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시간.
조례까지는 시간이 남았기에 느긋하게 교실로 향하는데, 어쩐지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평소의 학생들의 떠들썩한 담화와 다른 어수선한 분위기가 복도에 감돌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대로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고등학교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복도 한편에서 들려왔다.

"으앙~! 유이를 무시하면 안돼-!!"

"자...착하지, 착하지?"

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앳된 목소리로 우는 어린 소녀와, 그 소녀를 달래려고 애쓰는 여학생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어째서 어린애가? 의아해하며 다가가자, 아이를 달래던 여학생이 발걸음 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단정하게 정돈한 단발머리에, 왼쪽으로 살짝 넘긴 앞머리를 두개의 붉은 머리핀으로 고정시킨 소녀.
우리반 학급위원인 사이렌지 하루나다.

"...사이렌지?"

"아, 아키츠군..."

울먹이는 아이를 다독이던 하루나는 난처한 얼굴로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내왔다.
평소의 침착한 이미지와 달리 곤란해하는 하루나의 모습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쩔쩔매는 하루나를 외면하는 것도 못할 짓이었기에,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몸을 숙여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런데...이 아이, 옷차림이 어째 이상하다.

순백의 와이셔츠와 목을 장식한 하늘색 리본.
옷깃에 갈색 스티치를 놓은 노란색 교복.
연두색 체크무늬 치마에 검은 스타킹.

...이거 어떻게 봐도 우리 학교 여학생 교복이잖아?

와이셔츠 위에 걸친 블레이저는 작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려서, 손가락 끝만 살짝 소매자락 밖으로 나와 있었다.
치수가 큰 치마는 일찌감치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원래라면 무릎까지 올라 와야할 검정 스타킹도 얇은 다리를 가리지 못하고 주름져 흘러내렸다.
아이가 입기엔 큰 와이셔츠가 소녀의 허벅지까지 가려주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아래로 향하는 내 시선을 깨달은 하루나가 당황해하며 흘러내린 소녀의 치마를 잡아 허리까지 정중하게 올려주었다.
치수가 맞지않아 치마가 자꾸만 흘러내리려는걸 막으려고 아이의 허리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되었지만...
사이즈가 어린이용으로 맞춰진게 아닌 여고생용의 교복이었기에, 소녀가 옷을 입고 있다기 보단 옷더미를 소녀 위에 걸쳐놓은 듯한 우스꽝스런 인상이 들었다.
설마하지만 이 아이, 학교까지 이 차림으로 오진 않았겠지?

여하튼 민망한 옷차림에서 벗어난 소녀를 달래보려고 톡톡 어깨를 두드렸다.

"저기, 얘야?"

"훌쩍...응?"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던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어린이답게 깨끗한 피부.
약간 드세보이는 눈매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
자라면 분명 미인이 될법한 귀여운 외모의 소녀에게서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혹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안은채, 조심스레 어린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코테가와?"

"훌쩍...아키츠군?"

맙소사...

오늘 학교엔 아침부터 기상천외함이 넘치는군.



콧잔등이 빨개진채 울고있는 소녀, 그러니까 어려진 코테가와를 달래려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코테가와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하루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코테가와가 어째서 이렇게 변했는지 사이렌지는 알아?"

"그게..."

하루나의 말에 의하면, 오늘 아침 학교 복도에서 보라색 바탕에 노란 줄무늬가 있는 스컹크를 발견했다고 한다.
귀여워보이는 외모에 빠져 코테가와와 함께 스컹크를 구경하던 중 스컹크가 코테가와에게 가스를 뿜어냈고,
그 직후 코테가와는 지금의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아이 모습으로 바뀌어 버려 지금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유우키군이 스컹크를 쫓아갔지만 어떻게 될진 모르겠어."

난처해하는 하루나의 말에 끄응-하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가스로 생물을 젊게 만드는 스컹크라니...
정말이지 이 우주에는 별의별 생물들이 다 있군.
하루나와 대화하는동안 코테가와의 울음소리가 잦아든것 같아 코테가와에게 말을 걸었다.

"코테가와, 이젠 좀 괜찮아?"

"흐윽...훌쩍..."

...아직도 울고 있네.

"저기, 혹시 슬픈 일이라도 있었어?"

"그게 아니...히끅...흑...그, 그치만..."

코테가와는 고개를 홰홰 저으면서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울면 안되는데 멈추질 않아..."

"아..."

어려지다보니 예민해진걸까. 코테가와는 한번 시작한 울음을 그치려 노력하는데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어릴적엔 옆에서 우는 아이가 있으면 덩달아 울게 되기고 하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지치기전엔 그치지 않을 때도 있으니.
뭔가 재밌는 일로 관심을 돌려야 할텐데 뭔가 없을까?
지금 상황에서 해줄만한 즐거운 일은...

"목말 태워줄까?"

"으, 응?"

놀이공원에 갔을때 아버지가 아이에게 해주는 목말 태우기.
화목한 가정을 보여주는 정석적인 장면으로 쓰이는 행동이다.
목말해주고 한바퀴 돌다보면 코테가와도 기분이 나아지겠지.

"으음..."

코테가와는 신음을 흘리며 고민했다. 힐끗힐끗 이쪽을 바라보는게 목말 해줬으면 하는데 창피해서 부탁하지 못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주저하는 모습에 혹시나 싶어서 다른 선택지를 제시해 보았다.

"아니면 어부바 해줄까?"

"유이는 꼬마가 아냐-!"

...목말이 더 아이답지 않아?
아, 포대기로 감싸서 등에 업는 어부바를 떠올린거라면 그렇게 생각할지도.
작아지면서 코테가와의 사고 방식도 함께 어려진듯 보여 피식 웃곤 목걸이를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게 아무래도 내쪽에서 먼저 움직이는게 나을것 같았다.

"그래그래 미안해.
그럼 어른스러운 코테가와짱에겐 목말을 해줄께."

"엣? 괘, 괜찮아. 이제 울음도 그쳤으니까..."

"사양하지 말고~"

"괜찮다니깐-!"

"아, 코테가와?"

코테가와는 옆에있던 하루나의 팔을 뿌리치고 뒤돌아 도망가려 했다.
어려진 상태로 학교를 돌아다니는건 여러모로 위험해보여서, 도망가려던 코테가와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아 번쩍 들어올렸다.

"꺗?"

"그렇게 빼지 말라고~"

"놔, 놔줘-! 수, 숙녀의 배를 잡다니 저질이야!"

"으걋!?"

가볍게 들어올려진 코테가와는 당황해하며 허리를 잡은 내 손을 꼬집으면서 버둥거렸다.
뭐, 꼬맹이가 꼬집어봤자 얼마나 아프겠느냐마는...
이 반응을 봐선 목말을 태워주는게 잘하는 행동인지 고민이 된다.

"읏, 이거 놔!
목말 같은거...전혀, 하고 싶거나 하지 않으니까~!"

"......"

응...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 이해했어 코테가와.
이렇게까지 대놓고 시치미 떼는 반응은 정말이지 오랜만이네.
이럴때 코테가와에게 해줄 대답은 정해져 있는거지.
어려져도 코테가와는 새침데기라고 생각하곤, 놓으라고 바둥거리는 코테가와에게 답했다.

"허나 거절한다!"

"엣?"

"이 아키츠 료스케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하지마』라고 말하는 아이에게『NO』라고 거절해주는 일이지."

"이 심술쟁이...!"

핫핫핫~ 신경쓰이는 여자아이에겐 심술을 부리게 되는게 사내아이랍니다.
아무튼 이대로 목말을 태우기 직행이다.
우선은 허리를 잡히는걸 신경쓰는 코테가와의 말을 따라 허리를 붙잡은 손을 코테가와의 겨드랑이쪽으로 올린다.
겨드랑이 근처의 팔을 잡으면서 내 손등을 꼬집던 코테가와의 양손도 덩달아 양옆으로 벌어져 버렸다.

"엣? 자, 잠깐!"

갑자기 양팔이 벌려진 코테가와의 놀란 목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코테가를 내 목뒤에 앉혔다.
파일더 온-!

"하읏...?"

"으읏?"

코테가와가 내 목위에 앉는 순간 느껴진 위화감에 코테가와와 나는 동시에 묘한 신음을 흘렸다.

팔랑~ 툭...
사르륵-

가벼운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끼기긱- 고개를 돌려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눈앞의 복도, 그러니까 방금전 코테가와를 들어올린 장소에 떨어져 있는 연두색 체크무늬 치마와 그 위에 내려앉은 조그맣고 새하얀 천조각.

"아, 아키츠군...?"

들려온 소리에 굳어진 목을 억지로 들어 하루나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와 나랑 코테가와를 번갈아보며 눈을 크게 뜬채 작게 벌어진 입을 가리고 있는 하루나.

결정적으로...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감촉...
맨들맨들하고 폭신한 촉감에 이마에서 식은땀이 쉴새없이 쏟아진다.

...그러고보면 아까까진 흘러내리려던 코테가와의 치마를 하루나가 잡아주고 있었지.
응, 그렇다면 당연해... 그렇게 발버둥치면 치마랑 속옷이 흘러내리는 것도.

"으아앙~! 아키츠군은, 바보야-!"

콩! 콩!

"아얏? 미안해 코테가와~!"

코테가와는 내 머리를 두르리면서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목말을 탄채로 다리를 푸득푸득거리며 발버둥치는 코테가와 때문에 얼굴이나 목덜미가 더없을 정도로 빨개져버렸다.
아무리 어려졌다지만 여자애가 민망한 차림으로 목위에서 날뛰는건 정말이지 곤욕스러웠다.



다시금 울음을 터뜨린 코테가와를 달래는건 정말 큰일이었다.
도움을 청하던 하루나가 오히려 나를 도와주는 상황이 되어버려 정말이지 면목이 없었다.
허둥지둥 매점에서 사온 롤리팝 사탕을 공물로 바치고서야 겨우 코테가와의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매점을 다녀오는 동안 하루나가 준비해줬는지, 코테가와는 핀으로 치마를 고정시켜 입고 있었다.
훌쩍이던 코테가와에게 소용돌이 무늬가 예쁘게 나있는 롤리팝 사탕을 건네주자 , 코테가와는 조금씩 진정하며 천천히 사탕을 할짝였다.
롤리팝의 달콤함이 맘에 들었는지, 코테가와는 어느덧 울음을 그치곤 베시시 웃으며 사탕을 핥았다.
눈물자국이 남은채로 생글생글 웃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맛있어?"

"응!"

귀, 귀여워...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답하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근질거렸다.
코테가와가 얌전히 사탕을 먹는데 열중하자 하루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야... 이대로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어쩌나 했어..."

"그러게...도와주려고 했는데 미안, 사이렌지."

"으응, 아냐. 적어도 혼자선 더 힘들었을테니까.
이렇게 도와줘서 고마워 아키츠군."

사과하는 내게 고개를 내젓곤, 오히려 고마움을 표하는 하루나의 태도에 머쓱해졌다.
괜스레 멋적어져서 뒤통수를 긁적이는 내게 하루나가 지적했다.

"그것보다 아키츠군."

"응?"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는데 조금 다듬는게 좋겠어."

"아..."

하루나의 지적에 그제서야 머리를 매만져보았다.
방금 전 코테가와에게 당하면서 머리가 꽤나 흐트러진것 같았다.
올백으로 넘긴 머리를 고정하던 헤어밴드도 삐뚤어져서 떨어질듯 아슬하게 머리에 걸려 있었다.
머리를 정돈하려고 헤어밴드를 벗자 헤어밴드로 고정되어있던 머리카락이 앞으로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앞머리는 눈을 가릴 정도로 길게 자라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꽤 자랐네...다음에 한번 다듬에 주는게 좋으려나?

눈가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보는 하루나의 시선이 신경쓰여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이렌지?"

"어, 어?"

"그...내 얼굴에 뭔가 묻었어?"

단언컨데, 얼굴에 묻어있는 것은 분명 민망함이겠지요.
민망해하는 내게 하루나는 당황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키츠군이 머리를 내린건 처음봐서 그만 빤히 쳐다봤어. 미안해."

"아니, 미안해할 일은 아닌데..."

그러고보면 운동회에서 물건찾기 시합땐 하루나는 양호실에 가 있었지.
밖에서 악세서리를 벗는건 확실히 드문 일이지만, 이런일로 시선을 모을만큼 내 이미지는 헤어밴드 장착이 당연한걸로 인식되는지도 모르겠다.
신기한듯 바라보는 하루나의 시선에 가만히 서있는것도 조금 부끄러웠기에 말문을 열었다.

"역시 어색해 보여?"

"으응, 그런게 아냐. 평소보다 좀 더 나아보이는걸."

"그, 그래? 고마워..."

예상치못한 하루나의 칭찬에 쑥스러워져, 뜨거워진 볼을 매만지자 하루나는 작게 웃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가지런히 정돈했다.
코테가와가 쥐어잡아 이리저리 흔든 머리카락은 꽤나 헝클어져 있었다.
한두번 쓸어주면 적당히 돌아가겠지싶어 손가락을 벌려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빗질하듯 넘기는데, 사탕을 핥고있던 코테가와가 내쪽으로 가까이 왔다.

"...? 코테가와?"

"저기..."

한손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머뭇머뭇 거리던 코테가와는 힐끔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 아팠어?"

"응?"

"머리카락..."

"아..."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이 신경쓰였는지, 코테가와는 미안한듯 우물쭈물하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코테가와도 정말 귀엽네.
「가져갈래~!」라는 표현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거로군.

코테가와가 걱정하는 만큼 머리는 딱히 아프진 않았다.
튼튼한 몸이기도 하고, 어린애가 때려봐야 얼마나 아플까.
흔들리는 눈망울로 올려다보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몸을 숙여 앉았다.

"난 몸이 튼튼하니까 아무렇지도 않다구?
게다가 코테가와가 걱정해줘서 금방 나았어.
그러니까, 괜찮아."

"...정말?"

"그럼~! 아, 그리고 방금전엔 멋대로 굴어서 미안. 사과할께."

"에?"

몸을 낮춘 자세 그대로 머리를 숙였다.
사과하러 와서 반대로 사과를 받은 코테가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것 같았다.
「으응...」소리를 내며 한참을 고민하던 코테가와는 뭔가 떠오른듯,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얹었다.
의아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코테가와는 싱긋-하고 앳된 미소를 지었다.

"착하지~ 착하지~"

쓰윽-쓰윽-

발돋움을 한채 까치발로 선 코테가와는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내쪽이 오히려 아이 취급 당하고 있어!?

"...풉..."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루나는 고개를 돌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원망스러운듯 하루나를 바라보며 신음소리를 내자 코테가와가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싫어?"

"아니, 기뻐."

기뻐요. 기쁩니다. 기쁘지만...
남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싫어?』라고 묻는 여자아이에게『싫어!』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
응, 지조도 근성도 없네요 나는...
내심 한숨을 쉬고선, 불안해하는 코테가와에게 웃어보였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코테가와.."

"응, 유이는 상냥하니까~"

활짝 웃는 어린아이의 미소는 정말이지 눈부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상냥함에 마음이 아파요, 유이짱.
녹아내린 사탕물에 찐득해진 손바닥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지면서, 다듬었던 머리가 다시금 질척질척 엉망이 되어가는게 느껴졌다.
발돋움한 여자아이에게 엉망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수염 불량아.
입을가린 손바닥 사이로 새어나오는 하루나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코테가와가 만족할 때까지 얌전히 쓰다듬을 받기로 했다.



"쿡...방금 전엔 웃어서 미안해 아키츠군."

"신경쓰지 않으니까 괜찮아. 내가 잘못한거고..."

그렇다고 지금까지도 웃음을 흘리고 있는건 어떨까 싶어 하루나.
그렇게 웃겼던가 그게...?
방금전까지 기특한 장면을 보여주었던 코테가와는 지금 하루나의 한손을 잡고 하루나 뒤에 숨어서 이쪽을 빼꼼 쳐다보고 있다.
쓰다듬을 끝내고 웃는 코테가와에게 무심코 「집에 가져가도 돼?」라고 물은 이후로 쭉- 저 상태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이 변태!」라는 외침과 함께 새빨개진 코테가와에게 밀쳐져선 한심한 꼴로 주저앉아 버렸다.
귀엽다는 의미였는데...역시나 말은 가려서 해야하나보다.
쿡쿡 웃던 하루나는 코테가와와 마주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무튼, 코테가와는 어려져도 코테가와였네."

"응?"

"방금전 코테가와가 아키츠군을 쓰다듬었을때 말야.
어린이가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구.
어린이 조련사라고 할까?"

"하, 하..."

방금전 상황에서 「맹수조련사」라는 별명을 떠올렸던건지 하루나는 킥킥대며 옅게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확실히, 어려서도 여전히 당돌한 코테가와는 꽤나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지금은 경계하듯 힐끔힐끔 시선을 보내오는 코테가와를 어떻게 설득해야하나 고민하던 중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너희들은 괜찮았나보구나."

"미카도 선생님?"

잠옷처럼 보이는 프릴이 달린 분홍색 상의 위에 흰색 가운을 걸친 미카도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다가오셨다.
V자로 크게 파인 가슴골 부위는 가슴의 절반을 노출시키고 있어 시선을 두기 민망할 지경이었다.
평소에 남학생들이 미카도 선생님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데엔 저런 도발적인 옷차림도 한몫하는 거겠지.
미카도 선생님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지만.
어려진 모습의 코테가와를 바라보며 미카도 선생님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학교가 소란스러워서 무슨일인지 나왔더니...누군가 학교에 「모도리 스컹크」를 데리고 왔나보네."

"모도리 스컹크요?"

"그래, 생물을 젊게 만드는 특수한 가스를 내뿜는 희귀생물이란다."

어디선가 들어본 명칭이다 싶었더니, 예전에 양호실에서 미카도 선생님과 상담할 때 들었던 생물같았다.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는건 의미가 없으니까 거절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이야기를 듣던 하루나는 사탕을 먹고있는 코테가와를 한번 보곤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원래대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지금은 치료약을 만드는것 보단 그대로 가스의 효과가 끝나기를 기다리는게 빠를거야.
오래 걸리진 않을테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마렴."

"그런가요..."

"다행이야... 이대로 주욱 아이로 있다면 어쩔까 걱정이었는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우리를 보며 미카도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였다.

"음...그래서 말인데~"

평소의 여유있는 웃음과 다른, 조금은 악동같은 미소를 띄운 미카도 선생님은 나와 하루나의 어깨를 잡았다.

"사이렌지, 그리고 아키츠군. 부탁이 있어."

"네?" "에?"

미카도 선생님은 어리둥절한 상태인 우리 둘의 어깨를 붙잡은채로 복도 끝으로 이동했다.
미카도 선생님께 이끌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는 복도 모퉁이를 돌자 맞이한 광경에 눈이 커져 버렸다.
울먹이거나 폴짝폴짝 뛰어다니거나, 신기한듯 주위를 둘러보는 「꼬마들」의 무리...

"아~우우...!"
"엄마~ 어디?"
"누난 누구?"
"배고파!"

카오스다 이건...
왁자지껄한 상황속에 아연해하는 나와 하루나의 뒤에서 미카도 선생님이 작게 속삭였다.

"혼자서는 아무래도 힘드니까, 원래대로 돌아올때까지 이 아이들을 상대하는걸 도와줬으면 하는데."

현기증이 일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이 돌보기는 나에게 맞지 않는것 같다.
아이를 대하는게 껄끄럽거다나 하진 않았지만, 보모역할은 시각적인 측면에서 나에겐 무리가 있었다.
하루나와 함께 아이들에게 다가갔을때 들려온 「히끅-!?」하는 딸꾹질 소리.
겁먹은듯한 눈초리로 내쪽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에, 상냥한 오빠(형)로 행동하겠다는 사명감은 첫걸음부터 좌절할 것만 같았다.

"저, 저기... 너무 좌절하지마 아키츠군."

"알고 있어... 원래 이런게 보통 반응인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좌절포즈를 취하는 내게 하루나가 당황하며 위로를 걸쳤다.
미카도 선생님은 난처한듯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아이들 반응이 이래서야, 아이 돌보기를 아키츠군에게 맏기는건 무리겠네."

"괜찮아~! 유이가 아키츠군을 안무섭게 만들어줄께!"

"어머? 코테가와가?"

의외라는 표정의 미카도 선생님 앞에서 코테가와는 앞가슴을 팡팡- 두드리곤 내 앞에 섰다.
쪼그려 앉은 나의 머리에서 헤어밴드를 제외한 코테가와는 내 앞머리를 내려 얼굴을 가렸다.
시야가 머리카락으로 가득 가려지자 코테가와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쨘~ 이걸로 안무서워졌지?"

"흐음? 이건..."

"아, 눈매가 가리니까 확실히 나아보여."

무슨 미연시 게임의 주인공마냥 눈이 머리카락에 가려진 나를 보고 미카도 선생님과 하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려는 눈치였다.
아니, 솔직히 사나워 보이는 눈을 가린다면 아이들도 진정할테지만...

"...앞이 안보이는데?"

"앗차~!"

깜빡했다는듯한 코테가와의 탄식소리와 함께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끙끙대면서 고민을 하던 코테가와를 보면서 헤어밴드를 손에 들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시 뒤로 넘기려고 앞머리를 손바닥으로 갈퀴처럼 움켜쥐었을때,
무심코 내 행동을 본 코테가와가 「아!」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으로 손바닥을 퐁~ 하고 두드렸다.

"아키츠군, 거기서 스톱~!"

"응?"

어리둥절한 내 얼굴을 무시하곤 코테가와는 손에 든 롤리팝을 입에 물곤 내 앞머리로 양손을 뻗었다.
그리곤 모아진 내 앞머리카락을 고무밴드로 한데 묶어버렸다.
한데 묶여 들쭉날쭉 솟아올라 야자나무처럼 되어버린 머리카락에 말문을 잊고있으려니 코테가와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자랑스레 물었다.

"쨔잔~! 어때? 귀엽지?"

쨔잔~이 아니야! 쨔잔~이!
뭐여 이 우스꽝스런 패션은?
미카도 선생님은「어머나~」라고 입을 가리곤 눈초리가 초승달 마냥 휘어져 있었고,
하루나는 「풋-」소리를 내다가 놀라선 입을 가리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지켜보던 어린아이들도 앞머리를 고무밴드로 묶은 내 모습을 보곤 긴장이 풀렸는지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아이들의 분위기가 바뀌자 미카도 선생님과 하루나는 대견하다는듯 코테가와를 칭찬했다.

"후후...코테가와짱은 대단하구나?"

"대단해~ 코테가와. 고무밴드 하나로 이렇게...큽..."

말을 잇다말고 입을 가리곤 부들부들거리는 하루나가 원망스럽다.
둘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듯 코테가와는 코웃음을 치며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흐흥~ 유이는 대단하지?"

"오냐, 요 앙큼한 것아."

"으에에에~?"

아이들이 진정했으니 문제는 좋게 해결된거지만, 우스꽝스러운 내모습에 우쭐대는 코테가와가 얄미웠기에, 코테가와의 양볼을 살짝 집고 옆으로 주욱 잡아당겼다.

"우엣~! 하지마~! 아키츠군 바보-!"

아바바-거리면서 당황하던 코테가와는 이내 내 무릎에 발길질을 하며 저항했다.

"흥~!바보라고 하는 사람이 바보라구?"

"아, 아키츠군? 아이 상대로 그런 대응은 어떨까 하는데..."

"유이는 아이가 아냐!"

하루나의 말에 캭!하고 반박하는 코테가와에게 피식 웃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부르는거부터가 어린애입니다 유이짱."

"유이짱이라고 부르지맛~!"

"아풉!?"

유치한 수준으로 응대하는 나랑 아웅다웅하던 코테가와가 발끈해선 팔을 휘둘렀다.
휘두른 팔이 얼굴로 내질러졌을 때, 무언가 딱딱한게 이빨에 부딪히면서 입안으로 파고들었다.
버둥거리는 가운데 코테가와가 휘둘렀던 손에는 롤리팝이 들려있었다.
즉, 지금 입안에서 느껴지는 축축하고 딱딱하고 둥근 물체는 그 롤리팝이로군요.
사탕이 물려진 입이 일자로 길게 벌어진 내 모습에 코테가와는 눈이 커지며 볼을 붉게 물들였다.

"아앗!? 먹지마 이 바보! 멍청이! 롤리팝!"

로○콘을 말하는것 같다. 아마도.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탓인지 엉터리 외국어를 구사하며 주먹을 날려대는 코테가와였다.



"흥..."

"삐졌네."

"삐진게 아닐까...?"

"...역시?"

볼을 잔뜩 부풀린 코테가와를 보며 미카도 선생님과 하루나와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입에 들어온 롤리팝을 꺼내들긴 했는데, 솔직히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했다.
방금전까지 롤리팝을 뺏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코테가와에게 롤리팝을 내밀며 「돌려줄까?」라고 한번 물어보았더니,
「엣? 그런걸 먹을수 있을리 없잖아!」라며 화냈다.
응, 그건 그래.
나면서도 말도 안되는 물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려다가 무릎을 걷어찰 기세로 발을 드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뒷말이 쏙 들어가버렸다.

내 탓에 맛있게 먹던 롤리팝을 잃어버린 코테가와는 하루나와 나 옆에 있던걸 그만두고 아이들의 무리에 섞여서 놀기 시작했다.
나중에 뭐라고 사과해야 하나 고민하는 나에게 「평소의 일이잖니?」라는 미카도 선생님의 말씀은 전혀 위로가 안되었다.
「싸울수록 사이가 좋다는 말도 있잖아?」라는 하루나의 말은 조금은 위안이 되었지만.
그리고...

「에에~ 형 어른스럽지 못하다.」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주고 따라오라는 아저씨는 다들 변태라던데, 아이한테서 사탕을 뺏아먹는 어른은 뭐라고 불러?」
「롤리팝아냐?」

아까도 말했지만 그것은 ○○콘.

방금까지 우리들의 다툼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꼬맹이들의 말은 마음을 헤집고 있었다.



코테가와덕에 겁먹은 아이들이 진정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게 잘못이었다.
이후로 긴장감도 없이 제세상을 만난듯 활개치는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나갈 지경이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얘, 거기에 있으면 위험해!"
"야? 땅에 떨어진거 먹으면 안돼!"
"옷이 땅에 질질 끌리고 있으니까 뛰면 위험해요."
"에? 어부바?"

본격적으로 활력을 주체못해 뛰노는 유치원 어린이들을 돌보는건 정말 만만치 않았다.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들이 한두명도 아니라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위험한 행동을 하려 했기에 이리저리 쉴새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어-쩌면 좋아~~~?!"

하루나의 울음섞인 목소리에 급히 하루나 쪽을 보니, 여자애 한명이 하루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당겨지면서 울상을 짓는 하루나의 모습에 얼른 장난치는 여자애를 안아들었다.

"얘, 그렇게 언니를 괴롭히면 안돼."

"우웅?"

여자애를 달래면서 하루나에게서 떼어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하루나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고마워 아키츠군."

"뭘, 이정도야...윽!?"

쭈욱-

"아하하~ 할아버지같아~!"

하루나에게 달라붙었던 여자애가 이번엔 내 수염이랑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고무밴드로 앞머리를 묶고 난 뒤론 무섭게 보이던 분위기가 반감했는지, 여자애는 거리낌없이 손을 내밀었다.
재밌어하는 여자애의 모습에 호기심이 들었는지 몇몇 아이들이 내게 다가와선 덩달아 수염이랑 머리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복도에 앉아 몸을 낮춘 내게 엉겨붙은 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꺄꺄-거리며 내 얼굴로 장난을 쳐댔다.

"까끌까끌해~"
"주욱주욱 늘어나!"
"나 업어줘!"

으따따~!? 그만둬 이 녀석들아!
애들에게 붙잡혀선 수염이고 볼이고 귓볼이고 엉망진창으로 주물럭거려졌다.
이봐, 귓볼 그렇게 잡아당기지 말라고.
적당히 아이들을 말릴까 싶어서 입을 열려던 순간 귓볼에 뜨거운 감촉이 달렸다.

"으흣?"

뭐, 뭐야 이건?
낯선 감촉에 당황스러워 시선을 향하자 어린애 한명이 내 귓볼을 씹고 있었다.
어린애들은 뭐든 입안에 넣으려고 한다지만 귓볼 물고 씹는다는 행동은 예상에 없었어요.
그런데...어쩐지 익숙한 얼굴이다?

웨이브진 짧은 금발의 어린애.
설마...리사? 너도 어려진거냐?
놀란 나머지 살짝 몸을 떤 내 움직임을 느꼈는지, 리사는 작게 키득거리곤 입안에 머금은 귓볼 위로 혀를 굴리기 시작했다.

"흐야앗...?!"

간질거림과 함께 묘한 느낌이 귀에서부터 뇌를 파고들자 무심코 낮은 비명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빨지마!
이상한 감각에 몸이 떨리는 가운데, 눈이 동그래진채 붉어진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하루나의 시선에 수치심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몸이 움찔거리는걸 참으며 귀를 물고 장난을 치는 리사를 떼어놓았다.
바닥에 내려선 리사는 입가를 샐쭉 올렸다.

"후후~ 귀여운 오빠네~"

귀여운건 너희들 쪽이겠지!?
유치원생만한 꼬맹이들한테 농락당하다니...
귀 언저리가 축축한게 귓볼이 침으로 범벅되어 있는걸 알 수 있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곤 리사는 배시시 웃으며 혀를 할짝였다.

"리사는 경험이 풍부한 레이디라구~"

"네네, 그러십니까..."

어리숙한 오빠를 바라보는 리사의 시선에 한숨을 쉬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어 리사의 얼굴에 가져가 댔다.

"에?"

"레이디라면 언제나 단정해야지."

어리둥절한듯 눈을 깜빡이는 리사의 입가를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입술 주변이 침으로 번들거리면 예쁜 얼굴이 엉망이니까.
뭐, 그건 그것대로 귀여워 보이긴 하지만서도.
깨끗하게 된 리사의 얼굴을 확인하곤 손수건을 치웠다.

"자, 이제 깨끗이 됐으니까 조금은 얌전히 놀도록 해, 멋진 아가씨."

"우응..."

의외로 리사는 얌전히 수긍하곤 어려진 친구들이 있는곳으로 돌아갔다.
겨우 숨돌릴 틈이 생겨서 복도 바닥에 주저앉곤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무리중엔 익숙해 보이는 얼굴들이 꽤 보였다.

방금전 웨이브진 짧은 금발의 어린애가 모미오카 리사.
짧은 흑발의 트윈테일에 안경을 쓴 아이는 아마도 사와다 미오.
좌우에 노란색 머리핀을 2개씩 장식한 단발의 소녀는 아라이 사야카.
투사이드업된 갈색 머리카락에 안경을 쓴 아이가 시라유리 코요미.

하루나를 빼곤 2-A에서 이름을 아는 여학생들은 전부 다 어려진것 같았다.
이래서야 오늘 오전 수업은 꿈도 못꾸겠군.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위화감이 들어서 하루나에게 물었다.

"저기, 사이렌지. 미카도 선생님은 어디 가신거야?"

아까전 울려던 아이들을 달랠 때도 기척이 없었던것 같은데.

"아, 미카도 선생님께선 학교를 한번 돌아보고 오신다고 하셨어.
어려진 아이들이 더 있으면 인솔해서 오시겠다고..."

"그래?"

설마 전교생이 어린아이로 변해버리거나 하진 않았겠지?
상상하기도 두려워 살짝 몸을 떠는데 하루나가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놀랬어."

"응?"

"아이들이 아키츠군에게 매달려올땐 긴장했어.
혹시나 아키츠군이 화내지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 했거든.
그런데 의외로 아이들과 잘 어울려서 놀랐어."

"어린 아이들 상대로 화낼순 없잖아?
게다가 말썽꾸러기들이지만 다들 사랑스럽고..."

"후후...아키츠군은 어쩌면 유치원 선생님을 해도 어울릴것 같아."

"아하하, 고마워. 사이렌지야 말로."

하루나의 칭찬은 고맙지만 유치원 선생님이라...애들의 신경이 보통 굵지 않는한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고보면 짱구네 유치원 원장 선생님 외모는 그야말로 범죄자급으로 묘사되던데, 잘도 유치원 선생님을 하실 마음을 먹으셨네 그분은.
기억하기론 모두가 자신을 피할때 유일하게 무서워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건네받고 유치원 선생님이 되길 결심하셨다고 하는데...
고독속에서 예상치못하게 찾아온 구원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상냥한 그분에게 겁내지 않고 사탕을 건네준 어린아이에게 축복이 있길 바란다.


어느정도 여유가 생겨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남자애 한명이 손가락을 빨며 하루나를 보챘다.

"누나, 나 배고파~"

"그래? 그럼 먹을거 사러 누나랑 함께 매점에 갈까?"

"응!"

하루나는 남자애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럼 아키츠군, 매점에 다녀올동안 아이들을 부탁할께."

"맡겨줘. 조금 있으면 미카도 선생님도 오실테고,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고마워. 그럼 다녀올께."

하루나가 남자아이가의 손을 잡고서 매점으로 가고, 난 이대로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기로 했다.
어려진 친구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것도 이번이 유일한 기회니까, 얌전히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에 충실하는게 좋겠지.
활달하게 놀고있는 아이들을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던 중 갑자기 뛰어놀던 사내아이가 바짓단에 걸려 복도에서 넘어졌다.

"으아앙!"

코를 찧은 사내아이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더니 복도가 떠나갈듯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서 달래면서 상태를 살피는데, 옆에서 내 소매를 살짝 잡아 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저, 저기..."

"응?"

투사이드업 스타일에 안경을 쓴 꼬마아이, 코요미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왔다.
사내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몰라 속이 타들어갔지만, 다리를 배배 꼬며 흠칫흠칫 이쪽을 바라보는 코요미도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것 같아보여,
되도록이면 상냥한 얼굴로 보이도록 애써 웃으며 코요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니? 혹시 필요한거라도 있어?"

나름 최선을 다해서 호의적인 얼굴을 한게 먹혔던걸까.
코요미는 치맛자락을 꾸욱 누르면서 입술을 열었다.

"...쉬야 마려워..."

...하느님 맙소사.



울고있는 사내아이와 급한 얼굴의 코요미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하던중 다행히 미카도 선생님이 학교내의 아이들을 인솔해 돌아오셨다.
의사 가운 주머니에 든 응급용품으로 미카도 선생님이 사내아이의 상처를 돌보는 동안, 나는 울먹거리는 코요미를 손을 잡고서 여자 화장실 앞까지 데리고 갔다.

"그럼 난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다녀오도록 하렴."

"...혼자 돌아가면 안돼?"

흠칫흠칫하며 코요미는 여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코요미가 나올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안에서 코요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있어?"

"응. 있어."

"저, 저기...옷좀 가져가 줘."

"어?"

치수가 커서 흘러내리는 옷때문에 분투하던 코요미에게서 옷을 받아들고 여자 화장실을 빠져 나왔다.
...그래도 치마까지 벗어줄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물이 고인 화장실 바닥에 치마가 젖을까봐 코요미는 치마를 벗어서 교복 상의와 함께 내게 맡겼다.
여자 화장실 앞에서 여학생 치마를 들고 기다리는 남학생이라니...대체 뭐냐고...

민망해하면서 기다리길 잠시,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코요미가 밖으로 나왔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흔들흔들하는 코요미의 모습이 이상해서 옷을 입혀주며 물었다.

"시라유리, 괜찮아?"

"우...졸려..."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면서 하품을 하는 코요미의 모습에 쓴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어린아이로 돌아간것 같네.

결국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는 코요미를 안아들고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블라우저로 몸을 덮은 코요미는 고개를 내 가슴에 기댄채 잠에 빠졌다.
복도에는 이미 하루나가 돌아와 미카도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키츠군? 시라유리는...?"

"졸린가봐요. 어려져서 그런지 잠도 늘어난게 아닌가 싶은데 말이죠."

"그런가보구나. 6세 아동은 보통 하루에 10시간 넘게 잠을 잔다고 하니까, 수면시간도 어린시절로 되돌아간게 아닐까?"

"잠시 쉬게 해야 할것 같은데, 어디다 재우죠?"

"그럼 양호실 침대에다 잠시 재워두도록 하렴.
아마도 일어날때 쯤엔 원래대로 돌아가 있을테니까."

"그럴까요?"

"아, 돌아오면서 양호실에서 구급상자 좀 가져다 주려무나.
방금전같은 사고가 있으면 곤란하니까."

"예."

"아! 나도 코요미랑 같이 갈래!"
"나도 나도~!"

손을 흔들며 따라오는 리사와 미오, 사야카를 데리고 양호실로 향했다.

양호실에 도착해 침대에 가만히 코요미를 눕혔다.
잠에 빠진 코요미의 입가에는 침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가슴께가 축축한건 이것 때문이었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손수건으로 코요미의 입가를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입가를 닦아주는 손길을 느꼈는지 코요미의 눈꺼풀이 살짝 열렸다.
이런, 깨워버린건가?
흐릿한 코요미의 시선을 마주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달랬다.

"피곤한것 같으니 좀더 자도록 하렴."

"아음..."

깜박이던 눈꺼풀을 천천히 닫으며 코요미는 낮게 속삭였다.

"잘자 오빠..."

"...응, 잘자렴."

왠지모를 감격을 느끼며 이불을 들어 코요미를 덮어주었다.

테이블에 놓인 구급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한뒤 상자를 들고 양호실을 나서기 전에, 양호실까지 따라온 세명에게 주의를 주었다.

"알았지? 여기 도구는 깨지기 쉬우니까 조심해서 놀아야 한다?
그리고 시라유리가 자니까 되도록이면 조용하게 있어줘."

"오빤 돌아가는거야?"

"미카도 선생님께 구급상자를 갖다드려야 하거든.
곧바로 다녀올테니까 그동안 시라유리를 잘 부탁할께."

"맡겨만 줘~"
"맞아맞아~ 걱정말고 다녀와 오빠~"
"사야카짱~ 의사놀이 하지 않을래?"

테이블 위에 놓인 청진기를 들고 목소리를 낮춰 대화하는 아이들을 뒤로하며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하늘은 이렇게 맑은데, 사건은 아무런 예고없이 발생하니까 당황스럽다.
절박한 사건이 아닌 유쾌한 해프닝들이니까 「뭐, 상관없나」하고 즐길수 있는거지만, 가끔은 사전에 짐작이라도 할 수 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다.
...그랬다면 디지털 카메라라도 들고왔을텐데...!
마음속의 앨범으로만 남기기엔 너무나도 아쉬운 오늘의 기억들을 반추할 때, 갑자기 창밖에서 절박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 도와줘요~~~!」

다급한 비명에 놀라 창밖으로 뛰쳐나가자 에메랄드 빛 머리의 어린아이가 상자를 안은채 옥상 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룬인가!?
낙하 예상 지점에서 받아들이려고 달리다가 옥상에서 뻗어져나온 로프를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룬짱- 괜찮니!?」

옥상에 등장한 인물은 추락하던 룬의 팔을 휘감은 로프를 지탱하고 있었다.
분홍빛 생머리에 하트모양 꼬리가 인상적인 어린 소녀.
어려진 라라다.
분홍색 원피스에 박쥐날개 모양의 머리장식과 검은색 가로줄 스타킹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건데, 페케의 트랜스폼 능력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 같았다.

「지금 끌어올려 줄께-!」

다행스럽게도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진 않은것 같다.
룬이 구조되는 동안 밑에서 혹시모를 사태에 대비해 안전요원 역할을 하기로 했다.
아래에서 룬의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옥상에 선 라라의 기합소리가 들리며 룬은 위로 떠올랐다.

하늘 높이 구름 저편으로 날아갈듯이...

「꺄아아---!?」

"역시 이렇게 나오는거냐!?"

이게 바로 데빌루크 퀄리티라는건가?
옥상에서 당황해하는 라라의 표정을 보건데, 어려지면서 힘조절이 제대로 안된것 같았다.
생각은 그만두고 재빨리 운동장을 벗어나 룬이 날아간 방향을 향해 이동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는 룬을 정면에서 받아들이면서 룬이 받을 충격을 줄이기 위해 몸을 낮춰 주저앉으며 몸을 굴렸다.
옷이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무사히 룬을 받는데 성공했기에 안도하며 룬의 상태를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품에 안긴 룬은 얼굴을 내 옷자락에 묻은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룬?"

뭔가 잘못된건가 걱정되어 조심스레 룬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

룬은 말없이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얼굴을 파묻었다.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며, 살을 파고드는 작은 손가락에서 전해지는 떨림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한번 룬을 불렀다.

"...룬?"

"...읏..."

"어, 어이?"

"...으읏...우...으...흐에엥~~~!"

조금씩 들썩이던 어깨가 크게 흔들리면서 신음소리 같던 룬의 울먹임은 마침내 울음으로 터져나왔다.
참았던 두려움을 쏟아내는것처럼 룬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훌쩍이는 소리는 그칠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몸이 어려지면서 성격도 아이처럼 되어버린걸가?
옷자락이 점점 젖어가는걸 느끼곤 오늘 몇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 콧물로 범벅되었을 룬의 얼굴을 가슴에 묻은채 천천히 룬의 머릿결을 쓰다듬어 주었다.



"훌쩍...애 취급 하지마."

"알았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준 뒤, 떨어지면서 신발이 벗겨진 룬을 등에 업고 학교를 향해 걸었다.
라라의 도움은 룬이 으르릉거리며 거부하고 있었고, 룬에게 맨발로 흙바닥을 걷게할 순 없었으니...
모도리 스컹크의 회수와 미카도 선생님께 드릴 구급상자를 라라에게 부탁하곤 룬을 업어 들었다.
등에 업힌 룬은 훌쩍이는 모습을 보인게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뭔가 불만스러웠는지 룬은 업혀가는 내내 곤두선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침묵으로 대응하는것 보다야 훨씬 마음이 편했기에 딱히 상대하기 불편하진 않았다.
울다가 목이 메었는지 룬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얌전한 탓도 있었고 말이다.

"신발, 못찾았어?"

"너 받으러 간다고 신발 날아가는것 까진 못봐서.
새로 하나 장만하는게 나을걸?"

"뭐야, 내 탓이란거야?"

"그렇게 말하진 않았어.
내가 사과할건 아니지만, 대신 이렇게 업어주고 있잖아."

"부탁한적 없어! 대개말야, 탈의실에서 있었던일의 대가론 이것도 싼거라고."

리토가 자양강장제 먹은 그날의 일 말이로군요.
리토를 도와준답시고 갔다가 팔자에도 없는 팬티를 얼굴에 덮어쓴게 죄라면 죄지...
고개를 떨구곤 체념한채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그래, 내가 말을 말아야죠..."

"......"

어깨를 눌러오는 룬의 손가락 힘이 약간 강해진 것 같았다.
조금 심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지 주저하던 룬은 조심스레 물었다.

"...업는거, 힘들지 않아?"

"글쎄 어떨까...?"

어린아이로 작아진 룬을 드는게 무거울리는 없지.
뭐, 평소와 달리 조금 움직이는게 힘들지만 룬이 무거워서 그런건 아니니까.

"...무겁다고 말하면 때려줄거야."

"네네~"

어려졌어도 그런 부분을 신경쓰는게 여성이란걸까?
여성이 민감해하는 문제엔 접하지 않는게 맘 편하지.
흘러넘기듯 건성으로 답하는 태도가 불만이었는지 룬은 볼을 부풀렸다.

"...조금 도움을 줬다고 잘난체 하지 말란 말야."

"안한다니까?"

"......"

입을 다물어버린 룬을 데리고 학교 정문에 다다랐다.
교문을 통과할 즈음, 낮게 속삭이는 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모기만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는 룬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소리죽여 쿡쿡대는 내게 당황한 룬이 물었다.

"뭐, 뭐야?"

"아니, 어려지니까 평소보다 기특해보여서."

"이익...! 애 취급하지 말랬지!"

"으에-?"

발끈한 룬에게 볼을 잡아당겨졌다.
변덕스러운 아가씨의 기분에 맞춰주는 것도 일이구나...
예전에 대화했을 땐 고양이 가죽을 뒤집어쓴것 마냥 얌전을 빼더니...아, 지금도 고양이 같은건가?
변덕스럽고 털을 바짝 세운것마냥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다는 의미로 말이다.

늘어난 볼을 꼬집는 룬의 화풀이를 감당하며 교사에 들어섰다.
내 등에서 내려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은 룬을 보며 다음 행선지를 생각해봤다.
부탁받은 구급상자는 라라가 대신 미카도 선생님께 건네주었을테까, 이만 양호실에 돌아가서 아이들이 잘 있나 살펴 보는게 좋을것 같다.
혼자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날 룬은 이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거야?"

"양호실. 시라유리랑 다른 아이들을 거기 데려다주고 왔거든.
룬 너도 같이 갈래?"

"흥~이다!"

혀를 쑥 내밀곤 새침하게 돌아선 룬은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건강하네.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였기에 어깨를 으쓱하곤 양호실로 향했다.

양호실 안에선 조금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자고있던 코요미가 깬건 아닐지 걱정하며 양호실 문을 열어 안을 살폈다.
사야카와 코요미는 함께 침대 위에 누워 사이좋게 잠들어 있었다.
리사는 청진기를 목에 걸친채 미카도 선생님이 사용하는 회전의자에 앉았고,
미오는 맞은편 원형의자에 앉아 와이셔츠를 걷어올려 배꼽을 드러내고 있었다.
병원놀이라도 하고 있는건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리사와 미오의 시선이 쏠렸다.
나를 바라보며 갸우뚱하던 리사가 물었다.

"...누구?"

"아키츠 료스케."

"...에? 거짓말~!"

"어째서?"

놀라는 리사의 반응에 무심코 물었다.

"그치만...오빠, 아니, 아키츠군은 이러~어케 크구, 수염이 났단 말야."

리사는 발끝으로 서서 팔을 위로 쭉 뻗었다.

"그야 나 지금 어린아이니까..."

몸에 안맞게 헐렁헐렁해진 교복을 바닥에 끌면서 도착한 양호실.
난데없는 소녀들의 질문공세 속에서 어려졌다는 사실을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룬을 구해준 뒤, 학교로 돌아가려고 바닥에서 일어났을 때,
나무가지에 걸려있던 모도리 스컹크가 머리위로 떨어지면서 가스를 내뿜었다.
덕분에 모도리 스컹크를 잡을 고생은 덜었지만, 내 몸도 어린아이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방금전 룬을 업고 왔을때도 어려진 상태에서 업고 왔기에 평소보단 좀 힘들었고.
흘러내린 바짓단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꽤나 걷는데 고생했단 말이지.

"료-짱은 어렸을적은 이렇게 생겼구나~"

"료-짱이냐..."

"싫어?"

"아니, 그런건 아닌데..."

"아이니까 어울리지 않아?"

네 그러십니까.

"수염이 없어..."

"이 나이에 수염이 있을리 없잖아..."

"눈매가 사나운건 선천적이네. 난 불량스럽게 구느라 인상을 써서 이렇게 된줄 알았어."

야...

"아하하~ 그렇게 침울해하지마~ 강해 보이잖아?"

"그런데 어려졌다지만 수염 없는 아키츠군을 보니까 신기하네."

"맞아, 덜 무서워보여. 이빨빠진 호랑이?"

"무슨 비유야 그거..."

드르륵-

그때 양호실 문이 열리고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라라가 양호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 리사랑 미오 여기있었구나?"

"앗, 라라찌? 어디 있었어?"

"미카도 선생님께 구급상자 드리고 왔어.
혹시 리토 못봤어?"

"몰라. 그것보다 라라찌, 같이 병원놀이 하지 않을래?"

"아~! 나도 같이 할래~!"

리사의 제안에 반색을 한 라라가 양호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어떻게 하는거야?"

"시범을 보여줄께. 라라찌랑 료-짱은 잘보라구~"

"어? 나도 같이 하는거야?"

어리둥절한 나를 흘러넘기듯 리사와 미오는 제각각 의자에 앉아 서로 마주보았다.
청진기를 든 리사가 미오에게 근엄한체하며 물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배가 아파요..."

"그럼 배를 내밀어보세요."

"네~"

와이셔츠를 걷어 올려 배꼽을 드러낸 미오에게 리사가 청진기를 갖다 대었다.

"흠흠...어디보자..."

눈을 감으며 한참을 음음-소리를 내던 리사는 팟! 하고 눈을 뜨더니 엄지를 치켜들었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소아과인줄 알았는데 산부인과였어!?

"원인은 배고픔! 뱃속의 아기가 맛있는걸 먹여달라고 하는거에요.
달콤한 빙수를 한가득 먹는걸로 당신의 고민은 해결~!"

"와아~"

터무니없는 진단이다...

"그럼 다음엔 료-짱 들어오세요."

리사의 말에 미오는 의자에서 내려와 내 손을 이끌어 의자에 앉혔다.

"미오는 이제부터 간호사 역 할래~"

싱글벙글하는 미오의 모습에 나도 적당히 놀이에 맞춰주고자 몸을 바로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최근 성장통 때문에 몸이 아파서..."

"칼슘이 부족하네요.
유산균은 섭취하고 있나요?"

...칼슘이랑 유산균 사이에 대체 무슨 관계가 있나요 리사씨?

"료-짱은 저기 있는 드링크라도 섭취하세요."

엉망진창이네요.
역시 놀이로 하는거에 태클걸면 안되는거였어.
간호사 역할에 열중한 미오가 진료실 한쪽에서 꺼내주는 드링크를 건네 받았다.
진짜로 마셔야 되는건가 이거...?
드링크를 들고 고민하는 내게 미오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착한 아이는 먹는 걸 가리지 않아요. 료-짱?"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긴 양호실이지?
그것도 매드 닥터끼가 보이는 우주인 의사가 거주하는...
잘못해서 우주인용 드링크라도 마셨다간 큰일날지도 모른다구?

드링크 병을 확인해보니 제대로 상표랑 제조사가 적혀있었다.
적어도 우주인용 약은 아닌 정상적인 드링크라는건 확실해 보였다.
되도록이면 미카도 선생님의 약들이 즐비한 양호실에서 드링크를 먹는건 사양하고 싶지만...
병원놀이에 심취한 미오의 재촉에 할수없이 병을 따서 내용물을 한모금 들이켰다.
주저하면서 음료를 마시는 동안 라라가 환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잘부탁드려요 의사 선생님~"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배가 아파요."

"그럼 배를 내밀어보세요."

"네에~!"

펄럭-

리사의 말에 라라는 원피스를 걷어올렸다.
배꼽까지 원피스를 걷어올린 라라는, 다리만을 가로줄 스타킹으로 가린채 새하얀 맨살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푸우웃!?"

"꺄!?"

드링크를 마시다 보게된 충격적인 장면에 그만 마시던 드링크를 뿜어버리고 말았다.
뿜어진 드링크는 라라의 몸에서 물방울을 맺으며 흘러내렸고, 피부에 진득한 드링크가 묻은 라라는 울상을 지었다.

"우에에...더러워졌어..."

"아, 미안. 금방 닦아줄테니까..."

무심코 손수건을 꺼냈다가 움찔했다.

닦아줘? 여자애 몸을?

아니나다를까, 리사와 미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흐응...료-짱은 어려졌어도 저질이네~

"...미안합니다."


결국 손수건을 건네받은 미오가 대신 라라의 몸을 닦아줬다.
도중에 꼬리를 가지고 노는 미오 때문에 야릇한 소리를 내는 라라를 보곤, 기겁해서 미오를 떼놓고 대신 라라 스스로 몸을 닦도록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어려졌는데도 에로한 성격이 남아있는 미오의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유치원 선생님은 얘내들을 대체 어떻게 상대하셨던걸까?
몸을 닦은 라라에게 손수건을 건네받은 뒤, 약손을 해주겠다며 라라의 배를 쓰다듬는 미오의 모습을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진찰이 끝나자 리사는 의자위에서 다리를 흔들거리며 심심한듯 청진기를 만지작거렸다.

"으응...선생님 역할은 이제 질리네.
료-짱! 교대하자."

"에? 나랑?"

"응~ 나도 환자역 해볼래~!"

리사의 부탁에 수긍하곤 리사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리사로부터 건네받은 청진기를 목에 걸고 회전 의자에 앉아 의사 선생님 흉내를 내보았다.

"그럼,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모미오카씨?"

"가슴이 아파요."

애틋한 표정으로 리사가 내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탁-

"......"

"......"

...슬픈 소리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고 있자 리사는 초초해졌다.

"읏...! 아니니까! 본래라면 진짜로 나이스 바디니까!"

"...아무튼. 청진기를 대보면 알겠죠."

"이렇게요...?"

노골적으로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만든 리사는 와이셔츠를 풀었다.

"맨살일 필요는 없는데..."

"혹시 두근두근해?"

"요만큼도."

"에에~?"

"한 10년쯤 뒤에 물어보세요. 꼬마 아가씨."

"칫- 재미없어."

핏핏거리는 리사의 흉부에 청진기를 댔다.

"아읏...차가워."

"......"

살짝떠는 리사의 반응에 피부위에 걸친 청진기를 떼다 옷뒤에 대었다.
단추가 모두 풀어진 와이셔츠 때문에 명치부터 배꼽까지 드러나 보이는 리사에게 이만 와이셔츠를 여미어도 된다고 하자 리사가 힐쭉 웃음지었다.

"왜? 괜찮잖아. 료-짱은 이런 몸에 흥미없다며?"

"진찰은 옷위로 하면돼. 그리고 여자아이는 배를 차게 하면 안되니까."

"왜 배를 차게 하면 안되나요?"

"엣? 어, 그러니까..."

그런걸 물으면 어떡하라고? 알면서 물어보는거냐 리사?
내쪽은 할말을 찾느라 당황스러운데, 그걸보고 생글생글 웃는 리사의 표정이 얄밉다.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줄 땐 따뜻한 배를 찾아서 온데."

"에~ 료-짱은 거짓말쟁이야."

"어?"

"그런 동화를 믿을만큼 리사는 어린애가 아니라구~"

어린애야...충분히 어린애라고?
너같으면 6살배기 어린애한테 보건체육 이야길 할 수 있겠냐?
말문이 막혀 우물쭈물하는 내게 리사는 쯧쯧쯧하며 손가락을 흔들곤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빠랑 엄마가 키스하면 생긴대."

"......아, 그래?"

미안, 너도 머리가 유아퇴행했구나 리사...
마음속으로 사과하곤 청진기를 치우곤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럼 오늘 진료는 이걸로 끝..."

펑~!

청진기를 테이블에 올려놓던중 난데없이 들려온 효과음에 무심코 소리가 난곳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향한곳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리사가 풀어헤쳐진 와이셔츠 사이로 가슴골과 배꼽을 드러낸채 서있었다.

"아, 돌아왔다."

"돌아왔다가 아니잖아! 옷매무새부터 바로해!"

볼록하게 솟아오른 가슴골과 오목하게 들어간 배꼽, 게다가 단추가 풀어진채 살짝 흘러내려간 치마 사이론 가랑이가 살짝 엿보여 황급히 리사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다른 방향도 마찬가지였다.
라라를 만지작거리던 미오도 치마가 반쯤 내려간 파렴치한 상태였고,
라라의 경우에는 원래 몸으로 되돌아가면서 밀려올라간 원피스 아래로 배꼽부터 하반신을 거리낌없이 쐬고 있었다.
스컹크의 가스에 당한 시간이 달랐기 때문인지, 내몸만이 아직까지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은채 어린 모습 그대로였다.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내 반응에 리사는 재밌어보인다는듯 웃음을 지었다.

"어머~ 누나들을 보고 부끄러워하는거야? 요런 조숙한녀석~!"

"윽? 머리 흐트리지마 모미오카!"

머리위로 손바닥을 꾹 누르면서 머리칼을 헤집는 리사에게 항의하자 리사가 씨익 웃었다.

"쯧쯧, 그게 아니지~ 「리사 누나」라고 해봐~"

"...넌 지금 나보고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하라는거냐?"

"정말...귀염성 없네~ 요것아~!"

"으갸갹!?"

내목에 팔을 두르고 다른 한손으론 힘차게 머리를 눌러대는 리사 때문에 비명이 흘러나왔다.

"다, 답답하단 말야~!"

내 발버둥질을 라라의 옆에있던 미오가 재밌다는듯 바라보았다.

"아키츠군의 어린 모습은 꽤나 귀엽네~"

"애 취급하지마...!"

"후후, 그런 반응이 더 아이처럼 보이는거 아니 료-짱?"

"놔, 놔줘!"

"자, 「리사 누나~」는?"

"모, 못해."

"「리사 누나~♡」는?"

"뭔가 자꾸 요구사항이 높아지고 있잖아!?"

"계속 뜸들이면 더 부끄러운짓을 하게 될지도 몰라 료-짱?"

"으..."

사람의 수치심을 부추기기는...
언젠간 새빨개진 리사의 얼굴을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리사 누나...아..."

"꺄~! 요 귀여운 녀석~!"

"우풉-?"

순간, 리사에게 머리를 잡혀선 그대로 리사의 품에 얼굴이 묻혀버렸다.
말랑한 감촉이 얼굴에 전해지면서 삽시간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야, 야!? 나 실제론 고교생...!

"그, 그만해!"

"후후~ 안심하고 이 누나 품에 안기렴~ ...어머나?"

"어라? 료-짱, 코피가...?"




다행히 흘러내리던 코피는 원래의 내몸으로 돌아오고 나선 멈췄다.
어린몸으론 너무 자극이 강했는지 코피까지 나는 불상사가 벌어질줄은 생각도 못했다.
티슈로 코를 막은 날 보며 박장대소를 하곤「아하하~ 10년 뒤의 내 모습은 꽤나 두근거렸어?」라고 놀리는 리사에겐,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도 못한채 침묵해버렸다.

나를 마지막으로, 어린아이가 되었던 다른 학생들도 다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만, 어려졌을때의 기억이 남아있었는지 몇몇 학생들과는 얼굴을 마주하면 조금 거북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코테가와는 목말이라든가 사탕이라든가 하는 해프닝 때문에 서로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게 며칠간 계속되었다.
리사는 양호실에서의 일을 갖고 놀려대느라 옆에서 듣는 사람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코요미는...한동안 나와 시선을 마주하기 힘들어했다.
가끔씩 앓는 소리를 내면서 「나 바보!」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싸매는 행동을 보였다.
위로해주는 사야카와의 대화를 통해서 짐적컨데,「쉬야 마려워」라며 여자 화장실에 갔던 일이라든지, 내 옷에 침자국을 남긴거라든지로 번민할 거리가 많은것 같았다.
룬은...같은 반도 아니었기에 얼굴을 볼 일도 거의 없어 잘 모르겠다.
최근엔 룬이 아닌, 다른 성별(男)인 렌의 모습으로 2-A에 찾아와 라라에게 구애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아마도 우주 스컹크를 학교에 가져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걸 신경쓰는것 같았다.
라라는 언제나 마찬가지다. 천재인데 백치미를 풍기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며 리토와 함께 트러블을 일으킨다.

많은 학생들이 어린아이로 변해버린 사건치고는 의외로 평화롭게 끝난 해프닝이었다.
몇몇 소녀들은 저마다 고민할 거리가 생겨버린 사건이었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은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나?
...우선은 뭐라고 할까, 교복상의가 침이나 눈물이라든지로 젖어버려 곤란했던걸 우선 이야기 하고 싶다.
룬을 돕느라 교복이 흙으로 더러워진것도 문제라면 문제일까.
원래대로 돌아온 뒤, 화장실에서 간단히 옷을 털고 헤어밴드 따위의 악세서리를 정돈한 뒤 교실로 돌아갔다.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사건을 접했지만, 이걸로 다시금 활기찬 학교생활을 보낼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런 식으로 생각하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웃흥~ 아키츠구운~♡ 그 손수건 빨지말고 내게 팔아줘~♡」

닭살돋으니까 어미에 하트 날리면서 덤벼들지 말아요 교장선생님!

「후우후우...여자아이들의 타액이 묻은 손수건!」
「제발 부탁한다! 1만엔 줄테니까!」
「역시 모테미츠 선배! 태연하게 거금을 부르는 모습에 동경합니다!」

너네들도 정신차려!

코테가와 유이
모미오카 리사
시라유리 코요미
룬-엘시-쥬에리아
라라-사타딘-데빌루크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여학생들의 타액이 묻은 손수건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교장 및 남학생 무리들.
대체 어떻게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소문이 퍼졌는지 이쪽이 궁금할 지경이다.
그것보다 단지 손수건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덤벼들다니.

- 아, 덕(德)의 세계에 변태들이 가득해...

「씻지않은 손수건 그대로 부디 내게 줘!」
「참을수 없는 체향이...!」
「부디 킁킁하고싶소!」
「할짝할짝 하고싶어~엇!」

"오지마 이 변태들아!!!"

평소의 두려움은 어디로 버렸는지, 눈이 시뻘개져선 내쪽으로 돌진해오는 교장 및 남학생들의 무리에 기겁해서 도망가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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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게 정의.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기회는 이번 한번 뿐이었기에 이것저것 이벤트를 잔뜩 구상했었지요.
(어릴적 할수있는 놀이들 같은거라든지 해프닝...)
그런데 이야기라 너무 많이 들어가면 전개가 산만해 지기에 소재 절반은 쓰다가 다 잘라먹었네요ㅇ<-<

마찬가지 이유로, 원래는 마지막에 등장할 예정이었던 사키 선배는 다음 기회로...--;

p.s.료스케의 앞머리 묶기의 모티브는 굿모닝 티쳐.
굿모닝 티쳐의 주인공 박영민군이 벌칙게임으로 앞머리를 고무밴드로 묶은게 참 귀여웠더랬죠.*=ㅅ=*

p.s.2. 9월을 넘겨서 죄송합니다.m(_ _)m;;;;;;

p.s.3. 참조 이미지

코테가와 어려짐

어려진 코테가와를 달래는 하루나

보건의 미카도 료코

왼쪽부터 시라유리 코요미, 아라이 사야카, 모미오카 리사, 사와다 미오

보모역할로 고생하는 하루나양

어려진 룬

스컹크를 찾으러 다니는 룬

어려진 라라

원피스 차림의 어려진 라라

(덤)원피스 차림의 어린 시절 라라

(덤)불안해하는 어린 시절 라라

(덤)훌쩍이는 어린 시절 라라

병원놀이중 원래대로 돌아온 리사의 의상

(덤)미캉 보너스 이미지

(덤)등장은 안했지만 어려진 야미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이미지를 많이 넣진 않지만...

어려진 아이들 컷이 워낙 인상깊어서=ㅅ=a
보통은 볼수없는 컷이기도 하고.

결론 : 귀여워서 많이 넣었습니다(-.-);
Posted by 루트(根)
,
「대운동회」

일찍이 남극에서 일어난 원인불명의 대폭발로 인류는 큰 시련을 겪었다.
대폭발의 원인 조사를 위해 파견된 각국의 조사단이 남극에서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인류가 외계 생명체로부터 수신한 첫 메시지.

「대운동회」- 최초의 이성인과의 접촉

스포츠를 즐기는 네리리 성인과의 스포츠 대결.
스포츠를 통한 이성인과의 문화적 교류에 매료된 인류는 그들과 겨루기 위한 인재를 배양하는데 온힘을 다했다.
각 나라에서 선발한 인재들이 대운동회에 출전 자격을 얻게 되는건 크나큰 명예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대운동회에 출전할 인재를 선발하는 곳이 다름아닌 각국의 고교 운동회이며,
내일 개최될 사이난 고교 스포츠 페스티벌은 바로 대운동회에 나갈 인재를 선발하는 대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승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호칭이 바로 「코스모 뷰티」야.
이해했어 야미?"

"지구의 스포츠는 대단하군요..."

"야미짱에게 엉터리 지식 가르치지 말아요 아키츠군!"

딱-!

"까읏-!?"

사이난 고교 스포츠 페스티벌 전날.
지구의 문화에 대해 야미와 잡담하던중 내일 열리는 체육제에 관해 허풍을 늘어놓다가 코테가와에게 꿀밤을 먹었다.




펑-! 펑-!

상쾌한 가을 하늘 위로 폭죽이 쏘아지며 사이난 고교 스포츠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정문에서부터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교사 근처의 야외 스피커 기둥에까지 늘어선 만국기들이 보인다.
운동장을 바라보자 운동복을 입은 학생들 사이로 일반 관람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꽤 많구나."

운동장을 둘러보다 정문을 장식한 현수막으로 눈을 돌렸다.

사이난 고교 스포츠 페스티벌

- 협찬 : 텐죠인 그룹 -

사키 선배의 집안인 텐죠인 그룹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체육제에는 일반인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일반인 관람객이라지만 보통 학생들의 가족이 대부분이니까 딱히 제재하거나 할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관객이 많네요."

"아, 코테가와. 지금 온거야?"

어느새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코테가와를 바라보았다.
코테가와는 귀 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제외한 부분을 뒤로 틀어올려 비녀로 고정하고 있었다.
쪽 찐 머리 아래로 드러난 목덜미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평소의 긴머리도 예쁘지만 지금의 머리 스타일도 정말 어울리는데다 어쩐지 신선해보여 위에서 아래로 한차례 코테가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그나저나...치마 길이가 속옷이 힐끗 보일 정도로 짧은건 이제와서지만,
운동복 바지마저도 핫팬츠에 가깝게 짧다는건 좀 어떨까 한다.
여학생의 바지 길이가 남학생보다 확실히 짧아서 노출되는 면적이 지나치게 넓다고 할까,
빠듯하게 허벅지 위쪽은 가려주었지만...
노출도에 신경이 쓰이다 보니 괜스레 사고의 방향이 이상해진걸까.
게다가 배를 감싸듯 팔짱을 낀 코테가와의 모습은 어쩐지 볼륨을 강조하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코테가와는 슬며시 양팔을 올려 가슴을 가렸다.
살짝 얼굴이 붉어진채 노려보는 코테가와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딜보고 있는거죠 아키츠군?"

"아니, 코테가와의 지금 머리모양도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아키츠군은 가슴을 보면서 머리모양을 판단하나보죠?"

"아...아핫핫! 그야 코테가와는 몸매가 좋으니까 시선이 그쪽으로 내려가압...!?"

뻔뻔하게 대응하다가 화가난 코테가와에게 코를 잡혀버렸다.
오른손으로 내 코를 쥐면서 코테가와는 눈썹을 곧추세웠다.

"정말이지 그 파렴치한 생각 좀 그만둘 수 없어요!?"

"앙~"

"...풋..."

대답하려다 코맹맹이 소리를 내버린 내 모습에 화내다 말고 무심코 웃음을 터뜨린 코테가와는 내 코를 잡던 손을 치웠다.

"적당히 절제란걸 몸에 익히라구요 아키츠군."

"네."

키득거리던 코테가와는 몸을 돌려 반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나도 얼얼한 코를 매만지면서 코테가와의 옆에 서며 걷다 문득 떠오른게 있어 물었다.

"아, 그러고 보면 코테가와는 체육제 우승 상품이 뭔지 들었어?"

"아뇨. 딱히 듣진 않았지만..."

갸웃하는 코테가와의 모습에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게 말야~ 정말로 굉장하다구!
우승한 클래스 전원에겐 호화 여객선의「스페셜 디너 초대권」이 지급된다잖아?"

"헤에...텐죠인 그룹 협찬이라더니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지? 역시 실행위원 및 스폰서로 사키 선배가 있으니까 뭔가 달라."

"왠지 평소보다 의욕이 넘쳐 보이는걸요?"

"그야 당연하지~!
이런 호화스런 요리를 먹을 기회는 정말 드물다구?"

매일 스스로 만든 요리나 구매한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다보니 이같은 기회는 좀처럼 놓치기 아깝다.
희희낙락하며 까부는 내 모습에 코테가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체육제 상품 때문에 의욕이 넘치다니 불순하네요 아키츠군."

"뭐 어때~ 사람은 동기가 있을때 더더욱 불타오른다구?
그리고 솔직히 코테가와도 가고 싶지 않아?"

"...조금은요."

"역시 그렇지?"

눈을 반짝이곤 코테가와의 양손을 덥석 잡곤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협력해줘 코테가와."

"뭐, 뭐에요?"

갑작스레 손이 잡혀 당황한 코테가와에게 「입장문」이라 적힌 첫시합이 열리는 장소를 가리켰다.

"첫 경기는 '2인1조'라는데 함께 나가지 않을래?"

"으응...어쩔까..."

「할 수 있다! 2-A!」

「「「오-!」」」

"...좋아요."

고민하던 코테가와는 한쪽에서 들려온 리토와 클래스 메이트들의 들뜬 외침에
체념한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경기라곤 듣지 않았어요."

붉어진 얼굴로 내 등에 업히며 코테가와가 중얼거렸다.

1경기「업고 달리기」

주변을 둘러보자 남학생은 남학생을, 여학생은 여학생을 업어주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동성팀들 뿐이네.
사키 선배도 아야 선배에게 업혀 있고...
이렇게까지 혼성팀이 적을거라곤 생각못했는데...조금 부끄러워졌다.
남녀로 한팀은 라라와 리토를 빼면 우리뿐인듯 했다.

"얏호! 리토호 등장 완료~!"

기운찬 라라와 반대로, 리토는 나랑 비슷한 심정인지 민망한 표정으로 라라를 업은채 엉거주춤 서있었다.

"우후훗...리토의 등 따뜻해♡"

"바, 바보처럼 달라붙지마!"

응, 그거군요.
가슴으로 등을 부비부비.
의도한건 아니겠지만 소년에겐 너무 자극이 강한 공격이다.
얼굴이 빨갛게 되서 어쩔줄 몰라하는 리토를 보면 조금 부럽긴 하다.
멍하니 둘을 바라보다가 코테가와에게 한쪽 귀를 잡혔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건 적당히 하는게 어때요 아키츠군?"

"윽...!?"

귀가 잡아당겨지면서 억지로 고개를 돌려졌다.
딱히 음흉한 시선으로 보고 있던건 아니었다고?
억울한 마음에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등에 업힌 코테가와에게 눈으로 호소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멈칫한 코테가와는 빤히 내 얼굴을 바라 보았다.
뭔가를 읽어내려는듯 찬찬히 내 눈을 주시하는 코테가와.

"...설마 아키츠군도 저런걸 바라는건 아니겠죠?"

"...핫핫핫~! 그럴리가 있나요?
그저 조금 부럽다고 생각..."

꽈아악-!

"그,러,니,까! 파렴치한 생각은 적당히 하라고 했죠!?"

"으아악~!?"

코테가와에게 양쪽 귀를 잡힌채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대화에서 솔직함은 미덕이지만 때때론 마음으로만 간직할 줄도 알아야 하는거군요.

「「「꺄아아~! 언니 멋져요~!」」」

군중들 사이에서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왠 언니? ...예전에 코테가와를 동경하던 그 로사리오의 하급생들인가?
귀를 기울이자 군중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굉장해! 저 불량배 위에 올라타서 맘대로 다루고 있다니~」
「대단하지? 역시나 사이난 고교의 먹이사슬의 정점이라는 소문은 사실이었어.」
「맹수 조련사라더니 저 불량을 정말로 잡아먹을듯한 분위긴데?」

그만둬.
올라탄다느니, 잡아먹는다느니...
어쩐지 저질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아아, 자매의 의식을 하고 싶어.」
「얘. 그건 안돼.」
「에에~~~? 어째서?」
「교내에 떠도는 소문 못들었니?」
「소문?」

- 사이난 고교에서 로사리오를 들고 다니면 수염난 금발 변태가 「오라버님이라고 불러!」라고 외치며 쫓아온단다.

「저, 정말이야?」
「그야 물론이지. 여동생 모에라는 소문도 있고...게다가 예전에 여동생 카페를 들락날락할 정도로 광적인 여동생 취향이라더라구.
그러니까 우리같은 하급생들은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구. 자칫하다 로사리오를 가진채로 만나기라도 한다면...」
「무, 무서워...」
「그치? 여자애들중엔 그일을 당하곤 울어버린 애들도 있다구.」

...내쪽이 더 울고 싶습니다.
뭡니까 그 괴소문?
난 그저 성가신 하급생들을 쫓아버리려고 장난친것 뿐인데...
어째서 바바리코트를 입은 변태 보듯한 두려움 섞인 시선을 받아야 하는거야?

우울함에 의욕이 약간 하락했다.
...아니, 안되지 안돼.
기운내서 스페셜 디너 초대권을 따내지 않으면...!
활력을 북돋우기 위해서 기합을 넣고선 등에 업힌 코테가와를 다시 들쳐 업었다.

"읏차-!"

"꺅!?"

들쳐업는 중에 몸이 들썩인 코테가와는 엉겁결에 내 목에 팔을 둘렀다.
매달려오는 와중에 맞닿은 코테가와의 볼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이내 정신을 차리곤 화들짝 놀라서 몸을 뗀 코테가와는 내게 항의했다.

"아, 아키츠군! 갑자기 그러면 위험하잖아요!"

"미, 미안..."

경기가 시작하기전의 소란스러움속에서 이쪽으로 시선을 향한 사키 선배는 우리를 발견하곤 웃음지었다.

"어머? 당신들도 내가 고안한 이 경기에 참가한건가요?"

"아, 사키 선배. 아야 선배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키츠군."

사키 선배를 업은 아야 선배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사키 선배는 잠시 우리를 보다 흐흥- 하는 콧소리를 흘렸다.

"아키츠군에겐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답니다?
승리는 체육제퀸이라 불리는 이 텐죠인 사키가 가져갈 테니까요."

호승심을 드러내는 사키 선배의 태도에 미소지었다.
어떤 일에서든 최고를 추구하는 사키 선배와의 대결은 꽤나 즐거울듯 했다.
「학원제퀸」이나「연애퀸」「체육제퀸」처럼 일일이 퀸을 붙이는 센스는 좀 아니다 싶지만...

"사키 선배야말로 조심해야 할걸요?
그런 호화스런 상품이 내걸린 이상 반드시 우승하고 말테니까요.
그리고...승패는 시합이 끝나봐야 아는거죠."

"훗...도전하는 그 정신은 칭찬해줄만 하군요.
그럼, 열심히 해봐요~"

슬쩍 웃곤 사키 선배는 스타트 라인을 향해 이동했다.
리토-라라 페어를 포함한 다른 팀들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기에 나와 코테가와도 스타트 라인으로 이동했다.


『자, 본격적으로 체육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종목은 '업고 달리기'.
진행은 방송부인 저 사루야마 켄이치와 특별 게스트인 교장 선생님이 함께 하겠습니다.
그럼 각 선수 스타트 라인에.』

방송에 따라 아야-사키 선배 팀, 리토-라라 팀과 나란히 스타트 라인에 섰다.

『준비-』

『출발!』

"으라아아아-!"

사루야마의 출발신호와 함께 재빨리 스타트 라인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오- 선두로 나선건 남녀 페어!
과연이라고 할까 체력과 가벼움이라는 두 장점을 확실히 살리고 있습니다!』

스타트는 순조롭다.
남녀 페어의 장점.
업는 쪽의 체력이 여성팀보다 뛰어나고, 업히는 쪽의 무게도 남성팀보다 가볍다.
남성팀과 여성팀 양쪽을 압도하는 장점을 가진 이상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승리는 필연!
첫경기부터 확실하게 우세를 점해주마!
기합을 주고 힘차게 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무엇인가가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파아앗!

"우왓!?"
"꺄악?"

갑작스레 바닥에서 튀어나온 그물에 뒤덮혀 코테가와와 함께 갇히고 말았다.

『이런! 불량과 풍기위원 페어, 트랩에 발이 묶이고 맙니다.』

퓨슛-!

"꺄아아~!"
"우엣!?"

『뒤를 따르듯 연달아 발동된 트랩!
대단해! 피슛피슛이다앗~!』

물벼락 트랩에 걸린 여학생 페어는 운동복이 흠뻑젖어 속옷이 적나라하게 비쳐보였다.
콧김을 내뿜으며 흥분해서 해설하는 사루야마와 교장 선생님.
트랩 펀치에 얻어맞곤 뻐엉-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남학생들은 관심밖인가보다.

"후후후...수고들 하시죠."

『이런. 그 속에서 가뿐하게 나가는 3-D 페어.』

선수들이 혼란해하는 틈을 타 아야-사키 선배 페어가 유유히 함정을 피해 트랩존을 빠져나갔다.
다른 팀들은 트랩존 앞에서 발이 묶인 상태.
이러면 업고 달리기라기 보다는 장애물 경기라고 해야 하는거 아냐!?
아니, 이럴게 아니라 나도 얼른 그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코테가와를 등에서 내리고 양손으로 그물을 찢었다.
그물을 찢고 나올때쯤엔 아야-사키 선배 팀과의 거리가 꽤나 벌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사키 선배는 트랩의 위치를 알고 있는것 같고...
아야 선배의 발자국을 따라 달린다면 트랩존을 빠져나갈 수 있을텐데...한번 해볼까?

"료스케 물러서~!"

"응?"

갑작스런 외침에 뒤를 돌아보자 리토에게 업힌 라라의 꼬리에서 빛이 모이는게 보였다.
에? 설마 꼬리빔!?
놀라서 재빨리 코테가와를 데리고 옆으로 피하자 라라의 꼬리가 전방을 향했다.

"에잇~!"

빠지직-!
퍼어엉-!

라라의 꼬리에서 뿜어진 섬광이 트랩존에 뿌려지자 폭죽터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라라선수! 꼬리빔으로 전방의 트랩존을 소멸시켰습니다!』

굉음에 놀라서 뒤를 돌아보는 사키 선배.
놀랄만도 하겠지. 이런 식으로 트랩을 제거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테니까.
트랩을 건 사람이나 해제한 사람이나 어느쪽도 상식을 뛰어넘는다.
어쨌든 이걸로 장애물은 전부 사라졌다.
코테가와를 업고 앞으로 달려나가며 아야-사키 선배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줄여나간다.
사키 선배를 업고 있는 아야 선배의 발걸음이 위태롭다.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은 아야 선배라 벌써 체력이 다해가는듯 했다.

이제와서 생각하지만 인선미스였군요 사키 선배.
아야 선배보다는 린 선배가 경기에 참가하는 쪽이 승률이 높았을텐데.
아야 선배의 등이 눈앞에 가까워지고 조금만 더 있으면 아야 선배를 앞지를것 같았다.
헐떡이는 아야 선배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합니다-앗-!"

"동감이에요 아키츠군."

펑-!

"푸합!?"
"아키츠군!?"

사키 선배의 응답과 함께 뭔가가 내 얼굴에 부딪혀 폭산했다.
가루탄!?
눈에 들어간 가루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설마...린 선배가 보이지 않았던건 이 한수를 위해서였나?
승리를 위해 트랩존 뿐만 아니라 저격수까지 준비할 줄이야.
승부의 세계 진짜 냉정해~!

"아키츠군! 괜찮아요?"

"아, 괜찮아 코테가와..."

제자리에 멈춰서 코테가와를 내려놓고 눈물로 가루를 흘려보냈다.
간신히 눈을 뜨자 벌써 저만치 멀어진 아야-사키 선배와 그를 추월하기 직전인 리토-라라 팀이 보였다.
이윽고 리토-라라에게 추월당하자 아야 선배는 힘이 다한듯 앞으로 쓰러졌다.

"헷~?"

아야 선배에 이끌려 앞으로 넘어지는 몸을 어떻게든 가누려던 사키 선배는 거리를 벌려가던 라라의 꼬리를 엉겁결에 움켜쥐었다.

"햐읏!?"

민감한 꼬리를 잡혀 소리를 높인 라라는 부들부들 떨며 굳어버렸다.
곧이어 경직된 상태에서 튀어오르듯 휘둘러진 꼬리에 사키 선배는 그대로 하늘로 날려져 버렸다.

"꺄아아아아아------!"

"사키 선배!"

하늘높이 떠오른 사키 선배를 보곤 기겁해서 쫓아갔다.
낙하 궤도를 따라 달려가 팔을 벌려 떨어지는 선배를 무사히 받아들였다.

터억-

"읏샤~"

몸을 숙이면서 서로의 몸에 전해지는 충격을 분산시켰다.
후우-한숨을 쉬곤 팔에 안긴 사키 선배의 모습을 확인했다.
공주님 안기 상태의 사키 선배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양손을 가슴에 모은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많이 놀랐나보네...

"괜찮으세요 사키 선배?"

"...아...?"

살짝 눈을 뜬 사키 선배는 의아한 듯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에? 아키츠군?"

"다치진 않을까 걱정했어요.
몸은 어떠세요?"

"......"

"사키 선배?"

"읏...! 내, 내려줘요 아키츠군!
이런 부끄러운 모습, 남에게 쬘 순 없어요!"

"아? 네."

당황해서 내 가슴을 손으로 밀치다 떨어지려는 사키 선배를 다시 안아들곤 제대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만큼 건강하게 반응할 정도면 걱정하진 않아도 되겠네.

"시합은? 어떻게 된거죠?"

"그거라면 저기."

볼이 상기된채 사키 선배가 물어오자 가만히 결승점을 가리켰다.
이미 결승점엔 하나 둘씩 다른 팀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뭐, 1등은 물건너갔다고 봐야겠죠."

"그런..."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자 사키 선배가 망연한 표정으로 결승점을 바라보았다.
결승점에 골인한 페어의 모습에 환호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코테가와가 다가왔다.
바닥에 쓰러졌던 아야 선배를 일으켜 함께 다가와선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요 아키츠군?"

"응? 나야 멀쩡하지. 다행히 사키 선배도 무사하고.
...오히려 아야 선배가 더 큰일인것 같은데?"

약한 몸으로 무리하게 달렸는지 아야 선배는 아직까지도 하아- 후웃- 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방금전 넘어지면서 운동복이 더러워진 상태로 헐떡이는 아야 선배의 모습은 안타까울정도였다.
먼지투성이가 된채로 울먹이며 사과해오는 아야 선배의 모습에 사키 선배는 당황해서 아야 선배를 달래기 시작했다.
적당하게 아야 선배를 달랜 사키 선배는 내쪽을 향했다.

"방금전엔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키츠군.
그리고...미안해요."

"네?"

"나 때문에 경기를 놓쳤잖아요?"

"아...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제 겨우 첫 경기일 뿐이고.
그리고 상품도 좋지만 역시 체육제는 안다치면서 즐기는게 최고니까요."

미안해하는 사키 선배에게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사키 선배는 수긍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키츠군이 괜찮다고 하지만 이런식으로 빚을 지는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요."

"으응...정 신경쓰이신다면, 다음 경기부터는 트랩 같은게 없는 시합을 하고 싶은데 말이죠."

"읏..."

뜨끔했는지 사키 선배는 얕게 신음소리를 냈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사키 선배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좋아요. 나 텐죠인 사키의 이름을 걸고 트랩이나 시합방해가 없는 공정한 승부를 할 것을 약속하죠."

"감사합니다 사키선배."

뭐, 솔직히 지금의 약속이 딱히 의미 있는건 아닐거다.
어차피 운동장 전체가 트랩으로 덮혀있었다면 사고가 났어도 벌써 났을테니,
트랩은 첫경기에서 등장한게 전부라고 봐도 좋을것 같았다.
요점은 사키 선배가 빚을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거니까.

"그럼 아키츠군.
그럼 공평한 승부에서 누가 「체육제퀸」에 어울리는지 경주하도록 하죠."

"전 남자입니다만..."

"어머~ 그랬죠.
그럼 다른 좋은 호칭을 생각해두도록 하죠.
기대해도 좋아요~"

다시금 기운을 차린 사키 선배는 우아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자리를 떴다.
그럼 나도 코테가와랑 슬슬 다음 경기를 준비해 볼까?


"사양하겠어요."

"에~ 어째서?"

고개를 젓는 코테가와에게 볼멘 목소리로 항의했다.
두번째 시합에서 코테가와는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첫시합에서 2인1조를 짰을때 조금 주변을 의식했었나보다.
근처에서 리토도 매달려오는 라라를 뿌리치며 참가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무리 부끄럽다지만 매정하게 느껴지는 현실이군요...
다른 아는 사람과 팀을 짜볼까 싶기도 했지만,
2경기에 참가할 의사를 표현한 사람들은 이미 페어가 정해져 있었다.
별수없이 2경기에서 뛰는건 포기해야 하려나?
나직히 한숨을 쉬고 있는데 리토와 조를 짜는데 실패한 라라가 내쪽을 향했다.

"료스케도 다음 경기에 나가는거야?"

"...짝을 못구했어..."

"그래? 그건 그렇고 들어봐 료스케. 리토가 말야~"

'그건 그렇고'라는걸로 내 문제를 흘려넘기지 말아요 라라양.
낙담한 내 심정을 모르는듯 라라는 리토가 팀을 짜주지 않는다며 푸념했다.
나도 비슷한 처지라서 푹푹 볼을 부풀리며 불평하는 라라에게 맞장구쳐주면서 적당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잠시후...

"그럼 우리 둘이서 팀을 짜볼래 료스케?"

어느새 기분이 풀렸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라라가 제안해왔다.

"나야 기쁘지. 이번에야말로 1등을 하고 말겠어!"

"아하하~ 기운넘치네 료스케는~"

싱글싱글 웃는 라라와 악수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발군의 운동신경을 가진 승리의 여신이 바로 눈앞에 있다.
라라와 손을 잡는다면 그야말로 최강의 콤비 탄생이다.
만약 이대로 '기마전'이라도 한다면 승리는 누워 떡먹기.
허리케인킥 같은게 없더라도 몸통 박치기만으로 종횡무진 경기장을 휩쓸 수 있다.
최고의 말과 최고의 기수.
그야말로 인마일체(人馬一體) - 우리에게 베지 못할건 없다!
텐션이 오른 상태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웃음소리에 주위 학생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물러나는게 보였다.
이런... 재빨리 얼굴을 수습하곤 헛기침을 하고 라라를 마주보았다.

"아무튼, 힘내자 라라! 반드시「스페셜 디너 초대권」을 손에 넣는거야!"

"좋~아! 우승해서 꼭 지구의 음식들을 맛보고 말테니까~!"

"오우~!"

손을 맞잡은채 기합성을 내곤 라라와 함께 2경기 장소로 이동했다.


2경기「손짚고 왕복 달리기」

A가 B의 양다리를 잡으면, B는 손바닥으로 땅을 짚으며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코너에서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때는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이동하는 경기다.
처음은 라라가 손바닥으로 달리고, 코너를 돌때 나와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머리카락이 바닥에 흘러내려 더러워지지 않도록 라라는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묶었다.

"으응~그러니까 손바닥만으로 걷는다는거지?"

"그래. 내가 네 다리를 잡으면, 네가 손바닥으로 땅을 짚으면서 코너까지 이동하면 되는거야.
경기 시작전에 간단히 호흡을 맞춰볼래?"

"응."

라라가 엎드려 손바닥으로 땅을 짚자 라라의 뒤로 이동했다.
손바닥을 펴서 살짝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럼 라라, 발을 올려줘."

"알겠어~ 에잇~!"

파아앗-!

"으헥!?"

기합과 함께 땅바닥을 박차며 내 턱을 찍어버릴듯 내질러진 라라의 발뒤꿈치에 기겁해선 몸을 젖혀 피했다.
'한쪽 다리만' '허리높이까지' 올리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줘야 했다고 내심 반성했다.
아무튼 뒤로 젖혀진 몸을 일으키면서, 하늘높이 올라간 라라의 다리를 잡으려 했는데,
물구나무서듯 일자로 서버린 라라의 자세 때문에 허벅지 부근에 손이 닿게 되었다.

"아하하~ 간지러워 료스케."

"미, 미안."

부드러운 감촉과 간지러운듯 키득거리는 라라의 목소리에 당황해서 라라의 허벅지에서 손을 뗐다.
정강이 부근을 손으로 잡으면서 라라에게 사과하려고 고개를 숙였다.

스르륵-

"...응?"

거꾸로 선채로 키득이며 몸을 움직인 탓인가...라라의 운동복 상의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밑으로 흘러내렸다.
배꼽이 드러날만큼 흘러내리면서 헐렁하게 벌어진 운동복 안으로 둥글게 부풀어오른 가슴 봉우리가 드러났다.

"...쿨럭..."

"응? 왜그래 료스케?"

뻐끔뻐끔 입을 여닫길 잠시.
얌전히 라라의 다리를 놓고 라라의 몸을 일으켰다.
일어선 라라는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그래서, 료스케가 보기엔 방금전 예행연습은 어땠어?"

궁금해하는 라라의 한쪽 어깨를 조용히 잡고 진지한 얼굴을 지었다.

"...우선, 명심할게 세가지 있어."

"뭔데?"

손가락을 하나 폈다.

"첫째, 다리를 들때는 한쪽다리부터 천천히 내 허리높이까지만 들도록해.
그럼 내쪽에서 다리를 잡아줄테니까."

"응."

고개를 끄덕이는 라라를 보며 손가락을 하나 더 폈다.

"둘째, 운동복 상의는 하의안으로 집어넣는게 좋겠어.
거꾸로 설때는 흘러내리기 쉽거든."

"응. 그리고?"

"......"

"료스케?"

"명심할건 이걸로 끝이야."

라라의 어깨를 잡은 손을 치우곤 라라에게서 떨어지자 라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알려준건 두개 뿐인데...
기억할건 세개라고 말하지 않았어 료스케?"

"...중요한건 아니었어."

의아한듯한 라라의 시선을 피해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얼버무렸다.

- 셋째, 속옷을 입을것

...죽어도 말못한다 이건...
아무리 순진해빠진 라라라지만, 여자애한테 그런말을 꺼내는건 성희롱이라고.
언젠가 여자애들중 누군가가 라라에게 조언해주길 바라며 2경기장으로 함께 이동했다.


『그럼 2경기 '손짚고 왕복 달리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각 선수 스타트 라인에 서주세요.
준비- 출발!』

"야압~!"

재빨리 손을 놀려 앞으로 전진하는 라라를 따라 뛰었다.
기운이 넘치는 라라답게 그야말로 순식간에 코너에 도착했다.
과연 만능 스포츠 소녀.
다른 팀과의 격차가 꽤나 벌어졌기에 이대로라면 무난히 선두를 유지할 것 같았다.
코너에 도착해 라라의 다리를 내려놓자마자 라라가 힘차게 일어섰다.

"료스케 교대야!"

"물론-!"

재빨리 라라와 역할을 바꿔 바닥에 손을 짚었다.
이제 출발지점으로 돌아가기만 하면「가자 료스케~!」"응?"

"이야압~!"

주르륵- 콰지직! 드르륵!

"우왓!? 자, 잠깐...윽!?"

내가 미처 팔을 앞으로 뻗기도 전에 내 다리를 잡은채 질주하기 시작한 라라.
예상보다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라라 덕분에 몸을 가누지도 못한채 바닥에 질질 밀리면서 내 몸은 강제로 전진해 나갔다.
라라...네 역할은 전력으로 날 미는게 아니야.
손바닥으로 걷는 내 속도에 맞춰 뒤따라 와야 하는거라고?

"어렛~!?"

우당탕~!

"으엑~!"

엉망이 되어버린 팀웍 때문에 결국 멀리가지 못하고 나와 라라는 뒤엉켜 바닥을 굴러버렸다.

『아아- 선두를 달리고 있던 아키츠-라라 팀.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고 뒹굴고 맙니다.
이틈에 다른 팀들의 순위 쟁탈전~!』

"...이대로 포기할 것 같으냐!"

승부가 어떻게 되는간에 적어도 후회는 없어야겠지!
당황해하는 라라를 일으켜서 다시금 경기를 속행했다.

『오오? 아키츠-라라 팀. 포기하지 않고 승부를 계속 합니다.
과연 역전극을 펼칠 수 있을까요?』

「라라 힘내!」「힘내 라라찌~!」
「아키츠군 힘내요!」「이대로 지지 말아~!」

사루야마의 해설과 함께 사람들의 응원이 들려왔다.
라라도 고무된듯 내 다리를 잡은채로 열심히 골을 향해 따라와 주었다.

「이기면 오빠라고 불러줄께~♡」

"필요없어-!"

정말이지 어디서든 장난을 빼먹지않는 아이들이다.
휘청거릴뻔 한걸 억지로 참고 외치며 골을 향해 팔을 놀렸다.
그렇게 라라와 함께 분발한 결과, 제2경기에선 2등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1등을 놓친건 조금 아쉬웠지만, 지구의 스포츠에 익숙하지 못한 라라를 고려하면 과할만큼 좋은 결과라 생각한다.
아까전의 실수를 신경쓴건지 풀이 죽은 라라를 달래느라 조금 애쓴건 여담이다.
이 다음에 있는 단체경기에서 멋진 모습 부탁한다고 라라를 독려해서 겨우 기운을 차리게 할 수 있었다.


3경기「줄다리기」

"...크다..."

나는 지금 눈앞에 선 거대한 물체를 목이 아프도록 올려다보고 있다.
건물 3층 높이만큼이나 거대한 남학생...
...거대하다는 말로 이해할게 아니지!?
어째서 저렇게 커!? 아니, 그 이전에...

"...사람맞냐?"

"...동감이에요."

옆에 있던 코테가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금은 줄다리기 결승전. 라라의 분발에 힘입어 우리반은 무사히 결승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만난 사키 선배의 3-D 반.
조우한것은 상식을 초월하는 덩치의, 인간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민둥머리의 남학생.
압도적인 덩치를 올려다보던 고개를 내리곤 사키 선배를 불렀다.

"저기..."

"뭐죠?"

"저사람은 누굽니까?"

"보면 알겠죠? 저희반의 학생랍니다."

「별명은 쟈○안」이라는 사키 선배의 말은 무시했다.

"...사이난 고교에 다니면서 저런 학생은 처음 봅니다만."

저런 학생이 있었다면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을리 없잖아?
그리고 저덩치로는 애초에 교실에 들어가지도 않을텐데.

"명백히 1학년때부터 통학해온 학생입니다."

"...저 덩치로 지금껏?"

"거대화입니다."

가능한거냐 그게!?
나도 모르게 태클을 걸려는걸 억지로 참았다.
나름대론 상식을 버릴 각오도 되어있었다지만 지금건 너무나 허들이 높았다.
「거대화」라고? 대체 어떻게 그런게 가능한거야?

"...버섯이라도 먹었답니까?"

"버섯?"

"아뇨, 혼잣말입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나에게 사키 선배는 가슴을 내밀며 뽐내듯 답했다.

"미카도 보건 선생님께 부탁해서 「키가 커지는 약」을 사용한 결과죠."

...또 지구인에게만 일어나는 부작용으로 저렇게 된겁니까?
내안에 있는 미카도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바뀌어 가는것만 같았다.
내 속내를 모르는 사키 선배는 자신만만하게 거인학생-별명 ○이안-을 가리키며 선언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난 그는 그 이름하여 「자이언트 쟈○안」입니다!"

...거인 거인(Giant Giant)?
무슨 악마의 열매 이름도 아니고...
기니까 줄여서 「걸리버군」으로 부르기로 하자.
이미 쟈○안도 아니게 된것 같지만...상관없나.

"참고로 유지 시간은 3분이라더군요."

울○라맨?

"그런데...공정한 승부를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요?"

"물론이죠. 「트랩」이나「시합방해」가 없는 승부를 하기로 했었죠."

...어라?
눈이 동그래진 날 보고 사키 선배의 미소가 짙어졌다.

"보시다시피 트랩도, 방해공작도 없습니다."

"...요컨데, 약속을 어긴건 아니다, 이거군요?"

"이기기 위한 패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괴력녀랑 아키츠군을 상대하려면 이정도는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HAHAHA."

"후후후..."

고상하게 웃는 사키 선배의 모습에 약이 올라서 쓸데없이 마주 웃으며 기싸움을 했다.
린 선배랑 아야 선배가 말리려고 오기전엔 물러섰지만.
조금 약이 오르긴 했지만 맹점을 찔린건 사키 선배의 승리에 대한 의욕을 얕본 내 실수지.
무엇보다...

"...이기면 되지 뭐."

"상당히 자신만만하군요 아키츠군?"

"자신만만이고 자시고, 벌써 3분 지났는데요?"

"엣?"

깜짝놀란 사키 선배가 돌아보자 보통 키로 줄어든 민둥머리 남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복용을 너무 빨리 했군...
타임오버로 거대화 계획은 물건너 갔네요.

"큭...하지만 약은 아직 한알 더 남아있습니다!"

"...여분이 남아 있었어요?"

"매시합마다 썼는데, 추첨운이 좋아 부전승으로 한시합을 건너뛰어서 한알이 더 남았죠."

과연...운이 좋았군요 사키 선배.
하지만 이번 시합이 끝나면 더이상 이런 꼼수를 쓸순 없다는거군요?
이번엔 따로 대화로 시간을 끌진 못하고, 다시 거대화된 학생을 포함한 채로 시합을 시작했다.

3-D반과 마주하며 바닥에 놓인 줄을 잡고 들어올렸다.
마주본다고해도 8미터 거구가 맨 첫줄에 위치한지라 그녀석밖에 안보이지만...
라라와 함께 맨 앞에 선채 뒤를 돌아보자 2-A의 학생들이 불안한듯 줄을 잡고 있었다.
비상식적인 덩치가 가진 위압감에 다들 주눅이 든것 같아서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

"다들 그렇게 긴장하지마. 그냥 줄다리기 경기일 뿐이잖아?"

"아키츠...저 덩치를 눈앞에 두고 그런 말이 나와?"

질린듯이 걸리버군을 바라보던 리토가 중얼거렸다.

"...저녀석도 기-브리 녀석처럼 겉모양만 강해보이는거라면 좋겠는데..."

기-브리? 누구야 그녀석은.
라라의 약혼자 후보 중 한명의 이름인가?

"뭐, 이왕 하는거 다들 너무 부담 갖지 말자고.
게다가 봐봐~ 저 덩치로 줄을 잡으려고 저렇게 쪼그리고 앉아있으니까 의외로 귀엽지 않아?"

「「「......」」」

순간 2-A 학생들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아키츠군의 미적 감각은 이상해요."
"귀엽단 표현은 그럴때 쓰라고 있는게 아냐~"
"응...귀여울지도~"
"라라찌!?"

어째선지 두런두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방금전의 위축된 분위기는 풀렸는지 다들 얼굴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잘됐네. 자신감을 잃으면 될것도 안되니까 말이지.
누가뭐래도 승리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상대편에겐 걸리버가 있다지만, 우리쪽에는 자동차도 가볍게 드는 라라가 있다고!
패닉상태에선 우주인 수십명도 쓰러뜨리는 하루나도 있고.
여기에 염력을 다루는 오시즈마저 2-A로 왔더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전력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멤버만으로도 승리를 거머쥐는데는 충분하다.


『그럼 줄다리기 결승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야- 그나저나 이번 체육제는 정말로 볼거리가 많군요.
에로한 트랩과 거대화한 학생의 시합이라니...』

『우~응♡ 여학생들이 정말 바람직한 몸매를 가지고 있더군요.
교장 선생님은 정말로 기뻐요.』

"우우~! 저질!"
"원숭이야 둘다!"
"빨리 시작해요! 3분 지나간단 말이에요!"

학생들의 야유를 받으면서 사루야마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선수들 준비-』

줄을 거머줘고 기합을 주자 사루야마의 신호가 떨어졌다.

『시작!』

"그워어어어어---!"

...목소리도 괴수화가 된거냐?
운동장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걸리버군이 줄을 잡아당겼다.
넘치는 박력 속에서 줄은 금방이라도 3-D로 빨려들어갈것만 같았다.
하지만...

와~ 도미노가 줄줄이 넘어간다~

『이런! 예상과 달리 허무하리만치 간단히 2-A의 승리!』

"이, 이럴수는..."

걸리버는 쓰러졌지만 컵라면은 아직 익지 않았습니다.
순식간에 결판이 나버린 결승전에 사키 선배는 허탈해하는 얼굴이었다.
유감. 상대가 나빴습니다.

『과연...고교 제일 불량으로 알려진 2-A의 아키츠 료스케.
인간을 초월했다는 소문은 진짜였나보군요.』

"...퍽이나."

난 피를 빨지도 않고 눈에서 레이저빔 같은것도 안나간다고.
결승전에서의 승리는 엄연히 라라와 함께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물론 지금의 승리를 기뻐하는 2-A의 친구들도 함께.


이후로 빵먹기 경주, 단거리 달리기 경주 등의 시합이 계속되었고, 시계는 어느덧 정오를 가리켜 점심시간이 되었다.
준비한 도시락을 가지러 코테가와와 함께 교실로 돌아가던 중 도서실에서 나오는 야미와 미캉, 라라를 만났다.
자연스레 식사권유를 받아 도시락을 챙긴 뒤 세명과 동행했다.
그리고...운동장 한쪽에 자리를 잡아 앉아보니 점심 식사 인원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다.
떠들석한 분위기 속에서 이렇게 인원이 늘어나게 된 원인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 미캉이 야미를 발견해서 점심을 권했다.
- 나와 코테가와가 거기에 합류했다.
- 라라가 하루나와 리사, 미오를 발견해서 점심을 권했다.
- 다른반에 있던 렌이 라라를 발견하곤 쫓아와 합류했다.
- 하루나와 같은 테니스부 소속의 아라이 사야카와 시라유리 코요미가 하루나의 근처에 앉았다.

...그렇게 해서 모인게 무려 12명에 이르는 대인원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인원이 많은 덕분에 주변은 시끌벅적했다.

"이런날에도 도서실에 있었다니 놀랐어 야미짱."
"아! 맞다, 야미짱도 체육제에 참가하지 않을래?"
"에...?"

"좋은 생각이네 라라찌~! 야미야미의 운동복 입은 모습 보고 싶어~"
"그래그래~ 남는 운동복이 어디 없으려나?"

미캉과 라라는 야미에게 체육제 참가를 권하고,
야미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리사랑 미오는 야미에게 입힐 운동복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 하루나."
"왜? 사야카?"
"마지막에 있는 「이어 달리기」에서 하루나도 참가하지 않을래?"
"에? 내가?"
"하루나는 달리기 잘하잖아."
"으응..."

하루나는 사야카랑 코요미와 함께 오후에 있을 경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리토랑 렌은...

"...라라를 따라 왔는데 어째서 유우키 네 옆에 앉아야 하는거야?"
"으응."
"듣고 있는거냐 유우키?"
"응."

리토녀석...
힐끔힐끔 하루나 쪽을 바라보느라 렌에 대한 반응이 건성이었다.

"코테가와는 오후 경기에 참가할거지?"
"종목에 따라 생각해봐야겠죠."
"코테가와는 운동신경이 좋으니까 이어 달리기에 참가해보면 좋을것 같은데."
"아키츠군도 참가할건가요?"
"응. 가장 마지막에 있는 종목이니까 그만큼 중요하잖아."

경기가 남녀별로 나뉘어져 있으니까 함께 달리진 못하겠지만.

"유우키가 함께 나와준다면 든든할텐데."
"유우키군?"
"응. 미캉에게 들었는데 중학교때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주자로 분발해서 반을 우승으로 이끌었대."
"헤에...대단하네요."
"그렇지? 스포츠쪽 재능이 뛰어나니까 유우키는."

"어머? 다음 경기를 위한 계획을 짜고 있나보죠?"

"...사키 선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중 사키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사키, 린, 아야 선배가 서 있었다.

"후후... 오전의 시합은 훌륭했습니다.
설마 줄다리기에서 진다고 생각하진 못했답니다?"

"이쪽도 거인같은게 나올줄은 생각도 못해서 놀랐다구요.
그래도 덕분에 관객들이 즐거워 했으니 잘된거지만..."

주로 「거대화」에 환호성을 지른 꿈많은 소년들이 말이다.

"그런가요? 그나저나..."

말을 멈춘 사키 선배는 무얼 찾는듯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손가락으로 볼을 짚었다.

"...저스틴님은요?"

"어, 그러고보니..."

미캉이랑 함께 저스틴도 라라를 응원하러 체육제에 구경온게 아니었나?
이상하게 생각되서 야미와 대화를 하는 미캉에게 물었다.

"저기, 미캉?"

"네, 무슨 일이세요 료스케 오빠?"

"혹시 오늘 저스틴은 오지 않은거야?"

"저스틴이라면...방금전 아빠의 전화를 받곤 돌아갔어요.
서두르는게 급한 용무인것 같던데요."

「정말이지 오늘정도는 쉬게해주면 좋을텐데」라며 쓴웃음을 짓는 미캉에게 동의하곤 자리로 되돌아왔다.
저스틴은 일이 생겨서 (아마도 사이바이 스튜디오에서 마감 문제가 발생했다던가) 돌아간것 같다는 얘기를
사키 선배에게 전하자 사키 선배는 「그래요...」라고 답하곤 어깨를 늘어뜨렸다.

"후우..."

낙담한듯 한숨을 쉰 사키 선배는 그대로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바로 내 옆쪽에 자리를 잡은 사키 선배는 의아한듯한 내 시선에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는것도 이상하잖아요..."

말을 꺼내놓고 조금 민망했는지 낯이 붉어진 사키 선배의 모습에 린 선배와 아야 선배의 눈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응,「거절은 용납하지 않아!」라는 의미라는건 명확히 알겠다.
고개를 저으며 손바닥으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곤 「부디 앉으세요」라고 권했다.
사키, 린, 아야 선배가 자리에 앉고 대화상대들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어머? 그쪽은 확실히...야미짱이었던가요?"
"네. 그러는 당신은 텐죠인 사키?"
"후후후...체육제퀸이라 불러주면 좋겠어요."

이상하게 분위기가 살아서 야미와 대화를 이어가는 사키 선배였다.
도중에 「체육제퀸」이니「코스모 뷰티」니 따위의 대사가 오가는게 카오스적인 대화인듯 했다.

"코테가와씨."
"시라유리씨?"
"코테가와씨도 이어 달리기에 참가하지 않아?"
"에? 제가요?"
"응. 사야카가 하루나에게 참가를 권했고, 리사는 자원했어. 라라는 리사가 설득했고.
이제 2명만 더 모으면 돼."
"저, 저기...조금만 생각하게 해줘요."

안경을 슬쩍 매만지며 설득해오는 코요미에게 코테가와는 주저하면서 말을 나눴다.

"리토군~♡ 보고싶었어~!"
"우왁!? 달라붙지마 룬!"

식사 도중에 재채기를 했는지 렌이 룬으로 바뀌어선 리토에게 달라붙었다.
당황한 리토는 쩔쩔매면서 룬을 피하고 있었고.
평소 이상으로 소란스러운 점심 풍경에 웃음지으면서 도시락으로 젓가락을 옮겼다.


점심 시간이 끝나 오후 경기가 진행되었다.

교장 선생님이 운동복을 빌려주셨기에 오후부터는 야미도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라라에 이어 야미까지도 2-A로 활약한다니까 조금 반칙같은 느낌을 지울수 없었지만...
도중에 「입고난 운동복은 세탁하지 말고 따끈따끈하게 가져와주세요」라는 교장선생님에 성희롱 발언에
야미가 머리카락으로 교장 선생님을 이리저리 휘두른건 여담이다.

오후 첫경기인「남녀 혼합 1km 마라톤」에서는 라라랑 야미와 나란히 1,2,3 등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다들 체력이 차다못해 넘치니까 당연한 결과라고 할까.
다만, 마라톤 도중에 리토가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달리던 학생에게 부딪혀 쓰러지려는 하루나를 감싸다가 다리를 삐었다고 한다.
책임감을 느낀 하루나가 리토를 부축해서 양호실로 데려갔다.
크게 다친게 아니면 좋을텐데...
걱정스러운 가운데 둘을 배웅하곤 다음 경기로 이동했다.


「물건 빌리기」

설명할 필요도 없이 말그대로 물건을 빌려오는 경주다.
멀리 떨어진 테이블까지 이동해서 쪽지를 선택한 뒤,
쪽지에 적힌 물건을 먼저 가져오는 사람이 승리.
쪽지 운만 나쁘지 않다면, 달리기가 빠른 쪽이 유리하다.
그런데...생각만큼 쪽지 내용은 범상치 않은듯 했다.

「E캔? 뭐야 E캔이란건?」
「독버섯?」
「인형? 어이! 누구 인형 갖고 있는 사람 없어?」
「회중시계? 왜 이렇게 매니악한...」
「드래○볼!? 이거 넣은 자식 누구야!?」
「여자애 팬○? 교장!? 교장이냐!?」
「피구공? 고교에 그런게 있겠냐!」
「학교수영복? 변태냐!」
「애인이라고!? 기, 기회다! 이걸로 라라에게 내 마음을...!」

...엉망진창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쪽지들이 난무하는 이 장소는 그야말로 전장.
무섭다 물건찾기...

그리고 마지막에 렌... 은근슬쩍 대담한 발언 하지마.

운좋게 정상적인 쪽지를 획득한듯한 몇몇은 재빨리 물건을 구하려 테이블을 벗어났다.
그렇게 시합이 반복되면서 내쪽으로 물건을 빌리러 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키츠군! 로사리오 좀 빌려줘요!"
"어? 응, 코테가와."

"아키츠군! 팔찌 빌려줘!"
"으응, 여기, 모미오카."

"아키츠군! 헤어밴드 좀 빌려줄래?"
"여기, 아라이."

"아키츠군! 혹시 아직 담배갑 가지고 다녀?"
"다행스럽게도. 여기 시라유리."

"아키츠 료스케. 수염 좀 주시죠."
"응 여기...가 아니라! 아니! 안돼!"

계속되는 물건 요구에 응하다가 무심코 위험한 답변을 할 뻔했다.
물끄러미 수염을 응시하는 야미의 시선에 황급히 수염을 가리며 물러섰다.

"안됩니까?"
"안돼!"

애초에 수염을 빌리는게 가능하겠냐?
이건 다시 못붙인다고!
물러서며 경기 상황을 살펴보자 이미 물건을 구한듯 출발점으로 향하는 선수들이 보였다.
...이건 서둘러야 겠는데?

"서두르자 야미!"
"네?"

머리카락을 하늘하늘 움직이며 어쩔까 고민하는 야미의 손을 꼭 쥐고 출발지점으로 달려갔다.
팔을 잡힌채 내게 이끌리듯 달리는 야미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출발지점에 도착하자 진행위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가장 먼저 들어오셨네요.
찾으신 물건은 혹시「금발 외국인」?
우선 확인을 위해 쪽지를 보여주세요."

웃으면서 내게 손을 내미는 진행위원.

"아니, 선수는 내가 아니라 이쪽."

난 선수 표시인 머리띠도 안하고 있다고요?
내가 야미를 끌고오는 식으로 도착하다 보니 그렇게 오해했는지도 모르지만.

내 뒤에 선채 내 손을 잡고 있는 야미를 앞으로 내밀었다.
진행위원은 다른 한손에 든 쪽지를 내민 야미로부터 당황하면서 쪽지를 건네받았다.

"네? 아...제가 실수했네요.
찾는 물건은「수염」이군요.
확인했습니다~"

진행위원이 등수를 기록하는걸 보곤 야미와 함께 2-A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물건을 가진 사람과 동행해도 되는거였군요."

"어, 몰랐어?"

"방금전 당신에게 간 사람들은 전부 물건을 빌려갔으니까요."

"아...그래서였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야미를 보며 가볍게 말했다.

"뭐, 조금 있으면 나도 물건 빌리기 경주에 참가하니까 혹시나 도움이 필요할땐 부탁할께."

"저한테 말입니까?"

"응. 지금까지 나온 쪽지들을 본다면 어떤 기상천외한게 나올지 모르니까."

"예를 들면?"

"글쎄...'금발'이라든지, '다리 벨트'라든지, '천사'라든지? "

"...천사?"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야미에게 웃으며 말했다.

"왜, 수영장 갔을때 하얀 날개 냈었잖아.
그때 여자애가 야미 널 보곤 '천사 언니'라고 했었지 아마?"

쪽지 내용 자체가 워낙 터무니없다 보니까 이 정도 변칙 대응은 허용범위겠지.

"아무튼, 정말로 필요할땐 부탁할께."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내 시합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근처를 살펴보자
리사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리사? 무슨 문제 있어?"

"아, 그게 말이지... 조금 있으면 마지막 경기인 「이어 달리기」가 시작하잖아?
여자 달리기에는 하루나가 주자로 뛰기로 했었는데 아직 보이질 않아.
설마 아직도 양호실에 있는걸까?"

"아...그러고보니..."

리사의 말을 듣고 깨달았는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미오가 나섰다.

"으응...그럼 나랑 코요미가 하루나를 찾아볼께.
혹시 모르니까, 하루나가 늦으면 사야카가 대타로 나서줘."

"응. 그럴께."

리사와 사야카가 「이어 달리기」를 준비하는 동안,
미오와 코요미가 하루나를 찾아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내 시합 순서가 다가왔기에 이만 일어서「물건 빌리기」경기에 나갔다.


『준비- 출발!』

출발 신호와 함께 앞으로 뛰쳐나왔다.
이상한 물건이 걸리지 않길 바라면서 쪽지를 집어들자 역시나라고 할까 기대를 배반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안경 미소녀」

이건 또 무슨 매니악한 조건...
당황해하길 잠시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는 얼굴중에 쪽지 내용에 해당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짧은 양갈래의 검은 머리에 안경을 쓴「사와다 미오」
긴 금발을 투사이드 업으로 하고 안경을 쓴「시라유리 코요미」
검은 장발을 단정하게 내리고 최근에는 약간 맵시나는 안경을 쓰기 시작한 3-D의「후지사키 아야」선배

2-A쪽을 살펴보다가 아차-싶었다.
방금전,「이어 달리기」에 나갈 하루나를 찾으러 미오와 코요미가 자리를 떠난 상태였으니까.
이렇게 되면...!

재빨리 아야 선배가 있는 3-D로 향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아야 선배는 린 선배와 함께 사키 선배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자신의 반으로 다가오는 내 모습을 발견한 사키 선배는 내가 눈앞에 서자 의아한듯 물었다.

"아키츠군? 여긴 무슨일이죠?"

"실례지만 아야 선배를 잠시 빌려가겠습니다!"

"네?"

안경너머의 눈이 동그래진 아야 선배의 손을 잡고선 출발점을 향해 뛴다.

"엣? 에엣-!?"

놀라서 이끌려오는 아야 선배를 데리고 출발지점에 도착하자 방금전 마주쳤던 진행위원이 반겨주었다.

"어서오세요~
이번엔 선수로 오신게 맞군요?"

"네."

영문을 모른채 손을 이끌려 따라온 야야 선배는 허둥대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진행위원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아야 선배...사키 선배를 위할 때를 빼면 정말이지 숫기가 없네요.
수줍어하는 아야 선배의 반응에 난처한 얼굴을 한 진행위원은 내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음...이번 쪽지는 설마「연인」?"

아무렇지도 않게 짐작으로 폭탄 발언 하지 마세요!
아니나 다를까 아야 선배는 새빨갛게 얼굴이 붉어져선 양볼을 감싼채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잠깐!? 선배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니까 진정해요!
얼굴이 새빨개져서 도망가려는 아야 선배를 황급히 어깨를 잡아 말린다.

"치, 침착하세요 아야 선배!"

"놔, 놔주세요!
이런거...부끄러워 죽을것만 같단 말예요!"

"다, 달아나지 말아요!
지금 저에겐 아야 선배가 필요하니까!"

우뚝-.

"에? 무...무슨...!"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어버린 아야 선배는 안그래도 붉어진 얼굴을 귀뿌리까지 새빨갛게 물들였다.

『오오! 이건! 혹시 운동회 도중에 고백인가요!
과연 중학교 시절 100명의 여성을 홀렸다는 악명에 걸맞는 대담함!』

「우우~! 응큼하다~!」
「수염주제에 건방지다!」
「여동생 모에라더니 연상연하를 가리지 않는거야!?」

장내가 소란스러워지며 중개석에서 흥분한 사루야마가 외쳤다.
야이자식들아 오해다!
이대로 뒀다간 소란이 가라앉지 않을것 같아 얼른 쪽지를 진행위원에게 건네주었다.
주위의 반응에 당황한 진행위원도 빨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쪽지 받아들었다.

"아, 그러니까, 「안경 미소녀」군요?"

"윤기있는 머릿결, 날씬한 몸매, 예쁜 눈동자, 귀여운 얼굴, 그리고 맵시있는 안경.
어딜봐도 「안경 미소녀」잖습니까."

"아~알았으니까 그렇게 자랑하듯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누가 뭘 자랑 했는데요?
진행위원이 등수를 기록한걸 확인하곤 굳어있는 아야 선배를 3-D까지 에스코트해줬다.
도중에「미, 미소녀라니 그런...」이라고 중얼거리며 부끄러워하는 아야 선배의 모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했다.
조금은 스스로의 외모에 자신을 가져도 괜찮아요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숫제 잘익은 토마토 마냥 붉어진 아야 선배를 맞이한 사키 선배의 어이없는듯한 눈빛에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고 하지만, 칭찬으로도 사람을 부끄러워 죽을 지경으로 만들수 있었군요.

2-A로 되돌아오자 방금전의 고백 풍문으로 시달렸지만,
쪽지 내용(안경 미소녀)을 말해준 뒤론 미묘한 시선을 받아버렸다.
미인만 밝힌다느니 하는 소리도 듣긴 했지만.
...하지만 굳이 말하자.
젊은 여성중에 미인 아닌 사람을 만나는게 더 힘들지 않아?

내 시합을 마지막으로 「물건 빌리기」경기는 끝났다.
그 사이 무사히 리토와 하루나가 운동장으로 되돌아왔다.
미카도 선생님이 부재중이어서 치료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리토의 상처는 처치는 끝났지만 금방 달리기엔 무리가 있어서 마지막 경기인 「이어 달리기」엔 참가하기 힘들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리토의 달리는 모습,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남성팀은 리토를 대신할 다른 학생을 알아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 경기「이어 달리기」

- 여성주자 : 하루나, 코테가와, 리사, 야미, 라라

"...이겼군."

"아, 아..."

내 말에 리토가 뭐라 말하기 힘든 얼굴로 동의했다.
하루나랑 코테가와, 리사가 운동신경이 뛰어난거야 다들 인정한거고.
야미랑 라라는 솔직히 운동 능력이 반칙에 가까울정도라, 저 멤버로 진다는건 도무지 상상이 안된다.

여학생들은 그렇다치고, 남학생쪽은 어떻게 해야하지?
리토가 빠지고 다른 남학생이 들어와야 하는데, 딱히 운동신경이 뛰어나 보이는 학생은 없었다.
사루야마는 진행자를 맡고 있어서 참가가 불가능하고.
여성진쪽은 호화 파티인데 남성진은 참 초라해졌네요.
...어떻게든 되겠지.
소년만화적으로 말하자면 기합과 근성으로.

그리고 이윽고 시작된 「이어 달리기(여학생)」.
역시나라고 할까, 2학년끼리의 대결에서 승리는 우리반의 차지가 되었다.
사키 선배와 린 선배가 있는 3-D도 3학년간의 대결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어 달리기(남학생)」에서의 2학년 1위도 무난히 우리반이 차지할 수 있었다.
대역전극 같은 전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남자애들이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잘해줬다.
다들 우승 상품을 위해 하나같이 분발해줬다고 할까, 말그대로 근성있는 달리기였다.
덕분에 나도 뜨거워져서 막판 스퍼트 때 너무 분발해버렸지만.

마지막 경주인 「이어 달리기」가 끝나고 최종적인 우승은 우리 2-A에게 돌아왔다.
줄다리기 이후부터 후반 경기들에서 거의 1위를 휩쓸다시피 했으니까 당연한 결과라고 할까.
환호하는 학생들속에 끼여 함께 즐거움을 나눴다.
적어도 지금은 「스페셜 디너 초대권」때문이 아니라 함께 노력해 얻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으니까.



이후 체육제 수상식 중에 MVP로 선정되어 갑작스레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

「업고 달리기」에서 위험한 상황을 막은 것
「손짚고 왕복 달리기」에서 보여준 근성
「줄다리기」에서의 활약
「물건 빌리기」에서의 해프닝

뭐, 요점은 시끌벅적하게 체육제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공로라는 것이다.
시상은 실행위원인 사키 선배가 직접 진행해주었다.
도중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내게 「코스모 뷰티」라는 호칭을 수여한다는 사키 선배에게 진땀을 뺐다.
듣자하니 「체육제퀸」말고 새로운 호칭을 생각하던 중,
점심때 야미와 대화를 하다가 들은 「코스모 뷰티」라는 호칭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호칭의 스케일 부터가 우주급이니까 그럴만도 한가?
하지만 적어도 사내아이한테 「뷰티」라는 호칭은 자제해주세요.

소소한 해프닝들속에서 기분좋게 마무리된 2학년 가을의 체육제였다.




「그래서, 아키츠군은 안경 모에야?」
「안경은 패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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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립니다-_-;;;
운동회 이야기 쓰는게 왜 이렇게 안되던지...ㅇ<-<;;;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쿨럭=ㅂ=;
뭔가 서둘러서 적다보니 묘사도 서술도 이래저래 두서없습니다. 반성...


암튼...물건 빌리는 경주 말인데, 한참 구상해놓고 본편을 보니까 원래부터 있던 경기더군요-_-;
빌리는 이벤트도 없이 폭발 끝으로 진행되어 버린지라 기억도 못하고 있었네요..

남정네들 달리기는 좀더 묘사할까 하다가 생략했습니다.
쓸만한 남학생들이라도 있었더라면 이야기라도 좀 넣어줬을테지만...
렌은 다른반에 있고, 리토는 무릎을 다쳤고...
체육계쪽 인물은 하나도 없으니...
게다가 남자들끼리만 진행하는 이야기는 재미가(이하생략);

그런데 사이난 고교 스포츠 페스티벌은 주말에 열리는걸까요?-_-?
미캉도 초등학교에 가야 할텐데 평일에 오빠가 있는 고교 운동회에 구경올 시간이 있을지...-_-;
뭐, 깊게 생각하면 곤란해 지므로 그냥 넘겼습니다만...(=x=);


(관련 이미지)

코테가와의 운동복 복장

야미의 운동복 복장

트랩에 걸린 학생들

라라의 꼬리빔

사카의 상의 찢어짐(원작 해프닝)

라라의 꼬리에 날려버려진 사키

라라 거꾸로

야미를 발견한 미캉

그러니까 야미는 천사

아야 안경 벗음

아야 안경 씀

아라이 사야카, 시라유리 코요미
무릎을 다친 단발학생이 아라이 사야카, 안경에 금발 투 사이드 업 머리가 시라유리 코요미.

라라의 달리기

라라 포니테일

응원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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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코구레 사치에

아래쪽: 노기와 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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