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동네 야쿠자들의 패싸움 소문이 퍼진 이후 며칠간,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날따라 늦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어둑해진 골목길 앞에서 젊은 아가씨 한명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집에 돌아가 세탁물을 돌릴 걸 생각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아가씨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더니,
별안간 걸음이 빨라졌다.
온몸이 긴장한 듯한 느낌으로 뻣뻣이 잰걸음을 옮기는 아가씨를 보고 내심 실수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저 아가씨가 생각하고 있는 게 대강 짐작이 간다.
아무튼, 어둑한 밤길을 홀로 걷는 여성이 뒤에 선 남자를 경계하는건 당연하다.
안 그래도 최근에 난 흉흉한 소문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시점인데,
거기에 더해서 뒤따라오는 남자가 험악한 인상의 수염난 금발 양아치라면 경계도가 최대로 높아지는건 당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려나...

첫째, 추월한다.
기각. 추월하려다가 오히려 더 겁을 줄 위험이 심대하다.
비명을 지르지나 않을지 걱정이므로 제외.

둘째, 건물들을 뛰어넘으며 지나간다.
기각. 평범하게 가고 싶습니다.
「뭐든지 초상(超常)의 힘에 의지하고 있으면 타락할 뿐이니까」라는 네기○몽의 말을 좋아합니다.
잘 지키지는 못한 편이지만.

셋째, 걷는 속도를 늦춘다.
가결. 그저 발걸음을 늦추고 저 아가씨가 안심할 만큼 멀어질때까지 느긋하게 걸어가도록 하자.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가다보면 적당히 떨어지겠지.
조용히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

「...누군가를 위해서 강해지도록 해
...보고 있기만 해선 시작되지 않아
이것이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괜찮아
그저 그것만 할 수 있다면

「꺄악!」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놀라 앞을 바라본다.
왼쪽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섰던 방금 전의 아가씨가 놀란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것이 보인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이어폰을 빼자 희미한 신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긴장하며 옆으로 샌 골목길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들어온 광경에 맥이 탁 풀렸다.

「끄응...」
「우우...」

얼굴이 떡이 된 채로 널부러져 있는 깡패 몇 명.
그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서있는 검은 옷을 입은 금발의 소녀, 야미가 있었다.

아마도 추근대던 깡패들을 때려눕혀 버린 거겠지.
생각했던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 안도하며 야미에게 다가간다.
내 발걸음 소리에 야미가 고개를 들자 웃으며 농담을 한다.

"착한 아이는 이제 집에 들어갈 시간이에요~."

나름대로는 반박을 기대하며 꺼낸 말에 야미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

"응?"

어두운 골목길이라 내 모습이 그림자에 가려졌나?
예상치 못한 야미의 반응에 서로의 얼굴이 보일만큼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간다.
가까이 오는 나에게 야미가 조용히 말한다.

"...다가오지 마시죠."

"그러니까, 나야. 아키츠 료스케."

"...아...?"

왠지 기운이 빠진듯한 목소리에 의아해하며 다가가자, 그림자 너머의 야미의 얼굴이 보였다.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릿한 눈동자.
갸날프게 몰아쉬는 한숨.
벽에 몸을 기댄 채로 힘이 풀린 듯한 몸.
약간 붉어진 얼굴에 땀이 배인 이마.

이거 혹시 위험한거 아냐?
걱정되서 야미의 이마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 야미의 머리칼이 칼날로 변하여 쏟아진다.

"자, 잠깐?!"

설마 나를 못 알아본 거야?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자 갑자기 머리카락의 칼날이 기세를 잃고 형태를 무너뜨리며 흩어진다.
의도하지 않은듯한 변화능력의 해제.

"가까이...오지 마시죠."

스르륵-

경고를 말하면서 벽에 등을 기댄채로 주저앉아 버리는 야미.
하아...하아...하며 힘겹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한다.
재빨리 야미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는다.

치익-

...무지 뜨겁잖아?!
닿은 손에서 연기가 날만큼 열이 전해진다.

"야미 너...몸이 정상이 아니잖아?
열이 장난이 아니라고?"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냐?
식은땀을 이렇게나 흘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될때까지 가만히 있었던거지?
우주인 의사 미카도 보건 선생님께 가지 않은거야?

"미카도 선생님에게 가지 않은거야?"

"미카도...? 그녀가 왜...?"

설마 미카도가 지구에 있다는걸 모르나?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쓰러졌을 때, 리토와 라라가 데려다 줬을 텐데...
...처음?

"야미, 최근 지구에 와서 이렇게 쓰러진적 없어?"

"없...습니다."

...망했어요.
아무래도 야미가 지구에 와서 쓰러진건 지금이 최초인듯 하다.
능력을 지나치게 사용해서 훨씬 더 일찍 쓰러진건가,
아니면 능력을 아껴 써서 원래보다 더 늦게 쓰러진 건가.

아마도 후자가 맞을 듯 하다.
야미로부터 리토를 구할 때 최대한 전투를 피하는 방향으로 끌었기 때문일까.
저스틴과 라라와의 전투를 피했기에 변화능력을 최대한 억제했기 때문인지,
타이밍 상으로 피로의 축척이 늦게 진행된 것 같았다.

아무튼, 지금은 야미를 빨리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가는 것이 우선이다.

벽에 기댄 채 주저앉은 야미를 들어올린다.

"그...그만."

야미가 팔로 내 가슴을 밀며 저항한다.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건다.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갈 테니 좀 참으라고."

"내려놔주...세요."

내 말이 안 들리는 상태인가...?
미카도라는 말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 말은 꺼내는데, 실제로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잠시 저항하던 야미는 순간 현기증을 느낀 듯 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렸다.
이거...서둘러야겠는데?



밤늦은 시간이지만 직원실에서 미카도 선생님의 주소를 알기위해 야미를 안은 채로 학교로 달려가서는 당황했다.
학교 전체에 불이 꺼져 있었으니까.
직원실로 가려고 해봤지만 직원실 문은 자물쇠로 잠겨진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어째서 사람이 없어?!
주말엔 당직 선생님도 안계신가 이 학교는?!

경비원에게도 물어봤지만 직원실 열쇠는 없고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도 모른다는 대답뿐.



같은 외계인이며 이상한 발명품을 만드는 라라에겐 혹시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리토네 집으로 뛰어 가봤지만
벨소리에도 응답이 없는 게 집을 비운 것 같았다.

사이바이 스튜디오로 갔나 싶어서 전에 받은 명함을 보며 전화를 걸어봤지만...
「주말을 맞아 셋이서 여행을 떠났기에 일요일에 돌아온다」는 답변이었다.
덕분에 마감인데도 손이 부족하다는 불평을 한귀로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여행? 그런 이야기 기억에 없어.
3일에 한번은 트러블에 휘말리는 걸로 기억하는 리토와 라라인데...주말정돈 그냥 평범히 집에서 보내면 안 되는 거야?

병원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곧 포기했다.
신분증 없는 우주인도 병원에서 받아주나?
게다가 저번의 외계인용 진정제가 지구인인 리토에겐 알코올과 같은 작용을 했던걸 떠올려보면,
지구인용 주사를 야미가 맞았을 때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른다.
자칫하면 치명적인 상태가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야미의 상태는 야미 개인만의 특이체질로 인한 부작용.
능력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
예전에 한번 야미를 진료한 우주인 의사 미카도 선생님 외엔 치료 방법이 없을 듯 해 보였다.

양팔에 안긴 야미를 바라본다.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야미의 상태는 호전되어 보이지 않는다.
이마에 배인 땀은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몸 전체가 땀으로 젖어 축축한 상태임에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기위해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
더 이상 움직였다간 야미의 현재 상태가 더 나빠질지도 몰라 우선 야미를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급한 대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간호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안겨있는 야미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조심하면서 빠르게 집으로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두를 벗기고 내 방의 침대에 야미를 조심스레 눕힌다.
무의식중에 시트를 잡고 괴로운 듯 숨을 내쉬는 야미의 모습을 보고 살며시 야미의 옷깃으로 손을 내린다.
그러고 보면 의식이 없는 환자는 숨쉬는 것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몸을 조이는 단추들을 풀어준다고 했었지.
그런데...단추가 어디지?
잠시 야미를 일으켜 앉은 자세로 하고 옷을 둘러본다.
곧 등에 달린 지퍼를 발견하고 조심스레 지퍼를 내린다.
이런...등까지 완전 땀에 절었잖아?
이 옷, 나중에 한번 빨아줘야겠네...
있다가 수건으로 등이라도 한번 닦아주자.

지퍼를 다 내려 옷이 몸을 조이는 걸 막고, 허리의 벨트, 팔소매의 벨트, 다리와 발에 매인 벨트를 모두 풀어준다.
개조 소매와 다리의 벨트는 아예 떼어내서 따로 놔뒀다.
지금은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니.
검은 옷만 남은 채로 조심스레 야미를 침대에 도로 눕히고 욕실로 들어간다.
대야에 물을 받고, 몸을 닦을 수건을 몇 개 꺼내어 방으로 되돌아간다.
얼굴과, 목, 등을 닦아주며 열을 식히면 될까 생각하며 방문을 연 순간 하마터면 대야를 떨어뜨릴 뻔 했다.

등의 지퍼가 열린 상태였기에 야미가 괴로운 듯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자 앞섶이 흘러내리며 봉긋한 부위가 들어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기겁하며 다가가서 가슴을 다시 가려주자 야미가 신음소리를 내었다.

"괴...괴로워..."

헐떡이며 손으로 목을 만지자 다시 흘러내리는 상의

...괴롭다니 억지로 가리기도 그렇고 이대로 계속 앞섶을 가려봤자 시간만 낭비할듯 했다.
지금은 가슴에 시선을 둘 게 아니라, 땀에 젖은 몸을 닦아 주는게 우선이니까.
노출된 가슴에서 시선을 떼고서 바닥에 놓인 대야에 수건 하나를 담근다.
적당히 물을 짜내고 땀에 젖은 야미의 이마와 붉은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준다.

"으응..."

얼굴을 닦자 야미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낸다.
얼굴을 닦고 나서 야미의 얼굴이 벽을 향하도록 몸을 누인 다음 등을 닦아주기 시작한다.
땀에 젖은 등을 닦으며 보니 방금 전 등이 닿았던 시트 부위가 땀으로 눅눅해져 있었다.
시트도 새로 갈아줘야겠네...
꼼꼼히 야미의 등을 닦아주는 도중 옆구리 부근을 닦을 때 야미가 신음을 흘렸다.

"흐읏..."

...차가운 느낌이라 그런 반응을 하는건 줄은 알지만 그 소리는 좀 곤란하네요.
젖은 목덜미로 흐트러진 금발이 달라붙은 야미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키다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미쳤냐!
아픈 애를 두고 정신이 나가서 어쩌자는 거냐?
양손으로 뺨을 두드리며 다시 한번 정성스레 얼굴과 등, 팔, 다리를 닦아준다.

그후 침대 시트를 새로 가져와 깔아주려고 보니,
옷이 워낙 땀에 젖은 상태라 이대로는 소용이 없어 보였다.

...부모님. 이 불민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숨을 죽이고 야미의 검은 옷을 천천히 벗긴다.
뒤의 넝마 같은 천과 스커트를 함께 내리며 옷을 벗겨낸다.
그리고...마지막 남은 속옷 한 장도 마저 벗겨내었다.
벗기기 전에 이불로 하반신을 가려준건 나의 마지막 양심이라 하겠다.
이미 늦은 것 같지만.

"더워..."

야?! 이불 치우지마! 몸 뒤척이지 마!
기겁해서 고개를 돌리곤 다시 새 수건을 물에 적신뒤 이번엔 얼굴과 등뿐이 아닌, 온 몸을 닦아 주었다.
앞과 뒤에서 뭔가 몰캉한 느낌들이 든거 같지만...상관없어.

침대의 시트를 갈고 야미를 다시 뉘인 뒤에
얇은 이불을 살짝 덮어주고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었다.

그리고 방을 나와 야미의 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우주인 옷을 보통 방식으로 세탁해도 되려나?
드라이클리닝은...?
검은색 옷과 같이 빨 수 없었던 속옷은 세제를 푼 물에 넣어두었다.
있다가 손빨래 한 뒤 탈수해서 말리지 뭐...

방으로 돌아가니 여전히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내는 야미가 흐트러진 이불안에 있었다.
대야의 물을 새로 갈아 와서 다시 몸을 닦아 주고 있으려니
야미가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았다.

"으음...물..."

"응? 아, 잠시만!"

닦는 걸 멈추고 재빨리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컵과 함께 가져왔다.
컵에 물을 담아 야미의 입에 조심스레 댔다.
흘리지 않도록 목에 수건도 살짝 둘러주었지만.

물을 마신 야미는 방금 전보다 약간 나아진 듯 편안한 안색을 했다.
방금 전까지 흐르던 땀도 많이 줄어있었다.
세탁이 끝나기 전까지 입을 옷으로 옷장에서 와이셔츠를 하나 꺼냈다.

야미의 체형으론 많이 크겠지만,
우리 집엔 여성용 속옷이 없는데다, 야미같은 장발머리 소유자에게 T셔츠 처럼 목만 뚫린 옷을 입힐 방법 따윈 몰라...
남성용 트렁크스 따윌 입히는 것도 에러.

마른 수건으로 야미의 몸을 한번 닦아준 뒤 와이셔츠를 입힌다.
무릎까지 가려지는 와이셔츠의 크기에 다행히 트렁크스를 입히는 만행을 안해도 될 것 같았다.
더워 보이기에 이불도 치우고 찬물수건만 새로 이마에 얹어주고 조용히 야미를 바라보았다.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야미.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이 지금은 편안한 듯 살짝 미소 짓고 있다.
이렇게 보면 귀엽기만 한 소녀인데...
우주제일의 위험도 특급 살인청부업자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쿠로에게 구해지고 나서도, 그것밖에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한 일.
가족이나 친구 하나 없이 그녀를 두려워하거나 이용하려는 이들만 만나며 살아온 생애에서
무표정한 얼굴은 그녀가 겪은 아픔을 숨기기 위한 방패였을까.
적어도 지구에 와서 라라의 말에 보인 놀란 표정,
리토의 행위에 대한 부끄러운 표정,
친구들의 장난에 대한 당황한 표정,
미캉과의 대화에서 보인 희미한 미소는 그녀가 감정을 모르는게 아니라 오랫동안 잊고 지냈기에 표현이 서투를 따름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부디 이 소녀의 괴로운 운명을 보듬어줄 이가 나타나기를...

삐- 삐-

상념에 잠겨있는 사이 탈수가 시작되는 알람이 울린다.
정신을 차리고 욕실로 들어가 세제물에 담가둔 속옷을 꺼내어 간단히 씻는다.
탈수가 끝난 검은 옷들을 꺼내 건조기에 올려놓고, 속옷을 세탁기에 넣고 탈수를 누른다.
이후 속옷도 마찬가지로 건조기에 놓고 방으로 돌아간다.
대강 30분에서 1시간 사이면 옷이 마를 것 같았다.
야미가 일어나면 옷을 되돌려주자고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자 괴로운듯 목주변에서 손을 꼼지락대는 야미가 보인다.

와이셔츠가 약간 불편한가 싶어서 윗쪽 단추를 두어개 풀어준 다음 물수건으로 얼굴과 목 부위를 닦아준다.
벌어진 와이셔츠 사이로 약간 볼록한 부분도 보이지만 일일이 신경쓰다간 닦는것도 못한다.

"으음...?"

목 부위를 닦아주고 있으려니 야미가 신음소리를 내며 살짝 눈꺼풀을 연다.
이제 정신을 차린건가?
수건을 치우고 야미를 바라본다.
눈가를 찌푸리고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던 야미는 옆에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키츠 료스케?"

"여~ 좋은 저녁이야 야미.
갑자기 쓰러져서 걱정했다고."

"무슨...?"

말을 하던 야미는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자신의 목 아래를 본다.

침대위에 누운 몸.
알몸에 와이셔츠 한벌.
게다가 위의 단추는 풀려있어 부풀어 오른 가슴이 살짝 드러난 상태.

점점 야미의 얼굴이 붉어진다.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아키츠 료스케..."

"잠깐?! 너 지금 환자야! 무리하면..."

"야한 것은...싫습니다!"

야미의 머리카락들이 몇 마리 용들로 변해 이빨을 보이며 날카롭게 덤벼들었다.

콰직-!

따가워?!
옷이 찢어지는 감촉과 함께 용들에게 팔과 어깨, 옆구리 등을 물리고 들이받혀서 뒤로 날아간다.
벽이라도 부서지면 큰일이다!

쿵-!

손바닥과 발로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여 벽에 부딪친다.
다행히 벽이 박살날 만큼의 충격을 전달하진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야미에게 소리친다.

"이봐!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

야미는 침묵하며 나를 노려보곤, 오른손을 해머로 만들어 내게 달려들었다.
아 진짜...!
뭔가 심각하게 오해한 것 같아 아무래도 진정시킬 필요를 느꼈다.
집을 박살내지 않기 위해서, 피하기보단 맞받아치기로 결정했다.

야미를 향해 달려들어 휘둘러지는 해머의 손잡이 부분을 왼손으로 잡는다.
곧이어 오른손으로 야미의 왼쪽 어깨를 잡고 침대로 밀어붙인다.
체중 차에서 우세이고, 건강 문제도 있는지라 손쉽게 침대위로 야미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어느새 해머가 풀리고 보통 손으로 돌아온 야미의 오른 손목을 머리위로 올려 붙잡고,
야미의 왼쪽어깨를 오른손으로 고정시킨 채,
나를 노려보는 야미를 바라본다.

방금 전의 움직임으로 와이셔츠가 흐트러지고 허벅지 위까지 말려 올라간 모습에
야미가 얼굴을 붉히며 저항했지만 지금은 내가 우세.
수치심으로 눈물까지 맺히려는 야미에게 당황하며 어떻게든 오해를 풀려고 한다.

"저기, 그러니까 오해야.
네가 갑자기 쓰러져서 집에서 간호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그럼...제 옷을 벗기고 이런 변태적인 옷차림을 강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네 옷은 땀에 절어서 지금 세탁해 말리고 있어.
그대로 두면 시트까지 계속 젖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

잠시 입을 다문 야미는 다시 물었다.

"...당신의 남은 수염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응?"

"당신이 아끼는 수염에 걸고 방금 전 말이 진실임을 맹세할 수 있습니까?"

"어? 잠깐. 어째서 수염에 맹세를 해야 하는 건데?"

난 수염성인도 아니고, 그런 맹세했다가 또다시 잘리는 건 사양이라고?

"당신이 수염성인이건 아니건은 관계없습니다.
솔직히, 예전과 방금 전 움직임을 보면 정말로 지구인인지 의심이 들지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당신이 자신의 수염에 비정상적일만큼 집착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히 하는 것도 말이죠."

그야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평범한 삶을 보장해줄 방패막이기 때문이지.
솔직히 구레나룻이 잘려나갔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으니 집착이라면 집착이지만.
그래도 방금 전 내 말은 사실이니 상관은 없나...

"...아. 좋아. 그걸로 믿어준다면.
나 아키츠 료스케는 내 목숨과도 같은 수염에 걸고 방금 전 대화가 진실임을 맹세합니다.
...이런 걸로 괜찮아?"

"...그럼, 믿겠습니다."

"휴우-"

"그리고..."

"...?"

아직 뭔가 남았나?
갸웃하는 나로부터 고개를 살짝 돌려 시선을 외면한 채 야미가 중얼거렸다.

"이제 그만... 비켜주세요."

"으응?"

지금의 자세를 확인한다.
소녀의 한 팔과 어깨를 속박하고 침대에 눕힌 나.
게다가 소녀의 옷차림은 알몸 와이셔츠 한 장.
그야말로 범죄자 확정.

"미, 미안!"

황급히 손을 치우고 일어난다.
야미도 붉은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는다.
하지만, 나를 보는 방향으로 침대에 걸터앉은 야미의 허벅지 사이가 프라이빗 스퀘어.

차라리 안보이게 서 있어줘!
...아픈 사람에게 바랄게 아닌가.

새하얀 허벅지에 살짝 드리운 그림자에 민망한 나머지 고개를 돌리며 화제를 전환한다.

"그, 그나저나 미카도 선생님을 알고 있어?"

"닥터 미카도 말입니까?
우주에서 유명한 의사죠.
예전에 저를 치료해 주었기에 알고 있습니다."

"우주인 선생님이시라 보통은 아닐꺼라 생각했지만...
아무튼, 앞으론 몸이 아프면 우리 학교 양호실로 와.
미카도 선생님이 거기 계시니까."

"닥터 미카도가 지구에...
몰랐던 사실이군요."

"사실은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가고 싶었지만
연락처를 몰라서 갈수가 없더라고.
학교 직원실에는 선생님도 안계시지 알아낼 방법이...?"

말을 하다가 도중에 입을 다문다.

"무슨 일입니까 아키츠 료스케?"

이상한 듯 바라보는 야미의 시선을 받으며 자책한다.
있었잖아! 다른 선생님을 통해 아는 방법이.

"잠시만 기다려줘.
잘하면 미카도 선생님이 계신 곳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무슨?"

어리둥절하는 야미를 방에 둔 채로 마루로 나와 핸드폰을 꺼낸다.
수첩에 적힌 호네카와 담임 선생님의 댁으로 전화를 건다.
혹시나 집에 안계시지나 않으면 좋으련만...
뚜-뚜- 하는 소리가 몇번 반복되고, 수화기를 드는 소리와 함께 나이든 영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네카와 선생님이다.

"여보세요?"

"호네카와 선생님 댁인가요?"

"그렇습니다만."

"늦은 밤중에 죄송합니다. 아키츠 료스케입니다만,
혹시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고계신가요?"

"아키츠군이로구나. 그런데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는 어째서?"

"미카도 선생님이 주치의를 맡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연락처를 모른다고 해서 말이죠.
진료를 받은 지 꽤 시일이 지난 터라 다시 찾아가야 하기에 연락처를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럼 잠시만 기다려 보려무나.
비상연락망이 있나 찾아보도록 할테니..."

"아,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든 채로 기다린다.
바보같이...좀더 빨리 전화해볼걸 그랬어.
그랬다면 방금 전처럼 요란을 피울 것도...「털썩-」

방안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야미의 모습.

"괘, 괜찮아 야미?"

놀라며 쓰러진 야미를 부축한다.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이 붉어진 야미.
손을 대어보자 처음 때보다 훨씬 더 뜨거운 이마의 감촉이 느껴진다.
겨우 진정되었던 상태가 방금 전의 변화능력으로 급격히 악화된 것 같았다.
굉장히 괴로운 듯 내 옷을 부여잡으며 신음소리를 낸다.

"하악...하...읏..."

"자, 잠시만 기다려.
곧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다 줄 테니까...!"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고 있으려니 핸드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키츠냐?"

"호, 호네카와 선생님? 미카도 선생님의 연락처는요?"

"그게...미안하구나 아키츠.
비상연락망이 적힌 수첩이 지금 보이지 않는구나.
혹시 급한 일이니?"

"그런..."

생각지도 못한 답에 할말을 잊는다.
침묵을 지켜버린 나에게 미안한지 호네카와 선생님이 말을 덧붙이신다.

"혹시나 바쁜 일이라면 수첩을 찾는 대로 전화를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호네카와 선생님."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절망감이 엄습한다.

어째서 하필 오늘이 토요일이었지?
어째서 학교의 직원실은 잠겨있었지?
어째서 경비원은 열쇠가 없었지?
어째서 리토는 여행을 간 거지?
어째서 비상연락망은 발견되지 않은거지?
어째서 야미는 이렇게 괴로워해야 하는거지?
어째서...그때 야미를 멈추었지...?

좀더 빨리 증세가 나타났다면, 누군가 미카도 선생님께 데려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당직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경비원에게 좀더 권한이 있었다면,
라라가 집에 있었더라면,
비상연락망이 발견되었더라면,

내가 그때 리토를 돕지 않았다면...

고개를 젓는다.
위기에 처한 리토를 돕지 않는다는 선택사항은 없었다.
주사위를 던진 100개의 미래에서 모두 6이 나온다는 믿음은 내겐 없으니까.

차라리, 내가 방금 전 야미의 첫 공격을 그대로 맞았더라면 혹시나...

"크읏..."

소매를 잡는 힘이 강해지며 발해진 야미의 신음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지금은 도움이 안 되는 원망이나 후회 따윈 필요 없다.
어떻게 하면 야미를 도울 수 있을까가 중요하다.

이대로 다시 간호를 해도 처음처럼 진정이 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토요일 밤.
월요일이 되어 미카도 선생님을 학교에서 만나기까지,
주말 내내 야미의 괴로움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도시전체를 뒤져서 그중에 미카도 선생님의 집을 찾는 것도 불가능.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도 없고, 그 사이에 쓰러진 야미를 혼자 둘 수도 없다.

어느새 와이셔츠가 땀에 젖어 속살이 비쳐 보일정도가 되자 상황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지금 상황이 된 원인이 나에게 있다면,
역시 내가 나서서 해결하는 게 순리지.



밤바람이 춥기에 담요로 야미의 몸을 감싼 채로 밖으로 나서 학교로 향한다.
한밤중의 학교는 쥐죽은 듯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옥상 문을 열고 교내로 들어간다.
직원실 앞에 도착해 자물쇠를 뜯어내고 직원실 안으로 들어간다.
야미를 직원실 소파에 잠시 내려놓고 선생님들의 연락처가 적힌 명단을 찾는다.

미카도 료코...미카도 료코...
...있다!

연락처를 옮겨 적은 뒤, 자리를 정리하고 야미를 안고 직원실을 나온다.
집에서 가져온 새 자물쇠를 직원실 문에 대신 걸어두고 학교를 나선다.
...정학 정돈 각오하기로 하고, 이만 미카도 선생님 댁으로 가볼까.



적혀있는 주소로 찾아가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저택이 도시 내에 세워져 있었다.
쇠창살 너머로 괴상한 우주식물이 몇 개 심어져 있고, 까악~ 까악~ 하는 까마귀 소리가 흡사 마녀의 집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울타리를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가 벨을 누른다.

딩동-

한밤중에 깨어있을까 걱정했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자 문이 열리며 미카도 선생님이 나왔다.
검은색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그 위에 흰색 의사 가운을 입은 차림이었다.
졸린 듯 눈을 비비던 미카도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입을 열었다.

"어라...너는...?"

"아키츠 료스케라고 합니다.
야미의 치료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야미?"

의아한 듯 내 품에 안겨있는 담요를 덮어쓴 인형을 쳐다보는 미카도 선생님.

"그 애는...!"

"선생님, 빨리 치료를...!"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던 미카도 선생님은 땀으로 절어있는 야미의 얼굴과 내 절박한 목소리에
곧 정신을 추스르고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

박제들이 진열된 실험실 분위기가 나는 방의 진료용 침상에 누운 야미를 진료하던 미카도 선생님께,
노파심에 걱정이 되어서 방금전까지 간호하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자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구나. 이건 보통 병이나 감기가 아니라 이 아이 특유의 증상이야."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악화된 듯 한데 괜찮을까요?"

내심 원래보다 치료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자 미카도 선생님은 문제없다는 듯 장담하셨다.

"물론이지. 죽은 사람만 아니라면 어떤 환자라도 고쳐줄께."

"다행이네요..."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는 나를 바라보던 미카도 선생님은 약간 걱정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아키츠군이었지?"

"네."

"너는 괜찮니?"

"에?"

"지금 네 찢어진 옷들이 심상치 않아서 말이야."

미카도 선생님이 내 옷 이곳저곳에 뚫린 구멍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방금전 야미에게 공격당했을때가 떠올랐다.

"아, 이건 야미에게 살짝 물린거에요."

"물려?"

묘한 표정을 짓는 미카도 선생님을 이상하게 여기며 대답했다.

"오해가 있어서 화를 내면서 물어오더라고요."

"오해?"

"네. 옷을 갈아입힌 것에 대해서 이상한 오해를 해서 그만..."

"그러고보면 야미의 옷차림이 굉장히 파격적인데 네 솜씨였니?"

알몸에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친 야미의 옷차림을 가리키며 물어보는 미카도 선생님.
땀에 젖은 상태라 속살이 적나라하게 비치는 야미의 모습에 당황해서 변호를 한다.

"그, 그건...땀에 젖어서 옷을 세탁하느라..."

"그런데 참 매니악한 옷차림이네. 알몸 와이셔츠라니. 꽤나 좋아하나봐?"

키득거리며 웃는 미카도 선생님께 무안해서 볼을 긁적인다.
절 놀리시는 것보단 치료를 해주시는게 더 건설적이지 않을까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미카도 선생님이 좀더 추격해왔다.

"혹시, 옷을 벗기면서 이상한 짓을 했다든가 하진 않았겠지?"

"...아파하는 아이에게 손을 댈 만큼 못되먹진 않았어요."

아파서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면서 야한 짓을 했냐고?
그럴 바엔 차라리 혀를 씹고 만다.

굳어진 내 얼굴에 약간 지나쳤음을 알고 미카도 선생님이 사과해오셨다.

"...농담의 작정이었는데, 미안하구나."

"아, 아뇨...
사실... 도중에 몇번 두근거렸던 적은 있었으니까, 사과 받으면 오히려 할말이 없는데요..."

"후후...솔직한 아이구나."

살짝 웃던 미카도 선생님은 곧이어 야미를 일으킨다.

"이제 슬슬 이 아이를 치료해야지.
땀에 젖어서 좀 벗기기 힘들겠는데...
아키츠군, 와이셔츠를 벗기는 것 좀 도와줘."

"아...네."

미카도 선생님의 부탁에 따라 야미의 몸을 감싼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하나둘 버튼을 풀고 있으려니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미묘한 표정의 미카도 선생님이 보인다.

"...정말로 도와주는구나?"

"에? 치료에 필요한 것 아니었나요?"

"그건 그런데...좀더 당황할줄 알았는데 말이지."

정말 놀리는 걸 좋아하는 선생님이시군요.

"역시 100명의 여자와 잤다는 아키츠군 답달까?"

"그거 유언비어에요?!"

선생님들도 다 알고 있구나 이 괴상한 소문...
그전에, 그 소문이랑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은 별개라고요.

"뭐...평소였다면 못할 일이지만,
아픈 걸 고치기 위한거니까요.
어머니가 아기의 대소변을 싫은티 하나 안내고 치워주시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비유가 좀 이상한 듯 하구나?"

"그냥, 지금은 부끄러워 할 때가 아니라는 거죠 뭐..."

버튼을 다 풀고 와이셔츠를 벗겨내자 땀이 맺힌 새하얀 피부가 드러난다.
부푼 가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라인에 순간 눈이 뺏겼다가 고개를 흔들곤 마음속으로 암시를 건다.

나는돌부처나는돌부처나는돌부처...

야미는고양이야미는고양이야미는고양이...

중얼중얼거리는 내모습을 보던 미카도 선생님은 피식 웃으면서 다음 사항을 전달했다.

"아키츠군, 탈의 시키는 솜씨가 좋구나~
그럼 옮기는 것도 도와줘."

"...네?"

설마 알몸을 안고 가라고?
...그렇겐 못하지.
방금 전 야미의 몸을 감쌌던 담요를 야미의 몸에 두른다.
그리고 양팔로 야미의 어깨와 무릎안쪽으로 넣어 안아 올린다.
어안이 벙벙해진 미카도 선생님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럼, 어디로 옮기면 되죠?"

기가 막힌 듯 쳐다보면 미카도 선생님은 이내 한숨을 쉬며 자리를 옮겼다.



진료실에 도착해서 담요를 치우고 야미를 힐링 캡슐 안에 넣는다.
힐링 캡슐을 작동시키고 미카도 선생님이 돌아서서 나를 본다.

"이제 괜찮아.
이제부턴 나한테 맡겨요."

"감사합니다 미카도 선생님."

"뭘 이정도야."

"그럼 전 야미의 옷을 찾아올게요.
집에 빨래 건조기에 넣어뒀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다 말랐을 거예요."

"꼼꼼하네. 나중에 좋은 남편이 될 꺼야."

"아하하...그랬으면 좋겠네요."

웃으며 돌아서려다 깜박 잊은 게 떠올라 미카도 선생님을 바라본다.

"아, 그리고 그전에 이걸..."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미카도 선생님께 건넨다.
얼떨결에 열쇠를 받은 선생님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이건?"

"직원실 열쇠예요.
선생님 계신 곳을 몰라서 직원실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서 연락처를 찾았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새로 달아놓은 자물쇠의 열쇠."

"뭐? 비상연락망은 어쩌고?"

"그러니까..."

야미를 만나고 나서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주말에다가 직원실에서 숙직하시는 선생님도 없었고,
라라와도 연결이 안되고, 호네카와 선생님께선 비상연락망이 없었던 것까지.

이야기를 듣고 난 미카도 선생님은 어이없어 하시며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운이 나쁠 수가 있지?"

"글쎄요...아무튼,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께 사과해야죠.
급한 일이었다지만 직원실 침입까지 했으니까요."

CCTV같은 거에도 이미 찍혔을 테고,
자수하는게 그나마 좋겠죠.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야미를 돕고 싶었니?"

"따지고 보면 제 탓이니까요."

"뭐?"

"아뇨...그냥, 그렇다고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야미가 깨어나기 전에 옷을 가지고 오려면 좀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미카도 선생님의 집을 벗어나 집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도중에 야미를 발견했던 장소를 지나치게 되었다.
여전히 깡패들은 인사불성인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뼈가 부러진 녀석은 없는걸 보면 야미도 사정을 봐준 거 같은데.

...가만 보니 이자식들만 안 깝죽댔으면 됐잖아?
슬그머니 약이 오르는걸 느낀다.
내심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를 하며 분풀이를 하기 위해 다가간다.

기절한 녀석들을 더 때리는 것도 그래서 적당히 바지랑 팬티를 벗겨놓고 차곡차곡 교차로 포개놓았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수염을 그려주며 부디 기도했다.
액땜했다 치고 앞으론 밤길에 여성을 괴롭히는 짓따윈 하지 말길...

집에 돌아가 건조기에서 야미의 옷을 꺼낸다.
그동안 완전히 말랐는지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진다.
종이가방에 옷들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미카도 선생님의 집에 도착해서 서둘러 진료실로 들어간다.

"선생님! 옷 가져왔습니다!"

기운차게 벌컥 문을 열자 미카도 선생님이 놀란 듯 쳐다본다.
그리고 어느새 캡슐 밖으로 나온 야미 또한 놀란 얼굴로 바라본다.
알몸에 머리카락을 타월로 닦던 채로...

타이밍 최악이네...
그 깡패놈들에게 장난만 안치고 왔다면 늦지 않았을까나?
당황해서 변명을 한다.

"어...저기, 고의가 아니었어?
입을 옷을 서둘러 가져오다보니까...
...미안."

붉어진 채로 수건으로 몸을 가리는 야미의 모습에 그냥 체념하며 사과한다.
그냥 맞고 말지.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이나 맞을 짓을 했냐.
맞고 끝내는 걸로 용서 받을 수 있다면 싸게 치는 거지...

하지만 노려보던 야미는 이내 쏘아보던 시선을 거두고 말을 걸어왔다.

"옷...돌려주십시오."

"어? 그, 그래."

당황해서 급히 손에 든 종이가방을 야미에게 내밀었다.
야미가 종이가방을 받아든걸 확인하자 얌전히 진료실 커튼 밖으로 나가서 커튼을 쳐주고 돌아섰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커튼이 걷어지며 야미가 붉어진 얼굴로 나왔다.
입을 다문채로 나를 바라보는 야미의 시선에 얌전히 사과했다.

"...쳐다봐서 미안해."

"...이번은 용서하겠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정말?"

머리칼날 공격이라도 받을까봐 덜덜하고 있었는데 의외다.

"네. 그것보다...
오늘은 도움을 받았군요. 감사합니다."

얌전히 고개를 꾸벅이며 고마움의 표시를 하는 야미.

"아니, 뭘...나랑 다투다가 네 상태가 악화돼서 나로선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라고?
게다가 정말로 도움이 된 건 결국 미카도 선생님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이곳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저는 더 곤란했을 겁니다."

"그렇지만...「그냥 얌전히 감사의 인사를 받으렴 아키츠군.」미카도 선생님?"

갑자기 끼어든 미카도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방금 전 야미가 깨어났을 때 이야기 했단다.
네가 야미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 걸 말야.
보통 그렇게까지 하는 건 힘든데 말이지."

그건 미카도 선생님 당신 이외에는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까지 된건 제가 일에 간섭하면서 타이밍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에 책임을 지려던 거고요.
미카도 선생님이 이어 말했다.

"직원실 열쇠를 건네줬을 땐 정말 놀랐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야미를 생각할 줄은 몰랐으니까."

"정학 정도까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어요.
도와줄 수 있는데 못 도와주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어느 정도 피해를 보더라도 나중에 가서 자책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게 제일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선택을 한다면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건 대학에 들어간 뒤엔 별 문제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단 거니?"

"적어도 저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

"바보구나."

"아니~ 솔직히 교장선생님 같으면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하실 거라고요?
미소녀와 직원실 보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미소녀를 고르실 껄요?"

비유가 잘못되었지만 이때는 교장이 옳다고 본다.
보나마나 나중에 대가로서 팬○를 달라는 둥의 헛소리를 하겠지만 넘어가자.
...확실히 비유가 잘못되었는지 야미의 기분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설마 벌써부터 성희롱 시도를 당하기라도 했던가?

미카도 선생님은 한숨을 쉬곤 웃으며 말했다.

"뭐, 앞으로 야미의 담당 주치의로서 환자를 데려와준 걸 감사할게.
보답이랄까, 학교에서 처분을 받게 된다면 잘 변호해 줄 테니 너무 걱정 하지마."

레알?

"아...감사합니다~!"

고마움에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매드 닥터니 뭐니하며 피하기만 해서 죄송해요 미카도 선생님.
지금껏 오해하고 있었지만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이십니다.

감격하고 있는 나의 옆에서 다시 야미가 인사를 한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아키츠 료스케.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원실 문제도 괜찮게 해결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는지라 흔쾌히 야미의 인사를 받는다.

"그래. 평소에도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분명히 친구들도 많이 생길 거라고~."

"그렇습니까?"

"그럼! 친구 백명 사귀기 같은 건 문제도 안될 거라고~아하하!"

친구 숫자가 두 손에 꼽는 내가 할말은 절대 아니지만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희희낙락한 내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짓던 미카도 선생님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러고보니 아키츠군은 수염성인이라고 했던가?"

"쿨럭...!"

"괜찮습니까 아키츠 료스케?"

웃던 도중 예상치 못한 대사에 놀라 사레가 들려 버렸다.
동네 꼬맹이들 사이에만 퍼진거 아니었나 그 소문?
계속해서 기침을 해대는 나를 걱정하는 야미.
미카도 선생님이 계속해서 물었다.

"그런데 예전에 있던 구레나룻은 어떻게 된 거니?"

"그러니까, 쿨럭...!수염성 쿨럭...!"

"그건...제가 잘랐습니다."

야미가 약간 표정이 굳어지며 답했다.
미카도 선생님이 크게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왠지 심술궂게 느껴지는 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지만, 기침이 멎질 않아서 주의를 주질 못하겠다.

"야미는 데빌루크 성인들에 대해 알고 있지?"

"네. 프린세스 라라와는 알고 지내는 사이니까요."

"그럼 아키츠군의 수염을 깎은 것의 의미를 알고 있나보구나?"

"무슨 의미입니까?"

"잠...쿨럭?"

수염 깎는데 의미가 있어?
아니 애초에 수염성인 따위가 어딨다고 그래?
있을지도 모르지만...적어도 나는 아니다.
게다가 저 짖궂어 보이는 얼굴은 절대 거짓말을 하려는 게 틀림없다고!

"데빌루크 성인을 상징하는 건 꼬리지. 그들의 꼬리는 굉장히 민감해서 약점임에 동시에 성감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해.
그래서 남이 만지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 하지.
그럼, 여기서 문제.
수염성인을 상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설마?"

싱긋-

눈이 크게 뜨여진 야미에게 미카도 선생님이 눈부신 미소를 짓는다.
이봐요! 당신 지금 학생을 앞두고서 성희롱 하고 있는 거 알아요?
사람을 무슨 수염이 성감대인 괴생명체 마냥 취급하지 말라고요.

나도 만만찮게 쇼크를 먹었더니 도무지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끊임없이 기침을 하는 나를 향해 천천히 돌아선 야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있다.

"아, 아키츠 료스케..."

"쿨럭...잠시만 그거 오...쿨럭!"

수염이 잘린 피해자인 나에게 가해를 입히려는 게 아닐까하며 기침 속에서도 가드자세를 하고 있으려니,
점점 창백한 얼굴이 엄청나게 붉어지는 야미의 얼굴이 보인다.
분노? 아니다.
어떻게 봐도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이다.
입을 벌린 채로 제대로 말도 못 꺼내고 있다고?
입가에 손을 댄 채 더듬거리며 야미가 말한다.

"아...저...나...야, 야한 짓은..."

"나,큽? 수염 같은거,풉! 성감대 아,쿨럭...! 아니, 애초에 수염성인이..."

털썩-

......어라? 이봐!
야미가 기절했다?
무언가 말을 하려던 걸 멈추고선 제자리에서 풀썩 쓰러져버린 야미에 놀라 안아 일으킨다.
설마 아직까지 완치가 안 된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카도 선생님을 바라보려니까,
태연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어머나~ 역시나 야미는 야한 짓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하네~
자기가 한일에 대해서 부끄러워 기절할 정도라니."

아아...몸의 이상이 아니고 단순한 기절인가?
아하하~다행이네...가 아니고!
정정. 이 사람은 정말로 어른 악동이다.
개인적으로 알고지내고 싶진 않다고 절실히 생각한 순간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께 직원실에 들어간 사연을 고백한 뒤, 직원회의가 열렸다.
이때 야미의 주치의로 미카도 선생님이 나서면서, 학교 직원실을 침입했던 나를 변호해주셨고,
담임인 호네카와 선생님께서도 주말에 전화내용을 증언해주시면서 내 처분에 대한 수위를 낮춰주셨다.
덕분에 내심 정학까지 각오하고 있었던 나는 교내봉사 일주일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분으로 끝날 수 있었다.



나에게 교내봉사 처분이 내려진 게 알려지자 놀란 코테가와는 나에게 경위를 물어왔다.
주말동안 있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자 걱정하던 표정을 바꿔 화를 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땐 자신에게도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설마 환자의 간호를 부탁했으면 한밤중에 남학생 혼자 사는 집까지 찾아 올 생각이었습니까 코테가와씨?



월요일 하교 도중 나에게 「그, 성감...수염을 잘라서 죄송합니다...야한 짓 해서...」라며 얼굴을 붉히며 사과해오는 야미에게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난 수염성인도 아닐뿐더러 내 수염은 성감...뭐시기가 아니다 라는 식으로.
(성감 라고 완전히 말하지 못하는 야미 때문에 ...로 적절히 건너뛰며 설명했다.)
이후 겨우 납득한 야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고, 나도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오해를 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교 도중의 학생들을 제외하곤...

그 후 아키츠 료스케 수염○○○전설이 학교에 퍼졌다.
더불어 불량배들 사이에서 패배자의 얼굴에 수치의 증거라며 수염을 그리는 행위가 유행하면서,
10대들 사이에서 수염을 기르는 녀석들은 사라져 버렸다.
...수염 따위...



==============

수염성인 운운은 이걸로 끝입니다.
연극중의 수염성인, 우주인 흉내를 내며 허세, 수염 성감대 루머(데빌루크 꼬리 성감대설에서 차용).
나올거 다나온것 같으니 수염성인 루머를 다시 쓸일은 없을겁니다.(기껏해야 쓸만한 남은 사람이 라라아빠 말고 있나?--;)
그와 별개로 수염과 관련된 트러블들은 있을순 있겠지만요.^^;

그나저나 요즘 생각하는게...
메인스토리에서 반정도 비껴나간채로 진행했던 1~7편이 본편에 완전 합류한 8~12보단 좀더 재밌는것 같기고 하고,
좀 복잡한 심정입니다-_-;

1~7편은 보통 [오해->해결->주인공의 심정(평화?)->오해(or폭발)끝] 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8~12은 원작전개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심정->오해(or폭발)끝' 부분이 좀 부족한듯도 하고...
(이게 있어야 주인공 갈구는게 쉽기도 하고...)

글 쓴걸 폐기하고 아예 뒤엎어서 새로 쓰는 시도를 할만큼 시간이 되질 않아서 그런지,
오해성분이 무지하게 부족해서 그런지,
아니면 리토의 역할을 대신하기만 하는 모습이 영 안내켜서 그런진 잘 모르겠는데,
우선 유령아가씨(오시즈) 등장편, 축제편(코테가와or미캉) 쯤 쓰면서 고민좀 해봐야 할듯합니다^^;

정 안되면 중간에 오리지널로 스토리 한개씩 짜넣어서 1~7편때처럼 본편과 약간 벗어난 상태로 진행하는것도 생각해 봐야겠죠=ㅂ=;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서도...)
리토가 휘말리는 여난중에 이야기로 삼을만큼 플롯이 안짜여 지는 경우는 그냥 리토가 하도록 내버려 두든가,
아예 새로운 스토리를 추가해서 여성들을 그 해프닝에서 빼오든가 하겠죠;

학생들이 주인공에 대해 가지는 오해에 대한 묘사가 적어진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요즈음...
이대로 가다간 오해물이 오해물이 아니게 되어버려;
오해장르 소설이나 만화를 시간날때 한번씩 다시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안선생님...OTL



<이번화 원작 45화 야미 아픔>
아버지의 부탁으로 학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온 리토.
도중에 만난 야미와 시비가 붙지만 도중에 야미가 쓰러진다.
놀라서 미카도 선생님께 달려가지만 학교에 오지 않은 상황.
직원실에서 주소를 얻어 라라와 함께 미카도 선생 집을 방문한다.
힐링 캡슐에서 야미는 치료를 받아 회복하고,
야미는 적인 자신을 구해준 리토에게 의문을 갖는다.
이후 팬티만 입은 상태에서 난입한 리토에게 제재를 가하고 저택이 망가지며 미카도는 비명을 지르며 끝난다.
Posted by 루트(根)
,

구레나룻을 깎고난 뒤 어느날 미캉과 함께 장보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보면 료스케 오빤 우리 아빠랑 비슷한 것 같아요."

"어떤 점이?"

생각지도 못한 화제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미캉에게 되물었다.
솔직히 리토네 아버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데,
다만 꽤나 잘생긴 얼굴이었다는것만 기억하고 있다.
나랑 연관이 될게 있던가?

"음... 굵은 송충이 눈썹이라든가, 삼백안이라든가, 어깨까지 오는 머리칼에 인상을 쓰면 약간 무서워보인다는 점이요.
턱수염은 료스케 오빠가 좀더 길지만."

유우키네 아버지가 그런 타입이었던가?
미캉네 선생님의 가정방문때 리토가 변장용 송충이 눈썹을 붙였던것까진 기억하고 있지만...무서운 이미지였나보구나.

"하하...그러고보면 미캉네 아버지는 유명한 만화가시지.
유우키 사이바이씨라고..."

"네. 언제나 마감 때문에 집에 거의 안계세요."

"이런...혹시나 만난다면 사인본을 하나 받고 싶었는데..."

"에...료스케 오빤 아빠의 팬이었어요?"

"응. 사이바이씨의 「영웅학원」은 좋아하고, 책도 사놨으니..."

3개의 작품을 동시에 연재하는 사이바이씨의 만화들은 전부 사서 보지만,
그중에서도 영웅학원의 호쾌한 그림체와 전개를 정말 좋아했다.

「고난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주인공. 그중에 싹트는 우정」

험난한 시련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싸우고, 그속에서 우정을 키우는 주인공을 동경했다.
솔직히 저게 진짜 학원물의 주인공이잖아?

나? 난 저런 주인공은 되지 못한다.
나는 그러니까 뭐냐...흑막?

「모든 것이 파괴되어 최후의 결전만이 남은 상황.
마지막 저항으로 단결한 100명의 깡패들에게 둘러싸인 주인공.
1:100의 상황에서 100명의 깡패들 쪽이 오히려 공포에 떨며 필사적으로 발버둥친다.
깡패들보다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적들을 날려버리는 주인공.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어두운 밤의 공터에 울려퍼진다.」

...아무리봐도 이건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이라기보단 히든보스.
그것도 에디터로 열차라도 때려박지 않으면 클리어 불가능한 단순한 관상용.

솔직히 중학교 시절이 막무가내 폭력으로 점철되었던 나라도,
영웅학원처럼 조금쯤은 우정이 피어나는 전개를 기대하고 있던게 사실이다.
위기나 극복의 과정이 없었다며「나의 힘이 밉다! 이 몸의 무시무시한 힘이!」라고 외치는 배부른 이유같은게 아니었다.
그저 친구 하나 없는 중학교 시절이 외로워서, 쌈박질 하는 녀석들 중에서라도 날 무서워하지 않는 녀석을 찾고자 했을 따름이다.

다만 문제라면... 싸우는 중에 싹트는 우정을 연출한답시고
우정맺기의 진수인 「하하하!」웃으며 교환하는 크로스 카운터에 상대방이 몽땅 뻗어버렸다는것이다.
한방에 하늘을 날아가서 그대로 기절해버리는지라 우정은 커녕 대화 조차 나누지 못했다.

차라리 발상을 전환해서, 깡패들에게 홀로 맞서는 주인공같은 녀석이 있다면 곁에서 도와주며 우정을 키워볼까도 생각했었지만...

- 없어요 그런 판타지

역시 만화는 만화. 현실은 현실.
깡패들에게 홀로 맞서는 주인공 따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깡패들이 그런 녀석들을 노리지를 않았다.
빌어먹게도 중학교때 첫번째로 조우했던 깡패놈들을 적당히 달래놓고 난 뒤로 동네의 깡패란 깡패는 모조리 나만 쫓는것 같았다.
전설을 쓰러뜨리고 새로운 전설을 만든답시고 온갖것들을 상대하길 수차례.
나중에 가선 학군단연합까지 만들어서 세자리수의 깡패를 모았던 미래의 야쿠자 보스급 깡패까지 덤벼들었지.
덕분에 나도 빡돌아서 우두머리들부터 잔챙이 하나까지 자근자근 밟아서 싹을 뽑아 버렸지만서도...
결국 일반학생이고 깡패들이고 친구는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뭐...지나간 일은 이젠 별 상관없고.
내가 「영웅학원」을 좋아하는건 다름이 아니다.
거기에는 내가 넘보지 못했던 강인한 정신력과 뜨거운 마음, 친구에 대한 믿음속에 싹트는 우정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혹시 미캉네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날에 미캉네 집에 가면 사인을 받을수 있을까?"

사인받을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고 미캉에게 물어본다.
미캉은 곰곰히 생각하는듯 하더니 대답했다.

"그럼 언제 한번 리토랑 아빠 화실에 가보세요. 리토 친구니까 사인정도야 웃으며 해주실거라고요."

"어? 그래도 돼?"

화실에? 거기에 가면 폐끼치지 않을까?

"네, 다만 마감날이 아닌 날에 가보는게 더 좋을거에요."

"오오~! 좋았어! 그럼 다음에 리토 심부름때 같이 도우러 가야겠구나."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냥 가긴 쑥쓰럽잖아. 담번에 드링크라도 하나 사가야지."

뜻밖의 소득에 희희낙락해 있으려니 미캉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료스케 오빠네 부모님은 어떤일을 하세요?"

"우리 부모님?
그냥...어떤 기업의 연구직으로 종사하고 계신듯 한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저번에 근무시간중에 전화를 걸었을때 누군가가 아버지를 마사키씨라고 부르더라고. 원래 이름은 그게 아닌데, 무슨 별칭인가봐.
어머니의 경우도 결혼하기 전의 성인 히무로씨라고 부르고.
외부에 정보가 새면 안되는 보안관련 일을 하시는것 같아."

"그래요?"

"그래. 이제 해외 파견근무 하신지 1년도 지나서 국내로 돌아오시긴 했는데,
일하는 곳이 여기서 멀리 떨어진지라 당분간은 나혼자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그때문에 괜스레 미안해 하시더라고. 뭐, 중학교때에 비해서 친구들도 늘어나서 난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여기서 만난 인연들을 이대로 내팽겨치고 전학가는 결말은 죽어도 사양이다.
중학교때와 달리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생긴것에 부모님들도 다행으로 여기시면서,
다만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것에 대해 미안해 하시는걸 보는게 죄송했을 따름이다.
구레나룻을 자른 모습을 보시곤 굉장히 놀라며 기뻐하셨기에 인연을 충분히 쌓기까지 좀더 노력해보자고 생각했다.

"헤에. 친구들과 친해져서 다행이네요."

"뭐, 아직은 손에 꼽을 정도지만, 더 분발해야겠지."

"힘내요 료스케 오빠."

"물론이지. 고마워 미캉."

사인받을 의욕만이 만만한지라 미캉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리토에게 사이바이 스튜디오에 심부름 갈 일 있으면 꼭 연락바란다고 부탁했다.
얼떨떨하게 승낙한 리토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 미캉에게 인사하고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리토의 심부름을 도우면서 사이바이 스튜디오에 들렀을때,
냅다 문을 열어제끼며 「오! 잘왔다 리토! 시간없어 빨랑 들어와라!」고 고함치며 등장한 리토의 아버지에게 일순간 쫄았다.
목아래 부분에서 T자모양으로 갈라진 틈으로 쇄골과 더불어 가슴 가운데가 드러난 검은색 쫄티을 입은 건장한 성인남자.
거칠게 휘날리는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 밑으로 「大漁」라고 쓴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송충이 눈썹 밑으로 보이는 삼백안과 턱밑에 조금 난 턱수염.
이 모든게 어우러지자 험악하지만 야성미 넘치는 쾌남아 스타일의 어른의 모습을 띄었다.
리토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미남이라 꽤 놀라면서도 어떻게든 인사를 드렸다.

"아, 안녕하세요."

"아앙?"

리토외의 인물의 등장에 한쪽눈을 꿈틀 하는 리토의 아버지에게 위축되었지만 어떻게든 말을 꺼냈다.
리토 너도 지켜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줘...

"저, 유우키와 같은반의 아키츠 료스케라고 합니다."

"음, 아버지 만화의 팬이라서 심부름도 도울겸 해서 같이 왔어."

"크하하하~ 난 또 무슨 양아치 놈이 훼방놓으러 온줄 알았지.
그럼 진작 말을 했어야지!
어서 오너라."

호탕한 외모만큼이나 솔직하시군요 리토 아버님.
대놓고 말하시는 덕분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면서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작업실에는 저스틴과 에이전트들이 열심히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든 저스틴이 우리를 쳐다봤다.

"리토님 오셨습니까?
...넌?! 그때의 수염성인?!"

"켁? 저스틴?"

공원에서의 오해는 풀렸었지만 그때 미캉에게 한 짓을 두고 계속 노려보았던 저스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면이 있어보이는 우리 둘에게 리토 아버지(이하 사이바이씨)가 물었다.

"저스틴과 아는 사이냐?"

"당연합니다! 감히 미캉님에게 파렴치한 짓을 한...!"

"야, 그러니까 그거 실수...「호오...?」"

무언가 무저갱에서 들려오는 듯한 고요한 소리와 함께 어깨를 잡아오는 손길에 마른 침을 삼켰다.

끼기긱-

삐걱거리며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이를 드러낸채로 으르렁거리는 사이바이씨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잠시 이야기 좀 할까?"

"아니, 그...예에..."

살벌하게 분위기 잡은 리토네 아버지의 눈빛은 정말로 무서웠다.
눈자위까지 검어지는건 완전 호러.
미캉...이건 '약간' 무서워 보이는 정도가 아닌데?
네가 무서워한다는 번개보다 너네 아버지가 훨씬 더 무서워 보인다고.



당황해서 주말의 공원에서 있었던 히어로 놀이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미캉이 도중에 끌어들여졌다는 것과 저스틴의 오해까지.

양아치에다가, 담배까지 갖고 다니는 녀석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딸을 넘보는듯한 상황에 굉장한 분위기를 풍기시던 사이바이씨였지만
옆에서 리토가 자신을 암살자(야미)로부터 도와줬던 이야기를 함으로써 꽤나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고마워 리토. 이 은혜 잊지 않으마.

이후 무사히 부탁받은 심부름은 완수하고 새로 나온 신간의 사인본을 받을 수 있었다. 감격~!
잠시 화실을 둘러보면서 사이바이씨의 작업을 지켜보고는 놀라버렸다.

촤촤촤촤촥-!

하는 소리와 함께 진행되는 원고의 상황에 벙쪘달까...
빨라?! 키시베 로○?!
...아니, 그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경악할 스피드.
휘갈기는 듯한 속도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정말 신기였다.
한 분야에 극에 달하면 저렇게도 될수 있구나...
다만 그림그릴때 얼굴은 정말 살벌했다.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드러낸 얼굴은 심약한 사람이 보기엔 꽤 무서운 이미지였다.
이사람, 확실히 미남은 미남인데 좀 무섭다...

아무튼 무사히 그날의 목표를 완수하고,
힘찬 필체로 쓰여진 영웅학원1권 사인본을 책장에 곱게 모셔두고 흐뭇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뒤, 미캉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그전날 장보기를 같이한터라, 다른 일이 있나 생각하며 물었다.

"미캉이구나, 무슨일이니?"

"료스케 오빠, 혹시 지금 시간 있으세요?"

"그야 물론. 혹시 내가 도울 일이라도 생겼니?"

"그게...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어떤 일인데?"

"오늘 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을 오시기로 하셨는데,
아버지께서 마감으로 바쁘셔서 집에 계시지 않아요.
지금까지 계속 방문약속을 미뤄서 다시 미루기도 힘들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료스케 오빠가 아빠의 대역을 맡아 주셨으면 하는데,
와주실수 있으세요?"

이건...가정방문때 일이로구나.
담임인 여선생님을 리토가 사이바이씨로 분장해서 맞이했던 때이다.
긴장한 리토가 실수를 연발하자 라라가 우주인용 진정제를 마시게 하고,
진정제를 마신 리토가 취해서는 더더욱 폭주해버려 이상한 아버지라는 오해를 하게 만든 사건.
원래라면 리토가 감당할 일이었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갈수 있는데, 어째서 내가 대역으로?"

"료스케 오빤 아빠와 비슷한 인상이니까요.
리토도 동의했는걸요?"

아...화실에 갔을때 슬쩍 비교했었나.
미캉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도 있고,
리토가 맡다간 미캉네 선생님과 미캉이 꽤나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음...주로 수치심 쪽으로 말이다.
어쨌든, 이왕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으면 철저히 하는게 좋겠지.

"아, 그런데말이지. 가정방문 오시는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셔?"

"네? 「닛타 하루코」선생님이요. 왜 그러세요?"

"그게, 사이바이씨가 유명 만화가시니까 사인본이라도 한권 드리는게 낫지 않을까 해서말이지."

"사인본을요? 하지만 하루코 선생님은 여성분이신데 아버지의 열혈만화를 좋아하실까요?"

"뭐, 혹시 모르는거니 주의해야지.
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사이바이 스튜디오에 잠시 들렀다 갈께."

"그렇게 하면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요?"

"괜찮아. 최대한 빨리 다녀 올테니 걱정 말라고."

"그래요? 그럼, 부탁드릴께요."

전화를 끊고 잽싸게 옷을 차려입는다.
그리고 서점에서 「영웅학원1권」을 사서 사이바이 스튜디오로 향했다.
마감때문에 굉장히 바빠보이는 사이바이씨였지만 가정방문 오시는 선생님께 드릴 선물이라는 것에 흔쾌히 책에다 정성껏 사인해 주셨다.
추가로 캐릭터 그림까지 디폴메로 그려주신게 꽤나 가정방문에 못가는것이 미안했나 보다.
인사를 드리고 조심스레 책을 포장한 뒤, 서둘러 미캉네 집으로 향했다.

미캉네 집에 세워진 우주 식물 셀린(리토의 생일선물)이 괴이한 소리를 내며 반기길래 손을 흔들어 대답해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 어서오세요 료스케 오빠."
"아키츠로구나."
"어서와~!"

"고마워. 늦진 않았지?"

"네. 아직 하루코 선생님이 오시려면 시간이 남았어요.
이런 일로 와주셔서 고마워요."

"아하하, 평소엔 내가 신세지고 있으니 이럴때 아니면 언제 도와주겠어?
아무튼, 그냥 이 상태 그대로 기다리는건 아니지?"

"네. 아무리 그래도 금발염색은 좀 무리니까요.
그러니 가정방문 동안엔 이걸 써주세요."

미캉이 내민 것들을 보니 사이바이씨와 비슷한 머리 모양의 검은색 가발과 가발망,「大漁」라고 쓴 머리띠였다.
붙이는 눈썹같은건 없는걸 보니, 나는 가발만 있으면 충분한가보다.
미캉으로부터 물건들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저기, 그런데 거울은 어디있어?"

"아, 욕실에 있어요. 저쪽의 문으로 들어가세요."

"알겠어."

욕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며 헤어밴드를 벗고 세면대에 내려놓은 뒤 머리를 한데 묶고 가발망을 쓴다.
그 위로 가발을 조심스레 써서 금발이 안보이도록 적당히 조절을 한뒤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멋대로 날리는 머리모양이지만, 확실히 금발일때보단 얌전해 보이는데...
굵은 눈썹과 삼백안.
목까지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
그리고 원래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이게 만드는...일자로 난 콧수염과, 입술밑으로 턱을따라 자란 턱수염.
잠시 거울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손을 올려 수염부분을 가려본다.

...22세까지 힘내자.

적당히 정리도 되었겠다, 마지막으로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
거실에서는 미캉과 리토, 라라가 가정방문을 위해 주의 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대로 꾸며졌는지 확인할겸 미캉을 불렀다.

"미캉, 가발하고 소도구들을 써봤는데 어울려?"

"아, 나오셨어요 료스케 오빠...?"

반갑게 고개를 돌린 미캉이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토와 라라도 약간 놀란 표정이다.
이상하다는 반응은 아닌것 같고, 의외로 잘 어울리는걸까?

"...료스케 오빠?"

"응, 나야. 놀란걸 보니 의외로 그럴싸하게 변장이 된걸까?"

리토보다 훨씬더 잘어울리게 되었다면 그야말로 바라던바.
오늘 가정방문은 꽤나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놀란 표정을 추스리며 미캉이 말했다.

"대단해요! 정말로 잘 어울려요 료스케오빠!"

"정말로?"

"물론이죠! 아빠가 좀더 나이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쿨럭!"

그자리에서 바닥으로 넘어지며 좌절포즈를 취했다.
사이바이씨보다 나이 들어 보입니까...
구레나룻까지 깎았는데...!
거울보며 꽤나 만족했었는데!
밑도끝도 없는 좌절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보던 미캉이 당황하며 변명했다.

"아...저, 저기...!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냥 아빠보다 료스케 오빠가 수염이 길잖아요? 그래서...!"

"괜찮아 미캉...위로는 필요없어...
구레나룻 잘랐을땐 미용실 아주머니께 10년은 젊어보인단 소리까지 들었다고?
나 아직 10대란 말야..."

구레나룻 깎았음에도 사이바이씨보다 연상으로 보인다면,
구레나룻 있을적엔 50대로 보이기라도 했던건가?
상처나 여드름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라고 생각한건 그저 나만의 자기만족이었던거야?
나는 나르시스트?

"그...미안해요 료스케 오빠."

"어차피 난 수염성인이에요..."

"그러니까 죄송하다니까요...?"
"아, 아키츠. 기운내라고?"
"갑자기 기운이 없는거야~?"

한동안 회복하지 못하고 있던 나를 달래느라 미캉과 리토가 애를 쓰는 일이 있고나서
겨우 상황이 정리되었다.
슬슬 하루코 선생님이 오실때도 되었는지라 간단히 말을 맞추고 준비를 끝내기로 했다.

"그러니까, 난 유우키와 미캉의 아버지 사이바이씨 역할.
다른 사람들은 별로 할일은 없겠네.
하지만, 적어도 호칭은 통일하도록 하자.
잘못해서 아키츠라든지 료스케라든지 하는 말이 나오면 큰일이니까.
특히...라라의 경우에는 너무 텐션이 높아서 실수로라도 료스케라는 말이 나올수 있으니 조심해줘."

"그렇네요."
"확실히..."
"에~?"

"혹시 모르니까 지금 날 부르는 호칭을 시험해보자.
나도 사이바이씨처럼 행동할테니까.
라라양. 날 불러보렴."

"네. 리토파파~!"

"...아무튼, 합격."

"와아~!"

싱글벙글 웃는 라라에게 마주 웃어주며 약간 미묘한 기분이 된다.
저 나이대의 예쁘고 참한 며느리가 생긴 느낌인가?
고개를 흔들며 리토를 바라본다.

"그럼 리토. 날 불러다오."

"으...아, 아버지."

"......"

"아키츠?"

"...솔직히 좀 거북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미안. 나도 제대로 할테니까. 아무튼 합격."

불만인 표정을 짓는 리토에게 사과하면서 미캉에게 고개를 돌린다.
라라는 텐션이 너무 높아서 실수를 하고,
리토는 너무 긴장해서 실수를 하지만,
미캉이야 가장 침착하니까 걱정은 없겠지.

"그럼, 미캉?"

"네. 아빠."

"......"

"아빠?"

"자, 잠깐만 타임!"

고개를 갸웃하는 미캉을 제지하고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단순한 한마디뿐인데 어째서?
엄청나게 콩닥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쓴다.
표정을 추스르며 이상한듯 쳐다보는 세명을 마주보며 말한다.

"으흠...결국 문제는 나 하나인것 같네.
리토랑 미캉을 대할때 어색함을 느껴서 말이지.
선생님이 오셨을때 주의하지 않으면..."

「딩동-!」

"아, 하루코 선생님이다!"
"벌써?"
"가정방문 시작인거야?"

벌써 온건가?!
방금전까지의 좌절모드때문에 시간을 잡아먹긴 했지만 나름대로 주의사항은 숙지한 상황.
남은건 침착함 뿐이다!

"알겠지? 호칭에만 주의해줘. 특히 리토는 너무 긴장하지 말길 바래."

"어째서 나만...「너 거짓말은 서툴잖아?」"

정직한건 장점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불만스러워 하지 않아도 괜찮아.
신용이야 말로 정말로 큰 재산이니까.
간단히 주의를 환기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어두운 계열의 긴 바지에 목부위에 레이스 주름 처리된 흰색 블라우스 상의, 그 위에 V넥의 티.
곱창밴드로 머리를 뒤로 틀어올리고 동안으로 보이는 얼굴에 둥근 무테안경을 낀 하루코 선생님이 서있었다.
우리들보다 긴장한듯 하루코 선생님은 뻣뻣하게 선자세로 당황해하며 자기소개를 해왔다.

"저, 저기! 안녕하세요!
전 미캉짱의 담임인 닛타 하루코라고 합니다!"

예상 이상으로 어려보이는 선생님의 외모에 나도 약간 놀랐지만
표정엔 드러내지 않고 웃으며 거짓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네. 안녕하십니까.
미캉의 아빠인 유우키 사이바이라고 합니다."

이상한 부분은 없지...?
당황하지도 않고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사이바이씨보다 조금 더 무섭게 보이고 수염도 더 길고 약간 더 나이들어 보인다는게 에러지만,
실제 사이바이씨의 얼굴을 하루코 선생님이 알고 있는것도 아니니까.

내 얼굴을 보고 눈이 크게 뜨여지던 하루코 선생님의 모습에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눈을 빛내며 양손을 맞잡고 동경하는 모습 보이는 것에 안도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유우키 사이바이 선생님!"

반짝- 반짝-

말그대로 빛무리가 보일듯이 쳐다보는 시선에 약간 찔리는 것을 느끼며 하루코 선생님을 집안으로 들였다.

다다미가 깔린 방으로 들어가, 사각 탁자앞에 놓인 방석에 각자 정좌로 앉았다.
나는 하루코 선생님과 마주보며 앉고, 내 오른편으로 미캉이, 왼편으로 리토와 라라가 같이 앉았다.
탁자위에는 선생님께 대접할 물이 한잔 놓여있었다.

그나저나 리토가 지나치게 긴장한것이 신경쓰인다.
두근두근하는 소리가 귀에 울릴정도로 리토의 안색이 바뀌는데 이런식으로 상황을 넘기는데 어색함을 느끼는것 같았다.
약간 걱정하는 마음을 털어버리며 눈앞의 하루코 선생님을 바라본다.

긴장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아이같아 보인다고 실례인 생각을 하고 있을때,
하루코 선생님이 라라를 가리키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저기...이쪽은..."

라라가 신경쓰였나?
리토랑 함께 앉아있으니 설명은 편하겠군.
라라가 웃으며 리토와 팔짱을 낀다.

"아! 나? 리토의 애인입니다~!"
"라, 라라!"

"에?"

놀란듯한 하루코 선생님께 부연 설명을 한다.

"외국에서 국내로 유학온 학생입니다.
저희 집에서 하숙하면서 리토와 친하게 지내고 있지요.
꽤나 활발해서 숙맥인 리토가 잡혀살고 있는 편이죠."

국제화 시대에 외국인 여자친구는 이상할것 없어요~.

"아...하하. 그렇구나...
아드님이 조숙하시네요."

조숙까지야...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이성교제를 하니까요.
하루코 선생님도 만만찮게 이성교제에 어두운편이 아닐까 생각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하루코 선생님."

"네...네,넷?!"

순간적으로 얼굴을 빨갛게 하는 하루코 선생님을 보며 '아차...'라고 생각했다.
속으로 이름을 부르던게 버릇이 되어 버려서 그만 '닛타'가 아니고 이름인 '하루코'로 불러버렸다.
당황하는 선생님을 바라보다 미캉과 리토들도 당황한듯한 표정이라 빨리 수습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아하하...죄송합니다.
미캉으로부터 하루코 선생님, 하루코 선생님이라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만 실수를 했군요.
실례를 했습니다."

"아, 아니...괘, 괜찮아요.
그냥 그대로 이름으로 부르셔도..."

"에...괜찮습니까?"

"네, 부디!"

"......"

얼굴이 빨개진채로 기뻐하는듯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하루코 선생님을 보니까,
이분은 정말로 사이바이씨의 열렬한 팬이라고 다시한번 깨달았다.
힐끗 미캉을 바라보니 미캉이 조심하라고 눈치를 준다.
상황이 다행히 잘 정리되어 안도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불안한가보다.
조심할께 미캉.
헛기침을 하고 하려던 질문을 계속한다.

"엇흠-. 그러니까...미캉의 학교에서 수업태도는 어떠한가요?"

"아, 수업태도 말인가요? 미캉짱은 머리도 좋고 차분한 착한 아이랍니다.
반 아이들 모두에게도 신뢰받고 있어요."

이야기를 듣던 미캉이 으쓱하면서「에헴」하는 모습이 보인다.
칭찬을 받아 기쁜듯한 모습을 보이니 보기 좋구나.

그런데 왼쪽에 있는 리토가 말 한마디도 없는게 너무 조용하다.
쳐다보니 상당히 긴장한듯 몸을 뻣뻣하게 하고 있는게 좀 불쌍해 보였다.
「리토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라라의 물음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고...

리토의 상태를 걱정하던 라라는 무언가 생각난듯 잠시 자리를 비웠다.
...설마 진정제라고 쓰고 폭탄주라고 읽는 약을 먹이려는건 아니겠지?
리토가 혹시모를 사고를 치기전에 대화를 제대로 끝내도록 하자.
하루코 선생님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천천히 말을 한다.

"미캉이 그렇게나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사실... 아내가 해외에서 일하고, 저도 만화가 일로 바쁜터라 둘다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서 내심 걱정했습니다.
언제나 리토와 미캉 둘만 집에서 지내게 한 셈이니까요.
크리스마스때조차 집에 들어오질 못했었죠."

"사이바이 선생님..."

미캉이 혼자서 외로워 할때 곁에 있어준 리토를 떠올린다.
크리스마스때 혼자서 선물을 사와 미캉에게 건네주던 오빠다운 모습.
리토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짓던 미캉의 웃는 얼굴.
하지만, 그걸로 미캉의 마음은 채워졌던걸까?
비록 리토가 그 외로움을 덜어주었더라도,
정말로 미캉이 그것에 감사했을지라도...
사실은 가족 모두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던게 아닐까?

"...미캉은 어른스러운 아이랍니다.
조숙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의 일을 알아서 하고,
집안일도 홀로 열심히 하는.
하지만..."

하지만 그건 초등학생이 해야할 일은 아니었다.
좀더 응석부리고, 울면서 고집을 피워보며 부모님을 곤란하게 하고,
부모님에게 매달려 웃음짓고, 그렇게 추억을 쌓아가며 즐거움을 알아야 할 때에...
미캉은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렸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11살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미캉.
너무 빨리 응석을 잊고, 울음을 그쳤다.

여전히 혼자서 떨어져 있을때 외로움을 타던 미캉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랬기에 미캉은 홀로 떨어진 야미에게 계속해서 손을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에 익숙해진다는건 슬픈일이니까.

한손에 잡은「영웅학원」의 감촉이 느껴진다.
어느새 익숙해진 외로움속에서 조금만 더 발버둥 쳤더라면, 혹시 나의 지난 3년중에서도...

말을 멈춘 나를 쳐다보는 하루코 선생님과 미캉과 리토가 보인다.
정신을 차리곤 말을 계속한다.

"적어도 미캉이 외로워하진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언제까지나 리토가 함께 있을수도 없었기에, 가끔은 미캉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할 경우도 있었지요.
그때...미캉이 외로움을 느낄때조차 함께 있어주질 못했던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빠..."

미캉에게서 작은 소리가 새어나온다.
리토도 어느새 굳어있는 표정에서 안타까운듯 미캉을 바라본다.
웃으며 미캉의 칭찬을 하던 하루코 선생님도 가라앉은 분위기에 당황하고 있는 표정이다.

...이런 분위기로 끌고갈게 아니었는데?
사이바이씨도 아닌데 진짜 아버지인마냥 후회의 말을 내뱉어 버렸다!
간접적으로 미캉네 아버지 험담을 하는 것과 똑같잖아?
괜시리 개인적인 경험때문에 감정이입을 해버린게 문제였다.
어떻게든 지금의 무거운 분위기를 해소하지 않으면...

침울했던 표정을 지우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아하하~ 뭐, 다행히 라라가 오면서 집안이 밝아졌지요.
아직은 이곳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도 잦은 편이지만,
항상 밝고 건강해서 모두를 기운차게 만들어 주거든요.
조용했던 집도 이젠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라 걱정을 덜었달까요?
그래서 라라양에겐 항상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리토가 정말 멋진 아가씨를 잡았지요."

"아키...! 아, 아니...아버지!"

리토가 당황하며 나를 바라보지만 무시.

"뭐, 리토는 리토 나름대로 청춘의 고민이 있는거 같지만,
라라양이라면 그런 고민따윈 단숨에 날려줄테니 걱정할 일은 없다고 할까요?"

최후의 결정 때 라라와 하루나 둘다 좋다고 라라에게 리토가 고백할 때,
리토보고 데빌루크 왕실의 후계자가 되서 다중혼약을 하라고 말해버리니까...
라라의 과감함엔 정말 할말이 없다만 고민 해결이라면 해결이지...

갑작스레 주제가 미캉에서 리토로 넘어가자 리토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전의 가라앉은 분위기에선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차라리 아까전 분위기로 끝까지 나갈걸 그랬나?
그래도 하루코 선생님과 미캉이 살짝 웃는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 잘 넘어간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방금전 자리를 비웠던 라라가 밖에서 리토를 불렀다.
자신이 화제가 된게 거북했던 리토는 양해를 구하더니 재빨리 일어나 방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리토! 좋은거 만들어왔어. 이거 마셔!」
「라라, 이건?」
「마음이 차분해지는 데빌루크의 허브가 들어간 드링크야.」
「자,잠깐 나 이젠 충분히 침착...?!(꿀꺽꿀꺽꿀꺽)
어...얼레? 왠지 기분이 편-해졌어...」
「바로 효과가 나타났어~!
자, 돌아가자 돌아가!」
「오...오우~」

...결국 마신거냐 데빌루크 특제 허브.
지구인에겐 알콜과도 같다는...
방문을 열고 리토와 라라가 들어온다.
리토의 얼굴이 붉어지고 비틀비틀 거리는 모양새가 영 불안하다.

"우이~"

...진짜 취했구나 이녀석.

"잠깐...리토 괜찮아?"

미캉도 리토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걱정하며 물어본다.
리토는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자리에 앉으려 한다.

"얼레~ 왠지 휘청휘청..."

"에...?"

하지만 갑작스레 몸을 크게 휘청거리며 리토가 하루코 선생님쪽으로 쓰러진다.
눈이 뱅글뱅글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진짜 통제가 안되는 상태인가보다.
이대로 가다간 하루코 선생님의 옷을 벗겨대는 파렴치한 상황이 전개되겠지만,
두눈뜨고 있는이상 그걸 용납할 내가 아니다!

하루코 선생님을 향해 쓰러지려던 리토의 벨트부분을 잡아 멈춘다.
다행히 리토의 손이 하루코 선생님의 옷에 닿기전에 멈출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전 제지로 균형이 더 흐트러진 리토는 탁자위로 쓰러지며 탁자위에 놓인 물컵을 치고 말았다.

"꺄?!"

물컵이 허공에 뜨며 하루코 선생님쪽으로 물이 쏟아지자 놀란 내가 하루코 선생님께 다가간다.
미캉은 쓰러진 리토를 일으키려고 일어섰다.

"괜찮으십니까 하루코 선생님?"

"괘...괜찮아요."

"우선 옷을 말리는게 좋겠습니다.
겉옷을 잠시 벗도록 하죠."

"아...네."

하루코 선생님은 당황하면서도 물에 젖은 V넥 티를 위로 벗어 올렸다.
그런데 물이 블라우스까지 닿았는지, 겉옷을 목위까지 벗어올리자 블라우스 너머로 브래지어가 훤히 비쳐 보였다.
...나무삼.
얼굴이 겉옷으로 가려진 상태라 나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듯한 하루코 선생님께 약간 죄책감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내가 바닥에 흐른 물을 닦으려고 수건을 찾고 있을때, 미캉은 예상치 못한 해프닝에 불평하면서도 탁자위로 쓰러진 리토를 부축했다.

"나참...뭐하는거야 리토?"

"우~?"

"에? 꺄-----!"

갑작스런 미캉의 비명에 놀라서 뒤돌아 본순간 미캉의 바지를 잡고 끌어내린채로 쓰러진 리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새하얀 허벅지 위로 빨간 딸기무늬 팬티를 드러낸 채 서있는 미캉의 모습도.
...나의 죄업은 주먹으로만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눈으로 쌓는 죄업도 있었군요.
달까지 닿아라 나의 번뇌.

"호에?"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채로 멍한 리토를 바라보며 미캉은 새빨개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들어올린다.
심판의 시간. 하지만 먼저 바지를 걷어 올리는게 수치심적으로는 나을거라고 봅니다.
이내 주먹을 떨구며 미캉이 고함을 질렀다.

"무슨 짓이야 바보~!!"

"갸-----?!"

여동생을 벗기고 심판 당하는 오래비.
고의가 아니었다지만 굳이 말하자. 파렴치하다.

"미, 미캉짱?"

어느새 겉옷을 벗은 하루코 선생님이 지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놀라면서 미캉을 부른다.
하루코 선생님도 블라우스를 좀 가려주세요.
놀라서 아직껏 브래지어가 비친다는걸 눈치 못챈건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가정방문이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리토는 자기방에 눕혀놓고 다들 거실로 나왔다.
브래지어가 비치는걸 깨달은 하루코 선생님이 얼굴이 빨개진채로 가슴을 가리는 일이 있었지만,
V넥티와 블라우스가 마를동안 미캉의 어머니 옷중에서 맞는 옷을 대신 입도록 건네드렸다.

동경하는 만화가를 만난다는 기대를 갖고 방문한 집에서 횡액을 당한 하루코 선생님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소파에 앉아 뭔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하루코 선생님을 보고 문득 잊은게 생각났다.

"아, 하루코 선생님."

"네?"

"그러고보니 드리고 싶은게 있었는데, 옷이 마를동안 잠시만 기다려 주실수 있을까요?"

"아...네."

"그럼 잠시 실례 하겠습니다."

거실을 나와 방금전 하루코 선생님을 접대했던 방으로 간다.
내가 앉았던 자리 근처에 놓여진, 사이바이씨로 부터 받은 「영웅학원1권」사인본을 집어들고 거실로 되돌아온다.

"하루코 선생님."

"아, 오셨어요 사이바이 선생님?"

"이걸 부디..."

반기는 하루코 선생님께 살며시 사인본을 내민다.
놀라는 표정으로 사인본을 받는 하루코 선생님.

"이건?!"

"부족한 작품이지만 제 만화입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은 이런것 밖에 되질 못하는군요.
마음에 든다면 좋겠습니다만..."

"부, 부족하다니 천만에요!
정말로...최고의 선물이에요."

"...다행이네요."

기뻐하면서 사인본을 소중히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하루코 선생님께 덩달아 미소가 지어진다.

귀엽게 디폴메된 캐릭터 밑에 적힌 하루코 선생님께 보내는 사이바이씨의 사인.

「To 닛타 하루코 선생님 

   From 유우키 사이바이」


야성미 넘치는 외모의 사이바이씨다운 강렬한 기세가 느껴지는 힘찬 필체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하루코 선생님을 보며 생각한다.
비록 당신께서 동경하는 사이바이씨를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부디 이걸로나마 보답이 되었기를 바래요.



옷이 마르고 다시 옷을 갈아입은 하루코 선생님은 떠날 채비를 하셨다.
마중하기 위해 일어선 우리들을 신발장 앞에 서서 마주보는 하루코 선생님.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할께요."

"안녕히 가세요 하루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루코 선생님."

"아니오, 저야말로 사인본까지 받아서 정말 기뻤는걸요.
앞으로도 멋진 만화를 그려주세요 사이바이 선생님!"

"아하하, 물론이죠. 팬들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않으면~!"

제가 그리는건 아니지만요.

"그런데 만화 그리시느라 바쁘셨을텐데 이렇게 시간까지 내주시고... 정말로 미캉을 아끼시는군요."

"아, 아니...그건 뭐랄까...
역시 아빠로서는 미캉의 이야기가 궁금하달까 듣고싶달까..."

실제론 정말 바쁘셔서 오지 못했어요...
뭐, 후회니 뭐니 말했지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이바이씨의 모습은 역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캉도 그렇게까지 섭섭해하진 않았잖아요?

"후훗...처음에는 생각보다 무서운 이미지라 긴장했었는데,
정말로 상냥하신 분이로군요?"

"에...그, 그런가요?"

상냥하단 소린 또 처음 듣네...
사이바이씨에게 말하고 있다는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영 쑥스러운지라 나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인다.
방안에서 접대할때와 달리 오히려 내쪽이 긴장한 모습에 하루코 선생님이 가볍게 웃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사이바이 선생님은 마치 순진한 소년같아요.
그렇기에 더더욱 열정이 넘치는 만화를 그릴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뜨끔

순간 들켰나싶어서 무지 놀랐다.
소년같다는 얘기는 기쁘긴 했지만 이런 순간에 들을꺼라곤 예상못했다고요?
아무것도 모르는듯 귀여운 얼굴을 하시곤 의외로 예리하시군요...
웃음으로 속여넘기자. 스마일~ 스마일~
뻔뻔히 미소지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하루코 선생님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미캉에 대해 몰랐던 점도 알수 있었고,
따듯한 가정의 모습도 봐서 안심이에요.
가정방문을 하면서 이렇게 즐거웠던 적은 처음이에요.
그리고, 사이바이 선생님의 의외의 모습도 알게되어서 정말 기뻤으니까...
그, 그럼...전 이만 가볼께요~!"

마지막에 와서 약간 당황한듯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구두를 신는다.
너무 서두르는 모습이 불안한데...

"어맛-?!"

아니나 다를까 구두를 신다가 몸이 앞으로 넘어지려는 하루코 선생님.
급히 앞으로 나가 쓰러지려던 하루코 선생님을 부축한다.

"꺄?"

"괜찮으십니까 하루코 선생님?"

"사...사이바이 선생님..."

얼굴이 빨개지며 나를 바라보는 하루코 선생님.
안겨있는듯한 포즈로 거의 얼굴이 맞닿을만큼 가까이 보인다.
머릿결에서 희미하게 나는 샴푸향.
시선을 가득채운 깨끗한 얼굴과 안경 너머로 보이는 흔들리는 눈망울.
벌어진 입술사이로 보이는 고른 치아와 살짝 내비치는 붉은 혀.

순간의 시간이 지나고 미처 정신을 차리기 전에,
미캉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료...아, 아빠!"

"응?"

시선을 돌리자 미캉이 얼굴이 빨개진채로 나를 바라본다.
...어째서?
다시 하루코 선생님께 시선을 향한다.
순진한 얼굴이 붉어지며 묘하게 달뜬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붉어진 목덜미 아래로 지금은 마른 블라우스와 V넥 티가 보인다.
그리고, 하루코 선생님의 왼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내 오른손.
...?

V넥의 벌어진 틈 사이로 파고들어 직접적으로 블라우스를 잡은 오른손.
움켜쥔 손바닥을 통해 블라우스 너머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

오 마이 갓?!

놀라서 움찔한 나머지 손바닥에 힘이 들어가서 뭉클거리는 감촉이 다시 전해져온다.
더욱더 얼굴이 상기되며 눈물마저 맺히려는 하루코 선생님의 모습에 황급히 손을 치운다.
가슴을 가리고 어쩔줄 몰라하는 하루코 선생님의 모습에 필사적으로 사과한다.

"죄, 죄송합니다!
부축하려던게 그만...!"

좋은 분위기로 잘나가다가 마지막에 와서 이게 무슨 꼴이야?
팬 그만 둔다는 소리만 안나오길 빌면서 거듭해서 사죄의 말을 꺼낸다.
하루코 선생님도 당황하며 사과해오는 나를 제지한다.

"아, 아뇨. 저야말로 볼품없는 몸이라 오히려 폐를..."

"에?"

"?!그, 그게...! 시...실례했습니닷-!"

급히 구두를 신고서 현관문을 열고 뒤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떠났다.
뒷모습으로 보이던 귓가가 새빨갰던건 기분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멍하니 하루코 선생님이 사라진 밖을 바라보다 고개를 뒤로 하니,
붉어진 얼굴로 눈에 쌍심지를 켠 미캉의 모습이 보였다.

"료스케 오빠."

"네?"

"하루코 선생님께 무슨짓이에요?
덕분에 오빠나 아빠 둘다 이상한 집안이라고 생각할꺼 아녜요!"

"미, 미안 미캉.
고의는 아니었어?"

볼썽사납게 허둥대는 내모습을 노려보던 미캉은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어째서 마지막에 와서 이런 결말일까요..."

"...미인은 트러블에 휘말리니까?"

"...분명 잘못되어 있는데 납득이 가려는게 이상해요."

"아니, 나에게 불평해도..."

그나저나 그렇게 한숨만 쉬다간 복나간다고 미캉.



어쨌든 가정방문도 끝났겠다 가발과 가발망을 돌려주고 미캉의 집을 나왔다.
난처한 일도 있었지만 내 노력도 헛된건 아니었는지 결국엔 미캉도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배웅해주었다.
좀 미안한데...
결과적으론 리토보다 더 심하게 말썽을 일으킨것 같아 면목이 없을 따름이다.
뭔가 만회할 거리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바람에 날리는 머릿결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런...그러고 보니 가발을 쓸때 내려놓았던 헤어밴드를 챙기지 않고 와버렸네.

황급히 왔던길을 되돌아가며 미캉의 집으로 향했다.
은근슬쩍 길에서 보이는 자동차들은 사뿐히 벽돌울타리 위로 달려감으로써 무사히 회피.
나를 향해 부딪혀 올지 안올지를 걱정하기 이전에, 이런식의 유비무환의 자세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안전의 지름길이다!

아무 탈없이 미캉의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르자 라라가 나온다.

"어 료스케구나? 무슨 일이야?"

"아니- 헤어밴드를 깜빡하고 가서 말이지~."

"아하하~, 료스케도 참.
그럼 들어와서 찾아보도록 해.
난 리토를 간호해야 하니까 올라가봐야 해서.
그리고 자기 물건은 소중하게~!"

"응. 빨리 챙겨서 가도록 할께."

웃으며 라라는 리토의 방으로 간다.
아직까지 리토는 자기방에서 취한 상태인가 보다.
이럴땐 조용히 헤어밴드만 챙기고 사라져주는게 예의다.

소란을 피우지 않게 발걸음에 조심하며 욕실로 향한다.
헤어밴드 없이 집에갔다가 일어날 위협을 사전에 막은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욕실문을 열었다.

"에?"

"어라?"

욕실 문을 열자 눈앞에 보이는 건 옷을 벗고 있는 미캉의 모습.
평소에 머리에 묶고 있던 끈을 풀어 흘러내린 머리칼.
반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팬티를 드러낸 상태의 가랑이가 보였고,
위쪽의 속옷을 벗어 올리려고 양팔을 어깨위로 올린 상태로,
배꼽은 물론 가슴 바로 아래까지 드러난 매끈한 피부.

갑자기 열린 욕실문에 그 상태로 굳어져 눈이 크게 뜨여진 미캉.
이윽고 미캉의 입이 크게 열리고 비명이 터져나온다.



푸-확-!



"꺄악?! 료스케 오빠?!"

엄청난 기세로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에 미캉이 놀라서 소리지른다.
문고리에 손을 잡은 자세 그대로 한손으로 코를 틀어막았지만 손을 타고 끊임없이 피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윽고 문고리에서 나의 손이 흘러내리며 피웅덩이 속에 머리를 처박는다.

중학교 이후론 피같은 피는 한번도 흘려본적이 없는데...

"료스케 오빠! 괜찮아요?!"

놀라며 나에게 다가오는 속옷차림의 미캉을 바라보며 점멸해가는 의식속에서 생각했다.

- 열어젖힌 욕실 문 너머는 그야말로 도원향

미캉, 네가 바로 색기 넘버원이다...





굉장한 양의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나에게 놀란 미캉은 화를 낼 생각도 못한듯 했다.
결국 그날은 리토랑 더불어 리토집에서 얌전히 미캉의 간호를 받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걱정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미캉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으로 괜찮다고 답했지만...

정말이지 그때는 나도 진짜로 죽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웅덩이를 만들만큼 욕실에 고인 코피는 정말 심상치 않은 양이었다.
그야말로 혈부(血符)「블러디 스파크」
여자애 속옷차림을 보고 코피로 죽는다니 그거 개그?

하지만, 미캉의 그 차림은 정말 범죄였다.
말그대로 뇌골수를 직격하는 충격이었달까.
DI○의 스탠드공격을 받은 폴나레프의 심정을 이해할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문을 열기전 꼭 노크를 하자고 다짐했다.





후일 미캉으로부터 하루코 선생님이 「앞으로도 사이바이씨를 힘껏 응원하겠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안심했다.
다행히 팬 그만두지 않았구나...
사인본을 커버를 씌워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요즘들어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아진 하루코 선생님이 걱정이라는 미캉의 말에 「영웅학원2권」사인본도 준비해야 하나 고민했다.



p.s. 간호를 받고 피에 젖은 옷을 적당히 닦아 입고 집으로 돌아간 다음날,
야쿠자들의 혈전이 있었다는 괴소문이 퍼져 한동안 동네를 불안하게 했다고 한다.



======================

미캉의 담임 닛타 하루코 선생님 : (하루코)

전편에 나온 타치바나의 이미지는 이곳 : (타치바나)



쓰기전에는 해프닝거리가 떠오르지도 않았는데
타자로 치다보니 해프닝이 늘어만 가는군요-ㅅ-;
원작보다 더한 경험을 한 하루코 선생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미캉의 마지막 해프닝은 원작에서 소재로 쓰인적이 없지만, 73화의 첫페이지를 장식하는 장면에서 따왔습니다.
(이장면)
이걸 보고 엄청난 번뇌망상전개를 폭발시키던 2채널의 VIPPER 분들과 그에 동승한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트러블 안 읽으신 분들도 계시니 원작을 설명하는 식의 묘사도 간간히 넣도록 하겠습니다.
이전편은 제가 배려가 부족했던것 같군요 죄송...^^;

이번편 사건 목록

<미캉의 가정방문>
만화가 유우키 사이바이의 팬인 담임 여선생님(닛타 하루코)이 미캉의 집에 가정방문을 왔다.
아버지는 마감으로 바쁜상태.
리토가 변장하여 아버지 행세를 한다.
긴장한 리토로 인해서 하루코와 미캉이 수난을 당한다.



이전편에 관련된 사건 목록

<개와 리토가 바뀌는 사건>
개 : 리토로 변해서 야미 및 여학생들을 성희롱 하면서 전봇대에 쉬를 하고 동네 전체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리토 : 개로 변해서 하루나네 집에서 함께 샤워하는 시간을 보낸뒤, 원래 몸으로 돌아와 야미와 마을사람들에게 쫓긴다.

<새학년 위원장 선거>
2-A에 편입된 코테가와 유이가 리토와 라라의 파렴치 행각을 막기 위해 반장에 출마한다.
여자 위원장 후보는 코테가와와 라라 두명.
남학생들(여학생들과 가까워지고 싶다)과 여학생들(교복을 좀더 멋지게)의 의견을 수렴한 라라가
「파렴치한 교복으로 바뀌는 뱃지(여)」와「뱃지(여)를 착용한 여학생에게 달라붙게 만드는 뱃지(남)」을 만든다.
교내에 악세서리 반입은 안된다며 뱃지(여)를 압수한 코테가와는 파렴치한 복장으로 바뀌어 버리고,
뱃지(남)를 장착한 리토가 코테가와에게 달라붙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때문에 코테가와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평가가 급락.
투표 결과 라라2표, 코테가와2표, 사이렌지 하루나 30표로 하루나가 여자 위원장이 된다.
코테가와는 풍기위원이 된다.

<리토의 후배 타치바나(이후 등장안함)>
리토의 하렘 생활을 동경한 중학교 후배 타치바나가 리토에게 조언을 구한다.
하루나에 한눈에 반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리토보고 물어달라고 등을 떠민다.
이 과정에서 하루나가 아닌 「눈이 3자 모양의 뚱뚱한 여학생」에게 리토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라고 묻게 되어 오해를 받는다.
(이 SS상에서는 료스케가 걸렸음.)
이후 하루나의 반응이 이상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것으로 생각한 리토는 소금기둥이 되고, 타치바나는 실망한다.
다음날, 이번에는 풍기위원 코테가와에게 반했다면서 다시 리토의 등을 떠민다.
균형을 잃고 밀려져간 리토는 코테가와의 가슴과 허리를 감싸는 모습으로 코테가와를 뒤에서 안게되고,
(이 SS상에서는 코테가와의 뒤를 따라가던 료스케가 걸렸음.)
정문에서 코테가와에게 정좌로 설교를 당하는 처지에 놓이고, 타치바나는 리토에게 힘내라고 응원한다.



그리고 9월로 개강과 다른 일들로 인해서 앞으로의 연재속도는 많이 느려질듯 합니다. 완결까진 계속 가겠지만요.
그래서 리플은 현재의 방식을 바꿔서 코멘트 리플로 답하도록 하겠습니다=ㅅ=;
(안그러면 답변달때까지 한참이 걸릴지도 모르는지라...;)

게시판 공지를 살펴보니까, 코멘트로 리플을 다는게 에티켓이기에 이걸 언제 바꿔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고...



p.s.아키츠네 아버지, 어머니의 직업과 앞으로의 전개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양해 바랍니다.
'아키츠'란 성을 지을때 주인공의 상황과 연관이 될법한걸로 지으려고 생각하다가,
이 사람들에게서 따왔기 때문에 부모의 이름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선 둘다 보통 사람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넘어가주셔도 무관합니다.=ㅅ=)
부모님의 이야기는 앞으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솔직히 등장해도 어떻게 그분들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러브코미디에 괜히 한화를 주인공쪽의 훈훈한 가족애로 채우기에는 솔직히 좀...=ㅅ=a;;



하얀사신 님// 2명을 고르라면 코테가와 유이, 유우키 미캉이라고 답할수 있습니다.

팬픽중에 가장 많이 본 종류는 미캉 팬픽.
하지만, 팬픽중에 가장 글솜씨도 좋고 재밌었던 작품은 코테가와 팬픽.

동인지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건 미캉 동인지.(순정)
두번째로 마음에 든건 야미 동인지.(순정)

원작에서 첫번째로 반했던건 미캉.
원작에서 두번째로 반했던건 코테가와.

답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사심안 님// 이 남캐는 어차피 단역이라 더이상 폐끼칠일은 없지요^^;

Dietrich 님// 솔직한 고백에 감솨~! 저도 코테가와가 정말로 사랑스럽습니다~!(*=ㅅ=*)b

이스트 님// 이 작품이 시리어스로 갈 확률은 0입니다~=ㅅ=
가끔 고민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래봤자 한화안에 끝나요^^;

蛟河 님// 나서지 않는 주인공을 트러블로 이끌 재간은 없어서 말이죠^^;
계속 피하기만 하는 녀석한테 억지로 트러블을 안겨주는것도 그렇고...
이일 저일 도와주는 타입의 주인공이 글쓰는 사람으로선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라가라흐 님// 원래는 잘 안쓰는 기술이지만 뚜껑열릴만큼 악질인 깡패들한테 쓰던 기술입니다.
잠시 유체이탈 시키고 소위 '마법의 주문'으로 원래 육체로 인도해서 복귀시키는 방법이죠=ㅅ=;
잠자다 유체이탈하는건 모르겠는데, 타의에 의해 각성상태에서 강제체험을 당하면 트라우마가 됩니다.-ㅅ-;

심볼을 잡는거야 리토의 기본소양=w=;;;

적월야 님// 코테가와에 이어서 다른 아가씨들도 더해지겠지요.^^;
그런데, 얘가 그렇게 불쌍했던가요?=ㅅ=a;?

화벅 님// 그것이 과연 누구의 플래그가 될지는 작가도 아직은 몰라요?^^;

kilou 님// 아가씨에게 파렴치한 짓을 하는만큼,
남자에게도 공평하게 파렴치한 짓을 해줘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응?)

어어 님// 지나간 불행을 대가로 아가씨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주니 주인공은 저에게 감사해야 하는것이 아닐까요?(퍽!)

후레타이 님// 무녀에겐 상식을 버리는것이야말로 강함의 근원.
로봇 좋아하는 아가씨의 무쌍전설을 기대하며~=3=

kero군 님// 원작도 그렇지만, 단역으로 퇴장하시는 타치바나에게 작별의 인사를~^^;

루노스디아 님//
작가의 내력으로 판단해주세요.=ㅂ=;
많이본 팬픽은 미캉 팬픽, 재밌었던 팬픽은 코테가와 팬픽.
동인지는 미캉의 승리. 동인지 2위는 야미. 둘다 순정.
원작에서 가장먼저 좋아했던건 미캉, 다음으로 좋아하게 된건 코테가와.

게다가 트러블은 Two Love도 되잖아요?(회피...)

nature 님// 어제 올릴수 있을꺼라 봤는데 잘 안되더군요=ㅅ=;
근데 9월부턴 연재가 뜸해질겁니다.
완결까진 가겠지만...

Albion 님// 둘다 여자가 된다면 트러블거리가 적지 않을까 싶어서~
주인공(남)과 리토(여)가 만나는 쪽으로 우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3=

이레나이리스 님// 십자가 너클로 패면 우선 영혼이 분리됩니다.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영혼이 원래 육신이 있던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빙의자의 경우에는 원래 육신이 현실세계에 있기때문에 현실로 돌아가게 되지요.
참고로 리더A가 들었던 대사는 '몽상봉인'^^;

고돈소리 님// 홧병으로 드러눕게 만들면 간호 이벤트도 가능하겠군요!
갈구고 갈궈서 속앓이로 쓰러지는걸 해볼까나...( -_-);

처음 상황은 중학교때 폭력그룹을 주인공이 박살내던 상황입니다.
꽤나 악질이어서 주인공이 십자가 너클을 날려서 리더의 영혼을 분리시킨 상태지요.
싸움이 끝나고 리더의 영혼을 다시 몸과 결합시켜주기 위해 주술을 외워준겁니다.
[나무아미타불][아멘][알라][그랜드 크로스][악령퇴산][몽상봉인]
리터A가 들은 속삭임은 [몽상봉인]입니다.

민트박하 님// 주인공이 노력한 덕분에 원작의 카오스를 반정도 줄였습니다=ㅅ=;

질풍백 님// 리토가 여성이 되는 사건은 확실한데,
주인공이 여성으로 변하는 사건이 발생할지는 확신할수 없겠네요^^;
아직 원작의 여성화 사건 부분을 확인해보지 않은터라...
지금은 주인공(남)과 리토(여)의 트러블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아노르 님// 학교 방송...저게 쓰인 소설을 봤던것도 같은데 어디서 나온건진 기억이 안나네요^^;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란걸로 끝날수도 있어요?^^;

닷식스[......] 님//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주는건 생각했지만 저도 거기까지 심하진 않아요?^^;

아르곤 님// I want your tears!
남자답게 울지않으려고 폼잡는다면 진짜로 울리겠다!(=ㅂ=)

검은5군 님// 부르라고 하면 전력으로 달아날껍니다.^^;

신작 님// 얘한테 투표해줄 사람은 코테가와 한명 뿐일듯?
...코테가와가 투표해주려나?--;

라이세네프 님// 매드같은 분위기를 무서워한 주인공이 좀 경계합니다.
그리고 전지해보이는 듯한 느낌의 여성들은 제가 어려워 하는지라...-_-;
'후후후...'하며 다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뒤처리 해주는 해결사 역할까지 하는 캐릭터는 저로선 잘 다루기가 힘듭니다=ㅅ=;;

따라서 미카도님은 혹시나 관심을 끌진 몰라도 메인으로 하긴 힘들...죄송(_ _);;

흐냐 님// 2학년이 되면서 인물들이 늘어나며 소동이 더 많아지죠^^;

카르나스필 님// 감사합니다!^^
반만 써져있던 1화를 완성시켜 자창게에 올릴땐 일창게에서 완결까지 달려보리라곤 생각도 못해봤네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휴트랑 님// 야미의 괘씸한 허벅지를 콧김을 뿜으며 뚫어져라 보던 타치바나는 반성해야 합니다.

Dr.㉿ 님// 괘씸한 시선과 눈치없는 행동을 고쳐서 타치바나가 바르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주인공이야 계속 고생하겠지요.
가끔은 괜찮은 일도 있으니 울지않길=3=

광명군 님// 예쁜 아가씨였는데 신기하게도 원작상엔 리토와 관련된 이야기가 제대로 없더라고요-0-;
좀더 캐릭터를 잘 살릴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리안쿼스더 님// 야미의 허벅지를 보며 괘씸하다! 라고 외치며 뚫어져라 보던 중생입니다.
고교시절 번뇌를 안고 하루나와 코테가와에게 치근덕대려던 학생이죠.

주인공이 노력한다면 고교시절이 가기전에 양아치 차림을 벗어날수 있겠지요^^

네메스 님// 안그랬다면 제가 주인공으로 삼아주질 않았을겁니다.
황당하고 엄청난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는 트러블에서 주연을 맡은 인물이 대인배가 아니라면,
잘못하다가 안티소설이 되어버리니까요=ㅅ=;
개그물에다가 시리어스 주인공을 넣으려는 시도같은건 안해요~^^;

블러드카니발 님// 헐...이건 그야말로 감사의 극한!+ㅂ+ m(_ _)m

CloudAngel 님// 쿨럭...트러블 정주행중이십니까?^^;
리토의 아버지가 잠시 등장하셨습니다.
좀 사나운 이미지시죠^^;

예휘령 님//네. 불량서클의 리더가 십자가 너클을 맞고 유체이탈한 상황입니다.^^
주술로 인해서 다시 몸속으로 영혼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공포를 느낀겁니다.
리터가 마지막으로 들은 대사는 [몽상봉인].

복돌이사냥 님//1화에서 48화까진 1학년.
49화부터 162화까지가 2학년이니...
초반에는 시간이 정말로 훌훌 지나가지요^^;

착한녀석 님// 설명이 부족했다면 이번화처럼 글 마지막에 해당 이벤트에 대한 원작 설명을 넣도록 하겠습니다^^a;
혹시나 원작을 볼 생각이 들만큼 재미있었다면 정말 기쁘지만요^^

망상공방 님// 트러블 원작에서 히로인들끼리 싸운걸 본적이 없는지라=ㅅ=;
핵심 히로인이었던 라라랑 하루나 부터가 서로 사이가 좋고 웃고 지내는터에 쟁탈전이 가능할지가 문제^^;;

그리고...무력으로 나가면 야미가 가장 강하군요=ㅅ=;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
(8화 추가 답변)

은월가람 님// 아마도요. 하지만 까메오 출연은 맞는거 같은데 트러블 내에서 본명이 나오거나 하지 않아서,
저로서는 그냥 평행세계의 인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블랙캣을 읽어보지 않은 분도 계실테고, 이브랑 같다는 이미지가 사람에 따라 호불호로 갈리기에,
전 그냥 블랙캣쪽 설정은 잊고 다루려고 합니다.


Posted by 루트(根)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날아온 주먹에 맞고 하늘을 날던 것을 끝으로 기억은 끊겨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부하들은 모두 쓰러져 있는 상황.
아키츠 료스케는...?

모두가 쓰러진 가운데 녀석만이 유일하게 두다리로 서있었다.
과연...이랄까.
홀로 우두커니 서있던 녀석은 조용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이상하다.
무언가 이상했다.
강렬한 위화감이 내 몸을 습격했다.
곧이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비현실성을 깨닫곤 소리없는 비명이 새어나왔다.

나는 분명 일어서서 녀석을 보고 있는데.
이렇게 높이서 녀석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어째서 녀석은 '나'를 내려다 보는거지?
어째서...나는 쓰러진 '나'의 등을 내려다 보고 있는거지?

녀석이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허공에 뜬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채 주저앉아 '나'의 몸뚱이를 잡아 일으킨다.
녀석이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의식이 멀어지는것을 느낀다.
필사적으로 의식을 유지하려 했으나 헛된 몸부림이었다.
존재가 사라지는것만 같은 공포감속에 의식의 끈을 놓치기 직전,
희미하게 들린 녀석의 중얼거림은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봉인(封印)」

- 리더A」





봄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새학년이 되었다.
평소보다 일찍 눈을떠 몸을 씻고 식사를 준비하고 식탁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린다.

부디 2-A에 들어갈 수 있길.

라라들이 있는 반이 활기차서 좋다는 점도 있고,
개인적으론 코테가와가 신경쓰인다는 점도 있지만,
실은 다른 반에 가서 당할 눈초리들이 걱정되서 오늘까지 제대로 잠을 이룰수 없었던것이 더 큰 이유다.

중학교 시절의 악명이 요 1년동안의 고교생활중에 꽤나 수그러 든 기미가 보여서 학년말이 될수록 꽤나 흐뭇한 기분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뭐, 100명의 불량배와 싸워 이겼다느니, 7대 괴담의 실제 주인공이라느니, 오토바이를 날려버렸다느니 따위의 소문들은 여전히 기승을 부렸지만,
소문의 대부분은 미묘하게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는데다가 실제 체험자도 있었기에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다만 개인적으로 무고함을 호소하고 싶었던, 200명의 여자를 목표로 한다는 소문은 학년초부터 내가 코테가와에게 잡혀지내는 걸로 진정되었다.
소에게 고삐를 물린듯한 느낌으로 코테가와와 나를 바라보는건 좀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여학생들로 부터 무고하게 짐승보듯한 시선을 받지 않게된건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학년이 끝나가는 마당에 난데없이 당한 횡액때문에 상황이 이상해졌다.
3학기 말이 되어서부터 주위로부터 미묘한 시선을 느꼈다.
이전보다 나를 쳐다보는 여학생들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징그러운듯 쳐다보는 눈빛과 흥미진진해 보이며 꺄-소리를 내는 여학생들의 반응.
남학생들은 구레나룻을 깎기 이전보다 훨씬 더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예전을 뛰어넘은 엄청난 거부감과 혐오감과 공포심을 뚜렷이 하면서...
남학생들의 반응은 얼핏보면 예전으로 돌아간것 뿐으로 보였지만,
문제는 그들이 느끼고 있는 공포심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공포심으로 생각되었다는 것이었다.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나로서는 갑작스레 이상해진 학생들의 반응에 속으론 무척 당황스러운 심정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서 최대한 귀를 기울여 주변의 속삭임을 들어보고는 할말을 잊었다.

「가라사대 중학생때 100명의 여자와 잔 아키츠 료스케는
고등학교에 와서는 100명의 남자를 노리고 있다.」

「가라사대 귀여운 얼굴의 남학생들은 엉덩이를 조심해라.
얼마전 1-A의 유우키가...」

순간 어이가 없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나에게 클래스메이트들이 전부 놀랐었지만 신경쓸수 없었다.
유우키? 어째서 리토의 이야기가 나온거지?
어떻게든 정보를 모으려고 아무나 한녀석을 잡고 대체 어째서 이런 소문이 퍼졌는지를 물었다.
고등학교 와서 처음으로 경직된 분위기로 물어보는 나에게 겁먹었는지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모습을 보이던 남학생이었지만,
10엔짜리 동전을 두손가락으로 차곡차곡 접어보이는 내 태도에 재빨리 대답을 해주었다.
위협해서 미안. 하지만 지금은 물불가릴 처지가 아니니까 용서해줘...
지금은 악평이 오를지라도 이런 소름돋는 소문이 퍼진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듣게된 사건의 진상.
어째서 유우키의 이야기가 언급되었는지 알게되자 현기증이 나는걸 느꼈다.
그러니까, 일의 발단은 며칠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처 매장에서 속옷을 몇벌 사서 집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미캉과 장보기를 하면서 이런 쪽의 생필품은 살수 없으니 이렇게 혼자 쇼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번 미캉과 장보기를 할때 사야할 다른 생필품들도 확인해봐야 겠다고 생각하며 걸어가던중,
맞은편에서 세명의 여학생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가장 앞에 서있는 여성은 작은 만두머리를 머리 양쪽에 하고, 귓가로 내린 금발 롤머리에 코트와 짧은 치마에 검은 부츠를 신은 귀티가 나는 여학생.
약간 떨어져 그 뒤를 쫓는 두명 중, 오른쪽의 여성은 장발 포니테일에 귓가로 머리를 길게 내리고 티셔츠 위에 검은 라이더 자켓에 청바지를 입은 여학생.
왼쪽 여성은 긴 생머리에 불투명한 둥근 안경을 낀 치마를 입은 수수한 옷차림의 여학생.
텐죠인 사키, 쿠죠 린, 후지사키 아야 선배들이었다.

드물게도 전용차로 다니지 않는 모습에 의아하게 생각할때쯤 도도한 웃음을 짓는 텐죠인 선배의 목소리와 거기에 동의하는 쿠죠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훗...가끔은 서민들의 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나쁘진 아니하군요."

"역시 그러시군요, 사키님."

아아...그저 아가씨의 변덕일 따름인가.
생각외로 서민적인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도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일 즈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후배로서 선배에게 인사를 한다는 선택은 꽤 그럴듯 해 보이는데,
저 셋과 나 사이에 그렇게 큰 인연이 있었던것도 아니라 기꺼이 웃으며 인사에 답해줄 상대인지도 의심스럽다.
게다가 지금 나는 교복도 아닌 상태.
혹시나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하면 일부러 인사한 내가 부끄럽다.
아니, 그정도면 다행이지...
만약 날 못알아본 상태일 경우엔,
난데없이 불량스러운 외모의 남자가 아는체를 해오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인사는 커녕 경계심만 북돋을 위험이 있다.
...예의 없는 일이지만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갈까...

결국 모른체 하기로 하고 그냥 지나치려 할때,
우연히 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던 텐죠인 선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 당신. 잠깐만 기다려요."

"네?"

날 부르는 텐죠인 선배의 말에 어리둥절하며 쳐다보자,
텐죠인 선배와 쿠죠 선배, 후지사키 선배가 약간 위축된 표정을 보인다.
쿠죠 선배는 텐죠인 선배 근처까지 다가와 긴장한 표정을 보이는 것이 여차하면 앞으로 나설 태세다.
...역시나 구레나룻을 잘라도 낯선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무서운 외모인가보다.
눈매가 사나워서 화나보이는 인상을 주는게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는데.

잠시 위축되어 있던 텐죠인 선배가 몸을 바로하며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엣흠...그러니까 당신, 혹시 발렌타인데이때 봤던 1학년?"

"에?...아, 네 맞습니다.
그러시는 선배님께선 텐죠인 사키 선배님이시죠?"

"날 아나보죠?"

"교내 제일퀸이라는 텐죠인 선배의 이름을 모른다면 사이난 고교생이 아니죠."

자칭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솔직히 외모나 재력상으로 충분히 그럴만 하니까 저 호칭은 정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설사 사실이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도 받았겠다,
나름대로 베품을 받은 상대니까 기왕이면 듣고 싶어하고 마음에 들어할 말을 해보았다.
텐죠인 선배는 잠시 멈칫 하더니 침묵했다.
이런 말을 실제로 남에게 듣는건 오랜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몸을 떨더니 이내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우아하게 웃기 시작했다.

"?!...후후후후...
이거참 훌륭한 후배로군요.
그래요! 라라따위가 아닌 나야말로 No.1 학원제의 퀸이란 말이죠!"

"과연 사키님."
"멋지십니다."

"......"

아니 뭐...확실히 라라는 퀸이 아닌데...
다만 진짜 공주님일 뿐이지만...여기선 모르는척 하는 상냥함을 보일때다.

"그나저나, 당신 이름이..."

"사키님. 저 학생은 아키츠 료스케라고 합니다."

내가 미처 답하기 전에 옆에 있던 쿠죠 선배가 텐죠인 선배의 말에 답했다.
약간 경계하는듯한 눈빛을 지우지 않는것이,
한동안 조용했어도 교내 위험도 1순위 양아치의 위명은 건재한듯 했다.
그나마 저번의 일도 있어서 그런지 적대하는 분위기는 아닌게 다행이라 봐야하려나.
교내 제1불량이라고 텐죠인 선배에게 소개하지 않은걸 보면 꽤나 잘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텐죠인 선배는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나를 쳐다봤다.

"아키츠 료스케, 군요.
저번에 교장을 떼어놓아 줘서 고마웠어요."

"아,아뇨...별말씀을..."

"그때의 보답을 할까 하는데,
혹시 바라는게 있다면 말해보세요. 이 텐죠인의 이름에 걸고 들어드리도록 하지요."

"아하하...별로 꿍꿍이로 도운게 아니니 마음만 감사히 받「왈왈왈-!」?"

"응? 저 사람은 분명..."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니 리토가 네발로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게 보였다.
리토 너 대체 뭐하는거야?
생각지도 못한 리토의 파격적인 행동에 말릴 생각도 못하고 굳어 있으려니
어느새 가까워진 리토가 텐죠인 선배쪽으로 돌진했다.

"엥?"

놀라는 텐죠인 선배를 아랑곳 하지 않고 갑자기 스커트를 힘껏 들춰 올리는 리토.

"꺄아악-!"

끈달린 레이스 팬티...가 아니고!
개랑 몸이 뒤바뀐 상태냐?
기겁하는 텐죠인 선배를 밀어넘어뜨리고 팬티를 핥을 듯이 얼굴을 뭍으려는 리토(개)를 재빨리 잡아챘다.
제발 자중해라 이 멍멍아.

"이...이녀석!"

"사키님! 괜찮으십니까?"

후지사키 선배와 쿠죠 선배도 돌발상황에 당황하며 텐죠인 선배를 부축해 일으켰다.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진 텐죠인 선배는 내 오른팔과 옆구리 사이에 강제로 끼어져 발버둥 치는 리토를 노려보았다.

"이 짐승! 잘도 나에게 그런 파렴치한 짓을...!"

"자, 잠깐만요 텐죠인 선배!"

"뭐죠?"

눈에 힘을 빼지 않은 상태로 나에게 시선을 돌린 텐죠인 선배에게 위축되었지만 리토의 변호를 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개랑 몸이 바뀐 상태로 기억에도 없는 잘못을 추궁받아서야 나중에 몸이 상하는건 애꿎은 리토 본인뿐이다.
이 천덕꾸러기 강아지 녀석을 잡아두지 않으면 나중에 훨씬 더 큰 사고들을 칠게 뻔하다.
기억하기론 야미는 물론이고 남녀노소 안가리고 동네 사람들 전부에게 쫓기던데...
...설마 벌써 야미를 손대고 온 뒤인건 아니겠지?
제발 그따위 짓거리는 하지 않았길 바라면서 눈앞의 텐죠인 선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텐죠인 선배.
죄송하지만 이 녀석을 용서해주시면 안될까요?"

"뭐라고요?"

눈썹을 꿈틀거리는 텐죠인 선배의 분위기로 보아하니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듯 말하는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거, 이대로 물러설순 없지.

"그게...이녀석, 왠지 지금 제정신이 아닌듯 보이는게,
아마도 라라가 술이라도 먹인게 아닌가 해서 그렇습니다."

"술?"

"처음 마신 술때문에 이성을 잃고 자신이 강아지라고 생각하는듯 합니다.
방금전 텐죠인 선배도 이녀석이 왈왈이라고 짖는걸 들으셨지요?"

"확실히...분명히 그런 소릴 들었지만."

"그리고, 방금전 텐죠인 선배께서 제게 말씀하셨던 보답말인데...
이녀석의 잘못을 용서해주시는걸로 대신하면 안되겠습니까?"

"그건..."

말문이 막힌듯 침묵하는 텐죠인 선배.
약속을 했던것이 이런식으로 돌아올줄은 몰랐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부디 참아주세요.
잠시 주저하던 텐죠인 선배는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습니다.
아키츠군 당신의 부탁으로 이번 한번만 용서하도록 하죠.
물론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음은 없어요?"

"감사합니다 선배."

"그나저나, 「술을 마시면 개가 된다」는 말, 서민들의 천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말 그대로의 뜻이었을 줄이야..."

"하,하,하..."

내심 뜨끔한다.
말그대로 이녀석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은 진짜로 개인데요.
그것도 예쁜 여학생들이라면 무조건 달려드는...

아무튼, 이 동네 개는 거의 다 변태군요.
하루나 집의 얼룩 개는 하루나의 온몸을 핥아대는 상변태이고,
이 개도 여자애들 몸을 핥고 옷을 벗기는 변태.
저스틴을 물어대는 개는 광견병 의혹이 있을만큼 사람을 깨물어대고...

나 나름대로 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만나는 개들을 볼때면 정말로 회의감이 든다.
도무지 위안을 삼을만한 개가 없어요...
그건가? 고양이 애호가들이 판을 치는 세계?
그러고보니 코테가와는 고양이를 좋아했지?
지금의 대책없는 개들의 행태를 보면 나도 고양이 파로 돌아서는게 낫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된다.

이후 텐죠인 선배와 쿠죠 선배, 후지사키 선배에게 사과를 하고 리토(개)를 데리고 근처 공원에서 라라가 올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거기까진 문제가 없었는데, 망할 멍멍이 녀석이 도중에 보인 전봇대에 쉬를 해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바지를 입은채로...
...리토. 너의 존엄성이 어디까지 망가질지 나도 모르겠다...
바지가 홀딱 젖어버린 리토(개)를 멀뚱히 쳐다만 보는것도 인간적으로 못할짓이라, 반항하는 리토(개)를 억지로 공원의 화장실로 끌고갔다.
발버둥치는 리토(개)를 어찌어찌 달래면서 하의를 벗긴 다음에 방금전 사뒀던 내 팬티를 급한대로 입혔다.
그리고 내 상의 겉옷을 벗어 허리춤에 둘러준 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팬티위에 상의를 적당히 둘러 민망한 차림은 그나마 면했는데...
목줄 같은걸 따로 준비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야외에서 네발로 걷는 남자의 목에 목걸이를 채우고 걷는 양아치.
그야말로 변태가 따로 없으므로 기각했다.
할수없이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걸 손을 잡고 절대 놓치지 않게 주의하기로 했다.
예쁜 여자애들한테는 잘만 달라붙더니 나한텐 왜이리 앙탈이야?
라라는 언제쯤 오려나하며 기다리는 도중에 사나운 기세로 달려드는 야미를 말리느라 진땀을 한번 흘렸다.

망할 멍멍이 녀석이 정말로 야미를 건드렸었나보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달려드는 모습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듯 보였다.
리토(개)를 업은채로 달아나면서 라라의 발명품으로 인해 개랑 몸이 바뀌어 벌어진 사고라고 설득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날아오는 철퇴를 손으로 비껴내거나,
쏟아지는 칼날의 비를 피해내는 과정중에 야미로부터 「정말로 지구인이 맞는겁니까?」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결국 어떻게든 진정해 주었다.
공원 근처에서 붕어빵을 한봉지 사주면서 야미를 달래보내곤 겨우 숨을 돌릴수 있었다.

야미와 텐죠인 선배를 제외하곤 건드린 사람이 없었는지,
라라가 올때까지 리토를 쫓아오는 사람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후 라라와 함께 개에게 빙의된 리토가 돌아와서 무사히 몸을 되바꿈으로서 사건은 해결된것으로 보였다.

그런데...내가 저항하는 리토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간뒤,
팬티위에 외투를 걸친모습으로 나온 리토와 외투를 벗은 나의 모습을 목격한 학생이 있었나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남색에 눈을 떴다는 식의 괴상한 소문의 원인이었다.

소문의 원인을 알고나자마자 그당시엔 리토의 바지가 젖어서 갈아입혀줬다는 식의 자기변호를 했지만,
저항하던 리토의 모습은 무엇때문인지를 설명할수 없었고(당시 라라 외계인설은 없었기에 몸바꾸는 기계를 설명하지 못했다.)
리토에게 변호를 부탁하려 했으나 몸이 바뀔 당시의 기억이 없었기에 오히려 당황하는 리토의 모습은 역효과였다.
이후 필사적으로 변호하는 나와 리토의 노력에 힘입어 어떻게든 소란은 가라앉았지만,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학생들의 시선은 한참이 지난후에야 사라졌다.

리토와 몸을 바꾼 개 덕분에 고생한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두번다시 개와는 상종하지 않겠어!
진심으로 고양이파로 돌아서길 결심한 때였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그런 해프닝을 겪었음에도 리토와 라라가 있는 2-A에 가고싶은 이유는,
「작은 소문은 큰 소문에 묻힌다.」때문이다.
2-A의 반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의 요란함은 심상치 않다.
학교까지 박살내는 일이 벌어지니까.
교내제일깡패니 뭐니해도 사람의 자식.
우주인과 그에 비등할 정도로 활기 넘치는 반에서라면,
나에 대한 소문따윈 사소한 것이 될터...

지금까지 울고싶을 만큼 힘들어도, 악연이니 뭐니하는 재수없는 인연을 계속 모아왔지만
동성 강○의혹 따위로 악연을 쌓을 생각만큼은 죽어도 하기 싫다.
제발 2-A로 가서 소란스러움속에서 자연스레 사소한 소문따윈 지워지길...
그리고 기왕이면 그 반에서는 좀 좋은 인연을 쌓을수 있길 바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2학년 첫날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설겆이를 하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반편성표를 바라보았다.

「2-A 아키츠 료스케」

"아자!"

주위에서 놀라는 학생들이 보이지만 상관없다.
역시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감동에 한차례 몸을 떨고 2-A로 들어갔다.

나를 바라보다 재빨리 시선을 돌리는 학생들이 보이지만 1학년때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잠시 반을 둘러보자 교실 뒤에 코테가와가 앉아있는게 보였다.
왠지 한곳으로 시선을 고정시켜두고 있는것이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듯 했다.
반이 엇갈리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코테가와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여어~. 코테가와도 2-A구나.
올해도 잘 부탁해."

"응? 아키츠군도 이 반이었군요?
마찬가지로 잘부탁해요."

"그런데, 뭔가 한곳만 쳐다보던데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그게..."

코테가와는 고개를 돌렸다.
코테가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쳐다보니 리토가 책상에 앉아있고 그 옆으로 라라와 사루야마가 서있는게 보였다.
리토랑 라라를 보고 있었나보다.
코테가와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유우키 리토와 라라 사타린 데빌루크였던가요?
교내의 풍기를 가장 어지럽히는건 역시 저 두사람인듯 하더군요.
오늘 아침만 해도..."

거기까지 말하곤 얼굴이 빨개지는 코테가와.
...알몸이라도 봤나?
라라야 페케(벳지)가 벗겨지면 알몸이 되어버리는데, 걸핏하면 페케가 벗겨지니...
리토는 워프머신을 탈때마다 탈의쇼를 벌이고.

"아, 아무튼 학교에서 그렇게 비상식적인 행동을 거리낌없이 한다는건 용납할 수 없어요.
어떻게든 주의를 주지 않으면..."

"저기..."

어째 이대로 가만두다간 코테가와가 해프닝에 말려들어갈것 같아서 말려본다.
주의를 준다고 고쳐질거였으면 지난 1년동안 벌써 고쳤을거라고...

"라라는 외국인이라 이나라의 상식이 많이 부족해서 실수가 많으니 이해해주는게 낫지 않을까?
유우키는 품행이 문란하기 보다는 라라에게 말려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죠.
전학온지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품행이 바뀌지 않았다는건 엄연히 문제라고요.
그런데, 당신 유우키에 대해서 아나보죠?"

"안다기 보단 이야기를 들었달까...
라라와의 약혼 문제로 꽤나 곤란한 일을 많이 겪고 있나보더라고."

"그렇다고는 해도 이대로 가만히 둘순 없어요.
계속 이렇다면 학교 전체의 분위기가 문란해질지도 몰라요.
1-A의 반장이었던 사이렌지씨가 엄하지 못한걸 이용해 저들이 저렇게까지 함부로 구는거라고요."

아무래도 코테가와는 그둘에게 주의를 주고 싶은 가보다.
사실 상식적으론 그렇겠지.
하지만 코테가와...저 둘에게 상식적인 전개를 기대하는건 위험한 생각이라고?

"그...코테가와."

"뭐죠?"

"나로서는, 저 애들이 코테가와의 생각처럼 악의적인 목적으로 저렇게 행동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평소에 보이는 모습들이 때때로 파렴치해 보이고, 그때문에 학교가 소란스러워 지지만,
그것도 고교생들이 이 시절에만 즐길수 있는 자유분방함이라고 생각하니까.
조금만 더 너그럽게 봐줄순 없을까?"

"......"

잠시 나를 쳐다보던 코테가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뭐, 아키츠군의 그 외모를 바꾸지 못한 제가 할 말은 아니었군요."

"아니, 그...미안. 나야말로 남 변호할 입장이 아니었네."

"됐어요. 그때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 제 탓도 있으니까.
솔직히 그렇게까지 부탁해오는걸 거절할만큼 저도 매정하진 않아요."

"...그땐 고마웠어."

"이미 지나간일 가지고 고마워 하지 않아도 되요.
아무튼, 사이렌지씨도 성실해보이는데 아무 생각없이 저들을 방치하지는 않았겠죠."

"그렇겠지?"

다행히 코테가와는 저 둘에게 적대감을 보이거나 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나와 1년동안 부대끼면서 규칙에 대한 딱딱한 태도가 많이 완화되었다면 기쁠 따름이다.
...설마 1년동안 고치지 못했던 내 수염&머리&악세서리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둔건 아니겠지?
그저 원만해진 태도때문일꺼라 좋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코테가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주의를 주겠어요.
고교시절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정도는 넘어서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뭐, 그 정도야.
...음, 혹시나 모르니까 나도 따라 가도 될까?"

"상관없어요."

설마하지만 리토의 말도 안되는 해프닝에 꼬이게 된다면 그야말로 미안이다.
어느새 복도 밖에서 라라와 함께 빗자루로 청소를 하는 리토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코테가와의 뒤를 쫓았다.
복도로 나온 코테가와는 리토와 라라를 불러세웠다.

"미안하지만, 잠깐 할 말이 있는데."

"?"
"아! 같은 반 사람이야. 잘 부탁해!
응? 뒤에는 그때 그사람?"

"맞아. 다시 만나는구나 라라, 유우키."

"같은 반이 되다니 대단한 우연이구나~!"

밝게 웃으며 우리를 반기는 라라를 코테가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나보다.
근본이 나쁜 아이는 아니란걸 이해했겠지.
혼자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코테가와가 말을 계속했다.

"코테가와 유이라고 해.
1년동안 잘 부탁해.
하지만...오, 오늘 아침과 같은 행동은 조심해줬으면 좋겠어."

...말까지 더듬는걸 보니 코테가와는 역시나 파렴치한 일에 면역이 없네요.
코테가와의 바람과 다르게 1년동안 해프닝 가득할 학창시절을 보낼것을 생각하니 우선 묵념...

코테가와의 말에 리토가 반응하며 신음을 흘렸다.
당황한 태도는 보여도 부끄러워 하지는 않는걸 보면 1년동안 이녀석도 나름 단련이 되었나보다.
리토의 반응을 잠시 지켜보던 코테가와는 라라로 시선을 돌리고,
라라의 뒤에 난 하트모양의 검은 꼬리를 보더니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뭔가 주의를 주고 싶은데 줄수 없어서 갑갑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알겠어 코테가와...
라라의 꼬리를 지적하고 싶은데 바로 옆의 나(헤어밴드&목걸이&체인팔찌)때문에 못하는거지?
다시 말하지만 진짜 미안...

그래도 결국엔 지적을 하려는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라라의 꼬리를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라라.
외국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학교에 그런 악세서리는 달고 올수가 없으니까 주의해주길 바래."

"어-?! 그치만 이건...「진짜란 말이지-♬」"

갑자기 라라의 뒤에서 리사와 미오가 나타났다.
혹시나지만 역시나 나오셨군요 약방의 감초 콤비.

라라를 뒤에서 껴안은채로 리사가 웃으며 말했다.

"라라찌는 외계인이라구♬"

"어?! 외계인?"

어리둥절한 코테가와에게 리사는 요염하게 혀를 핥으며 라라의 꼬리를 잡았다.
거참, 고등학생 치고는 꽤나 어른스런 분위기를 풍기시는군요 모미오카씨.

"그래! 그리고 이 꼬리가- 약점이지롱~"

"아앙... 그... 그만해~!"

라라의 꼬리의 하트무늬를 잡으면서 꼬리에 입맞춤 하는 리사와,
꼬리의 뿌리부분을 양손으로 잡고 희롱하는 미오.
그리고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신음소리를 내는 라라에 눈이 점이 되어버린 코테가와.
대단해! 1년동안 같이 지내면서 저런 얼굴은 처음본다!
다만 처음보는 그 얼굴은 감동보다는 웃음이 나올만큼 이상하지만...

그나저나 리사랑 미오는 교내에서 친구를 희롱하는 진짜 파렴치한 아가씨들이구나.
솔직히 뭐라 평해야 할지 모를만큼 대담한 모습들을 보여주니 나도 대응이 곤란하다.
그렇게 나도 코테가와도 굳어있으려니 갑자기 복도를 달리는 렌의 소리가 들렸다.

"유우키-!
왜 나만 다른 반인 거냐!"

"우왁! 렌?!"

눈물을 글썽글썽 매단채로 유우키의 멱살을 잡아쥐며 떼를 쓰는 렌과 역팔자눈으로 고함치는 유우키.

"무슨 뒷공작을 써서! 그렇게 정한거지!"

"멍청아! 그럴 리가 없잖아!"

"저 저...기「내가 말릴께.」아키츠군?"

코테가와가 말리려고 다가갈 낌새를 보이자 내가 대신 다가간다.
남자애들 다툼에 잘못 끼어들다간 다치지...
가까워져서 둘을 적당히 떼어놓는다.

"친구들끼리 다툼은 적당히...「「누가 친구야!」」..."

악우도 친구 아니었던가?
말려놓고 괜히 태클을 당해서 민망해서 서있는데 갑자기 렌이 재채기를 했다.
청소중인 복도를 뛰다가 일어난 먼지를 들이마셨나보다.
「푸에취!」라는 호쾌한 재치기 소리와 함께 렌의 몸이 연기로 둘러싸였다.

"뭐 뭐지...?"

코테가와는 난데없이 발생한 연기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연기가 걷히자 진홍색 눈동자에 가슴까지 내려오는 에메랄드빛 머리칼의 미소녀가 나타났다.
렌의 또다른 인격이자 성별인 '룬'이었다.
성별이 바뀌면서 교복 겉옷이 흘러내리고 와이셔츠 위로 부풀어오른 가슴이 계곡을 만들며 튀어나와 있었다.
잠시 어리둥절 하던 룬은 정면에 보이는 리토를 보더니 미소지으면서 달라붙었다.

"리토! 꺄아~"

"우왁! 룬?!"

"...?!"
"어...어떻게 된거야?!"
"렌렌이 여자가 됐네..."

리토를 복도에 넘어뜨리며 달라붙는 룬을 바라보며
코테가와는 이해를 넘은 상황에 침묵하고 있었고,
미오와 리사는 처음겪은 상황인지 둘다 당황해 있었다.
그런 셋에게 라라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 사실 렌은 외계인이야."

"어?!"

"재채기를 하면 성별이 바뀌어서 여자인 룬으로 되는거야!"

"정말?!"
"굉장하다! 확실히 외계인이라는 느낌이야!"

엄청난 적응력의 2-A반 멤버답게 미오랑 리사는 흥미진진하면서 라라의 말을 들었고,
코테가와는 식은땀까지 보이는게 도무지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말도 안돼...무슨 이런...
재채기하면 성별이 바뀐다고...?
뭐라고 하는거야?!)"

중얼거리며 혼란스러워 하는 코테가와를 달래줄 필요가 있다 싶어서 코테가와의 어깨를 짚었다.

"아키츠군?"

"이해할수 없겠지만 이해해야 해 코테가와...
세상엔 아직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가득하다구.
얼마전엔 두꺼비 같은 이족보행 외계인도 직접 봤다고.
사람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이야 충분히 허용범위지."

"...상식은요?"

\  /  
●  ●  <상식은 내던지는 것 - by 사○에
" ▽ "

"이상한 얼굴로 말하지 말아요 아키츠군! 게다가 사○에는 또 누군가요?"

농담따먹기처럼 변해버린 우리의 대화와 무관하게 상황은 여전히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리토에게 찰싹 달라붙은 룬이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 리토..."

"가...가슴이 닿잖아!"

"응? 괜찮아♬ 리토라면"

"...!"

리토는 얼굴이 빨개 지더니 룬을 뿌리치고 일어나 도망쳤다.

"헤에- 리토, 룬이랑 사이 좋구나-."

"!우왁?!"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웃으며 바라보던 라라에게로 돌진해버린 리토.
그대로 쓰러지면서 라라의 몸에서 무언가 둥근 물체가 떨어져 나왔다.
페케다...
이 둘의 결말은 대개 이런거지 뭐...
리토에게 알몸으로 껴안긴채로 「아, 페케가 떨어져버렸네.」같은 느긋한 대사를 하시는 데빌루크의 공주님을 보기도 민망해서
떨어진 페케를 집어들고 조속히 라라에게 건네준다.

"아, 고마워~ 응...이름이?"

"아키츠 료스케야."

"그래~! 고마워 료스케!"

"별말을 라라."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뒤로 돌아서자 손으로 양뺨을 가리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코테가와가 보인다.
눈이 크게 벌어진채 입까지 벌린걸 보면 엄청나게 충격을 먹었나보다.
결국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코테가와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이...이런 파렴치한!"

동의. 이건 나도 어쩔수 없다고.
탈착이 너무 쉬운 페케를 쓰는 라라의 잘못인지,
손짓, 발짓 하나마다 야한 해프닝을 연출하는 리토 때문인지...

단순히 주의만 주고 가려던 코테가와는 과도한 노출씬에 사고회로가 익어버렸고 한동안 빨간 얼굴을 추스리지 못했다.
이윽고 표정을 추스린 코테가와가 나에게 물어왔다.

"아키츠군...저게 자유분방함으로 해결될 문제인가요?"

"그러니까...악운과 악운이 겹쳐서 일어난 사고?"

"그걸 저보고 믿으라고?"

"......"

이후 1-A에 이어서 2-A의 담임을 맡으신 호네카와 선생님이 반장을 정하기 위해 입후보자를 물을때,
라라가 지원하자 코테가와가 덩달아 지원한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라라에게 엄청나게 경계심을 가지는 코테가와가 겪을 트러블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만약 코테가와가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단일후보로 라라가 반장이 되는 사태가 벌어지니까.
적어도 두명이상의 후보로 인해서 투표가 진행되지 않으면 변칙적 투표로 하루나가 반장이 되지 못한다.
반장선거에 지원하는 코테가와를 말리고 싶었지만 말리지 못한 이유랄까...

다만 도중에 곤란한 일은 있었다.
라라가 학생들이 반장에게 바라는 의견을 조합해서 두개의 뱃지를 만든 것이다.

여자애는 간이 페케뱃지로 새로운 교복(파렴치도 MAX)으로 바뀌고,
남자애의 뱃지는 페케뱃지를 단 여자애에게 자동으로 달라붙는 형태였다. 

다행히 코테가와가 이전처럼 지나치게 엄격하진 않았기에 라라로부터 여자용 뱃지를 빼앗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응, 발생하지 않아서 문제였다...



...불쌍한 하루나...



브래지어가 훤히 드러나보이며 가슴계곡을 노출시키고, 배꼽위까지 드러나도록 초미니로 디자인된 상의와,
손가락 하나 길이도 안되어 보일만큼 짧은 치마로 인해서 팬티가 완전히 드러난 패션 차림이 되어버린 하루나.

사실상 속옷만 입은것과 마찬가지인 상태가 된 하루나가 리토와 서로 껴안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자석의 힘이다! 지그 브○커!」
하루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리토는 당황하면서도 기뻐하는 표정이었는데,
결국은 빰을 한대 맞는 것으로 해프닝은 끝났다.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코테가와는 방금전까지 벌어진 상황에 두통이 오는듯 머리를 잡으면서도,
악세서리를 압수하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기는 모습이었다.
뱃지를 압수했다면 방금전 상황을 자신이 겪었을테니.
아무튼, 1년동안 많이 유연해 졌군요 코테가와씨...
나로선 코테가와가 쓸데없는 트러블에 휘말리지 않아서 다행일 따름이다.

투표가 시작되자 방금전의 일도 있고 해서 하루나의 평가가 좀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라라 2표
코테가와 유이 12표
사이렌지 하루나 20표

다행히도 1년동안 함께 해온 클래스메이트들의 평가는 한번의 실수로 흔들릴 만큼 덧없진 않았나보다.
코테가와는 예상치 못한 하루나의 변칙표에 당황하는 모습이었지만,
전1-A의 학생들이 대부분인 이 반(2-A)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해 만족하고 납득한 모양이다.
항간의 맹수조련사라는 호칭도 한몫한것 같지만...

결국 2-A의 반위원은
남자위원은 전 1-A위원인 마토에 아게루가,
여자위원은 전 1-A위원인 사이렌지 하루나가 맡게 되었고.
조금은 선거 결과를 아쉬워 하던 코테가와는 풍기위원을 맡게 되었다.

풍기위원이 되어 꽤나 의욕적인 코테가와의 모습을 보니 부드러워 졌어도 여전히 단정함을 중시하는 코테가와 답다고 생각했다.



선거가 끝나고 본격적인 2학년 생활이 시작되었다.
무사히 하루나가 반장이 된걸 다행으로 여기며,
앞으로의 생활에 기대를 품은채 신발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라라나 리토, 리사나 미오 처럼 활발함이 넘치는 녀석들이 많은 2-A에서 새로운 만남들이 찾아오길 바라며
꽤나 기대에 부풀어 있던중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리토였다.
등을 떠밀린듯 휘청하면서도 무언가 굉장히 당황한 듯한 표정이 뭔가 중대한 사항인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기합을 내려는 모습에, 난데없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리토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 유우키 무슨...

「저, 저기 갑자기 미안해!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앙?"

쩌억-.

주박에 묶인듯 몸을 전혀 움직일수 없게된 상태로 돌처럼 굳어버렸다.

...좋아하는 사람?
그걸 왜 리토 네가 나한테 물어보는데?
그런건 보통 좋아하는 이성에게 물어보는거 아닌가?
하루나 좋아하는거 아녔어?
...너 설마 그런 취미 있었냐?

아무 반응도 없는 내 모습에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리토는 감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헤?"

입이 직사각형으로 벌어진채로 돌이 되어버린 리토.
무지무지하게 식은땀을 흘리는 리토의 모습이 지금 나의 처지도 잊을만큼 안쓰럽다.

주변에 학생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 저기 저 남학생, 2-A의 유우키 리토잖아?」
「반대편은 그 유명한 불량 아키츠 료스케군인데?」
「설마하니 학교 내에서 저렇게 큰소리로 고백 직전의 대사를 할줄이야...」
「이전에 둘이서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소문은 사실이었나봐?」
「저번에 그렇게 변호를 해대더니 결국은 숨기는게 괴로웠던걸까?」
「난 아키츠군이 코테가와씨에게 쩔쩔매는건 코테가와씨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도 그랬니?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게 진실이라면 코테가와씨가 아키츠군을 부려먹는건 따로 숨겨진 이유라도 있나봐?」
「글쎄...무언가 무시무시한 뒷배경을 가졌을지도 모르지. 실제론 코테가와씨가 거대조직의 따님이고 아키츠군은 그의 경호원이라던가...」
「그럴까? 그나저나 유우키군이 저 아키츠군에게 흥미를 가질줄이야...」
「라라와 약혼한 사이었다는데 어쩜...」
「아키츠군과의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해서 두사람 사이에 갈등하다가 결국 이렇게 고백하려는걸까?」
「두 여자와 두 남자의 기묘한 사각관계? 꺄아~!」

......살려줘.

누구야? 2-A에 가면 소문따위 묻혀버린다고 말했던 놈은?
작은 소문은 큰 소문에 묻힌다고?
산위에서 굴러간 눈덩이 하나가 눈사태가 되서 도시를 덮치는 꼴이라고!
본격적으로 이상한 오해가 퍼지기 시작했잖아!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야?!

리토냐? 리토 네놈 탓이냐?!
아니지...물을것도 없이 너 밖에 없다.
하루나나 라라를 유혹해야지 어째서 남자인 나에게 와서 이러고 있는거니?
뭐라고 따지고 싶은 심정인데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트러블 덩어리 녀석에게 화를 내자니 당황한 모습이 고의가 아닌것 같은데다가, 그랬다간 미캉을 볼 낯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내 울화통이 터질것 같고...

이걸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나 머리가 아픈 가운데 리토가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 타치바나..."

타치바나?
마찬가지로 리토의 뒤편을 바라보니 사물함 너머로 잽싸게 고개를 집어넣는 1학년 남학생이 보였다.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사자코에 주근깨가 있는 웃긴 얼굴.
오호...그러니까, 리토의 여자 꼬시는 재주를 동경하던 하급생이었지?
하루나에게 고백하려던 그 녀석이군?

내 뒤를 힐끗보니 하루나가 당황하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마 하루나양. 리토가 좋아하는건 내가 아니니까.
라라에게 고백했을때처럼 실수라니까?
타치바나인지 뭔지는 나중이고 우선은 지금 상황부터 해결하자.

싱긋 웃으며 리토의 어깨를 잡는다.
눈을 빛내는 여학생들과는 반대로, 주춤하며 물러나는 남학생들이 보이는걸로 보면 내가 한대 칠까 걱정하는가보다.
난 평화주의자라고...깡패는 예외지만.
아무튼, 위축되며 변명하려는 리토에게 미소지으며 말한다.

"아, 아키츠 그게..."

"그게 아니겠지 유우키?
그 말을 할 대상은 내가 아니었겠지?"

"마, 맞아 아키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긍정하는 리토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선고를 내린다.

「유죄」

"너의 첫키스 상대는 내가 아니잖아?
그러니...에게로 가. 유우키..."

"우...우아아아아아-!"

트라우마를 자극 당했는지 내 팔을 뿌리치며 달아나는 리토.
그를 보며 주위의 여자애들이 눈을 반짝이며 요란을 떤다.

「들었니? 첫키스 상대래?」
「첫키스를 렌과? 미소년과 첫키스라니!」
「하지만 렌이라면 라라를 두고 싸우던 사랑의 라이벌 아니었어?」
「꺄악~ 이거 정말 대단한 삼각관계잖아?」
「유우키-라라-렌. 단순한 삼각관계가 아니라 셋다 서로를 좋아하는 관계라니...」
「설마 아키츠군은 유우키의 사랑을 응원하기 위해 유우키를 포기한 건가?」
「크윽...아키츠. 너란 남자는...!」

...내 문제는 적당히 해결됐겠다,
원흉(타치바나) 녀석도 따끔하게 혼을 내줄까...
다시 신발장 근처를 보니 타치바나는 코빼기도 안보였다.
곤란에 처한 리토를 버려두고 혼자 내뺀듯 했다.
리토...후배 잘못뒀구나.
하긴, 애초에 제대로 된 녀석이라면 선배에게 몽땅 떠맡기는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물었겠지.
어차피 이후론 나온적도 없는 단역이지만...

맥이 빠져서 그냥 다음에 만나면 점잖게 충고나 해주리라 생각했다.



소란스러웠던 날이 지나고 다음날.
등교중 정문에서 앞에 걸어가는 코테가와가 보이길래 뒤에서 쫓아가며 손을 흔들었다.

"여어~ 코테가와."

"아키츠군?"

"이야~. 어제는 정말 큰일이었어."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게 말이지, 어제 갑자기 유우키가...「우와악~!」?"

덥석-.

내 왼가슴을 한껏 움켜쥔 리토의 오른손이 느껴진다.
그리고...내 아드님쪽에 가있는 리토의 왼손도...
리토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아, 아키츠?"

「꺄악-. 유우키군 대담해~」
「어머어머...결국 아키츠군을 잊지 못하고 되돌아온걸까?」
「대낮부터 정말 용감하네...」
「렌-리토-아키츠 군의 삼각관계?」
「이건 그야말로 확정인데?」

부들부들...
주체할수 없이 몸이 떨리는게 느껴진다.
그래...언제나 있는 리토의 트러블이다.
웃으며 받아넘기는게 제일이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잖아?
......

1.바지가 젖은 리토에게 새로 산 속옷을 입혀주고 야미에게 쫓겨다녔다.
2.남색을 밝힌다는 소문때문에 진정시킨다고 고생했다.
3.어제 리토에게 고백받고 소문이 더 확산됐다.

그리고 오늘, 이번엔 기어이 나의 심볼에까지 달라붙었다.

...부처님 웃음도 삼세번.

뒤에서 리토를 떠민자세로 서있는 타치바나가 보인다.
...또 너냐?

아직까지도 내 몸에 달라붙은채로 굳어있는 리토의 팔을 잡아 라라쪽으로 던져버린다.
「우아악?」비명을 내지르는 리토는 무시. 초고층 아파트에서 추락해도 먼지만 날리고 멀쩡하잖아.
인간을 초월한 리토에게는 신경을 끄고, 단숨에 타치바나란 녀석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히익?!"

타치바나가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나 지금 진짜 열받았어!
오늘 이 빌어먹을 중생을 계도하고 차라리 내가 개값을 물리겠습니다.
달려나가며 가방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꺼내 오른주먹에 감는다.
그리고 그대로 타치바나의 뺨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인내심이 끊어진 나머지 깡패놈들에게도 거의 쓴적 없는 십자가 너클을 날려버렸다.
산채로 유체이탈을 경험한 타치바나가 이후 날 볼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실상황으로 생령을 본 학생들이 퍼뜨린 이야기로 아키츠 료스케 관련 괴담이 갱신되어 버렸지만 역시 상관없다.
「사령술사」라느니 「영혼을 뽑아먹는 악마」라느니 하는 소문따위가 퍼져버렸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 살벌한 분위기를 풀풀 풍겼던 덕분에 시덥잖은 리토X료스케 의혹따윈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으니까.
잘됐군 잘됐어.

이후 코테가와에게 교내 폭력의 부당성에 대해서 정좌상태로 설교를 받았던건 조용히 넘어 가기로 한다.



=======================

코테가와의 태도도 많이 완화되었으니 요런 전개가 되었습니다.
(애초에 저 남녀 뱃지를 리토가 아닌 료스케에게 줄 라라도 아니니 코테가와가 료스케와 달라붙는 이벤트는 삭제)
아무튼, 다음편은 가정방문(미캉편)이거나 야미의 미카도 방문(야미편)둘 중 하나가 될듯 합니다.
9월 가기전에 다 쓸수 있길...=ㅅ=;
(교사의 유령편(오시즈 편)은 적어도 야미의 미카도 방문편 이후에 나와야 순서가 맞아서...)



lunation 님// 수염과 여성수의 상관관계는 무관해요=3=
이미 알고지내던 여성과의 관계도가 상승은 할 수 있지만,
없던 인연이 생기진 않습니다^^;

kero군 님// 인연이 강화되지 않으면 얘도 인생이 힘드니까요^^;

지렁이 님// 그런가요?^^;
트러블 팬픽이라 1명과만 잘되진 않겠지만요^^;

라임주스 님// 무언가 구를 소재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지나친 시련은 시리어스로 갈지도 모르고,
적당한 시련은 그냥 튕겨내 버리니까 문제더군요-ㅅ-;
역시 인간관계나 오해쪽인 정신공격이 주인공에겐 유효하다고 깨닫는중입니다.
(야미나 저스틴과 맞붙는 정도라면 물리공격도 꽤 통용은 되지만...)
최근에 라라vs야미 편을 보니까 얘네들...무려「필살기」까지 있더군요-_-;;;
이 세계의 여성들은 무섭습니다.

네메스 님// 주로 라라와 리토 관련으로 인연들이 모이다보니 어쩔수 없이 주인공도 2-A에 편입시켰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생기는 인연은 아니니 주인공도 분발해야겠지요^^;
라라가 주인공에게 저 꿈을 꿔주게 할 이유는 없지요.
실제로 '몸뚱아리채'로 이계트립을 한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지만요.

kilou 님// 면역이 안된 사람들이 보면 지금 인상만으로도 충분히 악당입니다.
야미 이야기는 나중에 야미의 미카도 집 방문 이야기때 몰아서 할까 생각중입니다.
중간에 에피소드들 넣을만한게 있던가...?=ㅅ=a;

망상공방 님// 안그래도 이번편에 벤치에 걸터앉은채 하지않겠나? 따위의 상황이 닥쳤습니다.
저로서도 처음부터 이렇게 의도한건 아닌데...그냥 타치바나를 원망하십시오=ㅅ=;
야미 이야기는 야미 쓰러지는 사건때 함께 하지요^^;

Dolphin 님// 이계트립이야 원작상에 판타지 게임세계에 들어갈때 다루도록 하죠.
크게 어긋나지 않는 전개 내에서 약간 상황을 추가한다거나 해서 꾸며도 될듯^^;

휴트랑 님// 뭐, 리토가 아쉬워 하진 않을테니까요.
얼굴이 빨개지긴 하는데 룬처럼 달라붙어오는 상대가 아니고서야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니까요.
아, 그렇다고 이 아가씨 저 아가씨 주책없이 껄떡대진 않을겁니다.
그럼 쓰는 제가 용서가 안되는지라...^^;
주인공과 어느정도 접점이 있는 여성은 5~6명 정도 되겠지요.
마지막에 가선 몇명으로 좁혀지겠지만...

블러드카니발 님// 네. 바○에 나오던 '오이절임'군 입니다.

카르나스필 님// 꽤나 사이가 가깝다고 한다면 약간씩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이름만 아는것 보다는 가까운 사이들이죠.^^;
둔해빠지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껄떡대지도 않을만큼 주인공의 성격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적월야 님// ...홧팅입니다=ㅅ=b;;;
이로써 이차원에서 승리자는 웃는다...?

TeaCup 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노력할께요~

라이세네프 님// 원작에서 리토를 사이에 두고 아가씨들이 다툰적이 있던가요...?(갸웃)
쟁탈전...성립 가능할까...?=ㅅ=;;

야생들소 님// 당분간은 지금 스타일이 유지될겁니다.
왠만해선 깎일 일이 없겠지요.
간이 배밖으로 나와서 수염에 건 맹세따윌 하지 않는 이상은요^^;

사심안 님// 저도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글에서까지 우울한 이야기를 보고 싶진 않은터라^^;

이레나이리스 님// 펼쳐갈수 있을지...
어쨌든, 완결까진 3명은 제대로 관리해 주겠지만서도요-ㅅ-;

Dr.㉿ 님// 저에게 연상은 동급생의 요시코 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은 모르겠지만(...)
하루코 선생님이 좀더 자주 출연해주셨더라면 좋았을텐데요.
텐죠인 사키, 쿠죠 린, 후지사키 아야도 상급생이니 연상은 연상이군요...
(다만 사키양은 저스틴씨를 행복하게 해줬으면 합니다.)

사심안 님// 발렌타인데이때의 비상식적인 모습으로 좀 경계하고 있습니다.
다른 인물들 중에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트러블은 보통 동급생과 연하를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서=ㅅ=;

리안쿼스더 님// 그런 셈이죠^^;
인연이 쌓이는 속도가 가속화되면 좀더 일찍 양아치 모습을 벗어날수 있겠죠.

에아노르 님// 우선, 기차or전철or비행기 조종 자격증을 따세요.
암살은 그 다음입니다.(...)
개인적으론 1:1 만남을 선호하지만 트러블SS라 요렇게 됩니다^^;

질풍백 님// 인연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머지 수염을 제거하면 곤란하니 함부로 못자릅니다.
2학년이 막 시작된 지금 양아치 외모를 그만두면 사고위험 증대 확정.^^;

방랑폐인s 님// 당분간은 추가적인 외모 업그레이드는 없다는게 문제지만요^^;
이전 외모를 알고지내던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나은 얼굴로 보이게 됐습니다.

민트박하 님// 알고 있지요. 알고 있는데...
알면서도 서러움이 느껴지는건 어쩔수 없...OTL

월야의주민 님// 나중에 다 깎고 외모 잘 가꾸면 리토 아빠만큼은 되겠죠.
하지만 깎게 해주진 않겠지...

MirrorSeaL 님// 감사합니다~^^
여학생들로부터 꽤 잘생겼잖아? 하는 평가...완결전까진 받을수 있겠죠 아마도;
렌과 같은 미소년 타입은 아니지만,
야성미 넘치는 강인한 외모를 선호하는 여학생들에겐 시선을 끌수 있을듯 합니다.
그러니까, 완결전까진 말이죠...-ㅅ-;

도덕군자 님// 하지만 이차원 묘사는 현실을 씹어먹지요^^;
키는 일부러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대강 저스틴과 비슷하던가 적절하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광명군 님// 수염이 도움되는 경우는 없지요.
수염달렸다고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쓰는것도 아니고(...)

노즈 님// 이차원에서는 축제분위기지요.
주인공들 한정으로 말입니다(...)

CloudAngel 님// 파란수염은 제로의 사역마에 등장하는 무능왕 죠세프(허무의 사용자)입니다.
루이즈에게 보내준다는 속편한 전개는 해주지 않아요?
주전자는 「돈데크만」. 애니메이션 '시간탐험대'에 나오는 타임머신입니다.
거기서 나온 히로인이었던 '스카이'가 참 좋았더랬죠=ㅅ=b
나머지 2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가 맞습니다^^

viggy 님// 실제론 우리나라도 저것과 비슷하다고는 생각하는데
정규교육 이후로 추가수업이 있으니...^^;

알샤 님// 공부에는 도움이 되긴 하니까요^^;
다른 나라에서도 잘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뭐라 말할순 없지만...

검은5군 님// 리플 감사합니다~^^
재밌게 쓰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잘 써졌으면 좋겠다고 고민하는 요즘이죠^^;

신작 님// 재밌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나르샤 님// 저도 원작에서 이 아가씨가 좀더 활약해주길 바랬었는데 말이죠...^^
기회가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가끔씩 부각되겠죠^^;
노력해보겠습니다~

Dietrich 님// 원작에선 그야말로 일방적인 짝사랑이라 코테가와가 불쌍=x=;
기껏 수제 초콜릿까지 줘놨더니 의리 초콜릿이라고 생각하는 리토는 또 뭐여?!OTL...
뭐...하루나의 초콜릿마저 의리라고 생각하는 녀석이니 어쩔수 없나...-_-;

Albion 님//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콧수염과 턱수염이 한꺼번에 잘리겠죠^^;

프라가라흐 님// 은구두를 신은 마녀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동쪽마녀입니다.
원래는 도로시의 집이 동쪽마녀를 깔아뭉개고 동쪽마녀가 신고있던 은구두를 빼앗는 이야기죠.
트러블 만화책이 없었다니 유감이네요 쿨럭...^^;

Posted by 루트(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