이 심한 오빠가 있어?)"

"(무, 무슨?)"

아, 놀라서 눈망울 흔들리고 있다고 코테가와...

"(형제는 오빠 하나뿐이지?)"

"(어째서 그런걸 아는거죠?!)"

...진짜 그 코테가와가 맞는거 같구만...

"(아니, 아무래도 너무 올곧달까, 그렇기에 좀 손이 가는 오빠가 있을꺼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당신, 의외로 날카롭군요.)"

"(칭찬 고마워.)"

아무튼, 이 차원이 트러블과 연관되었다는 건 확인했다.
어째서 이반에 유우키 리토와 사이렌지 하루나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반으로 갈라졌을수도 있고, 그네들이 다른 고등학교에 갔을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나와 코테가와만이 원래 학교와 다른 이 학교에 왔을 수도 있다.

확실한건 이 세상은 내가 기억하는 세상들 중에서도 손으로 셀수 있을만큼 평화로운 곳이란 거다.
데빌루크 쪽 팔불출 아버님께서 지구파괴 운운하는건 웃을수없는 개그성 멘트지만.
아, 라라가 기합으로 태풍의 궤도를 바꾼 일도 있었나...
데빌루크 성인 대단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자기 소개가 끝나고, 반장을 뽑기 위해 지원을 받겠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입후보 할 사람 있습니까?"

"네!"

손을 든 이는 코테가와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저 아가씨, 천생 위원장 타입이군.
다른 여학생들은 지원하지 않는데...역시 아까의 대치가 확실히 임팩트가 컸나.
떠맡는걸 귀찮아해서 지원하지 않는것도 있는것 같지만,
불량배(가짜) 상대로 당당하게 대응하는 사람도 정말 드무니까 여자애들이 뭔가 고무적인 눈매로 응원하는 느낌이 든다.

결국 단독 지원으로 여자 위원은 그녀로 결론 지어졌다.

남자위원은 지원자가 없어 선생님께서 임의로 정하셨다.
그후, 대략적인 절차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고교에서 보내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기지개를 폈다.

트러블에서 보았던 사람을 만나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며,
고교 생활을 제대로 보내려는 의욕이 솟아 올랐다.
약간 분홍빛 나는 사고라든가 때로는 용기가 필요한 위험한 상황도 있지만,
변화없이 무료한 일상에 질린 학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그러한 돌발적인 악센트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시절을 삭막하게 보낸 나라도,
파격적인 활발함과 애정행각이 벌어질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이 고교에서라면,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고, 사춘기 소년 나름대로의 사랑도 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옆에 앉은 소녀, 코테가와를 바라본다.
올곧고, 그만큼 행동으로 실천하기에 조금은 시끄러운, 하지만 실은 상냥하고 부끄러움을 잘타 솔직하지 못한 매력이 있는 아가씨다.


"...뭘 그렇게 쳐다 보는거죠?"

약간 이상한듯한 표정으로 갸웃하며 코테가와가 물었다.
네 마음씨를 떠올리고 있었다고 말하기엔 솔직히 부끄럽다.

"...그냥, 일년동안 위원장 수고해랄까."

소망컨데, 내가 고교시절 안에 좋아하는 아이를 만나길 바라는 만큼, 저 솔직하지 못한 아가씨에게도 당신을 이해해줄 상냥한 만남이 있기를.

코테가와는 잠시 침묵하더니 살풋이 미소 짓는다.

"고마워요. 내가 위원장의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응원해줄래?"

이건 또 의외다. 양아치 외관의 나에게 잘도 그런 의지되는 말을 해주시는군.
먼저와는 달리 이럴때 솔직히 말하지 못하면 소심한 놈이지.

"아, 물론. 내가 도울수 있는거라면 도와줄테니까."

이건 진심이다. 조금은 반친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좋은 이미지를 주며 위화감을 줄일 기회이기도 하고,
나 개인적으로도, 올곧지만 너무 똑 부러지는 경향때문에 혹시라도 코테가와와 학생들의 사이가 벌어지는 걸 막고 싶기도 하니까.
왠지 주변 학생들이 웅성거리는걸 보면, 내가 말한게 그렇게 의외였나보다.
아니, 강경파 양아치라는 말을 소근거라면서 납득하는 것들은 또 뭔가.
이거 이미지 상승? 미묘하다...

"(벌써부터 101명째 타킷을 정한건가?)"
"(헛?!그 발상은 없었다!)"
"(고교시절에 200명의 여자와 자는걸 이룰 셈인가.)"
"(그나저나 위원장 같이 당돌한 여자애가 타입인가.)"
"(분명 당찬 여자애에게 오히려 불타는 타입이야.)"
"(최저)" "(짐승)""(코테가와씨 힘내!)"

어째서 더 악화되었어?!
대체 어째서냐! 왜 이런...
...뭐,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인식을 고쳐나가기로 하자.
내가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인식이 바뀌는건 아니니까

코테가와는 내가 도와준다고 까지 말한것이 약간 의외란 듯 바라보다가,
수근거리는 소리에 얼굴이 빨개진채로 째릿하며 날 노려보다가,
잠시후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기뻐요. 아키츠군. 그런 의미에서 위원장으로서 반을 위해서 협조를 부탁해도 될까요?"

과연 코테가와. 트러블 주연으로 나온 만큼 아무렇지도 않은듯 대하는게 훌륭하군.
그 당당함을 존경하며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하하...벌써부터 의욕에 넘치는구나 코테가와는. 그래서, 어떤일을 도와줄까?"

코테가와의 미소가 짙어졌다.
아, 역시 미인이다. 역시 여성은 웃을 때 더 빛나는구나.
...어,음...
왠지 보는 이를 안심시키는 미소가 아니라, 뭔가 비틀린 미소같아서 솔직히 조금 불안하다.
예쁘지만 왠지 날카로워 보이는 미소를 띄운채 코테가와는 입을 열었다.



"외모를 단정하게 하세욧-!"

"거절한다!"

고교 첫날. 희망을 가슴에.
낯선 친구들과의 첫만남은 그렇게 소란스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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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러님의 축전을 1화 삽화로 추가했습니다.
축전을 올려주신 터틀러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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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묘사가 어색하다면, 써놓고 1년뒤에 다시 이어 써서 그렇습니다.

2편은 끄적이고 있는데, 글쓰면서 생각하는거지만, 글쓰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모자란 재주를 긁어모아 글한편 쓰고 나면 반나절이 지나있어요...-_-;

추가된 사항은, 집을 나서기 전에 방범대책으로 거실의 불을 켜놓고 간것과,

일부 공손한 어조의 묘사를 몇개만 수정.(내면 심리와 주변 묘사때 어조가 다르다보니 이상해서 앞으로는 해요체를 절제하고 하다체로 하기로 함.)



p.s.1. 주인공 설정

A: 그러니까...얼굴은 그냥 평범하게...
B: 닥쳐! 어차피 잘난것도 못난것도 아닌 얼굴이다라고 묘사해봤자 작중에선 티도 안나잖아!
남자는 얼굴이야 얼굴!
A: 그럼 꽃미남으로 할꺼냐?
B: 뭔소리! 남자는 역시 터프해야지! 야쿠자도 울고갈 얼굴로 만들어주마!
A: ...
B: 우선, 야쿠자도 울고갈 더러운 눈매.
   ...이거 타가스 류지놈 닮지 않았냐?
A: 그러네...
B: 쳇, 원래 컨셉은 기타노 세이치로 였지만, 남자라면 눈썹도 굵어야지!(송충이 눈썹으로 그린다)
A: ...
B: 눈매(삼백안)와 눈썹(송충이)은 됐고, 미소는 기타노 기타노를 따르도록 안면근육배치.
B: 그리고 머리는 머리띠로 올백, 길이는 어깨위까지, 금발염색. 귀걸이랑 목걸이 추가.
귀찮으니깐 머리풀면 대강 요츠바 아빠 스타일로 된다고 하자.
B: 그리고 구세대 양아치 처럼 콧수염과 턱수염, 구레나룻도 추가다!
A: 제발 그만둬;
B: 그리고 담배 경력 3년.
A: 미친, 초등학교때부터 폈다고 할생각이냐! 그리고 SS에서 담배피는 청소년 주인공따위가 어딨어!
B: 양아치면 펴야지! 그럼 1년으로.
A: 건강 매니아주제에 담배에 대한 무슨 환상이라도 있는거냐! 들고만 다니는걸로 할꺼야!
B: 췌...

B: 육체스펙은 보라급.
A: 보라?
B: 카린의 탑(드래○볼)을 지키는 사람. 우파네 아버지. 총알도 안박히는 아저씨말야.

A,B : 종합하자.
터프한 얼굴에, 삼백안, 짙은 눈썹, 콧수염, 턱수염, 구레나룻, 금발올백에 귀걸이와 목걸이, 헤어밴드, 담배갑.
육체는 보라급.

(귀걸이의 경우 잘못하다 손가락에 걸리면 보통은 귀가 찢어질수 있으므로 본편 설정에선 제외되었습니다.
주인공이라면 안찢어지겠지만서도...)


p.s.2.

작중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단 하나입니다.

동류는 동류를 부른다.
(스탠스사는 스탠드 사를 끌어들인다.)

이것은 거의 모든 만화책들의 진리입니다.

- 초밥왕에서 주인공의 일이 초밥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만남들만을 가집니다.
- 코난은 탐정 사무소에 있기에 맨날 사건을 접합니다.
- 세일러문은 지구의 여황제라서 항상 지구를 노리는 적들과 마주합니다.

주인공들이 만나는 만남들은 주인공이 가진 특성(예:직업)과 연관되어 일어납니다.
(다만, 특이하게 벌어지는 만남들은 말그대로 우연이라 하겠지요.)

예를들면 아래와 같은 식의 만남입니다.

싸움을 하다가, 체육관장으로 부터 권투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든가,
권투를 배우며 지내다보니 일보나 마모루를 만나게 되었다든가,
깡패들과 다투며 지내다 보니 미츠하시나 이토, 사토시가 나왔다든가,
묘하게 오해를 받아서 두려움을 받는 인생에 괴로워 하다보니, [오해받는 사람들 카페]에 가입하게 되고, 정모에서 기타노 세이치로나 타카스 류지를 만난다든가.

대개의 사건과 만남들은 사람들간의 사소한 동질성에서부터 만들어 지는 우연들이 겹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존재함으로 인해서 세계에 영향을 준다느니, '세계의 의지'니 '세계의 수정력' 같은 설정은 없습니다.
제가 이해 하지 못하는 개념을 쓸순 없는지라.

이 글의 주인공 아키츠 료스케가 이차원에 태어난 이유는 단지 우연이었지만,
태어난 이후 '차원이동 이벤트'를 겪게되는 이유는 '지금 살고있는 세상에서의 인연이, 현실이라고 불렸는 곳에서의 인연보다 얇기 때문'이지
'세계의 불규칙'이라든가 '세계의 수정력', '세계 의지'같은 의미불명의 이유가 아닙니다.
내가 이 세계에 있으면 남자애가 여자애로 태어나고, 미국이 러시아에 원폭을 가하고, 지구에 혜성이 떨어져 멸망하기 때문에 세계가 수정력을 가하고 있다 따위의 전개는 하고싶지 않아요(...)
존재도 모호한 세계를 원망하는건 신을 원망하는것 만큼이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니까요.



p.s.3. 하루나와 리토는 1학년때는 코테가와와는 다른반이었습니다.
하루나와 리토는 1-A에 있었고 하루나가 반장이었습니다. 코테가와는 1-B에서 반장을 했지요.
아키츠 료스케는 트러블은 적당히 스토리는 압니다만, 순서는 모릅니다.
트러블의 이야기는 순차적 진행이라기 보다는, 옴니버스식 전개이기 때문에 더욱이 그럴수 밖에요.
학교 이름도, 조연들의 이름도 잘 기억하진 못합니다.
직접 부딪쳐 알게되는거죠.

뭐, 사실 글쓰기 전엔 저도 몰랐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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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사이나 고교 (정발판)사립 사이난 고교 (번역판)
미캉네 선생 - 닛타 하루코
이야기 시작 때의 미캉 - 11세(5학년)

1-A 유우키, 하루나 (1-A 반장)
1-B 코테가와 유이 (1-B 반장)

2-A 같은반

남자반장 전 1-A 위원 마토에 아게루
여자반장 전 1-A 위원 사이렌지 하루나

사루야마 켄이치 - 리토친구

모미오카 리사 - 금발조연
사와다 미오 - 안경트윈테일

텐죠인 사키

쿠죠 린 - 검도소녀
후지사키 아야 - 안경장발

미카도 료코 - 보건의 선생

교장 - 이름모름

호네카와 선생 - 노인선생님 담임

기드 루시온 데빌루크 - 라라아버지

사이렌지 아키호 - 하루나 언니

오시즈 - 유령


Posted by 루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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